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 선악의 소원, 음란 죄의 소원, 우상 죄의 소원을 담당할지니라 (겔 23,35-49)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애굽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애굽이 된 예루살렘 (겔 23,25-35)
에스겔 2019 2020. 9. 27. 10:54
19-64 애굽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애굽이 된 예루살렘 (겔 23,25-35)


(겔 23:35-49, 개역) 
3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36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오홀라와 오홀리바를 국문하려느냐 그러면 그 가증한 일을 그들에게 고하라』
37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38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39 『그들이 자녀를 죽여 그 우상에게 드린 당일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으되 그들이 내 성전 가운데서 그렇게 행하였으며』
40 『또 사자를 원방에 보내어 사람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이 오매 그들을 위하여 목욕하며 눈썹을 그리며 스스로 단장하고』
41 『화려한 자리에 앉아 앞에 상을 베풀고 내 향과 기름을 그 위에 놓고』
42 『그 무리와 편히 지껄이고 즐겼으며 또 광야에서 잡류와 술취한 사람을 청하여 오매 그들이 팔쇠를 그 손목에 끼우고 아름다운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웠도다』
43 『내가 음행으로 쇠한 여인을 가리켜 말하노라 그가 그래도 그들과 피차 행음하는도다』
44 『그들이 그에게 나아오기를 기생에게 나아옴 같이 음란한 여인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나아왔은즉』
45 『의인이 음부를 심문함 같이 심문하며 피를 흘린 여인을 심문함 같이 심문하리니 그들은 음부요 또 피가 그 손에 묻었음이니라』
4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치게 하여 그들로 학대와 약탈을 당하게 하리니』
47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48 『이와 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경성하여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49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너희가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겔 23:35, 현대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네가 고의적으로 나를 모른 척하고 등을 돌린 채 나를 잊어버렸으니 이제는 네가 정조를 내팽개쳐 버리고 파렴치하고 음탕하게 살아온 죄값을 네 스스로 짊어져라.'』
(겔 23:36, 현대어) 『[경고가 되는 두 자매]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책임 추궁을 하여라! 그 두 여인이 저지른 부끄러운 짓들을 낱낱이 들어 그들을 규탄하여라!』
(겔 23:37, 현대어) 『그들은 간통죄와 살인죄를 모두 저질렀다. 그들은 온갖 우상들과 간통을 벌이고 또 그들이 나의 자식으로 낳았던 아이들까지 불속에 집어넣어 우상들에게 바쳤다.』
(겔 23:38, 현대어) 『더구나 그들은 우상들에게 제가 낳은 자식마저 짐승처럼 잡아 바친 뒤 바로 그날로 나를 찾아와 나의 성전과 안식일을 더럽히고 욕되게 하였다.』
(겔 23:39, 현대어) 『(38절과 같음)』
(겔 23:40, 현대어) 『또 그들은 먼 곳으로 심부름꾼들을 보내 다른 사내들을 데려오게 한 뒤 그 사내들을 위하여 목욕을 하고 눈썹을 그리고 온갖 패물로 아름답게 단장하였다.』
(겔 23:41, 현대어) 『그리고 은밀하게 방을 꾸며 놓고 화려한 침대를 펴고 누웠다. 그 방에는 풍성한 식탁도 마련해 두고 내가 선물로 주었던 향과 기름까지 가져다가 그 위에 올려놓았다.』
(겔 23:42, 현대어) 『주변에서는 축제 기분에 들떠 떠드는 소리가 흥겹게 퍼져 나갔다. 사막에서 초대를 받고 온 스바의 사나이들은 떼를 지어 떠들어대고 그 두 자매에게 팔찌를 끼워 주고 값비싼 왕관을 머리에 씌워 주었다.』
(겔 23:43, 현대어)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음행으로 시든 여인들아! 너희들의 아름다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부족해서 광야의 사나이들까지 불러들여 음행을 벌이고 있구나.!'』
(겔 23:44, 현대어) 『그들은 마치 창녀에게 드나드는 사나이들처럼 오홀라와 오홀리바와 어울려 놀아났다. 그 음란한 여인들은 그토록 파렴치하게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음탕하게 살았다.』
(겔 23:45, 현대어) 『그러나 의로운 사람들이 그 두 여인을 심판할 것이다. 간통한 여인들과 사람을 죽인 여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듯이 그들을 판결할 것이다. 그들이 바로 간통한 여인들이요 그들의 손에 사람을 죽인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겔 23:46, 현대어)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온 나라의 백성을 데려다가 그들을 쳐죽이게 하여라! 그 두 여인을 모여든 백성에게 넘겨 주어 온갖 수모와 치욕을 당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기게 만들어라!』
(겔 23:47, 현대어) 『분노한 군중들은 그 두 여인에게 돌을 던져 쳐죽이고 그 시체들마저 칼로 토막을 낼 것이다. 그 두 여인의 아들딸들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러 태워 없앨 것이다.』
(겔 23:48, 현대어) 『나 여호와가 이 땅에서 이렇게 너희의 음란한 행실을 끝장내 버리겠다. 그래서 나는 이 땅의 모든 여인들에게 너희의 흉악한 본을 따르지 말도록 경고해 주겠다.』
(겔 23:49, 현대어) 『너희가 정조를 내팽개치고 더러운 삶을 살아온 데 대한 당연한 벌을 받는 것이다. 너희가 온갖 우상을 섬기며 살았으니 이제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너희의 음란한 죄값을 내가 바로 너희의 머리 위에 되돌려줄 작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희가 그 형벌을 받을 때에야 내가 주 여호와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목을 소원 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정신분석에서는 욕망이라고 합니다.

즉 소욕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두 소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갈 5:17, 개역)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자 그럼 제목의 죄의 소원, 선악의 소원, 우상의 소원이라고 했는데
그럼 이 반대되는 소원은 뭡니까?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이 뭐냐 라는 거죠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눅 10:22,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마 11:28, 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9, 개역)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30, 개역)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가벼운 짐을 지라 라는 겁니다.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죄의 소원인 무거운 선악의 짐 내려 놓고, 아들의 소원인 가벼운 온유와 겸손의 쉼의 짐을 지라 라는 겁니다.

아니 더 무거울 것 같은데요??? 

그럼 선악이라는 의문의 반복의 짐을 지던가 말이죠

두 짐 두 소욕 두 소원 밖에 없어요

즉 우리는 선악과를 먹고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버린 소원에 갇혀 버렸다 말이죠
그러니 남자는 평생을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살고요
여자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탐스러워야 한다는 예쁨에 사로 잡혀 삽니다.
그런데 현실 즉 권세 라는 역사와 공간을 날려 버리면 실상이 드러나는데 있어서
추하고 약하다 것 밖에 남지 않으니까
남자는 오이디푸스를 핑계대며 갑질을 약한자에게 하고 그 약한자가 또 다시 폭력에 의해서
또 다시 폭력의 되물림을 하게 되는 한풀이, 원한의 고리에서 못 벗어나는 겁니다.
여자는 반대로 히스테리로 추함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온갖 짜증을 퍼붓고 나를 아름답게 하지 못하는 것에는 폭력을 행사하고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는 종교적인 추종을 하게 되더라 말이죠 극과 극인 히스테리를 희숙대리를 막 부려요 
이 선악 죄의 소원을 무슨 수로 넘어서겠습니까? 무슨 수로 담당 하겠습니까?

아흐 짜증나 아흐 짜증나 ~~~     됐고 ~~~~

히스테리를 아주 잘 보여주는 개콘의 한 코너 [갑을 컴퍼니] 에서 잘 보여주거든요

www.youtube.com/watch?v=RE2oPV0m5EY

코너 제목을 오늘 본문처럼 바꾸면 [선악 컴퍼니] 겠죠 ‘컴퍼니’ 군대용어 였었다고 검색하니 나오네요

더 과거에는 개콘에 우리 성광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검색이 안되고
다른 내용으로만 나오던데
아무튼 히스테리를 남자는 못 넘어선다 라는 내용입니다

www.youtube.com/watch?v=9-7jJf7ADcg

사실 이 히스테리 라는 음부의 권세를 넘어서는 것을, 선악의 소원을 넘어서는 것을
라캉의 후예들이 잘 표현해 줬죠
홍상수 감독 영화의 남자들(히스테리 보다 더 히스테리 적인 찌질남)과
김기덕의 나쁜남자
그런데 넘어선가 맞나 라고 물으면 모르겠다 라고 해요 또 모호해져 버려요

음부 보다 더 음부적인, 부정 보다 더 부정적인
오늘 본문이 에스겔 23장 아닙니까

초반에 오홀리바 라는 예루살렘은

(겔 23: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23:2, 개역)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미의 딸이라』
(겔 23:3, 개역)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었나니』
(겔 23:4, 개역)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

여자의 장막 안에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나오잖아요
여성의 자궁 속에 하나님의 자궁 이다는 겁니다. 부정의 부정 종말의 종말
아이고 그것도 부정한 것이가? 적어도 이 정도로 부정해야지(얼굴도 못 생긴 것들이 잘난척 하기는) 라고 말이죠그래야 쉼이 와야 가벼운 짐이 와요 안식이 와요 환상가로지르기 채널돌리기
비극이 희극으로 웃음이 온다 말이죠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우리 연변에서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어야 사랑 축에 든다 라고 말이죠.

그것도 음부의 권세가? 그것도 금식이가? 그것도 사망의 권세냐? 권세 꼬라지 하고는 ~~
(우리 어무이께서는 한예슬만 보면 화장빨 때문에 누군지 헷갈려하시기도 하지만
꼬라지 하고는 ~~~ 아니가 라고 묻곤 하신다 말이죠)

적어도 우리 연변(천국)에서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야 기뻐하시는 금식 축에 든다 말이죠

하나님의 언약이 언약 안에 언약이 있어서
안에 있는 언약이 나와서 바깥의 언약을 성취시키는 것이 영원한 언약이기에
인간은 매일 매일 변하기에 개입을 못한다 말이죠
그저 인간은 이 영원한 언약에 의해
하나님의 발등상에 들추임 당하는 하나님의 원수이다는 겁니다.

(대상 28:2, 개역) 『이에 다윗 왕이 일어서서 가로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시 99:5, 개역)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110:1, 개역)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시 132:7, 개역)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사 66:1, 개역)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마 5:35, 개역)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눅 20:43, 개역)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 7:49,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히 1:13, 개역)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히 10:13, 개역)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래서 주님은 원수를 부르러 오셨다 말이죠 죄인 말이죠
의인은 필요가 없어요
영원한 언약에는 의인이 건강한 자가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홀리바 곧 예루살렘에서 말씀이 나와요
영원한 언약은 언약 속의 언약으로써 바깥언약을 성취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비밀 출생의 비밀이다 말이죠
그래야 오홀라 사마리아도 구원을 얻는다 말이죠
다른 복음은 없어요

바로 이것이 아들의 소원 이다는 겁니다 선악의 소원에 반대 되는

결국 남편 싸움이다는 거죠
이스라엘은 어디까지나 전리품이고요

그러니 남편이 새남편이신 예수님이 아닌 이상
모조리 다 간음죄 곧 선악이라는 하나님과 같이된 한몸이 된 음란죄이다는 겁니다.

남편이 달라요 달라

임마누엘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라는 겁니다.

멋들어진 구원이 아닌
모욕적인 구원 곧 십자가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안그러면 선악의 소원을 넘어서 보시던가
죄의 문턱을 넘어서 보시던가
음행을 감당해 보시던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은 매일 매일 높아지지 못하면
매일 매일 거룩해지지 못하면 언젠가는 떨어져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말이죠

아예 더 이상 떨어질 바닥 조차도 없는 제일 밑바닥에서
예수님이라는 새 길 새 남편 새 부활을 새언약을
그것이 훨씬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가벼운 짐 아닙니까

아 이 말 할려고 길게 서론을 펼쳤네요
흔히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자꾸 교리 플러스 실천의 구도입니다.
이게 글쎄 선악의 소원이라니깐요

그럼 아들의 소원은 어린아이도 쉽게 알아먹는
바로 수치를 가려주는 것을
모욕적인 구원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다는 겁니다.

다르죠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 곧 종교오락이지요 게임은 정치는 남을 이겨야 하니깐요
그러나 복음은 수치를 가려주는 겁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을 정죄치 않는 겁니다.

그런데 양탈무리는 다시는 범죄치 말라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또 선악의 소원을 무거운 짐을 지도 안 지키면서 막 씌워요
절대로 막살면 안된다 라고 강씨 자기도 못 지키면서 무거운 짐을 막 씌워요

주님은 간단합니다 어린아이도 곧 죽은자도 살립니다
막사세요 라고(히스테리 보다 더 히스테리적인)
즉 새삼스럽게 막살아라 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또 지켜요 무식한 놈 또 지켜
뭘 해도 막산 죄인 이다는 겁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없고
뭘 해도 가짜이다는 거죠. 사이비 말이죠

결국 이것은 예수님이 몰고오신 천국 곧 새언약, 영원한 언약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뭘 해도 죄인 만드신다는 겁니다.

주님이 만드시는 죄인인데
자기가 자기를 죄인 만들어요
죄인을 지켜요 그럼 지키면 죄인일까요? 또 행함으로 인해 의인 곧 선악일까요?

죄가 있는 곳에 구원이 있으니까요
죄가 없는 곳에는 구원도 없으니까 말이죠

즉 죽음 속에서만 생명이 있다는 겁니다.
가려주심이지
수치를 가려줌이 구원이지

뭘 지켜서 행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또 높이는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딴 남편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음란 죄 이다는 겁니다.

결국 다른 예수님을 믿는 다는 자체가 다 음란죄 이다는 거죠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의 집단이다는 겁니다.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고 말이죠
그래놓고 애굽을 구해서(간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내 신앙은 내가 지킨다 라고 나온다는 자체가
우상숭배인 음란 죄이다는 겁니다.

과연 이 음란을 넘어설수 있겠는가
죄의 소원
선악의 소원을 넘어설수가 있겠나 라는 겁니다.

왜 이것이 무거운 짐이냐
결국 자기 숙제이니까 그래요

가벼운 짐이란 내 숙제는 없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아니 내 세울 꺼리가 없는
바닥난 자가 
죽은 자 곧 어린아이가
뭘 내세울 것이 있겠냐 말이죠

그저 이 바닥까지 내려오셔서 수치를 가려주시는
이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시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는 
그 인물만 바라볼 뿐이지

또 선악으로 또 하나님과 같이 되어야 하는
그 숙제는 평생을 해도
의문의 반복일 뿐이다는 겁니다.

음부의 권세라는 사망의 바닥에까지 내려오신

남겨두신 한 씨가 아니였으면
원래 소돔과 고모라인 음부 지옥이였었지만
영원한 언약 새언약 덕분에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소돔과 고모라 라는 음란에서 벗어날수가 있었다 라는 겁니다.
벗어난다 라고 해서 바른 생활 한다는 또 자기 숙제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양탈무리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 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거룩해서 너희를 거룩으로 무조건 뒤짚어 씌워버렸다 라는 겁니다.
거룩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내 숙제로 예수님 숙제로 다 이루어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에
남의 숙제 안 봐요
자기 숙제만 봐요
그래서 우리를 오홀리바로 만드시는 겁니다.

율법 아래 다 가두어
죄인 중이 괴수로 만들어 버리신다 말이죠
오죽 하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우와 이제 인간 중에 이런 죄책감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드셔서
그 죄책감이 뭐냐 라고
이것도 죄책감이냐 라고 너끈히
그리스도 안에서 끊을자 없도록 하셨다 라는
예수님의 숙제로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이번주에 솔로몬 재판을 이야기 했는데
덧붙여서 유대인과 폴란드인 이야기를 덧붙였죠
거기에다가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를 할려고 했는데
시간을 보니 안되겠다 싶어서 덧붙이지 못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변상을 살점을 떼어서 변상하라 라고 했는데
문제는 살점만 떼어서 주라 라고 재판했다 말이죠
그런데 살점을 떼면 정확한 무게 그램만 떼면 되는데
피까지 흘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생각 납니까?
네 욥기 이지요
사탄과 내기를 하는데
생명만 빼고 다 건드려도 된다 라고
에이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니까 그렇지
물질을 쪽 빼면 바로 배신할 겁니다.

그래 내기 하자 생명만 빼고 다 건드려도 좋다 라고 말이죠

욥의 생명만 빼고 가족들 다 죽입니다
그렇다면 재산이고 뭐고 다 날라간 거죠

주님은 바로 이렇게 언약만 보여주시고자 이런 욥기라는 지혜서를 주신 겁니다.

생명은 나눌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법으로 자꾸 나눌려고 해요

그것은 마귀의 세계인데
선악의 세계는 말이죠
왜 마귀 숙제를 왜 하냐 말이죠

하나님과 같이 될려고
마귀가 얼마나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냐 말이죠
그런다고 생명이 나누어 지냐 말이죠
왜 그 마귀 숙제를 할려고 하냐 말이죠
인간의 숙제는 마귀 숙제 곧 선악의 소원 밖에 없어요
그거 무거워요
주님이 막았으니 당사자가 막았는데
아니 생명이시니까 죽였다 치더라도 안 죽어요
해도 해도 소용이 없는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왜 그 의문의 증서를 지킬려고 하냐 말이죠

예수님의 숙제는 가볍습니다
생명이니까 말이죠
생명은 아무리 칼로 배어도 죽음으로 배어도
칼로 물 배기라서 가벼워요
이 생명의 세계를 배워라 말이죠

배우기 싫다
임마누엘 구하지 않겠노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내 나라 이스라엘은 내가 이스라엘 왕으로써 내가 지킨다
힘 좀 딸리면 애굽의 힘과 연합하여서 지킬란다

과연 지킬수 있는지 보자
애굽을 의지 하지 말라고 발가벗고 이사야가 3년 동안 돌아다닌다 말이죠
왜? 애굽은 벌거벗은 벌거숭이 이다고
너를 가려줄 수가 없다 라고
너의 수치
너의 연약함
너의 죄악을 가려줄 수가 없다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릴수가 없다 라고

인간은 선악이라는 음란 죄로 인해
자기 보다 힘 세면 선
자기 보다 약하면 악

약한 것으로 자신의 모자란 숙제를 채울 수가 없다고 보니까
강한 것으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려고 해서 숙제를 할려고 한다 말이죠
그래야 조금 더 더 더 하나님과 가까운
하나님과 같이 된 모습일 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자기 보다 더 싫어버린 바 되신 예수님으로 오시니까
다들 악으로 취급해 버리더라 말이죠

즉 이 말은 이미 선으로 규정해 버린
선악이라는 우상
다른 하나님 이라는 우상
딴 남편이라는 음란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겁니다.

정작 예수님은 창기 세리의 친구이니까
바리새인들은 어찌하여 선지자 라면서 창녀의 머리카락으로 발씻어줌을 받을까 라고
때려죽어도 바리새인 본인이 창녀임을 모른다는 겁니다.
당연하지요 말씀을 지키고 거룩한 삶을 실천하니까 말이죠

성화되고 개혁주의를 실천하는 자를
아무리 보세요 창녀로 보이나

그런데 진짜 선지자 라면
바로 그런 자들을 음란한 우상숭배자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과연 그 음행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선악에서 말이죠

성전을 헐라 라고 하니까
본인들의 음란한 마음이 다 드러나는 겁니다.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주를 삼키듯이
교회 사랑
이라는 음란죄 말이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돈을 사랑하는 자인 거죠
바리새인에게 대놓고서 음란한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시듯이 말이죠

차라리 진짜 돈을 사랑하라 말이죠
왜 교회사랑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돈을 사랑하냐 말이죠

행함 곧 음행 때문입니다.
우상숭배
성전이라는 우상숭배 곧 권세
너의 출처가 어디냐
너의 배후세력이 누구냐 라는 거죠

음란이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는 겁니다.

마치 이혼증서를 써 달라고 모세를 무릎꿇게 할려고 했던 자들이
음란한 여자와 못살겠다 다른 깨끗한 여자랑 살겠다 라고
이혼증서를 써 달라고 한 남자들의 음란처럼 말이죠

이혼증서를 써 달라고 한다는 자체가
율법을 지킬려고 한다는 자체가
음란한 마음이다는 겁니다.

그거 꼬불쳐 놓고서 겉으로는 거룩한 율법 지킬려고 하니까 말이죠
속을 들따 보시는 주님을 속일려고???

주의 목전에 항상 죄 밖에 없다 라고 다윗이 들통당했잖아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다 라고
뭘 해도 죄 밖에 없다 라고

자 그럼 지옥 가자 말이죠
율법 네배나 갚으라 백날 외쳐도 지옥깜이 달라질 이유가 없어요

문제는 내 숙제에서 내가 떠난 후
상실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으니 뭐 인생 종 친 끝난거죠

문제는 그 지옥 바닥에 까지 찾아왔다 라는 주님의 숙제가 있을 줄 이야

이것을 긍휼이라고

새언약은 긍휼로써 창조했다 라는 창조의 원리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라는 겁니다.
나눌수 없는 잉여 이니까 말이죠
잉여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더더욱 잉여적으로 더더욱 잉여가 되어요
더더욱 넘쳐요
괜히 건드렸어
30배 60배 100배

이 30배 60배 100배를 삯꾼목자들은 그 땅에 썩을 재물로 사기를 쳐서 삥뜯지만
어차피 썩어 버린다 말이죠

30배 60배 100배는 우리가 보기에 전혀 귀한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풍성함입니다.

다들 무시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30배 60배 100배로 넘쳐봐요

어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무가치할 뿐인 것이거든요

목베인 영혼이 30배 60배 100배로 늘어봐요
다들 고개를 돌리지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는 고백이
30배 60배 100배로 늘어봐요
다른 강도가 미쳤구나 백날 늘어봐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 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무가치한 요나의 표적이 바로 나눌수가 없는 잉여 이다는 겁니다.

법은 나눌려고 하지요 살점을 떼어서 내기장기에 이길려고 하거든요
마귀를 괜히 끌어들여서 내기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나누어 질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무엇이?

이 하나님의 어리석은 지혜인 십자가가 말이죠

창녀 오홀리바 보다 더 더러운 더 부정한 십자가가 말이죠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너 더러운 인간 되면 안돼
너 더러운 막사는 인간 되면 안돼
바르게 살아야지 이렇게 살면 안돼

어딜 꾀냐 말이죠

십자가는 그런 더러움도 더러움이냐
내가 그 더러움 대신 다 감당했다 라고
또 선악의 소원을 담당할래

아니면 아들의 소원을 배울래 ~~~
내 짐은 쉽고 어린아이에게만 나타내실 정도로 쉽고
가볍다 말이죠

자 이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ㅋㅋㅋ

주님은 자기백성 이스라엘은 음란한 여자 간음한 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겔 23:36, 현대어) 『[경고가 되는 두 자매]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오홀라와 오홀리바에게 책임 추궁을 하여라! 그 두 여인이 저지른 부끄러운 짓들을 낱낱이 들어 그들을 규탄하여라!』
(겔 23:37, 현대어) 『그들은 간통죄와 살인죄를 모두 저질렀다. 그들은 온갖 우상들과 간통을 벌이고 또 그들이 나의 자식으로 낳았던 아이들까지 불속에 집어넣어 우상들에게 바쳤다.』

(겔 23:45, 새번역) 『그러나 의인들이 있어서, 바로 그들이 간음한 여인들과 살인한 여인들을 심판하듯이, 그 두 자매를 심판할 것이다. 그 두 자매가 간음을 하였고, 그들의 손에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신랑 곧 자기 하나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 곧 우상을 섬겼다 라고 말이죠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이 주셔서 낳은 자식을 불속에 집어넣어 우상에게 바쳤을 정도로 말이죠

이혼증서 써 달라는 놈들과도 똑같다 말이죠 율법 지키는게 아니라 율법 핑계로 새장가 갈려고
더러운 여자 싫다 깨끗한 여자를 다오 라고 말이죠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다 이래요
종교오락하는 정신병자들입니다.

한번은 신학교때 선배따라 식당에 같이 가게 되었는데
여러 교회의 전도사들이 누가 한턱 쏜다고 해서 같이 따라가 먹게 되었는데
온통 이야기가 주일학교 누가 많이 몇배로 불렸냐 라는 자랑이더라 말이죠

아니 작은 목사라꼬 목사 흉내 그대로 내어요
누가 자기 교인 수가 많이 늘었는가를 서로 뱀이 키 크기 자랑하듯이 말이죠

그렇게 자랑하던 전도사가 우리교회에 왔더라구요
병들어서
놀랬어요 ㅋㅋㅋㅋ

아마 1년 정도 못 채우고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안나오던데
실버산업이 그 당시 유망직종이라고 목사는 되었지만
몸이 안좋아서 못하게 될 것 같다고

외국까지 가서 공부했다고 했는데
목사 되고자인지 아니면 이미 목사 되고 난 뒤에 신학공부인지
아무튼 이제 더 이상 목사 안하고
사업한다고 얼마나 기쁜소식인지 ㅋㅋㅋ

얼떨결에 따라간 식사자리였는데 전도사 모임의 식사자리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거기서 가장 또렷하게 함박웃음을 띠고서 자랑을 하는데 다들 부러워 하면서 바라봤거든요
다들 부러워 하는 모습에 역겨웠었는데
제일 눈에 띄이는 행동을 했던 그 양반이 글쎄 기억에 남았었는데
안면인식 장애인데 그것은 잠깐 1시간도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라 기억에 각인이 되었넹 ㅋㅋㅋ
거의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만날줄이야 ㅋㅋㅋ


아무튼 이스라엘을 간음한 여자로 표현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남자가 아닌 여자로 표현하심에 있어서
여자라는 기능은 남자를 말하기 위함이다는 겁니다.
창조의 원리에서 여자는 남자 없이는 못 사는 존재이거든요

기능이 말이죠 
존재가 아니라 존재는 항상 따로국밥처럼 독자적으로 될려고 해요
자꾸 나눌려고 해요 법 법 법

그러나 기능은 자기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여자 남자의 구분이 왜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자들은 창조의 의미와 무관해져버린 겁니다.
그럼 그런 동성애자들을 반대하는 자들은 과연 창조의 원리를 담을려고 할까요?
똑같은 놈들이다 말이죠 
그런 놈들은 동성애자 보다 더한 놈들이기에 다 불태워 죽여야 해요
찬성자도 반대자도 둘 다 정신병자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기는 매 마찬가지이니까 말이죠

소돔과 고모라 라는 음란의 우상숭배 도시는
결국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거든요
자기 존재가 우선시 되거든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동성애자들 보다 더한 소돔과 고모라 집단이다 말이죠
그러니까 동성애자를 붙잡고 시비를 걸어요 글쎄
시선을 딴데 돌릴려고 말이죠
자신들의 음란죄를 감출려고 말이죠

돈을 섬기는 것을 감출려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율법이라는 돌삐로 쳐 죽일려고 하듯이 말이죠
예수님이 땅에 슥슥 쓰니까 다 도망치는 이유가 뭘까요
더 한 것이 들통나지 않으면 도망칠 이유가 없잖아요

여자의 기능은 마치 피조물의 기능처럼
남편을 말하기 위한 기능이듯이
창조주를 말하기 위한 기능이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여자라는 기능으로 표현했지만
정작 당사자 여자는
이 기능을 무시하고
어떻게 해서든 남자가 될려고 하는 존재
하나님과 같이 된 존재
즉 창조자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마귀의 숙제 선악의 숙제를 할려고 달려들어요 글쎄
간따나 머슴아 이스라엘 아들을
고추 짤라서
할례를 해서
손할례를 해서
고추 짤랐다 아들이 아니무이다
여자 이무이다 로 만들어도
할레를 지켰다고 우기니
이제는 여자가 더 머슴아 같이 센언니가 되어서
우상을 섬기더라 말이죠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을 섬긴다고 했죠
이사야 478

고아 안될려고
여왕이 되지 과부가 안될려고

여왕이 되면 남자 보다 더 해요 여인천하가 된다 말이죠
괜히 이세벨이 성경에 기록이 된게 아닙니다
괜히 엘리야를 끝가지 찾아 죽일려고 등장한게 아니다 말이죠
서로의 소욕을 못하게 해요 글쎄

아이 바보 남편 나봇의 포도원 그거 하나도 못 빼앗나
말라꼬 우노
말라꼬 금식하나
쪼다 그냥 음모를 꾸며서 죽이면 그거 빼앗는거 식은 죽 먹기지

그런데 남자는 쪼다 같이 꼴에 왕으로써 모범과 법을 지켜야 한다 라는 강박증 때문에
손도 못 대거든요

여자는 그런거 없어요

지금 당장 눈에 배고파 죽을판국인데 법이 믄 대수냐 말이죠

그런 음녀 속에 음녀 보다 더한 하나님이 장막이 그 속에 있다 말이죠

남편 아합왕은 선을 지켜야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식이고
아내 이세벨은 아니다 어느 세월에 법을 지켜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냐
왕이 뭐꼬? 권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
편법을 쓰면 될 것을 합법적으로 맹글어서 빼앗으면 될 것을 
선을 어겨도 하나님과 같이 되면 될꺼 아니냐 
결과가 하나님과 같이 되면 끝이지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노 라고 말이죠

이런 선악의 범주에서 벗어날 인간은 아무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고로 인간은 그 행한 그대로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함은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모든 행함은 결국 자기를 자기가 찌르는 식이거든요

그 선악의 범주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도리어 선악의 범주에 더 옭아매이는 식이 되는 겁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더욱 빠져드는 늪처럼 말이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말이죠

그러니 구원은 더 이상 인간의 숙제가 안되는 겁니다.
죄의 소원을 뛰어넘어서
오늘 본문의 선악의 소원 죄의 소원을 넘어서 음란의 소원을
우상의 소원
죄의 소원
마귀의 소원을 뛰어넘어서 구원이 되는 법이 없다 말이죠

오로지 예수님이 구원해 주심인 예수님의 숙제로만 구원이 되지
저것을 다 건너 뛰고 구원이 안된다 말이죠

예수님 조차도 대신 죄 값을 치르시고자 심판과 저주를 받으셨다 말이죠
따라서 우리는 이 십자가라는 새언약으로 인해
가차없이 음란한 간음한 여자로 규정이 되는 겁니다.

율법이라는 전남편에 의해서도 규정이 되지만
새남편인 예수님에 의해서도 음란한 여자로 규정이 되어요
왜? 여자는 누구를 말하는 기능이다
남자의 기능을 말하기 위해서

바로 대신 그 음란한 권세를 이기시는 신랑이다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사야서에서 영원한 언약 곧 주의 오른팔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의 발등상에 들통당하는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이 되듯이 말이죠

그런데 진짜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이 안되고
어라 의인의 자리에
건강한 자의 자리에 다 앉아있더라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의인의 자리에 앉았는데
빛의 아들들의 자리에 앉았는데
건강한 자의 자리에 앉았는데

정작 결혼은 못해요
결혼은 저 천한 계집과 해 버리니
왕비의 자리를 도리어 빼앗겨요 글쎄

아니 여자의 기능이 뭡니까?
남자를 말하기 위한 기능이거든요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이것이 구원이다 말이죠
당신이 나의 모든 허물을 대신 담당한 제 낭군이시군요 라고 해야 되기에
그 기능을 말하기 위한 자리에 놓여지는데

정작 남편과 무관한 독자적인 자리를 추구하다 보니
신랑을 빼앗겨요 글쎄

음란한 여자로 규정되었던 여자는 먼저 천국에 가고
빛의 아들들이라고 규정 되었던 자들은 나중에 지옥에 가더라 말이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가고요

내세울 꺼리가 많은 종교 지도자들
주여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고요
이거 했구요
이 숙제 했구요 했구요

그런데 역사와 공간을 날려 버리니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는 죄인
나는 음란한 창녀입니다

이 포도원의 열매인 회개를
세를 왜 내지 않냐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라고 나와야 하는데
당신의 긍휼 즉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찌끄래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는 회개를
왜 세금으로 내지 않냐 말이죠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이 기도를 하지 않는 겁니다.
주여 무능한 것 밖에 없습니다를
뭘 해도 죄요
뭘 해도 가짜였습니다요를

그런데 주여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 하다 라고
또 하나님을 운운해요
그게 우상이요
그게 음란하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취지는
무조건 우리를 모조리 다 음란한 두 자매로 만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심판과 저주 속에서도 불구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자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는 자
이것은 자기 숙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숙제 덕분에
불쌍히 여겨 주심 덕분에

주여 당신의 마음을 준비했습니다 라고
신랑이 오기만을 아니 이미 왔음을 누리는 자를

왜?

나누어지지 않기에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는 나누어지지 않기에

그런데 과부가 되어버리니까
본색이 드러나는 겁니다
나는 남자 없이 살아도
하나님 없이 살아도 된다
내 혼자만 산다

필요할때만 나를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그때 그때 이용해 먹고 단물빨아먹고 버리면 된다

이건 여자가 아니라 그냥 독자적인 존재인거죠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야말로 하나님과 같은 무성 중성도 아닌 무성

피조물이 아닌 독자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심뽀

그 선악의 소원
그 우상의 소원
그 음란의 소원
그 죄의 소원을
니가 담당해 보렴
과연 담당이 될는지

이세벨이 나봇을 갈기 갈기 찢어죽였듯이
이스라엘 장로들을 동원해서 돌삐쳐 죽였듯이
그녀 또한 그 행한 대로
개들에 의해 죽임 당하듯
개들 부하죠 부하
높은 성에 떨어뜨림 당해 몸이 산산조각 나서 죽죠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행함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쓸모 없다고 버린 돌을
죽여버린 돌을

똑같이 당하는 겁니다.

결국 간음죄란 사적인 개인적인 행동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세벨 왕비 아합왕처럼
왕이 백성의 대표로써 우상숭배라는 음란함을 보여주듯이

이미 하나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율법을 교묘히 이용해서 살인을 꾀하는
음란함의 더 깊은 내막을 드러내어서
규정하시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단 한번도 믿은적 없다 라고
창조주를 믿은 적이 없다 라고

그러니 피조물인 적이 없는 거죠

그것을 신랑이
아내의 남편이 규정하는 겁니다.

다른 남자랑 바람 핀다 라고

인간 자기가 자기 스스로 규정하는 음란이 아니라
그런 음란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돌삐 쳐 죽이고자 하는 모습
곧 이세벨 우상숭배자와 다를바 없다 말이죠

그런 얄팍한 간음죄가 아닌
신랑 본인이 규정함으로써
죄로 성사가 된다 말이죠

신랑의 신부 됨은 신부 쪽에서 규정할 수가 없어요

그 없다 안되는 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봐 버렸구나

이 안됨을 규정 당함으로써 인해서

왜 안되는지의 깊이를 알게 하실려고
주님의 의도적으로 오홀리바 창녀 중의 창녀로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드시는 겁니다.

개개인의 자질이 아닙니다
전체 집단으로 말이죠

그러니 베드로는 세 번 부인 안하고서는 이 십자가를 만날 길이 없어요
내 쪽에서 신부 됨 제자 됨 성도 됨 믿는자 됨이 탈탈탈 털리지 않고서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만날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에수님의 숙제를 만날길이 없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세 번 부인하는 자 만드시는 겁니다.

너 베드로 너를 성도 만드는 것는 나 예수 숙제 이지
너 숙제가 아니야 라고 말이죠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다 말이죠
그럼 너는 죽음이 되라
음부가 되라 라는 겁니다
스올 무저갱 지옥이 되라 말이죠
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음부가 된 베드로가 무슨 수로 만드냐 말이죠
이것이 십자가의 어리석은 지혜입니다.

안그러면 인간의 선악으로 죄의 소원을 이루어 보시던가
인간의 음란한 마음으로 죄의 소원을 넘어서 보시던가

바리새인을 타 넘는
바리새인 보다 더 나아 보시던가

그 무거운 짐을 왜 지냐 말이죠
자기도 못 하고 남도 못하도록 왜 짐 지우냐 말이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천국 길을 가로 막냐 말이죠

주님이 바리새인을 타 넘고 오시는데

바리새인은 그야 말로 선악의 소원 덩어리 이다 말이죠
거서 손 떼라 말이죠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 마귀를 왜 이길려고 하냐 말이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한테 있는데

그러니 간음죄를 누가 짖도록 만드시는 겁니까
주님입니다

이 간음죄의 깊이를 알아라 라고 말이죠

주님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유발케 하신다는 겁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고 선악과의 소원대로 하나님과 같이 된 독자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런 자에게서는 여자 라는 남자 없이는 살수 없는 기능이 없어요

그런데 여자가 됨으로서
신랑이 자신의 신랑 됨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를 여자가 되게 하심으로써

즉 나의 헵시바야 나의 쁄라야

나의 사랑(헵시바) 나의 어여쁜 자야(쁄라) (사 62, 1-12)
이사야 2017 2019. 5. 29. 16:27
17-82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사 62, 1-12)

(아 2:10, 개역)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사 62:1, 개역)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사 62:2, 개역)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 62:3, 개역)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사 62:4, 개역)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사 62:5, 개역)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일방적으로 나 이스라엘을 여자로 규정하시고
일방적으로 신부로 규정해서
자신의 신랑 되심을 나타내시더라 말이죠

점점점 인간이 믿어야 할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왜 부정한 여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그것도 이사야 62장 4절
땅 자체가 결혼한 바가 되었다 라고

주님 자신의 신랑 되심을 나타내시는데 있어서
이제 이스라엘은 남자가 아닌 여자로써 신랑을 왜 의지해야 함이 나타나야 함이
병행해서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기다릴 턱이 없잖아요
바로 하나님을 자신의 신랑으로 여기지 않고
이방나라의 신을 신랑으로 맞이함으로써

하나님의 신부가 안 되고
자기자신을 위한 신을 믿는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하는 겁니다
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여자로써 남자의 힘만 추구하는 우상숭배자로 말이죠

자 이렇게 되면 여자의 기능
남자와 여자로 창조한 그 창조의 원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여자는 여자 스스로 독자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로 인해서 발생함으로 인해서

창조의 원리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영원한 약속

그러니 남자인 베드로가 꼬추가 짤려서
왜 이 음란의 내막
왜 이 우상의 내막을 알아야 하는지
그 멍에는 쉽게 가벼움을 왜 배워야 하는지를 보게 됨으로써

비로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꼬추 짤려서 여자가 되어서
신랑이 이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음이라는 창조의 원리에 의해서 발생했듯이
신부 또한 베드로 또한 교회 또한 이 신랑에 의해서 새롭게 발생 병행해서 발생하는 겁니다.

그러니 왜 음란한 여자인지의 그 음란 그 우상 그 선악의 내막을 알리시고자
세 번 부인토록 하시는 겁니다.
안그러면 계속 음란해요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남들은 다 버려도 저는 끝까지 따라 가겠습니다 이것은
남근을 내세우는 겁니다 음란이다 말이죠

배신 안하겠다는 것이 배 배 배 배신이다는 겁니다.

왜 그게 선악 이니까 말이죠

성화되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래 거룩하고야 말겠다 라는 것은
꼬추를 달겠다 라는 겁니다.
꼬추 달게 되면 날 건드리는 놈 다 죽여버리겠다 라는 것이거든요

율법을 지키면 그런 인간이 되어요
이게 우상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죄는 딱 하나 선악이다 말이죠
그 기준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라는 거죠
여자가 안되면
남자에 의해서만 발생되는 여자가 안 되면

독자적인 존재가 되어서
자기가 신을 취사선택 해요
그 취사선택 기준이 뭘까요 
선악 아닙니까
음란 아닙니까
우상 곧 자기를 위한 신 아닙니까

이 내막을 다 거치게 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음란한 여자로 만들어요

세 번 부인한 베드로로 만들어요
다윗 개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다윗의 운명 속에 다윗언약 속에

이스라엘 전체를 다 집어넣어요

멋들어진 구원을 바랬던 다윗과
하나님의 원수로
음란한 여자로 규정이 된 다윗으로

이 둘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나타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건지시고자

바벨론 포로 속에서
큰 물고기 스올 무저갱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펼치시는 겁니다.

수치를 가려주시고자 신랑이 피옷을 입히시고자 말이죠

이스라엘은 이제 음부로써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신부가 된 것은
새신랑 새언약 때문임을

이 새언약에 병행해서
자신들은 이 새언약이 떳기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구원자 때문에
죄인의 자리
곧 간음한 여자

오홀리바의 자리에서 구원이 되는 겁니다.

안그러면 또 이방인 방식의 구원으로
취사선택하는 독자적인 존재로써

구원을 이룰려고 할테니 말이죠

그러니 음란한 여자 곧 역사와 공간이 날라가 버리면
죽은자가 되는 겁니다.
죽은태가 되는 것처럼

그런데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

바로 새신랑 새남편이 떳다 라는 이유로 말이죠

그 증상물로 말이죠

참된 신부는 바로 이런 신랑으로 인해서만 새로 만들어지는 증상물입니다.

이 십자가의 방식이 아니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 선악으로
신부의 순수함으로 신부되기를 추구하게 된다 말이죠

이런 이방인의 방식이 간음죄 이고
이런 내막을 알아야 뭘 해도 안됨을 알고
주님에게 숙제를 뻔뻔하게 내 맡길 것 아니겠냐 말이죠

성화론자들 보세요 성화론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똑같아요
계급만들어서 구분짖기를 해요 글쎄
100% 성화된 놈 90프로 성화된 놈 80 프로 성화된 놈 자기들끼리 이런 미친짓을 알아서 해요

현대판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짜증낼테니 아예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요
그러나 그런 자들이 생겨줘야

불가촉천민 이라는 그들이 계급을 매긴 자들이 먼저 천국에 간다 말이죠
창기 세리 강도가 먼저 천국에 말이죠

이게 현대인이라는 독자적 존재가 되어버린
그런 현대교육을 받은 자들은 이 주체가 되어버린 자기자신을
여자로 만드시는
남자 없이는 발생할 수가 없는 여자의 기능으로 만드시는
성도로 만드시는 그 기능을 거부하고 간음죄로만 일관하는 현대인으로만 살기를 바라는 자에게

주님은 이 요나의 표적
곧 우상을 파괴하는 짓을 매일 매일 저지르시는 겁니다.

매일 매일 쏟아나는 타인의 욕망에 휩슬려 살아가는 자에게
자신이 친히 만드시는 신부를 자기 피로 신부로 만드시는 작업을 펼치시는 겁니다.

우리는 이 작업 속에서 낑겨서
주님의 창조를 보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숙제로 우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자아 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평생을 업고 죽을 때 까지 이고 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런 내 속에서

자신의 신부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겁니다.

그 신부는 세상이라는 우상의 법칙이 아닌

주여 어서 별세해 주소서 라는 예수님의 죽음을 외치는 자입니다.

그 속에서만 예수님 신랑을 만났고 거기서 태어난 신부이거든요
나는 뭘 해도 창녀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는 자에게만

십자가의 피 용서가 보이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이 십자가의 피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라는 새 것 만이
이 새 일만이

나를 새 신부로 만들기 때문에 말이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지옥 한 복판에 세우시는 교회 곧 신부 말이죠

선악의 소원 죄의 소원 우상의 소원 음란의 소원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함이고

아들의 소원은 그 하나님의 자리의 정반대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 놓아서 신부 여자
하나님이 아닌 남자도 아닌 가장 약한 여자
남자에 의해서만
신랑되신 예수님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여자 신부 교회로 만드시는 것이 아들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의(거룩)을 일방적으로 입혀서 말이죠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거룩을 입히시고자 신부 만드시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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