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심판과 여호와의 날 (13: 1-22)

 

실로암 망대 사건 심판의 기준 ;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
13:1, 개역)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13:2,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3,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6:12, 개역)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6:13, 개역)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4, 개역)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6:15, 개역)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13:1, 개역)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13:2, 개역) 너희는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13:3, 개역)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나의 위엄을 기뻐하는 용사들을 불러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13:4, 개역)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13:5, 개역)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13:6, 개역)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13:7, 개역) 그러므로 모든 손이 피곤하며 각 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라

(13:8, 개역) 그들이 놀라며 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한 여자 같이 고통하며 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

(13:9, 개역)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13:10, 개역)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13:11, 개역)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13:12, 개역)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13:13, 개역)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13:14, 개역)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13:15, 개역) 만나는 자는 창에 찔리겠고 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13:16, 개역)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 목전에 메어침을 입겠고 그 집은 노략을 당하겠고 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13:17, 개역) 보라 은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13:18, 개역) 메대 사람이 활로 청년을 쏘아 죽이며 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하리라

(13:19, 개역)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13:20, 개역)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곳에 그 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3:21, 개역)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 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13:22, 개역)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13:1, 새번역) 다음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빌론을 두고 받은 엄한 경고의 예언이다.

(13:2, 새번역) "너희는 벌거숭이가 된 산 위에 공격 신호 깃발을 세우고, 소리를 높여서 용사들을 소집하여라. 바빌론의 존귀한 자들이 사는 문들로 그 용사들이 쳐들어가도록, 손을 들어 공격 신호를 보내라.

(13:3, 새번역) 나는 이미 내가 거룩히 구별한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나의 분노를 원수들에게 쏟아 놓으려고, 사기가 충천한 나의 용사들을 불렀다."

(13:4, 새번역) 저 소리를 들어 보아라. 산 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다. 저 소리를 들어 보아라. 무리가 떠드는 소리다. 저 소리를 들어 보아라. 나라들이 소리 치고 나라들이 모여서 떠드는 소리다. 만군의 주님께서, 공격을 앞두고, 군대를 검열하실 것이다.

(13:5, 새번역) 주님의 군대가 먼 나라에서 온다. 하늘 끝 저 너머에서 온다. 그들이 주님과 함께 그 진노의 무기로 온 땅을 멸하려 온다.

(13:6, 새번역) 슬피 울어라!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깝다. 전능하신 분께서 오시는 날, 파멸의 날이 곧 이른다. / , '샤다이'

(13:7, 새번역) 날이 가까이 올수록, 사람들의 손이 축 늘어지고, 간담이 녹을 것이다.

(13:8, 새번역) 그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고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것이, 해산하는 여인이 몸부림 치듯 할 것이다. 그들은 놀라 서로 쳐다보며, 공포에 질릴 것이다.

(13:9, 새번역) 주님의 날이 온다. 무자비한 날, 진노와 맹렬한 분노의 날, 땅을 황폐하게 하고 그 땅에서 죄인들을 멸절시키는, 주님의 날이 온다.

(13:10, 새번역) 하늘의 별들과 그 성좌들이 빛을 내지 못하며, 해가 떠도 어둡고, 달 또한 그 빛을 비치지 못할 것이다.

(13:11, 새번역) "내가 세상의 악과 흉악한 자들의 악행을 벌하겠다. 교만한 자들의 오만을 꺾어 놓고, 포학한 자들의 거만을 낮추어 놓겠다.

(13:12, 새번역) 내가 사람들의 수를 순금보다 희귀하게 만들고, 오빌의 금보다도 드물게 만들겠다.

(13:13, 새번역)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리게 하겠다." 만군의 주님께서 진노하시는 날에 그 분노가 맹렬히 불타는 날에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13:14, 새번역) 바빌론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마치 쫓기는 노루와 같이, 모으는 이 없는 양 떼와 같이, 각기 제 민족에게로 돌아가고, 제 나라로 도망 칠 것이다.

(13:15, 새번역) 그러나 눈에 띄는 자마다 모두 창에 찔리고, 잡히는 자마다 모두 칼에 쓰러질 것이다.

(13:16, 새번역) 그들의 어린 아이들은 그들이 보는 데서 메어쳐져 갈기갈기 찢어지고, 그들의 집은 약탈을 당하며, 그들의 아내는 강제로 추행을 당할 것이다.

(13:17, 새번역) "내가 메대 사람들을 불러다가 바빌론을 공격하게 하겠다. 메대 군인들은 은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금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13:18, 새번역) 그들은 활로 젊은이들을 쏘아 갈기갈기 찢어 죽이며, 갓난아기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13:19, 새번역)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바빌론, 바빌로니아 사람의 영예요 자랑거리인 바빌론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때에,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다. / 또는 '갈대아'

(13:20, 새번역) 그 곳에는 영원토록 사람이 살지 못하며, 오고오는 세대에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아랍 사람도 거기에는 장막을 치지 않으며, 목자들도 거기에서는 양 떼에게 풀을 뜯기지 않을 것이다.

(13:21, 새번역) 거기에는 다만 들짐승들이나 뒹굴며, 사람이 살던 집에는 부르짖는 짐승들이 가득하며, 타조들이 거기에 깃들이며, 산양들이 그 폐허에서 뛰어 놀 것이다.

(13:22, 새번역) 화려하던 궁전에서는 승냥이가 울부짖고, 화려하던 신전에서는 늑대가 울 것이다. 그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은 절대로 연기되지 않는다.


(
24:29, 새번역) 『㉦"그 환난의 날들이 지난 뒤에, 곧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 13:10; 34:4

(13:24, 새번역) "그러나 그 환난이 지난 뒤에, '그 날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 13:10; 34:4


지난 시간에 감사란 어떤 조건을 갖춘뒤에 감사해서 나오는 감사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 버리면 감사 조차도 하나의 조건이 된다 말이죠

마치 성전에서 기도하는 두 사람중 한사람인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감사할 조건들이 바리새인에게 더 많다보니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듯이 말이죠

그런 감사는 모든 종교에 다 있는 선악적인 사고방식이다 말이죠

자기는 선이고 저 세리 매국노는 악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란 그 어떤 종교와 철학사상 그리고 인간의 윤리에 안 맞습니다

감사란 정반대로 미래에서 덮쳐지는 원인 없는 결과이다 말이죠

자 이 원인 없는 결과로써 감사가 덮쳐지면

바로 저렇게 감사한다고 하나님께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심에 대한 감사가

졸지에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는 살인의지와 적개심으로 바뀐다는 겁니다.

 

멀쩡한 인간을 한순간에 살인의지로 바꾸지 못하는 감사는 감사가 아닌거죠

인간들이 드리는 행함 곧 번제와 제사를 살인의지로 바꿀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감사와 회개 곧 원인 없는 결과인 십자가의 다 이루심 뿐이다 말이죠

마치 저 천한 계집종을 왕비로 만드는 지혜가 등장함으로써

세상이 격동하고 견디질 못하는 적개심을 드러내듯이

지혜가 몰고오는 감사는 선악을 쥐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거든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곧 원인 없이

죄 용서 받았기에

 

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죄 용서받은 것에 대한 반발성이다는 겁니다.

 

마치 탕자에게 금가락지 살진소 새신발 곧 꼬끼오×3, 여디디야×3 이라는 선물을 베풀때에

긍휼을 베풀때에

맏아들이 반발하듯이 말이죠

 

결국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엉터리로 생각했던 겁니다.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죄에 대해서 엉터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 세리 매국노는 죄인이고

바리새인 자신은 십일조 드리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토색하지 않으니까 선으로 의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심판한다는 겁니다.

 

죄란 십자가의 피로 다 이루셔서 성령 곧 보혜사를 선물로 주시고자

죄인을 부르러 왔는데

다들 의인이랍시고 보고있으니 죄가 뭔지 모르고 죄를 모르기에

의도 몰라서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감사하다고 한다 말이죠

 

감사의 영을 준 적도 없는데 감사하다고 하니 이것은 종교성

곧 선악으로 판단한 것에서 나온 오히려 짐승 666의 사고방식이다 말이죠

 

감사는커녕 정직한 영이 없음에 상한심령이 되어야 한다 말이죠

왜 감사의 영이 떳기에 상한심령이 된 것은 오히려 바리새인이 지금 욕하고 있는

저 세리가 상한심령이 된 겁니다.

그러니 세리가 회개하고 감사하더라 말이죠

 

결국 괜히 십일조 냈고 괜히 이레에 두 번 금식해서

그것을 의로 보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의로우니까 왜 십일조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니까

그 의로움에 상대적인 저 세리는 죄인이니까

졸지에 선악으로 판단 곧 심판하더라 말이죠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바로 그 선악을 가진 모습이 오늘 나오는 바벨론을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 말이죠

요한복음 16장으로 말하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주시는 보혜사 성령을 기준으로 해서 말이죠

 

그러니 이 심판의 기준은 마치 출애굽 때의 애굽심판과 같은 기준입니다.

애굽이 악해서가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에 대한 거부입니다.

불뱀에게 다 물렸을때에 장대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쳐다본다고 낫겠는가 라고 해서

안 쳐다 보다가 심판받았다 말이죠

 

약을 달라 말이죠 약 안주고 왜 저 말도 안되는 이상한 미신같은 짖을 해야하는가

그래서 안 쳐다보다가 죽었다 말이죠

 

이미 모든 인간은 불뱀에게 물린 갇혀있는 자요 포로된 자 이다는 겁니다.

구원 곧 여호와의 날은 인간을 구원해주는 날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구원하는 날이다 말이죠

 

다들 안 쳐다보는 이유가 뭘까요

이미 인간에게 주인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어 하나님과 같이 되다 보니

저런 시시콜콜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수가 없는 겁니다.

 

자신이 심판 받아 마땅한 자라고 여길까요 아니면

도리어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감사하다고 저 세리의 죄악을 심판할수 있는 그런

시선의 눈을 가졌다고 자부할까요?

 

아무도 자신이 심판 받아 마땅한 자라고 안 여깁니다.

항상 심판은 저 바벨론이 받을꺼다 생각하고 있다 말이죠

 

즉 이 심판을 제대로 볼 줄 모른다면 역시나 심판 받아 마땅한 자이다는 겁니다.

심판을 애굽을 심판한 그 기준대로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 기준입니다.

즉 우리는 뭘 해도 죄인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니까 바벨론은 당연히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심판의 기준을 그렇게 보면 역시나 이스라엘 또한 심판받아 멸망하는 겁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게 되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아서 심판받아서 그렇게 된거다 라고

저쪽은 악

반대로 자신은 심판받지 않았으니까 자신의 선

의롭다고 본다는 그 시선이

바로 심판에 대해서 엉터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심판의 기준은 멸망당하는 바벨론도 그리고 애굽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 말이죠

 

마치 아브라함이 의인 105명 점점 줄어들면서 심지어 자신도 의인이 아니라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봤을때에

심판에 대해 심판 받은 자가 되는 겁니다.

 

심판에 대해 심판 받은자가 바로 구원받은자 곧 아브라함이요

이스라엘 아닙니까 출애굽때에 말이죠

 

그런데 실로암망대무너진 사건을 통해서 심판받았다고 보는 그 시선을

그 다음 니차례로써 니가 그 다음 심판받는다고 하니

 

도대체 심판의 기준이 뭐냐 말이죠

 

감사든 심판이든 저주든 인간의 시간과 공간에서 오는게 아닙니다.

미래에서 심판의 기준이 온다 말이죠

 

안 그러면 다들 선악의 기준으로써 심판을 보게 된다 말이죠

은혜에서 심판의 기준이 옵니다.

바로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다 이루셨다에서 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도 의로운자가 없는 상태에서

도리어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서 이 십자가의 피 용서가 감사할 뿐이다 말이죠

 

회개 금식 기도 눈물 4종 세트를 드려도 안통합니다.

심판을 넘어갈수가 없어요

도리어 그런 4종 세트가 심판받았을때에

여디디야 라고 선물이 주어진다 말이죠

 

감사와 회개 곧 구원이 원인 없는 결과로 덮쳐져서

그 원인 없음에

곧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원망한, 10번 원망한(14) ,

이 증거를 증거궤에 담아서 언약하시는 겁니다. 약속하시는 겁니다.

세가지 물건 십계명 깨어진 두 돌판 즉 종교죠 마귀의 두 번째 시험(마태복음 기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즉 정치죠 니만 지도자 하나 나도 지도자 하자 세 번째 마귀시험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 즉 먹고 사는 경제문제 첫 번째 시험

 

이 세가지 원망을 예수님으로부터 잡혀야

이 포로된자 갇힌자 억눌린자를 해방시키는 희년 기쁜날 감사의 영을 받는 날이 된다 말이죠

즉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심판받아야 희년의 영이 주어진다 말이죠

 

이 성령이라는 기능에 부합되도록 하시고자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덮쳐지니까 미래에서 원인 없는 결과로 미래완료로 말이죠

그렇게 되니까 그 증상으로

죄인의 자리에서

심판의 자리에서

긍휼을 외치더라 말이죠

 

그런데 거꾸로 심판하는 자리 곧 바벨론이 몽둥이를 들었듯이

선악으로 판단하는 그 자리에서 보니까

 

심판을 엉터리로 보더라 말이죠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는 나무에 달리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인데 구주가 되는가에 대해서

 

나중에 알고보니 자신들의 죄악을 대신해서 못 박힌 십자가의 사랑인줄도 모르고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길로 가는 자 로써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뒤짚어 씌우신 하나님의 화목제물이였다는

너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였다는 겁니다.

그 사랑을 완전히 정반대로 생각했더라 말이죠

 

왜 의에 대해 죄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성령을 받지 않으니까 거꾸로 생각했더라 말이죠

 

그러니 오히려 이 심판 속에서 구원을 봄으로써

바벨론 심판이 그리고 계속해서 그 뒤에 나오는 이방민족의 심판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의 증상으로써 나타나는데

다들 우상 곧 자기를 위한 자기 배를 위한 그 모습들이

선악을 쥐고서 남을 멸망시키면서 그런 선악의 능력으로 쌓아올린 것들이 다 무너지더라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심판 속에 이스라엘 또한 멸망을 받는 이유는

여전히 선악을 기준으로 해서 보고 있지

십자가의 피 용서로

자신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안 보더라 말이죠

 

죄인이 되면 심판받는데 누가 죄인으로 여기겠냐 말이죠

그런데 이사야 6장에 보세요

하나님의 영광인 그 거룩 앞에서

아무리 깨끗하다고 우겨도 그 앞에서는 더럽기 짝이 없더라 말이죠

그러니 남이 심판받는 것을 보고 좋아라 할 입장이 못된다 말이죠

오히려 그 심판을 통해서 주님의 구원을 보는 겁니다.

나를 구원 인간을 구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그 구원을 보는게 아니라

 

순 엉터리로 심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그 기준을 책망하고 심판하는

제대로 된 심판이 있다는 것을

그 제대로 된 심판을 다들 무시하고 저 마다 가지고 있는 심판성을 깨뜨리는

구원을 구원하는

제대로 된 심판을 구원하는 이 여호와의 날을 기뻐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 용서를 제대로 쳐다보는 자입니다.

 

한 쪽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심판의 주를 제대로 봤고

 

다른 한 쪽 강도는 그 죽음 속에서도 주의 인애와 자비를 쳐다보지를 않는 겁니다.

여전히 선악으로 판단하니까 예수의 죽음은 심판받아 마땅한 죽음이라고 보고 있기에

 

어떻게 죽는 자 앞에서 심판받는자 앞에서 살려달라고 할 수 있겠냐 말이죠

 

그런데 한 쪽 강도는 외친다 말이죠

이미 감사와 회개와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덮쳐졌기에

당신만이 나를 제대로 심판하실 심판주입니다 라고

이 심판의 주를 구원하는 구원을 찬양하더라 말이죠

 

이 말도 안되는 한 쪽 강도가 구원받는 겁니다.

아마 모든 종교 모든 인간윤리와 도덕은 아마 반대하고자 발악할 겁니다.

이런 구원은 이런 부끄러운 구원은 싫다고

기여이 정당한 구원을 하라고 데모할꺼다 말이죠

 

결국 심판에 대해서 모르니까

의도

죄도

다 엉터리로 생각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선악의 기준의 죄 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다 못 박아서 깨뜨렸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피 용서로만 가는

당신의 나라이다는 겁니다.

 

이 당신의 나라가 바로 바벨론도 앗수르도 모든 국가들이 다 멸망당하는 겁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바로 십자가의 피 용서 거부입니다.

마귀는 이것에 반발하고자 몽둥이를 쥐고서 행패부리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못 믿도록 힘과 권력으로써 말이죠.

애굽이 그랬듯이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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