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림이라  와 주님의 기도

감사함(천국의 열쇠, 심판주)으로 들어가는 성전의 문 (겔 46, 8-15)

에스겔 2019 2022. 11. 5. 22:06

https://crosslamb.tistory.com/2575


질문 :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림이라

이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지요?

 


답변 :

 

땅이란 피를 흘린 터입니다. 그래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땅에서 저주가 올라옵니다.
그 저주를 감당하기 위해서 땅에서 땀을 흘려야 하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이 없어야 하는데 주어지게 됩니다. 땅에서 저주를 퍼붓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죽음을 땅이 하늘에 호소 고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을 그 원천으로 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늘에 호소합니다. 빨리 빨리 원수의 입 속에서 찢겨지고 씹혀지고 죽어감으로써 의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함과 동시에 동참케 됩니다.

 

결국 땅은 저주 곧 사망의 권세를 유감없이 펼칩니다.
그 음부의 권세를 작렬하게 펼치는 가운데
유독 음부의 권세가 아무리 퍼부어도 퍼부어도 통하지 않는 집단이 있는데 바로
하늘에 속한 교회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바로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의 피가 발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의 사람의 무리입니다. (히 11:38)

 

(마 18: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2, 개역)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 18:13,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 18:14, 개역)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18:15, 개역)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6, 개역)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마 18:17, 개역)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9, 개역)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20, 개역)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1, 개역)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 18:22,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 18:23, 개역)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4, 개역)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 18:25, 개역)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마 18:26, 개역)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마 18:27, 개역)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8, 개역)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 개역)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 개역)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31, 개역)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마 18:32, 개역)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 개역)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4, 개역)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마 18:35, 개역)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예를들면 구약의 참선지자가 심판을 자신의 신체에 담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음부의 권세를 몸에 지니게 됩니다.

 

그것을 보는 이스라엘 백성과 거짓선지자와 왕은 자신들이 받아야할 심판인줄 모르고
도리어 너나, 너가 받은 심판에서 너 자신을 구원해 보시지 라고
절대로 이스라엘은 망할 리가 없다는 평강 평강 평강을 외칩니다.

 

그러나 참선지자는 그런 미흡하기 짝이 없고 미완료적인 현재의 이스라엘을
예수님이 이미 완료한 미래의 이스라엘과 대비해서
현재의 미흡한 이스라엘을 철거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기준이 바로 심판입니다.

 

심판 곧 음부의 권세를 이겨 보라는 겁니다.

 

저주를 패쓰 통과 하는 자는 교회이고
심판을 패쓰 못하는 자는 가짜다

곧 미래완료인 이미 완벽하게 새워진 새이스라엘이 미래에서 땡기지 않는 자 가짜 이스라엘이다 라는 것을 참선지자가 외치는 겁니다.

 

지금 앞으로 7번 용서에서 더 나아가서 8번 9번 용서하는 현재적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이스라엘은 가짜이고

 

이미 용서 받은 모든 허물을 다 사함 받은 7 곱하기 70의
안식에 안식으로
새창조함을 받은
더 이상 미흡한 것이 없는 묵시적인 존재가
바로 주님의 신부된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라는 겁니다.

 

결국 교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이 음부의 권세입니다.
성도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것이 사단의 가시입니다.
의인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은 완료된 것이 하늘에서 풀렸듯이 땅에서 풀린 겁니다.

 

그러나 미완료인 인간의 숙제는 땅에서도 풀리지 않을뿐더러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곧 주님의 기도 주기도에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딱 하나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는 겁니다.

 

피가 (창세전에 유일하게 계획된 예정) 땅에서 펼쳐지는 겁니다.

 

죄인을 사망의 권세에서 대신 죄 값을 치르는 화목제물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사건은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이요
이미 모든 것을 다 풀어버린 겁니다.

 

그러나 안 믿겨지는 자는 여전히 풀 것이 많은 미완료된 숙제를 붙잡고
청함을 받았으나 택함을 받지 못하는 노릇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아무리 연기를 하고 인위적으로 조작을 해도
예수님의 피가 자기 목숨을 내어주심이 실감이 나지 않는 자는

결국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에 나오는 아이들처럼(어른의 거울)
자기 사랑을 자기가 받아 내고자 하는 수고로움을 자기 스스로 펼치는 어른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 챙기기의 달인이 되는 겁니다.
결국 그 원인은 부모가 사랑을 주지 못한 증거가 도화지 그림처럼 그대로 아이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 가지의 열매죠.

 

그러나 부모가 사랑을 넉넉하게 준 아이는
누가 봐도 죽는 상황이 되어도 죽는구나 자체를 인식 못합니다.
이미 사랑이 너무 너무 완료적으로 넉넉하기에
자기 챙기기를 못하는 겁니다. 요 15장
그 죽음 조차도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가운데 즐기고 누리고 노래하는 겁니다.(스데반 집사)

 

주님 자신의 열매를 창세전의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펼쳐지는 처음자리 곧 은혜로써 가려내고

 

가짜 이스라엘은 현재의 자신을 확장 시키는 성장 장성 성숙으로써 하늘의 뜻을 자기 뜻으로 펼치고 채우기를 하는 겁니다.

 

(마 6:5, 개역)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6, 개역)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7, 개역)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 6:8, 개역)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9, 개역)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10, 개역)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1, 개역)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 6:12, 개역)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3, 개역)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4, 개역)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마 6:15, 개역)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미 벌써 다 받은 것을 감사로 나타내는 용서 받았음으로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다는 것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을 누리는 삶 만 즐길 뿐)

이방인의 중언부언처럼 늘 부족하다 채워달라 채워줘도 늘 미완료이다 라는 것은
여전히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자기 창고를 기준으로 하는 채워달라는 겁니다.
결국 아무리 채워도 소용없는 겁니다. 늘 결핍입니다. 이것이 음부의 권세 입니다.

 

중언부언이 뭔가 라는 차이성을 모르면 주의 기도도 모르는 겁니다.
말을 많이 해야하고 남들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일려고 하고 시간과 공간을 자꾸 따지는 겁니다.

 

그러나 이미 받을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했습니다.
마 6: 8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나 인간은 원치 않는 겁니다.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개역)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7, 개역)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개역)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30, 개역)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1, 개역)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개역)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개역)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개역)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곧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인간이 때려죽어도 원치 않는
인간세계에서는 가치 없는 겁니다.

 

곧 피입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덧입혀지는 이 피를 구하는 자 없고
이 피로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도 없을뿐더러

 

그래도 믿는 티를 내어야 하기 때문에 그 대처물로서 성화를 하는 겁니다.
피 없이도 가능한 것
피 없이도 땅에 매인 것을 푸는 방법들 처세술들
이런 방법론들이 소위 교리와 신학으로 구성된 겁니다.
그것이 힘이 되는 겁니다. 바알종교죠.

 

이 땅은 저주를 발합니다. 땅의 저주를 푸는 것을 인간의 성화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앞으로도 미래에도 영원히 나올수 없는

 

유일하게 예수님에게서만 나오는 십자가의 피입니다.

 

십자가만 창세전에 예정 했지 인간의 구원 따위를 예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기도하지 말라

2009년 9월 2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7:16-20

(렘 7:16, 개정)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렘 7:17, 개정)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렘 7:18, 개정)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렘 7:19,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렘 7:20, 개정)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노를 이 곳과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신이라고 우기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없는 신’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땅에 진노를 퍼부어신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을 만드는 사람은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름대로 자기 입맛에 맞는 신을 자기가 제조하는 자들이 됩니다.

이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계시를 거부하고 따로 자신을 위한 신의 계시를 따로 모으고 있는 바가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우상숭배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주신 것만을 도로 내놓기 위해서 자기 백성에게 기도를 시키기 때문입니다.

미리 결론삼아 신약의 예를 들겠습니다. 신약의 십자가는 용서의 표시입니다. 즉 십자가를 참 계시로 보는 이들은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용서가 그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능력이다”고 하면서 늘 감격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신약 때,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은 자기 백성들의 기도와 모습을 통해서 “저는 이러이러해서 용서받았습니다”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을 되돌려 받기 위함입니다. 또 그런 차원에서 십자가 지셨습니다.

잠언 28:9에 보면,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율법 정신이 어떤 것이냐를 먼저 알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안에 하나님의 계명을 삽입시키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도합니다.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으시는 계명을 하나님께서 회수하시는 겁니다.

잠언 15:8에 보아도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자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입니까? 누가복음 18장에서 보면 두 사람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죄 많은 세리요 다른 한 사람은 참으로 경건해 보이는 바리새인입니다.

그 현장에 예수님이 안 계셨더라면 누가봐도 바리새인의 기도는 응답이 되고 세리의 기도를 거부당할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고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현장에 나타났을 때, 상황은 반전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참 하나님 되시는 여호와께서 진정 원하시는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뜻이 삽입 여부가 결정적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역시 두 종류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는 이방인의 기도요 다른 하나는 성도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식으로 기도하지 말하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의 기도는 자기 욕구와 기대치와 자기 생존과 야망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성도의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는 식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보면, 성도란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이방인들의 기도는 반대로 자신의 뜻이 되레 하늘까지 뻗히기를 간구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9:16-17에 보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옛 부대에다 새 포도주를 담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대마저 새부대 되게 하시고 거기에 담길 포도주도 옛 포도주가 아니라 새포도주 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기도도 받으십니다. 새 포도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새 계명, 곧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서는 모든 두려움이 없고 심판도 없고 오직 용서 뿐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기도 응답은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계시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의 계시인 용서로 가득차서 이미 용서받은 입장에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식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응답이란 이미 확정되었습니다. 성도는 기존의 몸을 수리, 보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포도주로 새로 만들어질 몸이요 새로 창조될 몸입니다. 즉 구원이란 새 창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을 하나님 홀로 다 하시는데 왜 우리가 구태여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우상숭배자가 다름아닌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낡은 계시, 엉터리 계시, 악마가 심어준 계시, 이런 것들로 가득차서 정작 하나님의 뜻이 들어올 여지를 만들지 않고 세상 것으로 꽉꽉 채운 것을 다 털어놓게 하십니다.

그래야지만 ‘용서’의 의미로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즉 용서받았으면 우리가 받을 기도 응답은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용서가 세상 사람들에게 큰 밉상과 핍박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 기도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지만 세상에 대한 심판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8:3-7에 보면,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세상 심판하는 작업에 성도의 기도가 필히 관여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도로 하여금 이런 기도가 우러나려면 그만큼 성도는 세상적인 엉터리 기도소리에 마음이 상해야 하고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 가운데서도 ‘여유만만’할 수 있는 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내 뜻을 하늘까지 뻗힐 생각말고 우리 빈 마음에 다 이루어신 하늘의 뜻만 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26강-렘7장16-20(기도하지말라)-jer090902.mp3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26강-렘7장16-20(기도하지말라)-jer090902.wmv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26강-렘7장16-20(기도하지말라)-jer090902.hwp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