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와 그물(생존)을 던짐 ( 4:11-25)

 

우는 자가 복이 있다 회개 울어라 천국이 복이 위로를 천국이 저희 것이요

 

복역의 때가 끝났다 빛이 비취었다 위로가 되었다

 

(5:4, 개역)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40:1, 개역)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40:2, 개역)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40:3, 개역)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11, 개역)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4:12, 개역)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4:13, 개역)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4:18, 개역)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4:19, 개역)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20, 개역)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21, 개역)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개역)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23, 개역)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4, 개역)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4:25, 개역)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 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4:11, 새번역) 이 때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4:12, 새번역)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4:13, 새번역)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4:14, 새번역)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4:15, 새번역)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 9:1;2

(4:16, 새번역)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4:17, 새번역)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4:18, 새번역)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4:19,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4:20, 새번역)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4:21, 새번역)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 , '형제'

(4:22, 새번역)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4:23, 새번역)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병과 아픔을 고쳐 주셨다. / , '그가' 또는 '기쁜 소식'

(4:24, 새번역) 예수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으로 앓는 모든 환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 환자들과 중풍병 환자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4:25, 새번역) 그리하여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으로부터,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 '열 도시'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제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고 여러분 곧 인간에게 호소하는 듯이
의도적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여러분] 이라는 것이 없어요

인간이 없어요

인간이 없는데 회개 하라고 하니 말도 안되지요

처음부터 말도 안되요

 

그리고 또 말도 안되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다 라고 우기면서

그것도 참인간에 속하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에게 이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 입니다 두 번째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

 

왜인고 하니?

유대인들이야 말로 회개의 달인들입니다.

아니 그런 회개의 달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소리를 하면

과연 들어주기나 할까요?


여러분 곧 회개의 달인들이여 회개하세요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라고 하면

다들 비웃지요

? 회개를 안해서? 아니지요

자신들 만큼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이 없는데


왜 여기서 이러느냐 저 개같은 이방인에게 가서 하라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되는 거죠

 

마치 신들에게 가서 신은 죽었다 라고 외치니까

신들이 배꼽잡고 웃다가 죽는

말도 안되는 식이 되는 겁니다.

신들이 다들 이렇게 비웃습니다.

아니 신이 죽으면 신이 아니지 어떻게 신이 죽냐 라고

배꼽잡고 웃다가 배꼽이 빠져 죽었더라 말이죠

 

그리고 세 번째로 말도 안되는 소리인 이유는

천국은 그야 말로 의를 쌓고 쌓아야

선을 쌓고 거룩을 쌓고 쌓아야 천국이 된다 말이죠

그런데 완전 정반대인 회개를 하라고 하니

 

회개와 천국은 서로 상반된다 말이죠
모순이 됩니다.


회개만 할게 아니라 반성만 할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를 쌓아야, 의를 실천해야 천국에 간다 라고 해야 한다 말이죠


어떻게 회개를 해서 천국에 갈수 있겠냐 말이죠
회개와 천국은 서로 안 맞는 모순인데????

이러니 회개하라가 아니라
의를 쌓아라
선을 행하라
거룩을 쌓아라 그러면 천국에 간다 라고 해야 할 것이기에
회개 천국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

 

제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로써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이 말도 안된다 라고 이유를
제 나름대로 적어봤습니다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게 생각이 되시는 지요??
동의가 되십니까??

 

즉 예수님의 첫 외침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처음으로 외친 복음을
처음 외친 이 소리는

그야 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인

비현실적인 전혀 현실성이 없는 실질적은 것이 하나도 없다 말이죠

철저한 모순되고 서로가 대립이 되는

회개와 천국으로 증거 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해 볼께요
앞에서는 모순으로써
이제는 비현실성으로써 ~~~

 

마귀의 세가지 시험은 그야말로 인간을 구원하는 메시아 다움을 외쳤다 말이죠

너무 너무 현실적으로 딱 맞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의 답변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철저하게 세가지 시험을 통해서 비현실적으로 다가 옵니다
.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고 말이죠

성경말씀에도 나와 있지요 야고보서인가? 

(약 2:14, 개역)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5, 개역)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 2:16, 개역)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6, 새번역)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사기를 많이 치는 핑계로 삼고 있다 말이죠

그것도 마귀가 시험한 구약성경 시편이 아니라 신약에 나온다 말이죠
그 정도로 또렷한 현실적인 살아있는 말씀인데
말만 해 놓고 안하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겠습니까????

 

즉 예수님은 인간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는 반면에

오히려 마귀야 말로 자나 깨나 인간 구원만 생각하고 있다 말이죠

 

예수님은 비현실적인 붕뜨는 소리만 하시는 반면에

마귀는 그야말로 인간에게 닥친 이 문제를 직시하는 말만 하고

아주 아주 현실적인 말만 딱 요약해서 외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닌거지요
잔혀 안 맞으니까 말이죠

 

오히려 이런 마귀와 같은 천재들이 비록 메시아는 아니지만 메시아와 같은 기능으로써

우리 주변에 깔려 있으니 더 현실적이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괜히 천재 천재 천재는 역시 달라 , 그리고 괜히 부자 부자를 꿈꾸는게 아니다 말이죠

괜히 영웅 영웅 외치는게 아니다 말이죠
얼마나 필요했으면 딱 맞게 안성맞춤으로 다가오니까 너무 너무 현실적으로 보인다 말이죠..

 

자 이렇게 완벽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말이죠

 

그런데 구지 메시아가 올 필요가 있을까요?

더더욱 이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특히 마태복음 아닙니까?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을 외친거다 말이죠

과연 이런 내용들이 소용이 있을까요? 현실성이 있을까요?

아니 딴 사람은 몰라도 회개의 달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외치면

그게 과연 먹혀들 소리이냐 라는 거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 구비했으니
이제 메시아만 오면 마치 화룡점정으로 마지막에 이 완벽하게 갖춘 구조 또는 시스템이라고나 할까요

앉기만 하면 메시아만 오기만 하면 게임오바다 말이죠
그런데 안 맞아요 바퀴가 딱 들어 맞지 않으니

둘 중에 하나가 튕겨나가는 나사가
볼트와 너트의 규격이 안 맞아서 돌아가지 않고 돌려도 안 들어가 빡빡해 막혀버리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빛은 어두움에게 비추어야 빛의 값어치를 하고

이름 값을 하듯이

그 기능이 나타내잖아요

 

대 낮에 후레쉬를 비추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요

아 그런데 자꾸 회개의 달인에게 회개하라고 외쳐요

빛이 대낮에 환하게 비추이고 있는데

따로 후레쉬를 들고 빛을 비추이고 있다면

이것이 현실성 있는 모습으로 보이겠습니까?

아니면 전혀 비현실적인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추이겠습니까?

 

왜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 마나 한 아무것도 아닌 의미 없는 일을 하실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대낮에 촛불을 켜고 

스마트 폰에 있는 손전등 기능을 켜놓고 비추는 것과 같은
전혀 안 맞는 비현실적인 모순성으로써 외치고 있다는 겁니다.

 

다들 예수님께 다가와서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곧 이 말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 가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다들 천국에 갈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저 마다 지숨지숨 꺼내어 놓더라 말이죠

또 부족하면 그 조건에 맞도록 채우겠다는 자세로 무지 무지 가득하다 말이죠

얼마나 현실적이냐 말이죠

자 이러면 천국에 갈만 하죠

구원 받을 만 하죠 라고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만이
딴 사람들이 듣기에도 아무도 이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할수 없는 말만 골라하듯이

예수님만이 천국 갈 생각 아예 하덜덜 말고

회개 하라 고만 외친다 말이죠

 

이것이 천국이 덮쳐진 자이다 라고 일방적인 표현을 하시는 겁니다.

자 그러니까 다들 반응이 그럼 누가 구원 얻냐 라는 말만 외칠수 밖에 없게 되더라 말이죠

(마 19:25, 개역)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막 10:26, 개역)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눅 18:26, 개역)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런 반응만 나타내는 복음만 외치고 있으니 원~~~~~


 

이상하죠

 

전부다 유대교든 기독교든 모조리 다 천국을 하나의 대상물로 삼는 반면에

예수님은 오히려 천국이 너희들을 대상물로 삼는다고 주객을 바꾸어 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에게서는 무슨 소리인줄 모르는 단절된 소리가 된다 말이죠

말이 되는 소리 좀 하라는데
제빌 말 좀 안되는 소리 그만 하라꼬 외치는데


예수님은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말 되는 소리만 알아 먹지 말 안되는 소리 했다면

처음부터 인간이 대상물로 삼을 수 있는 인간의 숙제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겁니다.
아니 인간도 없데요
여러분이라는 그 여러분이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이다는 겁니다.

 

즉 행함은 없다는 거죠
인간은 행함으로 천국에 접근하고자 하고
행함으로 다가갈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 인간에게 행함을 행함으로 안 보는,
현실적인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라는 겁니다
.

아예 처음부터 깡그리 무시하고 들어오는 것이 천국이니까
이 천국이 회개하라고 외치는 이 비현실만이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은
기존의 현실 속에서 아무리 이 새언약을 헌 부대 속에
인간의 행함이 곧 믿음이니까
인간의 믿음 속에 집어넣어볼려고 해도 안되는 겁니다 안 돼 ~~~~~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 [행함]이 현실적이다 라고 인간이 받아들인 것은

모조리 다 우상이 되는 겁니다. 인간 자기자신의 믿음과 실천이 우상이 되더라 말이죠


바로 이 우상성과 약속이 한세트로 구성이 되어서
복음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인간이 받아들인 기독교도 우상이고

모든 종교도 우상이고

그 기준이 결국 자아 이거든요 자기자신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 자기유익에 예수님 만큼은 안 걸려들겠다고

혼자 삐죽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 라는

아주 아주 비현실적이고
가장 거슬리기 짝이 없는 걸림돌의 소리입니다
.

 

더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날 기독교라는 껍데기의 탈을 쓴
속은 강도의 소굴인 교회가

감사하게도 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소리를 안해요

그랬다가는 오는 손님들 다 나가 버리게 되니 교회 망할까봐 못하는 거죠

 

제발 교회 망했뿌라 라고 목회하는 자는 없거든요

혹 그런다 치더라도 주변의 장로들이 말려요


아니 목사 갈아치우죠
? 비현설적이니까 말이죠

자기유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니까 말이죠
안 짜르면 자기들이 망하니까 말이죠

 

즉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 말이죠

 

아니 다들 어떻게 하면 구원 얻느냐 라고
유대인들과 천재들은 이것에 고민을 하는데

예수님의 한결 같은 답변은

죽으라 라는 소리 뿐입니다

 

죽으라

 

이게 복음이예요 복음

 

기쁜소식이다 말이죠

 

아니 왜?

 

죽은자에게만 들려오는 기쁜소식이니 말이죠

 

즉 천국은 기쁜소식이고

회개는 죽은자 갇힌자 억눌린자 포로된 자 곧 죄인이다 말이죠

 

자 그러니 기쁜소식이 먼저 떳고

천국이 먼저 떳고

 

그 증상으로써 회개하는 자가 끝에서 나옵니다. 종말에서

천국에서 나오는 증상물이다 말이죠

 

그런데 다들 회개해서 천국에 갈려고 해요 글쎄

그러니 이미 벌써 했다 라고 우기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한

하나 마나 한 소리요, 아무것도 아닌 것인 광야의 소리에
왜 예수님이 충성하실까요
?

회개하라 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죽으라는 소리이거든요
왜 천국은 이 회개에 충성 할까요???
수 많은 유대인들 다 놔두로서
왜 개같은 이방인 여자 곧 귀신 들린 딸의 어미만을 찾아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누가 봐도 완전 쫄딱 망한 자 아닙니까?

왜 천국이 날때 부터 소경 된 자를 찾냐 말이죠
이것이 기쁜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왜 사랑은 어두움을 내어쫏을려고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까요?

사랑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한세트가 되는
원수의 실상을 그 발등상에 낱낱이 들추어내는 겁니다
.

과연 너희들이 말하는 현실이 진짜 현실 맞느냐 라고
그리고 반대로 이 복음을 비현실적이다 라고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이 비현실이 과연 진짜 비현실인 허구가 맞냐고
아예 대 놓고 충돌 시켜보자 라는 식입니다.

 

여러분이 진짜로 이웃사랑을 실천한다고 우기신다면

자기가 설정한 이웃 말고

먼저 원수의 내막을 들추어내는 사랑을 펼쳐보라 말이죠

뭐 박그네 이엠비를 들추어내면
그건 누구나다 다 할 줄 알기에 과연 그게 사랑일까요
? 아닙니다.

근처도 못 간 겁니다. 원수인 악의 실체를 드러내지도 못한 거다 말이죠

그래놓고 이웃사랑 실천했다 굽쇼?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사랑을 운운 합니다.

사랑을 실천했노라 라고 큰 계명, 두 계명을 지켰다고 말입죠

 

그럼 율법의 완성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연 남을 곧 이웃을 사랑했는지 보자 말이죠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누구냐 말이죠

그래 니 말이 선한 사마리아인이고 율법사 너가 보기에도

제사장과 레위인은 아니지?
제사장 레위인인과 한 통속인 너도 그럼 무엇이니?

 

자 여기서 예수님은 사랑만 외치시는게 아니라 
반드시 그 한세트가 되는 원수의 내막도 낱낱이 밝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
어두움을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면 반드시 인간의 속임수, 꾀도, 원수성도 반드시 같이 밝혀 지는 겁니다.

이것이 약속이지 한쪽만 나타내면 그거 또 우상이다 말이죠

복음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이웃이 그럼 누구고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럼 원수는 누구고

 

자 여기서 안색이 변합니다.

그럼 나 라는 말입니까 가 라는 반발성이 다 축약이 되어 있는 겁니다.

비밀은 비유는 곧 천국의 비밀이요
이 천국은 반드시 지옥백성의 내막까지 밝혀내는 것이 천국비밀이다 말이죠

 

자 그럼 회개의 달인

이웃사랑 실천의 달인에게

원수는 너야 너 라고 했다면

 

울어야 할까요

아니면 네 알겠습니다 이웃사랑 실천 계속하겠습니다 라꼬 할까요?
아니면 비로소 예수님을 죽일려는 것에만 모든 것을 거는데 꽂히게 될까요?

 

진짜 현실은 반드시 가짜 현실을 가지고 와서

한 세트로써 증거 되는 겁니다.

 

인간들이 다들 현실적이다 라고 여기는 것을

비현실로 만들어 버리고

 

누가 봐도 비현실적인

에이 그럼 누가 과연 구원을 얻을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게? 비현실 적이게? 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 진짜 현실인 복음이다는 겁니다.

인간이 조작해 낸 천국이, 진짜 천국에 의해서 침략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미 마음 속에 그려져 있는 우상으로써의 천국

곧 자기를 위한 천국

자기를 위한 구원을

 

깨뜨리지 못하는 천국은 가짜 이다는 겁니다.

 

자 그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은

왜 단절성으로써

비현실성으로써

말도 안되는 소리로써

 

회개가 아니라

의를 쌓고 거룩을 지켜야 천국이 아닌 이유가 되는 겁니다.

인간의 천국관을 깨뜨리지 못하는 천국은 가짜이니까 말이죠


회개와 천국이라는 모순된 것이 아니였다면
가짜 천국을 가짜 구원을 이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그 우상을 깨뜨리지 못하는 가짜 약속이 되는 셈이죠.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를 부르심 에서도 나타납니다.

천국이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회개자를 모으는데

이 회개자가

 

의를 쌓는 유대인과는 반대로

 

그물을 던져서
배를 버리면서

졸지에 죽은자로써 제자를 부르게 되는 겁니다.

 

아니 이것을 유대인들처럼

소위 한국교회에서는 제자훈련이라는 악마의 프로그램이

복음인냥 유행하다가 그것도 세월이 지나니 다 장난으로 밝혀져서

이제는 취급도 안하더라 말이죠

여전히 순진한 학생부나 대학부에서는 아직까지는 사기쳐서 길들여야 하기 때문에

변형된 제자훈련으로 가르치지만 여전히 속셈은 생존이다 말이죠

 

예수님의 제자를 부르심은 그야말로 죽어라 라는 소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물 버렸죠 배도 버렸죠
사적인 영역은 이제 사라져 없어진 겁니다.
쟁기를 잡고 뒤 돌아서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다 말이죠

 

곧 우는 자입니다.
이 우는 자가 복이 있고

이 우는 자가 천국이 저희것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포로 되고 갇혔고 억눌린 자 이다는 겁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로써 부르기에

 

멀쩡한 재산도 직장도 갑자기 다 잃게 되는

잃어버린자 되는 겁니다.

 

물론 끝까지 잃어버린자로 남지 않은 자도 있어야

한 세트가 된다고 했지요 두 언약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죠

나중에 다시 채우면 되니까 말이죠

또 본인 스스로가 버렸다고 우기는 착각자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의 일에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사적인 고백은 다 들통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들 자기 숙제인냥 회개를 했다고

자기가 그물을 버렸다고

직장을 버렸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렇게 가르치게 되면 또 따라하는 동질성이 나타나지

차이성이 없게 된다 말이죠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단절된 성령이 임해서
자기도 모르게 나타난 것인 은사요 선물이지
자기 스스로 의식해서 나오게 되면
내가 미쳤지 나 와이카노 라고 얼른 버린 그물을 다시 줍는다 말이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지

인간이 자기 스스로 회개의 자리에 놓겠다고 나서게 되면

그것 역시 자기 의 갖추기가 된다 말이죠
우상입니다. 약속의 반대 말이죠.

바로 그 모습을 고맙게도 고맙게도 가룟유다가 보여주는 겁니다.

마치 나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줬다, 믿어줬다 라고 하는 것이

죽은 자가 아니라 나는야 의로운 자 맞잖아가 되듯이 말이죠
살아 있는 산자 맞다고 우기는 식입니다. 왜?  3년 동안 죽은자처럼 따라줬으니까
쥐죽은듯이 군말하지 않고 따라줬다고 말이죠

 

그러니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으로써 불뱀 물린 자로써 부르신
이 의를 모르는 겁니다
.
인애와 자비를 모르고
그저 번제와 제사로 보는 시선 밖에 없는 거죠

 

역사상의 시공간 순서는 반대로 나타났지만 말이죠
반대 라는 말은 거꾸로 순서가 아니라 그래봤자 또 역사순이니까
역사 자체를 찢어버린다는 겁니다
.
찢겨진 자가 바로 회개 아닙니까?

 

그리고 불뱀에게 물려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와

안 쳐다보는 자로 갈라버리는 것이 약속이다는 겁니다.

? 인간 속의 우상을 같이 들추어내시니까 말이죠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올라가듯이 말이죠

(마 24:40, 한글킹)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마 24:41, 한글킹) 『두 여인이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눅 17:34, 한글킹) 『내가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눅 17:35, 한글킹)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눅 17:36, 한글킹)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

이런 천국이 회개하라는 소리를 안듣고자 귀를 막는 자들이 유대인이였듯이

오늘날 우리가 그러고 있다는 겁니다.
딴 천국

가짜 천국을 갈려고 거룩을 쌓아요 글쎄
 

이 천국이 회개하라 라고 외치면서 가짜 천국에게 침략하는 겁니다.

가나안 땅 정복하듯이

약속은 우상을 정복하면서 침략한다 말이죠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복음으로써 증거 됨에 있어서

 

인간 자체가 하나의 천국 덩어리요
왜? 늘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애굽을 늘 사모하고 있어서 건설하니까 말이죠
못 벗어나요 철저하게 갇혔어요

인간 자체가 구원 덩어리요

인간 자체가 선악을 아는 하나님 덩어리인, 신, 지오디, GOD, 갓, 덩어리인 것을

그러니까 우상이죠

 

이것을 어떻게 천국은 야금 야금 침략해서 죽여버리는지 멸망시키시는 지
 

더군다나 모든 인간의 대표성인 유대인을 겨냥한 마태복음에서

어떻게 유대인을 깨버리고

유대인들 본인들과 동일시 한 하나님을

그 죽은 자의 하나님을 곧 우상을 어떻게 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다.

 

이제 개봉박두 하고 개시 복음을 개시
시작 하시는 겁니다.
이 기쁜소식을 간담이 녹아서 기다리는 자 가
기생라합처럼 회개하는 자 입니다.

 

우상을 깨뜨리는 약속을 어서 오기를 고대하고 고대하는 자 말이죠

 

자 우리가 이사야 40장을 통해서

 

[위로] 라는 말과

[복역의 기간]에 대해서 살펴봤다 말이죠

복역의 세월이 끝났다고 했잖아요.
 

참으로 성경은 단어 하나 하나가 약속의 성질을 품음에 있어서

반드시 인간 자신이 읽어버리는(해석) 말씀은
오히려 약속의 성질을 가득 품은게 아니라

자신의 탐심을 가득 심은 채로 반드시 그 우상성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복음과 반드시 충돌되게 되어 있지


큐티 하듯이, 일기장 쓰듯,이 지혜 습득, 믿음 습득, 은혜 습득, 말씀실천 등등 이런게 아니다 말이죠

이것이 육이라는 습관이고
육의 습관이 아니라 육 자체가 습관이고

 

영은 오히려 찔러 쪼개니까 자꾸 죽어요

그런데 죽었는데 이상하게 다시 살아 있다 말이죠


어 이상하네 희한하네 ~~~
 

이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는 겁니다.
말도 안되는
단어, 문장,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운동력이 있는 말씀 이다 말이죠
왜? 나를 대상물로 삼으니까 말이죠

우리는 아무리 봐도 말씀이 안 움직이고 내 눈이 움직여서 읽는데 말이죠

그런 당연하고 당연한 현실을 뒤짚어 엎어 버리는 것이

도리어 찔러 쪼개서 해부 해체 작업을 하는 도살장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

복음이다는 겁니다.
나를 해체 못하는 복음은 가짜다 말이죠

 

아무튼 [위로] 라는 단어가 누구 한테만 해당 되느냐

눈물 흘리는 자에게만 위로가 해당 될꺼 아니겠습니까?

(시 126:5, 개역)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새번역)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40:1, 개역)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40:2, 개역)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40:3, 개역)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천국이 저희 것이요
저희? 누구? 우는 자 말이죠. 회개하는 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는 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이 덮쳐진자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단어를 내가 습득하는게 아니라

습득한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서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인냥

우리는 예수님에게 잡혀

말씀에게 잡혀서
말씀이 나를 읽어버리고
말씀이 나를 후루룩 빨아들여서

운동력이 내가 있는게 아니라 말씀에 있다고 아주 아주 나를 회를 쳐요 회를

깡패 조폭들이 쓰는 말처럼

그렇게 자극적이게 되면 비로소 각인이 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말이죠

 

회를 떠요 회를
월척을 낙았다고 신나게 회 떠 먹듯이 말이죠


계시록에서 포도주 틀에 성도들을 넣어서 아주 쥐어짜요 지근 지근 밟아서 말이죠

이것이 농부의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랴 말이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곧 예수님 혼자만 기뻐요 신나요
농부의 기쁨처럼

 

즉 인간의 믿음 곧 의는

회개 해서 천국에 간다 라는 순서인 반면에

 

예수님의 의는 천국이 떳기에

천국이 회개자를 만들어 생산해 낸다는 겁니다.


즉 이렇게 되면 기존의 회개자는 회개자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새로 새 회개를 해야 할 판국입니가.

기존의 회개 방식으로는 택도 없는

새술을 새부대에 넣듯이
전혀 다른 회개인 새 회개로 하지 않으면

천국이라는 국물도 없는거다 말이죠

그렇게 기존의 회개로 새부대에 넣을수가 없다는 겁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회개 새찬양으로써 새언약 속에 넣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육 자체가 습관이요 육 자체가 우상이라고 했지요

그것도 개같은 이방인도 아닌

유대인 곧 회개의 달인들에게 이 보다 더 만족한 수준의 회개도 없는

그런 유대인에게 전혀 다른 낯선 회개가 왔다면

얼른 기존의 회개를 버리고 이 새로운 회개를 쌍수를 들고 맞이할수 있겠냐 말이죠

어서어서 화친을 청해야 살아남을수 있지 않습니까?
그 앞에서 죽은자가 안 되면 죽어요

(눅 14:31, 개역)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눅 14:32, 개역)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눅 14:33, 개역)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시 2:9, 개역)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2:10, 개역)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시 2:11, 개역)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행 4:25, 새번역)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우리의 조상 다윗의 입을 빌어서, 성령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민족이 날뛰며, 뭇 백성이 헛된 일을 꾀하였는가? / ㉣또는 '아이' ㉤시 2:1; 2』

(행 13:33, 새번역)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2:7』


그러니 무조건 이유없이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 입니다 라고
천국이 떳기에 저절로 회개가 나와야 하는데
천국이 안보이니까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안 보이니까
기존의 것으로 여전히 고수하고 사수하고 손 놓을 생각 조차도 못하더라 말이죠

 

기존의 회개를 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존권을 버리는 것과 같고
자기 목숨을 쓰레기 개 차반으로 여겨서 냅따 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관료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업적을 버리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을 배설물로 여기는

한 마디로 말해서 죽으라는 소리와 같게 되는데

죄인 중에서도 괴수 래요 글쎄
가장 나쁜 놈 중에서도 나쁜놈이다 라고 말이죠

 

자 이렇게 과연 기존의 회개를, 회개의 달인이라는 그 기념비를 버릴수가 있겠냐 라는 겁니다.

 

기존의 믿음의 달인들

의로움의 달인들에게

 

새로운 의를 믿으라고 하면

과연 믿겠냐 말이죠

이 새로운 의 앞에서 아무 쓰잘데기가 없는 똥덩이 라고 보이겠냐 말이죠

 

당연히 안 믿는 거죠

 

이것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가 던지는 대충돌의 의미 입니다.
나를 돌파 하시는 겁니다. 돌파

그냥 이 말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누구는 글쎄 자기직장도 버리고 생존권도 버리도 목숨도 다 버려요

물론 그 사람은 그럴사람이 아닌 것을 우리가 다 잘알고

본인도 때려죽어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런데 복음이 떠버리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소리가 떠 버리니까

 

(40:3, 개역)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마치 평탄케 되듯이
누가 확 다리미질을 한냥

불도져로 확 밀어버린냥

그 증상으로 평평하게 불도져에 저 깔려 죽게 되었어요(김국진 버전) 라고

광야에서, 죽음에서, 으악 이라고 듣낄라 말라 한 세미한 소리가 언뜻 들렸는데

오히려 각인이 되어서 잊혀지지 않도록 크게 들리는 겁니다.

소리 볼륨은 제로인데

마음 판에 후벼 파듯이

 

으악 으악 이라고 괴성이 들려서

이리 저리 고개를 막 돌리다 보니

 

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되더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떳다는 그 이유로

 

그 증상으로 불뱀 물리게 되고

그 불뱀 물린자들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와

안 쳐다보는 자로 두 패로 나뉘어 지는

이 천국이 왔다는 겁니다.

 

이 의가 떠서 발생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더라 라는 겁니다.

의 곧 거룩 

다른 거룩은 없다 말이죠

 

이 분리, 구별, 구분이 벌어지더라 말이죠


인간의 의 쌓기에서는 전혀 나오지도 않는 일들이 막 벌어지는 겁니다.
사건으로써 말이죠
 

기존의 인간들의 거룩으로 거리두기를 구분짖기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서 가는 그런 구분짖기 라는
완악한 수건 안 벗어 광채나는 것과 족히 비교도 안되는 실상이 벌어진다 말이죠

기존의 거룩이

기존의 의가

인간들의 성화로 거룩지키기(바리새인) 말씀지키기(부자청년) 이웃사랑과 계명지키기(율법사)
아버지 말씀사랑(맏아들) 지키기 등등 이 모든 것이 거짓으로. 속임수로 드러났다 말이죠

 

모조리 다 엉터리로 밝혀지는 겁니다.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냐 말이죠

네 바로 그겁니다 불가능입니다.

진작 불가능인 것을

왜 종교라는 장치들은 가능성으로 바꾸어 버렸기에
그래야 먹고 살기에, 생존을 할수 있기에
 

그 종교성이 있는 자들에게

이 복음이 무슨 말인줄 전혀 모를 정도로

습관화 세뇌화

육화

혈통화 시켜버렸더라 말이죠

안 그러면 죽으니까 말이죠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 단절성인데

다들 여전히 성령론을 개방성으로


참 대단해요 인간이 성령을 다루어요 임의로 부는 바람이라고 해 놓고서는

임의로 못 불어서 인간에게 사로잡혀 포착이 되어버렸네?

인간들이 마음대로 조작해요

개방성으로 말이죠

안 그러는 교파가 없어 다 성령론이

나를 죽이는게 아니라 오히려 가능성으로 다들 해석하더라 말이죠

그런 성령이 어디있습니까? 십자가의 영이 인간에게 놀아나던가요?

 

이런 인간의 속임수가

 

십자가 라는 밝히 보이는 약속 곧 복음에 의해서

반드시 한 세트로써 밝혀지면서 들추어지니

 

마귀의 속임수가 들통나니 비로소 본색인 살인이 벌어지는 겁니다.

 

 

참 이상하죠

복음의 시작이 완전 막장 드라마처럼

 

회개하라 라고 죽음으로 출발해서

에라이 너나 죽으라 라고 예수님을 죽이는 사건으로 귀결되더라 말이죠

 

자 그럼 이 회개하라 라는 외침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예수님이 죽었을까요?

 

인간에게 죽을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회개의 달인들이 다 되어버린 자들인데 어떻게 죽겠습니까?

 

신을 죽었다고 외치니까

신이 어떻게 죽냐 라고 비웃다가 배꼽빠져 웃다가 신들이 죽었고

그렇게 신을 죽었다 라고 외친 신은 유일하게 안 죽은 단 하나의 신이였지만

 

정작 이것이 반대로

 

곧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곧 모든 육체는 십자가에 못 박힌다 이것이 성령의 9가지 열매이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떳기에, 천국이 떳기에,

모든 육체는 그 정과 욕심을 다 못 박히는 죽은 자로 태어난다 십자가에 못 박힌다 라고 외치니

 

너나 죽으라 라꼬 도리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지금까지도 교인들이든 비교인들이든 다들 그렇게 보고 있지만

 

이 비현실적인 십자가 곧 회개하라 천국은

도리어 모든 인간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죽인 셈이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저주에 매달아 죽인 셈이다 말이죠

 

마치 이스라엘이라는 미끼를 덮썩 무니까

시체로 만들어 버리니까

오히려 그 시체에 깔려 죽는

 

이사야 서에서 살펴봤듯이

일부러 남유다 나라르 가장 강한 강대국 들 사이에 낑기도록 해서

시체 만들기를 할 때 마다

도리어 주객이 거꾸로 되어서

그 시체에 깔려 죽는 모습으로써의 거룩전쟁을 펼치더라 말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게 아니다니깐요

그런줄 알았죠

도리어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겁니다.

 

이 십자가의 지혜가 옳았다고

의를 외치는 천재는 없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하지

 

그런 천재를 인류의 희망이라고 보고 있는 인간이 얼마나 불쌍하지도 않냐 말이죠

자기를 삼켜먹을 자들을 구원자로 보고 있으니

마귀를 메시아로 보고 있으니 말이죠

 

도대체 이런 어두움을 못 보는 우리의 어두운 눈을 누가 밝히 보여줄수 있습니까?

누가 그 앞에서 주여 나는 죽은 자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고쳐주세요 라고 외치는 것이
천국이 낳은 회개자 이다는 겁니다.

 

과연 이런 우는자가 되겠냐 말이죠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생산해 내야 하시는 겁니다.

 

누가? 천국이 말이죠

누구를

회개하는 자를

 

우는 자를


기존의 것으로 덧붙이기 해서
새부대에 담을수 없습니다
완전 딴판의 새술로써 만 새부대에 담습니다.


그 새술이 바로 우는자
 

고아

과부

나그네

 

억눌린자

포로된자

갇힌자

 

복역의 기간을 거친 감옥소 수감자를 생산해 내는 겁니다.

 

그들에게만 기쁜소식이

복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겁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요 라고 천국이 선언하신다 말이죠

백날 산상수훈 외치는 설교를 들어보면
이 천국이 선언하는 천국을 믿는 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인간이 해석해서 신상수훈 팔복을 지키는 자로 해석해서 저희것이다 라고 사기치는 것만 들어봤지 ~~~

 

생존이 아닌 죽음으로 맞이하는 겁니다.

 

누가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써

맞이하면서 영접할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하지 마세요

 

안되는데 주님 쪽에서 고맙게도 하십니다.

인간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화목제물로써 말이죠

 

이 사랑이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건 음녀이고

이 사랑이

모든 어두움을 내어 쫏는 겁니다.

 

주여 저 어두움입니다. 저 소경입니다 라고 우는 자가

이미 벌써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증상자로 내어난 새로 태어나 생산된 자로써 나타나지

 

기존의 시공간이라는 역사에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 시공간이라는 역사가 만들어낸 자아에게는 천국이 없고 우는 자도 없습니다.

혈통으로는 날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직접 나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안되는 이 단절성을 우리가 격어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능성으로 해석해 볼려고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들어갔다 나오며 되냐 할 정도가
우리의 육의 모습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소리에
위로는 듣는자는


간담이 녹아서 기쁨으로 듣는 

기생라합 뿐이였듯이

기생이라는 부정적인 표현 자체가

인간 사회에서는 거부의 대상이다는 거죠

죽은자이다는 겁니다.

 

이 죽은자에게만 위로로써 들리는

 

죄인을 부르러 왔고

죄인으로써

죽은자로써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은 겁니다.

 

산자로써는 왜 아닌가를 가룟유다라는 두언약이라는 한세트까지 다 보여주시면서

 

인간의 천국관 구원관을 모조리 다 깨뜨리는

회개와 천국이라는 이 모순된 두 모습으로써

우는 자와 복

슬픔으로 씨를 뿌리는 자와 기쁨

복역의 기간을 거친 수감자와 위로로써

 

저들의 인간의 우상성을 깨뜨리는 겁니다.

 

오죽하면 이 [위로] 라는 표현만 생각하면

유대인의 무신론이 생각나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너

과연 위로 맞기는 맞냐 라고

하나님에게서 위로는 커녕 배신을 당했다고 이제 반항으로 아예 무신론을 유행시켜 퍼트리는 겁니다.
나치와 뭐가 다를까요?

무신론이 갑자기 용감하게 담대해져서 유행한 것이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로 인해

무신론자가 태동했는데

 

원래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무신론자였다는 거죠

사실은 무신론자는 없어요 그렇게 말할 뿐이지
그저 이론이지

실상은

인간 자기 스스로가 신이라는 겁니다.

자기 외에는 믿을 구석이 없다는 거죠

 

진작 그렇게 말하지 말이죠

 

이로써 모든 인간의 믿음은 다 가짜인

오기요 고집이였다는 것이

껍데기가 벗겨짐으로써 알게 되는 겁니다.

자신의 발가벗겨진 모습을 보고 충격먹은 것이다 말이죠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모조리 다 이런 우상숭배자들로써

예수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복음은

대 충돌로써 우리의 마음판을 빵구멍 내듯이 다 뚫어버리는

 

평탄케 하는 불도져인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인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는

다들 고개를 돌려버리는


싫어버린 바 된 소리
 

하나 마나 한 소리

아무것도 아닌 세미한 음성의 소리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다들 무시하는 소리를

신나게 외치시는 겁니다.
예수님 혼자만 신나요 아무도 안 기뻐해요
그래서 새로 기뻐하심을 입은 자를 생산해내시는 겁니다.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다고

죽을려고 환장하듯이

직장 버리고 그물 버리고 배도 버리고

생존권 다 버리고

 

이 심판을 기쁘게 영접하는 자를 생산하는 이 세미한 음성을 보고
간담이 녹아서 기뻐 영접한 붉은 피를 외친 기생라합으로 생산하는 겁니다.
기생을 빼면 안되요 반드시 천국은 기생으로써 새롭게 생산하시는 겁니다.

 

과연 유대인들은 이 광경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런 광경을 다시 보고 있는 유대인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복음의 개봉박두 개시에

과연 나는 모조리 다 엉터리 죄 밖에 없고

저 개같은 이방여자 며느리 다말이 옳았다고

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치다가

 

개죽음을 당한 예수님이 옳았다고 외칠수 있겠냐 말이죠

 

이렇게 나의 숙제가 많은데

교회 다니고 목사섬기고 교인들 섬기고 교회 충성 봉사하고

말씀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직장 다니고

온갖 더러운 소리 다 들어도 꾹 참고 월급타고 돈을 벌어서

가족들 입에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자 열심히 일하는
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언제 쳐다볼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틈을 주는 세상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갇혀버렸다 말이죠
 

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듣낄라 말라 하는

다들 무시하는 저 소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복음의 개봉박두를

 

간담이 녹듯이

죽은자가 되어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쌍수를 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맞이 할수 있는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복음인지

 

목숨과 목숨을 맞 걸고 맞바꿀정도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수 있는

 

이 기쁜소식을

 

예수님은 회개자를 새로 생산해 내시면서

 

인간이 듣던 말던 그냥 밀어 붙여서 평탄케 하시는 겁니다.

 

깔려 죽는 자는 복 된 자입니다.

 

이 의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의로

자기 자녀를 생산케 하시는 겁니다.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화목제물로 인간의 모든 믿음을 불도져로 다 밀어 버리겠습니까?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사랑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뿐입니다.

이 평탄게 하는 불도져 십자가에 의해 죽은자로써

죽었다가 다시 살리시는 이 의만이
율법 외에 한 의 만이

이 우는 자를 생산하시는 겁니다.
회개자를 말이죠
태어나게 새로 생산 하십니다.

이 의를 원하는 자만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천국이 저희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이미 선언해 버렸습니다.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로 종말, 세상의 끝, 세상의 심판에서 태어나는 성령으로 난 자 입니다.

회개하는 영에서 난 자 입니다.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8, 개역)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개역)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10, 개역)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개역)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12, 개역)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개역)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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