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 1- 7)
(마 18:1, 개역)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개역)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개역)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5, 개역)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 18:6, 개역)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마 18:7, 개역)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1, 새번역)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마 18:2, 새번역)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새번역)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18:4, 새번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마 18:5, 새번역)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 18:6, 새번역)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 ㉠또는 '죄 짓게'』
(마 18:7, 새번역)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 ㉡또는 '죄 짓게' ㉢또는 '죄 짓게' ㉣또는 '죄 짓게'』
크다 작다 라는 기준은 그냥 나온게 아닙니다.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그 죄악에 의해서 나온 겁니다.
바로 세상의 기준인 거죠
바로 그런 세상의 죄악의 기준이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선민 유대인에게도 다 퍼진 상황입니다.
마치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 시험한 내용들이 유대인을 마귀가 장악한 사고방식임을 그대로 보야주고 있듯이 말이죠
그래서 천국에서 누가 크냐 라고 묻는 겁니다.
그 정도로 관심사가 그들에게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기대가 부풀어 있는 상황에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고
갑자기 분위기가 반대로 흘러 갑니다.
즉 천국 이라는 곳도
바로 이렇게 큰 자들이 갈 수 있는 개념으로 봤는데
천국은 그게 아니야 너의 생각에 반대 야 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럼 또 사람들은 아 그 반대 그럼 반대를 추구하면 되겠네 라고 생각하시는데
그 또한 그 반대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가능한 소리가 아닌 겁니다.
선악의 세계는 내 쪽에서 출발해서 내가 행해서 나에게로 도착하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주께로 출발해서 주께로 말미암아 주께로 도착하는 겁니다.,
나 라는 자아가 끼어들 틈이 전혀 없습니다.
(롬 11:36, 개역)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0, 개역)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롬 11:31, 개역)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1:32, 개역)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3, 개역)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4, 개역)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5, 개역)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6, 개역)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개혁주의 신학 곧 성화론은 오히려 그 자아 라는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부여를 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은 이스라엘에게 달린 적이 없다는 겁니다.
나의 나 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이다 말이죠
(고전 15:10, 개역)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어딜 감히 인간이 끼어드냐 말이죠
그카다가 앞의 글 시드기야가 얻어 터지잖아요
즉 개혁주의인 성화론자
자꾸 이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든 한국교회 또는 전 세계의 교회가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는 자는 없다 라고 생각하시고
목사 말 들을 생각 말고
주님과 독대 하라 말이죠
주님과 나 사이에 자꾸 목사가 개입해 끼어들지 말게 하라 말이죠
나를 제대로 심판 하시는 심판의 주는 예수님 뿐이지
눈에 보이는 인간이 아니다 말이죠
바로 그 심판 주 만이
구원의 주 이십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진 적이 없으니 말이죠
자 그래서 성화론자들은 자꾸 크냐 작냐 로 비교하는 자들입니다.
수준이 높니 낮니를 늘 따져요
왜 몇 년 전에 이런 드라마가 있었죠
최근 드라마는 안 봐서 모르겠고
내 딸 서영이 이후에 KBS는 딱 하나 봤는데
제목을 몰라 또 검색했는데
황금빛 내 인생
여기서 부자집 사모들이 모인 모임에서
다들 서로 비교 판단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재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말이죠
제가 어떤 교회를 가도 다 이래요
어떤 교회는 성화가 되었는지를 재고 있고
어떤 교회는 금전 으로 재고
어떤 교회는 마치 윤리적인냥 도덕적인냥 사람 됨됨이로 재고 있고
어떤 교회 사람은 믿음이 있니 없니 로 재고 있고
웃껴요
왜냐하면 성경은 정반대 이거든요
성전측량 곧 거룩 측량할 때
거꾸로 재 잖아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
예수님에게까지 찾아와서 늘 재고 재는 재고있는 것들이
크냐 작냐 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크냐 작냐 가 아닌 그런 선악의 판단
곧 우상숭배죠
우상과 하나님을 섞은
그게 아닌
공백을 선물로 까까득 준비를 해 놓으셨다는 겁니다.
곧 심판입니다.
고난의 잔 이지요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다 라는 것은
한참 서로가 크냐 작냐 라고 재고 있는 그런 분위기를 확 망쳐버리는
공백 곧 빵구멍 하나를 데리고 오신 겁니다.
이 빵구멍 하나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결탄코 갈수 없다 라고 말이죠
더 강하게 할까요? 결 땅 꼬
왜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하시는 걸까요?
예수님의 마음과 정반대 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 영광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한 낮아지신 분입니다.
자 그러니 천국 그 자체가 되시는 예수님이
천국으로써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 사람들은 엉뚱한 천국을 운운하고 있고
바로 그런 사고방식의 천국으로 인해
교회 자체도 그런 식으로
그 교회를 구성하는 교회인원으로써
자신들 또한 그렇게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십의 일조를 하고 이레에 두 번 금식드린다 라고 하는 바리새인이나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 라고 하는 부자청년이나
큰 계명 두 계명을 지킨 이웃사랑 실천을 했다고 우기는 율법사나
다들 그렇게 천국을 형성하고 그런 천국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자신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 빵구멍 하나를 데리고 와서
이 빵구멍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땅꼬 천국에 못 들어 간다고 하신다 말이죠
앛의 글 에스겔에서
주님은 마치 여고냐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는 식입니다.
여고냐는 포로 잡혀 간 것 밖에 없어요
18살에 어린아이입니다. 청소년
그리고 딱 3개월 10일 100일 만에 왕 자리에서 포로로 잡혀 갑니다
빵구멍도 이런 빵구멍이 없다 말이죠
다들 수준 높이고 있는 판국에 갑자기 빵구멍이 생겨 버리면
모든 시선이 그 얼룩에 의해서 시선이 빨려들어가는
블랙홀을 만나게 되어 다 빠져나올수가 없게 된다 말이죠
네 맞습니다 인자는 (누구 누구의 아들)
블랙홀입니다
죽은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가 또 있습니다.,
밤에 몰래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 였다 말이죠
(요 3:1, 개역)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개역)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 또한 표적을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과 연관 시켜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동문서답입니다
아냐 그 반대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 못 봐, 못 들어가
아니 이미 늙어버린 자는 어떻게 됩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까?
마치 어린아이 기능이 아닌
어린아이 존재가 다시 더 어린아이 곧 갓난 아이가 되어야 하듯이
이제는 아예 모태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고 오해하는
문자 그대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그런 아이를 말하느냐? 아닙니다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개역)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소위 구원파들이 말하는 거듭남의 비밀 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사기를 치는데
이것 또한 육으로 난 것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입니다.
크냐 작냐 맨날 재고 재는
갓난 아이 보다 더 작은 것은 한 마디로 죽음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정도로 죄인 이로소이다 라는 이 상한심령이
바로 낮추는 마음인 성령의 마음인 어린아이 이다 말이죠
그 정도로 자기 것이 없어요
철저하게 의존적이지요
여고냐처럼 포로 잡혀 가면 포로 잡혀 가는 겁니다.
여고냐가 보여줄 모습은 이거 딱 하나입니다.
마치 죽으면 죽으리라처럼
100일 왕으로써 포로 잡혀 가는
졸지에 선지자의 모습인 인자가 된 거죠
여기에 반해 시드기야는 내 조국과 내 가족은 내 손으로 지킨다가 되는 거죠
이 모습은 세상 사람들도 다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모습은 아니다는 거죠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오히려 여고냐 라는 얼라가 보여주고 있고
시드기야는 저러니까 우상숭배자로써 들통이 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들뢰즈 철학에 여성 – 되기 라는 – 되기 라는 개념이 있어요
어린아이 – 되기 라는 의미도 포함해서 말이죠
아마 들뢰즈가 성경의 의미 조차도 차용해서 응용한 것 같은데
여자 조차도 여성 되기를 실천해야 한다 라고 하지만
실천 자체가 안 됩니다.
이거 니고데모에게 실천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거든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다 라고 하십니다.
육신으로 난 것은 선악을 추구해요
마치 시드기야가 힘을 쫏아서 정치적으로 말이죠
그래서 애굽과 손 잡듯이 말이죠
그러나 성령으로 난 것은
바로 이런 선악, 우상을 짜르는 겁니다.
그러면 여고냐처럼 포로 잡혀 가는 것 조차도 기쁜소식 복음으로 봐야 한다 말이죠
개인이 포로 되는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 다입니다.
이 이스라엘을 인간이 잘못 운영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직접 다루심에 의해서
철거작업을 단행하신다 말이죠
약속의 땅 청소 이거든요
우와 드디어 청소 하시는 구나 라고 구원의 작업으로 안 보이게 되면 (주님 숙제)
당연히 애굽과 손 잡고 약속의 땅 청소 거부가 되는 거죠 (내 숙제)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보호자로 자처하시면서 나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고아의 기업이 되시는 기쁜소식 곧 복음이시거든요
여고냐 곧 연한 가지의 보호자 이시다 말이죠
열왕기하 에서는 18살 역대하 에서는 8살 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바로 이미 죽은 자에게만 기뻐하심을 입은 복음이거든요
(골 3:3, 개역)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1,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개역)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 개역)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 3:4, 개역)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욜 2:28, 새번역)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행 2:17,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욜 2:28-32(칠십인역)』
어린아이가 예언을 한다 말이죠
즉 이삭이라는 제물이 누구를 말한다
희생제물이 되면서
즉 죽으면서 누구를 쳐다보라꼬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다 말이죠
(요 8:56, 개역)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그리고 이미 늙어 죽은 몸 곧 100세 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꿈
다시 싸매어 주시는 긍휼을 보게 되더라 말이죠
그러니 이미 죽은 자에게 주님의 숙제만이 나타날 뿐이기 때문에
크나 작냐 키 크기가 아닌
잘났냐 못났냐 라는 것은
이 어린아이 하나로 함구케 되는 겁니다.
지금 에스겔 말씀처럼 포로잡혀 가고
이사야 말씀처럼 분노의 잔을 마시게 되고
이런 상황에 그야말로 천국에서 누가 크냐 작냐 라는 소리는
그야말로 그야말로 배불러 터진 소리이지
모욕적인 구원을 여전히 모르는 소리인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구원을 시시하게 본다 말이죠
얼마나 얕잡아 봤으면 말이죠
다윗을 어린아이로 만드시는 방법이 뭘까요?
때려 죽어도 자기의 숙제를 손 못떼는 다윗을 말이죠
간단 합니다
죽여 버리면 됩니다,
죽여버리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윗은 비로소 자기 숙제가 날라가 버립니다,
시드기야처럼 자기 나라를 지키고자 애굽과 손잡아 바벨론을 물리치고자 하는 숙제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여고냐처럼 잡혀 가면 됩니다,.
아이를 살리고자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라는 숙제를 드디어 멈추고 손 떼게 됩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하면 사람의 일에서 손 뗄까요
어떻게 하면 사탄의 일에서 손 떼게 될까요?
이미 죽은자가 되면 됩니다. 골 3:3
곧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마귀에게 잡혀 가면 됩니다,
비로소 예수님의 숙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그 예수님의 숙제를 보게 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낮추는 자
이미 주 안에서 다 이루셨다고
이 십자가의 사랑만을 쳐다보는 자가 어린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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