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 닫힌 동쪽문으로 들어오시는 여호와 (겔 44, 1- 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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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 닫힌 동쪽문으로 들어오시는 여호와 (겔 44, 1- 3)

피 뿌리는 번제의 취지와 사독 제사장 (겔 43,18-27)
에스겔 2019 2022. 2. 26. 22:01
19-121 피 뿌리는 번제의 취지와 사독 제사장 (겔 43,18-27)

〈에스겔 44, 1- 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2쪽,  찬송가 334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210장 내 죄 사함 받고서〉 

〈찬송가 334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1. 아버지여 이 죄인을 용납하여 주시고 
   아드님의 이름으로 구원하여 주소서 
   아버지를 떠나간지 벌써 오래 되었고 
   길 험해서 곤한 몸이 이제 돌아 옵니다

2. 전에 하던 헛된 일을 원통하게 여기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용서하심 빕니다 
   은혜 감당못하오나 회개하는 영혼과 
   나의 약한 육신까지 감히 드리옵니다

3. 나의 죄를 사하시려 주님 죽으셨으니 
   그 공로를 의지하여 주만 의지 합니다 
   아버지여 용납하사 나를 품어 주시고 
   주의 사랑 품안에서 길이 살게  하소서  아멘


〈에스겔 44, 1- 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22쪽〉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 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3)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2,21-25 개역한글, 신약성경 379쪽〉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찬송가 210장 내 죄 사함 받고서〉 

1.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2. 주님 밝은 빛 되사 어둠 헤치고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주 앞에 온전케 됨은 주의 공로를 의지함일세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3. 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모든 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 맘 항상 주안에 있도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겔 44:1, 현대어) [항상 잠가 두는 동문]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다시 나를 데리고 바깥 마당의 동문으로 갔다. 그 대문은 이제 잠겨 있었다.
(겔 44:2, 현대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 대문은 항상 잠가 두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 대문을 통과하여 성전으로 들어간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도 이 대문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 대문은 영원히 잠가 두어야 한다.
(겔 44:3, 현대어) 오직 왕만이 이 대문의 현관으로 들어와서 제물을 나누어 먹을 때에 문간에 앉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도 밖에서 이 대문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다른 대문으로 들어와서 바깥 뜰을 지나 동문의 현관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그 길로 나가야 한다.'


먼저 소제목이 달린 각각의 번역서를 올려보겠습니다

표준새번역

겔 44:1 [성전 동쪽 문의 용도] 또 그가 나를 동쪽으로 난 성소의 바깥 문으로 다시 데리고 가셨는데, 그 문은 잠겨 있었다.
겔 44:4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차다] 또 그가 나를 데리고 북쪽 문으로 들어가서, 성전 앞에 이르렀는데, 거기에서 내가 보니, 주의 영광이 주의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겔 44:10 [레위 사람들의 제사장 직무 박탈] "특별히 이스라엘 족속이 나를 버리고 떠나서, 우상들을 따라 잘못된 길로 갔을 때에, 레위 제사장들도 내게서 멀리 떠나갔기 때문에, 레위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의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겔 44:15 [제사장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나에게서 떠나 잘못된 길로 갔을 때에도, 레위 지파 가운데서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은 내 성소에서 맡은 직분을 지켰으므로,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서 나를 섬길 수 있고, 내 앞에 서서 내게 기름과 피를 바칠 수 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요거는 표준새번역개정판

겔 44:1 [성전 동쪽 문의 용도] 
겔 44:4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차다] 
겔 44:10 [레위 사람들의 제사장 직무 박탈] 
겔 44:15 [제사장들] 

같죠 새번역이랑


아래번역은 개역개정한글판 이구요

겔44:1 <성전 동쪽 문은 닫아 두라>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
겔44:4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겔44:9 <레위 사람들의 제사장 직분을 박탈하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겔44:15 <제사장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외 나머지 번역본입니다

(겔 44:1, 쉬운) <제사장에 관한 규정>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성소 바깥 동쪽 문으로 데려갔는데, 그 문은 닫혀 있었다.

(겔 44:1, 현대어) [항상 잠가 두는 동문]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다시 나를 데리고 바깥 마당의 동문으로 갔다. 그 대문은 이제 잠겨 있었다.
(겔 44:4, 현대어) [다시 오신 여호와] 나를 안내하던 사람이 이번에는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과하여 안마당의 성전 입구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성전 건물 전체가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겔 44:6, 현대어) [이방인들을 제외시켜라] 너는 저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전해 주어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는 성전을 더럽히는 짓거리를 끊임없이 저질러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 두어라.
(겔 44:15, 현대어) [사독의 후손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게서 떠나 갔을 때에도 사독의 후손들 중에서 뽑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에서 충직하게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만이 앞으로도 내 제사장이 되어 희생제물의 기름과 피를 내게 바칠 수 있다! 나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겔 44:17, 현대어) [제사장들이 지킬 규정] 제사장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올 때에는 언제든지 세마포옷을 입어야 한다. 안마당의 대문간이나 성전 안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에 털로 만든 옷을 입어서 몸에 땀이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제사장들은 머리에도 세마포 수건을 감고 세마포 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때 허리에는 땀이 나게 하는 가죽으로 띠를 띠어서는 안 된다.


먼저 오늘 본문에서 성전의 기능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앞의 그 전의 장들은 성전을 짓고 또 번제단을 짓고 그 번제단의 기능을 언급했잖아요
이제 성전의 기능이 언급됩니다

결국 성전의 존재를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움직이지 않는 물건 부동산 개념이 되어버려요
기능을 이야기 한다 라는 것은
비밀이다는 겁니다
나타난게 아니라 숨겨져 있는 비유인 것이지요
즉 단절 이다는 거죠

존재로 봐 버리면 자꾸 인간이 손 댈려고 하는 대상물이 되어버립니다
그 반대이다 라고 했죠
도리어 성전의 기능의 대상물이 되어버린 것이 인간이다 라는 거죠
그런 기능을 나타내니까 숨어있어서 못 보는 겁니다

못 보니까 엉터리로 마음으로 생각한 바를 끼워 맞추기 하니까
거짓선지자들이 헛된 묵시나 점괘를 말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 조차도 성전의 기능에 의해서 발생되는 거지요

이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발생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이 단절을 어떻게 해서든 성령의 일을 개방으로 바꾸어 버려야
자기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거리끼는 걸림돌을 제거하게 되니까 말이죠
무당을 찾는 이유가 바로 그런 미래에 대한 불안이니까 말이죠

또 오늘 본문이 닫힌 잠겨진 성전의 문이라고 하니까
웃끼게도 열린교회 닫힌교회 라는 개념이
우리 때 그때 90년대 중후반에 한참 유행했다 말이죠

열린교회를 반대한다고 닫힌 교회를 주장하는 성화론자의 교회에 다녀봤는데
무슨 결백증 환자도 아니고 말이죠
자기들이 깨끗한 자인줄 알아요 글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잠겨진 성전의 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여전히 대상물로 보니까 교회를 자기들이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라진다 라고 본 거다 말이죠

피로 사신 교회의 대상물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들이 피로 사신 교회를 다루겠다 라고 나오는 거죠
강박증환자 같아요 안그러면 그 빈공백을 견디지 못해 미쳐버리거든요
이미 종교라는 마약을 먹어서 종교오락에 중독된 티를 내고 있지만 말이죠

오늘 나오는 잠겨진 성전인 여호와의 문은
오로지 여호와 자신이 들어갔다 나오니까
아무나 들락날락 한다는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네 맞아요 그럼 교회 안에 들어간다 라는 자체가 시건방진 것이지요
그러니 감사함으로만 들어가는 겁니다
즉 성령에 의해서 등떠밀려서 가는 거다 라는 거죠

안그러면 자기가 교회에 들어간다 라는 식이 되어버리면
마치 이방인 곧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 들락날락한
더럽히는
가증한 물건 곧 우상이 여호와의 문에 들어갔다 나왔다 라는 식이다 라는 거죠

왜 이것을 닫힌 교회를 주장하는 자들은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죠
나는 저 세리
저 열린교회를 주장하는 자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 한다 라고
또 감사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잖아요

감사란 오로지 죄인만이 외치고
오로지 환자만이 외치도록 되어 있어요
왜? 의사에 반대편에 서있는 기능이기에
즉 성령의 놀라온 탄식으로 인해서

(사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비로소 상한심령이 되어서
썩어버린 마음임을 더러운 죄인임을 알고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소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깨끗한 거룩한 백성 가운데 있는 줄 알았는데
거룩한 백성은커녕 1000년 동안 애굽의 10가지 우상을 단 한번도 끊어낸적 없는
손할례의 달인이였지 마음판의 할례를 한 적이 없는 더러운 우상의 민족
배달의 ~~~~~~~ 우상의 민족 중에서 주의 영광을 봐 버렸으니
천부당 만부당 불타 죽어 마땅한 죄인이로구나 라고 우는 자가 되는

이 회개의 영에 의해서만 등떠밀려서 성전에 들락날락 했지

자력으로 온 놈들은 다 불태워 죽이는 곳임을 몰랐다 라는 겁니다

자기 손으로 꼬추 끝을 끊어내는 할례 백날 해도
그것을 지켰다 법 지키듯이 지켰다 라고
자기 기념이 되어버리면
더더욱 우상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 밀착이 되어서 자기 자체가 우상이 되어버린
그래서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세리 저 더러운 놈 저 율법 안 지킨놈 만나면
미쳐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빈공백을 채울려고 말이죠
그러다가 쭐꾸덕 미끄러져 자빠지는 겁니다
선 줄로 아는 놈은 넘어질까 두러워 하라

주님이 누구른 미끼로 삼았는 줄 알길이 없을테니 말이죠
거리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는 복되도다 

즉 주님 자기자신이 문으로써
과연 너는 내 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니 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아무도 없죠
지금 여호와의 문은 오로지 주님 혼자만 들어올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 정 들어오고 싶으면 모든 죄악을 다 이기고 오라

즉 죄의 소원을 넘어서라 라는 거죠

(창 4:7, 개역)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죽인 아벨이 넘어져 죽은게 아니라
그 반대로 가인이 넘어져 버린거다 라는 겁니다

죄를 다스리라 라고 하니까
오늘날 모든 설교가 죄를 이기라 라고 사기를 치는데
그 말입니까?

아니지요 또 그렇게 되면 가인처럼 자기가 죽여야 할 자를 또 찾게 되는 겁니다
사냥꾼을 총을 쏘듯이 또 누구를 쏠까
사망아 누굴 쏘아 죽이고 싶어 환장이니

아벨?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우리야 장군?
매국노 세리?
너희가 신원하지 않는 고아 과부 나그네?
꺽으신 뼈? 예수님 까지 총 쏘아 죽이고프니?

도리어 죄를 이기기는커녕
죄의 소원대로 누구를 죽이기 바쁜 자신의 속내가 들통나는
미끼를 덮썩 물게 되는 모습을 보이더라 라는 거죠

그래서 비로소 회개가 나오는
감사의 영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자이구나
예수님을 고때만 그때만 세 번 부인한게 아니라
늘 부인했고
고때만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즉 우상이 늘 마음에 있는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과 뭐가 다르며

아무리 깨끗하게 손 씻어서 먹듯이 깨끗하게 해도
어딜 감히 우상을 성전에 세우고자
자기를 성전에 세우고자 감히 들락날락 했냐 말이죠

성령이 등 떠밀어서 들어오게 된 자가
과연 깨끗해서 들어온 자입니까?
얼마나 더러웠으면 불태워서 들어오게 했겠냐 말이죠
들어오니까 성전에 있던 바리새인이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다 라고
우상이 이미 먼저 와 있었던 거죠

그거 제거 할려고 성전의 기능에 의해서 두 사람이 영원히 갈라지더라 말이죠

이래야 언약이 성사가 된다 말이죠

이런 내용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대상이 된 이스라엘과
못 들어오는 이방인과의 두 패로 갈라짐이 언약의 성사인데

도리어 이스라엘이 개판이 되니까
자기의 유익에 따라 이방인이 돈을 쥐고 있으니
지나개나 다 들락날락 하게 된 성전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이미 오늘 본문의 에스겔이 본 환상의 시점이
이미 그 전에 그렇게 하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다 불태워 버리고 난 뒤에
도리어 이방인의 땅에서 이렇게 대조를 말씀하시고 있다 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없어지고 난 뒤에 야 말이죠

우리는 둘을 비교하고 싶어도 두 개가 되어야 비교를 하든 말든지 하지

마치 육체의 아버지가 아들을 야단칠때에 왜 옆 집의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우등생인데
왜 너는 이 모양 이 꼴이니 라고 항상 비교를 해야 그 차이가 드러나는데

옆 집의 아이가 하나도 없다
없으면 아들이 1등이거든요

꼴찌 아니다 말이죠
그러니 지적 받을게 없잖아요

차이가 드러나지 않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웃끼게도 바리새인이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아버지 내 옳지요 라고
아예 아버지를 갈아버렸어요
다른 아버지를 앉혀놓고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나오는 식이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라고 했거든요
즉 그 이전에는 안 나타났다 곧 숨어있었다 라는 겁니다

이 숨어있는 단절을 그 동안 잇고 잇고 이어진 것이지
개방을 연결을 동일성 합일성 나타남을 잇고 잇고 이은 것이 아니였다 
연합성이 아니였다 라는 겁니다

이 단절성이 이 다음 글에 언급할 하나님의 진노 이다는 겁니다
가짜 하나님은 이 진노가 없어요
엉터리 가짜 아버지를 모셔놓고서 십일조 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이것이 바로 자기를 긍정해 주는 가짜 아버지 이다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자신을 투사해서 이미 두 개로 갈라서 
자기가 자기 보다 못한 놈 하나 잡아서 비교 대조를 하더라 말이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사기를 치냐 말이죠
이 십자가는 진짜 하나님의 진노이다 말이죠
이 하나님의 진노를 고스란히 받으신 분이 바로 아들 예수님이신데
어디를 엉터리 하나님을 모셔놓고서 가짜 아버지를 앉혀놓고서

연기를 하냐 말이죠 연기를 사기를 치냐 말이죠

그래서 니 하나님과 내 하나님이 다르다 라고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는 겁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그래서 임마누엘을 구하지 않겠노라 라고 하더라 말이죠

다른말로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고스란히 받는 인자를 구하지 않겠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보겠다 라는 거죠

그럼 뭐냐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그런 나의 정의감 나의 믿음 나의 행함을 받아주는
그런 하나님을 구하겠다 라는 거죠

다다음 글 에스겔 14장의 내용이 바로 그거거든요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께 물으러 온다 말이죠
마치 무당을 찾듯이
미래가 불안하니까 점괘를 보듯이 찾아요
이스라엘 장로들이 말이죠

이게 아이구 나를 찾아와 주니 고맙구나 이럴까요?
아니지요 그 놈들 다 죽이라 라는 식이 되는 겁니다

모세가 즉 중간의 매개자가 내려오지 않으니까
그 빈자리를 밑에 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아요
네 맞아요 그 하나님이 바로 우상이요 여호와 라는 이름이 새겨진 송아지 우상이였다 말이죠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 여호와 예수 안 섬깁니까?
다 섬겨요

예수 이른 안 부르고
하나님 곧 여호와 이름 안 부릅니까?
다 불러요

왜 부를까요? 네 맞아요
나를 위하여 부르는 겁니다

자기를 위하여 부르는 것은 여호와가 되었든 예수기 되었든 하나님이 되었든 그거 우상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도망쳤다 라고 했잖아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는 거짓선지자들과 그 백성들이 찾는 하나님에게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없어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는 이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인자의 모습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다들 고개를 돌려 버립니까

지금 싫어 죽겠는데
미워 죽겠는데
여기서 어떻게 감사가 나오냐 말이죠

감사가 나오는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어요
나도 저 죽음에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자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런 자는 없습니다 우상이 인간의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성령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우는 마음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이
새롭게 새것으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야
곧 성령의 숙제로써 말이죠
그래야 썩어 뭉드런 마음으로써 우는 자가 태어나는 겁니다

오죽 하면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까 라고

만약 할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아무리 수많은 실패가 있더라도 
시도를 해서라도 함 해보겠다 라는 식으로
여전히 연결성 연합성 개방 단일 합일성으로 시도를 실천을 하겠다는 발상을 나타내더라 말이죠


주님이 이것은 하늘의 일인데 너가 무슨 수로 무슨 자격으로 땅의 일로 받아들이느냐 라고 나무래시는 겁니다
믿음의 일을 
행함의 일로 취급하더라 말이죠 실천하면 마치 될수 있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개역)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개역)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개역)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9, 개역)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10,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개역)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개역)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개역)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육은 제발 오늘 본문의 여호와의 문에 들어오지 말아라 라는 겁니다

그래도 인간은 니고데모처럼 금바쳐서
성전에 금을 바쳐서 맹세하듯이 기도하듯이
십일조 이레에 두 번 금식
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850명의 기도로
연합으로 기여이 문에 들어가겠다 라고

하늘로 올라가겠다 라고 바벨탑을 세우고 국가를 세우고
성전을 짓고 금을 바쳐서 어떻게해서든 하겠다 라고 나오는데

정작 엘리야는 물 뿌리고 있는 단절을 구체화 하더라 말이죠
지금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를 외치는 단절
상한마음 소금을 쳐야 하는데

뭘 바치기는 뭘 바쳐요

정작 엘리야는 그 단절성을 알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몰라놓으니
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다 탈탈탈 털리는 빈자리가 되어서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라는 꽉꽉 채운 것이
쭐꾸덕 미끄러져 텅텅 비게 되니까 비로소

이 단절의 의미로써 하늘에서 온 
하나님 자체가 문으로써 오심으로써

이 인자가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문으로써
누구든지 들어오라 라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더라 말이죠

즉 예수님의 숙제 곧 하나님의 거룩한 의로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진짜 하나님의 진노인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는
막힌 담을 헐고서 이 그리스도를 문으로 인해 들어오게 하셨다 말이죠

그럼 우리는 이 하나님의 진노인 십자가를 고스란히 담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나를 위한 예수를 우상으로 만들어놨다가는
오늘 본문의 의미가 무슨 소리인줄 모르고
너거는 열린교회이지
우리는 닫힌 교회야 주여 저 열린교회와 같지 않음읗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또 자기를 위한 교회 자기를 위한 하나님 자기를 위한 예수를 만들어
자기가 자기를 투사시켜 놓고서
그래놓고 행함으로 부지런히 자기의 의로움을 쌓고자
총 쏘기 바쁘고
율법으로 돌 삐를 들고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 찾기 바쁘고
그러다가 예수님까지 돌 삐 쳐 죽이기 바쁜

사냥꾼이 자기 먹잇감을 찾듯이 올무치기에 바쁘더라 말이죠
남을 죽이지 못하면 자기가 죽으니까
이게 국가 라는 종교 아닙니까 죄의 소원 아닙니까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
바벨탑을 그래서 평생 짓는 거다 말이죠
성전 짓기 외에는 인간이 할 짓이 없어요
바벨탑 쌓기 말이죠
죄의 소원을 넘어서야 하니까 말이죠
죄를 다스릴려고 말이죠

마침 어머니께서 지난 주에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 말이죠

무당 도리도리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 아니가 라꼬 말이죠
네 맞아요 독재 푸틴도 무당도 다 주님이 세우시는 거다 라고

아니 죽은지 천년이 넘은 애굽왕 바로왕도 주님이 다시 지옥에서 소환시켜서 세우시는데
뭐 히틀러 죽으면 끝인줄 아나봐요

오늘날 히틀러가 누군데? 모든 인간 아니냐 말이죠

그렇게 히틀러를 깔아놓고서 그 배경 위에서 주님의 왕 되심을 나타내시는데 말이죠

그래야 언약이 성사가 되거든요
언약은 인간이 손댈수도 만들수도 없어요

성경과 다른 종교의 경전을 비교해 보세요

모든 종교는 지젝의 말 마따나 불교처럼
불교는 부처는 믿는게 아니라 부처는 그저 깨달은 자 이구요
너도 나처럼 부처 곧 깨달은 자가 될수 있다 라는
결국 인간교 이다는 거죠
신을 제거한 인간교이고
다른 종교는 그 신이 곧 인간 자신을 투사시킨 신이기에
여기서 첫계명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와 연관이 되지요

아무튼 모든 종교는 지젝의 말 마따나 불교처럼
교리 플러스 실천이다 말이죠
교리 또는 신학 자체가 실천 가능해요
신학은 실천 불가능하면 신학이 성사가 안되요
교리가 성립이 되지 않아요
실천 불가능하면 안되니까 교리 형성이 안되는 겁니다
학문이 안되어요

그런데 성경은 아예 처음부터 실천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오로지 믿음 뿐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오기 신념 똥고집을 말하는 것이고
성경은 예수님만을 믿음이라고 한다 말이죠

믿음은 사랑처럼 추상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보편성이다 말이죠
즉 한 인물로써 와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것도 보편적인 인간 속에서 구체적 보편성
즉 모든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부정하는 
부정의 부정으로써의 인간 말이죠

나머지 인간은 가짜로 판명이 나 버렸다 라는 거죠
가짜인간이 믿는 신은 가짜 신이 되어버린 거죠

이렇게 언약이 성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자유하는 위의 예루살렘 여자가 낳은 아들과
땅의 계집종 종 가정부 여자가 낳은 아들과 대립이 되는

데칼코마니 도플갱어 쌍둥이
왕자와 거지처럼 말이죠

형 에서와 동생 야곱
즉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예수님 뿐이다 말이죠
야곱 아닙니다 존재로써 개인으로써의 야곱은 없구요
기능으로써의 야곱이니까 참이스라엘은 예수님 뿐이다 말이죠

그 나머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
늘 누구를 총 쏘아 죽이고자 올무를 치는
사냥꾼이 먹잇감을 찾듯이 늘 지옥의 배를 채우고자 늘 밤마다 울부짖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그러니까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만이
이 진짜 하나님의 진노를 고스란히 담고자
대신 매 맞으셨다 말이죠

이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겁니다

왜? 나의 살인의지를 멸하시는 분은

나와 같은 쌍둥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뿐이시니까요

이것을 왕이라고 했습니다


왕이란 사망 권세를 멸하여서
비로소 평화를 다 이루시는 분이시다 말이죠

죄 문제
환자가 앓는 병 문제

고아 과부 나그네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원의 날
은혜의 날

기쁜 날

기쁨을 누가 줄 수 있겠습니까?

환자를 기쁘게 할 자는 의사 밖에 없듯이

기쁨을 줄 수 있는 자는 오로지 꺽으신 뼈 외에는 자유를 줄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즉 진리 지혜만이 천한 계집종에서 왕비로 자유하는 여자로 만들어요

반대로 거짓선지자와 점치는 무당들은 자꾸 노예
가정부로 만들더라 말이죠

도리도리도
이재명도 그저 자기 노예를 누가 더 많이 만드느야의 싸움인데
거기에 왜 교회까정 끼여들어서
문재앙이니 윤재앙이니
하나는 진보교회 하나는 보수교회
또 우리는 여기도 저기도 안 끼여있다 라고 하는 놈들
이 뭐 정신병자들도 아니고 말이죠
모든 인간은 죽은자의 하나님 곧 우상을 기여이 토해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산 자의 하나님은 예수님만이 외치시는 겁니다
살아있응께 아이고 그것도 심판이가 진노이가 라고 나오시니까

어서 어서 마귀들이 국가와 종교라는 짐승들이 빨리 모든 권력의 최종점인
모든 힘이 거기에 다 모여야 그 뒤에 왕이 나타날 것 아니겠냐 말이죠

이 왕으로 오신 분이 사망의 권세
즉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는 우상의 문제
내 속에 있는
천 년 동안 지나도 (천년이란 육의 문제, 역사의 문제가 아니다는 겁니다)
애굽의 10가지 우상을 단 한 순간도 끊어낸적이 없는
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시러 오신

임마누엘 이시다 라는 겁니다

이 왕이 여호와의 문으로 그 잠겨진 문으로 오시는 겁니다

왜? 사망을 멸하시고자 말이죠

즉 하나님 본인이 왕으로써 들어오지 않는 성전은 가짜 성전이다는 거죠

그 왕이신 하나님이 누구를 이깁니까 
나를 이기시는 겁니다 나를

잠겨있는 문 닫혀있는 문을 언급하신다는 것은
이 현실이 닫혀있다 갇혀있음을 말하는 겁니다

닫혀 있음으로써 오로지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이스라엘 왕 뿐인데

그냥 왕이 아니지요 사망을 멸하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왕 이다는 겁니다

막힌 담을 허는 평화를 주는 왕

평화 평화 하니까
자꾸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는 거짓선지자가 이 노릇을 하는데 있어서
다 속아 넘어가는데 마치 아까 말한 닫힌 교회를 주장하는 목사와 교화에 속아 넘어가듯이 말이죠

화평을 주러 온 줄로 마라 검을 주러 왔다
아버지와 아들
어미와 딸이 서로 원수지간 만드는 검을 주러 왔다 말이죠

막힌 담을 더더욱 세워 버려서
소통이 안 되는 단절을 주러 왔다 말이죠

그럼 누구에게만 화평이 됩니까
네 맞아요
그 왕의 검에 죽어 마땅하다는 죄인에게만
이 검이
상처를 내는 검이 치료하는 수술칼이 되는 겁니다
상처는 그 찌른 창에서만 치유된다 말이죠

내가 사망의 몸이요
내가 우상이요
내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주여 화평을 청하나이다 항복 제발 살려주세요

아니 1만 군대를 아무리 지니고 있어도 2만 군대를 몰고오면 화친을 청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우크라이나 도망치기 바쁜데 뭘 맞써 싸우냐 말이죠
가족 다 죽고 어린아이 여성들 다 죽고 난 뒤에 
누구 고집 때문에 다 죽어야 하냐 말이죠

제일 먼저 도망갈 줄 알았는데 결사항전 하니까 다들 칭찬하는 것 같죠
아닙니다 그거 다 속임수 이다 말이죠

김어땡이가 유일하게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욕하고 있던데
이 놈도 점쟁이다 말이죠 점쟁이 무당 독재를 막을려고
점쟁이를 동원할 정도로 같은 독재인데

뭐 가카를 반드시 감옥에 넣겠다구요?
넣으면 뭐합니까 더한 독재가 나타나고 또 풀어줄꺼 뻔한데

왜 그런 의문의 반복을 허구헌날 할짓 없는 독립운동의 독재를 펼치냐 말이죠
그냥 같은 
나는 똑같은 
M박이와 똑같은 무당이요 독재입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을
자꾸 사기를 쳐요 글쎄
헛된 민주주의의 허구를 자꾸 심어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어딜 민주주의라는 사기를 치냐 말이죠
다 망상이요 허구인데

안그래도 블로그 관리자모드에서 갑자기 히틀러 악의 탄생 글이 인기 글에 급상승해서 올라오길래

푸틴이 공격한 시점에서부터 계속 상위 탑 10에 올라와있더라 말이죠

그래서 다시 보니까

crosslamb.tistory.com/844

선의 방관이 악을 꽃 피운다 라고 명언이라고 하면서 영화 처음으로 시작하는데

지금 다들 방관하고 있잖아요
왜? 나는 선 아니거든요 라고 말이죠
나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라면서 ~~

오히려 제가 수정하면 악의 방관이 선을 꽃 피운다 라고 할꺼다 말이죠

그래서 못 하도록 주님이 1000년 만에 지옥에 있는 애굽왕을 소환하거든요
악을 부저런히 붙이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가 선하다 라고 착각하는 위선을 펼친다 말이죠

보세요 미얀마 도 말만 떠들어 댔지 다들 방관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대들지 말라 말이죠
도망치던가 항복하라 말이죠

꼭 악한 무화과 나무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나서다가
자기 눈 보는 앞에서 두 아들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두 눈도 뽑히게 되는 시드기야 왕이 되었다 말이죠
가룟유다도 하나님 나라 운동 하다가
왜 독립운동 하는 날 안 알아주노 라고 자살했구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다고 한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처럼 말이죠

반대로 좋은 무화과 나무는 여고냐처럼 포로 잡혀 갔다 말이죠
매국노 세리처럼 말이죠
약하고 무능한 빈공터로 만드심으로써
주어 불쌓이 여겨 달라고 외치는
주의 이름을 부르더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긍휼이 덮쳐지니까
불쌍히 여김을 받았다 말이죠

이 잃어버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서
그 진노 속에서 긍휼을 입히시는 여호와를 알게 된다 말이죠

다음주에 할 로마서 제목이다 말이죠

22-005 하나님의 진노가 없으면 알길이 없는 하나님의 의(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롬 1,18-20)

하나님의 진노가 없다면 인간은 자꾸
금송아지에다가 여호와 라는 이름을 새겨서 우상과 섞어서 믿어요 글쎄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펼치십니다 죽음을 쫘악 깔아요
잃어버림과
찢으심을 깔아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겁니다

여호와게 물으러 오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믿는 하나님과 족히 비교도 안되는
도대체 주여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풍랑도 잠잠케 하십니까

물 위를 걷게 해 달라 라는 속임수가 뭡니까
풍랑 사망의 권세도 지금 이기시는 판국에
나의 배를 채우고자 물 위를 걷게 해 달라는 것쯤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속임수임을 금방 들통내는 풍랑도 잠잠케 하는 판국인데

결국 모든 인간의 최고의 자리는 왕이다 라고 했거든요
왕 뒤에는 없어요
국가 라는 짐승 뒤에는 없어요

그렇게 모든 인간이 서로가 왕이 되고자 하는 그 자리에
주님이 왕으로 오셨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을 무릎 꿇어 경배케 만드시고자 오신 왕이시니까

나 라는 우상을 어떻게 파괴 하시는 지를 봐야 하는 판국이다는 겁니다

왜 내가 왕인데 어딜 누가 감히
하늘아래 두 개의 태앙이 있을수 없거든여
그런데 주님이 왕으로 오셨다 라는 말은
나를 멸하러 왔다 라는 겁니다
사망의 권세 멸하심 속에는 나를 멸망 시키고자 말이죠

사망아 누구를 쏘니 라고
그 사망이가 누구냐
사망을 사망케 만드시는 분이 왕이고
그 왕 만이 사망을 멸함으로써 평화
막힌 담을
잠겨진 문으로 오시는 겁니다

뭐 열쇠도 없는데 그냥 들어가지 뭐
네 네 들어가 보세요 타 죽어서
딸랑 딸랑 방울 흔들어서 살았니 죽었니

죽었다 라고

시체

아이구 더러운 썩을 몸을
불타는 성전을 끄집어 내고자 밧줄을 당기는 겁니다

또 들어갔다가는 같이 타 죽어야 하니까 말이죠

주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막힌 담을 아무리 들락날락 해도 타 죽지 않는
그런 이스라엘의 왕 만이 들어갈수가 있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가 있어요 안 그러면 다 타죽어요

어딜 감히 더러운 주제에 하나님의 거룩을 만날려고 말이죠

결국 인간은 왜 하나님이 성전의 문을 잠구고
또 왜 이스라엘의 왕 만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가 있는지 등등

이 모든 것을 인간이 알지 못한다 라는 것을 규정해 버렸다 말이죠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르고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뭐 닫힌 교회 ~~~~~~  닫 힌   교회 ~~~~~~~~
열린교회도 이미 마귀새끼들 독사의 자식들이구요
뭐 구국장로회 ㅋㅋㅋㅋㅋ

자기 심령에 나오는 대로 예언을 한
점쟁이 무당과 다를바 없었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먹잇감을 찾는 사냥꾼으로써 영혼을 낚시 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내가 여호와 인줄 알리라 라고
즉 인간은 모른다를 규정해 버리십니다

결국 잠겨있는 문 으로써 성전의 기능을 언급한다는 자체가
인간은 뭘 해도 다 죄이다 라고

죄 로써 규정하신다 라는 거죠
그럼 죄 아니다 라면 여호와가 누구인지
성전의 기능이 뭔지 말해 보라 말이죠

설사 제대로 알았다고 그런 성전을 외치게 되면
인간들이 이미 자기들이 마음대로 짓는 성전
곧 인간 신체 그 자체가 성전을 흉내 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듯이
그 어떤 다른 몸을 곧 그리스도의 몸을
우상의 몸이 허용치 않는다 말이죠

선을 취하고 악을 버리는 율법의 껍데기를 흉내내고 있는 몸에게

그런 율법 외에 한 의의 몸

어딜 감히 우리 율법 지키는 몸 보다 더 나은 몸이 우리 율법 지키는 몸을 무시해 라고
죽여버린다 말이죠

율법 외의 한 의의 몸을 허용치 않는 겁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로써 나타난 거룩한 몸을 허용치 않아요

이스라엘 왕을 만이 하나님을 영접하기에
그 이스라엘 왕 잡아 죽이는 겁니다

예수님 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알거든요
일부러 바리새인과 충돌 시킴으로써
모든 유대인의 대표성으로써 이스라엘 선생 바리새인
모든 인간의 대표성으로써 바리새인을 세움으로써

얼마나 인간이 믿는 하나님이 엉터리 하나님인지를
예수님과 비교하면서 낱낱이 다 들통내시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지 보다 못한 날 때부터 소경하나 세워서
자기와 비교하면서 차이를 낸 것에 비해서

아이고 그것도 비교가 적어도 우리 연변에서는 예수님과 비교를 해야
비교 답다 라고 하지 라고

아예 확 찢어버리신다 말이죠

그렇게 죄를 제대로 규정하심으로써
인간이 믿는 하나님은 가짜임을 다 드러내셨다 말이죠
그 증거가 이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구요

그것은 이미 인간이 자기가 자기 현실을 따로 구상한 것에
주님께서 빵하고 터트리니까 십자가 라는 현실
진짜 현실에 맞딱 뜨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말이죠

결국 하나님과 예수님이 밀어붙이시는 참현실은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서

자기가 매일 구상하는 현실이 깨어짐이 마땅함을 앎게 됨으로써
십자가가 
즉 주님만이 몰고온 참현실인 이 십자가가 나 보다 옳았음을 보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기 것 즉 내가 지킨 말씀이기에 내가 꼭 쥐고 있는 그 자기현실 마련하기를
손 놓고 지워버리고 삭제 시키는 십자가로써

잠겨있는 성전 문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내가 지킨 것으로는 바리새인 보다 더 나을 수 없다 라고
바리케이트를 치듯이

바리새인도 못 들어오도록 막아버린 담인데
왜 너도 바리새인 따라 하느냐 라고 말이죠

그 막혀있는 담을 제대로 구체화 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것을 안 받는 단절을 보여주시고

이것이 구체화 되었을때에

막힌 담을 허시고 
바리새인을 타 넘어와서

이 잃어버린 자
하나님의 진노를 참현실을 이 십자가의 죽음을 제대로 아는 자에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용서하시는 겁니다

즉 자기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죄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장의 기능으로써
더럽기 짝이 없는 죄악을 거룩으로 옮기시는 작업장인
성전의 기능을 통해서 말이죠

막힌 담을 허무는 휘장을 찢는 것은
사망 문제
사망의 권세를 해결하는 왕 만이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죠

율법의 완성 자 말이죠

율법의 완성이신 사랑 만이 왕이시니까

칼과 창을 보습으로 만드는 사랑
원수도 사랑하는 그 사랑만이 막힌 담을 허니까 말이죠

주님이 넘어오시는 사랑

인간의 율법 지킴을 사랑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무기 
총 칼
또 사냥꾼이 먹잇감을 찾고자 올무를 치는 격인
살인의지이니까 말이죠

도대체 또 누구를 쏘아 죽이고프니 사망아 ~~~~~~~~~


자 그럼 주님이 언제 들어왔다가 나가셨는가

(겔 44:3, 개역)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겔 44:4, 개역)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다들 땅에 얼굴을 쳐박고 엎드리고 있기 떄문에 봤다가는 타 죽는데 무슨 수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셨는지 어떻게 아느냐

그것은 언약궤가 있음을 통해서 압니다
우리야 장군은 언약궤 때문에 집어 돌아가지도 않고
자기 개인 가정에 돌아가서 아내와 잠자리도 하지 않겠다 라는
자기 것이 없는

언약궤 중심으로 모든 세계가 돌아간다 라는 것을 말함에 있어서
반대로 다윗은 미치고 팔짝 뛰는 겁니다
그래야 자기 죄악을 감출수가 있는데
도리어 자기 죄악이 들추어짐을 당해야 되는 판국에 놓여지게 되니까 말이죠

결국 인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 죄를 자기가 자기 손으로 가리우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기입니다
수치를 자기가 가려요

그것 때문에 자기가 지킨 말씀을 손 땔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수치 가리기는
그런 인간 스스로가 조성한 가짜 현실이 아니라

진짜 형실은 자기가 자기 수치를 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아를 삭제 시켜 버리면
더 이상 자기 것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럼 삭제 당한 나를 어디서 찾습니까
이미 말이 안되죠 삭제 당했는데 뭘 찾아요

네 맞아요 삭제 당한 자로써의 나를 찾아야 겠지요
그게 내 속에서는 못 찾아요
예수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내가 다룰수 있는 나 가 아니라
주님이 마음대로 살렸다 죽였다 하시는 주님 안에서의 나를 보게 되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임을 말이죠

이것이 바로 주님의 잠겨둔 성전으로써의 하나님의 문입니다

이런 주님의 성전의 기능에 우리는 죽었다 백번 만번 억번 복창하는 기쁨만 누릴 뿐입니다

(벧전 2:24, 개역)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더 이상 인간 쪽에서 손대는 성전은 없음을 말이죠

언약궤 속의 여호와의 이름이 마련하는 새로운 현실은 광야 곧
텅텅빈 공백입니다

매일 매일 자기의 것을 지우기입니다

오로지 주님의 것으로써의 나를 만나게 되니 낫설기 짝이 없습니다

돈과 즉 경제
종교와 즉 높은 거룩한 성전에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기적같은 사랑
그리고 정치 곧 하나님과 같이 됨

이 세가지를 매일 매일 조성하는 가짜 현실을 만들어내는 자기의 것이 꽉꽉찬
엉터리 현실을 조성하는 가운데서

그거 다 텅텅 비워 삭제 하여서
오로지 광야

주의 이름으로만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여도
주님의 믿음으로만
주님께서 살려주시는 것으로만
광야 불 속으로 물 속으로 모조리 다 삭제 시키는 그 속에서
오로지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양식 
주님의 살과 피로써만
이것을 보는 곳이 광야교회이니까 말이죠

이런 매일 매일이 낯선 현실 속에서
어라 그것을 또 주의 피를 마시고 주의 살을 먹는
그런 낯설기 짝이 없는 새로운 나를 만남으로써

자기를 잃어버릴까봐 난리 난리 치는
마치 어린아이가 대형백화점 장난감코너에서 장난감 안 사준다 라고
들어누워서 시위를 하면서 자기 장난감 사 내라 라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칠때에

그렇게 자기를 잃어버릴까봐 자기 것이 삭제 될까봐
이것 없으면 죽는다 라고 설쳐댈때에

어라 그거 없어도 사네
자아를 잃어버려도 사네

자기 것이 없어도 사는
광야교회에 딱 맞는
할례

힘 없어도 사네
내 것이 없어도 사네 라는
낯설기 짝이 없는

남을 7번 용서하지 않으면 눈치 보이는 세계에서
도리어 남으로부터 도리어 용서 7에70번 받아야만 살수 있는
그 새로운 현실 이라는 할례언약의 세계
찢겨짐 잃어버림 꼬추 잃어버림 세계에서도
마치 죽은 자와 같으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자로써

더 이상 내가 나를 챙길 필요가 없는
부자청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습니까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습니다
혹시라도 구원받는데 모자란 것 있으시면 말씀만 하소서 지키겠습니다

그래 너 너 너 그런 구원 받고자 하는 너를 버려라

앵 ~~~~~~~~~~~~~~~


더 이상 나를 챙길 필요가 없는 세계가 구원의 세계인데
도리어 구원받고자 챙길려고 하니

그 속임수에서 누가 나를 건져줄짜 입니까

외부의 숙제이다 라는 거죠

성전은 그런 의미로 말씀하시는데
도리어 광야교회에 꽉꽉 채우기 바빠요
십일조도 바쳐야 하고 이레에 두 번 바쳐야 하고

주님은 받는 분이 아니다니깐요

도리어 주시는 분입니다

뭘  하나님의 진노 심판
그거 다 배설물이다 라고

텅텅 비도록 쓰레기 통을 다 비워주신다 말이죠

더 이상 나를 내가 챙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를 삭제 시켜주는
그런 성전의 의미를 말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죄악을 다 싹다 비워버렸듯이
이 정죄치 않는

이 우리의 죄 때에 죽임을 당하신 대신 매 맞으시고
우리의 죄를 비워버리신
다시는 묻지 않으시는
그 사랑을 보여주심으로써

(벧전 2:24, 개역)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19, 개역)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 2:20, 개역)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21, 개역)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2, 개역)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3, 개역)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4, 개역)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5, 개역)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참성전의 기능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못 보는 자는
또 거짓목사들에게 속아서
또 교회에 꽉꽉 채워넣는 숙제 하기 바쁜
여전히 자기 것이 꽉꽉 차기를 바라는 그 가짜 현실로부터

건져내시고자
진짜 현실인 십자가가 그 가짜현실을 찢으심으로써
막힌 담을 헐고서 넘어오신다 라는 사실에

매일 매일 무너지를 부서지는 기쁨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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