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4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진 고린도교회 (고전 1;10-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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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4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진 고린도교회 (고전 1;10-15)
2025. 6. 29.

분쟁 당하기 쪼개짐 당하기 나누어짐 당하기 해체당하기 잃어버림 당하기 바닥치기, 
왜?  완료가 덮쳐젔기에 환자 죄인 되기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원인 없는 완료이기에)
 
책망할 것 없게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 1; 6- 9)
고린도 전서 2025 2025. 6. 7. 13:15
25-003 책망할 것 없게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미쁘심; 믿음직스럽고 흔들림 없이 든든함) (고전 1; 6- 9)

〈고린도전서 1;10-15,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395장 새 342 너 시험을 당해, 찬송가 352장 새 31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찬송가 395장 너 시험을 당해, 새찬송가 342장〉

찬송가 395장 너 시험을 당해, 새찬송가 342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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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2.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 너 언행을 삼가 늘 조심하라 
   너 열심을 다해 늘 충성하고, 온 정성을 다해 주 봉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3. 잘 이기는 자는 상 주시리니, 너 낙심치 말고 늘 전진하라 
   네 구세주 에수 힘 주시리니,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찬송가 342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새찬송가 543장〉

찬송가 342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새찬송가 543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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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2. 성령께서 내 맘에 밝히 비춰주시네,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3. 밝을 때에 노래며 어둘 때에 기도와,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4. 생명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 뿐일세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찬송가 352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새찬송가 313장〉

찬송가 352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새찬송가 313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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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한없는 은혜 받고서 내 생명 모두 드리오니 
   그 풍성하신 은총을 주 내게 내려 주소서

2.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내 허물은 덮으시고 
   주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를 믿는 맘을 보사 
   내 중한 죄를 사하여 참 평안한 맘 주소서

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주 은혜에 감격하여 
   한없는 감사 찬송을 내 주님 앞에 드리오며 
   내 맘과 정성 다하여 늘 기뻐하며 살리라

4.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마음과 이 천한 몸 
   그 보배 피로 값주고 주 친히 사신 몸이오니 
   나 이제 사나 죽으나 주 뜻만 따라 살리라


〈고린도전서 1;10-15,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고전 1:10, 개역)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1, 개역)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 1:12, 개역)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전 1:13, 개역)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14, 개역)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고전 1:15, 개역)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고전 1:11, 현대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논쟁을 하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글로에의 집안 사람들 편에 들었습니다.
(고전 1:12, 현대어) 여러분 가운데는 `나는 바울을 따른다', `나는 아볼로를 따른다', `나는 베드로를 따른다'고 하면서 제각기 편을 가르고, 또 다른 사람은 `우리들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다'라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니
(고전 1:13, 현대어) 그게 바로 여러분 스스로 그리스도를 산산조각이 나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 바울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고전 1:14, 현대어) 지금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않은 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고전 1:15, 현대어) 혹시 누구라도 내가 `바울의 교회'라는 것을 시작해서 어떤 새로운 것을 일으키려 한다는 오해라도 있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고전 1:1, 쉬운) <인사>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4, 쉬운) <바울의 감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고전 1:10, 쉬운) <교회 안에 일고 있는 파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모두 의견을 합하고 여러분 사이에 편을 나누지 마십시오.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하나가 되십시오.
(고전 1:18, 쉬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 1:10, 현대어)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고전 1:18, 현대어)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개역개정한글

고전1:1 <인사와 감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1:10 <고린도 교회의 분쟁>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1:18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새번역

인사
1: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1: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코린토 교회의 분열
1:10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십자가의 복음
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공동번역

고전 1:1 [인사] 하느님의 뜻으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로가 우리 교우 소스테네와 함께 
고전 1:10 [고린토 교회의 분열]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
고전 1:18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다른 번역의 소제목도 있는데 다 비슷해서 여기까지만 하고요
오랜만에 인터넷텍스트 자료에서 소제목 달린 번역들을 올려 봤습니다
베들레헴은 두 번역 쉬운과 현대어만 소제목이 달렸는데요
아무튼 강조하고픈 것이 고린도 교회가 분열을 했데요입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왜 이단들이나 다른종교나 무신론자 특히 이놈들 무신론자들과
마귀들이 공격하게 딱 좋겠끔
이 치부, 수치스러운 이 분쟁 분열의 사건을 왜 이렇게 기록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식의 사건들이 많으니까 이 놈들이 공격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겁니다
이상하다 왜 멈추지??? 알고보니 자기들도 마찬가지 이거든요
결국 계속 공격했다가는 자기 얼굴에 누워서 침뱉기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그런 사건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죽이지 않고서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겠다 라는 유대인들이
정작 그렇게 이방인이라고 저주했던 로마시민권이 있다 보니
괜히 건드렸다가는 자기들 눈을 찌리는 결과가 뻔해서 갑자기 멈추고 무대뒤로 사라지더라 말이죠
그 놈의 결단 작심이 바로 꼬리를 내리더라 말이죠

아무튼 왜 이렇게 공격하기 좋도록 안 공격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셨는가 말이죠
저들 보다 오히려 교회들이 이해가 안 되는 식이다 말이죠

아니 구약에서 그렇게도 수많은 사건들 곧 분열 분쟁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라가 6.25전쟁처럼 두 나라로 분단이 되잖아요
그리고 원망 우상숭배 음란 그것도 모잘라서 이제 나라가 공중해체까지 되었잖아요

그럼 신약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없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있다 라는 겁니다
있다에서 머무는게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이니 신약은 실상이고 구약은 그림자 라메요?
그런데 왜 구약에 있었던 그 그림자를 왜 또 반복해야 한다는 겁니까
완료 라메 ~~~~~~~~~

바로 그 완료가 덮쳐졌기 때문에 반드시 벌어져야 한다는 겁나다
완료의 증상물이기 때문이요
실상이 떳기에 그 그림자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된다면 또 의문의 반복이요
신약 곧 실체가 없이 구약만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다들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대접받기만을 바라겠지요

왜그런고 하니 그 대표적인 것이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있었던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말이죠
우리 때 30년 전 쯤에 대 유행을 했다가 
이제 2025년 전세계 무신론자 1위 국가가 된 입장에서
최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것도 큰교회와 신흥 교회나 개척교회는 여전히 한번 일어서보겠다고 아직까지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항물간 입장에서 이젠 더 이상 하지 않는 
그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그 제자훈련 프로그램처럼 했다면 고린도교회에서 저런 분쟁사건은 벌어질 리가 없었을 것이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은 사라졌고요
그 고린도교회에서 벌어졌던 그 분쟁사건은 여전히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이단 소리 들어가면서 까지 말이죠
손가락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벌어지면서 말이죠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때에 모든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서 
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쳤던 그 모습이
바로 제자훈련을 했던 자들의 모습으로써 나타났던 것이니까 말이죠

말이 제자훈련이지 사실은 성화훈령인 거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심심하면 틈만 났다하면 서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을 했던 것처럼
누가 누가 잘 하나 라는 싸움 말이지요

그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에도 여지없이 나올때에
우리는 당혹감이 아 일어날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면 우리가 거기에 맞는 대처법으로 수습을 하면 그만이거든요
아니면 답 없다 하면 손자병법처럼 도망가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최고의 지략은 삼십육계 줄행랑 일단 피하고 나서
이유를 알고 나면 그때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움이 없다
지피지기 백저 불태

백전백승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네요

공포와 불안은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고 원인을 알면 대처를 할 수가 잇는데
뭘 알아야 대처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이 완료의 세계 실상의 세계는
비밀입니다 알수가 없어요

그 완료의 세계가 덮쳐져 버렸기에
이 분쟁을 우리는 격도록 되어 있기에
불안해 하기 보다 아 나는 분쟁할 수밖에 없는 죄인 맞구나 라고
이것이 주께만 범죄한 자에 걸맞도록 하시는
의사 곧 완료가 찾아내시는 분쟁자 환자
정답이 찾아내시는 문제아 탕자 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이 의사의 진단에 청지기 대시고 또 엑스레이 사진 찍고
그 진단 결과 당신은 분쟁자입니다 환자입니다 라는 판결에 감사를 누리시면 된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의 분열 파당 분파 파열 균열 
나누어짐 즉 둘로 갈라짐의 내용들이 나옵니다
과연 둘로 나누어지는 원수지간까지 가야 하겠느냐 라는 거지요

분열의 내용을 보니 
알고보면 서로 잘해 볼려고 하다 보니 그렇다 라는 겁니다
묹제는 잘해 볼려고 하는 그 의로움이 과연 바른 의로움이냐 라는 것인가 하??? 점이지요

다윗이 뭐 악하 의도로 율법 네배나 갚으라 했겠습니까
자기 따나 잘해볼려고 하는 거지요
문제는 그 자기 따나가 과연 옳냐 라는 거지요

바로 그 선한 의도
좋은 의도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로 갈리워진다 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끝까지 따라가겠다 라는 그 열심들이
사탄아 썩 물러가 라는 욕바가지 먹는 줄 알았다면 안했겠지요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가 안 먹혀 들꺼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안했겠지요
처음부터 씹고 뜯고 먹고 마셨겠지요

그러나 그 완료를 그 실상을 바로 갈수가 없는 육체이기에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라는 그 그림자를 거쳐서
실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즉 달음박질 하는 자가 실상을 보는게 아니라
실상을 보여주시는 자가 완료를 실상을 다윗이 가지고온 그 그림자와 비교 대조해서
그 차이를 알려주신다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빵구멍 뚫기입니다 완료란 몽둥이입니다 징계입니다 그것이 살랑입니다
그런데 완벽하개 다 갖추어 보세요 그림자가 아무리 완벽하게 옷 입어본들 그림자는 그림자입니다 실상이 준비해 주신 옷을 그들은 거부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 피옷 그 새 옷 곧 성령이라는 새영 새마음인 그리스도의 옷은
오히려 벌거벗은 죄인 환자에게만 딱 맞습니다 병원에서 사복 입고 돌아다녀 보세요
환자로 안 보고 의사도 필요없는 그냥 보호자인가? 외핀원인가? 이겠지요
의사랑은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건강한 자는 요
그러나 환자복을 입혀놓으면 의사의 숙제 대상물이 됩니다 치료하고자 무슨 명 걸린 것인지
진찰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엉터리 그림자들을 가지고와서 예수님이 이룬 완료와 대조를 당해야하는 그 섬김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분쟁이 우리 속에서 늘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지
안 그렇게 되면 마치 성화론자들 그 결백증 환자들처럼 마치 완벽주의자처럼 행동하게 되는
위선 속에 그 회칠한 무덤 속은 죽은 시체 인데 겉은 화려하게 회칠 흰 백색의 천사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하게 된다 라는 것이지요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거 비슷한게 예수님과 충돌한 바리새인에게 왜 당신네 제자들은 손 씻지 않고 먹느냐
거룩 지키는자 맞냐 율법 대 놓고 어기는 것 아니냐 라고 할때에
입으로 들어가는게 더러운게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이것을 오늘 본문 식으로 하면 우리 유대인 그 중에서 바리새인인 우리들은
손 씻고 먹는 거룩을 지키는 자 이듯이
분쟁을 하지 않는데

왜 당신네 제자들은 손 씻지 않고 먹는 율법의 거룩을 어기듯이
당신네 제자들은 만났다 하면 서로 싸우면서 누가 크냐 라는 논쟁을 왜 멈추지 않는 것이냐?
리고 묻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로 합해지기는커녕 늘 쪼개어져서 나누어지는 모습 밖에 안 남게 되니
누가 그것을 교회 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면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실까요

이런 사건이 수시로 나왔었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이제 빼도박도 못한 빼박의 범죄를
과연 예수 당신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땅에 쓱쓱 쓰면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하셨듯이

분쟁한적 나눈적 쪼갠적 잃어버린 경험 그렇게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라고 말이죠

심지어 바리새인들은 이제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도전을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우리들은 분쟁하지 않는데
하나로 단합되고자 금식을 하는데

당신네들은 술로 단합대회 회식하듯이 술꾼에 먹보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써
저들 단 하나도 하나로 단합할수 없는 무리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친구가 되는 것이요?????

(마 11:15,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6, 개역)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개역)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8, 개역)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마 11:19, 개역)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즉 인자의 편파적인 이 행동이 옳다 라는 것은
반대로 인간 곧 특히 유대인들 그것도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 전제를 깔고서 나오는 모든 행동들이 선을 옳다함에 끼워맞춰갈때에
주님의 옳으심은 바로 그런 인간의 옳다함을 깨부수시는 옳으심으로써
저들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유대교 교리에 정반대가 되는

매국노 세리 그리고 죄인을 선택하고 하나가 되는 친구가 됨으로써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개역)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유대인이라는 선민의식 천국백성이거 한번 무너뜨려 박살내어보면
진짜 천국이면 다시 오뚜기처럼 다시 살 것인데
어라 천국을 침노 침략해서 노략질 해 보니
다시는 일어나지 않네? 그렇다면 잃어버림 경험이 없는 남은자 곧 자기 죄로 우는 자들이 아니넹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친 남겨둔 한 씨가 우심으로써 남겨둔 남은자가 아니네
그저 행함으로 세운 그림자 허상 허깨비 천국백성이요 그림자천국 헛깨비 천국이네
라고

차라리 너희 독사의 자식들이 (너거 아비는 마귀임을 밝히고 난 뒤에) 부정하는
더러운 자라고 부정하는 그런 매국노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는 이 인자의 행함

아무리 봐도 옳지 않는데 그것을 옳았다 라는 행동으로써

내불남노 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 너거들이 예수님 공격할때에 내로남불이라고 공격했지
아닌데 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인데
이 불륜이 너희들의 의로운 거룩 지키기 보다 더 옳았단다 라고 말이죠

아니 보세요 오늘 고린도 본문이 실상이고
출애굽부터 신명기까지 이스라엘의 14번 원망(마침 쳇GPT에 그 14번 나열해 달라고 하니 15번이 된다고 하더라 말이죠)이 나오는데 그 모세오경이 바로 그림자 이다 말이죠

이 실상 때문에 신약 때문에 나온 원망들이다는 겁니다

나의 말:

14번 이상의 원망 사건인 줄 알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시오
 

ChatGPT의 말:

맞습니다!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공식적인 원망 사건은 모세오경 내에서 14회 이상 기록되어 있으며, 단순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형태의 불신, 불순종, 도전으로 나타납니다. 다음은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분류한 '원망 사건 리스트(15회)'**입니다.

📘 모세오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원망 사건 15가지


번호   성경 위치                사건 내용                                     장소/시기             요점

출애굽기 5:20–21 바로가 더 심하게 굴자 모세를 원망 애굽 (출애굽 전) 고통 심해지자 모세 원망
출 14:10–12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며 "애굽에 매장지가 없냐"며 원망 홍해 앞 애굽 회귀 망상
출 15:22–24 마라의 쓴 물 때문에 원망 마라 물을 달게 하심
출 16:1–3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며 애굽 음식 그리워함 신 광야 만나, 메추라기 공급
출 17:1–7 르비딤에서 물 없다고 모세 원망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르비딤 반석에서 물 나옴 (1차)
출 32장 금송아지 우상숭배와 함께 불신 시내산 모세 지연 → 금송아지
민수기 11:1–3 다베라에서 막연한 불평 (“악한 말”) 다베라 여호와의 불로 징계
민 11:4–35 만나 싫다고 원망하며 고기 요구 기브롯 핫다아와 메추라기 후 심판
민 12장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 지도력에 도전 하세롯 미리암 문둥병 징계
민 13–14장 가나안 정탐 후 불신, “돌로 치자”, “애굽으로 돌아가자” 바란 광야 40년 방황 선언
민 16장 고라, 다단, 아비람 반역 + 족장들 원망   땅이 삼킴, 불이 삼킴
민 16:41 고라 사건 직후, 백성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며 원망 다음 날 심판: 연병 시작
민 20:2–13 므리바 사건 – 물 없다고 원망 → 모세 반석 침 가데스 모세 가나안 입성 금지
민 21:4–9 길이 험하고 만나 싫다고 원망 (“양식도 없다, 마음이 싫증”) 호르산 → 에돔 길 불뱀, 놋뱀 사건
신 1:26–46 (회고) 가나안 입구에서 믿음 없이 뒤로 물러나려 한 사건 회상 과거 회상 실패 교훈 강조


✅ 추가 설명

  • 반복된 주제:
    • 물 없음 → 출 15, 17, 민 20
    • 먹을 것 없음 → 출 16, 민 11
    • 모세/아론에 대한 지도력 도전 → 민 12, 16
    • 애굽 회귀 바람 → 출 14, 16, 민 14
  • 하나님 반응:
    • 불, 뱀, 질병, 연병 등 즉각적 심판
    • 동시에 중보자(모세)의 간구로 긍휼도 반복
  • 신명기에서는 대부분 회고적 성격으로 등장하며, 새로운 원망보다는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반복하지 말라는 목적을 가짐.



📌 마무리 요약

유형                                                사건 수                     예시

먹고 마시는 문제 원망 6회 이상 출 15, 16, 17, 민 11, 20, 21
지도자·권위 도전 4회 이상 민 12, 14, 16, 17
하나님에 대한 불신 및 회의 다수 출 32, 민 14, 21
애굽으로 돌아가자 주장 3회 출 14, 16, 민 14
 





즉 인자의 등장으로 죄인 세리로 드러내는
원망 할 수밖에 없도록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는 곳(평등 따위는 없는 민주주의와 무관한 독재의 편파 지도자 세움)

그래서 왜 원망 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시하고 원망 하도록 만들어서
불뱀에게 물려 죽게 하느냐

이것이 바리새인의 주장과 같고

불뱀에게 물려서 지옥 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와 친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원망 안하는 인간을 원핫는게 아니라

아무 행동 없이 구원이 되는 오히려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
분쟁자 일 뿐인데 친구가 되시고자 오신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믿음으로 구원되게 하시고자 말이죠

그카이 원망 안하는 인간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분쟁 안하는 인간 또는 교회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누가 이 인자의 피에 걸맞는 죄인 만들기
원망한 자 만들기
분쟁한 자 만들기
그래서 몽둥이라는 징계 얻어맞는 자 되느냐 라는
자기 쪽애서의 숙제로 구원 그런 멋들어진 구원 그런 자기 가치 높이는 구원 일체 없도록 말이지요
정작 예수님의 제자들의 심심하면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을 비판할 줄 알았지
그것을 싫어하고 비판 할 줄 아는 나는 자기 자치 높이고자 하는 구원 안할꺼다?
분쟁 안 할 꺼다? 원망 안 할 꺼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더 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게 너희들에게 심이놓은 첩자노릇하는 율법이걸랑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치는 그 놈이 범인이다 라는 겁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그 선생이 그 부모 그 백성의 부모인 왕이
그 놈이 니다 그 놈이 도둑이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이다 말이죠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데 율법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거룩이기 때문에 나의 거룩을 위해 더더욱 이용해 먹는 자기유익 쪽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율법의 올무 기능에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겁니다

그카이 십자가가 모든 인간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누워서 침뱉기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인간임을 그 속임수에
누가 꾀냐 라고 십자가 라는 반드시 부정한
불의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 라는 하필이면 더러운
어리석고 미련한
그 부정한 모습으로 와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로써 와야
비로소 자기 보다 죄가 먼저 있었고 의가 먼저 있었음을 알게 하시는 

그 빵구멍 뻥 뚫힘

아뿔사 그가 나 보다 옳았구나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 우리가 주를 죽였구나 라고 비로소 우는 겁니다

그러니 구약에서 그 그림자에서 원망 안하고픈 자 되겠다를 마음 먹으면 먹을수록
더더욱 원망 할 수 밖에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곧 장대 높이 달인 이 인자

곧 예수님의 죽음이 너의 가치 보다
너의 원망 보다
너의 분쟁 보다
너의 죽음 보다
너늬 저주 보다 먼저 있었다 어딜 꾀냐 라는

이 완료를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고린도전서라는 신약이 실상으로써
왜 그때 출애굽때 민수기때 왜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인도하셨는줄 아니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 만 남길려고

그 어떤 인간의 좋은 믿음 좋은 행동 마음가짐 그거 일체 안 받고
그런 의문의 반복이나 미완료의 그림자가 아닌

오로지 실상인 인자의 죽음 여기에 합한 자 만들려고
일부러 원망하는자 만들엇단다 와 우짤래
일부러 오늘 본문 분쟁함으로 나누어지는 자로 만들었단다 왜

마침 지난 본문으로 제목이 보이길래

그냥 견고함이 아닌
책망 없는 자로 만드시는 견고함 이다는 겁니다

책망 없는 자가 되어야 견고함 곧 미쁘심 속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이게 사탄의 자식 바리새인과 오늘날 성화론자들의 주장 아닙니까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견고함이 떳기에 책망 없는 자로 부르신다 라는 겁니다

결국 견고함 마쁘신 믿음이 먼저 떳기에
책망 없는 자로 부르셨음으로 책망을 억수로 받을 수밖에 없는
원망한 자로 당한 자 분쟁한 자로 당한 자 잃어버림 당한자
나누어 짐 당한자 쪼개짐을 당한자
왜 항상 인간은 자기 자신 만큼은 절대로 부인 못하고 자신을 선택하기에
그 선택 주님의 선택으로 쪼개시고자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나누어지지 않는 바닥까지 낮추시고자
빵구멍 뻥 뚫는 굵은 배 옷
육체라는 옷이 빵구멍 난 자로 너덜 너덜 하게 말이죠
그 구원의 뿔이라는 완료가 떳기에
그 빵구멍 내는 뿔
의사의 수술 칼에 맞는 찔림 당한자로 만드심이
책망 할게 너무 너무 많은 자로 당하도록 하심으로써
더 이사 책망할게 없는 자가 되는

즉 책망할게 많은 자는
책망이 할게 있어서 옛사람이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또 자기 숙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예수밈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한 기준에서는
무조건 십자가 죽음 이전에는 아무리 선하게 올바르게 살아도
원망을 15번 이나 했든 단 하나도 안 했든
무조건 옛사람으로써 책망 할 것이 많은 자 인 자를

실상이 떳기에
이제 더 이상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완료가 덮쳐졌다 라는 이유로

아무리 분쟁하는 자가 되어도
책망 할 것이 아무리 7에 70번이 있어도

예수 안에는 책망 할 것이 없는 정죄 함이 없는 자 새 사람이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몽둥이로 징계의 사랑으로
우리 몸에 십자가 폭탄을 수셔놓고 심심하면 터트리시는 겁니다
이미 해체의 수순을 밟는 거지요

구약의 그림자로써의 15번 원망은 해체 작업이다는 겁니다
자기 가치 해체 폭발 다이나마이드 폭발 이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죽는다 라고 또 징징 거립니다

그러나 막상 안죽는다 라는 것을 신약 실상인 고린도서에서는
믿음으로 다시 산다 라고
내 개인의 죽음과 다시 삶이 아닌
예수 안에서의 죽음과 다시 삶을 말하고자 동원되는 그릇이다 라고
완료로써의 토기장이 비유 비밀처럼
이 그리스도의 몸 만이 경험하는 그 경험을 하라고
오늘 본문이 비유 비밀처럼 고린도 교회에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분쟁함으로써 책망 받는 것 자체가
책망이 없도록 하시는 견고함이 징계하시는 사랑이다는 거죠

견고함이 그 완료가 의인화로 표현해서
나를 완료라는 그 이유로 몽둥이 책망 징계를 하시는 겁니다

아니 책망 없다메? 그건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 입장은 이 몽둥이 자체가 책망 자체가 책망 없음이 되는 거죠

그래서 견고함 이야기 방금 위에 해 놓고서는
그 견고함이 뭔줄 아니????
바로 분쟁이야 해체작업이야
어떤 해체
나는 절대로 원망 안 할 거야 라는 내 숙제 해체 작업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분쟁 하지 않고
정치하지 않고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릴 거야 라는 그 마음을 해체시키겟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나는 뭘 해도 가짜 맞군요 라고
원망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
분쟁 안하고는 못 배기는 자
나누는 짓 안하고는 못 배기는 자
정치짓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
세 번 부인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
쫓겨나는 짓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자로 만들어서

그 잃어버린 자 그 포로 잡혀간 자를 다시 되찾는

더 이상 내 숙제에 미련이 없도록 만들어서
오로지 주님의 숙제로써 하나가 되게 하는

이 섬김을 이 다 이루심의 완료를 보여주시는 견고함이지

내가 내 숙제로써 결핍을 채우고자 견고케 하는 짓은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여
나 이렇게 가치 없는 놈 아닌데? 왜 그러지
이런 나를 내가 용서 못하겠다 라고
자살한 그 가룟유다의 분쟁안하기 나누지 않겠다는 그 다짐이

오히려 주님의 완료 앞에서 배불러 터진
끝까지 그림자를 사수하겟다는 고집이다는 겁니다

실상 앞에서 그냥 손 놓고 자수하면 광명 찾는데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겠다 라고 하니
자기가 도저히 용납 못하는 자기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지가 심판주도 아닌데 심판해 버리는

그러니 성화론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자살을 행해서 가고 있어요
자기 안 죽으면 꼭 자기 자녀 자기 가족 자기 교회를 막 괴롭히고요

왜 나는 바울파인데 바울 보다 더 옳은자 없는데 왜 나는 안 알아주는 거야 라고

거 보세요 바울이 더 낫다 라고 파당을 만들었거나 그 속에 들어갔다면
바울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한 자기가 옳다 라는
역시나 자기 가치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말이죠

그래 그거 못 고칩니다 그래서 완료를 실체를 증거하는 진짜 바울이라면
주님이 대신 피 흘려 살려낸 죄인 바울이라면

아이고 고맙구나 내 편 들고자 바울파에 들어와 줘서 고맙구나 라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너가 그렇게 옳다 라고 하는 그 바울? 가짜 인데????

인간이 임금을 선택하는 이유는 대통령 말이지요
자기가 먼저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임금을 이용해 자기에게 도움 받고자 임금 삼는다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 도망 치 잖아요

왜 내 그림자를 임금 삭고 나의 실체는 그림자 밟듯이 헌신짝처럼 버리지 라고 도망치시는 겁니다

바울도 그냥 바울이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세움 받은 바울도
아니 내가 언제 너를 위해서 십자가 진적 있더냐 라고 하는 겁니다

오히려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도움된다 싶어서 선택한 바울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 등등등

마치 출애굽 하기를 더디하는 자처럼
어미 뱃속에서 나오기는 더디하는 자처럼
그런 임금들
반드시 다 죽이시겠다 하셨듯이

아니 나 바울도 다 어치피 죽는 그림자 인데

왜 실상 곧 새사람 새마음 새영을 안 따르고
왜 또 그림자를 쫓을꺼니

뭐 분쟁 안하고파서
뭐 원망 안하는 길로만 가고파서

그것이 도리어 더 원망하고
그것이 도리어 더 분쟁하는
그래서 바울파를 너가 만들고 있잖아 자나 자나 그러고 있자나 ~~~~~~~~~~~


자 그래서 분쟁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봐서 지옥가는

천국을 완료를 실상을 반대로 그림자와 대조를 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분쟁 안하는 완벽한 자가 되어서 천국가는게 아니라

천국이 먼저 떳기에 이런 분쟁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료 앞에서 되도 않는 결핍채우기 그거 빵구멍 더더더 내심으로써
그 몽둥이 완료로 그 몽둥이 천국으로 인해서

수술칼로 팍팍 째서 찢어지고 쪼개지고 나누어지고 해체 됨으로써

원래 없었던 나 라는 자아의 해체 작업을 시키는
새 사람이 내 속에 이미 떡 하니 주인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그의 죽으심으로 그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이 해체 작업이 바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분쟁사건이 되는 겁니다

보자 이 분쟁 사건으로 인해 누가 댓글로 한번 시비를 건 적이 있었는데
제 답변이 뭐라고 했는지 다시 찾아 볼려고 하니 많은 글 땜에 찾기가 힘드네요
아무튼 그 사람은 아주 정상적으로 묻는 반면
저는 아주 비상식적인 답변으로 인해 그 사람이 아주 화를 내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헤체 작업이 없으면
인간들은 항상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만드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론은 결과적으로 이 아름다운 공동체 형성에 제일 방해되는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다 망치는 것 바로 십자가가 이토록 거리끼는 걸림돌이 될 줄 모르기에

이 놈의 십자가만 있으면 분쟝이 일어나고 나누어지고 쪼개어지니
이거을 저 부활절 앞 고난 주간에만 언급하고 저 멀리 밀쳐 두거나
아예 빼 버리자 죄죄죄 고먼 캐라 마이 무따 이아가

라는 결론을 보여주더라 말이죠

결국 분쟁하지 마라 나누어지지 말아라 오히려 하나로 합쳐라 라는
또 구약의 그림자처럼 하라 하지 말라가 되어버리면
또 의문의 반복으로 또 속임수가 되는 겁니다
미완료를 채우기 급급한 결핍채우기
그거 제대로 못하는 놈 또 정죄하는 그 카이 더 분쟁하는 셈이 되는 거지요

오히려 완료로써 덮쳐졌기에

더 이상 하라 하지 말라처럼
분쟁하지 말라 나누어지지 말라 하나가 되어라 로 듣기는게 아니라
오히려 행함의 언어가 아닌 언약의 언어 완료의 언어 곧 사랑의 언더이기에
번제와 제사의 언어가 아닌 인애와 자비의 언어이기에

아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이 덮쳐졌기에
왜 덮쳐 졌는가를 보니
아 책망할 것이 너무 많은 죄인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한

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라꼬
이 피 위에 고린도 교회가 새워졌구나

구약의 그 모세오경은 쉽게 모세교회 라고 합시다
율법의 유대교는 무조건 이유 없이 그림자 교회이고

고인도 교회는 아무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이것 때문에 서울에는 아예 술 쳐먹는 것을 당연시 하더군요 웃끼는 놈들 결국은 또 자기 가치를 놓이고자 이용하는 셈이지요 또 세리와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부족함 없는
책망할 것이 없는 인자의 피 흘리심 덕분에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그 증상물이다 말이죠

방종하라는 말이냐 라고 또 하라 하지말로 빠지는 놈들은 이 완로의 의미
다 이루었가를 모륵기에
또 결핍 채우기라는 것 밖에 모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 7번 용서냐 아니냐 만 잴줄 알았지

그 숫자 세고 있는 손가락 무용지물 만들어 버리는
7에 70번 용서 손가락으로 세다가 에이 포기 할래로 만드는
그 완료를 못 누리기에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제발 신앙 포기 하세요 믿음 포기 하세요
예수님의 숙제에 맡기세요
못 합니다

뭘 믿고 맡기냐 말이죠

사랑이 없으면
용서를 받은게 없으면

많이 탕감 받은 것이 없으면 사랑할 수가 없으니

울리는 꽹과리
베설술 똥떵어리만 잔뜩 모으는 겁니다
그 그림자 모아서 뭐 하게요?????

주님의 숙제는 예수님의 죽음 위에 세우시는 겁니다
모잘라 모잘라 함량 미달이면 그거 사람의 일이요 짐승의 일입니다

그러나 충만한 다 완료를 누리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피 흘리심의 공로로만 다 이루심이라는
완료를 누리는 겁니다

그래서 분쟁하라 하지 말라 라는 그림자가 아닌
완료의 차원에서 누리는 증상이기에

분쟁 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완료 이런 예수님의 죽음을 바로 이 분쟁 속에서 꽃 피우셨구나

민수기 16장에 고라 자손의 반벽이라는 그 유명한 사건이 나옵니다

(민 16:1, 개역)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민 16:2, 개역)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민 16:3, 개역)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1절에 당을 짓고 나오지요

고라의 반역은

(민 16:9, 개역)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민 16:10, 개역)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왜 우리는 보조 역할이고 왜 너희는 제ㅏ장 직분이냐 라는 겁니다
평등하지 못하다 라고 민주주의 주장하더라 말이죠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처럼 누가 더 크냐 라는 더 큰일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겁니다

그러나 정작 그 반대입니다 아무리 거룩이라고 해도
정작 그 속에는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그 처참하게 갈기 갈기 찢겨 죽는 그 죽음 다루는데 있어서
제사장 본인들도 날마다 죽노라처럼 그 죽음 속에 같이 놓이는 셈인데

우리는 그저 남의 시선 곧 타인의 욕망처럼 남들이 좋게 보이는 것을 취하고픈 마음에
니만 그 더러움을 똥푸는 일 하지 말고 나도 할란다 라고 반란을 일으켰던 거죠

그런데 이 반란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거룩한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겠지요
인간이 순순히 맹목적으로 따른다 라고 해서 그 불만을 그대로 삭이고 넘어가느냐?
아니지요 언젠가는 그 억눌렀던 터져 나오니까 바로 바로 터트리시는 겁니다

원망해서 죽이는게 아닙니다
분열해사 분당을 지어서 지옥 보내는게 아닙니다
원망을 했던 분당을 했던 원망을 아니했던 파당을 아니했던 상관없이

이 언약의 취지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죽음을 다루는 입장인데
그것이 실상인데 
실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그림자 때문에 그러는 것 넘어갈수 있는데
정작 언약의 취지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취지는 결국 요나의 표적인
인간의 더러움 속에 뛰어든 예수님의 죽음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 갈기 갈기 찢겨죽는 처참한 죽음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상이 떳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자를 따지면서 운운할때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본다는 그 이유로 즉결심판으로 죽이시더라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백성 전체의 불만으로 이어집니다 아니 고라 자손의 말이 맞는데 왜 그러지 라고 말이죠

아니 외부에서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 그래서 대신 죽은 그 피흘리심은 아무도 관심 없고

즉 여호와의 불 그 무시무시한 심판의 불은 관심없고
그저 내 가치를 무너뜨린 어라 고라 자손이 죽으면 우리도 저래 되는거 아니냐 라고

아무도 여호와의 불이 어떤 불인가 라는 것은 전혀 의식을 못하는 겁니다
마치 웃사가 떨어지는 법궤를 잡다가 즉사한 것처럼 말이죠


아니 어릴적부터 자기 집 앞 마당에 있었던 그 법궤를 아무리 지금 이동 시키는 그 무리의 선두에 섰다고 해도
역시나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있지
누가 산 자 인지 누가 죽은 자 인지
살아 있는 자는 결국 거룩한 자 인데
그것을 법궤를 앞장 세우는 그 직무를 맡아본들 자신은 죽은자 라는 의식이 있겠냐 말이죠
아무리 봐도 법궤는 그저 물건 삼자 생명체처럼 움직이지도 않는 상자 박스일 뿐인데 말이죠

즉은자 라는 의식이 전혀 없는 겁니다
반대로 오벧에돔은 바짝 엎드리는 모습이더라 말이죠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 전체가 아무리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한 정작 그것은 살아있는냥 우상숭배를 했고 동시에 자신들도 살아있어서 숭배받는 가치를 높였는데

이 제사장 직분이 뭐 그리 대단하길래 고라 자손을 바로 죽이는 죽은자 취급하느냐 라고
우리 인간을 살려야지
왜 자꾸 생명체도 아닌 제사장 직분 살릴려고 생사람 잡느냐 말이죠
이 어린양을 잡는 그 죽음을 다루는 이 율법을 왜 그렇게 중요시 하느냐 라고 따지다가 또 다 죽는

지금 그림자 시대에도 사라질 영광이 이렇게 영광스러운데
더 이상 신약 시대에는 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모여야 하는데
파당질 함으로써 또 그림자를 쫓는다?

그럼 예수님의 죽음이 헛된거 아니냐 라고

그러니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말하기 위한 죽음으로써
죽을 자가 다시 사는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이 언약의 정신 율법의 정신은 아무도 안 보고
잘대 높이 달린 인자는 안 쳐다 보고

자기 가치의 성과
아니 불뱀에게 물렷으면 약을 줘야지
왜 죽이내 왜 인자를 왜 죽이냐
왜 예수님을 왜 죽이냐 라고

쳐다 보면 낫는다 결국 낫게 하는게 목적 아니냐
그런데 왜 죽이냐 말이죠
죽어야만 하는 자를 살리는 기능은 희생 죽음인데
아누모 안 쳐다보고 내가 알아서 내 살길을 내가 찾을께
어 그런데 그런 고라 자손을 죽이면
내가 살길을 막는거나 마찬가지 이니냐 라고

제사장 직분 그 껍데기만 볼 줄 알았지
그 속 말맹이인 사랑 곧 예수님이 대신 매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그 사랑은 때려 죽어도 안 볼라 카는 겁니다

(눅 11:42,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남을 사랑해서 제사장 직분 니만 하냐 나도 하자 그래서 사랑을 추구하느냐? 아니잖아요
인간은 자기 밖에 몰라요
사랑했다면 사랑을 햇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멜로드라마 괜찮은 결말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진짜 사랑을 했다면 율법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면 전재산을 나누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데
아니잖아요
결국 율법을 역이용 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였지
누가 자신을 없애는 사랑을 하겠냐 말이죠
분쟁이 벌어지는 이유 또한 결국 자기 가치 높이기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과 다르게 신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너희들은 분쟁해서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파파파 도레미파를 만들 수 밖에 없다 라고 지적 받는 관계를 아예 십자가의 죽음이 그 완료가 그 실체가 드러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원망 안하고 싶어도 분쟁 안하고 싶어도
이런 죄인 마저도 용서하심 앞에서 아 난 뭘해도 분쟁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군요
엣사람에서 새사람으로 옮기는 작업을 내 손에서 할수 없군요
그런데 주님이 이미 다 이루셨군요 라고

미리 지적받는 식이다는 겁니다

분쟁하라 하지말라 라는 방종 비판하는 자들의 그런 의식이 아니라
너는 뭘 해도 마귀에게 잡혀 올 수밖에 없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자 맞거든

그러나 내가 이미 믿음 떨어지지 말라꼬 기도 했단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화목제를 다 이루어 놓았단다
예수 안에서는 결고 정죄함이 없단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카이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 하지
분쟁했제? 너 책임 져야지 이것은 또 마귀의 꾀임에 빠지는 것이다 말이죠
모든 허물을 다 덮어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말이죠

결코 시간을 멈출수 없다 요 
결코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을 주셧다 말이죠
그래서 미리 마귀에게 잡혀 오라 말이죠
과연 예수님이 사랑이 변하는지
분쟁한다고 변하는지
나누이고 하나가 되지 못한다고 사랑이 변하는지
견고함이 변하는지
미쁘심이 변하는지
완료가 실상이 실체가 변하는지
아니면 또 그림자 때로 다시 돌아가는지

안 변한다 라면
그 분당
그 파벌
그 나누어짐
그거 심각한 것이 아니기에 시시해 져서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이렇게 나눈 것 
성령이 새마음이 새사람이 임하게 되면
괜히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부끄 부끄
왜 또 쓰잘떼기 없는 짓을 했는고 라고
행동을 고치든 안고치든 상관없이
또 주님의 용서에 그 피흘리심에 감격하여서
또 탕감해 주심에 또 사랑하는

사랑을 누리게 되지
뭐 또 내 행동 하라 하지 말라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샤 바울파 파당 지은자에게
바울은 나 바울 핑계 못 되도록
날 쳐다보지 말아라
내 핑계 대지마 난 널 위헤 죽은 적 없어
즉 나는 가랑 아니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왜 보냐 말이죠
너가 실상인 완료로 인해 새사람 되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을 봐야지 
난 너를 위해 죽은 적도 없고 십자가 진 적도 없어
즉 나 또한 용서함을 받는 자 이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는 자가 더 이상 아니다
더 이상 그림자 놀이에 안 놀아날란다 라고 하는 겁니다

캬 맞습니다 모든 것이 그림자였다 말이죠
실상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그림자 놀이를 찾는 우리

실상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는 오죽 더 하겠느냐 말이죠

주님 찾아오심 앞에
나의 완벽함
나의 가치에 도움 되는자 찾아 편먹고 정치 파당 짓 그거 의미 없습니다
의미 없어도 우리는 여전히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 완료 덕분에 그거 심각하게 목숨 걸 가치가 없음을 아시고
도리어 목숨 걸어서 죽은 나를 살린
더러운 죄인을 분파질하는 나를 살리시고자
대신 매 맞은 주님의 죽음 덕분에

아 그건 사랑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하심 앞에
뭘 해도 나는 엣사람이지만 그 엣사람임을 지적해 주심 앞에 새사람으로 오신 주님을 영접할수 있는
바짝 엎드린 오벧에돔처럼 
자기 죄를 알고
죽어 마땅한 자에게
왜 주님의 거룩이 찾아오셔서
더러운 자를 거룩으로 옮겨주시는지
죽어 마땅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자입니다 그런 지옥의 몸을
왜 용서하시는지

그 사랑 알수가 없는 비밀임을 누리게 하시고자
이미 완료로써 덮어버렸다는 사실에
매일 매알 이 지적받는 관계에 놓여진 사랑이라는 것을 누리시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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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4 분쟁 당하기 쪼개짐 당하기 (고전 1;10-15)

마침 최근 댓글이 달린 글이 계시록에 성전이 없다 였다바울 참성전인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진 예수님 몸과의 연결을 주장하는 반면에인간은 인간의 몸(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나 공동체 동아리 모임)누가 크냐 라는 자기 가치로 회귀하는 그 성전에 집착할때에이미 다 세워져 완료된 성전을 통해서 허물어져야할 가짜 몸을 대조하며왜 허물어져야 하는지왜 누락 되어야하는지(교회는 누락의 총화이듯)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실상 앞에서 그림자는 뭘 해도 거짓이기 때문에참됨이 나타났기에 거짓됨을 고백하는 새몸 곧 그리스도의 몸을 누리는 것이다주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그림자는 실상을 가두어 둘수 없다성전 없다 영구 없다받는 분이 아니기에 화목제 자기 목숨을 주셨다
(행 17:24, 개역)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 17:25, 개역)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계 21:22, 개역)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3, 개역)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4, 개역)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 21:25, 개역)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계 21:26, 개역)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계 21:27, 개역)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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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는 차별이 없는 구원과 이름 (롬 10, 9-13)
2025. 7. 6. (6월 16, 19일 녹음)

믿음(실상)의 말씀이냐 VS 행함(그림자)의 율법이냐 (롬 10, 4-10)
로마서 2022 2025. 6. 14. 18:45
22-059 믿음의 말씀이냐 라는 실상 ( VS 행함의 율법이냐 라는 그림자) (롬 10, 4-10)

〈로마서 10, 9-1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찬송가 410장 새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가 463장 새 400 험한 시험 물 속에서〉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찬송가 310장〉

새찬송가 536장(통326) 죄짐에 눌린 사람은
새찬송가 92장(통97) 위에 계신 나의 친구
새찬송가 220장(통278) 사랑하는 주님 앞에
새찬송가 605장(통287) 오늘 모여 찬송함은
새찬송가 64장(통13)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미예수 2000 - No.1818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찬미예수 2000 - No.1817 우리 (나 외로움도 견뎌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찬미예수 2000 - No.1821 우리는 하나 되었습니다
찬미예수 2000 - No.1823 우리는 사랑의 띠로
새찬송가 423장(통213) 먹보다도 더 검은
새찬송가 91장(통9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새찬송가 580장(통371)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찬미예수 2000 - No.1817 우리 (나 외로움도 견뎌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나 외로움도 견뎌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나를 비웃는 그 비웃음 들을 주의 사랑으로 받아주겠소
이 모든 것이 힘들다는 것을 주님은 나에게 알려줬소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넓고 크오 그래서 나는 살아가겠소

우리 모두 손을 내밀어서 넘어진 형제 일으켜주세
사람이 살면 한번 사는 것 걸음 멈추고 생각해보세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서 저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돼야 하오 우리는 하나가 돼야하오

자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저 험한 벌판을 걸어서가세
가다보면 폭풍도 지나고 캄캄한 밤도 지나갈거요
높은 산 올라갈 때도 있고 푸픈 초원도 지나갈거요
서로를 위하로 우리가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겨나갈거요

지금까지 내가 한말들은 배워서 한 말들이 아니요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쁜 것은 말안 해도 우리는 알지않소
오죽 하면 나같은 바보가 여러분들께 호소하겠소
우리는 하나요 당신과 나도 하나 우리는 하나가 돼야하오

자 옆에 있는 형제 손을 잡고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서로 보며 인사도 나누고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우리 모두 발을 구릅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맞을 때
우리는 
하나돼야하오 우리는 하나가 돼야하오


〈로마서 10, 9-1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롬 10:9, 개역)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개역)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1, 개역)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롬 10:12, 개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3,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4, 개역)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개역)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6, 개역)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8,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롬 10:9, 새번역)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롬 10:10, 새번역)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롬 10:11, 새번역)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 ㉦사 28:16(칠십인역)
(롬 10:12, 새번역)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롬 10:13, 새번역)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욜 2:32
(롬 10:14, 새번역)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롬 10:15, 새번역)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7
(롬 10:16, 새번역)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 ㉩또는 '기쁜 소식' ㉪사 53:1(칠십인역)
(롬 10:17, 새번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 ㉫또는 '그리스도의 말씀'.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말씀'
(롬 10:18,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 ㉬시 19:4(칠십인역)



구원이란 출애굽을 통해서 볼 때 지금 이 애굽이 문제가 있기에 떠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전제로 깔려 있어야 구원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애굽이 사실은 인간의 손에 건설된 천국입니다
아니 천국을 떠나고 싶다? 이 천국에 벗어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어야 구원을 바라게 되지

아니 천국을 떠날 마음이 없다면 말라꼬 구원이 되고 싶어하겠느냐 말이죠

네 맞아요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애굽은 그 잔칫집은
사실은 가난한 자의 등을 쳐 먹어서 유지가 되는 나라였던 겁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노예 만들기입니다
그리고 그 노예는 평생을 수치 속에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가짜 천국 가짜 잔칫집 유지는 이 노예들을 가스라이팅 시켜야 그것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노에들은 아 맞어 힘을 가지게 되면 애굽처럼 될 수 있어 라고 생각하겟지요
그렇게 순응하면서 그 노예로 살것입니다
자유는 꿈도 못 꾸면서 그 애굽 권력자들이 누리는 자유에 동화 되어서
가정부로 만족하면서 살게 되는 노예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 인간에게서는 이 구원이라는 아이디어는 나올수 없게된 사고방식입니다
만족해 버렷으니 
빠져나올 마음이 추호도 없게 된 거죠
그리고 권력을 동경합니다 그 권력이 계급화 되었기에
노예들 또한 계급화 시켜서 현대에서는 월급이 차이가나면 자동적으로 계급화 되듯이
이 계급으로 길들여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이 잔칫집은 손 쉽게 자유를 그리고 계급을 유지할수 있는 체제를 완성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추호도 없는 인간에게서
주님 본인이 곧 믿음이 이 천국을 이 계급을 박살내시는 아이디어로 구원을 펼치실때에

구원의 반대말이 뭡니까 심판 아닙니다

이 심판성을 뿌려버립니다
애굽의 바로왕을 강퍅케 하니까
(실제로 그 당시 노예는 거의 자유민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로왔다고 합니다 말이 자유이지 오늘날 자유가 아닌 그 당시 자유로써 계급만 안 높을 뿐이지 평등화 된 거죠 쿠테타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썻기에 매우 자유로왔다고 역사가 들이 말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구원 이라는 빠져나와야 한다 또는 심판 속에 있다 라는 의식은 더더욱 없었던 거죠)

그러니 구원이라기 보다 지금의 미국을 보듯이
경제가 어려운 나라는 아니면 소수국은 미국에 속국이 될려고 나라를 갇다 바쳐서 미국인이 되고파 할 정도이듯이
강대국의 속국 포로노예가 된 것이 다른 나라와 전쟁해서 포로된 것 보다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이 자랑 스러워 할 정도이다는 겁니다
심지어 자국의 신을 섬기는데 있어서 배교할 필요도 없이 종교의 자유도 있으니
애굽 종교에 성질 안 건드리기만 하면 정치적인 문제가 되지 않으면 자유롭다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진짜 천국은 이 가짜 천국을 침노 하겠다 라는 점에서
그 다들 만족스러워 하고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 함에 있어서
졸지에 그 자유가 다 날라가고 본격적인 핍박이 벌어졌을때에
졸지에 그 심판에 의해서 비로소 빠져나가고 싶어 벗어나고 싶은
그 애굽 왕의 강퍅함에 불만 반발성이 비로소 생기게 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주님이 강퍅케 하니 비로소 구원을 바라는 의식이 생기게 되는 거죠

자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인간은 구원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그저 노예 의식에 가스라이팅 당해서 그저 계급의식으로 인해 자기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계급 상승만을 바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부끄럽다 라는 수치 속에 머물게 되니 이 강박증은
사회 구조가 자꾸 쪼여오기 때문에 강박증 안 걸리고 싶어도 사회가 가만히 두질 않으니 적응할려고 발악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인간은 구원을 바란 적 없어요
그럼 그 구원은 오로지 주님이 불쌍히 여겨주셔서 펼치시겠다 라는 주님의 다짐입니다
곧 주님의 믿음입니다
인간의 믿음은 곧 지난번으 행함의 말씀이냐 믿음의 말씀이냐 라고 했을때에
인간은 그저 행함으로 계급 상승 자기 존재 가치 높이기 라는 세뇌 당한 기계 노릇만 할 뿐입니다
평생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 곧 아내의 기능을 못 누리고
그저 땅의 계집종 하갈의 노예의 삶으로 노동의 보상만으로 족할 뿐이지

벗아나고픈 자유를 바란 적이 없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자유를 주시겠다 라는 주님의 다짐이 그 믿음이 와야
그 계급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
가짜 천국인 애굽 에덴동산 같앗더라 라는 속임수에서 벗어나는
또렷하고 명료하고 완료적인 사랑이 아니면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 땅이 얼마나 지옥이라는 것을 바로왕을 강퍅케 하니 비로소 지옥임을 보게 되고

비로고 강퍅케 만드니까 그 심판의 땅에서 벗어나고파 

부르짖는 기도가 나타나는 겁니다
기도 즉 벗어날 수 없는 능력이 없음을 시인하고 벗아니게 해 달라고 부르짖는 겁니다
즉 자이 이름은 안 된다는 것이 전제 된 겁니다
그리고 나 바깥의 외부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그 분을 주 라고 부르고 동시에 나는 그 주의 종이 되겠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 또한 주님이 심은 아이디어입니다

베드로를 한계치에 부딧히게 해서
마귀에게 포로 잡히지 않으면
베드로는 여전히 자기 믿음 끝까지 따라가겠다는둥 함께 죽겠다는 둥 절대로 부인하지 RPtEK 라는 둥 이 선악의 언어로 자신의 가치를 계속 높이겠다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네 맞아요 계급 언어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 언어를 구사하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최고의 계급인 하나님과 최고의 지혜인 하나님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라고 말이죠
그게 바로 가짜 하나님입니다

진짜 하나님은 그래서 베드로 너 같은 그 계급언어
죄의 소원을 깨드리고자 베드로 보다 먼저 있었던 죄를 깨뜨리고자
그 계급을 깨뜨리고자

모두가 부르는 주의 이름을 이루시고자
차별없도록 차별화 시키는 그 가짜 하나님 그 계급 그 선악의 언어 깨뜨리고자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육체를 못 박고자
반대로 가장 최고의 계급인 하나님의 자리
가장 최고의 지혜인(이방인이 구하는 지혜 헬라인의 목적인거죠) 그 지혜의 자리를 깨뜨리고자

완전 상극인 정반대의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
모세의 자리에 앉을려는 그 신앙계급을 깨뜨리고자 거리끼는 걸림돌인 축복의 반대
구원의 반대인
심판의 자리 저주의 자리인 십자가의 저주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가짜 천국 가짜 구원 가짜 잔칫집을 깨뜨리지 않으면
또 그 의문의 반복인 잔칫집 유지를 그 가스라이팅 당한 노예의 삶에는
(노예의 삶? 노예에 무슨 삶이 있겠습니까? 그저 기계일 뿐이니 기계의 삶이라는게 없듯이)
자유라는 것은 없겠지요

아니 자유를 주시겠다 라는 발상 자체가
이미 모든 인간 곧 죄의 종느릇 하는 인간에게는 있을 수가 없어요
자유란 꿈도 못 꾸는 넘사벽의 의식인데
그 의식을 집어넣겟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그 말도 안되는 일을 그 구원을 벌리시겠다 라고

조용한 그 애굽 동산에

어린아이의 노래 호산나로 소동을 일으켜
조용한 예루살렘을 돌 하나로 아이들의 호산나 찬양으로
물수제비를 일으켜 물 위의 파동을 일으켜예루살렘 전체에서 소동이 벌어지는마치 애굽의 10가지 재앙을 퍼붓듯이 파장을 일으켜서 출애굽이라는 구원을 벌어지듯이
예루살렘 교회에 소동을 일으켜
예수님 단 한 선지자만의 구원행사 그 구원자의 이름을 펼치시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의 복수심 곧 방어기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예수님을 막고자 하는 애굽의 강퍅을 펼치게 되고

반대로 예수님은 예수님 본인이 구원자요 진짜 천국으로써
가짜 천국인 애굽
가짜 천국인 사람의 손으로 지은 유대교 곧 종교 곧 신의 이름 곧 자기 이름을 투사시킨 구원관을 그 천국을 깨뜨리는

천국을 침노하는 자(천국이요 구원자)로써 예루살렘 교회를 침략하시는 겁니다

그 성전을 허물지 않으면 그 가짜 하나님 가짜 천국을 허물지 않으면
진짜를 차별이 없는 주의 이름을 부를수 없는

여전히 계급을 차별화 두는 가짜 믿음
결국 차별화를 두겠다 라는 말은 여전히 자기 이름을 구원시키겠다 라는
이 탐심
이 우상숭배라는 이 오예물 이 찌끼 이 불순물을 계속해서 개입 시키겠다 라는 그 심뽀를
용광로 라는 심판이 아니면 구원이 없겠지요

베드로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그 고백은
베드로 개인의 자질에서 나올수 없는 개임의 믿음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또 또 또 계급화 시키는 믿음으로
내가 너 보다 남 8번 용서했다 라는
또 누가 크냐 라는 그 지옥의 종노릇을 또 하는 겁니다

아니 차별 없는 주의 이름으로 구원의 자녀 됨
자유하는 자가 되었눈데 왜 또 가정부로 돌아가느냐 말이죠
그 세뇌
그 죄의 가스라이팅 왜 또 당할려고 가느냐 말이죠

이놈의 목사들이 이 가스라이팅 기술에 아주 특화된 놈들이라서
빠져나오기가 그야말로 예순님의 죽음이 아니면 나올 방법이 없어요

오죽하면 출애굽이라는 구원 사건이
그 당시 초강국
오늘날 미국 자체가 공중분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니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라 전체가 바로 이 짓을 하는 겁니다
가자 지구 하나 죽일려고 이스라엘 나라가 미국 믿고 까부듯이 말이죠
두 마귀 나라가 서로 계급 싸움을 하는 겁니다

가장 잘 사는 나라 선진국 10위 안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순위 10위 안의 나라 이 둘의 나라를 붙이시는 이유는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하는 짓 보세요
자유는커녕 또 보상 보상 날 건드려? 그럼 복수심이라는 자기방어 기제로 일관하는

이게 무슨 차별이 없음 이겠습니까?
그렇다고 평화주의자 간디처럼 행동하라는 겁니까?
개미도 밟지 않을려고 빗자로 들고 다니면 평화가 올까요?
차별이 없음이 올까요?

차별이 여전히 있고
계급이 있다면
지옥이고
심판이고
사망의 몸이다는 증거이기에

그 지옥의 몸임을 직시하는 자 에게만
벗어나게 해 달라는

부르짖는 영
탄식하는 영
상하고 통회하는 영을 부어 주셔서

비로소 그 영을 받아서 구원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차별이 없게 하시는 공의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즉 내 이름을 다시는 안 부르겠다
왜? 내 이름은 여전히 계급을 노리는 가정부 의식을 바라고 있기에
남을 구원해 줄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불도져의 이름으로 모든 이름을 밟아서 평평하게
첩경을 평탄케 만드시니까 말이죠

그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라는 거죠

나의 이름 조차도 나를 괴롭히는 나를 지옥으로 만드는 이름이기에
내가 나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할 리가 없는
우상숭배자의 이름이기에

누워서 침뱉기만 하는 나를 내가 속이는 이름일 뿐인 지옥의 이름
행함 책의 이름을 뿐이다 말이죠
자기 밖에 모르는 정치술을 부리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그런 구원을 바라는 이름이기에
생명책에 기록될 리가 없지요
믿음의 책에 기록된 이름은
예수님 뿐입니다
그의 피가 이런 수치 덩어리인 자의 이름을 지워주지 않는 이상
먼저 있엇던 본향의 이름(아브람이 아닌 아브라함 이라는 본래의 이름)
그 잃어버린 이름을 찾지 못할 겁니다

믿음의 책 곧 생명 책 만이
나의 본향의 이름 본래이름인 그 잃어버린 이름을 찾는
주의 이름을 부르짖게 하는 겁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는 분은 다른 이름이 없었으니까 말이죠

다들 그 어떤 누구도 가짜 이름으로 다 행함의 책에 기록이 되어 지옥가니 말이죠
이재명이가 태어난 날짜를 모르다 보니 무당들이 저주를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말이죠
요즘으로 치면 빅데이터 보편적진리로 아무리 저주를 할려고 해도
생일을 항수가 없으니 말이죠 ㅋㅋㅋ
자 이렇게 마귀들은 이 게급투쟁 인정욕수투쟁에 평생을 헛짓하다 가는
안개짓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해가 뜨면 언제 안개가 있었는냥 다 누락되게 뒤로 물러가고 배제되는

이전 것만 지나가는 짓만 골라 할 수 밖에 없다 말이죠

새 것을 할 수 없어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 의문의 반복만 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그 고집만 부리다가 안개처럼 사라질 뿐입니다

그러니 땅의 계집종 하갈의 가정부 짓만 할 뿐인 그저 기계 로보트 이지요

딱딱한 기계가 아닌 말랑 말항 물컹 물컹 살아 꾸믈 꿈틀 거리는
생명체로 살려서 아내로 삼는 그 생명주 만이

생명 곧 구원을 부어주시는 생명의 주가 되는 겁니다

이 생명의 주를 증거하는 아름다운 발길이 저 심판의 세계를 또렷히 보여주지 않으니
또 이 놈의 사람의 일을 반복하는 초코파이 정으로
결국은 또 삯꾼 목자들처럼 가스라이팅으로 자기 노예들만 양성하게 되니

이 놈의 교인들이 그저 목사 눈치만 보고 있더라 말이죠

참 가관 이예요

사람들 눈치나 볼려고 갈 것 같으면 말라꼬 가는지

교회에서의 직분은 정작 하나된 한 몸 차별없는 주 이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졸지에 이것이 껍데기가 되어버리니끼 졸지에 계급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 카이 껍데기만 남고 주의 이름 이라는 차별없는 주의 이름이 그 속 알맹이가 빠진채로
또 주의 이름을 교회 바깥에서 또 자기 이름처럼 잃어버린 양을 또 찾는 겁니다

99마리 양 내버려 두고 말이죠
차별을 두는
둘로 나누어진 
경계선 그어진
원수들을 내버려 두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이것이 주의 이름이니까 말이죠
남겨둔 한 씨가 부르짖지 아니하면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가 생겨나지 않으니
또 소돔과 고모라의 반복이 되는 거죠

벌써 이미 심판 받았다 말이죠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계 11:8, 개역)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또 십자가의 사건이 또 벌어지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말이죠
그런 교회가 소돔과 고모라 이니까 말이죠

남겨둔 한 씨는 그 소돔을 깨뜨릴려고 
그 소돔은 이 남겨둔 한 씨가 만들려는 남은자를 새창조 못하게 할려고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 하게 할려고 피 터지게 싸우는 겁니다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21, 개역)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교회가 어찌 음란한 지옥이 되었고
그 지옥에서 공평 곧 차별이 없음은 사라지고
계급만 남아버렸다 라는 겁니다 가정부만 있고 자유하는 여자는 곧 피신랑의 아내는 없더라 말이죠
차별없음의 증상물은 없고 피조물 새창조물은 없고
완악한 권력에 탐하는 자들 지옥의 벌레들 뿐이더라 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살인자들 복수심으로만 자기방어기제를 펼치는 애굽 잔치십 뿐이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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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땅을 지옥의 땅 심판의 땅 저주의 땅으로 규정하고그 애굽 땅 지옥의 왕을 강퍅케 해서 부르짖도록 해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듯이이사야는 지금 1장 처음부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땅을 아예 저주하고 지옥의 땅으로 규정하고 들어가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피로 씻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 짓만 반복하는
오늘날 강도의 소굴 살인자의 교회와 다를바 없는 거지요

갑자기 너튜브에 이게 보이더라구요 기도원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https://www.youtube.com/shorts/PV8Q09l6rO4?feature=share
들어보니 교회가 망할 수 밖에 없고 오늘날 전세계 무신론자 1위 국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와 같더라구요 경영문제 예례미야서에도 나오죠
(렘 44:17, 현대어) 우리는 여전히 하늘의 여신을 섬기며 이미 그 여신에게 서약한 대로 행동하겠소.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 우리의 임금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대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바로 그 하늘의 여신을 섬겨 왔소.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 여기서 계속 그 여신에게 제물도 살라 바치고 전제도 따라 바치겠소. 우리가 그 여신을 잘 섬기던 때에는 언제나 우리의 모든 일이 잘되었으며 배고픈 적도 없고 전쟁이나 전염병에 시달린 일도 없었소.
(렘 44:18, 현대어)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 바치는 일을 중단하고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마침내 안팎으로 전쟁과 굶주림을 당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몰살을 당하게 되었소'
(렘 44:19, 현대어) 그 곁에서 있던 여인들도 똑같이 빈정거렸다. '우리가 언제 남편들도 모르게 하늘의 여신을 섬겼소? 우리가 그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바치고 전제도 따라바치며 그 여신의 모습대로 떡을 만들어 바쳤을 때에 우리의 남편들은 완전히 우리와 한마음이 되어 있었소'
(렘 44:21, 현대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뒤집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다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에서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행동때문에 바로 여러분이 재난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 여러분의 왕들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 이렇게 온 백성이 우상을 섬겨 재앙을 불러들였습니다. 온 백성이 주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주께서 여러분에게 형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늘의 여신에게 바쳤다면 안 망했을텐데 돈 없다고 안 바치다가 결국 망했다 라고 망하는 이유도 모르더라 말이죠 심판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몰라요
멸망을 멸망하시는 이유도 모르는 겁니다 그카이 더더욱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서율법 네 배나 갚으라 에 몰두 할 수 밖에요
갑자기 MZ 남성들이 전세계적으로 보수화 되어서 미국 애들이 갑자기 교회 나온다고 해서
한국 애들은 안 그렇거든요 여성혐오가 더 심해지겠지요 저출산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다니깐요 복수심으로 자기방어기제를 펼치는
그 만큼 젊은 남성들이 우울즐이 심하다는 겁니다 괜히 청소년 자살 1위 20대 자살율 1위가 아닌 거죠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1, 개역)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사 1:2, 개역)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사 1:3, 개역)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사 1:4, 개역)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 1:5, 개역)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사 1:6, 개역)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사 1:7, 개역)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사 1:8, 개역)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 1:10, 개역)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개역)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개역)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 1:16, 개역)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 1:17, 개역)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18,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9, 개역)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사 1:20, 개역)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 1:21, 개역)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사 1:22, 개역)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사 1:23, 개역)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사 1:24, 개역)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사 1:25, 개역)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사 1:26, 개역)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사 1:27, 개역)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사 1:28, 개역)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사 1:29, 개역)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사 1:30, 개역)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 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사 1:31, 개역)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그 어떤 이도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을 지옥의 몸
살인자 라고 규정해 놓고서

그 지옥에서 탈출하는 지옥의 멸하는 구원
그 수치를 제거하고 가리워서 보시지 않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 옷 그 새옥을 그 그리스도의 옷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런 탈출 의식 떠나야 한다 라는 잃어버림의 경험이 없으면

남겨둔 한 씨가 마련한 
너희들이 더럽히지 못한 아껴둔 내 기념 이름 기념 칭호라는

주의 이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수 없게 되는 거지요

이사야 전체의 내용은 바로 주의 이름 부르짖음입니다
(선지자의 대표성이다 말이죠 엘리야는 모세언약에서 율법[곧 모세] 과 선지자[곧 엘리야] 이지만 다윗언약에서의 엘리야는 이사야죠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 서를 많이 언급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취급해서 박살내시는 이 주의 이름을 안 부르짖고는 못 배기도록 유대인과 유대인의 땅을 강퍅케 하시는 겁니다 이사야처럼 말이죠 사실은 이사야가 먼저 되신 예수님을 따라한 겁니다 자꾸 성전을 헐라 라고 외치고 새하늘과 새땅을 3일만에 짖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 원본이 예수님이였다 라는 거죠)

(호 12:5, 개역)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사 26:8, 개역)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사 56:5, 개역)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사 26:8, 개역)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16,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6:17, 개역)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겔 36:18, 개역)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겔 36:19, 개역)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겔 36:20, 개역)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겔 36:21,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겔 36:22, 개역)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겔 36:23, 개역)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얼마나 이스라엘이 여호와 이름을 더럽히는데 달인들이였으면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 이지요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성화가 되었다고 우기는 교회 일수록 더 더럽히고 있는 겁니다
저 되도 않는 빤스목사라는 수준 떨어지는 놈들 말고요 다들 저 교회는 제대로 된 교회야 라는 교회일수록 살인자의 소굴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얼마나 조용했으면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는 교회였으면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소동을 일으켜야 비로소 화를 내는 꽁꽁 감추어진 강도의 소굴 교회가 바로 이사아야 공격하는 이스라엘이엿다 라는 거죠)

(사 24:5, 개역)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사 30:22, 개역)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사 52:5,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사 56:2, 개역)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사 56:6, 개역)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사 63:3, 개역)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겔 20:9, 개역)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
(겔 20:14, 개역)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겔 20:22, 개역)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다
(겔 20:39,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가서 각각 그 우상을 섬기고 이 후에도 그리하려무나 마는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겔 39:7, 개역)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43:7, 개역)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그 아껴둔 기념 이름을 사모하는 겁니다
주의 이름이 뜨지 먼저 뜨지 아니하면 사모할 리가 없지요

그리고 그냥 사모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구원만 사모하는게 아니라
심판의 주 이름도 같이 사모하는 겁니다

저 심판자 노릇하는 저 엉터리 천국인 애굽의 바로왕을 심판하는 그 심판의 이름도 부르짖도록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거치지 아니하면
가족에 왜 원수지간인지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라는 그 검을 거치지 아니하면
또 의문의 반복인 거짓선지자의 대충 대충 평강이다 평강이다 대충 대충 고치는 그 의문의 반복을 또 보게 되는 겁니다

즉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런 식의 그리스도 파
아마 나사렛 교단도 있었지요 한국에
검색하니까 감리교 쪽에 그런 이름도 있고
성결교 쪽에도 있네요
제가 군에서 막 배치되었을때에 막 제대하던 병장이 나사렛 그리스도 신학교에 다니던 자라서 생각이 나네요

아무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여도 역시나 나의 이름을 높이는 나의 가치를 높여지는 그런 이름이라면 가짜 이다는 거죠

그런 가짜 이름과 아무리 바울이라고 해도 바울이 십자가를 진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가짜 이름과 그런 분쟁을 거쳐야만

진짜 한 몸의 결혼 하나되는 이름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으로 오신
심판주 만이 나를 제대로 구원하는 이름이다는 겁니다
내 이름으로 나 바울 이름으로 세례를 준적이 있더냐 라고 했듯이 말이죠

나를 제대로 나의 이름을 지우는 그 심판주의 이름만이
나를 제대로 구원하는 이름 구원의 생명이름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쪼개지고 분쟁 분열 다툼 나누어짐을 거쳐서
한 몸이 된 이름을 보라꼬 우리는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주의 이름을 부르짖도록 하기 위해서
왜? 주의 이름이 먼저 떳기에

내 이름이 얼마나 바로왕의 이름을 좋아라 하는지
고로 주의 이름을 얼마나 더럽히는 자 인지를 까발려서
나의 이름도 삭제 시키시는 제대로 된 이름만 부르짖도록 하심으로써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를 찾지 않던 자리에서 주가 찾으신 바 되게 하시는

결국은 내가 한 것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주님 홀로의 자작극으로
일방적으로 혼자 다 이룬 숙제를
우리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심 만 누릴 뿐이다는 겁니다
공짜라 넓쭉 받아 먹겠지만
사실은 그 공짜 은혜에 안 맞는 내 육적은 요소는 심판받는 자폭테러를 당하는 거지요
그렇게 새애벌레로 나비가 태어나니깐요

다시는 정죄 함이 없는 한 몸 된 주의 이름으로 태어난
그냥 주의 이름도 아닌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이름
둘로 나누어진 쪼개진 주의 이름 그 간극 그 공백에서 태어난 거죠


그 이름을 방해 할려고 마귀는 주님이 주의 이름으로 다 덮어버린
내 허물을 자꾸 들추어보라고 반성하라 고쳐라 자꾸 죄책감을 심어버리는 겁니다
안그러면 회칠한 무덤이 된다 라고
그것 또한 내 숙제로 되는게 아니라
회칠한 무덤이 안되도록 자신을 자기 관리 자기숙제로 원인을 갖춘 것이 도리어 회칠한 무덤이다 라고
보세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절대로 선지자를 죽이지 않겠다 라고 하고 있잖아요
자꾸 죄 보다 자기가 먼저 있었다 라고 하는 겁니다

주님은 자꾸 인간 상대 하지 않고 죄거 먼저 있었다
마귀가 너 보다 먼저 있었다 라고 독수리가 시체로 보는 그 시선으로 취급하시는데
인간은 자꾸 자기자신에게 기대치를 가지는 겁니다

종교가 뭡니까 그 기대치를 소망으로 증폭시켜서 돈 버는 곳 아닙니까

아니 무당들이 살살 달래야 돈 벌지 사기꾼들이 처음에 꿀발린 말을 해야 속일수 있지
처음부터 돈 되는 놈이 아니다 싶으면 바로 하루살이처럼 짤라낼 것 아닙니까

IMF (1997년) 이후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확장된 업종이 바로 점 보는 타로 그런 미신 행위가 200% 이상 성장하고 그 뒤 지금까지 불황을 모를정도로 계속 확장 되고 있다 말이죠교회는 교인들을 이런 미신을 퍼트리는 무당들에게 다 빼앗기고 말이죠교회가 위기니 뭐니 하면서 징징짜고 있어요아니 둘다 돈에 미쳐 있는 무당들인데 다른 무당에게 손님 빼앗겼다고 하니처음부터 창녀였던 강도의 소굴이였던 거죠
그들 무당들과 종교는 현 상황을 지옥이다
애굽이다 라는 의식을 줄수 없습니다
그저 이 땅에서 잘 살아남을수 있도록 적응할수 있도록 파이팅 힘 줄려고 애 쓴다 말이죠
나쁜 액운을 자기들이 책임져 주겠다고 나선다 말이죠

즉 구원 이라는 주님의 아이디어가 없어요
주의 이름도 필요가 없고요

넌 원래 복받은 잔칫집 사람인데 뭔가 실수를 해서 지듬 안 좋은 상태이니
내가 그 고장한 부분 수리고장 서비스 센터처럼 고쳐줄게
넌 원래 건강한 자야 라고 의원은 필요가 없으니
그냥 그 잠깐의 고장난 부분 수리해서 액땜에서 그 실수와 고장이 연속되지 않게 다시는 반복하지 않게 굿 한 판 하자 라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는 식이고
헌금내듯이 복채를 내는 거지요 더 이상 간섭하지 말고 먹고 떨어지라고

이것이 이사야 초반에 나오지요 내 마당만 밟는다 라고
누가 그런 복채 달라고 했더냐 라고

다시 올려보면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0, 개역)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사 1:12, 개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개역)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4, 개역)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 1:15, 개역)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 1:16, 개역)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사 1:17, 개역)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18, 개역)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다 썩어 빠졌구나 그래서 대수술 전신공사에 들어가는 겁니다
전체 밭갈이 기경을 하는 거죠
다 싹 갈아 엎어버리는 겁니다
교회든 성전이든 이스라엘이든 성한 곳이 없으니 다 뜯어고치는 겁니다
이 심판주 의사의 칼이 아니면
이 주께서 내 주께가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 그대로 된 채로 내어버려두심 밖에 안되니까 말이죠

즉 차별이 없는 구원의 이름이란 곧 심판의 이름입니다
내 좋으라고 나오는 이름이였다 라고 미끼를 물 수 밖에 없도록 하시고
이 심판의 주 이름이 나의 구원의 주 이름임을 안 그러면 
또 장로의 유전에 따라 또 더럽힐게 뻔하기 때문에
자기 유익으로 바꾸기 때문에

차별이 없도록 모든 육체를 모두다 십자가에 못 박고자
구원의 뿔로 모든 뱃구멍을 빵구멍 내시는 이름
이 이름이 아니면 구원은 없는 거죠

상처는 그 찌른 창에서만 치료가 되듯이
나 라는 우상을 제거하는 이름은 오로지 주의 이름 밖에 없습니다

이 주의 이름을 누구든지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화로다 화로다 이 사망의 몸 이 지옥의 몸 고쳐달라고

아무나 못 부릅니다 오로지 성령을 부어주심 받은 자만이 부르도록 말이죠

결국 여기에 인간의 도움이나 인간의 순종 따위를 바라지 않습니다
순종했다 라는 것으로 또 계급을 짓는 누가 더 많이 순종했냐 라는 그런 애굽의 사고방식에서 떠날 마음이 추호도 없기는 매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
차별없이 몽둥이를 다 대시는 겁니다

그러니 차별없다 라는 것은 주님 만의 아이디어이지
우리의 해석과는 정반대인 거지요
구원이란 탈출이라고 했듯이
차별 없이 탈출 시켜 주마 즉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 일을 그 구원의 일을 실행하시는 것이
바로 주의 이름

즉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 구원은 인간이 바라는 구원이 아니지요
주의 이름도 인간이 생각하는 이름 아니지요 특히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주의 이름은
그야 말로 미신적인 주술 무당의 주문과 똑같아요 그런 이름 아니지요
내 이름을 삭제 시키는 이름만이 주의 이름이니
구원의 뿔 뱃구멍을 빵구멍 내시는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있겠어요? 아니 누가 나는 탈출해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가난해 져야 합니다 라고 나옵니까
성화론자들처럼 오히려 성화가 많이 되는
부자가 될려는 욕심 가득한 자가 될려고 교회 나오고
그것을 또 교회가 막 부추기고 있으니
무당 소굴이 따로 없지요

그 내막이 바로 헛된 그림자를 쫓고 있는 구약 이스라엘에서 다 드러납니다
북이스라엘은 정통 정통 따른다고 하지만 지 멋대로 하고요
남유다는 그래도 주님이 붙잡아 주셔서 명맥을 겨우 유지할 뿐이지

대 놓고 범죄를 일 삼는 북이스라엘 오홀라 언니 보다
더더더 악한 짓만 골라서 하는 남유다의 속내를 다 들통내심은

모든 인간의 대표성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나 오늘날까지 그런 죄악들을 반복하고 있기는 맹 마찬가지 이다
장로의 유전을 따라서 우리는 절대로 참선지자를 안 죽일끼다 라고
선지자의 무덤을 아름답게 복원해서 아이들 교육용으로 박물관 기념비처럼
회칠산 흰색으로 도배를 해도 너희 속내는 맹 무덤이기는 맹 마찬가지 이다 라는 거지요
인간은 안 됩니다 자꾸 종교라는 마약이 그 가능성을 그 기대치 헛된 바람을 집어넣어요

그 상대적인 것이 헛된바람을 꺽어버리는 것이
차별이 없는 몽둥이 이다는 겁니다
유대인이라고 더 많이 때리시고
헬라인이라고 해서 덜 때리시고
아이고 개같은 이방인이 고맙게도 주님을 믿어주니까 억수로 고맙네
서비스로 10대 때릴 것 하나 감해 줄게 옛따 할인 세일 틀별고객 감사 대잔치이다
그런거 없다 말이죠

유대인 저 놈들은 예수님 죽인 놈들이니까 히틀러 손에 더 많이 죽이도록 하겠다
그런거 없어요
그들이 당한 것은 오늘날 예수님의 자녀가 당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잘못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 주님의 자녀는
오로지 주의 이름 때문에 이유 없이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바이니까 말이죠

아니 탈출 할려고 하는데 애굽이 가만히 둘까요?

목숨 걸고 막아설꺼 아닙니까?

이런 탈출로 인해
이런 구언으로 인해 이런 현상을 격지 않는 자는
차별 없으신 모든 사람에게 주가 되시는 주의 이름이 없고
차별 둬서 나 만큼은 빼내 달라는
그래서 사람들을 회개하고 반성케 하는 쉰들러 리스트 와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 라고 할때에

그 반성으로 인해 여전히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라는 의식
그 애굽 의식을 집어넣기에는 맹 마찬가지이고

탈출코자 하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처음부터 아니였던 겁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마지막 남유다 시드기야 왕의 독립운동 다큐이고
그 독립운동을 보고 각성한 가룟유다가 이 땅을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도배하고자 하는
역시나 우상의 나라 강도의 나라 세우기 이다는 거지요
왜? 먼저 있었던 나는 적어도 이 애굽 나라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 살 자격이 있으니까 말이죠

이런 자가 무슨 수로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누구든지 성령에 이해서만 부르짖도록 만드시는
차별 없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곧 부르지 않던 자들에게 부르신 바 되시는 그 이름
이름이 주체이지
부르는 자에게는 해당 사항 없지요

그 이름이 안 부르고는 못 배기도록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심으로써
탈출케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아니 우리는 포로 된 적도 없거늘
예수 니가 뭔데 우리 아브라함 자손을
이 자유하는 자의 자손을
니가 뭔데 포로됨에서 자유케 한다는 둥
눈 먼 데에서 보이게 한다는 둥
갇힌 데에서 놓여지게 한다는 둥

주의 이름 부르지 않던 곳에서 부르신바 되게 한다는 둥
니가 뭔데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속내를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는 대표성으로써 드러내신 것이다 말이죠

자 그렇기 때문에 차별이 없는 것 맞지요
애굽 놈이나 이스라엘 놈이다
한국 놈이다 지옥의 몸 맞지요

그 지옥의 몸 차별없이 갈아 엎어 주마

이 섬기시는 심판의 주 이름 아니면
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아니면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내용이
십일조 냈고요 이레에 두 번 금식 했구요 했구요 했구요에

그 반대되는 매국노 세리는 얼굴도 못 들고
화로다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그 심판 받아 마땅함을 갈아 엎어져야 함을 아는 자가
비로소 주의 이름

주께만 범죄한 자에게만 딱 맞는 부르짖는 주의 이름

왜? 그런 자기자신 없는 그 우상같은 자기자신
도저히 이길수 없는 없는 자아로부터 탈출케 해 달라고 부르짖지만

바리세인은 십일조 한 자기자신
이레에 두 번 금식한 자기자신
이렇게 이쁜 자기자신에게서 탈출할 마음 추호도 있겠냐 말이죠

자기자긴을 차별화 두지만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과 똑같아요 
68운동 하는 놈들과 같은 광주항쟁 운동하던 놈들처럼 말이죠

차별이 없도록 주의 이름은 모조리 지옥의 몸으로부터 강퍅케 만드신
그 지옥의 몸으로부터 몽둥이를 당하게 되면

비로소 부르짖는 겁니다

안듣긴다 더 크게

주여 탈출 시켜 주세요

누가 자기의 몸으로부터 탈출 시켜 달라고 외치겠습니까
이 몸 뚱아리 잘 관리하고자
공부 시키고 운동 시키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애굽의 갑의 위치에 올라갈꺼다 라는 의식으로
교회 안에서도 직분이 그렇게 작동이 되지
누가 더 마음이 가난한 섬기는 장로가 되고자 하겠습니까
대접 받을려고 하겠지요
이미 집안에서 하던 행동 교회에게 까지 하는 겁니다
그 카이 자기 안 알아준다고 징징 거리는 목사들만
그런 돈돈돈 거리는 놈들만 남았으니

차별이 없어야 하는 직분이
완전 정반대
차별화 된 직분 시스템이 되는 거지요
이미 전체적인 구조 판대기가 그렇습니다
시대상을 반영할 수 밖에요

작은 교회 개척교회에서 다들 큰 교회 재벌교회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그 의식 자체가

탈출
구원
그 구원의 주 이름
빵구멍 내시는 차별 없는 구원의 뿔과는 상관 없는
강도의 소굴
우상숭배의 본부가 된 거지요

고맙게도
이사야 1장 내 마당 밟지 말아라 고아 나그네 등쳐 먹는 교회들아 해 놓고서는
갑자기 너희 죄가 아무리 붉을 지라도 흰눈 같이 하겠다
우리 변론 대화 하자 라고 나오시는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아니 심판 하시겠다 라고 화 내심을 억수로 펼쳐놓고서는
갑자기 용서 할게 라고 하시니

바로 이게 차별이 없음이다는 겁니다
그래 그래 너희 죄악이 아무리 붉을 지라도 희눈 같이 해 주마 라고
흰눈으로 덮어서 그 무거운 흰 눈의 무게로 인해
일본 보세요 퍼뜩 퍼뜩 흰 눈을 치우지 못하다 보니 집이 무너지잖아요
어떤 노인은 한국에서도 그 흰눈 치우다 본인이 깔려 죽든지
아니면 하루 종일 해도 안되다가 지쳐서 죽든지 하잖아요
바로 이것이 차별없이 흰눈으로 다 덮어버려서 죽여주마 이다는 겁니다

그런 자아를 죽이시겠다 라는 주님의 자기 목숨 걸고 하시는 이 맹세가 아니면
이 주의 이름이 아니면
우리는 탈출할 마음이 추호도 없는

저 애굽 지옥의 교만한 부자의 마음 뿐임을
누구 희생양 삼아 피 빨아 먹고 사는 자 임을
아니 그런 이 세상 구조에서 못 벗어남을

그래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된 지옥의 몸이?? 라고 우는
매국노의 부르짖음이

나의 부르짖음이 되도록 만드시는 주의 이름이다 라는 것을
이 성령이라는 새 마음 새 영 마음이 가난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부으신다는 것은
그 정도로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 추호 없기에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다윗에게
이 정직한 영을 부으시겠다 라고
그 다윗의 운명이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이듯이

이 예수님의 운명이 교회된 우리의 운명임을 기뻐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이미 다 이루신

완료의 세계입니다
부족해서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는

모잘라 모잘라 함량미당의 짐승의 수 사람의 수 666이 아닌

동서 남북 우주 끝까지 몇천조의 은하계 그 우주 끝까지 퍼지는
골방에서 부르짖는 주의 이름

두 렙돈 250원 나누기 2 125원 참새 한 마리 값
그 정도로 작은 렙돈 이라는 뜻이 가장 작다 라는 의미이거든요
믿음이란 가장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 라고 했습니다
이거 실천하는 목사들 본적이 없어요
종말 신앙이란 이 두렙돈 500원 과부의 전 재산의 헌금으로 종말의 헌금으로
비로소 아름다운 벽돌로 세웠다 라고 자랑하는 제자들이 말하는 그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차별 없이 가루로 만드시는 그 종말의 헌금
마지막 때의 완료의 헌금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이 아니면 다 가짜이다 말이죠

마침 참새 한 마리가 4 렙돈이라고 검색이 되길래 더 찾아봤지요
두렙돈은 참새 반마리 이다 말이죠

(눅 21:1, 개역)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2, 개역)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3, 개역)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4, 개역)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5, 개역)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눅 21:6, 개역)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막 12:37, 개역)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막 12:38, 개역)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 12:39, 개역)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 12:40, 개역)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 12:41, 개역)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2, 개역)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 12:43, 개역)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4, 개역)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막 13:1,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막 1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마 10:19, 개역)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마 10:20, 개역)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21, 개역)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 10:22, 개역)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개역)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 10:24, 개역)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마 10:25, 개역)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0:26, 개역)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0:2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8, 개역)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9, 개역)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10:30, 개역)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 10:31, 개역)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한 앗사리온 값 참새 두 마리 이듯
그 정도로 작고 작고 가장 작은 단위를 계속 언급 한다는 자체가
이미 모든 인간들은 크고 크고 가장 가치가 큰 쪽으로 모든 의식이 흘러가고 있음에
반대되는 모습의 방향성으로써 증거하신다 라는 겁니다(옛날에 포장마차에 참치구이 굽는 냄새가 그렇게 흔했다 말이죠요즘은 돼지고기가 흔하지만 말이죠 요즘은 참새가 보이지도 않아요검색을 해 보니 그 당시 참새한마리 가격이 자료가 없다고 하는데 계란 한 개 가격이다고 하더라 말이죠 요즘 계란이 많이 올랐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5000원 정도가 수년동안 계속 되엇다 말이죠 계란 하나에 160원 정도 요즘은 7-8천원이니까 한 개에 250원 정도
옛날에 얼핏 기억으로는 2~30원 정도 였으니까 참새구이로 요리하면 100원 정도 되겠지요지금은 15000원 한다고 하는데 독일학자는 참새한마리의 생태학적 가치는 180만원 이다고 검색히 되네요 아무튼 가장 작은 참새를 언급하신 이유는 지옥으로 향하는 세상에 반대의 방향을 제시하신 겁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방향을 말이지요)

한 알의 밀알이라거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라거나 
젖먹이 보다 강한 자가 없다고 하신 것이나
다들 큰 믿음 큰 가치를 추구할려고 하는데 말이죠 
또 겨자씨 만한 믿음 이라던가 다들 보잘 것 없는 것을 주의 이름은 추구하고요
인간은 반대로 자꾸 큰 것을 추구한다는 거죠 왜? 자기가 커져야 하니까 말이죠

결국 오늘날 교회도 지옥으로 향하고 있지
절대로 주님 쪽으로 본남편으로 향하고 있지 않더라
애굽만 쫓더라 라는 겁니다(그렇다고 새삼스럽게 나는 다들 큰 것을 추구할때에 나는 작은 것을 추구할 거야 라고 다짐해도 주님은 안 속습니다 그게 강도의 소굴인 성화론자들 주장 아닙니까 내 숙제는 없어요 그냥 생긴대로 사시고 주님의 숙제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차별이 없는 뭉둥이가 지근 지근 밟아주는
이 진짜 주의 이름이 아니면 우리는 이미 소돔과 고모라 이고

그랬던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고도 남앗을 우리들을

남겨둔 한 씨

겨우 겨우 불 속에서 다 타다가 겨우 겨우 남은 그 연한 순
남겨둔 한 씨의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우시는 그 주의 눈물 
주의 피 흘리심 덕분에 자기 죄로 우는 자
겨우 겨우 남은 가장 작은 단위의 그 남은자가

그 심판의 불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 차별없는 주의 이름의 심판 덕분에 섬기심 덕분에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곳에서 부르신바 되고
찾지도 않던 곳에서 찾으신 바 되도록 하시는

이 주의 이름이 벌리시는 사건 덕분에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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