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7 사람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는 미련한 복음 (고전 1;18-2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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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7 사람의 지혜와 총명을 멸망케한 미련한 십자가의 도 (고전 1;18-21)
2025. 8. 31. 

헛되지 않은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 (고전 1;17-18)
고린도 전서 2025 2025. 8. 9. 16:04
25-006 헛되지 않은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 (고전 1;17-18)

〈고린도전서 1;18-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찬송가 318장 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찬송가 453장 새 570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찬송가 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새찬송가 528장〉

찬송가 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새찬송가 528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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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앞에 나와서 사면을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받고 못들은체 하려나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3.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4.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있어, 죄많은 세상을 떠나게될 때 영접해 주시겠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새찬송가 570장〉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새찬송가 570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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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새찬송가 57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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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 하여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2. 예쁜 새들 노래하는 아침과 노을 비끼는 고운 황혼에 
   사랑하는 나의 목자 음성이 나를 언제나 불러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3.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못하리 
   나의 주님 강한 손을 펼 치사 나를 주야로 지켜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아멘


〈고린도전서 1;18-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18, 현대어)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할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를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고전 1:19, 현대어) 그래서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ㄱ) `내가 앞으로 계속 이 백성에게 이상하고도 알 수 없는 일들을 하겠다. 그러면 이 백성 중에서 가장 슬기로운 이도 그 일을 깨닫지 못하며 총명한 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ㄱ. 70인역 사29:14)
(고전 1:20, 현대어) 그러니 현명하다는 사람들, 학자, 이 세상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 간다는 이론가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어리석은 자로 보시고 그들의 지혜를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하시지 않았습니까?
(고전 1:21, 현대어) 이 세상이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경륜으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 말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오로지 어리석고 미련함으로만 증거 됩니다
왜냐하면 두 패로 나누기 때문입니다 즉 멸망하는 자와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자로 말이죠

바로 이 자체가 미련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무식하게 계속 두 패로 나누니까 말이죠

우리가 살펴본 토기장이 비유에 반발하는 모든 인간의 반응에서 살펴봤잖아요
그러니 이 비유에 모두다 다리 걸려 넘어지는 실족케 됨을 당하게 되는 거죠

이게 바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와 그의 발 이라고 했습니다

즉 심판을 증거하는 거지요 율법과 선지자는 심판 곧 끝을 증거합니다
용광로 속에서 비로소 불순물 혼합물 오예물을 다 걸러내고서
그 끝 그 원인 없는 결과에서 나오는 자가 바로 땅 끝에서 나오는
패역한 딸 예루살렘 여자 인 거지요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여기서 땅 끝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말이죠
여부스 땅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는 이유는 바로 가나안 족속을 몰아냔 유일한 자
곧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바로 그 의미에 해당 되는 유일한 자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죽은 다윗을 다시 에스겔리 언급하는 이유는
이 기준으로 그 교만한 땅을 평평하게 첩경 울퉁불퉁 높은자 낮추고 낮은자 높이시는
첩경을 평탄케 해서 그 다리미질 된 땅에 그 심판을 깔아버린 그 땅에

바로 아들 되신 예수님이 오신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예수님만이 너희의 왕이 될 자 
왕이란 죽음의 권세에서 사망을 멸하고
그 음부의 권세와 싸워 이긴 승리자를 말하고 비로소 평화를 이루는 자입니다

그런 기능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자가 오늘 나오는 멸망하는 자 라는 겁니다

즉 우리가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든자를 고친다 라고 했을때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략인
생맹 구하기 라고 했씁니다

그러나 여기에 상대적으로 안식일날 어긴다 라고 안식일 지키는 자는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살인하도록 되어 있는 사다리 걷어차는 생명 구하기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는 자들이다 그것이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더한 자 곧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고 모세의 자리에 앉은 결구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목적이 있는
자기 의를 쌓는 자가 바로 멸망항는 자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곧 하나님의 의인 공이 곧 십자가의 도를
못 믿도록 사다리 걷어차는 유대인들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자 이다

그 멸망하는 자가 다음에 할 내용이지만 미리 말하면
두 부류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
그 유대인들에게서는 미련한 하나님의 공의가 거리끼는 걸림돌이고
개같은 이방인 곧 헬라인에게서는 이 십자가의 도인 미련한 하나님의 공의 곶 지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지혜로 취급 받는

이 둘다 합치면
헛되다 쥐급 받는다 라는 겁니다

결국 헛되다 라는 말은 나의 가치를 높여주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심심하면 누가 크냐 라는 싸움과 경쟁 뿐일때에

누가 헛되게 취급받는 십자가의 도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아니하면
그 서슬 퍼런 안식일날에
병자를 고치로 귀신을 쫓아내고 물에 빠진 자를 또는 가축들을 구하는 그 생명 구하기를

안식일날 감히 감히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만

즉 이 말은 멸망하는 자들이 미리 깔려 있어서
안식일날 일하면 돌삐 쳐 죽이는 그 법이 깔린 상황에서

그 지옥 속에 그 심판 속에 뛰어들 자가 누가 있겠냐
누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생명 구하는 자 인가

아니면 반대로 사다리 걷어차는 자 인가 라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멸망하는 자 인가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 보세요 탐욕의 소굴이다 보니 모조리 사다리 걷어차는 자들 곧 멸망하는 자들 뿐입니다

녹슨 가마 솥에 들어가는
교회에 가면 다른 곳은 다 멸망해도 이 보호 이 노아의 방주 이 피난처에만 가면
뜨뜻한 목욕탕 물에 몸 담그듯이 양고기가 뜨거운 스프 뜨거운 국물 속에 몸을 녹이듯이 담겨져 있는
그런 보호를 받을 것이다 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오히려 더 잘 되었다 한 꺼번에 심판 할 수 있게 알아서 기어들어오니 말이죠

녹슨 가마솥 비유처럼 말이죠 비유 비밀이다는 말은 인간은 반드시 보상을 염두한 노동
곧 행함을 추구하기에(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믿음은 더더더 복수심을 깔고 있거든요 살인의지입니다)그 행함이 반대의 의미를 채우는데 작용하는 하나님의 공의에 복종치 않고
자기 의를 세우는데에만 활용이 되어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자기 의가 바로 살인의지입니다 자기를 안 알아주면 끝까지 복수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인간의 믿음 안 받습니다 이미 불순물이 까까득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보다 경건의 껍데기만 갖추겠다 라는 식이다는 거죠

그 행함 그 실천이 집결이 된 것이 바로 철학이요 그 철학의 집대성이 바로 신학입니다
제가 자주 거론하는 지젝이라는 정신분석가가 신학자 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신학자들은 신학의 시녀 하녀인 철학 그 철학자가 신학자 라고 불리우면 기분나빠 하지만 말이죠

그 신학의 주장 곧 교리의 핵심은 바로 삼위일체론입니다
인간의 지혜의 결집이 철학이고 철학의 요약이 신학이요 신학의 핵심은 바로 삼위일체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겁니다

바로 이 삼위일체가 멸망하는 자들의 주장이다는 겁니다 교회는 바로 이 강도의 소굴 답게
이 삼위일체를 퍼트리고 삼위일체로 가스라이팅 시키는 집단인 거지요

누가 교회에 전화를 해서 목사를 찾던데 사택으로 전화 하라고 했는데 기여이 저한테 굳이 삼위일체에 대해서 묻길래 그거 철학사상이다 라고 답했지요
신플라톤 주의 라고 그거 베낀 것이 삼위일체 라고

인간 지혜를 다 끌어모으면 결국 같은 답입니다 철학에서도 삼신론이고 신학도 삼위일체라고

이것이 멸망하는 자들이고
이런 멸망하는 자들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고자 등장시킨 것이 바로 미련한 복음 곧 십자가의 도입니다

결국 미련란 복음인 십자가로 인해서 미련한 자가 등장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인간도 천국에 갈 자가 없음을 분명히 해 두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바로 이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의 대립처럼 항상 두 패
곧 멸망하는 자와 미련한 자의 대립으로써 증거 됩니다

천국 갈 자가 없음을 아는 자와 그래도 천국 갈 자격 저는 있습니다 라는 자의 대립구조로
예수님의 비유는 증거 됩니다

알고보니 무식하고 어리석고 미련했던 다섯처녀가 슬기로운 처녀 였고
실용적으로 신랑이 그때 오면 그때가서 기름을 준비하면 된다 라고 
똑똑하고 총명하고 지혜롭고 슬기로왔던 다섯 처녀가 오히려 미련한 다섯 처녀 였다 라고

마태복음 25장의 종말의 비유 3종 세트에서 나옵니다
열 처녀의 비유(1-13절), 
달란트 비유(14-30절), 
양과 염소의 비유(31-46절)

곧 종말에서 나온 자가 바로 미련한 복음인 십자가에서 태어난 자 이고 곧 땅 끝에서 나온 자 이고

반대로 멸망하기로 작정된 자는 그야말로 선민이라고 우기는 모습 뿐이기에
굳이 종말이라는 심판을 왜 미리 준비하느냐 라는 식입니다
준비 라고 하니까 마치 인간 쪽에서 할 수 있는 종말보험 천국보험 식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런 선민의식이 저 삼위일체처럼
마귀에게 장악당한 자 인줄 모르는 인간의 지혜와 총명인
심판 받을 대상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계시록에서 총명이 있는 자는 짐승의 수를 셀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을 받은 자 만이 총명이 있는 자 인데

그 총명은 그럼 뭐냐 바로 자기가 짐승에게 포로된 자 임을 알고
정직한 영이 없음을 알고 새로 창조 해 달라고 우는 자가 총명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에스겔에서 이러다 다 죽어 라는 한 선지자의 심판 속에 뛰어듬을 보고 우는 자 만이
남은 자 로서 돌아오는 자 라고
그 한 선지자 곧 심판을 본인이 날려 놓고 그 심판을 대신 맞는 그 심판 속에서 나오는 자 만이 남은자 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짐승 나라에서 빠져나올 자가 없음을 알고 울부짖는 자가 바로 총명한 자가 아닌 총명함을 받은 자로써 자기가 짐승임을 알고 지옥의 몸임을 알고 우는 자로써

능력 곧 생명구하는 자의 기능에 딱 맞는 환자로써 의사를 부르는 자입니다

이 생명 구하기를 펼쳐 달라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는 자 말이죠

이것이 미련한 복음이 낳은 자입니다

반대로 멸망하기로 된 자는
바로 이런 심판이 안 보이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는 안 보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나만 혜택 보고 남들은 못 누리도록 사다리를 걷어차는
하나님의 공의를 버리는 자입니다

그 자기들의 쓸모 없다 라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니까 여기에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바로 이런 멸망하는 자들은 오히려 선민의식에 가득차 있고 그 선민의식이
더더욱 말씀 지키기로 인해 자기 의를 쌓는데 있어서 사다리를 걷어찰 뿐이지
그 쌓은 공든탑을 남을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온전히 나누어 줄수 있는 능력
생명 구하기는 없고 그저 껍데기로만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오히려 경건의 능력을 가장 거부하고 훼방하는데 작동 된다는 것에
다윗처럼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울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될 수가 없어요
그카이 인애와 자비 보다
자기 의를 쌓는 번제와 제사에 목숨 걸죠
왜? 이것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나온 모두가 납득이 되는 인간의 지혜요 총명인
철학이요 신학이다는 겁니다

그 철학 곧 헬라인 즉 개같은 이방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십자가의 도요
그 신학 곧 선민이라고 우리는 교리 하는 인간의 지혜를 결집한 자기 의를 쌓은 자들에게서는
이 십자가의 도는 거리끼는 걸림돌 이다는 겁니다
남 7번 용서하기로 사다리 걷어차고 있었는데
커트라인이 7에 70번이 되어버리니까 뻔데기 앞에 주름 으로 장난 짓 밖에 안되었기에
에이 이제는 자기들 멋대로 커트라인을 확 내리는 겁니다 왜? 자기 의를 옳게 합격 시킬려고
이것이 선민이라는 자들의 하는 짓의 한계점이다는 겁니다
교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지
불가능성으로만 채워지면 동떨어진 붕 뜬 소리 밖에 안되면
납득이 안된다 납득 안 되면 교회 못 짖고 교회 운영 못하면 이단세력에서 부동산 넘어간다

그런데 우짭니까 우리가 에스겔에서 봤듯이
부동산이 국가 토지 전체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나는 너희 하나님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오히려 더 구체화 됩니다
그 나라의 왕은 다윗이다 라고
그냥 다윗이 아닌 죽은 다윗
곧 너희가 죽인 다윗을 왕으로
너희가 죽인 예수님을 주가 되게 하셨다 라고 말이죠

바로 이런 국가 토지라는 공간 그리고 시간 즉 자유시간 초코렛이 오히려 없게 되었는데
그런 거추장꺼리가 된 것들이 다 날라가 버린
종말의 상황
땅 끝의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이 말씀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다윗언약 곧 새언약이다 말이죠

그카이 이 미련한 복음을 누가 믿었으리요????


아니 게바파 바울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
이 유명인을 멘토로 삼아서 자기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지혜요 총명 아닙니까

그런데 이 각 파를 해체 시켜버립니다

백날 해 봐라 어차피 해체되어야 할 이전 것들의 그림자 놀이 밖에 안된다 라는 겁니다

그럼 진정한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것이 되었다 라는 새것은
오히려 모든 것이 해체가 된 그 자리에서

이미 다 이룬 십자가에서 나온 것이 새것이 됨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다 말이죠


이런 종말의 의식이 아까 말한 종말의 3종 세트 중 양과 염소 비유에서
누가 봐도 딱 봐도
평생을 염소 짓만 하고 살았다 말이죠

그런데 종말의 영이 오니까 이것이 뒤지어 집니다
사람들이 납득이 되는 신학에서는 포착이 안돠는
해석 불가인 반대가 됩니다

염소가 양이 되고
양이라고 자부헸던 선민들이 오히려 염소가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모든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거부하면서
뒤집어 엎어버렸기 떄문입니다

나 소자에게 해 준 것 하나 때문에 

악한 불의한 자가 의에 이루고
의인이 단 한번의 실수인 범죄로 지옥에 가는 식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기능인 아름다운 소식
곧 심판을 증거하는 자 이다는 겁ㄴ다

심판의 불 속에서 보는 시선과
심판 바깥의 신학이라는 인간의 지헤와 총명을 총 결집한 시선에서와의 차이입니다

마귀가 유대인 선민을 장악한 시점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복음을 시작함에 있어서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 선민의식이 마귀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가 그런 식입니다
자기들 따나 무당처럼 인간들을 신과 연결시켜주고자 하는 매개자로써의 기능이다는 거죠

오히려 예수님은 아무도 천국 못 간다 라고 천국가는 길을 차단 시켜버렸습니다
거기서 우는 자는 찾고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

아무도 자신이 병들었고 환자이고 죄인이고
귀신들린 지옥믜 몸이다 라고 우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이것이 국가 전체가 교회인 유대인의 실상이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무슨 놈의 선민이니 구원택정자니 뭐니 하느냐 말이죠

오늘날 보세요 한국 기독교 천주교 포함해서
무당과 손잡고 신땡지 통일교 에게 돈 받아 쳐먹고 그 돈 어디서 왔겠습니까? 자본주의는 결국 사람이 돈이거든요 젊은 아이들 피 빨아먹고 그 한참 종교성 강한 애들 노예로 삼아서 나온 것 아닙니까
이게 인간의 지혜와 총명이 집대성이 된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성화론자들도 똑같은 놈이다 말이죠 자기들의 의만 쌓기 바빳지 저들이 물에 빠지는 것을 방관했으니 말이죠
그저 주일성수를 지키기 위해 국가 자격시험을 일요일에 못하도록 하자 라는 그런 운동 그런 캠페인을 하면 그게 물에 빠진 자 건져주는 생명 구하기 입니까?
주일에 예배에 빠지면 헌금을 못 내고 헌금 안내면 교회 안 돌아간다 라고 역시나 똑같은 저 도리 도리 무당이다 다를바 없는 거죠
뭐 한국에서 가장 수준높은 성화론자다 라고 우겨도 가장 수준 높은 성화론이라는 놈들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니 이미 결판 난 거죠

자 그런 의미에서 인간들이 구분짖기 라는 두 패 나누기와
주님이 직접 두패 나누기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그저 멋들어진 사람들이 남득이 되는 총명과 지혜를 갖추는 식이고
반대로 주님은 어리석고 미련함으로써 두 패 나누기를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항상 미련한 자를 들어서 자기 의를 제대로 갖추었다 라고 자부하는 자들의 총명과 지혜를 깨뜨리시는 미련한 복음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길에서 말이죠

누가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가는 그런 천국을 만들겠습니까
그런 천국은 인간의 총명과 지혜에 전혀 안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그렇게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 나누는 겁니다

인간은 그 반대죠 의로운 자와 미련한 자로 나누는데 있어서
미련한 자가 절대로 되면 안되는 그래서 의로움을 갖추었는데 그것이
인간들 끼리 납득이 되고 상호위선 상호기대 상호기만으로 작동하는
자기들끼리의 속임수인 믿음으로 완벽하게 건설했는데
여기에 이제 머릿돌만 오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 머릿돌이 오히려 그 건축물을 다 허물어 뜨릴려고 하니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 라는 것을 미리 알고 버리는 식입니다

그 버림받는 미련한 모습이 바로 십자가의 도로써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 나누시는 토기장이로 오시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람의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의 재판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속임수요 살인의지 라고 했습니다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인데 인정 안해 주면 죽여버리겠다 란느 공갈이요 협박입니다

저 보세요 댓글을 아무리 지워도 또 계속 반복해서 적잖아요
아마 클릭 자체가 돈이 되고 광고를 누르면 더 많이 받으니까
내가 너 광고 눌렀으니 공감 꾹 클릭햇으니 너도 내 광고 봐서 내가 돈을 벌수 있게 해 달라 라고 해다오 라고 하면서 공갈 협박을 하는 식 아닙니까
계속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지워도 소용 없어요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 해킹하는지 차단하고 삭제해도 ai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댓글 달기를 하는지 거의 협박 공갈 수준입니다

바로 이런 속임수에 주님 또한 더더더 더한 속임수로써 나온 것으 솔로몬 재판입니다

가짜 엄마의 속임수를 들통내기 위해서 주님의 속임수는 그 가짜의 속임수에 맞게
두 패로 나누어라 라고 합니다

그럼 주님의 속임수는 여기서 끝나면 가짜 속임수와 똑같기 때문에 구분이 안 되겠지요
인간의 구분짓기 곧 거룩 분리 개념을 주님의 구분짖기를 해 버리니까
인간은 누가 봐도 깨끗한 길로 총명과 지혜를 펼치지만 그래서 항상 경건의 모양을 갖추는
껍데기 하나는 완벽하게 갖춥니다 그것이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나온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주님의 속임수 곧 미련함은 그 반대를 위한 반대로써
그 반대의 길로 가 버리니니 더럽고 미련하고 어리석게 말이죠

그래서 솔로몬은 그래 가짜의 속임수 뜻대로 둘로 나누어서 저도 주고 이도 주고 해라 라고
악마의 편에 드는 겁니다

여기서 끝나면 속임수가 아니지요
진짜 속임수는 바로 그랬을때에
우는 자가 땅 끝에서 나옵니다
죽음 속에서 죽음을 뚫고 나옵니가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 자식간은 유익, 이익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기에

그 사랑을 죽음 속에서 뽑아냅니다
속임수 속에서 뽑아 냅니다

그래서 우는 자가 바로 번제와 제사 라는 법 법 법 법대로 두 동간 내어서 저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나도 가지지 못하게 하라 라고

저도 이도 가지게 하라 인데
이놈의 가짜 속임수가 너무 좋아라 한 나머지 실수로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지지 말라 라고
지 입으로 실토케 만들어 버립니다
아니 분명 이도 저도 똑같이 나누어 가지게 하라 라고 했는데 말이죠

가지게 하라
그런데 지가 지 꾀에 걸려서 가지지 말게 하라 라소 동의하고 찬성해서
그래 동의하고 찬성 했기에 너가 스스로 자뱍하는 구나 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속임수입니다 곧 진짜 속임수는 동시에 생명구하기를 동시에 펼치는데 있어서
가짜엄마의 속임수는 그것을 볼 턱이 보일 턱이 없이 자기 편 들어준다고 좋아라 할 뿐인 것이지요

이것이 가짜 속임수를 펼치는 자들에게 되도 않는 죽음
저도 가지지 말고 나도 가자지 말게 하여 이미 죽였지만 저 엄마 마저도 마저 죽이십시오 라는
그 죽음 그 되도 않는 죽음 속에
그 가짜 속임수에

진짜 속임수 진짜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이 미련한 십자가의 도가 아니면
동시적으로 생명구하기는 없다 라는 겁니다

즉 불뱀에게 물려 죽는게 죽음이 아니라 지옥이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
진짜 죽음을 못 봐서 지옥 가는 겁니다

그 진짜 심판 그 진짜 절대죽음을 못 보니까
가짜 죽음으로 저 엄마 까지 죽여버려라 라고 그 의문의 죽음 백날 죽여 본들 소용이 없고
그 가짜 엄마를 죽여서 심판해 본들 또 그런 엄마 계속 끊임없이 나옵니다

그것으 끝맺는 단절을 마침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련한 복음
곧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에 뛰어드는 것이 솔로몬의 지혜이다는 거죠

가짜엄마의 속임수에 제대로 되 속임수 아이고 그것도 속임수냐 우리 연변에서는 그깟 속임수는 속임수 축에도 안 쳐준다 라고 부정의 부정으로

악마가 예수는 바알세물 걸린 대 마왕이라고 악마가 악마로 취급하는 그 악마야 말로
제대로 된 속임수 이다는 거죠
그와 동시에 앞 뒤 모순된 생명구하기를 동시성으로 펼칠때에 말도 안되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지해와 총명 스러운것도 없고
그저 인간의 머리애 납득이 이해가 안된다 라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그냥 미련하다 취급받는

비밀 비유 수수께끼로써의 지혜이기 때문에

그래서 반드시 찢고
그리고 동시에 다시 싸매어 주는

이 미련한 복음

이렇게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 나누시는 토기장이 비유

그 어떤 누구도 동의 할 수가 없는
그래서 모조리 다 지옥에 보내놓고 심판해 놓고서

그 찢은 자리에서
다시 싸매어주시는

땅 끝에서 용광로 속에서 나온 자 만이 남은자로써 새로 창조된 자만이
긍휼의 그릇으로써 삼으시는 두 패 나누기입니다

그 기준이 흥함과 패함의 기준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의 도 이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신학
그리고 그의 시녀 하녀인 철학 초등학문은

그저 무당만을 양성할 뿐인 거지요

한번은 조카 대학진학때에 조언을 구하길래
이름 있는 대학 이름 있는 교수에게 가라 라고 했다 말이죠

그 이름 있음이 예수님의 이름과 대조 하기 딱 좋잖아요
물론 어떤 누구도 인간 끼리 비교할려고 하지
예수님과 비교 한다는 것은 거부감이 들게 되겟죠

그러나 그게 공부 이거든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내 자신을 예수님과 비교하는 것도 엄두가 안나서 아예 시도조차 안하는데
어떻게 남을

그런 위선 떨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주님이 붙여준 공부이기 때문에
괜히 이름이 났겠냐 말이죠

그 유명한 자와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이 전혀 유명한 분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 영웅? 그런 노벨상 깜이 안된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마 노벨상 줄려고 한다면 그 상을 박살내고 그 노벨상 시상 무대를 회초리 들고 부수시면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외치실 겁니다

왜? 유명하지 않고 너무 너무 무명하시니까 말이죠

그 무명한 이름을 누구든지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아무도 찾지 않는 분이시기에

그 반대로 

아무도 부르지 않던 곳에서 부르신 바 되고

아무도 찾지 않던 곳에서 찾으신 바 되시겠다 라고

인간 쪽에서 자발적으로 유명한 이름이니까 부르는 그 부름을 차단하시는
절대로 부르기 싫은 이름으로 오시겠다 라는 겁니다

왜 멸망하는 자 이기 때문에

임금 삼고자 할 때 임금 되시기 싫다 라고 도망치시니까 말이죠

이 예수 라는 이름을 브랜드 상표로 이용해 돈 벌레로 기생하는 기생충들이 오늘날 강도의 소굴 교회이니까 말이죠
그들 조차도 멸망하는 자로써 주님이 만드신 겁니다

그 속에서 찢고 빼내신 다시 쌔매어 준 땅 끝에서 나온 자가

이 미련한 복음이 나의 낭군 이시군요 라고 뒤에서 껴 안는 겁니다

왜 미련한 복음은 미련한 자를 찾으실까요

똑똑하고 총명하고 지혜롭고 건강하고 의로운 자 쌔고 샜는데
그 허다한 다수를 마다하고

아무 쓸모 짝도 없는 자를 그 죽은자와 방불한 자
그 무태한 자
그 아무것도 없는 자를 가지고서

왜 산자를 페하시고
복태를 유산케 만들고
부자들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실족케 하시는 겁니까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예수님을 죽인 세상을 갖추었다 라고

그 죄가 인간 보다 먼저 있었기에
그 죄를 상대하러 왔다 라고

이미 십자가의 도가 먼저 떳가에
그 증상물로써

미련한 자와 멸망하는 자로써 두 페로 나누어 지기 떄문입니다

이쪽에 나 할래 하고 잡아본들 쭐꾸덕 미끄러집니다

주체는 기능이지 비존재 이지
인간은 그 주체의 대상물일 뿐입니다
절대로 인간은 주인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어도 말이죠
아무나 느부갓네살이 되거나 애굽왕 바로왕이 될 수 없어요
악령을 받은 자만이 멸망하는 자가 되듯이성령을 받은 자 만이 미련한 복음을 믿는 미련한 자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이라는 총명함을 받은 자 만이 짐승의 수를 셀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생명구하기의 대상물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사다리 걷어차는 자가 되겠지요

진노 멸망함이 주체가 되지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것 곧 긍휼을 담을래 라고 그릇 주제에 토기장이처럼 행세 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택하심이지
나 어리석음 벗고 미련한 벗어서 나 같은 것은 진노의 그릇이 돠어야 해 라고
진노를 아무리 담는다 라고 해서 주체는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선택할 권한이 없다 말이죠십자가의 도가 먼저 있었고이 미련한 복음이 먼저 떠 버린 이상
그 증상물로써만 두 그릇이 나타나야만 하기에
우리는 오히려 이 앞뒤 모순된 찢으셨음과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간극 이 공백 이 십자가의 태에서 새롭게 테어나고지

심판 속에서의 구원을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을 다 빼버린 거룩 곧 공의를
이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것도 생명구하기 하시는 그 섬기심 덕분에
대신 매 맞으심 덕분에
우리는 용광로 속에서 그 대신 매 맞으심을 비로소 봄으로써

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려 주셨고 그 들음으로 믿음을 선물 받아서 미련한 복음을 듣게 된 것이지

들음은 믿음에서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지지난 주 로마서처럼 말이죠

22-062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땅끝,사망권세 멸밍까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6-18)
2025. 8. 17. 

(롬 10:17, 개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해서 멸망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거쳐서 생명구하기라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을 보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물에 빠뜨려서 죽음 심판 곧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니
멸망받아 마땅한 자임을 알고 우는 자로
새롭게 남은자를 만드셔서

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안식일날만 골라서 병고쳐주심을 통해서
오히려 안식일 지키는 자들이 바로 멸망할 자 임을 가르시고자

의도적으로 안식일날만 골라서 우물에 빠진 자를 건지신

이 하나님의 능력이 먼저 떳고 생명구하기가 먼저 떳음에

이에 반발하는 멸망하는 자를 구분짓기 하시는 겁니다

멸망하는 자들은 안식일 지키는 짓으로 구분짖기의 달인으로 살았는데
정작 본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인 생명구하기 그것도 자신들과 반대로 안식일만 생명구하기를 통해서

이 껍데기 모양과 경건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 죽은자를 살리는 능력과 대립구도를 펼치심으로써

자신의 토기장이 되심을 나타내시듯이

인간이 죄 보다 먼저 있지 않았고
그 죄가 은혜 곧 미련한 복음 죽은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은혜 보다 먼저 있지 않았기에

처음과 나중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고침을
즉 하나님의 능력을 비로소 보는 겁니다
비로소 즐기고 누리는 겁니다

이 찢으심 속에서 다시 싸애머 주심을 누리는 거죠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 되찾음이 없듯이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이 하나님의 능력 곧 생명구하기가 아니였다 라면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는 그 거짓선지자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쓰가 교회는 세뇌하는 곳이다 대 놓고 말했잖습니까

바로 그런 경건의 껍데기 대충 대충 고치는 그것을 깨뜨리시는 상대적인 미련한 복음인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십자가의 도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그냥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니지요 용광로 속에서 잃어버림 속에서
우리가 에스겔처럼 포로 됨 속에서 70년 만에 되돌아 옴 속에서

비로소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다윗을 왕으로 주겠다 라고

아니 이미 죽은 다윗을 왜 소환할까요

다윗 자체가 약속 덩어리로써 묘사 됨으로써
죽음에서 나왔고 죽음을 이긴 자 라는 겁니다

여부스 땅 마지막 가나안 땅을 점령한 자는 그것도 400년 만에 말이죠
비로 평화가 오는 겁니다

아니 죄가 그대로 썩여진 혼합물 상태이면 그게 무슨 화평이요 평화 입니까

그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그 장소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시온이라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 교만한 땅을 깍고 깍아서 평평하게 거룩으로 불도져 밀어 다리미질 한

사망 권세를 이긴 그 터 위에

주님 자신이 친히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참성전 걸어다니는 성전으로써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전쟁의 마침인 평화가 오는 겁니다

이 죄 해결 하지 않는 자는 왕이 될 자격이 없고
성전을 지을 자격이 없지요

그런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어차피 기초만 딱고 완공을 하지 못하는 그것도 46년이 지나도 말이지요

그 의문의 반복인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헐라

삼일 만에 짖겠다 그 삼일이 바로 죽음의 간극 아닙니까
절대 심판 절대 죽음 절대 지옥이라는 그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쳐서 나온

완벽한 찢으심에서 나온 완벽한 다시 싸매어 주심

그 죄악을 그 가나안 족속을 그 사망 권세를 다 이긴 자가 다윗이었듯이

이 다윗언약을 새언약으로써 다윗을 왕으로 주시겠다 라고 했을때에

그 어떤 신학이나 교리로 로써는 이 다윗이 해석이 안 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신학적으로 이론화 했는데
어라 다윗의 조상으로 와 버렸네요
누구에게 멸망하는 자들에게
안 맞게 
교리랑 신학이랑 틀리게 와 버렸고요

반대로 미련한 자들 다윗을 들어본적도 없는 이방인에게서는
다윗 자체도 모르는데 있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십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 소경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고래 고래 고함을 칩니다

(마 9:27,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왜 이런 미련한 방식을 주님은 오히려 택하실까요
인간들은 멋들어진 바리새인의 방식만을 추구하고파 하는데 말이죠

그카이 제자들 곧 유대인들이지요 저런 저런 무례한 예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 두 소경을 쫓아내기 바쁘다 말이죠

마치 어린아이들이 호산나 호산나 찬양하면서 예루살렘을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찬양할때에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시끄럽다 라고 채통을 지키라고 하듯이
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일으키느냐
왜 떠들썩 떠들썩 시장 마당터 같은 지마음대로 뛰노는 아이들 놀이터로 만드느냐 미련하고 어리석구나 좀 조용히 해 줄수가 없느냐?

그러나 주님은 이 미련한 어린아이의 찬양을 멈추실 마음이 추호도 없고 오히려 더더더 이 미련한 어린아이의 찬양을 맨 앞에 압장 세우시는 것을 고집하십니다


(마 21:15,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마 21:9, 개역)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 21:10, 개역)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마 21:11, 개역)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마 21:12, 개역)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마 21:13,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4, 개역)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마 21:15, 개역)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마 21:16, 개역)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마 21:17, 개역)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미련한 아이들의 찬양이면 찬양일수록 더더욱 분노케 화나게
속을 빡빡 긁어대기에

분하게 안 여기고는 못 배기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저들이 멸망하는 자 들 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이 소리 지르지 않는다면 돌들을 통해서라도 소리 지르게 만드시겠다 라고 하십니다

(눅 19:40,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28, 개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눅 19:29, 개역)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눅 19:30, 개역)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눅 19:31, 개역)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눅 19:32, 개역)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눅 19:33, 개역)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 19:34, 개역)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눅 19:35, 개역)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눅 19:36, 개역)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눅 19:37, 개역)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눅 19:38, 개역)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 19:39, 개역)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 19:40,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41, 개역)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2, 개역)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눅 19:43, 개역)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눅 19:44, 개역)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5, 개역)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아니 다윗이 드디어 가나안 족속을 다 물리치는 드디어 사망권세를 다 이기고
죄에서 자유케 하는 희년을 선포하는데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돌들 까지도 다 신나서 춤추는데? 누가 잠잠하겠느냐 말이죠

이 하나님의 능력인 생명구하심을 누리게 되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들은 채통 채통 그놈의 윤리 예절 도덕 등등을 따지는 겁니다
이런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섹계 자체가 다릅니다

멸망하는 자 곧 지옥에서 땡기는 자는 사울왕처럼 가나안 족속 몰아내기에 관심 없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보세요 이제 와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다 몰아내겠다 해 본들
예수님의 사망 권세 다 이기심은 여전히 무시하는 지옥에서 땡기는
멸망하는 자로써 그 놈의 채면 그리고 그 놈의 선민의식 그 딴거나 따지고 있지

예수님의 생명 구하기 다윗의 왕 됨을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혈통적 이스라엘만 주장하고 있지

진짜 이스라엘의 기능은 아예 모르는 자들이요
말씀에도 관심없습니다

신학자들이 생명구하기 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심 없고
그저 경건의 모양 껍데가 대충 대충 고치고
평강이다 평강이다 주문을 외어서 세뇌 가스라이팅만 할 줄 알아지

정작 그것이 멸망하는 자들인 본색인 사다리 걷어차기입니다

자기들은 좋은 꼴 좋은 물 마셔 놓고
사다리 타고 올라오는 자들이 못 먹고 못 마시도록 발로 밟아버리고 사다리를 걷어차는
한국 기독교를 보면 꼭 멸망하는 자들 다운 지옥의 사람들 답지

누가 미련한 복음인 십자가의 도를 믿는 하나님의 능력 곧 생명구하기를 바라는 자 봤습니까?

이미 자기들은 생명 건짐 받았으면 사다리 타고 올라오도록 해야지
이 놈의 교회들이 오히려 더 했으면 더 했지
아예 못 올라오도록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더라 말이죠

마귀집단입니다 강도의 소굴입니다
부자 약대(낙타, 벤츠)는 삼키고 이용해 먹을 꺼리가 있으니까 말이죠
단물 다 빠진 하루살이가 되면 걸러내는 겁니다
흡혈귀들이 따로 없어요 피 빨아먹고 버립니다

그들에게 생명구하기 라는 사다리타고 올라올수 있도록 하는 그 섬김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막고 막는 어떻게해서든 막아야만 하는 겁니다

그거 올라오면 경건의 껍데기는 다 무너지거든요
주님의 능력인 십자가만 남게 되면

자기들이 그 동안 쌓았던 자기 의로움이 하루 아침에 공든탑 다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을 헐라 라는 예수님을 반드시 교회는 죽여야 하는 겁니다
자기 교회가 있는데 따로 교회를 세워 버리면
손님 다 빼앗기면 장사 접고 교회 다 텅텅 비게 되는 것이지요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바로 옆 구역에서 세례를 주면
이제 세례요한 스승님의 세례는 장사 접게 됩니다 이거 큰 일입니다

생명구하는 사다리 올라오도록 하는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데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지

왜 장사 접게 된다 라는 위기의식을 느낄까요

나의 존재가 예수님의 죽음 보다 먼저 있다 라고 우기고

바로 이런 멸망의 죄성이 나의 존재 보다 늦게 있다 라고 여기는 겁니다

다윗은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는데 있어서 400년 전 아니 노아언약때 까지 올라가면
다윗이 BC 1000년 천년이고 노아때는 BC 2300년 이거는 노아홍수때 이고
노아자체가 언약으로 동원이 된 탄생이면 600 살 때 이니까 더하면 BC 3100년

즉 다윗은 천을 다시 빼기 하면 2100년 전의 약속을 기억했고 그 약속만을 따랐다 라는 겁니다

그런 오래 전의 자기 존재 보다 먼저 앞서 있었던 언약을 기억해서
함과 가나안을 저주한 그 노아언약을 성취한다 라는 것은
기억도 못하는 판국에 누가 그 케케 묵을 과거의 구닥다리 약속을 믿고 실현하고자 하느냐 말이죠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암 ???과 가나안 땅이라는 지옥에서 건져 주소서 라고

하나님의 능력인 샘명구하기를 바라보면
누가 생명의 밧줄을 내려 달라고 구하는 자 있겠습니까

오히려 남을 따라 잡을려며는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가 아니라
그 악을 잘 활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바로 음녀 라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이 종교는 정치를 늘 이기고 파서
국가라는 짐승에게 돈을 갇다바치지 아니하면
짐승의 등 위에 올라 탈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보좌가 비어 있기만 해도 침을 저절로 질질 흘리는 그 음녀가

국가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타는 가스라이팅 짓을 멈출 리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멸망하는 자들의 손에서 미련하게 죽는
목베인 영혼으로 만들어서

저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실때에

분명 모세와 엘리야를 큰성 바벨론이 죽여서
덤비면 까불면 이렇게 된다 라고 공포정치로 공공 장소에 시체를 매달아 놓았는데
어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없더라 말이죠

이미 그들은 배에 빵구멍이 난 자 인데
아무리 배를 찔러도 빵구멍에 칼 찌르기
칼로 물 베기 라는 헛짓 꺼리 밖에 안되는 겁니다

이미 굵은 베옷을 입었는데 말이죠
이것은 마치 굽이 이미 갈라져 있다 라는 거죠
아무리 죽여도 피 안난다는 겁니다
이미 죽은 자에서 살아난 이미 굽이 갈라진 정결한 짐승처럼 거룩하기에 말이죠

이것이 이 십자가의 도가 먼저 떳기에 벌어지는 현상으로써
두 세계를 갈라버리시는 두 패 나누기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멸망하는 자와 미련한 자를 두 그릇으로 만드시는 토기장이 되심을 나타내시는 겁니다

이런 하나님이 되시겠다 고로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된다 라고

이미 보라 내가 새 일을 다 이루어 놓았다 미래완료를 선포하시고
들어가시는 겁니다
인간의 믿음이 아닌 주님의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믿음의 선물을 통해서 우리는
그 결과 그 원인 없는 결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좌 용서하시는 그 행복
그 희년을 땅끝에서 즐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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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 땅 끝에서만 벌어지는 상황 (종말의 현상) (롬 10,19-21)
2025. 9. 7. ( 8월 27일, 녹음 )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들음과 들음에서 난 믿음 (롬 10,16-18)
로마서 2022 2025. 8. 16. 14:47
22-062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땅끝,사망권세 멸밍까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6-18)

〈로마서 10,19-21,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찬송가 259장 새 502 빛의 사자들이여, 어린이 찬송가; 금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

〈찬송가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새찬송가 502장〉



(롬 10:19, 개역)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롬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롬 10:21, 개역)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롬 10:19, 새번역)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너희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미련한 백성들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내겠다." / ㉭신 32:21
(롬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사 65:1(칠십인역)
(롬 10:21,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 ㉡사 65:2(칠십인역)


(롬 10:13, 새번역)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욜 2:32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롬 10:15, 새번역)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7

(사 52:7, 새번역)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엡 6:15, 새번역)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 ㉣사 52:7; 나 1:15

(롬 10:16, 새번역)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 ㉩또는 '기쁜 소식' ㉪사 53:1(칠십인역)
(사 53:1, 개역)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롬 10:18,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 ㉬시 19:4(칠십인역)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2, 개역)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 19:3, 개역)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 19:4, 개역)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5, 개역)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 19:6, 개역)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 19:7, 개역)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8, 개역)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 19:9, 개역)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 19:10, 개역)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9:11, 개역)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개역)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개역)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4, 개역)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롬 10:19, 새번역) 내가 다시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습니까?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너희의 질투심을 일으키고, 미련한 백성들로 너희의 분노를 자아내겠다." / ㉭신 32:21

(신 32:21, 개역)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잠 30:21, 개역)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 30:23, 개역)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 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롬 10:20,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 ㉠사 65:1(칠십인역)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롬 10:21, 새번역)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 ㉡사 65:2(칠십인역)
(사 65:2, 개역)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사 65:3, 개역)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사 65:4, 개역)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 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 65:5, 개역)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
(사 65:6, 개역)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사 65:7, 개역)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로마서 10장에서 특히 구약의 인용된 구절이 많아서 옮겨봤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때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인용한 구절을 옮긴 이유는
바로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실상이 오늘 본문이다 로마서 이다는 거죠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하면서 우와 호세아서가 바로 그림자이고
그 그림자의 출처가 바로 고린도전서 라는 신약이다
신약이 먼저 있었고 구약이 뒤에 있었다 말이죠

인간의 신체가 감지하는 시간관에서는 도저히 포착될 수가 없도록 하신 겁니다
오로지 주님의 시간
시간 조차도 주님을 찬양하고자
공간 조차도 주님을 찬양하고자 인간 보다 먼저 있었다는 거죠

그러나 인간은 항상 지가가 먼저 있었다 라고 자기 기준에서 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주를 찬양한다? 이게 믄 소리인줄 모르는 겁니다
시간은 주를 위해서 흐르거든요
공간 곧 장소가 주를 찬양한다? 노래 안 부르던데요???? ㅋㅋㅋㅋ
낮은 밤에게 밤은 달에게 달은 해에게 이게 시편이라서 시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실상입니다 비밀언어 방언입니다
영어를 못하면 영어를 새로 배워야 하듯이
가르쳐 주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새노래를 하는 겁니다
오히려 말귀 못 알아먹는 그림자인 우리가 폐기처분 이전 것은 지나가야 할 판국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바로 땅끜에서 다시 거꾸로 쳐들어 오는 시선으로 다시 재조명합니다
끝에서 보는 시선
종말에서 보는 시선
곧 다 이루었다 라는 미래완료라는 성령의 시선에서 보는 것과

결핍을 채울려고 하는 인간의 시선과의 충돌을 통해서

왜 이 간극을 좁힐 수 없는가를 보게 됩니다
물론 종교는 이렇게 우깁니다 아니다 좁힐수 있다 라고 그래야 장사가 됩니다
그게 오늘날 개신교의 성화론 아닙니까
한국 교회는 성화론입니다 인도로 치면 카스트제도입니다
누가 크냐 라는 심심하면 장자교단이라고 하는 이유가
누가 크냐 그것이 바로 유교와 기독교가 혼재된 혼합종교인 성화론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을 박박 긁어보면 결국은 사디리 걷어차는 사탄교일 뿐입니다
바리새인을 보고 저들의 아비는 마귀이다 라고 하셨듯이 말이죠


우리가 땅을 발 딛고 산다고 해서 그 땅의 주인인냥 주인공인줄 아는데
정작 왜 내가 땅 위에서 살아야하지 라는 그 이유 조차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즉 땅의 시작도 모르고 땅의 끝도 모르면서
내가 있다 존재한다 라는 그 이유 만으로 그 땅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판국에 더더욱 땅 끝이라는 의미를 제시했을때에
누가 나 보다 땅이 내 보다 먼저 있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자는 미친놈 취급받아서 그 사회 곧 땅에서 쫓아내어야 하는 겁니다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괜히 이 말이 나온게 아니거든요
얼마나 쫓아내고 싶었으면 자기가 왕인데 이 놈 하나 못 쫓아낸다는게 얼마나 자괴감이 들까요
아합왕은 엘리야의 그 예언 땜에 이스라엘의 기근이 왔다 라고
잘할려고 하면 할수록 너 땜에 다 망친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또 너냐

(왕상 18:16, 개역)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왕상 18:17, 개역)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왕상 18:18,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이제는 왕 시대가 다 가고 포로 속에 잡혀 있게 되어도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포로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에게 외치는 겁니다

즉 왕이 없으니까 이제는 개개인이 왕이 되어서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지만
결국 우상을 찾는 겁니다 내게 복 주는 자를 말이지요

그래놓고 결국은 죽이고 쫓아내고서는 땅이 그들을 뱉어냈다 라고 뒤짚어 씌우는 식으로
참선지자를 죽이고 거짓선지자는 마음에 두는 겁니다
아무리 나라 망함과 동시에 거짓선지자를 죽여도 역시나 마음에는 늘 품는 겁니다
백성들 자체가 무당이 된 거죠 케이 팝 데몬 헌터스처럼 복을 안 주는 저주를 물리치는
각각 개개인이 무당이 헌터 사냥꾼이 된 거죠

거기에다가 이 땅의 의미 조차도 모르는 판국에
더더욱 복음이라는 것이 땅과 결합이 되어서 땅끝 까지 복음이 이미 다 완료 되었다 라고 선언을 해 버린 상태에서 이스라엘 까지 운운해 버리니

땅 모르죠
복음 모르죠 하나님 말씀 안다고 우기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모르는 것 보니 하나님 말씀을 자기 배를 위한 우상으로 혼합시킨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통나 버렸죠
거가에다가 세 번째 이스라엘의 의미까지 모르는 겁니다
혈통적 이스라엘만 우길지 알았지
이 이스라엘의 의미가 땅 끝과 복음과 무슨 상관이냐 말이죠
지금 현재 육적 이스라엘 보세요 복음 모르잖아요
그래놓고 이스라엘 백날 우겨본들 소용이 없는 겁니다

바로 이 세가지 단절을 무슨 수로 좁혀서 알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비웃을 수밖에 없는 거죠
더더욱 그 땅 그 약속의 땅 그 이스라엘의 땅을 밟고 있는 그 당사자 이면 일수록 더더욱 그렇겠죠

그냥 다른 나라 땅도 아닌 이스라엘 땅이자 약속의 땅 임에도 불구하고
약속 한 번 안 적도 알려고도 시도 조차도 해 본 적 자체가 없는 겁니다

그냥 남들 따라 그냥 이 땅에서 제발 복이나 받고 살다 복스럽게 죽고 자손들 복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이지

왜 이 땅이 복음과 연관이 되었으면 이스라엘은 왜 그 일에 동원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띠리사 땅 끝까지 복음이 전달 되었다 라는 이 완료성은
주님의 약속 성취 다 이루었다 라는 완료를 이스라엘은 누리는 목격자 증인으로써 세워지는 겁니다

맞네 다 이루어졌는거 맞네 라고 확인하면서 그 땅들을 발 딛고서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목격하는 증인으로써 세워지는 거죠
그것이 성령행전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사도행전입니다
네 그 목격자가 바로 사도들이고요

사도들은 장기알로써 그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된 그 현장 하나 하나를 누리고 목격하고
증인으로써 세워지니까 말이죠

뭔가 부족한 것이 있거나 결핍이 생겨서 그 부분을 채우고자 전도나 선교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전도 선교는 아직 땅끝까지 증거가 안 되었다는 뜻이겠죠
그렇다면 증인이 아니라 목격자가 아니라
도리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행전이 아닌거죠
인간이 주인공이 되고 성령은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되니까
사람의 손으로 세워지는 또 미완공의 상태가 계속되는 셈이 되는 겁니다

빤스와 그 패거리 한국교회 그리고 사이비당 딴나라당 보세요 
뭔가 부족해서 계속 채워야 하니까
뒤로 빼돌린 재산들이 생기는 겁니다 결국 사다리 걷어찼다는 증거죠
정통교단들이 했던 그런 나쁜짓을 그대로 답습하는 겁니다
늘 함정과 올무를 치는 북이스라엘이 사냥하면서 산당에 제사를 바치듯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우시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참선지자를 죽인
강도의 소굴이였으면 말이죠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우는게 아니라
세상이 거꾸로 교회를 위해서 울어야 하는 겁니다

반대로 전도 해야 합니다 제발 좀 예수 믿어라 라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사람들에게 말이지요

자 땅끝과 복음 그리고 이스라엘은

어떻게 작동이 되는가
땅이라고 해서 그냥 땅이 아닌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음 음부의 권세가 있는 땅입니다

애굽 땅의 확장이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통해서 즉 구약을 통해서
애굽의 확장으로써 가나안 땅이 작동이 됩니다

그 함 땅인 애굽 땅에서 즉 이 말음 모든 땅이 애굽 땅이다는 거죠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애굽 왕과 똑같은 강퍅한 자들 뿐이다는 겁니다
잔칫집을 유지하지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는
다 애굽인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으로 유지되는
지옥 땅 밖에 없고 그 지옥의 백성 밖에 없습니다

그카이 이스라엘이라는 증인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죠

그런데 졸지에 그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피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서
세롭게 형성되어서 나옵니다 없었던 민족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구분 구별 거룩이 되어버립니다

자 그렇게 두 패거리가 되니 드디어 혈과 육의 같은 편끼리의 경쟁으로써의 전쟁이 아닌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사망권세와의 전쟁
곧 하나님의 원수와의 전쟁 말입니다

그렇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없는데서 태어나게 되니까
이들 이스라엘은 이 땅 끝 죽음 끝에서 사망권세가 먼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망 보다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어린양의 피가 또 먼저 있었다 라는 증인으로써
하나님의 군대로써 이 천국 곧 가나안 땅을 침략하는 겁니다
은혜가 먼저 있었다 사망 보다 먼저 있었다 라는 그 약속이라는 믿음오로
믿음의 전쟁에 동원이 되는 겁니다
믿음은 완료를 외치고
행함은 미완료로 결핍을 채우는 식입니다 모든 종교 모든 이방인은 자기 배를 채우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배가 지옥이라서 채워도 채워도 또 배고프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완료를 외치기에 채울 배가 없습니다 빵구멍 내 버린 구원의 뽈로 인해서
도리어 굵은 배 옷을 입고 외치는 겁니다 결국 행함으로는 되는 것이 없다는 증거죠

결국 자기를 위한 나라는 없고 그런 천국은 그런 구원은 없었다
고로 모든 종교는 음녀죠 그 중에 국가라는 짐승 등 위에 올라타는 것을 집착하는 것은
유대교이고 구약까지 말이죠 오늘날에는 모든 기독교가 되는 거죠

진정한 나라는 어린양의 나라 밖에 없고 모든 국가는 다 사라지는 겁니다
정작 천국에는 성전도 없고 해도 달도 없어요
해 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니까 말이죠
알고보니 성전이 없는데 그 성전이 바로 어린양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 곧 중심이였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닌
성령의 전으로써 바로 이 어린양의 죽음을 담는 그릇이다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이 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다 이루을 누리기 때문에 허무한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가면서
여호와의 전쟁의 승리를 누리는 겁니다 막 죽어가면서
하나님의 원수 갚아달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이것이 증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도 제일 끝트러미 제일 꼴지로 증인이 된 겁니다
선배들이 먼저 증인 된 것을 보고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누리는 겁니다

안영미 선배가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고 했던 것처럼
멸치 선배가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 인간들아 라고 선배를 보고 따라가는 겁니다

이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라는 이 영광이라는 복음
바로 어린양의 죽음으로 곧 어린양의 보좌로 인해서
복과 저주를 비로소 전복 뒤 바꾸어서 보게 됩니다

나를 위해 좋은 것들 선한 것들 잔뜩 모으면 그래서 그런 천국에 가는 것이 복된 것이다 본 것이 바로 저주 였고

나를 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오히려 다들 다수가 저주이다 라고 비웃는
그 미련한 길 어리석은 그 십자가의 저주가 오히려 진정한 축복이였다 라는 것을
누가 믿었으리료

즉 단 한 놈도 축복 맞다 라고 할 수 없는 분명한 저주이다
유대교 유대인에게서는 하나님의 저주 이다 라고 하나님까지 끌고와서 하나님의 저주 라고 교리로 법으로 만들 정도였다 말이죠

모든 신학 모든 철학 모든 학문 다 동원해서 분명하고 확고하게 규정했는데
보란 듯이 그 저주를 깨고 하나님의 지혜요 영광이라고 높이시는 겁니다

그런 것들은 행함으로 의에 이를려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반대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의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나라 천국 구원 개념 자체가 먹혀 들 리가 없습니다
저런 행함으로 인한 실천으로 인한 법칙들이 먹혀들지가 않는 겁니다
도리어 그런 불순물을 용광로에서 쏙 빼는 것이
믿음이요 그 용과로 라는 절대죽음 절대심판 속에서 나오눈 자가 땅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이요

이 이스라엘은 오로지 진정한 구원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어린양의 피로써 말미암는 증인으로써 증상물로 태어난 자가 되는 겁니다

축복과 저주가 나로 인해 내 하기 나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죽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겁니다

고로 먼저 이스라엘은 저주가 뭔지 알기 위해서
자기를 위한 모든 짓을 함으로써 그런 인간들끼리 모여 모여 축복의 나라가 될 줄 알았는데
어라 아예 이스라엘 국가 자체가 다 날라가 버리니

자기를 위한 나라
그리고 그 개인 개인이 모여서 더 많은 자기를 위한 나라가 애초부터 없었던 망상이였습니다
도리도리 보세요 쥴리 김거니 보세요 자기를 위한 나라 없는 그 망상에 빠진 것
이제 또 딴나라당이 망상에 빠져서 여전히 자기를 위한 나라를
기독교까지 합세해서 미국 보금주이까지 합쳐서 그 망상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그 우상을 깨뜨리는 진짜 현실은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
곧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 라는 용광로 뿐입니다

그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 심판인 십자가를 거쳐서 분순물이 빠져서 나오게 되니
그 고멜이 전남편 바알이 죽게 되니
이제야 본남편을 보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본인이 그 지옥 자체인 탐욕의 지옥 바닥
바닥 없는 그 바닥을 거쳐서 예수님이 그 바닥 없는 구멍에 바닥으로써 밑바닥 찍게 되니
드리어 빠져나오게 되는 70년 만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렇게 뒤에서 여자가 남자를 껴안는 겁니다 당신이 내 낭군 본남편 이시군요 라고 말이ㅛ
땅끝애서 나오니까 말이죠
그 예루살렘 가나안 땅에서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서 나와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려주심 덕분에
지옥에서 나와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은혜가 왕 노릇하는 영원한 나라 어린양의 나라에서 말이죠

이 왕 이 주가 되는 주인이 되는 것이 바로 축복과 저주의 개념이 바뀌어진 주 종 으로써
모든 나라가 무릎 꿇고 경배하는 주의 나라인 왕 같은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입니다

이런 의미를 육적 이스라엘은 사적인 탐욕이자 우상개념으로 자기 배를 위한 주인 개념으로 바꾸어 버리니까 섬기기는커녕 사다리 걷어차기에 목숨 걸죠
왜 주인이 되는 약속을 행함으로 지킬려고 하니까 말이죠

그카이 하나님의 원수를 거치지 않게 되니 자기들이 하나님의 원수 노릇으로써
약자를 괴롭히는 마귀 자식이 되는 겁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다 이런 식이 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올무를 친 것이 도리어 자기들이 친 올무에 자기가 걸려넘어지는 누워서 침뱉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벗어납니까 그게 다윗 언약 아닙니까
정직한 영이 없어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회개의 영을 받는 거죠

그런데 얼마나 교만하면 회게의 영을 받는게 아니라
도리어 회개의 달인까지 되니까 왜 날 안 알아주노 라고
목사들 심심하면 제발 날 좀 믿어달라고 징징거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안 알아주면 끝날까요 뒤끝이 장난 아니죠 괜히 지도자가 된게 아니고
괜히 권력을 쥔게 아닙니다 모든 복수는 다 있는대로 다 퍼붓습니다

섬기는 분의 하나님의 능력 곧 생명구하기에 놓여지는 물에 빠진 자가 아니라
도리어 생명구하기를 훼방하는 사다리 걷어차면서 생명죽이기에 목숨 걸어버렸다 말이죠
악마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말이죠

바로 이런 죽음 보다 강한 것이 사랑이라는 시기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바로 이 시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겁니다
즉 인간과 인간 끼리의 시기가 아닌

마귀만 상대하신다는 이유가 
죽음만 상대 사망권세만 상대하신다는 이유가
사랑은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구원을 성사시키시는 겁니다

마치 시이소와 같이 한 쪽이 이기면 한 쪽은 지는 거죠 장기알이 하나 먹히면 하나는 남게 되는 거죠
두 사람이 밭을 갈다가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가는 겁니다

누가 축복을 받았다 라는 말은 누구는 저주를 받았다 라는 거죠
이것이 천국과 지옥의 원리로써

마귀는 열심히 하나님을 상대로 열심히 열심히 장기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기능을 하라고 마귀를 세우신 겁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를 나타내시기에

인간의 사적인 구원 개인 구원 곧 자기를 위한 나라 축복 잘못하면 저주 그런 것 아예 없다 라는 거죠

그래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써 시기와 질투로 구원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탕자를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살진소 금가락지 새옷 새신발이라는 잔치를 벌릴때에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 라는 땅끝에서 돌아올때에

이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니까 맏아들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바로 이 시기심
이 질투심을 유발케 해서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겁니다

즉 마귀만 상대하신다 죽음만을 사망의 권세를 상대하시는 것이
은혜의 왕 노릇이다는 겁니다

이 시기심 이 질투심이 아니면 이 세상과의 분리 구별 구분 구별이 벌어지지 않는 겁니다

마귀 저들이 인식하는 구별 구분 분리가 거룩인데

인간들 자기들 끼리 거룩한 짓 깨끗이 손 씻기 남을 7번 용서하기 이런 것들은 마귀가 가장 잘 하는 주종목입니다
금식하기의 달인들인에 왜 당신은 금식은 커녕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강도와 죄인의 친구랄 별명에 딱 맞는 짓만 합니까

인자는 그 행한 일로 옳다함을 얻는다 라고

저들이 하지 못하는 것으로 구분 짖기를 하시는 겁니다

분리 저들과의 분리작업이 바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질투 시기로 벌어지니까요

저들은 마귀를 거치지 않으니까
다윗 언약 필요 없고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법 법 법을 외치는 겁니다

그 카이 예수님니 마귀에게 세가지 시험을 받듯이
이미 유대 사회 오늘날로 치면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미 마귀에게 장악당한
그 세가지 시험을 받는 것이지요
마귀는 한국 교회를 이미 다 장악했습니다

경제 돈 돌을 떡 덩이 되라 이미 안 믿는 자도 재벌교회를 보고 혀를 찹니다
종교 종교는 자기 배를 위한 구원에 이미 미친지 오래 되었죠

그 다음 정치
이거는 제가 20대 때부터 잘 안 보였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뒤로 몰래 몰래 하는 것이 보편화 될 시점 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대 놓고 정치화 되었죠

내가 신이 되겠다는데 건방지게 동의 안하는 놈들은 다 죽이겠다 라는 복수심 결국 모든 인간의 행함은 이 정치가 되는 복수라는 원수성으로 종결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복수심과 상대적인 땅 끝에서 나온 불순물 빠진 이스라엘이어야 하는 거죠
육적 이스라엘 혈통 이스라엘 조차도 마귀에게 장악되어서 이 복수심 밖에 펼친 것이 없으니까 말이죠

바로 이런 마귀가 장악한 유대인 유대교가 이기지 못해 점령당한 그 세가지 시험을
예수님은 이기신 겁니다

그렇게 이 세가지 시험을 이기시는 그 시기심 그 질투심의 사랑으로
새이스라엘을 다시 빼앗아 옴으로써
다시 잃어버렸다가 다시 땅 끝에서 되 찾아 오심으로써
지옥에 갈 자를 지옥에서 빼내시는 이 섬기는 왕

덕분에 그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이러다 다 죽어 라는 우시는 한 목자 한 선지자 덕분에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나온 겁니다

바로 이런 역동적인 전쟁상황이 벌어지는 현장이 바로 땅 끝에서
종말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써
그 속에서 이스라엘이 나오는 겁니다

괜히 그냥 나오는게 아닙니다

이 시기심으로 이 질투심으로 건짐 받고 섬김 받은 주님의 자녀인 이스라엘
곧 땅 끝에서 나온 자는
이미 용광로 속에서 불순물 혼합물 찌기의 기능들을 다 격어 봤기에

세상의 부귀 영화
곧 소유의 넉넉함으로 생명이 유지되는게 아니였고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먹는 것이 목숨 보다 중요한게 아니였고
의복 곧 옷 입는 옷이 몸 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였음을 알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산 소망 참소망으로써 본향을 본남편을 비로소 사모하게 되는 겁니다

즉 주객 주종이 뒤 바뀐 것을 다시 전복 시킨 새마음 새영 곧 그리스도의 마음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어린양의 나라를 사모하게 됩니다

아무도 안 믿는
아무도 구하지 않는

아무도 찾지도 부르지도 않는 그 나라를

비로소 부르고 찾는
새 마음 성령을 약속하신대로 부어주심으로써

49일 까지도 예수님 죽여도 그 딱딱한 마음 단 하나도 움직이지도 않던 우상이
50일째에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시니까

비로소 어찌할꼬 어찌할꼬 우리가 진짜 참된 주님을 죽인 죄인이구나 라고 가슴을 치면서 우는 겁니다
얼마나 우리가 화 인침 받은 자였으면 그 시기심으로 질투심으로
죽음에 있는 자를 건지시고자
예수님을 죽인 살인자를 모든 허물 다 덮어서
부드러운 마음으로써 어린양을 사모하라고

대신 매 맞으심으로 우리가 비로소 바이러스 감염에서 치료 받아서
비로소 부드러운 마음 부어주심 덕분에 우는 자로써
나음을 고침을 받아서 참소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 땅끝에서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이 땅 끝 곧 부를수 없는 곳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찾아오시지 않으셨다면

유리는 이 사망의 권세에 속아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이 사망의 권세라는 죽음을 시기하시고 질투하셔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

땅끝에서 불러 모으셔서

나는 너의 한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게 하고자
한 목자 다윗왕을 세워 반드시
시기심으로 질투심으로 땅끝 가나안 ???을 그 원스들을
그 사망의 권세 음부의 권세를 반드시 이겨서

그 승리를 평화를 다 이루어서 땅 끝에서 나누어 주리라를 이루시는 겁니다

이 다 이루심을 우리는 증인으로써 목격자로써
내가 발 딛는 그 곳에 땅끝으로써 죽음이 발악하는 그 가운데서

왜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왜 왔느냐 라는 마귀의 발악을
다 이루었다 라는 주님의 시기심인 사랑으로 이 세상을 멸하는 겁니다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남방 여왕이 증인일줄 누가 알았습니까 도리어 유대인은 가나안 족속으로써 멸망 당해야 하는
다윗의 여부스 심판처럼 유대인들은 당하게 되는 겁니다

남방 여왕 뿐이겠습니까 요나가 시기했던 니느웨 백성이 심판받던 자리에서
도리어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그 기능을 못하니까 반대로 심판 받을 자가 도리어 심판하게 되고
심판해야 할 이스라엘이 도리어 심판받아야 할 니느웨로부터 심판 받게 되닌
이 시이소의 원리처럼 축복과 저주가 어린양의 피로 뒤 바뀌게 되는 겁니다

(마 12:41,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눅 11:32, 개역)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아니 왜요?

(마 12:42,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31, 개역)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이들이 바로 땅 끝에서 나왔기 떄문입니다 진짜 이스라엘이고 기존의 이스러엘이 가짜였단ㄴ 거죠

부른적 없었던 곳에서 부르신 바 되시고
찾은 적 없던 곳에서 찾으신바 되신 그 땅 끝에서 말이죠
죽음과 사랑을 동시에 만난 그 사이 간극에서 나온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바로 땅 끝 종말에서 나온 성령의 구분짖기에 거룩이 임한 자 이고
기존의 빛의 아들들은 땅끝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이 종말이라는 비유 비일을 외쳐야 할 자들이
도리어 자기들이 친 올무애 도리어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이 미련한 복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땅 끝에서 벌어지는 상황
종말의 현장에 지금도 새이스라엘이라는 어린양의 피의 증인으로 인해서 세상심판이 그 미완료들이 다 이루심이라는 완료로 인해 전복되고 무너지고 심판받는 것이
다 이루심이라는 완료로 인해 벌어지는 겁니다

주님 주님 자녀의 남은 시간들은 바로 이 십자가가 벌리신 사건을 목격하는
종말의 상황 그 현장을 매일 매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먼저 그의 나라와 어린양의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세상 영광은 어린양의 생명구하기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비래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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