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불을 취하라 (겔 10, 1-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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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9 맹렬한 진노를 퍼붓는 질투의 여호와 (올무작전) (겔 38,18-2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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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6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불을 취하라 (겔 10, 1- 8)

자기 죄악으로 탄식하며 우는 자에게 이마에 표 하라 (겔 9, 3-11)
에스겔 2019 2021. 9. 4. 12:51
21-025 자기 죄악으로 탄식하며 우는 자에게 이마에 표 하라 (겔 9, 3-11)

〈에스겔 10, 1-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1 쪽, 찬송가 402장 행군 나팔 소리로, 271장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찬송가 402장 행군 나팔 소리로〉

1. 행군 나팔소리로 주의 호령 났으니 
   십자가의 군기를 높이 들고 나가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2. 악한 마귀 권세를 모두 깨쳐버리고 
   승리하신 주님과 승전가를 부르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3. 달려 갈길 다 가고 싸움 모두 마친 후 
   주와 함께 기쁨을 용사들아 누리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찬송가 271장 익은 곡식 거둘 자가〉

1.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 
   내가 어찌 게을러서 앉아 있을까 어서 가자 밭으로
   보내 주소서 보내 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2. 주가 두루 다니시며 일꾼 부르나 따르는 자 적구나 
   보라 주의 사랑하는 익은 곡식을 어서 거두러 가자
   보내 주소서 보내 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3. 주가 나를 인도하니 언제 어디나 기뻐 가서 일하리 
   주가 명령 내리실 때 능력 받아서 기뻐 거두리로다
   보내 주소서 보내 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마태복음 27,33-44 개역한글, 신약성경 50쪽〉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35)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에스겔 10, 1-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161 쪽〉

(1)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 형상 같더라
(2)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그룹 밑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 들어가더라
(3)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섰고 구름은 안 뜰에 가득하며
(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임하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 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6) 하나님이 가는 베옷 입은 자에게 명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취하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7) 한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취하여 가는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8)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났더라

(겔 10:1, 새번역) 『내가 보니, 그룹들의 머리 위에 있는 창공 모양의 덮개 위에 청옥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모양은 보좌의 형상과 비슷하였다.』
(겔 10:2, 새번역) 『그 때에 주님께서 모시 옷을 입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룹들 밑에 있는 저 바퀴들 사이로 들어가서, 숯불을 두 손 가득히 움켜 쥐어서, 이 성읍 위에 뿌려라." 그러자 그 사람은, 내가 보는 앞에서 그 곳으로 들어갔다.』
(겔 10:3, 새번역)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의 오른쪽에 서 있고, 안뜰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겔 10:4, 새번역) 『그 때에 주님의 영광이 그룹들에게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고,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 차고, 안뜰은 주님의 영광에서 나오는 광채로 가득 찼다.』
(겔 10:5, 새번역) 『그리고 그룹들이 날개치는 소리가 바깥 뜰에까지 들리는데, 그 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과 같았다. / ㉠히, '엘 샤다이'』
(겔 10:6, 새번역) 『주님께서 모시 옷을 입은 사람에게 명하셨다. "저 바퀴들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가져 가거라."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바퀴 옆에 섰다.』
(겔 10:7, 새번역) 『그 때에 한 그룹이 자기 손을 그룹들 사이에서 내뻗어,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서, 모시 옷을 입은 사람의 두 손에 넘겨 주니, 그는 그것을 받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겔 10:8, 새번역) 『그룹들의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과 같은 것이 보였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을 배제시켰다 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마치 장기알처럼 배치를 당하는 입장이지
사도들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반대로 움직임을 당하도록 성령에 의해
천사에 의해 장기알처럼 다루어지는 입장 뿐이다는 거죠

오늘 본문도 천사들이 등장한다 라는 것은
인간에게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는다 라는 
인간의 누락을 의미하는 겁니다
분명 인간들이 세운 성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전과 차이나는 성전의 기능을 지금 천사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로 주님은 인간 중심으로 일하시지 않고
성전 중심으로 일하십니다
이것을 또 오늘날 교회건물로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는

교회중심이라는 세가지 표어 개혁주의 신앙 슬로건 표어 처럼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움직이는 단체이다 라고 표어로써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 중심이라고 표어를 걸어놓았는데 
그런 교회중심이 아니다 라는 거죠

그런 교회중심이 과연 강도의 소굴로서의 교회인지
인간을 배제시키고 천사들만의 활동으로 움직이는 교회인지
일단 눈에 보이는 교회는 아니다는 거죠
천사들의 활동 곧 기능이 없으니까 말이죠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배제시킨 상태에서
때려죽어도 인간이 보여줄수 없는 성전의 기능을 천사들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라는 겁니다

고로 천사가 떳다 라는 뜻은
인간은 무조건 배제 시킨다 라는 겁니다

교회도 결국 인간을 누락시키는 의미이다는 거죠
마치 교회는 오로지 주님의 피 흘리심으로 이루신 작품, 새 피조물이다는 겁니다

인간이 개입된 교회는 결국 또 강도의 소굴로
의문의 반복으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저 사탄의 회인 유대교와 같은 식이다 말이죠
인간 쪽에서 뭘 자꾸 바치겠데요
주님쪽에서 넘어오는 은밀한 처소의 기능을 전혀 못 보여주는 것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요 고로 우상숭배로 귀결이 되는
인간의 탐심이라는 우상으로 도배가 되는 겁니다
결국 돈이지요
장사하는 집단인
종교오락 
종교라는 음녀 짐승이다는 겁니다

그들의 교회 그들의 성전은 인간 쪽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라고
인간 쪽에서 자신들이 지키고 
자기들이 쌓은 의를 바치는 개념이고

마치 남을 7번 용서했듯이
십계명 큰 계명 두 계명을 율법사가 지켰다 라고 우기듯이

그러나 정작 그런 인간을 배제시키고 성령으로써
새마음으로써 펼쳐지는 성전의 기능은 도리어
주님 쪽에서 피 발라주시는 7에 70번의 용서가 이미 떳기에

다윗처럼 세가지 죄악 
꼬끼오 도장 간음죄
꼬끼오 도장끈 살인죄
꼬끼오 지팡이 인구조사죄

이 세가지 죄악을 법궤에 담아서 피 뿌리시겠다 다시는 허물을 보시지 않겠다 라는
주님의 피 흘리심만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마귀의 반발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의 반발은

바로 그 이유없는 용서에 반발하고
법적으로 따지자
은혜
인애 자비 라는 반칙을 하지 말자 라는 겁니다

이 십자가 라는 부조리를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고자 하는 것이
사탄의 일 사람의 일이다 말이죠

탕자를 단번에 용서한 그 아버지의 사랑을
그 어떤 누구도 이해 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그 동안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는 맏아들은 그럼 왜
금가락지 살진소 새신발 새옷을 왜 안 입혀주느냐 말이죠

수고한 만큼 그 노동의 댓가 보상을 줘야 하지 않느냐 라는 겁니다

오늘날 모든 데모 모든 시위 모든 시민운동 등등의 모든 운동들은
바로 그런 노동에 대한 댓가를 보상을 달라 라는 겁니다

믿어줬으니 그 믿어준 노동의 댓가를 달라 구원을 달라 라고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한 그 노동의 댓가를

이것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기를 치는 사기술이 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지옥가도 시원찮을 마당에 뭐 남을 7번 용서한 그 보상을 달라꼬?

바로 그런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린 그 선악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이 거리끼는 걸림돌은 십자가에 의해서 실족해 넘어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어딜 감히 자기자신의 의를 들이내미느냐 말이죠
총명한 자는 짐승의 수를 세아려 보아라 말이죠
과연 함량 충만인지
함량미달인지

거룩 근처에도 못 가는 주제에 ~~~~~~~~
뭐 믿어준 댓가를 달라꼬?
뭐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부자청년)

(마 19:16, 현대어) 『[부자 청년, 낙타와 바늘귀;막10:17-27,눅18:18-27] 어떤 젊은이가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여기에 대비가 된 마른뼈 하나님의 군대로써 동원이 되는 최후의 전쟁의 이스라엘은
바로 쫓겨나는 어린아이 무능한 어린아이 이다 말이죠

뭐뭐뭐 잔뜩 지켰다 라는 부자청년이 하나님의 군대로써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
또는 아마겟돈 전쟁을 벌리는 자가 아니라
이 잃어버림 당한 자 어린아이
어이훠 어이훠 애들은 가라 훠이 훠이 쫓아냄을 당하는 이 어린아이가
천국전쟁에 동원이 된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곧 무능한 자 죽은자 라는 거죠

(마 19:13, 개역)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마 19:1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러니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촛불시위하는 놈들이
유대인들처럼 선악을 우기는 놈들이
독재보다 더한 독재 사탄의 회이다 라는 거죠

김용땡을 보라 말이죠 이낙연을 자기뜻대로 흐르는 방해자로 보고 욕을 대놓고 해요 글쎄

저런 놈들이 독재를 몰아내는 좌파라고 우기니
웃끼는 거죠
위선자들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좌파는 무조건 바리새인이라고 보시면 되고
마치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독재 로마 독재와 투쟁하는 독립군으로 보시면 되고요(하나님 나라 운동하는 가룟유다처럼 말이죠)

무슨 무슨 운동 하는 놈들은 다 이래요

그리고 우파는 바로 이런 좌파의 위선에서 놀아나지 않겠다 라고 우기는
종교=선악에 놀아나지 않겠다 라고 우기는 빌라도 라고 보시면 되요

이 두 마귀들 세력에서 그리스도인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인 십자가 라는 부조리
하나님의 절대저주를 기쁜소식으로

어서 어서 떠나자 탈출하자 라고 외치는 이 기쁜소식 십자가가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감사를 누리게 되는 거죠

또 헬라인 지혜자 정치가 빌라도 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거부하는 이 십자가를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십자가야 말로 하나님의 지혜의 절정이다 라고 외치는 겁니다

고로 인간의 활동은 좌파 아니면 우파
또는 중간에 서는 지 나름대로의 선악인 것에 반해

천사의 활동은 이 양쪽다 또는 중도이든 모조리 다 돌파 충돌해서
모조리 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네 천사의 바퀴의 기능을 하고 있는 즉 성전의 기능이다는 거죠
움직이는 성전
오로지 바로 직진
꽝 하고 박치기하는 마치 거북선처럼 그냥 들이박는 겁니다

그 바퀴사이에서 손이 나오는데 불을 쥐었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주님은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말이죠

세상을 불 지르러 왔다 라는 겁니다

(마 10:34,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 개역)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개역)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개역)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개역)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9, 개역)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눅 12:49, 개역)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0, 개역)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 12:51, 개역)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오늘 본문에 네 천사의 손에 무엇이 손에 쥐어집니까?
불입니다

법궤를 이동 시키는 이 마차는 이 수체를 이 천사들은 네 천사 동서남북 바퀴들은
무엇을 담고 있나요?

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곧 소멸케 하는 불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금 이동시키고 있다 말이죠

(신 4:24, 개역)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그것을 아무리 좋은 의도로 본능적으로 선악적으로 떨어진 법궤를 잡았다 해도
웃사는 즉사 하는 겁니다

어딜 감히 더러운 손으로 잡냐 말이죠

웃사의 이런 선악적인 신체 곧 사망의 몸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앞앞의 글에서는 또 지난 주 모든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 구원케 해 달라고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더라 말이죠

(롬 8:21, 개역)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아니 탈출할려면 잔칫집에 가야지
왜 고난에 참여할까요? 예수님의 고난에 말이죠
잔칫집은 허구요 허상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모든 피조물들이 당하고 있는데
왜 잔칫집에 갑니까
방주는 예수님의 고난 뿐인데
자 그러면 모든 피조물들은 다 아는데
인간만 몰라요
왜? 나는 옳다를 우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틀린 것을 발견하면 그 틀린 것을 수정해서 옳은 것으로 나아갈려고 하겠지요

뭘 해도 틀렸다 가짜다 죄인 중의 괴수다 라고는 안 여기는 겁니다
즉 주님의 고난이라는 방주 초상집에 때려죽어도 안 가겠다
임마누엘을 안 구하겠다 라는 겁니다

고로 웃사처럼 똑같은 사고방식의 사람을 베드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절대로 십자가 지시면 안됩니다
정그러시면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즉 나는 옳은 것을 추구하겠다 라는 선악 추구로 인해서
주님의 고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잔칫집으로 주님을 인도하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의 기능과 반대죠
그래서 사탄아 썩 물러가는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다 라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광야라는 죽음- 그 죽음의 삼일 길 ? 그리고 어린양 희생제사 이삭제사처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구나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겠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키겠다)

그래서 예수님을 떨어지는 법궤 잡듯이 안 됩니다
십자가 지시면 안됩니다 라고 가로막는 겁니다

마귀가 이 십자가를 거부하듯이 말이죠
애굽왕이 왜 자꾸 초상집에 갈려고 하니
여기 애굽 땅 잔칫집에서 제사 드려라
제사 드릴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마

안된데요
왜 안 될까요?
그게 바로 사람의 손으로 잡는 법궤처럼
은밀한 처소의 기능
숨어계신 하나님의 기능을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뭐 제사 받고자 번제 받고자 환장하신 분이 아닙니다

거꾸로 주님 쪽에서 주시고자 함입니다
주시는 분이지 받는 분 아닙니다

뭘 줄려고?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입니다
피 바르겠다 라고

네 맞아요 그래서 모세가 변화산에서 느닷없이 나타나서 죽어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왜 피를 바르지???
인간의 눈에는 마귀가 안 보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비유에서 정작 강도는 안 보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사건에서 정작 그 여인과 함께 간음한 남자는 안 보입니다

바로 이 안 보이는 것이 실상이요 진짜 현실이다는 겁니다
주님은 존재라고 보이는 것이다 라고 인간의 존재성이나 행함 등을 현실이라고 우기는 
그 인간을 상대로 하지 않고

안 보이는 마귀만을 현실로 간주해서 그 현실만을 상대하시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이다 라는 현실을 보고서 해방을 원하듯이 말이죠

인간의 피부를 한 꺼플 벗겨보면 썩어짐의 종노릇이 마구 마구 드러납니다
나이가 들어서 늙으면 몸이 썩어들어가는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겁니다

젊은이는?
쉽습니다
배가 고파오면 밥을 먹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밥을 줄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면
바로 죽음이 썩어짐의 종노릇이 스멀 스멀 피어올라옵니다

삼시새끼 꼬박 꼬박 먹여줘야 한다 말이죠

이 사망의 몸에서 사망이 자꾸 올라와요

배고픔을 해결 못하면
도적질 아니면 살인까지 갑니다

이 배고픔 이라는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이 연결이 되면
내 제사는 왜 안 받아주냐 라고 가인의 아벨 죽이는 사건으로 이어지듯이
배고프면 눈에 비이는 것이 없어요
사랑에 고프면 살인으로 이어지는 
이것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을 사도바울이 늦게 성령을 받아서
십자가의 영을 받아서 비로소 알게 되었지

율법의 달인이였음을 주장할때는
모든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 되기를 바라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듣도 보도 깨달은 적이 없다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도록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다 막는 단절로써 선지자 특히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겠다 라는 겁니다
선지자는 마치 천사의 기능이거든요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숨어계신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고로 뭘 해도 원망과 뭘해도 죄악 세가지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지요
마귀만을 상대로하신 주님께서 친히 성전되셔서 성전의 기능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제사장 기능 말이죠

만약 웃사가
만약 베드로가

만약 눈에 불이 활활활 타오르는 불타는 법궤상자가 떨어지고 있다면
때려죽어도 안 잡았을 것이다 말이죠

이것도 본능적으로 말이죠
잡니 마니 판단에 앞서서 말이죠
판단 할 필요도 없이 말이죠

인간의 손에 지어진 손은 놀랍게도 인신제사까지 가버려요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자기자식까지 잡아먹는
부모까지 잡아먹는데 까지 가는 겁니다

만약 내 자식이 간음죄 저지르고
내 부모가 살인죄 저지르면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로 돌삐를 들어서 돌로 쳐 죽일수 있겠냐 말이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말이죠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거기까지 가 버려요 글쎄

주의 전을 사모하면 할수록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까지 잡아먹었잖아요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말이죠

눈 하나 깜짝 하기는커녕 도리어 놀려먹지요

하하하 호호호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짖는 자여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
왜 너 자신은 왜 못 구원하느냐???????

자기 아들을 잡아먹듯이
자기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는 우상숭배의 끝판왕까지 가는 겁니다
장자 죽음까지 가는 겁니다

이런 아들 구하겠냐 말이죠

옆에 다니엘 욥 노아 라는 뭐 신앙의 영웅이라고 사람들이 억수로 쳐주는 자들이 있다 치자
그들 덕분에 그래 그래 너는 구원 받았다 치자
그러나
니 아들은 구원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아니 그러면 구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구원 보다 못한 저주나 마찬가지 인데

내가 구원 받은 것이 도리어 저주가 되는 겁니다
아들이 지옥에 있는데 내가 천국가서 뭐하냐 말이죠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니 자기 의로움을 손 떼라 라는 겁니다
똥덩어리 배설물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에 복종 하라 말이죠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7에 70번 용서인 요나의 표적에 순종하라 라는 겁니다

그 피 발라주심이 먼저 떳기 때문에
다윗언약을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저런 때려죽여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 다윗도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른 저 다윗도 용서 받았다 라는 겁니다

아니 왜요? 마귀의 선악의 기능을 거부하고자 함 때문에 말이죠

육의 소욕은 선악의 소욕이다 말이죠
그러나 성령의 소욕은 십자가의 소욕이다 말이죠

육의 소욕은 남을 7번 용서하고자 하는 소욕이다 말이죠
그러나 성령의 소욕은 도리어 남을 사랑하는 자가 율법의 완성이다 라는
그 예수님이 도리어 나에게 7에 70번의 용서를 하는 소욕이다 말이죠

이 두 소욕이 서로의 소욕을 못하게 해요

십자가의 피 용서는
선악의 소욕을 거부하고

선악의 소욕은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거부하는 겁니다

자기 의로움은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의로움을 거부하는 겁니다

죄인을 부르러 왔지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닙니다

그럼 의인을 구원자를 거부하고 우상을 원하는 겁니다
물론 그런 의인은 유대인처럼 가짜 의인인 거죠

그 가짜가 진짜로 사람들에게 통용이 되고
진짜 현실을 몰고오신 예수님은
가짜로 취급 당해서 죽임까지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로 방주를 형성하신 겁니다
십자가 라는 방주를 다 이루신 겁니다

여기에 모든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고자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겁니다

인간만은 선악을 추구함으로써
마귀를 잡고자 설치한 나무의 열매를
왜 쓸데없이 선악을 알아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때려죽어도 낮아질수가 없도록
높아지도록
나는 무조건 옳다 라는 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바로 그런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십자가를 알리시는 겁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으시는 겁니다

사탄의 깊이가 뭡니까 욥처럼 당신 시킨대로 했는데 왜 하나님은 배신 때리느냐 라는 겁니다
주님은 욥 너 비켜 나는 지금 마귀와 내기 중이야
전쟁 중이야
선악과 나무로 마귀를 잡고자 하고 있어
너 비켜
너 머리 치워 머리 치워 틴틴파이브
너 누락 되어
잿더미를 머리에 뿌리고 너 누락 돼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에
이 하나님의 의에 복중해 무릎 꿇어

비로소 총명함이라는 성령을 입어서
짐승의 수를 비로소 셀수 있게 되더라 말이죠

자기가 저 마귀에게 놀아나서
선악을 추구함으로써
내가 옳았지 않았느냐 라는 자기 의로움을 내세웠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주장했다 말이죠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당신 시키는 대로 했는데 하나님 배신 때리기요?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십자가의 피 용서
7에 70번의 용서가 없어서 망하더라 말이죠

불뱀에게서 물려서 죽는 겁니까?
원망해서 그 원망한 원인으로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으니
불뱀에게 물려 죽고
불뱀에게 물려 죽어 지옥가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라는 음녀와 국가 라는 짐승이 주장하는
선악의 소욕입니다 죄의 소원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불뱀에게서 물려 죽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까지 소멸케 하시는 둘째 사망을 몰고오신
예수님의 죽음 곧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라 라는
십자가의 소욕을 보라 라는 겁니다

성령의 소욕 은혜의 소욕을 보라 라는 겁니다

고로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안 쳐다봐서 지옥 가는 겁니다

모든 종교의 메시지에서 벌받는 것은
선악의 기준이다 말이죠 선악의 소욕이다 말이죠

그러나 복음의 기준은 바로 그런 선악의 소욕에 반대되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십자가의 소욕을 복음의 기준으로 삼았다 말이죠

고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도록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혹시나 듣고 깨달아 고침이 될까봐 주님은 걱정 하실 정도로

십자가를 안 쳐다보도록 되어 있는 작정이 된 자가
선악의 소욕으로써 십자가까지
7에 70번의 용서의 소욕까지 다 가지게 되면
주님은 두렵고 떤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막 4:12, 개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죄 사함을 얻지 못하도록
선지자를 보낸 것인데

어라 죄 사함 받아버리면
주님의 뜻에 반하는 상황이 된다 말이죠

사랑의 법칙이 무너지는 겁니다
그러니 너는 선악의 법칙대로 죄사함 받지 못한다 라는
주님 자신의 작정하심을 보여주는 겁니다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주님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지옥 갈 놈은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낼 자는 반드시 천국 보내시겠다 라는
확증을 
또렷함을

뭐 인간처럼 흐지브지 흐릿하고 모호하고 미완료적이고 의문의 반복이 아닌
십자가 가 밝히
또렷히
명료하게 
그 정도로 미래완료라는 종말 곧 결과를 마침을

자 마침이 없는 의문의 증서를 지키는 자들을 겨냥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기만 하면
1초 만에 순식간에 낫는데

꼴에 지가 뭘 안다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으면서
사랑도 없으면
사랑의 용서 7에 70번의 용서를 받아 본적이 없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일만달란트 탕감을 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에게 에게 불뱀에게 물렸는데
마귀에게 물렸는데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본다고 낫습니까
약을 줘야지 약을

불뱀에게 물렸는데 사단의 가시를 찌르면 낫겠습니까?
거룩한 성전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 천사들이 두 손으로 바치는 그런 기적을 줘야지
낫지

쳐다 본다고 낫냐 말이죠

네 맞아요
제발 좀 쳐다보지 말라 라꼬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 라고 하신 겁니다

고침을 받을까봐 두려워 하신 분이 벌벌벌 떠시는 분이
지금 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 곧 예수님 이라니깐요

그 자리가 내 자리인줄 아는
성령을 받은 자 외에는
단절의 영을 받은 자 외에는 절대로 못 보도록
고개를 돌릴까봐

그렇게 쉬웠던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을
제발 쳐다보지 말라 라꼬 고개를 못 돌리도록 막는 분이
단절의 영이 바로
성령의 소욕이다 말이죠

그 성령의 소욕처럼
자 보세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의 기능과 완전 정반대로써
방금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못하도록 하시듯이

지금 에스겔 10장에서 네 천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성전의 기능은
거룩의 기능은 뭡니까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저주 받았구나

십자가를 통해서 진짜 현실을 보게 되었구나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통해서 진짜 현실을 보게 되었구나

뭐 약발라서 낫는 차원이 아니라

약 발라서 나아본들 이 세상 자체가 선악의 세상으로써
마귀의 소욕으로써 예수님까지 죽이는 세상이로구나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해서든 살아남을려고 하는 내 자신이
이미 불뱀에게 물린 자인데

주여 고쳐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해야 할 판국인데

환자로써 의사선생님 제발 고쳐주세요
나는 소경입니다
이 세상 자체가 깜깜한 소경의 세계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건져달라고
십자가 라는 초상집의 울음을 터트리면서

자기 죄로 우는 자를

성전을 새롭게 발생 시키시는데
새피조물을 발생 시키시는데

우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살육하는 기계 차가운 기계처럼
전기톱 살인사건 이라는 제목의 영화처럼
우리를 짤라서 마른뼈 만들어 놓고서
울게 만드심으로써

자기 죄로 우는 자에게 피 바를려고
십자가가 먼저 떳는데

이 십자가의 증상물 새피조물이
환자가
죄인이

나 소경입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진짜 현실이신 예수님 당신을 보기를 원하나이다

정작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은 예수님을 보는데

건강하다
의인이다 날 때부터 죄인이 아니다 자기 죄인지 부모 죄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날때부터 부정한 자가 아니다
소경 아니다 
볼 줄 안다 라고 했던 자들은

예수님을 때려 죽어도 못 보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못 보고

울리는 꽹과리
스펙 자기 의로움을 의지하고
자기 인생을 의지하고 있으니

예수님이 보일 리가 있겠냐 말이죠

믿음은 인간의 믿음
나 라는 인간의 믿음에서 출발하는게 아니라
나는 살아 있다 생존하고 있고 숨쉬고 있다에서 출발하는게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의 죽음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에게서 출발한 믿음이기에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도리어 못듣도록 차단하고
못 보도록 단절 시키는

죄사함 못 받도록
소경이면 고쳐달라고 할 것인데
소경 아니다 라고 하니
고쳐 달라고 할 리가 없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에 복종치 않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십자가의 사랑을 거부하는

아니 왜 거부할까요?
소욕이 달라요 소욕이

즉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다

자기 의로움을 있고요
자기의 건강함이 있고요
자기의 이레에 두 번 금식 십의 일조 저 토색하면서 남의 돈을 삥뜯어서
로마에게 바치고 있는 저 매국노 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할 정도로
감사한 인간인 자기자신을 믿고 있기에

이 믿는 구석으로써 구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아하스 왕이 뭐가 아쉬워서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겠냐 말이죠
주변에 연합군이 쎄고 쎈 널리고 널렸는데

누가 주여 죽어주세요 라고 나올자가 있겠냐 말이죠

자기가 그 정도로 죽어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 만이 죽어주세요 라고 나오지

잃어버림 받아 마땅한 자
죄인
죄인 중의 괴수 만이 부를수 있는 것이 십자가 이지

자기의 의로움이 탈탈탈 다 털릴턱이 없는
멋들어진 자기의 거룩함이 선함이 옳았음이 있는 이상

이 모욕적인 십자가
이 부끄러운 십자가 라는
주님의 상처를 때려죽어도 노래 못 하는 겁니다

누가 가르쳐 줄것이며
누가 배울려고 하겠냐 말이죠
가르쳐 주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이 단절 된 새노래를 말이죠

율법을 지키면 한 배 축복인 것에 반해
율법을 어기면 세 배나 저주이다
그 저주 속에
자기 부모를 잡아먹고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데 까지 간다 라고

농담으로 여기고
마음에도 없는데 억지로 껍데기까지 지키는데 성공했다 라고 우기지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요 스펙으로 일자리 하나 잡고자 하는 생존의 정당성

나 당신 시키는대로 했으니 배신 때리면 나 삐질 거야 라는
이 정당성만 우길 뿐이다 말이죠

나는 어떻게 해서든 옳다 라는 선의 자리에 앉기 위해서
율법은 시이소처럼 내가 선해 질려고 남을 악으로 취급해 버리는

이 정도로 죄의 소원의 심각성을 우리가 알 턱이 있겠냐 말이죠
이 사망의 몸을 들추어내는 것이 율법의 취지인데

도리어 율법대로 돌삐를 들고 살인의 정당성을 우기더라 말이죠

율법은 간음한 여자를 돌삐로 치라고 준게 아니라
그렇게 돌삐로 쳐 죽일려고 하는 너가 돌삐 맞아 죽어야할 자이다 라는 

죄 아래 갇혔음을 보여주는 것이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 갇혔음을
선악의 소욕에
죄의 소원에 갇혔음을 알려주는 것이 율법이요 몽학선생으로써
너의 사망의 몸을 장대 높이 달리신 인자가 해결해 줄수 있다 라고

너는 환자야
죄인이야
살인자야
간음자야
인구조사한 악령이 들어간 자야

어서 고쳐 달라고 저 분에게 달려가렴
의사를 쳐다 보렴
장대 높이 달린 예수님을 쳐다보렴

고쳐달라고 달려갔더니만
내 병듬 내 죄인 됨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 들 정도로

허걱

뜨악

처참하기 짝이 없는
어린양의 갈기 갈기 찢겨진
제사장 몸에
온 옷이 피범벅이 되어서
붉은 옷으로 도배된양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고쳐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니 그 정도로 우리가 심각한 마귀의 종노릇에
썩어짐의 종노릇에 갇혔단 말입니까

이런 나를 구원하신다니
아니 내가 뭐라꼬

본인이나 구원 받아야 할 정도로 흠 없는
죄 없는 분이

왜 대신 죄를 뒤짚어 씌스는 겁니까

말도 안됩니다 말도 안돼

잠잠 할 수 밖에 없어요 잠잠

뭐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자기 의로움을 감히 뻔데기 앞에서 내밀수 없을 정도로
절대저주
처참하고
모욕적인

그 정도로 나의 수치를 가릴려고
온 몸에 피를 튀길 정도로 말이죠

이 어린양의 갈기 갈기 찢기는 피가
물두멍에 제물을 씻기면서 피까지 뒤썩은 그 물과 피가

온 바다를 덮을 정도로
단번에 단숨에 급히 신속하게 다 이루신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마귀를 겨냥한 신속한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고 일하심인 완벽한 거룩 절대거룩이시다 말이죠

여인아 너에게 돌삐 던질려고 한 자가 있는지 보라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빨리 용서하기 있나요?
버선 발로 이미 멀찍이 나와서
상거

서로 상
거리 거

그 먼 거리를 순식간에 빨리

벌써 용서하셨기에
맨발로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말이죠

이 사랑이 또렷합니까

성전을 46년 동안 지어도 아직도 못 짖고
남을 겨우 40년 동안 겨우 7번 용서하는 그 의문의 반복이 또렷합니까?


자기의 의로움이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또렷합니까?

십자가의 피 용서가 또렷하고 밝히 보입니까

어딜 내가 내 자신에게 자꾸 사기를 치냐 말이죠

바로 이런 참성전 되신 예수님의 성전 되심의 기능을
천사들이 가차 없이 인간의 성전기능을 소욕을 거부하면서
성령의 소욕
새마음의 소욕으로써
참성전
움직이는 성전
곧 인자의 기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인자의 기능에 천사도 흠모할 정도로
탕자 하나가 돌아오면 천군천사들이 잔치를 벌릴정도로

죄인 하나를 찾고자
의인 99명을 버리시는 겁니다

아니 잃어버린 자 하나를 찾고자
잃어버린 동전 한 드라크마를 찾았다 라고

안잃어버린 자는 버리는 겁니다
한 드라크마가 아닌 돈은 버리는 겁니다

한국 돈으로 4.5원
즉 5원을 찾았다 라고

잔치비용 수백 만원을 허비하더라 라는 거죠

누구처럼? 예수님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장사 치르고자
수백만원이나 되는 
우리 때는 수백이 컸지만
지금은 수천만이 비로소 가난한 자에게 체감이 되니까 말이죠
수천만이나 되는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을 찾았다 라고
내 낭군을 찾았다 라고
땅에 허비 하듯이 말이죠


자 이렇듯
법궤의 기능
성전의 기능
율법의 기능은
천사의 기능은

정작 율법의 취지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할 자는 바로 율법을 지킬려는 바로 너
그래 너 그건 너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 놈이 바로 너다 라는 겁니다

선지자의 기능
천사의 기능
성전의 기능은

바로 나를 이유 없이 무조건 죄인 중의 괴수 만들기 이다는 거죠

아니 왜?????

(마귀와 내기 했거든요
즉 마귀와의 전쟁입니다
인간은 잊어버렸다 라고 끝내버려도
주님은 잊지 않고 다시 소환하시는 겁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전쟁을 말이죠

마귀가 너를 시체 만들기 전에
심지어 시체로 만들어도
지금 당장 나의 피에 나 예수의 생명에 접붙이고자
내 죽고 너 살아라 라는

예수님의 믿음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 아닙니다
예수님이 친히 참성전 되시는 기능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모든 피조물들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천사도 말이죠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그저 끝까지 탐심이라는 우상만을 주장할 뿐입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선을 취하고 악을 버렸다 나 옳지 않느냐 라는 
이 마귀를 잡을려고 놓은 선악이라는 올무를
율법이라는 올무를
쓸데 없이 지켜가지고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군대를 덮썩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여 )

그러니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사랑, 7에 70번의 용서,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을 거부하고

나 옳았는데 왜 하나님은 배신 때리느냐 라는 자기의 의만 주장하니까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를 알 턱이 없지요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를 말이죠

그래서 자꾸 도대체 원하는 것이 뭐요? 케 보이 
자꾸 묻는 겁니다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아까전까지만 해도 예수라는 인물을
나의 물 위를 걷는데 이용해 먹는
내 편인줄 알았는데
어라 배신 때리고
숨겨든 질투의 사랑
죽음까지도 이기시는 사랑
나를 이기시는
이 사망의 몸까지 이기시는 사랑
저 풍랑이라는 죽음도 이기시는 사랑인 당신 도대체 누구냐
왜 그 동안 당신의 전체를 숨겼느냐
당신을 이용해 먹을려는 나의 탐심을 나 라는 우상을 까발리는
이 모욕감을 주는
부끄 부끄 머리에 숯불을 얹인것처럼
졸지에 하나님의 원수로 들통나 버린 
그런 원수인 나를 사랑하는 당신 도대체 누구시냐?
도저히 당신을 알수가 없구나
난 분명 당신 알았다 라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저 무시무시한 풍랑 보다 더 무서운 분이라니

두렵고 떨림이 밀려오는
도대체 당신 누구요?????)

아니 당신 시킨대로 했는데 왜 배신 때리기요
배신 때리지 말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아니 왜
이유나 알아 봅시다
말을 해요 말을

성전은 하나님이 계십니다
고로 모든 입은 함구하고 입다물고 잠잠하라 말이죠

죽었다 복창을 속으로 할 수밖에 없는
벌벌벌 떨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시편 73편에 아삽이 따졌죠
그런데 성전에 들어갔다 나오니
잠잠해 집니다

아니 도대체 믄 일이 벌어졌길래 잠잠할까요?

밤새도록 아토피 피부병 때문에
벽돌로 박박 끍어대던 욥이 그렇게
따지고 따지고 따진

올드보이의 명대사

오대수 씨는 말이 너무 많아요

그 말이 말로 퍼지고 퍼져서 자기 누나를 살해한
자살로 몰아가버린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는 독사의 독인

그 말 많은 자가 갑자기

입이 쑥 들어가서 잠잠케 되었다????

말 많은 나의 입을 쑥 들어가게 만든 당신 도대체 누구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즉 비로소 알았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혀까지 스스로 짜르게 하고
말을 멈추게 만들겠다 라는

그 너무 너무 나대는 모습을
잠잠켸 하는 것은
자살도 아니요
혀짤라냄도 아닌

하나님의 죽음입니다

허걱?

헉 ~~~~~


이 하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성전의 기능이다 말이죠

너거들 허물
그 목구멍이 포도청인 열린무덤
그거 잠잠해 해 줄게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천사가 보여주는 성전의 기능입니다
곧 참성전 되신 예수님 이라는 인자의 기능입니다
새성전은 예수님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세운 성전이
왜 강도의 소굴 됨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를
비교하고 울어야 할 판국이다는 거죠

남들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도

나를 성령의 전으로 만드시듯이
나도 나를 강도의 소굴 안 만들겠습니다 라는
그 숙제 포기 하라 말이죠

성령의 전은 도리어 나의 죄악 세가지를 잡아내고자
끝까지 성령의 소욕을 펼치고

그 소욕에 안 말려들려고
우리는 선악을 끝까지 우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 열심히 특심이라꼬

그거 무너진 날
여리고성처럼 말이죠

내가 무너진 날
이것이 구원의 날이요
희년이요 기쁜소식 입니다

비로소 예수님이 무너진 십자가라는 진짜 현실을 보게 되니 말이죠

아이고 이 아토피 피부병은 당신의 절대저주인 십자가 구멍에 비하면
진짜 현실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 주름잡기 이군요 라고

입을 함구하고 머리를 쳐박고 생일을 저주하고
쳐박은 머리에다가 재를, 잿더미, 불에탄 재, 찌끄래기를 쓰레기를 연탄재를 뿌리면서
다시는 피부병 낫게 해 달라고 안하겠습니다 라고

함구

입 다물기

이미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다 이루었기에

우리는 그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우는 자로
잃어버린 자로 만드시는

다 이루심의 증상물로 삼으신
새피조물로 이 악마의 세상에 내던져 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내 몸에 피우기 위해서 말이죠

모든 입술을 잠잠케 만드시고자 말이죠

아삽도
욥도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나만

나만 특심이였다 나만

그 잘난 나

오로지 내 홀로 남았던 나 조차도

삭제 시키고 잠잠케 하는

이 성전의 기능을 보고 입이 떡

자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 6장이 오버랩 되면서 같은 의미로 나타나는 듯 보입니다

(사 6:1, 개역)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2, 개역)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 6:3, 개역)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4, 개역)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개역)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개역)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진짜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에서 땅의 성전으로 넘어오니까
뭐 깨끗하다
나 정당하다
나 옳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배신 때리느냐 등등의 
그 인간들의 거룩이
성전에 바친 것들이 거룩은커녕 오예물
배설물 이였음을 함량 미달이였다 말이죠

도리어 이 부정한 입술을 
이 수치를

이 사망의 몸을
누가 건져주지 않으면 안될 판국이였다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준게 아니라

나는 뭘 해도 물에 빠진 자 이구나

누가 이 사망에 빠진 자를 건져주랴 라고 울어야 할 판국이다 라는 것을
율법이 알려주면서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써

저 분이 인애와 자비를 펼치시는
사랑이시다

너희가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화목제물을 주었다

이 화목제물로 인해서

제사장은 온 몸에 처참하기 짝이 없는 어린양의 죽음을 보게 된다는 거죠

모세 조차도 율법의 대표자 조차도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 별세해 주소서 라고

종교적인 믿음으로 도배되어있던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구원은 내가 달성한다 라는 그런 가룟유다에게

비싼 향유를 부어서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장례 장사 치르는 모습은
인간의 믿음에서는 종교에서는
오락에서는 도저히 포착할 수가 없는

죽음에서 출발하는 믿음이다 라는 거죠

가룟유다의 저런 종교오락의 믿음은 누가 옳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라는 것이고
이것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고

요나의 표적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이 큰 물고기 뱃속 
바다 깊은 저 어두운 스올
지옥
무저갱 속에서

생명을 만날줄
생명 되신 예수님이 이 낮은자리
이 지옥까지 내려오실줄
이 구멍에 빠진
이 사망의 몸에 빠진
이 잃어버린 자를 되찾으러 오신

하나님의 의요 거룩인줄

이 완벽한 심판과 완벽한 거룩을 입히시는
일곱 되신 줄 몰랐다 말이죠

함구케 되어요

잠잠케 됩니다

뭐 그리 불평 불만 원망 한가득한 그 쉴새없이 나불거리던 입이
갑자기 합쭉이가 됩시다 라고 입을 못 떼는 겁니다

허걱 뜨악

헉 ~~~~~~

(합 2:20, 개역)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14, 개역)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뭐 할 말 있니???

없슴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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