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미움) 간음(음욕) 맹세(악에서 나온 것),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 (마 5,20-37)


(마 5: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1, 개역)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3, 개역)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개역)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개역)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개역)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7, 개역)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8,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9, 개역)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 5:30, 개역)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31, 개역)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 5:32,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 5:33, 개역)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4,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5, 개역)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6, 개역)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마 5:37, 개역)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 5:20,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5:21, 새번역)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 ㉧출 20:13』

(마 5:22,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 ㉨그, '형제에게'.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까닭없이'가 첨가되어 있음 ㉩그, '형제에게' ㉪그, '라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람어 라가는 욕하는 말 ㉫그, '게헨나'』

(마 5:23, 새번역)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 ㉬그, '네 형제'』

(마 5:24, 새번역)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 ㉭그, '네 형제'』

(마 5:25, 새번역)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 얼른 그와 화해하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겨주고, 재판관은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어서, 그가 너를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마 5:26,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그, '코드란테스'』

(마 5:27, 새번역) 『"㉡'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 ㉡출 20:14』

(마 5:28,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

(마 5:29, 새번역) 『네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 ㉢그, '게헨나'』

(마 5:30, 새번역) 『또 네 오른손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 ㉣그, '게헨나'』

(마 5:31, 새번역)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는 사람은 그에게 이혼 증서를 써주어라' 하고 말하였다. / ㉤신 24:1』

(마 5:32,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음하는 것이다."』

(마 5:33, 새번역)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또한 들었다. / ㉥레 19:12; 민 30:2; 신 23:21(칠십인역)』

(마 5:34,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마 5:35, 새번역)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발을 놓으시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마 5:36, 새번역)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 5:37, 새번역)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또는 '악한 자'』



지난 주에 단락을 잘못 끊었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이런 실수를 통한 20절을 선두로 해서 보게 되니

오히려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신다 말이죠


우리는 이 말을 딱 들었을때에 미리 걱정부터 됩니다.

천국에 못 들어간다굽쇼 어쩌나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부딧히게 되니까

그럼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습니까 라고

천국에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라는 반응을 나타내듯이

천국에 이런 자들은 못 들어간다고 하시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가질게 아니라

오히려 진짜 진짜 기뻐해야 한다는

아니 아니 기쁘고는 못 배기게 되는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또렷하게 구분이 되니까 말이죠

마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과 인간의 속임수가

구별 구분이 가지 않으면 이것 보다 나쁜소식이 아닐수 없다 말이죠

그런데 어린아이도 다 알아먹을 정도로 또렷하다면

그렇게도 선명하게 구분이 된다면 얼마나 쉽고 쉬운 또렷함 아니냐 말이죠


마치 남자어린아이는 파란색을 여자어린아이는 핑크색을 또렷하게 구분하듯이

너무 너무 차이가 확 날정도로 정반대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만약 비스무리해 봐요 얼마나 헷갈리겠습니까?


그러니 거짓선지자 거짓영은 오히려 구분하기가 쉬워요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속에 거짓선지자의 속임수와 딱 맞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헷갈린다 말이죠

거짓영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러니 거짓선지자 거짓영을 핑계 될 필요가 없다 말이죠


왜냐하면 바로 이런 악을 허용해야 그 차이로써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비로소 보게 되니까 말이죠


어쩜 어쩜 그렇게도 다르냐 라는 차이를 누릴수가 있다 말이죠


악을 허용하지 않아 봐요

다들 예수님 흉내를 내고 돌아다닐테니

얼마나 헷갈리냐 말이죠

비스무리 하게 말이죠


다행히도 악을 허용하시니까 그 차이로써 또렷하고 명료하게 

아 이래서 다르구나 라고


핑크색과 파랑색이 또렷하게 구분이 되듯이 쉽게 알수가 있는 겁니다.


자 서두가 길었는데

그래서 바리새인 서기관을 주님께서 일부러 앞장세워

바리케이트를 치시는 겁니다.


바리새인 서기관의 의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라고


감사하게도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이 말만 듣고 걱정할게 아니라

왜 하필이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들었는가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다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누가봐도 천국에 들어가는 자의 대표성으로써 봤다 말이죠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대표성 아니냐 말이죠

다들 그렇게 봤는데


아니다 라고 주님께서 선언해 주시는 겁니다.

오히려 이런 바리새인 서기관을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의 대표성으로써

바리케이트 철조망을 쳐주셨다는 자체가


차이성을 나타내시겠다는 거다 말이죠


물론 우리는 아니면 그 당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듣고 있는 사람들

곧 산상수훈의 대상자가 된 사람들은


아니 저런 자들 곧 바리새인 서기관이라는 천국에 마땅히 갈자가 천국에 못 간다면

그럼 누가 천국에 갈수가 있겠습니까


혹시 그럼 다른 길이 있다는 말입니까?


바로 이겁니다

주님의 말씀은 바리새인 서기관 보다 더 나은 의를

인간 스스로가 저들을 부러워 하고 있는 입장이니까

당연히 없다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는 거죠


없기는 뭐가 없어

있어 라고

바리새인 서기관의 의 보다 더 나은 의가 있다는 겁니다.


일단 사람들은 왜 바리새인 서기관의 의 보다 더 나은 의가 없다고 볼까요?


그것이 바로 부조리입니다.

아니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사두개인 제사장 레위인 등등은

하루 종일 구약성경을 실천하고 공부하는 자들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당연히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실천성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말이죠

공부가 뭡니까 질문하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그런 질문도 못 할 정도로 다들 바쁘다 말이죠

한참 고민 중인 청년들에게서 나오는 질문들이

이제는 더더욱 각박해져서 그런 질문 조차도 청년들에게서 나오질 않고

중년 장년 노년이 되면 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아예 질문 자체가 없어진다 말이죠


그런데 신학생 목사 레위인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등등

이들이 뭐가 아쉬워서 질문까지 하지 못할정도로 바빠서

질문(의문) 곧 공부를 하고 또 말씀을 실천해서 의를 쌓을 여유가 있기나 한 일반인처럼

의를 못 쌓을 수가 있겠냐 말이죠


생계형으로 빠져버리면 투잡 쓰리잡을 뛰는 목사들이나 전도사가 되면 또 몰라


그 정도로 세상이 호락호락 하지 않는데

저들은 얼마나 여유로우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도 많아서

의를 쌓을 정도로 말씀실천할 여유가 있냐 말이죠


그러니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이 오히려 고맙다니깐요

그 악과의 차이로써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오늘날로 치면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보다 더 낫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 라고

누가 봐도 저런 사람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말씀을 실천하고 있으니

당연히 천국갈 꺼야 라고 기준점인냥 여겨지는 자들이


실상은 이들이야 말로 천국에 못 갈자 로써 주님께서 일부러 저들이

세상 속에서 기준점인냥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을 깨뜨리면서


그 차이로 증거하고자 일부러 저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 세우고 있다는 겁니다.


자 그렇게 되면 다들 당연히

그럼 누가 천국에 갈수 있겠습니까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겠습니까?
(다들 부자청년이 못갈정도면 그럼 누가???? 구원받노????

부자청년 자신도 스스로가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고 다가오는 자의 대표성,
자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자의 대표성으로 여기고 있는 이 기준을 깨뜨리는

가장 십자가의 밝히 보임과 인간의 속임수의 차이로써 증거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공동체 속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가장 저 사람의 믿음은 진짜 제대로 된 믿음이야 라고 하는

저마다의 공동체 속에서 내세울 대표적인 자를 앞장 세울때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의 대표성으로써 그 사람을

곧 사람들이 내세우는 그 대표적인 자를 (마치 천국 갈수 있다고 여겨지는 자)

오히려 가장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로써 언급하시면서


지금 내용을 나열하는데 


그 내용이 오늘은 바로 살인과 간음과 맹세를 통해서

아 이래서 이들은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들의 대표성이구나 라고 알려주신다는 자체가


얼마나 기쁜지


오히려 이 사람이 못 들어가면 그럼 누가 들어가냐 라고

걱정이 앞설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기뻐서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 천국" 이라고

네네 그럼요 아무도 못 들어가죠 그렇게 쉽게 들어갈 천국이면 그게 무슨 천국입니까 라고

속이 뻥 뚫려서 시원하기 짝이 없게 여기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못 들어가는 이유를 들어보자 말이죠

과연 바리새인과 서기관

오늘날로 치면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자들인지 말이죠

누가 봐도 천국에 당연히 들어갈 자가 왜 못들어가는 천국인지를 말이죠



오늘 다룰 첫 번째 내용은 바로 살인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살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자들이라고 다들 인정하는데

예수님은 그런 인간의 인식을, 그런 선입견을 다 깨뜨리십니다.


꼭 칼로 사람을 찔러 죽여야 살인일까요?

인간의 의로 가려버리면 이 살인은 영원히 밝혀 지지가 않겠죠

그 대표적인 살인자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왕은 칼 하나 손에 잡은 적 없이

우리야 장군을 죽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살인마는 아마 성경말씀이 아니면

율법과 선지자가 아니면 아무도 못 밝혀 냈을 겁니다.


밝혀내도 이 왕의 권력인 "갑"의 횡포를, "을"이 무슨 수로

정의의 법 앞에 세우겠습니까?
도리어 율법의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왕이라고 왕답잖아 를 분명히 내세우고 있으니
이거 건드렸다가는 죽어요 죽어 예수님이 그래서 마구 마구 건드리면서 경계선 곧 우상성을 깨뜨립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택도 없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기에

도리어 잡혀 죽겠지요


자 이것만 봐도 인간이 법 앞에 선다는 자체가

이미 거짓으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다윗이 오히려 법으로 무장하고 있다 말이죠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말이죠

고아 과부 나그네를 신원한다 안한다? 안한다 라는 겁니다.
다윗은 자신만을 신원하고 변호할 뿐이다 말이죠

다윗 왕도 이런 판국인데? 모든 공무원의 대표성이 바로 왕 대통령 아니냐 말이죠.


왕도 이렇게 살인과 가장 가까운 자인데

누가 살인과 가장 멀리 떨어진 의를 갖출수 있다고 여기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이 의로움을 실천하고 말씀을 실천한다고 해서

살인과 멀리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가깝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의 의식(선악관), 선입견을 다 깨드리시고자 시비를 거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무 너무 쉬워요

인간의 선입견은 그야말로 살인과 가장 먼거 맞아요

아니 이명박그네야 말로 살인자와 가장 가깝게 여겨지고

그를 반대하는 좌파나 민주주의자나 진보주의자나 뭐 또 인권주의자 등등은

얼마나 살인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멀꺼 아니냐 말이죠


그런데 그런 인간의 선입견을 예수님이 깨시는 이유는

예수님 본인이 반드시 그 깨끗하기 짝이 없다는 바리새인
민주열사, 이스라엘 독립운동가인 가룟유다 등등

살인과 무관하다고 스스로 여기는 서기관


오늘날로 치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

또는 민주주의 열사들
이들의 손에 반드시 죽으시러 왔다 하면


이 선입견 완전히 와르르 와장창 깨어지게 되는 겁니다.
나의 믜지와 무관하게 예수님이 내 손에 죽으러 왔다 라고 선언하시니까 말이죠.



아 맞다 며칠전부터 계속해서 제목을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겁니다.


내 혼자 아무리 살인하고 무관하게 살아도

상대방이 나의 손에 죽으러왔다 라고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죽던가 아니면 상대방이 죽던가? 이런 상황 뿐이라면 말이죠


에이 누가 그런 상황만 있다고 여기겠냐!! 여러 상황, 다른 여러가지 길도 있다


그런데 예수님 혼자만 그렇게 그 상황만 있을 뿐이다 라고
예면 예고 아니요면 아니요 하라 라고 밀어붙이시는 것이

바로 지금 이렇게 본문 말씀처럼 말씀하시고 행하신다는 점입니다.


그 정도로 인간이 생각한 의로움이라는 절대성 필연성 등등이

예수님 단 한 사람의 시비로 인해서 그 무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석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모조리 다 깨어지는

이 예수님이 밀어붙이는 의(율법 외의 한 의), 새로운 율법해석 앞에서


그야말로 절대성은 너무 너무 무너지기가 쉬워요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우상이였다는 겁니다.

이들의 의로움이 말이죠


뭐 선과 악은 극과 극이다구요? 천만의 말씀

선과 악은 하나 입니다. 한 몸이다 말이죠

선과 악이 하나인줄 모르는 속임수에 다 빠져놓구서는

선을 추구한다굽쇼?


그래서 선입견을 깨뜨리는데 독재 로마의 손에 죽으시러 오신게 아니라

독립운동을 펼치는 선한 바리새인의 손에 죽으시러 오셨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가들의 손에 죽으러 왔다 라고 하시면 어떻게 할꺼냐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구원관 천국관 뭐 하나님관 신론 성령론 구원론 조직신학 성경신학

구속사 신학이고 뭐고 심지어 십자가 신학 조차도 모조리 다 깨어지는 겁니다.


착하디 착한 나의 손에 죽으시러 오시겠다는 주님을 누가 말릴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 라고 옛사람에게 말했고 그것을 너희들이 들었지만

예수님은 이제 이 살인을 재해석 하십니다.

어떻게

미움을 품은 것 조차도 살인으로 해석해서

반드시 예수님 자신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받는 자가 되시겠다고 하신다 말이죠

싫어버린바 되어 반드시 욕먹는 자가 되심으로써 모든 인간들을 살인자로 규정하시는

율법의 완성자 이시다는 겁니다.

이 의로움은
놀랍게도 아무리 의를 쌓는 바리새인이라도
서기관도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도

안 쳐다보는 의로움이다는 겁니다.
왜? 미움받는 의 이기에
싫어버린바 된 의이기에

살해당하는 의로움이기에 말이죠


자 그렇다고 소위 요즘 유행하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응용한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다 말이죠

그것은 세 번째에 다룰 맹세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심리학은 미움에 강조가 있는게 아니라
용기에 강조가 있기에 그 반대급부를 끌어와서 미움을 언급하고 있지
지금 예수님께서 살인을 강조하는 취지와는 다르다 말이죠

그들은 용기야 말로 자유롭기 때문에 나는 자유할 거야 라고 목표를 세우고, 곧 맹세죠 맹세를 세우게 되면
미움으로부터 또는 자기 파괴라는 미움에서 열등감을 충분히 이길수 있다고 보는 그런 미움으로 보는데

단어만 같지 오늘 언급하시는 미움 곧 살인과는 다른 취지 이다 는 겁니다.

하필이면 엄혹한 시절 이명박그네 때에 이 책? 이 말이 유행하다 보니
일본에서 유행한 것을 수입한 입장에서 무슨 놈의 미움받을 용기냐 라고
대학생들 세뇌시킨다고 반발성이 강했지요 처음에만 반짝 유행한 말이였다 말이죠


결국 그것은 철학자들의 지혜이기에

역시나 모호하고 미흡하고 미완료인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예수님이 미움받겠다 살인당하겠다고 하시는 이유는

이미 답이 완성이 되었기에

또렷하게 십자가가 밝히 보이기 때문에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써 그 상대적인 미움과 살인 속에 놓여져도

상관없는 사랑이다는 겁니다.

(용기를 따고 가질려고 자신에게 맹세할 필요조차 할 필요가 없는

이미 다 이루어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킨다는 자들이 오히려 살인과 멀어지겠다고 하니

사랑과 한 세트를 구성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옛사람의 속성

지나가는 것 이전의 것 첫아담의 속성 이다고

반드시 이 한세트를 구성하는 의도를 무시하고 곧 약속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들이다고 들추어내신다는 겁니다.

즉 놀랍게도 개같은 이방인이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한 우상숭배자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으로써
거봐 거봐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 맞다고

기존의 모든 보편적 진리라고 여겨지는 그 보편성을 다 깨드리시는 겁니다.


예수님 본인만이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 되시는

그 당사자 본인이시니까 반드시 건축자들이 버릴수 밖에 없도록
율법 해석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의 해석을 하시는

그 당사자 이시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살인자 아닌 자가 없게 되는
이 사랑을 곧 율법의 완성을

저들은 오히려 율법을 폐하는 자들로써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니 얼마나 역설적이냐 말이죠


아무리 봐도 정도의 길을 갔다고 다들 여기고 본인도 여겼는데

정도의 길이 아닌 반대의 역행을 했던 겁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우상숭배만 가득하더라 말이죠
살인의 마음 곧 적개심만 가득해지는 겁니다
이것이 가인의 제사 보다 더 나은 제사가 등장하게 되면 비로소 나타난다 말이죠

더 나은 의가 안 나타나면 다들 몰랐을텐데
더 나은 의가 나타나버리니까 졸지에 모조리 다 엉터리로 발각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살인자가 되고


심지어 여기서 말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을 죽이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동원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라 못박으라 라고 외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새 일을 저들이 과연 구할까요 아니면

주여 저는 살인 만큼은 하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절대로 살인하지 않겠노라

절대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하는 것이 졸지에 더더욱 맹세케 된다는 겁니다.


예면 예고 아니요면 아니요 하라 말이죠

자꾸 맹세만 해요 글쎄
임마누엘을 구하던가? 아니면 나는 우상숭배자 맞습니다 라고 하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철학에서 가장 좋은 지혜가 바로 중도이다 말이죠

즉 모른다는 겁니다.

모르기 때문에 중도 중용에서 관망하겠다는 거죠
이게 맹세이다 말이죠 좀더 나은 쪽을 택하겠다고

마치 선택권이 있는냥 생각하기에 자꾸 맹세를 한다 말이죠

나는 살인자 맞습니다 맞고요 (맞습니다 예 저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자 맞습니다.)

아니요 저는 절대로 살인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던가(아니요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은

맹세한 자기
그 모호한 자아라는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말이죠
그러니 자꾸 나는 
믿는자 답잖아 라고 믿는자 다운 믿는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맹세로
자기에게 여전히 기대를 거는
그 모호하고 의문의 반복인 첫아담, 처음 것, 이전 것, 지나가는 것으로써의
의문덩어리인 자기에게 미련두는

이것이 바로 악에서 왔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이다는 겁니다.

하늘에 맹세하고 곧 하나님의 보좌이지요

땅에게 맹세하고 곧 하나님의 발등상이지요

예루살렘 곧 거룩한 성전이지요 큰 임금의 성이지요


또 누구에게 맹세 하느냐


바로 이런것들이 바로 우상이다는 겁니다.

자기 배를 위하여 예수님을 임금삼고자한 그 모습이

예수님 마저도 우상으로 섬기겠다는


왜냐하면 살인하지 말라 라는 이 율법을 누가 깨뜨리고 있냐 말이죠?

살인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지키고 있는 내가 깨드리고 있는데

안식일을 지키는 내가 안식의 주인을 죽이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안식일 지키는 나를, 나 라는 이 우상을

이전 것, 지나가는 것, 처음것, 첫아담을, 이 우상을

예수님이 나를 그냥 나도 아닌 안식일 지키는 율법을 지키는 나를 깨뜨리고자 하고 있으니

그 예수님을 안 죽이고 못 배기는

이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팽팽하게 맞서는 이 충돌을

말로 끝나는게 아니라 실제상황으로 직접 예수님이 나를 깨뜨리는 자로 다가오는 것이

진짜 약속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오늘 본문이 놀랍게도 예수님이 유대인들 손에 죽게 되는 죄목이 되는 겁니다.

얼마나 위협적인 발언 아닙니까? 유대사회를 위협하는 발언이다 말이죠
예수님을 죽이게 되는 이유가 되는 말씀들이 오늘 본문이다 말이죠


자 그렇게 인간들은 자신의 대상물로써 말씀도 대상물로 삼았듯이

살인하고 미움을 퍼붓는 그 대상물도 자신들이 직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복음은 인간의 손에 맞겨진 적이 없습니다.
인간의 대상물이 될수 없다 말이죠 인간의 숙제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 기쁜소식 예수님의 숙제는 약속의 대상물로 삼는 방식이니

(살인하지 말라 라는 계명의 대상물이 인간이 되게 되니
살인하지 말라 라는 계명을 완성하실 분이신 예수님의 숙제의 대상에 인간이 놓여지게 되니 베드로처럼)

우리가 지키겠다고 대상물로 삼는 방식은 다 이전의 것 지나가는 것

옛일 옛사람에게 해당되기에


반드시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충돌되는 곧 사건으로 다가온다는 겁니다.

이게 진짜 약속이요 언약이다 말이죠

인간이 성경공부해서 알아내고 얻어내는 언약이 아니라 말이죠


졸지에 살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그 자 예수님을 죽여 버리면

살인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지키는 내가 여전히 살인안한 채로 남아버리게 된다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죽이는 반드시 미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까지 가게 되는

나를 살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이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다는 겁니다.

십자가와 나의 대립이다 말이죠 한 세트 입니다.
이것 때문에 성화론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겁니다.
십자가와 연합할려고 하지 대립의 상태이다는 것을 인정 못하니 말이죠
여전히 죄인으로써 십자가를 보는게 아니라 의인으로써 십자가를 보니
십자가는 그저 구원용일뿐 심판으로 안 보이는 겁니다.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의로 안 보이기에

자신의 의에 십자가 믿기 라는 숙제 하나를, 맹세 하나를 더 추구할 뿐이다 말이죠


바로 이 악마성 살인성 적개심 우상성을 들추어내시는 것이

이것이 오늘 말씀하신 본문의 취지입니다.

그렇게 고상하고 착하고 기특하기 짝이 없는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키는 이 대견스러운 나를

살인자로 못 만드는 예수님이라면

세 번 부인하지 못하게 만드는 예수님이라면 그거 가짜요 우상입니다.


내가 조작해 낸 믿고픈대로 보고픈대로 듣고픈대로 확증편향으로 만들어낸 우상 예수다 말이죠

좌파들이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을(물론 이놈들도 마귀들입니다.) 눈뜬 소경이다고 확증편향이라고 공격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그들 또한 보고픈 대로 본 확증편향자

살인자라고 비방하지만 그들 또한 살인자 이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살인자 아닌 자가 없도록 만들어 버리신

이 새 일을 그들은 구하지 않기는 매 마찬가지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우상숭배자들을 치시기 위해서

골리앗을 세우시고

앗수르 라는 몽둥이를 세우고

벌거벗은 애굽을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바짝 바짝 붙이시는 겁니다.

반드시 베드로를 마귀 손에 잡혀 오도록

세 번 부인케 만드는


그래야 절대로 세번 부인하지 않겠다 라는 맹세가

그 우상이 다 깨어질것 아니냐 말이죠

이 새 일을 베드로가 구할 턱이 없으니까

사람의 일만 옛사람대로 행할 수밖에 없으니까

주님께서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구하신다 말이죠


새 일을 구하는 자로 만드심으로써

성령을 받아 어찌할꼬 라고 가슴을 치는 우는자

상한심령으로 만드시는

왜? 우상숭배자가 나 였군요 라고 울게 하심으로써


우는 자가 천국이 저희것이 되겠끔 하시는 주님의 공로 뿐이다 말이죠


라샤 ~~~ 

끼오 삐앙~ 까 ~~~


라 두 ~~~ 라  소 르 ㄹㄹㄹㄹㄹㄹ 떼  ~~~

울게 만드신다 말이죠


왜냐하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불뱀에게 물려 울게 만드시는 겁니다.

회개케 만드신다 말이죠


울게 하소서 말이죠


바로 이런 새 일

곧 광야에서 샘이 쏟도록

사막에 길이 나도록

우리는 죽음 속에 몰아 넣어서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의를 덮치게 하겠다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또렷하게 밝히 보이는 상황 각 까지 가게 된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안그러면 저 바리새인 저 서기관처럼

가짜 의로는 천국에 못 들어가게 되니까

그들 보다 더 나은 의를 주시겠다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에게

무조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모든 허물을 덮는

이 율법 외에 한 의 곧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덮어버리겠다고

수치를 보시지 않겠다고 이 사람만 행복하다는 겁니다. 


(롬 4:6, 개역)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롬 4:7, 개역)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롬 4:8, 개역)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계 16:15, 개역)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놀랍게도 이 상황을 그대로 실현해서 보여준 사례가 있는데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케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상태로 가게 되었다 말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 서기관 보다 더 나은 의를 베드로가 받게 되는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아니 그것도 모잘라서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의 로움으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마 16:18, 개역)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누가 봐도 베드로는 음부의 권세인 마귀에게 잡혀서 진 자 입니다.

그런데 일방적인 편파적인 해석으로 음부의 권세를 이겼데요 글쎄
완료 미래완료형 입니다.

아니 베드로 눈씻고 들따 보세요

과연 베드로가 마귀를 이겨본적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바로 이겁니다

이겨보기는 커녕 오히려 졌지요
바로 이것 진것이 이긴거다 말이죠

마귀와 베드로 둘 만의 문제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렇게 새로운 율법해석처럼
예수님의 일방적인 개입 떄문에 말이죠
이 관계성을 약속이라고 하고
마귀를 이겨보겠다고
음부의 권세를 이겨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오히려 우상적인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는 완악함이다 말이죠


자 그럼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라고 일부러 라도 세 번 부인해야 할까요?

이것 또한 인간 쪽에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하나의 사례를 만들려고 하는

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처럼 행동하는거 아니냐 말이죠


제가 바로 앞의 글 제목을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보라! 남은 아이가 시온 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라 라고 했는데

자꾸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씀과 라임(운율)을 타더라 말이죠


즉 이사야 43장의 새 일은 바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라는 겁니다.


그런데 다들 안 쳐다 보겠다는 겁니다.

자기 속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로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안 쳐다본다 말이죠

그럼 누가 쳐다보냐
의 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자들이 보더라 말이죠

창기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간데요
바리새인 서기관은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의 대표성이고

완전 거꾸로죠

그러니 자기 속에 조금이라도 자기 의가 있다면 안 쳐다 보도록 되어 있어요
양다리 걸치면 된다구요? 택도 없어요. 예면 예고 아니요면 아니요이지 둘다 다 할수 없어요.
그래서 못 보는 겁니다. 아니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왜냐하면 본다는 말은 곧 내가 살인자 맞습니다 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예수님의 세 번 부인 할 수밖에 없는 자 이군요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쳐다본다는 것은

내가 불뱀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말이죠

베드로의 모습이 남 이야기 할 모습이 아니라 내 모습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어요

나 살인자 맞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 말이죠


그런데 아하스 왕처럼 임마누엘 징조를 구하지 않겠노라

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안 구하겠노라

새 일을 안 구하겠노라 라고 하게 된다면


이미 우리가 아하스 왕처럼

이전의 일, 옛 일을 여전히 구하고 있다는 그 증거이다 말이죠
그것이 우상숭배자이고 즉 율법 지키는 자는 다 우상숭배자 이고
예수님의 살과 피가 필요가 없는 약속과 무관한 자이다는 겁니다..

먹으면 살인자 맞습니다 맞고요 라고 인정하는 꼴인데
그 동안 지켜왔던 율법이 다 무너지는 판국인데
십자가의 피 용서를 구할 턱이 없다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옛사람에게 살인하지 말라 라고 했다 말이죠


그럼 옛사람은

살인 하지 않을려면 이 말씀을 지키게 된 거다 말이죠


그런데 새 일이 이미 와 버렸어요

그러니 내가 안 구하던 안쳐다보던 상관없이

새 일이 쳐들어 와버렸기에

율법은 이제 미완성의 상태가 아니라

이미 율법의 완성된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이미 되어버린 상태에서

여전히 옛일 이전의 일 에 속하는 옛사람에 해당 되는 입장에서

살인하지 말라를 보게 되면

나는 뭘 해도 죄인입니다 가 되기에

(마 5:22,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2,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 ㉨그, '형제에게'.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까닭없이'가 첨가되어 있음 ㉩그, '형제에게' ㉪그, '라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람어 라가는 욕하는 말 ㉫그, '게헨나'』

(마 5:22, 공동)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미워해도 살인이요 라가 라고 해도 바보야 라고 욕을 해도 이미 살인한 거나 마찬가지로

율법의 완성이라는 기준에서, 새 일의 기준에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꼭 살인을 해야 살인이 아니라

확대 증폭이 된다 말이죠

살인하지 말라를 지켜도 살인이 되어 버려요

왜냐 율법의 완성이 떠 버렸기에


마치 사람은 하루에도 300번 이상의 거짓말을 무의적으로 하게 되는데

거짓말을 한다는 자체가 거짓말을 해서 거짓말이 아니라

거짓말의 세계 속에 갇혀 있기에

우리는 거짓말로 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데

살인 또한 마찬가지이다는 겁니다.

어떤 책은 멀쩡한 사람도 5초 만에 살인자로 변할수 있다고 범죄심리학자가 말하듯이

인간은 결국 이미 살인자로 태어난 겁니다.

이것에서 빼내주세요 라고 새 일을 구하는 자가 아무도 없는 이유는

이미 자신이 살인과 멀어졌다고 보고 있으니

누가 그런 안목을 심었느냐 라고

예수님이 따지고 들어오는 식이다는 거죠


율법의 완성을 못 구하면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을 구하지 못하게 되면

저런 안목에서 못 벗아니요


이 율법의 완성이 뭔데?

시온산에서 율법의 완성인 처녀가 낳은 아이가 글쎄

모든 우상을 깨뜨렸거든요


이게 새 일이다 말이죠

그럼 새 일의 기준에서 볼때에

살인하지 말라는 지키는 내가

바리새인 서기관의 의로움이 바로

우상숭배가 된다는 겁니다.

말씀을 지키는 내가 말이죠


그러니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은 의로움은

우상숭배자들 보다 더 나은 의로움은 간딴해요

어린아이도 다 알아요

바리새인을 따라할려고 넘어서볼려고 하니까 어려웠는데

알고보니 우상숭배자 였으니

넘어설 필요가 없는거다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의 안목을 바리새인 우상숭배자들이 너무 높이 잡았는데

그 반대의 방향인 십자가로 거꾸로 보게 되는

살인자 아니다 라고 우기는 바리새인의 의가 아닌

살인자 맞습니다 맞고요 라고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십자가를 구함으로써
인간의 꾀가 명료하게 밝혀짐으로써

괜히 성화 할려고 했으니


차라리 상한심령을 구하는 것이 맞다고

어린아이가 갈켜줘요 어린아이가

처녀가 낳은 아이가

아이는 십자가를 지는데


왜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은 바리새인이 추구하는 의를 추구하냐 말이죠

성화론자들이 추구하는 의를 그 우상숭배자들의 의를 추구하냐 말이죠


그래서 주님이 마귀 손에 광명한 천사의 손에 잡혀 오라는 겁니다.

악을 허용하시는 겁니다.


안그랬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말이죠

가버나움 보세요 

예수님을 이용만 하지 영광을 안 돌리잖아요

가버나움이 얼마나 평범한 도시 아닙니까

타락한 도시가 아니다 말이죠

그런데 소돔이 오히려 견디기 쉬웠을 꺼다 라고 하실정도로

우리는 얼마나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 빠져있는 우상숭배자

곧 살인자 임을 들추어내주심이 얼마나 고맙냐 말이죠


(마 11:23, 개역)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눅 10:12, 개역)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 덕분에 바리새인을 바리케이트를 치셔서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도리어 예수님이 도리어 바리새인을 바리케이트를 거꾸로 타넘어와서 의를 덮어 씌워주심으로써


더 나은 의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원인을 갖추는 옛사람의 방식이 아닌

새사람 새일의 방식인

원인 없이 결과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그냥 의가 되었다 말이죠


계시록에도 나오는 성전측량 거룩측량이 대제사장이 가장 거룩에서 가까운데

감사하게도 베드로를 빵 발로 차서 가장 거룩과 가장 성전과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되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살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거룩측량에서 가장 가까운 대제사장에게 거룩을 입혀주시는게 아니라

율법 외에 한 의로움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써

가장 원수가 된 이 원수 베드로를 자신의 피로

자신의 의로움을 다 덮어 용서하심으로써

허물치 않는 이 새 일 

이 의로움을 펼치심으로써

베드로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새신부가 되었을때에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더라 말이죠


(계 11:1, 새번역) 『나는 지팡이와 같은 측량자 하나를 받았는데, 그 때에 이런 말씀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일어서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어라.』

(계 11:2, 새번역) 『그러나 그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그것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계 21:15, 새번역) 『나에게 말하던 그 천사는, 그 도성과 그 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으로 된 자막대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대제사장에게 그것도 거룩 측량 성전측량에서 가장 가까운 대제사장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과연 천국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나라이겠습니까 아니면

우상의 나라가 되겠습니까?


우상 아니냐 말이죠


이게 바로 이전의 일, 옛 일,

기억치도 않는 일, 생각하지도 않는 일

말라꼬 기억하고 말라꼬 생각하냐 말이죠 처음 것은 다 지나갔는데

그게 무슨 놈의 천국이 되냐 말이죠


(계 21:4, 개역)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새 일은 바로 이 우상과 대조를 이루는데 있어서


바로 이전 것을 고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그 대표성으로써 가지고 와서

그 차이를 증거하시는 겁니다.


천국은 이런 자들은 못 들어간다고

세상에서는 오히려 이런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게 맞다고 할 때

유일하게 예수님만

십자가만 오히려 또렷하게 밝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거 인간의 속임수야 라고


자 그러니 여러분 이거 실제상황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 속임수입니다.

특히 누가 봐도 뻔한 이단들 말고요

오히려 정통이라고 우기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성화론자들과 개혁주의자들

진보주의 독립투사 민주투사 등등 온갖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하는 자들은


고맙게도 예수님께서 이들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저들의 의로움을 괜히 이야기 하시는게 아니다 말이죠

다들 그런 의로움을 부러워 하고 있는 판국인데

그거 가짜 의로움이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아예 기대 걸지 말라꼬

예수님 자신의 의로움

그것도 미움받는 의로움

살인당하는 의로움은

예수님 뿐이다 말이죠

라가 라고 바보 라고 욕 얻어 먹는 의로움은

예수님 의 뿐이예요


인간은 이런 의는 안 갖출려고 해요

저 바리새인처럼 욕 안먹는 의

미움 안 받는 의

살인 안 당하는 의만 골라 골라서 지킬려고 하지


자 그러니 예수님 말 마따나

새로운 율법 해석에 의해

시온 산에서 나오는 율법의 완성인 뜨인돌 버림받는 돌 

구하지 않겠노라가 된 임마누엘 아이 돌, 구하지 않는 아이 돌이 된

이 새 율법의 완성 해석 앞에서


우리는 우상숭배자로 명명백백하게 또렷하게 밝히 들통이 났습니다.

이 십자가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인줄도 모르고

지옥 갈뻔 했다 말이죠

저 바리새인과 서기관 또는 오늘날 성화론자 민주주의 열사 등등의 

이런 천국에 못 들어가는 자들에게 속아서 말이죠

저들 때문이라고 핑계될게 아니라

우리 속에 아 바로 이게 우상이구나

이 우상성향을 저들 천국에 못들어가는 자와 딱 맞아서

소돔과 고모라 말에 속아 넘어갈 뻔 했다 말이죠


주님께서 이런 악마들을 풀어서 깔아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휴 ~~~~ 지옥 갈뻔 했네

휴 ~~~~ 소름이 확 끼치면서

십년 감수 했다고 하듯이

수명이 십년이 감수 줄어들었을 정도로 아찔한 상황에서 빠져나왔을 정도이니

시간이 문제이겠습니까? 공간이 문제이겠습니까? 역사는 그 앞에서 의미가 없다 말이죠


자 그래서 옛사람 이라는 표현이 언급이 되고


(마 5:21, 개역)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마 5:33, 개역)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그 차이로써 새 일, 새로운 율법 해석(곧 율법의 완성인 율법 외에 한 의)로 인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자가 못 된다 라고 규정해 놓고서 천국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오히려 다 심판 받아야 하니까 심판성을 또는 지옥의 불을 강조하시는 겁니다.


(마 5:21, 개역)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개역)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9, 개역)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롬 3:19,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20, 개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개역)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3, 개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개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6, 개역)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7, 개역)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8, 개역)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9, 개역)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거꾸로 알아먹고 있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새로운 해석

진짜 율법의 완성자로써 

사랑으로써

십자가의 피 흘리신 의 로써 새롭게 해석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저런 우상숭배자 바리새인 서기관처럼

살인하지 말라를 말씀을 지키는 살인자로써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꾀에

자신의 꾀에

마귀의 꾀에

이전의 것의 꾀에

옛사람의 꾀에

속아서 빠져나올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새 일을 펼치지 않으셨다면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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