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가 된 인자 (둘 사이 중간에 끼인 경계인) (겔 3,22-27)

19-08  부정과 함께 머물기, 부정한 에스겔과 벙어리가 된 인자와 함께 머물기

(빌 1:21, 개역)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2, 개역)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 1:23, 개역)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1:24, 개역)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겔 3:22, 개역)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겔 3:23, 개역)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겔 3:24, 개역) 『주의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겔 3:25, 개역) 『인자야 무리가 줄로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겔 3:26, 개역)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 그들의 책망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겔 3:27, 개역)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겔 3:22, 새번역) 『거기서 주님의 능력이 내 위에 내렸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들로 나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할 말이 있다."』
(겔 3:23, 새번역) 『그래서 내가 일어나 들로 나가서 보니, 그 곳에는 주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었는데,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똑같았다. 나는 땅에 엎드렸다.』
(겔 3:24, 새번역) 『그 때에 주님의 영이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나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너는 집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집 안에 있거라.』
(겔 3:25, 새번역) 『너 사람아, 사람들이 너를 밧줄로 묶어 놓아서, 네가 사람들에게로 나가지 못할 것이다.』
(겔 3:26, 새번역) 『더욱이 내가 네 혀를 입천장에 붙여 너를 말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들을 꾸짖지도 못하게 하겠다.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겔 3:27, 새번역) 『그러나 내가 너에게 다시 말할 때에, 네 입을 열어 줄 것이니, 너는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들을 사람은 들을 것이고, 듣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거절할 것이다.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빌 1:20, 개역)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1, 개역)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2, 개역)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 1:23, 개역)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1:24, 개역)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5, 개역)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 1:26, 개역)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8절 하나님께로 난 것이라 

(빌 1:27, 개역)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8, 개역)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빌 1:29, 개역)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30, 개역)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 1:20, 새번역)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빌 1:21, 새번역)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빌 1:22, 새번역)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빌 1:23, 새번역)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빌 1:24, 새번역)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빌 1:25, 새번역)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빌 1:26, 새번역)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빌 1:27, 새번역)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빌 1:28, 새번역)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이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빌 1:29,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빌 1:30, 새번역) 『여러분은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지금 소문으로 듣습니다.』

(빌 1:21, 공동)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빌 1:21, 쉬운)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죽는 것도 내게는 유익합니다.』
(빌 1:21, 킹흠정)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
(빌 1:21, 한글킹)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1, 현대인) 『이것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므로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빌 1:21, 현대어) 『내게 있어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일할 기회가 된다면 죽는 것은 더 나은 기회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빌 1:23, 공동)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여 있으나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또 그 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빌 1:23, 쉬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 곁에 있고 싶은 까닭은 그것이 훨씬 행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 1:23, 킹흠정)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빌 1:23, 한글킹)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으니 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갖는 그것이 훨씬 좋으나』
(빌 1:23, 현대인)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고 또 그것이 훨씬 더 좋지만』
(빌 1:23, 현대어) 『어떤 때는 살고 싶다가도 어떤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 곁으로 가는 것이 내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편이 여기 있는 것보다 얼마나 더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인자란 둘 사이에 낑긴 자 이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치 쌍둥이 중에 하나는 사람이고 하나는 인자입니다.
즉 사람이 아니무이다

죽은자입니다. 그래서 다들 고개를 돌려서 싫어버린바 된 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닌 인자가 사람 보다 더 사람 같고
죽은 자 가 더 산 자인 생명 답다 라는 겁니다.

마치 빛의 아들들의 지혜 보다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가 더 지혜로운 것처럼 말이죠.

분명 종말의 사람 곧 끝의 인간입니다.
곧 블랙홀에 빠져 죽을 것 같아 보이는데
그 경계선에서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들어오지도 않는
아감벤이 말한 예외인간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비스무리한 비인간 비전체 이다는 거죠
이 삼켜 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뱉어버릴수도 없는
목에 낑겨서 탁 걸려서 떨어지지도 않는 자가 바로 인자 이다는 겁니다.

죽은자 같으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로다

(고후 6:9, 개역)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개역)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앗 실수 여기까지 적고난 뒤에
한 참 뒤에 적었는데
마태복음 글을 이 글처럼 후반부를 한참 뒤에 적다 보니
에스겔 벙어리 인자 글의 결론을 마테복음에 글을 적어버렸네요
에스겔을 먼저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마태복음을 먼저 마무리 짖는 바람에 앗 실수 ㅋㅋㅋ 

그러나 이것 조차도 역시 역사를 찢는 겁니다.
실수를 통해서 본심이 나오니까 말이죠

자 그러면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마태복음 안식일의 주인을 마무리로 이 글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한게 아니라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객이 뒤 바뀌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안식일의 주인을 죽여요
종이 주인을 죽여요

자 그럼 에스겔이 인자로써 벙어리가 되어버리니까
이 벙어리를 당연히 개 무시합니다.

간따나 왕따 시키고 있는데 벙어리 까지 되니까
이 부정하게 된 자를 누가 귀기울이겠습니까?

그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인자입니다.
안식일을 보란 듯이 범하고 찢어요
안 찢으면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의 우상숭배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요구하는 그 탐심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즉 안식일 지키는 것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로 더더욱 만들고 있는 겁니다.
성화론자 개혁주의자들이 바로 그래요

아 그럼 나는 안식일 지키지 않고 주일성수 하고 있다 라고 벗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 곧 내가 왕따 시킨
내가 싫어해서 고개를 돌려 버린 이 인자가 아니면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고치시는 이 안식의 의미를 절대로 못 보는 어두운 눈인줄 모르게 되는 겁니다.

과거의 철학 곧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공부는
지혜를 많이 알고자 하는 목적으로써 지혜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했는 반면

요즘의 철학자의 공부 자세는
마치 양자물리학이 발견 되니까
과학자들이 아 인간은 쥐 뿔도 아는 것이 없구나 라고
우리가 아는 것도 단 하나도 없구나를 알게 되었다 라고 했듯이

내가 얼마나 쥐 뿔도 아는 것이 없다 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죽도록 공부한다고 하더라구요

과거는 하나라도 더 많이 알려고 하는 목적이였는데
요즘은 정말 정말 쥐 뿔도 아닌 것이 없다 라는 것을 알기 위해 공부한다는 겁니다.
내가 얼마나 모르는 자 인줄 알기 위해 말이죠

부정의 부정입니다.

즉 우리의 어두운 눈이 얼마나 주를 미워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인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에스겔 본인도 과거에 그랬었거든요
그 패역한 백성 중에서 뽑혀서
개인은 사라지고
인자의 운명으로만 도배가 되어서
저들 패역한 백성 속에 내 던져 집니다.

다들 고개를 돌려버리고
미움 당하고
왕따 당합니다.

그것이 나의 과거가 주님의 말씀을 그렇게 취급했으니깐요
안식의 주인을 지금 안식일을 지키는 자 이니까 이렇게 취급합니다. 인자로

인자 곧 중간에 낑긴 경계인으로써
뱉어 버릴려고 해도 안되고
삼킬려고도 해도 안되는
중간에 낑긴 거리끼는 걸림돌이 바로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곧 인자입니다.

쌍둥이 라고 했지요? 바로 지난 주 글이였던가?

에서와 야곱입니다.

하나는 그야 말로 정상적인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비정상적인 인간 곧 비존재입니다.

허리가 뿌셔졌지요
김대중처럼 쩔뚝 쩔뚝 지팡이를 의지하지요

이것을 죽은 자 라고 합니다.
그런데 산 자 래요

일방적인 편파해석이

역사적인 존재들의 해석을 비집고 들어와서
산 자 라고 합니다.

아니 이 에스겔 인자의 모습을 보세요
벙어리는 곧 죽은자 이거든요
사회에 끼일수가 없어요
예외 인간입니다.
벌거벗은 생명이다는 겁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고
즉 차이나는 인간 
무엇과
반드시 한 세트로써

존재 와 차이나는 비존재로써의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인간이다는 겁니다.
배제된 인간 이다는 거죠

종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종에게
주인인
안식일의 주인이 종에게 죽임 당하는

이것이 바로 인자 라는 겁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의 죄악음 법궤에 증거궤에 담듯이
우리의 죄악의 실상을 낱낱이 신체에 담은 자가 인자 라는 겁니다.
인자는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인 사건인 셈이지요

사건은 역사도 시간 공간도 아닌
흔적 곧 홈패임입니다.
졸지에 검은 얼룩이 생겨 버리니까
블랙홀처럼 말이죠
그 속에 역사 시공간에 훅 하고 빨려 들어가는 겁니다.

쌍둥이 야곱에게 허리를 뿌수니까
즉 환도뼈죠 꼬추
뿌써 버리니까
수치를 제거해 버리니까
과거 현재 미래 역사 공간 등등이
이 뿌서진 허리에 공백이 틈이 생김으로 인해
그 속에 훅 하고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겁니다.,

아름다운 그림에 얼룩 검은 점이 마치 이빨에 끼인 빨간 고춧가루처럼 낑겨 있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고개를 돌려 버릴 정도로
모든 시선이 그 얼룩에 블랙홀처럼 훅 빨려 들어가서
존재, 아름다움, 시간, 공간, 역사를 추구할려고 해도

모든 시선을 다 빨아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사건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다는 겁니다.

성경 전체가 아무리 구약만 믿을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미래완료의 결과로만 회귀하도록 되어 있으니
이 십자가의 피 용서로 결론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아무리 우회로 돌려서 해석할려고 해도 안되니까

이 십자가를 뱉어버릴려고 해도 안되고
아니면 삼켜버릴려고 해도 안되는
그야 말로 중간에 낑긴 경계인인데

이 경계인이 도리어 또렷하고 밝히 보이더라 라는 겁니다,

걸림돌이 오히려 더 선명하더라 말이죠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의문의 반복만을 하고 있는 저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

안식의 주인이신 인자는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자를 고치니까

누가 더 또렷하냐 말이죠

중간에 낑긴 이 걸림돌이 더 또렷하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더 또렷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뱉을려고 해도 안되고
삼킬려고 해도 안되요
십자가에 매 달아 죽이면 죽일수록 더더욱 퍼져요

천국이 침노를 당하면 당할수록 더더욱 퍼져요
더더욱 또렷해 져요
더더욱 확장 되는 겁니다.
살아 꿈틀 꿈틀 거리는 생명체처럼 말이죠

천국은 시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엉터리 시공간의 천국을 찢어버리는
가짜 천국을 찢어버리는
사건으로써의 천국이다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가짜천국을 찢는
애굽이 에덴동산과 같았다 라고 했듯이
그 애굽과 같은 에덴동상을 꾸밀려고 하는 
인간의 신체의 확대가 국가 아닙니까
그 국가를 찢어버리는 것이 바로
사건으로써의 천국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가짜천국인 국가를 찢는
곧 인간의 신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
바로 사건으로써의 천국
곧 인자 이다는 겁니다,

이 천국이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겁니다.

여기 저기 있다가 아니라
공간이 아니라
너희 마음 이라는 심령 천국도 아니라
역시가 공간 이거든요

사건 곧
심령쳔국을 외치는 가짜천국을 외치는
너 자체를 찢어버리는 천국이 진짜 천국
사건으로써의 천국

가짜천국을 침략하는 진짜천국이다는 겁니다.
천국을 이중적으로 표현한거다 말이죠
공격을 받고 공격을 하는

이 간극
이 사이
이 틈
이 공백을

천국이라고

인자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인자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니까

안식일을 찢는 겁니다.
안식일 날만 골라서 범해서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고침으로써
더더욱 안식을 또렷하게 하시는데 있어서

안식을 찢음으로써 안식을 제대로 세우시는 주인이다는 겁니다.

병든자를 고치니까 말이죠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 성수를 지키지만 말고

물에 빠진자 하필이면 안식일에 물에 빠진자
건져내 보라 말이죠

거 봐요 안식일을 지키니까
범하지 않으니까
절대로 막살지 않으니까
못 건져 내는 겁니다.

그렇게 어두운 너희의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 바로 인자
곧 대신 매맞는 분입니다.

이 죽음이 우리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다 자기에게로 회귀하는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나 라는 우상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 나를 물에 빠뜨려 다시 출발시키는
이 안식일의 주인이 말이죠

율법을 범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시는 겁니다.
왜? 물에 빠진 자를 율법을 범하지 않고서는
건질수가 없어요

그 놈의 시간 공간이 하필이면 안식일 이고
공간이 성전이다 말이죠

과연 성전측량 한번 해 볼까요?
안식일 지킨자가 함량 충만인지?
안식일을 어긴자가 함량 충만인지?

괜히 불의한 청지기가 옳았다고 하시는게 아닙니다.

제발 좀 율법 어기세요
참 감사하게도 새삼스럽게 어기지 않아도 늘 어기고 있으니까

뭘 해도 죄 밖에 없다는 것을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자는 알게 되고
이것을 기뻐하는데
기쁜소식인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하지 않는 자는
지킬때는 자기가 대견하기 짝이 없어서
그야 말로 마귀 노릇을 하고 있고
못 지킬때는 어떻게 해서든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통해서
자기 죄 때문에 죽게된 아이를 살려볼려고
그래서 죄악을 가려 볼려고 애를 쓴다 말이죠

피 땀 눈물 흘려도 안 못 살립니다.

피 땀 눈물도 죄악인 줄 모르니까
그것을 거룩한 의인줄 알고 지켜서 아이를 살려보겠다고
의문의 반복을 해 본다고 
아이가 살아날까 싶냐 말이죠

아이가 죽어야만 우리의 죄악이 들추어져서
비로소 죄인에게 중보자가 보이는 겁니다,

평상시 무시했던 인자가

안식일 지키니까 무시했던
안식일의 주인이 비로소 보이고
남이 아닌 내가 손 마른 자요
다른 날이 아닌
안식일 에만 고침을 받아야만 하는 안식일을 주인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이 인자로부터 출발 해보세요
당장 교회 다니는 자들로부터 공격받게 되요
왕따 당하고
미움 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니까

반드시 안식일 지키는 자들에게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인자입니다.

그런데 그 인자가 도리어 우리의 죄악을 우리의 눈을 제대로 눈 뜨게 하는 자이거든요

이 모순을 이 부조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죽음 곧 인자로부터 출발하는 자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모조리 다 자기 믿음에서
자기 종교심에서
자기 행함에서
자기 의에서
곧 우상에서 출발한 하나님과 자아라는 우상을 섞은 것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자는 그 우상을 깨뜨리고자
이들이 귀히 귀히 소중히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만 골라서
범해 버리고 깨뜨리고 찢어 버립니다.
천국을 침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천국은 곧 자아 예요
자기 신체입니다.
그 신체를 야금 야금 침략해서 장악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하듯이 말이죠

이들 우상이
정상인 이라고 우기는
건강한 자라고 우기는
의인 이라고 우기는 자들이 귀히 귀히 여기는 교회 곧 성전을 허물어 버리질 않나
안식일을 범하지 않나

목숨 보다 더 귀히 여기는 자기를 투영시킨 것들을 다 하나씩 하나씩 허물어 버립니다
안식일도 허물어요
성전을 헐라 라고 하셨듯이

최고의 마지막 보루 아닙니까?
애굽의 최후의 마지막 보루가 바로 장자 곧 인간 아닙니까
그 이전의 애굽의 10가지 아니 9가지 재앙의 신들은
다 이 장자를 보호하기 위한 인간이 만들어낸 신 곧 우상이다 말이죠

마지막 최후의 보루인 장자를 치는 겁니다.
육의 통로를 쳐야
기업이 날라가 버린다 말이죠

이 기업이 모든 인간의 출발지 아닙니까

그것을 쳐서
삼일 만에 다시 짖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출발 시키는 것이
안식일의 주인인 인자의 기능입니다.

안 그러면 쉼이 없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또 반복해야만 해요
다시 빠꾸 또 당해야 해요

고만해라 마이 무따 아입니까

제발 이제 고만 하자구요

멈출수가 없어요
이 음부의 권세를 이길수가 없거든요

그냥 잡히세요
마귀에게 잡히세요
잡혔는데 도리어 마귀가 시체가 되는 것은
인자의 대신 매 맞음 뿐입니다.

이 의를 보여주실려고 마귀에게 잡히고
큰 물고기 뱃속에 밤낮 사흘동안 갇히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 잎이 없고
기업도 없고
생명도 없는데
도리어 참생명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불 속에서라도 기뻐 춤출수 있는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주인 되신 인자로 인해서

나의 안식일 지키기가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인자로 인해셔

우리의 어두운 눈이
날 때부터 소경인 우리의 어두운 눈이
손 마른 그 병든 손이

인자의 우리의 죄악을 대신 감당하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닌
누가 기업이 되며
누가 참생명의 주인이신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가짜생명인 우리의 목숨을 잃어버리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속에서 진짜 생명을 보라꼬
주여 뉘신지요 누구시길래
우리의 생명을 빼앗는 저 풍랑도
저 마귀도
저 죽음도 잠잠케 하시나이까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새번역)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고전 15:54, 새번역)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 ㉤사 25:8』
(계 7:17, 새번역)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사 25:8, 공동) 『그리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버리시리라. 야훼, 나의 주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벗겨주시리라. 이것은 야훼께서 하신 약속이다.』
(고전 15:54, 공동)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는,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 / ㉠이사 25:8.』
(계 7:17, 공동) 『옥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 / ㉠시편 23:2; 이사 49:10. ㉡이사 25:8.』
(계 21:4, 공동)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이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이사 25:8.』

이 우는 자 이신 인자가 복된 분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벙어리가 되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허물을 저 분이 대신 담당 했다는 기쁜소식
아름다운 소식
아름다운 처음자리 처음사랑을
이스라엘의 처음자리로 빠꾸 시키는 돌이키는 파수꾼으로 세워진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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