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5 한 임금이 한 나라로 다스리겠다 (겔 37,18-23)
두 막대기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리라 (겔 37,15-17)
에스겔 2019 2021. 7. 18. 07:58
19-104 두 막대기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리라 (겔 37,15-17)
〈에스겔 37:18-2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11쪽, 찬송가 493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18)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19)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20) 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목전에서 손에 잡고
(21)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22)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23)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37:18, 현대어) 『그러다가 네 동포들이 네게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겔 37:19, 현대어) 『너는 이렇게 대답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내가 이제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는 요셉의 통치권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유다가 쥐고 있는 통치권의 지팡이와 연결시켜서, 그 두 지팡이가 하나의 막대기가 되도록 손수 두 손으로 붙들고 있겠다. 내가 에브라임의 지파들을 유다 지파와 다시 연결시켜 놓겠다.'』
(겔 37:20, 현대어) 『너는 그 글씨가 적혀 있는 두 막대기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붙들고 있다가』
(겔 37:21, 현대어) 『네 동포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이 끌려가 사는 세계 만민 속에서 데리고 나오겠다. 세계 어디에서든지 내가 그들을 모아다가 고향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겔 37:22, 현대어) 『그곳 이스라엘의 산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묶고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리도록 하겠다. 그들이 더 이상 두 민족으로 갈라져 살지도 않고 서로 다른 두 왕이 다스리지도 못하게 하겠다.』
(겔 37:23, 현대어) 『그때에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거나 흉악한 죄악을 저질러 몸을 더럽히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손수 그들을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다시 깨끗하게 씻어 주고 방황하는 곳에서 다시 고국으로 데려오면 그때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지난주에 막대기 두 개를 가지고 와서
하나는 에브라임 곧 요셉이라고 쓰고 그 짝 이스라엘자손이라고 적고
또 다른 하나는 유다 라고 쓰고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적어라 했다 말이죠
그리고 이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된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럼 이 두 막대기에 쓴 글의 뜻은 뭐냐 라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라 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여지없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라는 의미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라고
창조주를 계시 하십니다
즉 기존의 창조신앙을 거부하시는 겁니다
지금 현재 창조주의 창조를 믿지 아니하면 과거의 창조를 믿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치 지금 에스겔 당시가 바벨론에 포로된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암흑에서
이 지옥에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창조하시겠다 라고 선언을 해 버리게 되면
졸지에 이 교회를 창조한 새로운 하나님을 믿어야 할 판국에 놓여졌는데
이 창조를 무시하는 자들은 기존의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고 보니까
이 새로운 이스라엘의 의미를 놓치는 것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마치 마귀가 첫 번째 피조물로써 자신이 당연히 하나님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데
어라
하나님이 분절이 되어서 두 하나님으로 나누어져서
마귀가 붙잡고 있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 나타나서
저 제일 마지막에 창조된 인간과 결혼을 하시겠다 라고 나서시는 겁니다
그럼 직접 나서는 자가 지금 두 명이 있다는 거죠
누구 입니까
마귀가 결혼하겠다 라고 나서고
그래서 지난 주 마태복음에서 인간이 예수님의 죄목을 세가지 붙잡는 겁니다
법궤의 기능을 자기들이 해요 글쎄 마치
떨어지는 법궤를 붙잡겠다 라고
더러운 줄 모르는 겁니다
심판을 자기들이 해요 글쎄
심판할 자격이 될려면 남을 7번 용서하는 깨끗함을 갖출려고 하겠죠
그래서 법궤를 들따 보는 식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처럼
이것이 사람에게서 출발하는 믿음입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이 결혼 하겠다 라고 나서시는 방식입니다
선악으로 결혼하겠다 라는 인간과 마귀에 반해서
주님은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이다 라고
사랑이 인간에게는 없고 주님에게만 있다 라고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줬다 라고
이 화목제물로써 결혼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럼 각각 따로 결혼식을 올리면 되는거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졸지에 이것이 서로 얽히고 설키고 해서
아무도 풀수가 없는 매듭이 매여져서
서로가 서로를 못 풀도록 해 버리니
점점점 그 매듭이 이제는 불가능 속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차피 못 풀 것 너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지지 말자 라고
이게 선악이다 말이죠
나를 선으로 인정 안하면 너를 악으로 규정해 버릴 거야 라는 것이
독사의 자식이다는 겁니다
인간이 음녀처럼 유대인들 사탄의 회처럼
법궤기능을 하겠다 라고 심판자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를 집행하겠다 라고
예수님의 죄악 세가지를 잡아내는 겁니다
거꾸로 잡힌 줄도 모르고 말이죠
아니 결혼을 법으로 합니까? 사랑으로 합니까?
법으로 할꺼면 말라꼬 결혼 합니까
가정부로도 충분한데
사랑 없는 법으로 결혼 할꺼 같으면 가정부를 들여서 돈만 주면 다 한다 말이죠
그게 창녀이지 아내 입니까???
실제로 나옵니다 아브라함을 자꾸 주님께서 다구치니까
계집 종에게서 낳은 아들을 갖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 계집종이 사랑이 없이도
법으로도 돈으로도 충분히 계집 종 자리에서 머무르는 것도 아니라
반드시 정실부인의 자리에 앉을려고
즉 사랑의 자리에 앉겠다 라는 거죠
자기들의 모순 아닙니까 마귀의 모순 이다 말이죠 선악의 모순 이다는 겁니다
기여이 핍박하게 내어쫓을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실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그 아들 이스마엘도 이삭을 괴롭히는 겁니다
자녀를 바로 그런 선악의 마음을 더더욱 부추겨 증폭시키는데 까지 동원이 되는 거죠
(이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가 여호와의 전쟁이 바로 이런 취지입니다
애굽의 장자까지 죽이시는 이유는
죽은자의 하나님과 산 자의 하나님의 전쟁 속으로 집어넣기 위함인 겁니다
그러니 자기 때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자녀세대에까지 이어질 문제입니다
자녀들은 바로 그런 전쟁담 사건의 내막을 듣고 자라는 지혜를 누리는 겁니다)
창조를 법으로 할꺼면 말라꼬 창조합니까
돌삐로도 충분히 아브라함 자손 만드시는데
칼로 나라를 세울 것 같으면 말라꼬 나라를 세웁니까?
천사들이 수두룩 한데
(마 26:52, 개역)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 26:53, 개역)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54, 개역)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성경 말씀은 울리는 꽹과리(에디오피아 군대의 행진 속의 무기들이 흔들려 서로 부딧혀서 달그닥 거리는 소리)로 이루어 지는 법이 없다 말이죠
자 그래서 오늘 본문에 당연한 표현이 나오는데
한 임금과 한 나라입니다
그럼 상대적으로 두 나라와 두 왕이 나오는 거죠
두 나라로 나누어졌을때에
원래는 한 나라였는데 두 나라로 나누어지니까
놀랍게도 두 왕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것은 굳이 솔로몬왕의 우상숭배로 두 나라로 나누어졌지만
사실은 이미 이스라엘 출발 자체가
사울왕과 다윗왕의 대립에 놓여진 상태였다 라는 거죠
그 무르익은 고름을 이제 짜버리시는 겁니다
자 그렇게 두 나라로 나누어지니까
졸지에 두 왕이 나타나는 거죠
한 나라의 왕은 자기가 자기축복을 위하여 믿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으로 믿는 하나님으로써 그 백성과 그 중재자 이다는 것이고
즉 인간들이 의지하는 왕 사울왕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으로 세워진 사울왕 이구요
그런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왕 사울왕
곧 선지자 제사장 장로들이다 말이죠
시드기야 왕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나왔잖아요
이것이 악한 무화과 나무 비유의 시드기야 왕이다 말이죠
하나님 나라 독립 운동가 가룟유다처럼 말이죠
또 다른 한 나라는 곧 다윗은 바로 사울왕과 별반 다를바 없지만
주님이 직접 간섭하셔서
아까 말한 직접 찾아와서 직접 결혼하시겠다 라고 나서시면서
다윗을 박살 내면서 자기신부 삼으시는 방식의 창조요 결혼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들 사울왕의 창조와 결혼과는 전혀 다른 반대를 위한 반대인 거죠
인간 쪽에서 직접 나서는 방식과 주님이 직접 나서시는 방식의 대립인 거죠
여기에 중간에 뭐가 있는가? 바로 죄의 소원이다는 겁니다
심심하면 죽여버려요 즉 반드시 칼을 쥐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그랬듯이 말이죠
그래서 미얀마를 보고 칼 쥐지 말라고 했거든요
칼을 쥐니까 저들은 코로나를 쥐고 있더라 말이죠
칼을 쥐어서 독립할 꺼면
저들 독재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광주항쟁운동을 보고 따라한다 라고요?
민주주의의 모범사례이다고요? 민주주의란 종교입니다
허상이고 망상이다 말이죠
더럽기 짝이 없음이 그냥 드러나서 고쳐주세요 해야 하는데
깨끗하다고 우기니까 아무도 고쳐달라고 하지 않더라 말이죠
그때 총칼 쥔 놈들이 딴나라당 빨갱이들이다 말이죠
자기들이 빨갱이이면서 남보고 빨갱이라고 뒤짚어요 글쎄
그렇게 뒤짚어 씌우지 못하면 그들은 불안해서 미쳐요 그것이 정치이니까 말이죠
바로 그런 마귀의 정치에 주님이 부정의 부정의 정치를 하시는 겁니다
선악이라는 부정을 부정한다
마귀라는 부정을 부정한다 말이죠 (물론 둘다 빨갱이인데 서로가 서로를 말이죠
지가 독립군이다 라고 서로 지가 독립군이래 ㅋㅋ
서로 자기가 건강한 자래?? 정신병자들인데 말이죠
정신병자 아닌 정치인 나와보라 말이죠
그런놈들 줄에 서로 누가 옳니 라고 줄서고 있으니 원
독재 딴나라당은 국가 짐승이고요 민주당 이쪽은 제사장 딸 음녀입니다
유대인 바리새인 사탄의 회 이거죠)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놈들이다 말이죠
서로가 서로의 잘 되는 꼴을 못 봐요
꼬투리 하나 잡고서 좋아라 희죽 희죽 거린다 말이죠
내로남불 이라는 지금은 일본 극우들과 똑같다 말이죠
국짐당이 말이죠
좌파는 그래서 완벽주의와 결백증에 시달려야 하고요
깐족깐족 하니까 유시땡과 진중땡이 생각하는데
우는 연기는 압권이였는데 맨날 희죽 희죽 거리는 놈이 울다니 ??? 하여튼 웃껴요
이런 두 마귀들을 다 족쳐야 할꺼 아니겠냐 말이죠
자 그러니 이런 두 원수끼리 무슨 수로 하나가 되겠냐 말이죠
그래서 둘로 나누신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들추어내심으로써
(사울 왕의 손에서 건져주었더니만 이제는 사울왕이 죽고 없으니
다윗 자기가 그 사울왕의 자리에 앉아서 행패부리더라 말이죠 별수없어요 인간은
그래서 인간은 안된다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된 겁니다)
선악의 법이 아닌
은혜로 창조했다 라는 것을
자기가 찜해서 결혼할려고 하는 하나님과
나는 그런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 싫다 라고
두 하나님으로 나누어져서
직접 자신의 아내로 삼으시고자
저런 마귀라는 사탄의 깊은 것을 거쳐서
두 나라로 나누어서
사탄의 깊은 것을 거쳐서
다른 왕
두 왕
두 나라를 거쳐서
사탄의 깊은 것을 거쳐서
두 나라에게서 절대로 나올수 없는 새로운 하나
한 나라와 한 임금을 창조하시는 겁니다
네 맞아요 하나님을 창조하시는 겁니다 새 창조
즉 이 말은 인간들은 수도없이 하나님을 창조했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과거의 창세기의 창조를 믿는다고 우겼던 거죠
이 새창조주가 먼저 떳기에
그 한 임금에게 걸맞는 하나가 된 새나라를
저 마귀나라와 따로 따로 국밥에서 펼치시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목전에서 펼치실때에
세상에 격동하고 견디질 못하는
이것이 참 지혜요
참 창조이며
참 창조주이시고
그의 피조물 참 새이스라엘이다는 겁니다
그럼 기존의 것은??
지나가고 삭제되는 거죠
제가 어릴적에 공포영화 전설의 고향처럼 공포스러운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길 것처럼 각인이 된 것이 뭔고하니
자주 언급했습니다만
옹고집전 여러버전 중의 하나가 tv 만화를 통해서 봤다 말이죠
아마 그때 중1 이였지 싶은데
여전히 노는 것을 좋아라 하다 보니
3-4시쯤에 집에 오면 5시쯤에 만화를 한다 말이죠
원판 옹고집전은 어른이지만
변이 변곡 변작 응용창작을 해서
청소년 버전 도련님으로 나오던데 딱 저의 나이였던 거죠
그런데 가짜 도령은 그 집의 진짜 아들이 되고
진짜 아들은
제가 여기서 충격 먹었다 말이죠
지금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보통 소로 변해서 부지런히 일하게 되었다는 둥 이런 식인데
제가 어릴적 봤던 만화영상은
공포영화도 아니잖아요 얼마나 만화가 부드럽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하잖아요
어라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좌에서 우로 가로글로 올라가면서
그 진짜 도령이 글쎄 서서히 지워지는 겁니다
아주 아주 아름다운 색채 속에서 연기처럼 사르르 말이죠
이것이 소위 도플갱어의 원리 아니겠냐 말이죠
예수님이 바로 그런 인간으로 오셨다 말이죠 새이스라엘
그렇게 되면 기존의 이스라엘은 가짜가 되는 거죠
임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임금으로 오셨고 하나님으로 오셨다
자 이렇게 되면 기존의 하나님은 가짜가 되는 거죠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새겨서 믿었던 것이 다 거짓으로 밝혀지는 겁니다
우상인 거죠 왜 그런 우상을 새겼고 섬겼을까요? 탐심 때문이다는 겁니다
구원에 대한 탐심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긴 이유가 나왔잖아요 이사야 47팔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개역)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사 47:7, 새번역) 『㉢너는 언제까지나 네가 여왕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믿고, 이런 일들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않았으며,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또는 '너는 네가 권좌의 여왕으로'』
(사 47:8, 새번역) 『그러나, 방탕한 여인아, 이제 너는 이 말을 들어 보아라. 네가 평안히 앉아서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나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였지만,』
(사 47:9, 새번역) 『자식을 잃고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한 날에 갑자기 닥쳐올 것이다. 너의 주술이 아무리 능하고 너의 마술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하여도, 이 일이 너에게 반드시 닥친다.』
이런 바벨론을 우상숭배자라고 멸시해 놓고서는 정작 그 우상숭배자들에게
멸당당해서 우상숭배자들의 노예로 잡혀와 버렸다 말이죠
자신들은 저 우상숭배자들 보다 더 더 더 음란한 패역한 백성으로써 말이죠
오홀라 사마리아를 더럽다 라고 욕하고서는 자신들은 더더더 창녀짖을 하다가 멸망당한
예루살렘 오홀리바 였다 라는 거죠
자 이렇게 한 임금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두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한 나라로 모여야 하는 이유로써
이들의 죄악을 이 한 임금이 감당하셔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죄악은 바로 우상숭배였다 말이죠
인간의 근본적인 죄는 바로 우상숭배로써
십계명 첫 계명부터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로 십계명 첫 계명 조차도 이스라엘은 단 한번도 지킨적이 없다는 거죠
이것은 인간의 한계치를 드러내기 위함이지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는 겁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두 나라로 나누어진 것인데
즉 선악을 알고 있다 라는 그 자체가 하나님과 같이 된 나 자체를
하나님처럼 우상처럼 섬기고 있다 라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니까 겸손하기는커녕
죽은 자를 살리기는커녕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하기는커녕
못 본 척 도망가 버린다는 겁니다
누구처럼? 바로 다음글 마태복음에서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 라고
도망치더라 라고 나오거든요
이것은 주님께서 가장 기본적인 죄악 곧 우상을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라는 우상숭배 앞에서는
아무리 예수님과의 친분관계를 자기가 맺고 있어도
분리하게 작용이 되면은 언제든지 모른척 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기 생명이 우선이지
예수님이 우선이 아니다는 거죠
하나님도 예수님도 십자가도 다 배부를 때 믿는 소리이지
배 고파 봐요 언제든지 나 살란다 라고 도망치면서 언제든지 부인할 만반의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신체가 바로 우리의 육체 곧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라는
하나님과 같이 된 흉내만 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에게 진짜 인간이 찾아와서
가짜인간인데 진짜 인간을 행세하고
진짜 인간인 우리는 졸지에 가짜 인간이 되어서 삭제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이 있는 이유는 뭡니까 바로 인간은 삭제 당해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은 더더욱 우상이 튀어나옵니다
어떤 우상
바로 나는 구원 받아야 한다 라는 정당성으로써 이것 했고 이것 했고 저것했고 등등을
나열한다는 거죠
바로 그것이 인간이 역사로 출발하는 믿음이 되는 겁니다
한 임금은 과거를 거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약 속에서 등장하십니다
육의 한계로 인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아무리 나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바르게 믿겠다 라고 해도
그 바르게 믿겠다 라는 출발 자체가 자신의 육체에서 비롯된 것이다는 거죠
그 육체는 과거에서 출발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지난 주에 선지자 제사장 장로 특히 장로의 모사를 쇠사슬로 쳐라 라고 했다 말이죠
장로들의 특징은 과거의 유산을 물려주고자 하거든요
역사 사수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지난 주에 예수님의 죄목 세가지를 잡고자 했다 말이죠
결국 인간 자체가 우상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첫 계명 자체가 지킬수 없는
죄 아래 가두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말이죠
첫 단추가 이런 식인데
나머지 단추를 끼여맞춰 본들 소용이 없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그 당시 정신적인 지도자들과 충돌하신 겁니다
백성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고방식들을 이들 지도자들과 부딧히면서
얼마나 우상숭배자들인가를 보여주시는 거죠
바리새인 대제사장 사두개인 율법사 부자청년 심지어 제자들 속에서도 말이죠
그 어떤 누구도 우상숭배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자기 숭배에 빠져있음을 예수님은 까발리시는 겁니다
그럼 현재는? 웃끼게도 현재에는 해결이 된냥 착각해요
그렇게 되면 성경을 또 안 보게 됩니다
해결할수 없어서 울게 되고 울어서 제발 고쳐달라고 의사를 찾는 것 아니냐 말이죠
그 정도로 성경은 우리를 비정상으로 보고 있는데
역사를 추구하는 아까말한 장로들처럼 자꾸 자기를 정상으로 보고 있기에
예수님이 와서 진짜 인간이 와서 우리를 가짜인간
비정상으로 규정해 버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울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이 진짜인간과 비교하라고 거울 쳐다보듯이 비춰주는 겁니다
구약에서 우상숭배란 바로 비언약적인 겁니다
언약적인 정신이 없다 말이죠
그 동안 언약정신이 뭡니까
성전이 있어도
성전으로 맹세하는게 아니라
성전에다가 금을 바쳐서 금으로 맹세하듯이
뭔가 자기가 하나님께 잘 보일려고 뭔가 첨가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들면 뭔가를 자꾸 빼서 말이죠
왜 나의 뜻대로 안 맞춰주냐 라는 사고방식이 우상숭배 라는 비언약입니다
우상이 그렇게 육체에 자리잡는 겁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면 비언약적인 우상이다는 거죠
언약이 없는 신이 바로 우상이기에
나의 선택으로 믿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올바른 선택을 고집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열심일수록 더더욱 주님을 삼키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럼 참된 언약정신은 뭡니까
바로 우상처럼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죽음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 바로 언약정신입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것은 사랑이 없는 울리는 꽹과리
베드로가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그런 내가 선택한 사랑이기에
우상적이다는 겁니다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의 언약을 방해하는 구나 라고 말이죠
그래서 한 임금으로서만 이 언약을 완성하시는 겁니다
어떻게?
두 나라로 갈려진 이 두 나라의 허물을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우상숭배와 죄악을 피한 주님의 언약의 공간을 따로 새롭게 만들어서
하나가 된 나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심으로써
한 임금에게 맞는 한 나라 새나라를 증상물로써 만드시는 겁니다
그것도 저 바벨론을 피해서 또는 멸망당해 쫄딱 불타버린 그 예루살렘을 멀리 멀리 피해서
아주 새로운 공간을 따로 마련하시는게 아니라
우상숭배자들인 바벨론 땅에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이고 그것도 우상숭배냐 너희 보다 더한 이 이스라엘도 이 우상숭배자들도 용서하시는
한 임금이 떳단다 라고
원수의 목전에서 건설하시고
또 무너진 예루살렘을 피해서 새 땅 새 하늘을 건설하시는게 아니라
에이 더러워 딴데 가서 만들자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을 친히 감당하시고자
무너진 예루살렘 터 위에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오도록 두 시선이 동시에 나타나도록 하시는 겁니다
어라 죽었는데 살았네
어라 속이는 자 같은데 참되네
어라 가난한 자 같은데 부여한 자네
어라 아무것도 없는 자 같은데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로구나 라고
반드시 두 시선 두 언약 속에서
한 임금을 곧 약속을 다 이루시는 겁니다
고로 인간들이 지키는 언약은 우상숭배로써
반드시 한계점에서는 얼마든지 버릴 의향의 있는 점에서 자신의 선택을 고집하지만
바로 그런 우상성을 가지고서
예수님은 한 세트를 구성해서 한 임금이 약속을 이루신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겁니다
(요 15:12, 개역)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3, 개역)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개역)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개역)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인간들이 첫 계명부터 못 지키는 그 나약함을 친히 감당하시는
친구로써
그 정도로 가깝고도 가까운
급박하고
당장
급히
순식간에 이루신다는 의미로써
우리들이 못 지키는 첫계명을
도리어 우상숭배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 감당하시는
신속하게 허물을 대신 감당하는
너무 너무나도 가까운
친구란 불알친구 라고 했잖아요
어릴적부터 함께 했다 라는 겁니다
동행
또 구약 이사야 였나요 에스겔 였나요
창녀였던 어미로부터 태어나자 마자 버림받은 그 핏덩어리와 약속 언약을 했다 했잖아요
(겔 16: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6:2, 개역)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겔 16:3, 개역)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 16:4, 개역)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겔 16:5, 개역) 『너를 돌아 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겔 16:6, 개역)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친구란 결국 상대적으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던 너를 나는 가까이 했다 라는 겁니다
심지어 너를 낳은 너의 부모 조차도
무당인 너의 어미 조차도
거리낀다 부정하다 재수없다 라고
낳자 마자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을때에
나는 급박하게 가까이 신속히 지금당장
너와 언약을 맺었다
너가 기억을 못하던 때에 말이죠
이 언약이 있는데
장로들이 역사를 운운하는 것 보면 얼마나 엉터리 이냐 말이죠
고로 선지자 제사장 장로들은
결국 친구가 아니다는 겁니다
가까운 언약을 말하면
그 다음 안 찾아오면 돈을 안 내면 자기들이 굶어죽는다 말이죠
자 그러니 자기 목숨을 친구를 위하여 버릴턱이 없지요
우리가 다 그런 입장에서 사람을 의지할 이유가 없는데
그래도 의지하는 이유는
자기선택이 자기투자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고 연연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친구가 아니다는 겁니다
동행하지 않아요
언제든지 버리고
언제든지 단물 빨아먹고 내뱉어버리는
이 우상적인 관계가 육체의 관계인데
주님은 이런 두 나라로 우상숭배의 나라를
새로운 하나의 나라로 만드시는 한 임금으로써
바로 저런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 새나라를 만드시고자
가장 버림받은 무녀의 자식
피투성이로 만들어서
죄인 중의 괴수 만들어서
친구로써 이 약속을 이루시는 겁니다
이 한 임금만 의지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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