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0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애굽과 애굽동맹국 열국의 여자들 (겔 32,17-21)
2025. 3. 9.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모든 인간을 멸하리로다 (겔 32,11-16)
에스겔 2019 2025. 2. 15. 14:42
21-089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겔 32,11-16)
〈에스겔 32,17-2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0쪽, 찬송가 361장 새 327 주의 주실 화평, 찬송가 503장 새 373 고요한 바다로〉
〈찬송가 361장 주의 주실 화평, 새찬송가 327장〉
1. 주의 주실 화평 믿음 얻기위해 너는 정성껏 기도했나
주의 제단앞에 모두 바치기전 복을 받을 줄 생각마라
주의 제단에 산제사 드린 후에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2. 주의 밝은 빛에 항상 활동하며 선한 사업에 힘쓰겠나
자유 얻으려면 주의 뜻을 좇아 너의 모든 것 희생하라
주의 제단에 산제사 드린 후에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3. 주의 제단 앞에 모두 바친 후에 주와 온전히 사귀겠네
주의 주신 기쁨 또한 그의 사랑 어찌 말로 다 형용하랴
주의 제단에 산제사 드린 후에 네 맘을 주장하여
주의 뜻을 따라 그와 동행하면 영생 복락을 누리겠네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 새찬송가 373장〉
1.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니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3. 내 걱정 근심을 쉬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합소서
4.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아멘
〈에스겔 32,17-21,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0쪽〉
(겔 32:17, 개역) 제십이년 어느 달 십오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2:18, 개역)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겔 32:19, 개역)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지나가는고 너는 내려가서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함께 뉘울지어다
(겔 32:20, 개역) 그들이 살륙 당한 자 중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붙인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지어다
(겔 32:21, 개역)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겔 32:17, 새번역) 제 십이년 ㉢첫째 달 십오일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 ㉢칠십인역을 따름. 히브리어 본문에는 '첫째 달'이 없음
(겔 32:18,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집트의 무리를 애도하여 슬피 울고, 이집트와 열강의 딸들을, 깊은 구덩이로 내려가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로 보내면서 일러라.
(겔 32:19, 새번역) '도대체 네가 누구보다 더 아름답다는 거냐? 너는 아래로 내려가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누워라' 하여라.
(겔 32:20, 새번역) 그들은 칼에 찔려 죽은 사람들 한가운데로 떨어질 것이다. 칼이 이미 이집트의 목을 겨누고 있으니, 이집트와 그의 온 군대를 지하로 내려보내라.
(겔 32:21, 새번역) 그러면 스올에 있는 강한 용사들이 부하들과 함께 바로의 무리에게 이르기를 '저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 저 칼에 찔려 죽은 자들이, 이 곳 아래로 떨어져 눕는다' 할 것이다.
에스겔서를 묵시서로 신학자들이 분류를 하는데
묵시란 보이는 현실과 다른 보이지 않는 환상 이상 속에서의 내용이다는 겁니다
결국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에 해석 자체가 난해하기 짝이 없다 라고 보는 겁니다
아니 해석 불가 포착불가 이기에
이 내용 그대로 멸망 밖에 없는 것이지
미리 대비하거나 피할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대안책을 마련하라 라는 취지가
아예 없게 되는 겁니다 정작 신학은 그 반대죠 자꾸 대안방안을 마련해 줄려는 의도에서 출발하기에 복음이라고 볼수 없는 겁니다 결국 빈칸 채우기라는 인간의 숙제를 요구할 뿐인
종교라는 마약의 한계성만 보일 뿐입니다.
보이는 현실을 마다하고 보이지 않는 환상의 세계 이상의 세계인 묵시를 현실로 보게 된다면
오늘 본문은 남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 자체가 묵시이기에 좋은 것을 뽑아 먹을려고 한다고 하지만
정작 함께 같이 딸려 먹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되는 거죠
마치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 전에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는 장면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입니다
그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모든 인간을 장악한 내용일 지라도
심지어 그것도 모른채 열심히 예배 드리고
말씀실천하는 유대인인지라고
예수님이 마주한 진짜 현실은
모든 인간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장악당한 채 포로된채로
예배드리고 십계명 지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을 보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괜히 예수님께서 이미 지옥에 가 있는 애굽왕 바로 왕을 1300년 만에 소환해서
굳이 또 애굽의 팔을 짜르고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듯이
에스겔 당시는 900년 만에 애굽을 지옥에서 불러서
다시 애굽왕 바로왕을 지옥으로 내려 보내버리시는 겁니다
그 당시 애굽나라가 있었지만 이미 쇠약한 나라인데
그 애굽이 아니라 900년 전의 애굽을 지옥에서 불러낸 바로왕 때의 애굽이다는 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이 모세를 소환해서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율법의 대표자를 불러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이루어주소서
원수를 용서해 주소서 라고 했듯이
에스겔을 통해서 원수 애굽을 멸하심으로써 언약의 완성을 보여주소서를 이루시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애굽이 없어요
그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그러나 그 바벨론이 아무리 신생국으로 등장을 해도
그 원조는 그 모태는 바로 애굽이다는 거죠
애굽의 팔을 바벨론이 꺽고
바벨론을 메대 파사가
메대 파사를 헬라가
헬라를 로마가
로마는 열국이 꺽음에 있어서
우리가 눈으로 볼수 있는 현실은 겨우 100년도 아닌 상황에
이런 역사가 1000년을 넘어서 버리는 상황을 오늘 본문에서 한꺼번에 다 보여주면
과연 다 볼수가 있겠느냐 라는 겁니다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를 천년 이천년 삼천년 넘는 역사를 다 외운다 하고 해도
정작 과거가 아닌 미래의 역사를 다 담기에는 우리의 그릇이 다 깨어질 판국이 되는 겁니다
과거는 취사선택해서 골라먹기를 해 버리지만
미래는 무엇이 중헌디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과거처럼 숨겨진 내용을 다 삭제 시킬수가 없겠지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 묵시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사건이 되어서 기록이 될지 모르는 판국에
이 묵시는 이 미래는 그야말로 빈칸에 정답을 적는 인간의 숙제를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그냥 정답이 쳐들어와서 일방적으로 이렇게 이루어진다 라는 완료를 부여받게 되는 식입니다
이 완료를 무슨 수로 우리 뱃속에 채울수가 잇겠습니까
그저 뱃구멍이 뚫혀버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 되는 식입니다
자 그래서 애굽을 원조로 하는 나라들이, 그 열국들이 나타나도록 하신다 라는 것은
바로 다윗언약의 나라가 이미 떳기에 그 새언약의 나라가 완성 완료가 되었기에
두 언약의 한 세트로써 등장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즉 지하로 지옥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 나라로써 등장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해야할 현실로써 오늘 본문을 에스겔이 누려야 하듯이 우리도 누리도록
이 말씀이 조성한 현실을 맞딱들이게 되는 겁니다
이런 현실을 인간은 만들어 낼수가 없습니다
그저 인간은 빈칸 채우는 문제풀이 숙제를 함에 있어서
도움을 되는 것과 연맹 동맹 동질화를 맺어서
난관을 해쳐 나감으로써 미래를 꾸려 나갈려고 합니다
지난 주였나요 최근의 말씀에 우리가 어린아이가 칼에 부서지고
임신한 여인의 배가 갈라지고 라는 내용을 나누었고
또 오늘 본문의 바로 앞인 에스겔서
(겔 32:15, 개역)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겔 32:16, 개역) 이는 슬피 부를 애가니 열국 여자들이 이것을 슬피 부름이여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하라
여기서도 오늘 본문이 연장선에서 나열되듯이
여기서도 여자들이 나오는데요
여자와 아이들은 잉여물입니다 선물입니다
특히 아이는 부활을 의미라하는 열매를 의미하는 미래성을 보여줍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처럼 선물 개념이지요
전쟁에서는 전리품이듯이 말이죠 보물입니다
그런 열국의 여자들이 애곡한다? 여성은 약자인데
애굽의 영광으로 그 혜택을 약자인 여성이 그 동안 누렸다 라는 것은
보편적인 소망이 되었다 라는 거죠
그 익숙한 보편적 진리가 된 애굽의 영광이 하루 아침에 다 무너지게 되면
약자인 여성이 어디에 소망을 두겠느냐 밀이죠
그야말로 애곡이지요
애곡
눈물 이라고 하니까 생각하는 말씀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지고 가고 있을때에
아낙네들이 울면서 아이고 예수님
(눅 23:26, 개역)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눅 23:27, 개역)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8, 개역)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눅 23:30, 개역)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눅 23:31, 개역)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눅 23:26, 현대어) [십자가에 못박히시다;마27:32-44,막15:21-32,요19:17-27]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끌고 가던 그들은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메고 뒤따르게 하였다.
(눅 23:30, 현대어) ㄱ) 그때 사람들은 산을 향하여 자기들 위에 무너지라고 하며 언덕을 향하여 자기들을 묻어 달라고 할 것이다. (ㄱ. 호10:8)
(호 10:8, 개역) 이스라엘의 죄 된 아웬의 산당은 패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저희가 산더러 우리를 가리우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호 10:8, 새번역)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 올라서 그 제단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 때에 백성들은 산들을 보고 "우리를 숨겨 다오!" 또 언덕들을 보고 "우리를 덮어 다오!" 하고 호소할 것이다.
(호 10:8, 공동) 이스라엘의 죄악인 베다웬 산당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을 덮으리라.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산더러 묻어달라, 언덕더러 무너져 덮어달라고 애원하리라.
사 복음서에서 누가복음에만 여인네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말라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호세아 10장처럼 심판의 날이 얼마나 무서우면 차라리 산에 묻혀 죽는 것이 나을정도로 고통스럽다 라는 거죠
그러니 예수님을 위해서 우는 것은 어쩌면 배부른 상황이다는 겁니다
예수님 보다 본인들의 자녀
또 자녀 곧 미래가 나오지요
자녀를 위해서 울어라 그 정도로 절대심판이 얼마나 심각한데
한가하게 날 위해서 울어야 할 판국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두 패로 나누는 화목제를 이루시고자 가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처럼 묵시라는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애굽심판을 통한
인자의 나라를 이루심인데
다들 자기의 숙제로 예수님을 측은히 여기는 동일성 연합성 연맹의 마음으로
빈칸을 채우는데 있어서 안타까운 죽음에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정작 예수님은 날 걱정할게 아니라 너와 너 자식에게 이 심판이 떨어진다 라고
간극을 좁힐려는 동맹심 마음을 합심하는 연합적인 마음을
확 깨듯이
야 정신 안차려? 지금 너에게 불 떨어져 라고
확 깨는 단절의 말씀을 간극을 벌리시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진짜 현실은 내가 아니라 너가 지금 죽게 된 입장이다는 거죠
그래서 그 유명한 구절 이사야서를 인용한 갈라디아서
두 언약 두 여자의 두 아들 언약에서 나오는
수태치 못하는 자가 복되도다 라는 말씀
(눅 23:29, 개역)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사 54:1, 개역)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런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의의 증상물로써
화목제 곧 예수님의 숙제에 혜택을 입는 자가 되고
반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우는 자는
마치 빈칸을 채우듯이 예수님을 자기 숙제로 임금삼듯이
연민의 마음 동질성 연합성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오히려 종말때에 주께만 범죄한 자가 아닌
건강한 자 의인이라고 우기게 되는
화목제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왜 달려 죽으시는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의 심판을 왜 받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동질성 합일성 연합성의 마음으로 이미 자기 숙제로 연밍으로 채워 버렸기에
빈칸에 자기 답변을 적어버렸기에
이 빵구멍 뚫어서 예수님의 숙제를 완료로 이루시는 이 진짜 현실을 못 보는 거죠
오히려 수태치 못한 자가 빵구멍 뚫힌자로써
죄인으로써
환자로써 의사의 의술의 기능의 혜택을 보게 되니
이 십자가의 죽음의 혜택을 모르는 겁니다
모세가 왜 어서 죽어주소서 별세해 주세요 라고
변화산에서 1300년만에 나타나
900년 만에 나타난 엘리야와 함께 왜 이것이 진짜 현실인지를 모르는 식이다는 거죠
십자가의 다 이루심 완료로 구멍 뚫혀져야 하는 판국에
자신은 아직 살아있어서 빈칸에 자기 숙제를 채우는 기회가 있지만
예수님은 이런 현실을 못 누리고 그만 가는 구나 안타깝다
계속 살아있으면 숙제를 계속해서 빈캄에 답을 적는 말씀 실천 하기를
스탬프 도장 참 잘 했어요 도장 받으면서 살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젊은이 쯧쯧쯧
그래서 주님이 도로 반대로 쯧쯧쯧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라는 겁니다
열국의 여자들이 왜 애굽의 심판을 복 우는 것일까요?
보이는 소망이 무너지니까요 동질을 마음
동맹의 마음
연합 합일 동질성을 부여했는데
무너지니 자기도 무너지는 겁니다
나와 같은 동맹이 말이죠
결국 이 말은 보이지 않는 산 소망에게는 소망을 둘 수 없다 라는 거죠
고때만 애굽이 망하는 가짜소망인 절망일까요?
그 열국의 여자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애굽은 망하기로 작정이 된
죽은 소망을 그 동안 사모하고 소망해 왔던 거죠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섬기느냐
우리가 자주 접한 구절이지요
이사야 사칠팔 아래 위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오늘 본문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사야 47장 전체를 다 올려보면
(사 47:1, 공동) 처녀야, 딸 바빌론아, 땅바닥에 내려앉아라. 딸 갈대아야, 용상에서 내려와 땅에 앉아라. 누가 다시 너를 다정다감하고 애교가 넘치는 여인이라 하랴?
(사 47:2, 공동) 맷돌이나 잡고 밀이나 갈아라. 너울을 벗고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강물을 건너라.
(사 47:3, 공동) 홀랑 벗기어 속살까지 드러내어라. 내가 원수를 갚는데 누가 막으랴?"
(사 47:4, 공동) 우리의 구세주, 그 이름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말씀하신다.
(사 47:5, 공동) "딸 갈대아야, 말문이 막혀 그냥 앉았다가 어둠 속으로 꺼져라. 누가 다시 너를 만방의 여왕이라 부르랴?
(사 47:6, 공동) 내가 나의 백성에게 진노하여 그들, 나의 유산을 천대하여 네 손에 넘겼는데 너는 그들을 가엾게 보기는커녕 노인들에게 묵직한 멍에마저 씌웠다.
(사 47:7, 공동) '언제까지나 내가 여왕이다.' 하고 흥얼거리다 보니, 이런 일은 염두에도 두지 아니하였고 너의 장래를 걱정하지도 않았었지.
(사 47:8, 공동) 이제 내 말을 들어라. 마음놓고 향략을 누리는 여인아, 너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내가 과부 신세가 되다니, 내가 자식을 여의다니, 어림도 없다.'고 했었지.
(사 47:9, 공동) 그러나 너는 하루 아침에 이 두 가지 변을 당하리라. 자식을 여의고, 남편을 잃는 쓰라림이 한꺼번에 닥치리라. 재간껏 마술을 부려보아라. 힘껏 요술을 부려보아라. 모두 쓸데없으리라.
(사 47:10, 공동) 네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나를 감시할 눈이 없다.' 하고 자신만만이구나. 너는 지혜로운 체, 세상 일을 다 아는 체하며 '이 세상엔 나밖에 없다.'고 하다가 제 꾀에 넘어가리라.
(사 47:11, 공동) 이제 불행이 덮쳐오는데 무슨 마술을 써서 네가 그것을 막아내랴? 이제 재난이 떨어지는데 무슨 방법을 써서 네가 그것을 물리치랴? 헤아려 미리 알 수 없는 재난이 갑자기 너에게 닥치리라.
(사 47:12, 공동) 네 재주껏 요술과 마술을 부려 맞서보아라. 네가 젊어서부터 애써 익힌 것들이 아니냐? 덕이라도 입게 될는지 혹시 아느냐? 상대편을 위압하게 될는지 혹시 아느냐?
(사 47:13, 공동) 너는 그 많은 참모들에 지쳤다. 그러나 하늘을 살피고, 별들을 보며 점치는 점성가들, 매달 네가 당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점쟁이들, 그들이라도 나서서 너를 구원하라고 하여라.
(사 47:14, 공동) 그러나 보아라, 그들은 검불처럼 불에 타리라. 불길에 휩싸이리라. 빵을 구울 숯불도 아니요 앉아서 쬘 아궁이불도 아닌 불길에 휩싸이리니 목숨을 건질 길 없으리라.
(사 47:15, 공동) 네가 젊어서부터 지치도록 위하던 마술사들이 이 모양이 되리라. 저마다 도망칠 판인데 그 누가 과연 너를 구해 주랴!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개역)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주모와 동일시 하겠다 이 말은 과부가 안 되겠다
자녀를 잃어버릴 일이 없겠다 이 말은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록 하는 그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에
우상과 일치 합일 연합 동질성을 추구하는 바벨론 여자 자체가 우상과 한 몸이 된
우상 그 자체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이 바벨론 여자들이 보는 시선에서
수태치 못한자
아이를 밴 적 없는 자
가 누가 봐도 저주 받은 자 인데
종말에는 이것을 팔을 어긎맞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화목제라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뒤 바뀌는 판국인데
누가 이 십자가라는 현실을
곧 예수님의 숙제를 보겠냐 말이죠
오로지 자기 숙제만을 보면서
자기 숙제로 타인과 함께 도움을 주고 동맹 연맹을 이루어 미래를 꾸려나갈려고 하지
누가 이 현실을 마다하고 대신 절대심판 절대저주를 받는 이 예수님의 숙제인
십자가를 현실로 받아들이겠느냐 말이죠
본다고 해도 자기 유익이 없기에
바로 뒤 돌아서지
누가 화로다 화로다 나는 예수님의 숙제로 빵구멍 뻥 뚫힌 저주받아 마땅한 자 이구나 라고
동질성을 마다하고 간극 좁히기를 마다하고
누가 간극이 벌어진 그 절대저주인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자기와 자기 자녀를 위해서 우는 자가 되겠습니까?
솔로몬의 재판으로 빵구멍이 뻥 뚫힌 진짜 어미의 마음은
자기자식을 위해 울어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겁니다
절대심판이라는 완료가 예수님의 숙제로
지혜자의 숙제로 그 죽음에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긍휼함을 입었습니다
가짜 엄마는 그 저주에 박수를 치면서 우는 모습이 없는
그저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는 자기 숙제만을 빈칸에 채우고자 할 뿐입니다
죄인으로 들통당하지 않고 의인으로 드러남으로
진짜 아기 엄마를 죄인으로 몰아버리는데 성공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일 벌어질때마다 계속 그 지옥이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을
자기 손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열국의 여자들이 애굽이라는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잔칫집에 마음을 두었다 말이죠
연맹 동맹을 맺었습니까
국가간에도 동맹을 맺을때에 이익의 차원에서 동맹을 맺지
손해 볼 것 같으면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지요
자 이렇게 자기 배를 채우고자 임금과 동맹을 맺고 세우지만
인간 왕은 섬기는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처럼 사제들처럼 단물 빨아먹고 뱉어버린다 말이죠
경건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입니다
(딤후 3:5, 개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 개역)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개역)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개역)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개역)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개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후 11:1, 개역)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고후 11:2, 개역)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3, 개역)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4, 개역)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13, 개역)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 11:14, 개역)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5, 개역)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런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자기유익을 구하는
철저하게 이익 계산을 따져서 행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도로 임금의 노예로 삼는 것에 잘도 용납하는 구나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게 애굽이 하루 아침에 망하게 되니까
열국의 여자들이 다 웁니다 애곡 합니다
자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게 되는 겁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즉 그 동안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애굽이
그 잔칫집이 그 동안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빈칸 채우기 라는 인간숙제로 서로 서로 돕고 동맹을 맺는 마음으로
그런 소속감으로 그 동안 올라오는 지옥을 배고픔을 가리울수가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 수치를 가려줄 자가 없게 되니
애곡을 할 수 밖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겠다 마음에 두기 싫다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겠노라 라고 해 놓고서는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누가 나를 일으켜 주지 라고
역시나 스멀 스멀 올라오는 외로움 아픔 배고픔을 가리우고자
우상에게 손 그려서 자기를 일으켜 달라
우상에게 얼굴 그려서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 로 날 좀 봐 달라
위로해 달라 믿어 달라 라고 징징 거리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인간의 눈물을 보시고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서 울어라
아니 지금 남 걱정 할 때냐
그 다음 니 차례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종말이 닥치는데
시간적? 공간적? 그렇게 볼 수 있는 종말이 아니라
너와 너 자식이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상황에
오늘 귀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 남의 죽음 취급하면서 배불러서 울고 있더라 말이죠
애굽이 망하는 것을 보고 울어야 할 판국이냐 말이죠
너도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데
도대체 뭘 그 동안 보고 살았냐
어차피 지하로 지옥으로 내려가는 그런 애굽을 소망하고
보이는 것을 소망하고 살아왔으니
그 보이는 것이 지하로 내려가면
더 이상 소망 없이 애굽과 같이 지하로 내려갈려느냐
오냐 처음부터 지하로 내려가기를 바란다면 얼른 내려가거라
너의 눈물을 씻겨주고
너의 수치를 가려줄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외부에서 선물로 매일 매일 주어지는 이 새 마음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기존의 마음으로 백날 버텨본들 소용이 없는
헛된 우상 허구 안개만을 그 미완료만을 배에 까가득 채워버렸구나
자 이렇게 인간의 숙제로 아무리 빈칸을 채워넣는 결핍 여백을 채워본들
다 헛된 헛짓일 뿐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몸에 언약을 새겨주심이 없으면
그 처음자리에서 곧 죄인의 자리 고아의 자리
내 자식은 고아가 안되게 하리라 라는 바벨론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도로 고아의 자리에서 후견인이 되시는 그 첫사랑만으로만
몸에 이 첫맹세를 새기시는 것이 할례이다 말이죠
아까말한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것을
다른 복음으로 대체하며 자기 배에 채우는 것이 뭔고 하니
하나님 사랑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들이다 말이죠
(딤후 3:1, 개역)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개역)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개역)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개역)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개역)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런데 이런 주님의 뿔로 빵구멍 뚫는 것을
인간은 또 자기 숙제로 손할례로 빈캄의 채워버리니
그래서 바리새인을 독사의 자식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오늘날 성화론자들이지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수의 흔적 곧 십자가의 흔적
그리고 골로세서에서는 그리스도의 할례 라고 표현했다 말이죠
(갈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골 2:11, 개역)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갈 6:12, 개역)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갈 6:13, 개역)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갈 6:14, 개역)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5, 개역)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갈 6:16, 개역)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갈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8, 개역)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골 2:1, 개역)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골 2:2, 개역)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 2:3, 개역)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 2:4, 개역)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골 2:5, 개역)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골 2:6,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골 2:7, 개역)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9, 개역)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10, 개역)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 2:11, 개역)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개역)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3, 개역)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8, 개역)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9, 개역)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20, 개역)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 2:21, 개역)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 2:22, 개역)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3, 개역)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결국 예수의 흔적은 상대적인 껍데기 모양 갖추기 라는 인간의 숙제냐 빈칸채우기냐
십자가의 능력은 반대로 육의 모양이라면 육의 자랑이 되는데
도리어 미움받는 고난 속에 들어감에 있어서 도리어 능력을 받더라 말이죠
그 사람이 그리스도가 당한 능욕을 억수로 잘 참는 성격이라서 능력이 아니라
절대로 못 참는데도 불구하고 옆에서 그를 붙잡아 주시는 분을 보여주는 누락됨을 보여준다 말이죠 분명 고아인데 고아가 안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고아의 숙제가 아닌 후견인 고엘이 옆이서 일으켜주는 그 능력을 누락됨으로써 보여주더라 말이죠 이게 포착불가의 비유 비밀이다 말이죠
어 분명 넘어졌는데 일어날 힘도 없어 보이고 어 어떻게 일어났지
오뚜기처럼 그 사람 속에 자석이 있는가? 아니다 말이죠
그 뒤에서 오뚜기 되신 주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게 일으켜줬다 말이죠
그러니 우리의 불의함이 즉 고아 됨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더라
후견인 고엘을 나타내더라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하더라 라는 겁니다
은혜가 먼저 떳기에
이것을 비웃던
바울의 복음을 거짓으로 몰던 자들은
자기들이 그 동안 자기 숙제로 해 왔듯이 뭐 눈에 뭐 눈만 보인다 라고
내가 불의한 숙제를 하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내가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난다 라고
그카이 너는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아니 그것 잘못 좀 알았다 라고 제대로 좀 이해 되게 말해주면 어때
바로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해 버리니
이것은 동맹의 마음 일치성 합일성 연합성이 일체 없어요
오히려 성령은 단절성입니다 심판성입니다
그 심판성이 바로 하나님의 의 인데
내가 생각하는 의
내가 생각하는 선으로 보고 있으니 이게 다른 복음
거짓사도
경건의 모양이다는 거죠
사기치는 겁니다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 하시는 겁니다
의도 죄도 심판도 용광로 속에 집어 넣었다 빼 보니
불순물 찌기 혼합물을 다 빼서 보니
우리가 알던 그런 의 아닙니다
우리가 알던 그런 죄 아니다 말이죠
그럴 것 같으면 열국의 여자들이
모든 나라의 여자들이 애곡을 할 리가 없지요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는 자들을 보고 주님께서 민망해서 우십니다
즉 인간의 울음은 거짓되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우리가 우는 이유와 전혀 안 맞아요
오늘날 교회를 보고 우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천국을 보내는 일을 하는 교회가 예루살렘이
지옥을 보내는 일로 하는 강도의 소굴이 됨을 보고 우시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볼수 있겠습니까?
가장 경건의 모양을 갖추었는데
누가 그것을 깨고서 반대로 볼수 있겠냐 말이죠
다들 애굽이 잔칫집 같고
에덴동산 같은데
같다 라는 말은 다들 동의를 하고 그 잔칫집 건설에 에덴동산 같은 곳 건설에
너도 나도 동참을 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하로 내려 보내시겠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즉 그리스도의 할례 곧 연합 한 몸 됨을 누린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되지 못하는 것들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것들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골 2:8, 개역)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11, 개역)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개역)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8, 개역)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9, 개역)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골 2:20, 개역)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 2:21, 개역)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 2:22, 개역)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3, 개역)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이상하죠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것이 뭔고 하니
손할례를 지키는 자들의 율법지키기 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이래요
왜? 의문의 증서에 쓴 것들이기 때문에
백날 해도 의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문의 반복이다 라는 빈칸 채우기라는 미완료 이다는 겁니다
즉 그림자 이다는 거죠
이미 완료가 있는데
이 완료를 못 누린다 라면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손할례이고 여전히 그림자를 쫏고
여전히 초등학문으로
그리스도를 쫓아서 난 것이 아니다
헌 술 헌 부대이다 라는 겁니다
자 이래 말하니까 방종이라는 인간의 윤리 도덕에서 나오는
도덕 질서의 반대 개념을 가지고 와서 교리화 신학화 하더라 말이죠
자 그러면 그들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한다 라는 말씀을 이해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더 하겠느냐 라고 미리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
또 초등학문화 즉 빈캄 채우기
그림자 취급해 버리는 겁니다
죄도 모르는 거죠
의도 모르는 것이고요
죄란 반성할 수 있는 것이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아닙니다
내가 언제든지 유턴해서 돌아설수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라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의도 주님의 선하심도 우리의 선이 아니라
상대방 곧 죄인이요 원수죠 그 원수의 죄악을 제대로 심판하고서
다시 싸매어 주는 겁니다
우리는 암덩어리를 제거 할수 있는 의사의 기능도 없을뿐더러
그래서 대충 대충 고치는 평강이요 평강이요 라고
긍적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웃음치료 레크레이션과 같은 그런 짓만 할 뿐이다 말이죠
이게 교회에서 유행했지요 요즘도 여전하죠 그거 주님께서 상을 엎어버려서
다 쫓아내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인간의 의를 쫓아내지 않으면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일 생각지 않는다 라고 하시지 않으면
즉 내 속에 의가 없습니다 정직한 영이 없습니다 라고 고하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앞뒤 모순된 간극 벌리기
공백 빵구멍 뻥 뚫으심이 아니면
하나님의 의도 모르고
즉 하나님이 누구신지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는 거죠
아니 이스라엘이 창조주가 누군지 모를까봐
네 몰라요
오죽하면 이스라엘이 망하니까
하는 소리가
안 망하도록
제물을 제대로 바쳤으면 안 망했을텐데
양식 떨어졌다고 그만 바치지 않으니까 그래서 망했다 라고
오늘날 목사들이 망해도 계속 헌금을 멈추지 말라 라고 사기치는 것과 같다 말이죠
신앙상담을 방송국에서 할 때 부동의 1위가 십일조 이다 말이죠
제 블로그 시작때부터 부동의 검색어 1위가 십일조 였는데
최근 10년 안에 싹 다 사라졌다 말이죠
내기 싫으면서 왜 억지로 내냐 말이죠
주님은 주시는 분이지 받는 분이 아니다 말이죠
그래서 제발 십일조 받으세요 라고 하니까
이놈의 목사사모 전도사사모 채팅모임에서 발악을 해요
과연 지금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발악해야 할까요
얼마나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으면
인간에게 손 벌리는 겁니까
무슨 앵벌이 땅거지 입니까
궁금하면 오백원 ~~~~~~~~~~ 궁금하면 십일조 꽃거지 이냐 말이죠
얼마나 후견인이 없었으면
얼마나 용서함을 받지 못했으면
죄 사람을 받지 못했으면
인간 숙제로 빈칸 채우기 라는 그 미완료
그 그림자를 쫓고 있으냐 말이죠
이 다른 복음과 대비해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외치듯이
할례 없는 자들은 이미 지하로 지옥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것은
이미 완료가
이미 주의 팔이
구원의 뿔이 떳기에
우리가 먼저 빵구멍 뚫히는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이 일어나고
저들의 끝을 보는 겁니다
우리가 잘나서
내 숙제를 제대로 단 한 개라도 한 것이 잇어서가 어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저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 덕분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 그리스도의 할례 덕분에
우리가 무할례자 임에도 불구하고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 탄식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겁니다
이미 나음을 입었기에
완료가 덮쳤기에
이제 왜 용서 받았는가 라는 과정을
이미 무시험 합격 해 놓고서
다시 문제 하나 하나 어떻게 주님 홀로 정답을 풀었는지
숙제를 완료 했는지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 그래서 나는 틀리고 싶어도 틀릴수가 없군요
주님이 반칙으로 대신 시험 쳤으니
이 완료가 덮쳐버린 이상 말이죠
어떤 무식한 놈이
생각만 해도 얼마나 무식한지
자꾸 내로 남불 자기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는 불륜 이라고
자기 따나 공격한다 라고 나대던데
무식한 놈 이거 코메디에서 자주 봤죠 맹구였나 ㅋㅋㅋ
나의 불륜이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더라 말이죠
이게 말이 안되어야
자기 꾀에 자기가 속도록
저 따위 소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은혜가 더
로 검색응 하니
새로운 것이 보였습니다
(롬 11:6, 킹흠정)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찾는 구절은 이건데 말이죠
(롬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0, 새번역)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킹제임스 번역 별로 안 좋아라 하는데
왠일로 도움이 되네요
[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
행함 곧 인간 숙제로 된 것은 은혜가 될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 다른 번역 봅시다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6, 새번역)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다음 내용이 더 첨가되어 있음.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은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는 이미 행위가 아닙니다'
그 은혜가 바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환자 쪽에서 할 수 없는게 뭡니까 의사의 기능이다 말이죠 네네네 미국처럼 의료보험이 너무 커서 자기 스스로 째고 자기 스스로 꿔맨다 라고 해도 그거 의술이라고 하지 않지요 땜빵이 무슨 병고치는 겁니까 수술입니까? 대충 대충 이지요
은혜란 행위 밖에서 오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이지요
환자에게 돈 수천억은 선물 압니다
수천억이 새로 생겨도 오늘 밤 암으로 떠나면 그 돈 누구것이 되겠습니까?
환자에게서의 은혜란 오로지 의사입니다
가짜 의사도 있겠지요 돈 밝히는 의사는 대충 고쳐서 돈만 뜯어가겠지요
그러나 진짜 의사는 자기 목숨을 살과 피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섬기는 자 이겠지요
바로 할례없는 자
언약을 마음 판에 새겨주지 않는 자
찢으셨으나 싸매어 주시지 않는 자란
이 화목제가 없는 자입니다
이 완료가 아니면
미완료의 반복만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그림자만 쫓을 뿐입니다
이 할례 없음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할례가
그 완료 다 이루었다가 덮쳐지지 않기 때문에
할례없음이 뭔지도 모르고 할례 지키기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나 이군요 임을 모르는 자는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예수님 뿐인지 모르기에
또 의문의 반복의 자기 숙제릏 할 뿐입니다
곧 할례 없는 자와 함께 지옥으로 내려가는
열국의 여자
바알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여자와 같습니다
나는 주모가 되리라
내 자식은 고아가 되지 않으니라
나는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되리라 라는 이 그림자를 쫓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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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후견인에게 걸맞는 고아라는 불쏘시개) (호 14, 1- 3)
2025. 3.16.
시온에서 나온 율법으로 찢겨지고 예루살렘에서 나온 말씀을 받아 싸매어진하나님의 의 곧 말씀을 받아(움직이는 말씀 움직이는 성전 되신 예수님의 마음)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의사에 걸맞는 환자, 구원자에게 걸맞는 죄인, 주님께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마 9:13, 개역)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개역)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배반한 형벌 (호 13,15-16)
호세아 2023 2025. 2. 21. 14:50
23-31 하나님 배반한 형벌; 앗수르 칼에 죽는 젖먹이, 임산부 배 가름 (호 13,15-16)
〈호세아 14, 1- 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488장 새 428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찬송가 307장 새 478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송가 488장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새찬송가 428장〉
(호 14:1, 개역)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호 14:2, 개역)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호 14:3, 개역)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호 14:1, 현대어) [이스라엘의 전향과 새로운 미래] 오, 이스라엘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너희는 제 죄에 걸려 넘어졌다!
(호 14:2, 현대어) 너희는 이제 제물 대신에 말씀을 받아들고 주께 돌아가 이렇게 호소하여라. '오 주님, 우리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너그럽게 용납해 주시면 우리가 주께 찬양으로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입술의 열매를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호 14:3, 현대어) 다시는 앗수르의 구원을 바라거나 우리의 전투력을 의지하지도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들을 향하여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도 않겠습니다. 오 주님, 고아나 다름없는 우리가 은혜를 바랄 곳은 주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합니다
즉 이 말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듯이
말씀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겁니다
싫어하는 것은 아예 당연시 하고 아주 정반대의 다른 말씀 다른 복음을
그 자리에 대체 한다 라는 점이 우리가 숙고해야 할 이유이다는 겁니다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가겠다 결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아예 대 놓고 하겠다 라고 한다는 점에서
믿는 구석을 우상으로 두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눈 그려서 날 좀 봐 달라
팔 그려서 나를 일으켜 달라
귀 그려서 내 소원 들어달라 라고
하나님 보란 듯이 아예 대 놓고서 행동한다는 겁니다
가끔 정소년 사춘기를 다룬 영화에서 중2병 걸린 아이들이
이런 철 없는 짓을 하는데 있어서
중2도 아닌 늙어 죽을 때 까지 철 들기는커녕
대놓고서 하나님 보란 듯이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누가 봐도 사춘기 오춘기 이다 라고 보이는 자가 아니라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고 가장 존경 받는
다들 흠 없다 라고 여겨지는 자들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이였고
오늘날에는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이다 라는 거죠
물론 그 반대인 놈들은 당연히 철 없기는 매 마찬가지 이구요
요즘 들어 대놓고서 보이는 태극기 부대 애들 사이비종교꾼들 아닙니까
돈 다 뜯기는 거죠 뭐
딴나라당이 무슨놈의 정당입니까 사이비종교집단들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이미 누가 봐도 정신병자들이다 라는 것을 다 알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밟아 송을 불러도 이놈들 먼저 밟아 버려야 한다 말이죠
문제는 이놈들이 아니다 말이죠
누가 봐도 정상인이다 라고 다들 여기고 본인들도 자부하고 있는
저 촛불시위자들
과연 이들은 의인이기는 할까요?
불의를 보고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 라고 하는 이들 평화시위자들이
과연 의롭가 거룩하다 성화 거룩하게 성숙시키는 삶을 산다고 여기고 또 그렇게 거룩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추구한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거룩 맞기는 맞을까요?
의 곧 거룩을 인간은 과연 알까요?
말씀을 모른다는 입장에서 과연 의를 알기는 하느냐 말이죠
자 그러면 의가 먼지 모른다면
죄도 먼저 모르는 겁니다
아니 저 태극기 부대와 내란당들의 사이비종교 집단들 모습들이
과연 깊고 깊은 죄이기는 할까요? 아니면 얕은 죄 밖에 안되는 것일까요?
말씀 스스로가 규정해 주시는 악 곧 죄악의 깊이를 모른다는 점에서
의의 깊이를 알기는 만무하겠지요
물론 깊이 깊이 몰라도 어느정도 기본은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비록 얕을 지라도
문제는 그 얕게 아는 그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자체가
아무리 얕고 미약한 내용이라도 기본이 된다면 옳은 것 아니냐 하지만
그 자체가 죄 가 된다 라는 어찌하냐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지옥의 몸이다 라고 했던 겁니다
즉 저런 깡패 트럼프 따라하는 내란국짐당 사이비집단들을
메시아로 삼아서 고레스처럼 말이죠 네 짐승 메대 파사의 은신상 말이죠
또 느부갓네살 왕을 주님 자신의 종으로 삼아서 이놈은 금신상 아닙니까
그렇게 이들을 통해서 악한 날에 주의 날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의 몸인 고아 만들려며는 이들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받으시는 비로소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나 고엘이야
나 키다리 아저씨야
나 너를 책임질 양아버지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다들 사도바울의 수준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쌓고 쌓은 그 성경지식이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학벌 하버드 대 중에 하버드 대학원 출신이다 라는 겁니다
천재 중에 천재이다는 거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성화론자 중에 성화론자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 앞에서는 그런 최고의 성경 지식이
똥덩어리 배설물 지금 겸손 떠는 낮추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성경 지식 최고의 성경지식 소유를 비하한게 아니라
진짜로 더럽기 짝이 없는 죄악 덩어리 이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 할 정도면
우리는 아예 근처도 못가는 입장에서 순 엉터리를 우리끼리 서로 잘한다 라고
장난치고 있는 셈입니다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겠다 라고 할 정도로
순 엉터리 거룩 이요 죄요 심판으로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들끼리 서로 맞다 라고 확증까지 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러니 물론 딴나라당 사이비종교집단 뿐만 아니라
민주당 진보 요즘은 중도 라고 이재명이가 우겨도
역시나 악마 집단이기는 둘 다 마찬가지 이다 라는 겁니다
정치하는 놈들은 다 정신병자들입니다
민주당 착하다고요? 여호와증인 보세요 얼마나 착한지
자기 착하다 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희생하겠다 하니
내버려둬야지 우짜겠어요 갑자기 성우 그 사람 아들 생각나넹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와 비교해 보면
뭘 해도 다 순 엉터리가 되는 줄 모르고
사람에게 자꾸 희망을 줘요
종교라는 마약이 제일 먼저 우선시 하는게
사람에게 희망을 줄려는 태도 아닙니까
그건 저 무당들도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그카이 무당들이 왕 자리에 다 앉는 겁니다
뭐 천주교 라는 가면을 써도
천주교 자체가 사탄교 아닙니까
유대교가 사탄의 회 이였듯이 다 따라가고 있다 말이죠
그래서 원함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닌데
아무리 자신을 긍휼이 여김 받는 자고 되고자
백날 긍휼의 그릇 됨의 조건을 아무리 갖추어도
이게 바로 성화론자들이 시키는 사기술 아닙니까
아니 원함도 아닌데 달음박질 함도 아닌데 말이죠
그럼 또 이래 반박합니다 그럼 원하지도 말고 달음박질 아니하면 되느냐 라고
이것 역시나 인간의 숙제 아니냐 말이죠
주님의 숙제로 인한 성령으로 난 자가 있는데
문제는 성령으로 난 자가 없고요
그 성령으로 난 자가 언제 성령이 떠날지 모르니까
완악한 수건으로 광채가 날라가기 전에
그 내용물이 뭔가를
기록하여서 이것을 교리화 하자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칸다고 완악한 수건이 아닌게 되나요?
맹 사랑이 없기는 매 마찬가지이고
번제와 제사를 추구할 뿐이지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인
인애와 자비가 없는데
정직한 영이 없는데
백날 교리화 해서
실천하는 교리 플러스 실천을 해 본들
교리 플러스 실천의 대가 불교를 따라잡을수가 있겠냐 말이죠
종교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믿는 신이 1등이 되어야 한다고 우기는데
불교를 따라 잡을 리가 없으니 말이죠
요즘 미국에서는 불교가 부자들에게 대세이다 라고 하잖아요
결국은 니 혼자다
니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라고 말이죠
위버맨쉬 (독일어: ?bermensch) 자기를 초월하는자 가 겸손한 자 다 아입니까
최근의 표현으로 치면 호모 데우스 이다 말이죠 초인 니체가 말한 것을
인간을 초월한 신이 된 인간으로 발전 시켰다 말이죠
아니 발전 아닌 초월한 거죠
뷸교야 말로 최고의 인문학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이런 최고의 경지의 거룩한 학문이
사도바울은 나도 해 봤다 라는 식으로
촤고는커녕 똥덩어리 라고
초등학문 취급해 버리는 겁니다
즉 지켜서 실천해서 나오는 진리는 아예 진리 취급해 버리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진리를 실천을 해야지 실천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진리이냐 라고 반박하는데
인간이 숙제를 해서 진리를 싱천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진리가 진리 자기 숙제로 인간을 다루겠다 라는 겁니다
인간 자기 숙제로 나오는 행동과
진리가 인간을 다룸으로써 나온 행동이
말과 생각 자체가 아예 정반대이다 라는 거죠
이것을 종교애서 말하는 믿음이 아닌
그건 역시나 행함이고
곧 인간 나 여기 있음에서 출발하는 것들이고
그런 종교적 믿음은 종교성 매사에 동교성이 많아서 나온 행동들은
빈칸 채우기 라는 여백 결핍채우기라는 미완료요
이것이 역시나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복수심 원한 한풀이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기에 믿음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기에
이 믿음은 선물 받은 성령 받은자
곧 오늘 본문의 내옹인 말씀을 받아서 그 받은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 께로 돌아오는 자
피 발려서 피를 가지고 돌아오는 자가 되겠지요
그런 자에게서 나온 진리
곧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그 내용이 우리가 알던 의 죄 심판과 완전 딴판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정직한 영이 없다 라는 다윗의 고백
우리 모두가 의가 없다 라고 선언한 입장에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사망의 몸이구나 라는 입장에서
그 이호의 모든 것들은 그저 선물인
완료만을 누리는 것 뿐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곧 은혜죠
시한부인생에서 이미 날짜가 찾음에도 불구하고 안 죽게 되면
그건 뭐 더불어사는 완벽한 삶이 아니고 뭡니까
완료를 이렇게 누릴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죠
분면 지난 번 호세아 13장까지 그렇게 부정적으로 너거들 이미 망햇다 라고
심판 속으로 집어 넣는 찢으심 밖에 없었다 말이죠
그 절대저주 절대심판 속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라 14장 부터는 그 찢으심에 모순이 되는 다시 싸매어 주심이 있더라 말이죠
이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어요
논리적으로 안 맞아요
절대 모순된 그 두 극단적인 두 극 과 극이
동전 앞뒤처럼 하나가 되어서 덜쳐지게 되니
나의 되도 않는 저 불교와 같은 초등학문의 숙제를
빈칸 채우기를 그냥 구멍 뚫어버려서
완료 자체로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내 경험화 할수 없는
진리가 나를 도로 체험을 해 버리는 겁니다
내가 체험하는게 아니라
내가 완료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서 누리는게 아니라
내가 말씀을 내 쪽으로 끌어와 누리는게 아니라 이게 성화론이라는 사탄의 깊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바 그 반대인
말씀이 나를 마음껏 누리더라 말이죠
완료가 다 이루었다 라는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나를 마음껏 누리는 겁니다
아 그럼 행복하겠네요 네 맞아요 그런에 우리식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럴까 싶어서 행복이라는 단어로 행복하겠네요 라고 물어봤겠지만
주님이 죄가 타는 그 역거운 냄새를 흠향하시면서 좋아라 합니다
저 같은 냄새에 예민한 자는 기침 콧물 토하고 속이 미스꺼워 난리가 날텐데
알래르기 반응처럼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그런 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땅콩 알레르기 그 얼마나 맛있는 땅콩을 먹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도 몸에 들어가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듯이
온 몸에 반점 퍼지듯이 하고 숨도 못 쉬고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말이죠
바로 그런 식의 행복이면 과연 우리에게 안 맞다고 주님이 그 기쁨을 포기 하시겠냐 말이죠
의사가 최고로 기뻐하는 순간은 암덩어리를 제거했을때에
죽은 자를 살렸을때에
고아 에게 키다리 아저씨 기능을 했을때에 얼마나 기쁘냐 말이죠
그러나 그 고아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모욕적이냐 말이죠
자신이 고아 라는 것이 세상에 밝혀지고
부모가 없다 라는 마치 빈캄이요 결핍이요 여백처럼 여겨지니까 말이죠
그래서 부모 있는 자들이 고아랑 놀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 곧 후견인 고엘의 하나님은
바로 그 부모 있는 자들의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어 버리고
누가 봐도 부모 없는 고아를 하나님 자녀인 양자로 삼아버릴때에
이때 진리가 펼치는 숙제에 내가 고아가 되는
환자가 되는
죄인이 되는 입장에 과연 놓이고 싶어하느냐 라는 겁니다
그런 말씀을 먹고 돌아온다?
인간은 성경을 좋고 긍정적은 것만 골라 먹어서 돌아올려고 하지
누가 70년 만에 쫄딱 망해서 돌아오는 삼분의 2의 저주까지 먹고서
돌아올려고 과연 하는가?
바로 그 처음자리인 고아로써 돌아오는가?
죄인으로써
환자로써 말이죠
자 그런 입장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는 거부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그저 남의 눈을 의식하다 보니
복수심인 한풀이 이것을 좋게 포장해서 소원풀이로써
소원을 말해봐 빈칸을 채우고 간극을 좁혀봐를 추구하고자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아니 말씀이 이런 식이면 저번에 말한 멀리 멀리 도망치겠다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게 이것이 정상이고
이것이 언약의 코스이다 라는 말씀이 옳았다면
과연 이런 말씀을 먹고 받고 그 말씀을 가지고 70년 만에 돌아올수 있는가?
네 맞습니다 돌아온다 라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거죠
결국 말씀이 우리를 돌아오게 만든 것이 70년 곧 절대저주 심판 죽음을 거쳐서 나온 것이니까
우리가 생각한 의요 죄요 심판은 심판 축에도 안되는 그야말로 엉터리로써
기경 밭갈이 의도 갈아 엎어야 하고
죄도 갈아 엎어야 하고
심판도 갈아 엎어야 하고
저도 부모님 도와서 밭농사 뭐 파 농사 상추 농사 취미삼아 하시겠다 라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번 해 봤는데 거름 넣을 때부터 발이 다 썩지요 인분에 말이죠 다들 초보라서 뭐 압니까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요령 없으면 생고생하지요
돌 골라내야지요 땡볕에 죽습니다
그리고 비닐 입혀서 펌프 돌려서 물 대어야지요
또 겨울에는 밭 갈아서 또 돌 걸러내는데 하필이면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돌 하나 하나가 얼음덩어리처럼 차우니 동상 걸리는 것은 뭐 일도 아니지요
결국 다들 얼마 하지도 못하고 다 포기하더라 말이죠
몸이 다 고장이 나니 말이죠
자 이렇게 생고생해서 그렇게 힘들게 땀흘려서 농사를 치은 것 추수하고 팔면
최등급 상품을 만들면 얼마나 보람 되는 기쁨이냐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고생한 것을 최하품의 인권비도 안 나오면
갈아 엎더라 말이죠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말이죠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 모든 인간은 그 특급상품들이 최하품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들 자기 숙제로 의인 건강한 자가 될려고 함에 있어서
주님은 밭 갈이를 통해서
오히려 고아를 새로 발생시킨다 라는 점 입니더
또 이렇게 말하니까 아 그럼 나도 고아 될래요 라고
또 자기 숙제로 고아 도는
막사는 놈들이 있더라 말이죠
기존의 고아 개념으로 고아 되는게 아니라
후견인 키다리 아저씨를 말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고아는
인간의 숙제로써는 될 수가 없다 라는 겁나다
오로지 고엘의 하나님 키다리 아저씨의 몫이지 말입니다
진리 스스로가
지혜를 펼치 심에 있어서
천한 계집은 그냥 왕비의 자리에 높이는게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높이고자
세상 보란 듯이
마귀 보란 듯이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만드는 식으로 높이실때에
인간 스스로가 고아가 되는 막살기가 되는 것은
하나도 격동하지 않고요 견디지 못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 스스로 지혜자 스스로가 자기 숙제로 하셔야지만
비로소 배 아프다 말이죠
그게 바로 탕자 용서를 맏아들 보란 듯이 펼쳐야
견디지 못해 격동한다 말이죠
결국 주님의 숙제는 상대적인 마귀의 행함을 두언약의 한세트화 한 것이다 말이죠
주님의 반작용이다는 겁니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 한테만 있다 말이죠
즉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만든다 라는 겁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면
내가 하는 숙제로
소위 성화론자들처럼 하게 되면 아무도 배 아파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런 속임수에 빠지느냐
견디지 못해 격동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존경하고 자신에게 보람되게 만드니까 마귀가 다들 속여버렸으니까
아니 누가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하는 그런 치사한 깃을 하느냐
마귀도 아닌데
오히려 광명한 천사 마귀처럼
하나님과 같이 된 넓은 마음 부처님 마음처럼 초월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치사하게 애들처럼 견디지 목하고 격동케 만드는 그런 유치한 짓 안해야지
이게 마귀이다 말이죠
아니 어둠이 반발하는 빛이 아니면 그것이 무슨 빛이냐 말이죠
그럼 승리 라는 표현이 필요가 없다 말이죠
승리란 누굴 이겻다 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의 숙제로써의 승리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왜 악을 허용하느냐
하나님은 불의하느냐?
다 같이 만들던가
왜 누구는 미움받기로 작정
왜 누구든 사랑 받기로 작정이냐
불공평 하다
아 그러면 왜 너는 누구는 천한 그릇
누구는 귀한 그릇 안하느냐
여기서 인간은 죄의 소원을 못 넘어서는 겁니다
선악을 괜히 아는 바람에 말이죠
주님의 선악 아심에 맡겨야 할 판국인데 말이죠
그래서 말씀을 우리는 알 길이 없는 겁니다
성령이라는 새영 새마음이 오지 않으면
부어주시지 않으면
다윗의 말 대로
정직한 영이 없기에
그저 결핍 채우기 라는
율법 네 배나 갚으라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간극 좁히기가 안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간극 벌리기인 빵구멍 나기를 원하는가?
고아가 되기를 원하는가?
주께만 범죄한 자 되기를 원하는가
택도 없지요
자기 숙제로 남의 허물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는 사랑을
그 율법의 완성을 이룰자 없어요
그저 겉모양만 흉내내다가 한계에 부딧힐 뿐입니다
그카이 다들 하나님께 따지잖아요
요나처럼 차라리 날 죽이소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힘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다들 투덜 투덜, 궁시렁 궁시렁, 징징 거리는 겁니다
제가 만난 인간 부류 중에게 제일 궁시런 거리는 놈들이 누구인가 보니
목사 놈들이다 말이죠
그 목사 놈에 딱 달라 붙은 정치꾼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놈들 궁시렁 거리는 것 1초 만에 잠잠케 하는 방법이 뭔고 하니
돈에 입에 물려 주면 군말하지 않음을 보고
기가 막혀 버렸어요
그것도 가장 고상한 성화되었다 라고 남들이 다 존경하는데
이상하게 저는 그런 점이 잘 안보이고
이상허게 딴게 보여요 환상까지 겹쳐져서 말이죠
임금 되지 않겠다 라고 도망쳤듯이
교인 되어 주지 않겠다 라고 도망쳐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알고보니 자기의 가치를 높여줄 노예 만들기 였던 거죠
하여튼 이용해 먹을 속임수의 달인들이다 말이죠
남을 돕고자 생겨난 직업들이 예를 들어 변호사처럼 말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등쳐먹고 고아를 신원치 않는 직업들이 되었듯이
후견인이 되어주지 못하니까
다들 고아가 될까봐 싶어서
우상숭배하는 바벨론 여자처럼 열국의 모든 나라의 여자들처럼
과부 안되리라 고아 안되리라 왜?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줄 알거든요
그런 세상에 말씀을 가지고 돌아온다?
후견인의 선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러면 나 고아요
나 죄인이요
나 환자이다 라는 뜻인데
교회에서 나 죄인이요 라고 나오면 그 죄인 어떻게 해서든 쫓아내기 바빠요
미국에서 나 환자요 라는 증거로써 마스크를 하면 다들 피한다 말이죠
의사 조차도 피해요 그래서 휴지를 가지고 목숨걸고 싸우는 웃픈 상황까지 갔잖아요
싸우다 휴지 땜에 죽고 말이죠
말이 봉사를 위한 직업이지 돈 때문에 고아 되면 안되리라 가 되는 거죠
그럼 고아의 후견인의 반대가 뭡니까
그 후견인에 걸맞는 고아이니까
봉사할 상황이 아닌 것을 안다면
도리어 용서 받아야 할 입장이다는 것을 안다면
본인이 고아요 죄인이요 환자인 입장이 아니게 되면
후견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고아도 아니게 되면
거꾸로 고아를 등쳐먹는 과부를 등쳐먹는 나그네를 등쳐먹는
삯꾼 목자이다 자기 배를 위한 사기끈일 쁜이다 라는 거죠
이 완료의 십자가의 피 용서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느냐 누가 속임수를 펼치는
미완료요 의문의 반복이요
결핍의 빈칸 채우기라는 인간 숙제로 속이려 드느냐
그래서 후견인인 고아를 찾고
탕자를 찾고
완료는 완료인 사랑은 율법의 완성 완료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원수를 찾는 겁니다 죄인 중의 괴수 말이죠
그렇지 않다면 다들 아버지 말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이 될려고 자기 숙제 내밀 뿐인
자기 의를 쌓고자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는 거부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자 이다는 거죠
사랑을 모르니까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만 쌓았던 겁니다
나 과부 아닌 주모요 공주요 왕비요
내 아들은 고아 아닌 왕자이다 라는 그 꽹과리인거죠
그 정도로 복수심을 펼쳤다 라고 우기는 식인 겁니다
자기 배를 자랑하는 우상을 자랑한 거죠
이런 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올 리가 없습니다
또 육의 자랑
나 고아 될 줄 아는데 너는 고아 될 줄 모르지 또 이렇게 자기 숙제했다고 나오는 놈들이다 말이죠
밀씀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말은
말씀이 나가버린 입장에서
말씀이 떠나버린 그 자리 그 지점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돌아온다 라는 겁니다
네 말이 안되지요
왜? 내 숙제에 달려있지 않음을 우리가 알게 되니까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는 이상 안된다는 겁니다
바로 처음자리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첫사랑으로 찾아오신 첫사랑이 만들어낸 자리가 처음자리로써
말씀이 나가버렸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나를 찾아옴으로써 졸지에 새로 생긴 처음자리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나는 순수했엇지 라는
그런 순수한 나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과거이니까 처음자리가 아니지요
처음자리는 새로 맹글어낸 첫사랑이 만들어낸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아이구 겨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구나
다들 수고했네 라고 서로가 서로를 다둑거랴 주면서
쉼을 얻어 한달 넘게 싹다 잊어버리는 그 예수를
49일 쩨 가 되어도 전혀 마음에 찔림도 있다든지
죄책감이 든다든지 하는 그런 마음 추호도 없는데
말씀이 찾아와서 미음판에 할례로 빵구멍 뻥 내니까
갑자기 오십일 만에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상한 마음이 되는
비로소 예수님을 죽인 원수로써 들통나더라 말이죠
그 어떤 연계점이 없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져서 말이죠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29, 개역)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행 2:30, 개역)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행 2:31, 개역)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행 2:32,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3, 개역)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 2:36, 개역)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9, 개역)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개역)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41, 개역)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2, 개역)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우리가 아는 죄가 엉터리인 이유도 나오네요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주께서 내 주께 라는 그 간극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의에서 죄가 규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의 이라는 앞뒤 모순된 간극에서 나오는 죄가 어닌
내가 이미 하나님과 내 자신을 동일시 동맹 연맹 연합시켰다 라는 그 선악의 지식에서
죄를 규정하고 의를 규정하고 심판을 규정하니
도리어 이 주께서 내 주께에서 나온 그 간극에서 나온 심판에 의해서
다 심판 받는 겁니다
즉 주님 본인이 심판의 칼을 날려 놓고서 = 주께서
그 심판 날린 그 칼을 주님 본인이 날려놓고서 주님 본인이 그 심판을 당하시는 = 내 주께
이 간극 이 좁힐수 없는 이 제대로 된 절대심판에서 나온 공백에서 나온 죄
공백인 십자가에서 나온 의
간극에서 나온 심판이 아니면
다 심판받는 허구이다 말이죠
그건 죄도 아니요
의도 아니요
심판도 아닙니다
오로지 십자가라는 그 간극에서 나온 죄 의 심판이 아니면
엉터리일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드는 겁니다
어딜 십자가의 저주로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 앞에 내 죽음을 드리내미느냐 말이죠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올려면
말씀이 나간 지점 곧 70년 만에 돌아올 때
그 돌아오는 지점이 고아의 자리였던 거죠
잃어버림이 없는데 어떻게 되찾음이 있고
찢으셨으나 라는 지점이 없는데 어떻게 싸매어줌이 있겠느냐 말이죠
돌아오는 지점은 쫓겨났던 지점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지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데
다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요구하는 이유는
여전히 고아의 자리 라는 처음자리가 아닌
쫓겨난 자리가 아닌
의인 건강한 자 특히 부자로써 예수님에게 말씀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혹시 모자란 것 있으면 말씀만 하셔라 당장 지키겠다 라고
말씀을 가지고 돌아왔단다 쨍하고 돌아왔단다 라고 자부했건만
보란 듯이 등돌리고 다시는 함께하지 않겠다 라고 근심하고 돌아서 가버리는 겁니다
결국 믿음이라는 말씀을 내용이란
오로지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빵구멍 만이 완료로써
다 이루심이지
기초만 짖고 46년 동안 지어도 완공 못하는 인간의 믿음에서는
말씀을 이룰수도 없고
믿을 거리가 없습니다
믿음직 스러움이 없이 불안 불안 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나의 믿음으로는 완공 완료 안되는 겁니다
바로 이런 나의 가짜 믿음을 거쳐서 주님의 진짜 믿음으로
내 믿음 아니요 주님의 믿음인 말씀으로
완료로 돌아오는 겁니다
나의 미완료인 완악한 수건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속일수 있겠습니까?
이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떳기에
이 주의 날이 떳기에
주의 발등상이 떳기에
원수 같은 나의 거짓됨들이 가짜 믿음들이
원수가 심은 것들이 들통 당하면서
주의 발등상에 드러냄에 들추임 당하면서
이런 죄악도 다 사했던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시는
내 속에 없는 정직한 영
주의 영
주의 마음
새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겁니다
이제 내 개인 사적인 병고침이나
찢어진 살 꿰매어지는 싸매어짐이 없어도
이미 새이스라엘 새신부는 새신랑의 품에 있음을
그 다 이루심을 우리는
여섯 남편이 있었던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물바가지 집어던지면서
나의 죄를 아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죄를 안다는 말은 아이고 제대로 의사 만났다 라는 겁니다
죄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돌파리 의사 같은
거짓 목자들이 그 동안 얼마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얼마나 대충 대충 고쳐왔던가 말이죠
그 우물가의 여인의 상황은 개인적인 상황이 아닌
그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모습이였던 거죠
거짓 목자들이 평강이다 평강이다 대충 대충 고치면서
삥이나 뜯어내는 그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때나 지금 2025년이나
저도 겨우 반백년 밖에 못 살아봤지만
달라진 세태가 없어요
의문의 반복 뿐입니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소망으로써의 믿음이 다 이룬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이룬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주님의 나라가 먼저 떳기에
이 새상은 악한 날 값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주의 날이 떳기에
은혜의 해가 다 이루어졌기에
희년이 다 이루어졌기에
이 악한 날이 악한 날로써 나타나도록 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 악한 날 속에 살면서도
주의 날을 누리는 증상물로써
세상에 내 던져진 주의 날의 증상물
은혜의 날의 증상물
희년을 누리고 즐기는 자로써
후견인이 누구신가를 말하는 자로써 고아로써
후경인의 증상물로써 고아로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이 후견인을 온 세상 외치면서 말이죠
악한 날은
여호와가 누구관데? 라는 반응을 나타내도록
세상이 이 후견인을 모르겠끔 만들고자 하는 그 악한 마음을
들이 쑤셔 대는 불쏘시개로 우리를 미끼로 고아(사라지는 매개자)로 삼으셨듯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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