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 어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단절, 누락, 차단의 거룩한 성령) (고전 1;25-31)
2025. 11. 2.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고린도 전서 2025 2025. 10. 11. 22:12
25-009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미련한 복음과 요나의 표적) (고전 1;25)
〈고린도전서 1;25-31,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찬송가 446장 새 391 오 놀라운 구세주, 찬송가 505장 새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새찬송가 391장〉
1.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놀라운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샘솟는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2.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내 모든 짐 벗기시네
죄악에서 날 끌어올리시며 또 나에게 힘주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3. 측량 못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주사
큰 기쁨 중 주님을 찬양토록 내 생활을 도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4. 주 예수님 공중에 임하실 때 나 일어나 맞이하리
그 구원의 은총을 노래하리 저 천군과 천사 함께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찬송가 505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새찬송가 452장〉
1.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예수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잖네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2. 무한한 사랑 풍성한 긍휼 슬픈 자 위로하시는 주
길 잃은 죄인 부르는 예수 그 형상 닮게 하옵소서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3. 겸손하시고 거룩한 예수 원수의 멸시 참으시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구주를 닮게 하옵소서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고린도전서 1;25-31,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30, 개역)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1, 개역)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 1:25, 현대어) 비록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어떤 지혜로운 계획보다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매우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더 강하십니다.
(고전 1:26, 현대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여러분 가운데 과연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있습니까? 부자가 있습니까?
(고전 1:27,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리석고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여러분을 일부러 선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고전 1:28,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하찮은 사람들을 불러 쓸모 있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을 아무 것도 아닌 자로 만드셨습니다.
(고전 1:29, 현대어)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전 1:30, 현대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우리에게 알리는 일을 그리스도께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셔서 우리의 지혜가 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를 바르고 거룩하게 하고 또 우리를 자유롭게 살게 해주시려고 친히 그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고전 1:31, 현대어) 그러므로 성경에도 ㄱ)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만을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ㄱ. 렘9:24)
(렘 9:24, 개역)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인간이 자랑한다 라는 것은 뭐든지 개인적인 기쁨에 의한 것이 되는 겁니다
즉 개인 이라는 나 여기 있다 라는 존재감을 부각(사물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함)곧 가치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 어떤 말씀 치고 개인의 기치를 부각 시키는데 사용되는 말씀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단절입니다 연합이 아닙니다
세례는 오히려 그런 개인을 물에 빠뜨려 죽입니다 어 안죽어? 안 죽으면 어떻하죠
걱정마세요 이제는 아예 불로 아예 태워버립니다 물과 불은 사라지게 하는
개인 존재감을 배제 누락 단절 시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서는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 시킵니다
즉 개인은 없고 집단 곧 전체 속에 집어 넣습니다
이것이 구조 곧 판데기입니다 세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했을때에 족보 속에 집어넣습니다
족보 곧 세계는 다른 세계와의 차별성 단절성이다는 거죠
이것이 거룩 한 세계입니다
개인의 거룩이라는 개인숙제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양탈무리 사모의 그런 거룩이 아닙니다
그것이 전형적인 성령을 훼방하는 짓이지요 즉 단절 배제 차단을 훼방하는 가짜 거룩입니다
고린도 초반에 이야기 했지요
왜 게바파 아볼로파 바울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졌느냐 라고
이 실상의 고린도전서 앞에
그림자였던 고라자손의 반발 곧 너거들만 제사장 하냐 우리도 제사장 하자 라고
우리 레위지파도 아론의 자손처럼 제사장 노릇 할 수 있게 해 달라 라고
쿠테타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왜? 그것이 더 자랑 스럽고 더 거룩해 보이니
개인의 가치를 높인다 라고 보는 겁니다
다 같은 출애굽한 자들인데 누구는 제사장, 누구는 시다바리 레위인, 누구는 평민으로
왜 나누느냐 라고 자기들이 파당을 지어서 덤비더라 말이지요
그래 그래 니 똥 푸는 일 곧 거룩의 갈기 갈기 찢기는 일 해 볼래?
라고 그들을 다 죽여 버리시는
누가 더 거룩하냐 라는 시선 자체가
제자들이 늘 수시로 누가 크냐 라는 싸움했듯이
거룩의 의미르 훼방하는 자들로써
거룩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 반기를 든 자들 250명 그 대표자들을 다 죽이시는 겁니다(민 16:1, 개역)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민 16:2, 개역)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민 16:3, 개역)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민 16:4, 개역)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민 16:5, 개역)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민 16:6, 개역)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취하고
(민 16:7, 개역)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민 16:8, 개역)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민 16:9, 개역)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민 16:10, 개역)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민 16:11, 개역)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민 16:12, 개역)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민 16:13, 개역)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민 16:14, 개역)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민 16:15, 개역)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민 16:16, 개역) 이에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민 16:17, 개역) 너희는 각기 향로를 잡고 그 위에 향을 두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이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민 16:18, 개역) 그들이 각기 향로를 취하여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두고 모세와 아론으로 더불어 회막문에 서니라
(민 16:19, 개역)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민 16:20,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21, 개역)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민 16:22, 개역)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민 16:23,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24, 개역)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민 16:25, 개역)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좇았더라
(민 16:26, 개역)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 하노라 하매
(민 16:27, 개역)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문에 선지라
(민 16:28, 개역)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민 16:29, 개역)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민 16:30, 개역)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민 16:31, 개역)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민 16:32, 개역)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속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민 16:33, 개역)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 16:34, 개역)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가로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민 16:35, 개역)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인을 소멸하였더라
(민 16:36,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37, 개역)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명하여 붙는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다가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민 16:38, 개역)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기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
(민 16:39, 개역)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탄 자들의 드렸던 놋 향로를 취하여 쳐서 제단을 싸서
(민 16:40, 개역)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외인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 무리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민 16:41, 개역)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민 16:42, 개역)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민 16:43, 개역)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민 16:44,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16:45, 개역)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민 16:46, 개역)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민 16:47, 개역)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민 16:48, 개역)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민 16:49, 개역)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민 16:50, 개역)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
민수기 16장이 50절까지 인데 너무 길어서 안 올리려고 하다가
너무 중요하다 싶어서 올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죄악이 전체로 다 퍼진 입장이다 보니
염병이 돌아서 4700명이 더 죽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을 차단 단절 바이러스 제거 하는 것 까지 다 포함한 작업까지 다 거룩이기 때문에
(민 16:49, 개역)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안 그러면 이 염병 이 사망의 권세가 멈춰지질 않기에
이 거룩을 전체 과정으로써 거룩으로 펼치시는 겁니다
율법이란 내어주지 않으면 다 잃는 시이소와 같습니다
죄 값을 치르지 않는데 어떻게 사함이 용서함이 있겠습니까
그저 육의 자랑꺼리로 율법을 껍데기로 지키기 자기 의 쌓기밖에 몰랐지
하나님의 의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이지요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카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자로써 이스라엘이 당첨이 된 겁니다
이미 모르는 이미 망한 이방인들은 그 과정을 볼수도 느낄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 라고 자부하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얼마나 엉터리로 안 것에 대해서
쫄딱 망하는 그 미끄러짐 덕분에 도리어 당사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이미 망한 자리에 있던 개같은 이방인이 이 하나님을 아는 식으로써 의에 이르는 겁니다
이 거룩을 말하기 위해서 바로 이런 파당을 짓는 개인의 가치 높이는 거룩 쌓기 라는 육의 자랑꺼리가 함께 두 언약으로써 동반이 되는 한 세트가 되는 이 전체가 거룩이라서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오늘 고린도 전서 1장의 마지막 부분인데 1장 전체를 요약하는 겸 살펴보면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로 나누어진 파당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개인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더더 많이 아는 더더더 조금더 거룩한 바로 그런 시선이
결국은 자신의 가치 높이는데 작용되는 조금더 거룩한 나를 추구함이니까
그런 차별성으로 접근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접근 인간 쪽에서의 접촉을 주님은 차단하신다 라는 겁니다
민수기 고라 패거리가 왜 모세 니가 뭔데 우리의 왕이 될려고 하느냐 라고
민주주의 평등을 외쳤지만
그것은 더더더 개인의 가치를 높이는데 역시나 고라 또한 모세의 왕 됨의 시선과 다를바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나도 왕이 되자 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섬기는 왕으로써의 율법의 완성은
바로 그런 율법의 껍데기 즉 그림자의 입장에서는
거룩이라는 죽음을 못 보는 겁니다
약속에 의한 죽음을 보는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에 선으로 고정 시키고자 거룩으로 고정 시키고자
좀 더 더 나은 자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모세의 자리 까지 앉아버리는 완악한 수건을
도리어 못 벗게 되는 겁니다
벗는게 거룩인데
그들은 입는게 거룩이다 라고 본 거죠
즉 벗겨져 입히시는 이 앞뒤 모순된 간극으로써의 거룩
즉 치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심
보세요 결국 고라 자손의 반역 때문에 그들은 죽고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 죽게 됨으로써
고라의 반역이 나의 반역입니다 라고 이스라엘 전체의 죽음 속으로 집허넣으심으로써
남의 잘못 때문에 같이 죽어야 하는 이 집단성
이 구조 판데기 속에 집어넣었다가
그렇게 치심으로써 다시 모세라는 제사장 직의 기능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다시 싸매어 주심을 통해서
이 거룩 때문에 너거들 산 줄 알아라 라고
이 빵구멍 공백의 간극을 통해서 다시 살려내시는 겁니다
어떤 목사 놈은 십자가 고만 캐라 이제 부활 시대이다 부활만 믿어라 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놈들이 고라에 해당 되는 놈들이다는 거죠
십자가 라는 찢어버림
잃어버림이 없는데
어떻게 다시 되찾는 부활
다시 싸매어 주시는 부활이 있을 수 있느냐 말이죠
육의 자랑거리가 될려면
십자가 라는 언약의 의한 죽음
누락 배체 차단 단절이 있으면 안된다 라고 주장하고
이제는 성령의 시대 라고
개혁주의가 그래서 옆길로 빠지는 겁니다
성령은 개방이지 차단이 아니다 라고
또 육의 자랑거리로 다들 빠지는 겁니다
이들은 집단성을 몰라요
그리스도의 몸을 몰라요
개개인의 거룩 쌓기로써 교회라는 단체를 이룰려고 하지만
그런 교회는
땅끝이라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나온 남은자가 아닌
자기 의로움으로 남은자 운동을 펼치는 또 가룟유다의 하나님나라운동 하는 자들이다는 겁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예레미야서의 두 무화과 나무 비유 중의 악한 무화과 나무가 되는 것이지요
단절을 모르기에 포로됨의 여고냐라는 좋은 무화과 나무를 비웃고 조롱하는 겁니다
개같은 이방인에게 포로 당해가는 것을 비웃는 겁니다
자기들은 포로 안 당했다 라고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고 말이지요
같은 예루살렘 거주민들 끼리 누구는 포로 잡혀 가고 누구는 바벨론에 포로 안 잡혀 가니까
포로 잡혀가는 예루살렘 사람을 비웃더라 말이죠
그 다음 니 차례이다 말이죠
또 포로 잡혀간 그 예루살렘 거주민은 그 조롱거리의 비웃음에 의해
상처 빵구멍이 난 것을 또 자기의 손으로 숙제로 그 결핍을 채울려고 하니까
마치 9명의 이스라엘 문둥병자를 고치니까 냅따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또 다시 그 의문의 반복인 거룩지키기를 하더라 말이죠 고라자손처럼
니만 거룩하냐 나도 거룩하다 라고 성화론을 지키겠다 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예수님이 너도 저들 따라 가지 왜?
주님이 여기 계신데 제가 어디 갑니까 라고
마치 바벨론 포로 이후에 되돌아 오는 자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는 예루살렘 성정을 향하여 방향을 돌려서 기도 하지 않게 되는
그 땅에도 주님이 계심을 알고 안 돌아오는 자들도 있었다 말이지요
즉 이미 넉넉히 부족함 없이 누리는 다시 싸매어 주심을 믿었다 말이죠
주님이 여기에도 계시는데 제가 어디 갑니까 라고 말이지요
자 고라 자손이 자기 개인의 가치를 높이는데만 거룩으로 본 것이지
앞뒤 모순 되는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두 극단의 분절의 공백이 거룩이라고 보는 시선은
육의 자랑에서 즉 욱의 선악에서는 있을 수 없기에
그 미련하고 어리석음이 십자가의 지혜로써 안 보이는 겁니다
즉 인간이 접촉 시도하는 것과
십자가가 우리를 찾아오는 방식이 완전 정반대이다는 것이지요
결국 거룩이란 바로 이런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다시 긍휼의 그릇은 이 앞뒤 모순된
잃어버림 당했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주님의 숙제를 당해야 하는 겁니다
자기들 스스로가 잃어버림 속에 자신을 넣을 수 없어요
그렇게 되면 역시나 인간의 시간이요 인간의 공간인 인간의 역사인 인간의 몸
즉 개인 몸 그런 개인의 숙제가 모인 동아리 단체인 교회이지
종말이라는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나온 땅끝에서 나온 종말의 집단인 남은자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님은자가 되고 싶은 마음 굴뚝 같겠지요 그러나 주님의 손수 자신의 숙제인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외부의 숙제로써 완성된 선물 곧 믿음이지
인간 개인이 쥐어 짜낸 적응력으로 생활력으로 처세술 정치술로 이루어낼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이루어 본들 육의 자랑이 되어서 쭐꾸덕 미끄러지는
그런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이방인의 풍요가 되는
주님은 하등 손해 본거 없이 주의 일을 다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지만
사람의 일은 그 어떤 것 단 하나도 이루어질수가 없는 겁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겨야만 하니까 말이지요
자 그렇기에
자랑도 주안에서 자랑하라 가 먼저 떳기에
왜 우리는 이 육의 자랑의 깊이까지 몸소 걲여봐야하는 입장에서
왜 나는 망해야 하는 누락꺼리가 되어야 하는지
차단거리 단절거리로 말이지요
그래여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볼 거 아니겠습니까
내 기도를 하기 위한 기도가 하닌
그런 나 땜에 내 기도 채우기를 하는 것에 한심하다고 보시는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보기 위한 기도를 통해서
이 단절을 통해서 그 성령의 놀라운 탄식의 기도를 통해서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시는 에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베드로는 우리는 얼마나 믿음 떨어지는 짓만 골라서 한다는 것에
우는
자기 죄로 우는 죄가 과거의 죄가 아닌
주께만 범죄한 그 범죄로 우는
주님은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시는데
우리는 믿음 떨어지는 짓만 하겠다 라고 기도하는
그래서 성령의 숙제로써 성령의 놀라운 탄식
정직한 영의 놀라운 탄식
바로 그런 정직한 영이 없어서
그 기도를 못 듣는 기도만 주구장창 해대는 나의 범죄
내 미래의 범죄까지 보고 우는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사망의 몸이구나
과거는 이미 지났다 치더라도
미래는 기회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어라 기회를 커녕 시간과 공간
곧 이 둘이 합쳐진 이 몸 자체가
지옥의 몸
가망 없는 망해야 할 몸임을 알고 비로소 우는
주께만 범죄한 몸
네가 뭘 해도 그리스도의 몸 그 종말의 몸 그 집단의 몸 속에 들어갈 수가 없는
각각 각자도생처럼 떨어져 나간 파편의 몸인 개인 밖에 모르는
개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몸인줄 알고 비로소 우는
이것이 십자가 라는 거룩이 먼저 떳기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벌어지는 사건으로써의 두 충돌을
고린도 전서 1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왜 유대인이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 곧 이방인은 지혜를 구할까요
???국 나에게로 출발해서 나에게로 회귀해 도착하는
나 나 나
나 라는 자랑꺼리를 포기 못하겠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라고
유사 집단성 게바 동아리 바울 동아리 아볼로 동아리 그리스도 동아리 수준 밖에 안되지
십자가의 죽음에서 나온 남은자로써의 거룩은 단 하나도 없는
이 단절성 이 간극을
무슨 수로 메꾸어 넣느냐 말이지요
도리어 십자가 라는 가위가 그 모순을 가위로 자르는 겁니다
빵구멍 난 그 자체가 이미 꽉꽉 채워진 부족함이 없는
세계
족보
집단인 그리스도의 몸이다는 겁니다
메꾸어 넣을 필요가 없는
그 빵구멍 난 그 자체가
충만하다 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은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영광이다 라는 겁니다
악한 세대 곧 유대인이 바라는 표적 그 접촉점인 기적이 아닌
십자가의 저주가 그 차단 그 단절
그 사디러 걷어차임이
도리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인 생명의 사다리요 밧줄 이다는 겁니다
바로 이 십자가를 자랑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요 부끄러움이요 싫어버린바 된 저주요
헬라인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이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몸에는 딱 맞는 거룩이다는 겁니다 충만함이요 능력이요 생명의 밧줄 최고의 지혜이다는 겁니다
이 땅끝에서 용광로 속에서 죽음 속에서 나온 이 십자가만 바울은 자랑하기로 했다 라는 겁니다
이 언약에 의한 죽음 곧 아벨 대신에 주신
셋 족보
셋의 세계
그 집단
사실은 개인은 없어요
인간은 족보 라는 세계에 이미 갇힌 채로 태어납니다
저는 김해 김씨 라는 세계에 갇혀진 채로 태어났듯이 여러분 다 그러합니다
혼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없어요
그카이 종교 중에 최고의 종교가 불교입니다
아예 대 놓고 개인 하나가 신이 되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 라고 하잖아요
호모 데우스로 묶여진 겁니다
비로 그런 진노의 그릇과 차이내기 위해서
언약에 의한 죽음으로 대신 매 맞으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태어난
예수님의 족보 세계로 태어난 자들이 바로 새이스라엘이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에게 먼저 주어졌으나 그들은 맹 그림자로만 껍데기로만 취급 해버렸기에
주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 곧 저들에게서 더렵혀지지 않은 아껴둔 기념 이름
즉 이 말은 얼마나 이스라엘이 주의 이름을 그 동안 더렵혔고 짖밟았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 아껴둔 기념이름으로 인해 그 기능으로 다시 태어난 새이스라엘로써
에수 그리스도의 셰계를 다 이루신 겁니다
여기에 가인의 족보는 살았더라 살앗더라 살았더라 만 주구장창 외치는
라멕의 찬양처럼 자기 건드린 놈들 다 죽였다 라고 자랑하는 노래일 뿐이지
그게 모든 인간의 노래 아닙니까
데몬 헌터스의 골든 아닙니까
나는 악귀를 물리치고 나 자신을 내 스스로가 이루었다 라고
그 노래로 너도 나도 그런 개개인을 이룬 집단이 되자 라고
마귀를 물리친 이 얼마나 대단한 나 가 아닌가? 라는 그 자랑꺼리에
주여 주야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물리쳤습니다
하늘에서 우수수수수수 사탄이 떨어집디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썩 물러가라
사탄이 하늘에서 우수수수 떨어지는 너의 업적 너의 시 공간 너의 몸을 자랑하지 말고
기뻐하지 말고
너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게 하시고 (즉 포로 되었다가 다시 되찾으시는 그 의를 입히시고)
그 의롭게 하신 자를 영화 롭게 (즉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천한 계집과 결혼 하시는 피 신랑의 사랑을 자랑케 하시고자 광야에 개유 하심)
바로 이 십자가의 지혜
곧 하나님의 능력
이 생명의 밧줄인
생맹책에 니 이름이 기록된 것을 더 기뻐하라
이 생명의 사디리인 십자가만 자랑하고자
자기 목숨 걸었다 라고 바울이 외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 바울 개인을 자랑하는 겁니까 부러워 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바울 너 빠져
이 십자가만 자랑하는데 있어서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데 있어서
우리들 또한 동원하셨다 라는 사실에
우리는 감격하는 겁니다
그저 바울이 부러워 그 개인을 부러워 하는게 아니라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인 집단으로써 외침에 있어서
우리는 끄덕 끄덕 맞아 맞아 라고 이 사건들 하나 하나 체험되고 겪게 되는 사건으로써
아멘 아멘 아 맞아 우리가 겪었던 일이 이런 일이였구나 라고
바울 개인의 경험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경험으로써 작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온 몸이 소스라치게 반응하면서
죽었다 복창하고 이 십자가에서 태어남을 누리면 되는 겁니다
오늘은 또 어떤 십자가의 사건으로써 나의 죄악이 들통날지
그런 죄 하나도 감당 못하는 나를 왜 생명의 밧줄로
그 죄악에서 그 죽음에서 건져주시는지
왠 은혜인지
그 은혜를 누리도록
부족함이 없도록
그 징게의 매를 대심 앞에서
그 사랑을 만끽하는 겁니다
얼마나 죽음에 시기하시고
그 사망에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해서 경멸 하시는지
얼마나 죽도록 싫어하셨으면
너가 아무리 노아 다니엘 욥을 신앙 선생으로
그런 교회에 자식을 다니게 해서 멘토로 삼아도
내 목숨을 걸어서라고 반드시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라고
그 육의 자랑에 죽도록 멸시하시는지를
십자가의 자랑과 대조를 하시면서
육이 싫어버린바 여긴 그 십자가를
이 육의 자랑과 십자가의 자랑을 한 세트로써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피 흘리시는 이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미련한 복음이 아니였다 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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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6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요함이 되는 구원의 구원 다움 (롬 11,11-12)
2025. 11. 9. ( 10 월 22 일, 23 일, 녹음 )
용서의 용서다움을 보여주는 일만달란트 비유처럼
이스라엘 자리에서 이방인의 자리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구원 그러나 더더더 불가능한 구원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하고 믿음으로 의에 이르는 그 자리로 옮기움 당한 이방인
단절된 은혜의 은혜 다움
하나님의 불의하심이 부조리 한 십자가의 저주가 모든 허물을 다 덮음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은 자기 의를 쌓은 유대인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 VS 은혜로 용서받은 이방인 (롬 11, 6-10)
로마서 2022 2025. 10. 18. 22:05
22-065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과 은혜로 용서받은 이방인 (롬 11, 6-10)
〈로마서 11,11-12,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찬송가 318장 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찬송가 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소리 , 새찬송가 528장〉
(롬 1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1,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 11:12, 새번역) 이스라엘의 허물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 사람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바로 설 때에는, 그 복이 얼마나 더 엄청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또 또 그럴수 없다 라고 나옵니다
(롬 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로마서 11장 1절 지난 번에 우리가 살펴봤듯이 그럴수 없다 를 강조했는데
왜 일까요? 다들 그렇게 단어하고 단정해 버린 상황이기에
그것을 전복 시키는 표현으로써 그렇지 않다 라고 하는 겁니다
1절에서는 이스라엘 버렸는거 맞구만 이라고 단정 시킬때에
안 그렇다 그럴수 없다
나 바울이 그 증거물이다
나 봐라 나는 이스라엘 인이요 아브라함 씨이요 베냐민 지파이다 라고
오히려
여기서 중요합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다움을 더 구체화 시킵니다
결국 보편적 진리를 깨뜨리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로써의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다움을 더 구체화 한 것을
반대로 그 동안 유대인 곧 이스라엘이 껍데기로만 만족해 왔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모세언약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윗언약 곧 새언약 필요없다 라는
그 완악한 수건을 안 벗는 모습처럼 말이지요
그럼 참이스라엘은 그 완악한 수건을 벗은 모습이겠지요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상인데
왜 쓰잘데 없이 그림자로만 이스라엘의 특이성을 추구해 왔느냐 라는 겁니다
그카이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계속 그 그림자
그 의문의 증서를 붙잡아 왔다 라는 겁니다
그러나 실상이 와 버린 이상
실상에게 걸팢는 참이스라엘로써 다가오지 못하니까
거치는 반석에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주님이 넘어뜨린 것 아니냐
그렇다면 이방인도 넘어져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방인은 오히려 실상 속으로 들어왔는데
왜 유대인들은 못 들어올까요
네 맞아요 더럽다고 상종하지 않겠다 라고
사마리아 구역을 일부러 삥 둘러 가듯이
예수님이라는 실상 조차도 삥 둘러 가는 겁니다
다윗 언약을 다윗 본인이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다윗 조차도 삥 둘러 가는 겁니다
실상을 말이지요
남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삥 둘러 가는 겁니다
이 사랑이라는 실상은 삥 둘러가면서
울리는 꽹과리 그 그림자 그 껍데기는
온 몸에 하루도 빠짐없이 온 몸에 도배를 하듯이
자기 몸에 바르는 체화 신체에 각인 시키는 그 그림자 짓을
그 헛 짓에 빠져 있는 겁니다
바로 그런 것으로 누가 누가 몸에 많이 새겼는가? 라고 자랑하는
누가 누가 크냐를 경쟁하고 있었던 거죠
그카이 강도 만난 사람을 만지거나 도와주면 안되는 겁니다
안식일날 우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안되는 겁니다
그것이 어려운 수 백명이 달라 붙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수천억의 돈의 힘이 작용이 되어야만 해결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두 새명만 있어도 아니면 단 한명의 사람만 있어도
언제든지 해결 될 수 있는 문제인데
그것을 그림자 중독에 빠져 종교라는 마약에 빠져서 하지 않는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해서
사랑이 뭐 그렇게 대단한 수천억이 드는 권력이 있어야 하는게 아니다 말이지요
아주 아주 작은 것에서도 언제든지 나올수 있는 것인데
왜 종교라는 그 그림자를
그 허상을 못 넘어서는 것일까요
울리는 꽹과리 라는 남의 시선으로 뭉쳐진 그 허상이
꽤 개갱갱 시끄럽게 치면서
야 야 야 지금 안식일날에 물에 빠진 사람 건질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아 이 사람이 안식일날 일하고 있으니 돌로 쳐 죽여라 라고
과거의 하나님이 벌린 사건을 이제 자신들이 그 권리로 쳐 죽이는 겁니다
자 이런 그림자의 권력이 이런 판국인데
예수님이라고 예외 일까요?
대 놓고서 죽일려고 달려드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 동안 하신일 때문에 바로 쳐 죽이지 못할 뿐이지
대중의 여전히 의식할 뿐이지 일반인 같으면 바로 죽였을 것인데
잠시 잠시 아주 잠시 유보할 뿐입니다
그 정도로 그림자 권력
허상의 권력
죽음의 권력
우상의 권력에 한 껏 취해서 중독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정치인의 뇌는 일반인 하고 다르다 라고 하잖아요
권력에 한 번 취해 버렸기에 그 권력에 중독이 되어버린 뇌 이다는 겁니다
자신이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술이 그 사람을 마신 것처럼
주 객 이 뒤 바뀐 겁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킨 자기자신에게 취해 버린 것이지
율법의 알맹이 근처에는 가 본적이 없는 것이다 말이지요
이런 자들이 교회를 다 채우고 있더라 말이지요
그들은 항상 돌삐를 쥐고 언제든지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교회에서 그런 짓으로 인기를 끌고 그런 짓으로 직분을 맡고 있더라 말이지요
항상 꼬투리를 잡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려고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고 있는데
도리어 그들이 늘 돌삐에 맞고 사는
누워서 침 뱉는 짓 만 골라서 하고 있더라 말이죠
안식일날 우물에 빠진 자를 건지지 않겠다 라는
그 그림자에 빠진 자들이
늘 누워서 침 뱉는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지나쳐 가는 목사 전도사 장로 그런 교회 사람들이
누워서 침 뱉는 놈들이다는 겁니다
그런 교회 중독을 깨뜨리는 교회 파괴를 하지 않으면
그들의 교리를 깨뜨리지 않으면
실상을 볼 기회는 없게 되는
소돔과 고모라 인 것이지요
꼭 이런 놈들이 동성애 반대 운동을 해요 글쎄
즉 그림자 놀이, 의문의 반복 놀이를 하는 사람의 득징은
아까 말한 체화 곧 일치성 동일성 합일성
뭐 성령의 개방성을 주장하는 놈들의 득징은
이 주께만 범죄한 죄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어떻게 해서든 보편적 진리를 손에 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야 정죄를 하는데 있어서 정당성을 확보해서
자신의 행동에 합리성을 갖게 되니까 말이죠
바로 이게 사랑 없는 육의 자랑인 울리는 꽹과리 이다는 겁니다
그 정당성 가져서 뭐하게요
바로 이런 선악의 의식이 결국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린 겁니다
그래서 다윗언약 필요 없다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버린 겁니다
우리가 오늘 로마서를 하고 있지만
지금 고린도 전서로 하고 있잖아요
이 고린도전서라는 실상에 짝꿍이 되는 한세트가 되는 것이
구약이라는 그림자 곧 호세아 서를 했거든요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의 신앙관을 들통내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그야 말로 정통 정통 정통 우려먹는 집단입니다
나라 이름도 이스라엘의 고유성을 확보할려고
아까 말한 체화 자신의 몸에 각인 새겨버립니다
마치 가인이 무서워서 보호해 달라고 하니 이마에 표를 새겨버리듯이
이 사람 건드리지 마세요 라고 그것을 이용해서
더더욱 구원에 집착하는 바벨탑을 쌓는
구원 중독에 빠지는 겁니다
국가라는 시초가 바로 그런 바벨탑 구원 중독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종교라는 물을 빼는 흉내롤 사기를 치지만
국가라는 정치는 한 인물이라는 분을 말하고자
망하기 위해서 발생 되어야 하는 겁니다
마치 애굽이라는 국가가 예수님이라는 어린양을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생겨나서 망하기 위해서 나타나야 하듯이 말이지요
바로 그런 애굽왕 바로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주님은 영광 받는 겁니다
두 언약을 완성하는 말씀이라는 계시를 완성하시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대조를 이루는 겁니다
주님의 선악은 따로 있었고 아무리 우리가 인간의 지혜로 특히 선악의 지혜로
그것이 바로 인간 언어이지요 그런 언어로 말빨로 지식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아름답다 라는 말은 선악을 완벽하게 구비했다 갖췄다 해도
주님의 선악은 인간의 선악에서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인간은 죄 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은 이상 말이지요
죄가 먼저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은혜를 알려면 이 죄를 거치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탄을 마귀를 사망권세를 거치지 않고서는
풍랑을 거치지 않고서는 오 주여 당신 도대체 누구시길래
이 풍랑도 이 죽음도 잠잠케 하십니까 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죽음이 죽음인데도 불구하고
누구 말 마따나 무가 없음인데 없음이 없음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없음의 권세에
죽음의 권세에 죽었는데 왜 그 죽음이라는 그림자 권세에
다들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인데 왜 다들 그 허구 허상에 빠져서
허상에 우상에 다들 엎드리지 않으면 안되는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 아닙니까
요즘 이 시대에 더더욱 드러나요
이민자 난민
문서가 없는 자들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 아니냐 말이죠
다들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취득해서 체화 신체화 합일 동일시하고자 각인 새기고 있는데
그럴수 없는 예외 인간이 있는 겁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거룩한 예수 라고 해도 국가라는 짐승에 체화가 안되니까
종교라는 교리에 체화가 안 되니까 그 세례식에 세례를 받지 않으니까 연합되지 못하니까
아무리 거룩해도 소속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죽일수 있는 적국 아니 무국적자인 것이지요
그런자는 희생 제물로도 삼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희생을 통해서 국가 라는 짐승 체제가 돌아가야 하는데
희생 곧 비티에스의 피 땀 눈물로 삼았다가는 국가가 무너져요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짖는 자여
어서 너 자신이나 바벨탑 쌓아 보시지
전신에 바벨탑 시선으로 보는 겁니다
구원의 탐심이라는 우상의 시선 그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겁니다
실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껍데기 모양만 대따 완벽하게 갖춘 겁니다
그 개인 구원이라는 탐심, 우상숭배에 중독이 되어 있으니
빠져 나올 방법이 없어요 권세 이거든요 권세
자기가 구원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구원이 그 자를 건져야 하는데 주객이 뒤 바뀌게 되니
그림자 구원이 가짜 구원이 구원 받는 자기에게 취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말이죠
육의 소욕(소망)과 성령의 소욕(소망)이 서로 충돌하는 그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주님의 소망은 우라와 단 한 개도 맞는게 없어요
아 그럼 나는 구원 받기를 바라는 소망인데
주님은 너는 심판 받기를 바라는 소망이라는 말이냐?
우리 선하신 주님을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게 모독을 하느냐 라는 식이다 말이죠
인간이 예수님을 선하고 취급하는 이유는
자기를 선하게 봐 주십사 하는 소망 소욕이 이미 깔린 상태이다는 겁니다
다행히도 주님의 거룩은 그런 인간의 바램의 거룩과 안 맞는
차이성 때문에 차이 구분 구별 분리 차단 단절성 때문에
그 덕분에 우리에게 안 속으신다는 거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꾀느냐
속임수 아니다면 이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서 오라 라는 겁니다
모근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거룩의 바이러스 점검을 받고 오라 라는 겁니다
바이러스 안 걸린게 없더라 말이지요
단 한 개도 온전한게 없어요
반드시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하나는 딱 한 사람만 범죄해도 다 범죄케 되는
이 율법이 가입이 되어서 모든 사람을 죄 아래로 가두는 율법
이런 취지도 모르고 반대로 알고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 지옥가는데
북이스라엘의 신학이 이러니까 남유다 까지
심지어 다윗 까지도 다 물들인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북이스라엘에게 없는
몽둥이 언약 징계의 매 언약이 남유다에게는 떠나지 않은 덕분에
또 하나의 언약이 뭔고 하니
딱 한 사람만 잘해도 모든 사람이 다 잘되는
그 딱 한 사람이 아무나 지나 개나 아닙니다
바로 한 왕
살아있는 왕 아닙니다
그렇다고 죽은 왕도 아닙니다
죽었으나 산 자요
이것은 인간 용어에 말에 그 선악 언어에 포작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언어 이전의 말씀
곧 언어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던
(시 1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개역)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 19:3, 개역)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5, 개역)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 19:6, 개역)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 19:7, 개역)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개역)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개역)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개역)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개역)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개역)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개역)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4, 개역)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니 언어도 없었고 소리도 없었는데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기를 원하네
생명이 되신 주 반석이 되신 주 ~~~~~~~~~
라고 찬양할수 있는 입술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으로 창조한 세계읭 묵상할수 있는 마음을 창조하셨음을
다윗이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림자를 거쳐서 실상을 보고서 외치는 겁니다
왜 창조 이전의 말씀을 왜 못 보고
눈 앞에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의 의를 쌓고자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했었었었었었 었었엇 던 고 ~~~~~~~~~~~ 라고 말이지요
율법을 자신의 몸에 체화 시킨 그런 다윗 조차도
자기 몸을 뛰어넘는 몸에 각인 시킨 그 몸을 자랑하는게 아니라
그 몸을 뭉개뜨리시는 더 나은 몸을 집어넣는 새 몸 새 마음 새 영이 있었다 라는 것
그 새 입술로 새 마음으로 새 창조한
한 왕 덕분에 말이지요 이 새언약을 찬양하는 겁니다
구언약은 무조건 틀렸다는 말이냐
틀린게 아니라 인간들이 더럽혔다 라는 겁니다
모든 구약은 예수님만 증거했는데
인간들은 재주도 좋게 예수님이 절대로 나올수 없도록
단 한 구절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라는 겁니다
그런다고 그림자를 뚫고 사망 권세를 뚫고 실상이 안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인간의 짓의 대표자들로 유대인들이 사용이 된 거죠
계속 그런 속임수
곧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는
꾀는 그림자 속임수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계시록처럼 유대인이야 말로 사탄의 회 인겁니다
물론 유대인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사탄의 회 인 것이지요
썩은 동앗줄을 붙잡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가로막는 짓만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지옥의 몸 속에서
사도바울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총괄 무대장치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사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바울의 힘입니까 예수님의 피의 능력 입니까
사다리 걷어차는 대표자 였던 바울이
본인이 도리어 사다리를 놓아주신
하니님의 능력인 십자가 덕분에
올라타서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
이건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 라는 것은 당연하다 말이지요
즉 자신의 병든 마음을 고친 것은
어떤 교리도 신학도 정통도 아닌
지금 살아계시는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다는 겁니다
그가 찔림으로 나음을 입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본인은 죽였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계심으로
죽은 바울을 살리신
제대로 죄인을 부르시러 오심이다 말이죠
그럼 누가 살아 있었고
누가 그 동안 죽어 있었냐 말이죠
이스라엘의 기능은 절대로 죽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인간들이 혈통이다 뭐다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도배를 해 버리니까
율법의 기능이 곧 알맹이가
이스라엘의 알맹이 기능이 막혀서 안 나오는 겁니다
모조리 껍데기를 겹겹으로 모세의 완악한 수건으로 덧때우기만 더더욱 겹겹으로 더해졌다 말이죠
이것이
유대인을 장악한 마귀이며 그런 마귀가 예수님을 세가지 시험으로 유혹하는 겁니다
즉 유대인들은 이미 이 세가지에 다 넘어갔다는 거죠
그 마귀만을 상대하시는 겁니다
인간은 아예 배제 누락 시킨다 말이죠
사도바울이 사탄의 가시를 빼 달라고 아무리 간청해도
세 번씩이다 기도 해도
바울을 누락 시킵니다
그 사탄의 가시를 통해서 도리어 영광 받으시는 겁니다
애굽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듯이 말이지요
마귀가 아니면 두 언약이 안 되는 겁니다
마귀가 나서줘야
맡은바 소임을 다 해줘야
가룟유다야 너가 맡을 일을 어서 해야지 라고
그 일을 해 줘야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선악은
인간의 선악 인간의 하나님 됨에 있어서 거스리는 걸림돌이 되기에
유대인은 예수님을 아무리 봐도 바알세불 걸린 마귀 중의 대 마왕 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단순히 화가 나서 즉흥적으로 한게 아닙니다
철저하게 분석하고 최고의 신학 최신의 신학짜기 다 동원해서 내린
심사숙고로 가말리엘 문하 같이 생각해낸 겁니다
괜히 그런 판단을 한게 아니다 말이지요
아무리 봐도 인간의 선악에
즉 인간의 율법 지킨 그 행함에 예수님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기 때문에
무조건 악마로만 바알 세불 걸린 대 마왕으로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야 말로 교회다니는 사람들의 최대의 적입니다
남에게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를 뒤집어 씌웠으면 씌웠지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교회 사람들이다는 거지요
목사면 더하면 더 했지 자기가 십자가 지면 교회를 이끌어 갈 사람이 없다 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것을 제가 직접 그런 의미로 최고의 성화론자 목사한테 들었다 말이죠
도리어 보험금 타낼 생각부터 하더라 말이죠
어리석고 미련한 그 젊었을때의 한 때 객기로 잘못 생각했겠지 싶었는데
도리어 그런 사상을 깔아버린 사상을 도리어 퍼트리고 앉아 있더라 말이죠
지금 현재 까지도 말이지요
그림자를 쫓는 유대인 사탄의 회와 뭐가 다른지?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고
그 꾀는 속임수에 왜 또 다들 속아 넘어가는지???
아 그가 맡은 바가 그것이니까 그렇구나
안 그러면 설명이 안되는 거지요 뭐
자기 착함으로 물론 단순히 착한 것 아니지요
그들도 착함을 거부하니까
그런데 그 착함을 성화론을 많이 지킨 체화화 시킨 그것으로 결국 목사 눈치 보는 것이지요
누가 체점 매기고 누가 점검을 해 주겠습니까?
목사 말고 있겠냐 말이지요
다들 목사라는 면접관 앞에서 면접 시험을 치는 식이니
그게 무슨 교회냐 말이죠
그 칸 다고 땅 끝에서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에서
용광로 하나님의 저주 속에서 나온 남은자가 되겠느냐 말이죠
또 이 카이 평상시 학력 높다 라고 유식한 척 하는 목사가
그럼 어머니 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느냐 하던 니고데모처럼
그럼 용광로 불 속에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느냐 라고
또 인간의 죽음인 죽음도 아닌 그 그림자를 또 행하라 말이냐 라는 식으로 따지더라 말이죠
그것 때문에 대구 어떤 교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교인들이 따라 할까봐
그런일이 발생할까봐 과거에 한국에서 어떤 전도사가 그런 일을 진짜로 한 사건이 있다 보니
그것 땜에 겁이 나서 그 아브라함 이삭 제물 바친 사건의 그림자에 겁먹고
실상을 이야기 조차 못하는
마치 주님의 자녀를 자기 자녀처럼 보더라 말이죠
판덴베르그 신학을 추구하는 목사인데
주님의 자녀는 그런 그림자에 속아 넘어갈리도 없고
그런 그림자에 걱정하는 목사에게 속아 넘어갈리도 없는데
그 교회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가고 있으니 원
덕분에 그런 행함을 쫓지 않게 해 주심을
분명히 속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 소돔과 고모라 교회에서 건져주시니 얼마나 다행이냐 말이죠
이 지옥의 몸이 수 천번 속고 속아 유혹에 넘어갈 리가 뻔한데도 말이죠
아이구 서론이 13페이지 까지나 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바로 그런 속임수 그림자에서
바울이 나 봐라 빠져나옴 당했잖아 라고
십자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빠져나온 자기자신을 자랑하는게 아니라
어떨데 그 불가능이 벌어졌는데
약간 살짝 약올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이건 내 뜻도 니 뜻도 아니였다 라고
인간 개입 불가 이다 라고
‘
바로 이스라엘의 본래 기능은 인간 개입 불가인데
인간이 개입해서 만들어진 조작된 구약
조작된 율법
조작된 여호와를
알맹이는 정작 속 빼 버린채 마치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했듯이 믿음이란 시공간을 초월하는데
반대로 이 놈들은 알맹이는 빼버리고 껍데기로만 도배를 겹겹으로 했으니
예수님을 볼수 있도록 하는 통로를 다 차단시켜버렸다 말이죠
그런 구약을 쥐고 있으니
주님이 만든 새로운 신약으로 거룩으로 옮기움을 당하는 것을
원하겠냐 거부하겠냐 말이죠
원함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닌 채로 바울이 원함도 달음박질 함도 없이
이 참 이스라엘의 기능 속에 들어오게 되니
행함이 아닌 은혜 안에 들어오게 되니
이 실상을 누리고 프겠습니까
그림자 속에 머물러 썩은 고인 물이 꼰대가 되고자 하겠냐 말이죠
자신의 꼰대 중의 꼰대 됨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조차도
똥 덩 어 리 밭갈아 뒤엎어버릴 정도이나
뭐가 실상이냐 말이죠
그럴수 없으니나
더 실상 속에 들어갔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ㅋㅋㅋ
드디어 본론으로 아따 길다
또 그럴수 없느니라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롬 1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무엇이 그럴수 없다 라는 겁니까
저들의 넘어짐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즉 이스라엘의 참 기능은 오뚜기입니다
넘어지고 싶어도 못 넘어지는 겁니다
그 중심에 자석이 있잖아요
그 중심에 여호와 하나님이 있잖아요
그럼 이 중심을 알고프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있다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분이 그 중심에 있다면
아까 마한 한 왕
한 사람만 거룩하면 다 거룩해지는 그 한 왕만 있다면
그 중심 때문에
아무리 넘어지고 싶어도 넘어질수가 없는 겁니다
오뚜기를 넘어뜨린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하세요
그 중심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벌떡 일어납니다
꼭 이런 무식한 놈이 있어요 실제로 교회 다녀 보면 다들 그런 놈들 뿐이예요
중심 자석의 기능이 일어나도 오뚜기 못 일어나도록 바닥 부분을 손상 시키고 깨뜨리면
둥글한 밑바닥이 평펴해지거나 탄력서의 반동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면 못 일어난다 라고 주장하는 득한 의미로 주장하는 자들 아까 말한 그런 성화론의 대가 목사들이 수두룩 밖빡 이다 말이지요
도로 십자가를 방해하고 실상 또렷히 보이는 실상을 거부하고
그림자로 돌아가자
십자가 고만 캐라
죄 죄 죄 고만 캐라
이제는 십자가 시대가 아니라
부활의 시대이다
죄 죄 죄 고만 카고 생명 부활 만 캐라 라고
이런 마귀 짓을 목사가 앞장 서서 해요 글쎄
빤스 그 놈만 그런게 아니다 말이죠
멀쩡한 목사 놈 다 그래요
오늘 본문으로 치면 바로 그런 놈들 그런 자들의 실패 덕분에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다 라고 합니다
그들은 부딧히는 돌에 부딧혀 넘어졌습니다
가만히 있는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너 남 7번 용서 할 줄 알아? 라고 육의 자랑으로
인간 중에 최고의 용서라는 7번 행함을 들이내밀면서
예수님에게 덤비다가 7에 70번의 용서 앞에서 나자빠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들의 넘어짐이 그들의 구원 실패가
도리어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님은 손해 본 것 없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구원 받은 수가 줄어들어서 마이너스 빵점이 되었는데
손해가 없다니요
도리어 이스라엘의 특이성이라는 처음자리 환자의 자리 죄인의 자리라는
처음 자리에서 첫사랑의 의미는 손해 본 것 없이 더 활활활 타오르듯이
이방인에게 넘어가서 이스라엘의 특이성이 만발하게 되니
주님 손해 본 것 없어요
괜히 까불면서 꽹과리 치면서 다가와서
괜히 시비걸다가
유대인 자기들이 자기 꾀에
누워서 침 뱉기 하다가 넘어져 버린 겁니다
오뚜기 라고 우기더니
오뚜기는커녕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는커녕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십자가를 거부하니
도리어 걸려 넘어져 버린 겁니다
예수님을 올무로 자빠뜨릴려고 그물을 쳐서 미끼를 잡았는데
도리어 그 미끼에 깔려 죽는
계시록의 원수들의 운명과 똑가은 짓만 하다가 죽어버리는 겁니다
결국은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이스라엘이 아니였던 것이지요
주님이 손해 본 것 없어요
마귀에게 빼앗긴 자녀가 없었어요
자기들이 그 동안 자녀 흉내만 내었던 것이지
지 꾀에 지가 넘어진 것이지요
도리어 이 두 언약의 한 세트 됨으로 인해서
주님의 약속의 완성이 풍성하게 되고
다시 싸매어주신
주께만 범죄한 자들은 더더욱 이 구원의 풍요함
희년의 기쁨이 더더욱 널리 퍼지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고여서 썩어버린 그런 짓 밖에 한게 없는데 말이지요
오늘날 교회를 보세요
돈에 미쳐서 다들 고인 썩운 물처럼 되었으니
누가 미래의 소망을 두겠냐 말이죠
청년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그럼 청년들이 세상이 희망 로와서 다 떨어져 나갑니까
아니지요 세상도 희망 없다 라고 절망하고 있는데
교회는 더 한 돈에 미친 놈들만 가득하니
청년들 눈에는 이제 교회도 희망 없는 강도의 소굴임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러니 성전을 헐지 않으면 청년은 더더욱 희망 없는 겁니다
극우들이 청년들만 모인다고 자랑하는데
여성 청년들은 그런 극우들에게 안 속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다 라고 해도 안 속습니다
그들의 행함에서는 의에 이를 수 없거든요
생명이 없어요
생명이 없는 곳에 왜 가냐 말이지요
바로 그런 인간이라는 성전이 깨어지지 않고
누락 되지 않고
단절 되지 않는 이상
예수님의 몸 이라는 새성전 참성전의 거룩을 볼 리가 없습니다
이방인은 보고 무릎을 꿇는데
이스라엘은 도리어 무릎 꿇켜서 죽이는 짓만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겁니다
세례요한과 반대죠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고
교회라는 의미는 바로 누락의 총화로써
뒤로 빠지는 모습인데
이 놈의 태극기 부대나
애국 장로 들이나
빨갱이 잡자 라고 외치는 놈들이 빨갱이 짓만 골라서 하고 있으니
이 모순 된 간극을 인간 쪽에서 좁힐 리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해결 할 꺼라구요?‘
주님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그 간극을 더더더더 벌리시고자
빵구멍을 더 크게 그 간극을 더 크게 벌리시는데 말이죠
바로 그런 단절성이라는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성령의 탄식을 보고 듣지 못한다면
성령의 소욕과 늘 충돌됨만 격게 되는 겁니다
보십시오
(롬 11:7, 개역)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저들의 눈은 흐려 못 보고 저들의 등은 굽어버렸다 라고 합니다
누가 이스라엘이
어떤 이스라엘이? 행함을 구하는 이스라엘이 말이죠
정직한 영을 달라는 다윗의 외침은 행함은 안된다
율법으로는 안 된다
도리어 율법은 저희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거치는 것이 되고 복수심이 되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더욱 살인의지만 커지니까 말이지요
저들이 구하는 추구하는 그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하니까
그것에 대한 복수심이 살인의지가 더더욱 커지는 겁니다
그것이 도리어 이방인에게 풍요가 되어서
아 행함이 아니구나
그럼 뭐다? 은혜 로다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다 라는 겁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화목제물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화목제물 곧 십자가가 아니면
자기 열심과 자기 의를 쌓는 그 의문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정작 은혜 받은 이방인은 아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올무에 빠진 것 조차도 모르고 예수님에게 늘 올무를 치는 겁니다
자빠뜨릴려고 말이죠
이미 자기들이 넘어졌는데 말이죠
교회에서 청지 하는 놈들이 다 그런 놈이예요
늘 남을 넘어뜨릴려고 올무를 쳐요
그 자체가 자기가 자기가 친 올무에 걸려드는
누워서 침 뱉는 짓인줄도 모르고 하하 하하 비웃어요 글쎄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짓는 자여
자 이 올무에서 빠져 나와 보시지 라고
지가 자기에게 올무 쳐서 그 의문의 반복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본 은혜 입은 이방인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 알기로 함으로써
의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돈으로도 못 가요 아이들 찬양이 있잖아요
이것도 교회가 거부하고 있어요
오로지 교회의 메시지는 돈을 섬겨라 밖에 없어요
성화론자들은 맘 착해도 못 가요 라는 아이들의 찬양을 무시해요
거듭 나야 가는 나라 라고 부르는데
성화론자들은 또 니고데모 바리새인처럼 어머니 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까 라고
어떻게 해서든 행함으로 달성할려고 하니
자기 꾀에 자기가 친 올무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그래놓고 주님에게 핑계 대는 겁니다
정작 주님은 이방인에게 풍요케 했으니
너는 이방인의 자리에서 풍요함을 누리면 될 것을
꼴에 이스라일이라고
저 개같은 이방인과 같지 않다 라고 자존심을 추켜 세우고 있으니
역시나 지 꽈에 지가 빠져버린 겁니다
자기 눈을 자기가 막 찔러요 글쎄
자학의 대가들입니다 자살의 대가들 말이지요
지금 누리가 바빠요
개인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주님은 다 이루셨다 말이죠
예수님 개인의 뜻을 성공한 것 없어요
오히려 예스님도 실패한 모습인 사형수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 대로 하심인 이 아버지의 뜻만이 다 이루어졌기에
그 완성 앞에
이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짐 앞에
예수님은 다시 싸매어 주심을 받고 주의 자리에 까지 오릅니다
주님의 자작극입니다 왜 자작극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것을 왜 일부러라도 보여주시는 겁니까
이 이미 완료된 완성 앞에서
어떤 것들이 허구요
미완료요 허상인
자기를 위한 우상인지를 그 차이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깊이를 모르면 하나님의 깊이를 알수 없듯이 말이죠
마귀는 예수님에게 세가지 시험으로 제발 우상을 깨뜨리지 말아라 라고 합니다
너를 위해 돌을 떡덩이 되게
예수 너를 위해 거룩한 성전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이 두손으로 받쳐주는 그런 기적을 보여라
예수 너를 위해 너 메시아를 위해 온 천하 만국을 줉테니 절하라 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개인이 아닌 개인의 메시아 됨이 아닌
그런 자기를 위한 우상이 됨이 아닌
다만 아버지 뜻만을 이루시고자 화목제물
십자가의 저주로 갈기 갈기 찢기는 희생제물이 되려고 오셨다 라는 겁니다
주님의 이런 실패와 같은 죽음 그 절대저주 앞에서
어딜 감히 이스라엘의 실패 나 개인 구원의 실패 따위를 들이내밀겠습니까
예수님의 실패 보다 더한 실패 입니까?
인간 구원의 실패 따위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 들이내밀수 없습니다
빤데기 앞에 주름 잡기입니다
7에 70번 용서 앞에 그 화목제물 되심 앞에
남 7번 용서 내밀기입니다
그런 헛된 짓
그런 완악한 수건 겹겹이 씌운 모세 자리 앉기 큰 길에서 대접받기 라는
그런 울리는 꽹과리 껍데기 모양 보다
경건의 능력인 이 제대로 된 십자가의 죽음을 못 본다 라면
우리의 눈은 여전히 못 보도록 가려져 있고
우리의 등은 여전히 사망의 권세에 굽신 굽신 아부하는
율법의 행함으로 정죄하고 살인죄를 저지르는 십계명을 여전히 어기게 되는 겁니다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도리어 어기게 되는 이 간극을 못 보는 겁니다
이 사망의 몸
늘 스멀 스멀 올라오는 배고픔 헐벗음 목마름을 자기 손으로 억눌려 가면서
그 사망의 권세가 올라올 때 마다 억누를려고 두 손으로 아무리 가려도
그 의문의 반복은 마침이 없습니다
죽기를 무서워서 사망의 종노릇에 더더욱 자기 손으로 가릴려는 그 열심에
결국은 등은 굽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끝날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 굽쇼? 네 끝나는 죽음이 오기까지는
그 등 굽히는 아부는 마침이 없이 계속 멈추지 않고 계속 됩니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말이지요
그 율법의 마침
그 의문의 반복의 마침이
한 왕 한 목자의 거룩 완성
율법 완성
다 이루신
십자가의 사랑의 완성으로
비로소 우리는 올무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 같이 ~~~~~
이제 개인 구원이라는 실패 없이는
집단 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몸의 풍성함을 못 보는 겁니다
나 라는 우상 그 그림자의 실패가 없으면
실상의 완료를 다 이루심을 못 보듯이 말이지요
개같은 이바인 행함이 없는 이방인은 누리는데
바보 같이 끝까지 행함을 쫓은 유대인들은 의에 못 이르고
7ㅇ0 70번의 용서를 못 이르고 못 누리고
그저 남을 7번 용서하는 그 그림자 그 의문의 반복
사랑도 없으면서 사랑하는 척 남 7번 용서한 자기 라는 육의 자랑
누가 크냐 라는 그 헛 짓
계급을 나누고 누가 크냐 라고 경계선을 긋는 자기 영역 자기 의를 쌓는
그 모래 위에 집 짓는 그 헛짓이
남 7번 용서의 실패 덕분에
7에 70번의 용서의 부요함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듯이 말이지요
남 7번 용서 라는 육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온 우주까지 넘치도록 부요한 그 사랑을 도리어 받고 누리는 겁니다
오로지 환자 만이
죄인 만이 말이지오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는 주님의 거룩인 십자가의 피 용서
의인에게는 필요가 없는 주님 홀로 이룬 그 의를
그 은혜를 은혜의 날에
희년에 포로된 자 갇힌자 억눌린 자 만 누리듯이
소경된자만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 만이 일어서 걸으며
문둥병자 마이 고침을 받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건강한 자 의인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데 말이죠
죽은 자 만이 다시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부요한 복된 복음이 전파 되는 겁니다
(마 11:5, 개역)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은혜의 날 은혜가 왕 노릇하는
사망의 종노릇으로 굽신 거리는 그 등을
은혜의 왕의 등장으로 꼿꼿히 펴도록 고쳐주심을
은혜의 왕 됨을 말하고자 쫘악 다리미질로 평평하게 펴 지도록 하시는
그 희년의 증상물로 삼으시는 그 증상을 그 기쁨을 마음껏 풍요롭게 누리도록
끝까지 죽기까지 섬기신 그 결과로써 나타내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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