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과 진노 속의 감사 (사 12, 1- 6)


십자가의 저주 속에서 나오는 감사 찬양,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심판 속에서의 구원)
불 속에 들어가서 부르는 춤추는 감사 노래하는 찬양

(누구와 함께 부르는 그 누구를 노래함 다니엘 세친구) 

다운로드

(사 12:1, 개역)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사 12:2, 개역)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사 12:3,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사 12:4, 개역)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사 12:5, 개역)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사 12:6, 개역)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사 12:1, 새번역) 『그 날이 오면, 너는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 12:2, 새번역)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나는 주님을 의지한다. 나에게 두려움 없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 / ㉠히, '야'』

(사 12:3, 새번역)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을 것이다.』

(사 12:4, 새번역)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또 이렇게 찬송할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리며, 그의 높은 이름을 선포하여라.』

(사 12:5, 새번역)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송하여라. 이것을 온 세계에 알려라.』

(사 12:6, 새번역) 『시온의 주민아! 소리를 높여서 노래하여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시온이라는 의미가 떳다면 

무조건 뜨인돌로 인해서 모조리 다 우상을 파괴하는

평평하게 높고 낮음이 없는 다리미질로 평탄케 되는

불도져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게 구원이다는 거죠

구원의 비밀

은밀한 구원은 바로

심판 속에서의 감사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시온의 뜨인돌의 활동입니다.


모조리 다 심판 하시는 겁니다.

그럼 다들 원망하고

특히 이스라엘은 여지껏 따라 와 주었고

믿어주었는데

겨우 심판으로 끝나냐 라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라?

원망이 아니라 도리어 감사하더라 말이죠


이것이 주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우상에게서 빼내신 결과물입니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의미 자체가

원인이 없어요

결과 밖에 없어요


이 결과 밖에 없다는 그 이유로 인해

이스라엘은 무조건 감사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감사 안 한다? 그럼 지 손해지 누구 손해이겠어요?


이 감사 밖에 없는

무조건 예 밖에 없는

아니오 함이 없는 일을 펼치시겠다는 것에

이스라엘이 당첨이 된 겁니다.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이 감사를 어떻게 펼치시는가를 보고

감사할 수밖에 없도록 찬양하는 자로 만들어버렸다는 거죠


그러니 이 약속 곧 예수님 자신의 맹세에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에

이 원인 없는 결과에


놀랍게도 이스라엘민족은 이스라엘을 스스로 만들어낼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그저 원인만 갖추기 할 뿐이지

결과를 못 땡겨온다 말이죠

그래서 그 결핍을 원인으로 채울려고 한다 말이죠


이스라엘 조차도 이스라엘 되게 못한다 말이죠


인간의 믿음은 원인 갖추기이지

결과 갖추기가 아니다 말이죠

그러나 믿음이 뭡니까? 원인이 없고 결과만 있는 것을 말한다 말이죠


원인 없이 껑충 뛰어서 결과에 도착할 뿐이다 말이죠
로마서 4장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의인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의인을 갖추어야만 믿음이 생긴다고 우겼는데

웬걸 믿음이 안 생겨요

7에 70번 용서가 안 생겨요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부자청년에게

믿음이 안 생겨요

결과는 없이

원인만 대따 많이 지켰다고 내밀어도 소용이 없어요

결과가 없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그 원인이 뭔가를 찾아보니

인간의 활동이 아닌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의 활동을 빼버린 겁니다.

율법이라는 거룩은

우상과의 차이이다 말이죠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우상과 차이가 나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더욱 같아져 버리는 동질성이 되더라 말이죠


그러니 산자의 하나님을 보여주기는커녕

죽은자의 하나님만 대따 외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산자의 하나님을 외칠려면

죽은자가 되어서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외쳐야 하는데

그런 죄인이 되는 자는 없다 말이죠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될려는 자가 없어요


다들 죄인은커녕 의인이 되고파 한다 말이죠

그러니 죽은자의 하나님만 외칠 뿐이다는 겁니다.

우상과 다를바가 없어요

바벨론이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될까봐 우상 찾듯이

이스라엘도 고아 과부 나그네가 될까봐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죽은자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그러니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도리어 이스라엘이 압제하는 겁니다.


자신들의 처음자리였는데 말이죠


이 처음자리를 인간들은 삭제하지만

예수님은 본인이 그 자리에서 태어나심으로써

새이스라엘이 되심으로써

기존의 이스라엘을 짤라내

원가지를 다 버리시더라 말이죠


도리어 죽은가지를 예수님 자신에게 접붙여서

산 자의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일의 스타트 출발점이 바로 시온이다는 거죠

그러니 시온에서 율법이 나온 것이

도리어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도리어 거리끼는 불편한 시온이 되는 거지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인줄 알았는데

정작 자신들은 우상숭배에 빠져서 빠져나올 기미가 없어보이고


그 차이로써 만군의 하나님으로 인해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 곧 뜨인돌 곧 율법의 완성인 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해


이방인이 돌아오는

만군이 돌아오는

그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모든 혀가 경배 찬양 감사하는

산 자의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더라 말이죠


이방인은 자신들이 엎드림으로써 산자의 하나님을 찬양 감사하는데

이런 심판 받아 마땅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찬양 감사하는데


정작 이스라엘은 죽은자의 하나님만 주구장창 외치다 보니

이 고아 과부 나그네 같은 이방인을 살려내시는 

곧 탕자를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취하더라 라는 겁니다.

그런다고 산자의 하나님을 외치는 이스라엘이냐?

아닙니다. 죽은자의 하나님을 기껏 외치는

부자청년 또 탕자의 형 맏아들 또 큰 계명이 뭐냐라고 묻는 율법사 등등

모조리 다 죽은자의 하나님이더라 말이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화론자 개혁주의자 다들 죽은자의 하나님만 외쳐요

십자가가 벌리는 사건들이 없어요

그저 자기들이 의인 답잖아 라고 지킨것만 나열할 뿐이더라 말이죠


즉 주님 자신의 맹세인 [주께서 내 주께]가 없고
그 반대인 인간의 맹세로만 집단성을 과시하는 완악성을 자랑인냥 자랑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헛맹세를 아예 추구하자 라는 식이 되는 겁니다.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니까


도리어 마침(완료)이 되는 맹세가 나타날까봐

조직이 와해 될까봐 그 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안식일날 손 마른자를 고칠까봐
자신들이 안식일 지키는 것이 헛됨이 들추어질까봐

다 이루심을 거부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십자가는 거리끼는 걸림돌 곧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놓았다 이냐 말이죠.


저들 성화론자들은 항상 인간이 할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식이 되는 거죠


불쌍히 여겨주소서가 아니라 말이죠


이 십자가의 저주를 원치 않고 도리어 짜증을 냅니다.

감사가 아니라 말이죠


이 십자가의 저주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할 몸으로써 들통당하지 않으니까

은혜와 자비를 원하는게 아니라

번제와 제사를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번제와 제사는 높은자와 낮은자를 양상 시키는 우상숭배이다 말이죠

그것을 깨뜨리고자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완성이

곧 사랑이 모조리 평평하게 다리미질 하듯이

뜨인돌이 나타나 모든 산당의 우상을 깨뜨려서 평탄케 하는 겁니다.

주의 첩경을 평탄케 말이죠


어딜 살아계신 주 앞에서 여전히 높고 낮음을 주장하냐 말이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했고, 귀신도 쫏아냈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내세울수가 있냐 말이죠


그것은 죽은자의 하나님이다 말이죠

자신이 산자라고 우기니까

그 우상성에 동의하지 않는 겁니다.


도리어 산자의 하나님은

죽은자로써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하고자

이 뜨인돌에 바짝 낮추어진 죽은자의 모습으로써

고아 과부 나그네로써 희년을 외친다 말이죠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덮쳐진 감사이니까 말이죠

감사 하지 않을수가 없는 겁니다.


자 이렇게 주 여호와의 의로움 곧 거룩이

죽였다가 다시 삼일만에 다시 살려내심으로써

이 간극 이 공간에서 태어난 자가 바로


예수님의 첫 부활되심으로 인해

부활의 첫 열매 되심으로 인해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서 나오는

예수님의 다리 붙잡고 건짐받은 자들인


곧 예루살렘에서 말씀 곧 예수님이 나옴으로써

죽었다가 다시 살려내심을 당한 주님의 공로로 줄줄이 딸려나오는 자가

바로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오듯이

예루살렘에서 그 말씀을 따라 나오는 남은자 곧 죽었다가 다시 살려냄을 당한

예수님의 열매입니다.

인간의 열매가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그런 자들은 자기 교회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믿음이나 행함을 자랑할 리가 없지요

오로지 십자가만 자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이 십자가가

이 하나님의 저주가 옳았다 라고 말이죠

이 심판이 나의 우상성을 깨뜨리는 유일한 하나님의 비밀이요

은밀한 구제이다 말이죠


향유를 부은 여인이 그래서

멀쩡히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미리 장사 치르듯이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겁니다.


왜 멀쩡히 살아있는 분을 죽은 시체에 향유를 발라 딱듯이 할까요?


이 분이 유일한 우상제거자 로써

이 분이 기준으로써 우리는 헤쳐모여 라고 

흩으셨으니 다시 모을것이고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찢으셨으나 다시 꿰매실것이고


(사 49:5, 새번역)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렘 31:10, 새번역) 『"뭇 민족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듣고, 먼 해안지역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께서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이 그들을 지켜 주신다.'』

(사 11:12, 개역)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겔 37:11, 개역)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겔 37:12, 개역)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 37:13, 개역)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37:14, 개역)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호 6:1, 개역)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1, 새번역) 『이제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이 상처가 도리어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이 진노가 도리어 감사가 되는 겁니다.


이 사단의 가시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곧 감사가 차고도 넘친다 가 되는 겁니다.


(고후 12:7, 개역)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7, 새번역)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없음』

(고후 12:7, 공동)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후 12:8, 개역)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낮추시는(평탄케) 주님의 의로움이 계속 계속 매일 매일 넘치더라 말이죠

감사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감사의 몸이 된 거죠

감사를 지킬려고 이방인처럼 중언부언 감사라는 용어로 말을 많이 하는게 아니라 말이죠


그러니 이 은밀한 구제가 비밀의 구제가 이 분에 의해서 완성 되었다고

향유를 부은 여인은 감사로써 외치는 겁니다.

그 감사가 글쎄 예수님을 멀쩡히 살아있는 분을 글쎄 시체취급해서

향유를 발라서 미리 장사를 치르고 있으니


이런 감사

이런 구제

이런 기도


비밀이라서 무슨 의미인지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수가 없는 겁니다.


지난주 음성파일에 하나 빠뜨린 것이 있는데


(사 48:4, 개역)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사 48:5, 개역)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 말이 내 신의 행한 바요 내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의 명한 바라 하였으리라』

(사 48:6, 개역)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사 48:7, 개역)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사 48:8, 개역)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사 48:9, 개역)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사 48:10, 개역)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사 48:11, 개역)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 48:12, 개역)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사 48:13, 개역)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사 48:14, 개역)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예언하였느뇨』

(사 48:15, 개역)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사 48:16, 개역)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사 48:17, 개역)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7절입니다.


(사 48:7, 새번역) 『이것은 이제 내가 창조한 일이다. 옛적에 일어난 것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네가 들어 본 일이 없는 일이다. 네가 전에 이것을 들었더라면 '아, 바로 그 일,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번 일만은 그렇지 않다.』


보라 내가 새 일을 이루어 놓았다 이제 나타났으니 너희가 보고 앎이라 라고 비밀

곧 여호와의 은밀한 비밀의 구원을 선언하시는 그 새 일을


이스라엘은 자꾸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네 압니다 안다니깐요 네 봤습니다 봤는것 봤죠? 봤으니 됐죠 라고

자꾸 안다고 합니다.


차라리 모릅니다 저는 귀가 있어도 눈이 있어도 볼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라고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여 죽여주시옵소서

주상전하! 죽여주시옵소서 라고 과잉 과한 나라(개콘)처럼

과잉 제스쳐(감사란 과잉 진리에서 오기에, 결과에서 오지 원인에서 안 오기에)를 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네 안다니깐요 라고

네 예수님은 구속자 맞습니다 맞고요

구원자 맞고요

이스라엘의 거룩자 맞습니다 됐지요? 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빈정거리는 겁니다.


(사 47:4, 개역) 『(우리의 구속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라)』

(사 48:17, 개역)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사 49:7, 개역)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마치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아하스 왕이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다고

나도 알 것 다 안다 라고

자기 쪽에서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이 이스라엘 나라를 지키고자

저 적들로부터 구원하고자

이스라엘 왕 다움을 다 갖추겠다고 하는 식입니다.


이게 뭐가 나쁩니까?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다른 민족이라면 당연한 도리로써 나오는 모습이겠지만

이스라엘은 다르다 말이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말하기 위해서

만군의 여호와를 말하기 위해서


심판 속에 놓여지는 죄인이 되어야 하는데


자꾸 자기가 거룩한 자가 될려고 한다 말이죠

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만군의 여호와이니까

나도 거룩한 자가 되어서 거룩한 분을 외치겠다고

위에서 언급한 성화론자들의 논리와 딱 맞다 말이죠
자꾸 원인을 갖출려고 자기 숙제로 빠져버려요
원인 없다니깐요 결과 밖에 없어요 예수님의 숙제
임마누엘의 숙제를 구해야
(실로암 소경은 자기 숙제가 없어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님 숙제 보여주세요 밖에 없어요
그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자기 숙제를 나열해요
원인을 갖춘것을 꼭 이런 자들 앞에서 나열해요
이것이 결과가 없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성화론자들의 모습 말이죠.
자 이렇게 소경은 숙제를 못한다고 이 실로암 소경을 가지고
자신들의 의로움을 대로에서 자랑하듯이 가지고 노는 겁니다.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안 될려고 우상을 찾는 모습과 똑같다 말이죠 이게 무슨 자랑이냐 말이죠
불 속에 들어가면 다 사라질 이전의 것인데 새 것이 없어요
막상 애굽 앞에서는 엎드리면서 이 고아 과부 나그네 앞에서는 등쳐먹더라 말이죠)


그럴꺼 같으면 말라꼬 은밀한 구제가 필요하냐 말이죠

그냥 구제 하면 되지

말라꼬 은밀한 기도가 필요하냐 말이죠?

그냥 기도하면 되지


말라꼬 새 일을 보여주시냐 말이죠

이스라엘이 습관적으로 네 압니다 알고 말고요 라고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당신의 비위를 맞춰 드리면 될꺼 아닙니까 라는 식이 되니


이게 무슨 놈의 새 일이요 비밀 은밀함이겠습니까?

우상에게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말이죠


우상이 뭡니까 고아 과부 나그네가 안되고자 만들어낸

그야 말로 생존의 끝판왕 아니냐 말이죠


물에 빠진자들의 최후의 보루인 지푸라기 아닙니까?

굿판을 벌리고 점쟁이를 찾고

미리 지혜를 쌓고자 철학자를 찾고 선생을 찾고 종교지도자들을 찾는다 말이죠.

그 모습의 내막을 낱낱이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성화론자가 그런 식으로 거룩을 갖추는 겁니다.

우상 찾듯이 말이죠


만약 인간에게 저런 최후의 보루인 지푸라기가 단 하나도 없을때에

마치 날 때부터 소경일때에

누가 봐도 죄인일때에 물론 자기 죄인지 부모죄인지

아무튼 원인 없는 결과로서의 죄인 일때에


그의 소경됨이 그의 죄인 됨이

원인 없이

결과 밖에 없는 죄인일때에


과연 원인인 누구입니까? 부모입니까 아니면 자기 죄 입니까?

부모라면은 원인이 또렷하지만

자기 죄이면 너무 너무 억울해서 죄를 더 깊이 연구해서 논문 내어서 발표해서

박사임을 입증하게 되니까 

얼마나 밝히고 싶겠냐 말이죠 오죽 하면 예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말이죠

부모 죄 입니까? 자기 죄 입니까?


(요 9:1, 개역)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 개역)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4, 개역)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5, 개역)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의 답변은 엉뚱합니다

동문서답 이다 말이죠


즉 누구 죄이냐 라고

마치 나도 압니다 안다니깐요 라는 비아냥 깐족거리는 인간의 거짓맹세인 신앙 앞에서

너는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알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새 일을 보여주겠다 라고 보여줬으니까 다시는 모른다는 소리를 못하게
증거로 삼아버리시는 겁니다. 심판의 기준 말이죠.


이것이 새 일입니다.

실로암 소경에게는 하나님의 새 일을 보여주고

동시에 저들 바리새인에게는 도리어 소경됨을 완악함을 사단의 회 임을

또렷히 밝히는 새 일이 된다 말이죠


맞잖아요 보기는 보아도 듣기는 들어도 알수 없고 깨달을수 없는

은밀한 구제 말이죠


자 이렇게 우리의 죄악이 들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나오냐 말이죠

인간의 감사는 원인이 있고

조건이 맞아야 감사가 나오지만

정작 그런 감사는 우상들도 다 하는 감사이기에

은밀한 감사가 아니기에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으로써 더더욱 감사용어로 자신을 도배할 뿐이다 말이죠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도

무화과 나무 잎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라는 감사는

불 속에서 오히려 더더욱 또렷하게 나타나는 겁니다.


인간의 용어나 말 언어의 개념이 아니라


감사 이신 예수님과 함께 춤추느냐의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것이 감사이다 말이죠

불 속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다 타버리는 잿더미가 될 수밖에 없다 말이죠

혼자 감사할려고 아무리 해도 안나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그 불 속에

진노 속에

심판 속에 계신다면

아무리 뜨거운 불이요

소멸하고 파괴하는 불이여도


감사와 함께하는 이상

예수님과 함께 해 주시는 이상

감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이 보다 더 감사할 수가 없다 말이죠


그러니 이 시온에서 나오는 율법의 완성인 십자가라는 뜨인돌

모든 자들을 다 다리걸어 넘어뜨리는 실족케 하는 거리끼는 십자가가

감사 안하고는 못 배기도록 하시는 겁니다.


평평하게 평탄케 모든 우상을 깨뜨리시니까요

그 우상이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부서뜨릴때에

나도 같이 부서지면서

다시 감사로 태어나는 겁니다.


이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 새 일을 당하기만 하면 됩니다.


네 압니다 알고 있다니깐요 라고

빈정거리면서

여전히 나의 숙제로 착각하는 나를

매일 부서뜨리는 이 시온에서 나오는 감사의 돌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