23-30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2025. 2. 2.
인간 왕(여백)과 인간 구원자의 한계 VS 십자가(공백; 절대저주 속에서의 용서없는 용서)
남 7번 용서의 한계(야백; 목표, 결핍채우기) VS 7에 70번의 무자비한 용서, 일만달란트 탕감 = 용서 없는 용서의 왕(절대심판 속[공백=오홀리바]에서의 용서의 왕, 목적, 어떤임금의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 출애굽사건, 광야혼인잔치)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전쟁 (오징어전쟁, 십자가룰렛) (호 13, 4- 8)
호세아 2023 2025. 1. 11. 19:09
23-29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게임 (오징어전쟁, 십자가게임) (호 13, 4- 8)
〈호세아 13, 9-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8쪽, 찬송가 89장 새 89 샤론의 꽃 예수, 찬송가 269장 새 522 웬일인가 내 형제여〉
〈찬송가 089장 샤론의 꽃 예수, 새찬송가 089장〉
1.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이 참사랑의 향기로 간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2. 샤론의 꽃 예수 이 세상에서 어느 꽃과 비교할 수 있으랴
나의 삶에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3. 샤론의 꽃 예수 모든 질병을 한이 없는 능력으로 고치사
고통하며 근심하는 자에게 크신 힘과 소망 내려 주소서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4. 샤론의 꽃 예수 길이 피소서 주의 영광 이 땅위에 가득해
천하만민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영광 돌릴 때까지
예수 샤론의 꽃 나의 맘에 사랑으로 피소서
〈찬송가 269장 웬일인가 내 형제여, 새찬송가 522장〉
1.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2.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좇다가 저 마귀들 지옥갈 때 너도 가겠구나
3.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 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4.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 보겠구나
5. 여보시오 내 동포요 주께로 오시오 십자가에 못 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찬미예수 2000 - No.1868 누군가 널 위해 (누군가 널 위하여)
1.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2.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조용히 그대 위해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위해 기도하네
〈호세아 13, 9-14,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8쪽〉
(호 13:9, 개역)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호 13:10, 개역)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호 13:11, 개역)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호 13:12, 개역)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호 13:13, 개역)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9, 현대어) [왕국의 종말] 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를 파멸시키겠다. 그러나 누가 너를 구해 줄 수 있느냐?
(호 13:10, 현대어) 도대체 네 왕이 어디에 있느냐? 왜 너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느냐? 네 나라의 지도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전에 그들을 세워 달라고 애걸을 하였으니 이제 그들더러 너희를 구해 달라고 부르짖어라!
(호 13:11, 현대어) 내가 그동안 너희에게 왕을 세운 것도 화가 나서 한 일이며 내가 지금 왕을 없애 버린 것도 분노에 차서 한 일이다.
(호 13:12, 현대어) [피할 수 없는 멸망] 에브라임의 모든 죄악이 이제 벌을 받기 위해 추수되어 단으로 묶였고 저장이 끝났다.
(호 13:13, 현대어) 태어날 때가 되었는데도 산문을 열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그들은 얼마나 완고한 자들인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인가!
(호 13:14, 현대어) 내가 지옥에서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살려내야 되겠느냐? 내가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을 건져내야 옳겠느냐? 오, 죽음아, 네 재앙을 모조리 풀어 놓아 그들이 맛보게 하여라! 오, 무덤아, 네 가시들을 그들에게 보여주어라! 내가 절대로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호 13:1, 쉬운)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말씀> 에브라임이 경건하게 말할 때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높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을 섬겨 죄를 지었으니, 그들은 죽어야 한다.
(호 13:1, 현대어) [우상숭배로 나라가 망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브라임 지파가 하는 말은 온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만큼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런 지파가 바알신을 섬기어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였다.
(호 13:4, 현대어) [죄인에게는 하나님이 맹수와 같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뒤부터 나는 언제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희에게는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고 나밖에 다른 해방자가 없다.
(호 13:9, 현대어) [왕국의 종말] 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를 파멸시키겠다. 그러나 누가 너를 구해 줄 수 있느냐?
(호 13:12, 현대어) [피할 수 없는 멸망] 에브라임의 모든 죄악이 이제 벌을 받기 위해 추수되어 단으로 묶였고 저장이 끝났다.
개역개정 한글 번역
호13:1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한 에브라임>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새번역성경
우상 숭배와 벌
13:1 에프라임이 말할 때에 모두 떨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뛰어났지만 바알 때문에 죄를 지어 죽었다.
배은망덕과 벌
13:4 나는 이집트 땅에서부터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는 나 말고 다른 신을 알아서는 안 된다. 나밖에 다른 구원자는 없다.
왕권의 종말
13:9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멸망시킬 터인데 누가 너를 도울 수 있겠느냐?
피할 수 없는 멸망
13:12 에프라임의 죄악은 잘 간수되어 있고 그의 죄는 잘 보관되어 있다.
먼저 다시한번더 각번역 중 소제목이 달린 번역을 올려봅니다
그렇다고 이 소제목이 옳았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워낙 문해력이 딸려서 일단 본문이 믄말을 하는가를 알고자
참고할 뿐이지 이 소제목이 맞다 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참고만 할 뿐입니다
여러분도 전체번역을 직접 참고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호세아 13장 전체의 의미는 이스라엘 멸망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신 곧 우상숭배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는 그런 우상숭배 아닙니다
그런 우상숭배로만 알게 되면
그 반대인 우상숭배 안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 라는
자기 숙제를 또 펼칠려고 하겠지요
(즉 인간이 가만히 있다가 백지 상태에서 무죄에서 죄의 유혹을 못 이겨서
유죄가 되는 식이 아니라 죄가 인간을 장악하는 죄의 소원이 덮쳐진 겁니다
모든 인간이 그래서 무죄 상태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무죄상태이니까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기숙제를 하겠다 라는 발생 자체가 죄이고 우상숭배이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죄의 소원 자체도 원인 없는 결과이다는 거죠 자기 숙제를 제대로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숙제를 한다는 자체가 이미 죄의 소원에 낚여버렸다 라는 겁니다
죄가 인간을 다루지 인간이 죄를 다루는게 아닙니다
결국 다들 기분나빠하는 죄에게 인격화 해야하고 인간은 인격화 된다고 착각일으키는 죄의 바이러스를 심어 그 바이러스 프로그램대로 강요된 선택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인간은 죄의 숙주일 뿐입니다 죄의 뜻대로 영양분을 공급해 줄 뿐입니다
이것을 이기적인 유전자 책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숙주일 뿐이다 라고 하니까
어떤 독자가 자살까지 하니까 그것을 저자는 종교에게 타켓을 삼는 기회로 더더욱 삼더라 말이죠 유전자끼리 프로그램이 된 대로 잘 움직이는 거죠)
결국 문제가 잘못된 겁니다 문제가 잘못되면 정답이 엉터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수능시험 문제가 잘못 출제가 되면 혼란과 소송이 이어지겠지요
결국 우상이 뭔가 라는 겁니다 유전자가 아닌뎅 무식한 놈 ㅋㅋㅋ
이 우상이 분명히 규정이 되지 않으면
그 반대인 하나님도 또렷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결국 모든 인간이 믿는 하나님이란 결국 우상입니다
모든 종교의 신은 우상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겁니다 왜? 도움을 받고자 말이지요
그것을 여백채우기 라호 합니다
즉 결핍을 채우고자 말이죠
우와 그러면 우리 무신론자의 주장이 맞았구나 라고 찬성하는냥 나오지만
찬성할 리가 없지요 언제든지 불리하면 또 갈아탈려고 할테니 말이죠
즉 무신론자도 포함된
인간 자아가 바로 우상이다 라는 결론을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버림받는 찢겨지는 끊어짐을 당하는 그 하나님만이 들통내는 우상만이 진짜 우상입니다
결국 인간에게서는 신은 자기 투시 투사 투영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그 우상을 까발리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그 우상이라는 인간을,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라고 선언하시는 겁니다
유전자만 골라서 죽인다고 해서 화목제가 또렷해지지 않습니다
모든 육체 곧 죄의 숙주를 모두 못 박아죽이면 바이러스는 저절로 죽습니다
고로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 라는 그 하나님이 또렷해 지는 겁니다
개인 개인 하나 하나가 종교입니다 김종교 박종교 이종교 최종교
리차드 종교 도킨스 종교
학문파도 이름을 따서 붙이기도 하지요 아니면 지역 문화 이름도
프랑크푸드트 학파 종교 라는 식으로
또 하바드 학파 프린스 학파 라는 둥 하바드 종교 프린스 종교 라든지
아무튼 이 하나 하나의 종교 곧 신을 다 부써뜨려 십자가에 못 박는 겁니다
심지어 진짜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못 박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다시 사는 자만 진짜로 보시면 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살기에 죽여보면 압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 보면 압니다
모든 육체를 못 박아 보면
모든 숙주를 못 박아 보면 압니다
결국 우상이란 결국 자아를 위해서 자기를 위해 자기 배를 위해
임금 삼고자 하는 그 마음
그 탐심이 우상숭배이다 라는 거죠
출애굽 십계명의 돌 나무로 만든 우상 금송아지가
호세어서에서는 음란한 마음으로 깊어졌다가
신약에서는 그 우상의 깊은 의미는 인간의 마음인 탐심으로 그 실상으로
모든 가면을 벗겨진 상태로 들통나는 겁니다
점점점 깊어져셔 드러나는 겁니다 두 언약에 맞게 말이죠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결국 탐심은 인간에게서만 나오지 다른데서 안 나옵니다
그 탐심은 누구를 흉내낸고 하니 바로 지옥 곧 사망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만족함 따위는 없습니다
그래서 늘 결핍되어 있습니다
채워야 하기는 해야하고
채워도 소용없는 또 허기지고
만족함 따위는 없는
마침이 없는 겁니다
늘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또 반복하면서 돌아야 하는 의문의 반복입니다
밑바닥이 없는 끊임없이 떨어지는 바닥없는 여백 곧 결핍입니다
마침이 없어요 완료가 없어요
완료를 추구하면 추구하고자 채워본들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 이 가짜인 우상이 된 이스라엘을 깨뜨리면서 진짜 이스라엘의 의미를 알아야 하고
가짜 하나님이 된 그 우상을 거쳐서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우상을 썩어서 그 불순물 혼합물의 내용이 뭔지 그 내막을 다 거쳐서 그 불순물 찌기를 불 속에 집어넣어서
불순물을 분리시켜서 내 누군지 아니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려주시겟다 라고
인간들이 즉 그 가짜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가짜 하나님을 거쳐서 진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심에 있어서 그 가짜의 멸망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호세아 전체는 바로 우상숭배가 뭔가를 드러내는데 있어사
음란한 마음을 말하는데 바로 앗수르를 통한 혼혈 잡족 만들고자
저는 이스라엘의 여자와 북이스라엘이지요
그리고 앗수르 남자를 통해서 보통 그렇게 위반부 사건처럼 이용하잖아요
혼합정책을 말이지요
그런데 어라 그 반대이더라구요
북이스라엘 남자와 앗수르 여자를 통해서 혼합결혼 정책을 벌리는 겁니다
물론 전쟁의 시대이기에 과부들이 천지라서 그것을 해결할려고 하겠지요
보통 여자를 공양으로 바치고 전리품도 남자가 아닌 여성이 생산적이기 때문에 여자와 아이들이 바쳐지는데 어라 반대이다 말이죠
그럼 그렇에 적국에 더렵혀진 여자나 아내와의 이혼을 통해서
거룩과 질서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 어쩔수 없는 남자들의 법칙
곧 상징법 이다 말이죠
그런데 그 법 마저도 다 무너뜨리게 할려면
오히려 남자를 겁탈하듯이 포로잡혀가듯이 가서
적국의 여자와 결혼해서 마치 데릴사위제처럼 활용을 하더라 말이죠
자 이런 환경이라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요
카사보나? 이름 맞나요 카사노바가 바람을 피듯이 여러 여자랑 놀아다는 것은
남자들 입장에서는 우와 부럽다 라고 하기도 하고요
또 여자들 입장에서는 물론 전부 다가 아닙니다
우와 그 바람쟁이가 얼마나 멋있길래 그러지 나도 그의 매력이 뭔지 궁긍한데 라고
호기심에서 같은 바람끼가 작동이 되더라 말이죠
그런 음란이 아니라
그 반대로 너무 너무 정결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실천할려는 자에게
고멜과 같은 창녀랑 결혼하라?
적대국 우상숭배자 앗수르의 남자가 아닌 여자랑 혼합혼혈정책을 벌린다
이런 음란 이다 말이죠 이것은 이혼하면 그만이지 차원이 아닙니다
빼도박도 못한 갇혀버린 입장이 되는 거다 말이죠
앗수르가 남자로써 책임 지는 남자로써 머리되는 남자로써 여성 이스라엘을 겁탈하는 음란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스라엘이 남자로써 앗수르 여자를 겁탈하는 음란을 펼쳤으니
그 부정한 자식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남는 식입니다 그러니 다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다 죽이면 이스라엘은 이제 공중해체 되는 겁니다
그런 갇혀버린 입장을 무슨 수로 구출하느냐 라는 겁니까
그 둘 사이에 낳은 그 부정직인 자식을 무슨 수로 구원하느냐 라는 겁니까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거룩을 보여주는 대표성으로써의 제사장 나라를 보여준게 아니라
죄의 소원이 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로써의 죄인 중의 괴수로써
제사장의 반대인 입장에서 거룩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셈입니다
계시록의 거룩측량 성전측량이 거꾸로 펼쳐지듯이 말이지요
이것이 이스라엘 기능인 처음자리로써 첫사랑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몽학선생 율법의 기능처럼 말이지요
율법 없는 저 개같은 이방인처럼 망하는 자가 아닌 이유로 말이죠
더더더 망해야 하는 자리에서 망하지 않게 하시는
용서 없는 용서의 왕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일만달란트 용서 탕감은 용서 없는 용서의 대왕을 말하기 위한 비유를 외치는 자로써 말이죠
7에 70번 라는 무자비한 용서를 말하기 위한 비유를 외치는 자야 또 너냐 라는 자로써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우상이 우상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 구원자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왜 구원자죠 우상이 아니라
사람의 구원은 헛된 이유가 바로 결핍채우기라는 여백채우기입니다
(시 60:11,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시 108:12, 개역)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결극 우리의 대적은 사람의 구원을 펼치는 자 이다는 겁니다
누구겠습니까? 시편의 원수가 누구인가가 난제인데
알고보니 다윗이 그 원수입니다
대적입니다 다윗이 자기 스스로의 구원을 원했는데
그 헛됨을 대적이 누구인가를 보고 알게 됩니다
다윗 자기자신이였던 거죠
단순히 개인의 회개 차원이 아닙니다
인간 전체의 차원에서 다윗은 지금 왕의 자리에서 외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왕이라는 껍데기에서 다윗이 이렇게 고백한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결핍을 채우고자 세운 그 왕의 기능에 의해서
자기 구원을 구하기 싫어도 구할 수밖에 없는 죄의 소원 아래에 다 갇혀버리게 되는 겁니다
우상숭배 하기 싫어도 우상숭배 할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난 종교가 싫어 라고 무신론을 외쳐도 이미 자기자신이 우상인
구조 매트릭스 판대기에 놓여진 겁니다 역사와 공간이라는 몸 육체를 가진 이상 말이지요
혼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될수 없다 라는 겁니다 사르트르처럼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 라고
자기 선택설 즉 자기 자유가 중요하다 라고 무신론을 외치지만
그 반대입니다 백성이 먼저이고 왕은 그 백성의 목표 곧 선택에 의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라고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그것이 도리어 왕의 노에가 된 입장입니다
그렇게 보편적 진리에 다 갇히도록 한 후에
다윗은 그 왕의 자리에서 노예가 아닌 죄인의 자리로 쭐꾸덕 미끄러지는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외치는 겁니다
첫사랑 곧 왕이 먼저이고 그 왕에 걸맞는 죄인 백성을 찾아내는 식입니다
목표가 먼저이고 그 목표인 여백을 채우는 식으로 왕을 찾는게 아니라
음녀가 신랑을 찾는 식이 아니라
왕이 먼저이고 목적이 먼저 이고 공백이 먼저이고 결과 곧 정답이 먼저이고
원인은 나중이 되는 겁니다 존재 보다 앞선 당위 곧 기능이다는 겁니다
의사의 기능이 먼저이고 그 기능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인 환자가 니중입니다
그 얼룩(공백)이 응시하는
정답이 찾아내는 문제아를 찾아내는 겁니다
목적이 먼저이고 그 목적에 걸맞는 목표 곧 문제지를 찾는 식입니다
그 공백 찢어진 간극에서 낳은 자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결국 우상이라는 남근을 쳐서 다 못 박아서 나온 생명입니다
이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겁니다
우상이라면 누가 믿겠습니까? 누가 우상에게 가서 빌겠습니까 소원을 말해봐 ~~~
실례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 실례 하세요 쏙 쏙 들여다 보는 부채도사 집아 맞나요 맞다 말이죠
아니 우상이면 가짜 이면 누가 찾아가겠습니까?
진짜 이니까 믿으니까 가지요
그러니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입니다 제말 믿지 마세요
그러니 구원자들이 너무 많아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인종차별 될까 싶어서 각민족 각인종의 슈퍼히어로를 다 배치시켜 주는 겁니다
왜? 백성이라는 결핍 여백이 먼저이고 그 여백을 채워주는 왕 히어로가 뒤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보이는 소망을 잃지 않겠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겠끔 절망하지 않겠끔
낙심하지 않기 소망포기하지 않기를 하는 겁니다 목적을 향해서 말이죠
각종 인종의 슈퍼히어로를 마블이 디씨가 계속 만들어 찍어내여야 합니다
이것은 신화 곧 확인될수 없는 신화가 과거만 있는게 아니라 현재에도 있지만
현대판 그리스 신들인거죠
그 신화를 현실화 시키는 것이 바로 왕 제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가 바로 그리스 흉내내기 판대기 구조 아닙니까
곧 대통령제 왕제 총리제 라는 정치 세계입니다
마귀의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이 바로 정치 아닙니까 돈 경제 상호인정 인정투쟁 종교
정치 곧 복수심 나 만 신이다 이것이 동시에 다 터지는 겁니다
마귀에게 죄의 소원에 장악당했기에 그 결핍 여백을 채워주는 것이 메시아 다움이다 라고
조건을 갖추어라 우기는 겁니다
그런 메시아만이 우리들의 왕 곧 구원자이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우상입니다 자기 눈을 누워서 침뱉기 하는 도리도리처럼
상대방을 노예로 삼기입니다 가정부 삼기가 바로 인간의 믿음인 행함인 정치입니다
인간 왕의 한계입니다 자유가 아닌 포로 삼기입니다
그 포로됨에서 자유케 하는 자유 하늘의 자유하는 자로 만드심이 바로
원인 없는 결과라는 화목제로 모든 인간의 육체 몸을 십자가에 못 받는
빵구멍 뻥 뚫어버리는 공백입니다 그 공백에서 이스라엘 곧 출애굽 한 아들이
자녀가 되는 겁니다
츨애굽 출 잔칫집인 광야에서 결혼 혼인하는 한 몸을 이루시는 겁니다
벽이 없는 사막에서 말이지요 막힌 담이 없는 사막에서 말이지요
채울 것 하나 없는 펑준화 된 높은자도 없고 낮은 자도 없는
모조리 다 불도져에 밀려버린 다리미질 당한 평평한 평탄한 길
0 층에서 빵 층 말이지요 높아지고 싶어도 높은 계단이 없어요
낮아지고 싶어도 낮고자 내려갈 지하계단도 없어요
그저 평평한 다리미질 당한 길 뿐입니다
미로를 만들려며는 벽이 있어야 하는데
바닷물과 같은 모래 사막으로는 벽을 맹글어낼수가 없는 겁니다
퍙준화 되어버렸으니까 말이조 그것이 죄 아래 가두어
모조리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사망의 몸이 되었기에
누가 높니 누가 낮니 할 것이 없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정치 곧 빵구멍 공백 만들기 정치와 한 세트가 되는 두 언약으로써의
두 소욕이 서로의 소욕을 방해하는 충돌입니다
이것이 인간 왕의 한계가 넘지 못하는 인간이 왕을 세우고자 하는 정치
그런 메시아 그런 구원자 그런 왕이 되어달라는 겁니다
온 천하 만국을 줄테니 내게 절하라 라고
절 하라 라는 말은 왕에게 무릎 꿇어라
내거 너의 왕이 되어 주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들은 백성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갖출수가 없기에
그 부족분의 여백을 결핍을 이 왕 하나를 세워서 도움을 받으면 된다 라고
이 왕 제도 이 선악제도를 수용하는 겁니다
왕이 곧 법이니까 질서이니까 이 질서를 잡아주니까 말이죠
그 억울함을 채워주니까 말이지요
출애굽후 광야생활에서도 백성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니까
그 분쟁의 해결책으로 모세 혼자 다 판결을 못하니까 질서를 잡고자
재판을 할 수 있는 자들을 세우잖아요
장인 이드로가 해결책을 주고 떠났다 말이지요
그렇게 이방 나라 왕 제도와 비슷한 것을 맛 봤다 말이죠
그러니 사사기 시대에 판관기 라고 하잖아요
사사기 시대에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애굽 때의 버릇을 버리시는커녕 더더욱 확장되다 보니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왕이 없어서 라고
사사기 전체 주제로 나오는 겁니다
(삿 17:6, 개역)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개역)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결국 이스라엘의 특징인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왕 하나 잘 하면 백성이 다 잘 되고
왕 하나 잘못하면 백성들 다 죽는 겁니다 지금 한국 보세요 왕꼬라지 하고는 ㅋㅋㅋ
그래서 백성이 먼저 있기에 왕은 이 백성의 여백을 채워줘야 한다는 식으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삼고자하는 우상숭배인
자기 구원의 탐심을 추구하는 자요
그 반대로 왕 하나 잘 하면 전부 다 잘되는
(결국 오늘 본문의 예언은 세가지로써
해산하는 여인에게서 어리석인 자가 태어나고
(호 13:13, 개역)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두 번째로 왕을 연달아 페 하는 일
(호 13:11, 개역)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세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과 재앙과 멸망에서 장차 구속한다가 연달아 나오는데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이 세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보면
혈육에서 난 인간 왕은 하나님이 인정치 않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 배를 채워줄 임그을 찾아 왕으로 세움에 있어서 인간 세상의 죄악을 빼버리고 간과하기 때문에
결국 사망과 저주 멸망 심판이 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제대로 된 왕이 오면 더 이상 사망과 저주 심판은 없다 라는 겁니다 )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공백으로써의 왕인 십자가사랑
곧 용서없는 용서의 왕
무자비한 용서
즉 인간의 용서를 없애버리는 용서
남 7번 용서를 없애버리는 7에 70번의 용서인 뻔데기 앞에 주름
그가 나 보다 옳았다를 이루시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가 먼저 있었다 라는 용서
일만달린트 탕감 비유에서
인간은 일만달란트 용서를 받아놓고서도 이 용서를 버려버리는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인간이 버린 용서를 더더욱 가치있게 만드시는 용서로써
용서 받은 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심판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의 가치는 하나도 손상 됨이 없이
오히려 인간들에게 버림받은 그 용서를 더더욱 높임으로써
다들 무릎 꿇어 경배하는 용서가 바로
먼저 있었던 공백으로써의 용서인데
인간의 용서의 한계는 바로 여백을 채우는 용서를 추구하다 보니
곧 자기 의를 쌓고자 말이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겁니다
그런 왕 하나 잘못세우다 보니
자기가 세운 왕에게 도리어 노예로 전락당하는
마치 앗수르의 영광을 취하다가
그 앗수르의 영광으로부터 멸망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카이 꼬시다 라고 꼴 좋다 라고 비웃던
여동생 오홀리바 예루살렘 역시나
더 큰 꼬추를 사모하다가 앗수르 영광 보다 더 큰 바벨론 영광을 사모하다가
그 바벨론으로부터 멸망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라 하는 그 중독된 것에
자기가 망하도록 되어 있기에
나 중독 되어도 좋다 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아무도 중독 되고파 하지 않는
여백 채우기 자체가 안되는
아예 빵구멍 뻥 뚫어버리는 먼저 있었던 이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를 제대로 심판하기에
제대로 구원할 이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종결형 이미 벌써 완료 다 이룬 종말로써의
왕이 먼저 떳기에
오늘 그 반대인 두 언약으로써의 한 세트가 되는
인간 왕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 가짜 섬기는 왕의 한계를 거쳐서
먼저 된 하나님의 왕 되심을
우리는 모욕적인 이 7에 70번의 용서로써
용서 받는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서의 왕이 이밉 벌써 창세전에 말이죠
사랑하기로 작정이 된 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창세전에 그 사랑이 먼저 있었기에
억지로 노예 삼아서 한 몸 이룸이 아니라
너의 죄악에 뛰어드는
우리의 죄악에 뛰어드는 한 몸으로써의 용서가 먼저 있었기에
나의 여백을 채워주는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런 멋들어진 구원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이미 스올 무저갱 지옥인
그 큰 물고기 깊은 어두운 바다
그 사망의 몸에 뛰어드신
이 모욕적인 구원
모욕적인 용서
이 무자비한 용서
자기 없는 자비
용서 없는 용서로써의
용서라는 그 십자가를 우리는 걸리적거린다고 버렸는데
그 버린 돌을 머릿돌로 용서의 왕으로써
이 모욕적인 용서를 이루시는 겁니다
왜? 이 공백 우리의 마음 판을 빵꾸멍 뚫는 이 마음판의 할례가
나의 손 할례 달인 됨 보다 옳았다 라고
나는 틀렸다 가짜다 라고
이 모욕적인 구원이 나 보다 옳았다
이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다 라는
이 무자리한 용서를
먼저 된 왕이
나의 마음을 빵구멍 뚫으면서
솔로몬의 지혜의 재판에서
진짜 아기엄마의 마음판을 빵꾸멍 냄으로써
상하고 우는 자로 만들어서
죽음 속에서 아들을 건져내는
심판 속에서 자식을 다시 살려내시는
이 먼저된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겁니다
이것이 아니면 자기 배 자기 여뱍을 채우고자
임금 삼기로 인해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
인간 왕의 노예로 전락되고 마는
지옥가는 자
음부의 권세로 멸망하는 자 일 껍니다
이미 벌써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은
무지비한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다 이룬
하나님의 저주인 절대저주로써 절대용서를 펼피시는 겁니다
그 증상물로써 우리는 이 의사를 환자의 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서 이 무자비한 십자가의 사랑을 외치는 겁니다
이 머릿돌된 화목제가 먼저 떳기에
인간 왕의 한계를 대조시키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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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 아브라함 씨 아닌 오직 이삭 씨만이 약속의 자녀(큰자가 작은자를 섬김) (롬 9, 6-13)
2025. 2. 9.
섬기는 큰 자가 없어서 약속의 자녀(작은 자)가 되지 못함
사도 바울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 (롬 9, 1- 5)
로마서 2022 2025. 1. 18. 19:27
22-052 저주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바울의 큰 근심과 끝없는 고통) (롬 9, 1- 5)
〈롬 9, 6-1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1쪽, 찬송가 299장 새 564 예수께서 오실 때에, 찬송가 370장 새 330 어둔 밤 쉬 되리니〉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새찬송가 549장〉
새찬송가 564장(통299) 예수께서 오실 때에
새찬송가 538장(통327)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새찬송가 321장(통351) 날 대속하신 예수께
새찬송가 327장(통361) 주님 주실 화평
새찬송가 330장(통370) 어둔 밤 쉬 되리니
새찬송가 433장(통490)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미예수 2000 - No.341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찬미예수 2000 - No.346 여호와 이레
찬미예수 2000 - No.341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1. 그는 여호와 창조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길르앗의 향료요 반석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2. (개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 샬롬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 그는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심판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약속의 하나님
(본곡) 지존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 샬롬 평강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3. (개사) 여호와 이레 그는 나의 화목제 구원의 하나님 구주의 하나님
아들을 보내어 그를증거 하셨네 그는 여호와 용서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전쟁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승리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십자가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완료의 하나님
(본곡) 여호와 이레 그는 나의 공급자 구원의 하나님 구주의 하나님
아들을 보내어 그를증거 하셨네 그는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찬양하세 할렐루야 찬양하세 오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그는 여호와 치료의 하나님
찬미예수 2000 - No.346 여호와 이레
(개사) 여호와 이레 뚫으시네 여호와 이레 찢으시네 나를 나를
여호와 이레 뚫으시네 여호와 이레 찢으시네
내 쓸 것을 지워주시네 영광안에 죽으신 주님
나를 위해 심판주를 보내주셨네
여호와 이레 찢으시네 나를 나를 여호와 이레 싸매시네
여호와 이레 채우시네 여호와이레 돌보시네 나를 나를
여호아 이레 채우시네 여호와 이레 돌보시네
내쓸 것을 채워주시네 영광안에 풍성하신 주님
나를 위해 천사를 보내주셨네
여호와 이레 돌보시네 나를 나를 여호와 이레 돌보시네
〈롬 9, 6-1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1쪽〉
(롬 9:6, 개역)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롬 9:7, 개역)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롬 9:8, 개역)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9, 개역)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롬 9:10, 개역)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롬 9:11, 개역)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2, 개역)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6, 새번역)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롬 9:7, 새번역)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 하셨습니다. / ㉤창 21:12
(롬 9:8, 새번역) 이것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손으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롬 9:9, 새번역) 그 약속의 말씀은 ㉥"내년에 내가 다시 올 때쯤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 것입니다. / ㉥창 18:10; 14
(롬 9:10, 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수태하였는데,
(롬 9:11, 새번역)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 있게 하시려고,
(롬 9:12, 새번역)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셨습니다. / ㉦창 25:23
(창 21:12, 개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 25:23, 개역)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18:9, 개역)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창 18:10, 개역)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 18:11, 개역)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창 18:12, 개역)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창 18:13, 개역)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창 18:14, 개역)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5, 개역)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 18:16, 개역)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창 18:17,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 18:18, 개역)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 18:19, 개역)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뭐뭐 ~~ 아니요 뭐뭐 ~~ 이다] 라고 해 버리면 이미 우리 머리에 포착이 안되는 비밀 비유가 되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뭐뭐 ~~ 아니요 뭐뭐 ~~ 이다] 를 자기 쪽에서 숙제로 형성하는데 있어서
나는 십의 일조를 냈고 그래서 옳았고
저 매국노 세리는 토색하면서 삥뜯는 놈이기 때문에 아니요 라고
인간 쪽에서 두 언약의 한 세트를 형성하면서
자기 손으로 수치를 가리듯이 구원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짜 이스라엘이라고
지난 번 앞의 구절을 사도바울이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써
그거 거짓된 혈육적인 사고방식과 대조하면서
즉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됨을 스스로 추구한다는 자체가 저주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인간 쪽의 두 언약을 한 세트로 구성함과
성령받은 사도가 외치는 두 소욕의 한 세트를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그 연장선으로써의 오늘 본문이기에
그 반대의 길로 가야 하는데 우찌 그 거리끼는 길
유대인들이 다 말리고 마치 강퍅한 애굽왕처럼 광야로 가면 다 죽는다처럼
그리고 거리끼는 걸림돌을 가면 유대인에게서 끊어진다 라는 그런 남의 눈치
사람들을 의식하는 그 공동체 의식에서 벗어나면 너 죽는다
자기 정체성을 잃게 되니 말이죠
결국 인간의 믿음이란 공동체의 소속감에서 비롯된다 말이죠
한국에 있으면 저절로 축구할 때 일본이 철천지 원수가 된다 말이죠
이유 없어요 그저 무조건 스포츠계에서는 웬수가 되는 겁니다
만약 결혼하게 되면????
우짜죠? 정체성을 양 다리 다 걸칠수가 없게 되겠지요
그카이 인간의 소속감에서 비롯된 믿음이란 결국 종교오락으로써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 살인의지가 되는 겁니다
그런 종교를 사탄의 회로 취급하니까 말이죠
그런 유대교를 사도바울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겁니까?
개인 개인 친인척에 대한 애타는 마음이다는 겁니까?
저들 하나 하나 개인 구원을 바라는 겁니까?
아니지요 이스라엘 존재가 아닌
이스라엘의 기능은 이미 확정되었다
그 확정된 이스라엘에 대해서 또 역시 사도의 기능은
목숨을 걸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라는 그 인간구원이 끼여들 틈이 없어요
우와 사도바울 억수로 착하네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성화론자들이 그렇게 몰아가거든요
바로 그런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자기 숙제하자 라는 것이
도리어 사도바울을 큰 근심으로 그리고 끊이지 않는 고통으로
그리고 저주로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으로 몰아가고 있는 짓이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는 자꾸 복의 근원을 자기 쪽에서 형성할려고 하고자
성경의 3분의 1만 먹을려고 한다 말이죠
3분의 2인 저주도 다 같이 함께 먹어야 하는데
그러니 가짜죠
마침 설명절로 월요일에 가족들이 모였는데
그쪽에서 다니는 교회에서 들은 설교를 말하더라 말이죠
한문장으로 요약한 말이
보통 마음이 밝아야 주변환경을 밝게 한다 라고 하는데
이것을 역설로 오늘날 경제도 안좋고 나라 시국도 그렇고 하니
주변 환경을 밝게 하면 마음도 밝아진다 라고
이야기 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우울증 걸린 폐업에 줄도산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과연 먹혀들 이야기 일까요?
간따나 그런 설교를 하는 교회가 우익정치단체랑 손잡고 하는
내란 신천땡당 사이비 국짐내란당과 손잡은 교회가 그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거 이미 미국에서 다 실패한 미국 복음주의에서 나온 긍정적 사고방식이라는 둥 과 같은
처세술 아닙니까? 교회 안에까지 들어온 웃음치료 레크레이션 웃음전도사 프로그램 아니냐 말이죠
이거 과거의 달란트 비유를 재능을 키우자 라는 그 사기치는 내용과 같은 맥락이거든요
처세술이 무슨 복음이냐 말이죠 이런 처세술을 가르쳐 돈이나 버는 교회이니
그 교회 박살내어야 혹 깨닫는자 있겠지만 당연히 아무일 없으면
네어버려두셨기에 이미 지옥으로 가는 강도의 소굴인 거죠
그카이 오늘 본문에 뭐뭐 아니고 라는 이 내용이 거슬리는 겁니다
다들 넓은 길 다들 찾는 그 길이 [뭐뭐 ~~ 아니요 뭐뭐 ~~ 이다] 라고 하니 말이죠
내 손으로 만들어 낼수가 없어요
만들어 냈다 하면 부서뜨리는 것입니다
어 안 뿌서지던데? 그럼 내어버려둔 거죠 오히려 사생아처럼 매가 없는 것이 더 소망이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매를 대시는 그 징계를 거쳐서 나 아니오를 거쳐서 비로소 산 소망인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게 하시니까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아니요
삼일만에 다시 짓는 성전만이 진짜 성전이다 라고 하시니까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편파적인 이 우리의 욕망 소원 마음둠에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충돌을 일으키는 이 두 소욕의 서로 거시르게 하는 충돌로 인해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싫은 거죠
결국 [뭐뭐 ~~ 아니요 뭐뭐 ~~ 이다] 라고 해 버리면
뭐뭐 이다는 그것 혼자 독자적으로 설수가 없고
반드시 뭐뭐 아니요를 거쳐서 나온 뭐뭐 이다 가 된다는 거죠
예로 제 블로그 제못이 나 아니요 예수님이 옳았습니다 아닙니까
그냥 딸랑 예수님이 옳았습니다 라고 해 버리면 이거 사기치는 겁니다
뭐뭐 아니요를 거쳐야 하니까
그것도 남도 아닌 나
내가 왜 아닌가를 거치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만약 거치지 않고 나오면 그거 가짜 이다는 거죠
그래서 지난 번 앞의 구절 로마서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고자 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다 거짓이다 라고
사도바울 본인이 그 가짜를 거쳐서 진짜 예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자기는 큰 근심을 격어야 하고
끊이지 않는 고통을 겪어여 하고 격는다 이것을 행함의 차원으로 보는게 아니라
기능으로 보는 존재의 실천이 아닌 존재 보다 앞선 태어나기도 전에 기능 당위
마땅히 나올 수밖에 없는 당위로써
큰 근심 그리고 그치지 않는 고통 그리고 저주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이다는 겁니다
남들이 보기에 저 사람 예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아니냐 라는 소리를 듣는
그런 사건 속에 놓여진다 라는 거죠
그것이 사도의 기능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아니 왜? 나 바울 아니요 예수님만 옳았기에
결국 이스라엘 친척 골육 이들이 예수님과 상관없는
그의 살과 피를 먹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아니다 껍데기 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결국 이스라엘 되어라가 아니라
예수님만 이스라엘이다 라는 겁니다
그 예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그렇게 유대인들이 입버릇처럼 우기는 그 단어들 문자들 표현들인
나 아브라함 자손이야 씨야 씨앗이야 라는 그 말 버릇에 거리끼는 걸림돌을 바울이 다리걸어버립니다
아브라함 씨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야 라고 말이죠
그럼 뭔데? 오직 이삭의 씨 만이 약속의 자녀야 라고 말이죠
아니 아브라함 씨나 이삭이 씨나 그게 그거 아니냐
아 이스마엘? 물론 당연히 아니지
형 에서? 물론 당연히 아니지
오로지 야곱만이 이스라엘이지 이게 뭐 틀렸냐 라고 반발하겠지만
그거 틀린 겁니다
이스마엘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아니요
쌍둥이 형 에서 뿐만 아니라 쌍둥이 동생 야곱 역시나 아니다 라는 겁니다
결국 원인을 다 앞에서 갖추게 되면 안되는 겁니다
그것은 지난 주처럼 여백을 채울려는 짓일 뿐이지
빵구멍 뻥 뚫히는 공백이 아니다 말이죠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은 여백을 채우는 식입니다
일부러 가스펠 여호와 이레 채우시네 여호와 이레 도우시네 라는 가스펠을
아브라함 단어로 검색하다가 여호와 이레 라는 단어로 생각이 하나 더 난
이 가스펠을 올렸다 말이죠 왜? 틀렸다 라는 의미로 말이죠
채우시네 라는 여백채우는 의미가 아닙니다
결핍 채우기는 또 목말라요 다시 또 배고프면 또 채워야 합니다
즉 지옥이 스멀 스멀 올라올 때 마다 그 지옥을 가리고자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거릴려는 그 의문의 반복을 또 하도록 되어 있는
마침 곧 완료가 없는 겁니다
여호와이레는 결핍을 채우는게 아니라 그 반대인 빵구멍을 내는 공백내기입니다
간극을 좁히는게 아니라 도저히 못 좁히도록 그 간극을 벌리는 겁니다
여백 채우기 VS 공백 간극 벌리기 가 한 세트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공백을 자기 스스로 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성화론자들이 다 사기치는 겁니다
앞뒤 모순 되는 선과 악을 동시에 이룰수 없어요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난 악이고 주님만 선이다를 이룰수 없어요
성화 하겠다 라는 자체가 나는 선이다 라는 것을 전체로 하니까
그거 부수시고 빵구멍 내시는 예수님을 악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이 인간의 한계를 죄의 소원을 누가 넘어설수가 있겠습니까
선악이라는 죄의 소원에 다 걸려넘어지는 겁니다
이런 선악도 못 넘어서는데 십자가를 진다? 택도 없지요
결국 오직 이삭만이 아브라함을 빵구멍 내는 자 이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덕분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자기가 세운 자기의 46년 동안 지어도 완료도 못한
자기 만의 성스러운 거룩한 성전인 자기 몸을
주님은 다 무너뜨리시고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 그것이 바로
이삭이라는 희생제물입니다
이 화목제가 아니면 울리는 꾕과리일 뿐입니다
도리어 이 이삭 덕분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는 겁니다
빵구멍 뚫혀서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게 됨으로써
정직한 영을 만들 수 없는 사망의 몸임으 고쳐달라고 울게 하실때에
성령을 약속을 약속의 자녀를 선물로 부어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누구 누구의 아들 이라는 인자 개념인 약속의 자녀에서 나온 약속이다고 했지요
인자가 장대 높이 달린 모습이 되어야만
나 있다 라는 존재가 비로소 웁니다
존재가 박살납니다 혈육이 끊어지는 겁니다
46년 동안 지어도 완공 못하는 그 의문의 증서를 찢어버리시는 겁니다
삼일 만에 다시 짓는 약속이 비로소 오시는 겁니다
성전을 헐라를 거쳐서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 라는 약속의 다 이루심을 보는 겁니다
누가 삼일 보다 46년을 기다리겠다 하겠습니까? 성화론자들이 기다리겠다 라고
마치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마귀들이 따로 없어요
나 아버지가 먼저 있고 그 아버지가 아들을 낳아서 자식이 뒤에 있는
이 족보 혈통 육의 방식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가 없어요
오로지 약속의 방식은
내가 놓은 적 없는 자식이
나를 빵구멍내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공백 절대로 간극을 좁힐수 없는 공백을 만드는 자 만이 약속의 자녀이다 라는 겁니다
다윗에게서는 솔로몬이 아니다 라는 거죠
약속의 자녀는 다윗에게서 난 씨가 아니라
이름 없는 솔로몬의 형 에게서 난 자만이 약속의 자녀인 겁니다
그럼 그 이름없는 꺽으신 뼈 솔로몬의 형이 낳은 약속의 자녀는 누굽니까?
네 맞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 다윗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자식입니다 여디디야 여디디야입니다
아 그럼 솔로몬이네요? 아닙니다 솔로몬도 그 경과를 격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죄로 죽는 두 조각난 이스라엘입니다
아 그래 두 조각으로 나라가 분열된거 압니다 그래 그게 누군데요
그 두조각 난 이스라엘 허리 부서진 그 틈에서 난 자입니다
(마 1:6, 개역)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 1:7, 개역)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 르호보암이군요?
아닙니다
아니 예수님의 족보에 있는 사람인데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는 말입니까?
네 아닙니다 특정 개인이 이제는 이스라엘이 되는게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되는게 아니라
시공간이라는 역사가 찢어져야 하는 존재의 찢어짐 속에서 묵시 곧 약속이 나오게 되니
바벨론이라는 공간이 나오는 겁니다
(마 1:11, 개역)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 1:12, 개역)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마 1:17, 개역)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결국 바벨론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이스라엘 공중해체를 말하지 않습니까?
시공간의 역사가 찢어지지 않는데
성전이 헐라가 안되는데
누가 삼일 만에 짓는 공백의 성전을 쳐다 보겠습니까?
아무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새성전되신 예수님 걸어다니는 성전을 보겠냐 말이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떠난 것은 왜 언급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바벨론은 곧 이스라엘 해체작업을 말하지 단순한 땅 지역이 아닙니다
그래야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울면서 돌아온다 라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심을 말하는 겁니다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심을 말하는 공백 빵구멍 뚫기 공중해체를 말하는 겁니다
역사의 찢어짐이 없다면 묵시적 기능인 이스라엘이 곧 약속의 자녀가 나올 리가 없는 거지요
이것을 무슨 수로 인간이 자기 숙제로 저 매국노와 나 십일조 난 거룩한 자로써
구분짓기를 맹글어 낼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린
여백채우기라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는 지옥의 몸 사망의 몸 아니냐 말이죠
그 사망의 몸 아니요 라고 거쳐서 주님을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던가?
자기 의 쌓기 숙제에 빠져 있는데 볼 턱이 있겠냐 말이죠 다들 비웃죠
그 비웃음을 담은 약속의 자녀 비웃음이라는 웃음 이삭이니까
자기가 침 밷은 것을 도로 그 길로 갈려고 하는 좁은길로 간다는 것은
이것은 성령의 숙제가 아니면 못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약속의 자녀되신 예수님은 그저 단 한명의 인물로써만 약속의 자녀로 뽈록 튀어 나오시는게 아니라
시공간이라는 역사 조차도 해체 시키면서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인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가 되는 거죠
그렇기에 다윗의 씨는 솔로몬이 아니라
놀랍게도 묵시적인 표현인 다윗의 지손이라는 표현이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니까 솔로몬 등등 여러 무궁무진한 끝도 없는 간극을 벌리심으로써 여러 인물들을 언제든지 넣을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 그 반대인
묵시적인 인물 아 그럼 꺽으신 뼈 솔로몬의 형 이름 없는 아기?인
그 모습으로써 다윗의 자손이 오는데 정작 육체를 깨뜨리면서 오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답변을 못하는 겁니다
우짜 자손인데 주여 라고 하느냐 말이죠
이 간극 좁혀보라 말이죠
묵시는 시공간이라는 역사가 도저히 좁힐수 없는 빵구멍을 내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 그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에 그 완료에 복종케 하시는데
육을 따라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에 복종치 않는 자는
자기 의를 쌓는 간극 좁히기를 하다 보니
답이 없는 겁니다
유구무언 답이 없어요 정답이 말이죠
완료가 없어요 늘 미완료 늘 결핍
늘 여백 늘 또 목마름입니다
완료가 없다 말이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없거든요
원인만 뺑뺑이 무한반복의 다람취 챗바귀 돌 듯이 하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 만이 나 라는 나 있음이라는 원인인 나를 없애버림으로써
빵구멍 냄으로써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는
나 없고요 예수님만 있으면 된거다 말이죠
내가 있으면 원인이 생겨버리면
성화론자 사기꾼들 사탄의 회 말 마따나
숙제 할게 많아요
성화도 되어야 하고요
부활도 해야 하고요
십일조에 주일성수에 충성봉사에 이웃사랑에 이런 경건의 모양 껍데기만 갖추다
세월 다 지나가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입니다
(롬 9:12, 개역)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오직 이삭에게서 나온 자 만이 약속의 자녀인데
이제는 졸지에 쌍둥이가 나와서 둘 중 누가 약속의 자녀이냐 라는 문제가 제시된 겁니다
이 숙제를 풀려고 야곱이 자기따나 숙제 풀이하는 방식이 바로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사서 큰 자가 되겠다 라는 식입니다
네 지난 번 내용도 그렇다 라고 했지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하고자
나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곧 그 이름대로 열국의 아버지 되어야 겠다 라고
낳은 자식이 왜 아닌지를 거쳐야 한다 라는 거죠
나의 개입이 일체 배제 단절 차단 쏙아냄을 당한
혼합물 찌기를 썩어버린 것을 용광로에 넘으로써 불순물 제거함으로써 나와야야 하는데
그 용광로 속에서 나오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라는 겁니다
거 봐요 하나도 없지요
나도 없었던 겁니다 애초부터 말이죠
그카이 나 아니오 가 맞지요
다음에 할 내용이 그럼 하나님이 불의하시뇨?
왜? 나를 내 허락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으로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니까 말이죠
나 있음에서 출발함에 있어서 나는 무조건 아니요 라는 악이 아니라
나 옳도다 라는 무조건 선을 둘려고 함에 있어서
주님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다들 반발하는 거지요
아 그럼 내가 행하면 되겠군요 라고 나올때에
어라 행해도 안되는 갑따 라는 분위기가 본문 밑에 계속나오다 보니
내가 더 이상 손댈수 없는 영역으로써 약속을 언급하시겠다 앞에서
모든 인간은 부자청년처럼 등돌이고 근심하고 뒤돌아서서 가 버리는 겁니다
진작에 가지
어쩌면 어준이 말 마따나 최고의 성화론자는 가룟유다이다 말이죠
그런데 인정안해주니까 더 이상 자기가 손 댈수 없는 대상물이 사라져 버린 셈이고
오로지 남은 것은 그 반대로 대상물이 거꾸로 되어버리니까
나를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기 전에 자기자신을 미리 처리해 버리는 겁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손 대는 것을 허용치 않겠다
나의 나 된 것은 내 손에 달렸다를 주장한 거죠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다움은 이스라엘인 나의 손에 달렸다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의 심판 3분의 2는 안 먹고 축복이요 축복이요 라는 3분의 1만 먹는 자들입니다
다 가짜죠
빤스나 도리도리나 한국교회 천주교까지 다 포함한 교회의 증상물입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보는 거죠 그 아비에 그 자식
한국기독교 개신교와 천주교는 오대명산의 굿판에서 태어난 겁니다
천주교 사제들이 도리도리 비행기 폭발해 죽었뿌라 그 기도 땜에 굿판 열다보니
엉뚱한 자들이 지금 비행기 사고로 막 죽어나가요
둘다 마귀들이다 말이죠 아무도 수에 칠 가치 없는 인간 보다
수에 칠 가치 있는 새들의 죽음은 아무도 안타까워 우는 자는 없다 말이죠
일부러 새들의 서식지에 비행장을 지었으니
주님이 새들을 통해 이들 허무한 것에 굴복케 만드시는 겁니다
이미 죽은 좀비들이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말이죠
마치 과부의 전재산 두 렙돈 하나 6원 둘 합쳐서 전재산 12원으로
수천억 들인 그 성전의 제주도 돌 까지 공수해서 지은 그 성전의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부수고자 말이죠
천주교 성당 다 부수시는 겁니다 교회도 그것 따라 하다가
돌 위에 돌 하나도 안 남기고 가루로 허무로 만들어 버리시듯이 말이죠
큰성바벨론은 아무리 핵미사일 수천개를 쏘아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작은돌 건축자들이 버린 돌 다들 무시하는 괴부의 헌금인 두 렙돈 12원으로만
무너뜨릴수 있습니다 다윗왕이 가진 그 왕의 권력을 젖먹이 그것이 이름도 없는 아기가 무너뜨리듯이 말이죠 인간이라는 우상은 그 어떤 핵미사일로도 안 무너집니다
오로지 다들 죽여라 라고 외친 그 십자가의 또렷함만이
헛된 희미하고 의문의 미완료인 인간의 육체를 또렷하게 못 박아 제대로 구멍을 뚫습니다
이 십자가만이 실상이요 생명이요 다른 보이는 모든 것은 허구 허상인 좀비일 뿐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이 좀비의 껍데기를 벗고자 탈출할려는 떠날 마음이 있지만
중심이 있지만
인간은 중심도 없는 인간 아닌데 인간인척 사는 뿔달린 짐승일 뿐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가 아닌 뿔 자체로써 뿔을 뽑기는커녕 몸 전체가 뿔이기에
빵구멍 뚫힐 이유가 없는 겁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인 거죠
그러니 여백채우기 결핍 채우기 라는 음부의 권세인
사멍의 몸인줄 모르는
심판받아 마땅히 지옥에 갈 몸인지 모르는 자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약속의 자녀가 아닌 그저 종교에 기생하는 기생충입니다
마귀의 숙주인 거죠
자 이렇게 들통나도 우는 자 없습니다
뭐가 아쉬워서 울겠냐 말이죠
사도바울처럼 큰 근심과 마음이 그치치 않은 고통 있기라도 하겠나
저주와 그리스도의 끊어지는 상하고 통회하는
미말에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찌끼 쓰레기 취급받는 아픔이라도 있겠냐 말이죠
몸이 병든 지옥의 몸으로 드러나기라도 했나요
환자로써 의사를 부르짖을 리가 있겠냐 말이죠
자기의 수치를 스스로 가리고자
잘도 꽁꽁 숨겨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철통보안으로 잘 가렸는데
뭣 때문에 우냐 말이죠
그 눈물을 누가 씻겨주겠냐 말이죠 흘릴 눈물이 없는데
눈물이 없기에 담을 병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의사가 의원이 필요 없는 거죠
(시 56:8, 개역)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사망의 몸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며 무슨 새 것이 나오겠습니까?
그저 사랑 없는 울리는 꽹과리 소음만 날 뿐입니다
멧돼지 멱따는 소리
얼마나 어질 어질 하던지 속이 다 매쓰꺼울 정도이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사망의 몸인 육체를 따라 난 자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 라는
뭐뭐 아니다를 거치심으로써 채로 걸러내는 이 약속에 말씀에 반감을 가지도록 하십니다
그러니 사망의 몸 아닙니다 라고 나올 의인이 없음을 단정 짓는
빵구멍 뚫으심으로써
나를 위한 하나님이라고 바구니에 담고자 채우고자 여백을 채울려는 그 지옥의 몸을 거쳐서
생명의 몸 되신 약속의 자녀를 언급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 되신분이 인간이 되셨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을 빵구멍 뚫겠다 라는 겁니다
생명이 떳기에 지옥의 몸으로써 들통당하는 것이
약속에 따라 난 자입니다
아버지가 있고 그 다음 자식이 있는 이 혈통으로 난 자식은
주님께서 약속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지난 주에 혈육의 따라난 왕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왕이라고 우겨도 그 부모에게 난 자이기에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어리석은 자 이기에
짐승의 수를 못 새는 총명함이 없는 성령을 부어주심이 없기에
하는 짓이 짐승의 짓만 하도록 되어 있기에
주님이 인정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단절을 거쳐서 나온 약속으로 난 자
곧 이삭은 혈육으로 난 자가 아닌
도리어 아브라함이 100세가 넘어서 단절이 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이삭이 나는 겁니다
도리어 아브라함이 낳은 씨
이스마엘은 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죽이고자 했다 말이죠
그 죽음도 너끈히 이겨내는 그 희생제물 됨이라는 의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도리어 접붙입 당해서 다시 캐어나야 하듯이
다윗의 자손에게 다윗이 도리어 다시 태어나듯이 말이죠
솔로몬 아닙니?? 꺽으신 뼈입니다
그 약속으로 난 자만이 이스라엘이지
사람의 뜻으로나 혈통으로나 육정 초코파이 정으로 난 자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말이
(요 1:12, 개역)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비로 이 구절이지 싶은데 안그러는 척 하는 것이 더 웃끼더라 말이죠
교회가 다들 그래요
하필이면 제가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3개월 동안 교회에 나가야 한다 라는 의식도 전혀 없었는데
너무 너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는 그 때부터
저 말씀을 외우고 실천할려고 하는 자들은 많으나
가장 안 믿는 자들이 교회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교히도 예수님을 안 믿어요 물론 한국교회 부동산에 가는 자 들 말이죠
그리고 이 말씀
(요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요한 복음 삼장 십육절 아무리 외우고 어릴적부터 알아도
가장 이 구절을 반발 하는 자들은 교회임을 느끼게 됩니다
약속으로 난 자는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함을 믿는 자 인데
이스마엘처럼 약속으로 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인자의 들려야 함을 믿는 자는 없음을 오히려 교회가 더 잘 보여주고 있더라 말이죠
그럼 그들은 뭘 믿느냐 어쩌면 똑같이 계집종 하갈과 그의 자녀 이스마엘처럼
인간의 믿음인 복수심을 믿음이라고 약속이라고 우기더라 말이죠
아무리 지적 수준 교육수준 신앙수준이 높다고 다들 입이 아프게 자랑하는 그 인물들도
단 한 놈도 장대 높이 달린 인자는 쳐다보는 자들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심판 받아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저주 받아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심판을 대신 받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지옥감을
오히려 교회들이 더 잘 보여주는 겁니다
지옥갈자들이 다 교회에 다 모이더라 말이죠
특히 성화론자들은 대놓고 주장합니다
십자가 고만 캐라 심판 안 받는 짓을 행해야지 지옥 안간다 라고
거 보세요 다른 복음이 한국교회를 다 지배하는 겁니다
하나님 까불면 죽어 라고 하는 놈이랑 똑같아요 이들의 증상물이 그 놈이니까 말이죠
저들의 사상과 관계를 끊었다고 선언하면 뭐 합니까?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는 것은 마찬가지 인데 말이죠
말도 안되는 불뱀에 안 물리도록 원망하지 않는 성화된 삶을 살자 라는 것이
사기치는 유일한 길이요 여기에 어라 돈까지 딸려오니
저들이 듣고픈 말 가려운 부분 긁어주니 그 서비스로 팁을 주니
그 팁에 다 속고 속이는
왕을 그렇게 이용할려고 새웠다가
도리어 왕의 노예가 되는
누워서 침뱉기로 말이죠
그러니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이런 놈이 가장 깊은 악마들입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니까 말이죠
그런데 이것도 옛말입니다
이제는 한국도 무신론자 1위 국가가 되다 보니
젊은이는 더 이상 안 속죠
이제는 누가 사탄의 깊이가 되었는가
과학이라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쳐주는 인문학이지요
이런 초등학문들을 하나 하나 박살 구멍 뚫지 못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지요
이미 교회는 그런 것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죄악과 싸우지 않는
그저 돈 숭배에 이미 빠졌고요
세상의 사상을 지배하는 이 자본주의에서 활성화 되는 모든 사상들을 깨뜨리는 복음만이
진짜 복음인거지요
그것이 바로 약속으로 난 이삭이요 그 이삭에서 또 갈라져요
리브가가 낳은 두 자식 쌍둥이 중에 하나 이다 라고 말이죠
그게 바로 야곱이라는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요
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겁니다
요즘 과학은 자기들이 욕한 원인 있는 결과를
자기들 스스로가 부정하는 결정론을 자기들 스스로 증명해 낼려고 난리입니다
원이 없는 결과가 자꾸 드러나니까 말이죠
과학이 발견하면 그때부터 그럴까요?
창세전부터 그랬을까요
이 세상은 매트릭스 가상현실이다 라고 프로그램 되어 있다고 이제야 말하잖아요
과학이 지동설이 맞고 천동설은 틀렸다 라고 우기면서
그 당시 종교가 행했던 행패들을 외치지만
지금 과학이 만들어낸 자동차로 인한 먼지
공장의 먼지 이것이 지금 사망률 1위이다 말이죠
그 당시 종교에게 핑계를 댈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말이죠
전기나 석유에너지로 인해서 지구가 오염된 것도
그리고인해 약자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냐 말이죠
석유가 에너지 보편화 되기 전에
수력으로나 바닷물의 뭐라카더라 풍차의 원리 물레방아의 원리 등으로
에너지를 오염없이 할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돈이 많이 든다 말이죠
마침 석유는 보편화 되는 대중성 때무에 훨씬 싸다 말이죠
이것이 150년 전 불과 그 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지구는 다 죽어 멸종해 가는 시점이다 말이죠
물론 그런 비싼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것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른 것들도
지구를 오염시키는데 다 동원이 되는
결국 편리함을 쫓는 인간이 손 대는 이상 이미 멸망이 작정이 된 겁니다
아무리 성화론자처럼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겠다 라고 환경운동을 펼쳐도 말이죠
제가 마침 20대 때에 환경신학이 유행을 하다 보니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짓이 오히려 더 오염시키는
환경단체나
저 인권존중기업 환경지킴이기업 친환경기업 등등이 오히려 더 오염시키는
그거 핑계 대고 오히려 노동력 더 착취하는
그래서 불뱀 물려서 심판받고 지옥가는게 아니라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주님이 끌고가고
지구환경이 우리를 못 지키도록 끌고간다 말이죠
어딜 감히 과학이라는 종교로 그것을 막을 수 있다 라고 아무리 외쳐도
율법이 죄 아래에 가두고자 한 이상
아무리 한 쪽을 물침대처럼 시이소처럼 올라오는 것을 막아도
스멀 스멀 지옥이 올라오는 것을 손으로 아무리 가리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려도
다른 한 쪽은 오히려 막은 것으로 인해 더 부풀어 올라오는 겁니다
더 가속이 된다 말이죠
이것을 웃끼게도 무신론자 지잭이라는 정신분석가가 오히려 더 강력히 주장해요
뭐 디 카페인 커피
무설탕 코카콜라
무알콜 술
등등 이런 것들이 오히려 더 세상을 어지럽힌다 라고
그래서 오염된 도시를 떠나 친환경인 시골에 가서 사는 귀농 귀촌 유행이 오히려
그 깨끗한 시골마저도 오히려 더더더 오염시키기에
그냥 도시에 살던 대로 사세요
그것이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하여튼 무슨 무슨 운동하는 놈들 치고 더 더럽기 짝이 없는 놈이 없어요
나라 구하겠다 라고 저 빨갱이 손에서 구하겠다 라는 것이
오히려 더 망치듯이 말이죠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놈이 그 놈이 니다 라는 거죠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이 도로 훔치는 도둑놈이다는 겁니다
(롬 2:21, 개역)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롬 2:22, 개역)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어딜 감히 율법 위에 기어 올라 모세의 자리에 앉을려고 말이죠
율법 아래 죄 속에 가두어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시는
그 율법이 기능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성화론을 외치냐 말이죠
이거는 교회 속에서의 무신론자 보더 더 나쁜놈이다 말이죠
간극을 좁혀서 그 여백을 하나님 이용해서 채울려고 할려고 할수록
오히려 빵구멍 뜷혀서 그 바구니 바닥을 뚫어서
그 자기 배를 위한 뱃구멍 뚫어서 타이타닉처럼 꼬르르 까라앉도록 해야
비로소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시는
저 약속을 보게 되지
자기 배를 위한 약속은 아니요 즉 없어요
내 구원을 위한 복음은 없어요 아니 사람의 구원은 헛되도다 라고 복음이 외치는데
왜 인간 구원을 외칩니까 복음은 외친적 없어요
오로지 이스라엘 곧 약속의 자녀만 구원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예수님 단 한분 뿐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 그 언약 내가 이루겠다 라고 나서면 나설수록
이스마엘 육의 자식만 낳을 수 밖에 없어요
육의 한계인 100세를 넘어서 공백에서 낳은 자식만이 약속의 자녀 입니다
아브라함이 낳을 수 없어요 예수님 께로 난 자 만이 약속의 자녀 입니다
육의 자식은 복수심을 신앙으로 속여서 펼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아브라함만 그런 육의 생각이 박살을 내시는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심 뿐만 아니라
야곱 또한 자기가 복의 근원이 되고자 형 에서는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아
자기가 장자가 되고 자기가 복의 근원이 되고
자기 숙제로 약속의 자녀가 되고자 했던 것을 약속은 안 속습니다
십자가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는 안 속아요
그래서 여자 다섯 ~~~ 에게서 라고
남자 없이 저런 육의 혈통의 씨앗 없이
그 씨앗 아니요 남자 없이 여자 에게서 낳은
그 여자도 그녕 여자가 아닙니다
남자들에게서 무시받는 여자입니다
그러니 이런 큰성 바벨론 꼬추를 박살내는
잃어버림 받은 여성으로써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돌로써 큰 성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그 빵구멍 뜷힌 도저히 인간 쪽에서 좁힐수 없는 간극에서
도리어 태어난 이스라엘로써
약속의 자녀를 이루시는 겁니다
그 야곱을 쳐서 그 찢어진 허리에서 나온 것이 이스라엘 약속의 자녀입니다
우리 앞서서 살펴본 말씀 내용
야곱이 이겼다고 좋아라 했는데
야곱이 장자권 빼앗고 복의 근원이 되어서 이긴게 아니라
봐줘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라고 봐주심이지요
그 봐주심 앞에 비로소 무릎 꿇어 경배하면서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진정한 이스라엘은 내가 아니요 예수님이엿다 라고
나를 위해 울면서 기도하신 친히 간구하신자 이심을 보고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보고 말이죠
그 약속의 자녀는 예수님 뿐입니다 라고
그 예수님이 큰 자로써 우리를 섬겼다 라는 거죠
이 섬기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울리는 꽹괴리 소음
육의 자랑일 뿐입니다
이 섬기는 자가 없어서
싸매어 주시는 자가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찢으시는 구멍 뚫으심과
나를 제댜로 싸매어주시는 주의 오른팔이 없어서 지옥가는 겁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나는 큰 자이다 나는 선택받기로 작정이 된 자이다
양심상 그런 인간 답다면 이스라엘 약속의 자녀 답다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고자 하나님 나라 운동이니 뭐니 하는 것들로
그 여백을 체우고
내 힘으로 부족하면
왕을 통해 여백을 채우고
구약에 이스러엘이 못한 실패한 것을
신약에서는 성령이 있기에 그 성령의 밧데리 보충으로 비행기 불태우는게 아니라
성령보충기로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는 이 성화론운동
어떻게 해서든 구원받은 자 답게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 답게 실천해야 한다 라는
이 육의 생각을
이런 야곱의 장자권 빼앗기를
박살내시는 섬기시는 큰자 바로 예수님이 아니면
저런 육의 생각을 단절 시키는 공백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면
간극을 도저히 좁힐 방법이 없는
오히려 그 간극을 더더더 벌리시는 그 공백의 십자가의 사랑
무조건적인 용서
용서 없는 용서의 왕
일만달란트 탕감
7에 70번의 용서 절대저주 일곱 속에서의 그것도 저주냐 제대로 끊어진 예수님의 끊어짐 당하심인 칠십번의 절대죽음 절대심판인 하나님의 저주인 이 십자가만이
우리는 제대로 섬기시는
저 엉터리 복의 근원되기를 박살내시는 큰 자 되심이라는 것을
약속의 자녀 이심이라는 것을
아들의 소원이라는 것을
야곱의 엉터리 복의 근원되기 라는 죄의 소원을 거쳐서
끝까지 섬기시는 큰 자 라는 것을
장자권 없고
무화과 나뭇잎 없고
자기 의를 쌓은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원 한다 라고
요나는
하박국은 그 심판 속에서 찬양 하는 겁니다
7에 70번은 남을 7번 용서하기 라는 여백채우기가 아니라
그 정반대인 7에 70번은 도저히 좁힐 방법이 없는 간극이요 공백으로써
오로지 예수님의 섬기심으로 오는 용서입니다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심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입니다 복음입니다
이 모욕적인 구원이 복음입니다
남을 7번 용서하는 손가락 셀수 있고 그래서 남에게 과시하는 육의 자랑은 복음아닙니다
그런 성화론자들 이미 벌써 심판받은 자입니다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 이기 때문에 그런 짓 의문의 반복을 하는 겁니다
여백을 채우고자 하는 그 미완료의 숙제를 반복하는 자는 찬양자가 될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뭐뭐 아니요 라는 이 새노래꾼이 될수 없어요
완료를 노래할 수가 없습니다
미완료와 이미와 아직이라는 여백 결핍 채우기만 노래할 뿐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몇 번 해야 다 채워지는 거죠? 라고 묻는 겁니다
부자청년이 어느 정도까지 채워야 구원 얻죠 라고
어린아이 완료에게서는 나올수 없는 질문을 어른들은 하는 겁니다
사랑이 아닌 7에 70번의 용서가 아닌
자기 구원의 정당성인 조건을 갖추고자 할 뿐인 완악한 마음입니다
새노래꾼인 찬양자를 약속의 자녀되신 큰 자 예수님의
작은 무가치한 우리를 무익한 우리 작은자 소자 어린자들을 섬기심으로
다 이루심을 선물로 주시는 겁니다
미완료는 이제 없습니다
(마 25:40, 개역)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5, 개역)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눅 16:10, 개역)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9:17, 개역)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마 25:37, 개역)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개역)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개역)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개역)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1, 개역)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2, 개역)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마 25:43, 개역)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25:44, 개역)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마 25:45, 개역)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 25:46, 개역)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도 이 지구상에 스쳐간 역사적 인물 중에서도단 한 사람도 어린자를 섬긴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그렇기에 성화론자에게 이 구절만 들이대어도 마귀가 도망치듯이 달아납니다성화론 교리는 이 종말의 비유 하나만 들이대어도 빵구멍 나서 다시는 나댈수 없게 되는 실족케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화론 자체가 높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자기의 의를 쌓고자 함이기 떄문에 아무도 그 어떤 누구도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길수가 없는 겁니다 ? 종말의 현상입니다 마지막때에만 나타나는 현상 때 시간과 공간이 철거되고 무너지고 박살이 나고 찢어지는 묵시 곧 약속의 침노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팔을 어긋맞게 한다는 겁니다 분명히 확신에 찬 자부심으로 자랑했는데 도리어 똥덩어리 배설물로 판명하는 부끄러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장자권 빼앗고자 설쳐대는 야곱과 같이 큰 자가 될려고 할 뿐입니다
인간의 탐심이라는 우상숭배를 교묘하게 가르쳐서 그것으로 장사를 했던 교회 강도의 소굴이엿던 거죠 ? 부자청년처럼 분명히 자신만만하게 자부했는데 근심하고 등 돌리고 다시는 함
께하지 않도록 하시는 약속이요 복음이니까 말이죠 -예수님만이 섬기시고자 큰 자 되시고 우리는 도리어 섬김을 받아야 할 판국인
지옥의 몸 사망의 몸으로 들통당할 뿐인 이 모욕적인 구원의 뿔에 빵구멍 당해야 할 판국입니다 그래야 그 빵구멍 난 배에 그 중심에 그 허리에 이스라엘이라는 약속의 자녀되신
예수님의 마음이 정직한 영이 새마음이 그 빈공백에서 우리를 십자가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겁니다 굵은 배옷으로 빵구멍 난 배를 그대로 간직한 회개자로써 말이죠)
8번 용서한 자가 7번 남 용서한 자를 정죄하는 그 정죄가
그 계급 줄 세우기 따위의 정죄는
예수 안에 이제 없습니다
그런 짓 이전의 짓은 다 지나갔습니다
새것 새영 새마음에서는 예수의 마음이 없습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거부할려는 악마의 마음이였으면
성화론을 외치겠느냐 말이죠
다 이루었도다 라는 이 완료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라는 이 완성을
모든 육체를 못 박으시는 섬김으로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증상물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끝까지 섬기심이라는 다 이루심을
누릴 수밖에 없는 기능을 즐기고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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