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악에서 나온 것)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 ③ (마 5,20-37)

 

살인(미움) 간음(음욕) 맹세(악에서 나온 것),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 (마 5,20-37)

 

(마 5: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1, 개역)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3, 개역)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개역)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개역)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개역)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7, 개역)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8,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9, 개역)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 5:30, 개역)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31, 개역)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 5:32,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 5:33, 개역)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4,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5, 개역)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6, 개역)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마 5:37, 개역)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 5:20,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5:21, 새번역)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 ㉧출 20:13』

(마 5:22,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 ㉨그, '형제에게'.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까닭없이'가 첨가되어 있음 ㉩그, '형제에게' ㉪그, '라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람어 라가는 욕하는 말 ㉫그, '게헨나'』

(마 5:23, 새번역)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 ㉬그, '네 형제'』

(마 5:24, 새번역)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 ㉭그, '네 형제'』

(마 5:25, 새번역)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 얼른 그와 화해하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주고, 재판관은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어서, 그가 너를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마 5:26,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그, '코드란테스'』

(마 5:27, 새번역) 『"㉡'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 ㉡출 20:14』

(마 5:28,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

(마 5:29, 새번역) 『네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 ㉢그, '게헨나'』

(마 5:30, 새번역) 『또 네 오른손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 ㉣그, '게헨나'』

(마 5:31, 새번역)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는 사람은 그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어라' 하고 말하였다. / ㉤신 24:1』

(마 5:32,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음하는 것이다."』

(마 5:33, 새번역)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또한 들었다. / ㉥레 19:12; 민 30:2; 신 23:21(칠십인역)』

(마 5:34,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마 5:35, 새번역)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발을 놓으시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마 5:36, 새번역)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 5:37, 새번역)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또는 '악한 자'』



단도직입적으로 맹세란 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예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말고 왜? 하나님의 보좌이기에

땅을 두고도 하지 말고 주의 발등상이기에

예루살렘을 두고도 하지 말고 주의 도성이기에

니 머리로도 말고 왜? 니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하지 못하니까

그럼 염색은? ㅋㅋㅋ

예면 예고 아니오면 아니오 라 해야지 오바하는 것은 악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맹세 가 이렇게 악 까지 연결이 되어버린다고 하십니다.


맹세라는 출발 처음을

결과를, 끝을 확땡겨 보니 그 결과가 악이 되어버리더라 말이죠

썩은 동앗줄을 잡았다 라는 거죠


왜?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에

즉 사람에게서 난 것이다는 겁니다.


사단아 썩 물러가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라고 베드로를 책망하셨듯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맹세를 하기를 워낙 좋아라 하는 신체 곧

선악의 신체이다는 겁니다.


이 말은 처음아담의 속성을 그대로 뿜뿜 막 뿜어내고 있다는 겁니다.

때려죽어도 약속의 신체는 아니올시다 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말이죠


즉 예면 예고 아니오면 아니오 라는 의미는

예수님의 신체와 연관이 되었다는 겁니다.

즉 예만 있고 아니오 함이 없는

은혜로 말미암는다 말이죠

미쁘심 곧 믿음이요 약속의 신체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당된다 말이죠


(고후 1:12, 개역)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고후 1:13, 개역)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고후 1:14, 개역)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고후 1:15, 개역)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고후 1:16, 개역)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고후 1:17, 개역)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고후 1:18, 개역)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 1:19, 개역)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 1:20, 개역)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12, 새번역)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거룩함과'』

(고후 1:13, 새번역) 『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서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고후 1:14, 새번역) 『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마는,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듯이, 우리가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고후 1:15, 새번역) 『이러한 확신이 있으므로, 먼저 나는 여러분에게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두 번 다시 ㉣은혜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기쁨'』

(고후 1:16, 새번역) 『나는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여러분에게로 와서,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서 유대로 갈 작정이었습니다.』

(고후 1:17, 새번역) 『내가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 변덕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또는, 내가 육신의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기를, '아니오, 아니오' 하려는 속셈이면서도, '예, 예'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겠습니까?』

(고후 1:18,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후 1:19, 새번역)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 ㉤또는 '실라'』

(고후 1:20, 새번역)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 없으면 아니오 믿음없습니다. 믿음을 주세요 라고 하던가

아니면 믿음이 있으면 이 미쁘심으로 예 라고 하던가


이 표현 자체가 예 아니오 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공적인 자유인 진리를 외치는

그야말로 공무원에게 딱 해당된다 말이죠

사적인 영역이 없으니 예면 예고 아니오면 아니오 뿐인데


공무원이 아닌 천재들이 바로 예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닌 그 이상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예를들어서 우리 젊었을때에 한참 유행하던 서원 이라는 것이 한참 유행했다 말이죠

바로 IMF 터지기 한 십년 전부터 한참 기독교가 번창할 때 말이죠


서로 서원 하나 안하면 눈치 볼 정도의 분위기였으니까 말이죠


즉 기독교라는 종교의 우상이 한참 번창하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을 노리고서

서원을 유행시켰다 말이죠


그런데 정작 이 서원 자체는 공무원과 연관된 의미인데

아무리 봐도 공무원은커녕 그저 사적인 영역을 챙기는 수단으로 빠졌다 말이죠


그리고 성경을 봐도 인간 쪽에서 서원을 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고맙고도 고맙게도 다들 서원을 지키는데 다 실패한다 말이죠

그 대표성이 야곱이 서원을 하는데 지켰다는 말이 없어요


(창 28:20, 개역)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 31:13, 개역)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결국 공무원 기능은 성령이 인도해서 완성된 십자가의 다 이루심과 연관이 되지

인간 쪽에서 수행한다고 이루어진 적이 없고

십자가와도 무관하고

오히려 단절이 되는 겁니다.


서원이라는 공무원직 자체도 주님이 부여하고 주님이 이루심이지

인간은 안목이 좁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되는줄 전혀 모르면서

서원을 마구 마구 해대는 식이다 말이죠


저도 하도 많은 목사들로부터 속아서

제발 복음을 제대로 증거하는 목사만 있다면

내 전부를 걸겠다고 마음먹은적이 있었다 말이죠

저도 모르게 답답한 마음에 그런 말을 누구한테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소문이 퍼져 버렸더라 말이죠


그런데 고맙게도 그런 맹세는 다 엉터리 이다 라고 누가 알려줘서

맞구나 다시는 그런 맹세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겠구나 라고

그런 마음을 또 다른 누구와 나누었다 말이죠 젊었을 때 한번 나온 오기였다고 말이죠

그렇게 덕분에 그런 서원도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맹세 목표라고 잡은 것 조차도

엉터리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식으로 인해 기뻐서 나누고도 했는데


이상하게 뒷북치듯이 이것을 시비걸면서 태클 거는 자들이 막 생기더라 말이죠

아 이것도 주님이 하시는 일이겠지 라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나의 그런 맹세를 깨뜨리겠다고 다짜고짜 죽기 살기로 덤벼들더라 말이죠

그래 그래 나 그거 우상숭배인거 알아 그래 맞다니깐 그런 맹세 엉터리였어

나의 잘못된 생각이야 라고 눈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끝까지 물고 늘어지더라 말이죠


이상하다 주님이 저 사람에게는 안 알려주나?


아무튼 그냥 내버려 뒀는데

결국 제가 우상숭배자로 낙인이 찍혀서 나오게 되었다 말이죠


아무튼 그 말은 맞아요 우상숭배와 맹세와 연관이 된 것 맞다니깐요


맹세 자체가 악에서 나오는 우상에서 나오는 거다 말이죠

약속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말이죠

왜? 이미 다 이루었기에 더 이상 이룰 숙제가 없기 때문에 말이죠


구약은 오히려 아무리 서원을 해도 이룬적이 없는 미완료의 상태로 남게 되어버린

인간 쪽에서의 출발 자체가 다 엉터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나실인 개념이 서원 아닙니까

그래서 자신을 구별 시킨다 말이죠

거룩한 말씀 성취 때문에 말이죠


(민 6:2, 개역)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민 6:21, 개역)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그랬던 나실인 무리들이 서원을 지키기는커녕 개판이 되니까

나실인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라고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인식을 대변해 주듯이 나타내고 있다 말이죠


그러면 사람들은 이미 부정하게 되어버린 나실인 나사렛 개념을 피해서

나사렛과 경계선을 그어서

따로 말씀을 지키면서 맹세하는 식으로 따로 형성한다 말이죠

왜? 저쪽 나사렛 서원은 엉터리로 이미 판명이 낫으니까

그래서 경계선을 긋고 넘어가지 않는 식으로

자신이 우상숭배자가 아님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방식을 취했다 말이죠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나사렛 이름으로 오시냐 말입죠

남들은 다 피하는데 말이죠


그것은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우상과 한 세트를 구성해서

이 우상과의 차이로써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그러니 오히려 맹세의 달인들인 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마태복음에서

그것도 산상수훈으로 이야기 하신다는 것은

유대인들을 모조리 걸고 넘어지는

우상숭배자로 규정하고 있는

악에서 난 것임을 들추어 내신다 말이죠


결국 예수님 자신이 맹세 곧 약속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인간의 맹세는 곧 우상숭배인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맹세란 모조리 다 이전의 것 지난간 것 처음아담에서 나왔기에

뭔가 부족해서 자꾸 맹세를 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이것만 해 주시면 주님께 이런것들을 바치겠다고 자꾸 맹세한다는 자체가

지금 현재 상태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곧 주를 앙망하는 것이 아니다는 증거로써

자꾸 맹세를 함으로써

우상숭배와 같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고 맹세하는 식입니다.

곧 인간 쪽에서 다가가겠다는 종교성이다는 거죠


맹세 서원 결국 인간의 믿음을 두고 말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예수님의 믿음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인간의 모든 믿음은 거짓으로 판명이 남으로써

더 이상 기대걸 필요가 없게된 부도난 수표이다는 거죠


그러니 요나의 표적은 안 구하겠다는 인간의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모습이

맹세를 자꾸 남발하는 식이 되는 겁니다.


(마 23:16, 개역)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18, 개역)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마 23:20, 개역)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마 23:21, 개역)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마 23:22, 개역)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라고 아예 우상숭배자로 취급해 버리는

신접한 자 마술사 과거의 교훈을 쫏는

죽은자의 하나님을 외치는 자이다는 거죠


이 맹세가

정작 맹세를 이루신 주님을 모독하는 맹세가 되고

주님의 믿음을 모독하는 믿음이 되는 겁니다.


다 이루었는데 왜 자꾸 뒷북치듯이 미완료인냥 맹세를하고 믿겠다고 우기느냐 말이죠


그 정도로 주님의 믿음을 안 쳐다보는 겁니다.

자기가 믿기 바빠서

자기 숙제 하기 바쁘니까 예수님의 믿음을 남의 믿음 쳐다보듯이

안 쳐다보는 겁니다.


(약 5:12, 개역)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약 5:12, 새번역)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이나 땅이나 그 밖에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다만, "예"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예"라고만 하고, "아니오"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아니오"라고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 ㉣그, '형제들'』


(마 5:33, 개역)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4,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5, 개역)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6, 개역)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마 5:37, 개역)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치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을 구한다 안구한다

안 구하는데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다고 누가 보면 억수로 믿음 좋은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우상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는 거죠


곧 야고보서 5장처럼


(약 5:17, 개역)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약 5:18, 개역)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약 5:19, 개역)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약 5:20, 개역)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엘리야처럼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안한다?

즉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3일이라는 간극

행함이 있는 믿음을 구한다 안구한다?

요나의 표적을 구한다 안구한다


주님의 의를 안 구하고

자신의 맹세를 지키고 그 지킨 것에 하나님은 보상을 제대로 하라는 식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맹세는 완벽하게 우상숭배로써

예수님의 맹세를 이루심과 곧 엘리야의 비오지 않기를 기도함과

정면 충돌로써 빛과 어두움으로써 한 세트로 구성되는거다 말이죠


자 이래도 맹세 할꺼냐 말이죠

그 정도로 불안하다는 겁니다.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 현재를 보다 더 낫게 해 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맹세를 하고 기대를 한다는 거죠

기대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실망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이미 다 이루었는데 뭘 맹세하냐 말이죠

마치 우리가 우리 쪽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겠다고 하면 안되는 것처럼

맹세하면 할수록 맹세를 다 이루신 예수님과 경쟁하게 되는

살인의지를 나타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안식일을 괜히 지키니까

안식의 주인과 충돌해요


맹세를 자꾸 괜히 지키니까

맹세의 완성자와 자꾸 경쟁해서 죽일려고 하듯이 말이죠


(히 6:13, 개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히 6:16, 개역)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히 6:17, 개역)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히 7:20, 개역)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히 7:21, 개역)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 7:28, 개역)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주님은 주님 자신의 약속 맹세 율법을

오로지 홀로 다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자들처럼

이 맹세에 집착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처럼 못 될까봐 불안하니까 자꾸 맹세를 하는 겁니다.

믿을려고 한다 말이죠

아하스 왕처럼 임마누엘을 안 구하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믿어요 우상을 믿어요


안 구하면 인간은 빈 그릇처럼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반드시 그 반대급부에 해당되는 짖을 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니 두 맹세

두 언약

두 주인

두 임금을 항상 언급해야 하는 이유가


모든 인간이 좋아라 하는 쪽이 있고

반드시 그 이유로 반드시 싫어하는 쪽이 있는데

주님의 맹세를 다 이루심을 반드시 싫어하도록 되어 있고

우리 자신이 맹세를 지키는 것은 무지 무지 좋아라 하도록 되어 있기에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이유는

반드시 인간 쪽에서 이런 것들을 주장하는 것에 당연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고 하시는 겁니다.


살인하지 말라 암요 암요 저는 절대로 살인자가 될 가능성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설마 제가 사람을 죽일 리가 있겠습니까 라고 당연시 여기는 것을

예수님은 깨뜨리시는데 있어서


강도만난 자를 그냥 지나쳐가는 대제사장과 레위인 곧

율법의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임을 강조하듯이

이런 자들이 살인자이다고 하시는 겁니다.

또 그 이야기를 율법사 곧 두 계명이 뭡니까 라고 예수님에게 묻는 율법사에게 말이죠


율법을 지키고자 시체나 부정함을 만질수 없는 이 대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만난 자를 모른채 하고 방치하고 지나친다면

이것은 살인을 죽음을 방관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역시나 똑같은 강도가 아니냐 살인 강도 말이죠


역시나 맹세 라는 의미를 좋은 의미에 자신을 넣음으로써

자신의 안전빵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정작 예수님의 맹세를 이루심을 무시하게 된


주님의 의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맹세를 완성하심) 무시하는 것이니


이 의를 쳐다보라고

너의 맹세 지키기 너의 숙제를 손 놓으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인간의 맹세와 율법지키기와 서원과 약속 지키기 등등은

모조리 다 과거에서 현재 또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모조리 다 이전 것이고 지나가는 것이고 처음아담에게서 나지만



주님의 맹세 완성은 미래완료에서 나오기 때문에


나다나엘아 너는 참 이스라엘이구나 라고

부르시는 그 참임금은


창세전에 야곱아 이스라엘아 라고 부르신 그 약속이

바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맹세 완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미래완료에서 현재로 쳐들어 오고

미래 완료에서 과거로 쳐들어 오게 되니

현재도 과거 삭제가 되는 겁니다.


마침 재미있는 사건이 정치권에서 터졌는데

손의원이 돈도 안되는 미래의 가치인 문화재를 괜히 오지랖 넓게 

전재산을 다 털어서 사들여서

부동산 투기를 할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라고 공격을 받더라 말이죠

공격을 안 받고 이것이 문대통령과 연관이 안되게 사건처리가 되면

별 상관이 없게 보였는데

이것이 반드시 임금과 연관해서 공격을 받는 것을 보니


마치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을 자기 머리로 씻는 말씀이 생각이 나더라 말이죠


인간들이 얼마나 맹세 속에서 사느냐 하면

강요된 선택으로 자꾸 부추겨서 왜 맹세를 안하느냐 라고 다구치듯이

그 아까운 비싼 향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고 왜 땅에 허비하느냐 라고

가룟유다 부터 제자들 전부 다 화를 내더라 말이죠

왜냐하면 그들은 맹세 속에서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자들이다 말이죠


반드시 이런 자들을 카페트로 깔고

마치 오늘 제목처럼 바리새인의 의로움을 카페트로 깔고서


가짜 맹세, 헛 맹세, 헛동앗줄, 거짓신앙 곧 보편적인 신앙이다 말이죠


그 위에 구체적 보편적 믿음이 펼쳐지는데 있어서

이 향유를 부은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장사를 치르는

예수님의 맹세 완성을 선취 미래표절해서 보여주더라 말이죠

이것이 아까 언급한 엘리야의 비오지 않기를 3년 반 동안 비오지 않도록 기도한 것과 같다 말이죠


그러니 맹세하지 말라고 해서 안하면 되지가 아니라

인간은 맹세 속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신용이 없으면 못살아요

그런 사회 구조가 바로 마태복음의 대상인 유대인 사회가

촘촘하게 이런 맹세들로

사회적인 약속망으로 맹세망으로 가득차 있다는 겁니다.


이런 약속망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맹세를 다 이루심을 쳐다본다는 것은

곧 사회로부터 추방당하는 것과 같다 말이죠


율법을 맹세를 지켜야만 하는 사회에서

맹세를 더 이상 지킬것이 없게 되면

그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추방당하는 아니 죽임을 당하는


살인하지 말라고 계명을 새롭게 해석하니까

과연 그 사회가

살인하지 말라 라는 맹세를 지키는 사회가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을 기쁘게 수용할까요 아니면 반드시 죽일까요?

죽여야 살인하지 말라 라는 새로운 해석이 완성됨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겁니다.

이상하죠 반드시 맞물리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러니 맹세는 인간 쪽의 맹세는 이런 것이 안 맞물리는

자기 개인의 숙제처럼 해 버리면 아무도 시비 걸자가 없는데


예수님의 맹세를 다 이루심을 쳐다보게 되면

반드시 집단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거봐요 아하스 왕이 나는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노라 라고 맹세를 하잖아요

분명 맹세를 하지요 그런데 그 맹세가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어요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이 도리어 시험을 하고 있다 말이죠


시험 안한다메? 그럼 시험 안해야지 왜 시험하노


이것은 주님은 우리 개인을 상대로 하는게 아니라

아하스 왕을 장악하고 있는 우상을 상대로 하시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상대하시는게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거짓맹세 헛맹세인 우상을 상대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상대하신다 말이죠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만큼 우리는 죄악이 우리를 장악하고 있어서

맹세가 우리를 장악하고 있어서

우상이 우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눈만 뜨면 하루 종일 매일 매일 맹세와 맹세로 이어지는

맹세를 멈출 길이 없이 맹세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주님이 알려주시는 겁니다.


주님이 맹세 하지 말라고 해도 우리는 맹세하도록 되어 있어요

임짠희가 미역국 안 먹겠다고 해놓고서 다시 말을 바꾸어 먹고

그런 것은 다 미신이야 라고 해놓고서는

토정비결을 보고

어이상실이 덮쳐져서 하루종일 어이상실에 휘둘려 살도록 되어 있는


우리가 맹세를 하는게 아니라

맹세가 우리를 하루 종일 나를 가지고 놀면서

맹세에 의해 휘둘려 사는


이것이 바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누가 이 사망의 몸

맹세의 몸

율법을 지킬려고 환장한 몸

살인의 몸 미움의 몸 욕하는 몸

간음의 몸 음욕의 몸


이 사망의 권세에서 

이 우상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니 예수님께서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임마누엘

처녀가 낳은 아이로 오신다 말이죠

이것이 성령의 일 곧 유일하게 우상문제를 해결하는

아이 

한 아기를 구하라 라고

맹세 안할 거야 라고 끝나는게 아니라

그 반대 급부인 한 아기를 구하라

주님이 자신의 맹세를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이 한 아기를 구하라 라는 취지인데


나는 한 아기도 안 구할 거야

임마누엘도 안 구할 거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거야

맹세하지 말라고 했잖아 라고

나오시면 안된다는 겁니다.


안구한다고 안구해지는게 아니라

반드시 요나의 표적은 안 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구하도록 되어 있는

악이 나를 휘두르고 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예가

나는 십일조 드렸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저 세리와 같이 토색하지 삥듣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맹세를 지키도록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맹세에 휘둘려 살고 있는

악에서 휘둘려 살더라 말이죠


왜 과거 이전의 것 지나간 것 처음아담에서 나오는 것

사라질 것

우상에서 나오니까 말이죠


그런데 한 아기를 구하는 자는

한 아기가 떳다는 그 이유로

나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 아기만이 이 우상숭배를 해결하실 분이다 라고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요나의 표적을 미리 앞당겨서

예수님이 맹세를 이루실 분이다 라고

미리 장사를 치르듯이 향유를 뿌리고 하더라 말이죠


아마 이 장면까지 보는 눈이 가룟유다와 제자들에게 있었다면

아마 벌써 이 여인을 죽여버렸을 꺼다 말이죠

말고의 귀도 짜르는 판국에 여인이야 뭐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이

맹세를 지키는 자들의 특징이니까 말이죠


사도바울을 끝까지 죽이고자 말겠다고 혈맹으로 단결하는 유대인들이 결성 되듯이 말이죠


(행 23:14, 개역)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행 23:21, 개역)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자 그러니 바리새인이 저 세리를 미워하는 그 미움 곧 살인과 마찬가지로

바울을 죽이고자 40명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은

그들 개인의 맹세가 아니라

유대 사회 전체의 맹세를 대변해서 보여주고 있는

그 정도로 이 복음에

곧 예수님이 자신의 맹세를 다 이루시는 이 맹세에

상대적인 가짜 맹세들이 반드시 혈맹으로 단결해서

저지하고 거부하고 방해하고 퍼지지 못하도록 하겠다 라고 나서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다고 이미 다 이룬 새 일이 멈춰질 리가 있겠냐 말이죠


오히려 섬들이 우상숭배자들인 니느웨 백성

개같은 이방인

스불론 땅 납달리 땅

갈릴리 이방나라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자

눈먼자

귀머거리

포로된자 

갇힌자 

억눌린자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임해 버린 이미 벌써 임해버린 이 희년을


뒷북 치듯이 부랴 부랴 막겠다고 나선다고

막아지겠냐 말이죠

벌써 다 이루어서 끝났는데


원인 없는 결과인데????


자꾸 원인을 갖추겠데요 글쎄


그래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뇨 라고

거짓말이다 그 말은 나사렛에서 안난다 라고

거짓말로 취급해야


그것을 가지고서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 삼는 것이 바로

의 로움이다 라는 겁니다.


아이구 분명히 거짓말인데 참말이였군요 라고 말이죠

즉 나다나엘이 거짓이 없다는 게 아니라

간사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참이스라엘이다는 말이 아니라

이 참이스라엘을 실현하고 이루시는

마치 맹세란 이루어야 의미가 있지

맹세를 못 이루면 의미가 없이

의문의 반복처럼 반복만 하면 그게 무슨 놈의 맹세가 되며

약속성취가 되겠냐 말이죠

약속은 이루어야 하듯이

참이스라엘로 만들어 버리는 분이 참임금이다고

이 원인 없는 결과를 선언해 버리는 겁니다.

아예 이루어서 실현해서 참이스라엘이다 라고 뒤짚어 씌우는 겁니다.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답게 행동한게 아니라 말이죠


마침 주일날 말씀을 나누면서


엘리야가 본인이 850 대 1로 싸워서 임마누엘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상대적인 우상숭배자와의 대결을 통해서 약속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내 열심이 특심인데 왜 나만 남았냐 라고

도로 빠꾸 당해서 우상숭배자처럼 이전 것을 구하고 지나간 것을 구하고

처음 아담의 것을 구하고 사라질 것을 구하고 있지


숨어계신 하나님을 구하지 않더라 말이죠 세미한 음성을 구하지 않고

한 아기를 구하지 않고

요나의 표적을 구하지 않고

아까는 구했는데 왜 지금은 왜 못구하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구하면서 삐지더라 말이죠


그 부분을 나눌때에 동시에 생각이 든 것이


베드로가 인자를 보고 사람들이 누구라 하더냐 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 라고 답했는데

너희는 인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답했으면

이야 너는 나다나엘처럼 참이스라엘이구나 라고 칭찬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경계를 하십니다.

너 그거 니가 안게 아니라 성령이 알려줘서 성령의 컨닝으로 알게 된 거야 라고 말이죠


(마 16:12, 개역)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 16:13, 개역)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개역)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개역)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개역)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개역)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개역)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개역)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우리 같으면 벌써 짜증을 내고 말았을 거다 말이죠

물론 그 바로 코 앞에서는 베드로처럼 뭐라 반박도 못하겠지만요


요나 선지자도 똑같이 이런 식으로 격어요


왜 나다나엘처럼 바로 참이스라엘이구나 간사함이 없구나

라고


바로 칭찬하지 않고


엘리야도 이것을 꼭 거치고

요나도 꼭 거치고

베드로도 베드로는 놀랍게도 한번도 아냐 수번씩이나 거쳐요

그 정도로 너무 너무 사랑하신다 말이죠

즉 이 말은 베드로 쪽에서 가져오는 사랑을 가져오면 가져올수록 족족 쳐내버리시더라 말이죠


왜 이럴까요?

나다나엘과 다르냐 말이죠


사실은 나다나엘과 다른게 아니라

같습니다.


나다나엘처럼 원인 없는 결과로써

맹세를 해서 지켜서 맹세가 실현되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원인을 갖춘거죠


그 반대로 실현이 덮쳐져서 맹세가 이미 이루어진채로 덮쳐지는 겁니다.

그러니 엘리야도 베드로도 자기 쪽에서 성경퀴지 맞추듯이

답을 맞추었는줄 알았고

850 대 1 로 이긴줄 알았는데

그거 바로 삭제 시켜서


방금 맞춘 그 답이 다시 나오는줄 알았는데

안나오고 그 정답이 다시 못 나오도록 만들어 버림으로써

인간 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라고 선언하시면서


거봐 거봐 성령이 컨닝해서 알려준거 맞잖아가 되도록 하신다 말이죠


안그러면 또 맹세를 반복해요

실현 없는 맹세를 말이죠

이게 우상숭배 아니냐 말이죠

나 성경퀴즈 맞추었잖아 자나 자나 맞췄잖아 라고

그것을 삭제 시켜서


오로지 주님 쪽에서 맹세를 실현한 것을

아무 값없이 주셨는데

이 아무 값었다는 것을 이용해 먹으라가 아니라

너 도한 이 아무값없는 사랑에 동참된 같은 운명이다는 겁니다.


이제 맹세를 실현할수도 없이 맹세만 반복하고

실현도 못하면서 맹세만 하는 그런 우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실현된 채로 맹세가 이미 다 이루어진 약속의 성취자를 말하기 위해서

입이 말 못하는 한계가 닥쳐도 온 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맹세실현을 외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이 관계 속에 놓여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운명이 남의 운명이 아닌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거다 말이죠


이 맹세의 실현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저 맹세만 대따 잘하는 저 바리새인의 의 보다 더 나은 의는


맹세만 하고 실현이 없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그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로써 

이미 이룬채로 맹세를 다 이루었고

다 이룬채로 덮쳐지는 이 맹세를 실현하시는 분을 외치는 환자로써

그 환자를 고치시는 의사와의 관계를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맹세만 할 줄 알았지

그 대상이 죽은자의 하나님과 같고

신접한자 마술사

과거의 교훈으로 채우는데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자이다는 겁니다.


(마 16:12, 개역)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그래서 삼가라 즉 맹세하는 자를 삼가라 죽은자의 교훈을 쫏고

그 상대적인 베드로의 고백은 산자의 하나님이기에

성령이 알려준 것이다 라고 칭찬까지 하지 않으시면서 살아있음과 죽은자와 대조를 나타내신다 말이죠


엘리야도 그래서 그 과정을 격어야 하고 내 열심히 특심인데 왜 나만 남았냐

요나도 격어야 하고 왜 큰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은 여호와께로 라고 분명히 십자가를 먼저 외쳐놓고도

정답을 먼저 외쳐놓고도 정작 니느웨 백성을 회개시키는 선지자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원인 갖추기 가 바로

우상숭배로써 그것을 

주님의 의는 구체적보편성으로 들추어내시고

그것은 삭제 시키고

그것도 처음아담의 것이다 지나간 것이고 이전 것이고 사라질 것이다 라고

보여주시면서

그럼 뭐가 진짜 약속이냐?

맹세를 실현한 것인가 라고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아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의 로움이다는 겁니다.


아니 정답을 맞춰 놓고

다시 잃어버렸다가 잃어버렸을 찌언정 다시 내어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잃어버렸다가 다시 내어놓을려고 하니까

아까전의 정답을 다시 못 외치는 겁니다.


어 이상하다


그러니 인간 쪽에서 경험으로 체험으로 기억으로 추억으로 가둘수 없는

살아계신 펄떡 펄떡 뛰는 물고기처럼 생생한 실현된 맹세는

오히려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우기는 나의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죽었고


도리어 누가 봐도 죽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살아서 지금까지도 꿈틀 꿈틀 살아계심을 나타내실때에

이미 벌써 다 이루신 실현된 맹세를 펼치실때에

오히려 우리는 그 상황에서는 죽은자로써 증거하도록 되어 있더라 라는 겁니다.


마치 나는 가시떨기 나무의 무능한 모습이 되고

주님은 생생한 가시떨기 나무에 불 붙은 맹렬한 불꽃으로서 말이죠


그럼 이사야에서 언급했듯이

혹독한 진노 속에 넣어야 할까요 넣지 말아야 할까요

혹독한 진노를 멈추어야 할까요 쉬지 않고 계속 해서 진노를 퍼부어야 할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외친다는 말은 내가 죽음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즉 실현된 맹세를 외친다는 말은 내가 고난 속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실현될수 없는 맹세만 대따 많이 하는 바리새인처럼

누룩을 삼가라 저들의 교훈을 삼가라 라고

저들의 의문의 반복인 맹세를 추구하게 되면

놀랍게도 고난이 없어요


고난이 없으니 당연히 우상숭배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맹세만 하면 말이죠

이것이 우상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서로가 이런 신용 이런 맹세 이런 약속으로써만 살도록 되어 있어요


맹세를 괜히 언급하시는게 아닙니다.

미완성의 맹세의 세계와

완료된 실현된 맹세의 세계

이 두 세계

두 언약의 대립으로써 언급하고 있다 말이죠


마치 유행했던 하나님나라 운동하는 우상의 세계와

이미 완료된 실현된 하나님 나라라는 약속의 세계와의 대립으로써 말이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예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닌

그런 제 3의 세계, 중립의 세계는 없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미와 아직 이라고

제 3의 중립의 세계까지 만들어내는 이 인간의 우상성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총명


이것을 도리어


(마 16:12, 개역)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처럼


(계 13:18, 개역)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총명 있는 자는 이 우상의 세계를 제대로 보라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하신다 말이죠


아무리 맹세를 해도 성화론자 쪽에 가면 맹세만 하고 조건만 대따 많고

실현된 것은 아예 없어요

미완료 상태로 계속 반복하듯이

짐승의 수 자체가

저울에 달아 보니까 미달 미흡 무게가 모자르는 함량미달이다는 겁니다.


그럼 기묘라 모사라 라고 했을때에

이 모사는 총명함은

성령의 일은


충만하고 넉넉하고 넘치더라 말이죠

그것이 십사만사천명이

그것도 주님을 배신했던 자들이 용서함을 받아서

24장로처럼 면류관을 반납하듯이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놓고서도 용서함을 받은 그 사랑으로 완성되었듯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베드로로써

주님의 미쁘심으로써 주님의 믿음으로 인해 자기 믿음이 아니라

이 십사만사천이라는 동서남북으로 우주끝까지 퍼져나가는

실현된 맹세를 외치는 자가 십사만사천이다는 겁니다.


이미 승리한채로 나오는 총명이니까 모사 이니까 말이죠

모사 곧 전쟁의 책략

전쟁승리의 미완료함이 없어요


아직 승리가 덜 되었는데 승리로 나아가자 도 아니다 말이죠


그래 되면 또 원인은 내가 되어야 해요


아예 원인이 없어요

결과 뿐이다 말이죠

예 뿐이다 말이죠


그런데 예도 아니고 아니오 도 아닌

이미와 아직의 중간상태가 바로 시공간이라는 역사에 기대를 거는

우상숭배의 세계

짐슴의 수의 세계

모잘라 모잘라 미흡하고 함량미달의 세계를 여전히 손 놓지 못하고

기대하고 있다는 말은

그 역사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에 대한 기대를 손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완료가 왔는데 말이죠


그래서 제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정작 이미 맹세를 다 이룬채로 오신 분을 보라고 하신다 말이죠


그런데 교회 목사들이 자꾸 교인들에게 맹세를 강요해요

불안하거든요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마침 유대사회가 그렇잖아요

일제침략 속에 놓여졌고 로마 속에 말이죠

그리고 여기 저기서 하나님 나라 운동하고

독립운동하고


그러니 맹세가 만연하는 겁니다.

가룟유다는 오죽하면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인해

이 이스라엘을 저 로마로부터 독립시켜주는

구원자로 메시아 로 봤다 말이죠


얼마나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컷겠냐 말이죠

그런데 얼마나 실망을 했으면 자살을 해요 글쎄


맞습니다 맹세 하지 마세요 자살하게 됩니다.

그냥 이미 다 이룬 실현된 맹세를 즐기고 누리세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맹세를 너무 너무 기가막히게 잘하는 자가 속이는 자이겠습니까

아니면

이미 맹세를 다 이룬채로 실현된 맹세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속이는 것이겠습니까?


현실은

엘리야도 그랬고

요나도 그랬고

다들 자신의 맹세에 기대에 걸었다 말이죠


그러나 결과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다 말이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쳐서 진짜 현실은

너무 너무 말도 안되게

아예 원인도 없이

이런 내가 거짓인줄 뻔히 알면서도

허물이 않겠다고 다 덮어버린 그 실현된 맹세를 들고 오심에 있어서


우리는 그 의를 환자의 자리에서 누리게 되고

상상도 못했죠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 누려야 한다고 착각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속임수였고

환자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에서


다 완료된 맹세를 새록 새록 누리도록 되어 있는


오히려 내가 맹세했던 그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는 전혀 누릴수 없는

저 바리새인들처럼 그렇게 생각한 것이

다 죽은자의 교훈이고 인간의 꾀 속임수 곧 바리새인의 의 이다 말이죠
그러니 맞잖아요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가 아니면 천국에 못 간다고
저들의 의로움은

바로 우상숭배였다는 것을


그 차이로써 대조적으로 보여주시는

실현된 맹세이다는 겁니다.


내 숙제가 아예 없다 말이죠

어딜 감히 숙제해야 한다고 얼마나 사기를 쳤냐 말이죠


그 속임수에서 벗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님이 맹세를 실현해 주시지 않았다면 몰랐을


그야말로 나의 죄악을 잡아내는 이 도장 도장끈 지팡이를 잡아내시는

이 십자가의 표적이 옳았다 이것만이 진짜 실현된 맹세이다 라는 것


나의 맹세를 깨뜨리는 것만이 진짜 실현된채로 오는 맹세 

곧 예수님의 다 이루신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나의 맹세를 깨뜨리지 못하는 것은

거짓맹세일 뿐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