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6, 1-14)
남은자 (우상과의 차이로써의 여호와를 담기)
(호 4:6, 개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1, 개역)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사 11:9, 개역)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겔 6: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6:2, 개역)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겔 6:3, 개역)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겔 6:4, 개역)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겔 6:5, 개역)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겔 6:6, 개역)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태양상들이 찍히며 너희 만든 것이 다 폐하며』
(겔 6:7, 개역)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겔 6:8, 개역) 『그러나 너희가 열방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 중에 남아 있는 자가 있게 할지라』
(겔 6:9, 개역)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겔 6:10, 개역)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겔 6:11,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겔 6:12, 개역) 『먼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겔 6:13, 개역) 『그 살륙 당한 시체가 그 우상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6:14, 개역)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 거하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처량하고 황무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겔 6: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6:2, 새번역)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에게 내릴 심판을 예언하여라.』
(겔 6:3, 새번역) 『너는 이렇게 외쳐라. 이스라엘의 산들아, 너희는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산과 언덕에게, 계곡과 골짜기에게,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전쟁이 들이닥치게 하여 너희의 산당을 없애 버리겠다.』
(겔 6:4, 새번역) 『또 번제물을 바치는 너희의 제단이 폐허가 되고, 너희가 분향하는 제단이 부서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너희의 우상들 앞에 던져 버리겠다.』
(겔 6:5, 새번역) 『또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체를 가져다가 그들의 우상 앞에 놓고, 너희의 해골을 모든 제단의 둘레에 흩어 놓겠다.』
(겔 6:6, 새번역)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성읍마다 황무지로 변하고, 산당들도 황폐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제단들도 무너져 못쓰게 되고, 너희의 우상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사라지고, 너희가 분향하는 제단들이 파괴되고, 너희가 손으로 만든 것들이 모두 말끔히 없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겔 6:7, 새번역) 『너희 한가운데서는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을 것이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겔 6:8,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너희 가운데서 얼마를 남겨, 전쟁을 모면하게 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하겠다.』
(겔 6:9, 새번역) 『전쟁을 모면한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 이방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비로소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내게서 떠나갔고, 음욕을 품은 눈으로 그들의 우상들을 따라 가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악행과 그 모든 혐오스러운 일을 기억하고, 스스로 몸서리를 칠 것이다.』
(겔 6:10, 새번역)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런 재앙을 내리겠다고 공연히 말한 것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다.』
(겔 6:11,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외쳐라. 아, 이스라엘 족속이 온갖 흉악한 일을 저질렀으니, 모두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 때문에 쓰러질 것이다.』
(겔 6:12, 새번역)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서 죽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전쟁에서 쓰러지고, 아직도 살아 남아서 포위된 사람들은 굶어서 죽을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이 나의 분노를 그들에게 모두 쏟아 놓겠다.』
(겔 6:13, 새번역)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서 전쟁에서 죽은 시체들은 그들의 우상들 사이에서 뒹굴고, 그들의 제단들 둘레에서도 뒹굴고, 높은 언덕마다, 산 봉우리마다, 푸른 나무 밑에마다, 가지가 무성한 상수리나무 밑에마다, 자기들이 모든 우상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던 곳에는, 어디에나 그 시체들이 뒹굴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겔 6:14, 새번역) 『내가 그렇게 나의 손을 펴서 그들을 치고, 그 땅을 남쪽의 광야에서부터 북쪽의 ㉠디블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거주하는 모든 곳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 ㉠몇몇 히브리어 사본에는 '리블라'』
(호 4:1, 개역)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호 4:2, 개역)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 4:3, 개역)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호 4:4, 개역)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호 4:5, 개역)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호 4:6, 개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7, 개역)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호 4:8, 개역)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호 4:9, 개역)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호 4:10, 개역)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
(호 4:11, 개역)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호 4:12, 개역)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호 4:13, 개역) 『저희가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호 4:14, 개역)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호 4:15, 개역)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지어다』
(호 4:16, 개역)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저희를 먹이시겠느냐』
(호 4:17, 개역)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호 4:18, 개역) 『저희가 마시기를 다 하고는 행음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느니라』
(호 4:19, 개역) 『바람이 그 날개로 저를 쌌나니 저희가 그 제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리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라고 호세아 4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지식을 소위 학문이나 또는 책을 통해서 습득 가능한 그런 지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자기 의 이라고 취급해 버리십니다.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2:14, 개역)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기에하나님을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는 식이 되는 지식 쌓기가 되는 거죠
이런 지식과 상대적인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 곧 공의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인간의 자기 의 또는 자기가 율법화가 된 자기 지식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고
그래서 다들 자기 아들이 천재가 되기를 바라지요
아기 엄마들은 아기가 조금만 뭔가 달라 보이면 자기 아이가 천재이다 라고 떠벌리거든요.
이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 상대적인 표적인
그 차이로써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 이다는 겁니다.
곧 하나님의 의란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으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겁니다. 곧 사랑입니다.
또 여기서 오해하는 것이 이 사랑을 자꾸 좋게 좋게 선하게 볼려는 의식이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렇게 볼려고 하는데
우리가 아주 아주 거부하고 안 쳐다볼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오늘 나오는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곧 내가 사랑 인 줄 알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즉 다 죽여버려서 다 찢어버리는 심판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죄를 무지 무지 싫어하거든요 오늘 나오는 우상을 무지 싫어해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우상과 하나님을 섞어서 사랑을 한다고 하니
그 사랑에 놀아나야 하고 속아 넘어가야 할까요?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나(예수의 영)를 속일려고 하느냐
라고 속아본 바울? 아니 예수님을 속일려고 하다가 발각당한 사도바울이 고백한다 말이죠.
발각당한 죄인으로서 바울이 고백합니다.
의인의 자리에서 고백하는 게 아니라 말이죠.
자 그럼 이제 오늘 본문으로 본론을 언급하자면
참 이상 합니다.
자꾸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이죠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라고
자신을 알릴려면
아예 구름 타고 오시면 다들 무릎을 꿇고 주 라고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 할 꺼다 말이죠
아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짐승 구유에서 태어나서
그것도 이 아기 예수 하나 죽일려고 온 전 세계가 들썩 들썩 거리면서
두 살 밑으로 다 죽이더라 말이죠
아니 나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라고 알릴려고 하는 목적 이라면
구름 타고 와서 어느 누구도 부인 부정 못하게 하면 될 것 아니냐 말이죠
아니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렇게 복잡하고 반대의 모습 곧
하늘 영광 버리고 죄인의 모습으로 와서
죄인으로써 죽기 까지 복종하는 모습으로 오니
누가 알아 먹겠냐 말이죠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요 12:38,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요 12:39, 개역)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요 12:40, 개역)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요 12:41, 개역)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요 12:42, 개역)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하는 까닭은 저희 눈을 멀게 했고
저희 마음을 완악케 했고
저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말이죠
이 무슨 심통 입니까?
이게 사랑 맞을까요?
유땡민 작가를 매우 싫어하는데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이 사람 5공시절에 민주주의 운동하는 운동가로써
얼마나 기독교 단체나 각종 종교 단체로부터 무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말이죠
소위 자기가 목숨 걸고 지키고자 하는 국가 조차도
문재인이 국가에 충성하면 그 문재인 천주교인에게 충성 하고
노무현이 국가에 충성하면 그 노무현 불교인에게 충성한다 말이죠
모두 다 국가 라는 공통된 종교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노무 기독교는 아직 국가에 충성하는 놈이 대통령으로 안 나왔다 말이죠
독재야 뭐 수도 없이 나왔지만
그래서 이 유시민이가 기독교 자체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 노골적으로 나타내더라 라는 겁니다.
짐승이지요
이 사람 말이 맞아요
이게 무슨 놈의 사랑이냐 말이죠
항상 투덜 거리면서 내 뱉는 그 사람의 말이거든요.
심지어 오늘 본문으로 따지면 자기 백성도 다 죽여 버려요
개 같은 우상 민족들이 보면 목전에 발가벗기듯이 다 죽여 버리는 심판을 벌리시는 겁니다.
문제는 과연 자기 백성 맞냐 말이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맞을까요? 아닙니다.
맞다면 왜 우상을 섬기고 시온에 산당을 왜 세우냐 말이죠
태극기 집회에 나온 기독교인들이 문재인 물러가라 라고 하는 우상숭배를 세우듯이 말이죠
아베에게 사죄 드린다고 하면서
결국 돈 헌금을 거두잖아요
이게 무슨 기독교 입니까 우상숭배 집단이지
웃끼게도 영남 쪽 교회들은 다 우파 정치에 손들고서 문재인 빨갱이 라고 시위하고
호남 쪽의 교회들은 해방신학이 유행했듯이 늘 좌파에 손들고 있고
서울은 반반 이니
서울은 신기해요 교회가 항상 경상도 출신 목사냐
전라도 출신 목사냐를 놓고 장로들이 반반으로 나누어져서 늘 싸워요
서울 출신은 휴전상태가 되구요
백날 집회 모여도 200백만 300백만 도긴개긴 아니냐 말이죠
서로 지 잘났다고 우겨요
그렇다고 중립
수동태(좌파-노예의지)도 아니고 능동태(우파-자유의지)도 아닌
중동태 라고 우기는데
중동태(중간태)란 없어요
둘 중에 하나 일 뿐이다 말이죠
에스겔도 능동태에 있다가 나는 인분에 구운 떡을 먹지 않겠노라
단 한번도 부정한 것을 입에 댄 적이 없는데 와카십니까? 라고 하다가
중동태가 아닌 부요하지도 가난하지도 말게 그래서 중간에 해 달라는
그 중간이 없어요
에스겔을 이 둘을 넘어서 버리는 하나님의 의가 덮쳐져 버립니다.
말씀을 먹어버림을 당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죠
능동태 곧 자유 의지를 넘어서는 자유인 막살기
그러니까 막 인분에 구운 떡을 먹잖아요
호세아는 자기 자녀를 부정한 이름을 막 짖잖아요
이 막살기를 지키는 멍청한 놈이 있어요
막살기란 인자로 만드심이다는 겁니다.
그 인자란 백성의 허물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발가벗고 다니고요
에스겔은 좌로 390일 우로 40일
아내가 죽어도 울지 않고요
얼마나 이상하게 행동하는지 이게 막사는 겁니다
왜 저들의 막살기를 감추었던 막살기를
거울로써 비추어야 하기 때문에 말이죠
자 이 위에서 언급한 한국교회의 좌파 우파의 싸움 또한
에스겔의 막살기로써의 인자 모습 또한
이 모든 것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어떤 증상?
바로 나 여호와가 정답인줄 알리라 라는
정답이 먼저 떴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말이죠
그 증상으로써 세월호 사건이 터져야만 했듯이
노무현이를 자살로 몰아가야만 했듯이
조국 사태도 그렇게 나타나는 증상이다는 겁니다.
아니 무슨 증상?
바로 장대 높이 인자가 달렸다 라는 십자가의 증상으로써
불뱀에게 물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주님의 막살기 곧 인자로써 저들의 허물을 다 담는 이 십자가가 먼저 떴기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가 먼저 떴기에
나타나는 증상으로써
그 차이로써의 우상숭배의 모습을 개 같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에게서 까발려 버리는 겁니다.
주님의 막살기 라는 막 십자가에 달리심은
우리의 막살기를 까발리는 것이다는 거죠
이사야 선지자가 왜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닙니까?
이스라엘이 벌거벗은 애굽으로 수치를 가리고 있으니
너희는 발가벗었다 라고 본인이 발가벗은 겁니다.
너희는 우상을 섬기면서 막살고 있다 라고
거울로 비추고자
이사야가 발가벗고 다니는 막살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인자의 기능이다고 했지요
참선지자의 기능입니다.
자 그럼 거짓선지자의 기능은 뭡니까?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 라고 하는 겁니다.
거짓선지자 말이 더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문제는 참선지자의 막살기 곧 발가벗음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막살기를 곧 허물을 감추면서, 속이면서,
숨기고자 하는 반면에
거울 비추기(인자)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반면에 거짓선지자는 숨기고자 하는 그 속임수를 더더욱 도와주는 식입니다.
더더욱 숨기라고 절대로 막살면 안 된다 라고 말이죠
막살기 라는 의미를 독자적으로 단독적으로 하나만 딱 떼어와서 생각할게 아니라
항상 상대적인 막살지 않기 라는 의미를 가지고 와서 그 대조로써
한 세트로써 그 차이를 말해야 합니다.
막살기의 대가 탕자 하나만 딱 떼어오면 언약이 안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을 알려면, 야다(에로스)를 알려면
항상 상대적인 탕자의 형 맏아들이 한 세트가 되어서
자기 의를 쌓는(절대로 막살지 않았다) 맏아들과 대조해서 봐야 합니다.
성큼 지금 현재의 나에게 적용하지 말고요
지금의 나는 내일 되면 탕자 일지 또 그다음 날에 맏아들이 될지
어제는 죄인이라고 고백했다가
오늘은 의인이라고 건강한 자 이다고 우겼다가
또 그 다음 날 태풍이 와서 재산이 다 거덜나 버려 병든자가 되어버리면
교통사고가 나서 병자가 되어버리면
그때서야 또 주여 나는 환자입니다 라고 의사를 찾는
그런 내 신체의 기준이 아니라
개인 기준이 아닌
모든 인간을 육체로 첫아담으로 규정해 버리고
그 역사(육체)를 뚫고서 침범하는 천국(예수님 나라, 묵시)의 기준에 의해서
규정이 이미 나 버린 거짓선지자(절대로 막살지 않기)와 참선지자(막살기)의 대조로써
주님은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라고 선포 하시는 겁니다.
누가 봐도 우상숭배자인 개같은 이방인은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 이라고 하는
절대로 막살지 않았다 라고 우기는 이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라고 내가 누구인지 보여줄게 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꾸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누구인 줄 안다고 합니다.
네 맞아요 아는 것 맞아요
문제는 저 개같은 이방인보다는 안다고 우긴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너희는 날 모르는 구나 알려주마 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느냐
바로 저 개같은 이방인보다는 안다고 한 그것을 뒤집어 엎어버려서
이방인은 오히려 아는데 이방인 보다 더 모르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알리신다는 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주님 쪽에서 막아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는
천국의 비밀은 너희들에게 허락 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너희와 저희 사이에 중립은 없어요.
(마 13:11,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눅 8:10, 개역)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 13:8, 개역)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 13:9, 개역)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마 13:10, 개역)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 13:11,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2,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3,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6, 개역)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마 13:17,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 13:18, 개역)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이스라엘 백성이 도리어 이방인 보다 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안다 라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의(맏아들처럼 저 세리 저 탕자처럼 막살지 않았다 라고 우기니까
잘 감추었다 라는 것을 속이는 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으니까)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 라는 이 법 법 법 선악의 법을 끝까지 우긴다는 겁니다
왜?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니까
이게 우상입니다.
자기가 곧 하나님 이라는 율법이 된 거예요
왜? 지켰으니까
안 지켰으면 율법이 아닐텐데
지켰뿌니까
들통 당하지 않고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계속 속일 수가 있는 겁니다.
막살지 않았다 라고 절대로 막살지 않았다 라고 절대로 막살면 안 된다 라고
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아요
당연하죠 광채까지 났으니까
이것으로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릎을 꿇었으니까
딱 한번 겁을 먹었지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 죽일려고 했거든요
그래도 수건 안 벗을려고 해요 그래서 반석을 두 번 모세가 치는 겁니다.
예수님은 심심하면 사람들이 죽일려고 했는데
모세 지가 뭔데
사람들이 겁을 먹고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그 속임수를
그 사라질 영광을 언제까지 그 의문의 수건을 계속 주장하겠냐 말이죠
그게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는 겁니다.
오히려 율법은 율법을 쥔 내가 도리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일 죽였구나 라고 알게 하는
몽학선생 이다 말이죠 나는 사랑이 없다 라는 것을 알게 한다 말이죠
그래서 개같은 이방인에게도 율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지킨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어서
도리어 율법을 지킨 자기가
막사는 자가 아닌
막살지 않는 자기가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고자 적개심을 품게 되고
도리어 막사는 탕자는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긍휼을 예수님께 구하는 자가 된다고 하는 것을
율법을 이방인에게 주어서 이렇게 예수님을 우리는 죽일 수밖에 없었다 라고 가르치고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누가 성령이?
오늘 조국 교수의 딸이 어준이랑 인터뷰 하는 내용을 듣고 놀랬다 말이죠
벌써 알더라 말이죠 뭐를?
이게 다 거짓말 인거 아시죠? ㅋㅋㅋ 가 아니라
이게 다 구조 라는 것을 아시죠?
구조 라는 겁니다
배치 물
사람이 자기 의를 쌓는 이유는 즉 행함을 행하는 이유는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배치 시키고자 하는 구조의 판때기에 자기가 자기를 배치 시키는 겁니다.
건강한 자의 자리
의인의 자리
절대로 막살지 않겠다는 자리
그런데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가 쑥 하고 나타나서는
모조리 다 죽음의 자리에 배치 시켜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구조 라는 역사에 침범하는 사랑
위에서 언급했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이 아닌
그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아닌
그야말로 폭력적인 낯설은 사랑
곧 요나의 표적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는
십자가의 사랑이
이 구조를 자기 마음대로 배치시켜 버립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음을 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고서
그 증상으로 불뱀에게 물려서
죽음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라고
내가 부정했던 죽음
내가 악마 라고 규정했던 죽음
그 부정의 자리인 죽음의 자리
곧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의 자리에서
비로소 난 여호와로 즐거워 하리 라고
나를 여호와 인 줄 알리라 의 증상으로써
내가 싫어했던 십자가에서
그 십자가를 찬양하는
구체적 보편성을 외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금 남겨두는 겁니다
다 죽여야 마땅한데 조금 남겨둔 그 남은자를 통해서
이 남은자가 아까 말한 죽음의 자리에서
여호와를 외치는 겁니다.
나는 절대로 막살지 않았다 라는 자리에서 엘리야가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 우기는 그 자리에서
여호와를 외치는게 아니라
7천명을 남겨둔 그 남은자의 자리에서
엘리야를 탕자로 만들어서
여호와를 외치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럼 나는 절대로 막살지 않았다 라고 우기는
내 열심이 특심이오니 는 그럼 뭐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 망하는 길인
상대적인 우상의 자리였다는 겁니다.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자기 의를 쌓은
아까 말한 로마서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이게 우상 숭배다 말이죠
상대적인 하나님의 지식을 좇아서 따라서 난 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곧 요나의 표적이 아니라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였다 라고
내 열심이 특심 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고만 우기는 겁니다.
그 완악한 수건을
그 눈의 비닐을 벗기신다는 겁니다.
내 열심이 특심
특심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의 모든 것을 걸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으로 난 것이지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자신을 구조 속에 좋은 자리에 배치 시킬려는 의도이다는 겁니다
그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주님을 찬양합시다.
진작에 들통났어야 할 속임수가 들통나고
들통내실려는 그 사랑
대신 매 맞으심
대신 발가벗으심
대신 막사심을 통해서
거울 비추기(인자가 장대 높이 달리심) 라는 십자가 라는 실상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소경인 줄도 모르고
고쳐 달라고 하지 않는
환자가 비로소 기뻐하는 의사
막사는 자가 비로소 기뻐하는 율법의 완성자를 노래할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가 먼저 떴기에
노래하는 자가 그 증상으로써 새노래를 부르는 자가 나타나는 겁니다.
남은자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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