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4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어 주지 않으심 (겔 30,20-2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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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4 애굽 바로 왕의 팔을 꺾어서 싸매주지 않으심 (겔 30,20-26)
2024.11. 3

불뱀에 물려 죽게 하시고 장대높이 달린 인자 못 쳐다보게 막으심,
팔을 꺽는 것도 억울한데 일부러 안싸매어준다는 것이 더 약을 바짝 올리시는 강퍅케 만드심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애굽나라 (모든나라 애굽화) (겔 30, 1-21)
에스겔 2019 2024. 10. 12. 06:56
21-083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애굽나라 (천국운동 가룟유다) (겔 30, 1-21)

〈에스겔 30,20-26,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8쪽, 찬송가 217장 새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찬송가 519장 새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찬송가 217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새찬송가 425장〉

1.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2.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3.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병들어 몸이 피곤할 때 
   권능의 손을 내게 펴사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4.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거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아멘


〈찬송가 519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새찬송가 461장〉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 받았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3.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에스겔 30,20-26,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8쪽〉

(겔 30:20, 개역) 제십일년 정월 칠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0:21, 개역) 인자야 내가 애굽 왕 바로의 팔을 꺾었더니 칼을 잡을 힘이 있도록 그것을 그저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느니라
(겔 30:22,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왕 바로를 대적하여 그 두 팔 곧 성한 팔과 이미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 손에서 떨어지게 하고
(겔 30:23, 개역)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칠지라
(겔 30:24, 개역)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고 내 칼을 그 손에 붙이려니와 내가 바로의 팔을 꺾으리니 그가 바벨론 왕의 앞에서 고통하기를 죽게 상한 자의 고통하듯 하리라
(겔 30:25, 개역)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고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겔 30:26, 개역) 내가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0:20, 새번역) 제 십일년 첫째 달 칠일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0:21, 새번역) "사람아, 내가 이집트 왕 바로의 한쪽 팔을 부러뜨렸다. 치료하고 싸매야 그 팔이 나아서 칼을 잡을 수 있을 터인데, 치료도 못하고 싸매지도 못하고 약도 못 바르고 붕대를 감지도 못하였으니, 그가 칼을 쥘 수 없다.
(겔 30:22,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집트 왕 바로를 대적하여, 성한 팔마저 부러뜨려 두 팔을 다 못 쓰게 하고서, 그가 칼을 잡을 수 없게 하겠다.
(겔 30:23, 새번역)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 놓고, 여러 나라로 헤쳐 놓겠다.
(겔 30:24, 새번역) 내가 바빌로니아 왕의 두 팔을 강하게 하고, 내 칼을 그의 손에 쥐어 주겠지만, 바로의 두 팔은 부러뜨릴 터이니, 바로가 바빌로니아 왕 앞에서, 칼에 찔린 사람처럼 크게 신음할 것이다.
(겔 30:25, 새번역) 내가 바빌로니아 왕의 두 팔을 강하게 하면, 바로의 두 팔은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내가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내 칼을 쥐어 주고, 그가 그 칼을 뽑아서 이집트 땅을 칠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겔 30:26, 새번역)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 놓고, 그들을 뭇 나라로 헤쳐 놓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겔 30:20, 현대어) [애굽 군대의 패배와 멸망]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지 ㄱ) 11년째 되던 해 1월 7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ㄱ. BC 587년 3-4월)
(겔 30:1, 현대어)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겔 30:1, 쉬운) <심판받을 이집트>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30:13, 쉬운) <이집트의 우상을 없애 버리시다>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우상들을 없애 버리고 놉 성의 우상들을 헐어 버릴 것이다. 다시는 이집트에서 왕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온 땅을 공포에 몰아넣을 것이다.
(겔 30:20, 쉬운) <무너지는 이집트> 십일 년 첫째 달 칠 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먼저 소제목 달린 번역을 올려 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짜가 나오길래
앞의 29장이 궁금해서 올려 봅니다

(겔 29:1, 현대어) [창조주를 자처한 죄]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제 10년 10월 12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ㄱ. BC 587년 1월)
(겔 29:17, 현대어) [하나님의 도구인 느부갓네살]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27년째 되던 해 정월 초하룻날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ㄱ. BC 571년 3-4월)

(겔 29:1, 쉬운) <이집트에 대한 예언> 십 년 열째 달 십이 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29:17, 쉬운) <이집트를 바빌로니아에게 주다> 이십칠 년 첫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생뚱맞게 날짜가 나온다는 말은
주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날짜이지
또 인간은 삼위일체를 주장함과 동시에
사위일체를 말하는 인간 자기 존재를 말하기 위해서 땡길수 있는 그런
수의 개념이 아니다는 거죠
도리어 인간은 이런 숫자에 수에 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배제 단절되는 식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날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을 말하기 위함이다 라는 거지요

1월 1일 새해 란 인간을 위한 까치 까치 설날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 곧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기능이지
존재는 도리어 배제되는 겁니다
아무리 하나님 존재를 믿~~~~~~~숩니다 라고 자기 존재로 땡길려고 해도
포착 불가 해석불가로써의 수 개념이기에
하나님은 존재가 아니라 기능 곧 이름으로 증거되실때에
도리어 존재는 삭제되고 누락 되는 식이 되니
존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음 곧 기능 즉 사건으로 등장하시는 겁니다

1월 1일 사건은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1월 7일이라는 창조(유월절) 후 첫안식날부터 7일 즉 무교절 기간임과 동시에
무교절(무교병을 7일간 누룩 제거가 된 빵 먹는 즉 거룩으로 도배하고자 찌끼 제거한 거룩한 ㄴ날인 거지요) 속에 있는 초실절 1월 1일 유월절의 삼일째 날로써 부활되신  첫 열매 초 실 열매실 이니까
다 이루심의 그 완료됨 앞에 안식 평화의 날을 말하기 위해서
누가 쫄딱 망해야 하는 미완료인 사망 같지도 않은 사망아 누구를 쏘느냐 라는
제대로 죽이지도 못하면서 왕노릇하는 그 사망권세가 망해야 평화가 오니까 말이죠
이 여호와의 날을 말하기 위해서 두 언약의 한 세트로서 사망권세를 불러들이시는 겁니다
애굽의 바로왕을 지옥에서 불러와야 하고
그 애굽이 있다 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누구와 동행하시는가를 말하기 위해서
애굽 없이는 이스라엘이 설명이 안되고
이스라엘이 없이는 애굽이 설명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 자리에서
여호와가 창조주 되심을 말하기 위한 날로써
심판의 자리에 놓이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자리에서
구원의 날 즉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신원한 여호와의 날
농부의 기쁨 포도를 수확해서 포도주를 짜는 날이 되는 겁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솔로몬의 영광 보다
들에 핀 백합화를 귀히 여기신다 라고 해 놓고서는

왜 아궁이에 던질 풀도 귀히 여기신다 라고
귀히 여기실 것 갗으면 아궁이에 내일 던지지 말아야지 왜 던지실까

아 이 아궁이에 던져진 자리가
곧 광야이고 이중 광야 이중 죽음인 절대죽음이지요
그 심판의 자리가 곧 나의 구원의 자리가 아닌
여호와의 자리인
곧 구원자의 자리이다 라는 거죠

결국 구원자의 자리를 마련하시고자 하는 거죠
네 심판 주의 자리인 거지요

그러니 내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자의 자리를 구원하기 위한 겁니다
심판 주가 누구신가를 말하는 자리 곧 기능을 우리를 통해서 마련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미끼로써 이스라엘은 세상에 내던져진 것이고
애굽은 반드시 그 미끼를 물어야만 하는 자로써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겁니다

고로 미워하기로 작정이 된 자 그것도 미운 짓을 해서 그렇게 되면
그 미운 짓 이라는 원인을 바꾸면 안 미워하겠지요

그런데 날 때부터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것은
이유 없이 미운 겁니다

여기에 모든 인간이 꼴에 찔리는 구석과 동시에 반발이 있는 겁니다

자기들은 그동안 멋대로 살고 멋대로 천한 그릇 귀한 그릇 마음대로 해 버리는 하나님의 짓을 해 놓고서는 그것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된 모습이지요
그래놓고서는 진짜 하나님은 그러면 안된다 라는 식으로

또 여전히 취사선택을 해 버리는 겁니다
제발 하나님아 나쁜 하나님이 되지 말고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 되어 달라 라고

니가 만든 율법을 니가 깨면 되겠니 라고 말이죠
그런데 율법은 바로 그런 선악을 아는 인간을 죄 아래로 가두리 위한 올무였거든요

주님을 사랑해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게 아니라
죽기를 무서워서
심판을 견디지 못해서 법을 쥐게 되니까
어라 서로 그렇게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법을 지키니 서로가 서로에게 추켜세워주면서
모세의 자리에 앉게 되니 율법 지킨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기 유익으로 돌아오게 되는
사랑과는 사실상 먼 것인을 알게 되는 법과 법의 틈사이 허점을 노리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일부러 틈을 갈라놓았는데 그 올무를 덮썩 무네요 글쎄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 본인이 
도적질 하지 말라는 배우는 학생의 목숨을 도적질 하는 
이 틈의 간극을 인간은 매꿀 방법이 없도록 간극을 벌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요 
의인은 없다 라고 했는데
그거 하나 자신만만 지킬줄 안다 라고 덮썩 물게 되니
도리어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게 되는 올무에 걸려들더라 말이지요

사실상 법을 지킨 것은 사랑이라서 아닌
남에게 올무를 치고자 하는 마귀의 모습이엿거든요

아니 주님이 올무 쳤다메? 그래 마귀 잡을 려고
그런데 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왜 너가 그 올무에 걸려드느냐

그래놓고 따지는 겁니다

모세 니가 이렇게 율법에 적었잖아
이런 여자랑은 이혼해도 된다 라고
그카이 빨리 이혼 증서 써 다오

문제는 사랑이 없음을 탄식하는게 아니라
더러운 여자랑 살기 싫다 어 맞다 율법에 이혼하라고 했지
옳치 깨끗한 여자랑 다시 결혼해야지 이것이 율법을 지키는 바른 모습이다 라고 
모세 니가 캤잖아 라고
다들 모세 니는 정작 율법 지키라고 해 놓고서는 거봐 이혼증서 안 써주네
너 빠져 돌삐 맞아 죽을까봐 완악한 수건이나 쓰면서 도망치는 주제에
이제 우리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대로 판결 할 꼬야

너도 나도 다 이혼증서를 다 써 오는 겁니다
아무도 결혼 한 자가 없게 되니까
저절로 우상숭배로 빠지도록 되어 있는 거죠

사랑 곧 매일 매일 새로움이 덮쳐지지 않으면
암논 왕자는 다말 공주를 헌 신짝처럼 버려야만 하는
자기 배의 그 결핍을 채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졸지에 의문의 증서인 율법이 뱃구멍을 빵구멍 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이 나의 뱃구멍을 도리어 돈독히 해 주니까
믿을 구석은 뱃돼지 밖에 없는 겁니다

자기 배를 위하여 예수 까짓꺼 임금 삼아주지 뭐
임금 삼으면 배 채울 걱정 따위는 없을 것이다 라고
오병 이어의 기적을 보고 따라오는 겁니다

정작 오병이어 라는 율법의 장치로써의 성전에서 벌어지는
오대제사와 일곱절기 는
그 뱃돼지를 도려내고 빵구멍 뚫어서
그는 흥하고 나는 패하도록 만드심인데
반대로 예수 너는 십자가에 달려 죽고
나는 덕분에 살자 라고 나오게 되니

주의 눈물 따위나
성령의 놀라운 탄식 따위는 개나 줘 버려가 되는 거지요

그카이 백성을 등쳐 먹는 겁니다

다윗이 그랬거든요

왜 등쳐먹을까요? 귀족과 왕족과 부자들의 눈치를 보는 겁니다
이것이 악령이 씌인 자기 배를 위한 가짜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그들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겁니다
그렇게 인구 조사 하다가 악령이 씌여져서 말이죠
주님께서 충돌하셔서 박살을 내시는 겁니다
괜히 죽은 것은 힘없는 백성이지 귀족도 왕족도 지도자도 죽은게 아닙니다
이것은 왜 난제 난해하 해석이 왜 안되는지?
다윗이 죽인 억울하게 죽은 우리야는 왜 난제가 아니 되는지?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믿음에 믿어지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오로지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 빵구멍 뚫히면 겨우 읽게 되거든요

자 그래서 주님이 너 어차피 백성 등쳐 먹을꺼 내가 그 백성들 다 죽이겠다 라고
주님은 때리는 시 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 라고
너 어차피 백성 죽일꺼 뻔하니까 너의 본색을 들추어내시겠다 라고
다윗이나 귀족 왕족 부자들 관원 지도자 선생들 죽이는게 아니라
오히려 다윗에게 삡 뜯기고 있는 백성들을 죽이시더라 말이죠
다윗의 범죄로 말이죠

이제 다윗은 비로소 남의 눈을 의식해서 지킬려고 했던
그 정치적인 왕 자리에서
그 가짜 하나님을 그 우상을
자기 배를 위한 자기를 위한 하나님이 아닌
심판의 주님을 맞이하는 심판의 자리에서
졸지에 죄인의 자리에 앉게 되니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그 백성들처럼
다윗이 눈치를 봤던 그 귀족 왕족 부자 지도자 종교지도자들의 그 정치술의 타켓이 되는 겁니다
타겟 된다고 해서 핍박 받는게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서 하나 하나 암살하는 자객처럼 자갱단처럼 활동하게 되더라 말이죠
도장깨기를 하듯이
언제는 저들 눈치 보다가 억울한 약자를 죽일때는 언제고
이제는 반대로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이런 식인 거죠
그카이 자기 말만 따랐던 그 조카 요압 장군의 세력 또한 다 죽이게 되는 거지요

오로지 솔로몬
의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함이 아닌
죄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자 말이죠

그래야 솔로몬의 범죄로 두 막대기로 나누어서
예수님이 아니면 절대로 붙일수 없도록 둘 사이의 관계를
원수 중의 원수 취급하는 사이로 만드시는 겁니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말이죠

만약 요압 장군 생각대로 즉 사람의 뜻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유지해 나갔다면
아직까지 이스라엘 국가가 멸망치 않고 내려왔을 가능성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없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증거하지
있는 존재하는 자리에서 증거하는 이방나라와 같은 그런 나라가 아닌 겁니다

그러나 죄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움으로써 그 속에서 여호와의 뿔을 기다렸다 라는 것은
망하는 자리에서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자리에서
솔로몬의 영광을 솔로몬은 정작 들에 핀 백합화로써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말하고자 세워졌다 라는 겁니다

사람들의 손에서 움직이는 국가나 교회 같으면 정작 성전유지가 우선시 이겠지만 말이지요

그런 독자적인 나라는 애굽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자기가 알아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짓을 하면 되고요
자기가 알아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모습을 알아서 버리면 되는 겁니다
이 비율을 적절히 컷트라인만 넘어서면 합격이다고 본다는 거죠

왜 애굽이 왜 필요하며

왜 굳이 창조주가 누구관데 나 그 신 모르겠는데 라고
창조주가 창조할 때 그 때 창조했으면 그만 손 떼고 이제 인간들이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창조주가 직접 운영하는 그런 이스라엘이 왜 필요하냐 말이죠
교회도 이스라엘도 자기들이 알아서 하면 될 것을 말이지요
지금 까지도 인간들이 교회 운영한다고 우기면서 하나님 손떼라 라는 식으로 하는 판국에
이스라엘도 그런 판국에
요나의 불만처럼 말이죠 왜 이방인의 하나님까정 되시냐 라며 애굽을 왜 부르느냐 라고 하는 겁니다
애굽을 부르지 않으면 우리의 본심이 저 애굽을 사모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수가 없는 겁니다

그카이 다들 솔로몬의 영광이라는 천국건설운동 하나님나라운동
에덴동산 같은 애굽운동을 하더라 말이죠

이스라엘 만큼은 절대로 인간의 손에 맡길 이유가 전혀 없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언약이 아닌 다윗언약 이다 말이죠
그카이 모세언약 버리겠다? 노노노
모세언약은 무조건 실패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 것이니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겁니다
율법을 알 필요가 없는 이방인도 이 율법을 알려주시는 이유인 거지요
자기가 왜 죄인일 수 밖에 없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은혜를 알겠습니까?

무엇 무엇 으로 부터의 구원이니까 그 무엇 무엇이 뭐냐 말이죠
바로 율법이라는 의문의 증서 곧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한다 라는 그 행함으로 부터의 구원이다 말이지요

인간은 왜 행할까요? 자기가 살아있다고 여기니까 말이죠
그런데 주님의 시선은 죽었다 라는 겁니다

그 죽음에서 나오는 행함만이 행함이 있는 믿음인데
누가 죽고자 행하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살고자 행하는 것인데 말이죠

그 살고자 행하는 것이
솔로몬의 형 이름아기 살려달라고 
이스라엘 왕 답게 귀족과 부자와 지도자들 결국 정치꾼과 종교꾼들 눈치를 의식해서 한 거지
정작 죄인으로써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정작 죄인으로써 기도는 종말의 기도이기 때문에 그 반대로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정반대죠

어떤 놈은 죄인으로써의 기도를 나는 할 줄 안다 너는 할 줄 모르지 라고
자기가 종말에서만 나타나는 그런 죄인이다 라고 우겨요
그래서 그 죄인 됨의 조건이 골프 칠줄 알고 담배에 술 나이트 클럽 가는 것이 죄인의 조건이다 라고
얼마나 웃끼던지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라고 아하스 왕 행동 해 놓고서는
자기는 임마누엘 구했데요
꺽으신 뼈가 되어 달라고 안구해놓고서는
또 누구한테 인정받고자 꺽으신 뼈가 되어 달라고 구하는 척
나 간구했다 라고 사기를 치면서
그 누구는 죽어버리면 꺽여지면 못 듣거든요
그 누구는 살려두고 지가 정죄하는 놈은 들을 필요가 없으니까 죽어버려라 라고 저주를 하더라 말이죠
바빠요 자기가 선과 악을 구별해서 행동 해야 하고 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억수로 신경을 써야 한다 말이죠

뭐 이건 종교오락 장난질이더라 말이죠
죽음도 지 멋대로의 죽음이지 절대죽음도 아닌
죽음 근처도 못 간 죽음을 죽음이라고 자꾸 우기면서
자기가 좋아라 하는 놈은 살려두고 왜 살아야 자기를 인정해 주니까 말이죠
자기가 미워라 하는 놈은 어차피 죽은 놈 빨리 죽여서 그 놈에게는 인정 받고픈 마음도 없거든요
죄도 자기가 조작한 죄를 죄라고 사기를 치고 있으니
웃끼지도 않더라 말이죠

누가 주여 죽어주소서 라고 함께 죽고 함께 살자 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은 죽으면 안됩니다 살아있어야 나를 인정해주고
당신도 살고 나도 살고 설사 내가 죽더라도 당신은 살아서 나를 끝까지 인정해 줘야 합니다 라고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거짓선지자처럼 자기를 학대하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고 노래하는 겁니다

함께 죽고 함께 살자 라는 한 몸 의 의미 조차도
하나님의 원수됨이라는 심판의 자리 그 공백 그 간극에서 태어난 자가 성령을 받아서 그렇게 외치지

베드로처럼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장지지겠습니가 십자가에 함께 죽겠습니다 라고
인간 쪽에서의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 라는 것은
음녀들이 신랑을 자기 쪽에서 찾아서 결혼하겠다 라는 발상이다 말이죠
성령 없이 하는 도덕적의무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는
이 삼일의 간극에서 태어나지 않고서
사랑 없이 율법의 행함으로 의에 도달할려는 종교수행과 같은 사탄의 짓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을 거부하는 십자가의 영을 거부하는
여전히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십자가의 죽음 필요 없다 라는 악마의 짓
성령을 속이는 짓입니다

그카이 심판의 자리 라는 그 처음자리 본래의 자리를 거부하고서는
첫사랑을 원하는 식이 되니까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거죠

주와 함께 능욕을 받는 것은 성령을 선물 받기 전 까지는 안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이스라엘이라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애굽이라는 자들이 반드시 미끼로 물 수 밖에 없는
목베인 영혼이 될 수 밖에 없다 라는 거지요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그 정도로 목베인 영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저 애굽이라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로부터

가진 것 없고 무능하고 자기 하나 변호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가치 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단물 빨아먹고 뱉어버릴수 있는 하루살이 이거든요

하루살이는 하루 밖에 살지 않는데 누가 이들을 변호 할려고 하겠습니까
아무도 변호 신원 해 주지 않아요
겨우 재판날을 겨우 겨우 하루 만에 받아서 예약날짜 받아본들
하루 지나면 다 물거품처럼 사라져요

그 정도로 하루살이는 변호할 가치 조차도 생겨라 라고 기도를 아무리 해도
하루 뒤가 없다니깐요

물론 진짜 하루살이는 15일 정도 산다고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루살이 곧 처음자리는
종말의 이스라엘을 말하거든요
물론 인간들이 갖출려고 하는 이스라엘은 종말 빼고서 이지만 말이죠

아무도 심판의 자리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첫사랑에 딱 맞는 기도를 하는 주께만 범죄한 그 본래의 자리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아무도 없어요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자 없다니깐요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없어요
첫사랑을 쳐다보는 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 없어요

하나님을 세 번 원망한 죄인의 자리에 불뱀에게 물린 자리에 아무도 안 가는데
아니 갈수도 없이
내일 아궁이에 던지는 그 들에 핀 백합화 자리 보다

우리는 이미 솔로몬의 영광의 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고
우리는 그 정도로 애굽으로 꽉꽉 차 있어서

첫사랑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처럼 애굽을 꺽으시는 자를
그 애굽을 심판하시는 분이 나를 제대로 심판 하시는 분으로써

이 심판을 제대로 보는 자 만이
개똥밭의 이승 보다
솔로몬의 영광 보다

저 들에 핀 백합화를 왜 소숭히 여기시면서
심판의 자리인 그 하나님의 원수인 공백의 자리
간극의 자리를 왜 만드시는지
그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는 그 분을 만나는 겁니다
이 독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첫사랑을 그렇게 원한다 면서
심판의 자리인 들에 핀 백합화 자리
내일 아궁이에 던지는 그 주님이 가신 길은 거부하면서
어떻게 얼굴과 얼굴을 어떻게 마주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낯설기 짝이 없는 자와
하루 종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 보세요
나도 어색하고 저 상대방도 어색해서 불편해 하는 모습으로 
하루 종일 얼굴과 얼굴을 어떻게 마주할수 있겠습니까
숨이 턱턱 막히고 죽을 지경이 되는 거지요

아니 못난이 형제 인형을 서로 마주 얼굴 보도록 해도 하루 종일 마주보게 해도 안 불편해요
왜 그런데 인간은 왜 불편할 까요

또 정작 그렇게 불편하다면서
생판 모르더 남녀가 결혼을 해서 그 신혼의 남녀를 하루 종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게 해 보세요

지들 찌리 좋아 죽습니다 아까는 불편하다면서?
왜 그럴까요?
떼어 놓을려고 남들이 시샘이 나거 떼어놓을려고 해도
딱 철거머리처럼 달라 붙고 싶어서 하루 종일 밥도 안 먹어도 좋아라 싱글벙글 하더라 말이죠

무엇의 차이 입니까?

네 맞습니다 율법 남들 보다 이 신혼의 남녀가 더 많이 지켜서 입니까?
이혼 안 당할려고 이 남녀가 더러움을 제거하고 억수로 수준 높은 성화를 해서
억수로 거룩이 남들보다 몇배나 일곱배나 더 많이 짙킨 둘이라서
얼굴과 얼굴을 하루 종일 마주보면서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남들도 좋아라 싱긍벙글 해피 바이러스가 퍼져서
부러움의 노래를 술람미 여인의 동네 여자들이 배아파라 배아파라 라고 합창을 할 정도가 되는 겁니까?

무엇이 차이를 내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쇼윈도우 부부인 겁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쇼윈도우부부로 남의 눈을 의식해서 사랑있는 척 했지만
주님 만은 안 속았다 말이지요

정작 그들은 애굽을 사모했거든요 그들의 우상을 섬겼거든요
이스라엘이 애굽화 되었다는 말은
모든 나라 모든 종교
오늘날 기독교 까지 바벨론 종교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애굽이예요 열가지 재앙의 제일 마지막 열 번째 재앙
장자재앙은 부활신을 믿는
결국 인간을 구원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인간을 부활 시켜주고파서 안달이 난 그 신을 보디가로 삼은 종교 그들의 신 하나 하나를 치는 겁니다
그것이 결국 인간 장자 자체가 신이다 라는 겁니다

그 신을 그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 다 이루어졌다 라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라 구리놋뱀을 쳐다 보라 라는 것은
바로 너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십자가의 언약 곧 새언약에 다 이루어졌다 라는 겁니다
남 죽일 생각 하지 말고
물론 그런다고 안 죽이는 인간 없죠 형제를 미워하는 자 마다 다 살인한 자이다 라고 했기에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라는 말은
모든 인간을 살인자로 규정해 버렸다 라는 겁니다

물론 인정 할 인간 없습니다
종교시간 주일 일요일 예배시간에 잠깐 인정해주는 척 할 뿐이지
그래서 하루 하루 간섭하시면서
너 살인자의 팔을 하나 하나 꺽어버리시는 그 사태가 벌어졌을때에
비로소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려주시는 사건 곧 종말
끝이 덮쳐지자

안 그러는 자는 살인자 였음도 모른채로 살다가 지옥가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 였음이 십자가에서 밝혀졌음이
또렷했습니다

모세언약은 율법 지키는 나를 의식함으로써
또 살인자 안 될려고 또 흐릿하고 모호한 미완료의 세계로 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로 이미 십자가에서 밝혀 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개혁주의나 성화론자들이 이 십자가 고만 캐라 마이 무따 아이가 라고 싫어라 하는 이유가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더 이상 동기부여를 할 수가 없다 라고 하는 겁니다

다들 맫이 빠져서 동기부여가 안되는데
그러면 종교놀이를 사기를 칠수가 없어요
으쌰 으싸 힘내서 뭐라도 해야 거기서 생산물이 나오고 그 생산물을 사기쳐서
평생 빨대 등에 꽃아서 피 빨아먹고 살수가 있는데

전혀 동기부여가 안되니까
저런 동기부여하는 인기 강사들에게 돈 다 빼앗기고
정작 종교장사는 다 망하는 겁니다

동기부여 강사가 1인 기업으로써는 미국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벌거든요
기업 집단 말고요
그런 일인 강사한테 까지 미국교회 집단이 밀리고 있으니 이제는 부흥강사
연예인 간증집회 따위 조차도 밀려 버리는 겁니다
그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도 이제는 약빨이 다 떨어지는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안 속겠다 라고 하니까 말이지요

사람 관계 개선이 안되면 돈이고 뭐고 다 날라갈 판국이니
이들 동기부여강사들에게 종교심리까지 다 발리는 거지요

종교는 사장 사업이 된 지 오랜데
사주팔자 타로 사업을 번창을 하는 겁니다
누가 잔소리를 하겠습니까
자기가 알아서 찾아가면 그만이니
숏폼 숏 짤 컨텐츠처럼 궁금한 궁금증 해소하면 그만인데
말라꼬 교회에 가서까지 정치꾼들의 눈치를 보면서
온갖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이제 저들도 힘도 없어지게 되니
그들의 인맥으로 더 올라갈 자리가 없게 되었으니까
하등 무슨 도움이 된다 라고 가겠느냐 말이죠
그저 돈 뜯어먹는 놈들 뿐인 강도의 소굴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미국이나 서방 유럽은 교회가 다 문닫는 판국입니다
그 대신 불교가 대 히트를 미국에서 부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이 먼저 수행이 되어야 한다 말이죠 불교가 최고의 종교인 이유입니다
서양 불교가 바로 니체 사상이니까 말이죠
개인이 안되는데 말라꼬 남을 가르치고 잔소리 할 수 있겠느냐
너나 잘 하세요가 되는 거죠
그러이 개인이 모인 집단에 들어가버리면 숨길수 없는 집단 팽 도리도리가 생기가 되니까
남들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말이죠 그래서 개인이나 똑바로 하자 라고 불교가 유행하는 겁니다
자기가 안되는데 남에게 평안을 가져라 라고 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양심적인 모습이냐 말이죠

집단은 숨기지도 않고 깡패짓을 대 놓고하는 그러면서 아무도 반발하지 않는 집단무의식의 속내로 깡패짓한다 말이죠 교회가 그렇게 하니까 말이죠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제가 이런 교회를 아주 아주 대형교회 부자교회에서 느꼈으면 말을 안 해요
그렇게 한국에서 제일 수준 높은 성화론자 라고 자부하는 그 조그마한 교회에서
이 말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들 조그만 교회예요 가난한 자가 더 깡패짓 하는 겁니다 집단성 때문이거든요 원숭이 보다 인간이 집단화 되었기에 생존하게 되었다 라고 진화론자들이 말하던데 만약 원숭이 고릴라가 더 결집이 된 집단화가 되었다면 인간은 원숭이에게 바로 한손으로 찢어버리는 그 집단화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더라 말이죠 표범도 한 손으로 찢어버리는데 말이죠 개인 하나 하나가 하나님과 같이 된 공동분모의 욕망이 집단화 된 거지 결국 개인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그 개인주의인 니체사상이 도리어 제국주의를 꿈꾸는 나치사상으로 빠진는 겁니다 니체와 히틀러는 상관없다 라고 아무리 우겨도 결과가 그래요 그래
그 나치 히틀러를 오늘 나오는 애굽으로 삼아서 그 애굽을 다시 바벨론으로 삼아서
지가 지 눈을 찌르도록 바벨론 왕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서
나치를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서 유대인을 애굽의 팔을 꺽어서
그 애굽에서 불러내시는 겁니다
그 카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는 니체요 불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말이죠
그 남유다 마지막 네 마리 사자가 울도록 만들어버리시는 겁니다
사자란 왕이거든요 사자 앞에 사자로 나서면
일제 앞에 대한민국 독립군으로 나서면 의문의 반복이 되어서
아직도 광복 79주년 즉 80년이 되어도 아직도 광복을 못하는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그카이 더더더 국가에 매달리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이 보이는 소망이니까 말이죠
정작 보이지 않는 소망은 여고냐처럼 사자 앞에 비둘기로 만들어 버리시는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덮쳗지니까 두려움과 떨림으로 기생라합처럼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브로큰에로우 폭격요청 하는 한나와 마리아의 기도인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외치게 되는 겁니다 인간의 머리에는 포착 안되는 잿더미 속에서의 사랑입니다
이 부들부들한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천한 계집을 왕비로 삼는
탕자를 7에 70번 용서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겁니다
그저 딱딱한 법 지키기 남 7번 용서로 남을 정죄할 뿐입니다
그 정죄의 딱딱한 선악법을 부자에게는 아부하기라는 정치로
약자에게는 깡패짓으로 강도의 소굴로 자기 의로움을 쌓아 모세의 자리에 앉기로
이것이 울리는 꽹과리죠 에디오피아 군대 행렬의 무기들이 흔들리면서 서로 부딫히는 그 힘자랑이 도리어 상엿소리 니가 니 눈을 찌르는 총구가 점봇대 포스트 붙이니 삥둘러서 
자기가 쏜 총의 총알이 자기 등에 총구를 대고 쏘는 누워서 침 뱉는 겁니다
칼로 흥하는 자는 칼로 망하듯이 말이죠 망하라고 애굽을 세워 애굽화된 애굽의 자식인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칼에 팔이 짤리고 꺽여지는 겁니다 

그카이 사랑이 없으니까 울리는 꽹과리로 
완벽하게 그 껍데기 경건의 모양을 갖추니까 다들 넘어가는 겁니다
부자교회도 아니고 대형교회도 아닌
가난하고 작은 교회일수록 더 잘 속이는 겁니다
바리새인 보세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독립군도 도와주면서
예수님 언제 헐벗었으며 언제 목말랐습니까 진작 말씀하시지 우리 그런거 하는데 도사 달인들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소자 한테 하지 않은 것이 예수님 한테 하지 않는거다 라고
취사선택으로써의 가난한 개인을 즉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겁니다
적어도 가능성있고 희망이 있는 자를 도와야 회생하지
아예 가망없는 자는 이웃으로 도와줄수가 없는 겁니다
물로 남 눈치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할수도 있지만
그 똥물에 7번 몸을 담글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내 피부가 문둥병으로 더러워도
저 똥물 보다는 낫다는 거죠

그카이 행함과 실천의 달인인 그 바리새인들

다들 존경해서 난리인 그 성화론자들을

왜 저한테만 반대로 보여주시고 
환상을 겹쳐서 보여 주시니 아무리 저들과 썩이고 싶어도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저들도 눈치백단들인 정치꾼들인데
괜히 죽으라 미워했겠냐 말이죠
우리 때에 한창이던 90년대 후반에 말이지요
한참 유행하던 제자훈련 그거 그렇게 비판할 줄 알면서도 은근히 제자훈련으로 단계 단계 계급을 나누는 그런 식이던데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말씀을 그 교회 보면서 느꼈겠냐 말이죠
자기들 끼리는 억수로 경건하다고 하던데 제가 보기에는 뭐 그렇게 딱히 경건의 모양만 껍데기 조차도 뭐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닌데 보통 사람들 보다 아주 쪼금 뭐 의식만 할 뿐이지
즉 눈치만 볼 뿐이지 뭐 그렇게 높으지도 않으데 저거들끼리를 억수로 칭찬을 하니까
플라시보 효과로 서로 서로 최면만 걸더라 말이죠

이런 플라시보 효과와 같은 트릭만 있으면 되지
왜 굳이 지옥에 있는 애굽왕을 말라꼬 불러 들이시고
또 팔을 꺽는 것을 말라꼬 이스라엘에게서 까지 보여주시고

왜 이런 복잡한 일들을 왜 굳이 하시느냐 말이죠
요즘은 자기들이 알아서 각인 효과만 있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살아갈수 있다 라고 여기는
그런 트릭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지요

플라시보 효과와 비슷한 듯 다른 의미의 용어로 뇌과학에서 말하기를
유레카 효과?
https://youtu.be/C7WI3XRSMA0
그게 돈이 되지 몇백만 뷰 달성 말이지요
말이 많으면 결국 또 잔소리 밖에 안되는 거다 말이죠

하나만 주구장창 하면 질려버리니까 다양하게 장르를 매 달리하면서 말이죠
교회도 맨날 프로그램 하나로만 사람들을 속일려고 하니
이제는 안 속겠?? 라고 하잖아요
물론 애초부터 교회가 아니다 보니
짐승 코로나를 풀어버리니까 비로소 건널수가 없는 겁니다

만남이 뭐가 필요합니까 다 인터넷으로 접속해 버리면 되는데
말라꼬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냐 말이죠 어색하기만 하고 불편한데

겨우 만났다 치더라도 그저 이용가치 없으면 뱉어버리고 하루살이처럼
이용가치 있다 싶으면 약대처럼 발가벗겨질때까지 잡아먹으면 그만이거든요

만남 자체가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종교는 인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그런 트릭을 누가 더 많이 익히느냐가 성공여부로 남은 세상인데

누가 이 애굽의 팔을 꺽어주소서 라고 기도하겠느냐 말이죠
아무도 볼려고도 안하는 이유가 본인들이 애굽의 팔 노릇으로
등쳐먹기 바쁘니까 그런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말이죠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 말이지요

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니까 말이죠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손을 세워서 청소기로 흡입해서 다 빨아들여서 통일시켜서
한 놈만 패시는 겁니다

그럼 지난 주에 살펴본 성령의 놀라운 탄식은
부르짖음은 왜 안 울면 안되느냐 라는 생각이 동방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우는 것도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이 세상은 예수님을 죽인 세상입니다
자기 죄 하나만 해결하면 땡입니까?

근원적인 세상의 죄악 또한 못 본다면
성령의 탄식은 그저 개인 구원용 밖에 안되는 역시나 사탄의 눈물 악어의 눈물 밖에 안되는 거지요

개인 구원용인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성화론자들이 그래서 문제인 겁니다
개인의 숙제로 다단계를 하나 하나 단계를 올리는 그 작업들이
겨우 개인 구원으로 결말 맺기 위함입니까?
성령을 그래서 개인 밧데리 충전용으로 그들이 말하는 겁니다
언제 그런 소리했냐 라고 하지만 누가 들어도 딱 그런 소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개인이 열심히 하다가 하다 하다 안되는 밧데리 다 떨어졌을때에
성령의 도움으로 충전 받아서
가만히 듣고 보니 그렇게 순복음을 그런식으로 욕해놓고서는 지들이 결국 그 원리를 외쳤네요
그러니 남 욕할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집단적인 이 세상의 모든 죄를 그 죄악들을 꺽는 그런 구원은 왜 아무도 바라는 자가 없는 것입니까
다들 자기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 판국에
무슨 놈의 세상의 죄악 까지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느냐
그런 어마 어마한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낸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모세가 변화산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주여 어서 별세해 주세요 죽어주소서 라고 하니까
정작 그렇게 기도하면 또 욕을 해요

창녀마리아가 그렇게 기도했거든요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장사 치르는 비싼 향유를 붓고 멀쩡히 살아 있는 양반을 아예 보내버리는 행동을 하니까

예수님이 그런 모욕 당한 듯이 보이는 그것 보다
아이고 아까운 돈 내 돈 내 돈 내 돈 이라고 고래 고래 고함치는 겁니다

예수님도 돈 보다 못 하다는 거지요
독립자금 교회운영자금
이건 뭐 한 꺼번에 다 날려먹는 행동으로써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기도하니까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하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니까

성령을 받지 않고 기도 생활만 주구장창 하는 자들이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사람들의 우선시 되는 자기 삶에 대해 기도하는 것이 아닌
정반대의 기도를 한다고 해서
변화산의 모세 앞에서는 베드로도 찍 소리 못하고
한데 묻어갈려고 아파트 세 채를 주를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한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의 신분과 가치 보다 더 천한 창녀 마리아가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어서 별세해 주세요 라고 모세가 성령으로 기도 한 것을 똑같이 하니까

비로소 베드로 조차도 화를 내면서 내 돈 내 돈 내 돈 거리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세상의 악의 관영함이
돈 보다도 그 깟 삼천만원 보다 못한 예수님의 죽음이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가룟유다에게는 노예 값 은 30냥 이더라 말이죠

결국 그 노옛 값도 안 받고 버리더라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은 그 정도로 비밀로써 은 30냥

요즘은 이 은 30냥의 가치가 언떤가 싶어서 봤더니
노옛값이 천차만별이지만 2,000일 기준으로 해서 하니까https://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4904
그 당시 가장 좋은 노예를 비싼 외제차 값에 해당된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여기저기 검색해서 봤더니 누구는 천만원 정도
누구는 100만원에 팔렸다 라고

저 위의 사이트처럼 노예값을 아니다 라고 하기도 하고요

요셉이 은 20냥에 팔린 그 그림자를 실상의 의미로써 연결 시킨 것이지
아무튼 그 정도로 세상이 악하다 라는 것에
가룟유다가 개인의 범죄가 아닌 그들 전체의 증상물로써
예수님은 팔린 것이다 라는 거지요 매매를 한 그 제사장 놈들 또한 같은 놈들이니까 말이죠

여러분이 아무리 연봉 몇억 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연봉이 가장 작은 심지어 무임금 이라고 해도 예수님처럼 팔리지 않잖아요 신체포기 각서를 자신들이 알아서 쓴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팔았다 말이죠 우리 모두가
그러니 저 몸 값은 100만원? 많아 봤자 1천만은?
우리 역시나 평생의 몸 값 팔리는 가치없는 돈이다 라는 거죠

두 렙돈 낸 과부의 기도가 돌 위에 돌 남김없이 가루로 만드는
그것도 모르고 제자들은 아름다운 성벽으로 성전 지었다 라고 했는데
이 두 렙돈의 가치를 보니까 2014년에 기록한 글에 나온 기준을 보니

6원 플러스 6원
12원? 요즘 1원 짜리 동전 은행에서 잔돈 받을때나 받지
거의 못 보잖아요 그 돈 찍어내는데 돈 들다 보니
이제는 구경 못 할 정도로 쪼매 하게 만드니까 한번 떨어뜨리면
노안이 온 정장년 이후로는 못 찾는다 말이죠
100원은 그래도 커피 뽑기 위해서 찾을려고도 하지만
1원은 거의 쓸데가 없으니 말이죠

그 두 렙돈 6원으로
수천만원짜리 교회 비싼 돌로 세운 아름다운 돌벽의 돌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 없이 가루로 만드시겠다 라는
과부의 두 렙돈 전재산 헌금이 이 종말의 헌금이
이 얼마나 무시 무시한 젖먹이의 전쟁과 똑같지 않냐 말이죠
세상의 죄악을 심판하는 종말의 헌금이니까 말이죠
종말의 전쟁처럼 일부러 격차의 간극을 벌리시는 겁니다
아람군대는 12만 7천명 이스라엘은 7천명과 특공대 젊은 소년단 232명 신라의 화랑처럼
꽃 화 사내 랑 미소년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 인거죠
아무튼 군사력이 열배나 차이나는 이 간극을 일부러 버리시는 거죠
두 렙돈고 마찬가지 이고 창녀 마리아의 미리 장사 치름이라는
일부러 신분을 가장 천한 무시받는 신분이다는 겁니다.

돈 더 많이 내라 라고 강조하지
누가 종말의 헌금으로 세상을 심판해 달라고 헌금하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애굽의 팔을 꺽어 달라고 부르짖는 헌금이 어디 있냐 말이죠

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이 종말의 전쟁으로 여호와의 날 이른 새벽비 이야기로 말씀 하시는 겁니까? 다들 안궁금 인데 말이죠

(눅 21:1,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2, 개역)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3, 개역)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5, 개역)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눅 21:6, 개역)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눅 21:7, 개역)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눅 21:8, 개역)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웠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눅 21:9, 개역)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눅 21:10, 개역)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눅 21:11, 개역)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눅 21:12, 개역)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눅 21:13, 개역)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눅 21:14, 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눅 21:15, 개역)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눅 21:16, 개역)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눅 21:17, 개역)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눅 21:18, 개역)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눅 21:19, 개역)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20, 개역)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21, 개역)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눅 21:22, 개역)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눅 21:23, 개역)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눅 21:24, 개역)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눅 21:25, 개역)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눅 21:26, 개역)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눅 21:27, 개역)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눅 21:28, 개역)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눅 21:29, 개역)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눅 21:30, 개역)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눅 21:31, 개역)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눅 21:32,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눅 21:33, 개역)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눅 21:34, 개역)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 21:35, 개역)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눅 21:36, 개역)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7, 개역)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8, 개역)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막 12:37, 개역)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막 12:38, 개역)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 12:39, 개역)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 12:40, 개역)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 12:41, 개역)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2, 개역)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 12:43, 개역)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4, 개역)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막 13:1,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막 1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막 13:3, 개역)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막 13:4, 개역)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막 13:5,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막 13:6, 개역)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막 13:7, 개역)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막 13:8, 개역)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막 13:9, 개역)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이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가 꼭 뭐와 같습니까 저는 갑자기 기생라합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인 애굽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받은 그 기생라합 말이지요

애굽의 팔을 꺽은 것 하고
자기 나라 가나안 족속 중 여리고성에 거했는데
여리고 무너졌으면 다 무너진 거죠

그런데 창녀 주제에 자기 땅도 자기 재산도 아닌데
여호와에게 전재산 두 렙돈 바치듯이
종말의 헌금으로 다 가지고 가이소 라고 할 정도로
이 세상의 죄악을 창녀 이다 보니다 저절로 다 아는 겁니다
정치 종교 경제 아무리 무식한 자여도 그 직업 자체가 다 아는 겁니다
그 카이 세상의 죄악에 가장 근접해서 알게 되는 거지요

왜! 독립군 영화를 보면 독립군을 뒤에서 몰래 돕는 여자들이 주로 일본 장교들이 드나드는 기생들이 독립운동가를 돕잖아요 막상 독립 되면
그렇게 독립 되라고 도운 그 독립된 그 나라로부터 돌삐 맞아 죽지만 말이지요

이 세상의 죄악을 가장 근접하는 자가 바로 성도이듯이
바로 두 렙돈의 과부이기에 전 재산을 내었다 라는 의미는
마지막 최후의 기도 목숨을 건 종말의 기도 성령의 놀라운 탄식의 기도를 했다 라는 겁니다

나라를 배신하고 민족도 배신하고 민족의 신도 배신했던 그 기생 라합의 거짓말이
야고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의 예로 든 3가지
아브라함의 이삭 제물 바친 것
기생라합의 거짓말로 정탐꾼 숨긴 것
그리고 엘리야의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우리가 지지난 주부터 지난 주에도 언급했던 이스라엘의 본래의 자리인 심판의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과
바알과 아세라 의 기도 곧 애굽의 망하기로 작정이 된 자들의 기도와의 차이로써 말이죠
이것이 이사야의 임마누엘을 구하라 까지도 연결된다 라고
그 이전의 에발산 그리심사으로 두 갈래로 나누어져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아예 규정해 버리는
졸지에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저주받을 자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두 언약으로 규정한다 라고 말이죠
그 이전에는 아브라함의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종말의 의미이지
그래서 제가 하고 저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목사들이
교회 일 부려먹을때에 사기를 칠 때 사용하길래
그 반대의 행함으로써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별명을 했는데
사실상 과부의 두 렙돈 6원 6원 12원의 전재산 바치는 종말의 기도로써

마리아 한나의 기도와 같은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부어 달라는 브로큰애로우 부러진 화살이라는 공중폭격요청의 무전요청이다 말이죠 아군 적군 썩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기도 인 거죠

종말의 행함이 있는 믿음
곧 종말의 성령의 탄식의 믿음이다는 겁니다
미완료 따위인 바알과 아세라 기도를 꺽어달라는 완료로서의 심판의 자리 본래의 자리에서 부르짓는 완료의 기도 말이죠

아무도 안 구하니까 성령의 탄식을 부으시는 것이고
아무도 안 구하니까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셔서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기도

그래서 바벨론 포로 잡혀가서 그발 강가에서 때려죽어도 안 부르던 예루살렘 노래를
시온 하나님의 중심 세상의 중심에서 안 부르던 그 시온의 노래를
그발 강가
음부의 권세 속에서
요나의 표적인 큰 물고기 뱃속 어둡고 캄캄한 깊은 바닷 속 그 스올 그 지옥 그 무저갱 그 음부의 권세 속에서 여호와의 뿔 드릴로 큰 물고기 뱃속 뿐만 아니라
지옥의 권세 사망의 권세 내 우상숭배의 근원지 중심 마음판의 할례 뱃구멍 까지 다 여호와의 뿔로 구멍을 뚫어달라고 기도하는

이 심각성을 바벨론 포로 잡혀 와야 기도하게 되지
배부른데 누가 기도하겠습니까?

자기 죄만 깨작 깨작 깨끗하게 해결해 달라고 자기만 구원 받겠다 라고 보험 들 듯이 기도할 뿐이지

세상의 죄악을 아무도 탄식까정 하면서 누가 하겠습니까?
도리어 교회까지 다 타락해 가는데
사실상 처음부터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타락하는 거다 말이죠
떨어질게 있어야 타락이지 처음부터 바닥인데 뭘 떨어져 타락하냐 말이죠
제가 타락이라고 해 놓고서 아니다 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종말은 성령은 전체의 죄악을 집단적으로 다루는 겁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다른 집단 곧 애굽과의 차이로써
한 쪽은 꺽이고
다른 한 쪽은 예수님이 꺽여지는 줄 알았는데 너끈히 다시 일어나더라 말이죠
무덤까지 없을 정도인데
애굽은 아무리 살아 있는냥 사람들을 다 장악해도
옆에 무덤이 항상 따라 붙어 다닌다는 이 짐승의 수를
총명하신 성령을 받은 자는 이 짐승의 수를 저절로 셀수 있게 된다 말이죠

그 정도로 세상이 악하거든요
이 심각성을 모르니까
개인의 성화 따위의 숙제에 놀아나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 개인이 뭐 어떻게 할수 있냐
저 두 렙돈 전재산 내고 다 팔아 저재산 헌금내고 죽어버리자?
그건 삯꾼 목자들이 바라는 바에 응하는 것이니 그것 또한 사람의 생각이고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으로써
그저 주여 어서 와 달라고
이 세상이 악하다 라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면 됩니다
자기 의를 구원받을 조건 갖추고자 쌓을게 아니라 저 성화론자들 위선자들처럼 말이죠

그저 이 세상의 죄악에 가장 근접했던 기생라합처럼
창녀 마리아처럼
모세의 어서 죽어주소서처럼

사실상 돈 벌러 일하러 가는 사람들 갑질에다가 또 같이 분위기에 휩쓸려 거짓말로 해야하고 처세술에 사기도 쳐야만 처자식 먹여 살리게 될 정도이니
이제는 창녀 아닌 자가 없습니다 모두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산주의도 결국 돈 전쟁이니까 말이죠 이 자본주의 시대에는 세상의 죄악에 근접한 자로써
이 두 렙돈의 전재산 헌금을 낸
오늘날 전부를 걸어서 돈을 벌지 누가 죄악에 멀리 떨어져서
저 땡중들처럼 산 속에서 먹고 사냐 말이죠 산 속에서 까지 신도들을 끌여들여서
돈을 삥 뜯어서 강의를 해야한다 말이죠

바로 이런 미완료의 의문된 반복에 마침이 되는
이 완료의 종말의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도록

애굽왕을 지옥에서 불러 소환해서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겁니다

어서 건져내 달라고 말이죠

오늘날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로부터 건져달라고
나의 죄악에서 건져내 달라고
사람의 원수는 집안식구 라고 가족 식구들의 탐심 곧 우상숭배에서 건져내달라고
세상의 죄악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온 몸을 칭칭 감겨진 뱀에게 꽉 쪼여진 지옥의 몸이라는 것을

얼마전에 아주머니였던가 태국인가? 인도네시인가?
큰 뱀 구렁이에게 몸이 쪼여서 칭칭 감겨서 답답하게
한치도 움직일수 없을 정도였다 라고 해외뉴스에서 봤는데

그 정도로 세상은 답답합니다
뭐 새로운것인냥 아파트 게임을 하면서 일억뷰가 넘었다고 새것인냥 백날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챌린지(challenge : 도전)를 하고 숏폼을 찍고 삐끼삐끼 춤? 아무리 유행해도
다 했던 것 반복만 할 뿐인 것이지
해 아래 새 것이 없이
헌 술 헌 부대로 돌려막기 하면서 유행이 돌고 도는 복고 헌 것으로 복귀 회귀 할 뿐이다 말이죠

그럼 새것이 뭐냐 바로 제대로 된 옛것 절대저주인
저주산 에발산으로 규정한 인간의 역사로 규정시킨
이 애굽 왕을 지옥에서 불러와서
괜히 불러 놓고서 제대로 멸망시킴으로써
왜 저들이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나라인지를 보여주시는
이 애굽의 팔을 꺽으신 분을 우리가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은

새것이라는 묵시 종말은 없는 거지요
바로 주님의 이름 전쟁만으로 다 이루셨다를 성취하시는
이 주님의 전쟁이 아니면
평화는 없고요

옛 의문의 반복으로써의 돌고 도는 세상의 죄악의 관영함 자체도 못 보고도
안 보이니까 울 필요도 없고요

아브라함 같이 이삭을 바치는 주여 어서 죽어주소서도 없구요
이것을 아무리 봐도 어떤 목사는 심지어 따라할까봐 목사 자기가 이 성경 부분 잘못 되었다 라고 할 정도로 주님보다 자기가 목사라고 교인들 제대로 인도해야 한다 라고 일부러 빼야 한다 라고 주장하더라 말이죠
그 목사는 아마 모세의 어주 죽어주세요도 성경 고쳐야 한다 라고 주장할 겁니다
이삭이 제물이 되는 인신제사에 더 주목한 겁니다
그 반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리가 심판의 자리 본래의 자리인데
무슨 제사를 바르게 바치는 지키는 행하는 자로 보니까 엉터리로 본 거죠
성령의 탄식이 없으니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할려고 하니
비밀 비유가 잡힐 리가 있겠습니까 해석불가인 사랑인데
사랑을 누라 머리로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해석합니까
한 몸이 되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둘이 원수 된 것을 하나가 되게 하시는 예수님의 죽음인데
어딜 이삭 따위를 인신제사의 제물로 해석하느냐 말이죠
그 카이 지가 목사답게 될려고 지가 더 걱정하지
믿음으로 해석하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
자기가 믿음이 없으니 따라 할까봐 ㅋㅋㅋ
실제로 70년대 한국의 어느 신문에 전도사가 자기 아들을 이삭처럼 바쳐서 문제가 되었지요
최근이였지요 요즘 아프리카에 기독교 선교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목사들이 많이 배출이 되는데 40일을 진짜로 성경 예수님을 따라하겠다고 금식하다가 죽었다 말이죠

얼마나 좋은 예 입니까 절대로 따라 하지 말라고 목사 본인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죠
다들 아무도 안 따라하거든요
그칸다고 성령에게 이끌려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받던가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면서 목사라는 강도 주제에 따라한 거지요
그런 놈들을 청소기로 흡입을 해서 흡수 통일을 한 것이 바로
애굽나라 바로 왕이다 말이죠
바벨론 왕이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유대사회를 장악한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다 말이죠
예수님은 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과 대조를 이루기 위한
두 언약으로써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것도 광야에서 40일 기도를 했는데

마귀와 대조를 이루기를 커녕 마귀에게 흡수통합 되는 쪼그마한 두로 나라의 왕이 내가 신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라는 잔챙이는 바벨론 왕을 하나님께서 자기 종으로 삼아서 청소기로 흡수하는 이유도 모르고
지가 마귀 짓을 해놓고서 예수님과 대조를 이루게 되니
이것이 인간의 역사로 규정이 된 것이니
죽어도 싸죠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 맞다 말이죠

왜 남의 죽음을 그렇게 모독 하느냐
아닙니다 우리들의 죽음이 다 이래요
죽음 같지도 않은 죽음을 죽음이랍시고
예수님의 죽음을 진짜 죽음을 거들도 안 보고
무시하면서
자기의 죽음 인간의 죽음만을 심각하게 보니까

주님이 왜 애굽을 왜 지옥에서 끄집어 내셔서
우리 보란 듯이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나라이다 라고 하시는
그 이유로써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는데

엉터리 예수 엉터리 하나님을 자기가 조작해 놓고서는
그 따위 것을 따라하고 또는 따라 할까봐 걱정하고 있으니
도대체 뭘 보는거냐 말이죠

두 렙돈 전재산 낸 과부 따라 하지 말라고 제가 분명히 말했지요
따라하는 것이 그 정도로 의식할 정도로 행함을 강조하는 삯꾼들이 많아서 그렇다 라는 겁니다
이런 세상의 죄악까지 파악할려면 성령의 말을 들어야지 왜 인간 목사의 말을 듣냐 말이죠

따라하지 마시고 전재산 교회에 바칠 생각 조차도 하지 마시고
그저 자기 가족이나 더 먹을 것 같다 주시고
세상의 흐름에 문 닫는 교회가 많아 진다고 우리 교회 만큼은 안된다 라고
누가 희생해 달라고 카지 마시고 그렇다고 자기가 희생하겠다고 마시고

이 세상의 죄악의 관영함을 보시고 아 말씀대로 되어가는 거네
어라 우리교회도 문 다는 것을 볼 정도로
마지막 eo가 되었네 라고
두 렙돈의 과부의 종말의 기도가 옳았구나
즉 그 전까지는 얼마나 무시 받았던 기도였구나
심지어 교회 사람들 한 테 마저도 말이죠
그 무시받고 모욕받는 그 기도를 이루시는 것을 보시고
주님이 옳았군요 하고 하시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그렇게 규정하셔서
두 언약으로 나타내시거든요
교회 백날 다녀도 약속의 주님 조차도 알겠끔 알려주는 교회가 없을 정도이니
교회 백날 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허구헌날 성화나 하라고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교인들을 가스라이팅이나 하고요
목사 말 제발 믿어 달라고 징징 거리기나 해요

모두다 그냥 장사꾼이요 자영업 자들입니다
다들 자영업자들도 다 죽는 판국에 교회라고 해서 혼자 장사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흐름 속에서 세상의 죄악의 관영됨을 몸소 피부로 느껴야지요

그것은 지금 하필이면 이때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다윗 때부터 그래 왔어요
제가 90년대에 가장 한국기독교가 꽃을 피울때에 하필이면 예수님이 찾아와서 알게된 것이지
그 이전부터 이미 세상 죄악의 관영함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말이죠
그 당시 90년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몇몇 선진국 빼고요
개발도상국은 뭐 한국만 괜찮았지 몇십배나 되는 다른 나라들은 그 가난에서 얼마나 허덕이면서 사는지
이제 조금 나라질려고 하면 다른 나라들이 올라오라고 도와줄까요 아니면 사다리 걷어차버릴까요

그러니 인간의 시선의 시간으로 보는 세상인식은 다 엉터리입니다
주님의 시선에서의 시간은 이미 두 언약으로 고정이 된 겁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야곱과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에서로

이것이 이스라엘과 애굽 이라는 두 언약의 역사로 규정된 겁니다

정작 이스라엘은 심판의 자리에서 여호와의 뿔을 만나고요
정작 애굽은 잔칫집에서 여호와의 뿔을 만나도록 되어 있는 역사로 규정 고정이 된 겁니다

그 심판의 자리인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본래의 자리에서 그 여호아의 뿔이 이스라엘을 심판해서 둘로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심판을 거쳐서 나온 귀히쓸 그릇으로써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자녀와 징계의 아버지의 관계를 보여주시는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뿔이였다는 겁니다
즉 결국 나를 위한 하나님은 없다 라는 거죠
그러니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저들 애굽에게 아브라함을 들어서 외치듯이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들어서 외치듯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과 저주를 증거하실때에
그 애굽에게 증거하심이 즉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알리심이 말이죠
애굽에게는 저렇게 하고 이스라엘은 그럼 달리 하시느냐 라는 점에서
다르다 라고 착각한다 라는 자체가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착각하니까
또 이스라엘 국가 조차도 백성인 나를 위한 이스라엘 국가
이것이 확대 되어서 하나님나라도 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나라 가 되는 식에서
이스라엘이 애굽화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여호와의 구원은 이스라엘 국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바벨론 포로 속에서 말이죠
베드로의 구원은 날 위한 나 베드로의 구원을 위한
물 위를 세 번 걷게 해 주시는 그런 예수 그런 나 베드로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로 착각함에 있어서
정작 베드로의 구원은 풍랑 속
바닷 속 죽음 속에서
심판 속에서
내일 아궁이에 던질 풀무불 속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음부의 권세 속에서 일어날때에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여호아가 누구인지를 알리시는 의도가 제대로 증거된 겁니다
그 이전까지는 착각만 하는 겁니다
나를 잘 되게 해 주는 하나님 그런 이스라엘 국가 그런 하나님 나라로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이 빠진채로 애굽한테만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지금 몇 번씩이나 오늘 본문에 강조됩니다
심판의 자리에 있는 이스라엘 사라진 이스라엘과 달리
이제 사라진 이스라엘이 되었기에
이제 제대로 잔칫집에서의 애굽은 여호와의 뿔이 구멍을 뚫어서 망하게 하시는 기능으로써
여호와가 진노의 그릇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사생아에게는 징계의 매 조차도 필요가 없는 내어버려 두신 자로써의 여호와가 천히 쓸 그릇을 만드시는 토기장이 되심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토기장이의 비유?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간의 머리에서 놀아나는 하나님이 전혀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 예로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았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손으로 세우는 왕 
손으로 세우는 국가
손으로 세우는 성전 곧 교회에서는
인간의 소망 곧 보이는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신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배치 시키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리실때에는
바로 인간들이 자기들의 보이는 소망을 담은 그 우상과의 차이로써 자신을 증거함에 있어서

저들 이스라엘이 이상의 국가 꿈의 나라로 여기고 있는 저 애굽나라를 지근 지근 밟아버리시는 겁니다
이 애굽을 꺽어버리신다 라는 것은
인간의 믿음을 다 꺽어버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소망을 담은 자가 바로 빌라도입니다
오죽하면 도리 도리 그 오빠는 병신이라서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그 오빠에게
독대를 요청해야만 백성들을 대변하는 마음을 전하겠다 라고 하겠습니까
그래 소원이 뭔데 말해봐 고원을 말해봐 함 들어보고 타당하면 들어줄께
빌라도는 예수야 너가 나에게 소원을 말해봐 그러면 내가 왕의 권리로써 너의 소원을 다 들어줄게 라고 타협하자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 라고 했을때에

다들 자기들의 손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국가를 세우고
신을 만들고
성전을 세우니까
그 신의 대리자로써 왕의 위치에 있는 나 빌라도가 
너가 말만 잘하면 내가 들어줄 거야 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독대 요청해도 그런 놈은 말을 들어쳐먹지도 않는데 들어줄 리가 없지요
그런데 예수 이 자는 재미나거든요 호기심에 살려줄까 말까 라고 다가가는 겁니다
빌라도 쪽에서 정치적은 소동을 잠재우고 타협점을 찾아서
정치인 답게 정치적으로 해결할려고 이렇게 수고를 하는데
퇴짜를 놓는 겁니다

(요 18:3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1, 개역)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요 18:32, 개역)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 18:33, 개역)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요 18:3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요 18:35, 개역)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7, 개역)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요 18:38, 개역)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주님은 내 나라는 보이는 나라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소망이기에
너는 들어줄 수가 없다 라고

세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가 않는 주님의 나라인데 왜 너의 말을 너와 타협을 해야 하니?

지금 주님은 멍들고 상처나신 모습으로써
어서 그 멍든 얼굴 쪽팔림을 피하고 싶고 상처를 빨리 가려서 
사람들이 안 좋게 보는 모습을 빨리 감추고자 하는 
그 가장 밑바닥의 모습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할때에
빌라도의 유혹은 이 쓴 잔에서 빨리 벗어나주겠다 라는 딱 맞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을 거부하시는 겁니다

반대로 인간은 왕이 있고 신이 있고 국가도 있고 성전이 있으면 그것으로써 만사 만고(망고) 땡 입니다
이게 바로 아합왕이 온 몸으로 내 뱉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이 속성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애굽왕이다 말이죠 
빌라도의 속성을 그대로 다 보여주는 자가 바로 아합왕이였듯이
이스라엘이 부러워 하는 이상국가의 상이다 말이죠 북이스라엘 아합왕
즉 왕이란 백성의 증상물입니다
백성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겁니다
왕의 속성이 곧 백성의 속성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와 엘리야의 제단에 불 붙는 사건에 대해서 살펴봤잖아요 인간들의 모든 기도는 바알과 아세라 기도입니다
자신들의 소원을 담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는 보이지 않는 소망을 그것도 심판의 자리인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본래의 자리에서
물 가지고 물에 세 번씩이나 빠뜨려 죽이시고
불 가지고 새까맣게 다 태우는
물과 불이 서로 반대되는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앞뒤 모순된 간극인 하나님의 의에서 태어난 자가 이스라엘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아합왕처럼 이상국가 애굽을 사모하다 보니
다들 바알을 자기의 남편으로 삼고 있으니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 말겠다 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그 첫맹세 첫사랑의 그 출애굽 사건을 다시 펼치시는 겁니다

그렇게 새까맣게 타 죽는 자리에서 남은 자만 돌아오듯이 이스라엘 차제가
남은 자 곧 찌기 부스러기 이다는 거죠

자 그렇게 열왕기 18장을 이야기 했는데
그 벌어진 이야기를 아합왕이 열왕기 19장에 자기 아내 이세벨에게 다 이야기 하니까
이세벨이 자기의 제사장 자기의 선지자가 다 죽었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반드시 자기 목숨을 걸어서라도 내 반드시 엘리야를 죽이고야 말겠다
못 죽이면 내가 천벌을 박겠다 라고 하면서 엘리야를 찾아내서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도망치죠
그리고 하나님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열심히 특심이오니 다 죽고 나만 남았습니다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남은 자란 심판의 자리에서 나온 자로써
칠천명 남겨놨다 라고 하시고

엘리야를 대신해서 엘리사를 세우시고 예후를 왕으로 세워 아합왕을 예후의 칼에 붙이신다 라고 하시면서 아니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조차도 하나 하나가 주님의 뜻대로 돌아가지
왕이 있어도 왕의 뜻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도 없게 하신다 말이죠
이것이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끊임없이 증거하심에 있어서
반대로 인간들은 여전히 애굽을 이상국가로 이미 마음판에 박혀져 버린 이상
하나님의 뜻과 대척점을 이루는 식으로만 행동 할 수 밖에 없음을
아합왕이 그 증상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엘리야를 대신한 선지자들이 여기 저기서 불쑥 나타나서 활동을 하는데
아합왕이 아람왕 벤하닷과 그와 함께한

(왕상 20:1, 개역) 아람 왕 벤하닷이 그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인이 저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치며

금과 은 재산 아내 여자 아이들 자식들 이런 것들이 전리품이니까 미리 내 놔라 그러면 전쟁 안하고 물러가 주겠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그 카이 알겠습니다 다 가지고 가이소 라고 했다 말이죠

그카이 다시 편지를 써서
그것으로 만족 못하겠다 너희들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다 빼앗겠다

그러자 아합왕들이 지도자들을 모아서 회의를 한다 말이죠
꼭 고려 거란 전쟁 그 드라마처럼 흘러갑니다

32명의 왕의 연합군이니 이건 뭐 질 수밖에 없는 뻔한 전쟁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회의 결과 들어주면 안된다 라고 합의를 보고
첫 번째는 들어줘도 두 번째 요구사항은 안된다 라고 답신을 보냈다 말이죠

그 카이 아람 왕 벤하닷이 아 안되겠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려야 만족하겠다 라고 합니다

이제는 아합왕이 간땡이가 부은 듯이
한 판 붙자 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문해력이 짧아서 이게 믄말인지를 다른 번역서를 보니까 다들 다르게 표현하지만 아 의미상으로는 알겠더군요 저처럼 문해력 짧은 사람은 번역서를 봐야 믄말인지를 알 것 같네요

(왕상 20:11, 개역)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갑옷 입은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왕상 20:11, 새번역) 이스라엘 왕이 회신을 보냈다. "너의 왕에게 가서, 참 군인은 갑옷을 입을 때에 자랑하지 아니하고, 갑옷을 벗을 때에 자랑하는 법이라고 일러라."
(왕상 20:11, 공동) 이스라엘 왕이 대답을 보냈다. "네 왕에게 이 말을 명심하라고 하여라. '싸워보지도 아니하고 으스대며 갑옷을 벗지 마라.'"
(왕상 20:11, 쉬운) 아합이 대답했습니다. “벤하닷에게 전하여라. 아직 싸우고 있는 군인은 이미 이긴 것처럼 뽐내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라.”
(왕상 20:11, 킹흠정) 이스라엘 왕이 응답하여 이르되, 그에게 고하기를, 자기 갑옷을 입는 자는 갑옷을 벗는 자같이 자랑하지 말지니라, 하라, 하니라.
(왕상 20:11, 현대인) 그래서 아합왕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오.' 라는 회답을 보냈다.
(왕상 20:11, 현대어)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담대히 대답하였다. `출전하려고 갑옷을 입는 자가 마치 승리하고 돌아와 갑옷을 벗는 자처럼 자랑하면 못쓰는 법이오'
(왕상 20:11, 가톨릭) 이스라엘 임금도 이렇게 대답하였다. "갑옷을 입을 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갑옷을 벗을 때 자랑하는 법이라고 전하여라.“

자 이렇게 해서 전쟁이 벌어집니다

편지를 받자 마자 술 먹다가 바로 출격합니다

(왕상 20:12, 현대어) 벤하닷은 마침 천막에서 연합군의 왕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그런 회담을 듣고 장군들에게 `즉각 공격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아람의 대군은 성을 향하여 즉각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엘리야를 대신한 미가야 선지자가 나타나서

(왕상 20:13, 현대어) [주께서 자기 백성 편에 서시다] 그때에 예언자 ㄴ) 한 사람이 아합왕을 찾아와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보기에 적군의 수가 엄청나게 많지 않더냐? 그러나 그 많은 군대를 내가 오늘 네 손에 넘겨 주겠다. 그러면 내가 만유의 주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ㄴ.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인 것 같다)

주님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라는 의미로 주님의 뜻이 이렇다 라고 통보를 합니다
만약 충분히 이길수 있는 전쟁 같으면 저 훈수가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단순히 훈수의 차원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조치로써 벌어진 전쟁임을 말하심에 있어서
오히려 넙쭉 받아 먹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자기 유익에 맞을때에는 넙쭉 받아 먹을때는 언제고

막상 전세가 역전이 되어서 아람왕과 연합군이 대패배를 하게 돠어서 도망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니까
(물론 주님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라고 다 간섭해서 전세가 뒤 바뀌어졌으니까 말이죠)

이제는 아합왕이 마치 자신의 공로인냥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그 아람왕이
거꾸로 전에 빼앗은 땅 주고요 뭐 주고요 라고 이렇게 살려주시면 이렇게 하겠다 라는 조건에
그만 풀어주게 되는 겁니다

사울왕도 그랬지요 다 죽여라 라고 했는데 살진 소를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이 좋아라 하실 것이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제사장이 안오네 사무엘이 안 온다 말이죠
좋은 뜻으로 품어도 주님과 안 맞는데 웃사처럼 즉사 하는 행동을 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심은
인간의 한계 안에서 나타내심이 아니라 그건 우상이고요
인간의 한계점을 넘어서는 분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시면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자기의 한계점 안에서 여호와가 누구시가를 보여줄려고 하니
다들 한계점에 부딫히게 되는 겁니다
사울왕의 소 잡아서 제사 드리겠다는 것도 그렇고
웃사의 덜커덩 떨어지는 법궤를 잡다가 즉사한 이유도 그렇구요
아합왕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한계점이란 결국 자기 자신이 한계점이기에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드러냄 앞에서는
그만 더 이상 넘어설수가 없는 겁니다
자기의 한계점을 넘어서는 주님을 보여줄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나는 넘어서는 훈련을 해서 앞으로 보여줄 거야 해도 안되는 겁니다
자기가 살아서 보여주는 이상은 말이죠

그 살아있음이 바로 애굽을 이상국가로 삼아서 보이는 소망을 따라서 나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소망 자체를 가질수가 없어요
자기 눈에 포착이 안되고 해석이 안되는데 무슨 수로 말이죠

결국 주님이 나서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서 그 불가능한 전쟁 승리를 이겨내십니다 아벡전투 말이죠

그런데 역시나 인간의 한계를 그 승리를 자기의 것으로 만듬에 있어서
벤하닷의 조건을 수용하고서 살려주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신은 인자하심을 알아서가 아니라
인간 왕을 눈치를 보겠다 라고 이용해 먹는 거죠 서로 서로가 다 이런 식입니다

(왕상 20:28, 현대어) 이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아람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나 여호와는 산의 신이기 때문에 평지에서는 꼼짝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저 엄청난 대군을 모조리 네 손에 넘겨 주겠다. 이로써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왕상 20:31, 개역) 그 신복들이 저에게 고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나아가면 저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별명을 붙여보자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주의 이름 전쟁입니다 거룩한 전쟁
여기 거룩에 무슨 놈의 성화론자들의 거룩이 들어갈 틈이 어디 있냐 말이죠
붙이시는 전쟁이기도 하지만 항상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는 전쟁이다 라는 거죠

베드로 식으로 표현하면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아내시는 주의 일하심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믿음 인간의 행함 인간의 일이 철저하게 배제가 된
넘어서느 일이다 라는 거지요 단순히 신이니까 넘어서는 차원이 아니라
너가 생각한 그런 예수 그런 하나님 뭐 성경지식 모조리 다 엉터리로 만들어 버리시면서
그런 너의 유익을 너의 배를 위한 그런 것에 포착 안되고 도망치심으로써
인간의 한계치를 넘어서버림으로써 너 그 자체를 예수 안에서 없애버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몸이 된다 라는 의미는 곧 나 라는 자아를 없애버리시겠다 라는 거죠
그 심판의 본래 자리에서 어 주여 당신 누구십니까 라고 나오지
그 남은자의 자리가 아니면 안나오는 겁니다 심판 속에서 나온 자가 남은자 이니까 말이죠
칠천명 어 어디서 나왔죠? 
절대저주와 절대용서 그 간극에서 나온 남은자 곧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거든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한 자 결국 없어요 주님이 새로 만들어 내시는 겁니다
내일 던질 아궁이 속이라는 들에 핀 백합화로써 말이죠
물론 상대적인 솔로몬의 영광과 한세트를 이루는 두 언약을 만드시는 주님으로부터 말이죠
인간들이 두 언약을 또 만들어 내는 놈들이 있어요 별 희한한 놈들이다 말이죠
저 매국노 세리처럼 토색케 하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저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 가듯이 말이죠

(겔 30:8, 개역)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0:19, 개역) 이와 같이 내가 애굽을 국문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30장 전체에 네 번씨이나 나오고 그 중 오늘 본문에 해당되는 20절부터는 두 번 나옵니다

(겔 30:25, 개역)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주고 바로의 팔은 떨어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고 그로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겠고
(겔 30:26, 개역) 내가 애굽 사람을 열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즉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듣도 보도 못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네 너에게 반드시 알려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겔 30:20, 개역) 제십일년 정월 칠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네게 임하여 가라사대

왜? 여호와의 날 이거든요
즉 인간이 개입해서 수를 셀수 있는 손가락 셀서 있는그런 수에 칠 가치가 있다는 날이 아니듯이
도리어 배제함으로써 성취되는 주의 날이니까요

인간 구원의 날이 없어요
죽으면 죽으리라 밖에 없어요 그 속에서 남은자가 나오는데 그들만이 이스라엘이다 말이죠

늘 없는 자리에서 불쑥 불쑥 새로 나오는 겁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그러니 인간의 뜻이 있었다면 한계에 부딪히는 거죠

아무도 안 남아요 오로지 출애굽 하시는 분은 예수님 혼자만 나오심으로써
복의 근원은 예수님 뿐이다 라는 겁니다

아무튼 계속해서
그렇게 벤하닷을 살려주게 되니까

아합왕 지멋대로 말이죠 늘 속성 자체가
이 사건 뒤의 열왕기상 21장에 나봇의 포도원을 훔쳤듯이
뇌물을 주면 바로 넘어가버리는 겁니다
발람 선지자도 뇌물 때문에 이스라엘을 저주했는데
아무리 뇌물을 받아도 막상 입에서는 축복이 나가더라 말이죠

자 여기서 또 다들 난해하다고 난리난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벤하닷 아람왕을 살려준 아합을 죽이시고자 주님이 예언하심을 받은 선지자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기를 무조건 때려서 상처를 내 달라고 합니다

(왕상 20:35, 현대어) [죽음의 저주를 받는 아합왕] 예언자 무리 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친구에게 `내 몸에 상처가 나도록 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 다른 예언자는 우정 때문에 거절하였다.

가장 친한 친구이기에 못 하죠

그 카이 그 거절한 친구 선지자를 사자가 죽여버립니다
웃사처럼 된 겁니다

(왕상 20:36, 현대어) 그러자 부탁을 하였던 예언자가 말하기를 `네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 내게서 떠날 때에 사자를 만나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그는 길을 조금 더 가다가 사자한테 물려 죽었다.


자 이제는 다른 선지자에게 부탁을 하니까
마침 기분 나쁜 일을 격어서 인지 옳치 참 잘되었다 스트레스 풀겠다 라고 하는 식으로 막 때렸다 말이죠

(왕상 20:37, 현대어) 그 예언자가 또 다른 친구 예언자를 만나서 `내 몸에 상처가 나도록 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번에 만난 예언자는 그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렸다.

이것은 저 사람은 몰라서 즉사 시키고 이 사람은 알아서 상처를 내고 때려서 살려준게 아니라

둘 다 모르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때린 것이 주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시는 일에 맞아서 살려준 것 뿐이다 말이죠

알았기 때문에 살려준게 아니라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감을 안 가져요
문제는 가장 친한 친구 선지자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 에 대해서

인간의 한계점에 부딧히는 겁니다

정작 살아남은 자는 한계점에 부딧혔다 라고 생각을 하지 못해요
그것 조차도 난제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해석을 못해도
그냥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 된 자 에 대해서 다들 거부감을 느끼지만
왜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마치 다 아는냥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아무도 반감을 안 가지는 겁니다

그것 조차도 인간의 한계를 건드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좀 더 깊은 것도 아니지만 좀 더 본 사람은
에서가 훨씬 착해요

야곱은 그야말로 사기꾼입니다 그것도 악질 말이죠

바로 형 에서를 상대로 한 사기를 치는데 있어서 다들 반감을 가지는 부분을 알게 되면

왜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되었는가를 그때서야 반감을 가지게 되는 거지요

웃사는 죽이고 오벧에돔과 왜 다윗을 살리느냐 말이죠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가 이미 죽었는데
누구는 살아있고 누구는 억울하게 죽이시느냐 에 대해서 거부감을 해석을 한다는 자체가
우리가 나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결국 나에게로 회귀하는 해석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아합왕처럼 하나님을 대하기 때문이다 라는 거지요

우짜다가 초월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지금 열왕기상 저번에 18장부터 모든 인간
심지어 엘리야 조차도 다들 자신의 한계점을 부딧혀 가면서
여호와가를 알게 되는 사건에 부딧히는 겁니다
그러니 꽝 하고 부딧혀서 충돌 빵구멍 뻥 뚫히는 것은 맹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고 부러워 하느냐
안 그래요 모조리 허리 부서지고 지팡이나 짚으면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말이죠
아무도 안 부러워 합니다
다들 꼴 조타 형 에서를 사기치더니 라고 생각하죠

그러니 단 하나도 성경의 내용이 인간의 마음 곧 뜻에 단 한 개라도 맞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런판국에 하라 하지말라를 지키라굽쇼 지킬수 있다고요 지켰다고요? 순 사기 치는 겁니다

하나님이 달라요
그런 엉터리를 거쳐서 나온 하나님이니까
대충 대충 볼게 아니다 라는 거죠
내가 정작 죽임당하는 그 심판의 자리에 놓여지는 판국에서 말씀을 대하게 되는 겁니다
나의 대상물로써의 말씀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이 말씀이 자꾸 나에게 쳐들어와서 뿔로 구멍내고
칼로 찢고 물에 빠뜨려 베드로처럼 죽는 판국이고 불로 홀라당 다 태우는
내일 아궁이에 던질 풀이 남의 이야기가 안 되도록 하시는 겁니다
좋은 것 하나도 없어요 그카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고
창조주가 누구신지 단 한번도 안 적이 없는 자리에 놓여져서
지금 쳐들어와서 알려주시는 분으로써 등장하는 겁니다
매일 매일 말이죠

자 그렇게 다른 선지자를 통해서 상처가 나도록 매맞고 피투성이가 되 채로
아합왕이 지나가는 길에 기다렸다가 드디어 만나서 질문합니다

상처를 수건으로 감싸서 마치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왕이여 저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입니다 
동료가 포로를 잡아서 저에게 맡기면서 반드시 이 사람을 지켜라 놓치면 너가 대신 죽거나 아니면 벌금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 맡겼는데 제가 바쁜 일로 인해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그만 포로가 도망쳐서 놓쳐버렸습니다
우짜면 좋죠?

(왕상 20:39, 현대어) 마침 왕이 지나가자 그가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 저는 싸움터에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전선에서 친구가 제게 포로 한 사람을 끌고 와서 `이 사람을 잘 지켜라. 만일 놓치기만 하면 네가 대신 처형당하거나 은 한 달란트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왕상 20:40, 현대어) 그러나 제가 다른 일로 바빠서 정신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그 포로가 도망가 버렸습니다' 왕이 판결을 내렸다. `너는 네가 약속한 대로 벌금을 내든지 처형을 당해야 한다'

왕은 너가 그 사람과 약속한 대로 대신 죽던가 아니면 벌금을 내던가 라고 판결을 내렸다 말이죠

이거 다윗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율법 대로 그 부자 놈에게 4뱅나 갚으라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럼 선지자는 나단 선지자처럼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한 것처럼 너가 그래 니 말 대로 죽어라 라고 한다 말이죠
 
(왕상 20:42, 현대어) 예언자가 왕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잡아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가 풀어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사람 대신에 너를 잡아 죽이고, 그 백성 대신에 네 백성을 멸망시킬 것이다.'
(왕상 20:43, 현대어) 아합왕은 몹시 기분이 상하여 화를 내면서 사마리아의 왕궁으로 돌아갔다.


결국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나의 한계점을 빨리 빨리 들통당해서
어서 저 심판의 자리인 나의 본래의 자리에서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봐야할 입장에 놓여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애굽나라 모든 인간들의 선망의 대상인 애굽나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가장 부러워 한 이상국가인 애굽이면 애굽일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화 된 입장에서 왜 자신들이 선망하는 이 애굽이 멸망 당해야 하는지
이것은 곧 애굽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속이고자 숨겨도 감출수 없는 선망의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그런 부러움의 대상인 나라와 왕 제도와 신 그것도 열가지나 되는
인간을 도와주고파서 안달이난 열명의 애굽 신들
그야말로 인간의 보디가드입니다
인간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어낸 신입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은 완전히 정반대이다 말이죠
저들 신들의 죽음은 곧 모든 인간의 죽음이자
그래서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장자의 죽음인 거죠
인간이 곧 신입니다

그 신이 된 인간을 없애는 자 만이 진짜 여호와 이다 라는 겁니다

우상을 없애버리는 이 진짜 하나님에 대한 반발은 사실상 아합왕 뿐만 아니라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특히 더 하다는 겁니다
다윗언약은 모세언약 지키는 놈들까지 이유없이 무조건 다 지옥 보내시겠다 라는 지옥의 하나님으로 오시지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거지요

모세언약은 인간이 수용하겠다 라고 나서지만
다윗언약은 그야말로 도저히 수용 못하겠다 라는 겁니다

마치 이것은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
그렇기에 틀린 나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 라는 것은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 라는 것은

그야말로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자들이
모세언약 곧 율법 지켰다 라고 다들 좋아라 하는 판국에
남 7번 용서 했다 로 족한 판국에
반대로7에 70번 용서 받는 죄인을 부르시러 오신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럼 말라꼬 의인 될려고 했고
그럼 말라꼬 건강한 자가 될려고 했고
그럼 말라꼬 맏아들처럼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기적 없는 자가 될려고 했냐 말아죠

이 다윗언약은 모세언약의 한계점 이 의문의 증서의 한계점을 찢고서
십자가의 피 흘리심만으로만 의를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오히려 자기 의를 쌓는데 열심일 수밖에 없는
모세언약을 그것도 열심히 지키는 자 이지
그들이 뭐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자 일부러 그랬느냐 말이죠
아주 역설적이게도 십자가의 피 용서를 못 보니까
완악한 수건을 벗고자 해도 벗을 수가 없는 겁니다

모세가 언제 돌삐 맞아 죽을지 모르는 그 백성들의 완악함을 어디 한 두 번 겪은게 아니니까 말이죠
언제든지 돌삐 들어서 죽일려고 달려드는 판국인데
그러니 인간의 한계점에 부딪혀서 그래 언제든지 죽여라 라고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저 쪽이 완악하니
이 쪽도 완악해 질 수밖에 없는 거죠

모세에게 이혼 증서 써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언제든지 결혼은 이혼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카니까 절대로 이혼하면 안된다 라고 성화론자들이 억수로 범죄시 하는데
그것 또한 남의 눈을 의식한 것이지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닌 것은 맹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쪽에서 조건을 갖추겠다 라는 심뽀 자체가 악령이 씌인 것이다 말이죠
모세 지 혼자 그래서 안 벗겠다 라는 거죠

인간의 삶 인간의 결혼관계 유지를 위한 성경말씀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차라리 어서 빨리 다들 한계에 부딪혀서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온다 라는 것을 아는 것이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려주심에 심판의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호와입니다

애굽이라는 미움받기로 망하기 위해서 태어난 나라는
바로 진노의 그릇을 만드시는 분 조차도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통해서

그 애굽의 멸망이 심판이 저들은 하나님 한테 저주 받아서 그렇지요?
실로암 망대 무너져 18명 사망이 그렇지요? 예수님

아이고 시어머니 요즘도 이 개그 코너 하던가요?
아이고 하나님 한 명 또 올려 보낼께요
아 코너 제목이 니통의 인간극장이군요
잘 안보여서 제목도 모르고 봤었네요 ㅋㅋ

https://youtu.be/Mel3Y8cgTTY

에굽의 멸망이 곧 나의 멸망인줄 모른다 라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역시나 누구인줄 모르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전쟁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아니라 애굽전쟁만 주구장창 하고 있습니다
아합왕과 같아요
단 한명도 살려주지 않겠다 라고 아합왕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 라고 하지만
그게 바로 아합왕입니다

저들의 모습을 손가락질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판국인 상황에서
남 이야기 하듯이 할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전 지구적으로 세상의 죄악의 관영함을 보면서
오히려 전쟁이 안 터지는 지역의 사람들 조차도
왜 안 터지는 것입니까 라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는 입장이어야 하는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죄악이 가득한데도 말이죠

자기 잘남이 모인 그런 개인이 모인 집단화 된 국가라 할 지라도
결국 인간의 한계점은 자기 개인을 못 넘어서는 이상
아무리 국가라고 해도 역시나 개인이니까
그 개인을 보호해 달라 그런 개인을 보디가드가 되어달라는 그 애굽의 신을 쳐서 꺽으심은
언제든지 우리는 망해도 싼 입장에 놓여진 겁니다

차라리 아예 내가 없다 라는 차원에서 물론 불가능하지만
말씀대로 밀어붙이심 당하는 그 자리에 놓여졌음을 아신다면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미 다 완료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주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심판하심이 마땅하고 나의 한계가 빨리 드러남으로써

이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아는 그 지식
공부하는 지식 아닙니다
무조건 적인 이해 안되는 이 사랑을 말하는 겁니다신랑이 말만 사랑한다 라고 떼우면 그것은 동시에 신부 쪽에서
자기가 알아서 신랑을 찾아나서는 복수심에 들끓는 음녀가 되는 식입니다

그런데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자기 목숨을 신랑이 내어주면
이 아내는 그 사랑 앞에 모든 무릎을 꿇어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미쁘심 흔들릴수 없는 큰바위 뒤에 숨는 가장 미약한 부들부들한 마음이 되겠지요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저 딱딱한 울리는 꽹과리 소음 빈깡통 말 뿐인 헛깨비인 겁니다

이 사랑만 있다면 

나는 그 속에 눈 녹듯이 녹아 사라져도 촛불의 촛 물처럼 없어져 사라져도
상관이 없는

이 언약만이 옳았음을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동안 살려주신것만으로도 오히려 감사하죠
죄인임을 알게 해 주시는 시간이였으니까 말이죠
아합왕이 애굽왕이 다름아닌 나 였음을
이 우상을 심판할 줄 모르는 나를 위한 하나님은 우상이였음을
어서 이 우상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나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말이죠

이것이 지옥에 있던 애굽을 다시 끄집어 내셨다가 
망하게 하고자 태어나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는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만을 흥하게 하시고자 말이지요
이스라엘 조차도 애굽화 된 입장에서
예수님만 흥하고 나 세례요한은 망해야 한다 라고
자기 없음을 외쳤듯이
우리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 의문의 반복은 어서 사라지고
또렷한 주님의 몸만 새 것으로써 남기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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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6 야곱을 쳐서 울게 만든 여호와 기념칭호 (호 12, 1- 6)
2024.10.20. 

너희 가운데 거하는 사람 아닌 거룩한 자와 다시는 심판치 않으심 (호 11, 8-12)
호세아 2023 2024. 10. 19. 07:16
23-25 너희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니 멸망치 아니하리라 (호 11, 8-12)

〈호세아 12,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7쪽, 찬송가 483장 새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찬송가 364장 새 364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새찬송가 539장(통483)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새찬송가 368장(통486) 주 예수여 은혜를
새찬송가 338장(통364)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가스펠; 야곱의 축복
찬미예수 2000 - No.1934 당신을 향한 노래 (아주 먼 옛날)


〈가스펠; 야곱의 축복〉 

너는 담장 넘어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꺼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하시니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길을 축복할꺼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 
주의 품에 꽃피운 나무가 되어줘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있어 땡 탈락 (그 반대 너 야곱을 꺽는 애굽의 팔을 꺽는 팔 되신 주의 오른팔 여호와 너의 기념 이름의 팔 쩔뚝 쩔뚝 지팡이를 의지함 그 아무것도 아닌 지팡이 모욕의 구원 두려움과 떨림의 구원 어찌할꼬 울게 만드시는 팔
그 오른 팔에 팔짱끼고 결혼하는 야곱의 우물가의 여인 헵시바 쁄라야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고야 말겠다 이 노래 반드시 따라붙는 아주 먼 옛날 이것이 헵시바 쁄라를 향한 노래 비록 가스펠은 그 반대로 음녀의 노래로 부르지만 정작 당신을 향한이 예수님이 아니라 그 반대인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향한 노래임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겠다 너 남편 바알을 죽이고 내가 본래의 남편이니까)


〈가스펠; 당신을 향한 노래 (아주 먼 옛날) No.1934 찬미예수 2000〉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이게 거짓말이다 말이죠 사기꾼 야곱의 속이는 말이다 말이죠 너희가 날 사랑한게 아니라 그건 음녀가 자기 쪽에서 신랑을 찾는 방식이고 취사선택인 거죠 노예 고르듯이 직원 뽑듯이 반대로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 매 맞는 분으로 주셨다 라는 사실 그래서 우는 자 야곱으로 만드신다는 그 기념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매 때리고 죽여도 다시 사는
의인은 믿음으로 다시 살리라 라는 그 율법 외에 한 의로 오신 분만이 너 야곱을 사랑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는 내 아들이다 반드시 애굽에서 불러내리라)


〈어린이 찬송가; 옛날 옛적 하나님이〉

옛날 옛적 하나님이
짠짜라짠짠 짠짠짠
사람을 만드셨어요
흙으로 빚고 생기를 불어
후후 사람을 만드셨어요
남자를 만드시고
아담 아담
외로워 보이니까요
여자를 만드시어
하와 하와
짝지어 주시었어요

딴딴따단 딴딴따단
딴딴딴 딴딴딴 딴딴따단
딴딴따단 딴딴따단
딴딴딴 딴딴딴 딴딴따단


〈찬송가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새찬송가 539장〉 

1.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2.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네 슬픔이 없어지리 
   네 이웃을 늘 사랑하여 너 받은 것 거져주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3. 주 예수를 친구로 삼아 늘 네 옆에 모시어라 
   그 영원한 생명 샘물에 네 마른 목 축이어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4.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 예수를 찾는 이 앞에 참 밝은 빛 비추어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찬송가 364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새찬송가 338장〉 

1.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2.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3.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호세아 12,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7쪽〉 

(호 12:1, 개역)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하며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호 12:2, 개역)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
(호 12:3, 개역)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호 12:4, 개역)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 12:5, 개역)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호 12:6, 개역)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

(호 12:1, 현대어) [거짓된 종교와 정치는 소멸된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친구로 삼고 하루종일 뜨거운 동풍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들은 거짓과 폭력만을 일삼고 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제일 좋은 올리브 기름을 선물로 보내면서 도움을 호소하지만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쓸모 없는 약속들뿐이다.
(호 12:2, 현대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에 따라 벌하실 것이다.
(호 12:3, 현대어) 그의 조상 야곱은 태 안에서 이미 자기 형을 속였고 장성한 뒤에는 하나님과도 싸움을 겨루었다.
(호 12:4, 현대어)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이 벌어지게 되자 울며 간청하여 축복을 얻어 내고 하나님께서는 벧엘로 그를 찾아와 말씀하셨다.
(호 12:5, 현대어) '여호와, 온 세계의 주인, 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호 12:6, 현대어) 너는 이제 네 하나님께로 돌아와 늘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살고, 네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고 지내라.

(호 12:1, 현대어) [거짓된 종교와 정치는 소멸된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친구로 삼고 하루종일 뜨거운 동풍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그들은 거짓과 폭력만을 일삼고 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제일 좋은 올리브 기름을 선물로 보내면서 도움을 호소하지만 그 대가로 받는 것은 쓸모 없는 약속들뿐이다.
(호 12:7, 현대어) [가나안에서 장사꾼 정신을 배웠다] 내 백성이 가나안의 베니게 상인들처럼 저마다 손에 거짓 저울을 들고 다니며, 남의 눈을 속이기를 좋아하고 있다.
(호 12:9, 현대어) [광야 시대로 되돌아가라] 내가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너희를 구해 준 바로 그날부터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이제 나는 너희를 다시 천막에서 살게 하되, 우리가 광야시대에 만나서 축제를 벌이던 것처럼 살게 하겠다.
(호 12:11, 현대어) [농경 문화가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길르앗에서는 끔찍한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다. 어찌 그 백성들이 멸절되지 않으랴! 길갈에서는 농경신들에게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고 있다. 어찌 그 제단들이 밭고랑의 돌더미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랴!
(호 12:12, 현대어) [죄는 해방자에 대한 반역이다] 야곱은 아람 들녘으로 도망가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머슴을 살았고, 아내 한 사람을 얻으려고 양 떼를 지켜 주었으나

어 쉬운성경은 왜 소제목이 없지 라고 했는데
11장 마지막 절에 달려 있더군요 12장 전체의 소제목 으로써 말이죠

(호 11:1, 쉬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때에 내가 그를 내 아들처럼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 냈다.
(호 11:12, 쉬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짖으시다> 이스라엘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를 둘러쌌다.

그럼 소제목이 달린 두 번역 중 현대어도 11장 소제목을 다시 올려볼께요

(호 11:1, 현대어) [인정받지 못한 사랑] 이스라엘이 어렸을 적에 나는 그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를 애굽에서 데려다가 내 아들로 삼았다.
(호 11:7, 현대어)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강해진다] 내 백성이 골수에 병이 들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구나. 바알을 향하여 도움을 호소하고 있구나. 그런데도 바알은 그들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지 못하였다.
(호 11:10, 현대어) [추방당한 곳에서 돌아온다] 이제 내 백성이 나를 뒤따라 올 것이다. 내 백성이 사자처럼 포효하는 나의 소리를 듣고 서쪽에서 달려올 것이다.
(호 11:12, 현대어) [예언자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 에브라임은 온갖 거짓말로 내게 벽을 쌓고,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내가 전한 말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여전히 나를 믿고 그들의 거룩한 하나님으로 섬기며 충성을 바치고 있다.‘

(호 11:12, 쉬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짖으시다> 이스라엘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나를 둘러쌌다.


자 이렇게 누가봐도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거 사랑아니다 라고 다들 말하는데
주님 혼자만 아주 신이나셨는냥 반드시 이 사랑을 이루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과연 사랑 맞는지 안 맞는지 함 해 볼까
그 당사자 에게 함 물어보자 라고 말이죠

자 인터뷰 손님으로 에브라임을 모셨습니다
에브라임 당신은 지금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 라고 하시는데
과연 에브라임 씨는 이 말이 맞다 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도 때리시고 매로 작살을 내는 것 우리가 다 봤고요
그 증거 영상까지 다 찍어서 취재를 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브라임씨

저는 사랑 맞다고 생각합니다

엥~~~~~~~~~ 군중들이 다 야유를 보내면서 
어떤 관중은 당신은 지금 당신 부모에게 하나님에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어요 라고 고함을 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군중들도 맞아 맞아 라고 고함을 칩니다 저런 하나님일 리가 없어 라고화살촉의 집단광기처럼 말이죠 지옥 시즌 2가 나왔던데 
갑자기 베놈으로 변하다 보니 영 재미가 없어지더군요 
서양의 선악 개념이 없는 무작위 무조건 무이유로 지옥개념 이었 었었었었섰는데
다시 회귀로 해서 지금 이 땅이 지옥이라는 결론과 동시에 
인간이 살아있다 라고 우긴다는 그 자체가 지옥 
아무리 자식 놓고 아무리 부활을 해 본들 역시나 지옥이라는 것
지금 현재의 상황 곧 환경을 대변하는 증상물로써 다시 선악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회귀로 마무리 되더라 말이죠
선악에서 탈출하나 싶었는데 역시나 ~~~ 오징어게임도 이 땅이 지옥 그 자체이다 라고 했는데 투 는 어떻게 될지 뭐 기대해 본들 소용 없겠지만 말이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자기 한계에 부딪혀서 나오는 주변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는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장소와 그리고 인간이름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기념 이름 기념 칭호 말이지요

장소 뭐 벧엘 이나 브니엘이나 또는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이 지금 딛고 있는 땅
약속의 땅 아닙니까 백날 그렇게 좋은 의미 다 갖다 붙이고 도배를 해도그 우상의 속성은 못 버리기에 출애굽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음 취급 당하는 겁니다약속의 땅 자체도 원래는 우상의 땅이였다 말이죠 아브라함도 원래 우상조각가 였듯이 말이죠
그 우상성은 모든 인간의 실패성을 거쳐서 주님이 손수 직접 해결할 문제이지
인간의 숙제를 하면 할수록 더 골치아픈 완악한 수건을 안 벗는 역시나 도로 우상 자아숭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름도 나오는데요 그것도 기념이래요 글쎄
우리가 이 기념 이름에 대해서 한번 몇 년 전에 살펴본 적이 있었지요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26:8, 개역)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기념(새겨버리는) 이름 (사 26, 1-21)

18-36 도저히 지울려고 해도 지울수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마음 판에 새겨져 버린 이름

https://crosslamb.tistory.com/2149


19-97 여호와의 땅과 이름을 더럽힌 이스라엘심판과 주의 이름을 아낀 여호와 (겔 36,16-21)

https://crosslamb.tistory.com/2463


지금 에스겔이 30장 까지 올라갔으니까 아마 몇 달 후 늦어도 10개월에서 1년 안애 
다시 살펴보고 나누어야 할 말씀이니까요 여섯장 하는데 6개월 걸리니까 말이죠

미리 기념이름에 대해서 잠깐 먼저 언급하자면
이 기념 이름은 회개 또는 돌아온다 라는 말씀이 성취될 때
결국 거봐 약속대로 언약대로 돌아오게 되잖아 라고
그냥 안 돌아오죠 회개 라는 빵구멍이 뚫힘에 의한 눈물
오늘 제목인 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시는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그냥 이름도 아닌 기념 이름

왜? 너를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라고 부르시겠다 라고 한 그 당사자가 바로 여호와 본인이니까
그런데 그 이름 교체 때문에 정작 여호와의 이름이 더럽혀져야 한다 라는 사실
그 카이 동사무소에 가서 이름 고쳐서 새롭게 수정하는 그런 서류 떼고 하는 그런 개명신청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본인이 이름 수정해 놓고서는 본인의 이름이 더렵혀지는 그 과정을 거쳐서 수정하시겠다 라는 식이다 라는 거죠 아니 왜? 그 이유는 우리가 야곱의 눈물에 대해서 살펴 봐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거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곧 아들로 만드심은 주님 자신의 몫이다 라는 것을 정작 야곱은 이 이스라엘 됨의 실패를 거쳐서 알게 되듯이 말이죠

주님 본인이 야곱을 창세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유 없이 사랑하기로 작정을 하셨다 라고 해 놓고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
그 어떤 인간의 개입도 없이 홀로 그 약속을 성취함에 있어서
누가 방해자로 나서는지 그것을 극복하시면서 이루시는지를 말이죠
물론 미리 다 예상 하시겠지만
정작 우리는 다 안다 라고 하면서 늘 빠뜨리는 그 누락의 속성
아니 도대체 왜 우리는 알면서도 늘 빠뜨릴까? 건망증인가?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구요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당연히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의 이름을 정통성을 따라 나라 이름을 아무리 인간이 국명을 그렇게 지어도
지금 현재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이지요
정작 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존재로 끌어올 뿐이지 기능의 의미는 전혀 모른다 라는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원래 가나안 민족의 땅으로써 우상숭배의 터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허허벌판 안 쓰는 땅 인간들이 없어서 들어갈 땅이 많고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을
남의 나라 땅을 빼앗아서 왜 생고생을 서로 서로가 하느냐 라고 비꼬듯이
왜 깨끗한 땅 다 내버려 두고 저 우상숭배의 땅을 차지하느냐 라는 점입니다

물론 노아 언약에서 함과 그의 아들 가나안에 대한 저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우상숭배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삼은
음부의 권세가 되는 터 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문이요 바벨탑처럼 말이죠
소돔과 고모라요
큰성바벨론이요 그 원조는 애굽이요 예루살렘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
바로 세상의 중심 시온이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그 지옥에 이스라엘을 세우셨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잔칫집 애굽이 아니라 애굽이 낳은 함이 낳은 함의 자식의 땅인 거죠

그러니 인간이 생각하는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천국 개념이 다 깨어지는 겁니다
어떻게 음부의 권세 곧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지 않고서
세워지는 그런 상상의 망상 천국에 들어가고 하느냐 라는 거죠
이것이 유대교죠 그 유대교를 따라 천주교 구교 카톨릭 말이죠
그리고 신교 개신교 또한 그런 천국을 원한다 라는 사실이
제가 10대 끝 무렵 19살에 예수님을 만나
20대부터 지금까지 개신교의 모습이 바로 가짜 천국 종교놓이에 다들 빠져있음을
저 뿐만 아니라 다들 인정을 하면서 뭐 미래는 희망이 없다 라는 식으로 보더라 말이죠
그건 단순히 교회가 문을 닫는 교회가 많아서가 아니라
또는 자본주의 시대에 다들 돈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 반대죠 아직도 교회가 너무 많기 때문이요
아직도 돈이 너무 너무 적어서 라는 겁니다
아니 무슨 소리냐 돈이 많아서 타락하지 돈이 적어서 라니

돈이란 가장 좋은 노예인데 그래서 불의한 돈에 충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결한 돈에 충성하겠느냐 말이죠
그 좋은 노예가 너무 너무 적으니까 
거꾸로 그 노예를 반대로 주인으로 삼아버리니까 문제이다 말이죠
심지어 억수로 어마 어마한 돈에 의해 주인 자리 빼앗겨서 노예가 되는게 아니라
너무 너무 적은 돈에도 불구하고 노예가 되어버리니 말이죠

그 좋던 수 많은 노예를 바보 같은 거꾸로 주인으로 삼아서 거꾸로 노예가 되어버리니
몇푼 안되는 돈에 의해 다 주인 자리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하더라 말이죠

지금 한국 청년들이 겨우 3-4백 하는 돈 빌리다가 대학공납금이겠지요 대출받다 보니
저절로 원금의 4배나 불어서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더라 말이죠
은행은 어렵고 사채 시장에서 받다보니 말이죠
평균치가 1000 만원 빚이 된다는 거예요 그카이 뭐 이래 저래 또 사건에 역이고 하다 보니
그래서 자살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된 거죠

그럼 돈이라는 노예를 부릴수 있는 주인은 아무나 되나요? 다들 돈의 노예로써 활동하는 돈 먹고 돈 먹는 노예들 속에서 주인의 위치가 될려면
돈을 노예처럼 잘 부릴려며는 돈에 대해서 잘 알아야 돈을 부려먹을 수 있잖아요
심지어 지금은 돈이 신의 자리에 앉아버려서 다들 돈의 노예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판국에 말이죠

금융 지식을 잘 알아야 돈을 부릴수 도 있겠지만 그게 뭐 말처럼 쉬운것도 아니고요

돈 앞에서는 윤리 도덕 그리고 교육(교훈) 조차도 먹혀 들지 않으니 말이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 아닙니까?
그 불의한 돈에 충성하니까 주인행세 했다고 비방받는 가운데서도 정작 칭찬받더라 말이죠
결국 종말이 이와 같다 라는 겁니다

자기의 끝을 땡겨서 끝을 대비하는 자
노후생활 자금을 미리 계획하라 라는 말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라가 아니라
죽음을
종말을 빈터 공백을 땡기라 라는 종말에 나타날 그 인물을 맞이할 준비됐나 라는 겁니다
미래를 대비하라와 종말이나 죽음 또는 심판을 대비하라 라는 말이 미래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미래를 대비하고자 자기 자식의 선생으로 가정교사로 멘토로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선생으로 세우겠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역정을 내시면서 그래? 그럼 너는 구원얻는다 치자 내 너의 아들 만큼은 반드시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옥에 보내겠다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뭐 지옥 보낸다 라는 말 보다
하나님 본인이 목숨을 걸겠다 라는 말에 다들 기겁을 할 정도이다 말이죠

노아도 다니엘도 욥도 다 심판의 주 여호와를 증거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봐도 구원을 증거하는 자 로 밖에만 안 보이는 겁니다

그카이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자식에게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선생님으로 맞이하겠다 라는 거다 말이죠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아니 노아 다니엘 욥 조차도 사자 앞에 비둘기마냥 두려움과 떨림으로 벌벌벌 떨면서
겨우
아주 아주 겨우 겨우 구원받았는데
뭐 저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구원받은 자의 선배로?
그럴정도로 배부른 구원이 아닌데
능욕과 모욕의 무시 무시한 심판인데? 그 노아 다니엘 욥 의 세가지 성경말씀 속에 어디 인간 구원이 있더냐 말이죠

오히려 너희가 더럽힌 이 여호와의 이름만 겨우 겨우 구원할 뿐인데 말이죠
뭐라구요? 겨우 겨우요 하나님 본인도 겨우 겨우 라고 하셨어요

네 겨우 겨우
아주 아주 겨우 겨우 말이지요

신약에도 있지요 사실 구약 신약 다 그렇지만
신약은 마치 율법 강화인 산상수훈처럼 구약 보다 몇배나 더 강화된 
더더더더 더 아주 아주 겨우 겨우입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오면서 선생님이시여 라고 하던 그 니고데모 생각나시지요
사람이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말이죠

(요 3:1, 개역)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개역)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고 보니
[더더더더 더 아주 아주 겨우 겨우입니다]도 안 먹혀드네요
아예 불가능 한 단절 그 자체
절대단절 절대차단인 진짜 거룩의 구별성이 등장해 버렸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물은 노아 홍수 심판이고요
욥기와 다니엘서는 다윗언약에 해당되는 새언약인 성령으로 성령의 놀라운 탄식인
주님의 눈물로 욥은 하루 아침에 10명의 자식들 다 죽고요 온 몸이 아토피 저주를 받은
마귀로부터 시체로 취급당하는 시험을 겪었다 말이죠
다니엘은 사자 굴 속에 들어갔구요 금식은 뭐 기본이구요
이게 사람이 살아있다 라고 할 수 있는 모습입니까?
이런 종말을 누가 미리 앞당겨서 땡길수 있겠습니까? 미래표절이라고 누가 카던데 미래 배끼기
종말 표절을 누가 할 수 있겠냐 말이죠
네 맞아요 걱정 마세요 물과 성령이 하십니다
찢고 싸매고 찢고 싸매고
마치 국악의 장단처럼
그럼 노아 다니엘 욥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정년이처럼 살려 주시오 ~~~~~~~~~~~~~~ 살려       주 시 오

네 으악 이것만이 종말의 인물을 만난 자들의 모습이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야곱의 눈물입니다

지금 북이스라엘 땅은 물론 약속의 땅에 속한 남유다와 같이 말이죠 약속의 땅 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그 가나안 땅은 우상숭배의 민족의 우상숭배의 땅입니다

그 약속의 땅이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는 야곱이라 칭하지 않겠다
반드시 이스라엘로 칭하겠다

왜? 나 여호와가 내 이름을 걸고 너를 이스라엘로 만들테니까

그래서 이 요한복음 3장 1절부터 나오는 니고데모 이야기를 거쳐서
말씀처럼 그리고 어린아이 찬양처럼
요한 복음 3장 16절 이라고 나오는 겁니다

야곱은 이제 새 이름 이스라엘로 살수 있느냐?
자기가 자기 이름 개명한 것도 아닌데
남이 붙여줬는데
그 분 여호와 기념칭호가 자기 이름 걸고 했지
나 당사자 새이름인 이스라엘 이름을 부여받은 나 당사자는
이스라엘이 뭐 어떤 이름인지 무슨 의미인지 
뭘 알아야 바꾸던가 거기에 맞추는 조건을 성취하던가 하지 
아무것도 모른채 이름만 달랑 바뀌었을 뿐이지
야곱의 속성은 죽을때까지도 안 바뀌어지더라 말이죠
뭐 야곱만 그렇겠습니까 다들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아무리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들어가니까 온 갖 거룩의 의미를 아무리 때려붓고 해도
그 어떤 이유로도 우상숭배만 하던 인간이 무슨 수로 바뀔수가 있겠습니까
실천의 대가 라고 하는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밤에 몰래 찾아갈 정도로 존경하고
다른 바리새인과 달리 아무리 우호적인 태도로써
선생님 이라고 칭호를 해도
여호와를 부르는 사자 앞의 비둘기는 역시 아닌채로
어떻게 해서든 실천할 자세로 맞이해도
예수님은 살살 맞게 그 마음자세 태도를 봐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는 니 마음에 정직한 영이 없는데
왜 날 찾니? 라고
더더욱 그의 대접에 걸맞게 아무리 완벽하고 모든 것을 갖춘 자세로 임해도
예수님은 예수님 쪽에서 순수 집적 마련하신 이 화목제가 아니면 다 소용없다 라는 식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 없다 라고 하시는
이 단절의 갭 간극을 더더더더더
더유 더유 더 부세유 어허 더유 세게 더더더더더
어떻게든 좁힐려는 그 속임수에 더유 더유 더 간극을 더 벌리시더라 말이죠

물과 성령 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런 단절 이다 말이죠
마시는 물이 아니라
노아 홍수 라는 물심판이자 불심판이다 말이죠
그래야 찌끼 혼합물이 다 빠지는 (인간이 나서봤자 결국 혼합물 찌끼 썩는 일 밖에 더하겄냐 말이쥬)
찢겨져야 하고 밭갈아 엎어버라는 기경 전복시켜야 하고
노아 홍수는 노아만 당했나요 뭐? 
주님의 은혜로 두 손으로 싸매어 주시는 
소금쟁이처럼 아쿠아룸처럼 그 물이 뭍지 않도록 하시는 자와 (이게 은혜죠 딸랑 공짜 은혜만 있는게 아니라 상대적인 애굽의 바로왕의 팔을 꺽으심과 함께 한 세트로써 그 심판 속에서의 건짐이지 이것이 두려움과 떨림이지 한 세트가 없이 딸랑 공짜 혼자만으로 펼쳐지지 않죠잉)
물에 빠져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와 중에 둘로 갈라지는
하나는 천한 진노의 그릇 하나는 귀한 긍휼의 그릇으로 삼았으니 말이죠

니고데모가 바리새인이지만 유대인 아닙니까
그 카이 에발산 그리심산으로 나누어진 그 사건을 모를 리가 없고
제물이 둘로 가르는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지만
정작 몰랐다 말이죠
알아도 모른다? 모른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껍데기만 도사요 박사요 달인들 실천까정 하면서 말이죠
(왜냐하면 속 알맹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거 속 알맹이 했다가는 자기가 그 동안 쌓아 놓은 공든탑도 같이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외쳐야 하기에 그렇게 되면 남 앞에 내세울 자랑꺼리가 없게 되니 이게 걸림돌 거리끼는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내세울꺼리가 있어야 남을 이겨먹고 꺽을 수 있는디 말이지라우 결국 자기가 중요하지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두 중요치 않응께잉
그래서 아간의 범죄로 아이성을 못 이기는 겁니다 아간은 그들의 증상물잉께 ~~~)
그럼에도 단 한번도 창조주가 누군지 모른다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 라는 겁니다
희힌하지요

그카이 천국이라는 장소에 들어가냐 못가냐 만 생각하지
그 천국에 있는 그분과의 사귐은 후차적인 것으로 본다 라는 겁니다
일단 들어간 뒤에 그 분과의 사귐을 생각하지
들어갈지도 못들어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먼저 사귄다 ? 에이 말도 안돼 라는 그 생각 자체가 육의 생각 하나님과 원수된 생각인 거죠
보이는 것만 소망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 너머의 것인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자기 꾀에 자기 한계로 걸려 넘어지는 누워서 침뱉기 하는 거죠
율법이 저들의 올무가 되듯이 말이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듯 자기를 삼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잡아먹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묻는 그 니고데모 옆에
그 천국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 옆에 있어도
안다 모른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여호와가 누군지 단 한번도 믿은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안 적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도록 주의 이름을 붙이고 다녔다 라는
이 역설의 모순 의 간극을 무슨 수로 좁힐수 있겠냐 말이죠
남도 아닌 내가 그 간극을 벌려놓고서는 내가 좁히겠다 라고 내가 나를 매일 매일 속이고 있는데 그 속이는 자의 속성인 야곱의 자리에서 때려죽어도 벗어날려고 하지 않는데
벗어 날수도 없는 거지요뭐뭐뭐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수도 없다 라고 우리가 로마서 8장에서 살펴봤지요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천국이란 바로 예수님으로써 그 자체로써
천국 되시는 예수님이
곧 천국이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물에 빠뜨려 죽이는 천국이요
(이 야곱을 죽여야 이스라엘과 연합 세례 한다 말이죠 물과 성령 이 물이 나를 제대로 죽이는 절대심판 곧 노아홍수이다 말이죠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날 태우든지
그래서 야곱 언약 언약이라는 말은 나를 비언약으로 만드는 언약이다 말이죠 그래야 본래의 자리인 이스라엘 자리로 본래 본향의 이름으로 만드시는 기념칭호이니까 말이죠)
나를 죽여놓고서 성령으로 곧 은혜로 노아도 은혜를 받았다 욥도 은혜를 받았다
다니엘도 은혜를 받았다 라고 했기에
그 죽음 속에서도 은혜를 성령을 받았기에
(은혜란 애곱왕 바로왕의 팔을 꺽었듯이 야곱의 팔도 꺽어서주님의 팔도 꺽어서 야곱의 팔에 기브스 주의 팔을 대신 붙여서 싸매어주시는 거죠애굽팔이나 야곱팔도 둘다 양발차기로 꺽지만
야곱에게서는 주의 팔을 먼저 꺽으심이 먼저 떳기에 주의 팡을 대신 붙여서다시 싸매어 주신다는 사실 이 다시 싸매어주심이 없어서 애굽은 미움밭기로 작정이고이 다시 싸매어 주심 때문에 사랑하시기로 작정 결국 먼저 떳다는 그 약속은주의 팔을 꺽으셨다 라는 사실 우리에게 붙야주실려고 이 둘이 된 원수관계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이 화목제물 되심이라는 섬기시는 왕으로[원수 사망권세 이기심] 양을 위해 오심 대신 죽는 목자[끝까지 섬기심]로 오심 이 두 막대기를 하나로 붙이심으로 오셨다 말이죠)
다시 싸매어 주시는
베드로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 다시 물 속에서 건져 살리실 싸매어 주실때에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시길래 저 풍랑도 저 사망 권세도 저 죽음도 잠잠케 됩니까
방금 죽은 나를
죽음이 덮쳐진 나를 물이 덮쳐진 나를 살리시는 도대체 주님 당신 누구시오 ~~~~~~

정년이가 누구시오 당신 누구 시요 ~~~~~~~~~~ 라고 우는 겁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예수님 이겨먹었다는 냥 씨름해서 축복 따내고
장자권 따 내고
물 위를 걷는 남들이 얻지 못한 축복을 왕창 받았을때에는 언제고

이제는 살려 주시오 ~~~~~~~~~~~~~~~~~~ 살려 주시오 ~~~~~~~~~

라고 울면서

비로소 사자 앞에 비둘기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부들 부들 바리바리 온 몸에 몸살 감기 걸린
땀범벅이 된 채로 떨면서 그 이름을 비로소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기념칭호입니다
즉 내 이름을 높일려는 개 수작이 들통을 당함과 동시에
그 수작을 들통내신 당신의 이름이 높여질 때

정작 나는 그 이름을 짖밟고 올라갈 생각만 한다 라고
내 아픔만 알았지
주님의 찢겨짐 자체를 몰랐다 라는 거죠

나 한테 매 맞는 주님
나 한테 버림받는 주님
졸지에 잃어버린 동전은 내가 아니라 당신을 잃어버린 동전으로써 찾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외침인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당신 만이 장자 맏아들이요 당신만이 충복받을 자 인데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서
하나님에게 저주 받은 자 이다 라고 뒤짚어 씌웠으니

40일이 지나서야 그 단절 속에서
비로소 물과 성령을 받게 되니
비로소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라고 우는 이스라엘로 만드시더라 말이죠

약속하신 성령 곧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하나 없는 가운데
주님이 우리 손에 달려 죽으셨으니
이제 그 약속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내가 우리가 그 약속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죽여 
짖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이루시고자 다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약속한 대로 성령을 주시니까
비로소 기념 이름 답게
원수도 사랑하는 그 이름 맞군요 맞닿께롱

그 이름만 높여지고 그 이름만 기념이 되시더라 말이죠

그카이 모세가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기념이름이 되어달라고 말이지요
그 카이 비싼향유를 부은 여인이 예수님을 미리 어서 죽어주세요처럼 미리 장사를 치릉께
복음이 증거되는 곳 마다 이 사건이 기념이 되도록 하신당께
결국 화목제물 너희가 날 사랑한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아끼지 않았다 라는 거지요잉

그 카이 니고데모 이야기 하고서는
거봐 내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다 화목제를 주셨다 라고
호세아 11장에 불만 있는 자들의 입을 잠잠케 만드시는
허걱 으악
살려 주시오  살려 ~~~~~~~~ 이 려는 길게 길게 뿜어야 한당께롱
지팡이를 의지하는 야곱이 지팡이가 뿌라지면서
자빠져 실족해 웅성 우성 거리면서 비웃는 가운데서 말이지요

살려 주이소 ~~~~~~~~~~~~~~~~~~~~~~~~~~ 이것이 야곱의 눈물이라 지라우

그래서 니 이름이 뭐 당냐? 아니 이 판국에 왜 이름을 물었샀수
야곱 이지라우
다시는 야곱이라 허지 않구 이스라엘이라 할랑께?
너가 하나님과 싸워 이겼뿌응께 그렇게 알당가 ~~~~~~~

그카면서 허리 뿌쌋뿌고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디 그 생명을 친 거지요
물에 빠져 죽이는 고자로 만든 셈이다는 겁니다
지팡이 만을 의지하면서 걸어야만 하는
이것이 할례의 정신 연기의 정신 표정을 진지하게 하면서 목을 꺽어가면서 말이죠
이것이 세례의 정신
곧 성령의 정신입니다

곧 성령이란 우리 마음판을 도려내어서 이 중심을
예수님의 중심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영으로 채우시는
이 다 이루었다 라는 십자가의 영을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여호와의 뿔로 빵구멍 내어서 주틀로 만들어서 예수님의 마음을 부어버리시는 겁니다

얼마나 정직한 영이 없으면 중심도 없고 마음도 없는
그저 육신의 생각 뿐이였으면
예수님을 죽여도 40일 동안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 라고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한 성령이 부어지니까
40일 만에 그 긴 시간동안 그 동안 뭐하고서

40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을 찢어죽인 것을 비로소
어찌할꼬 어찌할꼬 라고

마음도 없고 중심도 없는 그 한 복판 한 가운데에
성령이 오니까 비로소 살인자요 원수요 지옥의 몸임을 알고
우는 겁니다
비로소 주의 주 되심을 비로소 보고서
벌벌벌 말이지요

40일 동안은 지가 사자라꼬
사자 로써 예수라는 그 악질 중의 악질 범죄자를
그 사상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라는
그 방구뽕을
똥물에 7번 담겨짐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6번도 안돼
39일 째도 안돼
절대심판의 자리에 놓여지는 그 우는 자리에서
그 심판의 자리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마귀 느부갓네살 왕을 주의 종으로 삼아서 그 모욕적인 바벨론 강가에서
기생이나 부르는 노래로 취급받는 그 예루살렘 중심의 노래를 울면서 부르면서

비로소 그 기념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 단절의 자리에서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는 창녀의 자리에서
기생라합은 기생의 자리 심판받아 마땅한 가나안 원수의 자리에서
40년 동안 간담이 녹아서 부들 부들 떨면서 말이지요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어찌할꼬
이것은 단순히 사람의 감정을 끌어올리고자
머리가 쭈삣쭈삣 희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숭고?
이 숭고 라는 단어로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너무 너무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에 다가갔다가는 타 죽고 마는
그 무시 무시한 아름다운 영광 앞에 머리를 바짝 엎드려 부들 부들 두려워 떨리는 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때 말이지요 감히 얼굴도 못들고 바짝 엎드려서
그 영광의 광채에 안 타죽을려면 말이지요

왜 안 타죽지? 나는 사망의 몸이자 지옥의 몸일 뿐인데 
최고의 영광을 최고의 지혜를 바로 직통으로 맞딱뜨렸으니
얼마나 다리가 부들 부들 떨리지 않겠냐 말이죠
저절로 모든 무릎을 꿇게끔
안그러면 저절로 그 무릎이 녹아져서 저절로 빵구멍나는 돌파 돌격 충돌로 인해
즉사했던 웃사처럼 말이지요

얼마나 우리가 모욕을 했잖았습니까?
더럽다고 침을 뱉었고 발길질 했고
뺨을 때리면서 어느 손으로 때렸게!!! 
그 앞에서 아파트 아파트 중독게임 술게임을 했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고 요즘 애들이 아이들 괴롭힐때에 똥먹이고 하듯이 말이죠
왕따 시킬때에 가장 모욕을 주고자 함이지
가장 명예로움과 자랑할 꺼리를 주지 않잖아요
평생을 얼굴 못 들고 다니겠끔 모욕과 능욕을 심어버려서 스스로 자살하도록 몰아가는
평생 트라우마를 심어버릴 정도로 말이지요

그냥 이유 없는 미움을 퍼부어야 하는 겁니다
왜 그랬니 라고 물으면 아무 이유 없어요 그냥 심심하니까
주유소 습격사건의 대사 이거든요
자기들도 그 결핍을 맥꿀방법이 없으니까
자기 보다 더 약한 자를 찾아내어 화풀이 원한을 풀고자
그 결핍을 채울려고 하는데 채우기는커녕
더 그 결핍에 밤새도록 하이에나처럼 우는 겁니다
배고프다 라고 배 채워 달라고 그 배가 지옥이니 바닥이 없으니까
아무리 밑빠진 장독대에 물을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는 거지요

그냥 이유 없이 미우니 그냥 죽어라 자살하라 라고 하면 자살 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마귀를 미리 격는 것이 주님의 심판인데
이 주님의 징계의 매가
이 단절의 성령을 미리 받으니
뒷북치듯이 죽이는 마귀의 살기는 시시할 뿐인 겁니다

아이고 그것도 괴롭히는 것이가?
절대심판 절대저주 절대죽음 근처도 못가는 주제에
예수님의 이 정녕 죽으리라 근처도 못 오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
어딜 사망아 누굴 쏘며 어딜 머리를 쳐 들고 있느냐 말이죠
이 은혜가 이 십자가의 죽음
진짜 죽음인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용서가 왕 노릇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야곱은 우는 겁니다
그 우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나오는 겁니다
허리 뿌싸진 그 자리에서
그 빵구멍 난 빈공백의 중심이자 한 가운데 이며
마음이 없는 야곱에게 비로소 마음이 생겨서 말이지요

비로소 우는 겁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내 죄 때문에 갈기 갈기 찢겨지신 예수님을 보고 말이죠
그게 바로 여호와 기념 이름으로써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전능자 라는 이름이다 라는 거지요
그 여호와가 이제는 신약에서는 예수 라는 이름으로써
더더욱 괴롭힘에 있어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 안 허요
이제 죽었다 복창 할 판국 뿐인 겁니다
그 죽은 자리에서 새로 태어나니께엥

(고후 6:8, 개역)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요한 자요
속이는 자 같으나 참 되니
여기서 왜 속이는자가 왜 나오는거여 라고 했는데
아 바로 야곱을 말하는 구나
이 야곱을 이스라엘을 맹그는 것은 오로지 여호와의 이름 기념으로만 이루신당께요


보라 지금은 은혜의 날 이요 뿌뿌뿌 나팔절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
이는 구원의 날이로다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개역)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사 49:8, 개역)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고후 6:2, 개역)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의 때에, 나는 네 말을 들어주었다. 구원의 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요,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 ㉡사 49:8(칠십인역)
(고후 6:2,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ㄱ) `너희를 불쌍히 여기는 때가 오면 너희가 부르짖는 소리를 내가 들어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환영하고 계시는 때이며 오늘이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시려는 날입니다. (ㄱ. 사49:8)


그 비밀을 이제서야 알아 부려 먹었당께

어화 둥둥 내 사랑 야곱아 아니 이스라엘아
어화 둥두둥 내 사랑

이리 보아도 내 이스라엘
저리 보아도 내 이스라엘

나의 사랑 헵시바~~~야
나의 기쁨이 쁄라~~~야

그카이 이스라엘 아들에서 도저히 이스라엘이 아들 곧 출애굽을 못 항께
예수님이 반칙으로 참이스라엘이 되셔서 출애굽을 하시공

이 이스라엘은 졸지에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성기가 없는 육의 단절 할례 차단 
육으로 나지 않고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음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
물론 의학계에서는 말도 안 되기에 생식기가 있어서 존재하기에 고치지만
무의식에서는 없는 존재라는 비존재가 진리이다 라고 여성이 진리이다 왜? 성기가 없응께 라고 없는 자 취급하는데 이 비존재를 진리라고 하는데

이 이스라엘을 꼬추를 뿌셔버려서 짤라내어서 여자로 예루살렘 딸로 만들어서

아이고 내 낭군이 당신 이셨구려 라고

해품달 해를 품은 달처럼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안으리라

나를 위해 죽으신 내 남편 내 낭군이 당신이였구려 하고 울면서 울면서
뒤에서 껴 앉으면서
이 뒤에서 껴 앉는 모습은 마치 그 뭐였더나 마리아가 예수를 안은 모습
에비타 였던가? 에뭐타 였는데 에이 또 검색해 보죠 뭐

아 피에타 이탈리아어로 비탄 슬픔 이라는 뜻이네요

야곱이 그렇게 비탄에 쩔어서 우는 겁니다
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말이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해서?
끝까지 따라가겠다고 장담한 그 장담을 못 이루어서? 이루어 본들 어차피 의문의 반복일텐데 여전히 결핍이다 말이죠
까짓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지 못해 너무 너무 억울해서? 그것도 아니지라우
마리아가 아들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엄마라서?
이것은 다 육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가짜 하나님인 우상의 생각이다 말이죠 다 탐심이다 남의 눈을 의식한 말이죠

그 반대입니다
나의 눈물을 씻겨주시는 주의 눈물을 봤기에 말이죠
드디어 어서 죽어주소서를 다 이룬 이 완료를 봤기에
언제든지 나는 지옥의 몸으로 들통나든 말든
드디어 다 이루셨음을 봤기에 말이지요

그카이 우는 자가 곧 바로 기뻐서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여자가 남자를 뒤에서 껴 안는 겁니다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어 그리고 보니 이사야의 흐름과 비슷하네요 우리가 살펴본 주님 혼자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처럼

혹시 표시해 놔라 다시 돌아올당께 그 내용이 앞의 장 뒤의 장 바로 근처에 있지 않을까요잉?

(렘 31:1,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렘 31:2,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렘 31:3, 개역)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렘 31:4,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렘 31:5, 개역)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렘 31:6, 개역)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렘 31:7,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렘 31:8, 개역)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렘 31:9, 개역)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렘 31:10, 개역)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렘 31:11, 개역)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렘 31:12, 개역)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렘 31:13, 개역)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렘 31:14, 개역)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5,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 31:16, 개역)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7, 개역)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렘 31:18, 개역)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렘 31:19, 개역)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렘 31:20, 개역)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21,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렘 31:23, 개역)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렘 31:24, 개역)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 함께 거하리니
(렘 31:25, 개역)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렘 31:26, 개역)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음메 바로 위네 그려브려 바로 윗 구절이네요잉

(렘 31:21, 개역)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꼭 호세아 지난 번의 11장처럼
어이구야 니가 내 한테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겸심했따믄서

야 이놈 패역한 딸아 내가 너를 놓아주것 같으냐
내 너에게 반드시 장가 들어야 쓰것는디

아따 전라도 사투리 은근히 재밋소
경상도는 딱딱한디





왜 그리심산이 아니라 에발산에 올라갔나
언약궤의 언약의 정신은 잔칫집이 아닌
광야 초상집에서 너를 애굽 에덴동산 같았더라에서 개유 꼬셔서
너와 결혼하시고자 하셨듯이

그제서야 어찌할꼬 우는 자리 40만에 성령 받으니까 말이죠

여리고성을 이겼을때에는 언제고
가나안성 중에 가장 큰 성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 무너뜨렸다면
가나안은 이미 끝났는 것인데
오히려 역전 현상으로 가장 작은 성 아이성 하나 못 이기는 이유는
자기 힘으로 할려고 자기 의로움으로 할려고 하니
아니 언제 주님이 배 고팠고 언제 목말랐고 언제 헐벗었습니까
소자 한테 안한 것이 내 한테 안한 것이다
이 가장 작은 아이성 하나 못 무너뜨린 것이 나 한테 안한
저들 이방백성은 우상으로부터 건져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성 대 패배후
모든 인간의 방법 다 해도 소용이 없어서
전쟁 중에서도
다시 에발산에 올라가는 겁니다

즉 여리고성처럼 바짝 엎드려서 뺑뺑이 돌면서
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세 번 원망한 죄인이며 그 증거가 이 증거궤에 있습니다 라고 
뺑뺑이 도는 그 정신을 그 십자가의 정신을 다시 광야에서
다시 에발산에서
다시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왜? 중심이 없기에 중심 달라고
마음이 없기에 마음 달라고
정직한 영이 없기에 정직한 영 달라고
빵구멍 뻥 뚫혀서 아이성으로부터 수치를 당했기에
그 빵구멍 난 수치를 굵은 베옷으로 가려 달라고
굵은 베옷은 누가 대신 우는 자 였는가 라는 그 화목제물의 눈물을 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에발산에 올라가 단을 드렸더니 그제서야 아이성을 그 가장 작은 성을 이길수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윗이 마지막 남은 가나안 족속 여부스 족속을 이길수 있었던 그 이유가 미리 깔려진 의미입니다

이 작은 부정한 돈에 충성하지 않는데
누가 큰 돈 누가 정결한 돈에 충성하겠느냐 말이죠

그렇게 정결한 돈에 충성하는 자칭 빛의 아들들이
부정한 돈에 충성치 않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에 의해 다 무너지는 이유이듯이

유대인에게서는 이 부정한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네 맞아요 손흥민이가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로써
만약에 세계 강국을 다 이겻다고 칩시다
그런데 일부러 봐 주는게 아니라
동네 축구인 아이성 전투 축구에서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맨날 지는 겁니다
여리고성에 이겼던 자가 말이죠 그런 식으로 이해 한다면

유대인은 이 십자가를 목에 걸린 까시처럼 걸림돌 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율법의 달인이고 말씀 지키는데 도사들이
이 십자가 하나에 다 걸려 넘어져서
단 하나도 지킨 적이 없었다 하나님을 창조주를 믿은적이 없었다
여호와가 누군지 알 전이 없었음이 들통나 버리는 사건으로써
십자가를 맞이해야 할 입장에 놓여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아이성과 에발산이 갖는 의미 입니다



우리가 지금 에스겔 호세아 로마서를 하면서 느끼고 있는 것은
주님은 그 촐애굽때의 그 첫맹세를 그 첫사랑을 여전히 반복하시면서
우상과의 전쟁을 하시고 있다 라는 겁니다

아니 그 과거의 캐캐묵은 그 수천년전의 일을 아니 왜? 말이죠

그것은 출애굽 한 인간들이 단 한놈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 이전에 북이스라엘이 망하기 직전인 이 호세아서에서부터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그 언약을
북이스라엘로부터 출애굽 출이스라엘 하시듯이
지금 고멜 창녀와 같은 이스라엘과 출애굽 전쟁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에스겔을 하면서 어 에스겔에서도 하던데요???
어 그건 구약인데
신약인 로마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로마서에서도 여전히 출애굽 첫맹세의 전쟁을
첫사랑의 전쟁을 하고 있던데요?

하루의 첫 때가 언제 입니까? 바로 새벽이지요
해뜨는 때

새아침이 밝았네 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마을도 새롭게 한다고 해서 새마을
뉴마을 뉴 빌리지 뉴스 새로운 소식 굿 뉴스 복된 새소식

그런데 인간이 그 새벽을 차지해서 새벽별 되신 예수님 보다 더 높아질 거야 라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계명성 교만한 자가
소위 재벌 부자는 새벽부터 활동하거든요
소위 그들의 신념이나 믿음은 일반인과 다르게
사람과의 경쟁을 하는 자들이 아님을 자부하고 있는 겁니다
괜히 교만한게 아니거든요
그들은 신과의 경쟁에 나선 자들입니다 생각 자체가 틀려요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은 별이 되겠다 라는 의식 자체는
스스로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귀신 씌이지 않는 이상
그야말로 호모 데우스 나는 신이다 라는 식입니다
일반인이 나는 이 분야의 최고가 될 거야 하고 하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아무도 동의를 안 합니다
아 그냥 큰 꿈을 꾸는 구나 라고 뭐 나도 그랬었었어 라고 하고 넘기면 그만인데

이들은 왜 내가 이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또렷한 목표와 거기에 대한 자기만의 개성으로써의 실천계획이 또렷하게 나옴에 있어서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들 공감하는 식으로 우와 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또렷함을 느끼게 될 정도로 아 당신은 도전할 수 밖에 없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도전할 사람이 맞군요 라고 응원하고픈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괜히 새벽을 깨우는 자가 아님을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소위 성경학자들이 밝혀낸 다니엘서의 네 짐승이나
다니엘서처럼 짐승의 수 666이나 등등에 해당 되는 그런 인물들이

금신상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은신상 메데 파사 왕 고레스왕
동신상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
철 신상 로마제국
철과 진흙은 열국시대 이방의 시대

이렇게 나열되면서 나폴레옹도 나오고 히틀러도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에 해당된다고 라고 학자들이 해석을 하지만
그들 특정 인물들이 왜 그렇게 나오는고 하니
다들 새벽별이 되고픈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느부갓네살 왕의 색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현대인들은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배운 것이 없어도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인정받기 위한 투쟁 때문에 니체의 후예들은 이제 자기가 적극적으로
선악을 아는 하나님이 되지 않으면 그저 남의 먹잇감 밖에 안되는 시대가 된

죄악의 관영 [관영(fullness)?? '가득 차 미치지 않은 데가 없음'을 뜻한다]

모든 인간이 계명성 새벽별이 된 겁니다

결국 니체의 주장처럼 미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자기가 예수다 라고 예수와의 경쟁 구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겁니다
예수님과 경쟁하는 현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거나 좋아하거나 
안 믿어도 존경 존중 하거나 또는 미워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정도로 의식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그 당사자 예수님 본인은
아예 대 놓고서 너와 충돌 하러 왔다 라고
어서 예수에 대한 적개심 살인의지를 드러내라 라고 하시듯이
이 성경말씀을 펼치신다 라는 점입니다
거기에 뱃구멍 뚫혀버린 자가 바로 다윗이듯이
이 다윗언약대로 호세아서가 다윗언약이니까 말이죠

내 반드시 너를 여호와의 뿔로 충돌하여 뚫어버리시겠다 라고 찾아오시는 겁니다

(삼하 6:8, 개역)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대상 13:11, 개역)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대상 15:13, 개역)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출 19:21,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출 19:24, 개역)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출 19:21, 새번역)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에게, 나 주를 보려고 경계선을 넘어 들어오다가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일러 두어라.
(출 19:21, 공동)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이 백성에게, 야훼를 보려고 마구 넘어 들어오다가 많은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어라.

신칙, 申飭
명사
단단히 타일러 경계하는 것.

개유랑 비슷하네요 광야에서 개유하여서 꼬셔서 속여서 결혼 하시겠다처럼 말이죠

(호 2: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개유, 開諭
명사
사리(事理)를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는 것.

성경사전 - 개유하다(allure)

알아듣도록 깨우쳐 타이르는 것을 의미하며, 히브리어 원어는 '설득하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은 호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언급되었다. 즉,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설득하여 돌아오도록 타이르신다는 사실을 이 말로 설명하였다(호 2:14, 공동-새번역 '꾀어 내다'). 

쟁변하자 서로 변론하자 싸우자 이스라엘아 ~~~~~~~~

(사 1:18,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 공동)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렘 12:1, 개역)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호 4:1, 개역)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12:2, 개역)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사 3:13, 개역)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사 41:1, 개역)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사 43:26, 개역)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고 서로 변론하자 너는 네 일을 말하여 의를 나타내라
(미 6:2, 개역)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물론 내어버려 둔 사생아에게는 해당이 안되고
이들 사생아는 자녀를 때리는 회초리 앗수르로 활용하시듯 주변에 배치시키신 것이지요


(창 35:18, 개역)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창 35:18, 새번역)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하였다. / ㉣'내 슬픔의 아들' ㉤'오른손의 아들' 또는 '남쪽의 아들'
(창 35:18, 공동) 마침내 라헬은 죽게 되어 숨을 거두면서 아기 이름을 벤오니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기 아버지는 베냐민이라 불렀다.㉠ / ㉠벤오니는 '가엾은 내 자식(?), 괴롭게 낳은 아들(?)'이라는 뜻이요, 베냐민은 '내 오른손 같은 아들(?), 남방인(?)'이라는 뜻이다.
(창 35:18, 현대어) 그러나 라헬은 죽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거두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다.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인 야곱은 `운이 좋은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냐민이라 고쳐 불렀다.

또 못 이겨먹었다 라고 끝까지 억울해 곧 죽어도 위로를 못 받는
그러나 이미 베냐민 인데 말이죠
슬픔 대신 찬송인데 말이죠

그렇게 죽은 자 같으나 사실은 산 자로 만들어 줘도 그 승리를 못 먹어요 못 누리는 겁니다
이스라엘만이 누리지 야곱은 끝까지 싸울려고 해요 글쎄 속이다 속이다 못해
자기 꾀에 자기가 계속 속이는 그 의문의 반복 속에 있으니 못 누리는 거죠
다 이미 이겨서 끝나서 누리고 있는데 말이죠

그것이 야곱의 눈물입니다 야곱은 원래 지도록 되어 있고요
그런데 반대로 야곱은 자꾸 이겨먹을려고 하니 이스라엘이 못 되는 거죠
지금의 저 유대인처럼 말이죠

반대로 이스라엘은 원래 본래 이미 승리한 자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다들 이미 졌다 라고 다들 지근 지근 밟지만 오히려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지요
괜히 짖 밟다가 하나님한테 짖 밟히는 올무에 걸려든 겁니다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결국 이스라엘을 말하는 겁니다
누구와 동행하기에?
참이스라엘로 오신 이유도 야곱의 이스라엘 되기의 실패를 염두했기에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겁니다

호세아서는 지금 주님의 사랑이 곧 기념이름을 세우기 위해서
이 흑암들의 속성 곧 우상의 속성 야곱의 속성과 싸워서
이스라엘 이라는 자기 신부 만들기를
고멜과 같은 창녀 이스라엘을 통해서
기념이름 아무리 더립히고 더럽혀도 
더럽혀지지 않는 아껴둔 이 기념이름을 창조하기 위해서
주변의 것들이 다 동원이 되고 있는 입장입니다

이미 다 세워졌기에 다 이룬 완료이기에
그 증상물로써 천한 그릇 꺽이운 애굽의 팔을 지옥에서 부르고
야곱의 팔도 같이 꺽어서
니 팔 뿌라진 것 보다 주의 팡을 꺽어서 대신 붙야서 싸매어주심으로 인해서만

창과 같의 무기 전쟁이 아닌
이 기념 이름의 전쟁으로

이 사랑 때문에 비로소 새창조 새이름을 곧 본래 본향의 원래 이름인 이스라엘로
세 창조 받는 겁니다

처음부터 있었던 이름이요 나중 되신 이 종말의 이름인
이 새 영 새 마음
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틀을 다 이룬
그 기념이름으로 새겨져서 마음판에 새긴
나를 제대로 심판하시고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신 이름이
주신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에 걸맞는 신부이름인 거죠

(요 17:26, 개역)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20:31, 개역)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3:16, 개역)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4:12, 개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 1:27, 개역)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 1:28, 개역)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요 1:29, 개역)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0, 개역)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 1:31, 개역)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 1:32, 개역)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 1:33, 개역)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 1:34, 개역)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요 1:35, 개역)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요 1:36, 개역)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7, 개역)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요 1:40, 개역)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 1:41, 개역)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2, 개역)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름을 장차 게바라 즉 반석이다 미쁘다 든든하다 왜?
음부의 권세가 아기지 못하는 교회가 되니까 말이죠
베드로 스스로 이룬다? 자기 숙제로? 아니지요
미쁘신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말이죠
대신 팔이 꺽여주심으로 베드로의 꺽여진 팔을 대신 붙이시고 기브스 대신 싸매어주셨기에 말이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 떄문이다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야곱은 비로소 딱딱한 마음이 눈 놋듯이 부들 부들 녹아져서
비둘기 같이 온유한 

주님의 마음인 새 영 새 마음인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비로소 본래 본향의 이름으로 본래의 자리인 원수의 자리에서
그 공백의 빵구멍난 자리에서

주님의 이름이 차자하실 자리로

자기 이름을 삭제 당하면서 내어주게 되는 겁니다

이 이스라엘로 만드신 부르신 불러내신 그 기념칭호가 붙이신 본향의 이름으로
주님이 손수 직접 자기 숙제로 만드시는
이 새창조주 앞에 무릎 꿇어 경배케 만드심으로 말이지요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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