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 죄의 법(선악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노예로 삼는 것을 내가 봅니다 (롬 7,18-25)
나를 죄 아래 팔아버린 신령한 율법이 옳았습니다 (롬 7,12-17)
로마서 2022 2024. 4. 20. 22:53
22-039 육신에 속한 나를 죄 아래 팔아버린 신령한 율법이 나 보다 옳았습니다 (롬 7,12-17)
〈로마서 7,18-25, 신약성경 249쪽, 찬송가 332장 새 274 나 행한것 죄 뿐이니, 찬송가 300장 새 565 예수께로 가면〉
〈가스펠;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No.1186, 찬미예수 2000)〉
만족함이 없었네 (863)
(아 4:16, 개역)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2:1, 개역)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아 2:2, 개역)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세상을 보라 또 저기 서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찬송가 332장 새 274 나 행한것 죄 뿐이니, 새찬송가 274장〉
1.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2. 내 어둔 눈 밝히시니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 보다 더 원하옴은 정결한 맘 주옵소서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3. 정결한 맘 그 속에서 신령한 빛 비치오니
이러한 맘 나 얻으면 눈까지도 밝으리라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4.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죄질 생각 버려도
주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는 못하리라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로마서 7,18-25, 신약성경 249쪽〉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찬송가 300장 예수께로 가면, 새찬송가 565장〉
1.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고 정말 즐거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2. 예수께로 가면 맞아 주시고
나를 사랑하사 용서하셔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3. 예수께로 가면 손을 붙잡고
어디서나 나를 인도 하셔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롬 7:18, 새번역)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롬 7:19, 새번역)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롬 7:20, 새번역)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롬 7:21, 새번역)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롬 7:22, 새번역)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롬 7:23, 새번역)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롬 7:24, 새번역)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롬 7:25, 새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용주의는 내가 있어야 믿든지 말든지 하지
내가 없으면 믿음이 무슨 소용있느냐 라고
나 살아 있음에서 출발한 믿음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미국 복음주의 곧 청교도 사상입니다
사실상 사위일체 믿듯이
내 믿음을 돈 달러에 새기는 곧 내가 곧 신이다
내가 곧 돈이다
짐이 곧 국가이다 라는 식입니다
바로 믿음이란 믿음 아닌 것이 무엇이냐가 전제로 깔고서 한 세트를 구성하는데
저들은 오히려 뭐든지 믿기만 하면 되지 말라꼬 간극두기를 하느냐 라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혼합시켜서 일체 동일시 할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바로 이런 자신들의 믿음을 거부하는 것을 단절 시킬려고 하겠지요
부정이란 없고 오로지 긍정 뿐이라고 말이죠 곧 자아는 뭐든지 긍정이요
그 긍정인 자아를 방해하는 것은 다 부정이 되는 거지요
문제는 내가 대상물로 삼은 믿음과 믿음 아닌 것 분류와
믿음이 나를 대상물로 삼아서 믿음 인 것과 믿은 아닌 것은 반대이다는 거죠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룍은 서로의 소욕을 방해하듯이 말입니다
내가 믿음을 대상물로 삼아서 믿음으로 본 것은 북이스라엘 신학처럼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나를 다윗을(비언약 다윗을) 대상물로 삼아서 나온
믿음과 믿은 아닌 것은 바로 북이스라엘의 신학이 믿음이 아닌 겁니다
도리어 처음자리인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사망의 몸 지옥의 몸인 자리에서
번제와 제사가 아닌,
희생제물로 죄문제 해결처리할려는 그 자기 숙제가 아닌,
주님의 숙제로써 주님의 그 첫사랑 곧 핏덩어리야 살라 제발 살라 라꼬
너희 아비는 아모리 사람 너희 어미는 헷사람 둘다 가나안 잡족 우상숭배의 음란한 자식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오로지 다윗언약 곧 원수에게만 베푸시는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그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질수가 없다 라는 거지요
아 그러면 남유다 다윗언약만이 믿음이겠네? 아닙니다
그거 내가 믿으면 되겠네 라고 또 자기 숙제로 믿겠다 라고 해본들 소용이 없어요
그 당사자 다윗 조차도 다윗언약을 거부하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는 북이스라엘의 신앙을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비언약인 다윗을 대상물로 삼았던 언약이 새언약으로써
곧 십자가의 언약으로써 예수님이 죽지 아니하면 살길이 없는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희년이 뿌뿌뿌 나팔 승리의 나팔을 부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만이 눈물을 씻겨 주시지
자기가 스스로 울고 자기가 스스로 눈물 씻기는
회개 눈물 금식 기도의 달인 다윗도 안 통했던 겁니다
다윗이 다윗 스스로의 구원 곧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주님이 꺽으신 뼈로 다윗의 구원 곧 다윗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완전히 정반대 였다 말이죠 베드로 보세요 풍랑에 빠뜨려
요나처럼 삭제 시켜서 자아를 사라지게 해서 건지시지
세 번 부인케 해서 건지시지
우리 같으면 그 세 번 부인 때려죽어도 그 모욕적인 구원을 반대할 것이다 말이죠
끝까지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말라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느냐 안된다 그럴꺼면 나도 함께 죽겠다
장지지겠다 끝까지 따라가겠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
이 비천한 닭의 울음 조차도 계집아이의 외침 조차도 못 넘어서는 겁니다
그저 말고의 귀 짜르듯이 내 숙제로 할려고 하면
부표를 옮겨놓으면 주님의 소욕은 반대로 말고의 귀를 도로 붙여놓는
부표를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는 식이다 라는 겁니다
다윗을 박살내서 비로소 다윗언약을 성취 시키십니다
베드로의 똥고집 오기 신념 믿음을 행함을 박살내서 십자가의 언약을 이루시는 겁니다
이 바짝 엎드리는 모욕적인 구원이 나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그러니 시온이라는 하나님의 중심에서 나온 율법은
나를 바짝 엎드려 꼬꾸라지게 풍랑에 빠뜨려 죽게 하시는 겁니다
죽음에 팔리도록 말이죠
비로소 부르짓는 겁니다
그 출애굽 사건이 그 때 그 공간 장소로 끝난게 아니라
지금도 이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고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언약을 방해하는 자는 다윗 바로 자신이였던 거죠
그 다윗을 죽이시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는 거죠
그리고 죽여놓고 풍랑에 빠뜨려 죽게 해 놓고
다시 싸매어 다시 건져 주실때에
뭐가 달라졌는가? 그 간극 사이에
우리 여호와가 달라졌어요
우리 예수님이 달라졌어요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시길래 풍랑도 죽음도 잠잠케 하십니까 라고
시온에서 나온 율법이 나를 죽이시고
예루살렘에서 나온 말씀이 나를 다시 살리시는 겁니다
이러다 다 죽어 라는 주님의 온유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던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자기자신을 원수의 자리
비언약의 자리에 놓아서
언약 곧 믿음의 대상물인 환자 죄인이 되고자 하겠습니까?
다윗 개인이 당한 것을 이제 다윗언약을 외치는 참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으로 확대시킨 겁니다
다윗이 격은 것은 다윗만의 것이 아니였음을 말이죠
여기에 끝까지 자기 죄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하자 라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외치는 거짓선지자들은
끝까지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일송정 푸른솔을 외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선구자 짓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 아닌 진노의 그릇으로써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형 에서의 기능이듯이 말이죠
이 십자가의 피에 걸맞는 죄인 환자 사망의 몸이 될려는
아니 되게 만드시는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상관이 될려고 하는 십자가의 모욕적인 피 흘리심의 7에 70번의
인애와 자비를 구하는 자가 과연 있을까요?
아무도 없어요
그저 남을 7번 용서하는 멋들어진 구원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거짓선지자의 소경의 길만 따라갈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래서 아무도 없음을 의인은 없나니 로마서 3장처럼
아무도 선함이 없다 라고 하는 자 조차도 없음을
오늘 본문 18절 은 말하고 있습니다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웃끼게도 제가 교회 사람을 그 동안 보아오면서
아무도 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 라고
말하는 자를 본 적이 없어요
그래놓고 저를 가르쳐 들려고 해요
대부분 인간의 숙제를 말이죠
주님의 숙제를 말하는 자를 본 적이 없어요
신학교 가도 마찬가지이고
목사들은 더더욱 그래요
끝까지 행함으로 따지더라 말이죠
많이 행하는 자는 목사 곁 가차이 두고
별로 행치 않는 자는 멀리 떨어뜨려 놓는
거리두기를 하는 거죠
코로나19 가 아닐수 없는 겁니다
자기들이 666 함량 미달인줄 모르고
자꾸 남들을 모잘라 모잘라 무게가 한 참 모잘라 라고 짐승 취급을 해요 글쎄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잠깐 나 죄인 맞습니다 라고 말하지
정작 이 말씀 18절을 시인하는 자는 아무도 못 봤습니다
윗대가리 대표자들 특히 목사들 중에 이것을 인정하는 자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요
즉 이 말은 어디까지나 우리끼리는 선함을 인정해야 돌고 도는 소통이 되지
안 그러면 단절이 된단다 라고 우리끼리는 선함을 행하자 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암묵적인 규칙을 안 따르면 왕따 시키겠다 라는 것이
교회 곧 강도의 소굴이 되고 만 겁니다
제단이 성전이 교회가 범죄케 만들고 죄악을 부추긴다 라고 지난 주 호세아 말씀을 통해서 살펴봤지요
즉 지난 번 로마서 말씀처럼 죄 문제는 내 쪽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그카이 회개의 달인이 되어야 빨리 빨리 뭘 하든지 말든지 하지
죄 문제 해결하지 못하면 정체되어서 앞으로 발전이 없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미국 실용주의라는 세상의 초등학문이요(실용주의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학문 철학이 다 그래요 이것이 암몬족속의 자기의 가치를 고상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방인 헬라인의 지혜추구입니다 그 지혜에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을 뿐입니다)
그 가면(실용주의)이 수시로 변이 변주를 일으켜서 청교도 미국 복음주의가 되는 거죠
좋다 싶으면 다 썩어 혼합시키기 마련 입니다
그게 한국에 수입이 된 겁니다
즉 복음이 들어온적이 없어요
이 미국 실용주의는 당연히 유럽에 영향받아서 응용화 된 것인데
그게 바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겁니다
이게 홍익인간 사상과 딱 맞다 싶으니
가난한 자에게 가능성의 희망을 주니 한국은 기독교가 유교와 혼합이 되어서 활성화 된 거죠
유교의 변이가 동학사상 아닙니까 녹두장군 아닙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죄는 자기가 해결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
이게 현대의 모든 사상 니체철학이다 말이죠
애민사상 연민이다 말이죠
음녀사상 음녀가 신랑을 찾아 사랑하는 방식 사탄의 회 유대교 이다 말이죠
그것을 따라하고파 미친 것이 기독교죠
니체 욕을 제일 심하게 하는 자들이 니체사상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 말이죠 개혁주의죠
세상의 종교가 수 많이 갈라져 있는게 아니라 다 하나 뿐입니다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는 다 한 통속이다 말이죠
마귀들끼리 서로 싸우면 자기들 나라가 안 세워진다고 했잖아요
곧 음녀와 짐승입니다 국가 라는 짐승에 충성 경계 라는 음녀가 모든 종교일 뿐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유일한 십자가 복음 뿐이고요 곧 다윗언약인 거죠
다들 모든 종교는 결국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선악법인 겁니다
자 그렇기에 믿음이 나를 다윗을 대상물로 삼아서
[믿음 인 것 = 언약]과 곧 꺽으신 뼈와 (예수님의 죽음, 인자의 살과 피)
[믿음 아닌 것= 비언약] 곧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꺽으신 뼈 곧 어서 죽어주세요를 막고자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라는 원인 있는 결과를 조건으로 갖추고자
죄 문제를 자기 쪽에서 해결할려는 것이
번제와 제사를 드리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드리는
그래서 음녀가 자기 보다 더 희생한 것에 분노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여자의 원수는 여자다 라는 세상속담처럼
여자의 속성을 잘 파악한 거죠
영화 때양볕 제목이 뭐였죠 갑자기 까먹었네
밀양 맞남? 이창동 감독
전도연이가 내가 용서를 할려고 하는데
먼저 나보다 내 허락도 안 받고 먼저 용서해 버렸다고?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그럼 나의 희생기도는? 나의 번제와 제사가 날라가버리면?
남을 7번 용서하고자 겨우 겨우 마음 추스르고 건강하고 의인의 모습을 갖추었건만
뭐 죄인을 부르러 왔다구?
뭐 환자를 부르러 왔다 라고?
뭐 십자가의 피 용서에 딱 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 만드시겠다 라고?
거짓말이야 거직말이야 거짓말이야 ~~~~~~~~~~
이게 바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외치는 거짓선지자의 다른복음인 겁니다
이것이 믿음 아닌 것인데
어떤 교회를 가도 모든 주장들이 반대로 외쳐요 글쎄
이단인 곳만 가서 그렇다 라고 하지만
이단도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외치는
정통 북이스라엘의 주장과 똑같습니다
이방나라 모압이 첫빠따 첫 번째 타자로 망하듯이 말이죠
다윗언약은 바로 하나님의 원수짓인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해야 마땅한 자 이구나
이 복음을 외치는 자가 없어요
바로 이 믿음과 믿음 아닌 것을 알려주는 자가 바로 율법이입니다
일부러 율법이 라고 의인화 로 표현했다면
우리는 반대로 나도 의인화 인간이니까 당연히 의인화 살아있는 자로 표현하고 싶겠으나
추상적인 율법을 의인화 해 버렸다 라는 말은 반대로 모든 인간은
이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 취급 당하는
당신은 환자입니다 사망의 몸 지옥의 몸입니다 라고 도리어 규정당해버리는
비존재가 되는 겁니다 안되고파도 율법이가 취급해 버리니까 반항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니 사망이 왕 노릇함에 있어서 죽기를 무서워 아무도 반항 한 적이 없는 인간이
도리어 은혜가 왕 노릇함에 있어서
죄의 숙주가 된 인간들은 얼마나 반항을 하는지
보통 반항이 아닙니다
이 율법이를 인격화 하시고
자꾸 율법을 지킬려고 하는 나를 인격화 시키지 말고 물건화 시켜버리는
존재 아닌 기능으로 보자 말이죠
그래도 우리는 본능상 떨어지는 법궤 율법 잡을려고 하듯이
인간이라고 우기고픈 겁니다
정작 떨어지는 법궤는 너 인간 아니야 라고 불태워 죽여버리는 겁니다
백날 율법을 지켜서 내 사적인 구원이라는 자기를 높이고자 자신의 가치를 추구할 때
정작 율법이 스스로가 율법을 부인하고 나 아니오 저분을 쳐다 보라고 뒤로 누락 될 때
의문의 증서가 찢겨질때에
율법이 이러다 다 죽습니다 라고 온유를 바라면서 저 분을 가리키는 손가락 몽학선생 화살표
천재와 공무원 사도의 차이 즉 손가락(달을 보라꼬 가리키는) 차이, 뒤로 누락될 자와의 차이를 율법이(인격화)가 스스로 율법을 부인할 때 나 아니오 저분 이라고 나는 신들메 풀기도 감당못한다 라고 나는 쇠하고 그는 흥해야 한다 라고 할때에
우리는 쓸데 없이 율법을 붙잡았던 겁니다 그렇다고 율법 기능 자체가 무효화 된게 아니예요
율법은 떨어지는 법궤(하나님의 이름이 담긴 박스상자)처럼 나를 즉사 시킵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죄 아래 가두어 팔아버립니다
논개처럼 외장을 껴 앉고 나를 껴안고 다윗을 껴 앉고 손가락 열 개반지 끼고 함께 죽자 라고
논개처럼 죽는 것이 율법입니다
이렇게 믿음 아닌 것 곧 하나님의 원수와 함께 죽어야
이 원수 된 둘이 된 것을 하나가 되는 막힌 담을 허무시는 겁니다
그 막힌 담인 휘장이 뭡니까
내 쪽에서 하나님을 사랑했다 라는 이 음녀됨을 원수 됨을 둘로 나누어진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성전
즉 내가 내 죄 문제를 해결해서 내가 내 몸을 구원시키겠다 바로 그 우상의 성전인
나를 내가 구원 시키겠다 즉 죄 문제 내가 스스로 해결하겠다 처리하겠다
예수님에게 가서 헌금 바쳐서 희생제물 드려서
번제와 제사를 지켜서 이것이 이방나라 첫 번째 암몬족속이 멸망당하는 이유인 거죠
지난 에스겔 말씀입니다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고상하고 고매한 멋듯어진 구원을 이루겠다 이것이 바로
비언약 곧 믿음 아닌 원수 짓이다 라는 거죠
도둑질 하지 않겠다 라고 가르쳐주는 선생이 학생의 목숨을 꺽으신 뼈의 목숨을 도둑질 하는
이 간극을 좁힐 길이 없는 겁니다
이 공백 이 간극이 더더더 커져야 더더더 벌어져야
바로 가시 밭이 되고 그 가시 밭 속에서
사룐의 꽃 예수 곧 새벽별
캄캄한 어두움 걷어치우고 광명을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캄캄한 어두움 속에 광야 라는 죽음 속에 집어넣는
죄 아래 가두는 이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과
곧 주의 성실하심과
그 어두움 속에서 죽음 속에서
가시밭 광야 속에 꾀여내어 개유해서 율법을 가르쳐주어서
가시 밭에 백합화 랑 개유하여 결혼하시겠다 사랑하시겠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곧 신부 만드셔서
이미 더러운 음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으니
더 이상 음녀 될 필요가 없이 이미 음녀인데요 뭘
고멜과 결혼하실때에
북이스라엘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율법을 쥔 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고맙게돟 이 놈들이 애굽왕과 애굽군사의 역할이 되어서
그 가시밭 보란 듯이 가시밭 속에서 백합화 만드셔서 결혼하시는 겁니다
이 때 이 향기를 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동남풀 서북풍 불어라
동서남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동네방네 우주 끝까지 퍼지는 겁니다
이것이 배우는 자도 없고 가르치는 자도 없는 새노래 찬양자
곧 사랑받는 아내만이 부르는 새노래꾼입니다
그러니 이 인애와 자비를 원하신다 라는 이 믿음은
반드시 믿음 아닌 것 곧 번제와 제사 곧 암몬족속이 멸망하는 이유인
자기의 가치를 높여주는 자기 죄 자기가 해결하겠다 처리하겠다 라고 나서는
모습과의 차이로써
두 소유를 육의 소우 성령의 소유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정작 나는 육의 소욕에 팔렸습니다 라고 율법이 알려주는 성령이 알려주는
하나님의 원수임을 아는 자와
도리어 나는 선지자 노릇했다 라고 죄 문제 사탄도 하늘에서 떨어졌다 라고 나서는
율법을 자기가 쥔 십일조 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회개 눈문 금식 기도로
율법대로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친 모습이 바로 믿음 아닌 비언약이었음을
그러니 솔로몬의 재판에서 죄 문제를 해결 참 잘했다고 박수치면서
나도 가지지 말고 저도 가지지 말라고 박수치는 자가
결국 자기가 옳았다 라고 하는 자가 믿음 아닌 자고
믿음에 동의하고 재판에 동의하면서 박수치는 자가 믿음 아닌 자고
그 재판 틀렸다 그러나 하실수만 있으면 날 죽이고 저 아기를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인애와 자비를 구하는 자 이고
번제대로 제사대로 재판대로 어서 둘로 갈라라 하는 자가
암몬 족속의 멸망과 이스라엘 심판과 같은 겁니다
자기의 가치를 추구하는 번제와 제사를 구하는 것이다 말이죠
왜 암몬이 첫 빠따 첫 번째 타자로 몽둥이를 맞느냐
바벨론 왕의 점괘로 암몬 칠 것인가 이스라엘 칠 것인가를
암몬이 또 점을 치면서 아 바벨론이 우리 암몬을 안 치고
저 이스라엘 치는 구나 라고
아하 아하 좋다 라고 잔치를 벌렸거든요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 죽으니까 저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그렇고
나는 저주 안 받아서 살았다 라고 좋아라 할 때
그 다음 차례 암몬 차례가 될 때에
이 율법의 가치가 드러나는 겁니다
양발 차기
의인이든 악인이든
푸른나무이든 마른나무이든
불이야 남쪽에서 북으로 불어서 불이야 모조리 다 살라라
푸른나무이든 마른나무이든 다 불 살라라
여호와의 칼이여
의인이든 악인이든 다 죽이소서 라고 외치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 곧 성령의 소욕이다 라는 겁니다
육의 소욕 밖에 없는 이상
모조리 다 죽는 판국에
지 잘났다 저 못났다 라는 것이 도대체 믄 상관이냐 말아죠
다른 한 쪽 강도 니 말 마따나
죽는 판국에
니 틀렸고 내 옳다 라는 한 쪽 기생의 박수침이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지지 말게 하라가 믄 소용이 있느냐 말이죠
정작 가시밭에서 백합화 만드시는
이 인애와 자비의 샤론의 꽃의 향기를 동남풍으로 서북풍으로
동서남북 우주에게 까지 퍼트리시는 성령의 소욕이 따로 있는데
근 딴 짓이 믄 짓이냐 말이죠
니 말 마따나 죽는 마당에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퍼트리는 일만 남길 뿐인데
가시 밭이니 광야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가 무슨 상관이냐
선이나 악이니 무슨 상관이냐 말이죠
선인이든 악인이든 지금 다 불태워 죽이시는 판국인데 말이죠
의인이든 악인이든 불 살라 버리시는테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그 다음 차례 너 인데 지금 선악따져서 뭐 할래
정작 율법 쥘 것이 아니라
율법이 널 쥐고 가리키는 인애와 자비
샤룐의 꽃의 향기가 아니면 벌써 소돔과 고모라 일 뿐인데
동성애 반대 운동 해서 뭐 할낀데 그 다음 차례 니 자식이 동성애 되면 우짤려고???
그럼 너는 동성애 반대하지 않고 찬성한다 말인가?
우리의 악함이 하나님의 선을 나타낸다 말이가?
그 카이 이미 너거들은 정죄 받았다
선악을 왜 니가 잡도
율법이 너를 잡으면 뭘 해도 악한 즉 선함이 없는데
뭐 니가 믿음을 쥐었다고?
믿음은 정작 너에게 믿음을 준 적이 없기에
그 결핍을 니가 니 스스로 채운 믿음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니 율법에게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올무에 걸렸구나
죄에 제대로 팔렸구나
회개하지 마시고 회개자로 태어나라
믿지 마시고 믿음에 의해 새로 믿음으로부터 믿음이 잉태해서 태어나라 말이죠
그런데 니고데모는 끝까지 자기 숙제로 어머니 뱃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한번 해 볼려고
자기 숙제로 해결하겠다 라고 나설때에
정작 화로다 나는 하나님의 원수임을 끝까지 모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아니 내 숙제가 없다
내 책임이 없다
그래서 나는 뭘 해도 죄 아래 팔린 선함이 없는 자 이구나
아니 원함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선한자 맞다 라고 우리끼리 끼리끼리 속여도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어딜 그 속임수가 인간끼리 목사와 교인들끼리 그 속임수가 가스라이팅이 통해도
십자가 라는 걸림돌에 탁 걸려드는 겁니다
유대인이 자기들 믿음이 안 통하는 겁니다
어딜 속일려구 ~~~~~~~~~~~
차라리 걸려 넘어져 실족케 되어야
일으키는 분이라는 외부에서 건져주는 은혜가 없다면
또 자기 스스로 홀로 툭툭 무릎에 먼지 묻은 것 털고 일어나버리면
내 속에 있는 죄가 나를 팔아버리고자 사로잡는 것을 못 보는
성령의 그 죄의 내막을 보여주심을 못 보기에
또 내 죄는 내가 해결하겠다 라고 나서는
그카이 겨우 번제와 제사 뿐인 율법 지키겠다 라고 나서는
그 의문의 증서 인간의 손에 놀아나는 율법을 찢어버리시는 겁니다
물론 찢겨지는 의문의 증서인 율법 조차도 못 보면
백날 찢어본들 인간 육체 자체가 율법이 되어서
온 몸에 말씀을 적게 되겠지요
파묘 무당들이 온 몸에 금강경 이였던가요?
제단을 성전을 교회를 자기신체와 동일시 하고
말씀과 자신의 몸을 일체화 시킬때에
자기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악귀와 맞설수 있지
지면 안된다 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죄에 사로잡힌 것이다 말이죠
아니 무당이 무당을 쫓아낸다는 것이
귀신이 귀신을 물리치겠다 라는 것이 얼마나 웃끼냐 말이죠
집사에서 장로
누구는 무당
누구는 스님 다 한 통속 아니던가요
인간을 위한 인간에 대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이게 다른 복음이다 말이죠
한국 무당의 현존 최고의 무당을 다룬 영화 만신 이였던 가요
저들이 쫓아내고서는 다시 저들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면서
이런 간신배 같은 나약한 인간을 위해서 자신들 무당은 봉사해야 한다 라고
만신 뿐만 아니라 티비에 나오는 무당들 뭐 다 그런 주장인데
오늘날 교회의 주장과도 똑같아요
강도의 소굴이 따로 없죠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그 교회가 그 성전이 그 값어치를 할려고 사람을 범죄케 안 만들고는 못 배기는 거죠
자 그러니 믿을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말씀 이기에
비밀 비유이기에
무시할 수 밖에 없기에
안 들을 꺼 뻔히 알기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때를 얻든지 아니 얻든지 전하라
즉 들을 귀 없음을 알면서도
그 빈 공백에 전하는 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말씀이니까
비유의 말씀이 먼저 떳기에
안 듣는 것을 이루고자
못 보는 것을 이루고자
그카면 주여 귀머거리입니다 고쳐주소서
주여 소경입니다 고쳐주소서 라는 자들이
있어서 먼저 있어서 비유를 외치는게 아니라
비우가 먼저 떳기에
귀머거리 소경
곧 주께만 범죄한 자 죄인 환자를 새롭게 맹글어서
비유가 말씀이 신랑에게 걸맞는 자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겁니다
니고데모는 원인 있는 결과를 갖출려고 모친의 태 속으로 다시 들어갈수 있는
자신의 큰 무더기 몸을 작게 만들어야만 하나 라는 가능성을 따져보았고
정작 주님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롭게 창조되는 성령받은 자를 새로 창조함에 있어서
상대적인 지금의 나는 사망의 몸 죄인입니다
죄 아래 갇혀서 그거 나 못합니다
주님의 숙제를 보여주소서 라고
인애와 자비를 구하는데
니고데모는 꼴에 선생이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몸에 배여있는 습관화 된
번제와 제사의 방식
곧 내 숙제 자기 숙제로써 어떻게 해서든 한 번 해 볼려고 한다는 자체가
두 소욕의 거스리고자 방해하는 이 차이를 못 보는 겁니다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죄인이라고 회개하듯이
물론 성령 안 받고서 회개하는 달인으로써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반드시 상대적으로
한세트를 구성하는 땅의 계집종 하갈이 있어야만 하듯이
성령을 받아야 아 내 속에 선함은 없고 도리어 내 속의 죄가
왕 노릇하기에 나를 죄 아래 가두어 버렸음을 보게 되는
화로다 병들었구나 지옥의 몸 죽음의 몸임을 비로소 알려주시는 겁니다
알려줘놓고서 성령은 제단 숯불로 일곱 대접으로 부정한 입술을 제거하더라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율법과 선지자(다윗언약의 새 영을 받은 곧 성령 새마음 받은)
를 내 쪽의 숙제로 해석하다 보니
백날 해석해 본들 멋들어진 구원인
모세언약에서 못 벗어난다 말이죠
모세언약을 책걸이 의문의 증서 찢어야
대학교에 들어가는데
아직도 초등학교에서 졸업하지 않고서
다 큰 어른이 딱딱한 음식을 먹어야 할 어른이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초등학문을 쫖아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다시 지키느냐 말이죠
(갈 4:9, 개역)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10, 개역)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개역)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고
딱딱한 음식
곧 예수님의 죽음을 먹자 말이죠
이 예수님의 죽으셨다 다시 사심을 내 속에서 드러내고자
나의 죽음도 유익한데
이것이 행함이 아니라
번제와 제사를 남의 것 빼앗아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의 용서를 증거하고자
예수님의 죽음을 내 속에서 나타내는
즉 미말에 둔 찌끼로 삼으셨다
죽이시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그 영광을 누리자 라는 겁니다
그래 까짓꺼 순교하자 라고
죽은 나사로에게 가고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ㄱ를 다짐했는데
그거 조차도 믿음 아니다 말이죠
(요 11:6, 개역)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 11:7, 개역)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 11:8, 개역)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 11: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요 11:10, 개역)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 11:11, 개역)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 11:12, 개역)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요 11:13, 개역)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요 11:14, 개역)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 11:15, 개역)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요 11:16, 개역)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7, 개역)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도 마음은 따로 국밥 하나가 된 함께함의 동행이 없는 겁니다
따로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있더라 말이죠
(요 11:8, 개역)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아니 방금 그 속에서 죽다 살아났는데 다시 들어가자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빛 되심을 말씀하시고자 어두움을 물리치시는
사망의 몸을 건져내시고자 들어가시겠다 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제자들처럼
아이고 마 죽다 살아난 그 곳에 다시 들어가니 뭐
에라이 죽으러 가지 뭐 라고
마치 대단히 멋들어진 순교를 다짐하는냥 하더라 말이죠
(요 11:16, 개역)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7, 개역)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주님은 죽음을 없애러 간다 라고 하시는데 무덤이 없는 자로 만드시고자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제자들처럼 우리 살아있다 만 습관화 된 사고방식이다 보니
에라이 순교하지 뭐 하고 도로 죽음을 있게 만들려고 하더라 말이죠(항상 우리는 반대로 두 소욕의 서로 반대임을 보여줘야 하듯이)
예수님과 삔떼가 안 맞는 겁니다
삔떼는 제가 그동안 알던 발음이였고
핀트 초점이 안 맞다 일본식발음의 영향으로 삔또 라고 일본식영어인데
경상도는 격하게 떼 라고 저는 그렇게 들었는데 다른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얼마 전에 립스틱이 생각이 안 나서 어머니께서 베니 라고 했는데
처음들어본 말이라 검색해 보니 이것도 일본식 표현이더군요
프랑스어 루즈가 립스틱인데 레드 붉은색 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일본에서는 베니 라고
이 베니가 생각이 안 나서 다시 검색해 보니 구찌 베니 구찌 입 베니 붉은 색
아무튼 예수님과 반대로 청개구리로 믿고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더라 말이죠
마치 다윗의 회개 눈물 금식 기도 4종 세트처럼
이것을 지적해 주시는 것이 사랑이듯이
오늘 본문 또한 율법이 알려주는 겁니다 지적해 주는 겁니다
심지어 사랑 조차도
(요 11:1, 현대어) [나사로의 죽음] 여러분은 값진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를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마리아와 그의 언니 마르다와 함께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
베다니 장소 기억하시고
(요 11:3, 개역)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 11:5, 개역)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또 갑자기 안 나오던 표현 사랑하신다 라는 표현이 많이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요 11:36, 개역)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아이고 예수야 나사로 사랑했다면서 이렇게 늦게 오냐 라고 비웃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울어주는 울음꾼 두레정신으로 울어주겠다고 나서더라 말이죠
나사로야 예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해 놓고서는 이렇게 배신했지만
우리는 너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이웃사랑실천정신을 펼치면서
울음꾼으로 비용을 아껴줄게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이것이 우리가 나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사랑이라는 거짓이고
생전 본적도 없는 그림자가 아닌 진짜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내가 사랑이다
내가 길이다
내가 생명이다
내가 진리이다
내가 부활이다 라고 내가 누군지 보여주마 라고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알려주시고자가 함이 먼저 떳기에
나사로를 죽였고 일부러 삼일 뒤에 일부러 그 간극을 벌려놓고서
인간이 좁힐 수 없는 절대죽음을 타 넘어서 오셔서
죽음을 없애러 오시는데
사랑도 오해라고
제자 특히 도마처럼 죽음도 오해하고
인간은 즉 육의 소욕은 좌가 숙주로 삼아서
기생하는 사망의 몸이기에
그거 알려주시고자 너 죽었어 라고 절대죽음으로 규정하시고
내가 생명이야를 보여주시고자
생명에 걸맞는 사망의 몸으로써 만드셨다가
사랑해 주실때에
우리가 원했던 사랑도 아니고
우리가 생각했던 죽음도 아닌
전혀 다른 사랑
전혀 다른 죽음을 주님은 펼치시는 겁니다
그러니 죽음도 내가 순교한다고 죽는 내 숙제도 아니요
사랑도 내가 사랑한다고 예수 너는 사랑하지 않았잖아 비웃는 인간의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으로
들통내는 것이 진짜 사랑이요 진짜 절대죽음이다 라는 거죠
그러니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저들의 눈물을 보시고 우시는 겁니다
즉 저들의 눈물이 가짜이다고 우신다 말이죠
우리는 아무리 봐도 예수님의 눈물이 가짜이고 우리의 눈물은 진짜인데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선한 것이 없기에
또 이미 죄 아래 갇혀버렸기에
이제 숙제는 의사의 손으로 넘어가버렸지
내 숙제는 이제 없는 겁니다
책임 질 것이 없어요
아니 건강하면 의인이면
내 속에 선한 것이 있으면 책임 져야 겠지요
그런데 없어요
도리어 환자
죄인이 되어버렸기에
책임 져 주세요 어서 죽어주세요 라고 해야 할 판국인 겁니다
아니 그것은 예수 안 믿었을 때이고
이제 예수 믿게 되었으면 우리 속에 선한 것이 들어왔으니까
그 선함을 점점점 크게 키워야 할 것 아니냐 라고 또 자기 숙제로 가지고 오는 것이
성화론자인데
문제는 그것이 다윗언약인지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하다인지
그 미묘한 차이를 우리는 역시나 모른다 라는 겁니다
모르는 주에게 바짝 엎드려야지
죄 죄 죄 고만캐라 마이 무따 아이가
이제 십자가 고만 카고
부활의 시대에 맞게 부활 좀 외쳐라 라고 비웃던 목사놈들이 한 둘이가 아니던데
왜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고 부정적이고 라고 비웃던데
그래서 저를 향해서 어떤 이는 막 울 듯이 말해요
그것을 본 저는 도리어 저들의 눈물을 보고서 울먹이면서 말하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요즘으로 치면 아이고 교회야 교회야
언제까지 강도의 소굴 짓을 할래 ~~~~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마 23:29,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마 23:30, 개역)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 23:31, 개역)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마 23:32, 개역)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마 23:33, 개역)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4,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마 23:35, 개역)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6, 개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 23:37, 개역)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마 23:38, 개역)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 23:39,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제단이 성전이 너희를 더더욱 범죄케
번제와 제사를 더더욱 드리고자
남의 것 빼앗아서 잔칫집 만들려고 한 것이 도리어 짖밟히게 되는 것을 보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안 우시고 베기겠습니까?
이 사랑이 없어서 망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번제와 제사만 드릴줄 알앗지
인애와 자비는 무시하는
비로소 번제와 제사의 달인이였던 사도바울이
사랑이 오시니까
비로소 사랑으로 눈 뜨게 되니
율법의 완성으로 눈 뜨게 되니
자신들이 지키는 율법으로는 완성은커녕 의문의 반복으로 더더더 죄 짓는
번제와 제사를 지키고자 남의 것 빼앗은
다윗처럼 남의 전재산인 어린양 한 마리를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서
부자에게 대접하고자 하는
이 선함이 곧 악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선지자 죽여놓고서 그 무덤 만들어 죽이지 말자 라고 박물관 교육 교보재 만들어 역시나 돈을 뜯어내고 희생제물 번제와 제사 감사헌금을 받아내고 있으니
죽이지 않았다면 그 무덤 만들 필요도 없이 헌극 뜯어낼 필요가 없을 텐데
무덤 괜히 만들어서 돈이나 삥 뜯듯이
제단을 괜히 만들어서
교회를 괜히 세워서 돈이나 뜯어대는
교회가 범죄케 만드는 구나
이 죄에서 무슨 수로 벗어날래
무슨 수로 죄 아래 갇혀서
그 그림자
그 모형 그 껍데기 언제까지 지킬래
이 외식하는 자들아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곁모양 외모만 갖추는 자야
중심도 없는 주제에
무슨 수로 실상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듯이 안 타죽을 정도로
네 속에 정직한 영이 있어서
중심이 있어서 마주 할 수 있겠니
그카이 그림자만 자꾸 상대하는기리 ~~~~~~~~
휘장 안에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타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안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직한 영이 있기를 하나
뭘 해도 사망의 몸 죽음의 몸인데
고쳐달라고 하지를 않으니
다들 사랑한다 라고 동네사람들 비웃고
또 제자들은 순교하겠다 라고 죽음을 무덤을 쌓고자 할때에
정작 죽음을 없애버릴려고 오신 예수님은 뭐가 되고
사랑이심을 말하고자 하신 예수님은 뭐가 되느냐 말이죠
그러니 베다니 곧 장소도 치면서 점점점 그 예루살렘을 최종점으로
점점점 허물어뜨리면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듯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시는 겁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예루살렘을 향하여
베다니 동네도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치시면서
평탄케 하시고자 불도져로 그들의 사고방식을 다 밀어버려서
첩경을 평평하게 공백 빈터로 하나님의 원수로 만들어야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라고 부르짖도록
그래서 내가 왔단다 라고
예수님이 먼저 떳기에
불도져에 밀려야 할 것들이 첩경을 평탄케 되어야 할 것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 되신 주님과
믿음 아닌 우리의 모습들이
충돌하면서
비로소 내 숙제 없이
숙제 해 본들 다 엉터리 이듯이
이 예수님의 숙제를 보면서
허걱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예수님을 비로소 알게 하심이 먼저 떳기에
내가 엉터리로 알던 것이 다 무너뜨림 당하는
이 지적하심을 누리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은 시온에서 나와서 우리를 모조리 다리걸어 넘어뜨리는
뜨인돌로써 나 라는 우상을 다리걸어 넘어뜨리고
예루살렘에서 나온 말씀은 넘어진 죄 아래 팔린 나를
도리어 예수님에게 팔아넘김으로써
어떻게 죄 값을 치르시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율법은 날 죽이고
말씀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망의 몸이 아닌 유일한 생명되신 분은
우리를 어떻게 살리는지
제대로 죽이시는 율법과
제대로 살리시는 산 자 되신 말씀되신 예수님이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가 먼저 떳기에
우리는 자기 의 쌓기가 아니라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굴복케 만드심 앞에서
날마나 항복하게 만드시는
이 주님의 승리 앞에서
일곱 나팔 뿌뿌뿌 앞에서
바리깡 밀려서
무릎 바짝 엎드리는 일 밖에 없음을 누리는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 탕자됨을 누리는 것 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이미 되어버렸응께 ~~~~
회개 하지 마시고 회개자로 이미 태어났응께
회개자 됨을 누리는 겁니다
곧 꺽으신 뼈로만 즐거워 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피 용서만 누리는 겁니다
예수님의 숙제인 뿌뿌뿌 나팔 다 이루심만 그 승리만 말이죠
즉 내 숙제는 내 승리는 없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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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6 [유다도 이방 우상숭배자와 똑같네 뭐] 모압평가의 저주 (겔 25, 8-11)
암몬족속을 향한 심판 예언 (겔 25, 1- 7)
에스겔 2019 2024. 4. 27. 15:16
21-075 암몬족속을 향한 심판예언 (겔 25, 1- 7)
〈에스겔 25, 8-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9쪽, 찬송가 511장 새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찬송가 543장 새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참 반가운 신도여 (찬 122)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 543)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찬 511)
〈찬송가 511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찬송가 314장〉
1.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2. 이 전에 세상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3.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아멘
〈에스겔 25, 8-11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9쪽〉
(겔 25:8,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모압과 세일이 이르기를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일반이라 하도다
(겔 25:9, 개역) 그러므로 내가 모압의 한편 곧 그 나라 변경에 있는 영화로운 성읍들 벧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을 열고
(겔 25:10, 개역) 암몬 족속 일반으로 동방 사람에게 붙여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암몬 족속으로 다시는 이방 가운데서 기억되지 아니하게 하려니와
(겔 25:11, 개역)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찬송가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새찬송가 491장 〉
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2.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3.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거기만 있사옵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4.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
다시금 기도하오니 내 주여 인도하소서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5.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겔 25:8,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모압이 말하기를, 유다 족속도 모든 이방 백성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 ㉠칠십인역과 고대 라틴어역을 따름. 히, '모압과 세일'
(겔 25:9, 새번역) 그러므로 내가 모압의 국경지역에 있는 성읍들 곧 그 나라의 자랑인 벳여시못과 바알므온과 기랴다임이 적의 공격을 받도록 허용하겠다.
(겔 25:10, 새번역) 나는 암몬 족속과 함께 모압도 동방 사람들의 소유로 넘겨 주어, 이방 백성 가운데서 암몬 족속이 다시는 기억되지 않게 하겠다.
(겔 25:11, 새번역) 이렇게 내가 모압을 심판하면,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제목만 보시고도 아 무슨 의미인가를 조금 알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또한 저런 모압의 평가를 늘 수시로 하고 있고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또한 역시나 모압처럼 반발할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사상이 성화론이라는 개혁주의 사상입니다
이스라엘이 음녀 창녀이기는 매 마찬가지이네 라는 평가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평가를 안 받고자
이스라엘 스스로가 하는 행동들이 고상하고 고매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들이겠지요
그런데 그것 마저도 이방나라 첫빠따라 심판받은 지난번 오늘 본문 앞 내용의
암몬 족속 심판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높아진지 낮아진지 무슨 기준이냐?
저 봐라 이스라엘 쫄딱 망했잖아
바벨론 왕의 점괘가 이스라엘 쳐들어가느냐 아니면 암몬을 쳐들어 가느냐 라는 점괘에서
주님은 그 점괘에 관여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치시도록 합니다
네 사라지게 삭제 시키시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입니다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오늘날 모든 교회가 반발하듯이
그래서 나온 사상이 성화론 아닙니까
자기의 일은 스스로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가룟유다의 사고방식 말이죠
이런 판국인데
그 당시 이스라엘 또한 오죽 하겠습니까 당연히 반발하겠지요
자신들의 처음자리를 발로 차버리고
첫사랑을 잊어버리겠지요
믿는 구석이 있지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겁니다
다윗언약 십자가 새언약 필요없다 라고
아 그러고 보니 새언약 이라는 교회 이름도 있던데
맞나? 어디서 봤더라 아무튼 그런 이름 억수로 많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새언약은 개코
속 내용물은 모조리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는 내용들 뿐이예요
그들의 설교가 말이죠
다윗 당사자 조차도 다윗언약 거부할려고
절대로 들이닥치면 안된다 라고
온 몸으로 거부하면서
반드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사수하겠다고 발악을 했다 아입니까
그거 박살이 나니 비로소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는
사울이였던 사도바울도 그랬거든요
그거 박살 내니까 비로소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고
베드로도 그랬어요
그거 박살 내니까 비로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절대저주 절대 심판의 3일의 단절을 그 지옥 세 구덩이를
너끈히 주님의 사랑으로 넘어서는 겁니다
이런 비밀 비유를
암몬이 알턱이 있겠습니까?
그저 바벨론 왕의 점괘 대로
이스라엘로 향하게 되니까
이스라엘이 불타고 삭제 사라지게 되니
자신들의 가치가 온전히 보존 되는 것만 좋아라고
아하 아하 좋다 라고 이스라엘이 불타서 망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은 바벨론에게 안 망하게 되었다 라고 좋아라 죽었다 말이죠
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깔려 죽은 것 예수님 저들 하나님에게 저주 받아서 그렇죠
나는 안 깔려 죽었으니까 나는 저주 안 받았죠 예수님~~~~~~~~~
그 물음 자체가 자기 살아있으니까 당연히 묻고
죽은 자는 이런 질문 조차도 못한다 라고 좋아라 했는데
그 다음 차례 니 차례인데 우짜노
저들이 니 보다 범죄가 더해서 죽은 것 같으니?
아니거든
여호와가 누군지 알리고자 죽도록 하셨다 이제 니도 여호와가 누군지 알아야지?
방금 너가 알던 그런 지식
다윗언약을 모독 하던 다윗과 똑같으니까
그 다윗이 당한 운명 저들 이스라엘이 당했으니까
다윗의 기도대로 니도 당해야지 ~~~~~~~~~~~~~~~~~~~
이런 의미인줄도 모르고
그 다윗왕의 점괘 아아아 실수 ㅋㅋㅋ 다윗왕의 점괘가 아니라
바벨론 왕의 점괘를 관여하면서 다윗왕의 인구조사를 관여하면서
암몬 족속이 바벨론 왕이 어디로 갈지에 대한 점괘 속에 들어가셔서
자기가 친 속임수에 자기들 스스로가 걸려들도록
북이스라엘 왕들이 친 그물에
자기들이 스스로 자기가 친 그물에 걸려들도록 하시는 겁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다윗언약이 밝히 보이는데 다윗 너 어딜 속일려구 ~~~~~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히 판결 내릴수 있다
웃끼지마 그 놈이 니 놈이다
니가 이스라엘의 특이성 곧 처음자리를 니 스스로 발로 차 버리니까
첫사랑이 떳으면 그 정답에 맞는 문제지를 찾는데
탕자를 찾는데
뭐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의인 건강한자 만으로 충분하다?
죄인 환자 필요 없다?
남을 7번 용서만으로 충분하다 우리의 가치가 충분히 올라간다
그 카이 암몬이 좋아라 하지
뭐 남도 아닌 자기자신이 도로 남으로부터 7에 70번 용서받는 것 필요없다
그런 모욕적인 구원 필요 없다
그카이 이 모욕적인 구원인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니까
헬라인 이방인에게는 이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
남을 7번 용서하는 수준 높은 성화라는 가치에 거꾸로 쳐박는
모요적인 수치스러운 저 십자가 라는 거리끼는 걸림돌
도저리 자랑꺼리기 될 수 없는 저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서 지셨다 라고? 안돼 우리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히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칠수 있단 말이야 ~~~~~
그럼 너 때문에 죽는 저 꺽으신 뼈 살려봐
아니면 저 너 때문에 죽는 꺽으신 뼈가 너를 살리는지
함 해 볼까?
다윗은 여호와를 몰랐던 겁니다
그저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저 암몬처럼
이용해 먹을려고 하다가
그거 그 저주에서 건지실려고 주님은 물에 빠뜨려 죽이시는 겁니다
삭제 시키시면 저주 내리시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저 사망도 잠잠케 하십니까
사망 속에 들어가봐야 사망이 잠잠케 하신 분을 저절로 보게 되는 거죠
날 때부터 소경 속에 들어가 보니까
이게 처음자리 라는 특이성 아닙니까
이스라엘도 싫어해서 거부해서 놀려먹는
자기 죄냐 부모 죄냐 라고 조직신학 죄론 연구로 박사학위나 따 볼까 라고
연구 실험용 쥐로 실로암 소경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 맞다 실로암 이라는 교회 이름을 쓰는 교회도 억수로 많던데
그 내용물 조차도 정작 실로암의 의미를 거부할려고 발악을 더 해요
실로암 이라는 이름을 차라지 안 썻다면 이해가 되지
쓰며 쓸수록 더더욱 처음자리를 그들어 거부를 해요 글쎄
교인들이 목사의 실험용 쥐로 밥풀떼기로
등에 빨떼 꽃혀서 앵벌이 하는 환상만 보이더라 말이죠
교회가 저들을 범죄케 만들더라 말이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첫사랑을 집어 삼키는 겁니다
이스라엘도 이해 못해요 이 특이성을
자신들이 삭제되고 사라진 그 자리에서
도리어 그 빈공백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고 그 우는 자리에서
비로소 첫사랑 곧 의사가 고맙지
안그러면 나 의사 친구다 라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의사를 이용해 먹을려고 해요
그 카이 자기 존재에 의사 존재를 썩을려고 혼합시키는 거죠
그런데 고맙게도 이스라엘은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 곧 기능입니다
또 더더더 고맙게도 의사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존재를 믿는게 아니라 기능을 믿는 겁니다
그 카이 예수 믿지 마세요 예수 존재를 믿는 자는
자신의 존재를 혼합시키고자 할때에
기능은 어딜 더러운 주제에 건방지게 하고 웃사를 즉사 시키듯이
의사의 기능은 우리를 죽여 버립니다
삭제 시켜요
인간의 회개 조차도 안 받습니다
의사가 주는 회개의 기능을 도리어 받게 되면
삭제 당하고
이전 것은 지나가게 하고
보라 새것으로써
하나님의 원수라고 우는 그 빈공백에서
그 처음자리에서 첫사랑 곧 다윗언약을 주시는 겁니다
다윗 조차도 거부했었던 그 다윗언약
얼마나 완악한 수건(모세율법)을 안 벗을려고 했는지
사랑이 없으니 죽임당할까봐 광채 안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
안 벗었던 거죠
이제 두려움 없는 사랑이 왔기에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악한 수건을 벗고
그래 돌삐 쳐 죽여라 내 목숨도 사적인 용도가 아니라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기 위한
주님의 죽음만 옳았을 뿐이단다 라고
신나게 죽어줌 당하는 겁니다
그래야 저들이 어찌할꼬 라고 가슴을 치는 성령을 통해
이 처음자리 라는 특이성 곧 첫사랑이 먼저 떳기에
사라지게 삭제 시키는 이 빈공백의 단절
그 간극이 더더더 벌어져서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비로소 환자의 자리에서
누가 고쳐주십니까 라고 의사를 찾을꺼 아닙니까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가 없다 라는 자들은
자기 죄 문제를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 보겠다 라고
그래서 나온 발상이 희생제물 따라하기
처음에는 자기것 하나다 다 떨어지면
아니 아까워서 남의 것 빼앗아서 희생제물 오늘날로 치면 감사헌급 내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다 떨어져서
하늘의 여왕에게 계속 바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면 안 망했을 것인데
다 떨어져서 멈추는 바람에 떨어졌다 라고
이방나라가 아닌 유대인이 그렇게 기도해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사람들이 하늘의 여왕귀신 땅도 아닌 하늘의
어두운 귀신도 아닌 광명한 천사 마귀에게 바치는 것이 멈춰지는 바람에
자기들 망했다 라고 울더라 말이죠 억울하다고
한풀이 하는 거죠 아니 처음부터 한풀이였던 겁니다 인간의 믿음은 한풀이 복수심이거든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가 십자가 나무에 달린다 라고
하나님의 복수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복수심을
예수 너 때문에
저 십자가가 나의 가치를 낮추는 것 때문에
너 예수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라고
이 본심이 십자가를 통해서 다 들통나는 겁니다
십자가 이야기를 얼마나 듣기 싫어했으면
나무 통나무 작대기를 우상숭배 한다고 비꼬던지
그 정도로 얼마나 싫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뒤짚어 씌울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 카이 암몬이 당한 것을 보고도
그 다음 차례 모압
아니 오늘 본문 모압이 왜 저주 받느냐 까지 우리가 알아야 합니까?
요나처럼 우리도 성질 급하게 그냥 저주 내리면 그만이지 왜 삼일길 돌아야 합니까
단 하루 만에 후다닥 돌면 그만이지
그러면 단절이 안 보입니다
제대로 확실하게 학실히(김영삼이) 벌리시는
이 간극만 또렷하게 하십니다
십자가가
첫사랑이 또렷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 또렷한 첫사랑에
걸맞는 학실한 간극
도저히 저 지옥의 세 구덩이 (부자와 나사로의 간극)
주님이 벌리시는 간극은 무시하고
세상에서 부자와 거지의 간극만 의식한 모든 사고방식을 부수시고자
불도져도 첩경을 평탄케 다리미질 쭈우욱 평평하게 밀어버리시는
높은 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시는
이 첫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시고자
율법 외에 한 의
율법은 도리어 올무 함정으로써
율법 많이 지키면 지킬수록 높은자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완악한 수건을 뒤짚어 쓴
광채 아껴먹을려고
부자가 자기 전재산 가난한 자 다 나누어 주면
광채가 사라지면 저들은 언제든지 돌삐 쳐 죽일수 있다 라고
사랑이 없음을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내 속에 선이 없음을 도리어 죄 아래 죄의 법 아래도 갇혔다
팔렸음을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오호라 화로다 나는 지옥의 몸이네
사랑이 없으면 모조리 다 울리는 꽹과리 빈 깡통
지 자랑 자기 가치만 소음처럼 울어대는 겁니다
고요한 밤에 야식배달 오토바이 따따따따 얼마나 깹니까
요즘은 조용해요 얼마나 좋은지 ㅋㅋㅋㅋ
그렇게 시켜먹던 배달
가격이 올라버리니까 먹고싶어도 이웃집 민폐 끼친다고 못 먹어요
누구 하나 기침 소리 해서 고요함을 깨면 따라서 다들 참았던 기침도 하는데
기침 안하고 싶어도 미리 해 두는데
아무도 깨는 자가 없이 조용하니까
민폐 끼칠까봐 못 하는 겁니다
왕따도 누가 시키고 동기부여하면 그때는 용기있게 해요
즉 두려운 겁니다
사랑이 없으니까 말이죠
늘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하는 그 완악한 수건
왜 그 거짓 껍데기 그 그림자 때문에
실물을 거부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냐 말이죠
아니 그림 속에 아이스크림을 보고 주문해서
실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럼 그 주문지 그림과 실제 아이스크림이라는 간극을 우리는 신나게 누려야 하는데
배고 안 고픈가봐요 그림만 먹어요 그림만 ~~~~~~~~
주문해서 그 실제 아이스크림이라는 실물이 오기까지의 그 몇초 되는 간극
그리고 실제물품이라는 공간 몸 장소를 누려야 하는데
그 빈공백
그래서 그림 주문지의 그림을 잊어버리고 이전 것을 지나가야 하는데
주문은 하지 않고 그 주문지의 아이스크림 그림만 쪽 쪽 빠는 겁니다
그런 놈들이 실로암 간판 걸어놓고 성화를 외친다고 하면
누가 실제 아이스크림 주님의 살과 피를 먹겠습니다
그저 보편적진리인 나는 사람의 살과 피는 먹는 살인자가 안 될 거야
나는 임마누엘 어린 젖먹이 갓난아기를 최전방에 보내는 그런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거야 라고 해 놓고서는 교인을 피 빨아먹는 뒤로는 금송아지에 여호와 이름 새겨서
교회 유지할려면 돈 내고 누구는 청소도 해야 하고
자꾸 징징 거려요
그림자만 소통이 되고 있지
실제 아이스크림은 소통이 안되더라 말이죠
맞아요 절대오 소통이 안되는 단절
곧 빈공백만 그 간극만 더더더더더 벌리시는 겁니다
그래야 소통되는 것들끼리 끼리끼리 유유상종끼리 모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야 하늘에서 직접 보내신 자를 믿는게 아니라
사람을 좋게하고 기쁘게 하는
사람의 일만 난무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래놓고 불 질러 버리시는 거지요
비로소 주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아 그림자 소통이 아니였군요
실상의 단절이 옳았군요 라고
자 그래서 모압까지 단 하루 만에 요나처럼 퍼뜩 죽이시는게 아니라
삼일 이라는 간극이라는 이 처음자리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야 여호와가 누군신지를 알려 놓고 죽이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라 진짜로 니느웨 백성이 알았뿠어요 여호와가 누군지 심판의 주 임을
도리어 신나서 퍼뜩 망해 디졌뿌라 라고 했던 요나는 정작
여호와가 사기쳤다고
여호와에게 사기당했다고 배신당했다고
아니 시키는 대로 했는데 사기를 치다니
멘붕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갑자기 멘붕멘탈 개그가 생각나네요
어 검색해보니 제가 봤던 것 아닌 것 같은데 훨씬 이전 것만 검색되네요
웃찻사가 아닌감 개그공화국? 이건 또 뭐징?
https://youtu.be/rERvwK27wV0
5년전 더 전에 봤건게 기억나는데
이건 훨신 그 이후의 것인데도 화면은 더 안좋네요
아무튼 웃음이란 그 당시 사람들의 창의성을 보여주게 되니
웃음을 없애버리거나
웃을 일이 없는
또 엉뚱한 것으로 웃는 것으로 인해
짐승의 정치 활동들을 보게 되는 겁니다
요나는 그 신난 마음이 도리어 슬픔에 빠졌어요
여호와가 누군지 모름에 의해 바위에 돌부리에 다리 걸려 꽝 하고 넘어져 버립니다
웃다가 울게 되니 멘붕이 온 거죠
저들이 짐승인줄 알았는데
도리어 자기자신 요나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웬수 였다는 사실에
도지히 용납이 되지 않으니까 멘붕이 온 겁니다
하나님에게 사기 당했다 배신 당했다 라고 따지는 거죠
이것이 존재로만 상대할려는 인간의 심뽀 곧 나 살아있는거 맞잖아 라고 우기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의 시선에서는 모든 인간은 죽은 자입니다
그 죽은 자의 자리에서 주여 고쳐주소서 라고 정작
이스라엘 존재가 아닌 이스라엘이라는 특이성 곧 처음자리에서만 외칠수 있는
첫사랑을 구하는 자는 정작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 심판받을 백성이였습니다
심판 받아야 할 백성임을 알았기에 심판주를 영접했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자신의 자기를 높여주는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다 보니
그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치에
왠 배신
왠 사기를 당하다 보니
멘 탈 붕 괴 멘 탈 붕 괴 온 것이지요
차라리 날 죽이세요
하나님이 나에게 사기를 치시겠다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게요
이거 미국의 실용주의
내가 없으면 내가 아무리 진실한 하나님이 옆에 존재해 있어본들
내가 없는데 믄 소용이고 내가 있어야 믿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 라고
이스라엘 존재를 무시하는 주님을 도저히 수용을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니느웨 백성은 그런 심판 주
그런 사기치는 하나님을 수용해 버렸거든요
때리는 시어마이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퍼뜩 망했뿌라 ㅋㅋㅋㅋ ~~~
이미 증거가 있는데? 미리 그 증거 잡아놨지롱 ~~~~
즉 이 처음자리 라는 이스라엘의 기능인 특이성은
곧 가시 밭의 백합화는
이스라엘도 이해 못 합니다
그런 이스라엘도 이해 못하는 판국에
모압은 더더욱 못하니까
뭐 이스라엘도 다른 이방나라와 별반 다를거 없네
우상숭배나 하고
망하는 흥망성쇠의 역사도 다 비슷비슷하고
처음 시작도 있으니 나중 끝나는 역사도 있는데
뭐 그리 유별나다고
이스라엘의 기능
이스라엘의 특이성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는 그런 허풍 다 소용없다
저 봐라 히틀러나 지금 이스라엘이나 뭐 똑같구만
히틀러가 잘못 했네 그때 이스라엘 다 죽였어야지
이 놈 오늘 본문 모압의 저주에 해당 되지요
이미 전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독일에 모여 있는 유대인 다 죽인다고 없어지겠냐 말이죠
웃끼게도 독일은 지금 유대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철저하게 방지를 하는 데 법도 엄격하게 갖추었는데
정작 다른나라 이방인에 대한 차별은 역시나 똑같아요
그저 자기에게 유익되는 자만 친절하고
유익 안 되면 누구든 다 똑같습니다
인간은 곧 문화입니다
인간 자체가 종교요 신입니다 돈입니다
그 문화가 자기의 신과 잘 융합이 되면 좋아라 하고
안 맞으면 가차 없이 말살시키는 겁니다
그런 인간인데
왜 하나님은 오늘 본문대로라면
인간과 뭐 별반 다를바 없네 라고
인간이나 하나님이나 별수 없구만 이라고
모압을 가차 없이 말살 시키느냐
라고 따질 수 밖에 없다 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을 다 죽여 버렸거든요
이스라엘도 반발 하도
그것을 뭐 이스라엘이나 이방이나 똑같네 라고 하는 자들도 다 죽여버리시고
도대체 우짜란 말이냐
모든 존재를 십자가에 못 박아요
그래서 반드시 기능만 뽑아내십니다
특이성만 구원하십니다
존재 구원 없어요
즉 개인 구원 없어요
개개인이 모인 다수화 된 국가 구원도 없어요
이스라엘이라는 특이성인 집단은 국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써만 구원 일 뿐입니다
다른 구원 없어요
그러니 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없는자는
그렇다고 만들어낼수도 없어요
주님의 마음이니 주님 마음대로 주님이 마음을 심지 않는 이상
아무리 청함을 받은 자가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도
오로지 남은자만 남겨둔 한 씨의 마음만 구원하십니다
오직 예수님 단 한 분만 구원 하십니다
아 그럼 우리도 일반이니 우리 구원 없으니 다 헛되네
아 그럼요 다윗이 사람의 구원은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구원 하십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이 잉태치 못하게 할려고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 곧 용처럼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고
남자 없이 아기를 낳은 그 불길한 여자 육의 법칙을 벗어난 여자를 죽일려고
용처럼 찾아 헤매였습니다
우리가 때려 죽어도 가기 싫어했던 그 광야의 죽음 속에
한 때 / 두 때 / 반 때
1년 / 2년 / 반 년 = 3년 반 1260일 동안
광야 / 광야 3일길 /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속에
숨어 있을 줄 몰랐지요
죽음의 용이 곧 우리가 죽임임을 감추고자 광명한 천사 노릇을 하고 있는 판국인데
양의 탈을 쓴 늑대인데
그 죽음의 광야를 피할려고 하지 들어갈려고 하겠냐 말이죠
그래서 죽음을 피햘려고 하기에 오히려 광야 속에서 어린양을 감추었다 말이죠
그러니 이 간극을 점점점 더 늘리는 성령의 단절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 입니다
그리고 때가차매 한때 두때 반때 간극 빈공백을 이루고 하늘로 올라갔어요 떠나 갔어요
(선녀와 나뭇꾼 선녀를 찾아주세요
찾을 필요 없이 지가 올라가면 되겠지요 불가능한 단절잉께)
용은 이 여자를 아기를 낳고 안아 품어 있는 여자를 놓쳐버렸다 말이죠
쭐꾸덕 잡았다 놓쳐버렸어요 분명 잡았는데 손을 펴니 사라지고 없어요
선녀를 찾아주세요 우와 우와 ㅋㅋㅋㅋ
https://youtu.be/cgpAG1X0T2I
사랑을 잃은 나무꾼은 이제 자기의 가치를 높여주는 그 용의 짐승 노릇인 헛짓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상대방을 높여주는 사랑이 없는 노답인 세상의 헛됨을 말이죠
바로 우리 손에서 구원하신
예수님만 구원하시면 됐지
왜 나의 사적인 구원
내 구원이 왜 필요하나요?
구원 되어서 뭐하게?
또 용 짓으로 남자없이 낳은 아기와 여자를 또 잡아 죽일려구?
언제까지 그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자 할 꺼냐 말이죠
이 일에 나의 개인 구원 따위가 없어야
그 처음자리라는 특이성
빈공백
이 간극이라는 십자가의 빈터에서
특이성인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요
없는 자 같으나 모두다 가진자요
무태 한 자 같으나 하늘에 자식이 많은
그 빈터인 십자가의 터에서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이라는 정답이 먼저 있었기에
그 증상물로써 죄인 환자
잃어버린 자
찢으심을 받은 자
하나님을 찾이 않았던 자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던 그 자리에서
이제 부르신 바 찾으신 바 되심을 누리는 증상물로 만드실 것인데
자기가 해결하겠다 라고 나서게 되니
이 번제와 제사에 한계점이 오니 남의 것 빼앗아 희생제물 바치고
그것도 다 떨어져서
망하게 되니까 더 이상 못 바치게 되니
하늘의 여왕에게 못 바치게 되니 오늘날 교회들의 하소연입니다
목사들의 탄식이예요
교회 접게 되었다 라고 하닌
그 번제와 제사의 방식을 암몬이나 모압 또한 역시 고수하게 되니
이거 밟아 버리시는 겁니다
이 사랑 아니면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빛을 비추시는 그 빛에
나는 어두움입니다 흑암의 백성입니다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앉은 앉은뱅이에게 구원의 빛이 비추었다 말이죠
(마 4:13, 개역)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4, 개역)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4:15, 개역)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 4:17, 개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오직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하시더라 말이죠
평준화 시키신 겁니다
특이성 만큼 평준화가 없는 거죠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존재에게만 국한 된 것을
깨뜨리시고
특이성이 사라지기는커녕 더더더 비존재로 존재 보다 더 또렷한 비존재로써의 특이성이 더 발현이 되니까
이방나라에 까지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게 해 달라는
다윗의 기도처럼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래서 요나가 다윗언약에 속하며서도 다윗처럼 반발하다가
한 대 얻어 터짐으로써 도리어 거꾸로 니느웨 백성의 이스라엘의 특이성인 처음자리를 보고 반발 함 앞에서
정작 이스라엘은 존재 껍데기만 대따 가득할 뿐이지
알맹이 특이성은 하나도 없는 기능이 하나도 없게 만드시는
이 주님의 특이성 앞에
주님이 나 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무릎 꿇게 만드시는 겁니다
아니 그 이전부터 개같은 이방여자 며느리 다말이 진짜 이스라엘 이였고
나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도 충분히 이스라엘이다 라고 우겼던 시아버지 유다는
정작 가짜로 들통남에 있어서 정작 며느리 다말에게 접붙임 당해서
이스라엘만 구원하시는 이 특이성을 보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죽였던 그 원수가 싸가지 없는 며느리가
도리어 겸손한 예수님 이였고
우리는 겸손하다를 우기기 위해서 예수님을 가장 교만한 자로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린
이 죄악까지 들추어내셔야만 하는 암덩어리 수술하시는 이 십자가의 겸손 앞에
비로소 모든 무릎을 꿇게 만드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가 모든 육체를 십자자에 못 박는 이유입니다
이런 비밀 비유 수수께끼 특이성이라는 기능을
존재는 볼 길이 없습니다
존재가 삭제 당하고 사라지고 빈터 공백인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아니 요나 선지자도 못 알아 먹어서 대드는 판국에 무슨 수로 우리가 알수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주님 쪽에서 마련하신 몽둥이 징계로
사생아 안 되게
내어버려 두시지 않고
니느웨 백성처럼 우리를 눈뜨게 하셔서
이 징계의 사랑 아니였으면 우리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음을
다들 예수쟁이나 우상숭배자나 무당이나 똑같네 라는 평가가 아무리 맞다 라고
개독교 라고 보편화 시켜도
주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의 특이성인 그 빈터인 십자가의 피 용서를 통해서
반드시 갈라내시는 겁니다
아무리 똑같은 두 강도 일 지라도
사울왕과 다윗이라는 두 강도 일지라도
주님의 특이성으로 하나는 진노의 그릇으로
하나는 긍휼의 그릇으로 가르시는 겁니다
인간은 못 갈라도 엉뚱하게 구분짓고
저 사마리아 매국노 세리처럼 안되었다고 좋아라 하고
삥 둘러서 사마리아 구역을 더럽다 라고 피해가도
거 봐라 우리는 이방우상숭배자랑 다르다 라고 백날
엉터리 특이성으로 저들과 다르다 라고 해도
정작 주님은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우는 저 니느웨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심어서 구원하시고
정작 이스라엘은 그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라 차 버리게 하심으로써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얼마나 인간들이 개무시 하는 지를
다들 한 쪽으로 치우쳐서 솔로몬의 옷의 영광을 구하지
아무도 들에 핀 백합화를 부러워 하지 않는
개무시 속에서
주님은 성전측량 거룩측량을 특이성 측량을
나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를 먼저 측량하시고
다들 보편화 시킨 진리에서 가장 거룩한 대제사장은 제일 끝에 측량 무게를 재시는 겁니다
창기와 세리와 강도가 먼저 가는 천국
나중 된 자 먼저가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는
이 팔을 어긋맞게 하시는 천국 앞에
모압 너거들도 저주의 하나님을 알게 하심을 감사한 알아야 할 판국인 겁니다
자기 죄를 깨닫고 울고 돌아오는 남은 자는 돌아오고
아무리 이스라엘 혈통이다 라고 해도
자기 죄악을 깨닫지 않는 완악한 수건 벗기를 고집하는 자는
스알야숩
마할살렐 하스바스
임마누엘
이 세 아기를 구하지 않는 자는
이미 정죄 받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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