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6 헛되지 않은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 (고전 1;17-18).mp3
7.47MB

25-006 헛되지 않은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 (고전 1;17-18)
2025. 8. 10.

세례 준적도 십자가 진적도 없는 무의미한 바울과 헛되지 않은 복음 (고전 1;13-17)
고린도 전서 2025 2025. 7. 19. 12:32
25-005 세례 준적도 십자가 진적도 없는 무의미한 바울(세례요한)과 헛되지 않은 복음 (고전 1;13-17)

〈고린도전서 1;17-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찬송가 27장 새 27 빛나고 높은 보좌와, 찬송가 498장 새 441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새찬송가 27장〉 

찬송가 0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새찬송가 027장.mp3
3.66MB
찬송가 0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새찬송가 027장.mp3
7.95MB

1.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예수 얼굴 영광이 해같이 빛나네, 해 같이 빛나네

2.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없는 자비를
   뭇천사 소리 모아서 찬송드리네, 늘 찬송드리네

3. 영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버리고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4. 나이제 생명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큰 기쁨 넘치네

5. 주님의 보좌있는데 천한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때 내 기쁨 넘치리, 내 기쁨 넘치리. 아-멘


〈찬송가 498장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새찬송가 441장〉 

찬송가 498장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새찬송가 441장.mp3
3.24MB
찬송가 498장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mp3
3.80MB

1.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 속에 지금 오셨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2.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만 붙드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3.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
   나의 모든 소원 던져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4.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제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5. 나의 소망되는 구주 예수님,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겠네
   나의 등불 밝혀 손에 들고서, 기쁨으로 주를 기다리겠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고린도전서 1;17-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63쪽〉 

(고전 1:17, 개역)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7, 현대어)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비록 내 설교가 빈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려운 말이나 현학적인 사상 따위를 섞어 설교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러한 말재간으로 헛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18, 현대어)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방해적인 요소를 대조해서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를 증거합니다

결국 십자가의 도가 귀하다면 그 상대적인 헛짓꺼리들과 대조를 해서 알려줍니다

귀한 것과 헛된 것, 생명이 있는 살려야 할 것과 멸망 당할 것 의 대조 이지요

그러나 거꾸로 십자가 복음이 귀하지 않은 헛된 것으로만 취급받는 상황 구조임을 드러내시면서
저절로 자기들의 속임수 그 헛된 그림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도록 만들어버리십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둘의 차이의 좁힐수 없는 간극을 저들의 손에서 벌리시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카이 저들이 욕한 이 십자가를 믿겠습니까 자기가 욕한 그 십자가를 믿으면 그 욕소리 속에 들어가는 셈이니 그 어리석고 미련한 짓 임마누엘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억수로 똑똑한 척 하지만 그것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도록 지 눈 지가 찌르는 식이 되는 거지요

일단 십자가의 도 만이 귀한 것이다 라는 기준이 서버리게 되니까
자동적으로 귀한 것의 반대인 헛된 것들을 제시하면서 그 차이의 간극을 벌립니다

마치 실상은 귀한 가치가 있지만 상대적인 그림자는 아무리 가치를 높야준다고 해서
그림자에게는 백날 헛짓꺼리 밖에 안되는 것이겠죠

그래서 그 헛짓꺼리들이 뭔지를 언급합니다

바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파로 나누기 짓입니다 즉 정치짓 인 거지요
정치란 자기 쪽에서 간택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나은가 싶어서 선택 간택하는 거지요 마치 선택권이 있는냥 말이죠 십자가의 정치는 그 반대입니다
간택 권이 없어서 십자가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겁니다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자아가 삭제 당한 자 만이 하는 겁니다자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세례 안 주는 것도 의미 없고요 계파 안 나누고 초교파 하자 라는 것도 의미 없습니다 그림자 주제에 이래 해 본들 저래 해 본들 해 아래 새것이 없는 짓들만 골라서 할 뿐입니다

그런 것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하고자 라는 취지로 동원이 된 몽학선생 곧 화살표 인데방향성 제시 인데 졸지에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겁니다

누가 여행길 떠나는 길에서 화살표를 보고 저 쪽으로 가시오라는 팻말을 보고
실제를 만났다 라고 우상숭배하고 진리라고 외칩니까? 화살표 대로 화살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안 가는 자들이 꼭 그런 헛짓들을 하 잖아요
그 양탈무리 사모처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안 지킨다고
여고괴담처럼 뻘건 글씨로 점점 크게 막적고서 울분을 토하더라 말이죠 귀신들린 증거죠

화살표눈 무대 뒤로 빠지는게 아니라 엑스트라가 주인공처럼 계속 안 죽고 계속 남아버리면
감독은 어쩔수 없이 컷 컷 컷 저 놈 짤라라 라고 합니다
왜 그림자가 자꾸 주인공인냥 실체 노릇을 할까요

교회 또한 누락 되어야 할 것인데 왜 자꾸 주인공 예수님의 자리에 앉을려고 할까요
마치 유대인들이 모세의 자리를 앉고자 완악한 수건을 안 벗듯이 말이죠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그 만큼 헛된 그림자를 귀하게 보고 있고

또 반대로 우리가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이 정작 귀한 것인지를 모르니까 말이죠
임마누엘 안 구할란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안 쳐다볼란다
유월절 어린양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안 볼란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 카이 세례요한을 죽이는 자들과 한 패거리가 되는 겁니다
로마와 손 잡고 예수님을 역시나 똑같이 죽이는 이 죽음 이 살인의지
이 제대로 죽는 절대죽음 조차도 아닌 주제에 죽음인냥 까불어 대는 겁니다

아름다운 것을 다들 고개를 돌리면서 싫어하고
정작 싫어해야 할 것을 아름답다 라고 온 몸에 쳐 바르고
하나님께 보이러 오니
왜 똥을 쳐 바르고 오느냐 내 마당 더럽히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침 궁금한게 있어서 또 물어봤지요 복사해서 캡쳐를 한글문서에 해서 다시 블로그에 올리면 좀 글 문장 줄들과 간극들 등등이 깨어지는 것 같아서 에라이 그냥 바로 올려놓고 나중에 다시 캡쳐 해야 겠다 싶어서 미리 올려놓고 그거 복사하면 괜찮으니까 말이죠 눈이 덜 불편할 겁니다

사도바울의 트릭(속임수)을 올렸다 말이죠https://crosslamb.tistory.com/391534댓글에 이것이 곧 십자가의 트릭 속임수 라고 했습니다 안 그러면 인간의 믿음이라는 그것도 순수 믿음이라고 우기는 속임수를 까발려지지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가지만 주님은 안 속거든요
심지어 그거 생명을 죽이는 짓임을 증명까지 해 버리니까 화가나서 예수님을 죽여버립니다

아니 바울 본인이 손할례를 그렇게 공격해 놓고서는이제 와서 디모데를 할례 시킨다 말이죠그런데 이것이 그 상황 속에서의 사건으로써 나타나는 이유는
정작 복음은 우물에 빠진 살리기 위한 생명 구하기 이지
죽이는 것이 아니다 말이죠
오히려 율법주의자들이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더라 말이죠
그 환경 속에서 디모데를 살리는 길은 율법 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이거 역설적이지요 본인이 말한 것을 뒤짚어 엎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복음을 위한 것이지
개인 생명 구하기의 목적이 아니다는 겁니다
복음이라는 생명을 구하고자 앞으로도 복음을 증거할 디모데를 살리고자 율법 속에 집어 넣는 겁니다
때가차면 언제든지 죽이시기로 작정이 된 사도들의 운명처럼 그때가서 복음에 맞게 복음이 알아서 죽이시니까 말이지요 그 전까지는 복음을 위해 살리시는 겁니다

또 이런 내용을 너튜뷰에서 언뜻 스쳐지나가면서 제목만 봣는데다시 검색해서 찾을려고 하니 바로 못 찾겟더군요 
(직접찾아서 댓글 달아주세요
하도 의미 없는 댓글이 많아서리 싹 다 정리했더니만 또 바로 달아버리네요
그런 의미 없는 것 말고 복음을 위해서 말이죠)
그냥 썸네일과 제목만 보니까사도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것이 정당하냐 라는 그런 의미의 제목이더라 말이죠
즉 이중국적자 이다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 안 믿을때에 땃던가 아니면 자동적으로 태생적으로 취득한 국적이던가
마치 미국에서 출생하면 미국 시민권 주듯이 지금은 트럼프가 다 밟아버렸지만 말이죠

그럼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적어도 로마 시민권은 버려야 할 것 아니냐 라는 주제로 내용을 언급했지 싶은데 말이죠 추측입니다 제발 이 추즉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말이죠

아 그러고 보니 전혀 의심해 본적 없는 생각이였다 말이죠 그저 당연한 줄 알았고오히려 그 로마시민권이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방해꾼들의 방해를 피할수 있는데 사용이 되었길래 그것으로 당연히 여겼는데 이것이 윤리적이거나 아니면 신앙적태도에 시비를 걸 수 있는 문제가 되는 줄도 미쳐 몰랐다 말이죠(심지어 어떤 목사는 자기 블로그에 자기가 좌파요 진보주의자 라고 밝히면서 여러 글 중에 나발과 아비가일 사건을 다루면서 과연 아비가일이 정결하고 지혜로운 여자 맞기는 하냐 라고 의문의 글을 남기더라구요 나발이 돈에 미쳐 있음을 지적하고 죽자 마자 다윗에게 시집 가버리는 그 모습이 과연 정당하냐 라고 따지더라 말이죠 이거 나발사건을 오래전에 살펴보다가 발견했던 블로그인데 함 찾아보기소 주소 댓글 달아주삼 ㅋㅋㅋㅋ)

마치 기생 라합의 거짓말은 참말이냐 거짓말이냐처럼
화이트 거짓말 이냐 검은 블랙 거짓말이냐처럼
의도에 따라 결과에 따라 상황윤리처럼 결과가 달라질수 있는 거짓이 아니었었네 가 된다 라고 말이죠

참 아직도 블랙요원들 돌아다니고 있나요? 빤스 바람으로 저항하는 도리도리 보니까 아직도 멀어 보이던데 ㅋㅋㅋ

참말이더라도 생명 구하지 못하는 참말이면 그게 거짓인 거지요
젊은애들 그렇게 죽여놓고도 지 잘났데 글쎄 ~~~~

오늘날 목사를 보면 딱 이 놈 모습하고 똑같아요
지도 죽고 남도 죽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중간에 가로막아서
돈이나 삥 뜯는 거리의 깡패들 야야야야 야야야야 너 이리와바 너 돈 있냐?

성경말씀 그대로 맞아요 약대 낙타 부자는 삼키고 하루살이 거지는 쫓아내더라 말이죠
목적이 돈 인데 돈 없는 하루살이들은 퍼뜩 걸러내어야지요

고린도교회가 부자교회인데 과연 하루살이를 걸러내지 않고 배길까요?
오히려 사도바울도 가만히 안 둘려고 할 텐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사도바울이 고린도 부자 교회에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 내어놓은 겁니다 그 정도로 귀한 것에 목숨 걸었으니 신나서 죽이든지 말든지 하는 식인 거지요

그러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런 바울에게 야단 맞듯이 이런 잔소리를 듣는 이유는
그 만큼 환경 적으로 귀한 복음은 내 팽개치고
헛된 그림자는 주변에 유혹꺼리로 천지삐까리로 깔려 있다는 겁니다

그카이 그 유혹 이기든 지든 의미없고 이미 다 이룬 복음만큼은 아무리 너희가 천히게 여겨도 귀하디 귀할 수밖에 없고 귀한 사건에 너거들 이미 휘말릴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왜? 이미 다 이루었응께 아브라함이 그래서 이삭의 화목제물에 됨 사건에 휘말리는 겁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호세아서가 생각 나지요

모든 재산 모든 소유물 심지어 아브라함 너도 이 이삭의 죽음에서 나왔다고 바로 예수님의 죽음인 거지요
그것을 오늘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디서 나왔는지 그 출처 그 태생
그 처음자리 그 출생의 비밀을 말이죠

아참 서두로 히틀러 ; 악의 탄생 이라는 드라마 평을 적은 것을 보고 오늘 본문이랑 딱 맞다 싶어서 생각했는데 그 단새 까먹고 바울의 트릭을 먼저 언급했네요
아무튼 그 내용을 다시 올려보면 이렇습니다https://crosslamb.tistory.com/844


히틀러 : 악의 탄생 (Hitler : The rise of evil. 2003)
영화 감상 2010. 5. 4. 12:19
히틀러 : 악의 탄생 (Hitler : The rise of evil. 2003)

히틀러 (2003)
Hitler: The Rise of Evil

방영정보 미국CBS | 2003-05-18 ~ 2003-05-20
요약정보 캐나다, 미국 | 총 4부작
제작 크리스찬 두가이(연출) | 존 필마이어(극본)
홈페이지 http://www.cbs.com/specials/rise_of_evil/
출연 로버트 칼라일 (아돌프 히틀러 역), 스토커드 채닝 (클라라 히틀러 역), 줄리아나 마굴리스 (헬레네 역),

초반에 나온 자막 문구가 이 영화의 전체를 말해 준다.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에드먼드 버크(1729-97)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선이 자신의 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악을 활성화 시킨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정의 다.

인간의 정의 보다 가장 악마적인 것이 없다.
인간의 긍정 보다 가장 더러운 더러움이 없다.

왜냐하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구조는 무시하고 자신만이 정의롭고 긍정적이면 된다는 식이니 이것보다 더 악마적인 것이 어디있는가? 우물 안의 개구리 이다.

예수님만이 알아야할 선악을 쓸데없이 괜히 알아서
인간들은 자신의 선에 의해 좌우 되는 세상을 꿈꾼다.
나태하고 게으른 선에 의해 악이 꽃핀다는 저 독재적인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바로 이런 악마와 같은 인간의 선악의식을 가지고서 적극적으로 예수님 자신의 선하심과 영광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신다.

애굽왕 바로 왕과 애굽 군사의 강퍅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이 된다.

그들이 강퍅하지 아니하면 주님의 선하심이 드러나지 않는다.

(출 14:17, 개역)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8, 개역)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그래서 그들은 악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주변에 늘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에 대한 회의감을 털어놓는 종교인꾼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그 말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 말을 할 조건이 될려면 자신은 악에서 벗어난 입장에서 악의 외부에서 말해야 한다.

물론 뻔뻔 스럽게도 악의 밖에서 그런 말을 외친다고 당당히 말하지만
웃기는 소리이다.

그렇게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라고 말하는 그 자는 악이 아닌가?
또 그렇게 운운하는 그 하나님은 과연 진짜일까? 악마일까?

차라리 왜 나같은 악마에게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십니까? 라고 물어봐야 한다.
자신이 악마인줄 모르기에 하나님 위치에서 저딴 악마적인 소리를 외친다.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 하시는가? 라고 말이다.

바로 이 표현을 이 영화에서는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에드먼드 버크(1729-97)

이런 소리로 악마를 퍼트린다.

히틀러를 핑계 대지만 정작 히틀러와 같은 한 아담 속에서 자신은 한 아담이 아닌 한 아담 바깥이라고 우기는 식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한 아담이다.

히틀러를 악마 취급하고 악마로 판단할줄 아는 자신은 정의요 선이요 저런 인간에 아파하고
저런 인간과 차이나는 양심의 소리, 선한 소리를 외칠줄 안다고

선으로 취급해 달라는 그 생각 자체가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랴?
차라리 히틀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아담 속에 있는 악마를 천기누설하듯이 보여줬으니까 말이다.

히틀러는 국가를 세우고 다스리고 국가를 충만케 하고픈 백성을 대변해 준다.
바로 그 국가 라는 폭력적인 악마성은 다수의 백성인 집단성을 보여준다.

인간이 국가에 집착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이다. 왕이 싫어서 이다.
자신이 이미 신이요 왕인데 다른 왕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대리해 주는 스타를 내세운다.
그것이 히틀러이다.

정작 히틀러를 움직이고 조정하는 것은
바로 저런 소리를 외친 자들이다. 어떤 소리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에드먼드 버크(1729-97)

정의를 외치는 양심이 바로 저런 히틀러는 조정해 놓고서는 정작 히틀러는 악마취급해 버림으로써 자신의 악마를 감출수가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런 모든 인간의 악마성을 히틀러 한 개인에게만 뒤짚어 씌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뒤짚어 씌운다.

정의를 외치고 양심을 외치고 선을 외치는 그 인간에게서 조차도 악마를 적극적으로 뒤짚어 씌워서

예수님 자신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신다.
차라리 히틀러를 보면서
진리에 아무리 개입할려고 몸부침쳐도 소외 당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요 진리이다는 것을

너무 너무 감사하는 것이
유일한 선하신 예수님이 모든 인간이 악마임을 들추어내신 십자가 사건을 통해
밝혀졌다는 것을 말이다.
자 이런 내용이 오늘 나온 본문과 똑같습니다
헛된 것과 귀한 것
영원한 것과 멸망해야 할 것을 우리는 반대로 추구해 왔음을 말이죠

히틀러를 악으로 판단한 줄 아는 본인은 그럼 악 아니냐 말이죠

이 말귀를 못 알아먹고 댓글로 무슨 소리인줄 모르겠다 라고 추상적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추상적이다 듣기는 들어도 무슨소리인줄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는
추상적이지 않으면 도와 달라고 어디 어디가 무슨 말인지
어느 어느 부분이 잘못된 생각 아니냐 라고 비판을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야말로 무슨말인지 모르니까 툭 그냥 던져버리는 겁니다

알필요도 없다는 식이냥

히틀러는 계시록이나 에스겔서에서 나오는 열국에 해당되는 원조 애굽의 강퍅함을 나타내시고자
지옥에서 끄집어낸 세력입니다 왜?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리시고자 하는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사랑을 말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그 십자가의 사랑을 알라시고자 함인데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자기 의를 쌓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 헛짓인데 극도의 자기 의를 쌓는 애굽왕처럼
시대 시대 마다 세워버려서

하나님의 의과 대조를 이루는 멸망 받을 자를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런 히틀러 아니다 동조한 적 없다 라고 만 한다고 해서

생명을 구하는 능력을 쫓느냐 말이죠
역시나 히틀러처럼 경건의 모양으로 생명을 죽이는 짓을 지금도 하고 있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짓 밖에 없거든요

그카이 율법으로 아예 도배를 해서 완악한 수건을 안 벗을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속임수 벗기고자 더한 속임수인 히틀러 같은 자를 붙이시는 것이지요
앗수르를 북이스라엘에 붙여서 멸망 시키듯이
바벨론을 남유다에게 붙여서 심판 하시듯이

그런데 남 유다 만큼은 하나님의 능력 곧 다시 살리는 되새김질처럼
나그네처럼 아무것도 없는 광야 죽음 사막 속에서도

외부에서 끊임없이 살려주시는 생명공급이 늘 계속해서 이어주고 있는 겁니다

너 잘나서가 아니라 생명 구하기를 하시는 이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피 흘려주심을 말하고자 말이지요

그러나 나그네 본향을 향해서 가는 자가 아닌
정착민이 되니까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누가 크냐 라 먼저 벌어지니
이것이 곧 남을 죽이는 경쟁으로 갈 수 밖에요

정착 더더욱 곤고히 자기 손으로 미쁜 바위 견고한 튼튼하고 든든한 가인의 에녹성을 건설하다 보니 영웅들이 나오는 겁니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맨 맨 맨 들이 말이죠

창 4;17 "가인이 에녹을 낳고, 그가 성을 건설하고 그 성의 이름을 아들 에녹이라 하였더라“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이마표를 받게 되니 그제서야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이마에 부적을 달고 난 뒤 부터는 국가 건설의 근원이 되는 에녹성이 나타나는 겁니다 바벨탑의 원조이고
국가탄생의 시초인 거지요 바로 국가라는 짐승 말이지요

그 결핍을 슈퍼맨맨맨 이라는 영웅으로 채우지 않으면 하루도 못 사는 겁니다

이것이 멸망하는 자들의 대표성으로 언급되는 겁니다
그 영웅놀이라는 자들에게 있어서

젖먹이 임마누엘을 구하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노라 라는 반응이 당연하지요

가치가 있으면 바로 즉각적으로 믿겠습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의 달인들도 마다하는 헛된 거리끼는 걸림돌인 십자가를
누가 믿었으리요

아무리 보다 우리 꽁꽁 감춰둔 속임수 보다 더한 속임수 같아
안 속을래 라고

안 속는 자가 속게 되고
속은 자가 남은자처럼 돌아오는 것이지요

말이 속은자 이지 완전 하나도 남겨진 것 없이 탈탈탈 다 털린
절대단절인 그 잃어버림 속에서 비로소
남겨둔 한 씨를 보고서 돌아오듯이

49일 째 되어도 예수님 죽인 것 하나도 양심에 거리낌적도 없었는데
약속한 성령이 50일 째 되니까 비로소 그 거리끼는 걸림돌에 넘어서
무릎 박살나고 눈 다메섹에서 눈 다 가버리고 멀어지고
모조리 다 탈탈탈 다 털린 후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그냥 누구든지 주의 이름 부르는게 아니라

주여 누구십니까

너가 핍박한 너가 죽인 나사렛 곧 이단 예수다 라고
이단으로 몰아서 처참하게 갈기갈기 너가 죽인 예수님을 만나야

비로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즉 그 동안 헛되다고 여긴 이름 예수님 때려죽어도 안 부르겠다 라는 이름을 부르게 되고

부르지 않던 자리에서 부르신바 되고

결국 그 동안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기 이름만을 위하여 살다가
그 자기 이름을 위한 짓 꺼리 때문에 예수님을 죽였거든요

그카이 헛된 자기 이름을 박살이 나지 않으면
절대로 부를수 없는 이름인데
그 이름이 마구잡이로 쳐들어 와서
천국과 같은 내 이름
에덴 동산과 같은 내 이름 애굽을 박살을 내고 지옥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저 귀하디 귀한 주의 이름을 누가 부르겠습니까

죄인 환자가 아니면 죽어도 못 부를 이름이니 말이죠

그래서 환자 죄인 만들어 버리니까
가장 귀한 이름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 아름다운 이름
그 귀하디 귀한 복음을 우리는 헛되게 취급한
멸망받아 마땅한 자인데

그 죽은 자 원수를 살리시고자

능력
죽은자를 건지시는 생명으로 옮겨주시는
그 참성전 걸어다니는 거룩한 참성전
3일 만에 되살아나는 새김질 하는 성전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생명을 얻게 되었다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도리어 남의 생명을 갈취하는 강도의 소굴 뿐이였고

죽은 자를 살리는 거룩의 취지를 실상으로 그대로 담은 것은
그림자의 반복이 아닌

진짜로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싫어버린바 된 죄인으로 모습으로 오셔서

멸망 당해 마땅한 자를 생명으로 옮기고자
친히 화목제물이 되신
이 실상 앞에서

교회에서 벌어지는 그 헛짓꺼리들은 사실상
살인의지들 밖에 안된다는 것을 까발리고
밭갈이 기경하심으로써

다시 매일 매일 고린도 교회가
십자가에서 다시 태어나는 그 처음자리에 걸맞는 첫사랑이 이미 떳기에
매일 매일 밭 갈이 당하는

안 그러면 우리는 또 부정한 짐승처럼 
떠날려는 마음 없고
잃어버린 대의 곧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땅의 정착해 버리고 아예 그 땅에 고정화 될려고 하는
물이 고여 썩게 되니까 자기가 우상이 되니

저 도리도리처럼 양 사방에서 우겨쌈으로 공격해 옴에 있어서
그 자기방어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니
빤스만 입고 배째라 라고 나오듯이
그 결핍 채우기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가 지 스스로 매일 매일 무거운 짐을 점점 더 해 버리는 겁니다
연자맷돌을 아이들에게 얹혀서 물에 빠뜨려 죽이더니 이제는 자기 차례가 되니까
안 빠져 죽을려고 발악을 하면서 땡깡 부리는
저 결핍 채우기가 얼마나 헛된 멸망의 길이냐 말이죠
그런 도리도리를 옹호하는 놈들만 같은 길을 가는게 아니라
그를 비판하는 자들 히틀러 비판하는 놈들 또한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은 맹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아무리 봐도 십자가는 속임수 같아 보이거든요
인간의 속임수를 까발리고자 자기 꾀에 휘말리는 올무가 되도록 보이는 그 십자가를

누가 믿겠느냐 말이죠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을 누가 믿느냐 말이죠

아니 본인이 심판을 날린 하나님인데
그 심판에 어떤 하나님이 달려 죽느냐 말이죠

하나님이 꽉 꽉 그것도 좋으신 하나님 이라고 교회 지분에다가 글짜까지 새기면서
그 좋으신 하나님이 꽉 차 있는 자들에게

이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는 들어갈 틀이 없는 겁니다

그 속임수를 깨뜨리는 속임수 보다 더 한 죽음 보다 더한
시기 질투의 사랑이 아니면

누가 죽음 그 속임수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에 빠진 자에게만
요나의 표적을 구하지

안 빠졌다 라는 자에게는
악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
곧 멸망의 길 밖에 없는 겁니다

이 멸망의 길과 생명의 길을 또렷히 대조해서 보여주시는 겁니다

영국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지옥행 멸망의 길이 천국처럼 에덴동산으로 포장된 애굽의 잔칫집이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속임수 같다고 나 다시 돌라갈래 라고 했던 그 광야의 3일길 그 절대 단절의 길인 십자가의 죽음이 오히려 생명을 건지시고자 대신 매 맞은 길이다 라는 겁니다

막상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에 데려다 주는 지혜는
내가 배 고픔을 견디는게 아니라 외부에서 끊임없이 죄를 지적해 주심으로써
벤또 도시락 생명의 양식을 늘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는
그 대신 매 맞으심을 보여주실때에

이 사랑이 없으면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사랑이 없으면
멸망한 자 였음을
소돔과 고모라 였음을
하루 하루
닭살 돗듯이 쭈뼛 쭈뼛 소름끼치게 느끼면서

헉 으악 이런 죄도 용서하시다니 말도 안된다 라고
그 말도 안되는 길을 그 죽음의 홍해를

그 땅끝이라는 죽음의 바다로 너끈히 넘어서도록
벤또 도시작 외부에서 살려주시는 되새김질로써

늘 우리의 부정을 불태워 흠향하시고
죽은자로 만들었다가 다시 되 찾는 생명을 구하시는

그 사랑이라는 능력만이

말로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죽음에서
다만 악에서 건져주심 만이

참 능력인 십자가의 도 였음을

우리가 기뻐하고 찬양케 하시고자
멸망할 자들과 대조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

댓글 

마치 예수님은 건강한 자 의인에게는 자신을 숨기시고

어리석고 미련한 어린아이와 같이 무능한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듯이

자꾸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자 귀신들린자 고치듯이
매국노 세리 죄인 강도 창녀
개같은 이방인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 
그리고 심지어 탕자 그리고 불의한 청지기 같은

결국 의인이라고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
일부러 삥 둘러서 가듯이 찾지 않는 자들을

주님은 그 잃어버린 자들에게만 자신을 자꾸 자꾸 나타내시는 겁니다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듯이

자 이렇게 멸망할 자들과의 대조를 통해서
생명 구하기
죄인 구하기
환자 구하기를 펼칠때에

여기에 반발하는 자는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그 맏아들 같은 자가
진짜 멸망할 자요 살인자요 죽음이 가득한 자임을 까발리시는 겁니다

 

 

 

 

 

================================================================

22-062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땅끝,사망권세 멸밍까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6-18)
2025. 8. 17. (8월 8, ?일 녹음)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10,14-15)
로마서 2022 2025. 7. 26. 19:59
22-061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10,14-15)

〈로마서 10,16-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찬송가 078장 새 478 참 아름다와라, 가스펠; 주 다스리시네 (복음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

〈찬송가 078장 참 아름다와라, 새찬송가 478장〉
새찬송가 502장(통259) 빛의 사자들이여
찬미예수 2000 - No.1418 가라 GO
찬미예수 2000 가라가라세상을향해-1415우리는 모두다 주님의 증인 땅끝까지 이르러 주 복음 전하세


시편 8편. (67)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 두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92편. (457)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나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나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이름을 찬양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이름을 찬양
여호와여 주의 인자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나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시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나이다


온 땅과 만민들아 (140)

 1. 온 땅과 만민들아
   주님 음성 듣고 모두 기뻐하라
   산들과 나무들도 즐겁게 춤추며
   함께 손뼉쳐라
               후  렴
   사랑과 정의를 주시는 주
   영원한 그의 나라
   좌우에 날이 선 검과 같은
   진리의 그 분 말씀 승리해

 2. 땅들아 기뻐하라 죄인 구하시러
   주님 오신다네
   십자가 구원으로 우린 물리쳤네
   어둠의 세력을

 3. 모두 다 소리높여 주님 찬양해
   힘 있게 찬양해
   외치세 온 세상에 
   열방과 만민을 주가 통치하네



온 땅이여 주를 찬양 (331)
 
온 땅이여 주를 찬양
날마다 주를 찬양하세
주의 기사와 주의 영광
온 땅에 널리 알려졌네
위대하신 주
그의 힘과 위엄을 기뻐하라
주의 다스리심을
온 땅이여 주를 찬양
날마다 주를 찬양하세
주의 기사와 주의 영광
온 땅에 널리 알려졌네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570)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홀로 찬양 받으소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그 이름
온 땅과 하늘이 다 찬양해
겸손하게 우리 무릎 꿇고
주 이름앞에 영광돌리세
모두 절하세 독생자 예수
주님께 찬양드리리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
받으소서 받으소서
모든 영광과 존귀와 능력
받으소서 받으소서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293)

1. 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새 힘을 얻으리로다
   독수리같이 날개를 치며 
   높이 높이 푸른 창공 나르네
   뛰어가도 고단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네

2. 누구든 우리 주를 믿는 자 
   새 나라 새 생명 얻으리로다
   천사들같이 노래를 하며
   소리높여 기쁜 찬송 부르네
   우리 주님 계시니 
   슬픔 눈물 고통도 없네


하늘 위의 집 (1416)

1.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내게 주어진 하늘나라에 가면 
  내겐 황금과 은만 있네
               후 렴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집 있네
영광의 빛이 찬란한 그 곳
그 날이 오면 다시 방황치 않고
순 황금길을 거닐겠네

2. 날 가난하다 외롭다 말아요
  천국길 가니 실망 없다네
  이세상 수고 모두 끝이 난 후에
  저 천국가서 면류관 쓰리



해 뜨는 데 부터 (301)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주 이름 찬양받으리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주 이름 찬양받으리
할렐루야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주 이름 찬양해
이제부터 영원까지 
주 이름 찬양하리로다


〈로마서 10,16-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3쪽〉

(롬 10:16, 개역)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8,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롬 10:16, 새번역)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 ㉩또는 '기쁜 소식' ㉪사 53:1(칠십인역)
(롬 10:17, 새번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 ㉫또는 '그리스도의 말씀'.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말씀'
(롬 10:18,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 ㉬시 19:4(칠십인역)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개역)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 19:3, 개역)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5, 개역)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 19:6, 개역)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 19:7, 개역)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개역)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개역)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개역)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개역)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개역)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개역)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4, 개역)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성경의 모든 표현은 아예 결핍 자체가 없는 표현들입니다 즉 완료입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런 표현인 말씀 앞에서 인간은 감히 흉내를 못 낼 정도로 오히려 결핍 의 모습들만 들추어질 뿐입니다

만약 사울왕처럼 잠깐 성령을 맛보고서 그 이후로 성령을 흉내내게 되면
마치 다 이루었다처럼 결핍이 없다 라는 식으로 자신을 이 말씀이라는 초과잉적 제스처에서처럼 아무리 다 이루었다 라는 식으로 남을 7번 용서하고 이레에 두 번 씩이나 금식하고 십일조에 더 십의 이조 까지 드리는 넘치는 완료를 누려본들 역시나 제자리 뛰기로써 그 다음날 그그 다다음날 그그그 다다다음날 까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인간의 한계에도 개의치 않고서
이 복음은 이 완료를 증거함에 있어서 

인간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마귀만을 상대하는데
이 왼료 이 승리 이 넘치는 부족함 없음을

미리 앞당기면서 까지 미래완료를 누리는 식으로 말씀 스스로가 증거하신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예리하지 못하며 한계점에 부딧히는 언제듬지 넘어질 뿐인데

아랑곳 하지 않고 심지어 미래에 닿을 수 없는 그 미래까지 미리 앞당겨와서 완료 승리를 외치니


오히려 당황 하셨어요 는 저들 안 믿겠다는 자들이 아니라
믿고프겠다고 부자청년처럼 따라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요함 보다 자신의 부요함이 걸림에 있어서 다 내려놓으라 라고 할때에
그거 내랴 놓으면 더 이상 예수님에게 학원비 강사료 수고비를 못 드리면 
저도 더 이산 못 배울 것 아니냐 라는
이 세상 구조가 바로 그런 식으로 소통이 되는 정보 교류 방식에 갇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러니 그런 세상의 구조를 깨뜨려야 할 하나님의 군대가이제는 애굽의 군대가 되어서 오히려 더 굳건하게 만들어버리게 되는 입장에서

주님의 전쟁의 대상물이 되어버렸으니

이 완료의 쳐들어 옴에 대한 부담감?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 주면 수업료 드릴게 없다 라고 먼저 선생님 걱정하겠지만 사실상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대한 염려에 있아사

이 자아라는 큰 걸림돌을 넘어설수가 없는 겁니다

전쟁 하기도 전에 이미 승리했다 라는 완료의 표현을
적군이 아닌

아군이라고 자처하며 나서는 나 자신 부터가 이미 적군 곧 원수의 생각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라고 했듯이

나 부터가 이 원수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음을 이 완료 앞에서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이미 앞에서 고린도전서에 파당 문제로 아 그러면 파당 없애면 하나가 되겠네? 가 아니라
오히려 또 그런 자신을 파당 없애고 하나가 된 것을 성취함에 있어서 오는 육의 자랑에
또 다른 문제가 더지겠지요 생각지도 못한 일들 파당 문제만 표면적으로 튀어나올것이 아니잖아요
그것이 구약 출애굽후 광야시절에 다 이미 드러냈습니다 그게 과거가 아닌 오늘날 지금 현재에서도 수시로 터져나오는 모습이니까 말이죠

심지어 광야 사막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결핍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 타지 않고 가시 떨기 나무에 불이 붙어서 금방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40년 동안 그것도 뺑뺑이 원망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남아서

온전히


부족함이 없이

누리게 됩니다

분명 본인들 조차도 안 믿습니다 15일 만에 거들날 살림살이 먹을 것 이미 15일 만 지나도 다 사라지로 오로지 결핍 그 자체 뿐인데

어떻게 완료를 누립니까 그냥 하루치 양식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넘치고도 넘치는 부족함을 어떻게 누리느냐 말이죠
심지어 그 지옥같은 사막에서 완료를 말이지요

다윗의 고백 부족함이 없다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쫓겨나고 도망치고 사막과 같은 사망의 골짜기 속에서 부족함이 없다니 말이 되냐 말이죠

그런데 믿음은 자꾸 그렇게 몰고가지 실제로 풍요가 넘치는 부자의 입장에서사막이 아닌 잔칫집에서는 절대로 부족함이 없음이 안 나오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자청년이 괜히 이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되신 예수님에게 걸려들어서
개털이, 다 탈탈탈 털리는 겁니다 멘붕멘붕 멘탈붕괴 
내가 어제 예수님을 만났는데 
궁금 궁금 

어떻게 하면 구원 얻느냐고 물었더니 
궁금 궁금
전 재산을 가난한자 다 주라 하네 멘붕 멘붕 멘탈붕괴
실제로 근심하고 등돌리고 다시는 안 돌아오잖아요


예수님과의 사귐인 천국을 누리기 전에
가장 결핍 속에 놓여진 가난한 자와의 사귐을 누리라고 하니 멘붕 멘분 멘탈붕괴가 되는 겁니다

구원 교리 다 박살 나더라 말이죠

아니 그럼 부자가 천국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면 아무도 구원 못 받겠네 라는
다른 유대인의 반응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반응입니다

아 완료 앞에서 그깟 되도 않는 인간 결핍채우기용 실천한 내용물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지난 주에 말한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 곧 죽은 자도 살리는
가난한 자도 살리는

부족함이 없는
그 능력 곧 생명구하기가 그들에게는 없고

도리어 구원 받을 조건들을 갖추었다고들 하는 그런 것들이

가난한 자들 야윈 파리한 자들이 못 먹도로 사다리 걷어차서 얻어낸 결과요
부족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소서 어릴적부터 다 지킨 율법 실천력으로 반드시 실헹하겠습니다 라는 살인의지와 같다 라는 겁니다

부자의 의식은 이런 것들로만 가득차 있기에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아 참 이 완료를 미리 언급 안했네요 언급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죠

(롬 10:18,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이미 온 띵에 퍼졌음이 완료가 되었고 빨래 끝 마쳤고
땅 끝 까지 이미 다 다다랐다 다 이르렀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봐도 안 이루어졌고요
아니 이제 복음이 시작되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사도행전의 말씀처럼

이제 유대 시작이지 온 유대가 극구 반대하고 심지어 오늘날 현재 이스라엘 완강하게 버티고 있잖아요 시작도 안한 듯한 느낌인데 지금 2000년이 지나도 안 되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끝 ~~~~~~~ 다 이루었다 이렇게 선언만 해 버리면

마치 남아있는 숙제가 엄청나게 많은 냥 부담감만 억수로 더하지
뭐 하나 제대로 된게 있느냐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완료 다 이루었다 라고 밀어붙이고 있는 식이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냐 말이죠

그러나 간과 한게 이미 시작 자체도 우리가 시작 한 적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카면 또 뭐
아 그럼 주님 혼자 다 하세요 우리는 딴게 가서 우리들 할 일 다 하고서
돌아오면 주님이 다 이룬 것 누리기만 할께요 라고 마치 자기들의 일이 따로

따로

이게 중요항께 강조하듯
따로

따 따로 있는냥

따로 국밥으로 보고 있는데
내 숙제가 없다고 떠로 국밥할게 아니라
내 숙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숙제를 보는 것이 내 숙제로써

일 할 것이 있다 라는 겁니다

위에서 저런 식으로 적으니까 에이 그러면 땅끝까지 갈 필요 없네 다 다다르렀다 다 이르렀다
크카면 선교사 보낼 필요가 없네
네 맞아요 그런 선교사들 돈 벌려는 그런 자들은 보낼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여러분 자체가 선교사 용어만 빌려와서 그런 기능을 여러분이 발 딛고 있는 거기서
선교사 기능을 하는 겁니다 내 숙제가 아닌 주님의 숙제로 다루어지는 당사자로써
예수님의 숙제로 여러분들이 그 땅 끝에서 다루어진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땅 끝 뭐 죽음 끝 이기도 하지만
보세요 남자들 군대 생활 제일 빡 센곳 어디냐 라고 따지지만
실상은 자기가 나온 군대가 제일 빡 센곳입니다 땅 끝 지옥이다는 거죠
그 카이 여러분 지금 발 딛고 있는 그 곳이 바로 제일 빡 센 곳 지옥이요
땅 끝입니다 만약 거기서 쫓겨나서 외국에 가게 되면 두 번 빡 센곳 경험할 뿐이지
꼭 비행기 타고 물건너서 바닷 건너서 쎠쎠쎠 모타뽀트 갈아타는데 모타보뜨 뒤짚어져서이거 조용기목사 셔셔셔 특유의 발음을 보고 희화화 한 것으로 아는데정확한 유행어가 검색이 되네요 ㅋㅋㅋ 노래는 안 되남?

산넘고 물건너 바다 건너서
뗏목을 타고 가다 뒤집어져서...

모타뽀트 타고 가는데~
모타뽀트 뒤집어져서~

그냥 막 헤엄치면서 셔셔셔~

괜히 사짜 들어가는 직업 가지는 바람에


자 이렇게 막상 선교사들이 땅 끝까지 증거한 것은 증거한게 아니다 라고 취급해 버리고
지금 발 딛고 있는 그 땅 끝에서 이 완료를 누리는 부족함이 없는생명구하기를 펼치시는 주님의 능력을 혜택 받고 있느냐 섬김 받고 있느냐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말한 지옥 구덩이 사망의 음짐한 골짜기 속에서도 부족함 없음을 누리는

생명구하기 하시는 주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를 누리는 것이다 말이죠

만약 그렇지 않고 이 땅 저 땅 선교사 세계 방방 곳곳 여행 가듯이 온갖 지역 다 누비고 다녀도결핍 채우기의 한 방편으로써 작용한다 라면이미 다 다다랐다 다 이르렀고 
소리는 이미 온 땅에 퍼져있음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한번은 처음 교회 다니기 직전 토요일 마다 선교회 모임이 있어서 고 3 때 갔는데
슬라이드 상영을 하더라 말이죠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키인가? 아프리카는 아니고 아마존 브라질 쪽인가? 남미 이지 싶은데 인종이 아시아 같은 아주 작은 부족이던데거기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갔는데
어라 이미 거기서 십자가를 걸어놓은 나무로 만든 집을 배타고 막 들어가면서 그 백인 선교사가 기적이다 라는 표현으로 간증하는 내용을 봤다 말이죠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그거 다 엉터리 이지만
아니 자기들이 처음 들어가는 외국인이요 선교사인데 이미 건물이 마련될 정도로 이미 전해져 있었다 

바로 그것을 발견하라 라꼬 본인들이 도로 믿어야 할 판국이다 라고 그렇지 해석했지 싶은데그 때 처음 믿을 때라 소름이 막 돋았는데
말씀사랑이였던가? 삼각로타리 어릴적 친구 삼덕교회 다니는 찬구 땜에 어릴적 놀이터라그 작은 공간에서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7월달에 그거 보니까 막 쏘름 돋았는데 막상 에어콘을 하도 세게 틀어서 그때 에어콘도 맛 보기 힘들땐데 백화점 말고는 잘 없는데 너무 가차이에서 트는 것 맞다 보니 쏘름 끼친 것과 냉방병처럼 추운 것이 막 썩여서리아이고 얄굳다 라는 느낌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아무튼 전하는 자도 없었는데 어떻게 십자가 나무 집이 있느냐 말이죠

제가 말하고픈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뭐 선교사들 교육 시킬때에 그런 영상 상영을 많이 하잖아요 그거 다 엉터리 이구여 그거 말고요전하는 자도 없는데 아직 땅 끝 갈려면 멀었는데 바울의 로마 때 이니까 주후 40년애서 70년 그 사이 때 아니겠습니까 그 때 이미 땅끝까지 복음이 다 이르렀다?
한국은 로이드 존스 목사 그 때 쯤부터 복음이 시작이 되니
그 이전은 영적 준비 기간이다 보니
캬 나도 영적 이라는 표현 쓰넹 억수로 쓰기 싫은 표현인데하도 목사들이 하도 가스라이팅 할려고 쓰는 단어라 너무 남발하니 질려버려서또 제일 가까웠던 전도사였으니까 말이죠 
그렇게 알던 전도사가 목사가 되어 우연히 만났는데 비꼬듯이 
영적으로 보니 아닌 것 같냐 라고 비꼬길래 
우와 그 용어를 도리어 역으로 공격하면서 써 먹는 것에 실망하고 질려버려서 말이죠

그 순해빠진 김목사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기껏 자랑하고 감사하는 것이다른 교파가 아닌 오로지 장로 합동측에 태어난 것을 자랑하니그 말 듣고 온 몸이 힘이 빠지듯이 낙심이 되었는데
여전하더라 말이죠

한 참 뒤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교인들 보면 잔뜩 헛바람이 들어가 있어요
난 장로가 되었는데 넌 아직도 뭐 하냐 라는 식으로심지어 30대 후반에 전도사에서 장로가 된 아는 형이 그카고 있으니 헛바람 들었나 보다 했는데
그 이후에 우연히 만난 다른 교인들도 대부분 그런 식이더라 말이죠자꾸 그 비결을 한수 가르쳐 줄까 라는 식으로 다가오는 겁니다아무튼 다시 본론 으로 돌아와서이미 다 이룬 것을 누라는 입장에서 나 선교사는 이 지역을 많이 증거했어? 아이구 그것 뿐이냐? 나는 더 큰 땅 넓이를 증거했어 라는 식의 
광개토왕 땅 따먹기 일인자처럼 그런 영역의 확장 비율로써 완료를 누리는 겁니까?

오히려 그런 그림자 그런 사망의 권세 속에서 땅 끝까지 증거되는
주님의 이런 사망의 몸 땅 끝까지 찾아오심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 말이죠

또 격은 것 이야기 하는데 전도사들끼리 점심식사 하는 자리에 우연히 아는 형 때문에 끌랴가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미래의 목사가 되면 했을듯한 모습들을 미리 보여주더라 말이죠
자기따나 주일학교 아니면 학생회가 얼마나 많이 모이고 확장 되었는가를 자랑하는 내용들 뿐이지예수님을 자랑하는 전도사를 본 적이 없어요 미리 목사라는 강도의 흉내를 미리 내고 있더라 말이죠 목사들이 모이면 그것으로 서로 저울질 하면서 알력다툼을 하잖아요

그카이 이미 강도 들이더라구요 얼마나 점심 식사가 맛이 없고
속이 매쓰껴워서 얼른 자리에서 벗어나고팠는데 말이죠

(롬 10:16, 개역)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왜 믿음은 들음만 되고 보는 것으로는 안되나 오래전부터 궁금했는데
들음의 의미를 몰라서 그렇더군요

상대방이 불어줄때에 비로소 꽃이 되었다 라는 시처럼
관계망의 언어를 저 혼자서 낑낑 거리면서 청년때부터 계속 설명을 들어도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사랑을 받는 여성의 입장이라면 머리 쓰는 것 하나 없이 머리 지식 안 쌓아도 금방 하는 거죠자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이제 호명 즉 마음것 부를수가 있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라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킨다 라는 그 부르는 음성의 관계 속에 놓여져 있는 아이는 엄마 라고 큰 소리로 부르는 거죠그래서 나는 포도나우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라는 표현으로 아니 말씀으로 인한 관계로

(요 15:5, 개역)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처럼

(요 10:3, 개역)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4, 개역)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요 10:16, 개역)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27, 개역)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자 이렇게 내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라는 것은

다른 음성은 모른다


AI 개요
요한복음 10장에서 "다른 목자의 음성을 모른다"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에 비유하며, 그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른다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은 그의 양으로서의 특징이며, 다른 목자의 음성은 알지 못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
요한복음 10장 2-5절: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에 비유하며, 문지기는 그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며,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를 따른다고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5절:
예수님은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므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 찾았당

(요 10:5, 개역)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즉 소통 곧 길이 이 길로만 다닌다는 겁니다 다른 길 다른 소통 다른 문은 없다 라는 거죠그 믿음이 들음에서 나면 그 들음은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곧 말씀 즉 그냥 말씀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믿음이 나온다 라고 합니다 마침 이전의 글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갠 그 둘의 제물 조각 마주대하고 그 사이를 횃불이 지나가고 그 이전의 시체 고기 냄새를 맡은 솔개 쫓아내는 장면을 통해서 거룩이 뭔가

바로 토기장이의 기능을 말하는 두 패로 나눔이다는 의미로 글을 올렸다 말이죠

그럼 하나님으로는 두 패로 나누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두 패로 가르는 이 공의를 다 이루었다 라는 겁니다

그 두패로 나누는 공의 자체를 마귀는 거부하는 것이고
그럼 공의는 바로 이런 마귀의 토기장이의 기능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전쟁 선포이자 이미 다 이룬 완료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말씀이요 이 그리스고의 말씀이 하수 같이 흘러 넘치도록
어디까지? 

새성전 우리 에스겔 할 때 배웠지요 출처도 없이 새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죽은 늪 까지 더 덮을 정도로 죽은 바다를 다 살려서
죽은 생명 물고기까지 다 살리는 생명구하기를 펼치더라

이 공의를 오늘날까지 사다리 걷어차는 놈들을 통해서 

죽은 바다가 되었기에

그 죽음에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공의는 뛰어들어서 생명 구하기를 펼치는 겁니다

그러니 일어나라 라고 하는 선포는

죽은 자를 살리는

더러움에서 거룩으로 옮기는 생명구하기 라는 참성전 되신 새성전의 기능이요

반대로 가짜 성전인 강도의 소글은 일어나라 라고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닌

어떻게 해서든 사다리를 걷어차서 못 먹게 하도록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남은 꼴을 짖밟고
남은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발로 더럽히는

오로지 자기 의로움만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래야 복종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요 음란한 마음이다 라고

공의를 짖 밟더라 말이죠

그러니 부자 살진양 들이 당연히 교만하고
근심하고 등돌리고 돌아서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완료의 세계에서 어딜 감히 지옥 같은 마음 나는 떄려죽어도 이 빵구멍 난 빈 틈을 채우고야 말 거야 라고

가인은 벌이 칠 배 이지만 날 건드리는 놈은 벌이 77배 이다 라고
심판 받은 놈 가인을 가지고서 도리어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놓겠다 라는
지 얼굴에 누워서 침뱉는
그러나 이것이 공포마케팅에서 먹혀 드는
암 걸린 연예인 죽다 살아난 자를암보험 광고에 활용해서 공포마케팅 건간염려증으로 미리 선행학습 대비를 하라 라꼬아니 참 신기하죠 벌이 칠배인 가인을 가지고 와서 그 저주 그 벌의 반대되는 복이나 생명을 운운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인 심판 받은 자를 가지고와서 심판하는 자신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 더 광고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말이죠 바로 죽음 마케팅 말이죠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이 다 이런 식입니다 오늘날 성화론자들도 다 이래요

생명 구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더더더 역설적이게도
나쁜 것 부정적인 것 시체 또는 죽음을 피하고 다니고 저주를 피하고
부자청년처럼 여태껏 피했던 가난한 자의 운명을 도로 가까운 관계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는 관계 그것도 부족해 사랑해야만 하는 관계에 까지 놓아라?

저 게을러 터져서 저주의 운명을 반복하는 가난의 되물림인 저 가난을 가까이 하라고?
소통 하라고?
말과 말을 나누는 소리를 들려 주라고?

그카이 사랑 없는 율법 실천이 도리어 생명 구하기가 아닌 생명 갈취 하기가 되는 거죠

심지어 율법 실천에 사랑하기 까지 집어넣어서 사랑하기를 실천하면서 까지 말이죠

그 사랑하기 실천이 즉 이웃사랑실천이 사다리 걷어차기이니까
너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올라오지마 사다리 걷어차고
내가 너에게 내려다 주는 도움이나 받아라 그래야 남 7번 용서가 달성이 되지

아니 누가 부자 중에
누가 살진 양 중에

7에 70번 용서 받아야 한다 라고 우는 자 봤나요?

마침 지젝이 자주하는 유대인 데리다 로부터 수 없이 들은 유대인 농담

부자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도와
가난한 자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도

이게 사실은 구약만 믿는 유대인들의 농담 아마 탈무드에서 비슷한 것 나오겠지요

그러나 신약은 아예 대놓고 정경으로 나옵니다

바로 바리새인의 기도와 매국노 세리의 기도입니다

이미 다르죠 부자와 가난한 자가 아니라
이건 현대 시대에도 너무 흔한 상황이라 단절의 효과가 없어요
그저 조심하자 라는 수준의 교양쌓기와 윤리와 양심에 자극 주는 식이다 말이죠지젝도 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무것도 아닌게아니다 라고 무의식의 실재성 욕망성을 언급하기에 일상에서 벌어진 이런 사건을 달리 보는 해석을 알려주지만 말이죠

그러나 바리새인의 기도와 매국노 세리의 기도는 그애말로 원수 중에 원수의 대립으로싸 안급하는 겁니다
마치 유대인 바리새인이 삥 둘러서 가는 사마리아 구역처럼

실제적인 원수 지간의 대립으로써의 표현함에 있어서 완료를 증거하신다 말이죠

이 카면 누가 자기 생활을 버리고 이 벌어진 두 패로 나누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자 하겠냐 말이죠

심지어 이미 몸에 각인이 되고 습관화 된 바리새인들의 삥 돌아서 가기가 편하지

누가 사마리아 그 원수 중에 원수의 구약을 누가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완전 극과 극의 단절의 간극을


누가 경계선을 허물고 가겠냐 말이죠

못 들어간다면 결국 그 동안 율법을 지켜왔던 모든 일들이
원수 짖을 오히려 해 왔던 생명 살리기가 아니라 생명 죽이기 라는 사다리 걷어차기만 했다 라는 겁니다

부자청년 보세요 자신의 극대조가 되는 가난한 자에게 전재산을 준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서 다 줘버리면 생명구하기 라는 죽은 자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도리어 자신의 목숨이 위태하게 되는 공포와 불안이 엄습해 오는 근심으로 인해

이 생명 구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등 돌리게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율법 지키기가 도리어 생명을 빼앗는 결과가 나온다는 이 충격적인 결과
우리는 받아 들일수 있냐 말이죠

안 받아 들이니까 지금 현재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다 죽이는 겁니다
안 그러면 자기들 목숨이 도리어 죽어야 하는 판국이니까 무엇이 더 근심이 되겠습니까?

가자 지구 사람 다 죽는 것?
아니면 자기들 이스라엘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

아니 가자 지구 사람들은 율법이 없잖아요
물론 타 종교 이슬람의 율법 그게 있어도 그거 일반인에게는 의미 없죠 배고픔 앞에서 종교에라도 빌어붙어서 배고픔 혹시나 해결해 볼까봐일종의 왕따 안 당하기 위함 생존법인 거지요그래서 종교 하나 가지지 여러개 가질 마음이 수 없이 많다 말이죠

배불러 터진 지도자들 이 놈등의 정치술과 이데올로기 이런 것으로 다수를 형성할 뿐이지그래서 다수를 속일수 있는 이데올로기 사상을 민주주의라든가 공산주의라든가 어떤 사상을 내세워야 할 꺼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은 뭐 압니까

체게바라 보세요 그런 독립운동 얼마나 멋져 버립니까 나는 당신 덕분에 계몽되었다 라는 사람들이 달라붙죠지금 보세요 북한이랑 이제 손 안 잡고 남한 이랑 손 잡잖아요이게 진짜 종교 곧 우상이라는 나 라는 종교이기에나로 살아 있는 나로 출발해서 나로 돌아오는 회귀하는 것이 국가입니다 국가라는 짐승이다 말이죠 나 라는 종교는 더 큰 나 그 나 들로 결집이 된 자아의 확장인 국가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 탈려는 그 나 그게 바로 인간 왕 인간 대통령 아닙니까 거니가 시키는대로 빤스입고 저항하는 겁니다 힘 없을 때 서럽다고 복수를 다짐하다 왕이라는 권력을 쥐게 되면 드디어 날 건드린 놈 다 죽이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거니가 왕이였뎐 거죠

이유 없어요 자식도 없는데 그 많은 돈 어디서 쓸려고
아닙니다 쓸려고 하는게 아니라 권력을 다 힘을 다 잡을려고그 허기진 뱃구멍 끝까지 채울려고 하는 겁니다 결핍을 말이죠

이런 말 하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이 그렇다 라는 겁니다
진노의 그릇으로 아예 삼아버리니까
이스라엘이 가룟유다 짓만 골라서 사울왕의 짓만 골라서 거지선지자의 짓만 골라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기장이가 그렇게 진노의 그릇으로 삼아버렸으니 말이죠 저 놈의 이스라엘이 말입니다
그들 속의 무신론자들도 못 빠져 나갑니다 진노의 그릇 노릇해야 합니다
율법을 쥐었다 라는 인구의 10 % 정도 밖에 안된다 라는 그 놈들도 자기가 맡은 일 어서 해야합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전체에 다 나타나야 하니까 말이죠
정치를 그들 뜻대로 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트럼프도 지가 그러고 싶어서 관세 매기는거 아닙니다
진노의 그릇이라는 사명을 할 수밖에 없으니 어쩔수 없습니다

그 반대로 민주주의 다운 정신을 지킨다 라는 이재명이나 김어준이나 이런 이들은 그럼 정의로운가? 다들 하나님의 공의를 짖밟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을 떠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누구도 떠나야 한다 라는 의???은 없고
율법을 줘도 선지자를 줘도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더 곤고하게 자리잡고 합니다
마이 이 땅에 자기 영역을 마련하고 살 자격이 있는냥 말이죠
열심히 일해서 조그마한 보금자리 집을 사서 결혼해서 저 푸른 초원 우에 위에가 아닌 우에 라 맛이 살죠 꼴에 경상도 라꼬 전라도 놈들 이기고 싶어서리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바로 이런 강요된 천국같은 아 아 대한민국에서 누가 떠나고 싶습니까?물론 떠나버린 타국에 이민한 자들 많아요 거기서 한 자기마한 초원 짖고 살겠죠그러나 떠난게 아니라 자리 이동일 뿐역시나 지구 안입니다

왜 이런 소리를 하는고 하니

예수님은 이 땅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 예수님을 죽인 곳이다 말이죠
그래도 우리는 떠날 마음이 없지요 누울 자리 없이 누가 떠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미 온 땅에 퍼졌다 예수님이 떠나는데 성공했고이 땅의 내막 끝자락의 본질은 다 들통났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 땅의 왕 마귀는 그것을 막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이제 막 시작인데 다 끝났다 빨래 끝이라고 선언하면서 이 복음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끝납니다 아브라함이 애굽공격 가나안 공격 지시 받자 마자 다 완료를 누립니다 그것이 믿음의 주 되신 예수님의 때를 보고 말이죠

단순히 인구 확장 불임여성에서 점쟁이가 찾아와서 너의 족속이 많아 진다 걱정말아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을 거들내겠다 라는 믿음의 출발 곧 예수님의 출발입니다
그럼 난데 없이 애굽과 가나안은 이 천국의 활동
곧 구체적인 인물인 예수님의 활동에 무조건 이유 없이 진노의 그릇 됨처럼
무조건 천국의 원수가 되는 지옥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애굽나라 가나안 족속 그것을 알 리가 있겠습니까?
가룟유다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족속으로 낙인 찍힌 겁니다

너희들이 무시하고 짖밟는 하나님의 공의 곧 천국의 공의를 다시 높이시고자 말이죠

저마다의 종교로 천국이 있고 저마의 종교로 신들을 다 마련해도
이 침범 침략 침노 노략질 앞에서는 속수 무책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짖밟는 이 위험한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 라는 의식은 오로지 예수님 뿐입니다
그래 너거들 그리 소중히 여기는 육체 그 허물 냅따 던져주고
저들은 혼은 영혼은 붙잡을 수 없응께 육체를 찢어 죽이는 것으로 족항께 말이죠

그 정도로 떠나야 한다 곧 구원의 마음은 그 새마음 새영 정직한 영은

건져내어야할 구원자가 먼저 애 달아 있지

포로 되었다 잃어버림 속에 있다 라는 의식 조차 없는 자에게는 전혀 애달은게 없어요

그럼 의사가 더 안쓰럽지 환자가 온 몸에 질병과 곧 죽을 몸에 설사 구토 그런 저주 속에 있어도 떠날 마음이 없는 것은 외부의 시선을 받아 본적이 없기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아서 만약 기적적으로 나아도 이 땅에 머물고 싶지
죽을 고통 격어도 역시나 떠날 마음이 없는

그 정도로 이 위험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외부 바깥의 시선이 오지 않는 이상
역시나 떠나는 것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의 시선 왜 떠나야 하는지
왜 이 땅의 결말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인지

아이고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라

이 땅의 끝을 보니 너의 시선에서 끝자악 땅끝은 자식 아닙니까
그 자식들이 다 지옥에 갈 판국인데 지금 누가 누구를 위해서 울어야 하느냐 말이죠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 자기 전부인 자식의 끝을 전혀 모르고서
남을 위해 울고 예수님을 위해 우는 모습을 부모가 자식에게 교육한다고 해서
지금 그 끝을 모르는 자 그것도 부모가 
정작 부모는 모르는 것을
남이 그 부모의 자식의 끝을 알려 줄때에 누가 이 전한 것을 믿었으리요

저 푸른 초원 우에 그 자그마한 소망 품으며 살려는 그 꿈으로 꽉꽉 찬 자들에게
예수님의 떠나야 한다 라는 새마음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구약을 보세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 시키고
그리고 가나안 땅 집어넣는 마치 신약의 완성을 미리 앞당겨서 하는 리허설

생방송 전에 미리 연습하잖아요 가수도 스텝도 미리 이동 경로를 다 짜서 그대로 예행연습 리허설을 하 잖아요

그것을 해도 인간들 곧 이스라엘은 떠나고픈 마음이 없는 겁니다

그림자 곧 리허설도 충성 안하는 이스라엘 인데 본방송도 충성 할 리가 없지요

껍데기는 대따 충성함으로써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사랑 없으면서 생명구하기가 아닌 죽이기 밖에 없으면서 말이죠

떠날 마음이 없어요

그들은 호세아서에서 나누었듯이
북이스라엘처럼 정통 정통 우려먹으면서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는다 그래서 정통따라 나라 이름도 이스라엘이다 라고 해도

떠날 마음이 없기에 더더욱 곤고하게 굳히기를 펼칩니다

레슬링 버티기 굳히기 빠떼루입니다곧 하나님 말씀 붙잡고 말이죠

그러나 구원자 예수님은 그러든 말든 이스라엘 기능 때문에

떠나는 탈출을 감행하십니다

곧 북이스라엘 해체를 통해서 이스라엘 기능 다 했다 라는 겁니다
즉 환자 만들었다 라는 겁니다

의사가 먼저 떠 버린 이상 환자 죄인의 기능을 해야할 이스라엘이 버티기 빠테루 해 본들
뒤집어 엎어 밭갈이 해 버립니다 전복 차가 뒤짚어 져서 배를 홀라당 까발려 보이는 겁니다

그 수치, 모욕적인 구원이 아니면  마귀에게 당해 지옥가는 것 보다 백배 천배 낫습니다
이미 소돔과 고모라 벌써 되고도 남은 겁니다

남유다는 그럼 조금 나은가? 더 했으면 더 했지 오히려 자기들 유다 민족만 남았다 라고
그 선민 의식이 더더욱 굳히기에 들어가지
빠떼루 당한 것을 보고도 모르는 저 가나안 족속이 왜 침범당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 이렇게 북이스라엘 남유다 거 보세요 남유다도 북이스라엘 이름처럼
자기들 지파만이 구원받는다 다 탈락 되고 우리만 남았다 라고 남은자 운동 하지만
사실은 사다리 걷어찬 놈들 더 악한 놈들입니다
이런 놈들 여고냐처럼 포로 잡히게 해야 한다 맣이죠

그래야 그 잃어버림 속에서 환자의 마음 보다
의사의 마음 떠냐야 한다
이 땅은 감염지역 전염병 퍼진 지역 어서 어서 떠나자
아무도 안 떠다는 자들

바깥에서 온 자만이 애달아서 빼내시는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인간들 우껴요 전염병 퍼진 곳에서 믿음 대따 좋은 율법 지키기
남 7번 용서하기 백날 해도 소용 없습니다

나갈 마음이 없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생명구하기를 하는 믿음 곧 질병과의 싸움은 예수님 뿐입니다

죽음이라는 질병과 싸우는 믿음은 인간에게 있을 수 엇어요
죽는 자 속에 있을 뿐 순서 대기표에 따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못 벗어납니다

그럼 죽음을 이긴 자 만이 생명 구하기 곧 탈출을 벌릴수가 있습니다

얼만아 이 땅이 죽음이라는 에이즈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의 뻔데기 앞에 주름 밖에 안됩니다

주님은 이 죽음만 상대하지 인간의 믿음 안 받습니다

얼마나 위험 한가 의사 까지 죽여버랴요
생명까지 죽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허상인 증거는
진짜 생명을 못 죽이는 생명을 생명 답게 오히려 더 또렷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죽음이라는 실체가 거꾸로 들통나 버린 겁니다

죽인다 죽인다 말만 했지 못 죽이네 라고 에수님 앞에서 들통나 버린 겁니다

사망아 누구를 쏘느냐?

어쭈 예수님 앞에서 허사 허구로 들통난 겁니다
육이라는 껍데기
육체를 죽이는 사람을 두려워 할게 아니라
영혼 까지 죽이는 진짜 심판자는 예수님이였다 말이죠

이 에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여사로 여기는 자가 사망을 두려워 하는 겁니다

마치 생명을 구하는 경찰 형사는 두렵지 않고
사람 죽이는 깡페는 두려워 시키는대로 다 하는 겁니다

신고하면 사망에서 벗어납니다 그 깡패들 허구입니다
경찰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합니다
약자 앞에서만 큰 소리 치는 겁니다

그래서 제일 약하고 미약한 민족을 택해서 이 구원을 펼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이제는 모든 깡패 위에 깡패가 된 겁니다

완료 곧 믿음을 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예수님을 보는게 아니라
말씀 그 자체가 되신 예수님을 보는게 아니라

결칩 채우기를 통해서 믿음이 아닌 행함으로 그것을 그들은 믿음이라고 우기면서
하나님 말씀과 성전에 자기들의 결핍채우기 충족하기 빈칸 매구어 넣기를 하게 되니

그 동안 깡패들에게 받은 서러움에 대한 복수심을
깡패 보다 더한 깡패가 되어서 깡패의 본부로

하나님의 집을 성전을 말씀을 사다리 걷어차는 깡패들만이 하는 짓들을 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이 세상이 얼마나 죽음이라는 병에 물들여 있느니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음 조차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리스도의 말씀
인간들이 붙잡은 하나님의 말씀은 도리어 사다리 걷어차기에 동원이 된 겁니다
자기들 탐욕 자기를 위한 우상숭배에 동원이 된 겁니다

그러나 너희가 더럽히지 못한 기념 이름처럼
주님께서 숨겨둔 아껴둔 이름 그 비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하나님 말씀 달인 성경박사도 모르는
비밀의 이름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생명구하기 곧 탈출 시키기 죽음으로부터 사망의 왕 노릇으로부터
사다리 걷어차기로부터

아마 더 아루었고 땅끝까지 너희들 죽음 그 끝자락까지 다 이루었기에
이제 그 승리의 증상을 누리는 일만 남았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비밀에서 비밀로 이어지는 믿음의 말씀이지

행함의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 비유는 사 복음서애 있지만
사도들의 증거에서 비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냐 말이죠
놀랍게도 다 모조리 다 비밀 비유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언어이기에

행함의 달인 바리새인들 그 성경 박사들은 전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마치 암호 같아요

너와 나만 아는 암호 싸인 

사랑한단 말이야 가나다라 마바쌰  사랑의 언어이니
비밀잠금 상태입니다 사랑 받는 자만 알아먹지

행함으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는 자들에게는 어차피 잠긍장치가 되어 있어서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그 다윗의 열쇠가 없으면 못 보는 겁니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두루마기를 봉인해제를 못해서 울 잖아요
아니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의 비밀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없으니
안 울고 배기겠습니까

그 정도로 울어야 할 판국인데 열어달라고 부르짖어야 할 판국인데

다들 배불러서 예수님 십자가 지는 것 보고 안따갑꾸나 청년
괜히 권력자들에게 까불어 밋 보여서 개죽은 당하는 구나

주님 싹 째려 보시면서 날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지금 너가 살고 있는 땅이 죽음의 바이러스가 퍼진 곳이야
왜 떠날 마음이 없니 왜 부모로써 자식의 생명을 구할 마음이 없니

솔로몬 재판의 한 어미는 자식을 살릴 방법이 없어서 웁니다
이 단절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어미는 자기의 정당함만 찾으면 끝입니다 그래서 박수를 집치나

그런데 문제는 왕입니다
지혜는 이 죽은자를, 천한 계집을, 죽은에 갇힌 양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자를

왕비의 자리에 높이고 생명의 자리에 높이고자
지혜라는 인물을 그 죽음에 뛰어듭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생명 다움입니다

사다리 걷어차는 자들이 아니라 죽어가는 저들에게
생명의 밧줄을 던지는 겁니다

이미 던져졌고
다 이루었습니다

이 증상을 누리는 믿음의 세계를

언어도 엇이
소리도 없이

이미 다 퍼졌고
이미 다 알아먹는 언어도 없엇는데 다 알아먹는

저 모든 피조물들로 인해서 다 퍼진 생명구하기릐 참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를

인간만이 죽기를 무서워 평생 종 노릇해서
빠져나올 마음 조차도 생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 에게

매일 매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부르짖으면
모든 피조물이 누리는 생명의 진리를

왜 그 동안 이 완료를 못 누렸는지
내가 잡아먹는 멸치는 그 동안 누렸는데
내가 못 누리라고 잡아먹듯이 먹었으니
멸치의 지혜 보다 못했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만물의 영장이니 선민이니
전작 짐승 보다 못한

아니 짐승도 지 애비 어미를 알아 보는데

낮은 밤에게 밤은 낮에게
해는 달에게 달은 해애게

다 알아먹는데 어서 탈출 시켜 달라고
떠날 마음이 있는데
어서 심판해 주소서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고 출세상을 외치는데

인간들만 지 애비 지 어미를 못 알아먹고
창조주가 누군지도
여호와가 누군지도
그 버릇 대로
예수님이 누군지도

하나님 말씀은 대따 꽉꽉 채우는 도사 달인들은 념쳐나는데

정작 생명을 살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채운 자는 아무도 없는
그 비밀 그 비유 그 수수께끼를 까까득 아니 많이도 아닌
단 한 개도 채우는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도 이미 다 이룬 주님의 믿음대로 밀어붙이심 덕분에

우리가 나은 겁니다

이 의사를 환자복 입고

여러분 생명을 구하는 자입니다

안식일에 우물에 빠져 갇혀버린 자를 세상에나 아무도 건지지 않는
안식일에 구하는 자 있습니다 라고

문둥병자 쫓아내는 안식일 지키는 교회 앞에서 외치는 겁니다
그 땅끜 그 죽음 그 종말의 상황에서

이 생명을 구하는 자를 당당히 외치는 겁니다

그 정도로 기쁨의 희년이니까 말도 못할 생명의 펄떡 펄떡 힘 넘치는
생선의 널 뛰는 생명력이니까

죽음 마저도 너끈히 말이죠

우리는 죽음 아래 갇혀 뛰지도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뛰었네 걷고 폴짝 폴짝 얼마나 신이 났으면 춤추고 찬양하고
안 기쁘고 배기느냐 말이죠

비로소 떠나는 겁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라고 이미 완료를 선언하는 복음 전쟁입니다

이 완료를 누리는 자가 더 이상 그림자 놀이 결핍 채우기를 쓸데 없는 그 안개잡기 놓이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신나게 춤추다 바지 벗겨진 다윗을 비웃던
왕 참 꼬라지 참 좋다 던 사울왕의 딸 미갈이

결국은 생명을 누리는게 아니라 영원한 결핍이라는 불임에 놓여지니

왕비 껍데기 왕관만 반복합니다

어미의 기쁨 생명의 기쁨 젖을 물리고 자식을 고통속에서 잉태한
생명 구하기의 기쁨
여자는 고로 아이를 낳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생명 구하기의 기쁨을 못 누리고
결핍과 껍데기로만 의문의 반복하는 겁니다

그 생명을 껴안고 내가 너를 낳았다 라는 
내가 너를 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라는 예수님의 기쁨망이

그 의사의 기능만이

우리를 선지는 샘명의 길입니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 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 했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