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하여 버리시나이까? (십자가 속의 십자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죠? 케보이!!
십자가의 저주 속으로 들어온나 라는 아버지의 뜻
(십자가 속의 십자가)
잃어버림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잃어버릴께 없다.
아버지의 저주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저주가 없듯이 말이다.
회개(자기포기) 자체를 포기하면 더 이상 회개할 자아가 없다.
신앙 자체를 포기하면 더 이상 내가 사랑해야할 대상물이 없다.
도리어 십자가의 용서와 십자가의 심판의 대상물이 된다.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 받는 보혜사의 대상물이 된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화목제물 독생자를 내어주었듯이)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 16:7, 개역)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개역)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개역)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개역)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개역)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주님의 회개가 넘어오게 되는 그 행위를 목격케 된다.
물론 육의 소욕을(포기 자체를 포기 못하는) 거스리면서 다가오시는 성령의 소욕에 찜 당한자에게만 해당 될 뿐이다.
제사 속의 제사가 바로 더 나은 제사이다.
회개 속의 회개가 바로 더 나은 회개인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 라는 잃어버림 속에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해달라고 하신다.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옳겨달라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이 더 크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마 26:39, 개역)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7:46, 개역)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우리는 단 한 번도 버림 받은 자들이 아니다.
버림 받을 자격 조차도 없다.
이 버림이라는 십자가의 저주 속에서
비로소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의 버림받음을 목격할 뿐이다.
아뿔사 나는 무조건 틀렸고, 예수님이 옳았군요
너희가 죽인 예수
너희가 저줄한 예수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나를 용서하시러 다시 살아나다니?
이 저주의 십자가가 비로소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 한다.
그렇게 세 번 씩이나 모른다고 끝까지 빡빡 우겼거늘
참으로 뻔뻔스럽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내가 맺은 관계가 아닌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쳐들어온 사귐의 저주 속에서
시건방지게 외친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몰랐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잖습니까? 잘 아시면서 ^^
내 믿음이 아닌 주님의 믿음에 의해
교회로부터 쫏겨날, 죽을 각오를 하고 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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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저주 받으세요
2013-01-07 16:56:25 이름 : 이근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담.
“나는 당신은 적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하면서 내뱉는 말.
이로서 조성되는 것은 친화력 있는 연대감
마음만 보태면 없던 희망도 생긴다는 상황도 기대해보게 된다.
그런데
“새해 저주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을 건네면 어떻게 될까?
악담 취급.
연이어 번지는 싸늘한 분위기.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새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옥에서 달력 장사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또 없을 것이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하셨다. (요 3:19) 즉 태양이 동해바다에서 붉게 되풀이하며 떠도 결코 이 세상은 ‘빛의 세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새해’에 의미를 갖고 싶거든 차라리 되풀이 되는 모든 ‘새해’가 되풀이해서 저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차라리 이렇게 덕담해야 한다.
“올 새해에도 저주 많이 받으세요”
세상에서 저주받는 것이 구원받는 장소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살고 있는 자에게 있어 ‘저주받은 지옥’으로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 반갑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 있기에 더 이상 저주나 정죄함이 없기 때문이다.
“새해 저주 많이 받으세요”
임청일 13-01-08 06:17
감사합니다 목사님도 새해 저주 많이 받으세요
죽을것(생명에게 삼킨바 되었다고 좋아하는)이 드리는 덕담이 효과 있을까 의심스럽긴 하지만요...
김대형 13-01-08 18:00
저주 아이좋아 웁스 울랄라
이근호 13-01-08 21:24
저주를 미리 듬뿍 받으면 더이상 공포속에서 점치는 심정으로 교회 안 다녀도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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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기 12-11-29 15:49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오심이 회개인데, 그 회개를 우리가 하면, 예수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우리 죄인의 회개가 들어있는 것이지, 죄인이 회개한다고 그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해야 천국간다 하니까 회개해야 하지 않느냐고 나서는 것 자체가 우리의 죄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이 죄인을 찾아오실 때 우리 삶을 부정하는 하나님의 나라로써 임하는 것이지, 인간이 회개라는 열쇠를 마련해야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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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주 12-11-30 12:20
저같은 놈은 "회개"보다도 주님의 "공로"가 크시다는게 믿어지는게
기적입니다. 할 말 없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네요....
김대식 12-11-30 13:34
주님의 회개가 넘어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가까웠느니라
(마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밑의 글의 댓글에서 정춘기 성도님이 명료하게 복음을 증거하셨네요
주님의 회개가 죄인에게 넘어오심이 회개인데
인간의 회개가 회개가 되면 그것보다 더 모호하고 흐릿하고 의문스러운 회개가 어디 있겠습니까?
죄없는 옷 좀 그만 찢자고요, 도리어 옷이 우리를 찢도록 내어줍시다.
왜 이 불가능한 회개가 가능한 종교행위로 변해버린 것일까요?
(욜 2:13, 개역)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인간의 회개는 인간에게로 귀결되겠지만
예수님의 회개는 예수님에게만 귀결 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회개하는 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정직한 영을 달라고 합니다.
더 이상 자기자신에게 귀결 되지 않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죄인에게 넘어오는 회개를 받고
더 이상 회개 금식 기도가 이 꺽으시고자할 뼈를 막을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막 먹고 막 마시고 막 춤을 춰버립니다. 막 살게 된 겁니다.믿음으로 믿음에 이르지, 행함으로 귀결 되지 않습니다.
행함으로 도착해 버리면 원한과 죄책감에서 헤어나올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게 됩니다.
이미 여디디야를 선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회개가 넘어온 겁니다.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마 5: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리새인의 회개 보다 더 나은 회개를 할 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리새인을 바리케이트를 쳐서 넘어설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가 회개를 실천해야할 대상으로 삼는게 아니라
회개가 나를 대상물로 삼고자
주님께서 감사하게도 마귀를 바리케이트를 쳐서 예수님께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이래도 말고 저래도 말고?
감사하게도 그 불가능한 회개를
주님께서 바리케이트를 넘어서 우리에게로 넘어오신다는 겁니다.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임이 바로 정춘기 성도님이 말한
죄인에게로 찾아오심입니다.
주님께서 넘어오심입니다. 주님의 회개, 주님의 천국이 넘어오는 겁니다.우리가 하는 회개, 우리가 대상물로 삼은 천국 따위는 없습니다.
인간의 대상물이 된 회개 천국 십일조 예수 모조리 마귀장난입니다.
주님의 대상물이 된 죄인
의인을 부르러 온게 아니라 죄인을 찾으러 오신 예수님
말씀 스스로가 그 예수님만 높이는 것이 성경말씀이지(운동력)
우리 보고 회개하라 라는 성경말씀은 없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사기칠 뿐입니다.
(시 121:1, 개역)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 121:2, 개역)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3, 개역)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 개역)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5, 개역)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시 121:6, 개역)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시 121:7, 개역)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8, 개역)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근호 12-11-30 14:06
가인이 하나님께서 제사받아라고 제사했는데 하나님이 안 받아주시면?
예수님 십자가 믿고 회개하면서까지 용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예수님이 용서 안해주면? 그 때는 어떻게 나올건데요?
김풍호 12-11-30 15:11
"나"를 더욱 더 "나" 되게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예수,믿음, 행함,십자가,회개,거듭남 등을 언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해하기 힘드실 테지만...
파란배경 12-12-04 00:41
자기가 회개해야 회개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네요...
저도 제가 회개한것이 효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신을 돌아보면요. 회개의 기회조차 제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모릅니다.
내겐 그어떤 소망도 없는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둥바둥 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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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제사 바친적 없습니다. 인간은 단 한번도 제사 드린적 없습니다.
도리어 주님께서 아벨을 제물로 바친 것을 목격해야할 판국이였습니다.
자기 제사가 있기에 주님의 제사를 볼 리가 없는 거죠.
인간은 처음부터 제사를 드린적도 없고 앞으로도 드릴 마음이 추호도 없는 자입니다.
처음부터 주님의 제사만 있을 뿐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게 아니라
주께서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 드린 겁니다.
사랑은 바로 이 십자가(저주)에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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