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6 남겨둔 한 씨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롬 9,24-29).mp3
9.46MB

22-056 남겨둔 한 씨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롬 9,24-29)
2025. 4. 13. (3월 19,20일 녹음) 

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로마서 2022 2025. 3. 22. 14:48
22-055 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롬 9,24-29,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찬송가 384장 새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 424장 새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새찬송가 585장〉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 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찬송가 424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새찬송가 380장〉

1. 나의 생명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흘린 보혈로 정케하사 받아주소서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2. 괴론 세상 지날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3. 세상 살아갈 때에 주를 더욱 사랑합니다 
   밝고 빛난 천국에 나의 영혼 들어가겠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아멘


〈가스펠;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시편 24; 3- 5 No.79 찬미예수 2000〉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거룩한 곳에 설자는? 맘 청결한 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주께 향하는 자 찾아 - 오!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거룩한 곳에 설자는? 맘 청결한 자


〈롬 9,24-29,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롬 9:24, 개역)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24,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롬 9:25, 새번역)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 ㉭호 2:23
(롬 9:26, 새번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 ㉠호 1:10 ㉡그, '아들들'
(롬 9:27, 새번역)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사 10:22; 23
(롬 9:28, 새번역) 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
(롬 9:29, 새번역)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1:9(칠십인역)

(호 2:23, 개역)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 1:10,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사 10:22, 개역)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사 10:23, 개역)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아서 즉 새언약이지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십니다
천국 갈 자와 지옥에 갈 자
즉 로마서 오늘 본문 앞의 구절들처럼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와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
곧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말이지요

여기에 그 어떤 인간도 수긍할 마음이 추호도 없도록 하심으로써
새언약은 그 어떤 인간도 보탬이 될 수 없겠끔 하십니다

우리가 착각하기를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마치 수긍할 마음이 있을꺼다 라고 우기는데
주로 성화론자들이 당연히 자신들이 천국 갈 줄 알고서 수긍할꺼다 여기지만
오히려 그들이 제일 반발하도록 되어 있는 이유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의식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개혁주의자들이나 성화론자들이 얼마나 이런 의식으로 가득차 있으니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셈임을 이루시는 주님의 새언약 기준 보다
자신들의 실천신앙을 우선시 둔다는 점에서 바리새인과 똑같다는 거지요

오히려 오늘날의 이단들이 오히려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카이 또 이런 이단들이 억수로 좋아라 하겠지만
그 반대입니다 이단인줄 아는 놈들은 자기의 존재가 천국 갈 가능성이 높다고 좋아라 하는게 아니라

뭘 해도 난 이당임을 아는 이 기능성을 보게 되는 거죠
존재가 아닌 기능이 뭔데?

주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거지요
좀 더 파격적으로 표현하면
주님은 이단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거지요

나는 뭘 해도 이단일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겁니다
결국 심판 받아 마땅한 자 임을 아는 그런 이단인데

누가 이런 모욕적인 이단 구원에 저 이단 맞습니다 라고 돌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이런 고백을 하겠습니까

너도 나도 다들 정통의 구역 속에 들어가고파 이단들도 이단의 굴레를 벗을려고
심하게 로비를 하고요
그런 이단들에게 정치세력 안 빼앗길려고 똑같이 로비를 하기 바쁘다 말이죠

제가 아는 목사 놈이 이단 대책위원장까지 올라갔더라구요
저를 출교 시킨 놈이던데
아니 그런데 이단 대책 위원장 까지 해 놓고서는
이단에 대한 대책을 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단들이 정치 세력과 손 잡고
수 많은 부모들을 울리더라 말이죠

그래서 코로나 터지고 또 잡혀가고 하는 가운데
어라 이 놈이 그 동안의 언론에 나온 기사들을 모조리 다 삭제 하였더라 말이죠
이 놈도 정치력으로 그 자리를 올라 갔는데
더한 정치 세력의 로비 술과 이단의 합세에 기가 눌려 버렸으니
은근 슬쩍 발을 빼는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자기 이미지를 수정한다는 말은
자기를 자기가 관리하겠다 라는 또 미완료 라는 빈칸에 정답써 넣기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그런데 그런 짓을 부정적인 이단 이미지를 이단들을 어떻게 해서든 가릴려고 로비를 하는데
그런 이단들이나 정통들이나 뭐가 다르냐 말이죠
주님 보시기에 결국 다 더럽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그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큰 돈 들여가면서도 이미지 세탁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들만 속이면 된다 라는 것이거든요
주님의 목전에 항상 범죄한 자 라는 다윗의 이단됨 죄인됨의 고백 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는 자체가

더 깊은 마음판의 죄악이다는 거지요
단순히 윤리나 도덕을 깨뜨리는 그런 것이 죄가 아니라
죄의 소원이 먼저 인간 보다 있다 보니
아무리 해 본들 소용 없다 라는 악의 위력을 말하고자
주님이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셔서 자신의 토기장이 되심을 나타내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껍데기 정통이라든지
껍데기 이단 이라든지
그런 것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는 거지요

바로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을 시비 걸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웃낀 내용을 유튜브에서 봤는데
렘넌트 라는 남은 자를 검색을 하니까
아마 영어로 교회의 이미지를 홍보해서 장사하는 집단들인 것 같은데
모든 것을 영어로 발표하는 홍보처럼 활용이 되고 있던데
아이들이 무슨 감금당한 모습처럼 하고서 영어로 발표를 하더라 말이죠
뭐 이런 종교사업 억수로 많았는데
그것을 남은 자 운동의 차원에서 하고 있는데

한참 웃고 떠들고 까르르 까르르 신나게 뛰어 놀아야 할 아이들 청소년들이
무슨 범죄자처럼 억지로 영어로 모든 것을 발표해야 하고
뭔가 틀리면 또 꼬뚜리 잡혀서 수 많은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지래 겁먹은 모습으로써 영어로 발표를 하니
렘넌트 남은자가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더라 말이죠
그야말로 가버나움이다 말이죠

이런 환경이 7세 고시 라는 대치동 풍속을 낳고 있으니
가장 우울한 아이들을 양산 시키고 있다 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더라 말이죠
이젠 7세 고시도 아닌 그것도 옛말 6세도 아닌 5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이더라 말이죠

아니 7세 아이들이 정신병원에 갑자기 늘어났다고 할 정도면
우와 심리학자들이 일본인의 심리를 말 함에 있어서 
한국인과 비교를 하는데 일본인은 혼자 죽는 자살이 많은데
한국은 반대로 반드시 내 자식 내 가족을 동반해서 죽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말이죠
남아 있어봤자 모욕적인 삶을 못 견딜끼다 라고 이게 한국인의 집단의 눈치를 보는 사고방식이다 라고 한국인의 심리더라 라고 하던데
일본인은 집단에 겁을 먹는 식이고 한국인은 집단 속에 자랑할 꺼리가 없으면 화병나는
유일하게 세계에서 화병이 있는 나라는 한국민이다 라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잘난 것을 과시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식이다 라고
두 국가의 집단 심리를 이야기 하더군요

아무튼 이게 민주주의 라는 모습이다는 겁니다
말이 자유민주주의 이지
빨갱이 독재 공산당 보다 더 심해요
자유 경쟁 체제가 독재보다 더 하다는 거지요
그러니 자살율 세계 1등

즉 하나도 안 기쁘다 라는 겁니다
안 기쁜 것을 억지로 부모의 강요된 선택 강요된 자유에 의해 하고 있으니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아이들을 못 죽여서 안달이 나 있더라 라는 거지요

이거 오늘날 한국 교회 특히 성화론자들 교회의 모습이다 말이죠
착한 성도 콤플렉스로 교인들을 빨대로 꽂아서 피 빨아 먹기 바쁜 흡혈귀 교회 말이죠
그 이단대책위원장 그 놈도 교인들 피 빨아 먹고 그 자리에 올라갔는데
지 보다 더한 흡혈귀를 만나게 되니 안 당할려고 슬슬 뒤로 빠지는 겁니다
그래놓고 간판은 이미지는 여전히 남은자 행세를 하고서 말이지요

지지난 주에 파수꾼 곧 최후의 파수꾼을 예수님 뿐 이였듯이
최후의 남은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그 최후의 파수꾼을 바리새인처럼 모든 인간들은 어떻게 대해 왔습니까?

나사렛 이단이요 바알세불 대 마왕 걸린 마귀 중의 대마왕이다 라고 취급했듯이

고로 최후의 파수꾼 나팔 경고의 예언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에 놓여지도록 되어 있듯이
최후의 남은자는 모든 인간을 심판의 칼에 죽어 마땅한 우상숭배자로 취급해 버림으로써
최후의 남은자 홀로 우는 자로써 주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은
남은 자로써만 주께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유일하게 손 깨끗한 
자기 죄로 울어야 할 자들을 대신해서 우는 남은자이다는 겁니다
이 남은자 남겨둔 한 씨를 안 남겨뒀더라면
우리는 벌써 이미 소돔과 고모라 였다 라는 거지요

바로 이 남겨둔 한 씨가 기준인데

뭐 엉뚱한 기준 성화를 했니 안했니
그 행함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예수님으로 이미 결정나 버린 판격을
이들 성화론자들 마귀들을 자꾸 덮어버린 카페트를 자꾸 들추어내어서
자꾸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라고 하니

이거 마귀들이 송사하는 기준 아닙니까
법 법 법 따지는 선을 지키고 악을 버리라 라는 마귀의 주장이다 말이죠
권선징악

이것 때문에 남은자 운동까정 해 대는

이 남은 자 운동 유행을 몰랏던 교회는 남은자운동이 뭔데? 라고 나오고
남은자 운동을 하는 놈들은 아직도 남은자가 뭔지 모르냐 라고 으스대고(으시대다를 쓸려고 하니 자동으로 수정이 되네요 왜그러지? 으시대다는 북한어이고 으스대다가 표준어) 있고


결국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은 곧 남은자 라는 의미는
바로 저런 엉터리 인간 나 살아있음이라는 존재로 출발하는 가짜 믿음 곧 행함을 부수시고자
출현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남은자 운동을 하겠다 라는 그 의식을 가진다는 자체가
남은자 되시 유일한 남은자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게 아니다 라는 거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라고 했다 말이죠
결국 모든 인간은 믿음이 없어요
자기 존재로 출발하니까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이라야 남은자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내 속에 들어와야 할 수 있는데
그것 아니고서는 모든 것이 나 살고자 하는 그저 뭘 해도 가짜일 뿐인데
그것 남은자 그거 좀 흉내 냈을 뿐인데
그것으로 우쭐대고 좋아라 하면서 나는 할 줄 아는데 너는 남은자 운동 못하지 라고 나오니
먹고 배불러 터지니까 바로 마음에 교만이 오고 교만이 오니 바로 미끄러져서 지하에 내려가는
이 언약의 코스를 밟게 되더라 말이죠
오히려 이 언약의 코스를 율법 곧 시온에서 나온 율법
뜨인돌에 의해서 다리 걸려 넘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이런 코스를 안 밟는 징계의 몽둥이가 없는 자가
오히려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인간은 이미 자기자신만큼만은 이미 뒤로 자신을 남은자로 빼돌려 놓고서 말씀을 대하지

누가 진정으로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어서
다윗에게 하나님이 악령을 집어 넣어서
한순간에 살인죄 감은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르도록 만들어서
7만명이 죽고
졸지에 하나님이 시킨대로 했던 우리야 장군 개죽음 당하고
심지어 이름 없는 아기 
동생 솔로몬 태어가지도 전의 솔로몬의 형 이름 없는 아기의 죽음을 통해서

누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썩어 뭉드러지는
바짝 엎드려짐을 당하는 이 자기 죄로 우는 자
그런 남은 자가 될려는 자는 아무도 없어요

교회 유행 프로그램의 남은자는 서로 누가 누가 잘하느냐 누가 크냐 라는
시합까지 하지만

고때만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가 아닌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로써
주의 목전에 항상 범죄한 자입니다 라고
우는
자기 죄로 우는 그런 남은 자는 아무도 없고

도로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만이
유일한 남은자로써
유일한 파수꾼으로써 도로 하나님의 원수 취급받으면서
모든 인간들 심저이 곧 늙어 죽는 힘도 없는 노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또 그런 어른들 땜에 아이들까지 착한 아이 컴플랙스로
힘도 없는 아이들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외쳤던(엘리사 대머리 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청소년 쯤 되는 동네아이들이 어른들을 대신해서 비웃다 곰에 찢겨 죽듯이)

이런 남은자의 운명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 남은자의 의미를 무슨 수로 증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만 하면 남은자 다 엉터리로 해석할꺼 뻔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기들이 다 알아서 
믿고픈 것만 보고픈 것만 듣고픈 것만 다 뜯어고쳐서 받아들이고

아따 잔소리 그만 하고 이제 남은자 제대로 실천했으니까 잔소리 하지 마 라는 식으로
안했으면 몰라 했으니까 실천했으니까 딴소리 못하도록 입을 막고자
파수꾼을 벙어리로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남은자의 의미는 그 어떤 인간도 근접해서 다가가서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도저히 좁힐수 없는 간극이 벌어지는 이 빵구멍 내신다는 점에서

울지 않을수가 없는
이 정도로 내 죄가 심각함에 상하고 통회하는 상황

말씀에 적혀 있으니가 상하고 통회해야지를 절대 허용치 않는

도리어 말씀도 모르는 개같은 이방인이 도리어 이 말씀에 딱 맞도록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울때에 그것도 내 보는 앞에서 울때에

비로소 남은자 의미가 제대로 증거되는 겁니다
남은자가 하필이면 내가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를 잡아 율법대로 돌삐 쳐 죽일려고 할때에

예수님이 남은자로써 그 여인을 무조건 이유 없이 용서함에 있어서
그럼 율법은 왜 기록이 된 것은데? 라는 그 반발성을 더더욱 극대화 시키는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엎도록 간극을 벌리실때에

비로서 이 남은자 의미가
즉 십자가의 의미인거죠
곧 새언약입니다

이 새언약이 헌 술 헌 부대를 추구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 언약 그 쪽팔리는 다윗의 모욕적인 구원은
장사가 안된다

장사가 될려면
종교를 형성할려면
돈이 되는 모세언약이 옳았지
돈 안되는 다윗언약으로는 종교를 못 세운다 라고
이미 우상이 깔려있는 겁니다

그카이 예수님이 그 당시 종교인 유대교 라는 하나님의 교회에
예수님의 복음은 그들 속에 들어갈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로마서는 곧 있으면 고린도서를 시작하는데
고린도서 시작 부터가 고린도교회를
무슨 파벌 분파가 일어나기도 전에
어차피 무역의 도시라 어차피 돈 많은 부자교회가 될꺼 뻔하다 싶어서
미리 피발이 생기기도 전에
십자가가 이 고린도교회를 쪼개기 시작해 버리는 겁니다

그카이 돈 싸움으로 누가 더 크니 더 작니 하고 구별짓기가 벌어지기 전에
어차피 벌어지겠지만 말이죠
그카기 전에 미리 십자가로 쪼개지니까
이런 정치싸움을 할려고 하는 놈들이 미리 발을 빼는 겁니다
더 심각한 예수님의 죽음으로 안헌 기준으로
두 패가 갈라지는 현상이 벌어지니까

뻔데기 앞에 주름들이 내밀 구실을 미리 차단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제대로 두 패로 갈라지는 두 언약의 한 세트를 들이내밀어야지
되도않는 니 몇 번 용서했니 니 어느정도 성화가 되었니 라는
그 따위 엉터리로 두 패로 나눈다는 것은

감히 이 밝히 또렷히 보이는 이 십자가 앞에서는
심각한 것도 아니요 들이내밀 명함도 못 되는 것들이다 말이죠
그 따위 것들은 심판의 기준이 못 되는 겁니다
심판의 기준이 못 되는
나를 제대로 지옥 못 집어넣는 나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제대로 구원 할 수도 없는 가짜들이다는 거지요

제대로 죽이면 죽으리라가 아니면
그 죽으면 죽으리라의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남은자의 의미는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주님의 심판 기준이 되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우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문제는 죄가 뭔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놓고서 무슨 남은자 운동을 하느냐 말이죠
모조리 위선자로 만드는 종교 라는 국가 짐승 등 위에 올라탈려는
음녀들의 돈 벌기 위한 수작들인 거지요

성화론자들 음녀입니다 음녀

국가라눈 짐승을 이기고 싶어 한다는 거죠
바리새인이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고
그 가룟유다가 자기들 하나님 나라 운동 안 도아준다고
로마 라는 독재 보다 예수님을 더 위험 인물로 제거를 했던 이유인 겁니다
독립운동에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제거대상 노상원 수첩에 기록이 되는 거죠

수첩은 결국 예수님의 수첩이 먼저 떳기에
인간들의 제거 대상 수첩이 등장하는 겁니다
곧 행함의 책인 거지요

자기들 행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자들은 제거대상수첩에 기록이 되듯이 말이죠

아니 자기들 행함의 책이 있는데
말라고 아쉬워서 생명의 책에 기록이 되길 바랍니까
자기들 책이 이미 있는데
자기들 남은자 운동이 따로 있는데

그러니 이런 사탄의 깊이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깊이가 증거가 되어야지
우리가 몰래 따로 꼬불쳐 놓고 있는 의미들을 다 숨긴채로

성경 문자 하나 하나 지킨다고 해서
그 속에 마귀가 안 끼어 들겠냐 말이죠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다윗의 고백 시편 91편까지 인용을 하는데 말이지요
괜히 광명한 천사 이겠습니까? 마귀가 말이죠
인간들의 편 들어 줄려고 하는거 아닙니까
무당이 대통령이 되니까 자기 유익에 맞는 자들은 탄핵으로 우는 겁니다
등쳐 먹는 자 라는 것을 뒤늦게 안 자는 또 자기 성깔에 못 이겨서 탄핵 외치고 있고요
그런다고 다시는 탄해깜 대통형 안 세울 것 같습니까?
이미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로써 자기 유익을 쫓아 교만한 애굽왕을 또 세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의문의 반복을 멉출수가 엇어요
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선물로써의 새마음이 오지 않으니까
억지로 그 중학생 영어발표하는 남은자 영어 캠프 아이들처럼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가스라이팅 당한 뿐이니까 말이죠
이거 뭐 안다고 해서 벗어날 방법이 있겠습니까?

원함으로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으로도 아니요
달아난다ㅗ 해도 아니요

나 라는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이상은
답이 없는 겁니다
그저 빈칸 써 넣기에 허덕 허덕 거리다
좀비처럼 멍하니 있다가 가는 겁니다

애초부너 나를 위한 몸 공간 나를 위한 역사 시간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모조리 다 예수님만을 위한 것들 뿐입니다

자 이래 말하니 종교마약처럼 오움진리교처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종교에 귀의하라는 말이냐처럼 들리겠지만

그것 역시나 의문의 반복이니까 제발 막살아라 라는 겁니다
그 어떤 종교에 포섭되지 말고 말이죠

물론 막산다 라고 해서 막살 줄 아는 놈 단 한놈도 없어요
강요된 선택 강요된 자유이니까
흉내내고 싶어도 그 어떤 놈도 자유한 자가 없었으니
타인의 욕망을 따라 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욕망에 충실한 종으로써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뭐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러했으니까요

그러니 철저하게 갇혔음을 도로 알게 되는 거지요
막사는 놈이 알게 되지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가스라이팅 당하기 바쁜 자는 그럴 틈도 없지요 뭐

남은자 운동으로 가스라이팅 당하기 바쁜데
누가 제대로 된 심판받는 남은자를 알겠습니까 도로 반대의 의미인데
심판 속에서 나온 자 인데
심판 근처도 안 간자가 무슨 수로 남은자 되신 예수님을 보겠으며
예수님을 유일한 남은자로 못 여기는데
자기들이 실천하는 남은자 운동이 얼마나 엉터리임을
또 미쿡에서 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돈이나 뜯어먹을 요량으로 행하는 것에
안 당하고 있겠습니까

지금 미국이 다시 교회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답니다
복음 때문이 아니라 세계 공통적인 현상인 남성 MZ세대들이 정치에 물들여져서
갑자기 보수 운동을 하겠다 라고 말이지요

마치 그 놈 누구였더라? 말콤 엑스 라는 영화에서 덴젤 워싱턴이 주인공 역 맡은
그 말콤 목사처럼 말이죠
하도 오래 전에 봤는데 다시 봐야 할 듯 이슬람교 세계 속에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는 장면만 기억나는데 깨달음이 아니라 각성이지요 비로소 욕망을 말이지요

MZ 남성 세대가 잃어버린 보수를 옹호하겠다는 방식처럼 말이지요

지금 현재 한국이 제일 무신론자 1위 국이 되었는데
또 어차피 미국 따라 쓸데없는 짓 하겠지만
도로 무속신앙이 K 컬쳐 문화랑 역여져서 전세계 1위로 무속신앙이 가장 활발한데
빨갱이 문재인 잡을 생각 보다 이 놈들이나 잡지 얼마나 할 짓 없으면 ㅋㅋㅋㅋ
멧돼지 하나 못 잡아서 징징 거리더니 말이죠

자 아무튼 남은 자 의미를 이렇게 엉터리로 알아도
또 나는 상관 없다 나는 무신론자이다 라고 여겨도
또 나 만큼은 누가 뭐래도 남은자 의미를 제대로 안다 라고 여겨도

아무튼 남겨둔 한 씨를 남겼다 라는 그 의미가 먼저 떠 버린 이상
거기에 걸맞게 한 세트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남은자가 떳다 라는 이유로

소돔과 고모라 와 같은 짓만 하도록 되어 있는
이 남은자 되신 예수님을 핍박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고로 망해야 함을 알도록 하시는 거지요
그 망하는 자리에서 남은자 되신 자가 누구신가를 보는 것이지
가룟유다처럼 남은자 운동 하라고 오늘 본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앞의 토기장이 비유가 그 당시 시대의 상에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상황에서 등장했듯이

그렇다고 뒤에 나타났고 그 당시 시대의 상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당시가 토기장이 비유를 못 받아들이기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토기장이 비유가 그 당시 시대의 생각들을 받아들일수가 없다는 취지에서
그들의 생각들을 도출해 내었듯이

물론 그 당시로 안 끝나죠 오늘날도 토기장이 비유를 못 받아들이는 시대의 상이 된 겁니다‘네 맞아요 물론 토기장이 비유가 먼저 잇어서 토기장이 비유를 못 받아들일걸 이라고
이 시대의 상을 토기장이 비유를 거부하는 사상으로 돌출 시키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카이 남은자 운동 따위나 가룟유다처럼 해대는 거지요

남은자 되고 싶다고 되어짐이 아님를 뼈저리게 느끼라는 취지인데
지 마음애도 남은자 이다고 설쳐대니
설쳐대면 댈수록 그 남은자와랑 간극이 더더더 벌어진다는 것에
울어야 할 판국인데
예수님과 점점 더 멀어지는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처럼 되는 것에
울어야 할 판국인데
독사의 자식 되었다 라고 좋아라고
나는 독사의 자식 될 줄 아는데 너는 독사의 자식 될 줄 모르지? 라고
온 몸에 똥을 쳐 바르고 자랑질이나 하고 있으니
자기 꾀에 자기가 속도록 하시더라 말이죠


결국은 남은자란 오로지 예수님 단 한분으로써
상하고 통회하는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하는 분입니다
성령 곧 새영 즉 하늘 영광 버리고 낮아지셔서 죄인을 위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원수를 용서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이루신 새 언약을 다 이룬 새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남겨둔 한 씨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자인 남은자는
자기 죄로 우는 자입니다
즉 심판 속에서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심판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자기 죄로 울면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 자입니다
행함의 차원이 아닙니다
믿음의 차원인 주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이지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한 것은 행함이기에 또 빈칸 써 넣기라는 의문의 반복이 아니다 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 곧 행함은
원함으로 추구하는 행함
달음박질 함으로 추구하는 행함이지
믿음은 바로 그런 행함을 초월하는 곧 시공간의 초월하는 예수님의 몸
그것도 찢겨지셨다가 다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그 간극인 빵구멍 나신 몸
절대단절에서 출발한 주님의 몸에서 출발한 믿음이요
이 남은자 되신 예수님의 몸만 돌아오는 겁니다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그러니 집단 구원이요 개인 구원은 없어요 즉 개인 몸의 구원이 없는 거죠
그리스도의 몸만 집단적이기에 그 그리스도의 몸만 돌아오는 겁니다
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라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안그러면 그 개인 구원이라는 그 의문의 반복
빈칸 써 널기 라는 그 미완료인 인간의 숙제를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해야 할 터이니 말이죠
그카이 그들은 완악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화론자들의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얼마나 인자한 모습을 갖추었는지는 몰라도
막상 십자가를 이야기 하면 다들 악마의 모습으로 바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잖아요
겉 모양은 천사예요 광명한 천사
그러나 이 완료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외치면
막 짜증을 내면서 강퍅함을 드러냅니다

그럼 그들이 내세우는 것들은 뭔가?
너 이거 못하지 라고 그 동안 공든 탑으로 쌓아올린 마일리지
곧 경건의 모양들을 나열하기 시작 합니다
아니 그것을 그 동안 감추고서 천사흉내를 낸 거죠
성질 제대로 건드린 것은 완료된 십자가의 사랑
곧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그들은 원인을 갖추는데 자기 의를 쌓았으니
그런 자기 의 쌓기와 무관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들이내밀면
백이면 백 막 짜증을 내도록 되어 있어요


마치 아버지 말씀을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맏아들에게
탕자를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을 들이내밀면 막 짜증을 내듯이
그래놓고 탕자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집어넣어서 자기 죄로 울어 뉘우쳐돌아왔음을
반칙으로 알리바이를 형성해 아버지의 사랑에만 걸맞는 범죄한 탕자 만드시기 함 같이

의사에게는 건강한 자는 핑요없고 오로지 환자만 필요하듯이
아버지에게는 탕자만 필요하고
구원자에게는 의인이 필요없고 죄인만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아 아버지에게는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은 필요 없듯이 말이죠

결국 남은자란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신 그 간극인 그 공백인 빵구멍 난 자입니다
마치 굵은 배 옷을 입었다 라는 것은 빵구멍 난 자이다는 거죠

빵구멍 안 나면 안되는 겁니까 네 남은자가 아닙니다
일부러 모세라도 다윗이라도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 라도
의인이 아닌 죄인을 만들어서
자기 죄로 우는 자 만들어서
그 죄인에게 걸맞는 주 곧 구세주 건지시는자
물에 빠진자를 건지시는 자 라는 기능만으로써
남은자를 만드시는 거죠
결국 남은자는 저들 남은자 운동하는 단독적인 행함잉 ksl라
행함 자체가 단독적인 숙제를 말하거든요
남을 7번 용서를 왜 하겠습니까?
자기 혼자만의 레벨 업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누가 남의 스템프 카드에 도장 찍어줄려고
의를 쌓는 자는 마일이지 쌓는 자는 없잖아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 자체가 자기 카드에 마일리지 쌓기이지
자기 의를 쌓기 위함이지
남의 카드에 의 쌓기가 아니다 라는 역설이 깔린 거죠
남을 7번 용서 자체가 남의 카드에 의 쌓기가 아닌 거죠
그러니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이
그 도적질 말라를 배우는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 당하는
그 간극의 갭을 인간의 숙제로는 좁힐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자는 단독적인 숙제가 아닌
남겨둔 한 씨로 말미암아서 나온 증상물이다는 거죠
이 남겨둔 한 씨와의 관계성이 없이
어떻게 남은 자 운동을 하느냐 말이죠
그런데 인간은 해요
왜? 복수심 때문에 말이죠
하나님 당신은 아무리 나를 저주 해도
나는 당싱이 걸어버린 그 저주의 마법을 반드시 풀고야 말겠다
그 따위 죄의 소원 반드시 문턱을 넘어서고야 말겠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저주를 걸어버린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야 말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말만 멋들어지지 결국은 복수심이 깔린 한풀이 이다는 거죠

그게 성화론이다 말이죠 이건 뭐 한풀이 이예요 이렇게 당신에게 잘 대해 줬는데
날 인정 안해줘? 그럼 가만히 안두겠다 라고
암논과 다말의 관계를 보세요 결국 인간 쪽에서의 사랑은 적개심 곧 복수로 끝납니다

진짜 사랑은 제대로 된 복수심에서 비롯됩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기에
죽음을 제대로 미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도리어 죽는 자기를 사랑하니까
엉뚱하게 살아있는 자를 미워하도록 돠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죽어 있는 자기를 미워 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우리는 청개구리처럼 모든 것을 반대로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칠 방법은 오로지 십자가 라는 전도 도를 전한다는 그런 전도가 아닌
전복 뒤집어 갈아 엎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밭갈이 기경
판을 뒤집는 것 말입니다

최근에 예를 들면 무당 대통령만 무당이 아닙니다
저는 탄핵을 주도한 저 어준이 무리들을 보면 무당이 따로 없어요
같은 놈들끼리 서로 서열 정리를 할 뿐이지
무당과 똑같은 복수심만 퍼트리고 전파하고 있다 말이죠

민주주의가 꼭 그런 식입니다
남을 7번 용서가 어쩌면 많이 용서하면 용서할수록 좋은 것 같지만
그런 다수는 어쩌면 복수심이 아닌지
당신은 나를 미워 해도 나는 반드시 그 미움을 딛고 일어서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야
용서하고야 말겠다 라는 식
주로 이런 여성성이 다른 여성을 이기고자 하는 방식이
남성의 강박증과 반대의 성향으로써 희생으로 용서로 나타나는 복수심이다 라고 하더군요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이창동 감독의 그 유명한 영화 밀양 아닙니까

전도연이 맡은 역할 이신애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주인공 이름이 이신애 믿음과 사랑 아닙니까 그렇게 희생했건만 내 용서 7번 안 받고
왜 내 허락도 없이 하나님의 7에 70번 용서를 받느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신애 믿음도 거짓말 사랑도 거짓말 거짓말이야

네 맞아요 거직말로 안 들리면 그거 가짜입니다
유대인의 믿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는 반드시 거짓말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십자가를 증거한다는 것은 돈 장사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믿음꺼리가 되는 단결성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아요

아니 부자도 근심하고 등돌리고 돌아서 가도록 만드는 십자가 인데
그런 남은자만 돌아오게 하심인데

죄인이 아니고
환자가 안되고
탕자가 되지 않는

맏아들이고
의인이고 
건강한 자가 등돌리고 돌아서 가게 만드는 복음이다? 남은자 의미이다?

그럼 교회 폭삭 쏙았쑤다 폭싹 망하는데?
폭싹 쏙았쑤다 인간의 수고를 인정 해주지도 않는데?
상호인정 상호기대 상호기만이 공동체 유지의 기본인데?
수고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을 7번 용서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화된 교회요 그런 교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주변인들이 인정하는 교회인데

그 정반대인 남은자 자기 죄로 우는 자들만이 참된 교회라니?
그래서 고린도 교호를 십자가로 계속 쪼개고 또 쪼개고 또 쪼갬으로써
남은자만 돌아오는

마치 에스겔 우리가 살펴봤듯이
예루살렘 성을 널다란 돌판에 그림 그려놓고서 그 위에 인자 에스겔의 몸의 털을 다 밀어서 모아 모아서
3분의 1은 성 안에 뿌리고 3분의 1은 성곽 테두리에 뿌리고 3분의 1은 성 밖에 뿌릴때에
뿌릴 때 마다 칼을 날려서 그 터래기 하나 하나 쪼개기 하는 칼을 날림으로써
그렇게 심판을 다 퍼붓는데
그렇게 다 죽이고 있는데 겨우 겨우 남은 그 심판 중에서도 겨우 남은 자가 자기 죄를 알고서 울어버림으로써 겨우 남겨둔 그 심판 속에서의 남겨둔 자로 인해서

쪼개고 쪼개고 쪼개는 가운데서 남겨진 자기 죄로 우는 자를 통해서
남은 자 본인이 남았다 좋아라가 아니라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너 남겨둔 거야
저 분 아니였으면 그 겨우 겨우 남은 그 남은자도 없었어 라는

결국 남은자란 불뱀에게 물려 죽는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다 지옥간다를 보여주는 자가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봐서 죽는다 지옥간다를 보여주는 가운데서
살려둔 남은자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남은자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와 연관이 된 자이지
죄책감이나 죄에 돌이켜서 자기 의를 쌓는 자기숙제랑은 무관하다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대신 죽음으로써 고침을 나음을 입은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로서 남은자 됨을 보여주는
남겨둔 한 씨의 증상물이지
건강한 자 됨
의인이 됨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 됨이라는
단독적인 존재
오로지 자신의 숙제 이룬 빈칸에 정답 써넣는 자 가 아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써의 죄인된 남은자 곧 이 말은 구원자의 증상물이다는 거죠
환자된 남은자 곧 의사의 기능을 말하기 위한 증상물
탕자된 남은자 곧 아버지의 맨발로 일찌감치 나와서 마중해 주시는 사랑의 증상물이지

누가 자기 스스로의 숙제로 죄인 될려고 환자 될려고 탕자 될려고 하는 자가 있냐 말이죠
만약 그것 마저도 하겠다 은혜를 더하고자 일부러 죄 짓는 놈은
실제로 제가 그런 놈에게 당했어요 너는 죄 지을줄 모르지 나는 죄 지울즐 안다 라고
그거 복수심인데 그 복수심 한 풀이를 마치 자랑하듯이 해요
아니 주님의 숙제로 이루어지는 완료를
자기 숙제로 이룰려고 하니 미완료가 되니까 완악하 수건만 덧떼기러 겹겹이 뒤집어 쓰고서 나가 버리더라 말이죠 자기를 인정 안해 준다고 징징거리면서 말이죠
그런 놈들이 목사들 중에 많아요 제발 자기를 믿어달라고 징징 거려요
그런거 바라지 말고 눈치보지 말고 복음만 증거하면 될 것을 왜 징징 거리는지
결국 그들 복수심에 나가 떨여져 질 수밖에 없어요
교회에 가면 그런 한풀이 그런 복수심 밖에 없어요

그러니 그런 인간의 믿음인 복수심이라는 행함이 깔린 남은자 운동은
예수님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룟유다의 목표와 같은 겁니다
바리새인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같은 남은자 운동이다는 거죠

그러니 그런 원함이다 달음박질과 무관한
인간의 믿음인 적개심 복수심과 무관하게

긍휼의 그릇돠 진노의 그릇으로 나누는 그 기준인
장대높이 달린 인자
곧 남겨둔 한 씨로 인해서 두 패로 갈라질때에

그 어떤 누구도 받아들일 마음이 추호도 없겠끔 하시지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기준이 옳았습니다 라고 나오게 되면
또 의문의 반복이다 라고 했지요
그래서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시는 이유는
요나처럼 반발 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요나 또한 예수님의 죽음 마치 아브가함이 이삭이라는 희생제물 됨으로 출발하지 않게 되면
2000년 뒤의 예수님을 못 보는 것처럼
죽음으로 보는 것이 안되면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다는 거죠
그게 인간들에게 멋들어진 구원으로 보이지
누가 이 모욕적인 십자가의 피 용서라는 구원을 바라겠습니까

그래서 요나도 반발 엘리야도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는 반발성
그 반발성을 다 까발린 후에서야
비로소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함을 원하게 되지
안그러면 모세의 완악함으로 사랑도 없이 복수심의 행함으로 다들 그 의문의 반복을 추구할꺼다 말이죠
그래가 과연 죄의 소원을 어지간히 잘도 넘어서겠다 말이죠
죽음도 못 넘어서면서
죽음 아래에서 맴돌면서 말이죠
그래서 아예 마귀의 시선인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듯이
마귀의 시선을 가지고 오듯이
율법 아래에서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아래에서 맴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죄 아래 가두어졌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고
마치 율법의 대표자 모세가 외쳤듯이
모세라는 인물이 없어도 율법이 모세처럼 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고 외첬건만
다들 율법 지키기 라는 자기 숙제 하기 바쁘네 그려?

그카이 율법과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왔어도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 성전에 다니는 자들에게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오로지 율법 지키기 라는 자기 숙제가 까까득 차 있는
자기 의를 쌓기 바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일 뿐이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더라 곧
지식 곧 사랑이 없더라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데
용서 받은 것이 없고
도리어 남을 7번 용서 했다 만이 까까득 차 있으니까
탕자를 사랑한 아버지의 사랑이 들이갈 틈이 없는 맏아들
왜?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으니까
어긴적 없으니 더더욱 들어갈 틈이 없더라 말이죠

오히려 빵구멍 난 탕자
들어갈 틈이 오히려 덕덕하게 넘치도록 되어 있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도록 하시는
이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증상물이 되지
남은자가 되지

남은자 운동을 스스로 하는 맏아들에게서는
남겨둔 한 씨의 주의 눈물이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수치를 가려줄자가 없고
눈물을 씻겨줄 자가 없는 겁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죽는 자기를 미워할 줄 모르니
엉뚱하게 유일하게 산 자 예수님을 미워하는 그 복수심 바로 인간의 행함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인한 자기 의 쌓기가
도리어 여호와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그 기능은 전혀 모르듯이
어긴적 없으면 없을수록 말이지요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아 이 구절 오늘 본문 다음 내용이지요
우와 머리 깨지는 줄 알았어요
이 어려운 것을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특히 이 구절 이 부분 이거 알고 얼마나 기쁜지
그 다음날 되니 금새 까먹었어요 ㅋㅋ
그래서 또 바짝 신경을 써서 보니 또 더 알려주시더라구요
또 그 다음날 또 잊어버렸어요 볼때마다 잊어버리고 잊어버리자 마자 또 새로 알려주시더라구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찢고 싸매고 찢고 싸매고
천국에 갈수  없는 죄인이구나 뭐 어쩔수 없지 뭐 라고 해도
천국이 내려와 쳐들어 오더라 말이죠 천국 가기 싫어도 소용이 없어요
이젠 반대로 지옥에서 빠져나올수 없는 사망의 몸이구나 누가 나를 건져낼꼬
그런데 주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
사망 권세가 무너진 겁니다 행함이 아닌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말이죠
그러니 지옥에 내려 가고 싶어도 못 가요
내려갈 지옥을 그 사망 권세를 주님이 뿌싸 버렸으니까 말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 곧 거룩 찢으셨으나 싸매시는 의 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런 사랑의 언어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새언약의 언어를
선악의 언어로 모세언약의 언어인 행함의 언어 곧 하라 하지 말라의 언어로만 보는 자는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한 가짜 믿음 곧 복수심인 행함의 언어로만 보이는 자는

자기 의 쌓기 라는 자기 숙제 외에는 정답을 써 넣는 방밥 밖에 없기에
이미 벌써 지옥에 간 거죠 죄의 소원에 못 넘어서는 겁니다

죄란 인간에게서 다루어지지 않으니까 말이죠
도리어 죄가 인간을 다루거든요
인간 보다 먼저 있었으니까 말이죠
죄의 소원 넘어서 보라니깐
그 가인의 죄가 예수님의 죽음까지 이어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니가 싼 똥 니가 치우는 그 죄의 소원
누가 치워주지 않는 그 사랑 없음
어떤 갓난아기가 자기가 싼 똥 자기가 치우겠다 라고 엄마 눈치 보면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립니까 7세 고시에 합격하겠다고 나섭니까
그건 부모가 마귀인 자 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인 죄의 소원입니다

아들의 소원이 먼저 있았기에
사랑의 소원 곧 새영 새마음 그리스도의 서원이 먼저 있었기에
사랑인 부모는 그 싼 똥을 치우는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남은자는 똥을 마음껏 싸는 자입니다 막 싸요 막 싸
치워주시는 분 덕분에
눈물을 씻겨주시고 딱아 주시는 덕분에 마음껏 흘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남겨둔 한 씨가 없는 자는
그 남겨둔 한 씨의 증상물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죽음으로 낳은 자녀가 아니기에 열매가 아니기에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태어난 증상물이 아니기에

늘 자기 숙제라는 그 무거운 짐을 자기도 지고 남에게도 지워서
지도 천국 안 갈려고 하고
남도 천국 못 가게 중간에 삥을 뜯어대는 조폭 강도의 소굴로써
개인의 숙제를 강요합니다
그래야 레베르가 올라간다 라고

그 속에서 끄집어 내시는 사망을 멸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인 예수님의 죽음으로 숙제로 이룬 믿음입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사망 보다 강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은자란 바로 이 사랑으로 죽음으로 다 이루신 결과물입니다
남겨둔 한 씨의 결과물
곧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그 원인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생겨버리면 배불러터져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바로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고맙게도 그 원인 그 숙제 없애버리고 예수님의 숙제로 채우고자
우리의 교만한 목을 늘 꺽으시고자 또 물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 안하고는 못배기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그 처음자리에서 또 첫맹세 첫언약인 새언약만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남은자 입니자 자기 죄로 우는 자
내가 내 숙제를 못해서 짓게되는 죄가 아니라
그 반대로 내가 내 숙제를 하고 주님의 숙제를 안보는 그것이 죄임을 알고 우는 자
죄를 정반대로 보는 자
그 자가 자기 죄로 우는 자입니다
불뱀에게 물려서 죽게 되었다고 우는 자는 약달라고 우는 완악한 자
보김 울어서 망한자입니다 도리어 완악한 자로써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고 낫느냐
라고 비꼬는 자입니다

그러나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더보는 자는 자기 죄로 우는 자 맞습니다
내 숙제로 죄의 소원을 이겨보겠다고 하나 질때마다 울때에
이미 다 승리하신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왜 그동안 못봤던고
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던고
왜 이 7에 70번의 용서를 왜 안쳐다봤던고 라고 우는 자입니다
이 눈물을 씻겨줄자를 왜 일찍 못 알아봤던고 라고 말이죠

이 남은자만이 돌아오고 구원받는 자 로써
그저 7에 70번이라는 용서
불쌍히 여겨주심만 바라는
아무리 봐도 심판받아 마땅한 화로다 화로다 이 지옥의 몸 누가 건져내랴 라는
그 원망 절대 원망 세 구덩이 에서 
그 사망의 몸도 너끈히 음부에게 건져내시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은 7에 70번 피 용서 뿐이였음을 비로소 알고
비로소 계몽이 되어서 새로 태어나서

啓蒙 계몽 한자 뜻이
열 계 문을 열다 할 때 문 여는 그 열
열다 계 그 문이 외짝문으로써 바깥으로 깨우져 나오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 우상 비유처럼 말이죠 들뢰즈는 반대로 거시적 메이져 리그 세계가 아닌
소립자 세계인 미시적 마이너 리그의 세계로 그 동굴 속을 더 깊게 파 들어가는 거죠
몽은 어두울 몽 즉 죽음으로 덮쳐진 그 무덩의 세계를 파 재기는 겁니다
깨우쳐 꺼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죽음 그까짓꺼 뭔데 라고 죽음의 바닥을 파 재끼는 거죠
종말의 종말
바닥의 바닥을 다 뜯어보는 겁니다
사망아 누굴 쏘느냐 재앙아 누구를 멸하느냐 라고 말이죠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바닥을 뜯어보니 어라 없네?
죽음은 그야말로 죽어있기에 허구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되다 보니 죽음이 도리어 실상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심심하면 죽여버리겠다 라고 그 허상을 잡고서 협박 공갈을 치는 겁니다
즉 본인이 그렇게 당하니까 남에게 그렇게 표출합니다
도리어 살아있는 생명은 헌신짝처럼 내팽개 치웁니다. 그렇게 사망이 실감이 나고
생명은 전혀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약속의 땅 생명의 땅에 들어가자마자 애굽땅으로 변질시켜버리는 겁니다
그 정도로 사망의 권세가 실감이 나지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생명의 땅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인 생명은 이 허상은 죽음의 내막을 다 뜯어버리시는 겁니다
바닥의 바닥을 다 뜯어내시는 겁니다
이 실상인 사랑만이 그렇게 하지 인간은 그 반대로 죽음이라는 무기로
죽어 있는 자기는 살리고자 산 자 되신 생명은 모조리 다 죽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멧돼지처럼 말이죠 그 무당년이 총 갖고 다니면 뭐하냐 라고 말하듯이 말이죠
정 그러면 총 빼앗아 직접 쏘지?? 안 쏘는 겁니다 빌라도처럼 말이죠
그러나 유대인들은 직접 총 결국은 쏘는 겁니다
생명도 없으면서 성전을 사수하겠다고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짓겠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총 쏴 죽이고자 말이죠

이것이 사망을 멸하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 먼저 떳기에
그 죽음이라는 허상이 왕 노릇함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자들의 모습을 다 까발리는 겁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로 드러나는 것은 이 십자가 덕분 입니다
곧 불같은 하나님의 시기 질투로써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웁니다
그래서 성령이 50일 만에 오시니까 49째 까지도 전혀 안 울던 자가
비로소 웁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비로소 계몽 됩니다 남은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이죠

그러니 남은자는 남겨둔 한 씨가 그 시기와 질투의 사랑으로써
죽음이라는 바닥을 뜯어낸 겁니다

그러니 남은 자는 게몽 아니되고는 못 배기는 거죠
무덤이 없어요
서멍아 없어요
모든 허물을 다 덮어버렸어요
마귀만이 자꾸 들쳐보라고 합니다
아니 흰눈 보다 더 흰 붉은 피로
그 더럽기 짝이 없는 먹보다더 더 검은 죄를 다 덮어버렸는데

마귀만이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헛되게 하고자
흰눈 치우고 카파르 덮어버린 사랑 7에 70번 용서 치우고
새언약 치우고 흰 눈 치우고 니 더러운 방은 니가 알아서 치워야지 라고
십자가를 헛되게 할려고 마귀는 자꾸 들쳐보도록 만듭니다
멋들어진 구원 받아야지
그런 모욕적인 7에 70번 용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받는 용서 받지말라꼬
나중에 캐물으면 우짤려고? 미리 방어막을 치라고
니 구원은 니가 따 놓으라고 합니다
이게 맏아들이지 탕자 곧 남은자 이겠습니까?

이것이 무덤이 있는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남겨둔 한 씨의 죽음 덕분에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음으로써
그 기준(표적)으로 나누어진 흥 함과 패 함입니다

(눅 2:25, 개역)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개역)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개역)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 2:28, 개역)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29, 개역)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개역)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개역)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개역)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5, 개역)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왜? 새언약이 창조보다 먼저 있었고 새언약의 증상물로써 세계는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비방받는 표적으로 오신 겁니다
아무도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이 예수님을 기준으로 못 여기겠끔 말이지요
남겨둔 한 씨를 기준으로 남은자가 탕자가 죄인이 환자가 증상물로 나타나기를 원치 않도록 마귀는 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사망권세를 멸하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만이 남은자를 돌아오겎끔 눈물을 씻겨주시고
수치를 가려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



21-092 인자의 날에 저는 계몽 되었으니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의인이 범죄한 날, 악인이 돌이킨 날) (겔 33,12-16)
2025. 4.20. (3월 28일 녹음)

파수꾼의 나팔 경고 (겔 33, 1- 6)
에스겔 2019 2025. 3. 29. 12:29
21-091 파수꾼의 나팔 경고 (겔 33, 1- 6)

〈에스겔 33,12-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3쪽, 찬송가 274장 새 497 주 예수 넓은 사랑, 찬송가 186장 새 254 내 주의 보혈은〉

새찬송가 497장(통274) 주 예수 넓은 사랑
새찬송가 254장(통186) 내 주의 보혈은
새찬송가 321장(통351) 날 대속하신 예수께

〈찬송가 274장 주 예수 넓은 사랑, 새찬송가 497장〉 

〈찬송가 35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새찬송가 321장〉 


〈에스겔 33,12-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3쪽〉

(겔 33:12, 개역)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겔 33:13, 개역)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겔 33:14, 개역)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겔 33:15, 개역)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겔 33:16, 개역)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겔 33:12, 새번역) 너 사람아, 네 민족의 자손 모두에게 전하여라. 의인이라고 해도 죄를 짓는 날에는 과거의 의가 그를 구원하지 못하고, 악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죄악에서 떠나 돌이키는 날에는 과거의 악이 그를 넘어뜨리지 못한다고 하여라. 그러므로 의인도 범죄하는 날에는 과거에 의로웠다는 것 때문에 살 수는 없다.
(겔 33:13, 새번역)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하였어도, 그가 자신의 의를 믿고 악한 일을 하면, 그가 행한 모든 의로운 행위를 내가 전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가 범한 바로 그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겔 33:14, 새번역) 그러나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어도, 그가 자기의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과 의를 행하여,
(겔 33:15, 새번역) 전당물을 돌려 주고, 탈취한 물건을 보상하여 주며, 생명으로 인도하는 규정들을 따라 살아,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겔 33:16, 새번역)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내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법과 의를 따라서 사는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한 약속을 따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 살면
자동적으로 의인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어릴적 부터이든 나이 들어 늦게라도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
천국 백성이 될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믿고 목사가 시키는대로 말씀을 지키면 된다고 본 거죠

그러나 약속의 땅은 도리어 그들의 과거의 모습인 애굽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졸지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가시와 엉겅퀴가 늘 수시로 찔러대는 척박한 땅
그래서 활과 화살이 없이는 못 사는 땅이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사 7:17, 개역)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사 7:18, 개역)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사 7:19, 개역)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사 7:20, 개역)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사 7:21, 개역)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사 7:22, 개역)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
(사 7:23, 개역)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사 7:24, 개역)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사 7:25, 개역)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사 7:1, 새번역)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시리아 왕 르신이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지만, 도성을 정복할 수 없었다.

(임마누엘 안 구한다 라고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본다 라고 말이죠)

그래놓고 거짓말이네 애굽에서 나왔던 자들이
모세 거짓말 쟁이를 따라 가면 우리는 이 사막에서 다 죽는다
차라리 자손의 제사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무덤이 있는 애굽땅이 좋았지
괜히 따라 나와서 다 죽게 되었구나 라고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는 땅으로 인도하신다 라는 겁니다

결국 약속의 땅은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만이 돌아갈수 가 있지
저런 사고방식의 사람들이 들어가봐야 어차피 약속의 땅도 다 더럽혔듯이
천국도 다 더럽히기 때문에 미리 걸러내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도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천부께서 친히 심지 않는 것은 어차피 다 뽑힌다 라는 거지요

또 이래 말하니까 희죽 희죽 웃는 놈들 집단이 그때나 예수님 때나
오늘날에도 웃는 놈들이 있다 말이죠

바로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 처음 서두에 약속에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의인이 될 줄로 아는 자들 말이죠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이였구요 말이 바리새인이지
유대인의 대표성이기에 유대인 전부입니다
오늘날에는 성화론자들 말이 성화론자들이지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자들이기에
한국 기독교 전부입니다
천주교야 뭐 개신교에서 과거에서부터 사탄교 666 집단이라고 해 왔으니까요
그랬던 놈들이 자기들도 맹 사탄의 회 이기는 마찬가지가 되었지만 말이죠

아무튼 성화론자들이 희죽 웃어요 자기들은 아닐 것이다 라고
과거 우리 선조는 아무것도 몰라서 선지자를 죽였지만
지금의 우리 성화론자들은 과거로 돌아가면 절대로 선지자를 안 죽일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말을 거부하는 예수님을 죽였던 그 바리새인처럼
그들 또한 그 조상이 똑같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안 그럴 것이다
했듯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너희 조상의 몫을 채우더라 라고 하셨듯이 역시나 똑같이
조상이 남겨둔 몫을 채우더라 라는 겁니다

저들 조상이 괜히 후손에게 몫을 남겨뒀겠습니까?
그 어떤 일을 하든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 실천한다 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애굽 또한 그랬거든요
미래에 내려갈 그런 배 부른 소리 할 입장이 못 되는
지금 당장 타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모른다 라는 자체가
남은 자가 아닌 소돔과 고모라 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소돔과 고모라로 다 만들어요
생명이 살수 없는 딱딱한 땅으로 만들어버리더라 말이죠

코로나 때 사람들이 더 이상 이동을 못하게 되니까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 수상도시 수상으로 이동하는 그 똥물이 깨끗하게 변하고
쫓겨났던 돌고래가 돌아오더라 말이죠
돌고래가 남은자 였던 거죠
인간을 뭘 해도 더럽기 짝이 없는 소돔과 고모라 이구요

약속의 땅이든 천국이든 하여튼 인간이 손만 대면 다 더러워요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는 성전을 주시겠다 라고 해도
기여이 사람의 손으로 지어서
자기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삥이나 뜯는
강도의 소굴로 변하더라 말이죠

도리도리 보세요 젊은 아이들 그렇게 죽여놓고도 짤려도 희죽 희죽 웃어요
저런 교만한 목을 꺽어도 자신이 왜 심판받는 줄도 모르니까
거지 나사로 시켜서 물 한 방물 떨어뜨려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짤려도 친구들 모아서 술파티를 열어요 글쎄

지옥에 가서도 술 한 방울 달라고 나사로 부려 먹을려고 하는 정치라는 정신병을 부릴 놈이다 말이죠

또 그것을 반대한다 라고 의인운동 렘넌트 운동하는 그놀들 또한 악인이기는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저런 어둠의 세력을 반대하는 낙태반대운동 소돔과 고모라 반대운동
내란수괴반대운동 펼치면 자동적으로 남은자가 되거나
소돔과 고모라의 동성애반대인 이성애자가 되는 깨끗한 자가 되느냐?
그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은근히 마음에 품다 보니 겉으로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도리도리 반대 운동을 하더라 말이죠
도리도리만 반대하면 뭐해요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인구의 반인데
다 짤라서 나라를 두패로 나누어야지
그건 또 안된데~~~
그 동안 누려 오던거 다 날라갈까봐
정 안되면 돈 벌이 되는 삼섬이나 뭐 이런 등에 꽂아 피 빨아먹을 수 있는 그것은
자기들 쪽으로 편을 만들어야 한다 라고 그런 정치를 해야 한다 라고
이게 재명 당해야 할 재명이의 구호 이거든요
잘살아야 한다 라는 것 잘잘법

그카이 거니가 오대산에서 굿판 벌린거나
어준이가 드디어 살아났다 라고 굿판 밴드 불러가 노래하는 거나

주님 보시기에 기가막힌
어차피 약속의 땅에서 서로 누가 정통 따르는가
누가 크냐 제자들 싸움이나
누가 더 잘낫냐 라는 약속의 땅 안에서 나라가 두 패로 나누어지는 모습에서
이 쪽도 저쪽도 안드는 그렇다고 중도처럼 이기는 놈 편에 선다 라고
딴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그런 중도가 아닌
양쪽에서 핍박받는 매국노 세리처럼
포로된 자 갇힌 자 억눌린 자 그들에게만 희년이 왔듯이

바로 인자의 날 인자의 오심 곧 말씀의 오심은

바로 악한 날을 카페트를 깔고서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는데
어라 반칙 부조리 스캔들로
팔을 어긋맞게

누가 봐도 의인이 바리새인이요
악인이 사마리아 인데
팔의 어긋맞게 하니까

악인이 돌이켜 돌아오는 남은자로써의 탕자였꼬
의인은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고 자기 스스로 말해놓고
물론 사랑의 언어가 아닌 법의 언어로 말이죠 그래놓고
방금 말한 그 말을 뒤집어서 법적으로 안 맞는 아버지의 행동
곧 탕자를 용서하는 그 사랑에 반격을 하고 거부함으로써
범죄를 저지르게 되니까
의인이 범죄하게 되니

인자의 날이 나 보다 옳았다가 되는 겁니다
맏아들은 법 잘 지킨 자기에서 출발하다 보니
아버지의 목숨 바쳐 용서한 그 사랑을
법은 도저히 용서를 못 하는 거죠

그러니 어준이와 같은 소돔과 고모라 세력들은
이 남은자의 비밀을 거부하기는 저 도리도리 세력과 맹 마찬가지인
손 더럽기는 맹 마찬가지 인데
둘다 주의 산에 올라갈려는 마음 추호도 없는 더럽기는 맹 마찬가지 인데
어라 권력은 힘은 저들이 쥔 것은 그 꼴은 못 보겠다 라고 하면서
더러운 정치짓은 맹 하더라 말이죠 깨끗한 정치짓이라는 것은 없어요
십자가의 정치는 오히려 이 두 더러운 자들에게서 버림받은
포로된자 갇힌자 억눌린 자
두 세력으로부터 악인 취급받는
그들에게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로써 주님이 오시면
그때서야 본색이 드러나는 거죠
힘 권력 없는 바리새인 성화론자들은 짐승 국가의 힘을 손을 빌려서
예수를 죽이고서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 라고 나오고
권력을 쥔 보수 독재 이런놈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저런 정치라는 노림수에 속지 않겠다 라고 돌려보내듯이
서로가 죽이고픈데 손에는 피 안 묻히는
마음에 죽이고프면 이미 살인인데
살인인 듯 살인아닌 산인 같은 짓만 골라서 하도록
원망 안하고는 못 배기는
천국도 더럽혔듯이
주의 산이 거룩한 산이요 시온성이요 예루살렘성이요
거룩한 성전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죽여 놓고서도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 반대 운동하는
이런 깊이 까지 보면 도리도리나 어준이다 더럽기닌 맹 마찬가지인

음녀가 계시록에서 레위기를 통해 제상의 딸인데
힘이 없다 보니 국가 라는 짐승에게 짖 밟히다가 도리도리에게 말이죠
힘이 생기니까 돈이 없어서 서러움 당할때는 언제고
떠돌리 유대인 2천년 동안 떠돌아 다녔다 말이죠
그런데 미국이라는 짐승 등 위에 드디어 돈이 생겨 올라타게 되니
이제 이 놈들이 자신들의 처음자리인 고아의 자리를 발로 차 버리니까
팔레스타인을 죽이니까
더 이상 후견자 고엘이 없는 거죠
미국 이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탔응께
후견자가 말라꼬 필요하겠냐 말이죠

자 그러니 약속의 땅의 복을 줘도
복 받자 마자 배부르다 보니
마음이 교만해 져서 쭐꾸덕 미끄러져 자빠져
지혜에 종명에게 다리걸려 넘어져
지하로 내려간 애굽과 함께 열국의 여자들이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되닌
이 말씀대로 이루어 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럴때에 쫒겨난 돌고래가 남은자로서 남은자만 돌아오는 겁니다
스알야숩 남은자만 돌아오리라 말이죠

내 양을 임마누엘로 치라
내 양을 스알야숩으로 먹이라
내 양을 마헬살랄 하스바스로 치라

이 단절의 총명한 성령의 일로 인해서
성령으로 거듭난
상하고 통회하는 상한심령을 받은자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만이
저 단절의 삼일의 간극 삼일의 절대저주의 빵구멍을 거쳐서 돌아오는 겁니다
쫓겨나고 잃어버린 돌고래가 말이죠
이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천국되신 인자의 날을 위하여

나머지 아흔 아홉이라는 인간을
의인이라고 자부하지만 범죄한 이 악한자의 남을
애굽의 날을 구체화 하시면서 여호와의 날을
은혜의 날을 나타내시듯이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시면서 말이죠

인간 끼리 바리새인 사마리아 매국노 세리 둘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둘로 구분 짓는 그 버릇을 인자에게까지 해대다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식으로

흐릿하고 모호한 의문의 미완료 주제에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이 완료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정죄하다가
올모에 딱 걸려드는 거죠

어딜 감히 모호하고 흐릭한 미완료의 남 7번 용서 주제에
넉넉히 다 이긴 7에 70번의 용서를 저주하다가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짓을 
거울이라는 인자에게 해대다 보니
자기 눈을 막 찌르는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그 지혜를 페하는
하나님의 어리석믐에 걸려드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에스겔 구약에 나왔다 라는 것은
먼저 된 신약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메타 ㅋㅋㅋㅋ 넘어서는
이 인자의 나타나심 때문에
먼저 되신 인자 덕분에
우리 또한 그 구약의 공간 그 구약의 시간에 저촉되어 머무르던 사건이
이제 우리가 있는 곳 장소 이제 내 몸이 어디를 가든 구약의 사건
신약의 사건이 수시로 뒤죽박죽 언제든지 때와 장소를 거리지 않고
때를 얻은지 못 얻던지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서

이 오늘 본문의 사건이 우리에게도 늘 수시로 벌어지는 겁니다
이것은 성화론자들 말 마따나 실천해서 나오는게 아니라
행휘로 실천을 해 버리면 독사의 자식들처럼
축복 3분의 1만 말씀으로 취급하고
저주 3분의 2는 말씀으로 취급하지 않고 대신 그 자리를 축복으로 대신 채워넣는
뭐 ~~  긍정적인 사고방식 ~~~~~~ 웃끼는 소리
웃음치료 전도사 레크레이션 이게 성화론하고 똑같잖아요
니체와 들뢰즈의 긍정성 생명성을 집어넣겠다 라고
부정을 집어넣으면 허무해진다 라고

뭐 정확하게 3분의 2 라고 삼분지로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의 취지는 관심 없고 
말씀 실천하는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100분의 1이든
천만 분의 1 이든
말씀 일점 일획 하나라도 말씀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런 사고방식인
부자청년의 사고방식
아버지 말씀을 단 하나도 어긴적 없다 라고 자부하는 맏아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말씀을 거부하는 자 곧 의인이다고 자부하지만 의인이다 라는 의식 자체가
범죄자들만이 하는 사고방식이기에

이 악한 날 악인의 날을 들추어내시는 인자의 날을 나타내심으로써

새 기준 바로 인자를 통해서 나온 새로운 의인인 바로
악인으로써 돌이킨 자가 의인으로 나온다 라는

인간들의 구분짓기 거룩짓가랑 정반대인 비유 비밀로써의 남은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겁니다
스알야숩은 비밀 비유인데

다들 비웃어 놓고서

남은자 되겠다 라고 하니 얼마나 웃끼는 소리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22-057 남거둔 한 씨(스알야숩, 마헬살랄하스바스, 임마느엘)인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롬 9,29-33)
2025. 5. 4. (4월 11일 녹음)

이 남은자는 5월 4일에 좀 더 자세히 다룬 녹음이 올라 갈 것입니다

아무튼 신약이 먼저 있었기에
그 증상물로써 자녀 자식 백성 사랑받는 자가 그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오늘 구약에서

인자의 날이 나타났기에
시므온 선지자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의 기준
그것도 비방받는 표적
즉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 곧
악한 세대이기에 모든 인간은
이 요나의 표적을 거부하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밖에 모르기에
비방받는 표적 곧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오신다 라는 겁니다

다 이루시면 뭐합니까 아무도 원치 않는데
원치 않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다행이게요?
아주 아주 적극적으로 비방하는
자기에게 다가 올까봐 적극적으로 밀쳐내는 그런 표적으로써
내다리 내놔라 라는 인삼이 막 쫓아오듯이
천국은 침노 침략하면서 쳐들어오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 숙제로 이루고자 정착하는 약속의 땅은
그저 의문의 반복인 구분짓기 밖에 안되는
자기 의로움 쌓기 라는 미완료 흐릿함인 완악한 수건 덧떼우면서
수건이 남 7번 용서처럼 무거워서 자기 죄악에 자기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지고
남에게 짐 지우는 지도 못 지키다 아예 안지키고 남도 못 지키게
내만 손해 볼수 없다 라고 남에게 미혼으로 살면 안된다 라고 ㅋㅋㅋ
자유롭게 보이는 꼴을 자기만 손해 볼수 없다 라고 배아파 하는 ㅋㅋㅋ
그 무거운 짐을 짐 지울때에

자기가 친 그물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율법을 글쎄 가난한 자 등쳐먹고자 쳐 놓은 그물로 사용하더라 이 놈들이 말이죠
북이스라엘의 제사 제사단이 사냥잡이 용이였다 라는 거죠
오늘날 먹사 들이 교회를 사냥감 잡는 올무용으로 그물치듯이 말이죠

왜 올무를 칠려고 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내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지 안지키는지를
인정해 주는 그 복장하고 불가능하기 짝이 없는 그 결과를
굳이 그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 필요 없이
그냥 힘으로 못 지키는 놈 데리고 와서
너 보다는 낫다 라는 식으로 그거 하나 꼬투리 잡아서
거봐 나 지켰잖아 라고 못 지키는 놈 가지고 와서 합리화 해 버리는
그 쉽게 간단한 함에
지키면 됐지 뭐 완벽하게 지키는 그 결백증 그거 언제든지 보란 듯이 웃습게 속일수 있다 라고 보는 그 죄악이 우리 속에 미리 자리 잡고 있었다 라는 겁니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싶어 하나
내 겉사람은 안된다 라고 했잖아요

(롬 2:14, 개역)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 7:15, 개역)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 7:16,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개역)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장 끝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빵구멍 내시고 그 공백 그 간극을 도저히 좁힐 방법이 없도록 만드셨다는 겁니다

내가 죄를 다스리는 내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가 나 보다 먼저 앞서 있었던 겁니다
이 죄의 위력을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겁니다
다른 것으로는 알 턱이 없습니다

마귀의 깊이를 말이죠
우리 보다 먼저 있었던 마귀를 무슨 수로 압니까
자기가 먼저 있었다 라고 인간은 착각하면서 죄를 다슬수 있다 라고 여집니다
마귀의 소원 죄의 소원 못 이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 보다 먼저 있었던 죄가 먼저 된 줄도 모르면서 까부는 것을
율법이 이 죄의 위력을 알게 하시고자 죄의 위력 아래에 갇히도록
포로되도록 하셨지만

그렇게 찢으셨으면서도 다시 싸매어 주시는
주님의 의의 위력 또한 대단함을 보여주시고자
오늘 본문 보세요

평생을 악으로 살아도 단 하루만에 의롭게 만드시는
이 화목제라는 은혜의 왕 노릇을 보여주신다 라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모조리 죄 아래에 가두시고자 율법을 주니까 어라 또 지키네요

인간이 결국 법을 지키는 이유는 법이 의외로 허점이 많은 것임을 인간을 몰라도
이 사랑 없는 법의 세계 곧 할짓 없는 자들이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 다툼 혈과 육의 전쟁이 곧 돈이거든요
우상이 돈이 되요
그러다 보니 법을 공부한 놈들이 법에 허점이 억수로 많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마치 종교 종사자들이 신의 세계가 말로는 완벽하다 라고 하지만
정작 그 속 환경을 가보니 허점이 많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에게는 엄격하게 2000원 떼 먹은 운전수 2-30년 경력자를 바로 짤라버리지만
수천억 떼 먹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은 공직을 유지할수 있게 해 주는 거죠
왜? 친하니까 ㅋㅋㅋㅋㅋ

양탈무리 거기 사모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을 가지고
완벽한 일점일획 더하거나 뺌이 없다 라는 것을 남에게 적용하기는 참 쉽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로 적용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주 유순하기 짝이 없는 엄마가 자기 자식 내어주는 것은
거리상으로 시공간 상으로 가장 가깝기 때문에
다 큰 놈 같으면 먹잇감이 되겠습니까
쉽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기라야 잡아먹기 쉬운 겁니다
그것도 약속의 땅에서 말이죠

그러니 이 약속의 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엽기적입니까

이 매일 매일의 처참하기 짝이 없는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음이 없으면 단 하루만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러니 가룟유다늬 하나님 나라 운동
렘넌트 남은자 운동
뭐 소돔과 고모라 반대 운동 동성애 반대 운동
낙태 운동 그 딴거 하지 마세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나 하는 짓꺼리 이다는 겁니다

혹시나 실수로 하루 딱 하루는 멋도 몰라서 참석했다 칩시다
하루 만에 안 뒤집어 지면
아 네네네 좋다 칩시다 삼 세파 ㅋㅋㅋ
삼일 만데 안 뒤집어 지면
그거 간극 못 좁힌다 라는 증거이니
손 떼세요

단 하루 만에 세워지지 않는 다면 데모하지 마세요
그거 악 마 짓입니다

보세요 오늘 본문 단 하루 만에 한 번 만에 뒤 집어 진자가 있습니다

죄의 위력이 얼마나 센지도 나왔지만

의의 위력이 얼마나 센지도 나옵니다
또 이래 말하니까 성화론자들이 기고만장하여서
드디어 자기의 꾀 속심수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거 봐라 의의 위력에 세니까 의를 행하는게 맞잖아 라고 또
자기의 있음을 강조하는 자기숙제라는 자기 의 줄방을 강조해요
자아는 우상입니다

자아 보다 먼저 있었던 죄와 의를 말함에 있어서
은혜의 왕 노릇을 말하고 있는데
왕 노릇도 못하면서
그 권력은 탐이나고 부럽고 흉내는 내고 싶다 보니

그 빈자리 그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쉽고 쉬운 자리
그 빈자리를 보자마자 침이 줄줄줄 흘러내리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아들의 소원 때문에
은혜의 왕 노릇 때문에
비워둔 그 빈자리를 앉고 싶어서 난리인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김대중이처럼 용서해 주면 될 것 아니냐 라고 도리도리 쪽 놈들이 말한다 말이죠
그래야 백성들을 마음껏 등 쳐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마귀 백성들이니까 그래도 상관이 없지만
더 큰 문제는 김대중의 포용정책이 과연 용서 맞을까요?
그것도 부끄럽도 없이 그것을 왜 안하느냐 라고 비꼬는 딴 나라 당 놈들이나

이럴수록 저들이 간계에 넘어가면 안된다 라고
더더욱 완벽하게 법을 준수 하자 라고 말하는 이 악마 집단 민주당놈들의
완뱍주의가 과연 이 놈들 역시 법의 허점을 마치 이용 안하는 것 같으냐 말이죠

오히려 딴나라당놈들 저렇게 부끄럽도 모르고 용서 왜 김대중이처럼 안해즈냐 라고 말하는 놈들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는 모습 또한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의의 위력을 개무시하고
하루 만에 용서해서 의가 왕노릇하는 의인됨을 무시하고

한 쪽 강도가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비로소

의의 위력 곧 화목제
예수님의 죽음이 그 평생 강도한 자를 의롭게 만드심을
오늘날 성화론자들만큼 거부하는 집단들을 본적이 없을 정도로 악마들인데
그들이 글세 교회의 지도자를 맡고 있으니
그러면 그럴수록 이 한 쪽의 구원받은 강도의 입장에서 복음을 증거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의 자리에서 성화론이나 외치고 있으니 다른 복음이나 외치고 있으니
기가 먹히죠 그러니 강도의 소굴이요
자기들이 동성애 반대 운동한다고 심심하면 거리로 나서면허 데모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가 소돔과 고모라의 가버나움 짓을 하더라 말이죠

(겔 33:14, 개역)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겔 33:15, 개역)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이 보세요 매국노 세리 삭개오가 자신의 전재산 반을 가난한 자에게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즉 자국민이겎지요 약탈물로 보입니다
그래서 도로 돌려주는데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 라고 합니다

(눅 19:8, 개역)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그러나 정작 의인이라고 우기는 바리새인은 십일조나 그런 돈 헌금 등으로
과부의 등을 쳐 먹는 강도의 소굴 짓을 해 왔다 라는 겁니다
그 가난한 자에게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비롤 적국인 로마 법에 의한 정당한 댓가로 받은 원급이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누가 더 더러운 짓을 했던 겁니까?

바로 이런 삭개오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은 정작 의의 위력을 새삼 보여주십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또한 그렇구요
기생 라합이 전재산을 이 나팔의 경고에 자신이 하나님의 적인줄 알고
그 마지막 나팔 소리에 전부를 걸었듯이 말이죠

그러나 바리새인 오늘날 성화론자들
강도의 소굴에 다니는 자들
다들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의인이 되는 줄고
뭐 인문학자들 말 흉내내면서
공간이 생각을 지배한다 라고 흉기 기운이 가득한 청와대 버리고
남의 돈 펑펑 써가면서 옮겨도 맹 흉가의 기운대로 탄핵 되기는 맹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이게 주변을 밝게 빛나게 해야 마음이 밝다 주변이 어두우면 마음도 어둡다 라는
교회 안에서 처세술로 외쳐대는 설교가 저 거니 무당 주장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지금 시공간을 박살낼려고 등장한 인자의 날인데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놈들이 자기 구원이나 챙길려는 그런 긍정적인 소리만 귀에 들려와야 한다고 부정적이고 삐딱한 소리를 멀리해야 한다 라고
그카이 인자의 말에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비록 넘어졌어도 매국노 세라 보세요 그것도 삭개오가 세리들의 대장 세리장 아닙니까
그런 세리의 대표가 그런 모범을 보여주니까
매국노 세리는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이 의의 위력인 은혜의 완노릇을
사망의 왕 노륵 지배 아래에 갇힌 자신이 그 포로됨의 경험을 격고 있기에 외치는 겁니다
뭐 저 따위 가룟유다의 하나님 나라 운동
이스라엘 독립운동 안중근 니 벤또 니 까묵으라 라고 백날 도시락 폭탄 수천억개 던진다고 해서 이루아질 이스라엘 해방 갇으면 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내란 도리도리 같은 놈 땜에 말이죠 그 의문의 반복 짓을 왜 하냐 말이죠
그래서 아예 기대를 걸지 않고
매국노 세리는 예수님이 진정한 기준 되신 인자로써
이 인자 곧 아들의 소원만이
죄의 위력을 단번에 없애실 의의 위력으로 율법을 완성할 자 이시다 라고
불싸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겁니다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비로소 아들의 소원의 위력을 보는 자로써 간구하는 겁니다

그러니 기존의 유대교는 이 예수님이라는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을 거치지 않고서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다윗이 간구한 다윗의 지손 필요 없다 라고 했기에

이들을 거치지 않은 자는 아버지께로 갈수 없다 라는
이 아들의 소원의 위력을

죄의 소원 보다 앞서서 먼저 있지도 않았던 인간 주제에
더더욱 아들의 소원의 위력을 믿을 턱이 있나 말이죠

이름 이름 이라고 말한 하지만 결국 인간들은 예수 또는 메시아 임마누엘 부르면서도
결국 자기 이름을 불렀던 자기 숙제만을 추구한 겁니다
그럼 내가 불렀던 이름을 뭡니까?
그게 바로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주문이다 말이죠 수리수리 마수리

창조주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스라엘이 창조주가 누군지 모를턱이 있나?
몰라요

그 당사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이 놈들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름을 불렀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살아계신 분이 아니라

죽은 조상의 이름을 따와서 자기 잘살게 해 달라는
그런 죽은 자 부르듯이 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살아있음을 안 믿으니까 미쳤다고 한 몸이 되고픈 마음이 있겠냐 말이죠
그카이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저 악인 밧세바를 취하고 그것을 감추고자 우리야 장군 고의적으로
미필적 고의로 살인하고 또 그의 아들을 살려낼줄을 모르는
정직한 영이 있다면 살려내어야지
그래서 남의 눈 의식해서 꼴에 왕이라고
꼴에 목사라고 기도하는 척하지만
내 눈물 내 금식 내 기도 내 회개로는 택도 없더라

즉 이 말은 죄인 중의 괴수였음이 드러났다 라는 겁니다

고때만? 아니지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에
내 범죄가 항상 주의 목전 눈목 항상 주의 눈 앞에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이 죄의 위력에 사로잡힌 자로써 자신의 죄가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원이 되엇다고
사도바울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못하는 것을 주님이 하셨는데
의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인간이 넘을수 없는 그 죄의 소원마저도 너끈히 넘어서서
죄의 위력을 거쳐서 의의 위력인
은혜가 왕노릇함을 보여주시고자

결국은 인간이란 죄의 위력이 뭔가를 보여주고 위한 도구로써 동원이 되고
의의 위력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써 동원이 된다는 겁니다
진노의 그릇 긍흉의 그륵 말이죠

아무리 평생 의인 답게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고 자신만만해도
죄의 위력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하루 아침에 범죄로 인해 지옥에 가도록 하시고
노무현 같은 놈들 말이죠 평생을 의롭게 했다 칩시다
마귀들의 꾀임에 빠져서 넘어지는 겁니다

또 평생을 탕자처럼 살아왔다 하더라고 의의 위력이 뭔가를 말하기 위해서
즉 둘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인자의 날을 말하기 위한
즉 토기장이 이지요
그레서 제가 깜짝 깜짝 이 표현도 부족해요 깜딱  딱 이라고 해야 실감이 날까?
심장이 약한데 더 약하게 막 송곳 찌르듯이 콕콕콕 수셔대듯이 느닷없이 쳐들어오는 침략 침술처럼 경끼 나는
그 정도로 지금 호세아도 그렇고 새로하는 고린도서도 그렇구
에스겔도 그렇고 마치 로마서에 맞장구 치듯이 딱딱 들어맞아서
아구가 맞아서 너무 너무 좋다 싶다가도 너무 잘 맞으니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 실상 앞에 나는 그림자로 녹아져야 한다 라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그 파도에 냅따 골프공처럼 토사구 팽 ~~~~~~~~~~~~ 당하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니 보다 먼저 이 말씀들이 있었다는 것에 닭살이 돗습니다
너무 너무 아구가 딱딱 맞아떨어지니까
누가 우렁각시처럼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지는 그 기분이
왠지 싸 ~~~~~~~~~~~~ 한 느낌이랄까

그 정도로 낯설기 짝이 없는 사랑이다는 거죠
그 정도로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였으면 이런 사랑 안 퍼부어주면
하루도 못 버틸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니 말이죠

ㅋㅋㅋㅋ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 고장이 나서 화면이 깨진게 아니라
뒷판이 쩍 하거 떨여져 버린 바람에 언제 터질지 모르니
고장나지 않은 것 아무거나 녹음용 비상용으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스마트 폰이 아니라 이건 저번에 물에 떨어뜨렸는데
소리는 이상하게 나는데 다행이 녹음은 이상이 없어서 괜찮은데
이번의 것은 스마트 폰이 아니라 탭
아 태블릿이라고 하지요 이게 뒷판이 쩍 떨어지는 바람에 비상용 녹음기로
녹음만 잘 되면 되니까 후원해 주시면 됩니다

즉 주님만이 선과 악을 아시는데 있어서 그 선이 뭔지를 보여주시고자
의의 위력 선의 위력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심처럼
이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수치를 단번의 제사로 가려주심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그릇으로

또 악의 위력 아무리 평생을 의인처럼 살아도 단 하나의 범죄로 지옥가야만 하는
그 악의 위력을 보여주사고자 사용하는 진노의 그릇으로써 사용하시는

이 인자가 누구신가를 보여주시고자
때와 장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들음은 공간이라는 소리 공명이거든요
사랑하는 몸만 들어요 한 몸이 아닌데 들을 이유가 없지요
다른 공간 곧 지옥의 몸이다는 거죠

그 인자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날로써
인자의 날이 나타났기에
그 증상물로 악인의 날과 의인의 날로 두 언약이 한 세트로 드러나는 날이 되는 겁니다

이 인자의 날이 보라 그 날이 되면

시온에서 나온 성전에 의해서
시온 하나님의 중심인
세상의 중심 곧 심판 기준에 의해서
그 성소 걸아더니는 성전이

넘어뜨리기도 하시고 부딧히게도 하시고 그래놓고 다시 싸매어주시기도 하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써 이 돌에 의해서 머리 위에 하나도 남기지 않는 가루가 되게 하시는

그 기준되시는 인자의 날을 여호와의 날을 말씀하시고자
모조리 애굽의 날을 끌아와서 악인으로 모조리 만들어 놓고서
불뱀에게 다 물려 다 죽게 만드시고서

그 죽음에 뛰어드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봄으로 낫게 하시는
두 강도의 죽음에 뛰어드시는 그 인자의 날로 인해 두패로 갈라지지

인간들 자신들의 죄와 의로써 갈라지지 않음을

이 인자의 날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

이 은혜의 날을 말하기 위해서
포로로 잡혀야 하고
갇혀야 하고
억눌려야 하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자
소경은 날 때부터 소경 되었어야만 했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부모 죄냐 자기 죄냐를 따지는 바리새인과 같은 신학자들의
인간의 생각들은 방종이나 따지는 판국에

죄의 위력도 모르고
의의 위력도 모른채로

이 남겨둔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씨가 아니였다면
우리가 벌써 소돔과 고모라 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자기 숙제로 소돔과 고모라가 되느냐 마느냐 라는
그 소돔과 고모라 라는 의문의 짓을 하도록 되어 있는
죄의 위력을 보여주는 그릇으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거 알았다고 해서 자기 숙제로
긍휼의 그릇 될 방법이 없기에
이 토기장이 비유 비밀이야 말고
다들 비웃는

뭐 장대 높이 쳐다 보기만 하면 낫는다고 에라이

자 봤다 우짤래 고쳐 줄끼가 라고
여전히 은혜의 왕노릇 보다
죄의 위력이 더 세잖아 라고 자기 숙제로 스스로 죄의 위력을 보여주도록 되어 있기에
거봐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사도바울을 매몰차게 취급해 버리는 겁니다

어딜 감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로 생각하는 것을
이 성경 말씀 속에 그 오예물로써 썩을려고 하느냐 말이죠
그래서 용광로 속에 십자가의 죽음 속에 오예물을 집어넣어서
그 혼합물 찌끼를 분리 시킵니다

아마 지금 현재 기원후 기원이 예수님 기준이다는 뜻 아닙니다
기원후 2000년 때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인공 지능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완벽한교리를 완성했다 라고 자부해서
이 용광로 십자가의 죽음에 집어넣어 보아도

나오는 것 단 하나도 없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빈캄을 채워넣어서 결핍을 채운 신학으로는 인간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신학은
마귀신학일 뿐
광명한 천사 노릇의 속임수 일 뿐이고

이미 벌써 완료된 채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씨로 그 남겨둔 한 씨로 말미암아 로만
아버지께로 갈수 있는

유일한 혼합물 찌기가 썩여지지 않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예수님입니다

되도 없는 혼합물 찌기 걸러냈다고 우기는 그런 목사들에게 속지 마시고
그냥 바로 주님에게 가서

왜 너도 저 아홉 명의 유대인 문둥병자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와
왜 여기 왔노

아니 저들 예루살렘 성전 그림자가 나를 고쳐줫습니까?
진짜 참 실상 되신 걸어다니는 거룩한 성전은 예수님 당신만이
나의 죄를 사하고자 단번에 용서하시고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셨습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은 당신 뿐입니다
저들의 신학이나 교리 종교 공간의 장치물들 다 그림자일 뿐입니다

당신만이 실상이오니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 하고서 ~~~~~~

오냐 오늘밤 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