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 생존에 위협이 되는 예수님을 아무 상관이 없으니 떠나 달라 간구함 (마 8,28-34)
아무 상관 없게 만들기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
귀신들린자 고치심과 제발 떠나시기를 간구함
(마 8:34, 공동) 『그러자 온 읍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러 나와서 예수를 보고는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간청하였다.』
(마 8:34, 현대어)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다 달려 나와 예수를 보고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마 8:28, 개역)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마 8:29, 개역)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 8:30, 개역)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마 8:31, 개역)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마 8:32, 개역)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 8:33, 개역)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마 8:34, 개역)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 8:28, 새번역)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사람들의 지역에 가셨을 때에, 귀신 들린 사람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와 마주쳤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서, 아무도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없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거라사' 또는 '겔게사' 또는 '가자라'』
(마 8:29, 새번역) 『그런데 그들이 외쳐 말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마 8:30, 새번역) 『마침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마 8:31, 새번역)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하였다.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우리를 저 돼지들 속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마 8:32, 새번역) 『예수께서 "가라" 하고 명령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 돼지 떼가 모두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서, 물 속에 빠져 죽었다.』
(마 8:33, 새번역)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도망 가서, 읍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알렸다.』
(마 8:34, 새번역) 『온 읍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를 보고,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제발 예수여 우리 마을에서 나가주세요 라는 겁니다.
즉 아무리 기쁜소식인 희년을 몰고 와도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는
즉 나 라는 우상 곧 돈과 생존과 먹거리인
경제 종교 정치와 상관이 없으면 나가 달라고 하는 것이 인간에게서는 결론이 되는 겁니다.
예수를 믿어도
교회에 나와도
결국은 나 라는 자기를 위한 우상이 되어주지 않으면
돈이 되지 않으면 나가 달라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되는 인간만 오라는 겁니다.
돈이 안되면 교회에 덕이 안되니까 말이죠
모든 가치가 과거에는 우상이였고
현대에는 돈입니다.
바로 이것을 복선으로 깔고
귀신들린 자 두 사람이 무덤에 사는 것을 배치시킨 겁니다.
귀신에게 포로 된 자, 갇힌 자, 억눌린 자가 졸지에
귀신 들림으로 인해 접촉점이 되어서
예수님 곧 희년을 만나서 고침을 받게 되지만
정작 귀신들리지 않은 자는
마치 귀신이 이 두 사람에게서 빠져나갈 때에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우리를 괴롭히려 왔나이까
그래서 시계를 보고 아직 때도 안되었는데 왜 벌써 왔냐고
반칙이다 반칙이다 예수는 너무 일찍 온 반칙을 각성하라 각성하라 라고
심판의 주 앞에서 시위를 벌리는데 있어서
아차피 말이 안통한다는 것을 알고
정 심판할려면 저 돼지 떼 속에 집어넣어 달라고 하니
돼지떼 속에 들어가 버려
물속에 떼거리로 들어가 몰사했다 말이죠
여기서
졸지에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해 버렸습니다.
마치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라는 전재산이
종말을 확 땡겨버리게 되면
재산상의 손해 정도가 아니라
전 지구의 모든 것이 불타 버리게 된다 말이죠
그러니 마귀 말이 맞다 말이죠
왜 벌써 오냐
아직 때가 되지 않았잖아
반칙이다 반칙 이라고 말이죠
귀신의 입장에서는 이 두 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천국이 됩니다.
거기에 비해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전재산
즉 하루 일당이 요즘 12만원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건강한 자이니까 그렇고
이것을 반으로 나누면 여자는 남성 임금의 70프로 이니까 8만 4천원
그 당시 두 렙돈은 하루 품삯의 64분의 1 64/1 이라고 하니 1312원
그리고 최하의 동전 단위이니까 천원 아니면 백원 이백원이다 말이죠
즉 이 귀신들린 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물로써
본인들 자체가 하나의 두 렙돈 동전같은 무가치한
그 정도로 귀신들린 세계의 증거물이다 라고
모든 인간의 대표성으로써 주님이 배치시켜서
희년이라는 복음을 증거 하시고자 동원하시는 겁니다.
즉 귀신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누리고 있는 이 천국을
졸지에 예수 때문에 다 망치게 되는 셈이고
반대로 귀신들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포로됨에서 자유케 하시는 주님을 증거 하는
의사를 증거하는 죄인 곧 환자로써 동원이 되는 겁니다.
자 여기에 그럼 소위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갑자기 원치 않게 배치가 되는 자들이 있는데 바로
돼지 떼의 주인들인 동네사람들입니다.
공동 사육인지 개인 사육인지
아무튼 대표성으로써 돼지떼가 몰살하게 된다면
이것은 남의 사정이 되는게 아니지요
자신들과 상관이 있게 됩니다.
상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귀신이 빠져나오면서 하는 귀신의 말 중에
[상관]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이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냐 말이죠
사람이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신과 맺는 인연은
모조리 다 이익 유익의 유무를 따지면서 형성합니다.
자기 유익이 되면 가까이 두고 또 관심을 두어서
어떻게 해서든 인연을 계속 맺고 유지할려고 하고
자기 유익이 안되면 어떻게해서든 멀리 멀리 두어서
아무런 상관이 없도록 하고자 하는
자기 유익이 그 기준이 되는 겁니다.
어쩜 귀신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이 같냐 말이죠
자 이렇게 귀신과 예수님이 서로 공방을 벌릴때에
갑자기 제3자로 남지 않고
이 시시비비에 졸지에 적극적으로
아주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자들이 바로
돼지를 기르는 마을 주민들입니다.
자기 것이 건드려지지 않을 때는 그저 3자로 남아서
남의 싸움에 불구경하듯이 구경만 하고 제3자로 남으면 됩니다만
졸지에 자기유익에 졸지에 금이 가게 되는
재산 상의 손해가 발생하게 되니까
안 끼어들고 싶어도 안 끼어들 수가 없는 겁니다.
소위 가족 중에 누구 하나 갑자기 예수 믿게 되어서
교회 다니게 되면
그렇게 반대하는 자들이 갑자기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입니다.
그럼 돈 문제 해결해 줬다 칩시다
그럼 다른 것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래 저래 예수와 엮이는 일을 그들은 싫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돈 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렇게 드물거든요
더군다나 경제침체가 장기적으로 계속되면 말이죠
모든 기준이 돈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까발리거든요
귀신 들린 세계이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인간은 자신을 돈과 일치화 시켰습니다. 합일 동질성으로 말이죠.
안 그러면 사회가 가만히 두질 않아요
그런 사회를 어떤 한 개인이 와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다 흙탕물로 흐리게 한다는 겁니다.
사회 질서도 무너지고요
교회 질서도 무너뜨리고요
아무튼 골치가 아파요
교회를 유지 할려면 돈이 필요한데
이 예수라는 작자가 오기만 하면
경제가 휘청거린다 말이죠
말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지
그 예를 든 야고보서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경제가 쫄딱 망하는 겁니다.
1 비 오지 않기를, 3년 6개월 동안 비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해 보세요
경제가 날라가요
2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아들 이삭을 바쳐보세요
기업이 날라갑니다. 기업을 무슨 수로 물려줍니까
대를 이을 자식이 죽으면 대가 끊기는데
종교가 날라가요 글쎄
3 세 번째는 누굽니까? 빠진 사람 아 기생 라합의 거짓말
누가 옳았습니까? 거짓말 하는 기생 라합이 옳았다 말이죠
기생 라합은 자신이 속한 민족인 가나안 민족이 틀렸다는 겁니다.
즉 거짓말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 거짓말이 종말과 연관이 되었다는 겁니다.
심판 주와 상관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귀신은 이 심판 주와 상관이 없다고 왜 벌써 오냐 라고 따지잖아요
막살기가 글쎄 종말과 연관이 된다는 겁니다.
막살기를 실천하는 아주 아주 무식한 자가 막생기던데
부메랑을 정통으로 맞게 되는 거죠
이것이 십자가의 정치입니다. 인간의 정치는 죽은자의 하나님이라서
종말과 즉 심판의 주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 인간의 정치이고
기생 라합의 거짓말은 이 종말과 다 연관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의 두 사람의 기도중
세리의 기도는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비로소 심판의 주를 봐 버렸다 말이죠
누가 옳습니까? 가나안 민족이 옳았습니까?
그렇다고 정탐꾼인 이스라엘이 옳았습니까?
기생라합은 오로지 나의 간담을 녹게 만들어
40년 동안 벌벌벌 떨게 만든 심판 주는 당신뿐이며 당신만이 옳았다 라고
전재산을 자기 것도 아닌데 자기 민족과 토지고 뭐고 다 팔아버리더라 말이죠
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 옳았습니까?
지금 졸지에 돼지 떼 몰살로 인해
경제가 순식간에 파탄 났다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특정 구역인 귀신 들린 자 두 사람 때문에
그 무덤가 근처 지역을 아무도 지나갈수가 없을 정도였던 그 구역을
이제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다 퍼트려 버리니까
졸지에 예수님이 이제는 다닐수 없는 구역으로 만들어 버리더라 말이죠
참 이상하죠
예수님은 귀신들린 두 사람을 고치심으로써
그 금지구역을 없애 버렸는데
정작 금지구역이 아니였던 곳은
예수님을 금지인물로 만들어서 그 지역을 못 오도록 조치를 해 버렸다 말이죠
졸지에 이것이 수수께끼 비밀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모든 사람들이 귀신들린자 때문에 금지구역을 설정한 곳을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금지구역 해제를 시켰고
그동안 모든 사람들이 다니던 곳이 졸지에 예수님을 금지시킴으로써
저들 스스로가 금지구역을 만들어 버렸다 말이죠
의사가 졸지에 바이러스를 해결해서 통제구역을 해제 시켜놓으니까
사람들은 그 의사를 바이러스 취급해서 그 의사가 못 오도록 통제구역으로 설정해 버리는 겁니다.
졸지에 스스로 귀신들린 자의 구역으로 만들어 버려요
물론 예수님을 딸랑 한 명이니까 티가 안나겠지만
수십명 수백명이 되는 마을 주민은 다수이니까
자신들 스스로가 귀신 들린 자로 여길 수가 없고
예수 하나만 금지시켜 귀신취급해 버리면 누가 대세를
그 흐름을 어길수 있겠냐 말이죠
자 이렇게 예수님은
누가 진짜 귀신들린자 인가? 라고 보여주시는 겁니다.
누가 진짜 소경인가?
누가 진짜 앉은뱅이인가?
누가 진짜 문둥병자 인가? 제사장인가? 문둥병자인가?
(마 8:4,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누가 진짜 강도만난자 인가? 제사장 레위인?
율법과 선지자는 본인이 강도 만난 자임을 모른다면
이 일반화 임을 평준화 임을 모른다면 백이면 백 피하게 된다 말이죠
(눅 10:30,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1, 개역)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2, 개역)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3, 개역)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안식일 날만 골라서 예수님이 병을 고치는
즉 손마른자를 고친다면
아무리 안식일을 지켜도 안식일 지키는 자들이 자신을 손마른자와 다를 바 없는
일반화 평준화 임을 보여주시고자 예수님이 일부러 안식의 주인으로써
손마른자를 고쳤는데
다들 쫏아내고
원망하고
안식일을 어기는 자로 비로소 살기가 넘치더라 말이죠
안식일 안 지켰다면 살기가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드디어 희년을 선포하심을 이루시고자
이런 일들을 벌리시는데 있어서
이 평준화 작업에 누가 반대를 하는고 하니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
소위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다는 저 죄인과 같지 않다는 소위 의인들
소위 나는 저런 귀신들린자 같지 않다는 소위 건강하다는 자들이
심지어 나는 저 문둥병자가 아닌 도리어 극과 극인 제사장이다 라고 했을 때에
나는 저 문둥병자가 아니다 라고 아니 너 제사장 또한 문둥병자야 라고 평준화 시키는
이 산상수훈을
도리어 간극을 벌리는데 인간들이 사용하듯이 오늘날 말이죠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을 그런식으로 구분 짓기로 사용하더라 말이죠
산상수훈이 뭡니까? 율법강화 아닙니까
산상수훈을 지키는 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자로 만드는 성화론자들을 보면
혀를 내 두를 정도 이더라 말이죠
사람들은 살면서 부자나 가난한 자나 [일반] 인 줄 몰라요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지옥간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생각났다 말이죠
거지 나사로는 사회에서 기생충 취급받는 자였고
부자는 다들 부러워하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이다 말이죠
아 그런데 둘 다 죽었는데
이것이 우찌된 심판인지 모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부자는
졸지에 물 한 방울이 없더라 말이죠
반대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있더라 말이죠
아브라함이 누굽니까? 믿음의 조상 아닙니까?
즉 믿음의 세계인 예수님의 때를 바라본 아브라함의 품인
믿음의 품에 있더라 말이죠
아 그런데 부자가 나사로를 부려먹을려고 해도
졸지에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있는 이 간극을 넘을 수가 없더라 말이죠
세상에 있을때에 신분상승으로 겨우 겨우 간극을 벌려놨는데
졸지에 그것이 도리어 자신을 아브라함 품과 거리가 멀게 하는 간극을 만들 줄 미처 몰랐다 말이죠
즉 아브라함 곧 믿음의 조상과 상관이 없는 자손이더라 말이죠
부요함이, 돈이, 아무리 아브라함과 연관을 시킬려고 해도 안되더라 말이죠
그래서 계시록에 황금옷으로 도배를 해도 아이고 부끄러워라 발가벗었네
어서 어서 수치를 가려라 라고 돈으로 옷을 사라 라고 합니다.
아니 무슨 수로 옷을 사냐 말이죠
아무리 돈을 펑펑 써도 발가벗은 임금님
발가벗은 부자님 인데
(계 3:18, 개역)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아니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물 한 방울을 살 수가 없는 세계에 왜 가냐 말이죠
그렇게 돈 많이 벌었는데 말이죠
거지 나사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졸지에 아브라함 품에 있더라 말이죠
이것이 믿음의 세계 이다 말이죠
우리는 소위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 품에 가는 겁니다.
이 아브라함 품이 아니면 다 지옥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자손 임에 집착하는 겁니다.
그런데 혈통으로도 안되더라 말이죠
오히려 그들이 정죄했던 창녀 세리 강도가 이 아브라함 품에 들어가요 글쎄
그러니 모든 종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사기입니다. 마약 말이죠
자 그러다 보니 기생충처럼 기생하는 유사기독교가 판치지요
천주교나 기독교도 아예 기대걸지 마세요
그냥 없다 라고 생각하시면 맘 편해요
다들 돈에 미친자들 뿐입니다.
돈 되니까 유사 사이비로 기생충처럼 앵겨 붙는 겁니다.
돈 안되면 벌써 떨어져 나갔겠죠
자기들끼리 제 살 뜯어먹는 식으로 기생하는 겁니다.
그러니 광명한 천사 노릇만 하는 겁니다. 그래야 사기가 먹혀든다 말이죠
초반부터 예수님처럼 보세요 전재산인 돼지를 다 날려버리잖아요
돼지 축산 농업민들이 하루아침에 거지 나사로가 되었다 말이죠
이것이 산상수훈 맞습니까?
기쁜 소식 맞아요?
우와 주님 귀신들이 우리 돼지에 들어가서 몰살했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저 귀신들린자와 다를 바 없는 자인데
드디어 이 포로됨에서 자유케 해 주시는군요 라고
누가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의 눈은
내 돈 내 돼지 내 재산
당신 때문에 다 날라가서 알거지가 되었어
저 지옥간 부자의 뒤를 무슨 수로 따라가겠냐 라고
억수로 억수로 분해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누가 천국간 거지 나사로
곧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하냐 말이죠
하나도 안 부럽고
그저 지옥간 부자
물 한 방울 없는 부자가 부러워서
다들 부자 되기 걸렀다고
어서 어서 서둘러서 예수님(아브라함의 품)(천국)을 쫓아내기 바쁘다 말이죠
자 누가 진짜 귀신들린자 입니까?
바로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의 천국을 깨뜨리러 오신 겁니다.
성전의 돌 위에 돌을 하나도 남김 없이 말이죠
인간들의 천국이 깨어지지 않는 이상
무슨 수로 아브라함 품인, 진짜 천국이신 예수님을
자신들 스스로의 발로 차버리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말이죠
이 처음사랑을 이스라엘이 스스로 발로 차 버렸듯이 말이죠
예수님은 바로 이런 귀신을 거쳐서 자신을 증거하십니다.
이 귀신에게 포로된 자를 부르러 오신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주여 저는 귀신들린자입니다 고쳐주소서 라고
자신이 귀신들린 자 임을 예수님을 보고서 비로소 알게 된
심판의 주를 보고서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쫓아내기 바쁩니다.
왜 껍데기를 벗겨서 실체 실상을 드러내느냐
왜 우리의 가면을 벗겨내느냐
뭐 장대 높이 달린 구리 놋뱀을 쳐다보면 낫는다고?
내가 뱀이라는 말이냐?
왜 벌써 와서 설치냐
너 예수와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자 보세요 귀신이 씌인자는 오히려 누가 봐도 귀신 들린
요즘으로 치면 정신병자 사이코 패쓰 소시오 패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바로 저런 정신병자를 정신병자로 분류해서
오늘 사형을 선고 받은 그 오락실 살인사건 살인자를
사회로부터 격리 시킬줄 아는 아주 정상적인 법관 판사 지식인들
등등이 진짜 귀신들린
왜 껍데기를 벗기냐 라는
이 사회를 현상 유지 시킬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귀신 곧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집착합니다.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라고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서 나타났듯이
하나님의 아들의 기능에 대해서 누구 보다 더 잘 아는 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인간들은 온갖 지식으로 신학을 형성해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개념을 파악할려고 노력해도
마귀 보다 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이 세상이 마귀에게 장악당했다는 것을 폭로하시고
그 마귀라는 사망의 권세를 멸하는 유일한 자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야 말로 기쁜소식입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이 기쁜 소식을 발로 차 버리는 겁니다.
마치 귀신이 왜 벌써 왔느냐 때가 되지 않았는데
라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이 말이죠
사람은 현실이지만 귀신은 사람들에게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버스 안에서 부딧끼면서 의식해야 하지만
귀신하고 부딧혀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라고 하지 않는다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이 포로 된 자 갇힌 자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러 왔다는 말은
마치 귀신을 의식할 수 없는 인간에게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
곧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 인간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되고 만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유대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마귀를 거치지 않고 해석하다 보니
엉터리로 가르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체로는 육의 법을 따른다 라고
오호라 곤고한 자로구나
비로소 마귀에게 모든 핑계를 다 뒤집어 씌우는
실상을 예수님으로부터 비로소 알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을 제대로 본 겁니다.
자 그렇다면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는 마귀를 비로소 보게 됩니다.
마귀가 제일 의식하는 이 하나님의 아들의 기능이 바로
우리가 이사야서를 통해서 봤듯이
아들 곧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 임마누엘 마할살렐 하스바스
또 에스겔에서는 인자 人子 한문 그래도 표현하면 사람의 아들(이문열 책 제목처럼)
또 마침 어제 아주 웃끼는 코메디 영화를 봤는데
어떤 영화를 따라한 듯한 느낌이 들던데
예수보다 낯선.Stranger.than.Jesus.2019 여균동 감독 영화인데
중간에 너무 크게 웃어서 입을 막고 봤는데
이 아들 개념이 바로 마귀만이 유일하게 의식하는
뜨인돌(건축자들이 버린 돌-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아하스왕)입니다.
유일하게 시온에서 나온 뜨인돌에 의해 유일하게 우상 문제를 해결하는
아브라함이 이삭이라는 아들을 바친
이 아들이 유일하게 사망의 권세를 멸하는
젖먹이 전쟁을 벌리는 당사자 [젖먹이=아들] 이다는 겁니다.
(엡 2:2, 개역)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1, 개역)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개역)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개역)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개역)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개역)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개역)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8, 개역)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개역)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세상 풍속이라는 우물에 갇혀 고인물인 섞었다 말이죠
이 우상에서 벗어날 자가 없어요
이스라엘 조차도 시온을 우상으로 산당으로 도배를 했다 말이죠
하나님과 우상을 한데 섞어버렸으니 말이죠
우상을 왜 쫏느냐
바벨론을 통해서 알려 주셨죠
고아 될까봐
과부 될까봐
나그네 될까봐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
거지 될까봐
그런데 주님의 기쁜소식 곧 하나님의 아들은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부정적인 비정상적인
오늘 본문은 귀신들림이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과 접촉점이 되고
도리어 귀신들리지 않았다
정상적이다 라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동네에서 쫓아내더라 라는 겁니다.
이상한 수수께끼 비밀 같죠 퀴즈 문제 같아요 문제적 남자 ㅋㅋㅋ
풀어 보세요
예수님은 귀신들린 힘센 두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은 돼지떼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돼지떼를 먹인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쫓아내었으니
결론은 그럼 누가 귀신이다
정작 귀신은 빠져 몰살했다 말이죠
그런데 귀신이 몰살 하는 것을 사람들은 원치 않아요
귀신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저 자신의 돼지
내 재산이 빠진 것만이 자신들의 눈에 심각하게 보일 뿐입니다.
자 그럼 누가 귀신이다? 저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에게서의 귀신은 바로 예수님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귀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의식하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가면을 벗기는 하나님의 아들을 귀신으로 몰아가서
아무 상관이 없는
지금의 상태인 천국을 유지할려는 겁니다.
애굽이라는 수치 덩어리를 유지 할려고 한다 말이죠
발가벗은 상태를 말이죠
아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발가벗고 3년 동안 싸돌아 다니는 겁니다.
누가 벗었냐 말이죠
인간 입니까? 이렇게 예의를 지키고 십의 일조 내고 안식일 지키고
율법사처럼 하나님의 큰 계명 즉 두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를 지키고 있는 이런 인간이 발가벗었습니까 아니면
모든 인간의 눈에 씌여진 비닐을 벗기고자
발가벗은 모습으로 3년 동안 발가벗고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싸돌아다니는
하나님의 아들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발가벗겨져서 오죽 하면 하나님의 저주인
나무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냐 말이죠
누가 발가벗었냐 말이죠
출발 자체가 틀려요
하나님의 아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귀신만을 상대로 하고(왜? 구원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는 잔치이거든요, 지혜는 세상이 격동해서 견디질 못하게 하거든요)
반대로 모든 인간들은 이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나사렛 이단 예수라는
발가벗고 다니면서 눈의 비닐을 벗기고자 하는 이 예수를 도리어 발가벗길려고
쫓아내는
이 아이러니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낸 예수님을 쫓아내고
귀신이 쏙 빠졌네?
귀신이 어디로 들어갔나요?
진짜로 돼지 떼 속에 들어갔나요?
아니면 모든 인간
저를 포함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들어갔나요?
이런 귀신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잖아요
여균동 그 영화에서 귀신을 빼고서 예수를 운운하니
그냥 코메디로 만들어 버리니
우와 다들 귀신들린게 맞더라 말이죠
지옥이 없으면 안된데요 그 깡패가
억울하다는 거죠 ㅋㅋㅋㅋ
예수님께서 멀쩡하게 대대로 몇백년 동안 해 오던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그 행사장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이제는 양과 염소를 쫓아내고
돈을 바꾸는 책상을 확 뒤 엎어버리고
가면을 확 벗겨 버리는 겁니다.
그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을 졸지에 가면을 벗겨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들추어내더라 말이죠
자 이제 귀신들이 쫓겨나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서 잠시 마귀가 물러갔는데
그 뒤에 안 나타나요
잠시 물러갔다 메요? 그럼 나타나야 할 것 아닙니까?
(눅 4:13, 개역)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눅 4:13, 새번역) 『악마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 있었다.』
(눅 4:13, 공동)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눅 4:13, 쉬운) 『온갖 시험을 마친 마귀는 더 좋은 기회를 노리려고 잠시 동안,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눅 4:13, 현대인) 『마귀는 이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잠시 예수님을 떠나갔다.』
(눅 4:13, 현대어) 『마귀는 모든 시험을 끝내고 잠시 동안 예수를 떠나갔다.』
아 그런데 마귀가 수시로 나타났다 말이죠
아니 언제? 하나님의 아들만 의식한다고 했잖아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왜? 마귀는 독자적인 자유가 없거든요 피조물이거든요
그런데 숙주로 삼은 모든 인간들에게서 왕으로 자리 잡았다 말이죠
이 세상 임금을
이 공중 권세 잡은 자를
하나님의 아들 만이 해결하실 뜨인돌
곧 젖먹이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의, 공의(정의) 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산당을 부술 뜨인돌이 없어요
인간들이 기껏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개인이라는 우상을 구원하기 바쁜
역시나 귀신들렸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곧 율법을 지킬려고 한다는 겁니다.
겉으로 보면 억수로 믿음 좋아 보이지만
이 광명한 천사들이 바로 마귀들이다는 겁니다.
가면을 쓰고 말이죠 숙주를 쓰고 말이죠
자신의 숙주인 인간을 가지고 놀아야 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인간 속에 기생해서 말이죠
기생충
누가 진짜 기생충이냐 말이죠
그래서 데칼코마니 쌍둥이 권법
즉 마귀는 예수 노릇을 하고 있고
예수님은 마귀로 취급당해 쫓겨나고
이 실상을 드러내는 겁니다.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는가를 말이죠
마귀는 죽지 않고 계속 설치고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이제 마귀의 권세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사망의 권세를 멸했다 말이죠
누가 실상이냐 말이죠
어라 그런데 결과를 보세요
예수님이 쫏겨나요
이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쫓겨나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헬라인인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영광인 이유가
아 이 세상의 실상을 발가벗겼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우상 문제를 해결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쫓겨날 수밖에요
이 땅이 지옥이니까
이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
믿음의 세계를 증거 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다 말이죠
천국을 침략하러 온 셈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 이 천국
이 교회
이 예루살렘 성전을
아무도 점령한 적 없거늘
예수님이 이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2천원?
전재산인 2백원?
이 잃어버린 동전 하나로
또렷하게 이 세상을 멸하고자 왔다고
종말을 확 땡겨버리는
사망의 권세를 땡기는 하나님의 아들로 왔다는
이 귀신 시 나락 까먹는 소리를
기쁜 소식으로 듣는 자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환자 밖에 없어요
맞아요 저들에게서 우리는 미친놈들 밖에 안 됩니다.
믿숩니다 라는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생기게 해 달라고 할게 아니라(인간의 신념은 실상이 아님 그림자일 뿐)
믿음이신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실상을 확 땡기는 것이
바로 율법과 선지자로써
창녀와 제사장을 일반으로 만드는
구불 구불한 첩경을 평평하게 다리미질로 평탄케 하는 평준화를
마리아의 기도에서
한나의 기도에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에서
이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이 세상을 빨리 멸하게 해 달라는
3년 반 동안 비 오지 않게 해 달라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한때 두때 반때
이 실상인 십자가만이 또렷하게 밝히 보이고
나머지는 다 속임수에 불가하니까 말이죠
그러니 저들 에게서는 그 반대로
십자가야 말로 도저히 풀 수가 없는 비밀 수수께끼 문제밖에 안되고
즉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이고
저들은 십자가 외에 것만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누가 발가벗기는 가면을 들추어내는 십자가를 원하겠습니까?
아 맞다 그 영화에서 예수님이 다들 무섭다고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희화화 해야 하는 겁니다.
무서우면 안되거든요
웃끼는 코메디로 만들어야 하기에
귀신을 쫓아내면 무서워요
그래서 도리어 예수를 쫓아내는 코메디로 만들어야
가면을 유지하고
강도의 소굴을 가장 거룩한 성전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 바로 우리 거든요
우리의 가면을 벗기면
마귀의 모습 밖에 안 나오니까 싫타 말이죠
아름다운 풍채도 없고 고운 모양도 없으면 안되니까
발가벗겨 버리면 안돼요
가면을 벗기면 안된다 말이죠
그래서 이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할려면
예수님을 쫓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요
인간들의 유일한 구원인 겁니다.
이 십자가를 거부하는 길 만이 말이죠
계속해서 마약에
종교라는 마약에 취해 사는
천국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예수를 쫏아내는 길만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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