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7 에돔의 복수심을 심판 (겔 25,12-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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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7 에돔의 복수심, 원수갚는 범죄를 심판 (겔 25,12-17)

이스라엘 특이성 오독으로 저주 받는 모압 (겔 25, 8-11)
에스겔 2019 2024. 5. 18. 10:29
21-076 [유다도 이방우상숭배자와 똑같네 뭐] 모압평가에 대한 저주 (겔 25, 8-11)

〈에스겔 25,12-1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9쪽, 찬송가 389장 새 351장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찬송가 302장 새 575장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찬송가 389장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새찬송가 351장〉

1.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우리 대장 예수 기를 가지고 접전하는 곳에 가신 것 보라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2. 원수 마귀 모두 쫓겨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찬송 찬송합시다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3. 세상 나라들은 멸망 받으나 예수교회 영영 왕성하리라 
   지옥권세 감히 해치 못함은 주가 모든 교회 지키심이라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4. 백성들아 와서 함께 모여서 우리 모두 함께 개가 부르세 
   영원토록 영광 권세 찬송을 우리 임금 주께 돌려보내세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아멘


〈에스겔 25,12-17 개역한글, 구약성경 1189쪽〉

(겔 25:12,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하였도다
(겔 25:13,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손을 에돔 위에 펴서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서 끊어 데만에서부터 황무하게 하리니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지리라
(겔 25:14, 개역)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을 빙자하여 내 원수를 에돔에게 갚으리니 그들이 내 노와 분을 따라 에돔에 행한즉 내가 원수를 갚음인 줄을 에돔이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5:15,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블레셋 사람이 옛날부터 미워하여 멸시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갚아 진멸코자 하였도다
(겔 25:16, 개역)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겔 25:17, 개역) 분노의 책벌로 내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찬송가 421장 나는 갈 길 모르니, 새찬송가 375장〉

1.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합소서 
   어디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어디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2.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3. 아기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줍소서 
   힘도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줍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줍소서

4. 맘이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아멘


(겔 25:12,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에돔이 지나친 복수심을 품고 유다 족속을 괴롭히며, 그들에게 지나치게 보복함으로써 큰 죄를 지었다.
(겔 25:13,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손을 뻗쳐서 에돔을 치고, 그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없애 버리며, 그 땅을 데만에서부터 드단에 이르기까지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겠고, 백성은 모두 전화를 입고 죽을 것이다.
(겔 25:14, 새번역)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손으로 에돔에게 원수를 갚겠다. 그들이 내 노여움과 분노에 따라서 보복하면, 그 때에야 에돔이 비로소, 내가 보복하였음을 알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25:15,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블레셋 사람이 옛날부터 품어 온 원한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복수심에 불타서, 마음 속에 앙심을 품고, 지나치게 보복하였다.
(겔 25:16, 새번역)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손을 펴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렛 사람들을 없애 버리며, 바닷가에 살아 남은 사람들까지도 멸망시키겠다.
(겔 25:17, 새번역) 내가 노하여 무섭게 벌하며 그들에게 크게 보복하겠다. 내가 그들에게 나의 원한을 갚으면, 그 때에야 그들은 비로소,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인간의 믿음은 곧 복수심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니까 종교심으로써
신에게 하나님에게 해당 되잖아요 네 맞습니다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복수심입니다
그럼 인간의 행함은 라멕의 찬양처럼 날 건드리는 놈 가인 건드리면 벌 7배 이지만
날 건드리면 벌 77배 이다 라고 자기가 심판자로 복수자 어벤져스이다 라고 하듯이
인간의 행함 또한 복수심인데 사람에 대한 복수심인거죠

예수님은 그럼 참 신도 되시고 참 인간도 되시니까 찬양가사에 그렇게 나오니 말이죠
거짓 신과 거짓 된 인간에게서는 포착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 되시니까
인간의 믿음이라는 복수심
그리고 인간의 행함 이라는 복수심에 의해서
반드시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참 되다 라는 의입니다

거룩 거룩 거룩한 의 이라고 하니까
성화론자들이 말 풀이 단어 해석해가지고
행함 곧 복수심을 펼쳐서 양탈늑대무리처럼 거룩을 지키자 라고 하지만
정작 거룩한 의(義), 
이 의의 의미는 인간의 믿음과 행함이라는 복수심이 쓰잘데 없다 라는 의미에서의 의입니다
곧 그 복수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의입니다

칼로 쓰는 자 칼로 망한다 라고
칼이 뭡니까 자기따나 정의의 법 아닙니까
사적인 복수심 곧 사적인 구원을 공적인 정의의 법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 아닙니까

바로 이 사탄의 깊이까지 들추어내는 암덩어리를 축출해 내는 것이
의사의 수술칼인 의로움인데
인간의 믿음이 행함이 칼을 쥐니까 이것은 망할 징조 뿐인 살인의지 곧 복수심 적개심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의문의 반복이요 완료가 없이 미완료로 반복이 되는 겁니다

정 그러면 그 원수를 살려보던가
댓글을 보면 웃끼게도 검은머리 짐승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로 범죄한 자들에게 용서를 베푸면 안된다 라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던데
그게 바로 너야 너 라고 하시면 
그 다음 차례 너 인데 우짜노 하시면 우얄라고 그러냐 말이죠

남의 티끌을 그렇게 정확하게 찾아내면서
정작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찾는 겁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글쎄
그러니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 라는 거죠
이카면 또 아저씨 영화에 원빈이 자기 머리 깍더라 라고 또 악플다는 거죠 ㅋㅋㅋ

그래서 말씀은 처음부터 비유로 말해야지 논리 합리성이라는 보편적진리 조차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자꾸 제발 믿어달라고 징징 거릴필요가 없어요
도리어 제발 가란 말이야 라고 단절을 시킬려고 하는 겁니다
소통이 아니라 말이죠

오늘 본문도 그런 의미입니다
에돔에 대한 저주를 말하고 있는데
그들이 받는 저주의 내용 하나 하나가 새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 당연히 저주 받겠지가 아니라

새삼스럽게 저주의 내용을 새로 집어 넣음으로써
우리의 심판관 죄관 의관을 깨뜨리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심판 하시듯이 말이죠

결국 지난 번의 모압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못 보고 잘못해석해서 심판받았듯이
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높이시고자 새롭게 말이죠
그러면 자연적으로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세트가 되듯이
계집종 하갈의 언약이 새삼스러운 저주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거보세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도리어 이스라엘이 못 보여주던 특이성이
도리어 삭제당함으로서 이스라엘의 특이성이 돋보이게 되는데
암몬 모압 오늘 에돔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특이성과 맞물려서
두 언약이 증거가 되는 겁니다

정작 이스라엘은 삭제 되어서 이전 것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보라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새것이 되었도다처럼 말이죠

이것이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리라 가 먼저 떳기에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은 여호와로다 가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이스라엘도 못한 가운데 삭제 당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기능은 기능을 부으신 주님으로 인해서
도리어 없는데 없는 가운데서 더 활활활 기능을 또렷히 보여주고

그런 이스라엘 삭제 멸망 시켰다고 좋아라 죽는 이들 이방 하나 하나를
왜 미끼를 덮썩 물어버렸느냐 라는 취지에서
이 두언약의 한세트로서의 
왜 계집종 하갈이 땅의 계집종의 기능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내막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심으로써

두 심판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을 무릎꿇어 경배케 하시는 구원을 이루시는 겁니다 다 이루어 놓았기에 그 증상물로 튀어나오도록 하시는 거죠
증상물이란 의미는 무조건 원인 없는 결과이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에돔의 저주의 내막 하나 하나가 뭔고 하니
에돔의 조상은 야곱의 형 에서입니다
형 에서의 자손이 에돔인 거죠

형 에서는 어리석게도 교활한 사기꾼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팔아서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다 라는 잘못으로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문제는 아니 장자권 판다 라고 해서 팔릴 것 같으면
말라꼬 먼저 태어난 장자 형 맏이 라는 의미가
팥죽 한 그릇에 왔다리 갔다리 하겠냐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마음 푹 놓고 팔아버린 것을
주님은 역으로 이용해서

창세전에 에서는 미워하기로 작정이 되어 있고
야곱은 사랑하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것을
뒤짚어 씌우는 식입니다

자 이런 의미에서 창조주 라는 의미를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알리라 라고 했을때에
기존에 알고 있는 창조주에 대한 개념이 다 깨어지는 겁니다
사실상 기존에 알고 있던 창조주는 윤리 도덕의 선악개념이지
한 번 정한 맏아들 장자 개념은 창조주가 규정한 법칙인데
설마 창조주가 창조질서를 깨뜨릴 이유가 없다 라고 본 거죠
그게 복수심 이다는 겁니다

그렇게 맏아들은 장자권으로써 하늘의 기업을 받듯이
기업을 받아서 가족 전체 동생네 까지도 다 챙겨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그래서 법 아래에 두고자 법이란 질서 아닙니까 질서 아래에 두고자 함이다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 창조주가 그 질서 그 법 과연 진짜 질서가 맞냐 라고
창조주가 자기의 창조를 자기의 율법을 자기의 질서와 법을 깨뜨리더라 말이죠

아 그럼 우리 개판으로 살자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메? 까짓거 막살자 라고 나온다 말이죠
마치 그 동안 막살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우짭니까 질서 계약이 갱신이 되어서 도리어 더 엄격해 졌어요
마치 율법 강화처럼 말이죠

이제는 율법으로 하는게 아니라
사랑의 죽음으로 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이 죽음이 아니면 모조리 위선일 뿐이다
울리는 꽹과리 이다 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참이다 거짓 아니다 라는 의미는 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의 숨어있는 복수심을 들추어내시고자
죽으시러 오신 겁니다
그것이 참 신 참 인간이다 말이죠

그래야 그렇게 다들 좋아라 하는 신이 가짜였고
다들 그렇게 좋아라 하는 인간이 가짜였다 라는 거죠

십자가라는 증거는 신은 가짜다 라고 인간들이 규정한 사건이요
예수는 가짜 인간이다 라고 모든 인간들이 규정한 사건이 십자가 라는 증거 이다 라는 겁니다

증거물이 있으면 빼박 인거죠

그래서 주님은 자꾸 증거물을 잡을려고
도장, 도장끈, 지팡이를 확보할려고 해요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담을려고
이 불의한 재물애 충성 해요 글쎄
한 때 두 때 반 때 라고 삼년 반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거나
1260일 말이죠
그리고 삼년 동안 발가벗고 다니거나
이거 다 인간들의 죄악을 그 복수심을 담고자 말이죠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를 반드시 베드로에게서 받아내시는 겁니다

이 단절을 격지 않으면 
그 마음에 있는 녹슨 찌기라는 불순물을 혼합시킨 불순물을 분리시킬 방법이 없다 말이죠
그러니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은 이 불순물을 어떻게 해서든 합법화 할려는
사람을 좋게 하는 구원을 외치는 자들이고

주님은 반대로 그 불순물 혼합물을 분리 단절 시키는
이 십자가에 충성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영인 성령은 이 하나님의 의에 단절에 분리에 복종하신다 말이죠
그 복종 하심으로써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다 말이죠
이제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율법 지켰다 라는 되도않는 혼합물 찌끼를
율법 강화 보다 더 강화가 된
원수 사랑인 십자가의 피 용서 앞에서
들이내밀 속임수는 없는 겁니다

어딜 감히 남을 7번 용서한 위선을 그 불순물을 그 이마의 주름 내 힘들고 고생많이했다 라는 수고를 그 계집종 하갈의 언약인 가정부의 언약을

도로 7에 70번 용서하시는 또렷함 앞에서 뻔데기 앞에서
자유하는 하늘의 여자인 산 자의 하나님 이삭의 언약에 들이내미냐 말이죠
이렇게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도대체 누구를 꾀어서
자기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게 삥이나 뜯어내느냐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왜 에돔은 이 이삭에게 야곱에게 바짝 붙어서
게집종 하갈의 언약 이스마엘 땅의 자식 지옥자식의 언약을 펼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네 맏아요 이스라엘 특이성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이 미끼를 덮썩 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선악을 아는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과 같이 될려고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복수심 살인의지를 들어낼려고 하고자
딱 옆에 바짝 붙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미끼를 심심하면 물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에돕은 복수심으로 시작해서 복수심으로 끝나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해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 복수심은 에돔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남유다가 예수님 살인을 할때에 최고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암몬이 자기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교만한 얼굴과
모압의 이스라엘을 일반으로 여기는 해석과
그리고 오늘 에돔이 어릴적부터 원조 조상때부터 가진 그 복수심으로 시작해서 복수심으로 끝나는 모습이

다 우리에게도 있기에 남 이야기 하듯 하는 상황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 정도로 심판이 급박하거든요

저주가 급해요 글쎄

이 진노가 급한 심판의 주가 아니면 우리는 엉터리 예수를 믿는 겁니다

문제는 누가 심판의 주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오늘날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다들 사랑의 예수님 좋으신 하나님으로 안산홍같이 포장하기 바쁘지
그래야 돈 내지 그래야 장사를 하지
심판을 하는데 누가 돈 내겠냐 말이죠

뒤로 꼬불쳐서 구원의 방주를 또 타낼려는
너거들 한테는 심판에서 빼줄게 라고 심판을 외치는 놈도 그런 짓하는 판국인데 말이죠

온갖 속임수가 난무할 뿐이다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우는 자 자기 죄로 우는 자
배에 빵구멍이 나서 굻은 베옷을 입은 자는 없는 겁니다

[참고 로

이러다 다 죽습니다 주여 제발 용서해주이소 모세의 온유 에스겔 인자의 온유

(겔 9:8, 개역)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살육하는 기계

(겔 9:1, 개역)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겔 9:2, 개역)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겔 9:3, 개역)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겔 9:4, 개역)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겔 9:5, 개역)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겔 9:6, 개역)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출애굽 당시의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재앙을 보는 듯
애굽성 10가지 신들이 이 장자의 보디가드로 작용
하나 하나 무너뜨리는데
에스겔은 마치 인간의 몸 인간의 성(캐슬,성전)을 하나 하나 무너뜨리는 모습 애굽성처럼
우는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가 발린 자는 패쓰 넘어가듯이
자기 죄로 우는 자인 남은자 남겨둔 한 씨의 피가 발린 자는 가는 베옷 입은 천사가
먹통을 들고 이마에 표 한 자 곧 남은자를 표시하고 나머지는 다 죽이는 모습
이것이 에스겔 9장 곧 심판 속의 구원을 먼저 다 이루고 출애굽을 다 이루고
거기에 맞는 죄인을 우는 자를 증상물로 만들어 내심 ]


자 이렇게 이스라엘의 특이성 곧 기능은 곧 망하는 자리
심판의 자리
삭제되고 사라지는 자리에서 그 처음자리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오히려 에돔 곧 형 에서는 바로 이런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자신들의 복수심에 대한 결과로써 해석 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꼴 좋다 라고 드디어 복수를 완성했구나 라고
미끼를 제대로 문 해석을 할 수 밖에 없지요

이것은 마치 암몬이 심판 받는 이유처럼
자신의 가치가 그 동안 이스라엘 땜에 가치가 떨어졌는데
이제 그 못된 이스라엘이 야곱이 망했으니
자기의 가치가 높아지지 않아도 저절로 저 이스라엘의 멸망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라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시는 거죠

바로 그때 모압이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잘못해석해서
이스라엘도 다른 우상숭배자랑 똑같이 우상숭배로 망하네 라고 일반이다 똑같다 라고 했듯이

에돔 또한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자기 멋대로 해석함에 있어서
멸망해 버렸으니 특이성도 없다 라고 좋아라 하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올무에 걸려드는 것이다 말이죠

그런다고 빼앗긴 장자권을 회복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처음부터 장자권은 형 에서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장자권이라는 특이성 곧 맏물
하늘에 속한 거룩한 예루살렘 자유하는 여자는
동생 야곱에게 곧 이스라엘에게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장자권이라는 처음자리를 발로 차 버렸듯이
뒤에 부랴 부랴 다시 빼앗아 회복해 본들 게임 끝난 이휴이니 소용없다 말이죠
그러니 남은 것은 오로지 복수심 밖에 없는 거죠

바로 이런 에돔의 속성이 남유다가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역시나 에돔처럼 육의 소욕으로 생각하게 되니
이들 남유다 또한 자기의 처음자리를 스스로 발로 차 버리니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처음자리를 도리어 고아 과부 나그네를 핍박해서
등쳐먹고 죽이더라 말이죠

그러니 인간은 아무리 줘 봤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해석해 포착해
결국은 육의 소욕으로 삼아버려야

드디어 복수 성공 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선 줄로 착각한 것이 넘어진 것인 거죠

자 그러니 이 장자권 곧 복의 근원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 받는

그런데 타인에게 축복하는 자는 없어요
모든 것이 자유 경쟁체제 이기 때문에
남을 축복하는 이유도 결국은 자기를 축복하기 위함이지
누가 갚을 수 없는 이웃사랑실천을 하겠느냐 말이죠
다 도로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자기 친인척에게 이웃사랑한다 말이죠

(눅 14:12, 개역)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눅 14:13, 개역)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눅 14:14, 개역)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눅 15:6, 개역)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눅 15:9, 개역)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이것이 예수님의 이웃찾기 인데
반대로 유대인은 이웃사랑실천의 대가로써 마치 금식의 달인 기도의 달인 회개의 달인처럼
자기 의를 세우고자 하나님께 열심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식이 없는 거죠 정작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겁니다
도로 7에 70번의 용서에는 복종치 않아요
의인이 아니고 건강한 자가 아닌 죄인이 되어야 하니까 환자로 들통 나야 하니까 말이죠

자 이렇게
이스라엘 자체가 특이성 곧 복의 근원(아브라함도 마찬가지)처럼 
이스라엘을 축복하면 축복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저주받는
이스라엘 존재 자체가 복의 근원이 아니라
그들 이스라엘을 복의 근원으로 만드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복의 근원임을 이스라엘은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기능 곧 비존재로써 말이죠 사라지고 없고 삭제되니까 이 기능이 더 또렷하더라 말이죠)

이방나라도 그리고 이스라엘 자체도 다 오해한 거죠

민수기 22장에 발람 선지자가 발락 왕으로부터 돈 재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했는데

분명 자기는 이스라엘을 저주 받아라 라고 외쳤건만
정작 자기 귀로 듣기에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더라 말이죠

몇 번을 그렇게 해도 똑같더라 말이죠
아 아무리 저주 해도 축복 받도록 하는 저 여호와 하나님이 가로막는 이상 소용없구나를
정작 발람선지자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이 발람선지자는 계시록에서 까지 활동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왜? 1300년 만에 애굽왕 바로왕을 지옥에서 소환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왜? 두 언약으로 두 그릇으로 갈라버리기 위해 이것이 거룩이요 이 의에 복종하는 겁니다
뭘 해도 죄인임을 아는 자와
뭘 해도 나는 구원받아야 한다 라는 자로 둘로 가르는
이 단절을 나타내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니 사탄의 가시 노릇을 하는 자들을 통해서 영광받으신다 말이죠
안 그러면 두 언약이 아니라 자꾸 녹슨 찌기로 혼합시키고자 하나로 묶을려고 하는데
아닙니다
반드시 둘로 나누는 단절을 펼치시는 겁니다
이 단절을 거쳐서 원수 된 둘로 나누어진 것을
주님 쪽에서 하나로
곧 믿음이란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나로 한 몸을 이루지
예수 안을 이루지
인간은 이 예수 안을 이루지 못하니까 그 빈 자리를
하나님 믿기로 꽉꽉 채우는 겁니다

바로 그런 속성을
에돔이 복수심으로 늘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나에만 관심 두는 겁니다
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이 얼마나 에돔족속에게 예민하게 작용하겠느냐 말이죠

그것이 도리어 이스라엘이 복의 근원임을 도로 맞다고 긍정하고 있으니 말이죠
왜 계집종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왜 하필이면
정실부인의 자리를 차지 할려고 하고
이스마엘은 왜 그렇게도 이삭을 괴롭히는 것일까요?

이 사랑과 미움을 
곧 선 과 악을 결국은 인간 쪽에서 이루고자 함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절대로 인간 쪽에서 이룰수 없습니다 그가 나 보다 옳았습니다를 외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유 없이 얻어터지는 미움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왕따 당하고 말이죠 미움당한다 말이죠

그러나 정작 너를 미워해서 미워하는게 아니라
나 예수를 미워해서 너희를 미워 한다 라고
아니 왜요?

내가 세상을 악하다 라고 규정해 버렸기에 말이죠
즉 이 말은 심판한다 라고 선언 선포 해 버렸기에
다른 말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에
천국을 다 이루었는데
말라꼬 눈에 보이는 그림자들 실상도 아닌 껍데기를 놔 둘 필요가 뭐가 있느냐 말이죠

그카이 귀신들이 자꾸 아직 때가 안 되었는데 벌써 멸망하시느냐 라고
비밀을 외칠 때 그 입 다물라 라고 귀신들을 함구 시켰다 말이죠
인간들이 듣고 깨달으면 안되거든요

어딜 감히 니가 뭔데 천기를 누설하느냐 말이죠

절대로 심판의 주로
단절의 주로 오신 것을 못 보도록 하셨다 말이죠
오로지 긍휼히 여겨주시는 새 마음으로 인한
성령을 입은 자들만이
자기 죄로 우는 자들 만이
배에 빵구멍 난 자 만이
먹통에 붓으로 이마에 표 받은 자 만이
주의 피의 공로를 쳐다보는 자 이지

안그러면 또 인간은 자기 행함을 율법에 따른 행함을 쫓도록 맹글어야 
의에 이르지 못하니까 말이죠 이 말씀을 이루어야 하니까 말이죠
인간 자력으로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창세전에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으로 나누어진 그대로
증상물로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거지
변경은 없다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모조리 다 단절된
잃어버린 입장일 뿐인 겁니다

누가 건방지게 왕따 시키고 누가 건방지게 갑질하느냐 말이죠
거꾸로 왕따 당하고 미움받고 갑질 당하는
그 처음자리 라는 비존재의 기능 특이성 덕분에

저들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저들 유대인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롬돌일 뿐인 건축자들이 쓸모없다 라고 버린 그 버림받은 돌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는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이요
이 십자가라는 어리석은 하나님의 지혜가 구원의 지혜였음을

천한 계집을 왕비에 자리에 높이시는
하나님의 영광 가장 높고도 높은 하나님의 깊이이다 말이죠

이 하나님의 저주일 뿐이다 라는 십자가를
사도바울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의 저주인데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그래서 이 십자가가만 알기로 했다 라고
이 십자가만이 원수 된 자신을
하나의 몸으로 만들기 위한
막힌 담을 허무는 빵꾸멍 내는 유일한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이 저주 받는 십자가가 복의 근원임을

비로소 바울은 보고
이 죽이시로 작정됨을 기뻐하고
이 십자가의 운명에 감사하면서

미말 세상의 끝에 찌끼로 쓰레기로 찌끄레기 취급받는
미움받는 자로써

원수 중의 원수
죄인 중의 괴수로써

의인 중의 의인이 아닌
건강한 자 중의 건강한 자가 아닌 
이것이 성화론자들의 외침인 반면에

죄인 중의 괴수로써 십자가를 외치는 겁니다

미움 받는 자 중의 미움 받는 자
저주 받는 자 중의 저주 받는 자
죽이시기로 작정된 자 중의 죽이시기로 작정된 자 로써

여호와가 누구신지 심판의 주가 누구신지를
바짝 엎드려서
원수의 자리에서 외치는 겁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 라고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능인데
우리는 에돔처럼
또 육적인 이스라엘 또한 아무리 그 차이로 에돔의 복수심을 보게 하여도
역시나 에돔을 따라하면서
발람을 따라하면서
무당 짓이나 할 뿐이지

도통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 라는 이스라엘의 기능을 못하는 겁니다
에돔이 복수심이 가득한 판국인데
오로지 복수심으로 시작해서 복수심으로 끝나는 허구의 인생일 뿐인데
무슨 수로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한다 라고 외칠수 있을까요

그것은 복의 근원이라고 뒤짚어 씌우신
창세전에 사랑 받기로 작정된 자에게서만이
이 십자가 라는 무한한 사랑을 외치도록 하신 겁니다

다른 이로는 할 수 없도록 말이죠

오로지 이스라엘은 오로지 찬송 하도록 하기 위해 지으셨기에
선택하셨기에

우리는 이 미움의 자리에서
바벨론 포로 그발 강가에서
비로소 예루살렘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말이죠

이스라엘의 기능이

포로 잡혀 가서
삭제되고
나라 
민족
국가 
모든 소유 다 날라간 입장에서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나무 열매 없고
감란 나무 그치고
논 밭에 식물 양식 단 하나 없고
우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이 광야라는 죽음 속에서
개우하야 꼬셔서 광야에서 결혼식 펼치는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오로지 언약만으로 말씀으로만 사는

신부로 만드심을

이 사랑만을
창조주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써 새창조 새신부를 새 피로 새 마음으로 하시는 겁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기에 말이죠

이미

벌써

다 이루었기에

흐릿하고 모호하고 미완료가 없는
미래완료로 마침으로써의 증상물이기에 

이것이 계시록의 혼인잔치입니다

종말이라는 광야의 죽음 속에서의 혼인잔치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에 가는 이유입니다
이 철저한 단절을 보고자
원인 없는 결과인
끝을 미리 앞당겨 보는 자

뭘 해도 죄 밖에 없음을 봤기에 말이죠
뭘 해도 에돔처럼 복수심 밖에 없기에 말이죠

뭐 해도 지옥의 몸이기에

화로다 화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랴 라고

뭘 해도 진노의 몸임을 봐버렸기에

나 외에 외부에서 오는 긍휼을 바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이런 에돔과 같은 복수심으로 들 끓는
평생을 복수심으로만 사는 자들을 깔아 놓는 겁니다

누가 과연 이 복수심 마저도 너끈히 넉넉히 이기시는 사랑을 보여주시는지를 부르짖으라 라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카이 그 하나님의 원수는 곧 남이 아닌 나 자신인 거죠
시편의 다윗의 원수는
사람의 원수가 아닙니다

다윗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신학자들이 박사들이 그 다윗의 원수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 였던 겁니다

이것은 성령 입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모르기에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뫼비우스 띠는
누워서 침뱉기 라는 의문의 반복 밖에 없는 겁니다
마침이 없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땅에서 얽히면 하늘에서 얽힐 뿐입니다

그 카이 이 십자가가 아니면 의문의 반복이요 
또렷함이 없고
밝히 보임이 없어요
안 보이면 불안하고
알지 못하면 두렵습니다
또렷히 보이면 편안하고
다 알게 되면 자신감이 넘칩니다

모르기에 무지하기에 사랑이 없기에 두려운 겁니다

자기 자신 조차도 모르기에
하나님의 원수인 줄을 모르기에 두렵고 불안한 겁니다

나를 제대로 아시고
그런 나 원수를 하나 되게 하시고자
둘로 나누어진 원수 관계를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무신

이 사랑이 아니면
두려워서 목소리 꽹과리를 치는 겁니다

고릴라가 워낙 순진하고 덩치만 컷지 두려움이 많다 보니
오바 액션과 가슴을 치는 것이 폭력적으로 보여서 그렇지 오히려
싸움을 방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다는 것이다 라고 하더라 말이죠
우리는 외모만 보고 또 영화와 소설로써 편파적해석으로 봐서 그렇지
그 정도로 우리가 고릴라에 대해서 모르면서
아는 척 해서 그렇지

싸움을 막고자 하는 평화의 수단이다 라는 거죠

결국 상대방에서 모른다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대충 대충 알게 된다 라면
그 나머지를 행함과 자기열심과 자기 인간의 의로 곧 복수심으로 채워서 해석하기 마련이기에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거다 말이죠

한국이 또 저출산으로써 전쟁이나 전염병 시 보다 더 낮은 이유는

학교에서도 오로지 돈돈 돈 돈 많이 버는 자로만 기계 돈 버는 기계로 만들고
직장에 다녀도 모든 가치를 돈의 기준으로 봐 버리고
교회에 가도 돈을 기준으로 봐 버리게 되니

누가 사랑으로 낳고자 하지 또 돈 버는 기계를 놓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제가 중고등 심지어 초등학교를 다녀봤지만
모든 선생의 가르침은 돈 버는 기계로 가치를 매기는 교육 뿐이였다 말이죠
교회를 다니면 다르겠지 했는데
그 무당 짓은 교회가 더 심해요

돈 만 밝히는 자들 뿐이다 말이죠

누가 이런 나라에 아기를 낳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맨날 누워서 침 뱉는 자들 밖에 없으니

돈 빼면
돈의 신을 빼면 대화 할 꺼리가 없으니 말이죠

그카이 복수심 밖에 없는 겁니다

의대 증원한다 라고
출신 고등이 고등출신 지역에서만 같은 지역 의대 지원할 수가 있으니
벌써부터 초등학생을 지역으로 유학 보내더라 말이죠

우와 미쳤구나
지 혼자 지옥가지 왜 자기자식을 지옥 못 보내서 안달일까?

부모 지 혼자 강도의 소굴에 살다가 가지
왜 자식까지 강도의 소굴에 보낼까

부모잡아먹고 자식 잡아먹는다 라는 신명기의 계명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라는 거다 말이죠

이 모든 것이 복수심이다 라는 것을
에돔은 그 의문의 반복인 복수심만 펼치다가 끝나고
유대인 또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겠다만 고집하다 지옥가니

참 헛된 인생일 뿐이다 말이죠
그거 하나 밖에 못하니 말이죠
복수심

하나님 너 까불면 너 죽어 ~~~~~~~~~~~~~~

구국 장로 연합회였던가요?
문재앙 죽이겠다는 놈들

모조리 복수심이다 말이죠

한국교회는 모조리 복수심
부자나 가난한 자나
중간치 한다는 자나
모두다 복수심

이거 무슨 수로 고칩니까

허나님의 원수임을 아는 자만이
고쳐달라고 우는 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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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9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 바치고, 우상을 사랑하다 창녀가 되었구나 (호 9,10-17)
2024. 6.16

더러운 쓰레기를 먹는 이스라엘 (호 9, 1- 9)
호세아 2023 2024. 5. 25. 07:22
23-18 쓰레기를 먹는 더러운 이스라엘 (호 9, 1- 9)

〈호세아 9,10-17,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4쪽, 찬송가 147장 새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가스펠; 주님께 모두 드려요,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찬 357)
세상 모두 사랑 없어(찬 373)
탕자처럼 (798)
모두 다 드려요 (766) 그대 헛된 꿈을 좇았었나요  
주님께 모두 드려요 (765) 무지개를 찾아 다니시나요
나의 나 된 것은 (895)
베드로의 고백 #4  1. 사랑하는 주님 내게 다가와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우물가의 여인처럼 (906)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찬 147) 새찬송가 149장
주 예수 크신 사랑 (찬 236)
너 주의 사람아(찬 374)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나의 몸과 영혼을


〈가스펠; 주님께 모두 드려요 (무지개를 찾아 다니시나요) No.988 찬미예수 2000〉

1. 무지개를 찾아 다니시나요
   돌고도는 생활하시나요
   헛된 모든 꿈을 다 가지고
   주님발 앞에 모두 놓아요

   드려요 모두다 주님께 드려요
   깨진꿈 상한 맘 지친 몸
   드려요 모두다 주님께 드려요
   슬픈마음 기쁨으로 변해요

2. 맑은 날만 있다 하지 않아요
   궃은 날도 있을 거예요
   그런날도 찬송 할 수 있지요
   주님이 우리 도와 주세요

   드려요 모두다 주님께 드려요
   깨진꿈 상한 맘 지친 몸
   드려요 모두다 주님께 드려요
   슬픈마음 기쁨으로 변해요



(호 9:10, 개역)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호 9:11, 개역)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함이나 아이 뱀이나 잉태함이 없으리라
(호 9:12, 개역) 혹 저희가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저희를 떠나는 때에는 저희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호 9:13, 개역)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호 9:14, 개역) 여호와여 저희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청컨대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호 9:15, 개역)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서 저희를 미워하였노라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 방백들은 다 패역한 자니라
(호 9:16, 개역) 에브라임이 침을 입고 그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호 9:17, 개역)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리니 저희가 열국 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스펠;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No.38 찬미예수 2000〉

오 나의 자비로운 주여 나의 몸과 영혼을
주님 은혜로 다 채워주소서
이세상 괴롬걱정 근심 주여 받아주시고
힘든 세상에서 인도하소서
예수 오 예수 지금 오셔서
예수 오 예수 채워 주소서

모여라 주께 찬양하라 나의 귀한 친구야
주이름 앞에 너 두손 모으고
오 너의 슬픈 세상 눈물 너의 쌓인 아픔을
십자가 앞에 너 모두 버리고


〈찬송가 147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새찬송가 149장〉

1.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 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2.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3. 못 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4.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 다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아멘


(호 9:9, 새번역)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 / ㉢삿 19-21장; 삼상 10:26-11:4를 볼 것
(호 9:10, 현대어) [음행 때문에 자식이 없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 이스라엘아, 처음 너희를 데리고 사막을 통과하던 그 옛날이 얼마나 즐거웠더냐! 그때에는 너희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더냐! 광야에서 포도송이를 찾아냈을 때처럼, 무화과나무에 열린 첫 열매를 볼 때처럼 만족스러운 사랑이 아니었더냐? 그런데 사막을 지나자마자 너희는 나를 버리고 바알브올로 가서 우상에게 몸을 바쳐 그 우상들과 같이 더러워졌다.
(호 9:11, 현대어) 에브라임이 새처럼 내게서 날아가 버렸으니 그 영광도 사라져 버렸다. 그러므로 너희 자식들은 태어나면서 죽게 될 것이다. 태 안에서 이미 죽어 나오거나 아예 임신조차 못할 것이다.
(호 9:12, 현대어) 비록 너희가 자식을 키울지라도 내가 그들을 데려가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만 남겨 두고 멀리 떠날 때 너희에게 멸망이 닥쳐올 것이다.'
(호 9:13, 현대어) 나는 환상 속에서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아비들이 어쩔 수 없이 제 자식들을 도살자에게 내어 주었다.
(호 9:14, 현대어) 오, 여호와여, 제가 주의 백성을 위하여 무엇을 달라고 해야 옳겠습니까? 자식을 낳지 못하는 자궁과 젖이 나오지 않는 유방을 주옵소서!
(호 9:15, 현대어) [길갈에서 왕을 세운 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의 모든 죄악이 길갈에서 시작되었기에 나는 이미 거기서 이 백성을 미워하였다. 그러므로 못된 짓만 하는 그들을 미워하여 내 땅에서 쫓아내 버리고 반역만을 일삼는 지도자들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
(호 9:16, 현대어) 에브라임은 찍혀 나가 송두리째 뿌리가 마르고, 그 나무에는 더 이상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자식을 낳을지라도 나는 그 사랑스러운 아이마저 죽여 버리겠다.'
(호 9:17, 현대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서 집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될 것이다.



마침 어머니께 녹음한 것 들려드리다가
아 미갈인데 다말로 잘못 말했구나 
고 부분을 우연히 발견했다 말이죠
나머지 내용을 다 맞게 했는데

이 이야기를 왜 다시하느냐
마침 오늘 본문이 음행 때문에 자식이 없는
우상과 한 몸이 된 이스라엘의 음란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갈이 우상과 한 몸이 되었기에 자식이 없는 불임 여성이 되는 겁니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노
그럼 불임여성으로 살다간
수태치 못 한 자야 기뻐하라 하늘에서 자식이 많다 라고 했던
그 수태치 잉태치 못한 자는 다 음란한 자 이네?

아니지요 당신이 방금 말했잖아요 하늘에서 자식이 많다 라고
그러니 앞의 수태치 못한 잉태치 못한 그 부분을 따와서 반발해 본들
아이가 있기는 있었네 라는 결과로 인한
오히려 원인 없는 결과죠
남자 없이 낳은 아이죠

그러니 이 비유 이 비밀 이 수수께끼를 모르고
원인만 따지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니
오독한 겁니다

찬양을 사건이라고 댓글로 달았는데
사건이란 곧 말씀이요 언약입니다
즉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만약 수태하는 자여 축하한다 하늘에 자식이 많구나 라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 곧 보편적 진리입니다 즉 원인 있는 결과 입니다
그런데 그 보편적 진리를 깨뜨리는 것이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사건인 비유요 원인 없는 결과 곧 수태치 못한 자여 그런데 하늘에 자식이 많네 가 되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렇게 자식이 있어도 다 죽은자 취급 당하는 하갈의 입장을 보여주고
남유다 역시 수태치 못하는데 꺽으신 뼈가 직접 나와서 열매가 되어주니 네 맞아요 다윗자손이지요 그러니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역시나 남유다 역시 주장하다가
한 대 얻어터져서 다윗언약이 아니였으면 큰일 날뻔 했다 곧 우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라고
다윗자손이 나 다윗 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고백케 하시는 겁니다 상한심령 되게 하시는 겁니다)

아니 말이 맞잖아요
우상이란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곧 바리새인 소경이지요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그리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해요
다리가 있어도 걷지 못해요

자 그러니 자식이라는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한지
편리하면 무조건 다 우상이다 라고 보면 되요
과학을 지젝 말 마따나 종교라고 했듯이
종교는 사람을 좋게 이롭게 하거든요

과학의 힘으로 불임여성 난임이 되도록 하잖아요 열매 있넹?
있으면 뭐 합니까 땅의 계집종 하갈이 하늘에 자식이 없는데
지금 있는 자식도 다 지옥에 가니
생명의 성령의 법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흙이 흙을 낳은 물질이지
생명이 아니잖아요

사건은 권세 개념을 가지고 오는데 권세 권력 곧 힘으로 볼게 아니라
힘이라는 존재 보다 힘으로 인한 충돌현상이라는 두 세력 두 세계의 충돌인
소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욕망인 거죠
그래서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의 전쟁으로 보게되면
두 소욕의 충돌전쟁인 겁니다

겨우 두 여자 라는 하늘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 개미같은 존재를 가지고서
두 세력의 두 소욕을 대리해서 전쟁을 하는 두 소욕 두 언약의 싸움을 보여주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장기알입니다
욥을 중간에 두고서 마귀세력과 여호와 하나님의 소욕을
욥을 두고서 벌리시듯 말이죠
두 고래 싸움에 욥이라는 새우등 터지는 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상 개념과 음란이라는 소욕 탐심 곧 하나님의 적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적이란 전쟁의 대상이니까 말이죠

아무튼 미갈 불임여성인 미갈은 자식이 없다 왜 우상이 아이를 낳을 리가 없잖아요

반드시 너 전남편과 이혼케 만들고 반드시 죽이고
내가 원래 너의 본남편이다 라고
외부에서 쳐들어 오지 않는 이상
인간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겁니다

왜? 우상과 합한 음란한 자 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이방이 아닌
바로 이스라엘이 보여주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자 이렇게
시편에서 다윗이 외친
하나님의 원수로부터 건져내 달라고 우는 그 다윗의 기도 다윗의 사건을
오늘날까지 아무리 신학박사 대가들이다 하더라고
이 다윗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해석을 못하듯이

오늘 호세아에서 나오는 우상과 합한 한 몸인 이 음란이 뭐냐 라는 겁니다
곧 우상이 뭐냐 라는 겁니다

모세 때 출애굽 계명에서는 돌 나무 등으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우상이였다 말이죠
그런데 신명기 계명에서는 이 우상이 손으로 만질수 조각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였다 말이죠
그 모세언약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언약이라는 사건에 의해서 드러나는 음란한 마음
곧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그 마음인
우상과 한 몸이 되고자 했던 이 이스라엘의 역사들이 그 증거물로 포착 잡히는 겁니다
그것이 아비아달 제사장 노선이 아니라 사독 제사장 계열로써 오는 다윗언약이 외부에서 와야
비로소 음란이 우상이 드러나게 되듯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린 우상 말이죠

오늘 본문 호세아 서에서 이 음란이 뭔고 하니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는 것이
음란이요 미갈의 불임의 모습이다 말이죠

열매 없는 짓을 하느냐 라는 거죠
그런데 인간은 아니다 나 열매 있다 내 자식 봐라 라고
오히려 자식이라는 개인소유물 때문에
본격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겁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우가 자식이 생기고
남편이 생기니
자기 소유물에 대한 집착 그 동안의 결핍에 대한 피해망상을
보상하고자 하는 복수심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겁니다

내 자식은 고아 안되게 할 꺼다
내 남편은 백수 안되개 할 꺼다
나는 과부가 아닌 반드시 공주가 될 것이다 라고 
자기의 가치를 반드시 높이는 일로 복수할 꺼다 라고
가정부 하갈의 땅의 언약을 펼치는 것이
전쟁의 대상인 적 곧 원수가 펼치는 사고방식이다는 거죠

그런데 이스라엘도 역시나 그 짓을 하더라 말이죠
고아 안되게 왕의 DNA를 가지게
아니 그렇다면 그런 부모는 자기가 왕이 아닌 노예이다 라는 것을 티 내고 있는데
무슨 수로 왕의 DNA를 가지게 된 것인지
바로 이것이 우상이라는 탐심이다는 거죠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에
전쟁의 대상이다는 거죠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라 라고 불가능한 말씀을 말씀하심으로써
너는 뭘 해도 하나님의 원수야 라고 취급하시는데
우리를 착각해서 하나님의 적이 아닌 하나님의 편에 설 거야 하고
진짜로 땅의 지체를 죽일려고 함으로써 땅의 지체를 죽인 나 라는 자를 형성할려는 또 탐심을
의문의 반복 사이클에 집어넣을려고 하는 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벗으라고 한 말인데 도리어 더 무거운 짐을 일부러 진 자신을
구축할려고 해요
그 카면 또 남과 비교하죠 자아를 형성했으니 그렇지 못한 자를 정죄하면서 말이죠
그게 우상에서 벗어날길이 없단다 라는 취지인 겁니다

그렇게 전쟁의 대상이 된 것 자체가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전쟁의 대상이 된 줄도 모르고 지옥가는 것 보다 낫다 말이죠
전쟁의 대싱이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박살이 나는
이 징계를 통해서 이 잔소리를 통해서
우와 나를 섬기는 자가 있구나를 누리는 거죠 이게 한 몸입니다 예수 안입니다
물론 하나님 믿기 곧 우상으로 꽉꽉 차 있는 자들에게는 들어갈 틈이 없는 말씀인 겁니다
또 하라 하지말라로만 해석할 테니 말이죠
뭘 해도 가짜 라는 그 자리
하나님의 원수 라는 그 처음자리,
그 처음자리인 고아 과부 나그네의 자리에서 원수 우상이 짤린 꼬추 짤린 마음판의 할례를 통해서
처음사랑을 보게 되면 된다 말이죠
물론 본다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고 감사하기는커녕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되니
(왜? 본다를 행함의 차원으로 지킬려고 하는 자는 뭘 해도 뭘 줘도 다 선악으로 해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보여주심을 당한자 기뻐하심을 입은 자는 도리어 자신의 행함을 신경쓰는게 아니라 그건 가정부이고 오히려 사랑하는 아내는 사랑하는 남편만 보일 뿐입니다 그 보는 것이
지키는 행함입니까 믿음직 스러운 미쁘신 사랑 앞에 감격 뿅가서 입니까
그카이 오늘날 목사들은 교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 노예 만들기 밖에 없어요
섬기는 이유도 결국 돈 달라는 거죠 자기를 제발 믿어 달라고 징징거리기 뿐입니다)
부자청년과 똑같아요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그 카이 구원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언제 조건 갖추어서 아빠를 사랑합니까
도리어 그런 조건 갖추기가(성화론자들을 보면 얼굴이 그 증거예요 교만하기 짝이 없어요
자기 보다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 하찮은 인간 취급하는 것 보면 가관이더라 말이죠)등돌리고 근심하고 돌아서는 부자라는 교만한 언굴을 고쳐달라고 하지 않으니
더 큰 문제이기는 한 거죠
그러니 원수의 자리에 놓여지는 그 다행함도
기회를 줘도 못 먹기는 매 마찬가지인
비유 비밀 사건 원인 없는 결과인 겁니다

이유가 없는데 뭘 줘도 자꾸 이유를 원인을 자꾸 갖출려고 하니
이게 바로 땅에 속한 지체인 겁니다
우상을 찾는 의도로만 가득한 육체를 고쳐달라고 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가 알아서 고칠껀데 말라꼬 그러냐 라는 식임거죠

아니 나는 포로 된 적이 없는데 니가 뭔게 자유케 포로된 자를 놓여주게 하겠다 라고
자꾸 아브라함 자손이거늘 이라고 우기는 그 자체가
하나님 믿기로 꽉꽉 차 있으니 예수 안이 들어갈 틈이 없어요

예수 안이 진정으로 두 언약으로 가르는데
인간은 자기가 알아서 선악으로 가르는 겁니다
그카이 예수님의 겸손은 아무리 겸손해도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건강검진해 주겠다 라는 그 겸손을 펼쳐도
교만으로 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니가 뭔데 날 고칠려고 하느냐 라고 말이죠

누가 이 의사를 소문낼 자 입니까
제발 날 고쳐주세요 저는 환자 맞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맞습니다 라고 하는 자가
예수님을 소문 낼꺼 아니냐 말이죠

권세를 권세로 칼은 칼로 돌려막기 하는 겁니다
부정을 부정으로
상처를 낸 그 칼이 나를 제대로 수술하는 치료하는 칼이거든요
아니면 아무리 율법 말씀 백프로 완벽하게 다 지켜도
자기방어기제일 뿐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거기 있는게 아니라 여기 있습니다
딱 하나 빠진 화목제 뿐입니다
되도 않는 심판 저주는 이 절대저주인 십자가로만 치유되는 겁니다
죄라는 칼의 권세를 수술(용서 은혜의 왕노릇 권세)라는 칼의 권세로 치료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오로지 성령과 생명의 법으로만 치료합니다
법은 법 아니면 못 치료 합니다
인간은 이 절대성이 없기에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이기에
땅의 지체 곧 육신의 법 뿐이기에
그 육신의 법에 반대되는
생명의 법인
예수님의 몸이 화목제물이 되지 않는 이상
못 벗어나는 겁니다
해방 없어요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 같이 자유 할 수 없어요

죄와 사망의 법 의 반대인

성령과
이 성령이라는 새 영이 아닌 이상
아무리 육신을 도 닦고 백날 해도 소용 없습니다
포기 하시고
성령이라는 새 영을 달라고만 하면 됩니다
왜 자꾸 헌 술 헌 부대를 붙잡고 새 술 새 부대로 만들려고 하느냐 말이죠

그 카이 백배 깨끗한 유대인 바리새인 보다
천배 더 더러운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영접 하는 겁니다
사랑을 봐 버렸기에
자기에게 없는 그 사랑을 말이죠
그런데 유대인은 그 사랑마저도 실천했다고 우기니까
꽉꽉 차 있으니까
못 보는 겁니다 소경이 소경의 길로만 인도할 뿐이다 말이죠

그 카이 빨리 법 이라는 권세를 쥘려고 하지 말라 말이죠
율법을 지킬려고 하는 자 조차도 율법 그 본래 취지인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원해서가 아니라
법 이라는 권세를 쥘려고 할 뿐이다 말이죠
그래야 자기의 가치가 높아져서
모세의 자리에 앉게 되니까 말이죠
항상 율법 지키는 자를 주님이 충돌하시는 이유는

자꾸 높은 자리를 노린다 라는 취지로써 충돌 하니까
화를 자꾸 내는 겁니다

그 카이 결국은 칼을 살인의지를 복수심을 드러내는 거죠
살인 안하고는 못 배기는
역설적이게도 율법을 쥔 것이 도리어 살인을 하게 되는 겁니다
살인 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아이의 목숨을 살인하는 이 간극을 인간은 좁힐 방법이 없는 거죠

그 누구가 그 법의 그 권세를 쥐느냐
마귀냐 여호와냐 라는 것에 따라
칼의 기능이 죽이는 기능인지
살리는 기능인지 드러나는 거죠
(마귀는 어차피 자신은 남을 살리는 기능은 못해요 그래서 인간에게 그 칼의 권세를 줍니다
너가 죽일지 살릴지 선인지 악인지 너가 판단 하라고 자율적인 주체가 되라 라꼬 말이죠
이 죄의 소원을 인간이 넘어설 방법이 없어요
간극도 못 좁히는 주제에 죄의 소원을 무슨 수로 넘어서느냐 말이죠)
우상은 죽이는 기능이다 이 놈들아
살리는 기능은 여호와 뿐이면
여호와는 그 우상을 죽이는 살인자의 기능
복수심 뿐이다 라고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 우상과 싸우시는 겁니다

에이 우상 곧 나 외에는 없다 라고 해 놓고서는
우상과 싸우다니
없다 라고 해 놓고서 싸우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네 라고 비웃는다 말이죠
왜 저들이 그래서 논리 합리 원인에 따른 결과를 우기는 식이 바로 그래서 법을 쥔 인간의 결말은
결국은 살인입니다
살인자가 법을 쥐고서 그 동안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외친 거죠
그 놈이 니 놈이다 이 다윗 놈아 ~~~~~~~~
얼마나 인간이 허무 그 자체이면 
논리적 모순을 비합리성을 까발려서 내가 옳았잖아 라고 
이런 소리를 하면서 끼득끼득 웃을까요

그런데 더 웃끼는 것은 그 논이적 모순을 그 간극을 좁혀 볼려고 또 기독교역사는
교리를 형성하는 방어탑을 쌓더라 말이죠
아니 거꾸로 저들의 논리를 깨뜨리는 막힌 담을 허물 생각은 안 하고
논리로 논리를 방어막을 쳐요 글쎄 ㅋㅋㅋ
그 카이 그 행함이 또 우상숭배가 되어서
삼위일체 라는 지도 이해 못하고 남도 이해 못하는 삼위일체 기준으로 이단을 가려내더라 말이죠
사실은 사위일체를 믿는 거죠 하나님 믿기로 꽉꽉 채운 자기 믿기인 거죠
그 하나님도 사실은 자기자신을 투사시킨 거죠
그러니 저주가 제대로
하나님의 적이 원수가 제대로 규정이 안 되니까
곁돌고 있는 겁니다 의문의 반복을 미완료를 말이죠
나중에는 다 귀찮고
마더 테레사처럼
날 안 도와주던데 뭐 라는 결론으로
하나님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라고 존재로 빠지는 겁니다
결국 지도 내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라고 그 동안 했던 것 헛짓이라고 말한 셈인 거죠
솔로몬이 한 말을 늦게써야 한 겁니다
육신의 지체를 죽이라 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원수 아닌 짓만 해 왔는데
육신의 반복만 했다 라고 답이 없이 멍해져 버린 겁니다
원인만 냄따 부자청년처럼 조건을 갖추고자 죽어라 라고 숙제했는데
다 헛짓 이라는 결과 통보만 받은 거죠 뭐
쓸데 없는(평생을 가난한 자에게 헌신한 짓) 허구에 의미를 두다가 나중에 헛짓 허구임을 안 거죠
자기에게 가치가 없어진 겁니다 자기가 전혀 가치가 높아지지 않으니 말이죠

이것이 음란입니다 그래서 주님 혼자 이 음란이라는 우상과 싸우시는 겁니다
곧 나와 싸우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와 싸우신다 말이죠

인간은 자기가 복의 근원이 되어서 복과 저주를 나누고 싶어 하는데
바로 그 선악의 법과 싸우시는 겁니다
곧 나와 모든 인간과 싸우신다 말이죠
같은 인간 편에 있다가 배신자가 졸지에 생겨서
주님 쪽에 서서 싸우는 자 때문에
조직의 와해가 생길까봐
교리 교육을 강화 시킨다 말이죠
인간의 소통을 강화 해요
흩어지지 말자 라고
역청을 바른다 말이죠 오늘날로 치며는 본드인 거죠
바로 시멘트입니다
그런 물질이 정신이 되면 바로
인간의 문명이요 학문입니다 흩어지지 말자 라고 인간의 지혜입니다
그런 지혜에 헬라인 이방인 지혜에
십자가는 어리석고 미련한 단절의 지혜인 거죠
흩어버리니까
북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남유다 까자 삭제하고 공중분해 해체 시켜버리니까
그 해체된 자리에서 누락된 자리에서
그 동안 때려죽어도 안 부르던 예루살렘 노래를
바벨론 포로 잡혀가서 예루살렘 성전 불타서
포로잡혀간 그발 강가에서 비로소
암행어서 출도요 라고 
하나님이시여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라고
비로소 원수의 자리에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비로소 기능 이스라엘의 기능을 처음으로 하는 겁니다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절대로 주가 누구신지
주의 이름을 부른 적 없던 이스라엘이 비로소 부르십니다
이방인 주의 이름 모르고 찾지도 않는 이방인 욕할 입장이 아니라
이스라엘 존재가 사라지니까 비로소 그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절대로 존재할 때는 안 불러요 불러도 우상취급하면서
점쟁이 찾듯이 부를 뿐인 우상과 혼합만 시킬 뿐입니다

비로소 복의 근원이 자기가 아니라
주님이시고 도리어 나는 저주 받아야 할 자리에서
비로소 복의 근원이 누구신지를 보는 겁니다

복과 저주로 나누어지는 그 두언약이 한 세트가 되어야 비로소 음란이 나오는 겁니다
자기자신을 그 자리에 놓는 성령의 놀라운 탄식
상하고 통하는 심령인 정직한 영 덕분에 말이죠
ㄱ러니 정작 본인은 정직한 영이 없으면서 정직한 영이 있는 척 한 것을
들통 당하는 거죠
율법 네 배나 갚아라 그 놈이 니 놈이다 이 놈 다윗아 ~~

그 깊어진 음란 말이죠 물론 신약에서는 더 깊어서
탐심이 곧 우상숭배 라고 했듯이 말이죠

인간이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복과 저주를 해석하지
정작 진짜 안식의 주인인 예수님이라는 복과 저주로 가르시는
복의 근원으로부터 저주 받아 마땅한 죄인인줄
하나님의 원수인줄 모른다 라면

자기가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복을 따 낼려고 하고
저주를 오히려 남에게 정죄하게 바쁜
선을 취할려고 악을 벌할려는
자신의 그 선악을 아는 그 죄의 소원을 쓸데 없이 잡고서는
복의 근원이 될려고 하니
미갈처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없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 남을 죽이기 바쁜데
그것이 도로 누워서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누워서 침뱉는
남을 살릴려고 했다면 도로 누워서 그 살려줌을 당할 텐데
저주만 심심하면 날렸기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언 놈이 사기를 칠려고
사망아 도대체 누구를 쏘냐
니가 니 눈을 찌르고 있구나????? 

괜히 자기를 복의 근원으로 두고서 
나를 괴롭히는 자는 저주이고
나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이다 라고

자기 스스로 눈 찌르고 누워서 침뱉기를 하니까
그 원인은 항상 자기에게로 회귀 되돌아오는 것으로써
윤회 소통 돌고 돌는 결국은 자아로만 되돌아 오는

정작 율법은 자기에게로 되돌아 오지 않는 단절을 위해서
원인을 없애는 것이 율법인데
도리어 율법을 통해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버리니
더더더 자기에게로만 되돌아 오니
모든 것이 탐심 아닌 것이 없는 겁니다
뭘 해도 다 죄 밖에 없는
모든 것이 우상숭배요
뭘 해도 하나님의 원수 짓 밖에 안되는
오호라 나느 사망의 몸 지옥의 몸
하나님의 적인 원수 짓 밖에 못하는 몸이구나
철저하게 갇혀 버렸구나
사로잡아 오는 것을

내가 사로 잡혀 가는 것을 내가 나를 보는 구나
나를 내가 사로잡아가는 겁니다
원수가 말이죠
우상이
하나님의 적이
죄와 사망의 법이 된 내가 말이죠
심심하면 죽여버리겠다 라는 그 입버릇이
예수님 까지 죽여버린
그 인자의 기능까지 기여이 가게 되는 나 라는 우상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길갈 이라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자주 언급이 된 곳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길갈은 수치가 물러간 곳 이라는 여리고성을 치고자 진을 쳤던 장소입니다

(수 5:9, 새번역)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 ㉡히, '갈랄' ㉢길갈은 '굴리다', '없애다'라는 뜻을 가진 갈랄과 발음이 비슷함
(수 5:10, 새번역) 이스라엘 자손은 길갈에 진을 치고,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 여리고 근방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지자 자신들의 수치를 굴러가게 물러가게 하신 주님이 주신
수치 굴러감이 먼저 떳기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새 일을 곧 언약이 이루어짐을 보고서도

그 더럽고 부끄러운 수치를 물러가게 헸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도로 그 수치를 쓰레기 통에서 찾아서 
도로 붙이는 겁니다 짤라내어도 도로 붙여요 글쎄
꼬추 짤라서 예루살렘 패역한 딸 이라는 처음자리 만들어도
도로 꼬추 붙여서 반드시 복수 할테다 라는 라멕의 찬양을 따라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상징성이 있는 장소 길갈을 
북이스라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은 이 길갈에 있는 세겔을 수도로 삼았다 말이죠
그런데 졸지에 꼬추를 짤라서 수치를 굴러가게 했던 그 장소가
그 공백 그 바퀴(길갈의 뜻) 동그라미가 도리어
우상숭배로 꽉꽉찬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하나님믿기 곧 자기믿기 하나님과 같이 된 벌이 77배다 라는 우상이 꽉꽉 차 있기에
이 호세아를 통한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다 말이죠
아니 창녀 고멜과 결혼한 주제에
발가벗고 3년 동안 돌아다니는 주제에(이사야)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이 되어야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눈 코 입을 다 막아서 우상으로 규정해 버리는 겁니다
결국 우상을 짓는 것은 사람의 손이고 그 손으로 성전을 지을려고 하니까
행함을 주님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거부하시는 이 단절을 펼치시는 겁니다
절대 저주 라는 3일의 간극을 또렷히 벌리시는 겁니다
지옥간 부자가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부려먹을려고 해도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건널수 없는 이 단절이 구체화 되지 않으면
빵구멍 뻥뻥뻥 뚫히지 않으면
이 처음자리인 거지나사로를 여전히 무시하는 부자의 얼굴의 교만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 말이죠
난 부자 아니다 재산 별로 없다 라고 하는 자들도 부자가 되고픈 목적으로 사는 이상
똑같은 지옥의 쓰레기를 먹고 사는 자 이기는 매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 자기 배를 위한 우상숭배를 진짜 하나님이라면 가만히 두시겠느냐 말이죠
유대인을 빵구멍 뚫는다 라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하심을
모든 인간 모든 민족의 대표성인데
장자가 두들려 맞으니까 이방민족들이 다 비웃다 보니
같이 멸망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겁니다
이런 제사장 나라 이런 장자의 나라는 관심없고
그저 돈돈돈 돈 재산을 기업으로 물려받는 장자의 나라
십자가의 피 용서를 재산으로 기업으로 받아서 그 피 용서를 소문내는 장자는 관심 없고
그저 돈돈돈 돈에 미친 우상숭배자의 대표가 된 겁니다
장자교단 이라고 우기는 그런 정신나간 교단도 있지요 
물론 저도 그 쪽으로 들어가서 생활했기에 우상숭배가 뭔가를 제대로 배운 거죠
그게 바로 길갈 이라는 장소 라는 의미입니다 수치를 부끄러움을 굴러가게 짤라내어도
결국 인간은 도로 붙인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마치 입술로는 찬양하나 속으로는 저주가 가득찬 우상숭배의 장소로 상징화 되어버렸듯이 말이죠

결국 길갈로 출발해서
모든 이스라엘의 장소가
거룩한 약속의 땅이
심지어 세상의 중심 시온에서까지
산당을 높게 길게 크게 신비롭게 거 보세요 사위일체이지 ㅋㅋㅋ
모든 장소가 우상숭배로 까까득 차게 되는 겁니다
그카이 예수님이 그 대가리 머리가 된 예루살렘성전을 허물고자
가나안 땅 혼인잔치로부터 점점점 쳐들어 가는 겁니다

그렇게 길갈을 시온을 예루살렘을 수치를 굴러가게 했는데 도리어 수치를 도로 붙이더라 가 되는 거죠

계시록의 그 예루살렘이 소돔이요 애굽이요 큰성바벨론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고 하시는 이유 입니다

(계 11:8, 개역)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그카이 반드시 교회에서 큰성바벨론에서 두 증인 엘리야와 모세가 반드시 목베임을 당하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한 자 곧 회개하는 배가 빵구멍 뻥 뚫힌 우상숭배가 구멍 뻥 뚫힌
먼저 본으로 보여준 거죠 예수님처럼 당하는 운명으로써
마음판의 할례를 당하는 (스스로 하는 손할례의 반대죠)
죄와 사망의 법인 육신의 법에서
성령과 생명의 법인 은혜받은 예수와 합한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는 예수 안 말이죠

그러니 예수 안과 
우상과 합한 몸이 구체화 되지 않으면 이 두 언약이 한세트가 나오지 않으면
이 우상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사탄의 깊이도 모르고
지옥가는 겁니다

그러니 이 처음자리 라는 이스라엘의 특이성은
하늘에 속한 장자 분리된 자 맏물 십의 일 하늘의 소유가 된
기업을 물려주시는 자의 기업을 유업을 받은 자 장자란
장자의 기능은

존재와는 동행할 수가 없는 겁니다 도리어 존재가 사라진 그 공백의 자리가 되니까
비로소 첫사랑 첫맹세인 어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라고
주의 이름이 비로소 불려지는 장소가 몸이 되는
동행하는 몸이 되는 겁니다
존재는 반드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미 둘려고 하기 때문에
늘 피해망상자처럼 나 좀 알아달라고 징징거리기 때문에
늘 뭔가를 자꾸 행할려고 자꾸 꽉꽉 채울려고 하는
그 빈자리에 남을 7번 용서했다로 채울려는 복수심만 가득 채우는 겁니다
하갈이라는 땅의 계집종 가정부가 그런 짓을 한다 말이죠
그러나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 예루살렘은
수태치 못한 무자식 불임여성인데
졸지에 인자가 다윗의 자손이 쳐들어 와서
처녀의 몸에 젖도 물린 적 없고 구로치 입덫도 한 적이 없는데
애가 들어서서 졸지에 자유하는 여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음 으로 구원을 얻는다 했듯이
외부에서 애를 들어서겠끔 함으로써 비로소
존재가 아닌
기능을 하게 되는 거죠
아기 주머니가 있는데 있으면 뭐합니까 애가 없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지금 페미니즘이 공격하기 좋도록 발언하는 것 같지만
페미니즘은 이상하게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변호가 아니라
그들이 도리어 여성을 여성 답게 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한 변호를 하는게 아니라
남자들과 같이 등쳐먹을려고 여성인권존중을 외치는 것 같아요
대부분 인권존중운동 펼치는 놈들이 주로 인권을 말살하는 놈들이다 말이죠

사고방식 자체가 남자들의 폭력성을 도로 변호할려는 심뽀 밖에 없어요
자기들이 남자처럼 되어서 여성을 사유화 소유화 개인의 소유로 사적재물로 취급하더라 말이죠

월결을 왜 합니까 피를 쏟아냄으로써 매일 매일 청소하는 식으로 몸을 정화하는 의미이다 말이죠
마치 성전청결 행사때 처음 물을 뿌리는 원리입니다
이것은 아중에 에스겔 성전에서 출처 없이 물이 나와서
온 땅과 바다까지 다 젖히는
심지어 죽은 땅 메마른 땅 까지 다 적히는 생명수로써 예수님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기능은 여성이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그 부분 부분적인 모습을 담아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가 징계 곧 저주 부정함을 당함으로써
우리가 깨끗 청결하게 되는 나음을 입게 되듯이 말이죠

그러니 몸도 나를 위한 몸이 없어요
모조리 다 주님을 위한 몸 밖에 없어요
사적인 몸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다
죽으면 주님께서 회수하시는데
어딜 자기 마음대로 청결케 하겠다 라고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 라고 우기냐 말이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어떻게?
가난한 자에게 전 재산을 다 나누어 주어라
거 보세요 남을 자기 몸 같이 이웃을 사랑 안하는
우상의 몸임을 들통 당해야지
그것으로 감사해야지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 못하는 죄를
7에 70번이나 무한대의 용서나 받아야 할 입장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십자가의 피 용서에서 나온 열매를 그 사랑을
그 자식인 인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안 믿는다 라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을 믿겠다 라는 자들로부터 들통내심으로써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께로 난 자로써

두 언약을 한 세트로 삼으시는 겁니다

그러니 복과 저주
하나님 자녀와 우상이라는 하나님의 원수는

내 쪽에서 조건을 갖춘다고 해서 나올 문제가 아닌
주님께서 난 결과물이기에
우리는 그 결과물로 인한
처분을 당하는 입장 밖에 없는 겁니다

고로 복의 근원은 예수님 뿐이였지
이스라엘 또한 복의 근원은커녕
늘 우상숭배 밖에 없었음을
복의 권원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들통당함으로써
그 처음자리 곧 우상숭배자로써 들통당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첫사랑이 첫맹세가 누구에 의해서 펼쳐졌는가 라는
진짜 복의 근원 되심을 보게 하시는 겁니다
이 끝까지 섬기심이 아니였으면
나를 하나님의 원수로 만들기 하심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였던 겁니다

우리는 평생을 하나님의 적인 원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삽니다
마치 구약에서 돌 나무로 만든 우상이 모세때 규정한 우상이
점점점 호세아 서에서는 음란한 마음으로 구체화 되고
신약에서는 탐심이 우상숭배이다 라고 합니다
호세아 서에서는 그 음란이 앗수르의 정책으로 인한 것이기에
처음에는 손으로 만든 돌조각 나무조각 그리고 대형화 된 신성물 등등의 건축물이
점점점 손으로 할 수 없는 마음판의 할례처럼 마음판의 손 댈수 없는 영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신약 에서는 아예 이제 조건 자체가 없어지는
무조건적인 원인 없이 넌 무조건 우상숭배자야 라고 규정하는
탐심이 곧 우상숭배 라고 합니다
자기 지체가 있는 이상
이것은 자아 가 있다 라는 이유로 경계선이 있고
자기 재산 소유물 등등의 경계선을 긋기 마련이기 때문에
뭘 해도 우상숭배가 아닌 것이 없게 된 거죠
그렇게 점점점 손을 댈수 없는 권세 세력 배후세력화 된
정치화 된 영역으로써 추상화 되니까
내가 곧 탐심이요
탐심이 곧 내가 되는
그 카이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 감각이 당연히 관심이 없는 겁니다
저주가 되는 원수는 그렇게 멀어지게 되고
축복이 되는 것은 오로지 무조건 이유 없이 내가 되었기에
아까 말한 추상화 되었거든요
내가 이유 없이 축복화 되었기에

그 원수에 한 세트가 되는 축복 되신 예수님도
복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도

자기를 투사 투영 반사 시키면 골치아프게
비유로 사건으로 원인 없는 결과로 적혀진 말씀
곧 운동력(사건화 되는)있는 말씀으로써
혼과 육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이 말씀은 관심사가 못 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보는 이유는
아무리 최고의 수준 높은 성화론자들이 말씀을 공부하는 이유 또한
옆에서 가만히 보면 다들 그렇더라구요
부자청년과 똑같아요 얼마나 착합니까
대부분 착한 자들은 예수님과 안 맞아요
못 된 사기꾼 같은 자들이 그것이 옳았다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능 앞에서 무릎 꿇는 자로써 나오고
대부분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러고 있고
반대로 착하다 착한 부자청년같은 자들은 오히려 
때려죽어도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나오지 않는다는 점
왜? 하나님 믿기가 까까득 꽉꽉 차 있기에
예수님 안이 굳이 필요가 없다 라는 거죠
아니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로써 충분한데
말라꼬 신참떼기 3년 짜리 예수의 제자가 왜 되어야 하느냐 말이죠
모세 언약 만으로 충분한데 말이죠

말라꼬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냐 말이죠
모세가 그래서 1300년 묵은 모세가 그래서 또 변화산에서 나타나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보라 라꼬
주여 어서 장대 높이 달려 돌아가 주소서 별세해 주세요 라꼬 모세가 외쳐요

모세 말 안 듣는 이유는
모세의 껍데기 1300년 묵은 정통 정통 우려먹기 위함이지
모세의 외침은 애초부터 안 들었던 겁니다
수치를 굴러가게한 짤라버린 것을
도로 인간들이 그 우상을 도로 붙이는 이유인 겁니다

왜? 나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거든요
결국 구원도 나의 가치 놓이기 위함인 우상숭배였지
예수님의 목숨 바친 사랑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 못 보는 겁니다
누가 못 보는 소경이요
누가 하나님의 원수 입니까

주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고쳐달라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우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 잃어버린 자에게만 딱 맞는
죄인 하나님의 원수를 부르러 오신 예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호세아는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또렷히 증거함으로써

두 언약을 축복과 저주를 또렷히 함으로써
복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이인 예수님은
사탄의 깊이인 하나님의 원수 곧 우상이라는 하나님의 적이 또렷하지 않으면
흐릿멍텅 하게 보이면

예수님 또한 대충 대충 믿기에

추상화 되었기에
헛된 돌고 도는 허구 의문의 반복
왜? 그 의문의 증서인 율법을 지키는 내가 허구이기에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예수 또한 허구요 추상적일 뿐이니
하나님의 적 원수도 추상화 되는 거죠 어차피 다 추상적인 허구인데요 뭘 이라고

아닙니다 우상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우상을 섬기는 의도가 주체자 인 하나님의 적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원수가 구체화 되지 않는 이상
예수님도 누구인지 구체화 되지 않는 거죠
그럼 예수님은 그 원수를 구체화 시키는 사건을 발생시키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 오셔야 하는 겁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나지도 않은 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소문 낼수 있겠습니까

(고전 16:22, 개역)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라는 이 저주를 이해 할 길이 없는 겁니다
예수 안 믿는다고 저주 식이나

도저히 이해 할 길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모르기에

(롬 5:10, 개역)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하나님의 의 곧 심판 주 되심 즉 복의 근원이시다 말이죠
원수 되었을때에 비로소 심판 주가 누구신지를 보는 겁니다

광명한 천사가 돌려고 환장한 자들은
에이 그카면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의 선이 나타나겠네 라고 비꼬는 겁니다
다윗언약의 언어를 
모세언약과 무당의 언어로 썩어서 듣고픈 말 안 들려준다고 비꼬는 거죠
(이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의문의 반복으로 헛된 허구를 돌고 또 돌고 하는
무한반복을 해야만 하니까 말이죠 심판의 주를 못 만났기에 선악법 지킬 생각 뿐임 
그래야 왕따 안 당한다 구원 못받으면 안된다 라고 자기숙제를 해야만 하는 거죠 ~~~)

이 귀신에게서는 예수님을 증거할 자격을 부여치 않기 때문입니다

무덤 가에 사는 귀신들린 청년을 마주할때에
귀신이 아니 아직 때가 안 되었는데 왜 벌써 왔느냐 라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 봐도 귀신들은 딱 보고 알아 봤다 말이죠
하나님의 아들이여 아직 때가 안 되었는데 벌써 와서 우리를 괴롭게 하십니까 라고

(마 8:28, 개역)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마 8:29, 개역)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 8:30, 개역)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마 8:31, 개역)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마 8:32, 개역)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 8:33, 개역)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마 8:34, 개역)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 1:21, 개역)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 1:22, 개역)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 1:23, 개역)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막 1:24, 개역)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막 1:25, 개역)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 1:26, 개역)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막 1:27, 개역)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8, 개역)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님이 누군지 아는 귀신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사방에 퍼트릴 자격 자체를 안 주십니다

우리는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인 죄수복을 입고서
특별사면이라는 붉은 피로 도장 인 찍힘을 당해서 
수치를 굴러가게 하신 그 처음자리에서

나 같은 원수도 용서하신 도대체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도저히 그 사랑을 말릴수 없다 라는 그 감격에 겨워서

이 사랑을 외치도록 하시는 겁니다
나 보다 힘센 마귀도 증거하고파 하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그들에게는 허락지도 않으시는데 말이죠

누가 감히 그 첫사랑을 처음자리에서 외칠수 있겠습니까
부자청년 어릴적부터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어긴적 없이 다 지켰다 라는 부지청년?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맏아들?
이레에 십일조와 금식 두 번 하는 이스라엘 선생 바리새인?
놀랍게도 아무리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여겨서
가까이 다가와서 화친을 청해도
그들은 예수님과의 충돌후 도리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막는 자들이 되었을 뿐입니다

차라리 애초부터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고쳐달라는
탕자
매국노 세리
키 작은 삭개오
하루살이 품삯 전재산을 바친 과부 성전건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무너뜨려 달라는 과부의 기도가

도리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였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사건을 당한 적이 없는 자들은
결국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말 밖에 없는
뉸에 보이는 우상조각 안 섬겼다 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모조리 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린
우상숭배자 였고

제발 나 같은 우상숭배자 고쳐달라고
우상조각가 라고 자기 아들 이삭의 죽음을 봐버린 자 만이
하나님의 언약을 비웃음으로써
단 한 번도 보탬이 된 적이 없는 가정부의 노동 행함에 대한 보상이 아닌
보상도 없는데

그거 하나님의 원수로써 그 죽어야 할 내 자리에
대신 달려 죽어주심으로 인한 그 사랑
그 피 용서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이 이삭의 죽음으로 인해
비웃음에서 웃음으로 옮기신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자 만이
비로소 한 몸 
예수 안에서
동행하는 몸으로 새롭게 만드신다는 사실
이전 것은 왜 지나가야 하는지
모세언약은 왜 지나가야 하는지를

피흘려 주심을 통해서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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