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9 터 와 불 (고전 3;10-15).mp3
(파일을 다운 받아 파일 명을 바꾸고 확장명 즉 꼼마 점 찍고 .mp3 까지 적어 변경해야 들으실 수 있습니다)
25-019 터 위에 세우는 불을 통과한 한 몸(교회) (고전 3;10-15)
종말 때에만 나타나는 종말의 단체 새이스라엘
상을 받도록, 상 주시는 분 (고전 3; 8-11)
고린도 전서 2025 2026. 6. 4. 12:45
25-018 상을 받도록, 상 주시는 분 (고전 3; 8-11)
〈고린도전서 3;10-15, 개역한글 신약성경 266쪽〉
(고전 3:10, 개역)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1, 개역)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2, 개역)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전 3:13, 개역)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 3:14, 개역)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전 3:15, 개역)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0, 현대어) 하나님의 은총으로 유능한 건축자가 된 나는 기초를 놓았고 아볼로는 그 위에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기초 위에 건축을 하는 데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고전 3:11, 현대어)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기초를 놓았으니 그외의 다른 어떤 기초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고전 3:12, 현대어) 그러나 그 기초 위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건축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은 보석을 사용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 또는 짚을 사용할 것입니다.
(고전 3:13, 현대어) 그리스도의 심판날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세운 건축물은 불의 시험을 받아 건축자가 각각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그 건물이 존속될 것인가, 참으로 완벽한 건물인가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눈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고전 3:14, 현대어) 그리하여 그 기초 위에 적절한 재료로 건물을 지음으로써 그가 지은 건물이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 3:15, 현대어) 그가 세운 건물이 불타버린 사람은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자신은 화염 속을 빠져 나와 겨우 목숨만은 구하듯 그렇게 구원받을 것입니다.
먼저 불이 나오는 본문의 다른 번역은 어떠한가 싶어서 올려 봅니다
(고전 3:13, 새번역)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은 불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고전 3:14, 새번역)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 ㉢또는 '세워 놓은 일'
(고전 3:15, 새번역)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 ㉣또는 '일'
(고전 3:13, 쉬운) 각 사람이 일한 성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불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한 것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각 사람의 한 일을 검증할 것입니다.
(고전 3:14, 쉬운) 어떤 사람이 세운 것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그는 보수를 받을 것입니다.
(고전 3:15, 쉬운) 그가 세운 것이 타 없어져 버리면 그는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은 마치 불을 거쳐서 살아 온 것 같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고전 3:13, 공동)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서 각자가 한 일이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시험하여 그 진가를 가려줄 것입니다.
(고전 3:14, 공동) 만일 그 기초 위에 세운 집이 그 불을 견디어내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은 상을 받고
(고전 3:15, 공동)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속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자 결국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은
예수님처럼 죽음을 심판을 불을 통과한 몸으로써
진짜 예수님이라는 터 위에 세워진 몸이 맞는지
건축자들이 세운 건축물 곧 성전이 하나님의 전,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 맞는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맞기는 맞는지
이 심판을 통과케 하시는 겁니다
불을 질렀더니만 남아 있으면 상을 주시고
불을 질렀는데 어라 허물어 져 버렸다 그러면
불에 타 쟂더미 속에서 겨우 겨우 목숨을 건지는 상황 밖에 안되는 거죠
상이고 뭐고 죽다 살아나게 되는 겁니다
그 정도로 기초가 누구냐 라는 겁니다
심는자 바울이냐? 물 주는 자 아볼로냐?
아니다 결국 불에 타지 않는
자라게 하시는 분 하나님의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는 교회인데
인간 개개인의 속성을 발휘하게 되니까
은사가 아니라 말이죠
인위적인 은사받은 행동들을 하게 되니
가짜 은사인지를 볼려면 불에 태워 보면 안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불에 타서 쟂더미가 되는 상황을 거쳐서 상이 주어지는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역사 곧 구약이지요 그 그림자 시대에
역사를 붙잡은 시공간을 개인의 활동무대로 본 시대에
어떻게 성전이 불탔고
누가 불 질렀습니까 주님 자신 아닙니까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전을 성령 자신이
불로써 태우소서 깨끗게 하여 주소서
주여 성령의 불길로써 오늘도 내려 주소서 라는 찬송가처럼
주님께서 성령의 불로써 늘 수시로 흔들어 버리시면서 채 거름망으로 걸러낼 것을 걸러내시겠다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바로 그런 대상물이 되는 것이 교회이지
인간의 손에 좌우되는 완벽주의의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이 손수 직접 다루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 완벽주의의 교회를 부러워 하는데
바로 그런 교회가 교린도교회입니다
왜냐하면 부자청년처럼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라고 주장할 정도이니 말이죠
과거로 따지면 솔로몬 성전 시대 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솔로몬의 성전도 직접 불태워 버리십니다
그리고 불타 버린 그 잿더미 속에서 순 같은 연한 순을
새로 뽑아내어서 불 속에서 타나 남은 씨로써
새언약을 완성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라는 새 성전 곧 참성전의 운명을 성령의 전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겪는다 라는 겁니다
자 이렇게 부타버린 성전의 예로 구약까지 다 살펴보게 된다면
지금 바울파 게바파 곧 베드로파 아볼로 파 라는 의식 자체가
얼마나 배불러 터진 입장이다는 거죠
아무것도 아닌 것 붙잡고 왜 심각하냐 말이죠
교회가 돈 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것 붙잡고 심가하면
불에 과연 집어 넣었다 빼내보자 말이죠
과연 돈이 남는가?
돈 따라 교회까지 돈 따라 가게 되니
불 속에서 돈 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다 불타 쟂더미가 되어서
나오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야 말로
지난 주 마른 뼈야 살라 라는 에스겔서의
하나님니 누구인지 알게 하신다 라는 의미가 오늘 본문에 딱 맞습니다
어머니께 설교녹음에도 나옵니다만
마른 뼈야 살겠느냐 라고 에스겔에게 물으니
네 삽니다 라고 대답하는게 아니라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에스겔이 답했다 말이죠
우리는 믿음을 마치 감정적으로 믿는 척 하는 모습에 익숙하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강요하다 보니
네 살겠습니다 라고 선뜻 산다 라고 하지만
정작 주님의 취지는 이미 불도져로 밀어버린 황무지에서 에덴동산 같게 하셨고
이미 전쟁에 져서 대 패 패 패 쫄딱 망해 바짝 마른 뼈가 되었고
그것도 수천 수만의 뼈들이다 보니
이것은 그야 말로 지옥 그 자체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이 바짝 마른 뼈가 된 지옥의 백성을 누가 건져내랴 라고
주님이 불타게 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의 바짝 마른 뼈가 된 죽음 보다
인자의 죽음을 그 마른 뼈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즉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는 말은
아무리 완벽하게 갖추어도 딱 하나 빠졌다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 곧 예수님의 죽음이였듯이
그것이 인자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복종이였듯이
그 죽음 곧 심판 속에서의 살을 입히시는 마른뼈를 하나님의 군대 곧 오늘 본문으로 치면 교회로 만드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늘 수시로 불 속을 통과하는 종말의 단체 다운 집단성 곧 한 몸 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생각을 해 보세요 교회가 다 각각 자라난 환경도 다르고
직업도 지금 사는 동네도 다른 다들 뿔뿔히 흩어져 있다가
헤쳐모여 하듯이 일괄적으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단작으로 모이는 것 보면 그것 만으로도 감사한 교회가 과연 있을까요?
돈내라 왜 적냐 사람을 끌아모으자 등등
그거 이제는 다 헛짓으로 드러나서 다 포기한 상태입니다
어제 뉴스에 독인의 그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담은 교회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라고
유지하기 힘들다 라고
세상이 배부른데 누가 뭐가 아쉬워서 교회 다닙니까
배부른 교회는 심심하면 파당짓기라는 얼라 짓 누가 누가 잘하나 크나 라는 정치싸움판 밖에 안되니
불속에 집어 넣어버리시는 겁니다
또 포로잡혀가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아서 그렇다 라고 비웃고
예루살렘 성전 불타서 말이죠
그러나 남겨진 거주민 예루살렘은 지금 포로 잡혀간 자 욕할 입장이 못됩니다
남겨진 그 약속의 땅이 척박한 땅이 되어서 활과 화살이 없이는 살수 없는
심심하면 주인 없는 땅이 되었으니 산적과 도적떼들 이방의 침략 깡패들 늘 수시로 덤벼드는데
차라리 포로 잡혀 갈걸 이라고 후회하면서
자기 눈에 대들보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를 지적하다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인데 우짜노가 된 겁니다
성령의 일은 늘 우리는 머리에 숯불 얻은 것처럼
부끄 부끄 부끄럽게 하신다 말이죠
7에 70번의 용서와
일만 달란트 16만년 동안 쉬지도 않고 벌어야 할 그 죄값을 대신 치르신
모욕적인 구원
곧 수치를 당치 않도록 사망권세 속에서의 구원이니까 말이죠
그카이 실로암 망대 무너져 깔려 죽은 18명 보고 하나님께 저주 받아서 그렇다 라고 할 입장이 못 되는 겁니다
(눅 13:4, 개역)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 13:5, 개역)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자 이렇게 우리는 매일 매일 불이 난 입장이다는 겁니다
불시 검문 있겠습니다 라고 음주측정 하듯이
불시 점검으로 인해 후후 부세요처럼 불질러 보는 겁니다
어 여전히 타지 않고 잘 있군요 통과
어 당신은 불 붙여버리니까 타 버리네요 범칙금 이런 식으로
회개는 회개의 달인 바리새인처럼 심심하면 옷 찢는게 아니라
옷 가만히 놔 두고 마음을 찢는
불시검문을 성령이 벌리신다는 겁니다
불 속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 빼내니 다 사라지고 있다
당신은 헛짓 오예물 불순물 배설물 짖만 했군요
오 당신은 정금 같이 나왔군요 라고 주님이 늘 수시로 체크 해 주시는 겁니다
바울은 주사 심는 자 간호사 이고
아볼로는 소독제로 딱아 주는 간호사 이고
정작 병 고치는 자는 예수님 죄사하는 자는 주님
곧 자라고 성잔케 하신다 말이죠
아니 간호사는 그냥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의사 처방에 맞지 않는 주사약을
간호사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간호사들끼리 파당을 지으면서 왕따나
따돌림 군기잡기 등등이 벌어지면
참 잘 돌아가겠다 말이죠
마침 간호사 집단 내부의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 문화를 ‘태움’이라고 부는데
그 태움의 뜻이 영혼까지 탈탈탈 다 태우는 바닥까지 태운다 라고
우와 여자들끼리의 싸움이 이건 뭐 조폭들 저리가라 이더라 말이죠
오늘 본문의 성령이 바로 그 불이다는 겁니다
은사는 불입니다 지금 당장 태워도 할 없는데
봐주고 봐주고 봐줘서 여호와의 불이 가시떨기 나무를 안태운 겁니다
그게 상 이다 라고 했지요 상장 곧 긍휼입니다
지난 앞 구절도 그렇지만
분명 상을 일한 댓가로써의 보상의 단어로 썻지만
보세요
불시 검문도 그냥 점검이 아니?? 불을 통과시에만 상을 준다고 하니
이것은 인간이 생각한 상이 아니올시다입니다
불에 안 타는 것 있으면 나오보라 말이죠
그러면 이것은 하나 마나한 소리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심는 것 물 주는 것 아무것도 아니다 일반이다 라고 하는 것은
불을 못 통과 하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성령 자체가 상이고
은사 자체가 상이고
불 자채가 상으로써
하나님의 일로써
상이 우리를 질질 끌고서 불 속에 심심하면 집어넣는 겁니다
일한 댓가의 상이 아니라
일도 우리가 한 겁니까 주님이 다 해놓고서 말이죠
그 주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우리를 죄인 만들기 하시는
찢으시기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하면
불에 태우시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에스겔서 37장 부분이
바짣 마른 뼈 만들기와 그 뼈들의 무덤 골짜기 만들기입니다
로마서요? 지금 로마서 12장을 하고 있는 중인데
고린도전서 3장과 겹쳐졌을 정도로 내용이 똑같아 헷갈릴 정도이다 말이죠
한 몸 (롬 12; 3- 5)
이 보세요 다음에 할 내용인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고전 3:16, 개역)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7, 개역)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소름이 돋고 닭살이 돋을 정도로 맞물려서 가는데
꼭 웃사 사건이나 아니리아 삽비라 부부가 생각날 정도로
항상 대조를 이루는 두 언약의 한 세트로 구성이 되고 있습니다
은사
은혜대로 받은 은사 (일한 대로 받는 상) (롬 12; 6-13)
은사는 일한대로 보상이 아니라 은혜를 말하고자 함이니
반드시 사망의 왕 노릇을 거쳐서 그러니 마른 뼈를 거쳐서 말이죠
은혜대로 주는 상이요 은사이다 곧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이고 머리 되신 예수님이 시키신 일에 따른 상이니 이것은 존재 보다 당위 곧 기능이 먼저 있었다 라는 겁니다
2026.04.23 너희 몸을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거룩한 산 제사로 영적예배를 드려라 (롬 12; 1- 2)
2026.06.04 한 몸이 된 지체들 (롬 12; 3- 5)
2026.06.04 은혜대로 받은 은사 (일한 대로 받는 상) (롬 12; 6-13)
결국은 은사 라는 상은
로마서에서는 상대적인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주신 몸에 맞는 각 지쳬들의 기능에 따른 은사요 상이고
고전 3장에서는 파당 짖는 내부갈등 즉 발람의 꾀가 생각나지요
그런 얼라짓들 자라지 않는 죽은 짓들을
어딜 감히 생명의 새 판에 다시 끌어오는
이전 것은 지나갔는데 보라 새것이 되었는데
옛것인 지나간 것을 새술 새부대에 넣거나 새마음을 거부하고자
더러운 손으로 만지듯 더러운 것을 용광로 심판의 불 속에
종말 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어 보자 그대로 있으면 상 맞고
아니면 오예물 불순물을 섞은 것이니 다 타버려서 부끄 부끄가 된다 라는 겁니다
너만 건짐 받는 구원 그 구원이 아닌 불 속에 살아남았다 쳐도
소용이 없다 라는 겁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마침 에스겔 서에서 배웠다 말이죠
그래 그래 니 자식을 위한다고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의 선생님 멘토로 구원 받게 할려고
새 명의 선생을 두었다 치자
그러나 나는 반드시 니 자식을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나 여호와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라고 선언 하는 장면이 이 구절을 보고 떠올랐다 말이죠
바로 이런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게 하신다 라고
그래서 마른 뼈 골짜기로 에스겔을 이끌고 가듯이
에스겔서 초반에 나오죠 이스라엘 멸망 전 6년 전이였던가
예루살렘 북동쪽 숨겨진 방에 구멍을 내어서 보게 되니
성전 안에서 굿판을 벌인 것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바짝 마른 뺘들의 골짜기로 델꼬 가서 이 뺘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요나가 생각 나죠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요나에게
주님 곧 인자가 뛰어드신 사건 말이죠
바로 이런 사건들이 신약인 고린도전서 3장에서도
불 속에서 나오는 교회로써
지금 시시하기 짝이 없고 얼라 같은 짓처럼 정치적인 파당이나 짓는 죽은 자들 모습 속에서
그런 초등학문같은 배불러 터진 세상의 지혜 세상 사람들이 심각하게 여기는
무엇을 먹고자 마시고자 입을 것에 대한 심각성이 전부인 그런 이 세대에
본받지 말라고
그런 죽음 같지도 않는 죽은 악한 세대에
진짜 제대로 된 죽음
진짜 제대로 된 심판
진짜 제대로 소멸케 불 태우는 모조리 다 태우는
그 성령의 불 속에서 나오는 교회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성령의 전을
불 되신 성령이 수시로 안전점검 차
수시로 불을 지르시는 이 섬김이 아니면
우리는 온 몸에 똥 오줌 오예물 배설물
보세요 자기들 마실 물 조차도 다 오염시켜 기후 위기와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 땜에 멸종 되니
당연히 인간 차례가 되는 것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 다음 니 자례이다 라고
그 동안 편하게 누렸던 것들이 다 저주로 덮쳐 온다 말이죠
그 심판의 불 속에서 타지않고 나올자 누굽니까
7에 70번 용서받는 모욕적인 긍휼을 얻는 자 만이 불 속에서 나오는
원인 없는 결과의 상을 받는 자입니다
즉 이미 창세전에 죄 사함 받기로 작정된 자 말입니다
말도 안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말 도 안된다 라고 반드시 거부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데
에라이 그러면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이 선해 지겠는데
막상 이미 창세전애 마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를 보여주니
다들 할 말이 없도록 입이 쑥 들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 할 지어다
그 성전에서 벌어지는 그 처참한 어린양의 갈기 갈기 찢겨지는
이 중심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아 였다는 겁니다
바로 이 거룩
이 불
이 하나님의 의인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주심 앞에서
불도져로 밀려 버림 당해 니 잘났니 내 못났니 라는
울퉁불퉁 첩경을 산을 깍아 1층으로 평평하게 깍아벌리고 높은자 낮추시고
움푹파인 지하 땅꺼짐 현상 싱크홀 바닥 없는 지옥생활과 같은 낮은 자는 높이시는
이 종말의 불이 떨어지는 새질서의 새세계의 불도져 다리미질 현상이
내부 분열이 뭡니까 더 심한 몽둥이가 아니면
뽈록 뽈록 올라오는 종기 같은 교만한 산을 깍어버리는
교회가 먼저 심판의 불을 받음으로써
세상의 심판을 정당화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뭐 안티들이 구약의 하나님은 동네 깡패 악한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박애주의의 끝판왕 선한 하나니 이다
그래서 두 하나님이 있다 라고 성경 너무 열심히 읽으면 두 하나님이 보여서
이단사상을 주장하는 이단이 된다 라고 하는데
너무 너무 실망입니다 안철수 ㅋㅋㅋ 누굽니꽈 ~~~~~~~
뭐가 실망인고 하니 구약의 하나님 보다 신약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더 무서워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팔복은 율법 강화입니다
즉 모든 사람을 순종치 못함에 가두심인데
누가 박애주의 라고 사기를 치냐 말이죠
화평 박애사상을 주러 온 줄 아느냐
검을 주러 왔다
칼입니다 불 지르러 왔다 라는 겁니다
대충 대충 띄엄 띄엄 봐서 그런 겁니다
열심히 봐서 그래요
하나님께 대한 열심인 자기 의를 염두하시지 마시고
오늘 나오는 불 태우시는 성령으로 봐야 불 지르러 오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 놈도 삯꾼 목사들과 다를바 없더라 말이죠
뭐 자기가 맡은 바 일이니
가룟유다야 어서 니가 맡은 일 나 예수를 파는 일 어서 해야지
이런 부정적인 도구인 보충물이 없으면
마귀가 없으면 하나님의 일이 안 돌아가는 겁니다
상대적인 이 세대를 왜 본받지 말고
왜 세상의 관원들의 지혜를 왜 쫒지 말라고 하시는지
그 반대의 지혜응 받도록 부어 주시니까 비로소 아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의 상은 누가 크냐 이고
주님이 주시는 상은 불입니다
안 그러면 저들 세상을 따라 갈테니 말이죠
유대인들은 이 상을 받고파 율법의 행함을 쫓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이 상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을 사람의 손으로 이룰려고 하다 보니
그 사람들과의 알게 모르게 경쟁을 하는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되는
껍데기에 집착하게 되었지 알맹이 사랑은 다 버려버렸다 말이죠
그 사랑을 도리어 유대인들이 더럽다고 거룩치 않다고 정죄하던 이방인이
이 하나님의 의 거룩에 이르게 됩니다
의 거룩 조차도 사적인 개인 거룩으로 해석했던 겁니다 유대인 전체 사회가 말이지요
도리어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하는 의의 군대가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기능을 하게 되었으니
타락한 천사인 마귀가 신부의 자리를 빼앗긴 것처럼
유대인들은 그 하나님의 거룩에 순종치 아니하고
이방인처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거룩에 이르지 못했다
즉 더럽다 라는 겁니다 더러운 이방인 욕하다가 더러운 자신들의 마음
겉으로는 아무리 깨끗하게 율법을 지켜도 율법 말씀을 지키면 지킬수록
마음 자체가 이미 더러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이상 더럽게 된
그저 자기 의로움만 쌓는 이바인처럼 중언부언 하는 식입니다 땜빵하는 외식인거죠(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5:19, 개역)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11:30, 개역)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딤전 1:13, 개역)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4, 개역)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5, 개역)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6, 개역)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벧전 2:7, 개역)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요일 5:10, 개역)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자 이렇게 이 두 소욕에 우리는 지옥이 땡기는 자와
천국이 땡기는 자 이 두 쪽의 세계를 다 보여주심을 겪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지옥이 땡기는 자 파당 짖고 이 세대를 본 받고
이미 지나단 옛언약을 쫓으면 되겠니?
새언약을 쫓도록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나열하십니다
이것이 불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이요
탈출 곧 구출의 방식입니다
계시록에 부자에게 불에 타지 않는 옷을 값없이 돈 주고 사라 라고 합니다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 55:1, 개역)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2, 개역)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3, 개역)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사 55:4, 개역)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사 55:5, 개역)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사 55:6, 개역)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7, 개역)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8, 개역)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 55:9, 개역)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계 3:13, 개역)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14, 개역)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 3:15, 개역)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개역)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7, 개역)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개역)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20, 개역)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1, 개역)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2, 개역)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4, 개역)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 3:10, 개역)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3:11, 개역)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2, 개역)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사야 55장의 초반 구절을 올렸는데
마치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는 말씀과 똑같습니다
아니 누가 자식이 부모에게 뱀달라 독달라 전갈을 달라 라고 해서 뱀 독 전갈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반드시 성령을 주시겠다 곧 불을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불을 거쳐서 나온 상이 바로
(계 3:12, 개역)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한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아니 부자의 사고방식에 상을 하나님 성전 기둥 되는 것으로 여길까요?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요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우기는 유대인 곧 사단의 회 조차도
우상숭배자들인 이방인을 따라 돈 재물을 복으로 거룩으로 여기지
누가 하나님의 성전 되는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을 의로움 거룩으로 여기겠습니까
그카이 기적을 바라는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 즉 반대현상이요
뜨인돌처럼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되는 겁니다
헬라인 곧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인 거죠
바로 고린도전서 3장의 상 주심의 상은
바로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상
즉 고전 2장 끝처럼
측량 가능하고 대충 대충 깊지도 않고 얕은
너무 부자가 되어서 교만은 피하고
너무 가난해서 도둑질은 안하는 중간치
덥지도 차지도 않은 부담 덜가는 것만 찾는데 있어서
주님은 불로 태워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으로 상을 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주님이 주신 상이라면 타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불 붙였는데 심판의 날에 다 타버리면
그게 무슨 출애굽사건인 구원사건 탈출사건인 거룩이요 의로움이겠습니까
천사들이 불 칼을 들고 장자들을 다 죽일려고 할 때
왜 장자냐 더러운지 거룩한지 그 맏물을 함량 무게를 재겠다는 겁니다
십입조도 그런 거룩측량입니다
계시록에서는 거룩측량을 성전측량 곧 성전에서 제일 끝에서 하잖아요
제일 가차이 가깝게 있던 대제사장이 제일 더러웠고
성전 마당 바깥 뜰의 여자들 보다 더더더더 더러운 문둥병자
세리 강도 창녀 이들이 제일 거룩하게 입힘 당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이라는 어린양의 피로 인해
의에 이르렀다 라는 겁니다
대제사장은 제일 가깝게 있어도 행함을 의지 했지
믿음을 어린양의 피의 긍휼을 바라지 않았고
제사와 번제를 바랬기에
천사들이 든 불 칼에 장자가 죽임을 당했듯이 불에서 나오지 못했고
문설주에 피 발라버린 장자가 있는 곳은 패쓰오브데이 넘어가 버렸다 말이죠
3대절기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이것 자체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순서 아닙니까?
초막절은 그 불타는 세상을 심판의 나에서 보면서
이 남겨둔 한 씨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라고 감사하듯이 말이죠
유월절 패쓰 오브 데이 첫 절기부터 전쟁이요 애굽심판 세상 심판 날입니다 노아의 때처럼
심판 날에서 불 속에서 나오다 불 속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어린양의 피 흘리심으로 대신 죽음이지
죽음이 없었다면 피를 안 흘렸다며는
천사들의 불 칼에 죽는 거죠 뭐
이게 간밤에 하나님의 얼굴 곧 불을 보고도 안 타죽었니 라는 인사말 샬롬이다 말이죠
이슬람권의 샬롬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도
이런 십자가의 죽음 사건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그저 개인평안 개인 구원 개인 거룩만 따지는 부자의 사고방식
부자의 상장 의식 곧 우상숭배자 자기를 위한 상을 바라는 사고방식이다 말이죠
그래서 불에 넣어보자
그래 그래 니 자식의 구원을 위해
신앙멘토로 노아 다니엘 욥을 선생으로 완벽한 3박자 구원을 추구했다 치자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니 자식 지옥에 보내고야 말겠다 라고
이게 거룩 개념인데
사적인 거룩이 되어버리니
더더욱 자기자식을 위해
신앙선생 저런 노아와 같은 자
다니엘 같은 자
욥 같은 자를 신앙 선생으로 멘토 개인교습을 하고자
바울파
베드로 게바파
아볼로 파 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말이죠
그들은 십자가를 진적도 없는
불을 거룩을 낼수 없는 자입니다
불 속에서 나오도록 상 주는 자
자라게 하는 자가 될 수 없어요
불 속에서 나온 새 영 새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이 바로
성령입니다 정직한 영입니다
이 성령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지 아니하면
지옥이 떙기는 더럽고 더러운 자 일 뿐이다
불에 타는 부자일 뿐이다 함량 미달인 짐승의 수를 받은 자 이다
총명한 자는 성령을 받은 자는 이 짐승의 수를 세는 자 이다는 겁니다
누가 더럽고 누가 거룩한 자 인지를 말이죠
주님의 마당을 밟고자 온 몸에 똥칠을 하고서
귀고리 코고리 그거 다 고리대업으로 말이죠
그러니 부자가 가난한 자의 형편을 모른다 라는 자체가
사회적 구조가 그렇게 형성된 악마의 세계에서
부자가 되었다? 그러면 가난한 자를 위하여 피 흘리심을 모르기에
절대로 불에 타지 않는 흰옷 거룩한 옥을 살 줄도 모르고
똥 묻은 옷으로 나 부자다 라는 누가 크냐 라는 것만 자랑할 것이다 말이죠
바울이 그 짓 했다 라고
가말리엘 문하로써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써
그것들을 다 똥 덩 어 리로 보는 겁니다
아니 남들은 그거 자랑 못해서 안 달이고
그런 상 , 그런 왕의 DNA 못 가져서 안 달인데
그것을 똥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진짜 절대 죽음을 거쳐서 나온 절대용서인 거룩을 보니
그 십자가의 지혜라는 하나님의 의를 만나게 되니
그것들은 시시하고 하찮은 것 밖에 안됨을 비로소 알고
아이고 아이고 이 똥떵어리 냄새 벗겨달라고 우는 겁니다
바울의 영광은 도리어 매 맞고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주님의 고난에 참여된 것들을 거룩으로 의로움으로 알고
상장을 받으라 라고 반대로 고난을 받으라 라고 외치는 겁니다
매 맞고 죽을 뻔 하고 죽이시기로 작정된 것을
주님의 의 입은 것이라고 자랑하더라 말이죠
아니 감옥소에 갇힌게 무슨 자랑이냐 말이죠
이런 사고방식으로써 불을 지르면서
그 불 타는 그 속에서 나오는 것
오예물은 안나오겠지요
주님이 입히신 의
곧 거룩은 나오겠지요
그 거룩을 상 주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불이 아니면 우리는 상을 바라지도 못하는 희망 없는 자 이였을 겁니다
불 덕분에 우리는 상을 바라게 되는 겁니다
부지런히 우리 옆에서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기도하심으로써
우리 엉터리 기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옆에서 성령의 불로 태우지 않으면
우리는 상을 바라는 자가 아니라
똥을 바르고 하나님의 성전 기둥 되는 상이 아닌
주님의 마당을 더럽히고자 똥묻은 발로 마당을 짖밟고 냄새를 풍기는
육의 자랑 곧 우상을 세울 겁니다 자기 개인 구원을 세울려고 할 겁니다
고맙게도 불로써 다 태우시는 성령 덕분에
은혜 덕분에
은사 덕분에
진짜 상 덕분에
가짜 상인 똥덩어리를 온 몸에 묻혀서
또 예수님이라는 참성전을 죽이는 두 번 죽이는 짖을 멈추게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러니 고린도전서의 상황이 과거 2000년 전의 상황이 아니라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구출 작전이요 구원사건입니다
그 속에서 빼내시고자 지금 현재도 거짓목자 삯꾼목자로부터 탈출케 하시는
전리품 만드시기 작전입니다
4000년 전의 출애굽 사건이 그때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지금도 벌어지는 구원 사건입니다
이 구원 사건이 바로 창조 사건
곧 창조주가 누군지 아니?
그 구원 사건을 벌리시는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는 자는
과거 6천년 그 한참 이전의 창조주를 믿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 정작 단 한번도 창조주를 믿음 적도 없고
여호와가 누군지 안 적도 없는
하나님을 아는 자식이 엇어서 망하는 자들처럼
우리도 그러할 겁니다
로마서 10장의 초반구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자가 누구인지를 믿는 자입니다
곧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의에 곧 거룩에 복종 하신 자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은
찢으셨다가 다시 도로 낫게 하시는 이 간극을 더더더 벌리시는 그 공백
구원의 뿔이 빵구멍 뻥 뚫어서
여호와의 불이
여호와의 구원의 뿔이
빵구멍 뻥 냄을 당한
도장
인
이마에 불 도장 받은 자
곧 상 받은 자입니다
심판 날에도 불 타지 않고 불칼 속에서 패쓰 넘어간 통과
죄수복을 입고서 즉 찢으셨으나
특별사면이라는 도장 꽝꽝쾅 찍힘 받은
상 받은 자입니다
이것을 이 세대 즉 불을 통과치 못하느 자들과 대조를 해서 말씀 하시는 우리를 섬기시는 모습을 증거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1]
- 돈 없이 값없이 사라: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는 인간의 물질이나 노력의 대가로 살 수 없는 '원인 없는 은혜'임을 뜻합니다.
- 불로 연단한 금: 세상의 가짜 부유함이 아닌, 시련을 통과하여 정결해진 '순수한 믿음'을 상징합니다.
- 흰 옷: 불에 타 없어질 세상의 옷이 아닌, 수치를 가려주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그리스도의 의(행실)'를 뜻합니다. [1, 2, 3, 4]
바늘의 오역을 바로 잡으면?
- 그리스어(헬라어) 혼동: 낙타를 뜻하는 '카멜로스(Kamelos)'와 배에서 쓰는 굵은 밧줄을 뜻하는 '카밀로스(Kamilos)'의 철자가 한 글자 차이라 번역가가 헷갈렸다는 설입니다. [1]
- 아람어 혼동: 아람어로 낙타인 '가믈라(Gamla)'와 밧줄인 '감타(Gamta)'를 혼동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1]
- 주장의 논리: 바늘귀에 실을 꿰는 일상의 모습에서 '실' 대신 '가장 굵은 실'인 밧줄을 대조하는 것이 문맥상 훨씬 자연스럽고 직관적이라는 해석입니다. [1, 2]
- 사본의 신뢰성: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성경 사본들(시나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은 모두 예외 없이 밧줄이 아닌 '낙타(Kamelos)'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밧줄(Kamilos)로 적힌 사본은 5세기 이후 일부 소수 사본에만 등장합니다. [1]
- 유대인들의 문학적 과장법: 당시 중동 지역(유대 문화권)에서는 '가장 큰 동물'과 '가장 작은 구멍'을 대비시켜 '절대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격언이나 과장 수사법이 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예: 유대교 경전인 탈무드에는 코끼리가 바늘귀를 통과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1]
- 예수님의 의도: 밧줄로 바꾸면 '매우 어렵지만 어떻게든 구멍을 가늘게 쪼개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뒤이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태복음 19:2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선언하기 위해 가장 큰 동물인 낙타를 일부러 사용하신 것입니다. [1, 2, 3, 4]
-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쪽: 원래 예수가 한 말은 [ 밧줄 ]을 바늘귀에 꿰는 것이다. (낙타는 번역 오류다!)
- 오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 원래 예수의 사본에 적힌 말은 [ 낙타 ]가 맞다. (당시 유대인들의 과장된 유머 표현이다!)
- 밧줄이라면: 아무리 굵어도 올을 한 가닥씩 풀거나 잘게 쪼개면 바늘귀에 어떻게든 통과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습니다. 즉,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성을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
- 낙타라면: 생물이기 때문에 쪼개거나 변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100% 절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뒤에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셨으므로, 인간의 노력이 개입할 틈이 없는 '낙타'가 문맥상 더 정확합니다.
- 예수님의 다른 비유 중 "눈 속의 들보(지붕 받침 기둥)를 보라"거나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 닻줄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낙타가 조그만 바늘귀 앞에 낑낑대며 서 있는 모습이, 당시 청중들에게 훨씬 더 강렬하고 잊혀지지 않는 시각적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혹 이런 해석 충돌이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교파 싸움이나 정통이냐 이단이냐 싸움 등등 단어 곧 언어는 사회적인 상황을 담고 있으니 말이지??
- 지배층의 딜레마: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자신들은 무조건 지옥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1]
- 대안 해석의 필요성: 이때부터 "낙타가 아니라 사실은 밧줄이다", "예루살렘에 밤늦게 들어가는 작은 문(바늘귀 문)이 있는데, 낙타가 짐을 다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면 통과할 수 있었다" 같은 '순화된 해석'들이 교계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1, 2]
- 즉, 부자라도 "마음을 비우고(짐을 내리고) 겸손하게 교회에 헌금하면(무릎을 꿇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 타협할 수 있는 퇴로를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1, 2]
- 이 시기 부유한 기독교인들에게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구절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었습니다.
- 따라서 이 구절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학술적인 척을 하며 "그리스어 철자 하나가 틀려서 낙타가 된 것뿐이고 원래는 밧줄이다"라는 설을 대중적으로 더 확산시켰습니다. 밧줄이라면 "풀어서 가늘게 만들면 통과할 수도 있다"는 인간적인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1, 2, 3, 4, 5]
이런 악한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하심이요 거기서 구출하는 전리품 만드심인데
자기 의를 쌓고자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모습이다 보니
부자가 지옥 피하는 방법 찾고
가난한 자는 늘 부자 되는 꿈을 꾸니까 더 가난한 자의 것을 약탈하고
이도 저도 않겠다 라고 조건 갖추겠다 라고 나오니
그것에 속아 넘어가줄 성경이 아닌데 그 방법을 성경 속에서 찾을려고 하니
해석할 권한 자체가 없는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지옥의 몸이구나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불로 다 태우는 성령을 구하지 않아서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정직한 영을 구하지 않고서 뱀 달라 독 달라 전갈 달라고 하는 기도의 달인 유대교 사단의 회를 따르는 모습이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사야 6: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24)
- 부자, 가난한 자, 중산층이라는 사회적 외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나는 중간쯤은 하니까 안전하겠지"라는 중용의 발상 자체가 실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보려는 가장 계산적이고 악한 기만입니다. 성경은 결코 그 인간적인 조건에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면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전 3;18-20) (3) | 2026.06.28 |
|---|---|
| 성전이 거룩하니 한 몸 된 너희도 거룩하다 (고전 3;16-17) (1) | 2026.06.18 |
| 상을 받도록, 상 주시는 분 (고전 3; 8-11) (1) | 2026.06.04 |
| 아무것도 아닌 바울과 아볼로,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고전 3; 6- 9) (3) | 2026.05.07 |
| 아직도 육에 속한 어린아이 같은 정치꾼 (고전 3; 1- 5) (0) | 2026.04.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