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만드심 (마 16,18-20)

(마 16:18, 개역)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개역)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개역)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 16:18, 새번역)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그, '페트로스' ㉥그, '페트라' ㉦그, '하데스의', 곧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세계의' ㉧또는 '세력이'』
(마 16:19, 새번역)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6:20, 새번역)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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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입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십일조가 1위에서 내려오지 않더니만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늘 2위 하던 단어가 말이죠

즉 열쇠란 열고 닫고
개방하고 잠궈서 차단하고 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럼 그 기능에 맞게
열리는 혜택을 누리는 자들이 생겨야 하고
닫혀서 잠겨 들어갈수 없는 자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문제는 베드로가 과연 그런 천국의 열쇠를 쥘 자격이 있느냐 라는 겁니다.
여기서 오해가 뭔고 하니
그럼 과연 베드로를 개인으로 봐야하듯이
개인의 문제이냐 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성화론자들 주장이 맞게 되는 거죠
개인에 의해서 좌우 되니까 말이죠

그러나 교회 자체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입니다 그것도 신부이다 말이죠

결국 베드로 개인은 앞의 에스겔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없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 백성 만들기는 주님만의 숙제입니다.

그럼 사도의 터 위에 세운 교회는 무슨 의미 입니까?

(엡 2:20, 개역)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마치 사도나 선지자를
앞의 에스겔 (겔 14,12-20) 글에서 세 사람을 따라하면
노아 다니엘 욥 말이죠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주고 구원해 주는 믿음의 본을 보여줄거 아니겠냐 말이죠
그렇듯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우듯이
베드로 사도가 교회를 인도해 줄 것 아니겠냐 말이죠

아닙니다.

사도란
교회 지도자의 의미 보다
인도자의 의미 보다
도리어 미움받고 버림받고 고난당하여 죽는 자들입니다.
그 죽은자리에서
그 피흘린 터에서
교회를 세우듯이
예수님의 터 곧 죽은 자리이겠지요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겁니다.

죽었으나 다시 산 자 이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
즉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버린 돌로써 주춧돌이 되어야
그것이 참성전
그리스도의 몸이지

안그러면 그저 부동산 밖에 뭐와 다르냐 말이죠
기초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
곧 피로 사신 교회 이다는 겁니다.
피로 사신 하나님의 백성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피로 안 사고 그냥 하나님의 백성 되기 라는 꼼수를 부르겠다는데 있어서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열쇠로 열고 닫고는
사도의 죽음
즉 개인적인 죽음이 아닌
예수님의 피 흘리심에 동참된 그 죽음으로 인해
열리고 닫히고 한다는 겁니다.

같은 의미로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열쇠의 의미가 되는 거죠
소유할수 있는 열쇠가 아니라
도리어 열쇠로부터 소유 당한

그럼 열쇠는 뭡니까?
네 맞습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 곧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덮쳐진 자는 곧 있는 자는 더 받고
죽어도 다시 살고

십자가의 죽음 곧 대신 죄 값을 치르신 피 흘리심이 없다면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열고 닫는 것은
이 십자가가 주체가 되어서
우리를 다루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불뱀에게 물려서 죽는게 아니라
십자가를 안 쳐다 봐서
즉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아서 죽는 아니 지옥가는 겁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본인이 혈육으로 주는 그리스도 곧 구원자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혈육으로 외친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줘서
반칙이지요 컨닝한 겁니다.
이 부조리 부조화 덕분에 너 산거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럼 혈율이 왜 아닌지를
베드로는 유감없이 혈육이 튀어나오도록
절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대제사장으로부터 고난 받고 죽으시면 안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 안됩니다.
제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반드시 예수님을 지키겠습니다 라고

혈육이 왜 아니요 인지를 알려주시고자
그 차이로써 두 세계
곧 혈육의 세계와
그 차이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주시는 세계를 격도록 하시는 겁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죽을까봐 걱정해 주는게 아니라
자기 또한 죽을까봐 그런 겁니다.
주님의 죽음이 곧 자기 동일시로 여기는 혈육적인 사고방식인 거죠

하나님 백성되기를 스스로 하겠다 라고 나서는 것도
그래서 믿음의 영웅 노아 다니엘 욥 따라하기 조차도

모두다 사실상 네 징벌 곧 네가지 심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는 겁니다.
곧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전염병)입니다.

누가 이 칼과 기근 가나운 짐승 온역을 마땅히 받아야 할 죄인으로
환자로
심판받아 마땅한
화로다 화로다 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하겠냐 말이죠

다들 당연히 나는 절대로 심판받으면 안되는
이유 없이 무조건 구원 받고 선택 받고 천국 당연히 가야할 의인으로 여기지 말입니다.

그러니 노아 다니엘 욥을 따라해서라도
저 네가지 징벌을 피하고야 말겠다 라고
고아 과부 나그네 안될려고
우상을 찾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우상을 마음에 두고서
하나님께 찾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겁니다.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저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게해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이죠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 라는 말은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는 회개 이거든요
이 보세요 얼마나 회개의 달인 아닙니까?
죽어 마땅하데요
그런 죄인이래요

그렇지만 저 세리와 같지 않았다는 거죠

갑자기 의인이 되어버린 거예요
지 스스로 자신이 회개한 의로움과 대조 시킬자를 골라서
차리를 스스로 간극을 벌리고 있으니 말이죠

회개 한 것이 도리어 회개를 안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인간이 스스로 회개 하는 것 조차도
안 통하는 겁니다.

아무리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려고 해 보세요 되나?
아무리 회개 눈물 금식 기도 4종 세트로
이 이름 없는 아기 솔로몬 형을 아무리 살려보세요
살아나나?

죽이시겠다 라는 것에 동참함으로써
다윗 자신도 이제 죽은 겁니다.

죽지 않고 회개 눈물 기도 금식으로 아이를 살려내 버리면
계속해서 저 의문의 반복인 이스라엘 왕 답게 처신 할려고
더더욱 이스라엘 왕 다운 행동을 위선적으로 할려고 할꺼 아니겠습니까

왕 제도는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기를 원치 않아서 만든 이방나라
곧 우상나라에서 수입해 온 제도가 왕 제도 이거든요

이스라엘은 왕이
인간 왕이 필요가 없어요

즉 움직이지 못하는 성전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필요가 없당께요

그런데도 기여이 왕으로써
인간 왕으로써 체면치레 하겠다 라고
성전을 짖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웅장하게 황금으로 말이죠
느닷없이 동작 그만 밑장빼기냐
나 여호와가 핫바지로 보이냐 라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는

이 우상성을 밑장빼기로 숨기더라 말이죠

그거 오냐 확 들추어내어서
그 딱딱한 우상의 마음
꼬추를 활 짤라서

마음판의 할례로 지근 지근 밟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주마 라고
이것 또한 다윗이 인간 왕으로써 다른 나라 이방 나라의 왕
인간 나라의 모든 왕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써
다윗을 먼저 침으로써
하나님의 집을 먼저 침으로써
전 지구의 인간 나라의 왕을 치시는 겁니다.
확대 시키는 거죠
개인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판의 할례는 말이죠

그러니 십자가를 웃끼게도 개인 신앙 문제로 취급해요

아닙니다 십자가는 모든 육체 심지어 지구 조차도 못 받는
지구는 하나의 인간들의 성전이니까 말이죠

계시록에 의하면 천국에서도 성전이 없는데
땅의 인간 나라에 성전이 있으면 되겠냐 말이죠
소위 국가가 인간들의 성전 아닙니까

모두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겁니다.
모든 육체 뿐만 아니라
모든 육의 세계도 말이죠

이 구조 속에
과연 베드로가 신부 되는 꼴을 마귀가 그냥 넘어가겠냐 말이죠
반드시 베드로를 죽이겠죠
사도들을 죽이겠죠

죽었뿌면
뭐 개인이 열쇠를 쥐고서
방 문을 열고 닫고 하는 것이
뭐 한번 써 먹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데
그게 무슨 열쇠를 쥔 의미가 있겠냐 말이죠

그런데 사도가 죽으니까
그 자리에서 성도 곧 교회가 발생하더라 말이죠
움직이지 못하는 부동산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전인 성도가 막 발생해요

사도바울은 그래서 해산하는 고통
즉 사도의 터가 되는 거죠
고통이 말이죠

너희를 낳았도다 라고 합니다.
개인의 출산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말씀이 이런 사건을 벌리셨다는 것을
본인이 믿어야 할 판국에 놓여서 고백하는 겁니다.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고전 4:15, 개역)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0, 개역)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갈 4:21, 개역)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갈 4:22, 개역)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갈 4:23, 개역)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4, 개역)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갈 4:25, 개역)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갈 4:26, 개역)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고전 4:9, 개역)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 4:10, 개역)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고전 4:11, 개역)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고전 4:12, 개역)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고전 4:13, 개역)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고전 4:14, 개역)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고전 4:15, 개역)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 4:16,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4:17, 개역)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 4:18, 개역)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고전 4:19, 개역)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고전 4:20, 개역)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1, 개역)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아니 사도바울이 지가 여자도 아니면서 뭘 해산한다고 하고
뭘 너희를 낳았다 라고 하냐 말이죠

고전 4장은 아버지가 낳았다는 식으로 표현했고(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갈 4장은 사도바울은 자신을 하늘에 속한 자유하는 여자로써
두 언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국 두 장 모두 공통점이 바로
사도를 죽이시기로 작정했다 라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해산하는 수고와 내가 너희를 낳았다 라고
아예 죽음을 기정 사실로 하는

바울 개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도라는 기능이 바로 천국의 열쇠처럼 기능이 그렇다 라는 겁니다.

존재 보다 기능이 먼저 앞선다 라는 겁니다.

그럼 상대적인 삯꾼은 뭡니까?
도리어 양을 잡아 먹는 자이다는 거죠

마침 지난주에 수퍼맨이 돌아왔다 윌리엄과 벤틀리가
아빠를 따라 당나귀 고기 집에 갔습니다.

벤틀리는 아직 선악을 모른다 말이죠
죄책감이 없다 말이죠

그런데 윌리엄은 그 동안 수 많은 고기를 먹었는데
당나귀는 못 먹었다 말이죠
문제는 이 당나귀가 바로 만화영화에 나오는 슈렉의 친구이다 말이죠
어떻게 자기가 좋아하는 슈렉의 친구 당나귀를 잡아 먹을 수 있겠냐 말이죠
슈렉의 친구 뿐이겠습니까?
윌리암이 좋아하는 당나귀이니까 윌리암의 친구이기도 한데?

그러니까 안 먹겠다는 겁니다.

한번은 제 조카가 어릴적에 여자아이 답게
닭고기를 실컷 먹는 와중에 닭이 불쌍하다고 합니다.
갑자기 말이죠 입에 잔뜩 잘도 먹고 있으면서 말이죠

아 그래 그럼 너는 앞으로 먹지마 내가 다 먹을께 라고 하니까
아니야 나 닭고기 좋아해 라고 웃으면서 잘도 먹더라 말이죠
그때의 일이 윌리암을 보고 다시 생각나더라 말이죠

그러니 아빠 샘이 그럼 그 당나귀 고기 안 먹으면 너는 귀가 안들리게 돼 라고 하니까
그래도 안 먹겠데요 글쎄

그러자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줄이더라 말이죠
어 아빠 말이 왜 안들리지?
거봐 안 먹으니까 안들리잖아 라고
목소리를 줄이니까
윌리암이 답답해 하더라 말이죠

그렇게 지혜롭게 아이가 먹을수 있도록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말이죠
그러니 윌리암이 잘 먹게 되더라 말이죠

그것을 보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말이죠
바로 사도의 죽음 터 위에 교회를 세우듯이 말이죠

우리는 어떻게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느냐 라고
죄책감을 가진 양심적인 인간이다 라고 우기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
저주 받은 죄인이다는 겁니다.
니 스스로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말씀 지키고 세 사람 노아 다니엘 욥을 따라해도
이 저주 이 심판 이 네가지 징벌
곧 하나님의 집인 이스라엘에서 출발해서 모든 나라 모든 백성에게 퍼붓는 저주에서 못 벗어난다 라는 겁니다
이무리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고자 말씀을 지켜도 말이죠

여전히 저주 받은 죄인이다는 것을 모른다는 증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마셔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랬을때에
눈과 귀가 열리듯이
안약을 바르고
주님의 피 옷을 부자야 발가벗고만 있지 말고 값주고 사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부자에게 말이죠

얼마나 헐벗었으면
과연 심판의 용광로를 견딜수 있는 옷이 맞냐 라고 말이죠

주님은 개인 개인으로 다루시는게 아니라
전체 집단으로 다 다루십니다.
그러니 노아 홍수로 전체를 다 심판 속에 집어넣었다 말이죠
다니엘 세 친구만 불 속에 들어간게 아닙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가 포로가 되어서 들어간 셈이다 말이죠
욥 개인만 당하는 애매한 고난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욥과 같은 애매한 고난 속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난 자가 바로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의 근본 자리가 바로 처음사랑인 십자가의 피 흘리신 주님의 살과 피였다 말이죠

이 주님의 살과 피인 십자가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사도라는 존재가 아니라
개인이 아니라
사도라는 기능이다 말이죠

그러니 죽으가면 죽어갈수록 죽이시기로 작정되면 작정될수록 더더욱 만개하면서 피어나고

불 속이 오히려 구원이고 말이죠 다니엘 세 친구와 함께 춤추는 그 인물 덕분에 말이죠

도리어 살면 살수록 좀비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조주가 지은 인간도 아닌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된 유사하나님 짖만 골라서 하는 마귀자식으로써의 독사 뱀으로써
불 바깥이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자인 불 바깥은 한 인물 곧 예수님과 함께 함이 없다 말이죠

그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없는 세계가 도리어 살았다고 하나 죽은 거다 말이죠

핍박을 받지 않는 세계가 얼마나 편하냐 말이죠
그런데 그 편한 세계가 우상의 자리인

주님의 살과 피가 없는 자리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으시러 가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안 그러면 그런 고백을 하지 말던가

해 놓고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육체인 혈육이 왜 아닌지를 알아야 하고
정작 본인이 반대 했던

이 십자가의 죽음
곧 주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아니하면 왜 주님과 상관이 없는지를

이 두 가지를 다 알게 하실려고
인자 곧 누구 누구의 아들은 끝까지 섬기시는 겁니다.

이미 인자가 떳기에
베드로는 그의 증상물로써
교회가 아니 되고는 못배기는 당위 곧 기능으로써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즉 사망의 권세
곧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다 이루신
베드로 라는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인
신부인
하나님의 백성인

주님의 자신의 피 흘리심으로써 영생을 먹이시고
살을 떼어 주심으로써

만나를 먹고도 죽은 조상과 대조하시면서
죽지 않는 자신의 생명의 떡인 살을 떼어주셔서 먹이시는 겁니다.

이것이 천국의 열쇠가
베드로를 열어서 천국 열쇠의 기능을 보여주듯이
사도의 기능이 바로 이런 터
곧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그 십자가의 죽음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라고
열고 닫고 하는
교회건물도 아닌 교회조직도 아닌
오로지 열고 닫는 것은 복음이라는 것
이 복음을 노래하는 자가 교회이지
건물 조직이 아니다 말이죠 집단조직이 아니다 말이죠
그건 시스템 딱딱한 우상이고

부드러운 마음 곧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화목제물 되심인 피 용서가 복음이다 말이죠

그런데 복음 핑계로 교회라는 껍데기에 신경쓰다 보니
복음이 없는 겁니다.
사도의 터가 없고
죽이시기로 작정하신 주님의 살과 피가 없고
돈으로만 가득 채워진 강도의 소굴 곧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상 받는 또 다시 의문의 반복에 빠지는
이유 없이 나는 심판 받으면 안된다 라고
노아 다니엘 욥을 따라하겠다 라고
어떻게 하면 구원 받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 되냐 라고
자꾸 행함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바로 네가지 징벌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을 피하고자 하는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감히 속일려고 말이죠

이들로부터 교회는 핍박 받는
지금도 그러하다 라고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계시록으로 치면 가짜 일곱 교회 속에
그들 가짜 일곱교회로부터 핍박받는 진짜 일곱 교회로서
반드시 맞물리는 두 언약으로써의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무엇이 혈육인지를
성령을 받은 자는 총명함으로써 짐승의 수를 셀수 있기에
이 시대의 징조를 볼수 있기에

왜 사도는 죽이시기로 작정이 되었는지
반대로 삯꾼 목자는 양을 잡아먹는지를

그 차이로써 증거하심으로써

바로 이런 기쁜소식 곧
높은자 낮추시고 낮은자 높이시는 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는

이 복음만을 외치는 새노래꾼으로 예수님이 직접 피흘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백성 만드시는 겁니다.

죄인이 환자가 구원자를 의사를 부르러 온게 아니라

의사가 구원자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사실
의인이 아니라
건강한 자는 의사가 쓸데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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