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8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2-24)
2025. 9. 21.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롬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롬 10:21, 개역)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사람의 지혜와 총명을 폐하는 미련한 복음 (고전 1;18-21)
고린도 전서 2025 2025. 8. 30. 19:17
25-007 사람의 지혜와 총명을 멸망케한 미련한 십자가의 도 (고전 1;18-21)
〈고린도전서 1;22-24,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가스펠; 기적이라네, 찬송가 433장 새 383 눈을 들어 산을 보니〉
〈가스펠; 기적이라네 No.781 찬미예수 2000〉
수많은 별들은 누가 움직이나 어떻게 부딪히지 않고 돌까
어떻게 난 바로 설 수 있을까 바로 기적이라네
바다와 육지 갈라놓으셔서 육지를 뒤덮지 않게 했네
어떻게 이 모든 것 정해졌나 바로 기적이라네
기적이라네 주께서 나와 동행해 주시는 것
기적이라네 날 지으신 것 정말로 묘한 기적이라네
봄이면 개울물 졸졸 흐르고 개울물 모여 강물 만든다네
바다에 소금 누가 뿌렸을까 바로 기적이라네
도시엔 사람 정말 많고 많아 세상은 빈틈없이 꽉꽉 찼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아네 바로 기적이라네
(시 104:1, 개역)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시 104:2, 개역)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시 104:3, 개역)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시 104:4, 개역)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시 104:5, 개역)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시 104:6, 개역)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시 104:7, 개역)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시 104:8, 개역)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시 104:9, 개역)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10, 개역)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찬송가 43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새찬송가 383장〉
1.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여호와 나를 도와 주시네
너의 발이 실족잖게 주가 깨어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길이 보호하시네
2. 도우시는 하나님이 네게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치않겠네
네게 화를 주지않고 혼을 보호하시며, 너의 출입 지금부터 영영 인도하시리 아멘
〈고린도전서 1;22-24, 개역한글 신약성경 264쪽〉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2, 현대어) 유대인들에게는 이 말이 어리석게만 들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포된 말씀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게 하늘의 표징을 보이라고 요구합니다. 또한 다만 자기들의 철학으로 해석할 수 있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헬라인들에게도 이 말은 미련하게 들릴 것입니다.
(고전 1:23, 현대어)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교할 때면 유대인들은 기분이 상해 있고 이방인들은 모두 잠꼬대 같은 소리라고 합니다.
(고전 1:24, 현대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구원의 자리에 부르신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야말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요 지혜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인간 세계는 딱 두 민족 밖에 없습니다 바로 유대인과 헬라인 이 두 민족 말이죠
물론 수 많은 민족이 있다고 합니다만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누었다 라고
토기장이 본인이 그렇게 외쳐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유대인 조차도 참 이스라엘이 아니다 라는 거죠
그래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즉 창조는 그 과거의 창조가 아니라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사건 곧 창조로써
인간의 바람 원함으로도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으로아도 아닌
인간의 개입 할 수 없는 사건으로써 창조로써 그 창조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민족 유대인과 헬라인 곧 이방인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 민족으로 나누었습니다 다른 민족 없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계시를 받은 민족이고
그렇지 않은 이방인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몰라서 망하는 이 언약 때문에 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이 계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다리를 걸치는
이방인의 손에서 만들어진 우상을 하나님과 썩어버림으로써
계시라는 은혜를 무시하기 시작케 되니까
이 은혜를 무시한 노아언약의 대상인 함과 가나안 곧 함 땅 애굽땅처럼
거룩의 전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유대인 본인들이 심판해야 할 대상이 애굽이요 가나안 인데
거꾸로 그들이 심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심판 당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겁니다
그카이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아느냐 검을 주러 왔다 라고
화평의 언약을 무시한 유대인이 되었기에
도리어 심판의 대싱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에스겔에게 너가 파수꾼 노릇을 하지 않아서
저들이 심판의 경고를 못 들었다 라고 핑계거리로 나오면
그 죄악을 에스겔 너에게 묻겠다 라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증거하라 라고 하십니다
아니 에스겔이 갑자기 남의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이 심판을 받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안 증거하면 너도 같이 망하게 할 것이다 라고 하실까요
그럼 에스겔 본인도 그 심판의 자리에서 놓여져서 증거하게 되는 셈입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사방의 우겨쌈을 당하는 식으로 말이죠
죽이시기로 작정 하셨다처럼 말이죠
만약 증거했고 경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고 회개치 않았다면
그 죄값을 에스겔에게 묻지 않겠다 라고 하십니다
자 그럼 왜 에스겔은 왜 이 상관도 없는 일에 중간에 낑겨야 하는 겁니까?
물론 그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낑긴 것도 있지만
그 역시나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새로 알아야 할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안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거죠 지금 지구종말이 가까이 왔다 라고
기후문제가 직접 피부에 와 닿으니까 비로소 움직 움직 거릴려는 생각이 생기지
피부에 와 닿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인간입니다 심지어 돈 문제도 같이 맞물려 있으니까 돈 문제면 더더욱 움직일수 밖에요
맞습니다 에스겔 본인이 피부에 직접 와 닿게 되는 문제가 되니까
비로소 움직이지 않고서는 못배기를 상황이 된 겁니다
그 카이 중강에 낑긴게 영광인줄 알아라 이것들아 가 되는 셈입니다 안영미 개그처럼
안그러면 우리는 창조주가 누구인지 피부로 직접 안 와 닿고
개같은 이방인처럼 신이 존재하는 것 나 믿지 암 믿고 말고 라고
대충 대충 아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총명을 페하고 즉 이거 유대인에게 해당 되지요
물론 다 해당 됩니다만 특별이 유대인입니다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이 새영 새마음 이 새언약을
그 다윗 이후에 인간들이 이 총명함을 곧 오늘날로 치면 성령을 소유하고파서
얼마나 수 많은 열심들을 쌓았겠냐 말이죠
그런 자기 의를 쌓고자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득 쌓은 그 총명을 그들의 성령론을 폐하고
또 사람의 지혜를 폐하신다 라고 이건 이방인의 지혜를 찾는 그 사고방식을 멸망시키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메요?
구하라 캐 놓고
찾으라 캐 놓고
두드리라 케 놓고 그것을 폐하신다 라고요
바로 그겁니다 그것을 폐하시는 과정을 우리는 겪어서
그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로 누구신지를 아는 겁니다
물론 내가 결과적으로 알아낸게 아니였던 거지요
구하라 찾으라
위에 이사야 65장 1절을 예시 했듯이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구하는데 도사들이 유대인입니다 문제는 뭘 구하느냐?
자기 의를 쌓고자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누가 크냐를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끌어 당긴다 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가득하다는 거죠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복종이 아니라 이용해 먹을려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이용해 먹을려고 하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지식을 쫓는 것은 뭐냐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십자가라는 용과로 속에서는 곧 하나님의 저주인 절대심판 속에서는
나는 하나님의 지식을 쫓았다 너는 안 쫓았지롱 이라는 것 조차도
입 싹 다 다물에 잠잠케 하심이 있는 겁니다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의에 순종한 복종한 딱 한 분의 죽음 속에서 태어났기에
그 자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랑의 관계인 신랑과 신부의 한 몸 됨입니다
안 그러면 두 몸으로 여전히 나누어져 있다면 그것은 원수지간입니다
아직도 막힌 담이 허물어지지 않은
모세 언약이라는 막힌 담을 더 중요시 해서 경계선을 긋고
너는 너 구역 나는 내 구역 서로 넘나들지 말자 라고
어릴적 국민학교 책삼 가운데 칼로 홈을 파서 넘어오지마 라고 하는 장난과 똑같습니다
인간의 경계선 긋기는 내 곳에 손 대지마 라는 것은
여전히 복수심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이제부터 내가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끝까지 복수할거다 라는 식입니다
그게 바로 누굽니까 형 에세요 그들의 자손 에돔 아닙니까
그카이 모든 인간의 행동은 복수심입니다
이 복수심을 부메랑 피하면서 받기를 한 사람이 이재명 아닙니까
만년필 까지 줘 가면서 말이죠 이재멸도 다 복수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그것을 어떻게 억누르느냐 라는 것이 대통령 할 동안의 자기방침인
이게 헬라인의 지혜 아니냐 말이죠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안 통하는 겁니다
태풍을 막겠습니까 풍안을 막겠습니까 아무리 물 위를 걷는 것을 구해도
그런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아닌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습니다
즉 풍랑이라는 용광로가 아니면 그런 사람의 지혜 철학 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폐하게 해서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요나의 표적인 십자가의 지혜로
다시 싸매어 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이라는 그 사망의 어두움 속에 뛰어드셔서
손수 직접 살려주시고자 대신 매 맞아 죽는
자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이 하나님의 의 단 하나만인 십자가가 아니면
여호와가 누구신지 모르는 겁니다
창조는 사랑으로 했지 인애와 자비로 했지
번제와 제사 라는 법으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창조물은 창조행위는 바로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인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창조가 없는 사랑이 없는
울리는 꽹과리 밖에 없는
지옥에서 몸 부림치는 그 울리는 꽹과리 그 고함 그 비명 그 울부짖음 밖에 없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 덕분에 소돔과 고모라 안 된 것이지
유대인처럼 표적을 구할려고 남을 7번 용서하는
그 자기 의를 쌓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 순종 할수 없고 의에 이르지 못하는 겁니다
자 그렇게 구하기의 달인 기도의 달린 회개의 달인 금식의 달인
부르짖음의 달인
묻고 떠블로 가의 달인인 질문의 달인인 유대인 조차도
(머리 흔들어가면서 율법 토라에 대해서 도서관에서 서로 묻고 답하고 끝없이 연구하잖아요
그런 물음이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곳에서 그 카이 유대인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물음으로써 자신들의 모든 창작물에 발견이 되는데 말이죠)
십자가의 죽음에서는 넘지 못하고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자 그렇게 이재명도 찾지 못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찾기 못하는 곳에서 찾으신 바 되고
유대인처럼 구하지도 묻지도 못하는 곳에서 구하신바 물으신바 되는
(왜? 누가 크냐는 잘도 묻고 잘도 실천합니다 그래서 남 7번 용서해요 진짜로
그러나 도리어 7에 70번 용서 받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안 묻습니다
이미 절망 상태로 입이 꾸욱 다물어져서 물을 힘도 없이 자포자기 하니까 말이죠
그 콧대 높은 예루살렘산을 싹뚝 짤라서 평평하게 되니
비로소 잠잠케 됩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으면 말이 많네??? 도리도리
그러나 싹 뚝 짜르면 그 교만한 산이 깍여져서 머리 빡빡 깍게 되니
비로소 잠잠케 됩니다 그리고 나 보다 더 빡빡 깍인 모욕을 당하시고
수치를 대신 입으신 분을 비로소 봅니다)
비로소 에스겔은 그 심판의 자리에서 저들이 안 들으면 어떻게죠
들어서 또 다시 교만해 지면 어떻하죠 그런 걱정 보다
더 심각한 예수님의 대신 매 맞으심을 보고서
비로소 듣든지 아니듣든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증거하는 중간에 낑긴 경계선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목에 탁 걸려서 뱉어버릴수도 없고
삼킬수가 없는 목에 갈린 까시처럼 말이죠
(겔 33: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3:2, 개역)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겔 33:3, 개역)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겔 33:4, 개역)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겔 33:5, 개역)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33:6, 개역)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겔 33:7, 개역)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겔 33:8, 개역)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 33:9, 개역)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겔 33:10, 개역)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겔 33:11, 개역)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겔 33:12, 개역)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겔 33:13, 개역)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겔 33:14, 개역)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겔 33:15, 개역)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겔 33:16, 개역)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겔 33:17, 개역)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겔 33:18, 개역)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겔 33:19, 개역)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의인 범죄 죄인 돌이킴 이라는 팔을 어긎맞게 하심도 같은 장 에스겔 33장에 있었네요)
이것이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는 (에스겔, 겔 20:49)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야 또 너냐 라는 (엘리야, 왕상 18:17)
죽이시기도 작정이 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에서 난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는 사도들인 것처럼
성도들 또한 저런 악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 곧 유대인
그리고 어리석고 미련함을 벗어서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 이방인의 모습들을 다 거쳐서
도저히 저들이 구하지도 찾지도 않는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이 십자가의 도에서 태어난 자로써
새로운 이스라엘을 새로 만들어서
제 3의 민족이 아니라
두 민족을 아예 하나도 묶어서
여전히 두 민족으로 나누심을 계속 이어가시는 겁니다
원수지간처럼 이스러엘과 팔레스타인 곧 이방인들이 죽도록 싸워도 둘다 똑같은 이방인으로 보시고
새로운 십자가에 태어난 남은자 라는 새로운 민족을 새창조하심으로써
이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겁니다
더 이상 그림자라는 구약의 반복이 아닌
더더더 비존재로써의 신약의 새로운 민족인 남은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누어서
주의 주 되심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그러니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자는
아무리 유대인이요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우겨도
개같은 이방인 취급 받기는 맹 마찬가지인 소돔과 고모라 곧 지옥백성입니다
백날 혈통적으로 유대인 정통혈족이라고 우겨도 소용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곧 예수님의 죽음과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카이 7에 70번 이라는 그 모욕적인 구원이 그들에게서는
거리끼는 걸림돌이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보겠습니까
오히려 같이 함께 사다리 타고 올라갈까봐
더더욱 사다리 걷어차게 만들어버리는 모욕적인 구원이 되니까
안 돼 멋들어진 구원이 될려면
저런 개 돼지 딴나라당이 이 개 돼지 국민 덕분에 자꾸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나는 부활을 하잖아요 ㅋㅋㅋㅋ
그럴러며는 개 돼지로 남도록 해야 자기들이 멋들어진 구원 멋들어진 부활이 되는데
지나 개나 소나 돼지나 다 사다리 타고 다 올라오면
그거 얼마나 도덕적 헤이가 되는 모욕적인 구원이 되겠느냐 말이죠
자기 의로움 쌓은 것이 그 공든 탑이 아무 쓸모 짝도 없는 부도맞은 수표가 될거 아니냐 말이죠
그 카이 맏아들이 탕자를 용서한 그 사랑에 반발 하는 겁니다
거리끼는 겁니다 너무 너무 더럽다 라는 겁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것 추구해야지
거 보세요 이방인이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하잖아요
지혜로와야지????
그런데 이방인 중에서도 어머니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다 라고 하니까
또 그 이방인 모압 여자 룻 때문에 거리끼는 걸림돌이 또 하나 생겨서
또 넘어서야 하는 걸림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싫어서 정작 자기 백성 이스라엘은 몽둥이 징계의 매가 싫어서
다른 하나님인 다른 복음인 우상을 썩어버리게 되니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방여자 모안 여자 룻이 어머니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라고
그 징계의 매를 사랑으로 보더라 말이죠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 아닌
요냐의 표적이 사랑임을 본 겁니다
바로 그때 땅 끝에서
즉 부를수 없는 곳에서 부르신 바 되고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찾으신 바 되는
그 죽음 속에서 나온 자가 바로 어머님이다 라고 보고
내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하니
이 이방여자 룻이 땅끜에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게 되는 겁니다
십지어 예수님의 족보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즉 정작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야 할 자인 유대인은 못 들어가고 말이죠
자 이렇게 땅끝에서 나온 자 만이 이스라엘을 거꾸로 심판하게 되는 겁니다
구하지도 못하는 곳에서 구하신 바 되게 하시고
찾지도 못하는 곳에서 찾으신 바 되게 하시는
은혜를 따라 사랑을 따라 용서함을 받아서 말이지요
바로 이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 라고 합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고 미리 정하신 자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 의롭다 하신 이를 영호와롭게 하셨다 말이죠
(미리 안다 라고 안다 즉 사랑으로 창조 했다 라는 겁니다 피 약속 발랐다 라는 겁니다법으로 창조한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이미 아는 관계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목자는 양의 음성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자꾸 안다 안다 라고 하십니다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라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아니라
제일 더 한 간극이다는 겁니다 내 쪽에서 할 수 없는 절대단절성이다는 겁니다
그 반대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라고
욕심 죄 사망입니다
즉 믿음의 반대가 불신인데 이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 즉 너무 너무 잘 믿는 유대인들이 믿음의 달인들이 바로 탐심이라는 우상 숭배 때문에 사다리를 걷어차는 겁니다
의복이 몸 보다 중요치 않다고 했는데 그들은 의복이 중요했습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 보다 중요치 않다고 했는데 생명을 버리고 소유의 넉넉함을 추구하고자 사다리를 걷어차는 거죠 그래서 유대인이 삥 둘러가는 사마리아 구역에서 주님은 직진하고 경계성 허물어서 생명의 영생수를 먹이시는 겁니다 우물가의 여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이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3, 개역)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눅 12:24, 개역)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눅 12:25, 개역)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눅 12:26, 개역)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7, 개역)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8,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눅 12:29, 개역)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눅 12:30, 개역)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눅 12:31, 개역)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엣날 찬송가에 솔로몬의 영광이 딱 두 군데 나오는데 그거 부정적으로 나옵니다 오히려 들에 핀 백합화가 더 귀하다 라고 솔로몬의 입은 옷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다룬다 말이죠
음식이 목숨 보다 중요치 않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헬라인에게서는 곧 이방인에게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겁니다
음식이 아니면 목숨을 연장 할 수가 없는데 그런 어리석고 미련한 말에 속으라 라고?
주님은 오히려 더 당당하십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라고
그 음식 그 참새 한 마리가 시장에서 팔고 사는 것 모두 주님의 손에서 벌어지고 있다 라고 합니다
나 있다 나 존재 한다 보다
말씀이 너 보다 먼저 있었다
이것을 모르니까
죽기를 무서워서 음식을 중요케 여기는 겁니다 목숨 보다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 제가 사고사례를 전하는 행정병이라 방송으로 보내는 사건이 뭔고 하니
사과를 분배하다가 사과 한 개 더 가지고 갔다고 결국 죽음의 사망까지 이르렀더라 말이죠
에이 모잘라서 그렇게 되었으니 더 많이 줬으면 안 일어났을 건데
아닙니다 정량이 다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남아 도는 것으로 서로 더 많이 가질려고 하다가
그 음식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였던 겁니다
이거 제가 직접 비로 앞에서 격었던 것처럼 느꼈으니까
우와 말씀이 맞네 라고 했다 말이죠
돈이라는 재물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돈이 사람을 죽이니 살리니 하지만
정작 주님은 사망아 누굴 쏘느냐 라고
사망이 사망했는데
죽음이 죽었는데
흙이 그냥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뿐인데
죽음의 의미를 억수로 크게 가스라이팅 시켜버리니
모조리 다 사망의 종 노릇하게 되는 겁니다
그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는
예수님의 죽음
아이고 그것도 죽음이가 라고
죽음이라고 쳐 주지도 않는 죽음 말고
진짜 죽음인 예수님의 죽음을 거침으로써
저 되도 않는 사망 권세 때문에 나온 표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는
결국 그들이 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랄까요?
종교는 왜 사랑을 갈구 할까요? 미움 받을까봐 싶어서
결핍을 채울려고 왜 그렇게 사랑으로 가스라이팅 할까요
십자가의 사랑은 참혹하기 짝이 없는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다 일 뿐이지
가스라이팅 시커고 싶어도 아름 다룬 구석도 없고
풍채도 없도 모욕적인데 무슨 멋들어진 구원이 되겠습니까
흠모할 모양도 없고
태양 빛이 그을려서 병든 모습 갘으니 아무도 쳐다 볼수 없을 정도로 싫어버린 바 되어서
다들 고개를 돌리는 겁니다
못 생기면요 웃끼기라도 해서 웃참 하다가 웃참실패호 푸쉭 침이 튀어나오면서 ㅋㅋㅋㅋ
웃끼기라도 하지
못 생긴게 아니라 그냥 이유 없이 싫어버린 바 되어서 다들 고개를 돌리는 겁니다
너무 너무 처함하기 짝이 없거든요
역겹고 비위 약한자 바로 토가 욱욱 다 튀어나올정도로 속애 있는 것 다 토하고 속이 다 뒤틀릴 정도로 내장들이 견디지 못할 정도이다는 겁니다
몸이 거부해요 그카이 싫어버린바 되지 않고서는 못 베기고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겁니다 몸이 말이죠 몸이 지가 지 스스로 거부합니다
기적을 구하는 자에게 거부감 거리낌이 나오고
지혜를 찾는 자에게 어리석고 미련함
아니 왜 영광 스럽고 멋들어지고 지혜로운 현자가 아닌
다들 싫어버린바 되겠끔 오느냐 라는 거죠
그카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는
알고파 한다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볼낀데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싫어버린바 되는 모습으로만 오겠다 라고 하니
아니 왜 그러느냐 말이죠
바로 사망의 권세 때문입니다
그 사망이 목숨 보다 음식을 더 중요케 만들어버렸고
생명 보다 소유의 넉넉함을 더 중요케 만들어버렸고
몸 보다 의복이 더 중요케 만들어버린
이 창조훼방을 찿조주를 모르도록 하게 함을 박살 내시겠다 라는 겁니다
결국 표적 구하는 유대인과 지혜를 찾는 이방인은
음식 곧 경제죠 그리고 의복 곧 종교죠 이웃사랑의 처음을 헐벗음을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자기 아는 자만 이웃사랑하고 그 외에는 특히 원수에게는 헐벗음을 해결 안해주죠
사다리 걷어차죠 종교전쟁은 그 증거죠
그 다음 소유의 넉넉함 이것 때문에 종교라는 음녀가 국가라는 짐승의 등 위에 올라탈려고 하는 겁니다
이웃 사랑을 많이 하고픈데 옷을 많이 창고에 쌓아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못하게 하니 그 서러움을 국가 짐승으로부터 받다가
돈만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짐승 등 위에 올라타고자 하는 겁니다
이게 모든 정치꾼들입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딴나라당만 지옥갈 놈이 아니라 둘다 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곧 십자가의 사랑은
바로 그것을 박살내는 겁니다
박살 낸다 라고 해 놓고서는 박살은 안내고 시비만 걸어서 도로 개죽음을 당하고
하늘로 퍼뜩 올라가는 겁니다
박살한다고 완료되지 않거든요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았다 라고 밀씀 하셨거든요
남아 있어봤자 겶칩 채우기만 할 뿐입니다
완료를 누리는 그 실상을 우리는 사나 죽으나 누리고자
말씀에 의해서 죽이시기로 작정된 겁니다
그카이 중간에 낑긴 겁니다
호세아 구약이 그림자 이고 오늘 본문 신약의 고린도전서가 실상이니까
우리는 이 양쪽을 다 이룬 원인 없는 결과 속에서 누리는 겁니다
유대인만 표적을 구할까요 나도 기적 구하잖아요 로또 당첨 원한다 말이죠
로또는 도박에 해당 되고 주식은 투자에 해당 된다 라고
이제는 부동산 보다 주식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 라고 새로운 공부 항목에 생겨버린 거죠
초등학생 때부터 금융 에 대한 교과서가 생긴다 라고 하던데 말이죠
아니 이방인만 지혜를 찾나요 우리들 또한 지혜가 없으면 미련하다 어리석다 라고 속일려고 사기칠려고 달려든다 말이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려며는 세상 지혜도 공부해야 한다 말이죠
그카이 유대인의 세계 그리고 헬라인의 세계 우리가 다 격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지를 알아야 하고요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자는 왜 이러석고 미련한 이 거리끼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지를 그 이유를 알아야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껏 다녀본 교회 치고 이것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알려주는 교회를 본적이 없어요
그저 섞여있는 짬뽕 혼합물로 뒤죽 박죽 되어있지
아무도 몰라요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고 있으니까
몸이 곧 의복이요 의복이 곧 몸이요
목숨이 곧 음식이요 음식이 곧 목숨이요
소유의 넉넉함이 곧 생명이요 생명이 곧 소유의 넉넉함이니
아예 몸으로 실천해서 모범으로 보여줄려고 하지
그것을 자랑하고 있지
아무도 왜 의복이 몸 보다 더 중요치 않다고 하는 자들을 본 적이 없어요
말만 우연히 하는 자 가끔 있어도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 반대입니다
본인들도 이 말씀을 몰라요
실천할 수 조차도 없거든요
오로지 부르심을 입은 자 만이 실천할 수 있다가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자 조차도 못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칙으로 그랬다 라고 취급만 받을 뿐이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이것이 모묙적인 구원인 7에 70번 용서 받음이지
다들 멋들어진 구원 남 7번 용서하자 그것만 가르치는 자들에게서는
성경 단 한 구절도 맞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기가막히게도 다들 모르면서 아는 척 다 알아들은 척 심지어 실천까지 다 해 버리는데
다행히 그림자가 아닌 실살인 신약에서는 단 한 개도 없어요
그것을 말해주는 자가 단 한 놈도 없더라 말이죠
이 단절성을 무슨 수로 넘어서겠습니까
이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실족케 함을 다시 툴툴 일어서는 오뚜기가 되는
이 부르심을 입음을 무슨 수로 사람의 입으로 가르치고 사람의 머리로 배울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세상의 그 어떤 노래도 아무리 어려워도 가르치는 자가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배우는 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물론 탈락하는 자도 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데
그런 원인이 없이 어떻게 결과적으로 새노래를 부르는 자가 생기느냐 말이죠
바로 이것이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바로 생명책에 깅록된 자입니다
행함 책에 기록된 자는 지옥가고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주의 이름의 공로로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말이죠
너가 태어나가도 전에 말이죠
내 존재 나 있다 보다 먼저 있었던 이 생명주 되신 주 때문에 말이죠
이것이 미리 아신 자 미리 사랑한자
창세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 받기로 작정된 자 이다는 겁니다
미리 아신자 사랑한 자를 작정하시고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개역)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핮력하여 선을 이룬다 으싸 으싸 힘 합치자가 아니라
창세전에 으싸 으싸 힘을 모아서 합심하기도 전에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심 자체가 주님 쪽에서 선을 이루시고자 했던 한 몸 됨이다는 겁니다
그 카이 넉넉히 죽이시느라 하시는 거죠
그 일에 이 십자가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합심이지
으리 살고자 함이 아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이미 다 이룬 넉넉히 이긴 사랑이다는 겁니다
이상하지요 왜 십자가의 죽음을
그 하나님의 저주를
다들 씁쓸하게 여기는데 왜
다 이루었다 라고 반대로 보죠
반대로 보는 것을 일부러 연기 할려고
종교꾼들은 막 금식했다고 또 갑자기 부활절에 갑자기 막 기뻐했다고
감정의 기폭을 벌려서 의도적인 종교행사로 만들어서
억지로 다 이루엇다를 외치지만
정작 행사가 다 끝나면 또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지
누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려고 하겠느냐 말이죠
제가 고3때 주님을 만나는 바람에 딱 한 번만 교회 수련회 캠파이어를 처음으로 경험해 봤습니다
종교성이 강한 그 학생들에게 미리 감정을 미리 서서히 가열해 놓고서
줄타고 내려오는 불로 점화식 해서 장작불 태우는 하이라이크에 가면
거기에 또 최면 거는 노래를 섞어버리면
안 우는 애들이 없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 와서 회개의 눈물과 서로를 위한 마음을 가지자 라고 애들을 적당히 다루면 마음이 시원해지지요 눈물 한바가지 흘렸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해 본들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세뇌 꺼리가 하도 많다 보니
애들에게 전혀 먹혀 들지가 않는 겁니다
오히려 그때의 추억으로 오히려 아직도 어른이 된 장년들에게 아직도 캠파이어와 같은
그런 감정을 추억소환해서 조금이라도 순수했던 때를 기억할려고 하지
그것도 어디 한 두 번이어야지 이제는 안 먹혀 드는 겁니다
그렇게 알아서 다 떨어져 나가는 것에 감사하면 될 것을
돈이 이제 안 들어오게 되니까 교회 운영이 위태 위태 하다 말이죠
그것 조차도 말씀을 위한 것이니 왜 못 넘어서느냐 말이죠
망해도 주를 위해 망하면 되는데 말이죠
세례요한의 제자가 예수님이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니까 손님들 다 빼앗기게 되었다고 하잖아요
세례요한은 그래 그는 흥하고 나는 패 하기로 되어 있으니 더 잘되었다 라는 식으로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잖아요
왜 망하는 것도 주님의 뜻으로 망하는 것을 왜 못 믿을까요
워낙 우리는 그 반대에 길들여 져 있고
그 반대의 말을 심지어 교회에서마저도 가스라이팅 되어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이 오히려 영광인 거지요
왜 강도의 소굴에 왜 계속 못 다니게 하십니까
내 열심히 특심인데 라고 해 본들
땅끜에서 부르심바 되지 않으면
사랑을 모르지
사랑 빼 놓고 다 알아본들 아무것도 아니다는 겁니다
사랑만 삐고 다 가르쳐요 글쎄
한국에서 제일 성화되었다고 그것도 수준 높은 성화가 되었다 라고
저런 수준 낮은 박영선의 성화론이 아닌
수준 높은 성화 가르친다 라고 goe
사랑만 빼고 십자가의 도만 빼고
요나의 표적만 빼고
미련한 복음만 빼도 다 가르치고 있으니
땅 끝에서 나온 자들이 아니였다 말이죠
멸망하기도 되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사랑을 십자가의 도를 빼 버리더라 말이죠
지들도 인정 해도 너무 어렵다 라고
너우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불가능 합니다
그카이 가능한 것만으로 그 동안 교인들을 사기 친 겁니다
행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남들의 비판과 지적질 등등을 미리 카바 할려고 할 줄 아는 것들을 가득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그래서 남을 7번 용서 할려고 몰래 사다리를 걷어찼던 것을 모래에 감춘 것 아니냐 말이죠
마침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정죄할 때 예수님도 때 마침 지나가니까
자기가 남 7번 용서하듯이 율법 지킨 것 이때다 싶어서 자랑해야 하고
동시에 까불지 못하도록 공격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모든 인간의 행동들은 의미를 둔 이상 정치적입니다
우연히 소 뒷걸음질 하나다 한 행동들은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꺼리가 못 되는 겁니다
다들 아니까
그러나 정치적인 행동이 된다 라는 것은 곧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육의 자랑을 위해서 동원해야 하는 겁니다
현잔에서 간음 한 여자를 정죄할 줄 알고
예수 저 이단도 너끈히 이길수 있는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에 열심히였는데
어라 하나님의 공의를 오히려 더 많이 나타내시니까
바로 도망치는 겁니다
땅에 쓱쓱 간밤에 어떤 여자랑 놀아났데요 라고
아니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남정네는 잡을 생각 없어요
잡았다가는 자신들의 의를 자랑할 수가 없어요
확실하게 사다리를 제거 당한 이 여자만이
예수님을 꺽어서 이길수 있는 것이다 말이죠
이게 모든 인간의 믿음이요 종교성이요 행함이요 실천력입니다
복수심이요 살인의지입니다
똑같이 강도 만난 자 의 이야기에서 정작 강도는 출연하지 않습니다
출연자 명단에 없어요
자 이렇게 보이지 않는 마귀가 했다는 의미에서 모두다 선과 악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볼때에
사람들은 사람들을 눈치를 보면서 선과 악으로 나누는 정치짓만 하고 끝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선과 악을 뒤짚어서
자기 의를 쌓는 선함에 반대되는 바로 그런 자들에게 악 취급 받는 자들에게
생명의 밪줄이요 하나님의 능력인 사다리 세워주기요
물에 빠진 자를 건져주는
여인아 나도 너를 정죄치 않는다 라는 하나님의 공의에 복종하심을 보여줄때에
인간들은 마치 원수 같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모습으로 일관하더라 말이죠
본인들이 원수에 목전에서 상을 베푸심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 놀고서는 원수가 되어서
도리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인의지를 펼치더라 말이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정죄치 않고 용서해 주심 앞에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탕자를 용서하는 맏아들처럼 말이죠
그 카이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겁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이 사랑을 받은 자 곧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자리에서 이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모조리 다 말아먹은 탕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말도 안되는 그 사랑에
반발하는 행함을 쫓는 멸망하기로 되어 있는 자 였지
부르심을 입은 자가 아니였다 라는 겁니다
그 카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받기로 작정 된 자와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이 토기장이 되심에 반발하는 겁니다
유대인 그래서 기적을 바라고 탐심의 우상숭배인 구원 그것도 모욕적인 바짝 엎드린 땅끝 죽음에서 나온 구원이 아닌 포로 속에서가 아닌 심판이 아닌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것으로 인해
탁 걸려 넘어진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느냐 라고
사랑에 탁 걸려 넘어지는 행함의 자기 의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인해 넘어지는 겁니다
십자가라는 처음자리 새창조는 인간이 개입할 수가 없는
그저 남겨둔 한 씩 이러다 다 죽어 라는 그 심판 속에서
그 용광로 속에서 주님의 부르짖음 덕분에
구하고 찾고 두드린 덕분에 우리는 구할수도 없고 벙어리 되어서
소리가 안 나오게 되는 심판의 불 속
찾을 수도 없는 더듬 더듬 손으로 찾아내야 하는데 불에 다 타버린 손이요 팔이요 이제는 눈으로도 볼수 없는 그 앉은뱅이 자리에
찾지도 않은 자리에서 찾으신 바 되는
그 지옥 불 속에 뛰어드셔서 대신 매 맞으심 덕분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부르심을 입은 덕분에
아 참 이 부르심 이라는 단어가 구약에는 검색이 안되더라구요
그 카이 이 실상이
그림자 구약에서 검색 안되더라 말이죠
불렀다 말고 부르심을 입었다 라는 의미로 말이죠
아 다시 검색해 보니 다른 번역에서 7개가 나오는데 소제목이 4개 이고
나머지 3개는 부르심을 입었다는 의미가 아닌 그냥 평상시 부르신다 라는 그런 의미로 말이죠
신약은 270게 다른 번역 포함해서 말이죠
다른 번역 설정을 다 한게 아니라
개역한글 기본이고
새번역
쉬운
한글킹 제임스 흠정역
그냥 킹 제임스 흠정역
그리고 현대인 번역과 현대어 번역 나머지 카톨릭 번역 이렇게 설정을 했는데
거의 구약에는 없다싶이 검색되더라 말이죠
(참고로 킹 제임스 1세 라는 영국 왕이 직접 성경을 번역본 만들라 해서 만들어진 번역본입니다 성공회 측에서 말이죠
그 킹제임스 성경만이 진짜 성경이다 라고 말씀보존학회에 빠진 전도사 놈이 장로회 합동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하도 주장하더니 그 놈이 마귀는 아이큐 2000 넘는다 라고 나를 막 공격하길레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라구요 문제는 이런 놈에게 청년들 다 넘어가더라 말이죠
그때 청년 회장으로서 이 놈을 얼마나 경계를 했는지 학생회 맡았으면 학생회만 다루지 하여튼 웃끼는 놈인데 이단이나 마찬가지 인데 찬양으로 부흥을 노리는 목사놈이 그냥 내버려 두더라 말이죠 오히려 복음을 증거할려는 또 다른 전도사는 내 보는 앞에서 얼굴에 서류 문서를 집어던지로 말이죠 억수로 순해 보였던 목사놈이 얼마나 사기꾼이였는데 목사인 자기 말 안 듣고 대시기말을 듣는 자를 전도사로 볼수 없으니 서류 뭉치 얼굴에다 막 집어던지로 말이죠
결국 정치꾼이 되어서 이단대책 회장 ??지 해 놓고서는 신천지가 닭그네에게 돈 바치는 그 정치술 보다 더 해야 하는데 하지를 못하니까 바로 인터넷 기사들을 모로지 다 지워버렸더군요
복음 자체가 관심이 없는 놈들입니다)
그 만큼 구약에서 선택 선민으로 충분하지
부르심을 입었다 라는 따로 꼬불쳐 놓은 새로운 의미를 왜 알아야 하겠느냐 말이죠
아니 누가 자신을 미움 받기로 작정되고자 태어나기도 전에 그랬다를 받아들일려고 하겠습니까
오로지 사랑 받기로 작정된 것만 챙기면 그만이지
왜 미움받기로 태어나야하지를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없다 말이죠
그런데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고 십자가를 보고
장대 높아 달린 인자
구리 놋뱀을 보고
그냥 인자가 아니지요 싫어버린 바 된 다들 고개를 돌린
모든 이스라엘이 모든 이방인들이 미워한 그 인자를 보고
내가 미움 받아 마땅한 자 였구나 라고
49일 째가 되어도 단 하나도 마음 아픈 적 없는데
예수님이 약속한 성령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무시해 버렸는데
그 성령을 받아 버리니까
부르심을 입게 되니까
졸지에 그 미련한 복음을 본인이 믿고서
어찌할꼬 어찌할꼬 내가 하나님을 죽였구나 라고 비로소 우는 겁니다
남음자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자기 죄로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33, 개역)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 2:36, 개역)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9, 개역)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개역)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41, 개역)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멋들어진 구원을 바라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회개 눈물 금식 기도가 아닌
그런 의문의 반복이 아닌 기초만 짖고 46년 동안 지어도 완공함이 없는 미완료가 아닌
모욕적인 구원인 다윗언약인 새언약으로써 성령으로 인해서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 라는 그 완료로 인해
부르심을 입은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인해
비로소 자신의 속임수 꾀를 넘어서서
십자가의 또렷한 밝히 보이심 앞에서
그딴 되도 않는 죽음들이
가짜 들이
경건의 모양 껍데기만 갖추었던 것들이
죽음 보다 강한 시기와 질투의 사랑으로 인해
다 이미 다 이루었기에 더 이상 부족함이 없기에
결핍을 채울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런 그림자를 다시 쫓을 필요가 없습니다
완료 앞에서 밭갈이 당할게 있으면 그림자 쫓다가 징계의 매를 거두지 않으심 덕분에
또 그 완료 그 부족함이 없음을 다 이루었다는 또 누리게 하심이니까
뭘 해도 주께만 범죄한 자로 만드심 앞에서 그 창조 그 사랑
창조주가 누구신가를 또 알려주심 입니다
넉넉하게 주님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내가 산다고 사는게 아니라 내가 죽는다고 죽는게 아닌
사나 죽으나 주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지 않고서는 못배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낙심 따위는 없습니다
걱정 마시고 넉넉히 사랑의 매를 맞으시면 됩니다
그 땅 끝에서 나온 자가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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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4 남겨둔 7000명;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롬 11, 1- 5)
2025. 9. 28. ( 9월 11일, 녹음 )
땅 끝에서만 벌어지는 상황 (롬 10,19-21)
로마서 2022 2025. 9. 6. 21:22
22-063 땅 끝에서만 벌어지는 상황 (종말의 현상) (롬 10,19-21)
〈로마서 11, 1- 5, 개역한글, 신약성경 254쪽, 찬송가 185장 새 311 내 너를 위하여, 찬송가 262장 새 523 어둔 죄악 길에서〉
〈찬송가 185장 내 너를 위하여, 새찬송가 311장〉
(롬 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롬 11:2, 개역)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롬 11:3, 개역)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롬 11:4, 개역)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롬 11:5, 개역)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1,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롬 11: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를 두고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합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롬 11:3, 새번역) ㉠"주님, 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나 혼자밖에 없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찾고 있습니다." / ㉠왕상 19:10; 14
(롬 11:4, 새번역)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하셨습니다. / ㉡왕상 19:18
(롬 11:5, 새번역) 이와 같이, 지금 이 시기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왕상 19:18, 개역)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9, 개역)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10,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 19:11,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왕상 19:12, 개역)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 19:13, 개역)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14, 개역)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왕상 19:15, 개역)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왕상 19:16, 개역)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왕상 19:17, 개역)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왕상 19:18, 개역)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9, 개역)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왕상 19:20, 개역)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왕상 19:21, 개역)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롬 11:1, 새번역)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사도바울이 지난 번에 땅끝에서 벌어지는 상황인 정답을 말해 놓고서
바울 본인이 도로 질문을 합니다 마치 이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오늘날 우리도 해당되겠지요) 이런 의문의 들어서 질문할 꺼 뻔할 것이다 라고 예상하고 그 질문을 바울이 답을 이야기 해 놓고서 다시 그 답에 대한 의문을 바울이 그 답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방인을 구원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우리 이스라엘은 그럼 버린 것이 아닙니까 라는 의문인 겁니다
그 질문을 바울이 대신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바울이 또 답하고 있습니다 우문선답이라는 말이 있지만 반대로 합니다
선답선문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은 착하다가 아니라 옳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옳은 답변에 맞는 죄인으로써의 질문은 (의인이 아닌 건강한자가 아닌)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버린 겁니까?
아닙니다 그리고선 답하는 내용이 바로
은혜라는 의미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자로써 7천명이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럼 왜 은혜냐? 그리고 왜 수 많은 수 중에서 하필이면 왜 7천 이냐 라는 겁니다
즉 여기서 은혜와 칠천은 먼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의미를 먼저 전제로 해야 합니다
결국은 인간이 습득한 은혜와 칠천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소위 남은 자 운동과 은혜를 외치는 자들 특히 신흥 이단들이나
물론 당연히 정통이라고 우기는 자들 거 보세요 다 버렸느냐 라고 말한다는 자체가
정통 이스라엘을 우기잖아요
북이스라엘처럼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고 우겼잖아요
여기에 엘리야 조차도 해당되고 있습니다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질문하고 있다 말이죠
여기에 주님의 답변은 너 엘리야 너는 너가 먼저 있엇다고 우기지만
너 엘리야 보다 더 먼저 있었다 라는 것이 뭔고 하니 바로
칠천명의 남은자 라는 겁니다
이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택하심을 입은자
지난주 고린도전서 표현대로 하면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말합니다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17, 개역)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얼마전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라는 댓글을 달아서 올려봤구요
또 부르심을 따라 구절을 올려보면
(롬 1:1, 개역)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6, 개역)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롬 1:7, 개역)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1, 개역)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전 1:2, 개역)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7:18, 개역)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전 7:20, 개역)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 7:21, 개역)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고전 7:22, 개역)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 7:24, 개역)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갈 5:13, 개역)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엡 4:1, 개역)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4, 개역)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골 3:15, 개역)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딤전 6:12, 개역)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히 3:1, 개역)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5:4, 개역)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히 9:15, 개역)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8, 개역)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벧전 2:21, 개역)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3:9, 개역)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유 1:1, 개역)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계 17:14, 개역)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놀랍게도 이 부르심 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즉 새로운 의미이다는 겁니다
구약은 선택받았다 로 족하고 그 선택을 율법 받은 것으로 이해하니까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행함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자 이렇게 되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은혜로 말미암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없게 되는 겁니다
행함과 은혜의 대립이 되는 거죠
자 그래서 신약에만 있는 부르심은
인간 쪽에서의 부르심이 단절이 된 겁니다
그래서 구하기 않던 곳에서 구하고 라는 의미는 유대인에게 해당 되는 겁니다
유대인은 구하는 자들로써의 달인들입니다 구하는데 대가입니다
그런데 그 구함을 거부하셨다 라는 거죠
그러니 당연히 나오는 질문이 그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은 버린 겁니까 라는 질문인 거죠
여기 바울의 청중을 대신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은
남은 자 라는 겁니다 이 남은 자는 땅 끝에서 나온 자 이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남겨둔 자
즉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는 예수님의 온유에 그들은 복종치 않았다 그러니 남겨둔 자에 해당 되지 않는다
이 단절을 거쳐서 그래서 모조리 다 포로 되게 하고 모조리 다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불순물 혼합물 오예물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그 용광로라는 공의 하나님의 심판의 불 곧 십자가 라는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나온
남겨둔 자가 바로 칠천명이고 그 칠천명은 절대저주인 일곱을 거쳐서 나오는 겁니다
그 일곱도 세 번 씩이나 한 때 두때 반때 일곱 나팔 일곱 인 일곱 대접
이 절대심판 절대저주 절대죽음을 거쳐서 나온 심판 속에서의 구원이다는 겁니다
세 번 씩이다 절대단절이다는 거죠
그 지옥의 세 구덩이를 거쳐서 나온 것이 남은자 이다는 겁니다
일곱은 행운의 수가 아닙니다 미국 청교도에서 더 확장이 된 것 같은데
그 출처를 AI 에게 물어보니 거의 다 종교에서 나왔고 특히 공통되게 메소포타미아에서 신과 연관 된 의미에서 강조되었다 라고 검색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신의 숫자이다는 거죠 절대 수 3과 창조자의 수 7 말이죠
연금술에서 출발한 과학과 또 땅 재산 분배에서 활성화된 수학에서
이 일곱은 마법의 수 라고 보고 있다 말이죠
자연의 신비를 가지고 있어서 무지개 일곱색깔처럼 말이죠
그 비밀을 풀려고 달려들고 있는 겁니다
3도 마찬가지 오죽하면 헤겔은 정반합을 주장하다 보니
오로지 4분의 3박자 노래를 좋아한다 라고 꿍짝짝 꿍짝짝 우영우가 생각나네 ㅋㅋㅋ
헤겔이 왈츠를 좋아라 했다 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이렇게 과학자 수학자 종교계까지 이 절대 수 3과 7을 좋아라 하다 보니
인간 쪽으로 어떻게든 끌어당길려고 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녹슨 가마솥의 기능을 하는 겁니다
오호 잘 되었구나 매를 너희들이 버는 구나 일일이 찾아가 죽일 필요 없이
알아서 다들 가마솥으로 들어오는 구나
지 꾀에 지가 넘어지고 지 눈을 지가 찌르는 구나
다들 3과 7을 점쟁이 찾듯이 신의 수를 소유할려고 하는 겁니다
교만한 바벨론 왕이 그래서 하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겠다 라고 한 것처럼 말이죠
(사 14:12, 개역)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 14:13, 개역)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사 14:14, 개역)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 14:15, 개역)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루시퍼랑 아무런 상관 럾구요 교만한 바벨론 왕을 말합니다
오늘날 호모 데우스 라고 주장하는 모든 인간이 다 해당 됩니다
사망의 몸이다는 증거이지요
자 이런 교만한 자
하나님의 맣씀에 순종치 않는
자기가 먼저 있었기에 3이든 7이든 자기 소유로 삼을 려고
왜? 행운의 수 7 절대 수 3 이런 신비의 수가
자기의 가치를 높여주니까
유대인들은 성화론으로 누가 크냐 라는 그 의문에 갇혀 버렸습니다
이미 버리움 받는 자리에 놓여져 놓고서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십니까 라고 나오는 겁니다
아니 자기 가치를 높이고자 누가 크냐 라는 싸움만 하는 순종치 않는 자들이
도리어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찾는 그래서 예수님까지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삼고자 하는 그런 화평의 언약을 새언약을 새마음 새영 성령을 버려 놓고서
하나님을 버린 놈이 누구인데 여호와 이름을 더렵혀 놓은게 누군데
자기를 왜 버리냐 라고 징징징 우는 겁니다
울어서 망한 곳 보김처럼 말이죠
자기들은 은혜를 무시해놓고서 왜 버리느냐 라고 모순된 모습을 빡빡 우기는 겁니다
그만큼 모르는 겁니다 알아도 모른척 하는 겁니다
듣고도 보고도 알지 못하는 겁니다
안들은 척 하는 겁니다
은혜도 자기에게 유익이 될 때만 은혜로 여기지
그 정도로 지옥의 몸인 것을 팍팍 티내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한꺼번에 용광로 속에 집어넣습니다
땅 끝이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으면 불순물이 쫘악 빠지겠끔 되어 있습니다
선해진다? 착해진다? 그런거 아닙니다
도리어 지옥의 몸임을 자기 입으로 고백할 수 밖에 없도록 우는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울어서 망한 보김의 그런 우는게 아닙니다
그런 자살은 자기 고집을 끝까지 부리겠다 라는
눈물을 무기로 삼는 것입니다
'보김(????????)'은 히브리어로 '우는 자들'이라는 뜻
(삿 2:5, 개역)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삿 2:1, 개역)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삿 2:2, 개역)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삿 2:3, 개역)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삿 2:4, 개역)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삿 2:5, 개역)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쳇GPT와 제미나이 둘 다 회개는 했지만 실천을 안 해서 망했다 라고 하던데
우는 것을 무조건 회개로 해석하다 보니 그런 엉터리 답변을 하더라 말이죠
오히려 우는 것이 회개를 안하겠다 라는 완악한 마음이였습니다
주님의 약속 보다 자기 안위를 더 구하다 보니 가나안 족속을 안 쫓아낸 것이
도리어 자기 꾀에 자기가 올무에 걸려 넘어지는 식이 된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울왕과 이스라엘 전체로 퍼지게 됩니다
자 여기서 구한다 부르짖는다 라는 회개의 의미는
바로 이스라엘의 처음자리 없는데서 있게 하심인 처음자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곧 은혜가 먼저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존재를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
약속 보다 자기 존재를 우선시하고 가치 있게 하려는
누가 크냐 라는 그런 의식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온순한 어미도 배고픔 앞에서 자식 잡아먹는 이유는
그런 죄악 보다 하루 아침에 의인이 범죄케 만드심처럼
그 범죄 일 지라도
인간은 자기가 먼저다 자기가 있다를 주장함에 있어서
그거 무너뜨릴려고 범죄가 니 존재 보다 먼저 있었다
회개 눈물 금식 기도 백날 해도 소용 없는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가 너 다윗 보다 먼저 있었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죄 보다 또 먼저 있었던 역전 반전이 바로
사망의 왕 노릇 보다 은혜의 왕 노릇이 먼저 있었다 라는 거죠
그러니 구한다와 부르짖음이라는 부르심을 입은 자는
이 처음자리가 먼저 있었다 라는 겁니다 곧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구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눈물흘리고 금식하고 부르짖는데 달인인
이 유대인 곧 이스라엘이라는 달인들 고수들에게
처음자리인 부를수 없는 구할수 없는 곳에서 부르신바 되는
그 처음자리 첫사랑의 자리에로 되돌려 놓을려며는
바로 그런 엉터리인 혼합물을 걸러내는 땅 끝이라는 용광로인 하나님의 절대 심판이 필요한 겁니다
이거 인간이 회개 한다고 스스로 그 심판의 자리에 들어갈수 있을까요?
그런다고 심판이 되고 하나님의 절대저주가 될까요
아니니까
주님이 손 수 직접 마련하셔야 하는 겁니다 그 심판의 자리인 절대죽음을 말이죠
까짓꺼 혀 깨물고 팍 죽으면 되는거 아닙니까
바로 그칸 놈이 엘리야입니다
아직도 자기 죽음으로 마무리 지을려는 자체가
자기가 먼저 있엇다 이런 이세벨의 죄 이스라엘의 범죄 보다 자기 존재가 먼저 있었다
이런 꼴 안 볼려면 내가 자살하면 될 거 아니냐 라는
오히려 눈물로 무기를 삼는 그 보김의 버릇이 나오는 겁니다
안 나올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들로만 일을 하시니까
이 일에 보탬이 된 줄 알았는데 보탬이 안 되었다고 하니
나 그냥 팍 자살할래 라는 완악함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바로 그 따위 사고방식인 오예물 혼합물 제거 전담반 용광로 녹슨 가마솥 특공부태가 준비 되어있었던 겁니다
엘리야 보다 이스라엘의 범죄 보다 먼저 있었던 십자가의 절대저주라는 하나님의 은혜인
징계의 매가 먼저 있었다 말이죠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 아느냐 검을 주로 왔다
은혜를 주러 왔다 몽둥이를 주러 왔다입니다
그 몽둥이 앞에서 배후 세력이 다 드러나는 겁니다
아니 가족이라는 한 마음인 그 공동체가 마귀자식이 썩여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마귀 자식이 알곡 노릇하고 있고
주님의 자녀는 심판 속에서 새로 나오게 되는 이 가라지 취급을
땅 끝이라는 죽음 속에서 용광로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벌어지더라 말이죠
이것이 바로 솔로몬 재판인 하나님의 지혜 아닙니까
반드시 반전 역전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 사건에 이 팔을 어긋맞게 하심에 인간의 총명 지혜를 도리어 무너지는 판국에 놓여진 겁니다
본인 당사자가 막상 직접 격게 되면
아무리 3자 입장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옳았다 라고 외쳐도
정작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서는 우리는 그 가짜 엄마로 들통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도 들통나고 다윗도 들통 나고 그 놈이 니다 이 놈 다윗아
그리고 요나 이 놈도 들통나는 겁니다
제가 욕으로 놈 놈 놈 하니까 얼굴이 불그락 발그락 거리는 자들이 억수로 많을 겁니다
그 정도로 성화론에 물들여진 오예물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안 그러는 놈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바울도 마찬가지 였었다 말이죠
그래서 오로지 이 몽둥이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 하루 도 못 지내는
하루만에 의인이 범죄케 되고 바로 이게 범죄이지 회개 잘하는 것이 범죄이지 딴게 범죄 아닙니다
또 하루 만에 탕자 그 미워 죽는 탕자를 하루 만에 돌이키심 앞에서 우리는 거세게 반말하면서
세상이 격동하고 격분하듯이 안돼 라고 이빨을 깨물면서 반발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격동 그런 견디지 못하는 것 1초 만에 잠잠케 하는 것이 바로
몽둥이입니다
이빨을 드러내면서 짖어대는 그런 개 그런 짐승 앞에
몽둥이 드는 시늉만 해도 바로 꼬리 내리고 뒤 돌아서서 근심하고 눈치 보면서 낑낑 거리더라 말이죠
바로 부자 청년 아무리 크고 높다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놈의 배후세력이 드러나는 겁니다
뒤돌아 서는 거죠 그렇게 앞으로 당당하게 나서던 자가 말이죠
그렇게 앞에서 당당하게 나오는게 아니라
도리어 땅 끝에서 나오는 겁니다 뒤에서 여자가 남자를 껴 안는 겁니다
왜 뒤냐?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왔거든요
계시록의 성전측량 거룩측량에서 제일 끝에서 거룩을 측정하시는 겁니다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기에 말이죠
남은자 곧 남겨둔 한 씨의 부르짖음 이러다 다 죽어 라는 외치는 그 한 선지자 덕분에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남겨둔 자로 입으신바 되었거든요
아무리 베드로가 수제자로써 날고 기고 해도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부르짖는 예수님의 기도 덕분이 아니였다면
베드로는 소돔이요 고모라입니다
그 부르짖음이라는 은혜가 먼저 있었다 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자
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알게 하시고자
베드로의 혼합물 탈탈 털어서 빈손이 되겠끔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시는 겁니다
절대로 마귀 보다 앞서지 못하도록
마귀가 죄가 먼저 있었기에 말이죠
그래놓고 거룩측량을 반대로 하니
마귀가 미치고 뛰고 발작을 하면서 견디지 못해 격동케 되니까 말이죠
그렇게 베드로는 마귀에게 포로 잡히는 미끼가 되어야
그 미끼라는 땅끝 그 심판 속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의사의 기능이 바로 화목제물과 딱 맞지
이것이 새언약이지
그렇기에 사건 창조란 구원이란 사건인데 성령사건인데
인간들이 성화론처럼 바리새인처럼 훈련이라는 둥 행함이라는 둥 자기가 실천해 버리면
이것은 사건이 아닌 육의 자랑인 울리는 꽹과리가 되니까
사랑이라는 사건 속으로 들어올수가 없는 겁니다
선물이 아닌 자기가 자기에게 선물 주면 그건 선물이 아니지요
그렇게 되면 많이 탕감받은 자이기에 감격의 기쁨이 넘치는 그게 사건이지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주님의 창조주의 기쁨을 알지
자기가 선물해 주면 기쁨도 사랑도 사건이 아닌
연기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연기 경건의 모양 껍데기만 대따 갖추어서
나중에 그것이 올무 자기 눈에 누워서 침뱉는 트럼프처럼 쫓아낼때는 언제고 다시 들어오라고 하는 지 눈 지가 찌르는 식입니다 날 강도가 따로 없고 나치 히틀러가 따로 없지요
총에서 살아났으니 이제 비이는 것 없지요
자기가 곧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그 놈이 세상의 권세를 다 쥐어야
그 차이로써 주님이 마귀를 거쳐서 나오듯이
극우놈들이 괜히 미국복음주의와 극우와 혼합되는게 아닌거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빨리 주님 오실 것 아닙니까
한국 기독교 무당들이니까 딱 맞죠 통일교가 괜히 독생자가 되는게 아닙니다
그들의 돈이나 정통 정통 우려먹는 장로회 고신측 다 돈에 미친자들입니다
세이브 코리아 왜 국가라는 짐승을 구원시킬려고 할까요
멍청이 이스라엘도 국가 해체 시키는 판국에
주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았다 라고 빌라도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놈의 기독교 국가가 왜 될려고 할까요
네 맞습니다 미국 그거 기독교 국가 아닙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선민 아닙니다 오히려 계시록에 의하면 사탄의 회 요 강도의 소굴입니다
세이브 코리아 등등이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네 맞아요 괜히 행함이 나오는게 아닙니다
다 복수심이니까 결국 돈이 목적입니다
다 같이 잘 살자? 아니지요 자기들이 했던 짓 네 맞아요 사다리 걷어찼던
그 유대교 그 장로의 유전을 쫓아 사다리 한번 시원하게 차고 싶은 겁니다
그렇죠 결국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누가 크냐 라는 싸움인 거죠
인정 욕구 새벽별 계명성 바벨론 교만한 왕의 그 교만을 나도 함 해보고 싶으니
사다리 걷어차는 그 위치에 그 모세의 자리에 앉고픈 겁니다
그렇게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바리새인을 주님은 대놓고 독사의 자식
뱀의 자식
대 놓고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다 라고 마귀자식 마귀새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즉 이 말은 항상 상대적인 대조를 이루는 자를 주님이 뒤로 몰래 꼬불쳐 놓았다는 증거죠
그들이 바로 땅끝에서 나온 남은자들이요
그러니 이 남은자를 등장 시키지 않으셨다면
저들의 선민사상 구원의 탐심
선택된 민족 개념이 깨어질 턱이 있겠습니까?
그카이 다들 썩은 동앗줄 곧 그림자만 쫓았고
그림자를 쫓았기 때문에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겁니다
실상을 쫓았다면 도리어 미끼가 될 것인데
반대로 미끼를 물어버리는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이 십자가에서 태어난 남은자에게 그 속심수들이 들통나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고 말이죠
그 속임수가 말이죠
자 이렇게 말하니까 그럼 십자가가 마치 윤리 도덕인줄 안다니깐요
거룩이라고 하니까 남 7번 용서인줄 알아요
남 7번 용서를 한 자는 절대로 이 거룩 정반대의 거룩인 7에 70번의 용서를 절대로 용서 안 받을려고 합니다 절대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지 않을려고 해요
그게 탕자의 형 맏아들이다는 거죠
그런데 둘째는 뉘우쳐 돌아온다 라고
이 잃어버림을 거쳐서 되돌아 오는
땅끝이라는 심판 속 용광로 속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 라는
죄인이라는 처음자리
주께만 범죄한 그 자리에서 나오는데
남 7번 용서한 그 교만한 목이
과연 똥물 7번 씻어서 나오는 그 용광로 그 모욕 그 심판 그 저주 속이라는
십자가의 저주 곧 하나님의 저주 속에서 과연 나올수 있겠냐 말이죠
마귀가 저주라는 것은 저주 축에도 못 드는 것임을
십자가의 밝히 보여주심 앞에서
그들의 저주 그들의 심판 그 따위 사망권세가
누구를 쏘느냐 라고 할 정도로 가소로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들은 기쩟 하나님의 절대 저주인 이 십자가 앞에서
뒷 북 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갸우 흉내내는 것 밖에 안 되는 겁니자
진짜 저주인 절대저주라는 십자가 앞에서
어딜 그 따위 속임수 꾀 사기가 어딜 밝히 보이는 심판 앞에서
따로 심판을 흉내낸다고 해서
그게 심판 할 꺼리가 되느냐 말이죠
그래서 마귀가 그렇게 뒷북 치는 반면에 있어서
그 사망권세 보다 먼저 있었던 은혜의 왕 노릇 때문에
우리는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제대로 된 빵구멍 뻥 뚫힘을 당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에스겔 아닙니까
이 에스겔을 통해서 신약으로 치면 계시록이지요 그 계시록이라는 절대심판 속에서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천한 게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는
남은자 7천 멸이 돌아오는 겁니다
그 칠천이라는 칠 이라는 의미는 뭐 상징수라고들 하는데
그냥 절대저주 라고 보시면 됩니다
천은 역사의 세계가 아니라 묵시의 세계
천년이 하루 같다 라고 할때도 천
그리고 인간의 수명을 969살 천년을 일부러 못 채우도록 했기에
묵시와 단절이 된 존재인 죄인임을 알아라 라고 했는데
그것이 마치 장수인줄 알고 장수의 비밀을 또 캐낼려고
간따나 교인들이 그런 탐욕으로 가득한데
목사놈들이 또 그것을 부추기고 있으니 원
저주 아래 그것도 절대저주 속에 있다는 증거인데
자기 기준에서 보고 있으니
죄를 마치 다룰줄 알고
의를 마치 행할 수 있는냥 착각하더라 말이죠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것이 죄요
그 죄 보다 먼저 있었던 것이 은혜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천년 이라는 세계에 못 들어간다는 자체가
단절 되었고 저주 아래에 놓인 자이다는 것인데
장수인줄 착각하더라 말이죠 저주를 복으로 해석하니
돈을 바치니까 말이죠 봉투 봉투 열렸네 감사헌금봉투 말이죠
그래서 계시록에 유독이 칠이 많이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단절이 된
너와 나 사이
즉 아브라람과 지옥에 간 부자
즉 아브라함과 그 품에 있는 거지와
부자 사이에 지옥 큰 구덩이가 있다는 이 단절성처럼 말이지요
그러니 남은 자 칠천은 아무리 엘리야 쪽에서 행함으로 백날 해도
이 단절의 간극을 넘어설수가 없는 세계이다는 겁니다
곧 은헤의 세계이다는 거죠
남은자 칠천이 자기들 잘 나서 남은자가 된 겁니까?
아니지요 오로지 은혜로 된 자 들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그 은혜의 반대의 의미가 뭡니까
네 맞습니다 바로 행함입니다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한다 라고 했지요
그것을 그 구약의 엘리야 나만 남았다 라는 그 그림자를
오늘 로마서 실상이 제대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남을 7번 용서는 은혜를 보여주는 의미입니까 행함을 강조하는 의미 입니까?
도리어 남으로부터 7에 70번 용서받는 것은 은혜를 보여주는 의미입니까?
행함을 강조하는 의미 입니까?
행함이라면 평생을 해도 못하는 겨우 평생을 걸쳐 손가락 셀수 있을 정도인데
손가락을 초과하는 초과잉적으로 넘어서버리는 행함을 도저히 못 따라오게 도망치는 임금삼기 예수님처럼 넘어서버리니까 이것은 사랑 곧 은혜의 차원이 되기에
그 사랑에 반발하는 살인의지가 되는 겁니다
새로운 죄란 바로 이런 겁니다
사랑에 은혜에 대한 반발입니다
기존에 해 왔던 반발로써의 사마리아 구역을 삥 둘러가는 그런 더러운 자들과의 가까이 하지 않음이 아니라 말이죠
왜냐하면 사랑 자체가 매일 매일 새로운데 어제 했던 사랑으로는 오늘 새로운 죄악을 만들어낼수 없습니다 범죄도 새로 새사랑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카이 하루 만에 의인이 범죄해서 지옥가고 악인이 하루만에 돌이켜서 천국간다 라고 하시잖아요
이것은 모세언약에서는 안 풀립니다 비유입니다 행함으로는 도저히 안됩니다 안되기에 법을 지킨 자이면 일수록 반발합니다 사울왕이 그래서 율법 어겼다고 아히멜렉 제사장과 제사장 85명 그의 가족 그 마을 전체 다 죽이는 겁니다 율법 지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오는 줄 모르시죠 죄가 인간 보다 먼저 있었음을 드러내는 올무의 기능이 바로 율법입니다
모세언약이라는 올무에 다 가두기 위해서 죄 아래 두시고자 말이죠
그렇기에 긍휼 곧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외치는 것이 다윗입니다
날 때부터 다윗 자신은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가지고 태어난 자 이다 라고
언제든지 수셔대면 튀어나온다 라고 비로소 꺽으신 뼈 라는 새언약을 보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 꺽으신 뼈 이름 없는 솔로몬 동생을 보고 비로소 안 겁니다
바로 이것이 남은자 다윗입니다
이 남겨둔 한 씨 안 남겨뒀다가는 다윗이고 뭐고 이스라엘이고 뭐고 다 지옥 소돔과 고모라 벌써 되었다는 거죠
그럼 그 음부의 권세 사망의 권세 그 수치 그 심판 그 용광로라는 하나님의 절대저주 속에서
눈물의 씻겨주시고 쟂더미 수치를 가려주시는 화관을 주식고
근심을 찬송의 옷으로 압혀주시는 이 원인 없는 결과인
7에 70번이라는 불쌍히 여겨주시는 긍휼이 아니면
누가 이 다윗의 수치를 죄악을 가려주겠습니까?
율법이 가려주던가요? 율법을 행함을 요구하기에 죄 아래로 가둘 뿐이지
가려주는 기능은 없습니다 그래서 의문의 반복입니다
행하면 행할수록 탕자를 용서한 아버지를 미워하고 악하다 라고 농사꾼들이 자기들 하루치를 다 채웠다 라는 법 법 법을 외치고 있지 주인의 사랑과 용서인 은혜 곧 긍휼을 베푸심은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큰 길 곧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는 겁니다 어라 대접도 받아요 존경도 받아요
살인자들이 살인을 하면 할수록 사다리를 걷어차면 찰수록 존경을 받아요
저 더러운 인간들 바이러스를 차단시켜 주셔서 감사하다 라고
그렇게 남들로부터 인정 욕구 모든 인생의 헛됨은 인정욕수 투쟁 뿐이기에 말이죠
그렇게 인정받다 보니 예수님 제자들 하필이면 안식일 날 배고프도록 그때 만들어서
그때 마침 밀밭사이로 가다보니 그 이삭들을 먹도록 만들었다 말이죠
이것이 저들의 악마성을 들추어내는 사건이 되고
저들은 예수님 일당의 이단성을 들추어내는 공적쌓기 존경받기 바이러스 차단하는 자신들의 행적이 되는 사명이 되기에 이 둘의 충돌이 되는 겁니다
마치 창조 사건과 행함의 법과의 충돌이 되는 거죠
우리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어서 쉽게 보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저 바리새인 마귀자식처럼 법을 따질 수밖에 없다는 거을 아시고
이 창조사건을 접해 보신다면 내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우와 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난 참 짐승처럼 살았군요 라고
비로소 탕자의 마음으로 주여 불쌍히 여겨 달라고
비로소 아버지가 베푸시는 용서만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탕자에 대한 용서가 행함의 차원이였다면 맏아들이 반발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행함과 아버지의 행함이 동일시가 되니까 자신 보다 좀더 나은 것에 아마도 존경을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해함에 초과잉적인 못따라오는 것이 되면 존경이 아닌 반발심이 되는 거죠
은혜를 받는 동생 탕자의 그 많은 탕감 빚 많이 용서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나도 아버지 많이 사랑하게 해 주소서 라는 부러움 보다는
도리어 적개심으로 왜 나는 왜 안 해주냐 라고
또 은혜보다 행함을 앞장 세우는 겁니다
모세언약으로 충분한데 다윗언약은 필요 없다 라고
아버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더라 말이죠
자 이렇게 이 은혜 말만 은혜 은혜 박은혜 김은혜 이은혜 신 정 손 백날 이름에 붙여서
자식 이름에 백날 붙여도 우리는 단 한번도
은혜를 무시 안한 적이 없는
이 세상 자체가 예수님을 죽인 세상이기에
은혜를 죽이는 세상이다는 겁니다
우리 자녀들 은혜들 누가 죽이던가요? 그 이름을 붙인 자들이 죽이는 이 역설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있겠습니까?
자식이 생선 달라고 하는데 전갈 뱀 독을 주는 부모 있습니까?
있다 라는 겁니다
모든 세상 모든 부모 모든 국가 아래 심지어 율법 아래 있는 부모들도
자식에게 뱀을 주더라 말이죠
그런 세상에서 빠져 나올길이 없어서
정직한 영이 없어서
간은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간음은 결핍 채우고자 남의 아내를 빼앗듯이 물건이라는 소유개념 곧 경제입니다
살인죄는 종교라는 사랑을 연기하는 그 사고방식에서 나옵니다
남을 7번 용서하면 할수록 남을 7에 70번 살인하는 마음인 거죠
예수님을 죽인 유대교가 모든 종교의 대표성이요 그 유대인이 모든 민족의 대표성이니
아무리 히틀러처럼 유대인들 미워한다고 해서 히틀러는 수천만명 안 죽이던가요?
과연 나는 히틀러 보다 나은 자입니다 라고 나설자 있습니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느냐 바로 정치인 인구조사입니다
즉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법을 지키게 되니
어라 정치꾼이 되는 겁니다 선동가가 되는 거죠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대충 대충 고치는 겁니다
그래놓고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니
이 인정욕구 또 채울려며는 안식일 이삭 까먹는 것 그냥 넘어설수가 있을까요
율법 지키는 대표자인데 그 대표가 대표 값하기 위해서는 이 정치는 그냥 못 넘어가는 겁니다
남의 시선이 타인의 욕망이 부추기는 겁니다 저거 저거 안식일 범하는 것 어서 지적 하라고
현장에서 간음하는 것 어서 지적하라고
(마 12:1, 개역)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타인의 욕망은 어서 지적하라고 합니다
그카이 모든 인간은 마귀짓 안하고는 하루도 못 사는 겁니다
그런데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니까 말이죠
세배데의 두 아들의 어미의 잘못에 화내고 흥분하지 아니하면 그거 사회성 없는 인간입니다
왜 사회성 있어여 합니까 타인들의 욕망이니 타인들과 부딧겨 살려며는 그래야 살거든요
그거 없다면 지구를 떠나거라가 되니까요
(마 10:2, 개역)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침 어제 김땡중의 다시뵈이다 보니 박구땡 코너에서
지난주 니체의 선악의 저편 넘어서는 초월 메타의식을 아주 잘 설명하던데
그에 이어서 M 세대와 Z세대와의 차이까지 설명하면서 요즘 젊은이든 사고방식을 나열하더라 말이죠
그 만큼 위기의식 곧 단절감을 느낀거죠
실제로 미국의 젊은이들의 극우화가 전세계의 현상으로까지 나타났으니
그것과 싸우는 자들은 백날 싸워도 이제는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까지 다 물들여지고 있는데
아비가 자식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자신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이 민주주의와 정의로움이 다 사라질 것 뻔하다 싶은 그 위기감 때문에 말이죠
저 도리도리 무당과 사실을 이 놈은 그저 꼭두각시이고 그를 조종하는 거니 줄리부터 시작해서 한국기독교 통일교 신천교 이 기독교국가 만들려고 미국 극우와 복음주의와 손잡고 설치는 그 무당들 땜에 이태원 다 죽고 닭그네 세월호 다 죽는
저들이 열매 증상물로 나타난 것이 그것으로 끝나느냐
이제 젊은이들의 생각까지 다 지배해 버릴려고 하니
그것이 더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이다 말이죠
왠일로 철학자들 게을러 터진 놈들인데 이제 딱 한 놈 나타났더라 말이죠
그런데 그거 못 막습니다
마지막 때에 남은자가 땅끝에서 나오는 이상
그 상대적인 큰 성 바벨론에게 모든 권력 모든 정신 모든 자본 모든 정치술인 잉여가 모조리 다 한 군데로 모이도록 했으니까 말이죠
이미 다 이루어 졌기에 저 따위 의문의 반복은 오히려 더 부채질 하도록 되어 있으니
늘 결핍을 채울려는 마음 뿐이기에 행함을 요구하고 있지
은혜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저들이 싸우고자 하는 로마 독재랑 똑같이 은혜를 무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또 의문의 반복만 해댈 뿐입니다 인간 쪽에서는 이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습니다
남은 자 운동 백날 해도 소용없어요
도리어 저들의 손에 죽는 그 죽음 그 심판 그 용광로 속에서 나오는 자가 남은자
곧 은혜 입은 자입니다
그 은혜를 무시하니까 몽둥이로 삼은 앗수르 바벨론 메시아로 삼은 고레스 또 로마독재로부터 더더더 짖밟히더럭 수치를 모독을 당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수치 속에서 가려주심 눈물 씻겨 주심 잿더미 제거하고 화관을 씌워주심 근심 걱정 대신 희락의 기쁜소식 은혜의 해를 부어주심
이 긍휼 뿐입니다
저 따위 민주주의 운동 남은자 데모 운동 따위는
다 실패 할 수밖에 없도록 의문의 반복으로 만들었습니다
해결해도 더 한 것 또 나옵니다 소용없어요
그따위 기적 따위는 없어요
유대인들이 그래서 표적을 바라는 겁니다 오로지 구원 구원 기적이라는 구원을 바라는 겁니다
그것이 인류의 대표자 제사장 노릇이다 라고 말이죠
그러나 그들은 그 모세언약은 다윗왕 언약은 필요없다 라고 외쳤습니다
한 선지자 한 왕 한 목자 가 필요 없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저들과의 차이입니다
단번에 하루 아침에 세워지는 나라는 없다고 했습니다
공등탑으로 정성을 모아 모아서 완벽에 가까운 행함과 실천이어야 말로
나라를 온전한 나라를 건설할수 있다고 말이죠
그 따위 사고방식이 북이스라엘 아닙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사라디 겉어차야 하는 겁니다
탕자도 불의한 청지기도 사마리아인도 지금 보세요
팔레스타인 다 죽이는 겁니다 안그러면 건설 못해요
그런 악함과 다르게 행동한다굽쇼?
아닙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맹 같습니다
정직한 영이 없기는 맹 마찬가지이고요
은혜를 무시하는 행함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맹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정의를 외치고 실천하고자 함에 있어서
방해요소들은 결국을 차단하는 구별짓기로 사다리걷어차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 이니까 말이죠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이상
그 따위 속임수 누가 속겠느냐 말이죠
속은놈들끼리 모여있는 겁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 끼리만 모여있는 겁니다
이제 대화 자체가 안되는 겁니다
대화 안되는 것 자기들도 아는데 왜 자식을 낳을려고 하겠습니까?
미국처럼 이혼이 보편화 되는 그런 시대도 이제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오로지 게임이 매뉴얼이 되었기에 같은 게임 참여자로 관계를 맺고
다른 게임으로 옮겨서 다시 그 게임의 참여자로만 형성되는 겁니다
정치도 그들만의 게임이니
게임 하듯이 하는 것이지
다들 중독된 거지 도리도리만 중독일까요?
민주당 이놈들도 항상 김대중 노무현 앞장세워 유훈정치로 할 뿐이지
살아있는 생명의 밧줄 던지는게 아닙니다
밧줄 던지는 게임만 할 뿐입니다
거기에 빌런들은 악당들은 밧줄 끊는 역할로 나오니까 말이죠
모든 것들이 허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 예수를 믿어라
이미 이것도 게임이 된 가상현실이 된 메트릭스 세계가 됨 세상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기로 작정 된 자에게만 베푸시는
이 세상에서의 건져주심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구원을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데 이용할 마음 뿐이였기에
도리어 십자가는 그들에게 거리끼는 걸림돌로
모든 사탄마귀의 본부로 삼은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합니다
빤스 보세요 다 적개심입니다
개척교회목사 재벌교회 모조리 다 분노 밖에 없습니다
그 행함의 보상을 오로지 돈으로만 채울려고 할 뿐입니다
아무도 이길수 없습니다
죄가 먼저 있었기에 말이죠
그래서 은혜의 왕노릇에 다윗은 무릎 꿇었습니다
박살이 나고 밭갈이 당했습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다윗 하나 건질려고 수백명 수천명 죽었습니다
인구조사로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나요
이 과정을 남은자운동하는 놈들이나
민주주의 하는 놈들이 과연 이 은혜를 원할까요?
그 긍휼을 바란다면 도리도리보다 더 많은 이태원 수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데
과연 원할까요? 목에 탁 걸리는 거리끼는 걸림돌 가시가 되는 거죠
삼킬수도 뱉을수도 없는 가시가 중간에 낑겨버렸는데 말이지요
다윗 보세요 적군에 대한 되는 자들 몇 명 죽였나 물어보니 6만 9천 1명으로 숫자 표기된 자들만 계산하니까 이렇게 나옵니다 즉 최소 인 거죠 곱하기 몇십배를 해야 하겠지만 말이죠
아 그 한명은 누구냐고요? 골리앗입니다
여기에다가 사울왕과 그의 하수들을 더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숫자로는 안 나왔지만 그들 패거리도 있었구요
더 중요한 아군에 해당되는
다윗의 편에 선 자들 또한 다윗이 의도적으로 죽인 경우입니다
숫자로 인구조사를 해서 7만명이 죽었죠
그리고 두 명은 확실하게 나옵니다 아니 압살롭반란까지 더해야 할까요?
7만 3명은 명확하게 나옵니다 곱하기 몇배 까지는 모르겠지만
숫자상으로는 적군 수 표기된 수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세명 누구냐고요? 고의적으로 죽인 우리야 장군이 있고요
꺽으신 뼈 솔로몬 태어나기 전의 솔로몬의 이름 없는 형 그 아기가 있고요
또 압살롬도 사울왕처럼 대적으로 봐야할지 모르겟지만 말이죠
사실은 대적 맞습니다 맏아들처럼 은혜를 무시했고
다윗이 자신의 잘못으로 압살롬이 삐딱선을 탄 것 맞지만 말이죠
그러니 인간 사 그 인생 사에서는 답이 없어요
그 수에도 칠 가치가 없는 그런 인생 허구를 거쳐서
은혜로만 이 약속을 이어가시니까
결과적으로는 은혜를 박은혜 김은혜 말고요 은혜를 무시하는
행함을 쫓는자들과의 대조를 통해서 그게 노아언약이라고 했지요 전쟁기획자 설계자
그것을 실현하는 행함이 아닌 믿음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자 이렇게 다위의 가문 속 내에서도 이런 피 비린내 나는 처참하고 비극적인 충돌을 벌림으로써가족 간에도 원스지간으로 만드시면서 까지 은혜가 왕노릇하심을
저 죽은 계보 족보 속에서 산 생명을 꽃 피우시고자
피비린대 나는 싸움을 통해서
화평을 주러 온게 아니라 검을 통해서
이 남은자 계보를 뽑아내시고 빼내시는 겁니다
오히려 모세언약이라는 율법에 의하면
다윗은 사울 왕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기 편도 의도적으로 더 죽이도록 해서
죄인 중의 괴수로 만들어서
캬 사도바울은 다윗 이 죽인 사람보다
하나님 자체를 죽이는 설계자 총 감독 지휘자의 실무 담당자였으니
그야 말로 죄인 중의 괴수 맞지요
그 죄인 중의 괴수에게 딱 맞는
주께만 범죄한 죄인에게 딱 맞는 십자가로써 고침을 받은 겁니다
아무나 다 그런가? 그렇게 되면 또 조건이 되는 거죠 아닙니다
아무나 다 아닙니다
똑같은 짓을 해도 누구는 사랑 누구는 미움받는
이거 조건화 법 제도 규칙화 인간 쪽에서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마음대로입니다
그 규칙 만들어 교리화 한게 불교이고 그리고 교리 플러스 실천은 불교 따라갈 자 없어요
그게 살생금지 아닙니까 그카이 적군이 쳐들어와도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여호와증인보다 더하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깬 것이 호국불교 아닙니까 이게 국가에게 먹혀든 거죠 그래서 명맥을 유지하고 대중이 아직도 찾는 겁니다
바로 그런 순하디 순한 어미가 자식 삶아먹는 또 어떤 순한 부모는 자식 삶아먹어서 나 하 입 내 한 입 좀더 더 먹었다가 화내는
그카이 불교는 소시오패쓰들인 겁니다
그것을 따라하는게 바로 유대교 적군을 죽여서라도 진리를 사수하겠다 라고 호국북교처럼 말이죠
이들은 사이코패쓰들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자들인 행동대장들인데 바로 히스테리 환자들입니다
서로 서로 가스라이팅 하는 겁니다 빤스가 제대로 말하자낳아요
가스라이팅 하라고 있는거다 라고 말이죠
결국 모든 종교는 정신병입니다
그런 우상을 깨뜨리는 것이 복음이고요
못하니까 돈에 미친 교회들 밖에 없고요 그것을 그 시대상을 따르면서도 안 ??르는 척 하는 것을 감추고자 성화론 하고요 우리나라 최고의 성화론자교회 제가 직접 다녀봤거든요
결국은 돈 이거든요
그게 맞아요 안 그러는 인간 없어요 저도 돈에 미쳤는데
왜 안 그러는 척 가르치느냐 라는 겁니다
간극을 좁힐 수 없다 라고 해야 하는데
간극을 좁힐수 있다 라는 가능성을 던지지 아니하면 돈을 교회가 못 벌어요
아무튼 행동대장 히스테리 환자 결핍을 채우고자 움직이지 안그러면 움직일 이유가 없다 말이죠
그것이 모두다 바로 이 은혜를 거부하는데서 오는 겁니다
베드로도 은혜보다 자신의 행함과 그 실천 의지를 피력하고자 할때에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다
은혜를 짖밝고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라는 겁니다
생명의 밧줄을 니 혼자만 챙길려고 한다는 겁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구나
이 사탄아 썩 물러가라
이런 베드로의 방해에도 너끈히 이기시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으로써
그 죽음 보다 더한 질투 더한 시기심으로써
그 사망의 권세가 모든 인간들을 장악하고 있어서
죽기를 무서워서 유대인의 구원종교로 만든 그러나 실상은 사탄의 본부였듯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대표종교였듯이
도리어 그 음부의 권세를 이겨서 그 예룻살렘을 정복
침노 침략 해서
밭갈이 해서
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음부를 짖밟고서 하늘의 예루살렘을 완공 다 이루시는 겁니다
인간은 46년 남자가 성인이 되어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면 전 인생이 다 걸었던 겁니다
그래도 기초만 짖고 완공을 못하는 그 수치를 그 부끄러움을
주님이 단 하루만에 국가 나라를 새로 세우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의문의 반복 헐어버려라
삼일 만에 짖겠다
제대로 된 삼이라는 절대심판을 거쳤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길수가 없는 겁니다
행함으로는 넘어지나
믿음으로는 넘어질수가 없는 오뚜기로 말이죠
아무리 양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이미 넉넉히 이겼기에
이 사랑에서 끊을자 없습니다
사망아 누구를 쏘고 누구를 끊고자 죽일려고 하느냐 말이져
이미 십자가에서 사망 권세는 무용지물임이 드러났습니다
육체를 죽이는 자 이제 더 이상 두려워 할 것 없고
영혼을 소멸하시는 제대로 된 절대심판인 이 십자가를 쳐다보는
자기 죄로 우는 남은 자 만리
남겨둔 한 씨의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우시는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는
그 모세의 온유처럼
이 인애와 자비가 아니면
대신 매 맞으시는 그 은혜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자 없습니다
은혜로만 들어가는 나라 만을 다 이루셨거든요
(은혜로만 들어가네 백날 가스펠 불러도 소용없어요 결국은 행함으로만 들어갈려고 하게 되니까 말이죠 은혜라는 믿음은 외부에서 주시는 선물이지 인간이 아무리 쥐어짜내어도 안 나옵니다 간극 안 좁혀집니다 그카이 종교에 속을 필요 없어요 뭘 해도 다 죄 뿐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 의인 건강한자 주님에게는 필요가 없어요
결국 종교를 찾는 이유는 건강하고 의인되고픈 이유였는데 그것도 다 죄 이다는 겁니다
종교 무용지물입니다 종교라고 해서 사탄이 안 장악했겠습니까? 도리어 더 예수님을 죽인 사건으로 들통났잖아요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꾀고 어딜 속이느냐 라고
모든 종교 파괴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종교에 미친 자들인 우상숭배자들과 가까이 하지 마세요
(약 1:5, 개역)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자 이렇게 그 어떤 조건 갖춤도 없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은혜를
왜 자꾸 조건 갖추는 행함을 쫓느냐 말이죠
아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겁니까
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우연히 어떤 것에 겁 먹고 뒷걸음질 하다가 누구를 살려낸 그런 행함으로 취급받아서
남들이 칭찬을 한다고 해서 그거 내가 한게 아니다 라고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 넘어갑니다 의인은 없는데 왜 칭찬에 넘어가느냐 말이죠
그런 유혹에서 다만 악에서 건져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 기도는 행함 아니냐 라고
그 마음을 주신 분은 생각지 않고
항상 관계를 보는게 아니라
세상사람들은 단독적인 개인의 행동만 따지기 때문에
그것에 속지 마세요 속아도 주님 관계만을 생각해서 건져달라고 하세요
우리는 늘 넘어지니까 말이죠 어서 일으켜 달라고 말이죠
자 이렇게 겁이 많은자도 후 하게 주시고
실천 자체가 안되는 장애인 도
앉은뱅이도 각종 중독자들도
게을러터진 무실천가도
교회나 종교 그 어떤 것도 다닌 적 없던 자도
주님의 뜻에서 다 모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개인 구원이 없다는 증거이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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