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보배 지혜 : 버린돌과 머릿돌(싫어버린 자와 기뻐 사랑하는 자) (시편 81)

 

제발 예수님을 세 번 부인, 배신하자

 

동일인물 : 내가 싫어했던 자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자였던 동일한 인물

나와 차이나는 동일한 인물 : 난 틀렸고 그는 옳았다.

 

 

(118:16, 개역)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18:17, 개역)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118:18, 개역)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118:19, 개역)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118:20, 개역)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118:21, 개역)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118:22, 개역)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8:23, 개역)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118:24, 개역)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118:25, 개역)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118:26, 개역)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118:27, 개역)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118:28, 개역)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118:29, 개역)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4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12:10, 개역)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0:17, 개역)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4:11, 개역)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벧전 2:7, 개역)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1:38, 개역)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21:39, 개역)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21:40, 개역)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21:41, 개역)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21:4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21:43,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21:44, 개역)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21:45, 개역)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21:46, 개역)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12:9, 개역)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2:10, 개역)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2:11, 개역)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더라

(12:12, 개역) 저희가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버려두고 가니라

(12:13, 개역)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2:14, 개역)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12:15, 개역)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20:12, 개역) 다시 세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20:13, 개역)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20:14, 개역)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20:15, 개역)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20:16, 개역)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20:17, 개역)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20:18, 개역)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20:19, 개역)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20, 개역)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0:21, 개역) 그들이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20:22, 개역)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20:23, 개역)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20:24, 개역)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20:25, 개역)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0:26, 개역) 저희가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기이히 여겨 잠잠하니라

(20:27, 개역) 부활이 없다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4:7, 개역)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4:8, 개역)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4:9, 개역)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4:10, 개역)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4:11, 개역)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4:12, 개역)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4:13, 개역)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4:14, 개역)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4:15, 개역)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4:16, 개역)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4:17, 개역)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4:18, 개역)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4:19, 개역)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4:20, 개역)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4:21, 개역)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4:22, 개역)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2:20, 개역)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21, 개역)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개역)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벧전 2:1, 개역)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 2:2, 개역)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3, 개역)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 2:4, 개역)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 2:5, 개역)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6, 개역)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벧전 2:7, 개역)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8, 개역)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9, 개역)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개역)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81:1, 개역) [아삽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

(81:2, 개역)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81:3, 개역) 월삭과 월망과 우리의 절일에 나팔을 불지어다

(81:4, 개역)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81:5, 개역)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81:6, 개역)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81:7, 개역)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

(81:8, 개역)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81:9, 개역)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81:10,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81:11, 개역)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81:12,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하였도다

(81:13, 개역)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81:14, 개역)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81:15, 개역)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81:16, 개역)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성경구절만 올렸는데 4페이지를 넘겼네요

어떤이는 성경구절 올린다고 난리를 치던데

아마 꼬투리를 잡을려고 악령이 씌여서 그런 것 같더라구요

어떤 때는 성경구절을 올리지 않으니까 또 그 사람이 성경구절 안 올린다고 난리치더라구요.

그런 정신병자들이 한 둘이가 아니지요.

교회에 수두룩 합니다.

배운 사람이 더 해요.

 

아무튼 앞 글에서 성전을 부수는 복수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복수의 하나님은 시편에 91편에 보수의 하나님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으니 이해하겠는데

그것과 성전 부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라는 겁니다.

그럼 성전 보이는 것 마다 다 깨 부수자 라는 거냐

교회도 하지 말고 모이지도 말고 예배당도 없애버리자 라는 말이냐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고전 3장 이야기를 한 겁니다.

성전은 어디 까지나 주님의 손에 다루어지지

인간의 손에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손에 좌우되는 성전은 늘 제사와 번제라는 의문의 죽이는 것을 반복하는 겁니다.

즉 구원이 아니라 죽이는 것(흐릿하고 희미하고 미완료됨)을 반복한다 말이죠.

반대로 주님의 손에 다루어지는 교회는 의문의 죽이는 것으로 하지 않고 살리는 명료하고 또렷한 완료로 한다는 겁니다.

흐릿하고 희미하고 미완료됨이 없이 말이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교회 속에서 충돌을 야기시켜서

눈에 보이는 것이 심각한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이 더 중한데 왜 쓸데없는

게바파 바울파 바울로파로 싸우냐 라고

지적을 받음으로써

안싸워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거룩이 아니라
지적 안받는 거룩함이 아니라,  

그건 거짓이고

이렇게 불완전해서 충돌과 싸움이 벌어져도

지적받는 간섭을 통해서 그렇게 지적하시는 거룩이 있다는 사실이

그 거룩에게 매맞는 자식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그리스도의 몸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닌

이미 완료된 그리스도의 몸 때문에

이런 심각한 것이 아닌 것을 터트림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보자 라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으로부터 간섭을 받는 거룩에 씌여짐을 받은자 덮여짐을 받은자 라는 겁니다.

이런 거룩으로부터 매맞음이 없으면 거룩을 성화론자들처럼 사적으로 소유할려고 해요.

사생아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제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입니다.

 

제발 막사세요 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듯이

제발 거룩으로부터 매맞자 라는 것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라는 겁니다.

 

사실 세 번 부인할 필요가 없이

우리는 매일 매일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 할려고 죄를 짓는 죄의 정당성을 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 또한 의문의 제사와 번제인 죽이는 것이지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않고 인애와 자비를 원하신다는 거죠.

제사와 번제를 원하는 교회는 사실상 거룩을 사적소유로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는 삶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교회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인애와 자비를 원하시는 교회는

매일 매일 세 번 부인 할 수 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의 삶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 없는 결과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주의 용서가 덮쳤기에 그 용서의 피만 자랑하는 교회이다는 겁니다.

자기의 거룩한 삶이 아니라 말이죠.

그렇다고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일부러 짖는 것도 아닌

이미 죄 아래 갇혀 있기에

내 쪽에서는 거룩이 없다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치는 교회이다는 겁니다.

 

사실 제가 지금껏 여려 교회를 다녀봐도

내 쪽에 거룩이 없다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교회는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백이면 백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십의 이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저 토색하는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는 삶을 살게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는 주장만 하는 것이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이다는 겁니다.

 

자 그럼 그런 교회는 무엇을 자랑한다?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 나

반대로 그럼 교회는 무엇을 싫어한다.

저 매국노 세리처럼 토색하고 하나님도 하나님의 백성도 등쳐먹고 배신하는 자를 싫어한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목을 제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배신하자입니다.

 

이것이 시편 81편에 나옵니다.

 

 

(81:10, 개역)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81:11, 개역)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81:12,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하였도다

(81:13, 개역)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81:14, 개역)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81:15, 개역)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81:16, 개역)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이 부분을 이렇게 어머니께 설명했습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 놓으라고

애굽에서 건져내니까

이스라엘이 보따리 내놓으라고 여호와를 원망하더라 말이죠.

즉 배신을 때리더라 말입니다.

그것도 세 번 말입니다.

이것이 광야입니다.


아니 출애굽해서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그 거리가 15일 거리 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15일 길을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곧 14,600일 동안 광야에서 뺑뺑이 돌아야 합니까? 

계산기를 두들겨 봤는데 처음에 잘못봤어요 천사백육심일로, 그런데 만이더라 말이죠.

이것이 광야교회인데

제발 나 여호와를 세 번 배신 때리라 라는 겁니다.

참 희한한 하나님이지요?

제가 제목을 제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라고 했는데

이거 불가능합니다.

막사세요 라는 것을 불가능한데 이것을 또 가능하게 만드는 놈이 있어요.


불가능 합니다.

즉 불가능 하다는 말은 주님은 하신다는 겁니다.


제발 나 예수를 세 번 부인 하라 라고 이것이 덮치는데 이것이 거룩이다는 겁니다.

그래야 교회가 깨집니다.

지난 시간에 말했던 성전을 부수는 복수의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거룩이 덮쳐야 성전이 깨지고 복수의 하나님이 옳았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것이 애굽이다 말이죠.

그런데 애굽에서 건져내놓고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반드시 세가지 예수님을 부인한 세 번 배신 그 증거물을 잡습니다.


도장 도장끈 지팡이

도장끈이 들어갈 정도로 억지성이 있을지라고 세 번을 일부러 맞춥니다.


광야에서 14번 정도 원망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10번 원망했다고 억지로 10번 맞추고

그것을 다시 증거궤 법궤 언약궤인 같은 말인 

그 박스 안에 그 원망한 증거물 3가지로 억지로 맞추어서 집어 넣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 말입니다.


이 세가지 물증을 잡을려고 의도적으로 15일 길로 바로 가지 않고

40년 동안 뺑뺑이 돌리는 겁니다.

15일도 원망이 엄청날 것인데

40년 동안 뺑뺑이?

말이 15일이지 광야입니다.

사막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원망 안 할 자신 있는 사람 나와보세요

아니 제가 농담 안합니다.

15일 길 원망 안 할 인간 있으면 나와보세요.

제가 교회 다녀봐도 안 그런 인간 없다는 겁니다.


목사는 좀 다를 거야?

천만의 말씀!!

목사는 제일 먼저 원망을 해야하는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괜히 목사를 세운게 아닙니다.

제일 먼저 원망하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15일이 아니라 이것을 쭈주욱 늘려버립니다.

펼치면 만사천육백일입니다.

부채를 접으면 15일이고 펼치면 14,600일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평생 원망만 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안 한 것 같이 말하지 마세요 실수로 한번 원망했으면

평생 원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는 겁니다.

 

일부러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제발 원망하라고

제발 세 번 부인 하라고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는 성전 중앙에서 기도할게 아니라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써

나는 세 번 예수님을 원망한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라 라는 겁니다.

나는 저 애굽과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할게 아니라

광야교회란 나도 똑같이 애굽과 같은 놈인데 이런 자도 용서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나는 저 원수 사울왕과 같이 되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라고 할게 아니라

나 다윗도 사울왕처럼 우리야장군을 고의적으로 죽여서

세명을 살인을 한 주께만 범죄한 자입니다 라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즉 원인을 따지면 죄인 아닌 자가 없다는 겁니다.

뭘 해도 다 죄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귀가 원인을 따지면서 하나님 행세를 하면서 베드로를 잡습니다.

잡아왔을때에

주의 오른팔이 나타나는 겁니다.

원수가 등장해야 복수가 실행하듯이

그 원수가 등장함으로써 오른팔이 등장하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인간의 거룩은 백날 거룩해 본들 원수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귀원수가 그런 승산없는 게임을 수락할 이유가 없잖습니다.

이미 자기의 밥이 되어버린 자에게 말라꼬 내기게임을 수락하겠습니까?

이미 자기가 장악한 자는 떡밥을 주지 않잖아요

흔히 이미 결혼한 아내에게는 떡밥을 주지 않기에

아내는 불만이 가득합니다. 왜 결혼 전에는 그렇게 잘해주던 남편이 결혼 후에는 변했다고 하듯이 말이죠.

열정을 품고 달려들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것이 원수 마귀가 인간의 거룩에는 달려들지 않는 겁니다. 방해꾼이 없어요.

그래 그래 십의 이조, 이레에 두 번 금식, 토색하지 않는 삶 마이해라 마이해

그것이 마귀가 원하는 겁니다.

 

제 블로그 검색 1

교인들 천주교든 뭐든 종교꾼들 검색 1위가

십일조입니다. 헌금입니다.

싫다 이거죠.

돈 놓고 돈 먹기를 해야 하는게

야바위꾼이 돌리는 그 판을 보면

돈을 딸수 있는 판대기가 아닙니다.

돈을 내면 낼수록 손해예요.

개혁주의는 조금 확률을 높여서 오히려 게임 중독성에 빠지게 하는 겁니다.

다들 야바위꾼들이예요.

전재산 다 탈탈탈 털려야 정신차리지

전재산 탈탈 털리기 전까지는

절대 못 빠져 나옵니다.

 

즉 원수는 오른팔 때문에 등장하지

인간의 거룩한 삶, 성화된 삶 때문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주의 오른팔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보충물로써 등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다 물린채, 불뱀에게 다 물린채,

남이 아닌 니가 마귀이다 라는 겁니다.

세 번 부인했거든요.

그 증거물도 잡혔거든요.


자 이렇게 주님이 자기 사랑을 확정하기 위해서

제사와 번제가 아닌 인애와 자비를 위해서

증거물을 잡은 것을

오히려 원수 마귀가 베드로 원수 잡았다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원수 베드로 잡았다고

덮썩 무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진짜 원수를 잡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마귀에게 잡혀 오라고

불뱀에게 물려 오라고

제발 제발 나 예수를 세 번 부인, 배신하라고

일부러 40년 동안 뺑뺑이 돌리는 겁니다.

제발 불뱀에게 물려 오라고 말이죠.
그 불뱀 내가 처리할께 그 원수 내가 처리 할께 내가 복수할께 라는 겁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안그러면 자기 육신을 자랑할 것 아니겠습니까?

십의 이조를 드렸다는 둥

이레에 두 번 금식했다는 둥

안식일을 지켰다는 둥

 

이 원인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결과를 싫어합니다.

 

반대로 그 세가지 물증에 시은좌 법궤뚜껑을 덮어버림으로써

다시는 허물을 보시지 않겠다고 뚜껑 덮고 그 위에 자신의 피까정 뿌립니다.

 

자 그럼

15일 길 바로 가지 않고

쓸데 없이 하나 마나한 이 광야 40년 이 왜 필요한지 아시겠습니까?

 

(81:14, 개역) 그리하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하며 내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리니

(81:15, 개역)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81:16, 개역)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16절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먹이며

즉 만나입니다.

심어서 땀을 흘려서 거두는 열매가 아닙니다.

땅에서 난 음식이 아닌 하늘에서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하늘에서 뚝떨어진 음식을 먹고도

저들은 죽었습니다.

즉 주님의 살을 먹으라 라는 겁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겠다는 겁니다.

괜히 물 없는 곳으로 몰고가서 원망을 받아낸게 아닙니다.

앗싸 성공 원망 받았냈다 라고 주님이 좋아하신 이유는

자신의 피를 먹이겠다는 겁니다.

 

반석에서 난 물을 마시고도 광야에서 그들은 다 죽었습니다.

원망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오시는 주님의 피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 피를 마시는 자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다들 놀랩니다.

우리가 식인종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말을?

은혜를 거부하고 피에 대한 거부감만 더해 갈 뿐입니다.

제자들은 어렵다 어렵다 누가 과연 구원 얻겠나?

그렇게 선민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것이

내 살과 피를 마셔라 그렇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니까

졸지게 수천년 동안 내려오던 신념이 다 날라가 버리는 겁니다.

 

(19:25, 개역)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10:26, 개역)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18:26, 개역)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신앙의 모범이라는 가장 엘리트인 자도 즉 부자청년도 안되는 구원인데

누가 구원얻겠냐 말이죠.

그 부자청년이 그 정도로 소문난 자였다는 반증이다 말이죠.

 

결국 등돌리고 간 이유는

전재산을 가난한자에게 못 줘서가 아니라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 배신 못 때리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난 절대로 안그럴래 라는 거죠.

즉 원수가 없는 겁니다.

원수가 그렇게 난 절대로 예수님 세 번 부인 안할래 라고 원수가 그렇게 만든줄 모르고

 

주님의 살과 피 먹지 않고

상관 없이

자력적으로

불뱀에게 물렸어도 안쳐다보겠다고

거룩한 삶을 살면 고침 받을수 있다고

마귀가 그렇게 장악해서 그런 생각으로 사니까

 

원인을 따지는 마귀처럼

원인만 사수하다가

근심하고 등돌리는 겁니다.

 

주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자 동시에 그 모퉁이의 머릿돌입니다.

버린 돌이 곧 머릿돌인 동일한 돌입니다.

 

우리가 쓸모 없다고 버렸던 돌이

우리가 가장 귀한 돌이라고 머릿돌로 삼은 겁니다.

이 간극이 3일의 간극입니다.


예수님은 이 간극을 좁힐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더 잘아십니다. 곱하기 세 번


절대 이 모순 되는 돌

버린 돌과 머릿돌이 왜 동일한 돌인지

그 모순 된 간극 절대 좁힐 이유 없습니다.

사랑은 이유 없습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


누가 십자가 흔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 간극이 흔적입니다.


그래서 죄수 복을 입고서 죄수 복에 발린 피를 자랑하지

죄수복을 벗고 의인의 옷을 입고서 피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모순된 점을, 십자가 불륜을 벗어버리고, 스캔달을 벗어버리고 증거되는 피 자랑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피를 부끄러워 하는 겁니다.



(어떤분이 저에게 질문을 하셨는데 바울이 내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다고 한 구절의 의미를 물어오셨는데

저는 그게 예수님의 용서가 있다는 뜻인것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잘답변을 드린건지 모르겠네요

그 구절의 의미를 저도 좀 자세히 알고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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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절에 유대인은 할례 받은 것으로 육체를 자랑할려고 합니다.

14절에 세상은 어리석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바울을 핍박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반대로 바울은 그런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자랑한다고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는 소욕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자랑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 되니까

 

바울에게 세상이나 유대인이 십자가의 흔적을 바울에게 남긴 것 곧 핍박은 바울에게 부끄러움이 될 것이라고 봤는데

오히려 바울에게는 그 십자가의 흔적이 도리어 자랑이 되는 겁니다.

그딴거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거죠.

 

반대로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십자가를 부끄러워 하기 때문에

바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증거하고 있으니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끄러워 할 거야 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의 흔적을 더욱더 자랑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아주 오래 전에 죄수 복을 입고서 피 자랑하는 것과

죄수 복을 벗고서 피 자랑하는 것과의 차이로써

손OO씨와의 충돌이 있었던 겁니다.

 

십자가의 흔적을 부끄럽게 여기니까

죄수복을 벗어버렸는데

왜 자꾸 죄인 죄인 하느냐 라고 불평했던 거죠.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해

오히려 죄수 복을 입고서 특별사면을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피 흔적 때문이다는 거죠.

 

(6:12, 개역)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6:13, 개역)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6:14, 개역)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6:15, 개역)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6:16, 개역)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6:17, 개역)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6:18, 개역)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

 

이 간극을 이유 있게

원인 있게 만들려고

성화론자들은 사적인 거룩을 채웁니다.

그러나 광야교회에서는 그따위 트릭이 안통합니다.

탈탈탈 털리는 겁니다.

아무리 채워도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입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아름다운 모양이 없다고 싫어했습니다.

고운 모양이 없다고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얼굴을 새까맣게 탄 괴물이라고 미워했습니다.

 

엄마! 엄마 얼굴은 괴물이야 싫어

아이들이 놀린단 말야 싫어 가까이 오지마

 

그렇게 싫어했던 불에탄 얼굴이

 

이제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

자기가 아이를 낳아보니

그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얼굴이다는 겁니다.

나를 지옥에서 건질려고

지옥 불에 뛰어들어서 나를 건지다가 타 버린 얼굴이요 괴물얼굴이다는 겁니다.

 

이 간극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성형수술해서 고쳐서 아름답게 만들어도 안되요

괴물 얼굴 그대로입니다 그 간극 그대로.

그렇게 싫어했던 얼굴이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얼굴이다는 겁니다.

이 간극 좁혀지지 않은채

그 간극 그대로

내가 버린 돌이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머릿돌이다는 겁니다.


건축물을
46년 동안 지어도 절대로 마침이 없습니다.

그 의문의 죽이는 번제와 제사를 밑도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버렸던 돌이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머릿돌이 됨으로써

드디어 건축물이 완성이 됩니다.

완공 몇 년 몇월 며칠 이라고 새겨지는 겁니다.

더 이상 지을게 없이 안식하라고 있는 완성된 성전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짓는 성전은 마침이 없어요. 쉼도 없고요 밑도 끝도 없이 제사반복입니다.


그러나 완성된 성전은.

더 이상 정죄할 자도 없습니다.

 

이 보배를 우리는 담았습니다.

그릇인 우리가 깨어짐으로써 보배의 완성을 보고

우리는 백날 나를 손대고 보수공사해본들 밑빠진 장독대에 물 붓기일 뿐이니

차라리 완성된 보배만을 나타내고자 마귀에게 잡혀 오면 되는 겁니다.

 

말도 안되는 주님의 용서가 이미 완료된채로 결과적으로 준비 되어 있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고후 4:7, 개역)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8, 개역)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9, 개역)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4:12, 개역)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3, 개역)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4, 개역)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5, 개역)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7, 개역)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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