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 말과 지혜가 아닌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된 자들 (고전 2; 1- 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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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1 말재주와 탁월한 지혜가 아닌 십자가만 증거함과 알기로 작정한 자들 (고전 2; 1- 2)
2025. 11. 23.   ( 10 월  30 일, 녹음 )

어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고전 1;25-31)
고린도 전서 2025 2025. 11. 1. 22:01
25-010 어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단절, 누락, 차단의 거룩한 성령) (고전 1;25-31)

〈고린도전서 2; 1- 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5쪽, 찬송가 539장 새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가 367장 새 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찬송가 488장〉

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찬송가 488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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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찬송가 48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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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2.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3.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찬송가 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새찬송가 341장〉

찬송가 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새찬송가 341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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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 영화 모두 잃어 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 복을 얻겠네

2.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되 예수 진실하도다 
   예수 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뵈시면, 원수들이 미워하나 염려 할 것 없도다

3. 내가 핍박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 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 외에 기뻐 할 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하니 기뻐  할것 뿐일세


〈고린도전서 2; 1- 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5쪽〉 

(고전 2:1, 개역)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개역)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1, 현대어)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갔을 때 나는 어려운 말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전 2:2, 현대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위에서 맞은 그분의 죽음 외에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함과 십자가만 증거한다 라고 하니까
얼마나 멋져 보입니까

그러나 막상 이 십자가를 현재에 적용하게 되면
온 주변으로부터 밉상을 당하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한테 서로의 위로는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교회 사람들이 핍박을 더 심하게 하는 것을 격게 됩니다

아 일반인인 교인들이라서 자기 유익을 쫓다 보니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목회자나 교역자들 뭐 전도사 부목사 또는
일반 교인들의 대표자들인 원로들 곧 장로 권사들은 나이가 있으니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들이 더 정치적으로 몰아서 더 적극적으로 핍박을 하더라 말이죠

그것이 눈에 확 띄이니까 청년들이 발길을 끊어버리지요
아무 간섭도 없는 레크레이션이나 발달이 된
심심하면 돈 모잘란다 라고 징징거리지 않고
부담도 주지 않는 대형 교회 재벌 교회에 가야 여자 아이들과 놀수 있는
그런 환경과 그런 상황을

교회 처음 다니기 시작 하면서 2-30년을 보면서
그런 무한반복된 의미없는 것들을 격게 되어 보니
강도의 소굴이 아닌 교회가 없더라 말이죠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중소기업에 해당되는 중간 교회는 중간교회대로
아주 작은 개척교회는 개척교회 대로
그 탐욕의 우상숭배가 아주 말도 못할 정도로 가관을 이루더라 말이죠

목사에게 기대 걸다가 나락 갈 판국일 정도로
더 했으면 더 했지
도대체 말씀과 맞는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있는게 없더라 말이죠

즉 십자가 자랑은 오늘날 교회에서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이
제가 격었던 교회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교회는 뭘로 장사를 하는 것일까요?
네 말씀 그대로입니다

말재주 그리고 탁월한 지혜 소위 종교성과 철학들이지요

웃음 치료 전도사 레크레이션 강사
이런 처세술이 판을 치더라 말이죠

오죽 하면 제가 직접 들었는데
주변의 환경이 어두 칙칙하지 않고 밝게 하면 마음도 밝아진다 라고

이게 소위 경산의 극우들의 본부인 교회가 이런 것들로 사람들을 현혹 하고 있더라 말이죠
동성애 반대 운동이나 하는 정치집단이 글쎄 교회이더라 말이죠

이게 무슨 십자가만 알기로 한 것일까요?


사도바울이 괜히 이런 말을 한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즉 사도바울은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라고 뻔뻔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왜 뻔뻔하냐 하면 삼초 전 까지만 해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듯이

십자가가 주인공이 되어서 꽝 하고 두 자동차가 꽝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꽝 박아 충돌로 박살이 나버려 기경 밭갈이 당했듯이
방금 충돌 직전 까지만 해도

사도바울 본인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 문하로써
즉 최고의 대학 대학원 최고의 점수 수석 졸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마치 철학자 중의 철학자처럼

바로 말의 재주와 탁월한 지혜 지식의 달인으로써
그 동안 말씀을 증거해 왔는데

십자가와 조우 즉 직접대면하고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됨을 격게 되어 보니

즉 실상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만나 보니

저런 것들이 다 헛짓이요 육의 자랑이요 우상의 탐욕인 인간 개인 구원을 위한
종교오락 놀이 얼라 빵깨이 소꿉놀이 어린아이의 일인 그림자놀이 장난이였다 라는 것을
알았다 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종말이라는 세상 끝 시공간의 역사 끝인 종말에서 땅끝에서
용광로 속에서 그 절대심판이라는 십자가의 저주 속에서
불순물 오예물 찌끄래기가 다 타버리고
그림자가 아닌 실상인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화목제로 인해 다시 싸매어 주심을 격게 되니
용광로 속에 들어 갔다 나와보니 불순물이 제거가 되니

그야말로 얼마나 헛짓을 해 왔었었었던 것인지
그카이 바울의 눈에는 십자가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온 자의 눈에는

교회야 말로 유대교야 말로 사탄의 회가 아닌게 아니다 말이죠

비록 본인이 방금 전까지도 몸 담아서
그것도 그냥 아니지요 최전방의 전사로써
예수쟁이들 다 죽이겠다 라고
가장 앞장을 섰던 그 당사자가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다들 어리둥절 할꺼 아닙니까
방금 전 까지도 그런 말재주 탁월한 지혜에 안 맞는
예수쟁이 스데반을 본인 당사자가 죽여놓고서
이제는 그런 사상 이데올리고 그런 신앙을 우상시 하다니

이제 도로 스데반의 운명처럼 본인이 죽어야 할 판국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줄 뻔히 알면서도
이 십자가만 알기로 자랑하기로 작정했다?

이 모순의 간극을 이 빵구멍 난 배를
더더더 벌리라 라고 대 놓고
핍박받는 자리
심지어 교회로부터 그 당시로 치면 유대인으로부터
돌삐 맞아 죽을 그런 소리를 한다?

이게 말이 되냐 말이죠

오늘날 이런 사람 교회에 나타나면 당장 교회사람들은
이런 자를 죽일려고 떼거지로 달려 들게 뻔하다 말이죠

장사 못하게 방해하는 자를
자본 주의에서는 있을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요

심지어 그것이 법에도 되어 있다 라고
국민 무슨 권이라 했더라? 아 국민저항권
즉 법을 들고 나왔다 라는 말은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라는 그 의식 자체가
그것이 바로 법과 법 사이의 약점 아닙니가
검사들이 저항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조폭들이 강도들이 따로 업쇼
그 만화 그림이 생각나네요 검사들이 칼을 쥐고 석렬이 기차 타고
막 휘두르는 그림
그 그림 내리게 할려고 얼마나 발악하던지
칠레에서 뉴스 기사 내릴려고 압력을 가하던지
그런 정치가
촌구석 개척교회에서까지도 벌어진다는 겁니다

괜히 그런 사태를 만연하게 세상 구석 구석으로 퍼트리신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도록 하신거다 말이죠
거기에 미리 매 맞은 사도바울은 그야말로 운이 좋은 거죠
운이라고 하면 안되지만
그것이 또 말 재주 탁월한 지혜이 사고방식이지만
오죽 하면 이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즉 국민저항권
십자가저항권을 펼치는 자는 운도 지지리도 없는
눈 앞의 이익만 당장 누릴뿐
지옥에 가도록 주님이 조치한 사건에
올무에 걸려 들었고
미끼를 덮썩 물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아니 자신이 진급을 하고 성공을 하고
누가 더 크냐 라는 싸움에서 이길려고 한다면
그 미끼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
안 물어버리고는 못 배기는 거죠

말에 있지 않다 라는 것은 모든 종교는 속임수 말빨이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행함을 실천을 하라는 말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게 유대인입니다 유대인 유대교란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하는 집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적을 구하는 겁니다

(고전 4:20, 개역)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 독립운동가가 바로 가룟유다 아닙니까
가장 열심인 자가 배신자 일 수밖에 없는 이 간극을 인간 쪽에서 좁힐 방법이 업습니다
그것을 알아라고 준 것이 율법인데
율법 마저도 껍데기만 지키지 율법의 능력을 거부
은혜를 무시하고 모독하더라 말이죠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살인하지 말라가 살인을 하는
그것도 하나님을 죽이는 율법을 주신 주님을 말이지요

즉 유대인들은 아무리 완벽하게 지켜도 껍데기 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땅끝 용광로 종말의 영인 성령을 새마음 새영 정직한 영을 거치지 않고 나오니
찌기 오예물 혼합물이 잔뜩 끼어 있는 겁니다
정금 순수물이 아니다는 거죠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2:5, 개역)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후 13:4, 개역)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딤후 1:8, 개역)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벧전 1:5, 개역)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가 고린도전서 앞선 1장에서 배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사다리를 놓아주심이라 라고 말이죠

즉 상대적인 유대인들의 경건의 모양 껍데기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모습이다 라고
에스겔 말씀과 마침 딱 맞닿아서 그렇게 대조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지들은 좋은 꼴 풀 뜯어먹고도 주님의 긍휼로 말이죠
남들은 풀 못 뜯어먹도록 발로 밟아 버렷다
지들는 주님의 음료를 마셔놓고도
남들이 못 마시도록 목마른 목을 못 축이도록 발로 밟아 버렸다

이것이 신약에 그대로 나옵니다
아니 언제 주님이 목 말랐고 언제 주님이 헐 벗었고
언제 주님이 배고픔으로 주리셨습니까
진작 카지 우리 이웃돕기 달인들 아닙니다
신땡지 신흥 이단들이 여신도들을 그렇게 꼬시면
남 돕는 재미에 빠진 여성들이 거기에 올인 올빵합니다
전형적인 우을증 환자 만들기입니다

가스라이팅 시키는 방법이지요 남 돕기의 달인 만들기
그것이 인정욕구 투쟁입니다 누가 누가 잘하나
목사새끼들이 이 싸움 이 경쟁 붙여 놓으면 저절로 돈을 챙기게 됩니다

다단계 판매가 그런식 아닙니까
암땡웨이 판매가 교회 중심 아니 종교 천주교 절간 중심으로 한참 유행할때에 그것도 벌써 30년 전 일이다 ㅋㅋㅋ
그들의 책자를 보게 되었는데 천주교의 계급 구도를 그림 그려서 설명하더라 말이죠
그거 하나만 봐도 이미 세뇌 당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더라 말이죠

이제는 모든 판매방식이 이래도 저런 구조시스템 캄보디아 보이싱 피싱 조직구도와 같죠
암땡웨이가 저런 식으로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정수기 판매 조직 구도도 저런 식이고
다단계 말이죠 이런 방식이 다락방이단이 그렇게 하더니 그 다음 신땡지가 저렇구
요즘 신땡지는 아예 대학가에 각각 동아리 속에 잡입해서 한다 라고
이름 걸고 했다가는 다 쫓겨나니까 말이죠
점조직 스펨조직처럼 말이죠

이제 모든 기독교가 다 이런식의 구조를 편성하더라 말이죠

그카이 국민저항권 외치면서 뒤로는 통신판매를 하는 거죠

그냥 장사집단 돈장사 사업입니다 트럼프 장사꾼처럼 돈 빼앗는 깡패인거죠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합니다
가룟유다에게 너가 맡을 일을 어서 하라 라고
그래야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니까 말이죠
트럼프가 곧 죽을 나이에 왜 저렇게까지 자기 의를 쌓는 그 헛짓에 목숨 걸까요
진노의 그릇이기에 진노의 그릇 답게 죽으라고 합니다
아무 의미 없는 죽으면 그만인 것을 왜 의미있는냥 미친 듯이 말이죠
대 놓고 보이는 트럼트도 저러는데
국민저항권 외치는 내란세력들
지가 하고 싶어서 하는 놈 없어요
트럼프처럼 불안하기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고 있음을 티 낼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기에
육체의 소욕 대로 할 수 밖에 없어요
존재 보다 당위가 먼저 앞서거든요
존재 이전의 기능이니까 말이죠

반드시 성령의 소욕과 한 세트가 되고자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한 언약 때문에 계시 예언 약속 때문에

반드시 에돔은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그 티를 지옥 백성 다운 티를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도록 티를 팍팍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가룟유다가 맡은 바 그들의 일이기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당위 곧 마땅히 할 수 밖에 없다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존재 이전의 기능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말에 속임수에 그 종교성에 목숨 거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말에 있지 않는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능력 곧 고난이지요
그카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겁니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말이죠 요구하는 그 요청에 부흥하는 부합하는
그카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유대인들을 장악한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즉 오늘날 교회 기독교도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다 장악 당했다는 증거죠

또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한다 라고 했을때에
지혜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는
미련하거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겁니다

천재와 사도바울의 차이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의 차이는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충성한
아무 상관이 없는 생판 남인 타인을 위하여 죽는 겁니다

아니 생판 모르는 자요 상관도 없는데
그 타인을 위해 죽는다고?
내 죽을께 너 살아라 라고

이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게 어디 있습니다
그래야 지혜 그것도 탁월한 철학자 중의 철학자
철학자들의 아부지 라고 최고의 경지에 오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처럼 말이죠
그런 지혜를 추구하기 바쁜데 어라 정반대의 길인
남을 위해 죽고자 오셨다 라고?
그것이 사다리를 놓아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죽음이요 고난이다 라고
그게 무슨 능력이고 능욕이지
남을 위해 능욕 대신 침뱉은 당한다 라고?
이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라꼬?

그 무시 당하는 길 그 능욕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 이다 라고

인간 쪽에서 십자가로 다가갈려면 천로역정이나 천국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겠다 라는 
중세의 인기 있는 유행 종교성은 모조리 다 자기자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자기 의 쌓기이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한 것이 아니지요
경건의 모양 껍데기이지
경건의 능력인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즉 인간 쪽에서 하늘로 걸어사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기 때문에
십자가를 자랑 아니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꼭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 자기 쪽에서 십자가를 증거하겠노라
십자가를 지고 가겠노라 라고
사학재단 사수 하겠다고 목사 새끼들이 큰 나무 십자가를 제작해서 제일 밑에 바퀴를 달아야
끌고가는 퍼포멘스가 되는데
바퀴를 달지 않으면 끌고 나아갈수가 없다 말이죠
자꾸 퍼트리고자 운동력을 보여야 하는데
바퀴 안 달면 퍼지지 않고 신문에 나지 않는 이슈화가 되지 않아요
무슨 무슨 운동이 될려면 바퀴를 달아야 해
그따위 흉내가 바로 말에 있는 껍데기 이다는 거죠
그카이 인간의 모든 말씀실천이나 믿음들은
다 껍데기입니다 말에 있습니다 말재주입니다
즉 속임수 꾀임이다는 거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능력을 나타내보이겠다 라고 나서는 놈 다 사기꾼입니다
십자가에 태어난 게 아니라
십자가를 향하고 걸어가 하늘 끝까지 세상 가요를 부르는 무당 짓만 하겠다 라는 겁니다
데몬 헌터스 게데몬이 되겠다 라는 놈들이다 말이죠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는 십자가를 증거해야지 해서 증거하는게 아니라
증거하기 싫어도 태생 자체가 십자가에서 태어났기에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십자가가 튀어나오는 겁니다

기도를 해서 기도의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기도의 사람으로 태어나버렸기에
아무리 기도하기 싫어서 안해도
주변 사람들이 당신은 기도의 사람 맞군요 라고 귀찮게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이 자기 죽을까봐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으로 속여서
인신매매범처럼 팔아버렸는데
열국의 어머니로 태어난 사라가
인신매매범 오빠 아브라함으로부터 팔림 당한다 라고 해서
팔려질까요? 오히려 애굽 족장이
너의 아내 감당이 불감당이다 라고 도로 내어주잖아요

즉 열국의 어머니가 될려고 해서 나오는 것은
말 재주와 같은 속임수입니다
그런 속임수는 하갈과 같은 그림자만 나오며
이스마엘와 같은 울리는 꽹과리만 나오는 겁니다

이슬람은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쳤다 라고 하던데
서로 옳게 만들려는 말제주 곧 속임수 인 거죠
제가 이래 말했으니 이슬람으로부터 이제 사형깜
명예살인에 해당되는 살생부
노상원수첩에 1순위가 되는 거죠 뭐 ㅋㅋ

쥴리 오빠의 수첩에 말이죠

그런다고 생명책에 지워질까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는데

감사하기 싫어도 감사로부터 태어나버리니까
다들 어 너 감사의 아들이네
십자가의 아들이네
기도의 아들이네
기쁨의 아들이네

범사에 감사하면 그때 감사가 아니라 그렇게 디면 감사의 조건에 맞으면 감사하겠다는 거죠
그러니 모든 종교 유대교든 기독교는 말로 사기를 치는 겁니다
감사하면 감사가 돠어진다 라고
주변을 밝게 하면 마음도 밝아진다 라고 이런 처세술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앉았으니
그 목사놈의 목을 따 버려야 한다 말이죠
여럿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소경이니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성경에 무당들의 특징이 죽어야 할 자기는 안 죽고 살리고자
살아야 한 주의 선지자를 죽일려고 염불을 외운다 라고
그게 그들의 기도인 겁니다

곡식을 하늘의 여신에게 버치는 것을 멈추지만 않았더라면
뚝 떨어져서 그만 멈춰 버렸는데
멈추다 보니 북이스라엘이 쫄딱 망했구나 라고
이게 북이스라엘의 고백이다 말이죠
오늘날 교회의 고백기도와 같죠
아니 망하면서도 망하는 이유도 모를 정도로
그들의 귀와 눈을 가리신 겁니다

(렘 7:18, 현대어) 어린아이들은 땔 나무를 줍고 남편들은 불을 피우고 여인네들은 가루로 반죽을 해서 떡을 굽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인네들이 하늘의 여신이라고 섬기는 바벨론의 샛별 여신 ㄱ) 이쉬타르에게 제물로 바칠 떡이 아니냐? 또 그들은 온갖 다른 신들에게도 포도주를 따라 전제로 바치고 있다. 그들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그토록 온갖 짓들을 다하고 있다. (ㄱ. 가나안의 풍년신 아스다롯과 같다)
(렘 44:17, 현대어) 우리는 여전히 하늘의 여신을 섬기며 이미 그 여신에게 서약한 대로 행동하겠소.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 우리의 임금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대로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성읍에서 바로 그 하늘의 여신을 섬겨 왔소.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 여기서 계속 그 여신에게 제물도 살라 바치고 전제도 따라 바치겠소. 우리가 그 여신을 잘 섬기던 때에는 언제나 우리의 모든 일이 잘되었으며 배고픈 적도 없고 전쟁이나 전염병에 시달린 일도 없었소.
(렘 44:18, 현대어)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 바치는 일을 중단하고부터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고, 마침내 안팎으로 전쟁과 굶주림을 당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몰살을 당하게 되었소'
(렘 44:19, 현대어) 그 곁에서 있던 여인들도 똑같이 빈정거렸다. '우리가 언제 남편들도 모르게 하늘의 여신을 섬겼소? 우리가 그 여신에게 제물을 살라바치고 전제도 따라바치며 그 여신의 모습대로 떡을 만들어 바쳤을 때에 우리의 남편들은 완전히 우리와 한마음이 되어 있었소'
(렘 44:21, 현대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뒤집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유다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에서 하늘의 여신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행동때문에 바로 여러분이 재난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조상들, 여러분의 왕들과 지도층에 있던 사람들, 이렇게 온 백성이 우상을 섬겨 재앙을 불러들였습니다. 온 백성이 주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주께서 여러분에게 형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게 오늘날 모든 교회의 반성문이다 말이죠
제물 바치는 것을 멈추는 바람에 망했다 라고

성화론의 성화를 멈추는 바람에 망했다 라고

이것이 말 재주를 끝까지 말의 속임수를 끝까지 붙잡고 손 놓지 않는 겁니다

헬라인의 지혜를 추구함과 같지요

하나님의 능력인 원수를 7에 70번 사랑한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니면

어리석고 미련하다 라고 뒤짚어 씌운 그 어리석음과 미련함인
누워서 침뱉기 라는 속임수에 그 울리는 꽹과리에 못 벗어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는 다짐과 말로 자신을 수십번 주문 외우듯이 외워서
옴마니반메훔 종교마다 그런 주문들
심지어 주기도문 10번 외우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라는 그거 역시나 중언부언의 주술 주문 마술 수리수리 마수리 라는 말재주인 것이지요

그렇게 주문 외우듯이 해서 십자가만 알기로 한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기에
그런 천재와 다른 공무원으로 태어나버렸기에
국가 공무원 시험을 쳐서 자격증 따서 공무원이 된게 아니라 그건 천재이고

그 반대인 예수님 나라 십자가의 나라가 공무원으로 삼아버려서
십자가에서 태어나버렸기 때믄에
십자가를 아니 외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그 카이 저 따위 속임수를 다 거쳐봤기 때문에
그 속임수를 타파 하면서 그 내막까지도 속 속 다 까발려주는 겁니다

우리는 줘도 못 먹을 정도로
십자가 나라의 언어를 번역해야 하지만 말이죠
그 십자가늬 나라에서 태어나 버리면
바울처럼 아 그 소리가 그 소리임을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겁니다

말이나 지혜가 아니니까 말이지요

벙어리도 귀머거리도 다 아는데
본다고 소경 아니다 라고 하는 자가 모르고
들을 중 안다 라고 하는 자들이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겁니ㅏ
백날 언어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백날 해서 최고봉의 학문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도 말이죠

일자 무식만이어도 아는 겁니다

그 카이 십자가를 자랑해야지 다짐하고 실천해서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그것 역시나 말과 지헤로 하는 속임수 껍데기 이고

저절로 십자가에서 태어난 증상물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감기이지만
감기에 걸리다 보나 콧물 두통 다 나오잖아요 눈에 보이잖아요
그게 증상물이듯이
그렇게 저절로 십자가가 내 속에서 감기처럼 작용하다 보니
십자가가 잉태한 자가 맞구나 라고 주변에서 말 할 정도로
그 능욕을 그 고난을 당하는 겁니다
네 바로 이겁니다 행하는게 아니라 하는게 아니라
당하는 겁니다
기도 하는게 아니라 기도 당하는 겁니다
이거시 기도 하는 자 즉 기도 지키는 자와
기도의 사람으로 태어난 기도의 증상물 기도 당하는 자의 차이입니다

십자가를 증거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내가 아니라
십자가 스스로 함에 있어서 나는 스피커
광야의 소리로 당하는 겁니다

기존의 속임수들과 차이가 나는 능욕을 당하면서
불과 함게 동행하면서 말이지요

말재주는 반드시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주렁 주렁 따르지만
능력은 그림자가 아닌 실상이라서
도로 그 이전부터 친한 친구도 다 짐싸들고 다 도망칠 정도입니다

채로 걸러냅니다 두 며느리 중 첫째 며느리는 벌써 짐싸고 도망 갔다 말이죠
둘쩨 며누리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사다리를 놓아주심에 올라탄 겁니다
그 보이지 않는 감기라는 원본 뿌리는 그 근원지 고정자리는
십자가 속보인 예숭님의 족보였다 말이죠

이 전능자 라는 괴롭히는 하나님이 분명히 있는데
인간들은 유대교는 말 재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외쳐서
북이스라엘처럼 하늘의 여신에게 망했어도 대출 받아 계속 드렸더라면 안 망했다 라고
여전히 망하는 이유도 모르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외치면서
금을 성전에 바쳐서 빨리 이우러지지 금을 바치지 않으면 더디 아주 느리게 느리게 이루어진다 라고 이것이 그들의 신앙 트릭법칙으로 보편화 될 정도로
속임수의 본부 강도의 본부가 그들의 성전이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거 깨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피 용서는 없지요
양다리 걸치려는 자들이 어디 한 둘이겠습니까

괜히 여리고성과 아이성이 한 세트로써의 두언약을 이루는게 아니거든요

괜히 아간의 범죄가 주님의 일과 한세트로써의 사람의 일로 대비를 이루는게 아니거든요

괜히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는게 아니거든요
반드시 두언약의 한 세트가 약속성취 말씀완성이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로써

환자의 자리에서 의사를 외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십자가는 건강한 자 의인들이 자랑치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십자가는
주께만 범죄한 죄인 만이
환자만이 의사를 외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예 고정 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들 반대되는 자들 또한 고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의인과 건강한 자는 십자가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말재주로 결국 자기 인기를 끌어
자신을 고정하는 말재주만 펼치도록 되어 있기에

원수를 사랑한 용서한 7에 70번 용서 보다
남을 7번 용서한 고정된 자신의 의를 높이도록 되어 있음을

그 속임수의 달인이였던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로써 증거 합니다

죄인 중의 괴수의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아무도 안 듣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놀랍게도
사기꾼 목사들이 듣고 따라하면서

죄인 중의 괴수가 되는게 아니라
또 의인이 되는
미끼를 물어서 자신의 자리를 고정시키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는 자가 없음을 보여주심을 통해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뭘 해도 가짜요 뭘 해도 거짓이며
뭘 해도 죄인 중의 괴수며
뭘 해도 화로다 화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지옥의 몸임을 앎으로써

긍휼이 없음을 유일한 긍휼의 그릇되신 예수님을 보고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제발 긍휼히 여겨 주소서
제발 이 죽은 자를 살려주소서 제발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을 부어주소서 라고


이것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임을

아무리 봐도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이다 선민이다 라고 하는 자는
말 재주 뿐이였고

십자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지옥의 몸임을 아는 자는
이 심판 속에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고
주여 정직한 영이 생명이 없음을 불쌓히 여겨 주소거 라고 외치는 자는

너가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가 맞구나 라고
팔을 어긋맞게 하시는 겁니다

숨만 붙어 있기만 하고 좀비 짓만 하는게 무슨 생명입니다

그 모든 그림자 어두움을 물리치신 나 같은 어두운 소경된 자를 고치신 주의 이름을

아무리 말려도 말려도 막을 수 없는 그 이름을 부르짖도록 하시는

여리고의 소경처럼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고래 고래 고함치니까

제자들이 시끄럽다 라고 말리듯이 막아셔려 했지만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를 말릴수가 없었던 겁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는 한 왕
다윗을 주시겠다 라는 말씀을 믿은 자는
도리어 여리고의 소경이였다는 겁니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 쳤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 쳤네

이 소경이 바로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였기에

십자가만 자랑 하는 자였다는 거죠

바울이 이 십자가와 꽝 하고 박아서
교통사고로 입원해 결국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와의 충돌 덕분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로지 십자가만 자랑 할 수 밖에 없는 자로써

남들에게도 십자가에 꽝 하고 박아서 교통사고로 죽으라 라고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게 다시 살라꼬 말이지요 zzzz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우리가 정작 심각하게 여기는 말재주로 돈 벌고 종교장사하고
탁월한 지혜로 생존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 그림자 놓이에 손 떼고 실상은 십자가 이다 라고
십자가라는 대형트럭으로 급발진으로 다 죽게해서 다시 십자가로 태어나게 함으로써

이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했다 라고 목숨 걸어 심각하게 외치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 개인의 생존 먹고사는 개인 구원이라는 그 따위 그림자
그런 종교오락
아이들의 장난감놀이 얼라 짓들은

이 사망 권세만을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허구로만 그림자의 속임수로만 취급 당할 뿐입니다

이 십자가가 떳기에
그 푯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목숨 걸때가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행함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태어났기에 저절로 돌아가고픈 본향이 있기 때문에 말이죠

철저하게 나그네 라는 머리 둘곳 없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고난 덕분에 산 소망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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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7 돌감람나무를 고난(상처, 죽음)에 접붙여 살리는 참감람나무 (롬 11,13-18)
2025. 11. 30.    ( 11 월  6 일, 7 일, 녹음 )

(마 16:21, 개역)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막 8:31, 개역)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눅 9:22, 개역)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로마서 11,13-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찬송가 318장 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찬미예수 2000 - No.737 무화과 나뭇잎이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위에 계신 나의 친구 (찬 97)
죄인 괴수 날 위해 (찬 100)
〈찬송가 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소리 , 새찬송가 528장〉 
종려나무 / 길위에종려나무가지와 [F. H. Martens 작사, J. B. Faure 작곡]

 

길 위에 종려나무 가지와
화려한 꽃송이를 뿌리면서
주님을 모두 나와 맞으라
눈물을 씻어 주는 주님을
찬미하세 주의 이름
만민 다 노래하세 영광 돌리세
호산나 주 찬양해
우리를 구하신 주 은혜 찬양하라

주님의 복된 말씀 듣고서
불쌍한 만 백성이 자유 얻어
온 세상 평화롭게 되오니
암흑이 광명으로 되도다
찬미하세 주의 이름
만민 다 노래하세 영광 돌리세
호산나 주 찬양해
우리를 구하신 주 은혜 찬양하라

오 복된 예루살렘 자녀들
해방의 종 울린다 기뻐하라
무한한 사랑 베푼 주 예수
믿음과 참소망을 주시네
찬미하세 주의 이름
만민 다 노래하세 영광 돌리세
호산나 주 찬양해
우리를 구하신 주 은혜 찬양하라


찬미예수 2000 - No.1516 포도나무

예수님은 생명의 참 포도나무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이니
가지들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낌없이 찍어서 던지시리라

포도나무 가지는 너희들이니
살아있는 원줄기 내 몸에 붙어
잎도 피고 꽃피워 열매를 맺자
주렁 주렁 소담한 포도송이를

사랑하는 가지야 내 안에 있어
무엇이나 원하면 이뤄지리니
씩씩하게 자라고 높이 뻗어서
하늘나라 열매를 많이 맺어라


주 나의 사랑 (320)

1. 주 나의 사랑 나 주의 사랑 
   그 사랑은 내 기쁨
   주 나의 사랑 나 주의 사랑 
   그 사랑은 내 기쁨
   주 나의 사랑 나 주의 사랑 
   그 사랑은 내 기쁨
   그 사랑은 내 기쁨

2. 주 나의 목자 나 주의 양
3. 주는 포도나무 나는 가지
4. 주 나의 신랑 나 주의 신부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1264)

1.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나님의 사랑안에
   믿음 뿌리 내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2. 주의 시절을 좇아
   구원 열매 맺으면
   주의 영화로운 빛
   너를 보호하리니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바디매오, 마가복음 10:46-52 여리고)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심 (요한복음 9:1-7)
벳새다의 맹인을 고치심 (마가복음 8:22-26)

한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오 ~~~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오 ~~~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니 내게 오라


(롬 11:13, 개역)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개역)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개역)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롬 11:16, 개역)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 11:17, 개역)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8, 개역)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롬 11:13, 새번역) 이제 나는 이방 사람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니만큼, 나는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롬 11:14, 새번역) 나는 아무쪼록, ㉥내 동족에게 질투심을 일으켜서, 그 가운데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하고 싶습니다. / ㉥그, '내 혈육'
(롬 11:15, 새번역)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심이 세상과의 화해를 이루는 것이라면, 그들을 받아들이심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삶을 주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롬 11:16, 새번역) 맏물로 바치는 빵 반죽 덩이가 거룩하면 남은 온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그러합니다.
(롬 11:17, 새번역) 그런데 참올리브 나무 가지들 가운데서 얼마를 잘라 내시고서, 그 자리에다 돌올리브 나무인 ㉦그대를 접붙여 주셨기 때문에, ㉦그대가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을 함께 받게 된 것이면,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롬 11:18, 새번역) ㉨그대는 본래의 가지들을 향하여 우쭐대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그대가 우쭐댈지라도,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마 16:1, 개역)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 16:2,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마 16:3, 개역)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4, 개역)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마 16:5, 개역)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마 16:6,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 16:7, 개역)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마 16:8, 개역)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 16:9, 개역)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마 16:10, 개역)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마 16:11, 개역)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12, 개역)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 16:13, 개역)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개역)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개역)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개역)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개역)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개역)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개역)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마 16:21, 개역)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개역)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3, 개역)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4, 개역)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5, 개역)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개역)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7, 개역)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못 맺으니까 말라버려라 라고 예수님이 저주한 사건 아시지요?

(마 21:19, 개역)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 21:20, 개역)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마 21:21,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4:32, 개역)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또 마태복음 25장에 무화과 나무 비유도 하셨구요

예수님이 곧 성경이 이렇게 비유를 말씀하신다 라는 것은
인간은 듣고도 보고도 깨달을 수 없도록 하시는 단절성으로써
혹시나 깨달을 까봐 걱정을 하실 정도로
비유의 고유성 즉 본래 취지가 계속 유지가 되어야지
곧 수수께끼가 풀리면 안된다 라는 겁니다
원인 없는 결과 로써의 비유요 수수께끼 인데
풀려 버리면 원인 있는 결과가 되어버리니까
또 인간은 자기 존재성을 유지하고자
비유의 기능을 다 해쳐놓게 된다 라는 겁니다

비유만 그러냐? 성경 전체 말씀이 그러합니다
즉 해석 풀이가 되면 안된다 라는 것입니다
해석 불가입니다

해석되는게 아니라 그냥 그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덮쳐져서
우리는 눈 녹듯이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리게 되지
나 해석 할 줄 안다 너 해석 할 줄 모르지 라고
복음의 취지를 도로 자기자신이 가로막게 되는
기여이 자신이 그 원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된다 말이죠

이 부분은 고린도전서에서 또 다루기로 하고
일단 서두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간은 비유를 통해서 즉 말씀을 통해서도
자기의 존재성을 찾고자 함이고
반대로 말씀은 비유는 너는 무화과 나무야 라고
존재로 보는게 아니라 기능 곧 당위로 보시면서
그 기능을 하지 못하면 저주를 하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나무로 취급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존재성을 따지는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기분 나쁜데 어라 열매를 내지 못했다 라고 저주 까지 하셨네

여기서 더더더 기능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
그것도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때가 되어야 열매를 맺는 무화과 나무 잎잡에서는
기회나 선택권 자체가 아예 상실된 입장에서
저주를 받아 버리니

그것을 본 그 비유 그 기능을 본 베드로 입장에서는 
곧 자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묻지요 어찌하여 나무가 말라 버렸습니까?
왜 저주 하셨냐 라는 것이지요

그 질문에 예수님의 답변은

(마 21:21,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마 21:22, 개역)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도대체 답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답을 하시는게 아니라
도리어 이 답변이 더더더한 의문이 생기게 된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답변은 틀렸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
누가 감히 답이 틀렸다 하겠습니까
믄제 자체를 이해를 못하는데 틀렸니 말았니 할 수 있는 접근 자체
질문 자체가 차단된 입장이 되어버렸으니 말이지요

즉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아 믿음이 이런 일들을 벌린다 라는 어느 정도의 힌트를 얻었는데
결국 믿음이 도대체 뭐냐 라는 점엑서 모든 인간은 단절성을 느끼는 겁니다

아 믿음요 아 믿음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군요 라고 믿음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다 될줄 알았는데
어라 믿음이 이렇게 모든 접근을 차단하는 거리감을 줄줄 미쳐 몰랐던 겁니다

 우리가 즉 모든 인간이 말하는 믿음
즉 신용관계 라고 TV 광고에서도 자주 나오지요
돈을 이야기 할 때 그런 돈이 개입된 거래를 할때에 신용 곧 믿음을 운운하기도 하지
가족 끼리 우리 서로 서로 믿제 믿기로 하제 라고 귀에 따까리 질 정도로 말하지 않잖아요
우리 어릴적에는 사랑해요 라는 단어를 잘 안 썼습니다
그런에 요즘은 가족끼리 사랑해요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라는 자체가
그 만큼 이혼하고 뿔뿔이 해어지는 가족 해체라는 상황의 비율이 높아졌다 라는 것이지요
외부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뭐 전쟁이나 교통사고 등등 누가 죽거나 하는
그러나 내부적인 요인이 과거 보다 많게 되니
사랑이라는 단어를 안 쓰다가 갑자기 많아진 겁니다
그 만큼 불안한 사회가 되었다 라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젊은이들은
응답하라 시리즈 한번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오히려 그 때는 정이 흘러 넘쳤다 라고 정 이라고 평가 하던데
요즘에 와서 그렇게 표현했지 그런 단어로 남발 할 때가 아니였다 말이죠

마치 아프리카 어느 민족에 자유 였던가? 행복 이였던가?
우리가 그렇게 갈구하면서 목적으로 삼는 그 단어 자체가 아예 없다 라고
왜 그런가 보니
이미 자유한데 뭘 그런 단어를 그런 언어를 맹글며
이미 행복한데 왜 굳이 그런 용어를 만드느냐 라는 느낌을 준다 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는데

바로 그겁니다 즉 항상 반대 급부를 의식해서 나온 단어요 용어요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 자체가 우리를 그렇게 끌고간 셈이지요
언어도 이런 판국인데

말씀은 오죽 더 하겠습니까?

즉 자기 쪽으로 인간 존재로 끌어 올수가 없다는 점에서 단절 성입니다
차단 되었다 아 그럼 나와 상관 없네 라고 멀어져 가 버리면 그만인데
어라 내가 바라는 것들이 그 속에 다 있어버리는 자유와 행복과 사랑이 넘쳐 버리니까
또 그것은 평상시 욕망과 즉 인생 목적과 딱 맞다 보니까
멀리 할 수도 없고
소유하고 싶기는 한데 단절되고 차단 되고
차단을 당해도 접근하고픈 욕망은 가득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ㅋㅋㅋㅋ

그카이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묻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겁니다 네 어쩔수 없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느냐 라고

예수님은 믿음을 통해서 반대 급부로써 그 차이성을 언급하십니다
저주에 반대가 바로 믿음인데

늘 평상시 누가 크냐 라는 싸움 밖에 안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데 신경 쓰는데 있어서
즉 그것이 행함이지요 행함만 운운하는데 있어서
존재에서 나올수 없고 존재로 회귀 귀결 될수 없는
원인 없는 결과인 믿음을 이야기 하니까

그 기능성 당위 곧 존재 이전의 당위인 기능을 믿음을 이야기 하니까
행함이라는 시스템에서는 과부하가 걸려 폭발해 버리는 겁니다
안먹혀든다는 거죠 고장납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겁니다

그카이 이제는 아예 연기를 합니다 어떤 부흥사나 목사들처럼
믿음만 있으면 산을 여기에서 저기 바다로 옮길수 있다 라고
본인들이 이야기 해 놓고서 본인들이 행할 줄 모르는 것을 대 놓고 보여주면서
그들의 목적하던 헌금 즉 돈을 갈취하는데 있어서 성공을 하더라 말이죠
그럼 그들 사기꾼 삯꾼들의 믿음이 맞아 떨어지게 된 것 맞잖아요?
그것을 헌금을 낸 자들이 보고서도
자기들이 속는 셈 치고 내었다 라는 속은 줄로 알면서도
우와 되네 라고 그 목사들의 성공 서사시를 보니 맞네 성공했네 라고
아 이게 믿음이구나 라고 대놓고 보여주니 나도 저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이 믿음을 통해서 부자 되어야지 라고 하더라 말이지요

이것은 모든 종교 뿐만의 사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의 공통분모인 즉 같은 욕망을 담은
돈 자체가 주는 믿음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믿음으로 벌어지는 겁니다
네 맞아요 돈이 그런 일들을 벌린다 라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실천하는 거룩으로 사마리아와 차이 차별 구분 구별이 벌어지잖아요
사랑이 있다면 그런 경계선을 그을 필요가 없지만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서 간다 라는 겁니다
이렇게 그들에게서는 거룩실천이 그들에게 믿음으로 자리 잡게 된 겁니다
그들의 율법 해석이 그렇게 자리 잡은 보편성이 된 거죠 믿음이 된 겁니다

근대 현대에 와서는 그 믿음이라는 것이 민족으로써 구분 구별이 되어진다 라고
어떤 중동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가 와 닿더라 말이죠
즉 존재 중심이다는 겁니다 존재 기준

한국도 보세요 말이 같은 민족이지만
다 같이 가난할 때는 안 보이던 경계선이
이제 좀 살만하게 되면 먹고 배부르게 되면 딴 짓하거든요
성경에는 교만하게 된다 라고 어쩔수 없이 다 그렇다 라고 하던데
과거에 사라진 것들이 다시 스멀 스멀 그 존재성이 살아납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 라는 민족성이 다시 살아나서
지금까지도 서로 구분 구별 거룩 짓기를 하게 되는 거지요
625 같은 한반도 전쟁이 벌어지면 또 잠잠해 졌다가
다 박살이 나서 구별 짓기 경계선이 사라졌다가
다시 한강을 기적으로 다시 세계 강국이 되면 또 갈라지는 겁니다
미국 보세요 이제 남북전쟁에서 동서 전쟁으로 나누어지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분열이 심해지지요 정치가 그렇게 부추기거든요
세계 최 강국 1위의 국가가 그렇게 하면
또 다른 나라도 다 따라 합니다
도리도리 똘아이가 나타난 것도 스트롱맨을 흉내낸 거죠
마쵸 마쵸 마쵸 맨 ~~~~~~~~~
재판에 나와서도 가스라이팅 하기 바쁘지
재판 같지도 않는 사이비 종교의 집단 최면 간증 집회 같더라 말이죠

이런 판국에 예수님은 더더더 간극을 벌리는 겁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연결성 동일성 합일성이 아니라
그 저주에 반대되는 더더더 간극을 벌리는
믿음은 그 저주에 반대로 더더더 축복으로써 그 차이성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도통 무슨 말인지
즉 나의 존재에 인간의 존재에 안 맞는 이야기만 골라 골라서 말씀하신다 라는 것이죠
그것이 예수님의 답변이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입니다

주님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나귀 타고 어린아이 젖먹이 찬양으로 영광받으시는 이유는

바로 열매 맺지 못하는 인간을 모조리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함이다
이것이 믿음이 벌리는 사건
곧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산을 바다로 옮기는 믿음의 사건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그 다음 내용이
(마 21:22, 개역)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3,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마 21: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파괴하는 진짜 성전의 기능을 펼치시고자
자꾸 시비를 검에 있어서
인간 대제사장들의 권위에 도전하시는 겁니다
그들의 높은 권위가 지뿔도 아닌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재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하시는
아니 그랬다가는 도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인데요?

바로 그겁니다 예수님은

(마 16:21, 개역)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본인이 말씀하신 즉 예언 약속하신 바를 이제 이룰려고 하십니다

죽음만 때에 맞지 않게 느닷없이 오는게 아닙니다
즉 인간 존재 보다 먼저 있었던 죽음을 지금 주님이 확 끌어당겨버리십니다
즉 종말이지요 땅끝이지요 세상 끝입니다 인생 끝 인간의 역사 끝입니다

그리고 생명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확 끌어당기십니다
우리는 생명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런 존재에 맞는 생명은 없습니다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소유가 없으면 생명도 죽는데요??
그건 생명이 죽는게 아니라 이미 죽은 겁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은 존재가 아니라 소유의 넉넉함이 아니라
생명은 기능입니다 생명을 부여하신 분을 말하기 위한
기능을 생명이라고 하지
단지 존재에 숨만 까딱 까딱 붙어 있다고 생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생명은 소유에 넉넉함에 있지 않다 라는 말 자체도
기능이요 비유인데
우리는 존재로 든게 되니
존재는 이기적인 유전자 답게 이익이 안된다 싶으면 언제든지 손절입니다

마치 부자청년이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 라고 알아달라고 예수님에게 간청하니
율법은 존재가 아니라 기능이냐 라고 전재산을 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라고 하니
갑자기 자기 존재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율법의 기능은 사다리 놓아주기라는 기능에 의해서
부자존재가치는 사다리를 걷어참으로써 율법 지킨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가난한자 등쳐먹고 또는 무관심에 또는 미필적고의로 방치함에 있어서
그 지역내의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봐주지 않았다는
율법정신에 제대로 어김이 들통나니까
얼른 손절 하고 다시는 안 볼란다 라고 등돌리고 근심하고 돌아서는 겁니다
근심은 왜 합니까 그 불안은 결국 결핍채우는
부자가 왜 발가벗었니 어서 돈주고 값없이 불에 타지 않는 옷 좀 사서 입어라
아이구 발가벗고 다니니
네 맞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부자와
구원 받은자 라고 확신하는 그 부자들의 구원받음이
사실은 발가벗음과 저주의 모습이다는 겁니다
부자 보세요 열매 내어라 하고 하니까 열매를 못 내놓잖아요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메? 시간과 공간을 다 채웠다메?
반대오 두 렙돈 요즘으로 치면 500원 동전 두 개입니다
우와 그러고 보니 500원도 본 적이 잘 없넹 ㅋㅋㅋ
그 전재산인 두 렙돈을 과부가 헌금으로 바쳤는데
그냥 바치는게 아니라
종말의 헌금으로써 어서 이 가짜교회 무너뜨려주시고
진짜교회 진짜 성전 즉 기능이지요
기능이 뭡니까 진짜 성전은
죄악을 거룩으로 옮기는 그 진짜 성전이 와 달라고 기도하는 집이지요
그 과부의 종말적인 행동을 칭찬하셨다 라는 겁니다

즉 제자들 질문의 답변에
이런 식으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칭찬하는
이 종말적인 행위가
믿음으로 산을 바다에 옮기는 식으로써 대비 대조 비교 차이성을 드러내시는
답변을 하시는 겁니다

그카이 이제 예수님은 죽으시러 가셔야 하는 겁니다
즉 모든 비유 모든 기능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은 자기 존재
그 존재의 가치성 높이기 이다 보니
이 화목제 되심의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다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릴때만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행동
심지어 구약에서 나오는 모든 사건들 자체가
다 십자가의 기능을 말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화목제물 되심
이것 아니면 평화가 화목이 없다 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화목을 알려면
단절을 알아야 겠지요
그래야 두 언약이 한 세트로 구성이 된 언약인 겁니다

존재성을 따지는 인간에게서는 무조건 이유없이 우리는
단절로써 뭘 해도 죄요 뭘해도 가짜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사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에게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아무리 봐도 지옥의 몸 사망의 몸
화목은커녕 심판 받아 마땅한 화로다 화로다 불에 타야 마땅한 자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자요 예수님을 제대로 본 자입니다
심판주입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자에게는
예수님은 그저 한 낯 목수의 아들일 뿐입니다
메시아 이기는커녕
육에서 태어난 어차피 죽는 인간이다는 거죠
목수의 아들에서 개천에서 용나듯이
왕의 자리에 올라가는 그런 과정도 없어요
누구 누구의 자식으로써
누구에게 태어났고
누구를 낳아 아니면 독신으로 살다가 그저 죽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말이지요
그런 인간이 무슨 놈의 화목제물이니
참성전이니
그런 소리들은 인간세계에서는 내쳐야할 차단해야 할 것듯이다는 겁니다
아니면 균열이 생긴다 말이죠
유대교 유대사회를 균열시키는 이단을 어서 어서 내쳐야 한다 말이죠
안 그래도 식민지 상태인데
하나가 되는 하나를 이루는 독립을 추구할려면
저런 이질적인 균열을 야기하는 세력은 애초부터 싹을 짤라야 한다 말이지요

자 이렇게 전제를 깔아 놓고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롬 11:15, 개역)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도대체 화목이 뭐냐 말이죠
유대인들은 이 화목 화평 평화를 자신들의 존재 가치에 두었습니다
결국 기능은 아니다 라는 것이지요

마치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껍데기로써 겉모양만 사랑의 자리르 차지했을 뿐이지
사랑은 단 일도 없는 텅텅빈 사랑 껍데기 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썩은 부위를 짤라 버려야 겠지요
그리고 그 썩은 부분을 짤라서 돌갈람나무 들에 핀 사막에 핀
죽은 가지와 방불한 가지를 접붙여서 살리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참감람나무의 기능은 그대로 그 고유성을 유지한 채로 돌감람나무까지 살리는 셈이 되니 이 얼마나 풍요함이 되느냐 말이죠

물론 돌감람나무는 사는게 아니지요 들에 여전히 박혀 있으니 죽은 셈이지요
돌감람나무는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써 지금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 당함으로써 살게 되니
생명을 부여 받게 되니
기능이 뭔고 하니 이렇게 죽은 자도 살리는
예수님의 참성전 되심 화목제 되심을 보여주는 긍휼을 입은자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것이 율버의 완성인 풍요함인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했어야 할 기능을 이스라엘이 하지 못하니까
참감람나무에 있으면서도 죽은 가지로 남아있다면 짤라야 한다는 겁니다
버리지 않으면 다른 것도 썩게 되는 전염병처럼 퍼지게 되겠지요
그렇게 짤라내고 돌감람나무의 가치를 접붙여서
참감람나무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기능을 하겠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 전체는 단 한 사람 유대인도 이 이스라엘의 참기능을 하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독립운동이나 하고 율법의 껍데기에 미쳐 있는
마치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모든 유대인이 장악당한 상황이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들 이스라엘의 참기능을 다시 살릴려며는
죽은 가지를 짤라내어서라도
참이스라엘 기능을 다시 살려내어야 할 거 아닙니까

나는 자동차다 자동치디 라고 말만 하면 뭐 합니까
인간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기분 나쁩니까?
인간을 돌감람나무 라는 나무에 비유해서 기분 나빠요?
오히려 처음자리 곧 당위 즉 기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겁니다
비유야 말로 존재의 가치성을 깡그리 무너뜨리는데 너무 너무 좋다 말이죠

그 자동차가 나는 자동차다 말만 하지 않고
속은 다 고장이 나서
아무리 기름을 넣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고
바퀴가 돌아가지 않아서 굴러가지 달려가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자동차를 왜 타냐? 왜 값주고 사느냐 라고 할 겁니다
네 맞습니다 존재가 아니라 기능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비싼 외제차 BMW 맞나? 요즘 이런 차도 몰락했다 라고
다시 살려고 전기차를 내놓기 시작했다 라고 하던데
세상의 브랜드도 존재가치를 유지하고자
새로운 기능으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바로 추락하지요
그 의문의 반복으로써의 기능 기술이 아니라

존재 자체 이전의 기능 곧 당위 그 처음자리
인간이 존재하기 이 전의 죄가 먼저 있었고
그 죄가 곧 죽음, 사망이 있기도 전에 생명 곧 은혜가 왕 노릇함이 있었다 말이죠

이것을 보여주는 자들이 바로 유일한 민족 이스라엘 이다 말이죠
가장 미약하고 가장 작은 수의 민족이 말이죠
근데 조금만 배불러도 그 기능은 상실되고
껍데기만 사수함에 있어서
그들은 그 핑계를 입장 바꿔 생각지 않고 이방인에게 뒤짚어 씌우는 겁니다
아니 자기들이 이방인 우상숭배자 이면서 남 핑계대더라 말이죠
그렇게 핑계대가다도 주님께서 남유다에게서만큼은 몽둥이 징계의 매를 남겨두시는 바람에
이들 강대국들이 몽둥이 역할을 함에 있어서
자기들 따나 결속을 다짐하면서 유지해 오는 겁니다
이방인이면서도 이방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말이죠
이스라엘의 기능은 단절된지 상실 된지
이미 신구약 중간기 400년? 더 이상의 선지자가 없이
인도자가 없이 자기들 끼리 그 결핍들을 매꾸어 넣으면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된 입장에서
주님이 다시 첫맹세를 기억하시고
저 핏덩어리를 다시 살라 라고
저 창녀 어미로부터 태어나자 마자 시장 바닥 오물에 던져진 그 핏덩어리를
주님 자신의 맹세로써
저 죽은 가지를 자신에게 접붙이시는 겁니다

아니 우리 다 큰 어른 다 큰 이스라엘을 갓 태어난 핏덩어리로 취급하시다니요
우리 인간의 인권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은 인간에 대한 존중권이 없나요? 너무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 말이죠

지금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도 기능을 그것도 이방인의 사도 라는 그 기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주 조심 스럽습니다 나 봐로 이방인의 사도 맞잖아 라고
이방인에서만큼은 존재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이 기능 자체가 예수님의 죽음에서 나온
화목제물의 기능
참성전의 기능에서 나왔다 라는 겁니다

죽은 자를 그 더러운 죄악들을
생명으로 옮기우고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에
주님이 등떠밀었다 라는 겁니다

물에 빠진 자를 건지라고

사다리 놓으라고
생명의 밧줄을 던지라고

이것이 유대인에게서는
마치 안식일날만 골라서 우물에 빠진 자를 건지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안식일날만 골라서 손 마른 자 병든 자를 고치는 것과 같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사랑의 풍요 즉 안식의 참 기능이다는 거죠

그런데 안식의 기능을 누가 짖밟고 있는 겁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자 아닙니까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누가 짖 밟고 있냐 말이죠
율법을 지키는 자 아닙니까?
교희의 기능
그리스도의 기능을 누가 짖 발고 있냐 말이죠

천주교로부터 빠져나왔다고 자부하는 정통 중에 정통인
기독교가 짖 밟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단들은 어서 어서 돈 벌어서 빨리 떼돈 벌어서
정통교단 속에 돈 바쳐서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겁나다
정통들도 그런 식으로 정통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모조리 다 껍데기만 추구하는 거죠

그카이 뭐든지 다 껍데기 가짜일 뿐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이 경계선을 허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과 다르다 라고 항상 남 핑계대면서
그들과의 경계선을 그으면서 나온다 라는 자체가

이 심판 주 되심의 단절성을 못 본다는 점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저 무화과 나무 비유 조차도 못 푸는 주제에
단절된 입장인 주제에
자기가 도리어 나는 저 개같은 이방인과 다르다 라고
단절 시켜서 경계선을 긋는다 라는 것은
뻔데기 앞에서 주름 몇가닥 내세우는 꼴이다는 겁니다

괜히 남을 7번 용서 와 도리어 남으로부터 7에 70번의 용서 받음을 대조 시킨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한계점인 남을 7번 용서로는 생명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는
생명이 없는 죽음이다는 겁니다 거룩치 않다 라는 단절성입니다‘
이것을 역이용해서 나는 저 매국노 세리와 같이 삥뜯지 않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경계선을 그을게 아니라

도리어 7에 70번으로부터 단절 당하는 사랑 없음에
정직한 영이 없음에 도리어 울어야 할 판국인
사망의 몸임을 화로다 화로다 나여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자옥의 몸임을 직시해야 할 판국이다 라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남을 7번 용서하는 저 유대인의 율법 껍데기 세계 속에서
그 죽은 가지 속에서

도리어 참감람나무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접붙임 당해서
이 풍요함을 누리듯이

유대인 우려먹을게 아니라
가짜 껍데기에 속아 넘어갈게 아니라
정직한 영도 없으면서 그거 붙잡을게 아니라

본인도 버려진 죽은 가지 였음에도 불구하고
참감람나무 즉 참 이스라엘의 기능을 하신 예수님에게 접붙임 당해서
즉 단 한 사람도 이스라엘 기능을 하는 유대인 조차도 없는
모조리 다 죽음 돌감람나무 입장에서 접붙임 당한
그 율법의 완성인 남을 사랑한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 덕분에 풍요함을 누렸듯이

감히 말도 안되게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셔서
이 풍요를 무한 반복케 온 우주 온 세계에 까지 전하는 그야말로 기쁜소식을 말이죠
이것이 다윗이 외쳤던 열국의 하나님이 되시는
결국 유대인들에게 맡겨 놓으면 다윗언약은 이루어 질 턱이 없잖아요
지금 팔레스타인 말살만을 꿈꾼다 말이죠
도로 말살될 지옥의 몸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근데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 국가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모든 국가 모든 인간이 다 해당되거든요
멀어칼 어른이 없다 라는 겁니다
발음나는대로 적었는데 오타이지 싶어서 물어보니 AI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하더군요
경상도 사투리를 발음나는대로 적었으니 사투리로 바르게 적어줘 라고 하니한참 다른 지역 표현으로 빙빙 돌리다가
머라 칼 어른이 없다 라고 하더군요
뭐라고 할 어른이 없다
오 이거네

충청도요 ~~~~

어른들이 암만두 읎어

전라도요 ~~~~~~

어른이 읎어야

제주도요 ~~~~~~~~

무싱거옌 해질 어른이 없수다

제주도에만 가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는 판국에
하늘의 언어인 비유는 그야말로 외국 말 딴 세계의 말입니다

그저 각기 제 소견에 옳은대로만 행할 뿐입니다
지 마음대로 그럴 듯 하게 번역할 뿐이다는 거죠

(삿 17:6, 개역)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개역)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한 왕을 주시겠다 다윗 왕을 주시겠다
이 한 왕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하니님을 아는 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나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 11:27, 개역)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 아들의 소원이 죄의 소원 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마음에 딱 드는 한 왕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아들이다
이 한 목자가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급히 입 맞추라 진노가 급하다 말이죠

(마 3:17, 개역)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17:5, 개역)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막 9:7, 개역)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해석 가능하다고요? 번역 가능하다고요? 택도 없습니다
그저 단절 뿐입니다
오로지 까막눈 문맹자로부터 전파케 하시는 겁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으로부터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예수님을 제대로 본 자로부터 말이지요
소경 아니다 본다고 한 자들은 그림자만 외칠 뿐입니다

또렷한 십자가의 죽음
아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믿음
그 믿음에 등떠밀린 자 라고
바울 본인도 믿어야할 판국이다는 겁니다
그런 자아 그런 문맹자와 같은 자가 무슨수로 알려주는 겁니까
유대인도 싶패한 이 풍요로운 부족함이 없는 복음을 말이지요
외국어 공부 시작하면 몇 년 지나면 가능할까요?
깨진 항아리 백날 물 퍼 담아도 셉니다
유대인이 보여줬습니다
그냥 이방인 더 깨어진 항아리
유대인은 살짝 금이 가서 쎈다고 본드 붙이듯 땜빵하면 된다고 우기지만
예수님이 보기에는 폐기처분 대상인 고장난 차 안가면 무조건 파기해야할 차 일 뿐입니다 달리질 못하는데
차라고 우겨본들 무슨 소용 있냐 말이죠 기능 자체가 제로 상태인데
이방인은 아예 겉모습 자체가 차 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니
더더더 깨진 아예 항아리 겉모습 자체도 상실된 상태입니다

그 돌감람나무 바다에 풍덩 빠뜨리면
그 물이 흘러 흘러 넘치는 풍요로움을 당하는 겁니다
졸지에 물을 담을게 아니라
바닷물의 증상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은 나 사도 바울은 그것도 더더더 풍요로운 이방인 사도 기능으로써
이 풍요로움을 전한다 라고 하는 겁니다
요나 선지자와 정반대인 것이지요

죽음과 더러움 속된 것과 맞짱 뜬 생명의 말씀을 누리는 겁니다

이방인을 건지는 자가 아니라
매일 매일 이방인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움을 당하는 것을
사도바울 그것도 이방인의 사도바울 본인이 그거 누리기 바쁜 증상물이됨을 누리가 바쁜 판국이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족히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매일 매일 건짐받는 그 사랑의 또렷함 명료함을
사라질 모세의 광채 그것도 영광 스러웠지만
그것과 그 그림자와 족히 비교도 안 되는
실제상황이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당위
안 외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당위라는 기능은
의무감이 아닙니다
단순한 소명감이 아닙니다

이미 그 자체로 태어난 겁니다
뭘 해도 꾹꾹 찌르고 손에 닿기만 해도
스치기만 해도

안 외치고는 못 배기는
기쁨의 포화 상태입니다 풍요 그 자체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이지
원인이 생기면 결과가 그 풍요함이 없는 또 한계에 부딧히는 의문의 반복입니다
그런 가짜 기능 그런 존재로 회귀함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인 화목제물 곧 온전한 사랑의 풍요로움입니다
더러움에서 죄악에서 거룩으로 욺겨주시는 무한한 생명

곧 모든 허물을 다 덮고도 남음입니다

물이 바다 덮은 같이
어찌 세숫대아의 물이 바다를 다 덮습니까?
말도 안되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이 말도 안되는 기능에
그 풍요로움에 목격자로 증상물로 놓여졌으니
이 당위에 
마땅히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이 기능에
바울이 안 외치고 배기겠습니까?

말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칼도 죽음도 배고픔 추위 더위 매맞음?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누구도

주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습니다
넉넉하기 바쁜 이 사랑의 완료를 누리기 바쁩니다

그카이 사도바울은 저들 유대인들을 시기케 만드는 셈이지요

유대인들 본인이 해야 하고 본인들이 누려려할 복음을
자기들이 저주하고 있는 이방인이 누리기 바쁘면 얼마나 배 아프냐 말이죠

마귀가 자기가 첫 번째 피조물로써 마귀 본인이 예수님의 아내가 되는 신부의 자리를
인간에게 빼앗기고
그것도 제일 마지막에 창조된

제일 끄트머리가 거룩측량 성전측략에 제일 먼저 거룩을 입게 되니

배아파 죽는 겁니다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결혼을 해 버리는
이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앉혔을때에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이 지혜

이 십자가의 지혜가 또렷한데

유대인들은 이 시기케 하는 복음을 다 놓쳐버리고
지들끼리만 구원 받겠다 라고
그림자를 쫏고 있으니
이 실상에 다 걸려 넘어지는

이 실상을 얼마나 배 아파하고 시기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영원히 시기하는 자리에 남아 있을꺼냐 말이죠

실상의 이 생명의 풍요로움에
유대인 중의 유대인 아니 베냐민인 바울이
약을 바짝 올려가면서
왜 너도 이방인처럼 이 풍요속으로 들어온다 라고 초대하듯이

이 돌감람나무 비유를 외치고 있는 겁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것이 참 생명이지

강도 만난 자를 대제사장도 레위인도 시체 만지면 부정탄다
꼭 지금의 거니 무당처럼 한국교회는 무당들뿐인
그림자만 쫓고 있음을

이 실상인 십자가가 밝히 또렷히 보이는데
어딜 감히 그 흐릿한 것들을 그 속임수로 꾀냐 말이죠

예수님의 죽으심 덕분에 이방인이 풍요로움을 누림을 통해서
시기케 함으로 까지

얼마나 대단한 복음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 새 마음 새 영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외치고 있는지

어서 어서 들어오라 라고 외치는 겁니다
같이 누리자 라고 말이죠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어도
다들 돌감람나무처럼 다 죽은 자 인데
죽어도 마땅한 자들인데
왠 은혜인지 왠용서인지

이 십자가에 달려 죽이신 화목제물 덕분에
우리는 이 생명의 넉넉함을

무화과 나무 잎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즉사 바로 말라버렸잖아요
포도 열매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요나가 그 큰 물고기 뱃속
그 어두컴컴한 절망뿐인 깊은 바다
곧 지옥 속에서도

난 여호와로 기뻐하는
그 죽음에 뛰어드신
생명줄 던지신
그 화목제물 되신 그 십자가의 죽음인 사랑 덕분에
그 용서 덕분에

이 생명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즐기는 겁니다

아니 외치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즐기는 자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넉넉히 이미 이겨버렸는데 말이죠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그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음으로 고침받음을 넉넉히 누리는
그 풍요로움 그 부족한 없음을 말이죠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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