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3-17)
(벧후 1:17, 개역)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벧후 1:18, 개역)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마 17:5, 막 9:7
(벧후 1:19, 개역)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마 3:13, 개역)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마 3:14, 개역)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 3:1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16, 개역)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개역)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3, 공동) 『그 즈음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마 3:14, 공동)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마 3:15, 공동)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 하시는 대로 하였다.』
(마 3:16, 공동)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마 3:17, 공동)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시편 2:7; 창세 22:2; 이사 42:1.』
(막 1:9,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막 1:10, 개역)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막 1:11, 개역)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 1:12, 개역)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눅 3:22, 새번역)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또는 '너는 내 아들 내 사랑하는 자다'』
(눅 3:22, 공동)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시편 2:7; 창세 22:2; 이사 42:1.』
(눅 3:22, 현대어)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려오셨다. 그때 하늘에서 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ㄴ. 창22:1.시2:7,사42:1)』
(시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 2:7, 새번역) 『"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행 13:33, 새번역)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시 2:7』
(히 1:5, 새번역) 『하나님께서 천사들 가운데서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시 2:7(칠십인역) ㉡삼하 7:14』
(히 5:5, 새번역)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시 2:7(칠십인역)』
(사 42:1, 개역)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사 42:1, 새번역)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사 42:1, 공동)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주리라.』
세례란 연합이라는 뜻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의미입니다.
성경 전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밖에 없습니다.
말 되는 소리가 없다는 거죠
즉 세례를 흔히 세례식을 눈 앞에서 보았던 경험으로 보듯이
지식적으로 이론 적으로 연합이다 라고 알면 끝이다는 식인데
정작 성령세례는
육과의 단절을 고하고 영과의 연합 속에 들어가는 영의 세계
성령의 세계에 들어가는 일종의 신고식 선포식
진짜사나이 라는 프로그램에서 군 입대 신고식을 하듯이
군대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처럼
성령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앞에 선행이 되는 것이 바로
출 애굽이듯이
출 세상
출 육
육 과의 단절
육의 세계와 단절
보이는 세계와 단절
애굽의 세계와 단절
세상과의 단절이 되고
출애굽과 동시에 입성령의 세계가 되는 거죠
자 그렇다면 성령의 세계에 들어간 자는 상대적인 육의 세계와의 충돌은 당연한 겁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난 뒤에 바로 마태복음 4장에 들어가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왜 성령은 예수님을 마귀로부터 시험받도록 광야에 몰아넣으셨을까요?
왜 단절 되었다는 저 육의 세계, 애굽의 세상에 집어넣으실까요?
말이 광야이지 실상은 죽음 속에 집어넣은 겁니다.
이것이 실상이고
미리 맛배기로 격었던 것이 바로
출애굽기 아닙니까
애굽 속에 집어넣은 겁니다.
즉 우리의 시선은 정반대입니다.
애굽이 에덴동산 같았다고 다들 부러워 하는
천국의 잔상처럼 느껴져서
이런 애굽 소위 선진국 초강대국인 미국제국처럼
다들 애굽드림
어메리칸 드림을 꿈꾸듯이
애굽을 너무 너무 사랑한다 말이죠
에덴 동산과 같은 천국 이니까
다들 너도 나도 이런 국가를 만들고자 다들 힘들게 돈 벌면서 일하잖아요
이런 우리의 시선에 낯설기 짝이 없는
성령의 세계는 우리를 저 천국과 같은 애굽의 세계와의 단절을 보여주시고자
성령세례를 받고 광야에 마귀로부터 시험받고자 광야로 몰아넣으시는 겁니다.
메트릭스 영화가 생각나죠
보이는 세계는 결국 가짜였고 짜여져 있는 각본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심으로써
이 눈에 보이는 세계의 껍데기를 홀라당 벗겨버리니까
천국이 아니라
애굽이 천국이 아니라
광야 즉 사막 속에서의 신기루 였다는 거죠
허구였다는 겁니다.
그럼 출애굽 해서 가나안 땅으로 15일 만에 바로 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광야인 사막을 뺑뺑이 40년 동안을 돌면서
오히려 더 죽음 속으로 들어가더라 말이죠
아니 왜? 가나안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 거죠?
노아 언약을 통해서
함 땅과 가나안 땅이
의의 민족인 약속의 자녀에게 공격 대상이 되는데
함 땅 곧 애굽은 안에서 탁란해서 알까기로 내부에서 외부로 터져나오면서 애굽을 멸망시키는 식이고
가나안 땅은 정반대로 외부에서 공격해서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방식이기에
전쟁 무기가 다르다 말이죠
출애굽은 의가 없어도 탈출하면서 애굽이 망하는 식의 전쟁이고
즉 나올 때 출 탈출할 때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오는 그 사이 중간에서 피가 발려져서
저쪽 애굽이 망하는 식이고
그렇게 홍해를 건너 세례 곧 애굽단절 육의 세상의 멸망으로 인한
약속 세계에 입성하는 식이고
가나안 땅 정복은 그 반대로
의가 입혀져서
의가 입혀진 가운데
외부에서 내부로 침략하는 천국의 침노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가짜 천국 탈출 진짜 천국 정복 입성이 되는 거죠
그러니 출애굽은 싸울 필요가 없지만
가나안 땅 정복은 의의 군사가 된 채로 들어가 싸우는 식입니다.
물론 이기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이미 벌써 이긴 전쟁을 누리기 위한 전쟁이다는 거죠
그러니 할례 전쟁 곧 수치 제거 전쟁이 되는 겁니다.
애굽이 나의 죄악을 가릴수 없고
이 피가 나의 죄악을 가렸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외치는
찬양전쟁이다는 거죠
결국 마치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듯이
돌 하나로 인해
산당들이 부서지는 전쟁이 출애굽이고
울리는 꽹과리를 깨뜨리기 이고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나의 죄악을 제거하지 못하니까요
이런 것? 어떤 것? 울리는 꽹과리는 소위 무기죠 전쟁 무기 딸랑 딸랑 무기들끼리 서로 부딧히면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 말이죠
제가 탱크 부대에 있었는데 탱크가 바로 옆에 지나가면
이빨이 달달달 거릴정도로 온 몸이 덜덜덜 움직일 정도로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말이죠
이런 무기를 모아야 성공할 수가 있고 성공을 유지할 수가 있다고
지식도 무기처럼
돈도 물질도 국가도 다들 가인성처럼 성공강박증에 빠져서
이것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세계가 바로 애굽이니까
계시록에서 애굽이 수치를 가려주질 않더라 라고 한다 말이죠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새번역)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유하게 되려거든 불에 정련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서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 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
(계 16:15, 개역)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새번역) 『("보아라,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다.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갖추어 입고,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며, 자기의 부끄러운 데를 남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그, '자기 옷을 지키다'』
아니 애굽 자체가 수치 덩어리로써 이 수치인 애굽을 제거해 주겠다는 겁니다.
수치를 제거 할 길은 오로지 성령이 마귀의 세계임을 보여주시고자 껍데기를 벗기지 않고서는
절대로 보일 리가 없는
거룩의 개입이, 성령의 개입이 없이는 보이지 않는 가짜 천국인 거죠
이렇게 성령의 소욕은 육의 소욕을 못하게 하고 서로가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수치가 제거 당하는자는 복인 거죠 (롬 4장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죄 사함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해서 다윗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언급하듯이 그 다윗을 또 다윗이 말한 아브라함을 사도바울이 언급하는 겁니다. 왜? 성령의 소욕에 의해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같은 처지가 되어서 수치를 제거받은 복이 임했기에!!)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말이죠
(요 1:29, 새번역)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 ㉬'제거하는' 또는 '치워 없애는'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
세상의 모든 죄를 제거하시는, 짊어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라 말이죠
그리고 이제는 이 실상인 십자가를 밝히 밝히 보이고자
어두움, 인간의 꾀, 속임수가 있는 곳에 십자가라는 푯대를 꼿는다 말이죠
어딜 감히 허구 허상이
이 실상인 십자가 떳는데 어딜 감히 설쳐대냐 말이죠
그래서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것은
이 피가 옳았다 라고 외치는
이 당사자 유다
시아버지 유다로써 며느리 다말의 이 부정한 세가지 물증이 옳았다고 외치는 이 말씀의 세계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이 부정한 십자가가 아니였다면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었다고
사랑을, 이 스캔달을, 이 불의한 십자가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옳았다고 외치는 그 증거가
이 세가지 불의한 물증이다고
십자가 이다고 외치는 겁니다.
이 불의한 십자가에 충성 하신 의만이 거룩이지 다른 거룩은 없습니다.
다른 의로움, 다른 거룩 또는 인간의 성화는 울리는 꽹과리로써 육의 자랑만 과시할 뿐이다 말이죠,
아니! 베드로 너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잖아 라고 따지면서 마귀가 드디어 나올때에
너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외칠 자격이 없잖아 라고 나올때에
이런 베드로도 용서한 사랑이라고 외치는 것이 진짜 복음
곧 고아, 과부, 나그네로써 희년을 외치고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자, 개같은 이방인 으로써 외치는 복음이야 말로
사랑의 세계가 옳았다고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의, 정의, 거룩이다 말이죠 다른 거룩은 없다 말이죠
불의한 십자가가 진짜 거룩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증거궤를 어깨에 메고 뺑뺑이 도는
나는 이렇게 원망했지만 그 증거가 세가지 증거로써 법궤 속에 있지만
이 수치를 다시는 허물치 않겠다고 덮어 피로 뿌린 이 사랑이 옳았다고 외치는 것이 바로
(벧전 4:8, 개역)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현대어) 『무엇보다 먼저 언제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ㄱ)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ㄱ. 잠10:12)』
(잠 10:12, 개역)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고전 13:1, 개역)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개역)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4, 개역)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 개역)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전 13:6, 개역)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7, 개역)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8, 개역)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9, 개역)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3:10, 개역)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11, 개역)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2, 개역)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3, 개역)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이 떳기에
의가 입혀져서 외부에서 내부로 쳐들어가듯이
천국을 침략하는
가나안 땅을 불의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기뻐하심을 입은 자는 사랑으로 이 약속을 영접하며 맞이하는 겁니다.
곧 피가 발려서 이 피가 옳았다고 외치는 자로써 의의 전쟁의 군사가 되는 겁니다.
출애굽 으로 홍해를 건널때는 물 한 방울 묻지 않도록 세례를 베풀었지만
수치를 제거 했지만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온 몸에 물에 젖어서 물에 잠겨 죽을 정도로
이 사랑이 옳앗다고 외치면서 들어가는 전쟁이다 말이죠
왜 사랑이 그 중에 제일인가?
곧 죽음으로 들어가서 맞이 하는 말씀 곧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살아서 복음을 외치는 것은 가짜입니다.
죽음으로써 복음을 외치는 것이 복음이다 말이죠
살아서 복음을 외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이다 말이죠
물 위에서 베드로 물 위를 걷고 예수님도 물 위를 걷고 이것은 사람의 일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일은
죽음으로써
바다에 빠져서 예수님을 외치는 것이 복음이다 말이죠
이것이 사랑입니다.
도대체 뉘시기에 풍랑도, 죽음도 이기십니까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말이죠
만나를 먹고도 반석을 쳐서 물을 마셔도 죽었지만
나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하셨다 말이죠
(요 6:47, 개역)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8, 개역)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 6:49, 개역)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개역)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1, 개역)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 6:52, 개역)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아니 누가 사람의 살과 피를 마실려고 들까요?
누가 그런 불의한 짖을 기뻐하면서 할까요?
그 정도로 이 불의한 십자가가 아니면 안될 정도로
우리는 마귀의 세계에서 탈출 할 길이 없는 사망의 몸에서 갇혔는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까지 심하지는 않다고 여전히 자신의 세계의 가능성에 갇혀 있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들추어내시고하시는 마귀의 세계이기에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고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 라는 죽음 속에 놓여지는 겁니다.
자 이렇게 마귀가 이미 정체가 들통난 입장에서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고 누가 속임수를 펼치냐 말이죠
이미 다 들통났는데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증거되는 이 기쁜소식 복음이
마귀와 그의 하수인 인간들에게서는 졸지에 화나게 하는 나쁜소식으로 들려오니
이 얼마나 엉터리 예루살렘 거주자요, 엉터리 약속의 땅 터민임이 드러나니까
이 얼마나 마귀가 다 장악하고 있는 터전인 예루살렘이 아니냐 말이죠
복음이야 말로 이 가짜 예루살렘의 실상을 들통내고
예루살렘을 헐라
그리고 다시 삼일 만에 예루살렘을 건설하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진짜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말씀이 나오도록 한다 말이죠
말씀의 운동력 다 이루었다를 나오도록 말이죠
죽음으로써 외치는 복음이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질 않는다 말이죠
의란 사망의 권세를 멸하심으로써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것이 의 곧 거룩이기에 말이죠
그래서 죄인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심판의 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왜 광야에서 세례요한이 외칠까요?
예루살렘에서 안 외치고?
왜 예수님은 세례를 받자 마자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가서 마귀에게 시험 받을까요?
마귀가 장악한 예루살렘을 침략하기 위해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인간의 대표성인 유대인을 장악한 마귀의 실상을 낱낱이 들추어내는 거다 말이죠
(마 11:12, 개역)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2, 새번역)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을 떨치고 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한다. / ㉩또는 '침례자' ㉪또는 '폭행을 당한다' ㉫또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약탈한다'』
(마 11:12, 공동) 『"㉠침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 ㉠어떤 사본에는 12절, 13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12]침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줄기차게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애써 힘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한다. [13]그 나라에 대하여는 요한까지의 모든 예언자와 율법이 이미 예언했던 것이다."』
(마 11:12, 쉬운) 『침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있게 성장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마 11:12, 한글킹)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폭력으로 탈취되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
(마 11:12, 현대인)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마 11:12, 현대어) 『침례 요한이 설교하고 침례를 주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공격 받아왔고 공격하는 자들이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였다.』
(마 11:2, 개역)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마 11:3, 개역)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개역)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6, 개역)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7, 개역)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개역)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개역)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마 11:10,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개역)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개역)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개역)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럼 무슨 수로 이 세상을 다 장악한
공중권세를 잡은 이 마귀를 이길까요?
바로 말씀입니다.
마귀는 세가지 무기를 언급합니다.
돌을 떡 덩이 되게 하라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무기를 가져라
가난 배고픔 굶주림을 해결하는 메시아 되라고 말이죠
그러나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그 다음 시험은 종교 라는 무기(힘, 권력, 울리는 꽹과리)
시편 다윗의 기록 대로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시편에 기록 되기를
천사가 두 손으로 떠 받쳐서 발이 상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런 기적이 임하는 구원받은 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메시아로 인정해줄 것이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요 6장 하나님의 일이 뭡니까 바로 윗 구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따라올때에 예수님이 도망치시고
또 따라잡으면 또 도망치시고 왜 도망치냐고 물으니까
나를 임금 삼고자 함은 표적을 본게 아니라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우상숭배
곧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메시아 삼고자 함에 있어도
나 너의 임금 되기 싫다고 도망쳤다 라고 하셨다 말이죠
이 종교 문제, 신앙 문제, 구원 문제, 영생문제, 천국문제,
이거 해결해 주는 메시아가 되어 달라고 하는
이것이 마귀를 통해서
모든 인간이 꿈꾸는 소망 곧 탐욕이 우상숭배 아니냐 말이죠
마귀를 대변해서 우리의 속내를 들통내시는 겁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
예수님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십자가 외에는 보여줄께 없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메시아 이게 무슨 신이냐 말이죠
인간의 하나님 개념이 신 개념이 선악 개념이 다 와르르 무너집니다
성전이 허물어 집니다.
그래서 가룟유다는 자살하죠
자신의 신 개념이 무너지니까 말이죠
오히려 그것이 구원인데 말이죠
성전을 헐라 3일만에 짖겠다는 이 기쁜소식을
부자청년처럼 나쁜소식으로 듣고 근심하고 등돌리고 돌아서 가듯이
종교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 다음의 시험이 정치 문제이다 말이죠
모든 권력을 이길 수 있는 권력 위의 권력, 최고의 권력으로 통치 할수 있는 왕좌
그런 최고의 권력을 가진 메시아
그러나 이것은 모조리 다 울리는 꽹과리이다 말이죠
사랑은 두려움을 모두 다 내어 쫏는다 말이죠
왜 저런 것들이 필요할까요?
맞습니다.
두려움 곧 가난할까봐 두렵고
구원못받을까봐 두렵고
힘이 없어 무시당할까봐 두려운 거다 말이죠
정작 이런 사망의 권세는 우리의 수치를 제거치 못한다 말이죠
아무리 가릴려고 해도
가려지질 않아요
도리어
저런 것들을 가지면 가질수록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더더욱 발가벗겨진다 말이죠
하늘 영광 버리고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라 라는 마귀의 유혹은
허구로 드러나는 겁니다.
심지어 죽기까지 복종 하셨다 말이죠
이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는 겁니다.
번제와 제사로는 수치를 제거 못해요 구원이 안됩니다.
부끄러움이 가려지는게 아니라 더더욱 부끄러움이 더 들통난다는 겁니다.
인애와 자비 로만 구원된다 말이죠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자는
바로 이런 죄악 이런 수치 이런 부끄러움 이런 벌거벗음을
마귀의 속임수로 인해
엉터리로 수치를 가리우고
엉터리로 부끄러움을 가리우고
엉터리로 발가벗음을 가린
이 모든 허물을 제대로 덮고자
우리를 제대로 죄인 만드시고자
불뱀에게 물려 죽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똥물에 7번 담구어야
물위가 아닌 물 속에 빠뜨려야
비로소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제대로 보인다 말이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의로움으로써
예루살렘에 죽으러 오셨다 말이죠
변화산 상에서 1300년 전의 모세와 900년 전의 엘리야를 소환해서
예수님 자신의 죽음 곧 별세에 대해서 이야기 하심은
복음은 바로 죽음으로써 증거 되는
곧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기 위한
사랑이 나오기 위한 조치이다는 겁니다.
아니 죽기 위함이 어떻게 기쁜소식인 복음이지요?
우는 자가 복 되는
눈물 흘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이 불의에 충성하는 자가
부정한 세가지 물증에 충성한 다말이
의롭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죽음속에서만 외쳐지는 것이 복음입니다.
죽지 않고 외쳐지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 마일리지 쌓기 밖에 안되는 거죠
왜냐하면
엉터리로 수치를 가리우고 있으니까 말이죠
십의 일조를 내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저 세리처럼 토색 삥뜯어 강탈하지 않았다는
이런 엉터리로는 죄악을 가릴 수가 없는
그런 속임수에
또렷한 십자가를 밝히 보이고자
예루살렘에 십자가를 꼿고자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도록 십자가로 사랑으로 복음으로 정복하시는
자신의 살과 피를 퍼트려서
먹고 마시게 하시고자
세례를 받으시는 겁니다.
성령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바로
육의 세계를 멸하시는 일이다고
성령을 부으시면
하나님의 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육의 세계와의 충돌로써 인해
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말이죠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고 젊은이가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꾸고
남종 여종이 예언한다고 말이죠
예언을 흔히 점쟁이처럼 미래를 본다는 식인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미래완료인 십자가를 땡기게 되니까
출애굽사건 십자가 사건처럼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죽음으로 복음을 기쁜소식을 전하게 된다는 거죠
마귀들에게는 나쁜소식이라서 죽일 수밖에 없는 안죽이고는 못배기는 사건이 터지게 되는 거구요
(욜 2:26, 개역)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7, 개역)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 2:17,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개역)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개역)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개역)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1, 개역)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개역)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개역)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4, 개역)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5, 개역)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행 2:6, 개역)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행 2:7, 개역)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행 2:8, 개역)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행 2:9, 개역)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행 2:10, 개역)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행 2:11, 개역)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 2:12, 개역)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행 2:13, 개역)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 2:14, 개역)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 2:15, 개역)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 2:16, 개역)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자 이런 상황 곧 기쁜소식이라는 복음이
바로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자의 등장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모든 거짓의 세상들이
바로 의로우신 즉 공적인 자유를 행하시는 정의를 실현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모조리 홀라당 다 발가벗겨져서 그 실상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겁니다.
먼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로부터
지옥 끝까지 다 발가벗겨지는
이 허구를 들통내시는 이 복음
죽음으로써 증거되는 이 기쁜소식을
예수님이 드디어 시작 하시는 겁니다.
드디어 해방자가
희년이 떳기에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는 기쁜소식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발가벗겨지는
나쁜소식이 되는 겁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을 과연 누가 막을수 있을까요?
왜 하나님이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사랑하는 자 라고 하신 이유를
십자가의 사건으로 인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우리 죄를 대신 감당하시고자 피 흘리신 용서로 인해
그의 끝가지 섬기심으로 인해
우리는 이 기쁜소식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수치를 당치 않는 자는 정말 정말 복된 자입니다.
허물치 않는 자는 복 되도다
(시 32:1, 개역) 『[다윗의 마스길]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현대어) 『[주께 허물 아뢰면; 다윗의 마스길] 얼마나 복되랴. 허물을 용서받은 이들은. 죄지었으나 다시 가리움을 받은 이들은.』
(롬 4:7, 현대어) 『ㄷ) `얼마나 복되랴. 허물을 용서받은 이들은. 죄지었으나 다시 가리움을 받은 이들은. (ㄷ. 시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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