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 녹슨 가마 솥 비유와 예루살렘(이스라엘) (겔 24, 1-14)

선악의 소원, 음란 죄의 소원을 담당할지니라 (겔 23,35-49)
에스겔 2019 2020. 10. 4. 10:15
19-65 선악의 소원, 음란 죄의 소원, 우상 죄의 소원을 담당할지니라 (겔 23,35-49)

(겔 24: 1-14, 개역) 
1, 『제구년 시월 십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날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에 핍근하였느니라』
3,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
4, 『건 후에 물을 붓고 양떼에서 고른 것을 가지고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
5, 『[4절과 같음]』
6,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피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 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일일이 꺼낼지어다』
7, 『그 피가 그 가운데 있음이여 피를 땅에 쏟아서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말간 반석 위에 두었도다』
8, 『내가 그 피를 말간 반석 위에 두고 덮이지 않게 함은 분노를 발하여 보응하려 함이로라』
9,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화 있을진저 피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
10,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11,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하게 하라』
12,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곤비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13,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정하게 하나 네가 정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정하여지지 아니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룰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며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심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24:1, 현대어) 『[녹슨 솥 같은 예루살렘]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9년째 되던 해 10월 10일에 주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ㄱ. BC 589년 12월에 해당된다)』
(겔 24:2, 현대어) 『`너 사람아, 오늘 날짜를 기록해 두어라! 이날이 바로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성을 포위하는 날이다.』
(겔 24:3, 현대어) 『너는 저 반역하는 백성 이스라엘에게 한 가지 비유를 전하여라.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전하여라.』
(겔 24:4, 현대어) 『`솥을 걸어라! 솥을 걸고 물을 부어라! 고기를 썰어서 솥에 집어넣어라! 순전히 허리와 어깨의 좋은 살코기 연골이 가득찬 좋은 뼈들을 가득히 골라 넣어라. 양 떼 가운데서 가장 실한 것을 골라 좋은 부위만 골라 넣고 솥 밑에 장작을 쌓아라! 고기를 펄펄 삶고 뼈까지 무르게 끓여라!』
(겔 24:5, 현대어) 『(4절과 같음)』
(겔 24:6, 현대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의로운 사람들을 죽인 이 피 묻은 도성에 만가 소리가 들린다! 닦을 수 조차 없도록 녹이 슨 솥 위에 상엿소리가 들린다! 방금 예루살렘에서 터진 일과 마찬가지로 제비를 뽑을 것도 없이 그 솥에서 한덩이씩 모든 고기를 꺼내어 가져간다!』
(겔 24:7, 현대어) 『죄 없는 사람들을 잘도 잡아다가 살해하던 도성아! 맨바위 위에서 사람들을 때려 죽여 그 피를 한번도 흙으로 덮어 둔 적이 없던 도성아! 바위 위에 쏟은 피가 그대로 있듯이 사람을 죽인 죄가 그대로 네 한가운데에 남아 있다!』
(겔 24:8, 현대어) 『의로운 사람의 피는 덮어 둘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도록 맨바위 위에서 피를 쏟아놓게 한 것은 바로 나였다. 네게 형벌의 심판을 내려 달라고 호소하는 소리가 들릴 때 내가 진노를 터뜨려 너를 처벌하려고 한 일이었다!』
(겔 24:9, 현대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의로운 사람들을 죽인 이 피묻은 도성에 만가 소리가 들린다!』
(겔 24:10, 현대어) 『나 여호와가 직접 장작불을 지펴 놓고 그 솥의 고기를 푹푹 삶아 국물도 모조리 졸아들고 고기도 모조리 타버리고 뼈까지도 타서 재가 되도록 오래오래 불을 때겠다!』
(겔 24:11, 현대어) 『솥이 빈 뒤에도 숯불을 뜨겁게 하여 그 솥의 쇠가 달아 오르고 그 솥에 붙었던 온갖 오물이 안에서 녹아 떨어지고 타서 없어지게 하겠다.』
(겔 24:12, 현대어) 『그런데도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다. 워낙 녹이 슬어서 타오르는 불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겔 24:13, 현대어) 『예루살렘아, 나는 너를 그토록 깨끗게 씻어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너는 음행과 폭력에 이골이 나서 깨끗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그대로 더럽게 되어라. 나는 분이 다 풀릴 때까지 너를 더럽게 놓아둔 채 화를 퍼부어 주겠다.』
(겔 24:14, 현대어) 『나는 더 이상 너의 죄를 묵인하지 않고 내가 말한 대로 어김없이 수행할 것이다. 나는 너를 전혀 아깝게 보지도 않고 마음을 돌리지도 않겠다. 네가 지은 대로 벌을 받을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그대로 실행에 옮기겠다.'』


9월 초에 이사야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왜 어두움 뿐인가에 대한 이유를 살펴 봤습니다

너희가 어두움 뿐인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 (사 59, 9-18)
이사야 2017 2020. 9. 6. 09:36
18-102 너희가 어두움 뿐인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 (사 59, 9-18)

배 배 배  배~~~  배신이야 배신  배 반 ~~~~~

즉 마치 베드로가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 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배 배 배반이다 라는 겁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구나 라고 말이죠

오늘 본문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다른 민족이 보여주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스라엘만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래서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의 차이는
참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치는 반면에

거짓선지자는 절대로 이스라엘은 망할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언약을,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절대로 망할 수가 없는 근거, 원인, 조건을 만들어 내고자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들겠다 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숙제들을 막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니까
그 언약에 맞게 우리가 변해서 어서 어서 우리가 숙제를 열심히해서
바르게 살면
절대로 망할 리가 없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거짓선지자의 주장입니다.
평강이다 평강이다 그러나 평강이 없다 말이죠

평강이 없을 정도로 이 하나님의 진노를 인간의 숙제가 막을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인간의 숙제가 마구 마구 튀어나오도록
인간의 배 배 배신을 마구 마구 튀어나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즉 짐승은
인간이 변해야 한다 라고 인간의 숙제를 강요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거짓목자들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꾀는 방식입니다.

그럼 참선지자는 멸망해 버리면 뭐가 남냐 말이죠
멸망만 주구장창 외치는 이유가 뭐냐 라는 겁니다.

인간의 신체는 이미 하나님과 같이 되어버린 선악을 알아버렸기에
자신이 이미 생각한 하나님관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선지자가 바로 그 점을 노리고서
인간의 숙제를 강요하는 외침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예수님의 숙제를 외친다는 점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숙제를 참선지자가 외치는데 있어서
그 숙제가 뭐냐 라는 겁니다.

인간은 안 변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라고 외치는 것이 참선지자 이다는 겁니다.

왜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졌느냐
창조의 원리를 이스라엘에게 담는데 있어서
그 창조의 원리는 바로 창조를 무로 돌려버리는
기존의 창조를 파괴한다는 
그 하나님을 전한다 라는 겁니다.

아니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릴 리가 있나?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바로 그겁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를 이스라엘에게 담는 이유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이스라엘은 새로 믿어야 할 판국이다는 겁니다.
새로 믿어야 한다고 하니까 마치 또 인간의 숙제처럼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새로 믿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숙제 이다는 겁니다.

주여 도대체 저에게 무슨 짓을 하셨나요 라는 고백만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말이죠

믿음 자체가 기존의 믿음 또는 신앙과 달라졌으니까 말이죠
예수님의 믿음이 들어오니까 말이죠

인간의 숙제는 어디까지나 자기 믿음입니다.
아니 타인의 믿음을 무슨 수로 믿습니까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데
이 말은 몸 자체가 달라졌다 라는 겁니다.

개인의 몸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게서
다른 몸
그리고 개인이 아닌 집단의 몸이 작용하게 된다면
이것은 인간의 개개인의 숙제를 넘어서 버린
인간은 그저 손 떼야할 입장이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런 인간의 숙제
인간의 손을 떼는 방식이
지난 주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 되는 방식처럼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식입니다.

절대로 배신 안하겠다 라고 나오는 것이 배신이고

오히려 저는 뭘 해도 배신 할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라고 나오는 것이 배신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베드로를 그렇게 바꾸어 버렸어요
인간은 절대로 안 바뀝니다
손 절대로 안 땝니다 믿음은 어디까지나 자기숙제로 보고 있지
남의 숙제로
타인의 숙제로
나와 떨어진 자의 숙제로 절대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야 내가 너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 했단다

아니 이미 벌써 벌써 믿음이 바닥나서 다 떨어진 베드로에게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결국 예수님이 믿음이 들어온다는 것은
나의 믿음이 다 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 라는 개인은 사라져야 하고
예수 안에 들어가도록 주님이 조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음글 무시 무시한 자기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벌린 임금과 같은 천국 비유이다는 겁니다.

인간의 숙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종교라는 짐승의 주장이 아니라
그 반대로 천국이 우리의 자아를 멸망시켜서 자신의 천국을 우리 몸 속에서 펼치시겠다
세우시겠다 라는 겁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옥임이
어두움 뿐임이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그 지옥 이라는 자아 한 가운데 복판에 천국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겠다 라는 겁니다.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우리의 신체 곧 육체 육 몸을 부서뜨리고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예루살렘이 본문에서 보여주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몰려듭니다.

나라가 위태해 지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인간은 거룩한 장소로 모여들어서
이 위기를 면하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에 모여든다 말이죠

그런데 그 성전이
성전의 기능을 상실하고
마치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특이성을 상실한 것처럼 말이죠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이동 시키는 거룩한 제사장과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는 기능이 상실이 되어버리고

도리어 성전으로 인해서 살육을 하고
약자를 죽이고
가난한 자를 빼앗고
등등
성전이 오히려 죄의 원천이 되어버렸기에
마귀 본부가 되어 버렸기에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아이고 그것도 죄의 본부냐 라고 강도의 소굴이냐 라고
오히려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지 죄의 본부 답지
지옥의 본부 답지
강도의 본부 답지 라고

그래서

(겔 24:1, 현대어) 『[녹슨 솥 같은 예루살렘]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9년째 되던 해 10월 10일에 주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ㄱ. BC 589년 12월에 해당된다)』

(겔 24:1, 공동)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때는 ㉠제구년 시월 십일이었다. / ㉠에제키엘이 바빌론으로 붙잡혀간 지 9년 되던 해인 기원전 589년 12월-588년 정월이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지 9년 째 되는 10월 10일에 BC 588년 1월 15일에
예루살렘 성이 포위 당하고

(렘 39:1, 현대어) 『[예루살렘 함락]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지 약 1년 반이 지나서 그 도성이 함락되었다. 곧 유다 시드기야왕 9년 10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전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그 도성을 포위하기 시작하였다.』
(렘 39:2, 현대어) 『바벨론 군대들은 시드기야왕 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 성벽을 뚫고 성안으로 진군하였다.』

예루살렘 포위 된지 1년 반 만에 도성이 다 무너지게 되는
BC 586년 5월 10일까지 (렘 52:12) 만 1년 7개월 만에 멸하게 되거든요
3차 포로로 이제 남유다는 끝나게 됩니다.

1 바벨론 제 1차 포로 (BC 605년 여호야김 제 3(혹은 4)년, 느부갓네살 원년) (왕하 24:2, 단 1:1-2, 5:2).
2 바벨론 제 2차 포로 (BC 597년 여호야긴 즉위년, 느부갓네살 8년) (겔 1:1-3, 에 2:5-6).
3 바벨론 제 3차 포로 (BC 586년 시드기야 11년, 느부갓네살 19년) (왕하 25:1-3, 렘 39:1-2, 52:4-6).

(렘 52:12, 현대어) 『[예루살렘의 멸망과 주민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한 달이 지났을 때에 바벨론 왕의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는 바벨론 왕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자였다. 그가 도착한 날은 느부갓네살왕 19년 5월 10일이었다.』

(왕하 25:8, 현대어) 『느부갓네살왕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이 가장 신임하는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왕하 25:9, 현대어) 『성전과 왕궁과 화려한 집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온 성안이 잿더미로 변하였다.』
(왕하 25:10, 현대어) 『바벨론 군대는 남아 있는 성벽조차도 모두 허물어 버렸다.』
(왕하 25:11, 현대어) 『느부사라단은 바벨론 군대에게 투항한 시민과 나머지 성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붙잡아 포로로 끌어 갔다.』
(왕하 25:12, 현대어) 『그러나 농민들 중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 남겨 두어 포도원과 농경지에서 일하게 하였다.』

지난 주 간음 죄 
곧 죄의 소원 
음부의 권세의 소원
선악의 소원이
우상의 소원이
이 간음죄로써
예루살렘이 다 들추임 당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죄악의 내막을
이스라엘의 죄악의 내막을 말이죠
그러니 간음죄란 결국 딴 하나님을 믿었다 라는 겁니다.

우상이지요
우상을 하나님과 섞어버렸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손으로 창조를 했던 겁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니
그것도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우상을 섬기는 저주 받아야할 민족이 쳐들어 왔으니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자
성전에 모여 진심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이사야 서에서 언급했듯이
바로 배 배 배신이다 라고 했지요

소위 신앙적인 올바른 신앙적이 모습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모습이다 라고
거꾸로 주님은 해석하시는 겁니다.
인간은 그 반대이거든요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다들 이것이 옳다 라고 하지
맞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고 하면
누가 이것을 옳다 라고 하겠냐 말이죠

지난 주 간음 죄란
곧 죄의 소원, 선악의 소원이란
딴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다른 남자랑 바람 피는 것이다 라고 했잖아요

결국 다른 남자인 우상은 뭡니까
선악 이다는 겁니다 법 법

그럼 율법을 줘도 율법의 알맹이는 냅따 버리고
껍데기만 취하게 되면
모세에게 이혼증서를 써 달라고 외치는 그 완악함처럼
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것이 간음죄 곧 선악의 소원이다는 거죠

자 그래서 이 인간의 몸이라는 신체는 결국 선악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선은 가급적이면 추구하고 악은 가급적이면 회피하는
자기를 위해서 말이죠
그것이 신체를 위함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도리어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라고 못 박아 버렸으니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냐 라고 하나님 본인이 따지시고 들어오시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이든 남유다 이든 둘 다 우상죄 이거든요
간음죄 이거든요 음란죄

결국 이방 나라의 우상 문화가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신체에는 저들 우상이 딱 맞다는 겁니다 그래서 애굽 때를 잊었구나 라고 하셨잖아요

애굽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애굽이 된 예루살렘 (겔 23,25-35)
에스겔 2019 2020. 9. 27. 10:54
19-64 애굽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애굽이 된 예루살렘 (겔 23,25-35)

지지난 주 였군요

자 그렇다면 저는 배신할 수 밖에 없는 죄인 곧 애굽과 같은 자입니다 라고 고쳐주소서 라고 해야 하는데
그 동안 우상으로 도배를 했기에
그러니 우상 플러스 하나님을 섞었기에
도저히 그렇게 고백할 수 조차도 없는 거죠
오죽 하면 다다음글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을 새롭게 주지 않으면
새마음을 주지 않는 이상 안될 정도이다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상으로 선악으로 도배가 되어 있기에
그것에 대한 심판으로써 가마 솥 비유를 하시는 겁니다.

바벨론으로부터 포위 당하여서
가마 솥에 들어가게 되어 팔팔팔 끓여지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게 되는 처지가 이스라엘이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양고기가 가마솥에 들어가게 된 처지가 이스라엘인데
그렇게 해서라도 물 가지고 날 씻고 불가지고 날 태워서 씻겨주시고
죄를 태워 주시면 좋겠는데

이제는 양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달라졌어요가 문제가 아니라

가마솥 자체가 문제이다는 겁니다.
하나님 자체가 문제이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을 갈아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곧 우상과 하나님을 섞은 다른 하나님인 거죠

그 남편을 갈아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고멜을 문제시 삼는게 아니라 말이죠

죄인을 문제시 삼는게 아니라
환자를 문제시 삼는게 아니라
의사를 갈아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의사

바로 성전의 기능이 엉터리 였다는 겁니다.

너가 믿는 창조주는 절대로 창조한 것을 멸망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지
땡 틀렸어

진짜 창조주는 자신이 창조한 것을 모조리 다 파괴를 해 버린단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게 아니라 오히려 버림으로써 창조주가 누구인줄

자꾸 자꾸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

이 말은 그 전에 너는 몰랐지 이제 제대로 알려줄게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이스라엘이 달라졌어요 라는 인간 숙제를 바라는게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라는 예수님의 숙제를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나 베드로를 물 위를 세 번 걷도록 해 주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나를 물에 빠뜨려 죽여서 사망의 권세를 멸하시는 주님을 보여주실때에

도대체 당신 누구십니까 라고 아까 알던 예수님
내가 경험했던 예수님
내 신체 속에 저장했던 예수님이 아니네

낯설기 짝이 없는
풍랑이라는 괴물도 죽음도 잠잠케 하시는
괴물 보다 더 괴물 같은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는

예수님이 달라졌어요를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숙제 너 안보고 있지
오냐 너의 숙제 다 망쳐서라도 내 숙제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너에게 숙제를 주니 누가 꾀니
나 예수의 숙제가 있는데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가 있는데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맞습니다 십자가 곧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숙제입니다
이 숙제 외에는 보여줄 숙제 없어요

다른 숙제 내밀지 마세요

그래서 하나님의 의 곧 거룩을 발산하는 성전의 기능이
도리어 약자를 삥 뜯고 살인하고 갈취하고 신원하지 않으며
참선지자 까지 죽이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변함에 있어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나봇을 죽였듯이 똑같이 당하도록 하시듯이
그러니까 인간의 숙제 곧 인간의 원수 갚음은 없어요
하나님 자신이 원수 갚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성전을 녹슨 가마 솥으로 만들어서

어이구 어이구 성전에 다 모여 앉았네 
아이구 나에게 도움을 바라고자 최후의 정성을 바칠려고 모였구나 그래 너희들이 그 동안 했던 짖 간음죄부터 다 처리해 주마 라고

팔팔팔 양고기 삶듯이 끓이시는데
단순히 죄를 씻는 목적 보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씻는 목적 보다

예루살렘 성전 자체가 녹이 쓴 가마 솥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말이죠

그것 때문에 바벨론으로부터 포위 당하게 해서
의도적으로 한 장소에 다 모이도록 유도를 했다는 거죠
이제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겠다 라고 말이죠
아니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벗어나고자 성전에 모인 것인데
도리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마땅히 받아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해석하신다 라는 겁니다.

분명 배신 안하겠다 라고 모인 것인데
모였다는 것 자체가 너는 나를 배신할려고 모였구나 라고 해석하신다 라는 겁니다.

배신 할 것 같으면 뿔뿔히 흩어져야지
예루살렘을 등지고 각자 제 갈길로 말이죠

그런데 배신하지 않고자 한 장소에 다 모여서 함께 일심으로 간구하겠다 라는 것은
절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장 지지겠습니다

남들은 다 주님을 버려도 저는 때려죽어도 안 버리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우상이, 죄의 소원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 가짜 하나님을 갈겠다 교체하시겠다 라고 거봐 너의 아비 사탄이 드디어 튀어나왔구나 사람의 소원 사람의 일을 들이내미는 구나 한번 죄의 소원을 넘어서볼려고? 내가 넘어가서 너의 그 하나님을 교체 시키겠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 구나

너 도대체 어떤 예수를 믿고 있니
너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니

나 너가 믿는 예수 아닌데
나 너가 믿는 하나님이 아닌데?

왜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니

아니 붙잡고자 하는 것이
배신 안하겠다 라고 하는 것이

넘어뜨리고 배신하겠다 라고 나온다 라고 예수님이 베드로를 그렇게 해석하신다 말이죠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그 동안 우상이 어떻게 선악이 어떻게 이스라엘 속에
베드로 속에 자리잡고 있었는지
마귀가 어떻게 유대인을 장악하고 있었는지
그 배후세력
곧 권세를 건드리신 겁니다.

그래서 아이를 바꿀려고 하시는게 아니라
부모를 바꿀랴고 하시는 겁니다.

바람핀 여자를 바꾸시는게 아니라
남편을 새로 갈아 엎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갈겠다 새로 교체 시키겠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가마솥에 양고기 곧 이스라엘을 집어 넣고 팔팔 끓이는데 있어서
가마솥에 양고기가 남아나질 않도록 끝까지 다 끓이게 되면

제가 자주 국을 끓이다가 깜빡 하고 잊고 있다가 
탄내가 나면 후다닥 달려가면
냄비 속에 있던 내용물들이 다 타서 냄비랑 딱 달라 붙어서
그거 떼어내는데 힘들었던 일이 있었는데

가마 솥에 있던 내용물들이 다 타서 달라 붙었는데 떼어낼수가 없을 정도인데
또 거기에다가 또 넣고 또 바짝 다 타서 달라 붙고
그렇게 자주 반복하게 되면 녹이 슬어버릴 정도로
의도적으로 녹을 형성케 해서

더 이상 가마 솥의 기능이 죄를 씻어주고 멸하는 기능 자체가 아예 상실이 되는
도리어 녹슨 가마 솥의 녹이 내용물 곧 양고기와 딱 달라붙어서
음란 죄 자체가 씻겨지지를 않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우상 숭배 자체가 씻겨지질 않는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백날 가마 솥에 끓여서 죄를 씻어보세요
녹이 달라 붙어서 도리어 더 더 더 죄가 더 넘쳐나더라 말이죠

빨래를 삶잖아요
속옷이나 수건 등등은 일반 빨래 보다 삶는 빨래를 한다 말이죠
그렇게 하면 때를 잘 씻을 수 있고
일반 빨래로 하면 냄새는 제거가 안된다 라고 그래서 삶는다 라고 알려주시더라구요
그러니 가끔식은 빨래는 삶아야 한다 라고 

그런데 그렇게하면 깨끗해 지기라도 하잖아요
문제는 냄비입니다 통냄비 자체가 녹이 슬어있으면
더 이상 깨끗께 하는 기능 자체가 상실이 된 거다 말이죠

오히려 녹이 빨래와 함께 섞여서
간음죄를 씻어내기는커녕
오히려 더 더러워 져서 더 이상 씻겨낼 방법이 없이
그냥 내용물을 버려야 한다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믿고 있는 그 하나님을
그 냄비를
그 녹슨 가마 솥을 갈겠다 라고

녹슨 가마 솥을 문제시 삼는 겁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의 일로써 믿는 하나님이지 곧 우상이지
하나님의 일 곧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는 그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바리새인이 믿는 하나님
바리새인은 모든 유대인의 대표성이니까 이스라엘의 대표성으로써 언급이 되니까
그 하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그 믿음 속에서 나오는 해석과 실천 등등은 다 우상이다 라는 것을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라는 겁니다.

어느정도로 모르냐

오히려 제대로 하나님을 보여줘도 거꾸로 바알세불 걸린 마귀의 대 마왕으로 해석하니까 말이죠

그러니 주님의  일 하나님의 일은 그런 하나님을 갈겠다 교페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라는 겁니다.
반면에 사람의 일은 오히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나타내고자 더더욱 신앙을 믿음을 표출하겠지요

그게 바리새인 아닙니까

모든 인간의 믿음은 이렇게 하나님과 자신이 일심동체임을 나타내는 믿음을 표출한다 말이죠

그게 바로 오늘 하나님의 진노를 왜 받아야 하는가를
도리어 성전에 모여서 일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그 모습이
바로 진노를 받아야 하는 이유로써
주님은 이들을 모으신 겁니다.

그들이 모인게 아니예요
바벨론으로 포위 하니까 모인거다 말이죠

그러니 이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서
거봐 거봐 딴 하나님을 믿고 있구나
우상을 믿으니까 너희는 진노를 당해야 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이 바벨론 포위 속에서 배신 안 할 거야 라고 모인 것이 배신이고
나는 뭘 해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 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했던 것이
오히려 예수님이 달라져서 새 남편으로 오셨다 라는 겁니다.

남편이 바뀌게 되었다 말이죠

십자가는 이렇게 모든 사고방식을 뒤짚어 엎어버리더라 말이죠

죽는 마당에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버릇 없이 싸가지 없이 별세해 주세요 라고
속이는 자 같은 멘트가 도리어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도리어 지극히 정상적인 다른 한쪽 강도는 죽는 마당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느냐 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우상이 교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라는 겁니다.

녹슨 가마 솥 즉 예루살렘 성전이 그 동안 어떤 짖을 했습니까?
바리새인처럼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에서
저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방금 저 살인했구요 라고 세리를 살해한 것을 기도하더라 말이죠

십일조 했다메?
금식을 했다메?
그럼 죽은 자를 살리는 금식을 했다면
세리를 살려야지 왜 죽이냐 말이죠

바로 이런 용도로 성전을 활용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강도의 소굴인 셈이지요

자 이렇게 성전을 해석하게 되면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다 악마의 소굴이 되는 거죠

자 그렇게 녹이 슨 성전
그 녹이 의인을 죽여서 쌓이고 쌓여 버렸으니
이 녹이 제거가 되지 않는 이상
성전의 기능이 제대로 나올까요?
부자는 삼키고 약대는 삼키고
가난한 자는 걸러내는 구나 하루살이는 쫏아내는 구나

(마 23:2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4, 개역)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마 23:25,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6, 개역)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7,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8, 개역)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9,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 23:30, 개역)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 23:31, 개역)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마 23:32, 개역)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마 23:33, 개역)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4,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마 23:35, 개역)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6,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마 23:38, 개역)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 23:39,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쓸모없다 라고 버리더라 말이죠 이것이 인간들의 손으로 짖는 성전의 특징이다 말이죠
돈 되는 사람이 와야지 왜 자꾸 밥을 축내는 자가 왜 오냐 말이죠
조 씨가 심심하면 이런 투덜 투덜 거리는 모습을 저에게 대 놓고 하던데 말이죠
밥만 축 내는 청년들 싫다 제발 돈 되는 인간들만 오라 라고
목사들도 다 그래요 결국은 돈 되는 인간만 교회 오라는 겁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 돈이 줄어드니 전도사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다 짤리는 판국이 되듯이 말이죠
그렇게 당해도 그들 또한 나중에 똑같이 되요
그러니 인간은 안 변한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뭘 갈아버린다
건축자들이 짖는 그 건축물 성전을 헐면 되요 성전을
남편을 갈면 된다니깐요
하나님을 갈면 되요

사람이 왜 두려우냐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손 놓지 않을려고 해서 두려운 겁니다.
베드로가 끝까지 따라가겠다 라고 하잖아요

절대화 시켰어요
필연화 시켰다 말이죠
인간의 믿음은 그래요 절대화 시켰기에
지켤려고 해요
자기 숙제를 끝까지 할려고 해요 절대로 손 놓지 않을려고 해요
그러면 그럴수록 못할까봐 두려움이 더 커지게 되는 겁니다.


(마 23:30, 개역)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 23:31, 개역)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절대 절대 절대로 참예하지 않겠노라 라고 배신 안하겠다 라는 사고방식
곧 죄의 소원 선악의 소원을 사탄의 소원을 말하잖아요
그러면 그럴수록 선지자를 죽인 자손 됨을 스스로

스 스 로 증거하고 있잖아요
왜? 조상들도 그렇게 똑같이 말했거든요

그냥 저는 선지자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라고 하면 되요
우상 섬길 수밖에 없는 죄인 창녀입니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교체 되어요

선악이라는 법의 하나님이 아니라
긍휼의 하나님으로 말이죠

자 그래서 선악의 하나님을 교체 할려고
가마 솥 비유 녹슨 가마 솥 비유를 하시는 겁니다.

양고기 곧 이스라엘 중에

(겔 24:4, 현대인) 『양떼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잡아 고기의 제일 좋은 부분인 넓적다리와 어깻죽지를 가마에 넣고 뼈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 그 가마에 가득 채워라. 그리고 가마 밑에 나무를 쌓고 물을 펄펄 끓여 뼈가 물렁물렁할 때까지 삶아라.』

귀족들 소위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 좋은 자들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에게 부자청년이 묻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라고 말이죠

아니 지금 심판하러 왔는데 구원을 운운해?
너는 내가 심판 주로 보이니 
구원의 주로 보이니

심판 주로 안 보이는데 어떻게 구원의 주로 보이겠냐 말이죠

소위 인간들 속에서 믿음 좋다 신앙 좋다 라는 무리들이 아무리 있어도
부자청년도 못 들어갈 천국이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갈수 있으며
누가 도대체 구원을 얻냐 말이죠

노아 욥 다니엘 이라는 신앙의 영웅이 옆에 있어도
구원 없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비유에서 부자가 아무리 귀한 것 옆에 있어도 구원 없잖아요
자식이 지옥인데 부활이 없는데 혼자 산 것이 그게 무슨 산 것입니까? 죽은거지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자 보세요 이 정도로 하나님이 달라졌어요 보다
우리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우리 부자 청년이 달라졌어요 로만 다가간다는 자체가

진노를 매를 더 벌어요 벌어

엉뚱한 하나님을 자꾸 기대해요 글쎄

참선지자 에스겔 선지자의 아내가 죽어도 울지 말래요 글쎄

(마 8:21, 개역)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마 8:2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아내란 남자에게서는 최고의 기쁨이요 최고의 귀한 것이다 말이죠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다 말이죠
너는 곧 내 다 라고 말이죠 내 다? 사투리라 못 알아먹으셨나요 나 다
너는 곧 나 다 라고 일심동체이다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최고의 귀한 것 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아내 갈기가 아니라
인간이 변해야 한다 가 아니라

남편 갈기입니다
귀한 것 갈기, 교체하기입니다
복음이 귀하지 나는 하나도 귀하지 않다 말이죠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아내가 죽어도 글쎄 안 울어요

더 귀한 새 일 곧 남편 갈기가 생겨 버렸거든요

모든 인간의 귀한 것
하나님도 십자가에 못 박고
성전도 교회도 십자가에 못 박고
모든 육체
귀하디 귀한 인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고 헐고자 예수님이 오셨다 말이죠

자 오늘 본문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먼저 시작이 됩니다.
이 심판을 근거로 해서

(벧전 4:17, 개역)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주변 이방나라도 다 망하게 됩니다
이 전능자 여호와를 이렇게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나라에 전도한다 말이죠

사단의 가시를 푹 찔러 넣어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복음이 귀하지
복음 증거하는 너가 하나도 귀하지 않다 라고

그것을 보고 이방인이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어무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나올거 아니겠습니까?

이 비유 이 비밀이 담겨진 자에게만
며느리 룻처럼 말이죠

안 그러면 또 의문의 엉터리 하나님을 믿고
그런 믿음은 결국 내가 귀해지지
그래서 자꾸 자기 숙제를 할려고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꾸 인간 숙제를 강요한다 말이죠

나를 하나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예수님의 숙제만을 쳐다 보고 이방인이 주님 앞에 나아 오는 겁니다.

심판을 거친
간밤에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지옥 암흑 흑암의 백성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인애와 자비로 말이죠
번제가 제사가 아니라

그들 또한 이 심판 속에서 말이죠
이스라엘만의 기능을 졸지에 같이 당하면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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