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사 43: 1-28)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새 일(예수님만의 숙제)


(사 43:1, 개역)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개역)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개역)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사 43:4, 개역)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 43:5, 개역)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사 43:6, 개역)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사 43:7, 개역)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8, 개역)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 43:9, 개역)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사 43:10,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사 43:11, 개역)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 43:12, 개역)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43:13, 개역)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사 43:14, 개역)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사 43:15, 개역)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사 43:16, 개역)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사 43:17, 개역)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43:18, 개역)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 43:19, 개역)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20, 개역)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21, 개역)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2, 개역)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사 43:23, 개역)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사 43:24, 개역)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사 43:25, 개역)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6, 개역)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사 43:27, 개역)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역하였나니』

(사 43:28, 개역)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욕을 보게 하며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


(사 43:1, 새번역)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사 43:2, 새번역)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사 43:3, 새번역)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내주어 너를 구속하겠고, 너를 구속하려고, 너 대신에 에티오피아와 쓰바를 내주겠다.』

(사 43:4, 새번역)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너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내주고, 너의 생명을 대신하여 다른 민족들을 내주겠다.』

(사 43:5, 새번역)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동쪽에서 너의 자손을 오게 하며, 서쪽에서 너희를 모으겠다.』

(사 43:6, 새번역) 『북쪽에다가 이르기를 '그들을 놓아 보내어라' 하고, 남쪽에다가도 '그들을 붙들어 두지 말아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부터 오게 하고,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부터 오게 하여라.』

(사 43:7, 새번역) 『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사 43:8, 새번역) 『백성을 법정으로 데리고 나오너라. 눈이 있어도 눈이 먼 자요, 귀가 있어도 귀가 먹은 자다!』

(사 43:9, 새번역) 『모든 열방과, 뭇 민족도 함께 재판정으로 나오너라. 그들의 신들 가운데서 어느 신이 미래를 예고할 수 있느냐? 그들 가운데서 누가 이제 곧 일어날 일을 예고할 수 있느냐? 그 신들이 증인들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옳음을 증언하게 하고,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게 하여서, 듣는 사람들마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게 하여 보아라.』

(사 43:10,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며, 내가 택한 나의 종이다. 이렇게 한 것은, 너희가 나를 알고 믿게 하려는 것이고, 오직 나만이 하나님임을 깨달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지음을 받은 신이 있을 수 없고, 나 이후에도 있을 수 없다.』

(사 43:11, 새번역) 『나 곧 내가 주이니, 나 말고는 어떤 구원자도 없다.』

(사 43:12, 새번역) 『바로 내가 승리를 예고하였고, 너희를 구원하였고, 구원을 선언하였다. 이방의 어떤 신도 이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 일에 있어서는 너희가 나의 증인이다. 내가 하나님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 43:13, 새번역) 『"태초부터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 내가 장악하고 있는데, 빠져 나갈 자가 누구냐? 내가 하는 일을, 누가 감히 돌이킬 수 있겠느냐?"』

(사 43:14, 새번역) 『너희들의 속량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에 군대를 보내어 그 도성을 치고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성문 빗장을 다 부수어 버릴 터이니, ㉠바빌로니아 사람의 아우성이 통곡으로 바뀔 것이다. / ㉠또는 '갈대아'』

(사 43:15, 새번역) 『나는 주, 너희의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다.』

(사 43:16, 새번역) 『내가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냈다.』

(사 43:17, 새번역) 『내가 병거와 말과 병력과 용사들을 모두 이끌어 내어 쓰러뜨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마치 꺼져 가는 등잔 심지같이 꺼버렸다. 나 주가 말한다.』

(사 43:18, 새번역)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사 43:19, 새번역)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사 43:20, 새번역)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사 43:21, 새번역)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사 43:22, 새번역)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오히려 나에게 싫증을 느낀다.』

(사 43:23, 새번역) 『너는 나에게 양의 번제물을 가져 오지 않았고, 제물을 바쳐서 나를 높이지도 않았다. 내가 예물 때문에 너를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고, 유향 때문에 너를 괴롭게 하지도 않았다.』

(사 43:24, 새번역) 『너는 나에게 바칠 향도 사지 않았으며, 제물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너는 너의 죄로 나를 수고롭게 하였으며,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

(사 43:25,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네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너 때문이 아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내가 더 이상 너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사 43:26, 새번역) 『나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함께 판가름을 하여 보자. 네가 옳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하여 보여라.』

(사 43:27, 새번역) 『너의 첫 조상부터 나에게 죄를 지었고, 너의 지도자들도 나를 반역하였다.』

(사 43:28, 새번역) 『그래서 내가 성소의 지도자들을 속되게 하였으며, 야곱이 ㉡진멸을 받게 버려 두었고,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버려 두었다." / ㉡'진멸'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렘은 진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물건이나 짐승이나 사람을 일컬음. 사람이 가질 수 없음』


(고후 6:18, 새번역) 『㉧"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 ㉧삼하 7:14(칠십인역); 렘 31:9; 사 43:6; 삼하 7:8』

(벧전 2:9, 새번역)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 ㉣사 43:20; 출 19:5-6; 사 43:21』



새 일이 뭘까요?

바로 기존의 일과 반대되는 일입니다.

마치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반대되듯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그 차이를 드러내듯이

새 일은 기존의 일과 차이성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사 43:15, 개역)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사 43:16, 개역)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사 43:17, 개역)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 43:18, 개역)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라고 하십니다.

왜?

여호와는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까 말이죠


자 여기서 문제는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그렇게 안 봤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일을 기억하고 있고 옛적의 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일이 뭡니까?

새 일이 뭐냐고 물었는데 다시 질문이 기존의 일, 이전의 일이 뭐냐 라고

질문이 더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기존의 일은 바로 새 일의 전의 일입니다.

바로

나 여호와는 너희의 거룩한 자이다 라고 여호와가 나타나기 전의 일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하기 전의 일

여호와가 왕이 되기 전의 일이다 말이죠

즉 기존의 왕이 여호와가 나타나기 전의 기존의 왕으로써 기존의 일이고

옛적의 일 곧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하기 전의 일인

마치 섬처럼 개성이 있고 저마다의 언어와 문화와 각종 음식 등등이 있었던 때의 일이다 말이죠

음식도 알고보면 정치에서 만들어내거든요. 잉여이니까 말이죠

관계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와의 관계 이전의 상태가 이전의 일 옛일이고

새 일은 여호와와 비로소 관계 맺게 되는

관계보다 더 나은 관계가 바로 새 일과의 관계 속에 놓여진 것을

새 일이다 말이죠


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과의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

새 일이라고 결과적으로 먼저 답을 미리 말씀드려 봅니다.


이 일을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바로 뒤의 글 제목에


남겨진 아이와의 관계 속에 놓여지는 것을

시온산에서 나오는 율법과의 관계 속에 놓여진다고 이사야 8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 8:18, 개역)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기 때문에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완성케 하고자 왔다는 거죠


누가? 새 일을 다 이루실 분

글쎄 그게 누구인데?

바로 이사야와 그의 아이돌 바로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헬살랄하스바스 이다 말이죠

아니 아이 셋이 왜? 새 일과 무슨상관인데?


이 아이 셋이 바로 기존의 일을 기억치 않게 하고 생각나지 않게 하는 아이이다 말이죠

왜?

바로 우상을 파괴하고 우상문제를 해결하는

수치를 제거하는 일인 여호와의 거룩한 의의 전쟁을 펼치는 자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온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뜨인돌이

시온산에 있는 모든 산당을 뜨인돌이 나와서 다 평탄케 한다 말이죠


그러니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온게 아니라
(안식일만 골라서 안식의 주인이 병을 고치니까 안식일 지키는 자들이 반발해 폐하려고 하느냐 라고 따진다 말이죠
그러나 안식의 주인은 죽은자를 살리는 의를 펼치심으로써 옳다함을 얻더라 말이죠)

아이를 전쟁에 안보내는게 아니라 

(이삭을 바쳐서 죽은 아브라함을 살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펼치더라 말이죠)


오히려 아이들만으로 전쟁을 이기게끔 하겠다는 겁니다.
그냥 아이가 아닌 처녀가 낳은 아이
육의 단절으로써의 아이 말이죠

꼬추 짤린 할례전쟁으로써만 이 우상파괴라는 새 일을 성사 시키겠다는 겁니다.


에이 불뱀에게 물렸는데 불뱀쳐다보라고 하면 되겠냐

나는 안 쳐다볼란다 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하지 않겠노라

요나의 표적을 구하지 않겠노라 라고 하지만


실상은 이미 이전의 것, 옛 일이 가득있기 때문에 구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평상시 습관대로 우상을 구하기 때문에 편한 쪽을 구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도저히 이길수 없는 골리앗을 투입시켰다 말이죠

우상문제를 인간 쪽에서 해결할수 없도록 하시겠다고

골리앗을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마치 노략자들 아람 앗수르 등등 주변의 강대국 이방국 다 동원하십니다.)


이 우상을 유일하게 이길수 있는 새 일은

오로지 아이 곧 젖먹이를 투입시켜서 우상을 제거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방해를 하는고 하니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곧 우상숭배자입니다.

이스라엘 본인들이 이 처음자리를 무시하는 겁니다.

주님의 창조를 무시하더라 말이죠

선악으로 창조한게 아니라 은혜로 아무 값없이

오로지 믿음으로 창조한 것을

이스라엘 본인들이 안 믿는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애굽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렸기에

우상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렸기에

행함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렸기에


이 어린아이를 내세우는 새 일 곧 하나님의 일을 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하지 않고

요나의 표적을 구하지 않고

사람의 일 기존의 일 옛일 이전 것의 일을 행함을 평상시에 구하고 있기 때문에

구하지 않겠다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보겠다고 합니다.


불뱀에게 물렸는데 구리놋뱀을 쳐다보라니 말이 되냐 말이죠


마귀를 물리칠려면 마귀를 때려잡는 선한 일, 의로운 일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이것이 선악이라는 우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골리앗을 물리칠려면 골리앗 보다 더 큰 능력을 그래서 선함으로 물리치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 선함이 바로 선함을 찾고자 하는 이스라엘이 무시하는 어린아이 라는 무능력한 선함으로 물리치겠다 말이죠


에이 그게 무슨 선함이냐 말이죠?


진짜 선함이라면 무능력으로 와야

반드시 이렇게 이스라엘이 무시한 그 죄악이 담겨져서

역시나 골리앗 우상처럼 어린아이를 골리앗만 무시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도 같이 무시하는 이 죄악을 담아서

같이 이 우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이 십자가를 거리끼는 걸림돌로 여기는 겁니다.


아니 나는 저 원수 골리앗과 다른데

왜 같은 원수 취급해서

우상숭배자가 아닌데 우상숭배자 취급해서

왜 같이 심판 하느냐


이 심판성이 바로 율법이거든요

의로운 율법 

거룩한 율법

율법의 완성인 사랑 말이죠


이 율법이 글쎄 시온에서 나옴으로써

모든 산당 곧 우상숭배라는 이전 것을 다 지나가게

처음것은 다 깨드리시겠다는 이 새 일을

어린아이를 통해서 우상파괴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 우상문제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우상이 없다 말이죠


여기에 주여 제가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라고

죄인 곧 우상숭배자입니다 라고


이 심판의 주

제대로 된 완벽하게 율법의 완성자 앞에서 비로소 심판 받아 마땅한

타 죽어 마땅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심지어 거룩한 천사마저도 여섯날개로 온 몸을 가리면서 타 죽을까봐 말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찬양하더라 말이죠 


(사 6:2, 개역)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 6:3, 개역)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동시성을


이스라엘이 새 일로 새롭게 창조당함으로써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죽음 곧 화로다와 동시에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가 옳았다고 찬양하는


이 두 모습을 동시에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의 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의가 거짓인 이유는

마치 오늘날 성화론자들이 의를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짓인 이유는

그들이야 말로 바리새인처럼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수치를 가릴려고 해요

선악으로 말이죠


어린양의 피로 가리는게 아니라 말이죠

그들은 짜증을 내면서 십자가 고만캐라 이제는 부활이다 라고

이 심판성을 무시한다 말이죠


곧 율법과 선지자를 무시해요

폐할려고 해요

자기들이 폐할려고 해놓고서 안식일 어긴다고 예수님에게 뒤짚어 씌운다 말이죠

폐하기는커녕 완벽하게 한다 말이죠 일점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한다 말이죠
즉 나 와 (이사야 죠) 나 이사야에게 여호와께서 주신 자녀들 곧 아이들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헬살랄하스바스 가 시온산에 계신 여호와로 말미암은
바로 뜨인돌로써 우상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율법과 선지자 이다 말이죠 폐하기는 커녕 완벽하게 이룰수 밖에 없는 이미 이룬채로 나타나는 겁니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니까 말이죠


(사 8:18, 개역)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그래서 불의함에 충성해요

불의한 재물에 충성해요

성화론자들이 때려죽어도 못하는 일 곧 새 일에 충성한다 말이죠


완전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말이죠


쪽팔려서 성화한다는 둥

어린아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장성한 자가 되는 수준 높은 성화론을 추구한다는 둥

알고보니 다 우상숭배자였다는 겁니다.


진짜 장성한 자라면 딱딱한 음식을 먹여야 한다 말이죠

그게 뭡니까? 고난의 잔 아니냐 말이죠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내어준 바 아니냐 말이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말이죠


그런데 장성한 자라고 어린아이 일을 버렸다고 해놓고서는

자기가 더 어린아이 짖만 골라서 하더라 말이죠

애굽으로 수치를 가릴려고 말이죠


(고전 13:11, 개역)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장성하다고 우기는 본인이 어린아이 같은 성도를 섬기는게 아니라

도리어 어린아이로 취급해서 교인들로부터 대접을 받는 장성한 자라고 우기니

바리새인처럼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 어린아이처럼 같지 않아 장성한 자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다 이래요 글쎄


이전 것은 지나갔다 말이죠

처음 것은 다 지나갔다 말이죠


보라 새 일을 나타내셨다 말이죠


그 새 일이 먼저 떳이게

불뱀에게 물리게 하듯이


광야에 집어넣습니다.

죽음 속에 집어 넣어요


곧 완벽한 심판입니다.


자 이렇게 되니 광야에서 불평불만 원망이 안나오고는 못 배깁니다.

나는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던 그 장담이

3초도 되지 않아 다 작심3초가 되어서

다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됩니다.


모조리 불뱀에게 물렸으니 말이죠


이것이 새 일 입니다.

이미 새 일이 떳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말이죠


여기서 낙망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과부의 기도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있는 겁니다.

낙망할게 아니라

원래 우리는 우상숭배자였고 이 원수인 우상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찾아가는 겁니다.


왜 정결한 재판관이 아니냐

왜 구름타고 오시는 메시야에게 가는게 아니라

짐승구유 밥통에서 태어난

무능한 어린아이로 오신

나사렛(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는

이 나사렛 이름에게 원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에게 해결해 달라고

세상 죄 안 지고가는 깨끗한 양에게 해결해 달라는게 아니라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아이에게 임마누엘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의 죄악에 담겨져야

씻음을 받을꺼 아니냐 말이죠


자기 죄악이 안 담겨지는데

언약궤 법궤 증거궤에

담겨지지가 않는데 


어떻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라고 지나가는 이전의 것이 있겠냐 말이죠

새 일을 어떻게 보겠냐 말이죠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수가 있겠냐 말이죠


나만 홀로 남았다고 우기는 이 우상성이 들통나야


칠천명이나 남겨놨다 라는 이 새 일을 볼꺼 아니겠냐 말이죠


이 칠이 바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곧 완벽한 심판이자 완벽한 거룩인 피 용서다 말이죠

심판인데 구원이래요 글쎄

둘 다 모순이 되는데 이 모순 되는 것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것이

새 일 곧 성령의 일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육의 일

사람의 일인 우상숭배 곧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과 한세트로 구성이 되어서

그 차이서로써 증거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악한 세대인 바리새인이 구하는 표적에서는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십자가라는 부조리 스캔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여자 라는 부정한 여자 ~~~ 에게서 족보가

나올 떡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부정하고 악한데?

더럽기 짝이 없는데

포도주를 즐기는 술꾼이며

먹기를 탐하는 대식가 이며

강도와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데??


이 요나의 표적을 구할수 있겠냐 말이죠


자기 목숨을 죄인을 위해서 내어줄수가 있겠냐 말이죠


의인을 위해서 내어주면 다들 납득이 되는데

왜 죄인을 위해서 내어주냐 말이죠

왜 우상숭배자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주냐 말이죠


우상 숭배자가 아니다고 하는 자는 이 십자가가 영광일 리가 없지요

여전히 율법을 지키는데 몰두 할 겁니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러나 우상숭배자라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심지어 개같은 이방인으로써 맞습니다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잖습니까 라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찾은바 된)
이 십자가가 무한 영광이다 말이죠


단번에 제사를 다 드렸기에 말이죠

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은

곧 하나님의 미련함이 상대적인 헬라인의 지혜와 한 세트를 (십자가와 천재)

또 하나님의 약한 것(임마누엘, 어린아이 젖먹이)인 무능하고 부정한 십자가가


유대인들의 강함을 쫏는 애굽으로 수치를 가린바 보다 더 미쁘실 정도로

모든 허물을 다 덮고도 남는다 말이죠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개역)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개역)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성화론자들의 의로움은 자기도 못 구원 시킬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남을 위해서 그렇게 어렵게 힘들게 쌓고 쌓은 공든탑으로써의 성화 의 거룩을

남에게 아낌없이 아무 조건 없이 생판 모르는 자

그것도 죄인에게 아낌없이 내어줄수 있겠냐 말이죠


죽은자를 살릴수 있는 의 로움이 되겠냐 말이죠

못 살려낼꺼면 의가 아닌데

왜 그 가짜 의를 쌓는데 목숨을 걸면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못하냐 말이죠


인간 쪽에서 안 되기에

새 일이 떳기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떳기에


처녀가 낳은 아이 임마누엘이 떳기에


광야 속에

죽음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래서 평평하게 다림질 한다 말이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나타나서

곧 시온에서 뜨인돌이 나타나서

모든 우상을 부수는 겁니다.


이것이 새 일

광야 속에서 꽃길을 내며

사막 속에서 생명수를 넘치게 하는


죽음이라는 사망을 멸하는 의를 펼치신다 말이죠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의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 말이죠


(계 21:4, 개역)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무엇이 떳기에?

임마누엘이 떳기에

새 일이 떳기에

새 일이 먼저 뜨고 그 증상으로써 불뱀에게 물려 원망케 되어

그 죄악 세가지를 증거궤에 담아서 그 법궤 뚜껑 덮어서

어린양의 피를 뿌려 다시는 허물치 않겠다는 

이 새 일

새 창조

새 이스라엘 창조 말이죠


그러니 세 번 부인할 수밖에 없도록 하시듯이

사실은 이상한게 아닌데

새 일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모순처럼 느껴지듯이

새 일 이라고 해 놓고서는 마지막에


(사 43:22, 공동) 『야곱아, 너는 나를 찾지 않았다.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정성을 쏟지 않았다.』

(사 43:23, 공동) 『너는 양을 번제로 바치지도 않았고 제물을 드려 나를 섬기지도 않았다. 내가 언제 너에게 봉헌물을 바치라고 성화를 대었느냐? 향을 피우라고 괴롭혔느냐?』

(사 43:24, 공동) 『너는 갈대향을 바치는 데 돈쓰는 것을 아까워하였고 제물의 기름기를 흡족히 바칠 생각도 없었다. 도리어 너는 죄를 지어 나의 화를 돋우었고 불의를 저질러 나의 속을 썩였다.』

(사 43:25, 공동) 『네 죄악을 씻어 내 위신을 세워야겠다. 이 일을 나밖에 누가 하겠느냐?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버리리라.』

(사 43:26, 공동) 『네 속을 내 앞에 털어놓아라. 함께 시비를 가려보자. 너로서 억울한 점이 있거든 해명해 보아라.』

(사 43:27, 공동) 『너의 시조부터 죄를 지었고 너를 변호할 자들마저 나를 반역하였으며,』

(사 43:28, 공동) 『너의 지도자들조차 내 성소를 더럽혔다. 그래서 나는 판결을 내렸다. '야곱을 전멸시켜라. 이스라엘에게 욕을 돌려라.'"』

(고후 6:18, 공동) 『㉠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 ㉠2사무 7:8, 14: 이사 43:6; 예레 31:9.』

(벧전 2:9, 공동)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 ㉠신명 7:6, 10:15; 이사 43:20. ㉡출애 19:5-6; 이사 61:6.』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겠다고 하십니다.

아니 앞 뒤가 안 맞잖아요

이사야 43장 너는 내것이라 라고 사람들이 엄청 외우는 부분이거든요

그 만큼 보고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즉 종교성에 우상성에 딱 맞게

이 부분이 얼마나 많이들 외워지고 심지어 가스펠송까지 엄청나게 만들어지는 부분이다 말이죠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아무도 안 외워요


그래 그래 좋은게 많네 많아 라고 막 외워놓구서는

전체 다 외우는게 아니라

진짜 알맹이는 쏙 빼놓고서는

겉껍데기는 다 외우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무슨 소리인줄 모르고서 외우더라 말이죠


(사 43:1, 개역)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얼마나 달달 외우냐 말이죠


이사야 41장에도 있어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사 41:10, 개역)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이사야 41장을 얼마나 불의하게요 ~~ 라고 제목을 달고서

변론하자 해놓고서는 입을 다 막더라 말이죠

말해 보라 라고 해 놓고서는 입을 막아 잠잠케 하면 이게 무슨 변론 입니까


우상성이란 바다에 무인도 섬처럼 각자 고유한 개성 각기 저마다의 문화

저마다의 음식 언어 생활방식 등등이

이 변론자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오로지 죄인으로서만

잃어버린 자로써만 놓여짐으로써

변론자는 이 잃어버린 자를 되찾는 기능인


환자만 찾는 의사

죄인만 찾는 구원자

탕자만 찾는 아버지

처음자리인 이스라엘 잃어버린자만 찾는 보내심을 받은 자 예수님이 바로 변론자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변론자가 떳다는 이유로

우리는 모조리 다 잃어버린 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한 때 두때 반때 라는 고난을 곧 잃어버림을 당하는 거죠

왜? 변론자가 떳기에

되찾는 자가 있기에

잃어버림 당해도 상관 없거든요


죄인 만들기입니다


어디서?


광야에서

그래서 도장 도장끈 지팡이를 확보하는 다말처럼

깨어진 십계명 두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 라는

하나님을 원망한 대표적 세가지 물건을 증거궤에 담아서

드디어 변론 하시는 겁니다.


너 죄인 맞제?

너 우상숭배자 맞제?

너 애굽으로 너의 수치를 가릴려고 했는거 맞제?

라고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를 잡듯이


증거궤에 곧 예수님의 몸 박스에 무엇을 저당 잡히는고 하니

너 십계명 깨어진 두돌판 증거로 너 금송아지 섬긴거 맞제? 네 맞습니다.

너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선지자 모세가 지도자 되는 것 거부한 것 맞제? 네 맞습니다.

너 만나를 담은 항아리 증거물로써 너 애굽의 양식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거부한 것 맞제? 네 맞습니다.
생명 보다 소유의 넉넉함이 더 중요하다고

그때 그때 주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그 답답함에 못견뎠제?

물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서 의를 바라지 않았제? 네네 맞습니다.


이것을 증거궤에 담아서 다시는 이 전 것을 기억치 않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생각지 않겠다고 말이죠


이것이 변론하자 라는 의미입니다.

구체적 보편적 진리이다 말이죠

처음부터 수긍해서 진리를 아는게 아니라

분명히 반발했는데 그 반발이 당신은 틀렸다 라고 틀렸다고 반발했는데

틀린 것이 오히려 맞았고 반발한 자신은 옳았다고 봤는데

본인이 결국 스스로 틀렸다 라고 시인케 만드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부정의 부정으로써


새 일을 행하겠다는 겁니다.


분명 포도주를 즐기고

먹기를 탐하고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인데

그것도 금식하고 있는 자들 바로 코 앞에서

아주 아주 불의한 모습 막사는 모습이 말이죠

본인들도 불의하다고 어떻게 금식하는자 옆에서 포도주 술 쳐먹고

개걸스럽게 탐식하고 죄인의 친구로써 행동하느냐 말이죠


그런데 지혜는 그 행한 일 곧 이 새 일

포도주 쳐먹고 먹기를 탐하고 죄인의 친구가 되는 이 새 일로 인해

의롭다 여김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그 불의한 일이 의롭다 라고 여김을 받도록 되어 있다면

바로 옆에서 정결하다고 금식하고 옳은 일 했다고 여겨지는 이 일이

도리어 더러운 일이 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결과이다 말이죠


안식일날만 골라서 제자들에게 밀까먹고

손마른자를 안식일 지키는 자 코 앞에서 손마른자를 고치신다면


이것이 희년이요 이것이 의 거룩이다면


안식일 지키는 것이 옳은게 아니라 더러운 일이였다고 시인하지 않는 이상

회개하지 않는 이상

이 안식의 주인이 하신 행동이 도리어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어

서로의 소욕을 방해하는 대립의 자리에 놓여지게 된다 말이죠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변론자 앞에서도 과연 건강한 자 인냥

의인 인 자 인냥

변론자 앞에서 까지 가지고 간다면


이 변론자의 변론 곧 의로운 오른손이 필요가 없게 된다 말이죠


의로운 오른손이 필요한 자는

안식일을 도저히 지킬수 없는 부정한 손마른자

날때부터 소경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한 탕자

세리 매국노

죄인 강도


이들이 이스라엘의 처음자리로써 새롭게 창조되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는


인간의 믿음으로 다가간게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 곧 변론자에게서 새롭게 창조되는


죽었다가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인간이 천국을 믿고자 함이 아니라

천국이 자기 백성을 찾는 방식이 되더라 말이죠

그것도 집주인을 결박하고서 


빼앗은 자로써 말이죠

되찾은 자로써

죽었다가 다시 삼일만에 살아난 자로써


맏아들이 이것을 거부한 겁니다.

너의 동생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 않았니???


즉 아버지의 의로움을 의로운 오른팔을 거부했다 말이죠 

아버지의 변론을 말이죠


때리는 시어머니 탕자가 미웠었는데 이제 더 이상 탕자가 안 밉고

말리는 시누이 예수님가 더 미워서

맏아들은 이 변론, 이 새 일을 새롭게 거부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창조 안되던가요?

맏이 이스라엘 지만 손해예요

둘째 이방인이 돌아온 것을 거부하니까 이 이방인이 이스라엘 되는 것에 거부한다 말이죠

첫피조물 천사였던 마귀가 똑같이 반발하는 방식이다 말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마귀를 겨냥한 새 일입니다.

마귀만이 반발하는데

왜 마귀와 같이 한 패가 되어 반발 하느냐 말이죠


오죽 새 일이였으면

마귀는 내가 모르고 또 원치 않는 일인 새 일을 왜 하냐 라고 반발하듯이

육적인 이스라엘은 다 반발하는데

오히려 저들말처럼 개같은 이방인이 도리어 새이스라엘로써 창조가 되어


새 일을 행하시고 이루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으니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주님의 뜻이

이방인에게서 나타나 새 일을 찬양하더라 말이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너는 내것이라 말이죠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분명 앞의 글들 속에서 [누구든지] 라는 의미를 썻는데

아 찾았네요


[

(욜 2:32, 새번역)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호소하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안에는 피하여 살아 남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이 살아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롬 10:13, 새번역)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욜 2:32』

 

자녀가 우상제거와 반드시 맞물리도록 되어 있구나 말이죠


]


마할살랄하스바스 글에서 언급했네요


주의 자녀는 반드시 우상과 연관된 입장에서 구원된 거다 말이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말이죠

즉 이스라엘 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자로써 우상숭배자이니 건져주세요 라고

의사를 부르는 환자

구원자를 부르는 죄인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우상숭배자가 아니다 봐라 성화 된 것 모으고

의로운 것 모으고

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모은

막살지 않았다는 것을 모았다면

과연 우상숭배자가 아닐까요?


오히려 더더욱 우상숭배자 맞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더라 말이죠

왜?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거든요

변론자를 부르지 않아요

의사도 안 부르고요


뭐가 다급하겠습니까?


과부는 얼마나 다급했으면 원수 문제로 귀찮게 귀찮게 하는데

저런 천박스러운 짖을 안하겠다고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영국의 권위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아~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예요

천한것들...

불태워버려.

나가있어~!!

어디서 눈을 부라려!

천박해! 천박해! 천박해!

불결해! 불결해! 불결해!

앉아있어~!

썰렁해! 썰렁해! 썰렁해!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이런 불결한 것들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자칭 아브라함 자손 이라고 우기는 자들에게

무슨 놈의 의사가 필요하겠으며

무슨 놈의 변론자가 필요하겠냐 말이죠


만약 필요케 된다면 아브라함 자손이 아니라

똥물에 7번 담구어도 시원찮을 죄인 중의 괴수의 자리에 놓여져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도리어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정죄하기 바쁜데 어떻게

변론자와 변론할수 있겠냐 말이죠


관계망 자체가 저거들끼리 이미 형성이 되어 있어요

어떻게? 막살지 않는 자들의 모임 이라고 경계선을 이미 쳤어요

그래서 막살지 않은 자 외, 관계자 외 출입금지 라고 말이죠


이게 바로 섬과 같이 고립이 된 우상숭배자이들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다 이래요

개혁주의자들도 다 이래요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하는 자도 다 이렇구요

오늘날 교회 다니는 자 치고 안 그런 사람이 없어요

무신론자도 이런 판국이고

국가도 이렇구요

종교인들도 다 이렇구요

안 그런 자가 없는

모든 인간이 다 우상숭배자 이다는 겁니다.


이거 깨뜨리고자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으로써

뜨인돌로써 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시는 이 새 일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이 일에 이스라엘이 정작 가장 기뻐해야 하는

새 일에 대한 새 노래를 부를자들이

오히려 가장 거리끼는 일로 여겨부려 ~~~

걸림돌로써 가장 껄끄럽게 여기더라 말이죠


즉 이스라엘 자신을 우상숭배자로 들통내는 이 새 일

곧 요나의 표적

십자가가 싫은 겁니다.


아무리 해도 영광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부정하다고 불의하다고

불경스럽다고 더럽다고 다들 고개를 돌려버림으로써


그 정도의 우상성을 도리어 내 뱉는

속내를 드러내는

우상숭배자 맞음을 스스로 자백하는 식의 누워서 침뱉기 식으로

십자가의 지헤에 말려들어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써 반드시 머릿돌이 되는

이 구체적 보편적 진리를

새 일을 다 이루시더라 말이죠


우와 우와 그야말로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분명히 내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런 살인자 원수인 나를 용서하는

너끈히 용서하고도 남는 이 십자가 라니 ~~~~


옳소이다 나 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노래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지혜는

십자가가 행하는 바 대로

옳다 함을 여김을 받더라 말이죠


이 진짜 의로움 앞에

우리의 되도않는 의문의 의로움 가짜 의를 손떼고서

진짜 의 앞에 무릎 꿇는

이 의 가 옳았음을 노래하는 자로 이미 벌써 만드셨음을 기뻐합시다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눅 7:35, 개역)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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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남겨둔 아이(징조=새 일=칠천=율법의 완성=뜨인돌(버린돌,머릿돌)가 시온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라 (사 8:18-22)



(롬 1:17, 개역)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왕상 19:18, 개역)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사 8:18, 개역)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사 8:18, 새번역) 『내가 여기에 있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나와 아이들은,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시는, 살아 있는 징조와 예표다.』

(히 2:13, 새번역) 『또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 8:17(칠십인역) ㉨사 8:18(칠십인역)』

(사 8:18, 공동) 『야훼께서 주신 이 아이들과 나야말로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야훼께서 이스라엘에 세워주신 징조와 표이다.』

(히 2:13, 공동) 『또 "㉠나는 그분을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고 또 다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이 나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이사 8:17(2사무 22:30 참조). ㉡칠십인역 이사 8:18.』

(사 8:18, 쉬운) 『보아라, 내가 여기에 있고,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아이들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표적이며 증거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내셨다.』

(사 8:18, 한글킹) 『보라, 나와 주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시온 산에 거하시는 만군의 주로부터 이스라엘에 표적들과 이적들이 되느니라.』

(사 8:18, 현대인)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을 보라! 우리는 시온산에 계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이 백성에게 보여 주는 표적과 상징이 되었다.』

(사 8:18, 현대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아들들과 나는 하늘의 모든 군대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무슨 계획을 세우셨는지 일려 주시는 상징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다.』



(사 8:16, 개역)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사 8:17, 개역)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사 8:18, 개역)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사 8:19, 개역)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사 8:20, 개역)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사 8:21, 개역)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사 8:22, 개역)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사 8:16, 새번역) 『나는 이 증언 문서를 밀봉하고, 이 가르침을 봉인해서, 나의 제자들이 읽지 못하게 하겠다.』

(사 8:17, 새번역) 『주님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다. 나는 주님을 의지하겠다.』

(사 8:18, 새번역) 『내가 여기에 있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나와 아이들은, 시온 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시는, 살아 있는 징조와 예표다.』

(사 8:19, 새번역)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속살거리며 중얼거리는 신접한 자와 무당에게 물어 보아라. 어느 백성이든지 자기들의 신들에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산 자의 문제에 교훈과 지시를 받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사 8:20, 새번역)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결코 동트는 것을 못 볼 것이다!』

(사 8:21, 새번역) 『그들은 괴로움과 굶주림으로 이 땅을 헤맬 것이다. 굶주리고 분노한 나머지, 위를 쳐다보며 왕과 신들을 저주할 것이다.』

(사 8:22, 새번역) 『그런 다음에 땅을 내려다 보겠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고통과 흑암, 무서운 절망뿐일 것이니, 마침내 그들은 짙은 흑암 속에 떨어져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롬 9:33, 새번역) 『그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보아라,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를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 ㉤사 8:14; 28:16(칠십인역) ㉥또는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히 2:13, 새번역) 『또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 8:17(칠십인역) ㉨사 8:18(칠십인역)』

(벧전 2:8, 새번역)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 ㉢사 8:14』

(벧전 3:14, 새번역)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 ㉢또는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사 8:12』



앞의 글 이사야 43장에서


새 일과 이전의 기억 옛 생각과 대조로써 그 차이로서의 새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온에서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이 아이와 이사야 선지자와

한세트를 구성하는 그 반대되는 대립물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그들이 믿는 구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접한 자와 무당을 이미 구하고 있기 떄문이다 말이죠

바로 우상숭배자입니다.

이들은 죽은자에게 교훈을 얻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잖아요

(고전 1장 십자가의 도의 한세트로써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구원을 얻은 주의 자녀는 십자가를 구함구하는 기도 내용이 다르다 말이죠)


(사 8:19, 새번역)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속살거리며 중얼거리는 신접한 자와 무당에게 물어 보아라. 어느 백성이든지 자기들의 신들에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산 자의 문제에 교훈과 지시를 받으려면, 죽은 자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헬라인이 지혜를 구하듯이

왜 죽은 과거의 사람들에게서

죽은자에게서 교훈을 구하는지를

십자가의 지혜와 한 세트로써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말이죠


그들 말이 맞아요 역사는 반복이 되니까

죽은 자에게서

과거의 사람에게서 교훈을 찾아야 해요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말이죠

그런데 구원을 얻은 주님의 자녀는 십자가의 도를 구하기 때문에


이전 것이 없어요

옛 일을 생각하지 않아요

자 그렇기 때문에


왜? 생각하지 않고, 왜? 기억하지 않느냐를 알기 위해서

이전 것이 뭔지

옛 일이 뭔지는 알아야 겠지요


왜? 저들은 역사는 반복이 된다고 우기는지?

그들이 바로 오늘날 유대인, 천재들, 박사들, 철학자들, 신학자들 아닙니까

역사는 반복 된다는 소리를 안하는 유대인이 없듯이


십자가의 도를 구하는 자는

역사가 반복이 된다고 안 봅니다.

모든 것이 새 일 밖에 없어요

미래완료 만을 누린다 말이죠

바로 주님의 용서만을 말이죠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듯이


점점점 사랑만 많아져요


이것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모습이거든요


점점점 사랑만 많아지는 사랑둥이

손가락 마디 마디 뽀뽀를 하면서

예수님의 새색시로써 신부로써 교회는

이 십자가의 사랑만나누기 바빠요


그러다 보니 반드시 부딧히는 충돌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자와의 대립으로써 나타난다 말이죠


우상숭배자는 방금 구절에서도 나타났듯이

죽은 자에게서 교훈을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로 역사 이다 말이죠


역사 자체가 이들의 교과서가 되는 거죠

그런데 묵시는 이 역사를 찢거든요

역사가 묵시를 담아내지를 못하기 때문에

새술은 새부대에

새 일은 새 이스라엘에 담도록 되어 있는데


인간은 자꾸 묵시를 구하지 않고

왜? 어리석고 미련하거든요

그리고 유대인들은 표적 기적 

이 기적 한방이면 끝나기에

제대로된 강함을 쫏는데

그러다 보니 애굽으로 자신의 약함을 가리더라 말이죠


십자가는 나 보다 너무 약해 빠져서

내가 도리어 도와줘야 할 판국으로 보이지

나의 허물을 도저히 가릴수 없어 보이더라 말이죠

그래서 다들 힘 능력 권력인 바로 기적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래서 애굽으로 자신의 수치를 제거할려고 하는데

제거는커녕 도리어 수치를 더욱더 심고 있더라 말이져

꼬추를 짤라야 하는데 오히려 더더욱 꼬추를 더 달고서

울리는 꽹과리 무기를 주렁 주렁 달고서 땡그랑 땡그랑 시끄럽게 소음을 내더라 말이죠


잠잠할 수가 없어요

입이 건지러워서 견딜수가 없어요십의 일조를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않고

지울 길이 없어요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가 더 화려하다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이전 것은 지나갔데요 글쎄 ㅋㅋㅋ

옛 일은 생각지 않겠데요 글쎄

나 너 모르겠는데 우짜지 ~~~~

너 누구였더라?


주님이 마치 저처럼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것 같아 ㅋㅋ

주님 저 아시죠

누구시죠? 처음보는 것 같은데~~~


이전의 것으로 새로운 새 일의 관계를 맺을수가 없어요

옛 일을 생각해서 새로운 새 일의 관계 곧 요나의 표적을 구할수 없어요

이전 것, 옛 일은 어디까지나 악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을 구하던 시대였다 말이죠


그것으로 새 부대에 넣을 수 없다 말이죠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목숨 보다 음식을 중히 여기고

몸 보다 의복을 중히 여기고

생명 보다 소유의 넉넉함을 중히 여기게 되는 것이


~~ 뭐 뭐 보다 중히 여겨서 구하던 그 옛일, 이전 의 것

곧 헬라인의 지혜도 유대인의 표적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자 구하고자 하는 짓은

마치 알맹이는 냅뚜고 껍데기를 여전히 갖추겠다는 심뽀인

목숨 몸 생명을 구하지 않는 모습이 바로 역사였다 말이죠

그런 역사를 반복해서 뭐하게요?

유대인의 의문의 반복과 같아요


유대인들이 말로는 성경말씀이 묵시이다 라고 우기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저들은 묵시를 구한게 아니라

역사를 구하고 있더라 말이죠


그 증거가 묵시에 나옵니다.


(마 23:30, 개역)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분명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잖아요 이 말이 묵시 답게 묵시로 봤는데

오히려 예수님은 그 말을 너희의 조상들이 똑같이 했다고

거봐 거봐 역사물인 그 조상의 그 자손이라고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고

너희도 똑같은 말을 너희 조상과 똑같이 하는구나 라고


묵시로 쳐 버리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시온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아이를 임마누엘을 구합니까 안구합니까

여전히 안 구하고서

버텨보겠다고 하더라 말이죠

징조를 안 구해요 요나의 표적을 안 구해요

안 구한다는 것은


그 나머지는 모조리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표적

곧 유대인은 표적을 구할 뿐이다는 겁니다.

십자가는 거리끼는 걸림돌인데 어떻게 구하겠냐 말이죠


이 말씀 자체가 

거봐 거봐 너희 조상들도 똑같이 말했어 라는 묵시가 걸림돌이 되니

이 거리끼는 걸림돌 뺄려고 할까요?

이 까시를 감사하게 여겨서

자신을 더더욱 약하게 만들까요? (약할때에 강함 되시는 묵시를 구할까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서는 이 약함이 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우상숭배자 맞잖아요


묵시가 떳다 아이가 떳다 임마누엘 곧 처녀가 낳은 아이가 떳다 라면

상대적인 우상이 그 한 세트를 이루는데


너희는 너희 조상처럼 선지자를 죽일꺼다 라고 하니까

안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때 있었으면 우리는 안그랬을 겁니다 라고 말한다는 자체가

여전히 역사에 기대를 걸고써

묵시를 안 쳐다 보니까

강한 공격에 자신을 강하게 방어를 하더라 말이죠

약하면 진다고 지면 안돼 라고 강하게 맞서더라 말이죠

이것이 세상의 지혜 아닙니까

세상의 지혜 맞네 맞어

마치 성전 안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인 바리새인이

나 약하지 않어 십의 일조를 낸 강한 자야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강한 자야! 건강한 자 맞다니깐!

저 세리 매국노처럼 토색 삥뜯는 저런 나쁜놈이 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 얼마나 의로운 자 아니고 뭐냐 라고

절대로 꿀리는 것 하나 없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는게 아니라 왜? 죽은자로써 말이죠

오히려 죽은 자의 하나님을 외치더라 말이죠


묵시를 구한다면

오히려 성전의 나머지 사람인 세리 매국노처럼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이 일곱이라는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 앞에서

백부당 만부당 마땅히 타 죽어 마땅한 자로써

무능한 자신을 그모습 그대로 내어놓더라 말이죠

요나의 표적을 구해요 글쎄

우상문제 내 손에서 해결 못합니다 주여 이거 해결해 주세요 라고

아이처럼 울부짖더라 라는 겁니다.


천국이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강한자 입니까?

우는자인 무능한 자 입니까?


(마 21:31, 개역)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23,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 21: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마 21:25, 개역)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마 21:26, 개역)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마 21:27, 개역)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1:28, 개역)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개역)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개역)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개역)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2, 개역)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왜? 창기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갈까요?

세례요한이라는 선지자의 외침을 구했다 말이죠

임마누엘 곧 처녀가 아이를 낳으리라 라는 징조를 구했듯이 구했다 말이죠


예상 밖이죠????


그럼 그 나머지는 임마누엘이라는 징조를 구하지 않았다는 말은

이미 그들에게 뭐가 있다?


마술사 점쟁이 같은 우상숭배자가 있는데 말라꼬 세례요한에게

그것도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를 말라꼬 구하겠냐 말이죠

이미 역사가 있는데

이 역사의 단절인 묵시를 말라꼬 구하겠냐 말이죠


이것을 이미 보고도


(마 21:32, 개역)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즉 때려 죽어도 못 믿는 이유는


믿었다가는

이미 우상숭배자들끼리의 관계망에서 벗어나는


생명보다 중한 소유의 넉넉함이라는 네트워크 관계망에서 쫏겨나는

목숨 보다 더 귀한 음식이라는 네트워크 관계망에서 그 경계선에 더 이상 못 들어가게 될까봐

몸 보다 더 귀한 의복이라는 네트워크 의식주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되는

그야 말로 죽은자와 마찬가지가 되는데

누가 요한의 외침을 따르겠냐 말이죠


요한이 와서 이렇게 죽은자처럼 굶으니까 미쳐서 귀신들렸다고 굶는다고 하고

인자는 와서 먹고 배부르게 마시니까 술꾼에 먹보에 매국노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더라 말이죠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역사물 경험물 시공간의 산물들은

묵시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다고 귀신들렸다고 하고

이제는 먹고 마시니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고 세리 죄인의 친구라고 하더라 말이죠


결국 역사는 묵시를 해석할 길이 없어요

왜? 이미 관계망을 짜 놓았거든요

우상으로 말이죠

자기를 위한 관계망 말이죠

자기 중심 말이죠


그런데 묵시의 관계망은 처녀가 낳은 아이 중심으로 관계망을 짯어요

그러다 보니 

이 아이의 기능은 딱 하나

우상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기능이다 말이죠

다른 것으로는 우상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요


이 아이를 구할려고 하니

사울왕처럼

골리앗에게 비웃음꺼리가 될까봐

구할 수가 없어요


골리앗 보다 더 센 놈

강한 놈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표적을 구해야 하는데


왜 자꾸 요나의 표적

무화과 나무 없어도 

~~ 없어도

자꾸 없는데 여호와로만 즐거워한다는 이 약속을 구할 수가 없어서


골리앗 앞에 놓여진

이 우상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굽이라는 우상으로써 수치를 제거하고 가릴려고 하더라 말이죠

골리앗 보다 강한 애굽을 구하더라 말이죠

우상을 구하고

역사를 구하고

소유의 넉넉함을 구하고

지혜와 슬기를 구하지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내시고 저들에게는 숨기시는 

이 의

이 새 일을

구하지 않더라 라는 겁니다.


옳소이다 맞네 맞어

그래 아무리 권능을 많이 베풀어도

저들에게는 감추었지 그러니까 못 구하지 맞네 맞어 옳소이다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내시고 저들에게 감추신 것 참으로 옳소이다


(마 11:20, 개역)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마 11:21, 개역)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2,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4,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 11:25,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개역)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왜 아이와 대조를 시키실까요?

감추었다고

봐도 못 본다 라고


이미 저들의 마음 속에 이미 경계선이 쳐져있는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빠져나올 생각조차도 안하고

구하지도 않더라 말이죠


아무리 아무리 권능을 베풀어도

간담이 녹거나 벌벌벌 떠는 기생라합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없기에


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하지 않는 겁니다.


임마누엘의 징조를 구할려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거든요


아이를 바쳐야 해요 누구처럼? 아브라함처럼


심지어 이것 마저도 우상숭배자처럼 바친 사람도 있어요

저도 주워 들은 이야기 인데

어떤 전도사가 자기 아들을 아브라함의 이삭 제물 흉내내겠다고 따라했다 말이죠

이것을 또 반대로 어떤 목사는 이 부분 때문에

인신제사로 여겨서 도저히 이 부분만은 못 믿겠다고 여겨서

성경에서 빼야하지 않겠냐 라는 심정을 밝히더라 말이죠

아마 제 기억으로는 폰라드 라는 신학자도 그랬지 싶은데


보통 거리끼는 걸림돌이 아닐수 없다 말이죠


따라하라는 말도 아닌데 지레 겁먹고 있고

저런 맹신자가 나타날까봐

목사들이 설교를 못하겠다고 이 부분은 빼고 싶다고 할 정도이다 말이죠


맞아요 역사는 묵시를 담을수 없어요

이 부분을 역사 속에 가지고 오게 되면

역사의 관계망이 다 찢어져서

요한처럼 귀신들린자 취급받고

예수님처럼 막사는 자 별명 세가지를 얻게 된다 말이죠

아무도 예수님 말씀 따르지 말라고

팔로워 하는 놈 다 이 관계망에서 쫏겨날줄 알아라 라고

세가지 별명을 붙여서 이 유대 땅에 발 못 붙이게 할꺼다 라고


경계선을 치더라 라는 겁니다.


아니 이 경계선을 쳐서 우상과의 관계성을 깨뜨리고자 하는데

모든 경계선을 허물겠다고 막힌 담을 헐겠다고 하는데


이 막힌 담이 허물이 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그런다고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는 묵시를 막을 길이 있겠냐 말이죠


기생라합처럼 거짓말을 하는 이 행함이 있는 믿음을 구할수 있겠냐 말이죠

이삭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구할수 있겠냐 말이죠

엘리야처럼 삼년반 동안 비오지 않기를 구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구할수 있겠냐 말이죠


이 모든 것이 바로 우상을 겨냥한 것 아니냐 말이죠

이미 우상숭배자이기에

우상이 무너질까봐 구하는 자가 없듯이


저 우상숭배자 맞습니다 맞고요 주여 저와 저의 가족

이 우상의 나라 우상의 신 우상의 민족에게서 건져주세요 라고

기생라합은 애굽이라는 초강대국이라는 가장 센 우상이 무너진 소식을 듣고

너무 너무 기뻐서 간담이 녹아 40년을 기다려도 여전히 간담이 녹듯이 하여

구원을 떨림으로 받았는데


그 정도로 우상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고대하고 고대하는

원수 문제를 해결해 주심을 구했는데


정작 이스라엘은 이 우상문제를 해결하기 싫어서 미적 미적

저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메뚜기 이다 라고


(민 13:33, 개역)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어란양의 피를 구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의 일로 구하더라 말이죠


젖먹이 전쟁 

아이의 전쟁

임마누엘의 전쟁이 아닌


힘의 전쟁

울리는 꽹과리 전쟁

우상의 전쟁으로 보고 있더라 말이죠


믿음의 전쟁이 아닌 행함의 전쟁으로써 말이죠


아니 앞에서 언약궤가 멀찍이 앞에서 일을 다 처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해야 하는 일로 여겨서


뻔히 보고서도 못본척 그런 일이 없었는냥 

묵시를 역사로 뒤바꿔치기 해서

우상으로 뒤바꿔치기 해서


증거궤 앞장세워서 칼도 없이 무기도 없이

그저 회개로써만


하루에 한 바퀴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 곧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을 구하는

회개자로써 일곱 번 뺑뺑이 도는

일곱 번 똥물에 담구듯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저들은 무기를 쥐는 우상인데 반해

나는 무기 없는 무능한 자입니다 오로지 약속만

여호와의 이름만 앞장세우고서

이 이름이 글쎄 나의 모든 허물을 덮었데요 라고

그 증거가 이 증거궤에 담겨있습니다

나의 허물을 보시지 않았다고

제대로 나의 죄악을 심판한 분이 이 분입니다 라고


주님의 의를 외칠때에


이 희한한 전쟁을 하는 자만이

우상과의 충돌을 신나게 하는 겁니다.


이 어린양의 피 라는

시온산에서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유일하게 우상을 파괴 할수 있는


율법의 완성인 뜨인돌이라는 어린양의 피


화목제물을 약속이라고 믿음이라고 앞장세운다 말이죠


저들은 반대로 우상으로만 방어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세고

골리앗 거인들만으로 첩첩산중 방어를 해도

다 무너지더라 말이죠

천국은 이렇게 가나안 땅을 침략합니다.

천국과 반드시 우상숭배자가 대립되어 있기에

우상숭배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저 천국 저 약속의 땅을

이 어린아이 하나로 다 물리치더라 말이죠


믿을 수 있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도저히 말도 안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음이 바로


저들에게 감추시고

아무리 큰 권능으로 가버나움에 기적을 때려부어도

절대로 약속을 못 보도록 하셨기에

감추인바 되고


오히려 무능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내셨다는 것을


왜 우상과 아이를 대조 시키시는지


아 감추실려고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혹시나 듣고 보고 깨달아

고침 받을까봐 예수님이 두려워 떤다 라고


감추었는데 보면 안되는데 들으면 안되는데

우상숭배자들이 약속의 비밀을 아무리 대놓고 공개가 되어도

도저히 무슨 소리인줄 감추인바 된 것은


우상과 약속을 동시에 두 주인을 못 섬기기에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 16:13, 개역)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반드시 오히려 더더욱 충돌할 수밖에 없는

서로가 보면 으르렁 거릴 수밖에 없도록 하셨기에


유대인의 그 타고난 속임수에


십자가가 밝히 보이거늘 택도 없다 말이죠

안 통하는 겁니다.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다들 우상숭배자일 뿐입니다.

어딜 속여요


오로지 이 처녀가 낳은 아이로써만

우상문제를 해결할 뿐입니다.

그저 주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어서 어서 십자가의 도를 펼쳐 달라고

기생라합처럼


요나의 표적을 구하는

어서 어서 심판해 주소서

주의 의를 펼치셔서 

이 우상들에게서 건져 달라고 


낙망하지 말고 과부처럼 원수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하는

어린양의 피 사건인 십자가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지

목사들이 교회 일 시킬려고 사기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거 구하지 말고

어서 어서 이 눈에 보이는 교회에서 건져달라고

우상숭배자들에게서 건져달라고

나 역시나 우상숭배자이니

어린양의 피 외에는 해결할 길이 없다고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는 뜨인돌이 와서 무너뜨려 달라고 구하는 것이


(단 2:34, 개역)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단 2:45, 개역)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약속만을 바라보고 십자가 징조만을 구하는 자 

곧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만 졸졸졸 따라가는 

이 의 만 노래하는 찬양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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