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삭발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겔 5, 1- 7)

19-11 인자야, 너는 성전 파괴 계획이 다 있구나, 참으로 시의적절 하다.

(겔 5:1, 개역)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를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었다가』
(겔 5:2, 개역)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지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지 일은 가지고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지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겔 5:3, 개역)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가져 네 옷자락에 싸고』
(겔 5:4, 개역) 『또 그 가운데서 얼마를 가져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겔 5:5, 개역)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겔 5:6, 개역)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겔 5:7,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겔 5:1, 새번역) 『"너 사람아, 너는 날카로운 칼을 한 자루 가져 와서, 그 칼을 삭도로 삼아 네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그것을 저울로 달아 나누어 놓아라.』
(겔 5:2, 새번역) 『그리고 그 성읍의 포위 기간이 끝난 다음에, 그 털의 삼분의 일을 성읍 한가운데서 불로 태우고, 또 삼분의 일은 성읍 둘레를 돌면서 칼로 내려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칼을 빼어 들고, 그 흩어지는 것들을 뒤쫓아 가겠다.』
(겔 5:3, 새번역) 『그러나 너는 그것들 가운데서 조금을 남겨 두었다가 네 옷자락으로 싸매어라.』
(겔 5:4, 새번역) 『너는 또 그것들 가운데서 얼마를 꺼내서 불 한가운데 집어 던져서 살라 버려라. 그 속에서 불이 나와서 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번질 것이다."』
(겔 5:5, 새번역)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내가 그 성읍을 이방 사람들 한가운데 두고,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다.』
(겔 5:6, 새번역) 『그런데도 그 성읍은 다른 민족들보다 더 악하여 내 규례를 거스르고,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내 율례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내 규례를 거역하고, 내 율례를 지키지 않았다.』
(겔 5:7,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거스르는 사람이 되어서, 내 율례를 따르지도 않고, 내 규례를 지키지도 않고, 심지어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이 지키는 ㉠규례를 따라 살지도 않았다. / ㉠대다수의 히브리어 사본을 따름. 몇몇 히브리어 사본과 시리아어역에는 '규례를 따라 살았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울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눅 19:41, 쉬운) 『<예루살렘을 위해 눈물을 흘리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그 도시를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눅 19:41, 현대어) 『[예루살렘의 불행] 그 행렬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는 도성을 바라보고 우시며』

(눅 19:37, 개역)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눅 19:38, 개역)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 19:39, 개역)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 19:40,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41, 개역)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2, 개역)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눅 19:43, 개역)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눅 19:44, 개역)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5, 개역)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눅 19:46,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 19:47, 개역)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왜 우셨을 까요?
마치 안식일 날에 아들이 물에 빠졌다 말이죠
그럼 그 아들을 물에서 건져내어야 할 거 아니겠냐 말이죠
그 아들을 바로 예루살렘으로 보자 말이죠
그 예루살렘이 물에 빠졌다고 주님은 우시는 겁니다.
즉 우신다는 말은 건지시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 본인들은 안 빠졌다고 우깁니다.
회개를 안하는 거죠
목이 곧은 백성이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화 한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겁니다.

마치 안식일이 물에 빠졌는데 그 안식일을 건질려고
일부러 안식일 날만 골라서 병고치시는데
이것을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 예수님을 바울세불 걸린 대마왕이라고 몰아 붙이는 식입니다.

이런 인간의 악마성을 역으로 거울로 비춰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스겔이라는 인자가
지난주처럼 부정한 떡을 먹기 위해서 쇠똥이 아닌 인분에 구워서 먹습니다.
그 이전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그림 그리고 그 위에다 포위당하는 에워쌓인 그림을 그리지 않나
또 자신을 꽁꽁 묶어서 좌로 390일 우로 40일 그리고 음식도 육분의 일로 나누어서

한 마디로 미친 짓만 골라서 해요
자기 혼자 원맨쇼 하듯이 말이죠

이것은 거울 비추기입니다.
거울 비추기란 단절을 의미입니다.
오늘날 개혁주의가 성령론을 [소통]으로 주장하는 반면에
정작 성경의 성령은 [단절]입니다.

이 단절의 영이 바로 살려주는 영입니다.

즉 상대적인 살려줌을 당하는 자는 죽은 자 이다는 거죠
자신을 죽은자라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이 성령이 이  살려주는 영이
이 의사(살려주는 자)가 필요가 없는 겁니다.
죄인 만을 부르러 왔고
죄인 만이 인자를 쳐다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인자란 한마디로 말해서 거울 비추기 입니다. 반사입니다. 반사
그런데 아무도 못 쳐다 봅니다. 

목을 못 돌리도록 누가 막아요 자꾸
그 정도로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악마성을 다 드러내면서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이것이 말씀을 먹은 인자입니다.

오늘 5장은 더더욱 미친 짓 마치 미신 같아 보입니다.

인자가 삭발을 하듯이
선지자의 삭발은 단절을 의미입니다.

사실은 삭발이 아니라 삭도를 대어서 일부를 자르는 거죠
마침 딴나라당 애들이 삭발을 하길래 그들과 대조를 하면서 이해하면 딱이다 싶어서 삭발이라고 했습니다.

딴나라 애들이 삭발을 하여서 공천을 받고자 함은 바로 소통을 위함이다 말이죠
단절이 아니라
그러니 그들은 의로움을 쌓는 겁니다.
부정한 자리에 가는 게 아니지요
거울 비추기가 아니다는 거죠
완전 정반대입니다.

살려주는 영이 아니라 지 혼자 살아남을려고 하는 겁니다.
바로 율법을 폐하는 자들인 겁니다.

(겔 5:6, 개역)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겔 5:7,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이 가입된 이유는 죄 아래 가두기 위함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랴 라고

인간 자기 자신의 신체가 바로 애굽이다는 겁니다.
이 애굽을 이길 길이 없다는 거죠 이기기는커녕 구원받을수 조차도 없다는 겁니다.
이 애굽이라는 현실 속에서 예수님은

말씀이 나오는 예루살렘
말씀이 나오는 인자의 신체를 보여주시고자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보여주시고자
이런 사건들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역사 라는 신체 속에 묵시라는 신체를 폭발 폭주 시켜서
역사를 찢는 식입니다. 우리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무당과 같은 이상한 미친 짓을 합니다.
즉 모든 인간들이 무당임을 반사 시켜주는 거죠
딴나라당 애들이 무당 짓을 하는 것을 말이죠
물론 그들은 무당이 아니라 의로움을 쌓는다고 반대로 우기지만 말이죠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
부정의 부정으로써 보여주는 것이 인자입니다.
수수께끼 비밀 이거든요
완전히 반대로 보여져야만 하니까 말이죠
듣기는 들어도 깨달을 수 없도록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말이죠

몸의 털을 곧 머리카락과 수염을 짤라서 일부 삼분의 일은
지난주 예루살렘 성전을 그림 그렸다 아입니까
저 시온에 있는 예루살렘이 실제로 있고
인자가 바벨론 그 발 강가에서 벽돌에 그린 그림인 예루살렘 성전이
가상 아입니까

그 가상이 실제가 되고
눈에 보였던 그 예루살렘은 사건이 이제 없어요 그 진짜는 가짜가 되구요

그래서 그림을 그린 진짜 현실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 그림에다가

삼분의 일의 털을 성전 한 가운데서 불을 붙여서 던지고
또 삼분의 일은 칼로 짤라서 그 성 주변에다 뿌리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흘 날려라 라고 하십니다.

(겔 5:2, 현대인) 『네가 그 성을 포위하고 있는 날수가 차거든 그 털의 3분의 1은 성 안에서 불사르고 또 3분의 1은 성 주변에서 칼로 치고 나머지 3분의 1은 바람에 흩어 버려라. 내가 칼을 빼서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겔 5:2, 쉬운) 『예루살렘 포위가 끝나는 날, 삼분의 일은 성 안에서 불에 태우고, 삼분의 일은 칼로 쳐 성 주위에 뿌리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려라. 내가 칼을 뽑아 들고 그들을 뒤쫓겠다.』

여기서 포위가 끝나는 날은 390일 40일을 말하는 거죠

자 그 다음 또 있습니다. 아마 남은 것을 가지고 또 뭘 할려고 한다 말이죠

(겔 5:3, 새번역) 『그러나 너는 그것들 가운데서 조금을 남겨 두었다가 네 옷자락으로 싸매어라.』
(겔 5:4, 새번역) 『너는 또 그것들 가운데서 얼마를 꺼내서 불 한가운데 집어 던져서 살라 버려라. 그 속에서 불이 나와서 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번질 것이다."』

그것들 가운데 남은 것을 옷자락에 싸매었다가 다시 얼마를 꺼내어
불 타고 있는 가운데서 또 던져서 불에 살라 버리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마치 영화 귀성 입니까?
아 곡성 에
무당들이 살 풀이 할 때처럼 돼지를 잡고 
또 다른 일본 무당은 그것을 막고자 서로 악귀 쫓아내는 싸움을 벌리잖아요
결국 둘 다 같은 편이지만 말이죠

왜 이런 미신을 쫓는 이상한 무당들이나 하는 짓을 할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자들은 지난주에도 언급했듯이
바리새인들이다 말이죠
마귀가 들리지 않으면 마귀를 못 쫏아낸다 말이죠

그래야 자신들이 마귀를 못 쫏아내는 것도 합리화 되고

마귀를 쫏아내어서 병 고치는 것도 저거 다 속임수이다 라고 한다 말이죠
물론 반박 못할 날때부터 소경인 그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실로암 소경과
손 마른 자를 고쳐버림으로써 반박을 못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 없도록 해버리니 다른 소재로 말 돌리기를 하듯이
절대로 인정 못해요

인정하면 회개를 해야 하거든요

회개를 하게 되면 예수님을 주로 불러야 하고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듯이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해야 하니까
죽어도 인정 못하는 겁니다.
끝까지 죽어도 고 go 죽어도 번제와 제사이지
때려 죽어도 인애와 자비가 되면 안 되니까 말이죠

온 나라가 조국 문제로 미친 듯이 부글 부글 끌어올랐다 말이죠
나라가 미쳤구나 라고 할 정도이다 말이죠
불매운동도 조국 문제에 못미친다 말이죠

온 나라 국민들이 다 정신병자들임이 다 드러난 거죠

속을 게 있어서 저 딴나라당 놈들에게 계속 속는 거 보면
귀신 들린 게 맞다 말이죠

대학생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딴나라당에게 속아서가 아니라
그냥 조국이 밉데요 재수 없데요
그 미움이 증상으로 나타났다는 거죠

이건 딴나라당에게 속아서 그런 것 보다 더 심각한 거죠

자 이러니 이 세상은 지혜가 없는 겁니다.
짐승의 수를 셀 수 있는 총명함이 없어요

지혜란 마치 새노래와 같아요
가스펠 노래 말이고
새노래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아무도 춤추지 않고 아무도 애곡치 않는 인자만이 부르는 노래 말이죠

지혜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말이죠
그러면 다 지옥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그저 자신의 의를 쌓은 것으로 답할려고 해요
그러나 택도 없습니다. 함량미달입니다. 666이다 말이죠

지혜자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는
마치 예수님의 찬양에 화답송을 부를 수 있는 자는
베드로처럼 지혜자의 지혜를 심은
십자가의 죽음을 심은 새노래꾼 밖에 없어요
십자가라는 지혜를 노래하는 자 밖에 없어요

아가서 사랑노래처럼
먼저 주님이 먼저 찬양하지 않으면
화답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찬양하고자 만드셨다 말이죠
그런데 아무도 찬양하는 자가 없어요

이스라엘 만큼은 찬양자로 만들었는데
이 놈들은 글쎄 입술로는 찬양하는데 속으로는 저주를 하는 우상숭배자로 드러난 겁니다.

그 우상숭배가 바로 자기의 의로움과 하나님을 섞은
강도의 소굴을 만든
이레에 두 번 금식에다가 십일조 한다는 그 짓이 우상숭배였다 말이죠
자기 배를 위하여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모습밖에 없더라 말이죠

아무도 인자처럼 우는 자가 없어요
이 인자가 찬양자처럼
십자가의 지혜를 화답하는 자이다는 겁니다.

베드로가 드디어 십자가를 노래 해요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꼐서(십자가를 지신) 더 잘 아십니다 라고 화답하는 자가

지혜자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자입니다

마치 성전 곧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얼굴도 못 들고 가슴을 치면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 십자가의 저주를 보고서
비로소 주님의 긍휼을 구하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내가 저주 받아야 할 자리에 주님이 대신 못 박혔다고 우는 자이다 말이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서
그 속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더라 말이죠

강도의 소굴 만들고 있더라 말이죠

그런 교회를 파괴 하겠다고
지금 에스겔 인자가 이상한 짓을 하는데

단순히 이상한 짓이 아니라
비밀입니다.

즉 삼일의 간극을 벌려요

이것이 계시록에 나타난 삼일의 간극
곧 한 때 두때 반때입니다.
삼분의 일은 성전을 불사르고자 불 짚어서 불 지르고
삼분의 일은 성전 주변을 빙두르면서 털을 칼로 짤라 뿌리고
삼분의 일은 성전에 들어가도록 바람에 흩날려서 털을 뿌리고

또 삼분의 일은 남은 털을 불타고 있는 성전 속에 또 뿌립니다.

이것이 기쁜소식이데요 글쎄
죄악들을 다 불태우는 겁니다.
흠향하십니다.

쫄딱 망하게 하십니다.
부정한 것을 다 태웁니다.

이들이 얼마나 예루살렘 성전을 가로막았는지를
도리어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숭배터로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을 다 불태워서

다시 말씀이 나오도록 하시는 새 일을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다 허물어서
3일 만에 다시 짓는 새 성전 참성전이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겠다 라고

모든 육체를 이 성전처럼 불 태우시겠다 라고
종말을 땡겨 버리는 겁니다.

다시는 떡으로 사는 인간이 아니라
말씀으로만 사는 새 인간을 만들고자
새노래 꾼을 만들고자
십자가라는 지혜의 태에서 새롭게 태어난 자로 만들고자

죄인을 부르러 오신 거다 말이죠

이 새일을 벌리고자 말이죠

백날 교회 다녀도
예루살렘 성전에 살아도
역시나 우상을 만드는데 미쳐 있어요

우리는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가짜임을
참현실인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것을 보고 알아야 합니다.
짐승의 수를 셀 수 있는 총명한 지혜인 십자가를 통해서
다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구약 때의 사건은 특히 선지서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경제와 정치를 통해서 배치됨을 보게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와 정치를 통해서 짐승의 수를 셀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허구를 볼 줄 알아야
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참현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말이죠

잉여(경제 정치 종교)의 흐름들의 배치를 통해서
마귀들의 활동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움직이는지
그들을 움직이시는 주님의 활동 또한 에스겔 1장처럼 얼마나 부지런하게 펼쳐지는지를
우리는 그 긴박하고 다급하게 펼쳐지는 묵시의 활동을 보게 됩니다.

저들 딴나라당처럼 국가를 얼마나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싶어 환장하는지를 
즐기면서 봐야지 같이 흥분하면 안 됩니다.
민주당들도 같은 패거리입니다.

우파(강도들) 좌파(바보들)를 보면서
이 나라에만 벌어지는게 아니라
각 나라에도 다 벌어지고 있거든요
다른 나라의 사정이 안 보여요

그러니 각 방언으로 펼쳐지는 이 역사라는 시공간 곧 인간의 육체들을 보면서
왜 망해야 마땅한지를 봐야 하는 겁니다.

한 천년 지나봐요 이것을 역사라고 인간들은 자랑을 해요
막상 이 속에 있어봐요 둘 다 더럽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정작 실상이신 참현실 참성전이 덮쳐진 자들에게는
회개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참현실(불 타야만 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못 보는
종말을 끌어 당길수 없는 자들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이 전부이기에
여기에 모든 승부를 걸어야 하니까

절대로 이 국가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 자들이 더더욱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거든요 좌파든 우파든

어떻게 해서든 강도의 소굴 안 만들려고 자신들의 의로움을 다 집어넣어요 글쎄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우상소굴이 되더라 말이죠

참 현실인 하늘의 예루살렘 성전을 다 이루신 것을 못 봐요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인자를 죽여 버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신들을 내세우게 되는 겁니다.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인간들은 이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못 나오도록 가로막고 있다 말이죠

그러든 말든 이미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왔기에
이제 허상은 물러가라 라고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는 겁니다.

우리의 신체는 불 타야 하는 겁니다.
왜 진짜 살려주는 몸은 예수님이라는 인자 우리가 버린 몸 이거든요

이 몸으로 갈아타지 않는
가짜 몸을 우기는 자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자로써
썩을 몸을 위하여
그저 자기 썩을 몸을 구원해 보겠다고 달음박질 하기에 여념없음을
부자는 썩지 않는 금으로 가난한 자는 썩지 않는 나무로
무너지지 않는 절대성을 온 몸에 칭칭 감아도
율법책을 아무리 몸에 칭칭 감아도
몸 자체가 썩고 불타는 것을

이 소통 이 연합 이 동일성 합일성을
이 죽은 자의 하나님 이라는 우상성을
이 사람의 일에 대조해서

무참하게 깨뜨려서 단절성을 보여주고 있는
성령의 일 곧 살려주는 영의 일을
인자를 통해서 모든 죄악을 인자의 신체에 담음을 통해서
이 어리석고 미련한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지혜를 통해서

선지자는 삭발로써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주님만이 다 이루셨기에 이 분만을 보라고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선지자는 그는 흥해야 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고
불타는 허상의 육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진짜 현실이냐 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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