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9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미련한 복음과 요나의 표적) (고전 1;2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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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9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미련한 복음과 요나의 표적) (고전 1;25)
2025. 10. 12.  

젖먹이 보다 강한 자 없다

(시 8:2, 개역)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마 21:16, 새번역)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시 8:2(칠십인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24)
고린도 전서 2025 2025. 9. 20. 14:46
25-008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24)

〈고린도전서 1;25,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가스펠;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찬송가 440장 새 387 멀리 멀리 갔더니〉 

〈가스펠; 약할 때 강함 되시네 No.462 찬미예수 2000〉

가스펠; 약할 때 강함 되시네 No.462 찬미예수 200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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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약할 때 강함 되시네.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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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찬송가 440장 멀리 멀리 갔더니, 새찬송가 387장〉

찬송가 440장 멀리 멀리 갔더니 , 새찬송가 387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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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2. 예수 예수 내 주여 섭섭하여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3. 다니다가 쉴 때에 쓸쓸한 곳 만나도 홀로 있게 마시고 주여 보호하소서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아멘


〈고린도전서 1;25,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현대어) 비록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어떤 지혜로운 계획보다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매우 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더 강하십니다.


약한 자리 미련한 복음의 자리가 아니면
강한 자의 악을 들추어낼수 없음
미끼 만이 완벽한 범죄의 약점이 드러남
미끼를 물 수밖에
왜? 완전범죄를 더더욱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믿음이 있기에

솔로몬의 지혜는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드는 겁니다

아 그럼 완전범죄 측은 아 교만하면 안되겠구나 겸손해야겠다
바로 그 겸손하겠다 교만하지 안겠다 라는 그것이
더더욱 겸손의 위선을 갖추고 더더욱 교만을 갖추는 이 양면성을 갖추게 되니까
이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미련한 복음인 십자가의 지혜를 나타내기에

이 모순이 생명의 사다리 곧 생명의 밧줄을 던지는 모순이 되고

반대로 모순이면서도 모순을 감출려고 하니
더더욱 겸손 위선 더더욱 교만하지 말아야 겠다 라는 것이
간극을 좁힐수 없는 더더욱 간극이 벌어져서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자기가 자기 스스로 실언할 수 밖에 없도록 나오게 하심
그카이 나는 내 죄를 내 스스로 말했다 라고 또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게 되니

바로 이런 육의 자랑 곧 강함만을 드러내는
나는 하나님 보다 더 겸손하다 더 솔직하다 라고 뭇별보다 더 높아지겠다 라고
정치 종교 경제적으로 장악된 자신을 다 드러내도록 하신다 말이죠

그러니 정직한 영이 없음에 성령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상한심령이 될 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 자기 죄로 우는 남은자는 바로 이 땅끝이라는 심판의 자리
약한 자리라는 이스라엘의 처음자리에서만 나오지

자기 범죄를 스스로 자수 한 것 조차도 자기가 의롭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활용되는 지독한 자기애 자기중독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시 8:2, 개역)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마 21:16, 새번역)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 ㉨시 8:2(칠십인역)


젖먹이라는 가장 약자가 바로 원수와 복수자를 들추어낼수 있는 가장 미약한 미끼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가 바로 모든 민족 중에 가장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힌 짓이다 말이죠
그리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유대인에게서는 곧 표적을 구하는 아하스 왕에게서는
이 임마누엘 젖먹이를 구한다 라는 것은 기적의 반대가 되는
가장 약한 모습이 되기에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에는 안 맞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젖먹이를 최전방에 보내는 그런 악한 짓을 안하겠다 라고
마치 순하디 순한 어머니가 먹을 것이 없어서
오늘은 내 자식을 식량으로 낼테니 그 다음 날에는 당신들이 자식을 내시오 라고
서로 약속을 해 놓고서는 막상 그 다음날 내어놓지 않으니까 고소를 하게 되는 겁니다
또 처참한 이야기 하나가 남편과 아내가 그것도 순하디 순한 아내가 먹을 것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자 라고 부부끼리 결정해 놓고서는 막상 남편이 반 이상 조금 더 먹으니까 삐져서 화를 내더라 말이죠 결국 인간은 극한 상황에 아무리 순하디 순한 자 라고 해도 그런 인간이 먼저 있엇던 것이 아니라 죄가 먼저 있었기에 그 올라오는 지옥을 인간은 감당할 수가 없고
결국은 사망의 왕 노릇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런 최빈국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메시아 곧 왕을 경제 문제 해결해 주는 왕을 먼저 뽑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트럼프 뽑는 이유도 미국을 미워하든 말든 인간 살고 보자 라고
그게 바로 적응 아닙니까 그 적응을 누가 누가 잘하나 라는 것이 처세술이요 정치술이듯이
종교는 그 등 위에 올라타는 음녀가 되어야 하고요

이 몸 뚱아리는 인간 존재 보다 죄가 먼저 있었다 라는 것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죄 짓고 안 짓는 자유 의지에 달린게 아니라
죄가 인간을 다루는 겁니다

그렇기에 의인은 없다 죄인 뿐이다 라고 하는데
그 죄가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해 버리면
더 이상 죄를 감출수 없게 되니
계속 감출려는 죄를 지어야 하니까
죽기를 무서워서 종 노릇 뿐만 아니라
심판 징벌이 무서워서도 죄인임을 감추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래야 그런 인간들끼리 모여서
적응을 하게 되니
누구 하나 딱 나타나서 아닙니다 이거 죄입니다 라고 해 버리면
그 질서 그 적응력 누가 다시 세울수 있겠습니까

그 누구 하나가 바로 다윗왕으로 오시는 예수님 어린양으로써

모든 사회 시스템을 허물어 뜨릴려고 오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미약한 젖먹이로써
선악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심판하시고

죄 보다 먼저 있었던 은혜로써 사랑을 완성 하시는 겁니다
천지창조는 선악으로 하지 않았고 사랑으로 창조 했거든요

선악이 뭡니까 곧 행함의 법칙입니다 선을 행했으니 칭찬 인정해 주고
악을 행했으면 벌을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선악의 법칙을 도리어 더 극대화 시킨 것이 바로 율법이요
이 율법은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핑계거리가 되는 겁니다

선악을 아는 인간 곧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데 있어서
정작 가나안 땅을 정복하지 못하는 겁니다
악을 안 물리치고 도리어 율법을 지킴으로써 악을 이스라엘 전체로 퍼트리고 있다 라는 거죠

그들 원수에게서의 실상은 남을 실제로 7번 용서하는 행함실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그림자 취급해 버리면서 동시에 실상이 아닌 말도 안되는 허풍으로
7의 70번의 용서를 말하더라 말이죠
말도 안되죠 베드로에게 30년 반평생에 겨우 7번 용서가 최대치인데
나이들면 더더욱 하기 힘드니 아무리 30년 더 살아서 해 본들 20번 목숨걸고 겨우 그 정도린데
뭐 7에 70번은 한도 최과잉이다 말이죠

실제로 490번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고 숫자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 그 인간들의 상대적인 모습을 깨뜨리는 입장에서
그 정도의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 인데
인간은 손가락 세면서 7번 8번 490번 수를 센다 라는 자체가
행함이 우선시로 깔린 결국 자기 존재를 먼저 우선시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런 자기 있다 라는 존재는 행함을 따지는 것이 실상이지

사랑을 먼저 따진다면 그것은 붕 뜨는 추상적 개념이니 피부에 와 닷지 않게 되는 거죠

그카이 실상에 적응할려고 행할려고 하지
실상이 붕뜨는 소리 일 것으면 적응할려고 해도 적응 불가의 행함이 끼어들 수 없는 일이면
더 이상 자기의 일이 아닌데 말라꼬 신경을 쓰겠냐 말이죠
자기 일 사람의 일만 중요한데 말이죠
그 사람의 일도 하나님의 일과 겹치는 부분만 할려고 하지
즉 믿고픈 것만 믿고 보고픈 것만 보고 행하고픈 것만 행하지
못 행하는 것들은 미루면 그만 이다 말이죠
그래놓고 무슨 놈의 선악을 주장할 수가 있겠냐 말이죠
선악을 안다는 자체가 죄 인데
그래서 그 선악 보다 더더더 선악적인 율법이라는 시이소를 가입 시켜서
죄를 더더욱 죄 되게 만들 뿐이지
선은 내 속에 없다를 알려주신다 말이죠
그것이 율법과 선지자로써
선은 내 속에 없음을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내 속에 선이 있다
나는 선을 행한다 거 봐라 행한 증거 있잖아 라고 자부했는데
7에 70이 떡 하니 가로 막고 있으니 그 사랑이 있는 이상
자신은 그 7에 70을 넘어설수가 없기에
가인이 아벨을 더 나은 제사 때문에 안 죽이고는 못 배기는
죄의 소원에 탁 걸려
문지방을 넘어설수가 없는 겁니다

즉 유대인은 율법의 행함을 쫓았기 때문에 의에 이르지 못하고
탁 걸려서 넘어졌다 라는 겁니다

심지어 어린양 얘수님이 임마누엘 구하라 라고 해도
선악의 의식에서는
임마누엘 젖먹이 구했다 가는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더욱 왕으로써 백성의 대표자 왕이면 왕일수록 더더욱 안 구할려고 하기에
이 젖먹이가 거리끼는 걸림돌로써
모든 왕들을 실족케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결과로써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 작용하는 겁니다

이 젖먹이는 멋들어진 표적 기적 구원에 안 맞아요
그래서 건축자들이 쓸모없다 라고 버립니다
아무리 끼어맞출려고 해도
그 건물에 안 맞는 용도요 볼품없는 미적인 모습에 아름다움이 없다 말이죠

즉 선악에서 안 맞고요 인간이 지키는 행함의 율법에도 안 맞아요
그래서 버리는 겁니다 괜히 사용했다가는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되는 겁니다 그 버린돌처럼 말이죠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게 할려면
즉 적응 할려면
처세술로 정치술로 건축물의 가치를 높이지 않으면
공실률 높은 폐업 상태의 성전이 되기에
아무도 오지 않는 성전을 지을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성전 곧 오늘날 교회를 지을려면
우상숭배라는 사람들이 찾는 점쟁이 찾듯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장치를 많이 많이 깔아놓아요
마치 실버레크레이션 교실
행복웃음 전도사 레크레이션으로 어두운 사회에 밝은 웃음꽃 잃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 같은 성전을 지으면
줄줄이 그 옆동네까지 줄폐업이 속출한다 말이죠

조지아주 제지공장 줄폐업으로 실직자들이 생기게 되니
그카이 경제를 살리는 메시아를 뽑지 않으면

젖먹이를 임마누엘 아기를 구했다면은 줄줄이 폐업이 되는 겁니다
도저히 메시아 자격을 줄수 없을 것이고
절대로 믿음이 가질수도 없게 되는 겁니다

아하스 왕의 솔직한 모습이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젖먹이 구했다가는 나라 망하는데요?
젖먹이를 구해서 나라 망하는게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젖먹이 등장으로 인해 모조리 다 핑계거리로 삼을 수가 있는 겁니다

교회가 저 놈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 라고 뒤짚어 씌울수가 있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젖먹이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모조리 우리의 죄악을 그 젖먹이에게 다 뒤짚어 씌우는 죄악을 들추어 내고자 함입니다
약한 것이 안 나타나고
강한 것 나타나 보세요 등이 굽어 지라고 아부하기 바쁘지
자신의 꽁꽁 감추어둔 죄악을 들추어낼수가 있겠습니까?

항상 상대적입니다 유대인이 표적을 구한다 라는 말은
악한 자들로써 강한 것을 추구한다 라는 것이죠
그들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 의식은 출애굽 당시의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 그거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선민이라고 자부하면서
2천년 이상 내려왔고 이제 구약을 지나 신약을 거쳐서 지금 현재 4년 이상을 자부하면서 내려왔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짜죠 그거 그림자 인데

진짜 실상은 십자가에 달린 인자
모세가 장대 위에 구리 놋뱀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라는 이 실상이 왔는데

아직도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새언약 필요없다 라고
이사야 53장을 찢어 버리면서 까지

겨우 겨우 이제 구약성경 그림자에 적응했는데?
행했는데?
뭐 그린자 라꼬?

실상은 예수님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 이라고?
그 임마누엘 아기를 구하라꼬

나 하나님 시험하지 않을래
겨우 겨우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삶을 실천하는데 겨우 적응했는데
버스 갈아타라고
하나님 갈아타라고
나(예수) 로 말이 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자가 없다 라고
모세 보다 더 큰 이가 나타났다 라고?
모조리 다 땅에서 난 자 이지만
하늘에서 난 자가 직접 내려 왔다 라고?

다 믿음 곧 사랑이 없으면 다 추상적은 헛소리일 뿐이다 말이죠
누가 믿었으리요
즉 반드시 안 믿겨지는 일로만 비유로만 오셔야지

홍해 기적 겨우 겨우 믿는데 적응 했는데?

그래서 겨우 겨우 강력한 믿음 강믿 으로 만들어 놨는데

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표적을 버리고

뭐? 요나의 표적을 믿으라고?
요나 삐지고
요나 배신때리고
니느웨 백성 회개 시키는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땅끝에서 나온 니느웨 백성이 이스라엘을 심판한다를 믿으라꼬?

예슈 너나 잘 믿으세요

구약과 어떤 접촉점이 없어요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서 구약 전부가 예수님으로 도배가 되었다 라고 하지만
유대인 입장에 서 보세요 어떤 랍비도 율법사도
구약에 예수님이 나온 적이 없다니깐요
임마누엘이면 임마누엘이지 예수 가 아니잖아요
설사 예수 라고 발음도 똑같고 뜻도 똑같고 이름도 백 프로 똑같다 하더라도
유대인에게서는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가 없어요
왜?

네 맞습니다 약하거든요
그것을 그들은 증명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한 이 있더라고
확인을 끝까지 했던 겁니다
신이면 죽을 리가 없고
신이면 인간 보다 강하지
인간 보다 약하디 약한
그 처참한 죽음으로 오실 리가 없다 라고

그것을 살인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시험을 다 해 봤던 겁니다

그카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서는 예수님은 강한자가 아닌 약한 육체로 그저 남아 있을 뿐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약속한 성령이 부어진 부활 이후의 사건은
행함을 쫓는 유대인들에게서는 모조리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에 이르는 소리들은
다 헛소리가 되는 겁니다

안 죽어야 하는데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 그 증거가 이미 명백한데

믿음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그 성령으로 인한 부활을 무슨 수로 믿을수 있겠냐 말이죠
믿음 하면 유대인들 보다 더 잘 믿는 믿음의 달인이 없는데

유대인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음으로만
즉 행함을 제거한 것으로만 이루어진 믿음으로는

유대인은 접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지난 주처럼 로마서에서 그럼 유대인들을 버리셨느뇨??

(롬 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어나다 라고 했습니다
버렸다면 사도바울이 모순된 증거가 되는 거죠

그럼 바울은 어떻게 믿었느뇨?
바로 이겁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그 증거물 로써 증상물로써 바울은

핍박자 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부음 받게 되니

어라 비로소 눈에 비늘이 벗겨져서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제가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나누는 부분을 이야기 할 때
제가 들어도 비늘 이라고 하지 않고 비닐 비닐 봉다리처럼 자꾸 말하던데
사투리인 듯 사투리 아닌 사투리 같은 하도 센발음이라서 비늘로 수정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나오네요 비늘~~~~~~

물고기처럼 비늘 벗겨졌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육적으로만
행함으로만 봤던 그 구약이
사실은 그 동안 단 한번도 보이지 않던 예수님으로 다 보이더라 라는 겁니다
비로서 성령으로 보이는 겁니다
눈에 안약을 발라서 비로소 제대로 보였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실상이 보이니까
그 동안 그림자를 그림자로 안 보고 그림자를 실상으로 보고
자신들의 행함으로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으로 규정을 했으니

그 나사렛 이단 예수를 척결하는 그 당사자가 꼴까닥 넘어졌으니
아까 말한 끝까지 다 실험해봤기에 파고 파고 또 파고 결론을 내렸거든요
모세언약으로는 예수는 아니다 라고 말이죠
네 맞아요 모세언약으로는 안 됩니다 메시아 아닙니다
오로지 다윗언약처럼 바울이 다윗의 자리에서 왕이 아닌
죄인의 자리라는 그 처음자리에서
젖먹이 이름 없는 솔로몬 태어나기 전의 솔로몬 형 이라는 
그 젖먹이로 인해서 다윗은 육의 눈에 비늘에 벗겨진 겁니다
아뿔사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것으로는

의에 생명에 이를 수 없음을
아니 본인이 다윗 본인이 그 가나안 땅 여부스 땅을 정복해 놓고서도
그 이유를 모르니

자기가 한게 아니였고 주님이 창세전에 꺽으신 뼈로 인해
즉 은혜로 인해
번제와 제사가 아닌 인애와 자비로 인해
계획하신 바를 이루신 것에 자신은 그저 도구였을 뿐인데

도구인 지팡이 주제에 마치 자기자신이 행했다는 냥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는 둥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둥

겨우 율법으로 자신의 범죄를 가리우는데 사용하는

이 완악한 마음을 무슨 수로 가리우냐 말이죠
그 딴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릴게 아니라

이 꺽으신 뼈
젖먹이의 부르짖음으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바로 이 버림

대신 매맞지 않으면 나음을 입을자
고침을 받은자 아무도 없는

그 정도로 인간은 자기 행함만 우기고 우기는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는 이 완악함을 꺽지 아니하면

아무도 소돔과 고모라에서 벗어날 자 없다 라는 겁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는 것이 결국은 복수심이다는 거죠
예수님을 죽이는 불순물 마음인 겁니다 살인의지

율법은 그래서 올무를 친 겁니다
남이 아닌 내가 예수님을 죽이는 원수였음을 까발리는 겁니다

그 원수에게만 나타내시는 사랑임을
그카이 이것은 원인에 따라는 결과의 조건에 충분조건에 맞는 행함에서는
나올수가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사랑 말고는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창조한 것을
마귀는 선악으로 그것도 하나님의 무기인 선악을 가지고 마치 마귀도 선악을 자유롭게 다룰수 있는냥 사용하더라 말이죠 마귀 잡을려고 올무 친 선악을
인간이 괜히 안 겁니다
그래서 율법도 마귀 잡을려고 친 것인데
안 걸려든 인간이 없을 정도로 다 걸리는 겁니다
사랑이 없이 율법 지키면 된다 라는 그 완악한 수건을 도저히 벗을 수 없도록
더더욱 강퍅케 만든 것이죠

마귀 잡을려고 친 율법이라는 올무를 인간이 괜히 지켜서
지키면 지킬수록 예숭님을 죽일 수 밖에 없는 그 완악함의 증거로 인해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강한 것을 표적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더더욱 바라는 결핍으로 인해
그 결핍을 강요하는 사회로 인해 자식을 정신병으로 몰아넣는
우물에 빠뜨려 죽이는 꼴이였다 말이죠

카프카 라는 소설가가 유명한데 이들 유대인들은 유교 보다 천배 만배나 강한 율법으로 인해
자식들을 자살로 막 몰아가요 유교의 엄격함은 율법에 들이밀 대상이 못 됩니다 쨉도 안 되요 뻔데기 앞에 주름 입니다
저도 목사들 심심하면 저보고 자살하라 라고 
지도 못 지키는 율법을 저에게 막 요구를 해요 
하여튼 웃끼는 소시오 패쓰들이다 말이죠 
그래서 목사를 전도하게 되면 이것을 반대로 느끼는 겁니다
제발 생명의 밧줄을 잡으라 라고 해도 죽을 듯이 싫어해요
왜냐하면 그 목사라는 권력을 그 강함을 손 못 놓겠다 라는 겁니다
끝까지 자기는 목사 라는 겁니다
그거 놓으면 구원 받는데 지옥을 지 발로 가겠다 라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 가는 그저 자기를 인정해 달라고 징징 거리기만 해요
마치 악귀가 십자가 그만 들이대라 라고 괴로워 하듯이 말이죠 그런 영화 장면 요즘은 잘 몰라 과거에 많았다 말이죠

젖먹이는 살아 있는 자로 취급 못 받습니다
죽은 자로 취급 받아야 즉 무시꺼리입니다 무능해요
무능한 젖먹이가 어떻게 강합니까
아이가 자기의 약함을 알기에
외부에서 살려는 젖을 외부에서 물려 주지 않으면 나 죽어요 라고
시끄럽게 울기만 할 뿐이지
어떻게 그런 무시꺼리 죽은자 취급받고 무능한 젖먹이를
어떻게 최전방의 전쟁터에 내 보내느냐 말이죠

말이 맞잖아요 그래서 아하스 왕이 아무리 이사야 선지자가 우겨도
나는 그런 짓 안하겠다 라고 하나님 시험 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 걱정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그 가짜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자기가 하나님인 거죠
나를 시험하지 말라 라는 겁니다
나는 강한 자의 하나님이지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바로 그게 죽은 자의 하나님이다는 증거죠

마치 이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겹쳐지면서
바리새인 랍비 니고데모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라느 것을
다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야 한다 라고 해석을 하니
믿음 보다 행함으로 어떻게 그것을 행하는게 가능한가 라고만 보는 겁니다
우리가 다 이렇습니다
행함으로 밖에 안 보이니까 실상 보다 그림자로만 보다 보니
자꾸 행할려고 해요 못 행하는 것 주니가 내 열심히 특심이라고 땐깡 부리고

믿음은 받대로 내 쪽에서 행할수 있는 것 아니면 이미 행했던 것
감사하게도 모조리 지워주고 삭제캐 해 주십니다
아 그러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데 그 적응령 처세술 정치술 다 무너지는데
장로가 되어 다시 초신자로 다시 시작하라고?
얼마니 기쁩니까 내가 하는 것 없으니 그때 처음사랑을 다시 느끼니
첫사랑에 얼마나 설레겠습니까? 상대방과의 만남 보다
자기가 자신을 높은 가치에 둔 것을 다시 시작할려고 하니 엄두가 안 나겠지요
맞아요 엄두 내지 마세요 그게 믿음이고 엄두 낼려고 한다면 그거 행함입니다 복수심
눈에 안 약 발라서 비늘 벗기는게 아니라 더더우 비늘을 덧 씌워서
완악한 수건을 겹겹이 가려서 무시 안 받는 길로만 가겠다 라는 겁니다
우짭니까 율법을 죽이는 셈입니다
율법을 지키는게 율법을 죽이더라 말이죠
선지자를 죽이고 거짓선지자만 쫓더라
대충 대충 평강이요 평강이요 외치는 거짓인도자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자 말이죠 


신앙도 믿음도 교회도 성전중심 사회도
행함으로 적응 실컷 해놨는데
열심히 특심인데
율법 네 배나 그 놈에게 벌헤라 인데

뭐?

젖먹이를 구하라 굽쇼?

하나님 점쟁이 찾듯이 안 찾겠습니다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시험하고 점쟁이 찾듯이 하더라 말이죠
이 간극을 인간 쪽에서 좁힐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땅 끝 이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사도바울처럼 예수쟁이 죽이더 다니는 것을 멈출수가 없고
나사렛 이단 예수로 몰아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아요
율법의 달인 인데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써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데
율법달인 중에 율법달인이다 말이죠
그것을 한 순간에 똥떵어리 배설물로 만드는 것은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이 요나의 표적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이 젖먹이 어린양 만이 실상을 보여주심으로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신다 말이죠

그 미약한 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의 근원인 복수심 곧 선악을 들추어낼수 있으니까 말이죠

솔로몬의 재판은 참어머니를 죽음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아이도 두 동강이 나야하는 죽음 속에 놓여지게 되고 
그 어미도 그 아이의 죽음 속에 놓여져서 아이를 구출하는 마음이 죽음 밖에서가 아닌
그 죽음 속에 뛰어드는 마음으로 놓게 됩니다
왜? 어머니 자기 쪽에서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거든요
그저 함께 죽는 것 외에는 없어요
이것이 바로 진짜 어미의 마음
곧 잃어버림을 아는 겁니다
누가 자기자식 버림받는데 박수치고 왕의 권력에 옳았습니다 아멘 아멘 할 자 할 부모 어디있습니까?
그 무능한 젖먹이처럼 부모도 그 아기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무능함 뿐입니다

사다리 걷어찼다 라고 좋아라 죽는 그런 부모 그런 배 아파 낳은 자식의 부모 없잖아요

바로 그렇게 가장 미약한 처음자리에 놓을때에 비로소
원수가 드러납니다

그냥 단독적으로 나는 약함을 추구할래 이것은 다 연기요 처세술이요 정치인 그게 바로 적응력이지요
상대적인 약함입니다 즉 상대방은 반드시 강한 쪽으로 가는 겁니다
약한 자가 상대방을 강한 것을 추구하도록 맹글어 낼수가 없어요
결국 주님의 손에 달린 문제로써 당하기만 할 뿐인 입장입니다

(이런 장면이 신약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다 넘어지니까
아낙네들이 따라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웁니다
여성들의 심리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그렇게 울면서 따르다 멈췄는데
예숭님은 못때빠지게 싹 뒤돌아 서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라고 하십니다
즉 솔로만 재판의 진짜 엄마의 아이 두 동강 나는 입장이 된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구약의 솔로만 재판의 지혜를 그림자 이고
이게 실상이다 라는 겁니다
나는 지금 너희들 살릴려고
너와 너 자식이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을 막을려고 가는
낵가 진짜 너희 엄마다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누가 물에 빠졋고 누가 죄 속에 불타고 있느냐?
내가 아니라 너희다
내가 그 죄 값을 치르지 아니하면 너거들 불 속에서 건짐받을 수 없다 라는 겁니다
물론 아무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와야 비로소 그 말씀이 그런 의미 였다고 보게 나는 그래도 약한 길 가겠다 라고 하면
또 니고데모처럼 어머니 뱃속에서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데 어똑하지? 어떡하지가 아닌 오똑하지 라고 손가락 빨아야 한다 말이죠 어차피 약속한 성령 와야 알 것 같으면
못 알아 먹는 말 말라꼬 하시노 가 아니라
그 만큼 우리는 눈에 비늘이 끼여서 적응할려고 처세술로 남의 눈을 의식해서
정치술을 눈물로 정치술을 할 뿐인 그때 그때 아니 고때 고때 상황만 넘기기만 하면 그만일 뿐이다 라는 식으로 눈속임 눈가림으로만 우리는 습관화 된 지옥의 몸이다는 거죠
이런 지적을 받는다 라는 자체가 용서 아닙니까 행하라가 아니라 양탈늑대 사모처럼 거룩을 지키라가 아니라 거룩을 지킬수 없는 지옥의 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울게 만드시는
그 지적이 오히려 감사하지 지키면 또 안 지킨자 옆에 붙이자 마자 교만해져서 또 쭐꾸덕 미끄러지는 우리는 어쩔수 없다 말이죠 안지키면 가만히 있는데 지키기만 하면 입이 건지러워서 몸이 건지러워서 정죄하기 바쁘다 말이죠 그런 완악함의 심각성을 우리는 그 정도로 모르는 겁니다 왜 쓸데 없니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라고 너와 너 자식을 위해 울어라 라고
주님은 심각한데 우리는 심각하지도 않는 것만 골라 골라 찾아서 울고나 자빠져 적응할려고 하니
그 정도로 실상이 와도 그림자만 쫓는 소경의 눈이다 라는 거죠

마침 다음주 내용이

22-065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과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남은자, 불의한 청지기) (롬 11, 6-10)

22-065 완악한 기적을 구한 이스라엘과 은혜받은 용서를 구한 택함을 받은자 (롬 11, 6-10)
2025. 10. 19.  ( 10 월   3 일, 녹음 )

이 완악함을 남은자랑 대조해서 항상 그렇거든요
괜히 사랑이 아닙니다
미움을 가지고 와서 대조입니다

아무리 봐도 미움 받아 마땅한데 왠 사랑이냐 말이죠
그러니 사랑 받을 조건을 내 쪽에거 갖출수가 없어요
그렇게 실컷 갖추었던 맏아들을 미움으로 가득차고 탕자를 향한 아머지의 사랑을 거부하는
지 스스로가 미움의 길로 가고
그 불의한 자는 하루 아침에 돌이키는 이 외부의 간섭

이 외부의 간섭이 바로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능력
오히려 경건의 모양만 대따 완벽하게 갖춘 맏아들은 자빠져 실족케 되는 겁니다 )


그래야 주님 자신의 솜씨 구원자의 솜씨로
지혜자는 원수까지 들추어내시는 암덩어리를 도려내시는 그 의술을 자랑하시지
환자 지가 지 암덩어리를 끄집어 낼수가 없어요
그저 외부에서 건져주시는 의사의 짜르는 칼에서만 건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려며는 죄인의 자리 환자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 놓을때에
원수들은 못 참고 자신의 숨겨진 마음을 실소하듯이 내 뱉도록 합니다

저도 가지지 말고 이도 가지지 말라 라는 왕의 판결에 아멘 아멘 한다 라고 그만 실수 합니다
너무 기쁘니까 그 함정을 파 놓은 것에 빠지니까
자신도 자신이 판 함점에 결국은 자기가 빠지게 되니 말이죠

결국 약한 아기 젖먹이는 힘을 먹고 사는게 아닌 창조주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짜 엄마는 평상시에도 힘으로 돈으로 아이를 살릴수 있다 라는 징징 거림 속에 살았던 것이고 그갓이 가짜 신 우상과도 연관된 겁니다
그러나 참된 어미는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사랑으로 살기에

약하디 약한 젖먹이는 선악으로 사는게 아니라 오로지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태어난 것처럼
사랑을 먹고 살기에

이 솔로몬 재판은 왕의 권력을 보여주는 번제와 제사 누가 크냐 라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은 그것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어요
남을 7번 용서 까지만 가르칩니다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치는 선생도 배우는 학생도 다 능력을 거부합니다
오로지 모양만 껍데기만 대따 완벽하게 가르치고 완벽하게 배워서 갖출려고 할 뿐이다 말이죠
그것이 바로 사다리 걷어차는 완악한 유대인 나쁜 유대인 이다 말이죠
지는 좋은 꼴 먹었다 라는 선민 유대인이고 나머지 남들은 못 먹도로 발로 밟아 버려 못 먹도록 만들어 놓고도 저들은 부정한 음식 먹는다 라고 정죄하는
다윗이 바로 그것을 알아버렸어요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있기는커녕
사다리 걷어찰려고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했다 라는 사식을 말이죠
그래서 새 마음을 달라고 비로소 죄인의 자리에 놓여지는 처음자리에서 첫사랑을 보게 되지
왕이라는 권력의 강한 자리에서는 나올수 없는 새마음이라는 것을 안 겁니다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없는 새 마음은 유대교도 아니요 기독교도 아닌 기독교도 돈에 미쳤을 뿐이기에 주변인들 그저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도구로 삼을 뿐입니다
목사는 교인을 이용해서 돈 벌기 바빠요 교인도 마찬가지 이기에
서로가 문제시 삼지 않을 뿐입니다

지금 보세요 빌라도 트럼프 손을 빌려서 미국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가 예수님을 또 죽이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잖아요 무당들이 따로 없어요 언제까지 이 의문의 반복을 멈출 수가 있을 까요? 마이다스 왕처럼 자기 딸들 공주들 백성들 다 죽을때까지 절대로 못 멈추는 거죠

이 새 마음은 이 새노래는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미련한 복음 외에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왕들? 대통령? 등쳐먹기 바쁜 무당목사들과 똑같습니다 등에 빨대 꼿은 
흡혈귀요 강도의 소굴일 뿐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도록 하신 비유 비밀 수수께끼이니까
행함으로는 안되는 이 단절로 인해 화로다 화로다 라는 이 절망감
이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그것이 유대교 기독교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지 멋들어진 기적, 표적이 되지 못하니까
이 미련한 복음만이 젖먹이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그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죽음의 길로 정해졌기에 멸망 뿐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을 구원하고자
신앙 과오 선생으로 아이에게 노아 욥 다니엘을 선생으로 완벽하게 붙여도

내 너 자식 반드시 지옥 보내고야 말겠다 라고 주님 목숨 걸고 맹세 하십니다

이런 대목 성경에 없다 라고 들어본적 없다 라고 우깁니다

아마 학생회에서 이런 이야기 했다 가는 바로 짤립니다
아니 목사가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해도 바로 짤립니다
교회가 가짜다 싶으면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이런 설교를 하면 됩니다

(겔 14:14,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개역)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오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겔 14:14, 새번역) 비록 그 나라 가운데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세 사람은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겔 14:20, 새번역)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마저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히, '다넬'. 히브리어의 자음 표기가 예언자 다니엘과는 다르므로,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음

아 또 이 구절과 연관되는 내용이 신약 실상에 있지요

거지 나사로와 지옥간 부자

지옥간 부자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비록 자신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큰 구덩이를 건널수 없는 단절된 몸이 되었지만
내 가족 내 동생 형 친족들 제발 지옥 가지 말라고 선지자를 보내 달라고 하는 장면 말이죠

그 정도로 지옥간 부자가 아직도 배불러 터진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여전히 부려먹을려고 물 한 방울 달라고 나사로를 시키라고 하듯이
여전히 선지자를 보내면 될 줄로 알고 있어요
이 부분에서 천주교의 연옥이 얼마나 엉터리인줄 마치 공든탑을 세우면 되는 줄 알아요
아니 거지 나사로가 바로 그 선지자입니다
다 알마먹을 수 있는 선지자 이면 그거 거짓선지자죠
요즘 목사 못 알아보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목사 지가 나 백수 아니다 라고 나발을 불며 떠들어대는데 듣기 싫어도 알기 싫어도 다 알게 되는 판국이니 그런 놈들은 거짓선지자 인 거죠

거지 나사로 보세요 개가 상처난 부위를 햩을 정도로 개와 동변상련이다는 무시받는 자입니다

아니 요즘
왜 이런 소리를 하는고 하니
우리가 육체로 지금 볼수 있는 상황이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만을 볼뿐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입니다
아니 요즘 보세요

개가 핥을 정도로 무시 받는 목사 보셨나요?

(눅 16:19, 개역)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눅 16:20, 개역)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눅 16:21, 개역)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눅 16:22, 개역)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눅 16:23, 개역)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4, 개역)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 16:25, 개역)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6:26, 개역)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 16:27, 개역)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눅 16:28, 개역)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눅 16:29, 개역)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눅 16:30, 개역)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눅 16:31, 개역)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과거에 각설이예수가 유행했듯이 깡통목사 거지목사로 유명한 목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천하의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서 미국에 있는 팬 박사들로 인해서 생명연장의 과학으로 주사 맞는 것을 자랑하던데
과거에 그렇게 약한 척척척 하더니
바로 그게 적응 아닙니까 처세술이요 정치술
난 정치 안할래 카지도 마세요
저는 몰라서 안했던 거지 오히려 정치 배우고 싶어서 그 동안 안 보던 뉴스
안 외워지는 역사 사건들 보게 되니
이것은 어떤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어쩔수 없다 박찬욱판 영화 기생충
어쩔수 없는 몸이다 라는 겁니다

지옥의 몸이 지옥의 몸으로 드러나야지 자꾸 안 그런척 약한 척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고 거룩한 척 하면 할수록
정죄의 완악함만 더할 뿐인 이 지옥의 몸을

누가 그 수치를 가려주겠느냐 말이죠
불쌍히 여가 달라고 해야 할 판국에
또 또 또 완악함으로 행함으로 의에 이를려고 하니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인 그 일을 반복하더라 말이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언제까지 내가 보낸 선지자들을 죽일꺼냐
내가 암탉이 자기 병아리를 품에 모으듯이 품고자 한 것을
언제까지 방해 할려고 하니

교회야 교회야 언제까지 살인을 저지를꺼니?????

이 의문의 반복을 그 끝도 없는 결핍 채우기 라는 번제와 제사를

단번에 어린양의 피 흘리심으로 다 이루셨기에
더 이상 이 의문 것으로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답도 없는 선악에서 찾이 마시고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사람의 강함보다 강한 하나님의 약하심 덕분에

그 사랑에 모든 허물 다 덮어진 그 완료
미래완료를 부족함이 없이 누리기 바쁨으로 인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않는

주님의 용서만을 바라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시면 됩니다
나를 쳐다 보면 볼수록 실망뿐이요 절말이요 낙심 뿐이지만

주님이 다 이루신 값없이 베푸신 자기 목숨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사랑이 아니였다면

이 병든 다리에 새 힘이 없습니다

비록 못 일어나는 날이 와도
그 동안 주님이 매일 매일 일으켜줬던 그 수 없었던 나날들을 기억하면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낙심할 자격 조차 없는

주님이 눈물 씻겨 주심 앞에
주님이 수치를 가려주시고자 자신의 피 흘리신 몸으로 양가죽으로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심 앞에
주님이 잿더미처럼 다 타버린 이 지옥의 몸에 뛰어드셔서 화관으로 신부를 삼고자

광야에서 부르시는 그 음성 앞에

네 만 있고 예 저 부르셨습니까 저 갑니다 라고 예 뿐이지

아니오 안 갈랍니다 함이 없음을 우리를 누릴 수 밖에 없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매일 매일 기억
마음 속에 고이 고이 간직
아름 다운 것을 마음 속에 잊지 않도록

마음판에 새겨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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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5 완악한 선민 이스라엘과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남은자, 불의한 청지기) (롬 11, 6-10)

완악한 기적을 구한 이스라엘과 은혜받은 용서를 구한 택함을 받은자 (롬 11, 6-10)
2025. 10. 19.  ( 10 월   3 일, 녹음 )

남은자 7000명 (롬 11, 1- 5)
로마서 2022 2025. 9. 27. 15:13
22-064 남은자 7000명;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롬 11, 1- 5)

미리 아시고 그 아신자를 미리 정하시고(그리스도 형상대로 지으시고자) 
그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그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그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신 은혜를 따라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 (땅 끝에서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돌아오는 자)

〈로마서 11, 6-10,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찬송가 318장 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찬송가 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소리, 새찬송가 528장〉 

새찬송가 149장(통147)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새찬송가 424장(통216) 아버지여 나의 맘을
새찬송가 534장(통324) 주님 찾아오셨네
새찬송가 272장(통330)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새찬송가 528장(통31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가스펠;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내가 천사의 말한다해도 내 맘에 사랑 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 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 영원하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치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 기뻐하지 아니하네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내 맘에 사랑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사랑은 사랑은) 영원하네(영원하네)
영원하네(영원하네) 영원 영원히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롬 11:7, 개역)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롬 11:8,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롬 11:6, 새번역)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다음 내용이 더 첨가되어 있음.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은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는 이미 행위가 아닙니다'
(롬 11:7, 새번역) 그러면 무슨 결과가 생겼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완고해졌습니다.
(롬 11:8,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혼미한 영을 주셨으니, 오늘까지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 ㉣신 29:4; 사 29:10
(롬 11:9, 새번역)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밥상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걸려 넘어지고, 보복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 ㉤시 69:22; 23
(롬 11:10, 새번역)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게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등이 언제나 굽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신 29:4, 개역)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 29:10, 개역)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시 69:22, 개역)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시 69:23, 개역)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구원은 행함이 아닌 은혜로 된다 라고 전제로 깔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롬 11:6, 개역)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우리는 은혜와 행함의 차이를 모르고 있습니다

은혜는 행함이 아니고 행함은 은혜가 아니다 거기까지는 알지만
이 둘의 명백한 차이를 우리는 4복음서를 통해서 보고 있으면서도
막상 체험이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함은 도리어 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은혜는 나는 죽었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행함만 알지 은혜를 모르니 이 행함만 가지고서는 이 둘의 차이를 못 느끼는 겁니다

그럼 이 행함만으로는 왜 행함이 되지는 조차도 모르는 셈입니다
남자를 남자 하나만으로는 모르고 여자라는 상대적인 의미가 있어야 남자를 아는 것이지요
남자 하나만 있다는 굳이 인간이나 사람이라고 하지 남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 하나만으로는 그 기능을 모르는 셈입니다
그냥 인간의 기능 사람의 기능을 동물들과의 차이에서만 발견하는 꼴입니다

행함 조차도 행함의 의미는 행함 단독적으로 존재하면 모르듯이
그 반대 급부 즉 행한의 반대가 안행함이 아니라
행하지 않는 것도 결국 행함의 범주에 해당되기에
완전한 반대 급부를 모르는 겁니다

결국 은혜 라는 기존의 의미에서의 은혜도 아닌 그렇게 되면 배은망덕이 반대말이겠지요
아니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완악함 말이지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세상이 격어보지 못한 겁니다
왜냐하면 죽음 속에서의 은혜이니까 
죽었뿌면 끝나는데 무슨 놈의 은혜이겠냐 말이죠

완악함도 반대의미가 유순하고 겸손함이 되니 이것은 역시나 행함의 범주이지
은혜를 모르는 입장에서 은혜의 범주라고 생각 할 수가 없습니다

겸손 유순함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함의 범주가 되지

외부 바깥에서 심지어 살아있는 행함 바깥에서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 개념에서는 행함 안의 개념을 알수가 없겠지요

아무튼 은혜 라는 것 자체가 이해할수 포착할수 없도록
인간 바깥에 있는 인간 존재에서 벗어난 개념입니다

이 은혜란 결국 예수님의 죽음으로 오니까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죽었다가 여전히 모르게 되면 괜히 죽은 것이니
이건 뭐 그 어떤 접근도 허용되지 않는
마치 천사가 불검을 들고 생명나무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생명나무 곧 은혜에서 쫓겨난 은혜 밖의 존재가 되었기 떄문입니다

결국 나의 죽음에 예수님의 죽음이 뛰어들지 않는 이상
이 외부의 숙제가 펼쳐지지 않는 이상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다 라고 이 선물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은혜를 모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스라엘 이라는 아주 독특한 민족을 통해서
그나마 그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이 은혜를 알았느냐 아닙니다 모릅니다
그런데 말라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이 이스라엘이 은혜를 받아 놓고도
그 은혜를 놓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의 실패 땡 탈락을 통해서
그 나마 그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라는 겁니다
물론 생각한다 라고 다 아는게 아니라

사실은 은혜를 받은 자 만이 왜 이런 은혜의 선물을 주시지 라고

행함을 할 줄 모르는 율법이 없었던 이방인에게
율법의 기능을 하는 양심도 주어졌지만 그 양심도 못 지킨 자들이
왠 은혜인지 용서를 받아서
왜 이 용서가 주어졌는지를 

율법을 알 필요가 없지만 
율법을 거쳐서 온 즉 이스라엘의 버림받음 실패함을 거쳐서
그 은혜의 또렷함을 더욱 더 부어주는

많이 탕감 받은 자가 곧 많이 은혜 받은자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그 관계성을 더 깊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개같은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그 은혜를 더하시고자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이 용서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먼저 이 은혜를 모른다는 점에서 
이 은혜와 반대 급부인 그 차이가 바로 완악함 이라는 것을 본문에 제시하고 있습나다

더 놀라운 점은 개같은 이방인 곧 우상숭배자들인 이방인의 완악함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가 늘 아는 입장입니다

그 반대인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거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거쳐서 그 완악함이 깨진 자가 나오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 제시된 다윗이라는 인물입니다

결국 은혜를 알려면 이방인의 완악함이 아닌 이스라엘의 완악함
그카면 구약을 다 알아야 겠네요
굳이 양적인 의미로만 생각할게 아니라

신약의 4 복음서를 통해서

은혜 되신 은혜를 마치 의인화 해서 은혜의 인물 대표자로 예수님만을 보시면 되고

완악함 그 자체로 유대인들을 특히 바리새인을 보시면

이 은혜와 완악함의 충돌
즉 다른 말로 하면 은혜와 행함의 달인들 간의 대 충돌을 보시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 행함의 내면에는 그들 이스라엘의 역사인 구약이라는 그림자가 깔려 있고 말이죠

그 속에서 주님은 은혜로 구약 속에서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비유 비밀 수수께끼로 남겨놨지만
들을 귀 볼 눈이 없는 완악한 자들에서는 감추어진 비밀로써 자리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구약은 예수님만 증거하는데 있어서

자기 살아있음 즉 행할 줄 안다 라는 그 완악함 속에서는 전혀 안 보인다는 것

도리어 그 완악함의 대조를 이루면서 증거되고 있다는 점을

4 복음서에서 나타난

정통 역사를 전수하는 바리새인과
구약의 그림자의 실체로써 그 비유의 진짜 진면목을 보여주시는

경건의 껍데기 모양과 경건의 능력의 대 충돌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은혜가 뭔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결국 나 또한 은혜의 자리에 앉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완악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자리에서

이 의사를 고쳐주시는 의술을 그 구원의 능력을
사다리 걷어차는 완악한 이스라엘이 아닌
사다리를 이어주시는 생명의 동앗줄을 내려주신 그 은혜를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캄캄한 어두은 사망의 몸에서 비로소 보게 되는 겁니다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데

유대인들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나 살아 있음에 더 덧붙일려는
그래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그 우상숭배를 여전히 장로의 유전의 따라 하고 있음을

지금 현대 2025년 도에서 여전하다는 겁니다

빤스 그 놈만 그런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다 그러고 있고
그것을 또 수출까지 해서 이제서야 따라하는 미국 기독교까지
그 완악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인 7의 70번의 용서의 능력이 아니면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면

저 남을 7번 용서한 자들의 완악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남겨둔 한 씨 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을 겁니다

진작에 죽어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서만
이 요나의 표적을 그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그 은혜를 보게 되는 겁니다

저들의 완악함 때문에 처음자리를 발로 차는 바람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저들 이스라엘은 기억치 못하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즉 이 죽음이라는 처음자리에서
더 이상 우리는 살 자격이 없는 그 땅끝 이라는 죽음의 자리에서

죽음 이후 심판 이후 땅끝 이후의 상황에서 우리는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인
손을 떼어야 할 입장 뿐이다는 겁니다

오로지 망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이사야가 주님의 얼굴 곧 거룩 앞에서 선 모습이다는 겁니다

은혜 앞에 서는 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 예수님의 거룩한 죽음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할 정도로

머리를 땅에 쳐 박고 시커먼 잿더미를 머리에 뿌리고 바짝 엎드려서 생일을 저주하면서
능지처참을 당해야 할 입장이다는 거죠

마치 개인 지옥도 아닌 집단 지옥에 가야 할 모습을 오히려 은혜 앞에 선 자가 미리 앞당겨 보여주고 있고 즉 집단지옥은 개개인의 잘잘못 유무와 상관 없이

딱 한 놈 잘못 해도 무조건 전체가 다 지옥 가야 하는 그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지옥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집단 구원은 개인의 율법실천 유무와 상관없이
오로지 다윗 왕 하나가 용서 받음으로 은혜 받음으로 무조건 백성들 다 용서 받는
이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집단 구원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구원을

은혜가 펼친다는 겁니다 은혜가 말이죠
즉 예수님의 죽음이 그 화목제물 되심이 펼치신다 라는 겁니다

여기서 무슨 놈의 교리니 삼위일체니 하는 그 따윗 완악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지침서 규율이
과연 은혜 앞에서 용광로 속에서 정금같이 나올수 있겠습니까

자금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심판의 지옥의 몸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봐 버렸으니
타 죽어야 마땅치 않는가 라고 하는 상황에서

지금 저 따위 종교 교라를 운운하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장난질에 놀이나야 하겠느냐 말이지요

성화론이 어떻둥 삼위일체가 어떻둥 극우 극좌 이런 놈들 이미 버리운자들입니다
우상숭배 하는 자들과는 상종 하지 말아야 겠지요
도리도리와 한 패거리인 지옥갈 자들이다는 겁니다

자 그래서 완악함을 볼려면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은혜와 대조를 시켰고

그 완악함 마저도 너끈히 이기시는 예수님의 죽음이 덮친자
곧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즉 행함이 아닌 외부의 숙제인 죄용서를 펼치신
꺽으신 뼈로 용서함을 받은 자 

바로 다윗을 언급하면서

이 은혜가 뭔지를 증거하시는 겁니다

이 다윗을 거치지 않고서는 은혜를 모르게 하셨다 라는 겁니다

(롬 11:8,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한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기에
때려죽어도 이 은혜를 모르도록
와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은 모르고
반대로 내부에서 행하는 자기 숙제에만 빠져 살도록
즉 이 완악함에서 못 벗어나도록 했다 라는 겁니다

(신 29:4, 개역)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 29:10, 개역)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즉 은혜 받은 자는 성령을 부음 받아서 천국 가야만 하듯이

지옥 갈 자는 자기 개인의 죄악으로 지옥 가는게 아니라
은혜받지 못하도록 악령을 부어버람으로써 지옥 간다는 겁니다

이것이 저들 지옥 가는 자들에게 더더더더 이를 갊이 되는 것이니까요

심심하면 너튜브에 나오는 썸네일 제목 엄지손톱 이라는 축약제목이 마중그림이 뭔고 하니

우리는 그 동안 지옥가는 자를 오해 했었다 라는 식으로
그 동안 지옥갈 자 천국 갈자를 다들 엉터리로 정의를 내렸다는 겁니다

그들 자신에게서는 없어요 다 외부의 숙제로
지옥 가야만 하고
천국 가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더 기분이 나빠서 왜 토기장이에게 다 진노의 그릇 만들던다
다 긍휼의 그릇 만들던가

기분 나쁘게 누구는 긍휼 누구는 진노 이렇게 각각 다르게 만드느냐 라고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따진다는 겁니다

아니 지금 불가마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들이 뭐가 말이 많은지 말이죠
니가 토기장이 하지 왜??

토기장이 기능 자체가 그렇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다들 토기장이가 되었기에

진짜 토기장이가 하는 일에 완악함을 드러내는 겁니다
율법을 지키니까 더더욱 그러하더라 말이죠
예수님을 죽이면 죽였지
율법 지키면 예수님 안 죽이는 인간이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모조리 다 토기장이가 되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진노의 그릇을 걸러내야지요

너 같으면 긍휼의 그릇이랑 함께 살고 싶지
부모에게 달려드는 사생아 들과 살고 싶겠냐 말이죠

그건 행함의 나라 곧 누가 크냐 늘 따지는 나라
은혜의 나라는 사랑 외에는 섬김 외에는 없다 말이지요


그래서 이 완악한 이스라엘을 다윗처럼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불순물 쫘악 빼서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밭갈이 기경 심판을 거쳐서 나오는 이 은혜 곧 징계의 매
사랑의 매를 통해서 죽은 놈 다시 살리는 은혜를 통해서 보니

그래서 다윗을 언급하는 겁니다 다윗 지가 지를 심판해 달라고 했응께 말이지요

(롬 11:9, 개역)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롬 11:10, 개역)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이 인구조사죄가 남의 눈치를 보면서
남들의 시선에 등이 굽신 굽신 아부하느라 바쁜

이 원수로부터 건져 달라는 겁니다

의인이라는 다윗으로부터 다윗은 죄인의 자리로 옮겨 달라고 원수 다윗으로부터 건져달라고 다윗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 입이다 회개의 달인인 바리새인이 아니라 말이죠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땅끝 용광로 속에
새영 새마음 성령 속에서 나온 자로써 말이죠

완악 안 한자가 아니라

완악해 질 수밖에 없는 이 사망의 몸에서

즉 율법은 넌 사망의 몸이냐 뭘 해도 죄 밖에 없는 지옥의 몸이야를 
율법과 선지자는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그 완악한 다윗 자신에게서 건져 달라고

번제와 제사를 드렸다고 완악한 수건을 안 벗었다고 자랑하는
누가 크냐 라는 그 큰 자리에서 안 내려올려는 완악한 자를
어서 무너뜨려 밭갈이 기경해 달라고

이 3일의 간극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자 거룩한 분이 지려 밟도록
밭을 평평이 첩경을 평탄게 만들어서
지려 밟고 가시도록

나의 길은 없습니다 주의 길 밖에 없습니다 라고 불도죠로 밀어버리도록 말이지요

그 정직한 영이 없고 부들 부들한 길은 없고
온갖 쓰레기 더미 큰 바위 돌 자갈 그 어떤 누구도
날 건드리면 가만히 안 둘 거야 라는 라멕의 노래처럼
지 속의 있는 것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기도요 고백이요 노래이듯이

주님이 사뿐 사뿐 걸어갈 길 조차도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지나 갈려면 못 지나가도록 삥이나 뜯고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못 가도록 중간에서 돈이나 약탈하는 강도의 소굴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이다 말이죠 그렇게 천주교를 욕해놓고서는 지도 맹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안 되는 겁니다

그 안되는 불가능 속에서 주님만이 하십니다
곧 은혜 즉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생명 내어주심으로써 말이지요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행함 없이 완악함이 없었던게 아니라 박살이 나서 부들부들해진 밬갈이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 오예물 걸러낸 땅끝 죽음 속에서 나오게 하신
잃어버린 경험을 통해서 말이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죄 사함을 받은 자의 행복 곧 은혜로

이 완악한 수건을 벗을 수 있었다 라는 겁니다

(사 29:10, 새번역)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잠드는 영을 보내셔서, 너희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셨다. 너희의 예언자로 너희의 눈 구실을 못하게 하셨으니, 너희의 눈을 멀게 하신 것이요, 너희의 선견자로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하셨으니, 너희의 얼굴을 가려서 눈을 못 보게 하신 것이다.


다윗 본인이 자기 눈의 대들보를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를 보고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선견자 예언자 기능을 했다 라고 자부하고 있으니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고 엘리야처럼
요나처럼 당신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배신 때리냐 라고
진노의 그릇을 왜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고
긍휼의 그릇을 왜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냐 라고 삐지는

이 선견자의 눈을 못 보게 하시는

이 은혜

선지자 조차도 이 은혜라는 십자가의 비밀을
하나님 편에 서면 될 것이라는 자기 편 만들기 조차도
먹혀 들지 않도록 하신

이 손수 직접 만드신 그 화목제로만이

밭갈이 다 갈아 엎어버리시는 겁니다

새로 새로 새 판을 짜신 겁니다

이 은혜의 판이 아니면

용서 받을 자 없도록 말이지요

은혜가 은혜 되겠끔 하시고자 말입니다

이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완악함의 왕노릇
사망의 왕 노릇

죽기를 무서워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 완악의 죽음의 왕 노릇만을 상대로 하는

은혜의 왕 노릇이다는 겁니다

이 마귀만을 상대로 하신 일이기에

나 있음 나 존재하고요 나 살아 있다니깐요 라고
나 행할 줄 안다 라는 것 아예 상대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사망의 권세만을 상대로 하신

은혜의 왕 노릇이 아니면

우리는 이 완악함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은혜만이 들추어내시는 완악함
이 진정한 완악함을 들통 당하지 않으면

진정한 은혜의 왕 노릇을 못 보고

또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죽기를 무서워 광채나는 얼굴로 사람들을 겁주고
사랑이 아닌

자기 능력 과시로 남 7번 용서로 남을 정죄하는 그 완악함에서 무슨 수로 벗어납니까

정직한 영도 없으면서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고 선견자 노릇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면 뭐 합니까

같이 다 빠져 죽자는 것이지

사다리 걷어차기만 할 뿐

생명의 밧줄을 자기도 안 붙 잡고
남도 못 붙잡도록

오늘날 목사들이 다 이런 놈들 밖에 없더라 말이죠

그저 유순하고 착한 목사 이미지로만 남길려는
빤스 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말이죠

남의 삐 빨아먹는 흡혈귀입니다
자기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 남들을 등쳐먹고 사다리 걷어차는 놈들이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완악한 수건을 안 벗을려는 것 자체가 완악함 덩어리 그 자체
악 그 자체
독사의 자식 아닙니까 그 당시에 가장 존경받는 그 정도로
남들에게 꼬투리 잡을 것 하나 없었던 자가 바리새인인데

대 놓고 마귀 자식이라고 들통내 버렸으니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할까요
결국은 죽이는데 성공 했다 말이죠

이 죽음이 아니면 인간은 완악함을 들통 당할 일이 없으니
지옥 행인 거죠

누구 하나 우리의 완악함을 지적해 줄 수 없다 라는 그 자체가
우리는 악의 소굴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아무도 증거하지 않는 미련한 복음만이
유일하게 우리의 완악함을 들통내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윗을 언급하십니다

아주 아주 박살이 나도 이렇게 박살이 난 자가 없습니다

젖먹이의 죽음이 아니면 살수 없는 그 모욕적인 구원이 아니였으면

그의 완악함을 벗겨질수가 없는 겁니다

완악함 율법 네 배나 갚으라 라는 그 가장 큰 권력
모세의 자리
왕의 자리가 아닌

젖먹이의 죽음으로만 살도록 되어 있는 모욕적인 이런 치욕이
이런 수치
이런 새까만 잿더미를

흰눈 같이 희게 하는 이 젖먹이 어린양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완악한 권력의 힘과 아주 아주 극과 극인 정반대의 아주 아주 힘없는 그 아기가

다윗을 건지는 하나님의 능력 이다는 겁니다

권력 힘 백날 있어봐도
죄인 하나 못 건지고
약자 하나 못 입힐 정도로
소자 하나 마시게 입히고 먹을 주지 않을 정도로
그 멋들어진 잔칫집 애굽을 추구함에 있어서

정반대의 극의 자리인 아무 능력 없는 무능한 어린아이 자리에서

우리의 완악함 하나 벗길려고 죽기까지 복종 하신
이 하나님의 능력 (공의)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공의에 복종하신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저 완악한 수건 선악을 아는 자기 의를 세움 때믄에

하나님의 의를 못 보고 무시하고 거부하는 이 완악함으로만 일관 할 것입니다

(시 10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 109:7, 개역)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시 109:8, 개역)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시 109:9, 개역)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시 109:10, 개역)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시 109:11, 개역) 고리대금하는 자로 저의 소유를 다 취하게 하시며 저의 수고한 것을 외인이 탈취하게 하시며
(시 109:12, 개역)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게 하시며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게 하시며
(시 109:13, 개역)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시 109:14, 개역)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시 109:15, 개역)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저희 기념을 땅에서 끊으소서


아니 다윗 지는 은혜 받아 놓고 용서 받아 놓고서
왜 이런 저주의 기도를 퍼 붓는 겁니까

베드로 자신은 예숭님을 세 번 부인 한 것을 용서 받아 놓고서는
아나리아 삽비라 부부를 왜 저주 하실까요

그 개인의 죄악을 저주하는게 아니라

은혜를 은혜 되게 하시고자

행함의 법칙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저주의 기도입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지어다 라고
사도바울이 아주 격렬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울 또한 자신이 주를 사랑치 않았을때에 저주 속에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이 저주의 기도는 선포는 바로 은혜에서 나온

완악함에 대한 제대로 된 공격입니다

바울이 주를 사랑치 않았을 때 가만히 있었느냐 아니지요
은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이 두 소욕의 충돌을 제대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윗 본인에게 공격했듯이 공격합니다

이전의 것 모세언약 대로 정죄하는게 아닙니다
다윗언약대로 정죄를 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그 사람을 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엉터리 율법 껍데기를 가지고 하는게 아닙니다
율법의 알맹이 사랑이 여기 있는데 어딜 딴데 쳐다보느냐 라고 공격하는 겁니다
늘 자기자신에게 하듯이 말이지요

이갓이 은혜를 은혜 되게 하고자
이전 것이 지나간 새 것이 되었도다를 외치는

완악한 세계를 향한 미련한 복음이자 생명의 밧 줄입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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