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9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겔 32,11-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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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9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겔 32,11-16)
2025. 2.16

그물에 걸린 큰 악어의 눈물(애가) (겔 32, 1- 4)
에스겔 2019 2025. 1. 25. 15:40
21-088 그물에 걸린 큰 악어(애굽)의 눈물(곡소리, 곡성 ; 애가) (겔 32, 1- 4)

〈에스겔 32,11-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0쪽, 찬송가 230장 새 239 저 뵈는 본향 집, 가스펠; Happy Day 〉

〈찬송가 230장 저 뵈는 본향 집, 새찬송가 239장〉

1. 저 뵈는 본향집 날마다 가까워 내 갈길 멀지 않으니 전보다 가깝다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2. 내 주의 집에는 거할 곳 많도다 그 보좌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갑니다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3. 내 생명 끝날에 십자가 벗고서 나 면류관을 쓸 때가 가깝게 되었네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4. 내 길의 원근을 분명히 모르니 내 주여 길 다가도록 나 함께 하소서
   더 가깝고 더 가깝다 하룻길 되는 내 본향 가까운 곳일세  아멘


〈가스펠; Happy Day No.0091 찬미예수 2000〉
    
주 예수를 찬양합시다  무거운 짐 벗네 무거운 짐 벗네
주 예수를 찬양합시다  나의 가장 기쁜날
오 해피데이  오 해피데이  주 예수 오시네
오 해피데이  오 해피데이  오 나의 가장 기쁜 날


〈에스겔 32,11-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0쪽〉

(겔 32:11,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함이여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임하리로다
(겔 32:12, 개역) 내가 네 무리로 용사 곧 열국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겔 32:13, 개역)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 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겔 32:14, 개역) 그 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으로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겔 32:15, 개역)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겔 32:16, 개역) 이는 슬피 부를 애가니 열국 여자들이 이것을 슬피 부름이여 애굽과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이것을 슬피 부르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하라

(겔 32:11,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바빌로니아 왕의 칼이 네게 미칠 것이다.
(겔 32:12, 새번역) 내가 용사들의 칼로 너의 무리를 쓰러뜨리겠다. 그들은 뭇 민족 가운데서 가장 잔인한 사람들이다. 이집트가 자랑하던 것을 그들이 박살내며, 이집트의 온 무리를 그들이 멸망시킬 것이다.
(겔 32:13, 새번역) 내가 그 큰 물 가에서 모든 짐승을 없애 버리면, 다시는 사람의 발이 그 물을 흐리게 하지 못하고, 짐승의 발굽도 그 물을 흐리게 하지 못할 것이다.
(겔 32:14, 새번역) 그리고 나서 내가 그 강물을 맑게 하여, 모든 강물이 기름처럼 흐르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겔 32:15, 새번역) 내가 이집트 땅을 황무지로 만들면, 그래서 그 땅에 가득 찬 풍요가 사라지면, 내가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치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겔 32:16, 새번역) 이것이 그들이 부를 애가다. 여러 민족의 딸들이 이것을 애가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이집트와 그 나라의 온 무리를 애도하는 조가로 부를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먼저 각 번역서의 소제목이 달린 번역을 올려봅니다

(겔 32:1, 현대어) [나일강의 괴물 바로의 죽음]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11년째 되는 해 12월 1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ㄱ. BC 586년 2-3월)
(겔 32:17, 현대어) [바로의 군대가 지하로 내려감] 우리가 포로로 끌려간 지 ㄱ) 12년째 되는 해 1월 15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ㄱ. BC 586년 3-4월)

(겔 32:1, 쉬운) <이집트 왕 파라오에 대한 탄식의 노래> 십이 년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겔 32:17, 쉬운) <멸망하게 될 이집트> 십이 년 그 달 십오 일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표준새번역개정

겔 32:1 [악어와 같았던 이집트] 제 십이년 열두째 달 초하루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2:17 [죽은 자들의 세계] ○제 십이년 c첫째 달 십오일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c 칠십인역을 따름. 히브리어 본문에는 '첫째 달'이 없음)


개역개정한글

겔32:1 <큰 악어 애굽 왕>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겔32:17 <죽은 자들의 세계>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오늘 본문 내용도 애굽에 대한 심판 내용입니다

즉 심판이 없으면 구원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겠지요
결국 전쟁이 없으면 평화가 없다 라는 겁니다
왕이란 전쟁의 마침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자입니다
곧 세상의 중심인 시온에 성전을 세우는 자입니다
다윗이 마지막 남은 가나안 족속 여부스를 정복함으로써
예루살렘으로 이동했고
비로소 성전을 세우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그러나 그 성전 세우는 일이 마치 46년 동안 지어도
기초만 지을 뿐이지 완공을 못하는 것처럼
역사에서 못 이루는 성전완성을
1000년 천년이 지난 묵시에서 이 성전을 완성합니다
네 예수님입니다 다윗의 자손이 왕으로써 그리고 제사장으로써 선지자로써
말씀을 다 이루시는 겁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불타고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의 한계성을 왕의 한계성으로써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의 증상물로써의 성전은 사람을 깨끗하게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자 이렇게 참된 성전되신 걸어다니는 성전 새성전 에스겔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에
먼저 떳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두 언약을 한세트로 이루는 가짜 성전 불타는 성전인
사람의 성전이 왜 불타야 하는지는 보여주어서 한 세트를 보여주듯이

구원의 팔 곧 여호와의 팔 주의 오른손 구원의 손을 말하기 위해사
구원의 뿔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애굽의 팔이 왜 꺽어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써
두 언약을 이루시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이 두 언약을 이루고자
자신의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토색하는 세리와 같지 않다 라고 구별 구분짓기
거룩짓기를 하지만(오늘날 성화론자들과 어쩌면 똑같은지)
정작 예수님 스스로 뛰어들어서 두 언약을 이루실때에
모든 사람들의 보편성을 다 깨뜨리시는 겁니다
그 당시에 왜 그렇게 부자를 지독스럽게 미뭐하시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부자들은 유대교에 있어서 가장 모범이 되는 구원받은자 선택된자
지난 주 로마서로 치면 야곱의 사고방식처럼 장자권을 가져서 아버지 유업을 제대로 받은 자
큰 자 복의 근원이 되는 겁니다
혼자 개인 부자가 아니라 부자를 인식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라는 거죠
그것에 유대교도 결국 돈에 무릎을 꿇은 모습이다 라는 겁니다
곧 모든 종교에서 부자란 가장 구원교리에 가까운 자로써 보는 겁니다
반대로 가난한 자는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에 늘 희생으로 돌봐줘야할 대상물
용서의 대상물 7번 용서를 해 줘야 할 대상물이다 라는 거죠
그런일에 동조를 해 주지 않는 매국노 세리는 자동탈락 자동으로 구원의 탈락된 자로써
구분 짓기 딱 좋은 날씨 아니 좋은 상대물 대조물이 되는 겁니다
이 보다 손 쉬운 두 언약이 저절로 모든 인간이 동의하는 언약이 없는 거죠
가장 약속의 자녀와 거리와 먼 자 이니까 말이지요

바로 이런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친 부자에 대한 시선이
바로 애굽의 교만 곧 부자의 교만으로써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고 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성이 강한 공산주의의 시선이 옳으냐
우리가 잘 아는 패왕별희 라는 영화나 장예모 감독의 인생 이라는 영화에서도
부자들 자본가들에 대한 말살운동을 펼치는 공산혁명가들의 반발성 
아 그 뭐였더라 철학용어 특히 니체철학을 연구한 들뢰즈의 표현이 있었는데
반대로써의 쓰는 단어 아 생각이 안 나네요 ㅋㅋㅋ

아 한풀이 까지 나왔는데 아 생각이 ~~~
검색을 해 보니까 
검색어 니체 들뢰즈 반발성 한풀이
하니까 검색 결과가 차이와 반복만 위주로 나오는데
들뢰즈의 니체철학에서 나왔던 단어인데 
한풀이 한풀이 ~~~~
니체 들뢰즈 반발성 한풀이 니체철학
로 검색하니 더 멀어지는데
할수 없이 AI 검색을 해 봤는데 원하는 답이 안나오더라 말이죠
한참을 해 보니까 뭐 한풀이철학이라는 힌트 때문에 복수심 응징 뭐 부정적극복
뭐 반동? 능동의 반대를 수동이 아닌 반동이라고 하길래 또 한참 해멨죠 뭐
이게 작용 반작용이라는 의미인데 반동 이라고 딸랑 더 확장시켜버린 용어를 딥으로 내어 놓으니까 말이죠
이무튼 니체는 기존의 철학사조를 반작용이라고 한풀이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하했거든요
맞어 반작용이였다 반작용

그렇게 니체가 반작용철학 한풀이철학이라고 비판했고 자신의 철학을 긍정으로 해석했지만
역시나 지 또한 니체 지도 역시나 한풀이이고 반작용이였다 말이죠
반그리스도 이니까 늘 자신을 예수라고 예수 콤플렉스에 시달린 귀신 씌인놈이였다 말이죠
오늘날 모든 현대인들이 니체의 후예들이니까 예수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강한지

바로 이런 니체가 생각한 반작용이라는 한풀이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역시나 오홀리바처럼
자기 역시 한풀이 였다는 것은
인간은 늘 자기에서 출발하는 빈칸에 답을 적기 라는 여백채우기이기는 마찬가지 이다는 겁니다
아무리 부정의 철학 반동의 철학이라고 비판해서 자신의 철학인 긍정의 철학 생명의 철학이라고 우겨도 여전히 결핍이기는 맹 마찬가지

반작용을 전복시켜 망치로 부숴야 한다 라고 해 놓고서는
정작 본인들은 전복되지 않는 역시나 반작용인 의문의 반복
이것이 세상의 초등학문인 철학이요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는 긍정철학이요
여전히 빈칸에 정답 쓰겠다 라는 자기에게서 출발하는 역시나 방향은 자기에게로 회귀하는
목표만 있고 목적당성은 없는 원인만 있고 결과가 없다 말이죠
결과란 원인만 부수면 저절로 오는데
자기는 안 부수면서 적당히 대충 하면서 남은 죽어라고 완벽하게 망치로 부숴본들
그래서 불교처럼 무자아운동을 백날 해도 신을 없애는데 성공했는데
그 신을 없앤 자아를 없애는데는 백날 해도 안되는
결국 신을 없앤 적이 없었던 거죠 자기가 신은데요 뭘 ~~~~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빈칸 채우기의 원조로써 등장시키시는
지옥에서 끄집어낸 애굽 왕이다는 겁니다
결국 지옥에서 애굽왕 바로왕을 소환시켰다 라는 것은
그 부자 그 잔칫집 그 풍요로운 에덴 동산 같았더라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이 애굽을 목적으로 애굽처럼 자신의 여백을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왕 지옥에 간 바로왕과 똑같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아무리 부자가 지옥에 간 자로써의 대표성으로 언급을 아무리 해도
그 당시나 오늘날 사람들은 농담으로 알 듯이 아 그래 그래 욕심 적당히 부릴께요 라고
역시나 그 욕심 덜 부리기를 빈캄에 답을 적듯이 생각하지만
주님은 자기 목숨 바쳐서 알려주는 제발 지옥가지 말아라
너가 지금 사망의 몸이야 라고 심판주 곧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 본인으로써 알려줘도
농당으로 다들 아는 겁니다 즉 여전히 믿는 구석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라는 거죠
그 정도로 우리는 교만하고
목이 곧은 밷성으로써
애굽에서 탈출할 마음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서도 양다리로 한 쪽 다리는 부자 애굽
한쪽다리는 역시나 약속의 자녀로 둘 다 걸쳐놓고 있기 때문에
그 양다리 걸어넘어뜨려 찢어야 하는 겁니다
빵구멍 뻘 뚫는 공백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마침 우리가 올해 25년 1월 1일에 녹음한 설교 그것이 1월 12일 주일에 올린 글에 나오는데이스라엘에게 아무리 축복을 줘도 배부르자마자 바로 교만해져 버린다 라고 언급했다 말이죠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전쟁 (오징어전쟁, 십자가룰렛) (호 13, 4- 8)
호세아 2023 2025. 1. 11. 19:09

https://crosslamb.tistory.com/391496

23-29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게임 (오징어전쟁, 십자가게임) (호 13, 4- 8)
2025. 1.12.

〈호세아 13, 4- 8,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8쪽〉 

(호 13:4, 개역)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 13:5, 개역)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호 13:6, 개역)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호 13:7, 개역)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호 13:8, 개역)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나 외엔 구원자가 없다 다른 신은 없다 라고 나만 신이다가 먼저 떳기에
다른 신을 들추어내는데 있어서 그 다른 신의 교만을 그 목이 곧은 백성의 목을 꺽는
마음을 낮추고자 목을 꺽는 분만이 나를 제대로 심판하시는 분만이 진짜 신이다 하나님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명기 율법은 출애굽기 십계명과 다르게 차이 간극 공백으로써 다가오는
언약의 코스를 밟게 하신다 라고 했지요
즉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의 신학은(호세아가 공격하는 북이스라엘 신학말이죠) 먼저 1 인간이 있고 곧 존재죠 지난주 로마서에서 육인 이스라엘이 나 이스라엘 맞다 거봐라 나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답게 하고자 열심을 내고 있다 라고 우기죠
2 두 번째 코스는 그 인간에게 언약이 주어져서 언약을 지키면 축복을 받는다 약속했고3 세 번째 코스는 진짜로 언약대로 축복이 주어지고
4 네 번째 코스로 그 축복을 받는 순간 바로 미끄러져서 마음이 교만해지더라 말이죠
5 다섯 번째 코스로 그래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게 되더라 라고
이 다람쥐 챗바퀴의 의문의 반복된 코스를 밟게 되더라 말이죠

바로 이것이 마음이 교만한 저 애굽의 교만을 절차밟는 모든 인간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의 율법은 다른 코스를 밟게 하신다 라고 했지요
첫 번째 코스 인간으로 출발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능으로써 죄인으로 출발하는 겁니다
이것이 삼분의 1인 축복만 먹는게 아니라 저주요 저주요를 함께 먹는 삼분의 2도 다 먹이시는 말씀 곧 언약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있고 즉 인간이 있는게 아니라 나 있음이 아니라
주님이 부르시는 죄인이 있고 (나 있음이 먼저 있는게 아니라 주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심판주가 부르시는 죄인 의사가 부르시는 환자가 의사가 먼저 되심을 말하기 위해서 뒤에 죄인이 뒤에 있고) 
두 번째 코스로 그 죄인에게 언약 약속을 하셨고
세 번재 코스 그 죄인에게 첫맹세 첫사랑으로 핏덩어리야 제발 살아라 라고 정말로 첫언약대로 축복을 받는 죄인 주제에 축복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축복 받는
네 번째 코스로 아니나 다를까 축복 받자 마자 마음이 교만해 지게 되고
다섯 번째 코스로 마음이 교만해 짐으로 인해서 언약대로 저주를 받더라 말이죠

이게 죄인을 통해서 심판주가 누구신가를 말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거룩을 심판주 되심을 나타내더라 말이죠
이것을 말귀를 못 알아 먹으니까 에라이 바울아 그럼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난다는 말이가 라고 하나님의 의를 거룩을 선하심을 자신들의 선함과 또 자기들 멋대러 연결 시키고자 하는 동일성 합일성 이게 교만인데
그 교만을 꺽고 심판하는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치 않더라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는 저주요 저주요 라는 이 삼분의 2의 저주는 냅따 버리더라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이 그래서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를 모르고
도리어 7에 70번의 용서를 퍼붓는 모욕적인 용서가 무자비한 용서 없는 용서가 
바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심판 주가 누구신사를 환자의 자리 죄인의 자리
처음자리에서 나타내도록 하심인데

우리는 남 7번 용서는 굳이 교회나 성경 아니고서도 세상의 윤리 도덕 모든 종교에서 외치기에 낮설지않은 보편적 진리로써 우리 육체의 소욕과 딱 맞아 떨어지는데

도리어 7에 70번의 용서는 오로지 성경에서만 외치는 인간의 교만을 제대로 꺽어버리는
그 분만이 진짜 신이다 나만 신이다 라고 외침으로 인해서 보편적진리를 깨뜨리는 구체적보편적진리로써 우리 육체의 소욕과 전혀 안 맞는 성령의 소욕으로써 증거되는 겁니다
그래서 죄인으로써 언약이 죄인을 다루는데
우리는 나 인간 답잖아 라고 인간 이라고 우기면서 거꾸로
언약을 다룰려고 하는 교만 뿐인 그 교만이 애굽을 꿈꾸고 나만 그런가? 바벨론을 몽둥이고 교만으로 깨뜨리고 그 바벨론 교만을 또 너 같이 생각하는 메데 파사로 뿌수고 이렇게
내 어버지를 죽인 원수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구나 라고 개그코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원을 그리서면서 인간의 복수심인 남 7번 용서한 놈이 서로의 꼬리를 물면서 빙빙 도는 겁니다
이 교만 무슨 수로 해결하냐 말이죠 해결했다 라고 하는 순간 또 한 놈이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 라고 또 꼬리를 물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또 빙빙빙 도는
의문의 반복인 뫼비우스의 띠를 반복하는 겁니다

마침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이 또 언제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는고 하니지지난 주 였던 가요? 호세아의 예언
마침 제가 실수로 이거 초반에 깜빡하고 빠뜨리는 바람에 뒤에 설명이 어려워서
다시 보충한 내용의 설교파일을 올려서 이 실수 덕분에 오늘 고맙게도 
이 교만을 해결하는 정답을 원인 없는 결과로 여러분과 누리도록 해 주시는데

https://crosslamb.tistory.com/391500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호세아 2023 2025. 1. 31. 14:48

23-30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2025. 2. 2.
 
호세아가 세가지 예언을 언급하면서 여백을 채우고자 임금 세웠는데
정작 진짜 임금은 백성 보다 먼저 있어서 자기 백성을 새로 만드는데
뱃구멍이 빵구멍난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로 만드시는 그 왕이 옴으로써
그 교만 그 음부의 권세를 해결한다 
원인 없는 결과로써 말이죠

그래서 그 내용을 잠깐 글 중의 내용을 언급해 보면

[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왕이 없어서 라고
사사기 전체 주제로 나오는 겁니다

(삿 17:6, 개역)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개역)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결국 이스라엘의 특징인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왕 하나 잘 하면 백성이 다 잘 되고
왕 하나 잘못하면 백성들 다 죽는 겁니다 지금 한국 보세요 왕꼬라지 하고는 ㅋㅋㅋ

그래서 백성이 먼저 있기에 왕은 이 백성의 여백을 채워줘야 한다는 식으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삼고자하는 우상숭배인 
자기 구원의 탐심을 추구하는 자요

그 반대로 왕 하나 잘 하면 전부 다 잘되는
(결국 오늘 본문의 예언은 세가지로써
해산하는 여인에게서 어리석인 자가 태어나고
(호 13:13, 개역)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두 번째로 왕을 연달아 페 하는 일
(호 13:11, 개역)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세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과 재앙과 멸망에서 장차 구속한다가 연달아 나오는데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이 세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보면
혈육에서 난 인간 왕은 하나님이 인정치 않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 배를 채워줄 임그을 찾아 왕으로 세움에 있어서 인간 세상의 죄악을 빼버리고 간과하기 때문에
결국 사망과 저주 멸망 심판이 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제대로 된 왕이 오면 더 이상 사망과 저주 심판은 없다 라는 겁니다 )

원인 없는 결과로써의
공백으로써의 왕인 십자가사랑
곧 용서없는 용서의 왕
무자비한 용서

즉 인간의 용서를 없애버리는 용서
남 7번 용서를 없애버리는 7에 70번의 용서인 뻔데기 앞에 주름
그가 나 보다 옳았다를 이루시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가 먼저 있었다 라는 용서

일만달린트 탕감 비유에서
인간은 일만달란트 용서를 받아놓고서도 이 용서를 버려버리는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


결국 자기 배를 위하여 우상숭배 곧 배 채우기 위해서
여백채우기로 왕을 세웠는데
도리어 그 왕이 인간 왕 치고는 교만 하지 않는 자가 없다 말이죠
섬기는 자 없어요 왕 제도 자체가 그래요 딸을 빼앗아 궁녀로 부려먹고 성노리개로 이용하고
아들은 노예로 아니면 군사로 총알받이로 사용하는
결국 임금을 이용해 먹을려다가 도리어 이용당하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넘어가는
누워서 침뱉는 교만한 우상을 세우다가 도와달라고 손을 그리고 일으켜 달라고 팔을 그림 그렸다가 도리어 노예가 되는 식인데

갑자기 그 저주를 거쳐서 제대로 된 왕이 세워지니까 갑자기 그 저주 속에서
그 심판 속에서도 그 멸망 속에서도

[

세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과 재앙과 멸망에서 장차 구속한다가 연달아 나오는데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

구속을 벌리시는 속량자가 음부의 권세에서 
교만에서
사망에서
재앙에서
음부에서
멸망에서 구속이 벌어진다는
심판 속의 구원을 원인도 없이 벌어지는 이 약속의 자녀를 이유 없이 새피조물로
새언약의 증상물로 만들어 내시는 이 창조주를

부른 적도 없는 자에게 부르신바 되고
찾은 적도 없는 자에게 찾으신바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이 사랑을 일방적으로 퍼부어서 생겨나는 증상물을 나타내심에 있어서

인긴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도록
도리어 교만 밖에 없었던 사망의 몸 지옥의 몸 환자의 몸으로 들통당해
교만한 자로써 목이 꺽이어짐을 당하도록 하는 섬기는 왕의 먼저 되심의 증상물로 나중에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나 있음에서 출발한 먼저 됨을 팔을 어긋맞게 해서
너는 오히려 교만한 자로써 먼저되신 여호와의 팔에 꺽이어짐을 먼저 당하는 기능으로써 등장하지
존재를 우길 자격 이나 권리 자체가 아예 없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여백채우기를 하는 남 7번 용서하는 성화론자나 바리새인이라는 교만한 자의 마음을 낮추시는

공백 간극 벌리기 빵구멍 내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는
언약이 먼저 왕이 먼저 7에 70범의 용서의 임금이 먼저 있었다 라는 겁니다
이 무자비한 용서 없는 용서의 왕이 아니면
교만이라는 의문의 반복 그 미완료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 공백의 의미로써 교만한 부자를 지옥에 갈 대표자로써 부자를 언급하셨던 예수님처럼
오늘 본문은 구약 에스겔에서는 모든 열국의 대표 바로 애굽을 언급하시는 겁니다
에스겔 당시의 애굽이 아니라 출애굽 때의 애굽 바로 왕을 악어로써 표현하셨듯이 말이죠
사람들 마음에 이미 마음판에 박혀 있는 목표이다는 겁니다
아니 그 당시 애굽은 바로 가장 강국인 바벨론 아니냐 말이죠
그 바벨론이 자신들의 원조인 애굽을 친다? 그것도 그 당시 애굽이 아닌
출애굽 때의 바로 왕을?
아니 안 보이는데 무슨 수로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바벨론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들의 애백채우기가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누워서 침뱉기를 하도록 만드시겠다?‘
아니 그런 멍청한 짓을 누가 하겠느냐 말이죠
하나님 참도 농담도 잘 하셔
아니 주의 오른팔이 먼저 떳기에 그럴 수밖에 없도록 하시고
아니 그럼 증거 대라 증거 라고 했을때에
괜히 이스라엘 멸망 시킨 것이 그 증거로써 그들 바벨론도 멸망하도록 하시겟다 라는 겁니다
아니 애굽을 바벨론을 통해서 멸망 시켰는데 모든 열국이 그 뚫힌 빵구멍에 의해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서 이 세상은 빨래 끝 이 된다 라는 겁니다
어차피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이
애굽을 추구하기는 맹 마찬가지 이니까 말이죠
에이 그럼 이스라엘도 망했으니까 피장파장이네 뭐 라고 했는데
어라 예수 안에 감춰둔 새이스라엘이 있으니까
더더욱 이를 갈면서 격동하고 세상이 견디지를 못하는 겁니다
저 놈 내 발 밑에서 노예짓을 하던 거지 나사로였는데
저 년 내 발 밑에서 하수 노릇 하던 노예 걸레 신데릴라 였는데?????

그 천한 계집이 왕비가 된다고 안돼 안돼 그러면 안돼 안돼 낼 모래면 시험정답쓸기간이야 안돼 ~~~~ ㅋㅋㅋ


바로 이것이 지혜자가 먼저 떳기에 나오는 증상물이다는 겁니다
그카이 지혜를 소유할려는 헬라인 이방인도 이스라엘 덕분에
이 심판 속에 놓여져야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지금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이 언급되지도 않고서도
애굽과 바벨론 저거들끼리 멸망시키고 뭐 이런 내용으로써 나온다는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것도 이스라엘이 믿지 않는 여호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교회 사람들이 믿지 않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이 창조주를 믿은 적도 없었던 그 여호와
여호와가 누군지 조차도 모르는 이스라엘
요즘으로 치면 오늘날 교회가 구세주로 예수님을 믿은 적도 없이 그저 돈 돈돈 만 구세주로 믿었고
그카이 예수님이 누군지 조차도 전혀 모르는 교회처럼 성화론이나 실천하는 종교오락마약중독차처럼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라는 식으로
즉 이 말은 이방나라에게서 조차도 심판 주가 되시겠다 라고 말이죠
부른 적도 없는 자들에게 부르신 바 되시고
찾은 적도 없는 자들에게 찾으신 바 되신다 라는

이 하나님의 의를 즉 공백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자로써
이방인들에게까지 다 관여하시겠다 라고 하심에 있어서
누가 제일 반발할까요?

놀랍게도 이스라엘 이였듯이
오늘날 교회도 제발 그냥 이방나라 냅뚜고 우리끼리 지냅시다 라는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카면서 지는 세속된 이방과 교류하면서 뒤로는 우상을 따로 섬기고 있으니
사탄의 깊이를 대충 대충 얇게 밉잡아 보고
하나님의 깊이도 대충 대충 얕잡아 보더라 말이죠

왜? 여백을 채워야 하니까 말이죠
자기 배를 위하여 우상을 섬기고자 예수님 까지 임금 삼고자 함이니까 말이죠

바로 이것이 교만입니다
내 쪽에서 예수님을 임금 삼으로써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유지할수 있다 라고 보는 겁니다
흔히 목사들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죽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들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거지요
바로 이런 사적인 관계회복을 통해서 유지상태를 이어감으로써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나아갈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바로 사적인 개인적으로 자기하기 나름이다 라는 것이
지난 주에 언급한 실존주의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 라는 주장인 겁니다
존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라는 거죠
과연 개인의 자유가 있을까요?
과연 강요된 선택은 아닐까요?

이런 교만이 바로 애굽의 교만으로써 그 교만을 꺽는데 있어서
바벨론을 사용하시고 그 바벨론이라는 금신상을 역시나 꺽기 위해서
은신상 메데 파사를 사용하시고
또 은신상 메데 파사의 교만을 꺽기 위해서 동신상인 그리스가 동원이 되고
그 그리스를 꺽기 위해서 로마가 철신상가 동원이 되고
그 로마를 꺽기 위해서 열국이 철과 흙으로 된 신상으로 동원이 되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꺽는 뜨인돌이 나타나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죽음이라고
사적으로 보는 그 죽음 개념을
주님은 사적인 개인개념으로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상대적인 두 언약으로써의 한 세트로써
모든 인간은 집단적인 죽음으로써 태어나
진짜 제대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서 죽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진짜 죽음을 무시하고서 사적인 개인의 죽음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사적으로 좁게 보는거냐 말이죠

이런 교만과 아까 언급한 사르트르의 자유 또는 선택은
흔히 부자가 좀더 자유롭고 부자가 선택이 좀더 선택할 가능성을 더 많이 가진다고 보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 부자와 같은 애굽이라는 강대국은 오히려 자유나 선택 등등이 더 많이 펼쳐지는게 아니라 그들의 교만이 오히려 주님의 심판에 더 한세트가 됨으로써 동원이 된다는 겁니다

강대국이나 선진국 또는 민주주의 발전한 국가일수록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더 많이 추구할수있도록 국가나 보장해 준다고 하지만
지난 주에 그래서 왕을 자기 개인의 여백을 채우고자 도움을 받고자 임금을 세우지만
정작 국가 또는 임금이라는 왕은 도리어 그런 개인을 노예로 삼는다고 했지요
그런 것을 알고 노예가 되지 않고자 정치를 하게 되면 부자 또는 귀족이 되는
왕의 DNA을 소유해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말이죠
그러니 노동자나 아니면 불가촉천민에게서는 자유나 선택이란 있을수 없지요

그래서 다들 부자야 말로 가장 자유를 천민보다는 많이 누리고 있고
선택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라고 그러니 구원받은 자 선택된자 라고 보고 있고

본인들도 마치 마음껏 자유롭게 활동할수 있는냥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보고 있기에

예수님에게 어릴적부터 환경적으로 자유롭고 천민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 라고 남들이 다 부러워 하는 모습과 조건을 갖추었다 라고 하는 겁니다
또 선택도 마음껏 하는 모습으로써 혹시 부족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라
나는 그것을 채우는 식으로 그 부족분 여분을 채우겠다 라고 선택을 하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사르트르의 주장과 딱 맞지 않습니까?

실증주의 실용주의 실존주의
원인에 따른 결과 그리고 실제 활용성 그리고 이런 것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따른 것이 되어야 한다 라고

그러니 말이 개인이지 사실은 모든 인간은 집단적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 그것도 죽음이냐 라고 제대로 된 죽음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나 선택 심지어 죽음도 목숨 걸만한 것도 모든 것이 허상이?? 라고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어서 다루시는 예숭님의 죽음과 맞대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대면하는데 있어서 개인이나 사적인 것이 아닌
집단으로써 말이죠

결국 인간은 개인 하나 잘 되고자 임금을 세우지만
정작 임긍이라는 왕은 인간을 개인 하나 하나의 자유와 선택은커녕
집단적으로 노예로 삼는 거죠

아까 그 목사가 마치 국가의 왕처럼
개인 자영업자 영업장인 하나의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왕의 노예로 삼듯이
말만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라고 하지만
그럻지 않으면 죽음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노예로 삼고자 하는 왕의 심뽀와 같은 트릭 속임수 이다 말이죠

어딜 가짜 죽음 개인 죽음을 운운하면서 사기를 치느냐 말이죠
진짜 제대로 끊어짐을 당한 예수님의 죽음인 이 십자가 앞에서
어딜 그 되도 않는 흐릿하고 모호한 의문의 죽음을 운운하냐 말이죠

율법은 시이소와 같아서 내 구원 내 부자됨을 추구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누구는 불가촉 천민이 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부자됨 즉 교만한 애굽이 됨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잔칫집 추구는 상대적으로 누구를 등쳐먹어서 유지하는 잔칫집이다 라는 겁니다
아런 현실을 까발리는 것이 율법입니다

집단적으로 다 묶어 버렸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율법을 법 지키듯이 개인이 사적으로 법지키기를 하면 된 것 아니냐 라는 식으로
부자들은 자꾸 율법을 지키고 행했다 라고 조건화 해 버립니다 원인에 따른 결과를 했다 라고 우기지요 이게 실증주의 확실한 중거인 원인을 갖추었으니까 결과는 뻔하지 않느냐 라고 나오더라 말이됴

그런데 어라 결과는 갑자기 생뚱맞게 개인의 실적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이 떡 하나 나오는 겁니다
다들 개인적으로 율법을 지켜서 모세의 자리에 앉으니까 졸지에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답이 나오더라 말이죠

관계를 회복한게 아니라 도리어 회복불가의 살인으로 이어지니
이것이 여백 채우기는커녕
교만으로 인해서 지도 천국 안 갈라고 하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가로막은 셈이 되는
등쳐먹기로 드러나더라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 덕분에 살인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도리어 그 말을 배운 학생의 목숨을 빼앗는
이 공백의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게 되더라 라는 겁니다
살인으로 드러나니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더더욱 빵구멍 뻥 뚫혀버려서
하나님의 형상 회복은커녕 새는 바가지로 들통나는 겁니다

율법은 바로 이런 집단적인 모든 인간의 교만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그래서 사망의 몸 지옥의 몸 살인의 몸임을 드러내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사적인 개인의 몸이
의롭다 건강하다 라고 우기는 그 빈칸 채우기가
부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질문이 무엇을 해야 구원 얻습니까 라고
어린아이에게서 나올수 없는 질문인 빈칸 채우기에
바로 이런 애굽의 교만에 더한 교만한 놈이 그 교만을 부수고
또 그 교만은 다른 더 교만한 놈이 부수고
그렇게 여백을 채울려고 하면 할수록
부자가 창고를 늘리고 늘릴수록
더한 도적질을 도적질 하지 말라 라고 가르치는 더 강한 선생인 지혜를 선함을 펼치는 자에게서 빼앗김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뭐 이것을 자유경쟁이라고 또 자유라고 붙이고 있고
싫으면 선택하지 않고 그들의 영역 그들의 리그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라고
선택권을 주는 듯 하지만 다른 모든 길을 다 막고서는 마치 선택을 자유를 주는냥
오징어 게임 투에서 게임을 계속 할지 그만 할지 계속 오 엑스 선택권을 주는 듯 하지만
이미 법 자체가 선택권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더욱 그 강요성에 얽매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애초부터 없었던 선택이요 자유인데 말이죠 처음부터 죄의 소원에 의한 강요인데
죽음에 의한 사망 권세에 의한 강요인데 무슨 놈의 선택이나 자유이니 운운하느냐 말이죠
마치 개인의 권리가 있는냥 사적인 것으로 보니까
사적으로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다 끌어오는 겁니다
하나님도 성령도 예수님도
십자가 곧 예수님의 죽음도 모조리 개인의 한계를 채우고자 끌어와서
자기 유익을 구하는데 이용하더라 말이죠

그런 예수님의 죽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임은 십자가는 모든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데 성공 했습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구원은 없는 거지요
그런 구원이야 말로 탐심이요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니까 말이죠
당연히 구원 안된 나 라는 개인이 아닌
구원 된 나를 추구하고자 하는 그래서 그 탐심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고자
예수님을 죽음을, 십자가를 끌어온다?

도리어 올무에 걸려든 줄도 모르고 말이죠
율법이라는 올무요 십자가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개인의 성공도 십자가의 다 이루심 앞에서는 단 하나도 맞는 것이 없는 허구요
언제 다시 무너질찌 모르는 또 불안이요 미완료이니
백날 빈 칸에 답을 적어본들 미끄러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빵구멍 난 빈칸에 백날 연필로 답을 적어도 글씨 자체가 쓰여지지 않는
빈공백에 글씨 정답적기인 거지요

그래서 울어야 하눈데 지옥의 몸이라 종이만 만나면 종이가 타 버리는데
답안지에 답을 적고자 해도 불가촉 천민
닿았다 하면 타버리는데 말이죠

연필 접촉 자체가 불가한 겁니다

정답을 머리로 알아도 소용이 없어요 답을 쓸 종이를 태워버리는
불타는 몸 육체 이니까 말이죠 불가촉육체 불가촉 죄인
죄인 중의 괴수이니까 말이죠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반칙 중의 반칙 밖에 없어요
용서 없는 용서 밖에 없다 말이죠
불륜 중의 불륜 밖에 없어요

어떤 놈이 댓글로 비아냥 거리면서 내로남불이라고 전체 글에 대한 비평을 하던데
그것을 이제 알았냐 라고 했지요
내불 남로 되지 않으면 저 놈의 내로남불이라는 강요된 선택에 다 속는 거지요
자기는 살았다 라고 우기는 겁니다

십자가는 모조리 다 죽이는 것인데 살았다 라고 우겨본들
그저 빈칸 채우기 밖에 안되는 거죠

내로남불을 빵구멍 뚫어야 비로소 내불남로로 구원되는 겁니다

그래 그래 니는 의인해라 나는 죄인 될란다 
그런 의인 백날 되면 뭐합니까 지옥갈 뿐인데

어떤 무식한 장로는 또 자기는 죄인 되겠다 라고 설쳐대는 겁니다
아니 주님이 죄인으로 만드셔서 부르시는 것은 냅따 발로 차 버리고 말이죠

그렇게 죄인이 되었다 라고 우기다가 막상 남들이 인정 안해주니까
어라 복수심을 펼치는 겁니다 대 놓고서 말이죠
그래놓고 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해서 다시 의인 되기로
끼리끼리 모인 자기를 인정해주는 곳에 가서 또 의문의 반복인 여백채우기를 하는 겁니다
부자청년이 무엇을 해야 구원 얻습니까 라고 하듯이 말이죠

(마 19:16, 개역)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 개역)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개역)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개역)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린아이처럼 다시 성령으로 태어날수가 없는 겁니다
평생 빈칸에 정답 쓰겠다 라고 나서는 교만으로 똘똘 뭉친 네 짐승 네 신상인 거지요
뜨인돌에 걸려 넘어져 벌써 이미 심판 받은 겁니다

(마 19:13, 개역)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마 19:14,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마 19:15, 개역)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마 19:16, 개역)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7,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8, 개역)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말라,
(마 19:19, 개역)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 19:20, 개역)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1,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개역)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3, 개역)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4, 개역)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 19:25, 개역)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6, 개역)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 19:27, 개역)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 19:28,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 19:29, 개역)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30, 개역)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어떤 무식한 양탈쓴늑대교회 목사사모처럼

(마 19:17,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거봐라 계명 지키라고 했잖아 라고 단어문장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또 반전인 이유가

(마 19:26, 개역)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사람은 할수 없는 것을 제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반전이 또 일어나는 데 있어서
베드로는 했다 라고 우깁니다

(마 19:27, 개역)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 19:28,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 19:29, 개역)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19:30, 개역)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베드로는 우리는 행하고 지켰다 라는 것에 대한 보상이 뭔가를 물었을때에
주님은 과연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감당 안되는 말씀만 하시는 겁니다

버렸기에 더 더 더 더 많은 것으로 채워달라는 베드로의 요구에
정작 주님은 빵구멍 내는 것들을 주시겠다 라고 하니까
본인 부터가 먼저 빵구멍 당해야 하는 판국에 놓여진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자기 배 빈 터를 채우는 보상인줄 알았는데
주의 이름에 도리어 빵구멍 당하는 것이 상장이다 보상이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빵구멍 난 배처럼
굵은 베옷으로 계시록의 두 증인(모세 엘리야)은 가리운다 말이죠
회개한 자 이다는 겁니다
회개를 실천했다가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의 뿔로 십자가로 빵구멍 당하니까 비로소 우는 자가 되었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니까

자기 배를 위하여 살고 싶어도 살수 없는 빵구멍 당한 배이기에
굵은 베 옷을 입어서 가리움을 당해서
이제는 자기 배가 아닌 여백이 아닌

도리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빵구멍 내는 자 라는 기능을 은사를 선물 보상 받더라 라는 겁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우면 세례요한은 신들메 풀기도 감당이 불감당 불가촉이다 라고
접촉불가 신발끈도 손으로 감히 접촉하기에 감당이 불감당이다 라고 말이죠
안타죽는것만 해도 다행인줄 아는 감지덕지 이다는 겁니다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하는 것을 영광으로 누리는 겁니다
그는 로맨스요 나는 불륜임을 누리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우는 자가 되어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빵구멍 난 자의 공통된 집단 고백인 반면에

사적인 개인 구원을 시도하고 자꾸 빈캄에 여백에 정답을 써넣고자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겠냐 라고 자꾸 나오는 자는

자신이 심판받아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으로 보는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의 또렷함에서 나오는 시선이 아니기에
자꾸 뭘 해서 정답을 써 넣겠다 라는 자체가 교만이요
그 대표성이 부자 곧 선 줄로 아는 자
먼저 되었다 라고 착각하는 자 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눅 10:29, 개역)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눅 10:30,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1, 개역)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2, 개역)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3, 개역)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 10:34, 개역)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눅 10:35, 개역)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 10:36, 개역)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7, 개역)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더러운 시체에 가까운 죽음을 만질수가 없는 겁니다
누가 이웃이냐 말이죠 자기를 옳게 보일려고 한 자는 이미 탈락입니다

질문자는 튕겨버린 채 오로지 정답만 남겨진 겁니다

멋들어진 번제와 제사가 아닌
모욕적인 빵구멍 당하심입니다

이것이 경건의 모양 곧 껍데기를 갖춘 부자와 같은 교만
애굽과 같은 교만과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능력을 받은 자는 비로소 자기부인을 하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였도다 자기 배를 채우는 그 우상이 박살이나는 빵구멍 뚫임으로
왜 망해야 할 자인가 라는 것을 십자가의 죽음을 보고
개인 죽음 운운하고 개인 구원을 운운한다는 자체가

제대로 끊어진 주님 앞에서 얼마나 배불러 터진 소리인지를

유땡민이라는 거짓선각자가 하는 말이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 아주 당당했고
예수는 비겁한듯한 어찌하여 버리냐 라고 피할려고 한
인간의 한계점을 보여줬다 라고
누가 봐도 소크라테스 형이 승 한판승
유도 라는 운동경기에서 심판용어로 쓰이는

Ippon: 10점(한판) 잇폰
Waza-ari: 7 점(절반) 와자리
Yuko: 5 점 유효
Koka: 3 점 효과

예수는 절반이다 말이죠
소크라테스 형은 10점 만점에 10점 한판 이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웃끼는 개가 웃을 소리냐 말이죠
인간 개인의 죽음을 감히 예수님의 죽음인
모든 육체를 못 박는 죽음과 비교를 하다니 ㅋㅋㅋㅋㅋ
그래놓고 백성의 선각자 이냐 말이죠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데
왜 지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가로막고 있는지
사탄의 자식 바리새인과 같다 말이죠
너거 아비는 마귀다 말이죠

테스 형의 죽음이 얼마나 멋들어진 죽음이냐 말이죠
십자가의 어리석고 미련한 모욕적인 죽음은 죽음 축에도 안든다고 보는 거죠

(고후 5:13, 개역)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후 5:14, 개역)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5, 개역)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개역)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개역)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전 15:45, 개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첫 사람 아담이 모든 인간의 조상이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듯이 개인의 선택이 없었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첫 아담 안에서 죽음이 퍼져서 다들 죽게 되었듯이
그런 개개인의 개인의 죽음으로써 한 개인인 나를 그리고 나의 죽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닌

결국은 애굽의 죽음 그 애굽을 죽인 바벨론의 죽음 바벨론을 죽인 메데 파사의 죽음
메데 파사를 죽인 그리스의 죽음 그리스를 죽인 로마의 죽음으로 점점점 모든 인류로 퍼짐에 있어서 단 한 분의 죽음으로 모아지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 단 한분의 죽음만이 모든 육체를 못 박는 제대로 된 죽음이니까
제대로 끊어지심을 당한 분이니까 내 개인의 죽음은 그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꼴인 겁니다

그러니 다윗의 운명이 이스라엘 전체로 확대가 되어서
그 꺽으신 뼈로 상하고 통회하는 자로써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로 다윗 개인의 운명을 전체 이스라엘이 격어야 하듯이
지금 에스겔서의 상황이 그래서 포로 잡혀가서 목격자가 되는 겁니다
이 다윗언약에 주변 나라 또한 멸망함으로써 우는 자가 되는 거죠
어제까지 아무리 웃어본들 뭐합니까? 오늘 하루 아침에 쫄딱 망해서 우는 판국인데 말이죠

자 이 모든 죽음이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에게 까지 적용이 됨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마지막 아담의 살려주심을 격어야 하는 판국에 놓여지도록 하시는 겁니다

즉 살려주는 영이란 믄 말입니까? 예수님이 아니면 계속 죽어있는 상태였다는 거죠

그러니 죄인 환자를 부르러 온 구원자요 의사인데
디들 나 안 죽었다 아직 덜 죽었다 나는 죄인 아닌 의인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생생한 건강한 자이지 환자 아니다 라고 여전히 개인마다 다 다른 자신의 상태를 언급할때에

예수님은 살려주시는 영으로써 먼저 떳기에
모든 인간을 죽은 자 취급하심으로써

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공백에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신다 말이죠

이 모욕적인 십자가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다 말이죠

제대로 된 죽음인 십자가 앞에서 빵구멍 뚫혀야 비로소 번제와 제사를 손 떼고
인애와 자비를 쳐다보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뭡니까 나 원수 맞습니다 라는 겁니다
인애와 자비 라는 사랑 앞에서 나는 무조건 원수입니다
가짜입니다
죄인입니다 라는 거죠 죽은자 지옥의 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한 몸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 유땡민처럼 테스형의 멋들어진 죽음을 예수님의 모욕적인 겁먹은 죽음과 비교를 하면서 운운하는 이유는
여전히 빈칸에 모욕적인 십자가를 정답으로 쓸려면 자신도 부끄럽고 쪽팔리는 겁니다
적어도 정답을 쓸려면 멋들어진 답 모범이 되는
제대로 빈칸을 꽉꽉 채우는
정중앙처럼 야무지게 먹어야지 배채워야지 라는 것이
단 한번도 씹어보지 못하고 죽는 탐욕의 무덤인 기브롯 핫다아와처럼
아니 죽음을 얼마나 얕잡아봤으면
죽음도 멋들어진 죽음이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그렇게 죽은 부자가 제발 선지자 보내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아니 이미 주변에 깔려 있었던 거지 나사로를 아무리 곁에서 봐도 무시해놓고서는
왜 저런 부탁을 하는지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아직도 배불러 터진 소리를 하더라 말이죠
죽음이 배불러 터진 멋들어진 지옥으로 보이냐 말이죠

갈기 갈끼 제대로 찢겨지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그 부끄럽고 모욕적인
싫어버린바 되고 다들 고개를 돌리는 새까맣게 타버린 병든 얼굴로
무덤 속에 들어가는데 무슨 놈의 멋들어진 여백채우기냐 말이죠

자신은 그런 원수 아니다 라는 거죠 믿는 구석이 있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손에 접촉이 된
자기 의를 쌓은 모습인데 오늘날 성화론이지요 이게 바로 교만이다 라는
사망의 길로 향하는 모습이다는 거죠

어딜 십자가가 밝히 또렷히 보이는데 어딜 자기 의를 쌓았다고
의인은 없다니 하나도 없고 다 치우쳐져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서

왕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지는 백성이 아니라
백성으로써 기존의 왕을 임금 삼아주듯이
하나님 믿어주마
예수도 성령 너도 믿어주마 라고
반칸 채우기 하듯이 성경 읽기표 한 장 한 장 빗금 표시 하듯이
빈캄 채우기를 하는 겁니다 10잔 마시면 보너스 한 잔 더 받듯이
실적 쌓기를 하듯이 말이죠
그것이 알뜰하다 참으로 잘 아낀다 라고
이래도 인정 안해 줄꺼냐 라고 인정 안하면 복수심에 끝까지 따라가겠다 라고 말이죠
그렇게 빈캄 여백 채우기가 바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교만이다 말이죠
죽음이다 라는 겁니다

베드로도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장지지겠다 십자가에 함께 죽고자 끝까지 따라가겠다 라고
자기 쪽에서 관계를 계속 회복시키는 관계유지를 시도하지만
그래서 빈칸에 정답을 부인하지 않기 장지지기 끝까지 따라가기 라고
정답을 쓰지만

정작 주님의 제대로 된 죽음인 이 십자가 앞에서는
그 정답 앞에서는
그 공백 빵구멍 앞에서는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관계유지는커녕
점점점 그 간극이 더 벌어지는
나는 뭘 해도 교만한 자 이구나 라고

그 정답에 맞는 문제아로만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교만을 그 죽음을 그 저주를 대신 감당하시고자 죽으셨다 라는 겁니다

(요일 4:10, 개역)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 사랑 곧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
곧 화목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고후 5:14, 개역)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5, 개역)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죽니 내가 살아있니 라는 것은 죽음도 아니요 산 것이 아닌
도리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의 죽음만이 진정한 죽음이요 그 앞에서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도다 라는 개인적인 사정이 하나도 심각한 것이 아니게 됨이요
아이고 쳐다 본다고 사느냐 라는 그 살아난다 라는 개인적인 생명유지 상태
생명과의 관계회복유지 상태는
예수님의 다시 사심 앞에서도 산 것도 아닌 생명 아닌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내가 뭘 잘못해서 저주가 오나? 죽음이 오나?
내가 참 이것을 잘해서 축복이 오나? 행운이 오나 라는 이런 모든 판단 자체가
교만으로써

그 정도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지 못하는

니가 아무리 완벽하게 다 갖추어도 딱 하나 빠졌다

예수님의 제대로 끊어지심 당한 죽음
너희 손에 죽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주가 되게 하신 그 생명의 주 되심

바로 이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른다는 그 자체로써
죽니 사니 운운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를 모른다 라는 것

아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쥐 뿔도 아는 것이 없군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전혀 모르고 있군요 라는 것을 알게 하실려고
죽으셨다 라는 사실

내 생명만 알면 그만이고 내 죽음만 알면 그만이고
내 구원만 알면 그만이고 내 저주만 심각하다 라는 것이
다 헛된 허구였고

진짜 실상은 전혀 볼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음을
이 교만을 처리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라는 사실로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비로소 예수님의 죽음 덕분에

참된 이스라엘 곧 출애굽을 탈출한 저 죽음의 세계를 탈출한
예수님이라는 본향의 마음 본래의 남편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본래 본향의 마음을 그 잃어버린 마음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도 없이
그저 이 애굽과 같은 지옥의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차서

쓸데 없는 안개 허구 헛된 허상의 생각인
내 개인 구원
내 개인 저주

그런 쓰잘데 없는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서 숙제하겠노라 라고
빈캄에 정답 써 넣겠다 라고
교만한 부자청년처럼
교만한 애굽나라처럼
다들 죽음의 현실을 회피하고자
그것도 되도 않는 죽음을 회피하고자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베드로처럼 끝까지 관계유지하겠다고 십자가에 따라가겠다느 둥
탕자의 형 맏아들처럼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는 둥

이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죽음의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 나오니
정금은커녕 불순물 찌끼 혼합물로 다 밝혀진 오예물 교만 이였다 말이죠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온 사랑은
대신 모든 허물을 다 짋어지셨던

(고후 5:14, 개역)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5, 개역)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 모욕적인 빵구멍 뚫는 저 따위 자기 의를 쌓는 그것 다 뚫어버리는 모욕적인 이 화목제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라는 사실로

얼마나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모른다 라는 것을
그래놓고 안다고 우기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라는 이 교만을

이 교만을 대신 감당하시고자
내 죽을께 너 제발 살라라고 하신

이 살려주시는 화목제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였다 말이죠
사람의 손으로 세우는 교회 마다 모조리 다 소돔과 고모라
곧 강도의 소굴이였음을

이것이 개인의 숙제러 달성할 빈칸채우기가 아닌

본래의 남편의 마음으로 하나된 집단탈출한 본래의 이스라엘을
예수님 단 한분만으로 이루신 집단 이스라엘의 자리입니다
본향의 자리 입니다

무슨 수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저 애굽의 교만의 자리
죽음의 자리
심판의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날수가 있겠습니까
딱 우리의 모슺을 적나라 하게 다 보여주는
우리의 속내 그 자체 인데

나만 구원 되면 그만인 이 더러운 세 땡 이 아닌 이 더러운 나 인데
고맙게도 주님이 마련해 주신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는 없고
집단 이스라엘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자리 그 처음자리를
육적 개인적 사적인 이스라엘은 출애굽에 실패해서 단 한 사람도 나온적 없는
그 본향의 자리를
본래의 남편이 고맙게도 애굽을 죽이고
교만을 죽이고
나를 죽이고

내 속에서 이스라엘을 뽑아내어서
야곱의 허리를 뿌수셔서 이스라엘 본향의 이름
본래 남편에 걸맞는 본향의 이름을 뽑아내셔서

집단 이스라엘로써 본향의 원래 자리를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이 본래 남편의 우상 죽이기 교만 죽이기 전남편 바알 죽이기기 아니였으면
사망아 누구를 쏘느냐 라고 그 사망을 죽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미 벌써 소돔과 고모라 지옥 백성에서 탈출할 길이 없이
저런 교만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른채
그저 사적인 개인의 선악에 맞는 엉터리 가짜 예수를 맹글어서
내 믿고픈 것만 믿고 내 보고픈 것만 보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이미 망한 채로 지옥에 갈 뿐입니다

지옥에 가는 나를 지옥에 까지 죽음에 까지 뛰어드신
이 요나의 표적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라는 사실

이 예수님의 화목제 되심만을 자랑하며 노래하며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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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1 하나님 배반한 형벌; 앗수르 칼에 죽는 젖먹이와 아이를 밴 임산부 배 가름 (호 13,15-16)
2025. 2.23.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호세아 2023 2025. 1. 31. 14:48
23-30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호세아 13,15-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89장 새 89 샤론의 꽃 예수, 찬송가 269장 새 522 웬일인가 내 형제여〉 

(호 13:15, 개역)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호 13:16, 개역)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호 13:15, 현대어) 에브라임이 비록 갈대 숲속에서 무성하게 자란듯 보일지라도 여호와의 ㄱ) 동풍이 사막에서 그에게 불어 닥치면 온 나라를 말려 놓을 것이다. 모든 샘물이 마르고 초원이 불타 그들은 목이 말라 죽을 것이다. 또한 창고에 쌓아 둔 귀중한 그릇들을 약탈당할 것이다. (ㄱ.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앗수르의 군대를 가리킨다)
(호 13:16, 현대어) 사마리아는 그들의 하나님께 반역한 죄값을 치러야 하리니 그 백성은 침략자의 칼에 엎드러지고 젖먹이들은 땅바닥에 메어쳐져 깨져 죽을 것이요, 임신한 여인들은 칼로 배가 갈릴 것이다.‘

(호 13:1, 현대어) [우상숭배로 나라가 망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브라임 지파가 하는 말은 온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만큼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런 지파가 바알신을 섬기어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였다.
(호 13:4, 현대어) [죄인에게는 하나님이 맹수와 같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뒤부터 나는 언제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희에게는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고 나밖에 다른 해방자가 없다.
(호 13:9, 현대어) [왕국의 종말] 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를 파멸시키겠다. 그러나 누가 너를 구해 줄 수 있느냐?
(호 13:12, 현대어) [피할 수 없는 멸망] 에브라임의 모든 죄악이 이제 벌을 받기 위해 추수되어 단으로 묶였고 저장이 끝났다.

(호 13:1, 쉬운)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말씀> 에브라임이 경건하게 말할 때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높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을 섬겨 죄를 지었으니, 그들은 죽어야 한다.


먼저 제목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하면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간따나 안 좋은데 더 안좋게 된다 라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오히려 잔인하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서 영적인 강간을 하니까 말이죠
뭐 가장 존경받는 성화론부터 저 저급한 빤스 까지
과거 천주교가 했던 짓들을 그대로 따라하니까 말이죠
배부르면 다 그렇게 됩니다 
아무리 정의를 외치는 사제운동을 펼쳐도 성화운동을 펼쳐도 말이죠

바로 그런 자기들의 말을 안 들어준다 라고 복수를 그냥 하는 정도가 아니라
끝까지 해요 끝까지
자신들의 남들로부터 존중받는 신앙심을 인정 안해 준다고 말이죠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이다 말이죠 자기 이미지 조금이라고 가치를 훼손 시키면
저런 무서운 하나님의 형벌 보다 더 잔인하게 하겠다 라고
자기가 하나님 보다 더 한 자 이다 라고 나서는 겁니다

말이 하나님의 형벌이지 이스라엘의 죄악을 앗수르의 죄악으로 징벌하시는
인간들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누워서 침뱉는
어딜 사기를 칠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라는 취지 인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형벌 마저도 없으면
자식 잡아먹고 부모 잡아먹는 그 짓 마저도 계속할 테니까 말이죠
그것도 하나님 핑계 대면서 예수님을 잡아먹었던 그 증거가
십자가 라는 또렷한 하나님의 저주 아닙니까

뭐 고때만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었겠습니까?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으니
혈육으로 난 자는 다 그렇다 라고 보편화 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다들 선지서로 넘어가면 다들 싫어하는 겁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이런 선지서를 이야기 하면 돈 장사 안 된다 라고
간따나 세계 경제가 안 좋은데 누구 교회 말아먹을 일이 있냐 라고
꺼려하지요
설사 한다고 해도 교회 반이나 떨어져 나갈 각오를 해야 하는데
다들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교회까지 그런 부정한 삐딱한 소리를 해 보세요
지금 평강이다 평강이다 긍정적인 웃음 치료 레크레이션을 전도사들이 기타 들고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왜 저런 잔인한 형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느냐 라고 말이죠

그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희생양을 찾아서 퍼부어 버리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정당성인 명분을 찾는 이유가 바로 모든 인간이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런 부정적인 하나님은 싫다 좋으신 하나님을 선호 한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구약만 믿겠다 라는 유대교 곧 다윗 언약 고만 캐라
모세 언약 만으로 충분하다
십자가 고만 캐라 부활만 이야기 하자 라는 오늘날 목사 즉 과거 천주교를 거쳐서 나온
개신교 목사들의 징징 거리는 완악한 수건 쓴 자들과 똑같습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소리를 하면서 뒤로는 영적인 강간하는 자들이 
저런 하나님의 형벌 보다 더 나쁜 것 아닙니까

오히려 이런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다는 자체가 오히려 축복이요 사랑받는 자식이다는 증거죠
사생아 같으면 이런 매로 아예 없어서 그냥 내어버려둠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나오는 다들 싫어하는 하나님의 형벌을 어떻게 해석하는고 하니 즉 선악으로 해석하겠지요
아 저렇게 벌 받는 거 보니 하나님이 있기는 있는 갚따 신이 있는 갑따
이것이 개같은 이방인의 반응이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도 그렇구요
오늘날 교회도 그렇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을 늘 점쟁이 찾듯이 찾았던 거죠
오늘날 교회가 그래요 점 집입니다 무당집인 산당이다 말이죠
괜히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 특히 시온에 예루살렘에 산당들이
높고 넓고 길고 신비롭게 세워진게 아니지요
오늘날 교회를 절간으로 다들 만들었잖아요

그렇다면 벌 안 받기 위해서 미리 예방차원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하자
옳지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법이 있구나 법을 지키자
옳지 종교에서 만들어 놓은 율법이 있구나 각종 종교의 교리가 있구나
교리는 지키자
옳지 가정에서 만들어 놓은 윤리 도덕 양심 등등이 있구나
이런 것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어느정도 지키면 저런 형벌을 받지 않겠구나
아 그러고 보니 지옥이라는 것도 바로 저런 형벌의 연장선이니까
천국에 갈려면 이 땅에서 잘 행동하면 갈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말이죠
실제로 모든 인간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안 그러면 무법 천지가 되어서 경제 종교 정치가 다 무너져서
심심하면 자기 안 알아준다 라고 징징 거리면서 계엄을 외칠끼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미워도 말이야 그 순간 만큼은 야당이 좀 박수를 쳐주고 말이지 
계엄 핑계도 참 좋다 말이죠
무슨 애도 아니고 징징 거리니 정작 자기는 남들에게 박수한번 안 쳐 주면서
야박한 짓을 그렇게 해 놓고서는 자기한데 안 해준다 라고 복수를 끝까지 하고 있으니
오이디푸스를 못 넘어서는 애다 말이죠 애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모든 혈육은 다 이렇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출애굽 할려는 마음이 없고
본향으로 향하기는 주저 주저 하는 겁니다

이것을 또 반작용으로 한풀이로 이 기회에 이재명에게 몰빵하자 라고 나오는 그 놈들 역시나 복수심이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어준이 같은 애들 말이죠
애라 애

그래서 바로 이런 교만을 치심으로 인해서
주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말하시고자 재앙을 펼치지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인간의 잘잘못에 의해서 벌어진 재앙이 아니라
(그것은 사생아를 걸러내기 위한 올무다 말이죠 그래서 율법은 올무 작용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을 거쳐서 몽학선생으로써 율법의 완성은 저 분이다 라고 화살표 기능을 하지요
기능 보다 존재가 될려고 하니까 이 올무에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니는 죄 지을줄 모르지 나는 막 살줄 알아 라고 막사는게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죄인인데 무식한 놈 졸지에 자기 의를 자랑하는 셈이 된 거다 말이죠 결국은 복수심이 가득한 인간의 신앙 곧 혈육으로 난 자들의 모임에 또 적응하고자 바르게 살기 운동을 또 펼쳐요 ㅋㅋㅋㅋ)
아무리 잘해도 역시나 재앙을 퍼붓기는 매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모든 인간들 특히 교회 다니는 자 역시나 반발하고 거부하기는 맹 마찬가지로써 나타나는 이유가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인간이 잘잘못에 의한 징벌이냐 축복이냐 라고 따진다는 자체가 선악이요
그 선악은 하나님과 같이 된 자신을 먼저 염두해 둔다는 점에서 교만이다 라고 지난주에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런 자들은 마치 기드온이 에봇을 던져주니까 눈에 보이는 에봇을 우상숭배 하듯이 제사장 옷을 말이죠 마찬가지로 교회 조직 모임을 우상숭배하는 겁니다 정작 오늘 본문처럼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나 민족을 해체시키는 것이 복음인데 왜 썩은 동앗줄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사망의 몸인줄 모르는 것과 같은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충성해야 핑계거리로 삼거든요 나 봐라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고 나는 숙제 안 한 것 아니다 숙제 했는데 왠 형벌이냐 라는 명분찾기입니다 바로 그것을 날려버리고 깨뜨리기 위한 먼저 있었던 7천명인데 
나만 남았다 라고 나 가 먼저 있었다 라고 우기니까 말이죠)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있고 즉 의사가 먼저 있고
그 의사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환자가 동원이 되는 겁니다

즉 죄인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죄인이 아닌 인간으로 자꾸 출발하고자 하고
그 인간은 아직 축복받을 자도 아니고 아직 저주 받을 자도 아닌 
중간 상태에서 앞으로 저주받을지 앞으로 축복받을지 모르는 가운데
그 빈칸에 그 여백에 자기 숙제로 정답을 어떻게 쓰느냐
오답을 쓰느냐 정답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라고 보는
자기 숙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렸다 라고 보는데

이것이 약속을 따라 나지 않은 자들 곧 육의 생각
하나님과 원수 된 생각을 하는 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숙제 가능할 때 100세 이전에
너무 늙어서 무정자 고자 되기 직정에
임신 불가능하기 직전인 임신 가능한 씨앗 안나오기 직전에
이 열국의 아버지가 되고자 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이요 빈칸에 숙제로 정답쓰고자 애쓰는 자기 의를 쌓는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데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데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공백 이 빵구멍 뚫기 라는
약속에 복종치 않는데요 글쎄
오히려 단절 되고 불임이 또렷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손을 떠난 주님의 숙제로 난 자가 바로 이삭으로 난 자 만이 약속의 자녀 라고
다음주에 할 로마서 곧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 이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가를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또 사랑받고자 그 의문의 반복을 할꺼다 말이죠 자기 숙제로 백날 해 봐라 말이죠 되는가?
큰 자 되신 예수님이 와서 섬겨주지 않으면 약속의 자녀가 될 수가 없는데
자기가 큰 자가 되고 자기가 자기 숙제로 축복의 근원이 될려고 하니까
그 교만으로 인해 늘 미끄러지는 그 의문의 반복 언제 까지 할꺼냐 말이죠
큰 자는 나 아니오 저 분이
십자가의 저주로써 다 이루심으로써 우리는 도리어 그 완료 덕분데
빵구멍 뚫힘으로서 다 이루심을 원인 없는 결과로 누리는 겁니다
빵구멍은 원인 없도록 하심인데
자기가 빈칸에 자꾸 적을려고 하니까 또 제대로 쓰면 또 몰라
항상 주님의 숙제인 십자가와 반대되는 답만 적으면서 말이죠
백날 긍정으로 적어보세요 주님은 반대 부정을 적지
반대를 위한 반대
너가 서 하면 나는 동하고
너가 동하면 나는 서 한다 만을 정답으로 적는데
무슨 수로 우리가 정답을 적겠습니까?

아니 죄인으로 출발하는 이유는 의사를 말하고자 하는
약속의 코스요 언약의 코스인데
베드로는 그런일은 없다 끝까지 따라가겠다
장지지겠다
까짓꺼 십자가에 정 그러면 같이 죽겠다 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사탄아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구나 라고

갑자기 사탄이 나오는 겁니다
자기가 큰 자가 되고 자기가 축복받은 자가 되고 복의 근원이 되고
자기가 의사가 될려고 하니
아니 그럼 소는 누가 키워 하듯이
아니 그럼 환자는 누가 되느냐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자 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데
다들 긍정적이고 좋은 자리 모세의 자리 다 앉아버리면
그럼 구원자가 찾는 죄인
잃어버린 이스라엘 양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는 뭐가 되느냐 말이죠
그렇게도 다들 자기 숙제 그렇게 잘도 하는데 왜 메시아를 구하느냐 말이죠

아 우리 숙제는 우리 숙제이고 단지 우리가 못하는 경제 곧 돌이 떡덩어리 되도록
종교 제발 인정해 달라 라고 징징거림 목사말 믿어다오 ㅋㅋㅋㅋ
정치 제사장 나라 되게 해 달라 라고
점쟁이 찾듯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달라고
임금을 세우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잘 안되는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그 수치를 손으로 가리우는데 내 손이 너무 작아 더 넓은 손 개인이 모여서 다수가 된 그 국가의 손으로 가려달라 라고 임금을 자기 배를 위하여 세웠는데 도로 노예가 되는 도움받고자 함이 도로 코 끼이는 복종 안하면 가족들 배 곪아 죽는
경제(자기 배) 종교(구원, 사랑받기, 당신은 사랑받기로 태어난 사람) 정치(화평, 가자지구 분쟁 우크라이나 분쟁 백날해도 안되는 것 깡패 트럼프 나타나니까 한방에 해결 ㅋㅋㅋ)
그것 때문에 눈에 보이는 임금 세우듯이
눈에 보이는 교회를 그런 이유로 숭배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임금들 다 실패해서 더 이상 안나오거든요 이게 다윗언약 이다 말이죠
그카이 성전신앙으로 유대인들이 싹 다 바뀌는 겁니다
이제는 그 성전도 다 박살 냅니다
눈에 보이면 무조건 의지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소망이 생겨요
보이지 않는 소망은 절대로 안 생겨요
보이지 않으니까

즉 소망은 내가 소망하는게 아니라
보이는 것이 나에게 소망을 집어넣는 겁니다
내가 얼룩을 응시하는게 아니라 얼룩이 나를 응시합니다
내가 죄를 다루는게 아니라 죄가 나를 다루어요
그 죄를 거쳐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겁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 한다 라고
이게 뭐 난체라고 하는데
전혀요 원수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환자가 있는 곳에 의사가 있다는 거죠
우리는 반대죠 건강한 자가 되어야 의사를 만난다 라고 거봐요 자기 숙제로
의사를 만날려고 하지 자기가 응시하겠다고 보는 겁니다
그 반대로 나를 수술칼로 찌르는 그 의사가 나를 제대로 살리는 의사인 겁니다
이런 의사는 만나기 싫어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나 라는 우상을 깨뜨리시면서 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칼로 부서뜨리고 아기를 밴 임신부의 배를 갈라버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앗수르가 그렇게 하도록 말이죠
에이 하나님 나쁘네
네 맞아요 반드시 그 윤리선생처럼 반드시 나쁘세 보셔야 합나다
그렇게 핑계 대어야 해요
안그러면 앗수르를 숭배한 그 본심이 들통나니까 말이죠
꽁꽁 자신들의 죄악을 자기 손으로 숨기고 가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말이 뭡니까
앗수르를 숭배했다는 말 아닙니까 앗수르의 우상인 다른 신을 섬겼다 말이죠
그래서 자기가 숭배한 그 우상에게 당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에이 어차피 우상숭배 안해도 주님이 심판주가 되셔서 역시나 매를 징계를
심판을 저주를 오늘 나온 형벌을 어차피 내릴꺼면
차라리 우리가 선택한 저주인 앗수르의 신을 섬기는게 낫잖아요
내가 선택했응께 내가 매 맞아도 할 말 없도록 핑계 안대는게 낫잖아 라고

형벌 보다는 핑계꺼리 삼는 것을 더 좋아라 심리적으로 덜 한 쪽으로 선택하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핑계 대지요 자신은 미리 조건과 원인을 갖추었다 라는 내 열심히 특심이라는
핑계거리를 확보 했응께 안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매
내가 인정하는 매 죽기직전까지의 매 정도는 각오하고 선택했다 라고 핑계거리를 확보하겠다 라는 겁니다

아닙니다 그냥 둘다 무조건 아예 죽여버리시는 식입니다
앗수르의 매를 당하든
하나님의 매를 당하든 무조건 그냥 죽이는데
저 젖먹이의 칼 맞아 죽고
아기를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가르는 그 저주를
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처참합니까
피할수 없는 저주인 절대저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취사선택가능한 매 맞기?처럼
자꾸 피할수 있다 라는 가능성을 소망을 자꾸 가져요 글쎄
100대 매 맞는 거 보다 50대 맞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겁니다
1대만 맞아도 죽는 판국인데
지옥도 카스트제도처럼 성화론처럼 남 7번 용서하면 되느냐 라고 계급을 매기듯이
제일 낮은 지옥에 가겠다 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냐 말이죠
(교회가 이걸로 장사했잖아요 지옥을 계급 나누어서 가급적이면 낮은고통의 지옥이라도 갈수 있도록 그래서 나온 기가막힌 마케팅이 연옥 아닙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상태
이미와 아직의 긴장상태 라고 이렇게 빈칸을 맹글어 놓아야 다들 숙제 할려고 달려들거 아니냐 말이죠 이 얼마나 기가막힌 마케팅 전략 아닙니까 그게 오늘날 성화론이다 말이죠)
그래서 주저주저 산모의 산로에서 지체를 하는 겁니다
나올꺼면 나오고 들어갈꺼면 들어가던가?
애굽으로 돌아가던가? 출애굽 빠져나와서 본향으로 향하던가?
찹지도 더웁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그저 자그하만 한 개인의 인간이
축복 받냐 저주 받냐 라고
자기 숙제에 따라 갈라진다 라고 보고 있는데
그 시선을 그 교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미 먼저 나타난 하나님의 겸손인 심판이요 형벌이다 라는 겁니다

솔로몬 재판 이야기에서
두 기생이 그저 작은 나라 작은 저 깡촌 시골 변두리 저 끝자락 시골에서 벌어진 사건이
졸지에 하늘 높은 그 세상의 중심인 그 정중앙의 궁궐 속에 이 아무도 풀수 있는 사건이
들어가서 온 국민이 목격할 수 있도록 심지어 마귀 보란 듯이 대 놓고서
이 판결이 지혜가 벌어지듯이
이게 바로 지혜라는 인물은 천한 계집을 왕비에 높이는 그 섬김이 먼저 있기에
왕이 먼저 있기에 우리는 천한 계집의 자리에서
반드시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그 지혜자의 섬김을 누리는 증상물로 태어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이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난 겁니다
그것을 부모죄냐 자기 죄냐 라고 죄문제 신학학위 연구할려는 바리새인이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듯이 이 원인 없는 결과에 반발하도록
너 누구 제자야 나는 1300년 묵은 모세제자야 너는 겨우 딸랑 3년짜리 된 예수 제자이지 라고 비아냥 거리는 겁니다
거보세요 평상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기의 죄악을 가렸던 그 빈칸에 여백채우기가 얼마나
미완료를 누렸으면 저랬을까요?
저들이 버린 예수
나는 예수 제자 아니거든 1300년 묵은 모세 제자거든 이라고
버린 예수를 아 내 눈을 완료 하신 그 분이 예수님이셨군요 라고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이 날 때부터 소경된 실로암 소경은 머릿돌로 내 낭군이시군요 라고
뒤에서 껴 앉는 겁니다 해를 품은 달 해품달 예수님을 품은 실로암 소경 예품실
보자 이것이 예레미야 서에 있었는데 몇구절이였지 검색해야 겠넹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렘 31:22, 새번역) 너 방종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주님께서 이 땅에 새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곧 여자가 남자를 ㉡안는 것이다." / ㉡또는 '보호하는'
(렘 31:22, 쉬운) 방탕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헤매겠느냐? 여호와가 이 땅에 새 일을 일으킬 것이니 여자가 남자를 안을 것이다.”
(렘 31:22, 한글킹) 오 너 타락한 딸아,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이는 주가 땅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음이니, 여자가 남자를 두르리라.
(렘 31:22, 현대인) 신실치 못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이 땅에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할 것이니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것과 같은 아주 색다른 일이다.
(렘 31:22, 가톨릭) 배반한 딸아 언제까지 헤매려느냐? 주님께서 세상에 새것을 창조하셨으니 여자가 남자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아주 작은 개개인으로써의 개인의 형 에서와 개인의 동생 야곱 
이 두 개개인의
축복 사랑 받냐 못 받냐
저주 미움 받냐 못 받냐 라는 사건이

졸지에 오늘 본문에 생뚱맞게 바로가 등장해요
아 그동안 안 보이던 인물이 보이더라 말이죠
심심하면 에서냐 야곱이냐 라는 것에 강조로 인해
전혀 안 보이던 어 바로 라는 인물도 등장했었네 라고 갑자기 확 뜨이더라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왜 바로왕이 등장해야 하는 겁니까

이 두 개인의 사적인 인물 에서와 야곱이
졸지에 전체 지구의 역사를 통 틀어서
이스라엘과 애굽이라고

뭐뭐 아니요 뭐뭐 라고
애굽 아니요 이스라엘 이라고 인간 역사를 아예 다 동원에서 묶어버리더라 말이죠

약속의 자녀와 육에 따라 난 자의 대립으로써

두 언약
이삭과 이스마엘로 한 세트를 구성하더라 말이죠

땅의 계집 하갈이 낳은 자식 이스마엘과 곧 가정부와 그 자식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가 낳은 자식 이삭과 곧 아내와 그 열매
죽어도 다시 사는 이삭의 희생제물 됨 말이죠
뭐 하나 육적으로 가는게 없어요 그저 약속으로만 가는 겁니다

아니 이삭도 한 마을에 그저 조그마한 땅에 한 명의 개인이요
이스마엘도 마찬가지 인데

왜 이것이 우주에 까지 확대 재생산되득히 언급이 되느냐 라는 겁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여러분이 뭐 지금 저 북한에 가서 전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겁니까?
자그마한 동네 그것도 지금 잘 안 되는 판국에
그저 한 가정 안에서도 복음 때문에 불화가 일어나는 판국에
저 북한
이 가까운 북한도 안 되는 판국에
뭐 저 이슬람 국가 선교 라고 거창한 그런 일을 벌리지 않아도
지금 바로 코 앞에 있는 일도 안 되는 판국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것을 영적인 싸움으로써
우주전쟁으로 증폭시키는 겁니다 이 얼마나 허풍이 심하냐 말이죠
바로 왕이 그래서 저 모세의 허풍에 속지 말라고 하는거 아닙니까
다들 그래 생각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바로 왕이 그래 말해주니까
그 허풍에 안 속겠다 라고
아무도 나올 마음이 아무도 없었어요
누가 그 광야 광야 삼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보고자 합니까
보이지 않는 소망은 소망 자체가 믿음 자체가 생길수가 없어요
주님의 믿음을 심어야만 약속에 따라 나오지
아무도 나올 마음이 없었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전혀 원하는 바도 아니고 동의하는 바도 아니고
참여한 적도 없는데 영적인 싸움으로써 약속대로
그럼에도 불구라고 언약대로 코스를 밝게 하신다 라는 겁니다
첫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다니는 학교에서
다니는 회사 직장 공장에서
다니는 심지어 교회에서 왜? 교회가 가장 복음을 거부하는 강도의 소굴이니까 말이죠

굳이 북한 굳이 저 이슬람 국가에 가서 선교할 필요가 없어요 괜히 잡혀가
국가 망신 시킬 뿐이다 말이죠 똥물교회처럼 말이죠
괜히 아프가니스탄 피랍 당해가지고 정 그러면 죽으면 죽으리라 하던가
자기들 죽기 싫어서 젊은 애들 죽일 판국이다 말이죠
그래서 임마누엘을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더라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이 애를 칼로 죽이고 임신부를 배 가르네 라고 여기 본문에 적혀 있다고
적혀 있으니까 하나님이 한 거네 라고 우기지만
주님은 요놈 드디어 미끼를 물어버렸넹 이라고 너거들의 평상시 자식잡아먹고 부모잡아먹는 것을 까발리는 식으로 언급하시는 겁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잡는 것이 율법을 쥔 남자들의 목적이 아니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잡고자 간음한 여인을 핑계로 삼았던 거죠
이것이 고때만 그런게 아니라 늘 그래왔다는 겁니다
유대사회가 늘 여호와를 늘 그렇게 시험해 왔던 겁니다 점쟁이 찾듯이 하고
선지자를 죽이고 거짓선지자를 쫓고
빤스의 사태는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이였고 늘 그랬던 겁니다
저랬던 천주교에서 아무리 빠져나와도 소용 없어요
뭐 다 그런게 아니다 안 그러는 교회 많이 있다 라고 생각하시면 오늘 본문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깔려 있기에 그 교만을 꺽으시는 차원에서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즉 말씀을 지키는 자는 축복이요 축복이요 라는 성경 3분의 1만 먹고
말씀을 어기는 자는 저주요 저주요 라는 성경 전체 3분의 2는 안 먹겠다 라는 심뽀죠

그카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미화 시키는 말만 골라서 먹어요
그럴 때 마다 예수님은 임금 안되시겠다 라고 도망치시는데 말이죠
도망치는 예수님을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을 정도이니까 말이죠

특히 성화론이나 개혁주의 따지는 놈들이 더 했으면 더 하다 말이죠
천주교애서 그렇게 빠져나와 놓고서는 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열달 만에 어미 뱃속에서 나올락 말락 하고 주저 주저 지체하는 어리석은 자식처럼 말이죠

제가 제일 많이 공격받은 내용이 교회로부터 말이죠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느냐 라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도리어 저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예수 믿고 1년 쯤 되니까 한 둘이가 아니게 나 보다 더 오래 교회다녔다는 놈들이
나이도 상관 없이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 공격을 해요
왜 저 아프리카 굶어죽어가는 아이를 왜 하나님은 안 돌보냐 라고
그런데 그때 보자 제 나이 만으로 18살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고
1년이 지난 19살 때부터 아직까지도 그것으로 공격하고 있어요
35년 동안 지나도 아직도 그것으로 교회 다니는 자들로부터 공격 당하고 있어요

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 입니까
결국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돈을 믿는 우상숭배자들이다는 거죠

저런 제목 저런 말씀 얼마나 꼬투리 잡기에 딱 좋냐 말이죠
정 아프리카 걱정 되면 니가 목숨 걸고 도와주던가?
그건 또 때려죽어도 싫데요
그렇게 하는 선교사는 존중해 주겠데요 글쎄
뭐 그리 고르고 골라서 하는지

정작 아프리카도 아닌 주변인 심지어 자기 자식 마저도 지옥 못 보내서 안달이 난 냥
성령을 구하는게 아니라 전갈 독을 달라고 떼쓰고 얼마나 징징거리는지

지 혼자 지옥가지 남을 지옥 못 보내
심지어 자기 자식도 지옥 못 보내서 안달이 난

제가 우연찮게도 목사들 자녀들과 본의 아니게 대화를 하거나
만남을 갖게 되면 목사 친인척들이
그 아비에 그 자식들처럼
복음을 때려죽어도 안 듣는 그야말로 교만하기 짝이 없더라 말이죠

차라리 아빠 목사에게 반항 하는 아이가 좀더 솔직해요
전혀 안 믿겨진다고!! 막 울어요
그런 아이는 목사인 아빠도 안 믿는 자인게 분명한데 저러고 있으니 애가 괴로워 하더라 말이죠
이런 아이들 많아요 그 비슷한 사람이 전두환 손자 아닙니까

안 믿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교회로 인해 돈이 되고 먹고 살 것 걱정없이 지내다 보니
예수님을 알고 믿는데는 부족하더라도
정작 교회 장사로 인해 돈 벌어 먹고사는 그 혜택은 너무 너무 또렷하다 보니
그 믿음은 그 돈에 대한 믿음은 너무 너무 확고 하더라 말이죠
그게 바로 목사 부모가 이미 아이를 칼로 죽인 것이고
이미 아이를 밴 임산부의 배를 가른 모습이다는 겁니다
자기 자식에게 그러고 있으니 교인들이야 뭐 두말 할 것 없지요

그래서 하는 짓들이 그저 돈 뜯는 겁니다
딸래미 알뜰폰 회사 차려서 가족 기업을 먹여 살리고자
등에 빨대 꽂아 피 빨아먹는 거죠
조목사가 그짓으로 돈 벌어 성공하니까 다들 따라 하는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 다들 대 놓고 하지 않는 듯 사기를 친 것을
조 목사가 아주 대 놓고 하니까 다 따라해요
그렇게 욕을 했던 합동측도 뭐 더 깨끗하고 근본주의라고 우기는
고려파는 제가 직접 격어 보니까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줄 알았는데
더 더럽기는 맹 마찬가지이더라 말이죠
깨끗 근처도 못 가는 주제에 깨끗이라는 단어로 세뇌 가스라이팅 시켜서
돈 장사 하더라 말이죠 이미지 메이킹인 겁니다
환경단체 환경기업이 다 그런식이잖아요
빨대가 바다 오염 시킨다고 종이 빨대가 더 더럽히는 겁니다
정작 그물 업게 수산업 종사 업계로부터 환경단체가 돈 받아 먹는데 말이죠

무슨 선함을 착함을 강조한다 싶으면 그거 사기꾼이구나
광명한 천사 이구나 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무슨 무슨 운동 한다 싶으면 교만한 놈이구나
약속과 무관한 우상숭배자인줄 아시면 됩니다

내 속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안다면 저들 속에도 없는데
자꾸 있다 라고 선전한다면 아 돌벌이 이구나 라는 거지요

그래서 약속의 코스를 밟도록 하시고자
이런 재앙을 벌리심은
우리의 잘잘못이 아니라
또 이래 말하니까 아이 그럼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이 선해 지겠네 라고
방종을 유도 하는 것 맞네가 아니라
바울이 그래서 이런 놈은 이미 정죄 받은 자 라고
교회에서 방종하지 말라고 방종을 유도한다고 공격하던데
바로 그런 놈은 이미 정죄 받은 자 라고

하나님의 의가 바로 재앙인데 심판인데
그래서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심판을 나타내는 것 맞는데
자기들의 탐심이 우상숭배가 자기 배를 위한 임금삼기로 예수님을 가짜로 임금세우기를 해 놓으니까
아따 이 놈들이 그 하나님의 의를 선하심으로 해석해 버리니까
방종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방족을 유도하는 말을 하느냐 라고 공격하는 방종을 펼치더라 말이죠

아니 방종하지 말라고 해 놓고서는 왜 지들은 방종하냐 말이죠
요때다 싶어서 돈 버는데 방해꾼들 싹 다 잡아 넣어
실패 라고? 괜찮아 2차 계업 3차 계엄 복수는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끝까지 복수하면 돼 라고

이게 인간으로 출발하겠다면서 빈칸에 자기 숙제로 써 넣겠다 라는 교만이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가 선악을 축복과 저주를 
축복의 근원이 될려고 하는 심뽀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탄이구나 라고 하시는 거죠

에이 그래도 그렇지
어린아이 젖먹이를 칼로 부숴뜨려 죽이고
심지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아이를 임신한 약하디 약한 여성의 임신한 배를 갈라 버리시겠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니요?

제가 예수 안 믿었을때에 고등학교 윤리 수업 중에 갑자기 윤리 선생이
구약의 하나님은 너무 잔인해서 못 믿겠다 라고 갑자기 수업 중에 이야기 하더라 말이죠

아니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냐 말이죠
아마도 미션 스쿨이다 보니 교무 회의나 아니면 아침에 교회 다니는 동료 선생으로부터
기독교나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이들 수업 중에 갑자기 튀어나왔던 모양이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왜 미션스쿨에 선생으로 다니는지 원 ㅋㅋㅋ
 
그런데 이들은 안 믿으니까 그렇다 치고
왜 교회 다니는 자들은 그 동안 본심을 늘 꽁꽁 감추다가
제일 만만한 저 같은 자들에게 왜 그렇게 화 풀이 하듯이
그 문제를 들고서 막 덤비는지
요놈 잘 걸렸다 ㅋㅋㅋ
더 웃끼는 것은 목사놈도 그렇게 덤벼요 글쎄 아니 답을 해 줘야 할 놈이 ㅋㅋㅋ
뭐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 장로들 그것은 너무 흔해서
자기 말 안 들으면
자기 정치에 같은 편 안 되어주면 그거 빌미로 공격하는 겁니다

주로 멀쩡하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군에 이런 소시오 패쓰가 많거든요
사이코 패쓰는 반사회적이지만
소시오 패쓰는 억수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이다 말이죠
자기 밥을 무조건 놓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죠
자기 인정 못 받으면 미쳐버려요
주로 종교계 정치계 공무원직 주로 공공적으로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그룹이 그래요

별에서 온 그대 라는 K-드라마에서 신성록 배유가 맡았던 역이 바로 그런 소시어패쓰다 말이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장인데도 불구하고 소시오 패쓰인 겁니다
정치성이 무지 무지 강해요
그런 놈들이 다들 착하다 라고 여기는 선한 영향력이 강한 집단에 억수로 많다 라는 것

아파트 소장이 공무원 출신이다보니 자기 정치술에 편 들라 라고
오자마자 그런 짓만 하니까 조심하고 절대로 코 끼이면 안된다 라고 했다 말이죠
아니 그런데 그 충고를 들은 자가 저를 정치적으로 자기 편 안 들어주니까
끝까지 복수하겠다 라고 죽도록 덤비더라 말이죠
심심하면 자기 눈을 찔러요 지만 찌르는가?
자기 가족 눈도 다 찔러서 지도 지옥가고 지 가족도 지옥가는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주로 목사 가정은 당연하고요
교회 중요 자리 한 자들은 다 그래요
정치집단입니다
성화론자 말이 성화론이지 정치집단이라서 목사 눈치만 보는 집단이더라구요

보통 2-3년 정도 살펴봐야 대놓고서 그런 복수심을 보게 되는데
6개월도 안되어서 보게 되니
제일 짧게 다녔다 말이죠
지금도 가장 경건하고 성화되었다 라고 소문난 곳인데 말이죠

그렇게 당해봐야 지기도 그런 소시오패쓰의 정치술을 펼치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이미 장악당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게 되는
그래서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건져 달라 라고
다윗이 우는 겁니다
이 다윗언약을 새언약으로써 죄인 다윗
환자 다윗으로써 의사 되신 인자 꺽으신 뼈로 다시 태어나는 요나의 표적이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가 되어버리면
자기 숙제로 빈칸 적겠다고 완악한 수건만 잔뜩 겹겹으로 쓰다
기브롯 핫다아와 자기 꾀에 자기 눈을 찌르는 누워서 침뱉기 하는
의문의 반복을 하다 자기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중간에서 삥이나 뜯는 놈이 되는 겁니다
언약의 코스도 안 밟는 약속에 따라 난 자들이 아닌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다는 겁니다
약속을 줘도 거부해요
자기들은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고 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다윗처럼 그런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안 했다 라고 우기는 자들인 겁니다

아니 약속을 안 주면 할 수 없잖아 라고 핑계를 대지만
정작 줘도 거부하는 겁니다
지옥간 부자가 늦게 알고서 아 그럼 아직 지옥오지 않은 친척들에게 선지자를 보내 달라고 부탁해요 이덕화처럼 외치지만
아니 자기가 거지 나사로 라는 선지자를 거부했는데 남아있는 친척들은 안그러겠느냐 말이죠
선지자를 영접하기 라는 숙제를 하면 된다고 보는데
선지자 자체가 그런 인간 숙제를 거부하고 깨뜨리면서 오니
다들 싫어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오늘 본문 보세요 누가 저런 외침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어디 있겠습니까?
일부러 거부하는 것들만 골라 골라서 외치는 것 같은데

네 맞아요 우리의 선악의식 법준수 의식
하나님과 같이 된 동질성에 반대되는 모습만을 일부러 골라서 외치는 겁니다
목숨 걸어서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수천개의 목숨을 걸어도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 될려는 마음이 깔려 있기에
그 교만이 깔려 있기에 말이죠

아 아니다 이거 다음주 로마서 내용인데 ㅋㅋㅋ
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닌 미리 정답을 실수로 말해 버렸는데

오늘 본문에 젖먹이를 제 3자 입장에서 볼게 아니라
뱃속의 아기나 임산부를 제 3자 입장에서 볼게 아니라

그것도 지금의 나 힘도 어느 정도 있고 그런 나가 아닌
아예 힘이 없고 약자 중에 약자가 된
아무리 부자여도 LA 산불로 부자도시 하루 아침에 불타서
혹시나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고 하지만
혹시나 집이 불타서 재수없게 전재산 다 날리게 된 입장의
아주 아주 약자가 된 입장에서

약자 임에도 불구하고 저 젖먹이와 같이 되었는데 칼로 죽이고
약한 여성 그것도 자리 양보해야할 임신부 인 약자 중의 약자인 상태에
배를 갈라 버린다 미래의 재산 미래의 열매 
부활인 뱃속의 아기까지 다 갈라버리는 저 상황이
나의 상황이 되었을때에

이건 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아니라
누가 봐도
심지어 본인이 봐도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 맞군요 라고 해야 할 판국에 놓여진 상태에서

도저히 희망 소망 따위는 없이

오로지 절망 밖에 없는 그 속에서

갑자기 그 죽음에 뛰어드셔서
대신 칼 맞고 대신 배 갈려 빵구멍 뻥 뚫히시는 그 형벌을 대신 맞았을때에

과연 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의미는 무슨 의미인가를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 겁니다

정작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리에서
그것 마저도 미움 못 받고 대신 미움 당하는 자가

내가 생각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마귀의 두 번째 시험
다윗의 기도인 시편 91편 12절 911 112   11절 12절
911 미국 소방, 아 캐나다도 똑같다고 하네요 미국의 51번째 주 라고 협박당하고 있는 ㅋㅋ 
112 경찰 로 외우면 되죠 저도 잘 까먹어서 잘 틀리지만 ㅋㅋ

(시 91:9, 개역)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 91:10, 개역)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 91:11,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그 다윗의 기도 대로 거룩한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를 보내어
두손으로 받쳐 하나도 다치지 않는 이런 사랑받고 구원받고 인정받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이게 과연 미움 받지 않고 사랑받는 모습일까요?

뭐가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
무엇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 우리는 모르고 얕게 알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 형벌 속에서 이 형벌 속으로 뛰어드시는
제대로 미움 받는 자를 보게 하시는 겁니다

아니 어느 몽골의 유목지의 한 여자가
텐트 접었다 폈다 늘 이동하는 유목민이
그 조그마한 동네에 이동만 자주 할 뿐이지
그 여성이
그것도 불임여성이
수태치 못한 여자
조선으로 치면 저주 받은 여자인 거죠
그 여성이 무슨 우주의 자유하는 여자 라고
우주까지 하늘까지 들먹이면서

한 개인이 아닌
우주 역사? 우주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던데 ㅋㅋㅋ
우주에까지 확대되면서
천한 계집이 우주까지 높여짐을 받는 가운데
정작 세상은
정작 땅의 역사인 애굽나라 바로 왕은 이 세상은 격동하고 견디지 못하도록 되게 하시는

지혜자의 지혜를 펼치심 앞에서

우리는 잔칫집 애굽이 아닌
초상집인 광야 광야 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속에서

이 첫 맹세 첫 약속대로 밀어붙이시는 이 섬김 때문에

제대로 된 미움 받기로 작정 됨과

그 찢으심을 거쳐서 제대로 고침을 받는
제대로 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분은 예수님 뿐임을

이 사랑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자기 아들 독생자를 제대로 미움받기로 만드심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것이 바로 화목제
곧 사랑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인데

우리는 이 깊은 사랑은 외면하고
그저 얕은 사랑만 자기 배를 위하여 챛겨먹을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중심인 시온에 산당을 절간을 우상 가증한 물건을
교회 안에서 잔뜩 세워서
마리아 촛불 키듯이 산당 무당집인지 왜 그렇게 촛불에 집착하는지
촛불집회 하면 빛이 되느냐 말이죠
뭐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

이게 바로 교만 아니냐 말이죠 명바기의 교만이나 그 교만을 꺽겠다 라는
어준이의 교만이나 둘다 지옥행인데
덜 지옥행으로?

왜 제대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사망의 몸인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예수님
이 기적과 같은
계엄속에서 살려주신 기적
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는 한강의 미신이나
오대산의 굿판이나
닭그네의 굿판이나
이거 다 반작용인 한풀이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뭐 제대로 미움 받은 적도 죽은적도 형벌 저주 심판 받은 적도 없으면서 말이죠

약속으로 난 자가 아니다 라고 아예 대 놓고서 자랑질을 하고 있어요
그 의문의 반복

오늘 예수님 세 번 부인하지 않았다고
내일 마귀가
앗수르의 몽둥이가 가만 있겠냐 말이죠

주님은 오늘 본문 이 말씀을 다들 거부한다는 것을 알면서
에이 그러면 하나님이 젖먹이를 죽이고 하나님이 임산부를 죽이네

영궁에서 이민자 청소년이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 라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니까
갑자기 영국 본토 시민들이 이민자에게 묻지마 폭행으로
집단 소요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뭐 악의 평범성?
독일 나치의 공무원 아이히만이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다 라고
얼마나 가정에 모범적이고 자식들도 이런 아버지 없다 라고 존경에 존경을 맞이할 정도인데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라고?

지금 한국은 한 달 넘게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둘이가 아니지요
시키는대로 했다 라고
저 모습 백날 아파트 아파트 응원봉 들고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까요?
하루에 평균 200번의 거짓말
8분에 1벙 꼴 거짓말을 한다 라고
뭐 저 멧돼지만 망상자 입니까?
민주주의 자체가 망상인데

자유는 없어요

그런데 왜 성격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라고 망상을 펼치냐
네 맞아요 말 참 잘했다 말이죠

즉 이 말은 자유를 지키고 사수하고 달성해서 자유가 아니라

이미 자유가 먼저 떳기에
모든 인간들은 포로 잡혀 있다 라는 겁니다

즉 오늘 본문으로 치면
악을 저지르고
앗수르 우상을 섬겨서
앗수르에게 당하는
아이가 칼 맞고 임산부가 배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라는 약속 언약이 먼저 떳기에
그 언약의 코스대로 밟다 보니
고때만 아이가 칼 맞고 임산부 배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수로 아니면 잘못해서가 아닌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날 때 붙어 나는 아이를 죽이고 배를 가르는
다윗이 했던 짓이 나의 짓이고

동시에 나 또한 누구로부터 아이처럼 늘 칼로 죽임 당하고
배를 갈려짐 당하는 

이 세상 판대기 자체가
역사 라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그것을 반복하는

세월호 끝나면 끝일까요? 이태원 압사가 또 생겼자요
우리 아이들이 바로 부모의 죄악의 증상물로써
그런 사건들은 또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런 마침도 없는 의문의 반복
내 숙제로 멈출수 있냐 말이죠
내 아이만 괜찮으면 다 입니까?

내 아이의 친구가 당하니까
결국 내 아이도 트라우마로 고통 받다가 평생을 헤어나오지 못하면
내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할 수가 없게 된다 말이죠
그렇다고 세상을 다 바꿀수 있냐 말이죠

주님은 그 죽음 속에 그 저주 그 형벌 속에 뛰어드셨다 라는 것을 말하시고자
이런 사태를 벌리시는 겁니다

바로 이 화목제가 오지 않으면
교회가 사기치는 그 의문의 반복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자들의 사기에 질질질 끌려다니다가 볼일 다 보는 겁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사기를 치면서 꾀냐 말이죠

사망아 어디 있느냐
재앙아 어디에 숨었느냐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아니 두 기생의 다툼이
왜 사망권세와 은혜가 왕노륵하는 생명의 권세 싸움으로 확대 되는 겁니까?

왜 저 시골의 아무도 들따보도 않는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을 가지고

이 사망의 권세와 생명의 권세 싸움인 우주전쟁인 약속을 증거하는 겁니까?

여기에 사적인 생명 사적인 구원 사적인 저주 사적인 죽음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 두 언약에 놓여진 겁니다

누가 과연 자기 스스로를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라고 여기겠으며

누가 과연 자기를 사랑받기로 작정 된거 맞다고 라고 믿고파 하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라고 여기겠느냐 말이죠

그런 사적인 잘잘못은 끼여들 틈도 없이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고
우리를 살리고자 대신 숙제를 다 이루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다 이루셨다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니

꼭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제사와 같더라 말이죠
물론 다음주 에 할 로마서를 통해서 보니 더더욱 앞의 것도 연장선으로 보이는 겁니다

개개인의 아브라함
개개인의 이삭으로 보였던 것이


이스라엘 전체 역사와
애굽의 역사(애굽과 그 아이들 곧 앗수르 바벨론 뭐 모압 암몬 두로 메데파사 헬라 로마 열국 등등의 인간 역사)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삭 바치듯이 하고 있고
그 이스라엘 속에서
마치 야곱 속에서 허리 뿌사서 이스라엘 나왔듯이
이 이스라엘의 꺽으신 뼈 속에서 예수님이 나오듯

지금 이삭 희생제물 당하듯이
이스라엘을 심판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죽음 보다
그 밑에 깔려 있는
이미 벌서 먼저 나신 이가
먼저 죽으심 그거 보라꼬 죽음 속에 집어넣는 모습이더라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을 보라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했듯이 말이죠
이삭은 죽음으로써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하는 이 복음을 믿으라 라꼬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을 받고
아브라함은 이제 재앙도 사망도 죽음도 없는

사망이 어디 있노
재앙아 어디 있노 라고

이 진리가 아브라함을 자유케 했듯이 불임 되어도 상관없이
하늘에 자식이 많은

이 자유가 먼저 떳기에
앗수르의 칼에 포로 당하는 우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왜? 이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에

사망도 멸망도 재앙도 없는
뭐든지 아니오 함이 없고 뭐든지 예 뿐인

무덤이 없는 자가 된 거죠

분명 우리는 예수님처럼

문명 내 손으로 땅에 파 묻듯이
무덤 속에 집어 넣었는데

무덤이 소용이 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분명 죽었고 다시는 눈에 안 보여요
그런데 믿음으로 다시 사는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겁니다

이것은 부정을 피해서 긍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으로써

마귀가 욕하는 마귀취급하는 바알세불 걸렸다처럼
망상을 깨뜨리면서 더 망상적인

말도 안되는 소리인 거죠

아니 죽었는데 무덤은 없다만
내 눈에 안 보이면 뭐 없는 거지 뭐 하고 했는데
불쑥 불쑥 나타나서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라고
온갖 간섭을 해 버리면
개인의 인생
개인의 삶은 없는 거죠
시키는대로 하니꺼

귀신 씌인 무당들도 욕하는 더한 성령 씌인 자가 되는 거죠

저들의 형벌을 거쳐서 온 성령으로 약속으로 난 자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호세아서는 지금 다윗언약으로 이스라엘을 불도져 밀어붙이듯이 
언약대로 첫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우와 아이 죽여놓고도 태평한 소리 하네

아뇨 7천명의 아이는 벌써 이미 먼저 살아 있습니다
이 말씀에 낚인 미끼를 덮썩 물은 니가 니 앞가림 걱정하세요 라고
7천명의 아이가 입을 쯧쯧 거리면서

지옥가고 있는 우리를 안타깝게 보고 있는 겁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지

지옥간 부자가 비로소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 하다 못해
이를 갈면서 격동하고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잡기 위한 미끼이듯이

거지나사로는 부자를 잡기 위한 미끼였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무것도 모르고 죽임을 당하는 젖먹이들은
심지어 태어나기 전이 뱃속의 아기

배가 갈려져서 죽을 정도이니까

얼마나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는가 라고 해석하는
그 시선을 낚아서 지옥 보내고자

미끼로 태어났다는 것을

바로 이런 부조리 이런 불의 앞에서만이
이 십자가의 절대저주 앞에서 만이

우리의 선함으로 똘똘똘 뭉쳐있던 그 긍정의 선함
정의라고 우겼던 것들이
얼마나 더럽고 죄악된 교만이요 오예물 찌기 혼합물이다 라는 것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그 불순물을 걸러내시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만 하는 지옥의 몸이라는 것을 들통내시고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을

나의 죄악을 제대로 들추어 내지 못하면
이미 지옥인 겁니다

아무리 부자로 아무런 고통 고생없이 신나게 살았다고 해 본들
이미 지옥인 것을 요

그러나 이 십자가의 저주가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자는
아무리 징계를 받은 자 같아도
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예수님의 끝까지 섬기심 앞에서

내 죽음은 내 저주는 저주 축에 못 든다 라는 사실 앞에

뭐든지 아니오 함이 없능 뭐든지 예로써

사망아 누굴 쏘느냐 라고

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이 잃어버린 대의
이 첫사랑을 기억하고
처음자리 그 심판의 자리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자리에서

생명을 마음껏 누리는 겁니다

이 절대 심판 속에서 절대 용서, 절대 사랑을 말이죠
무자비한 용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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