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4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 (고전 2; 9-1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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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4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 (고전 2; 9-12)
2026. 1. 25.

세상 관원의 지혜와 감취었던 비밀 (고전 2; 6- 9)
고린도 전서 2025 2026. 1. 3. 22:37
25-013 세상 관원의 지혜와 감취었던 비밀 (고전 2; 6- 9)

〈고린도전서 2; 9-1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5쪽, 찬송가 213장 새 423 먹보다도 더 검은, 찬송가 505장 새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새찬송가 423장〉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새찬송가 423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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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흰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2. 모든 의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져, 슬픈 탄식 변하여 기쁜 찬송되었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3. 세상 부귀 영화와 즐겨 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4.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다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 나아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찬송가 505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새찬송가 452장〉

찬송가 505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새찬송가 452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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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예수의 형상 나 입기 위해 세상의 보화 아끼잖네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2. 무한한 사랑 풍성한 긍휼 슬픈 자 위로하시는 주 
   길 잃은 죄인 부르는 예수 그 형상 닮게 하옵소서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3. 겸손하시고 거룩한 예수 원수의 멸시 참으시사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은 구주를 닮게 하옵소서
   예수를 닮기 내가 원하네 날 구속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지금 곧 오사 주님의 형상 인치소서


〈고린도전서 2; 9-12, 개역한글 신약성경 265쪽〉 

(고전 2:9, 개역)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개역)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개역)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개역)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9, 현대어)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ㄴ) `'주님과 같으신 신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구원해 달라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토록 엄청난 일을 행하는 것을 눈으로 본 일도 없습니다.' (ㄴ. 사64:4(참조,52:15))
(고전 2:10, 현대어)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고전 2:11, 현대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또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므로
(고전 2:12, 현대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알게 하셨습니다

(사 64:4, 개역)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사 52:15, 개역)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롬 15:21, 새번역)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 ㉨"그의 일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요,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15(칠십인역)


지난 번의 세상의 관원의 지혜처럼 인간을 먼저 세우고자 나타나고 발전된 지식 속에서
그리고 또 그런 인간들이 세우고자 하는 지혜를 돕고자 신들까지 동원이 되는 입장에서
곧 우상들  이지요 모든 우상들 곧 모든 신들은 인간을 돕기 위한
인간을 먼저 세우기 위한 그래서 그런 인간들을 도운 신에게 겸손한 자세를 갖추기 위한
이 모든 것이 아우러 져서 지혜를 그것도 모두다 수용할수 있는 보편적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뚱맞게 느닷없이 나타나 후발 주자의 여호와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관데 나 모르는데 모르는 자의 말을 왜 듣고 종들을 왜 풀어줘야 하느냐 말이죠

(출 5:2, 개역)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저도 고3 전까지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어요 그저 신이라고 하지
그 어린 나이에 무슨 신 따위를 요즘 현대 사회에 믿냐 말이죠
미션 스쿨에 다녀도 가끔 선생 중에 상급자랑 싸워서 그런지 몰라도 화풀이로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시간에 고1 이였지 싶은데 기독교의 모순에 대해서 자기 혼자 열받아서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더라 말이죠 구약은 사람 목숨 하나 파리 취급하면서 갑자기 신약에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이 얼마나 모순이냐 라고 자신의 논리 전개에 자기가 뿌듯해 하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자기 얼굴이 동안인데 사실은 50대 중반이라고 그러니 대우 받아야 할 짠밥인데 무시당하니 그 따위를 소리를 하며 혼자 희죽 희죽 웃길래
예수님을 안 믿었을 때 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왠지 괴물 같아 보여서 그의 말을 그냥 무시해 버렸다 말이죠 저 따위 동안 저 따위 논리가 오히려 더 말이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신뢰성 자체가 안 가더라 말이죠 그 당시 선생들은 거의 뭐 깡패죠
깡패 카니까 너거 아부지 뭐 하시노 그런 시대였으니 말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거의 소시오패쓰 수준이였거든요
이제는 반대가 되가 그 당시 학부모는 선생님 앞에서 무조건 싹싹 빌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학부모들이 소시오 패쓰들이 되어가 자기 자식 건드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반드시 복수하겠다 라고 하니 자살 안하고 베기겠습니까

그렇게 세상의 흐름대로 신 자체를 믿는다 라는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말이죠
자기를 먼저 우선 순위로 세워주지 않는 신은 관심 바깥에 두는 겁니다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잡것
즉 세상의 관원의 지혜에서는 저 변두리 취급당하는 잡것이다 말이죠
유명세가 없어요 맹위를 떨친 것도 없어요 그런데 왜 그의 말을 왜 듣냐 라는 거죠
맞잖아요

설사 이름만 알아도 아는 척 하면 안되는 겁니다
노예들의 신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위상이 깍이잖아요
자신들을 먼저 세우는 것이 역사이기에 그런 역사 곧 시공간에 노예를 끼워 줄수가 없는 겁니다
다 부려먹고 난 뒤에 자기들 공간 바깥에서 다 죽여 버려야 하거든요 더러운 것을 청소하는 거죠

자 이런 점에서 반드시 대조를 이루는 겁니다
후발주자로 인식이 되어서 모르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도 관심 두어서 알려고 해도 노예들의 신이기에 괜히 더 알고 싶어도
그 동안 자신들의 높이 세운 맹위에 보잘 것 없는 뜨인돌 밖에 안되는 겁니다

뜨인돌이 뭔가 싶어서 물어봤죠 굴러들어온 돌인줄 알았는데
손대지 않았다 이더군요 산에서 저절로 떨어서 나온 돌이다는 거죠

요즘 광물로 난리 낮죠 과거도 마친가지입니다 물에 의해서 인간들은 배치가 됩니다 그렇게 자연에 적응하는 겁니다 이것이 축적되어서 빅 데이터가 되는 결국 네 맞아요 우주까지 그런 지식 정보를 쌓고 가야 문제 부딧힐 때 하겠다 아닙니까
희토류 금 은 동 이것이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지금이니까 말이죠
어제의 친구도 오늘은 원수로 변하는 겁니다 우방 따위는 없어요 그때 그때 달라요
그냥 서로 이용해 먹기 위한 상호인정 상호기만 상호위선이 현대의 도덕이지요

오랜 친구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점점 똑똑해져야만 고독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 보고 나 혼자 울고 불고 그 고독을 즐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이니까 말이죠

사실은 그건 살아있는게 아니라 그냥 좀비일 뿐인거죠

아무튼 인간은 광물에 의해서 배치될 뿐입니다

우리 살펴봤었죠 이사야 였던가요
북이스라엘도 망하고
남유다 마지막 남은 4대 왕조 사자 네 마리야
그것도 모르고

https://crosslamb.tistory.com/2591

[사자의 애가] 비유(수수께끼) (겔 19, 1-14)
에스겔 2019 2023. 2. 11. 13:33

에스겔이였네요

여호아하스 (살룸): 요시야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으나, 단 3개월 만에 애굽(이집트) 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야킴 (엘리아킴): 애굽에 의해 세워진 왕으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친애굽 정책을 펼치다 바벨론과의 갈등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여호야긴 (고니야): 여호야킴의 아들로 왕이 된 지 3개월 만에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시드기야 (맛다니야): 남유다의 마지막 왕(제20대)입니다.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때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이때 남유다는 완전히 멸망(BC 586년)했습니다.

이 네 마리 사자 중에 두 번째 곧 18대 왕 여호야김이
무슨 지지배도 아니고 자기 처소를 금으로 도배하는데에만 미쳐 있었다 말이죠

이것이 신을 숭배하는 원리와 같아요
그렇게 동일시 하는 겁니다 가장 가치 있는 금과 자신을 동일시 합니다

트럼프 보세요 동일시 하잖아요 자기가 이미 신인 거죠
결국 신은커녕 지옥벌레가 되어서 죽지만 말이죠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여기서 이런 세상의 지혜 세상의 영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속 사정 하나님의 지혜에는
감추워둔 비밀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겁니다


저들 슬픈 애가의 사자 네 마리 중에
심판 속에서도 남겨두 이러다 다 죽어 라는 긍휼이라는 비밀을
아껴둔 감추워둔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데
여고냐 속에 그때 8살 18살 그 당시는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치면 아동입니다

자립청년 바로 직전 까지 말이죠

열왕기하 24장 8절: 18세에 즉위했다고 기록.
역대하 36장 9절: 8세에 즉위했다고 기록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과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18세를 더 정확한 즉위 연령으로 봅니다.
필사상의 오류: 고대 히브리어 숫자를 필사(옮겨 적기)하는 과정에서 10을 나타내는 기호가 생략되어 18이 8로 적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맥적 근거: 8세 아이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거나, 포로로 잡혀갈 때 "그의 아내들"이 함께 있었다는 기록(열왕기하 24:15)을 볼 때, 18세가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101(오녹음) 통치는 18살 여덟 살 둘 다 똑같나???
네, 맞습니다. 열왕기하(18세)와 역대하(8세) 두 기록 모두 그가 다스린 기간은 '석 달 열흘(100일~110일)'로 거의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류도 그 감추워둔 비밀의 기능으로써 작용이 되어야
해석 불가가 되는 것이겠죠

찝찝한 여운이 남아 물어본게

그 당시 18 살은 어른인가 아동인가???

성경 시대(고대 유대 사회)의 기준에서 18세는 명백한 '성인(어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아동'이나 '청소년' 개념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인 인정 연령 (13세)
유대 전통에서 남자는 만 13세가 되면 '바르 미츠바(Bar Mitzvah, 율법의 아들)'라는 성인식을 치릅니다. 이때부터는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 완전한 종교적·사회적 성인으로 대우받았습니다. 따라서 18세는 이미 성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모두 갖춘 상태였습니다.
2. 혼인 가능 연령
당시 유대 사회에서 남자는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결혼했습니다. 실제로 여호야긴(여고냐)이 18세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 성경은 "그의 아내들"이 함께 끌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열왕기하 24:15). 이는 그가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성인이었음을 증명합니다.
3. 군사적·정치적 책임
구약 성경에서 인구 조사를 할 때 '전쟁에 나갈 만한 자'의 기준은 20세 이상이었습니다. 18세는 전쟁에 나갈 나이에 임박한 장성한 청년이었으며, 왕위 계승자로서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나이였습니다.
4. 8세(아동)와 18세(성인)의 차이
만약 역대하의 기록대로 8세였다면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없는 '어린아이(아동)'이므로 섭정(어머니나 신하가 대신 다스림)이 필요했겠지만, 18세라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요약하자면:
그 당시 18세는 오늘날의 고등학생 느낌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군 복무를 준비하며 왕으로서 직접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당한 '어른'이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백과 등에서 당시의 생활사 정보를 더 자세히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성인 인정 연령 (13세) 가 가인과 아벨 사건 때문인가? 성경 근거 구절은???

성인 인정 연령인 13세(바르 미츠바)는 가인과 아벨 사건에서 유래된 것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 사건은 인류 초기의 형제간 비극을 다루며, 특정 연령을 성인으로 규정하는 성경적 근거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13세를 성인으로 보는 근거와 관련 성경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3세 성인설의 주요 근거 (창세기 34장)
성경 학자들이 유대 전통의 13세 성인 기준의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은 창세기 34장 25절입니다.
사건: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보복 공격하는 장면입니다.
구절: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해석: 당시 레위의 나이가 13세였다고 추정되는데, 성경이 그를 아이가 아닌 '남자(이쉬, Ish)'로 지칭하며 각기 칼을 들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를 성인의 기점으로 봅니다.
2. 율법적·전통적 배경 (미슈나)
사실 13세를 성인으로 명문화한 것은 성경(타나크) 구절 자체보다는 유대교의 구전 율법을 정리한 '미슈나(Mishnah)'의 영향이 큽니다.
아보트(Abot) 5:21: "5세에 성경을 배우고, 10세에 미슈나를 배우며, 13세에 계명(율법)의 의무를 지고, 15세에 탈무드를 배운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3. 가인과 아벨 사건과의 관계
가인과 아벨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연령 관련 교훈은 '책임'의 문제이지 특정 나이는 아닙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세기 4:9)라고 반문했을 때, 하나님은 그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독립적인 인격체(성인과 같은 상태)임을 전제로 대화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13세라는 구체적인 나이가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4. 기타 성경 속 나이 기준
20세: 군대에 입대하거나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행정적 성인의 기준 (민수기 1:3).
30세: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거나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는 나이 (예수님, 요셉, 다윗 등).
요약하자면:
13세 성인 기준은 가인과 아벨 사건이 아니라, 창세기 34장의 레위의 사례와 유대교 전통 율법서인 미슈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해당 구절들을 비교하며 읽어보시면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까 질문 다시 두 군데 18살 8살 100일 통치는 정확히 똑같나
성경의 두 기록을 정밀하게 대조해 보면, 통치 기간은 거의 일치하지만 '열흘'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구체적인 구절을 통해 비교해 드리겠습니다.
1. 나이는 다르지만 통치 기간은 거의 같다
열왕기하 24:8 (18세 기록):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리니라"
역대하 36:9 (8세 기록):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다스리며..."
2. '석 달' vs '석 달 열흘' (약 100일 vs 110일)
질문하신 '100일 통치' 관점에서 보면 두 기록은 사실상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는 큰 단위인 '달'까지만 기록하여 약 90일(3개월)로 표현한 것이고,
역대하는 좀 더 세밀하게 '열흘(10일)'을 더해 정확한 날짜를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3. 왜 이런 차이가 나나요?
성경 학자들은 이를 기록의 정밀도 차이로 해석합니다.
열왕기는 역사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경향이 있어 우수리를 떼고 '3개월'이라 적었고,
역대기는 성전 중심의 족보와 통치 기간을 아주 상세히 기록하는 특징이 있어 '열흘'까지 정확히 명시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두 군데 모두 "매우 짧은 기간(약 100일~110일) 동안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은 똑같습니다. 다만 문구상으로는 역대하에만 '열흘'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더 붙어 있습니다.
직접 확인을 원하시면 대한성서공회 역대하 36장과 열왕기하 24장을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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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10일 차이의 이유를 정확히 모르나?

성경 기록에서 여호야긴의 통치 기간이 '석 달(열왕기)'과 '석 달 열흘(역대기)'로 10일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학설로 설명됩니다.

1. 기록의 정밀도 차이 (반올림 vs 상세 기록)
가장 보편적인 해석입니다. 열왕기는 역사의 핵심 위주로 기록하며 3개월이라는 '큰 단위'로 요약(반올림)한 것이고, 역대기는 족보와 성전 역사를 다루며 날짜 하나하나를 아주 '세밀하게' 기록하려는 성격이 강해 10일을 더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것입니다.
2. 왕의 '즉위'와 '항복' 사이의 시차
실제 통치 행위를 시작한 날과 바벨론 군대에 항복하여 왕위에서 물러난 날 사이의 계산 방식 차이일 수 있습니다.
석 달: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하기 전까지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
석 달 열흘: 항복 선언 이후 실제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성안에 머물렀던 잔여 기간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
3. 고대 역법 및 계산 방식의 특성
고대 근동에서는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날짜를 계산했는데, 한 달을 꽉 채우지 못한 며칠을 '한 달'로 칠 것인지, 아니면 정확히 일수를 셀 것인지에 따라 기록자마다 약간의 수치 차이가 발생하곤 합니다.
요약하자면
이 10일의 차이는 기록의 오류라기보다는 '기록 목적'의 차이로 봅니다. 열왕기는 "그가 아주 짧게 다스리고 끝났다"는 사실에 집중했고, 역대기는 "그가 정확히 며칠을 보좌에 앉아 있었는가"를 정밀하게 남기려 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차이는 비밀 때문입니다 결국 보는 시선에 따라 차이가 나도록 하는 시차적관점으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요 그 대표성이 4 복음서 아닙니까
서로 안 맞는 구석 많잖아요

아무튼 이 비밀 때문에 길게 운운 했는데
다시 돌아와서

애굽왕이 나 여호와가 누구관대를 통해서
그 천민의 하나님을 안다는 것 자체가 수치가 되는 거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수치 그 자체입니다
부활의 예수님만 믿자 제발 고만 죄죄죄 캐라 십자가 마이 무따 아이가
괜히 나온 목사들의 징징 거림이 아닌 거죠

그래서 바로 이런 애굽왕을 통해서 후발주자 변방의 북소리 변방의 신이 어떻게 주류가 되는지
이스라엘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는게 아니라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겁니다


보편적 지혜요 진리인 세상의 관원의 지혜를 거쳐서 구체적 보편적 진리요 지혜를 나타내시듯이 말이지요

그래야 딱 한 사람 과부 딱 한 사람 문둥병자 에게만 보내심을 받으셨듯이

가나안 여자 기생 라합에게만 이 여호와의 비밀 이름이 마음판에 새겨져
40년간 간담이 녹은 채로 느닷없이 찾아온 생뚱맞은 이름의 신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겁니다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여성으로 말이지요

그러니 반드시 주님 쪽의 숙제로써 두 언약을 이루듯이

이스라엘과 애굽처럼 말이죠

오늘 본문 그 구약의 그림자 속에서 감추워진 해석 불가의 비밀 뜨인돌은 그대로 가져워서
오늘 본문의 실상으로 세상의 영과 하나님께로 온 영
세상의 관원의 지혜와 감추워진 비밀의 지혜로 대조를 이루시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흉내내어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대조 사실상 선악구조죠
자기에게 이로운 인간은 선으로 두고 
자기에게 도움 안 되는 인간은 가룟유다처럼 은 30냥 받고 팔아버리는 악마로 취급해야
자신의 선함이 더더욱 돋 보이도록 되듯이
이런 인간들의 잔머리 지혜 유대인들의 율법을 이용한 구분짓기 구별짖기 차이두기 거리두기
사마리아 구역 삥 둘러서 가기

말이 그렇지 예수님만 비밀이라서 가능하지
그 당시 규율을 깨뜨리고 사마리아 구역 들어가 보세요
돌삐 맞아 죽고 남은 가족들 계속 시달릴꺼 아닙니까
바울도 디모데에게 트릭 융통성을 쓰라고 했지요
죽어라고 목숨 걸어서 무할례를 그렇게 주장했건만
정작 디모데에게 할례를 반드시 하라 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 강요로 인한 유대인 금욕주의에서 건강을 위해 포도주를 먹으라 라고 합니다
하필이면 꼭 논란이 될 것들 꼭 시비꺼리가 될 것들을 추천 하는 셈이지요
정작 시비 꺼리가 안 되고자 한 것인데
후대에 해석자들이 거봐라 라고 나올수 있는 여지로 말이죠
그러니 내 쪽으로 끌어와서 지킬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명령어 하라 하지말라는 금지하면 할수록 더 하도록 되어 있으니
니 마음대로 하라 라는 겁니다 막상 멍썩 깔아주면 못하는 거죠
지금껏 마음대로 살아와 놓고서 마치 새로운 것인냥 보이니까
지킬수 있는냥 착각하는 겁니다
그래도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안되잖아
도덕질 하지 말라 가르쳐야지 않나
그런데 그 가르친 본인이 배운 아이의 목숨을 도덕질을 하니 말이죠
그 간극을 메울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끝입니다
그러니 내 숙제 없는 거죠

아니 내 숙제로 천국 갈꺼면 바리새인이 가야죠
그런데 예수님의 숙제 곧 풀수 없는 감추워둔 비밀에서는 그들은 독사의 자식이였습니다
기존의 인간에서 나올수 없는 시선입니다
에라이 그래 그래 나는 포기 할란다 내 같은 놈이 무슨 천국 그 배불러 터진 소리 이겠노 라고 자기 숙제로 지옥 가겠다 라고 독재자의 길을 간다고 해서
지 마음대로 가는게 아니다 말이죠

그래서 네 마리 사자의 슬픈 노래
막상 보세요 아무도 안 슬퍼해요 누구만 대신 울 뿐이죠
여고냐가 어린 아동이나 책임질 나이가 된 18 이어도
악하기 짝이 없는 놈이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속 사정 하나님의 영
곧 세상의 관원들의 지혜와 차이나는
세상의 영과 차이나는
육의 소욕 육의 자랑과 차이나는

비밀을 그 속에 담아서
자기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이름을 자기 스스로 아끼는 겁니다

여기에 성화론자들처럼 그런 하나님에게 도움이 되고자 달려들어도 
오히려 더 방해 훼방 거리가 되는 겁니다
뭐 처음에는 순종이요 자발적인 자원하는 심령이요 뭐 겸손으로 한다 라고 쳐쳐쳐 쳐 줍시다
그러나 반드시 육의 자랑으로 또 계급 나누기로 또 누가 크냐로 빠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행함이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룬 믿음은 동생 마리아처럼 싸가지 없이 그냥 목격할 뿐입니다
목격한 자만이 증인이 될거 아닙니까 일한다고 도운다고 바쁘다 보니
목격한 것 하나 없기에 무엇을 외칠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 또 대세 세상의 관원의 지혜 사람들에게 먹혀드는 이야기로 땜빵하는 것이지요

그런 버릇임을 알고 그런 지옥의 몸임을 알고
아예 손 발 못 움직이도록 오로지 목격만 하도록 하시고자
탈탈탈 털어버리는 용광로 비밀 속에 감추워둔 비밀의 이름 속에
하나님의 속 사정 하나님의 영을 부으셔서 비로소 안 보이던 것읇
보이는 것과 대조 해서 알려주시는 겁니다
보이는 것들은 다 사라질 것들이고
안 보이던 비밀 비유 수수께끼는 영원하다 말이죠

용광로 비밀 속에서 나올 때예수님의 죽음 속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로 나온 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부어질 때
비로소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던 것들이 자꾸 흐릇해져 가는 겁니다 어차피 안 보게될 것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악한 놈 여고냐를 딸랑 100일 또는 석달 이 둘다 단절로 표현된
절대심판인 용광로 속에 포로됨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100 단위로 끊어서 한 묶음을 이루듯 석달은 절대 심판의 전형적인 거죠
그러니 보이는 것들 곧 유에서 무를 해석할수 없듯이
유를 가지고 보이는 유 유 끼리 곧 유와 유를 대조 해 본들 답이 안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포로잡혀가니
찍소리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이것을 개인을 두고 말하는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아껴둔 자기 이름을 거룩케 하시고자
이 악한 여고냐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의 기능 곧 더러움을 거룩으로 옮기는 작업을 보여주고자
원인 없이 여고냐를 포로 잡히게 하는 겁니다
여기에 상대적인 세상의 지혜 세상의 영은
끝까지 독립투쟁을 벌리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로 목숨을 건다 라고
어른 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도리어 악한 무화과 나무라고 하고

여고냐는 좋은 무화과 나무 라고 하는 비유 비밀이 먼저 있어서 그렇게 뒤에 덧 붙이시는 겁니다

팔을 어긎맞게 하시는 거죠
아니 처음부터 편하게 미리 바꿔 앉혀놓고 팔만 올리면 될 것을
왜 꼭 굳이 보라꼬 굳이 각인이 되라고
차별화 방식으로 왜 저러지 라는 의문을 유발케 하는 
불편한 시선인 응시의 기능을 활용하시듯 말이죠

(창 48:14, 개역)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렘 24:1, 개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렘 24:2, 개역)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렘 24:3,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라


원인 있는 결과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하는 모든 인과관계법칙입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의 느닷없이 생뚱맞은 변방의 이름이 일방적으로 쳐들어와서 뜨인돌이 말이죠 제일 높은 애굽의 권력을 단 하루만에 무너뜨리는 겁니다
그리고 주춧돌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내려온 암행어사처럼 암행자로써 말이죠
그카이 무슨 수로 입맞출수 있겠습니까
산에 들어가 도를 딱는 산신령과 같은 수련을 몇 십년 정도 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까요?
실제로 그런 무당들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세상의 영입니다
비밀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을 보는 거지요
거니 보세요 무당이 날짜를 잡아줬잖아요 계엄날
그 날짜 무당을 통해서 주님이 잡아준 날입니다

우리 저번에 무당들의 점괴 마저도 뒤에서 주님이 다스린다 라고 했잖아요
죽은 사무엘도 무당을 통해 불러내는 사건도 있구요

https://crosslamb.tistory.com/2619

바벨론 왕의 점괘를 옳게 하심 (겔 21,18-23)
에스겔 2019 2023. 8. 19. 13:24

(삼상 28:5, 개역)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삼상 28:6, 개역)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삼상 28:7, 개역)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삼상 28:11, 개역)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삼상 28:15, 개역)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삼상 28:16,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삼상 28:17, 개역)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자 이런 판국이나
성경은 그 어떤 것 단 하나라도 말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자체를 본적이 없는 인간이 그런 보이지 않는
원인 없는 결과를 해석할수 있겠으며
남의 마음 속 사정도 모르는 판국에 요즘 누가 알려고 하기나 하냐 말이죠

자기 부모 마음도 알려는 자가 사라지는 판국에
누가 하나님의 속 마음을 알고자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그카이 성경을 본다는 자체가 불덩이 속에 들어가는 셈인 겁니다
말도 안되는 온통 비밀
처음부터 끝까자 감추워둔 비밀입니다
하나님 본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껴두고 거룩케 하시고
즉 인간들 성화론자들은 결국 속임수 치는 자들인 거죠
본인이 직접 하나님의 마음인 성령을 통해서
저런 보이지 않는 세계를 건설함에 있어서 이미 완료가 다 되었습니다

구약 때에 그 하늘의 완성된 예루살렘을 그림자로 땅에 비추니까
온갖 짐승 마귀들이 다 달라 붙어버리는 겁니다

오히려 이제는 주님이 도리어 눈에 보이는 지상의 세계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집을 먼저 치심으로써 졸지에 열국에 까지 심판의 근거를 삼으시는 겁니다
짐승의 나라 곧 세상의 영들은 이스라엘 껍데기 그림자를 붙잡고
예수님을 실패자로 규정해 버립니다
실제로 가룟유다와 같은 자들을 자신들의 성공 사례로 여깁니다
주님은 그 하나의 패를 버리고자 처음부터 가짜를 심으셨고
악한 무화과 나무들과 같은 짓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 국가 종교 교회 가정 개인
모조리 심판의 근거로 삼으신 겁니다

그렇게 빼돌리다가 유일하게 동일하게 붙잡힌 놈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의 손에서 나올 의가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행함으로는 의에 이룰수 없는 새언약이니까요
결국 주님께서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그럴줄 알고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죗값을 치르러 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내 마음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은 내 영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쫓도록 되어 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 관심 조차도 없는
말세에 과연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시대입니다

어차피 사라지는데요 뭐 자기관리 할게 못 되는 겁니다
똥차 폐차 끌고 매일 매일 세차 해 본들 티도 안납니다
그냥 빨강 도색으로 귀찮은 매일 매일의 세차를
단번에 잔딱 십이지 ~~~~~~~~~

단 한번의 제사로 빨래 끝입니다 두 번 바위를 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유를 만끽하라고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대조 시켜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동안 좋게 보이는 그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 독립군 자금 지원들이였던 자들이
독사의 자식인 바리새인이였고

아무도 근처에 가지 않던 소경 앉은뱅이 문둥병자에게 효율성 실용성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땅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두게 하심으로써

이 땅에서 병이 나아서 보이는 세계 곧 유대인 문둥병자 9명처럼 보이는 성전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70만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거죠

아직도 그 잔상을 붙잡고 울면서 기도하는 자들이 있는데 마귀들입니다
실상 되시 3일만에 새로 지으신 예수님을 모독하는 겁니다

도리어 단 한 명의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아무리 예수님이 왜 저들따라 가지 왜?
가 가 가란 말이야 라고 
낙엽 이빠이 얼굴에 뿌려 모욕감을 줘도

우리는 훨씬 지식의 우위에 있는 자가 나을거다 싶지만
그러니까 실천력이 강한 자가 주님이 찾는 자 일 것이다 라고 그런 사기치는 설교
그런 속임수에 워낙 다 넘어가다 보니

어라 유대인이 그런자로써 돌아올줄 알았는데
일자 무식이던 이방인이 주님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라고 나오는
팔을 어긋맞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성경 전체가 이런 식입니다

두언약 곧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은 오로지 토기장이의 권한이지
인간이 따질 권리가 없습니다

이미 심판 받아야 할 자임을 알고 두렵고 떠는 위엄과 자비가 보이는 자는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이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영이 붙잡고 계시니까 말이죠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예상했던 오래 오래 믿고 오래 오래 성경 지식을 쌓던 자들은
잠깐 이용해 먹고 바로 떠나서 다시 그 사적인 집단인 예루살렘에서 그 동안 못 누렸던 결핍을 채우고자 성화운동에 매진 할 겁니다
그 성전 속 사람이 어 당신 그 문둥병 어떻게 나았소?
아무도 이야기를 못하고 딴 주제로 화제를 돌릴겁니다
예수님이라고 했다가는 문둥병으로 쌓지 못한 공든탑을 다시 세우는 기회를 놓칠것이며
또 그런 이단으로부터 고침받은 티를 내었다가는 가족들의 안위도 이제 날라가는 거죠

법이 이렇게 복잡합니다 삥둘러가듯이 말이죠
권력 힘 정치 경제 다 이런 식입니다
쿠팡 보세요 지눈을 지가 찌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직접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속 사정 마음인 영을 부어주시니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십자가의 죽음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다들 비웃던 하나님의 영광이요 능력을 보고
비로소 감사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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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너희가 긍휼을 입었도다 (롬 11;28-33)
2026. 2. 1.   (  미녹음 )

온 이스라엘(잃어버린 양)만을 구원하시는 자 (롬 11,25-27)
로마서 2022 2026. 1. 10. 16:00
22-069 잃어버린 양(온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는 자 (롬 11,25-27)

〈로마서 11;28-3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5쪽, 찬송가 353장 새 317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찬송가 446장 새 391 오 놀라운 구세주〉

〈찬송가 353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새찬송가 317장〉


(롬 11:28, 개역)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롬 11:29, 개역)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30, 개역)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롬 11:31, 개역)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1:32, 개역)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3, 개역)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28, 새번역) 복음의 관점에서 판단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을 받았다는 관점에서 판단하면, 그들은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 ㉦그, '원수가 되었지만'
(롬 11:29, 새번역)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롬 11:30, 새번역)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롬 11:31, 새번역)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롬 11:32, 새번역)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롬 11:33, 새번역)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교회에서 귀에 따까리가 생길 정도로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말을 어릴적부터 들어왔습니다

주일학교 올해의 구절로 정해서 순종을 가르치더라 말이죠
막상 내용을 들어보면 엄마 말 잘듣고 아빠 말 잘 듣자 라는 내용인데
거기에 성경을 더해서 예수님말 잘 듣자 라는 겁니다

이런 식이면 모든 종교도 동일합니다
티비 유치원에서도 다 하는 말이죠

전체 한국 교회는 유교와 혼합이 된 이단들입니다

순종을 가르치지만 왜 제사는 아닌지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유교룰 넘어서지 못하는 순종이요
유교를 곧 윤리 도덕이지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제사가 되는 겁니다

제사란 단순히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형식적으로 행함을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단순함이 아니예요
반드시 마귀가 목숨 걸어서 이루고자 함이 되는
곧 자기 의를 이루고자 함이다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죄의 권능입니다
누가 왕과 국가에 반하는 행동을 하겠습니까 순종해야 목숨을 유지하게 되지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순종치 않음에 가두었다 라고 표현하십니다
순종 하고 싶어 안달이 나도 세상왕과 국가의 권력 앞에서는 무너지겠끔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개인 보다 왕이 먼저 이고 국가가 먼저 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도 이런 판국인데

이스라엘은 오죽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성경 구절 까지 있으니 더더욱 순종 할려고 하지 그에 반하는 제사에 미쳐보고자 하겠냐 말이죠

(삼상 15:22, 개역)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렘 7:21, 쉬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서 마음껏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바쳐 보아라. 그리고 바친 제물의 고기를 너희가 먹어라.
(렘 7:21, 현대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게 번제물을 바치는 이유가 무엇이냐? 차라리 그 짐승들을 가져다가 화목제물로 잡아서 너희끼리나 그 고기를 나누어 먹어라.
(렘 7:22, 현대어)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에 나는 그들에게 번제물이나 화목제물을 가져다가 내게 바치도록 명령한 적이 없다.
(렘 7:23, 현대어)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이런 명령만을 내렸다. '너희는 오직 내게 순종하고 내가 너희에게 주는 계명에 따라서만 살아라. 그러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어서 너희가 하는 일이 모두 잘될 것이다'
(렘 7:24, 현대어)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흉악한 마음에서 생각나는대로만 행동하였다. 이렇게 내게서 떠나 자기들의 고집대로 살면서 내게는 언제나 등을 돌리고 있었다.
(렘 7:25, 현대어)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데리고 나왔을 때에 이미 그들은 내게 등을 돌렸다. 이런 태도가 그 당시로부터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언제나 다시 그들에게 나의 종들을 예언자로 보내어 경고하였으나
(렘 7:26, 현대어) 너희 가운데 한사람도 그 말을 듣고 마음을 고친 일이 없으며, 어느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너희는 오히려 옛 조상들보다도 더 완고하게 고집을 부렸고 더욱 흉악한 짓들을 저질렀다.
(렘 7:27, 현대어) 그러므로 예레미야야, 네가 이런 말로 그들을 책망할지라도 그들은 네 말을 전혀 듣지 않을 것이다. 네가 아무리 외쳐 보아도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할 것이다.
(렘 7:28, 현대어) 그러므로 너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그들에게 전하여라. '너희는 바로 너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은 백성이다. 너희에게서는 어떤 진실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진실은 이미 너희에게서 소멸해 버렸다.'
(렘 7:29, 현대어) [살인의 골짜기] 예루살렘 사람들아, 너희는 자신을 하나님께 봉헌하여 바친 표로 이제까지 길러 왔던 긴 머리채를 잘라 내던져라. 이제 너희는 우상을 섬기며 음행하던 모든 산당으로 기어올라가 비가를 부르며 통곡하여라. 주께서는 이제 너희를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지시기 때문에 너희를 내쫓으셨다. 주님은 너희를 완전히 버리셨다. 주님은 이제 너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예레미야 7장은 성경구절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붙인 소제목입니다 다른 번역도 그렇게 했구요 그 내용을 보니 소제목을 그렇게 붙일 수밖에 없겠었네요
그래서 다음 소제목 까지 올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찾아온 모든 비운의 사건들은 바로 불순종으로 인해서 나타난 결과로 인과관계를 설정했습니다

구원받은 민족 다울려며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결국은 순종이 답이다 라고 본 거죠

이런 구원론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목사라 빤스 내리라 하면 순종하면 자기 교인이고
거부하면 자기 교인 아니다 라고 하잖아요
이게 그냥 나온게 아닙니다 진짜 속내가 우연한 기회에서 실수를 통해서든 뭐를 통해서든 나오게 된 거죠 결국 증상물로써 나타난 겁니다
그 사람만이 그런게 아니라 한국교회의 구원론이 바로 그 원리 이다는 겁니다

이미 개인 구원에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깔린 겁니다
그 카이 예레미야 7장 내용이 딱 맞아 떨어지는 거죠

하나님을 찾는 방식 자체가 이미 점쟁이 찾듯이 한다는 자체가
개인 구원의 달성인 거죠

아니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 수많은 조상들의 실수를 인지해서‘
자기들 따나 순종하고픈 마음에 온 열의가 가득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퇴짜를 놓듯

그거 순종 아니야 우상제사야 사울방식이야 라고 말 툭 던지고 가버리면
부글 부글 끓지 않겠냐 말이죠

세상의 관원들이 쌓아올린 모든 업적을 삭제하는 식으로
유대인들의 모든 지혜를 짜 모아 모아서 만든 구원론을 그거 우상제사야 라고 해 버리면
열받지 않고 배기냐 말이죠

결국 인간 쪽에서 다가가는 모든 방식을 차단 단절 하시는 것이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라는 주님의 해석이 따로 있는데
사울왕의 잘못을 자신도 선악으로 판단할줄 알고
그런 사울왕을 비웃을 정도로 속담까지 된
사울왕도 선지자 중에 하나로 있었더냐 라고 유대 전체 사회가 비웃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되지 않고자 그들의 무의식까지 다 동원해서
순종해야 만 한다 말이죠
그것이 구원의 길이 라고 말이죠

그러나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런 구원의 길은 애초부터 없었다 라는 겁니다
순종 해서 구원 받는 길은 없었다 라는 거죠

이야 여기서 한국교회들 가만히 안 있죠 이런 소리하는 자 이단으로 몰던가
당장 교회에서 쫓아내어야 겠지요

그런 순종으로 구원 되는 길은 없습니다
교리에서 구원론을 그렇게 설정한 교파가 많겠지요 이단입니다
우와 오늘 서로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남발이 될 정도네요
그 정도로 깊이 뿌리 박힌 문제를 주님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건드리신 겁니다

(롬 11:32, 개역)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오히려 순종 할까봐 순종을 못하도록 모든 사람들은 불순종에 가두어 버렸다 라고 하십니다

마치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수 없는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8, 개역)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11, 개역)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 6:12, 개역)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 6:13, 개역)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6, 개역)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막 4:12, 개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막 4:13, 개역)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행 28:26, 개역)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개역)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거기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을까봐 걱정하셨다 라고

주님 본인이 구원을 막고자 한다는 겁니다

죄사함이 없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박옥수 죄사함의 비밀 벌써 날라갔지요
구원파 라고 구원 이라는 단어 들어가면 다 이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괜히 하는 말 아닙니다 심각합니다

우리가 앞서 주님의 모든 말씀은 비밀입니다 풀수가 없고 해석 불가이다는 겁니다

그럼 그 비밀 앞에서 나올 질문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순종 할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 지도자들 모두 율법사 서기관 부자청년 모두다 자기를 옳게 보일려고 말이죠
다들 똑같이 질문 합니다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는 왜 순종 할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습니까
주님 우리는 왜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로 태어났습니까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막고 죄사함을 막고 듣고 깨달아 고침을 막는 예수님을 제대로 본 자입니다

물론 그런 질문 하는 자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속 사정을 아는 하나님의 속마음인
성령이 들어간 자는 예수님에게 비로소 이렇게 답합니다

네 맞습니다 저 개 맞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고 
순종을 할 수 없는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이방인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 찌끄래기 쓰레기 잔밥 꿀꿀이 죽을 먹지 않습니까

라면 이야기 하는 이강민의 잡지사 콘텐츠에서
다들 출발점에 순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주는 긍휼에서 나왔더군요

귀신 들린 딸의 어미는 순종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율법도 성경도 일자무식일 뿐입니다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긍휼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 지난 번에 나눈 말씀인 온 이스라엘 곧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양입니다

아무도 없었지요

유대인들은 그런 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를 방해했습니다
마귀들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완악한 수건을 쓰고 오로지 순종하여 구원받자 라는 구호운동만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극우들입니다 좌파들은 독립운동으로 순종하겠다 라고 하니 역시나 똑같은 부류들입니다 나는 명박이가 싫어요 라고 하는 어준이가 왜 같은 지옥에 갈려고 하는지 사실은 서로가 좋아 죽는거 아닌지

인간 쪽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구원론이 바로 이런 식입니다
주님은 구원론과 안 맞습니다
정 반대입니다
귀신들린 딸의 어미와 같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만을 찾으시는 겁니다

즉 인간 쪽의 그 어떤 접촉점으로도 다가오는 방식을 다 거부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주님의 방식은 딱 하나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십자가의 죽음으로 직접 찾으시는 죄인
직접 찾으시는 환자에게만 부어지는 긍휼로만 구원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환자 그런 죄인 그런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의 의식은
내 구원 따로 챙길려는 의식 자체가 없기에
어떻게 하면 순종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 얻느냐가 없지요

오로지 세상의 왕과 국가 권력에 의해
자신의 딸이 귀신들린 상황이다는 겁니다
아무도 안 받아주고 병원도 안 받아주는 겁니다

여기에 무슨 어떻게 하면 순종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얻냐 라는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 말아죠‘
그저 귀신들린 딸을 바라보는 어미의 찢어지는 마음은 오로지 긍휼만이 불쌓이 여겨주심 외에는 없는 겁니다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심판의 저주 앞에서 저런 부자청년과 세상의 관원들의 호사가들의 담론을 나눌 정도의 배부른 소리를 할 입장이 못 되는겁니다

맞습니다 개에게 자녀에게 줄 떡을 줄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마 15:21,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 15:22, 개역)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마 15:23, 개역)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마 15:24,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마 15:25, 개역)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6,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 15:27, 개역)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 15:28, 개역)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그러나 당신은 다윗의 자손 아닙니까

즉 이 여인은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된 겁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개처럼 바로왕에게 순종하고 국가권력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거기가 빠져 나올수도 없고 나올 이유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귀신들린 딸의 어미처럼 동원이 되어서 출애굽 합니다
강제로 출애굽을 당하게 되니 구원이 되니
자신들이 원하는 구원이 아니다 라고 배불러 터진 소리로
나 애굽 다시 돌아갈래 라고 선언 합니다

그럴줄 알고 애굽왕은 미리 이야기 했습니다
백성들아 모세 따라 갔다가는 3일도 안되어서 광야에서 다 죽는다
내 말에 순종하면 너거들 잘 먹고 잘살게
뭐 까짓꺼 예배 드릴 장소? 당장 최고급 시설로 해 주마
내가 왕인데 그것 하나 못 해주랴

그러나 모세의 말은 말이 안된다 광야에서 예배 드리기 직전에 이미 다 죽는다
왜 자꾸 죽는 길로 가노?
광야(죽음), 또 광야 삼일길(또 죽음) 그것도 모잘라 어린양의 희생죽음(또 또 죽음) 속으로 들어가니

바로왕은 왜 죽고자 하느냐 라고 말릴 수밖에 없다 말이죠

이런 바로 왕을 강퍅케 하신 그 강퍅을 물리치고 출애굽에 성공했다손 치더라도
이스라엘 전체 마음에 자리 잡은 거죠
그들이 완악한 수건을 벗을 수 없는 이유는 순종으로 구원의 자리를 잃을 순 없다는 거죠

부도난 수표인 옛술 옛부대로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로 들어갈려고 하니
이건 무지를 넘어서 교만함의 극치죠
순종을 하면 할수록 교만해지는 겁니다 간극을 좁힐 길이 없어요
도적질하지 말라 하면 할수록 말이죠

그래서 순종치 않음으로 가두어야

이제 순종으로는 구원은 없다를 보게 되고
그 어떤 인간의 숙제는 안된다 라는 겁니다

한 왕 한 목자 그 왕만 오면

새언약이라고 했지요 언약대로만 일하십니다

모든 왕들의 대표는 아까 말한 애굽왕 바로 왕입니다
사울왕도 이스라엘의 남북 왕들의 어미 모태는 결국 바로 왕
멸망시키기로 작정이 된 왕입니다

백성들 아무리 순종해도 왕 하나 악하면 무조건 전체적으로 악하다 취급하십니다


그러나 다윗언약은 다윗 하나 의로우면 백성이 아무리 악해도 왕 하나 의로움 때문에 백성들까지 의로워 지는 겁니다

그래서 꼭 묻지요 그럼 다윗 의로운 것 믿고 마음껏 죄 지으면 되겠네
아니면 그건 방종 아니냐 라고

둘다 이미 심판 받은 자입니다
그들은 이미 개인 구원을 염두했기에

다윗언약은 구원을 막고 죄사함을 막는 비밀입니다
비밀이 풀리면 말라꼬 비밀입니까

개인 구원 염두를 시도 하겠다는 자체가 언약을 무시하겠다는 겁니다
집단 구원 뿐입니다

그래서 왕 하나로 결정 납니다

다윗의 이름으로 오신 왕 만이 순종한 자요
그의 순종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입는 긍휼을 입는 겁니다

바로 그러 성령을 입은 자기 죄로 우는 남은 자는

그 잃어버림의 자리에서 구원은커녕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알고
긍휼 오로지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물이라는 십자가의 죽음으로만
생명의 길은 긍휼을 펼치셨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행함을 쫓은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은혜라는 선물을 믿음으로 받은 자는 그 믿음으로 의에 이르는
바로 주님의 불쌍히 여겨주시는 마음

그 사랑 아니였으면 

빤스 보세요 말이 많아요 말을 많이 해야 권력이 되니까여
울리는 꽹과리 소음일 뿐입니다



사랑 보다 또렷하고 밝히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그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무슨 행함 무슨 순종한 것 들이내밀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부끄러워서 머리에 숯불 얹은 것처럼 말이 막히지요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다니요 말도 안되지요 말도 안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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