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 성전을 치시는 여호와의 진노의 칼 (겔 21, 1-17)
비꼬는 말로 모호한 비유 밖에 할 줄 모르는 놈 아니냐? (겔 20,45-49)
에스겔 2019 2020. 7. 18. 13:36
19-54 비꼬는 말로 모호한 비유 밖에 할 줄 모르는 놈 아니냐? (겔 20,45-49)
(겔 21: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1:2, 개역)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겔 21:3, 개역)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겔 21:4, 개역)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겔 21:5, 개역)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겔 21:6, 개역)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겔 21:7, 개역)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
(겔 21:8,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1:9, 개역)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겔 21:10, 개역)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겔 21:11, 개역) 『그 칼이 손에 잡아 쓸만하도록 마광되되 살륙하는 자의 손에 붙이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하셨다 하라』
(겔 21:12, 개역)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붙인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겔 21:13, 개역)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홀이 없어지면 어찌할꼬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1:14, 개역)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세 번 거듭 씌우게 하라 이 칼은 중상케 하는 칼이라 밀실에 들어가서 대인을 중상케 하는 칼이로다』
(겔 21:15, 개역)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살륙을 위하여 날카로왔도다』
(겔 21:16, 개역)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 대로 가라』
(겔 21:17, 개역)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을 다 하리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1:1, 현대어) 『[성전을 치시는 여호와의 칼]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겔 21:2, 현대어) 『`너 사람아,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면서 그곳의 성전을 쳐서 설교하고 온 이스라엘에 내가 내리는 형벌을 선포하여라.』
(겔 21:3, 현대어) 『너는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 내가 칼집에서 내 칼을 뽑아 이스라엘 땅에 사는 백성들을 모조리 쳐죽이겠다.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기까지 의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쳐죽이겠다.』
(겔 21:4, 현대어) 『(3절과 같음)』
(겔 21:5, 현대어) 『나 여호와가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줄을 온 세상이 알게 될 때까지, 이스라엘 땅에 사는 백성들이 다 찔려 죽을 때까지, 이 칼을 그냥 다시 칼집에 꽂지 않을 것이다.'』
(겔 21:6, 현대어) 『너 사람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부러진 사람처럼 신음하고 통증을 견디지 못하는 듯이 계속 몸부림을 쳐라.』
(겔 21:7, 현대어)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일로 그토록 신음을 하느냐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여라. `내가 한 가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 되는 날이면, 모든 사람의 심장이 떨어져 나가고 맥이 풀려 두 손을 축 늘어뜨리며 넋을 잃고 멍청해져서 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그냥 옷에다 쌀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겔 21:8, 현대어) 『[처형의 칼 노래]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겔 21:9, 현대어) 『`너 사람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라! 내가 시키는 대로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칼이다! 너희를 쳐죽일 칼이 이제 다 갈렸다. 번쩍번쩍 날이 선 칼이다!』
(겔 21:10, 현대어) 『누구든 닥치는 대로 쳐죽이는 칼이 다 갈렸다. 번개처럼 번쩍이며 춤을 추는 칼이 다 갈렸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칼이 다른 백성을 쳐죽이는 데 쓰일 줄 알고 즐거워만 할 것인가! 이 칼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쳐죽이려고 번쩍번쩍 시퍼렇게 날이 서게 갈린 것이다.』
(겔 21:11, 현대어) 『나는 이미 살인자의 손에 그 칼을 넘겨 주었다. 살인자가 벌써 그 칼을 받아 손에 꼭 쥐고 있다. 이 칼은 본래 살인자의 손에 들려 주려고 그토록 날카롭게 갈린 것이다. 그토록 번쩍거리게 갈린 것이다.'』
(겔 21:12, 현대어) 『너 사람아, 부르짖으며 통곡하여라! 그 칼은 이제 내 백성을 겨누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칠 것이다. 지도자든 백성이든 하나같이 그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가슴을 치며 울어라!』
(겔 21:13, 현대어)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 칼이 왕마저도 하찮게 알 때에야 그 백성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제는 왕도 없어질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겔 21:14, 현대어) 『너 사람아, 너는 이제 손뼉을 치면서 예언하여라! `그 칼은 갑절로 불어나고 세 배로 불어날 것이다. 그것은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는 칼이요 어디서나 번쩍이며 휘도는 칼이다. 어느 도성에서나 파도 치는 칼이다.』
(겔 21:15, 현대어) 『더없이 용감한 자들도 모두 낙담하고 무수한 사람이 쓰러져 죽어서 쌓이도록 내가 그들의 성문마다 그토록 무서운 칼을 가져다 놓았다. 슬프다, 번개처럼 번쩍이며 모든 사람을 죽이는 날카로운 그 칼이여!』
(겔 21:16, 현대어) 『너 칼아, 이제 일어나서 사람을 쳐죽여라. 이쪽 저쪽 휘돌며 사람을 쳐죽여라.』
(겔 21:17, 현대어) 『그러면 나도 손뼉을 치면서 쌓였던 분을 풀 것이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이스라엘 본인들 조차도 모릅니다
마치 지난 주 선지자의 비유를 못 알아먹듯이 말이죠
이스라엘 본인들 자체가 비유덩어리인데 말이죠
구약의 이스라엘만 그런게 아닙니다.
어떤 인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 조차도 이 교회의 특이성을 모릅니다.
마치 계시록의 일곱 교회 속에 또 다른 일곱교회가 있어야 하듯이
이런 특이성을 이스라엘 조차도 싫어하고
오늘날 교회도 다 싫어할 정도로
무가치하게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누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고파 할까요?
힘의 세계에서는 무시 받는 어린아이는 죽은자와 같은데
그래서 선지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만 들리는 비유를 외치는 겁니다.
곧 어린아이는 자신이 무능함을 알기에
모든 것을 부모에게만 의지하는 겁니다.
선지자가 졸지에 그렇게 새롭게 태어나 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선지자는 자기 개인의 세계가 날라가버린 자기 개인의 세계가 없습니다.
즉 이 말은 그 상대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우선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버리고
저런 자기가 먼저 우선시 되는 세상을 부러워 하며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삽니다.
바로 이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도록 되어 있는 자아 없는 이스라엘이
졸지에 자기가 우선시 되는
우상이 우선이 되는 자아를 추구하는 세상사람들처럼
부자청년도 그랬듯이 자기 구원 자기 영생을 챙길려고 하는
세상 사람과 다를바 없는
율법이 없는 이방인과 다를바 없는 자로 살기에
주님은 이 자기 의를 세울려고 쌓을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불 태울려고 하시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의 반응은 하나님은 악하다 라는 거죠
바로 이겁니다.
주님의 선하심 곧 의 로움은
인간에게서는 악한 겁니다.
어느 정도로
이스라엘을 다 불태워 버릴 정도로 말이죠
바로 다음글 마태복음 20장 1절부터
포도원 품꾼 비유가 나오는데
12시간 전체를 다 일한 자가
딸랑 1시간 일한 늦게 온 자에게
주인이 똑같은 품삯 한 데나리온 을 주니까
먼저 된 이스라엘은 주인을 악하다 라고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신 긍휼을 악하다 라고 말이죠
이것이 주님의 선하심입니다.
우리 속의 악
우상
선악
죄를 들추어내지 않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주님의 의로우신 선하심은
바로 이런 엉터리 하나님 곧 좋으신 하나님 이란
인간의 우상과 하나님을 섞은 이 선악을 건드리시는 것이 비유 라고 했습니다.
비유가 우리의 죄악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우상 곧 선악을 건드리지 않으면
그거 비유 아닙니다.
사실은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그런 식으로 건드리지만
이스라엘 자체가 비유 덩어리 로써
이방나라를 그렇게 건드리는
천국의 침노를 보여줘야 하는게
거꾸로 되어버려서
도리어 이스라엘이 우상화 되어버렸기에
그 혈통성
사람의 뜻
육적으로 난
이런 육의 소욕을 지금 선지자 라는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로써 건드리시는 겁니다.
바로 여호와의 칼로써 말이죠
이런 선하심이 아니면
우리가 무슨 수로 선악 이라는 암덩어리를 제거 받는 수술을 당하겠습니까?
다시 태어나는 길은 여호와의 칼 곧 진노의 칼
심판의 칼 밖에 없어요
이것이 긍휼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세웠다 쌓았다 라는 기도를 하고 있고
십의 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저 세리처럼 더러운 손이 아니다 라고 말이죠
그러나 세리는 심판의 주 앞에서 그저 마땅히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긍휼히 여겨달라고 할 뿐입니다.
누가 새성전에 부합되는 자 입니까?
지난주 마태복음에서 베드로가
부자청년이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지 못함에 있어서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라고
부자청년과 다르다 라는 주장을 했지만
역시나 부자청년과 같은
자기 의로움을 세울려고
모든 것을 버렸다 조차도
주님을 따랐다 조차도
졸지에 자기 의로움을 쌓는 행함으로 빠졌지
믿음으로 빠진 것이 아니였다 말이죠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에 복종 하라 말이죠
그것이 바로 새로움인데
바로 새로움이날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는 겁니다.
이 죽음만이
이 십자가의 지혜만이 새로움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깊은 뜻이다 말이죠
반대로 사탄의 깊은 뜻은
이 십자가의 피 공로만을 무시하는 일만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자 그러니 새로움은
하나님이 그를 상하게 하심을 원하셨다 라는
그를 죽이시기로 작정하심 뿐이다 말이죠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아주 특이한 내용이 나옵니다
(겔 21:3, 개역)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의인과 악인을 칼로 끊어버리겠다 라고 말이죠
문제는 악인은 당연하다고 보는데
왜 의인까지 심판하느냐 라는 겁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 왜 독사의 자식이다 라고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시냐 라는 겁니다.
아니 바리새인 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마 5: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즉 이 말은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는 없다 라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뭘 해도 심판 받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즉 인간의 선함
인간의 의를 선으로 안 보시고 악으로 심판의 대상으로 보신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선하심이다는 거죠
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거든요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남을 7번 용서 한다는 둥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둥 하는 겁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생
곧 예수님의 자기 목숨과 연관성이 없어요 관계가 없어요
부자청년에게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라는 말은
그런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그 가난한 자 곧 죽은자를 살리는 것이 부자청년이 죽는 것과 같은 거다 말이죠
그렇게 죽은자가 된 부자청년을 그럼 누가 살려줄까요?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기에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율법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는 것이 꽹과리 소음이였다는 거죠
그러나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즉 사랑 곧 새로움은 자랑하지 않아요 꽹과리가 아니다는 겁니다.
이 새로움을 곧 하나님의 죽음을 쳐다보라는 것이 율법의 취지인데
율법의 껍데기를 지켜버리니까
내가 원인이 되고 내가 결과가 되는
내가 졸지에 우상이 되는
그런 의로운 나 자신이 의인으로써 축복 받아야 한다고 우기고
또 그것이 반대로 진행이 되면 에라이 죽자 라고 자기가 자신을 심판하는
엄연히 심판 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심판주를 무시했으면
가룟유다처럼 자기 스스로 깨닫고
아 나는 구제불능이구나 라고 말이죠
그래서 자살하는 겁니다.
괜히 율법을 지켜서 말이죠
축복과 저주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라고
죽어도 그 선택을 손 못 떼는 겁니다.
죽어가면서 까지 말이죠
그런 어린아이 봤습니까?
살았다고 우기니까
생존했다고 우기니까
모든 선택은 자기로부터 출발하더라 말이죠
정작 죽은 자 어린아이를 보세요
선택권이 아예 없어요
엄마에게 다 맡겨버리는 겁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어요
고아 과부 나그네
눈먼자 소경
앉은뱅이
귀벙어리
문둥병자는 선택권이 없어요
환자가 무슨 선택권이 있어요
죄인에게는 선택권 자체가 없는 겁니다.
자유의지는 무슨 놈의 자유의지
그런 마귀 사상을 정통신학이라고 우기니
노예 의지 밖에 없어요
피조물이 무슨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 선택권이 있냐 말이죠
바로 이런 노예 라는 부정적인 단어 때문에
이런 비유 또한 부정적으로 들린다는 자체가
바로 마귀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는 겁니다.
노예 라는 단어를 그릇으로 바꾸면 또 반발 안해요
거 보세요
모든 언어는 선악적이기에
얼마나 인간은 이 선악에 예민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외치는
이 성경은 구원할려고 안해요
그저 나 나 나 내 구원 밖에 모르는 악마들이 인간입니다.
바로 그런 취지에서
이스라엘 또한 우상숭배자로써
오늘날로 치면 교회사람들로써
주님이 냉정하게 다 치시겠다 여호와의 칼로 진노를 퍼부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심판이 옳았습니다를 외치는 자가 성도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가짜이다는 거죠
인간이 자기 살기 위해서 말씀을 끌어옴으로써
하나님을 선으로 보는 겁니다
이것이 우상이다는 거죠
그런 자들에게 여호와의 칼은 그야말로 악으로 여겨질 뿐이다 말이죠
그러니 인간의 선악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엉터리냐 라는 거죠
예수님은 바로 이 선악
마귀가 심은 선악을 겨냥한
마귀만을 상대로만 일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당연한 심판받아야 함을 기뻐해야 합니다.
물론 말도 안됩니다.
누가 이 심판에 감사하겠냐 말이죠
그 정도로 인간은 자기자신이라는 기준에서 못 벗어나기에
그 기준을 깨뜨려주시는 이 십자가의 저주가 옳았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첫 번째 사역이 바로 마귀에게 시험 받는 겁니다.
그 세가지 시험은 바로 이 세상이
경제 종교 정치로 흘러간다는 겁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도록 되어있다는 마귀의 주장에
인간은 그 어떤 인간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반대하시기에
인간의 손에 죽는 겁니다.
경제문제를 흔들어 버리니까 말이죠
부자청년의 전재산을 건드리잖아요
그리고 종교
남은 몰라도 의로움을 쌓는 나는 누가 뭐래도 구원받아야 한다는
이 종교 라는 짐승 666을
이 종교로 하늘나라와 소통 접속 연합 합일 동일성으로 추구한 것을
예수님은 다 짤라버리시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칼로 다 짜르시겠다 라고 하시듯
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달라꼬
난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어 라고
니 잘되는
니 사랑받는
종교라는 마약을 탐심으로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다음 정치는 음녀(종교)와 손 잡은 국가로써, 역시나 짐승이지요
종교가 힘이 없으니까 국가와 손을 잡는 겁니다
신땡지가 정치와 손 안잡으면 그런 장사를
그런 돈을 못 만지거든요
과거 김준땡 cc땡
지금은 유투브로 돈 버는 하나님 너 까불면 죽어 라고 하는 놈들
사실은 한국 교회가 다 이래요
그러니 주님은 오늘 본문처럼
이스라엘 국가 자체도 날려버리시는 겁니다.
국가 곧 짐승을 숭배 경배 하라 라는 사단의 시험을
(마 4:10, 개역)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다윗언약에 기초한(에스겔도 당연하죠)
인간의 왕(정치)을 날려 버리는
더 나은 정치 바로 십자가의 죽음 이라는
왕되신 하나님이 죽는
부정의 부정
정치의 정치
종말의 종말을 펼치시더라 말이죠
그러니 나라 국가가 날라가지 않으면
요즘으로 치면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
교회 건물
이게 날라가지 않으면
주님의 죽음이라는 새로움을 못 보는 겁니다.
개같은 이방인이 나라가 날라가고
민족 국가가 날라가는
이 주님의 이름 앞에 모든 입술로 경배하는 주 라고 시인하고
모든 무릎을 꿇는 주를 경배를 하는데
왜? 잃어버림 당하는
주님의 의에 복종하게 되니까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나라가 날라가도
정치가 날라가도
경배를 하지 않으니
과연 이방인 보다 더 못한
사탄의 회가 되지 않았냐 말이죠
왜? 지난 주 에스겔서처럼
그런 하나님 일리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비유가 어렵다 라고
무슨 소리인줄 모르겠다 라고
왜 부정적이고
삐딱하냐 라고 나오는 겁니다.
즉 이것은 우리가 삐딱하고
우리가 부정적인
우상을 섬기고 있기에
가짜 하나님 곧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의 비유를 무슨소리인줄 모르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다 말이죠
그럼 다 몰라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런 어린아이는 알아 먹어요
마태복음 20장 가장 늦게 온 딸랑 1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은 자는 알아 먹어요
주님의 선하심을 말이죠
먼저 된 자 곧 이스라엘이
주님의 선하심을 악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왜 내가 축복과 저주를 내 기준으로 나눈 것과
주님의 기준이 하나도 안 맞았으니까 말이죠
그래놓고 개방이니 연합이니 동일성 합일성 합체를 그 동안 추구해왓다고 자부했는데
하나도 맞는게 없으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듯이
예수님을 죽이는 겁니다.
거봐 하나님 이라는 죽을 리가 없는데
우리가 얼마나 큰 도전으로써 이런 대마왕 바알세불 걸린 악마를 우리 손으로 죽였는지
자신들이 옳았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인간은 단 하나도 옳은 것이 없어요
주님만 옳아요
그런데 자신의 옳아야 함에
하나님을 끌어오니까
예수님을 죽이잖아요
그 정도로 환자
어두운 눈
우상숭배자 임이
이 십자가의 죽음에서 또렷하게 증거로써 나타났다는 겁니다.
자 그러니 여호와의 칼을 멈추어야 할까요?
반드시 이스라엘부터
하나님의 집부터 실행을 하셔야 할까요
주님의 선하심은
주의 사랑은
이 차갑기 짝이 없는 냉정한 모습의 심판이
주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그를 죽이시기로 작정 하심이 복음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사랑하지 않으면 매가 없는 사생아 이거든요
그러니 이 죽음 속에 우리를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안그러면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테니까 말이죠
경제가 날라가고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다 말이죠
종교가 날라가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그치고 그쳐버리는 기적
정치가 날라가고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 송아지 없는 권력이 다 날라가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는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 곧 처음자리
너희가 날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 라는
이 사랑의 자리에 놓으시고자
잃어버림 속에 집어 넣으시는 선하심을 베푸시는 겁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이 십자가의 피 용서 곧 말씀 곧 말씀이신 예수님으로만 살기에
이 예수님만을 구원하시고자
모든 성경 말씀을 인간 구원이 아닌
예수님의 구원을 외치는 겁니다.
여기에 동참된 자
곧 예수님의 죽으심에 합한자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새롭게 만드시는 겁니다.
경제가 날라가고
종교가 날라가고
정치가 날라가도
이 십자가의 죽음은 영원히 찬양 받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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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는 말로 모호한 비유 밖에 할 줄 모르는 놈 아니냐? (겔 20,45-49) (0) | 2020.07.18 |
약속의 땅에 인도할때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20,40-44) (0) | 2020.07.12 |
언약의 띠로 매인,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겔 20,37-39) (0) | 2020.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