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 파수꾼의 나팔 경고 (겔 33, 1- 6)
2025. 3.30.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애굽과 열국의 모든 여자들 (겔 32,17-21)
에스겔 2019 2025. 3. 7. 22:53
21-090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애굽과 애굽동맹국 열국의 여자들 (겔 32,17-21)
〈에스겔 33,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2쪽, 찬송가 168장 새 180 하나님의 나팔 소리, 찬송가 102장 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새찬송가 180장〉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 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2. 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 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3.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 서도록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찬송가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 없네, 새찬송가 094장〉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2.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3.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에스겔 33, 1- 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02쪽〉
(겔 33: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33:2, 개역)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겔 33:3, 개역)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겔 33:4, 개역)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겔 33:5, 개역)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33:6, 개역)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겔 33:1, 새번역)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겔 33:2, 새번역) "사람아, 너는 네 민족의 자손 모두에게 전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만일 내가 어떤 나라에 전쟁이 이르게 할 때에, 그 나라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서,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자.
(겔 33:3, 새번역) 이 파수꾼은 자기 나라로 적군이 접근하여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어, 자기 백성에게 경고를 하였는데도
(겔 33:4, 새번역) 어떤 사람이 그 나팔 소리를 분명히 듣고서도 경고를 무시해서, 적군이 이르러 그를 덮치면, 그가 죽은 것은 자기 탓이다.
(겔 33:5, 새번역) 그는 나팔 소리를 듣고서도 그 경고를 무시하였으니, 죽어도 자기 탓인 것이다. 그러나 파수꾼의 나팔 소리를 듣고서 경고를 받아들인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건질 것이다.
(겔 33:6, 새번역) 그러나 만일 그 파수꾼이, 적군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서도 나팔을 불지 않아서, 그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고, 적군이 이르러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덮쳤다면,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파수꾼에게 묻겠다.
파수꾼과 경비원은 전쟁의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기능입니다
결국 전쟁이란 적과 아군이 둘로 나누어진 상황에서의 싸움이 되는 거죠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아군으로써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파수꾼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팔 곧 경고 나팔을 불었고
그 경고 나팔 소리를 듣고서 경비원은 전쟁 준비를 하고자 겅계태세에 돌입함으로써
쳐들어 오는 적들과의 전쟁을 할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전쟁을 대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이미 전쟁에서 패 해서 포로된 입장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팔을 부는 파수꾼이 등장했다 라는 것은
전쟁이 터진다 라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이미 포로 된 입장에서
무슨 놈의 전쟁을 할 수가 있으며
포로가 이미 되었는데 경비원을 세워서 국가와 민족을 지킬수 있는
경계 경비를 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말이죠
이미 소를 잃고 양을 잃어버렸는데
외양간 고치면 뭐 하냐 다 잃어버렸는데 말이죠
잃어버리기 전애
포로가 되기 전에 했어야지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 파수꾼이 있다 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이시다 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스라엘은 포로가 되어버렸기에
저쪽 적군의 편 즉 포로가 되었으니까
이 파수꾼의 나팔소리가 아무 쓸모 짝도 없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저 동화 책에 나오는 늑대가 나타났다 라고 외치는
거짓말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양치기 소년의 경고 외침 밖에 안되는 거죠 거짓말이다 말이죠
아니 거짓선지자의 평강이다 평강이다 그것은 끝까지 믿어버려서 쫄딱 망해놓고서는
이제는 소 잃고 양 잃어버린 뒤에 외양간 고치는 짓 하지 않겠다 라고
청개구리에게 산에다 묻지 말고 개울가에 묻어달라고 하니까
뭐든지 반대로만 행동하는 이 청개구리가
그건 또 말을 곧이곧대로 하더라 말이죠
즉 바로 그런 식으로 이스라엘이 주님이 보내신 파수꾼을 대한다 라는 겁니다
아니 만약 파수꾼 너가 경고 나팔을 불지 않아서 저들이 경비하지 못해 죽게 되면
그 죄를 파수꾼 너 에스겔에세 묻겠다 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미 이스라엘이 그 청개구리 아들처럼
엄마 말 안 듣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개울가에 묻어달라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편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적으로써 간주를 하고서 나팡을 분다 라는 겁니다
그럼 파수꾼 지 혼자 그 나팔을 불고 지 혼자 경계를 서는 거죠
자 이런 식이다 보니
모든 행동 모든 말이 다 비유가 되니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아니 말귀 알아 먹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통되는 말을 해야
동질성 합일성 연합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건 같은 나라 말을 써도 서로 단절된 비유로만 말하고 있으니
언어를 말라꼬 말하느냐
서로 소통하지 않을 꺼면 왜 말하느냐 말이죠
나팔 소리 자체도 경고로 들려와야 하는데
거꾸로 적군이 나타났다 적군이 나타났다
어디 어디? 이스라엘 너희들이 하나님의 적들이다 라고 뿌뿌뿌 나팔을 불면
이건 뭐 그 나팔을 부는 파수꾼을 가만히 두면 될까요 안될까요?
그래서 참 선지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는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이다 라고 우기는 그 이스라엘로부터 말이죠
참선지자는 다 죽임을 당해요
즉 이 말은 반대로 누구는 다 살려둔다? 거짓선지자들은 다 살려두죠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긴다 라는 말은
마치 무당의 운명과 같습니다 곧 음녀죠
죽어야 할 본인들 무당들은 다 살려주고 거짓선지자 말이죠
즉 이 말은 반대로 반드시 그들이 죽이는 자들이 있는데
바로 산 자 반드시 살아야 할 의인들은 다 죽이는 겁니다
참선지자는 다 죽여요
구약때나 신약때나 오늘날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죠
오늘날 까지도 말이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언제까지 내 백성과 내 참선지자들을 다 죽일래 라고
예수님이 우셨듯이 말이죠
세상을 향해 울지 않는 교회이다 보니
거꾸로 교회를 보고 예수님이 우시는 겁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이죠
파수꾼을 등장 시키심은 지금도 주님이 싸우신다 라는 겁니다
물론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악한 영에 대한 전쟁을 하신다 말이죠
당연히 완료가 다 된 입장에서 말이죠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하여 싸워달라고 뿌뿌뿌 나팔을 불었던 그 이스라엘이
오늘날 교회가
민수기 때처럼
(민 10:9, 개역)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민 10:9, 새번역) 너희의 땅에서 너희를 공격해 온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전쟁에 나설 때에는, 나팔을 짧게 급히 불어라. 그러면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 원수들에게서 너희를 구해 줄 것이다.
(민 10:9, 현대어) 이다음에 너희가 약속한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적들이 쳐들어와 그들을 치러 나갈 경우에도 나팔로 짧게 비상 나팔을 불어라. 그러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를 잊지 않고 생각하여 적들에게서 너희를 구해 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적은 곧 하나님의 적이였다 말이죠
그런데 그 약속의 땅을 타 민족인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이 더럽히고 애굽의 사고방식으로 확장 확대 도배를 해서
이젠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애굽화가 된
척박한 땅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딱딱한 우상화가 된 땅
그러니 파수꾼을 줘도 이 이스라엘이
자기 배를 위한 우상숭배 용도로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삼고자 임금 삼고자 할때에
예수님이 도망 치셨듯이
파수꾼도 자기 배를 위한 자기 재산 자기 가치를 높이는데 이용하는 용도로 활용을 하다 보니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드는 올무에 걸려들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먼저 있고 그 뒤에 왕이 있어서 내 도움을 위해 뽑듯이
어라 나중에는 이 임금이 백성을 등쳐먹더라 말이죠
그런식으로 내 도움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듯이
파수꾼도 그런식으로 자기를 위해 두었는데
파수꾼과 연합이 되기는커녕 단절이 되는
도리어 그 간극이 점점점 더 벌어지는
도저히 안 죽이고서는 안되는 판국의 단절성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
목사
신학지식 성경지식
심지어 성령도 십자가의 영도
다 자기를 위해 내 도움이 되고자 옆에 두었는데
어라 도리어 거치는 반석이 되더라 말이죠
만수기 때처럼 동행했을때가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멸망후 이기에
더 이상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애굽화 되어버렸거든요
우상화 말이죠
그래서 파수꾼을 준 것을 도리어 자기 꾀로 옆에 둘려고 하니까
도리어 파수꾼에 의해서 부셔져야 할 판국에 놓여진
하나님의 원수로만 취급 당함을 보게 되는 겁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몽학선생으로써 저분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데
원수를 사랑하는 남을 용서하는 사랑의 완성 율법의 완성자를 가치키고 있는데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을 옆에 둠으로써
껍데기 곧 번제와 제사만 할 줄 알았지
인애와 자비는 안 쳐다 보더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보더라
즉 이 말은
불뱀 아직 안 물렷따 라는 배불러 터진 의식이다는 겁니다
아직도 자기 숙제로 빈캄에 여백을 채울수 있다 라는 가능성을 보더라 말이죠
배불러 터진 겁니다
파수꾼은 미래에 예언 곧 모조리 다 하나님의 원수이 자리에 놓이시는
이 새언약을 외치는데 다윗언약을 외치는데
아직도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 없다 라고
북이스라엘이 망했던 그 코스대로 고대로 가는 겁니다
원수의 자리가 아니면 그 처음자리가 아니면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는 줄도 모르는
그 정도로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모르는 겁니다
파수꾼의 나팔경고를 의식하고 아 적이 나타났군요
이제 우리 힘으로 그 적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를 경비를 구축하겠습니다 라고
방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라는 차원에서 파수꾼을 준게 아니라
율법을 준게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적으로써 놓여졌기에 포로 잡혀왔다 라고
왜 포로 잡혀왔고 왜 쫄딱 망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파수꾼입니다
여지없이 인자 에스겔이라는 파수꾼을 죽일려고 하듯이
예수님도 파수꾼 되심으로써
자기 편이 안 되어 준다고 여지없이 죽이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 보세요 정치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 편 안 들어주면 복수를 하는 겁니다
빤스랑 세이브랑 고려측이랑
돈 때문에 서로 원수 지간 되잖아요
돈만 들이대면 서로 원수 되었다가
서로 돈되는 유익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 라듯이 우리가 남이가 하고 나오는 겁니다
네 맞아요 오늘날 교회는 정치집단일 뿐입니다
자 이렇게 모조리 다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입장에서 뭐 만이 정답입니까?
절대심판만이 유일한 산 소망이 되는 겁니다
그 징계의 몽둥잉가 아니면 다 죽은 겁니다
파수꾼을 이 징계의 몽둥이를 외치는 겁니다
이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다 라는 거죠
이미 망한 멸망한 자리인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네 맞아요 율법이 우리를 죄 아래로
바벨론 포로 아래로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그 어둡고 캄캄한 깊은 바닷속 아래로
그 애굽의 영광이 하루 아침에 지하로 내려가는 모든 열국의 여자들과 함께 내려가는 그 아래에서
누구를 보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
세상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
우리는 이 멸망의 자리에서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이 어린양이 먼저 떳다 라는 이유로
이 화목제
이 꺽으신 뼈가 먼저 떳다 라는 이유로
다윗이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로써
이 사망의 몸에서 건재달라고 우는자로 만드신 겁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기생 라합은
자기 나라를 쳐들어 온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버렸다 말이죠
자기와의 동질성 합일성이 있는 자기 민족 자기 나라 자기 신을 냅다 갖다바쳐버리고 말이죠
종말을 본 겁니다 이미 다 타버릴 것을
그 타버릴 지옥에서
이 지옥의 몸 건져 달라고
그 여호와의 이름이 곧 경고 나팔로써 간담이 녹았다 말이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자의 팔
곧 찢으셧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그 팔을 그 하나님의 의를 구했고
주의 나라 곧 이스라엘 나라를 구했다 말이죠
아니 적국인데
자기 나라를 멸망시킬 나라인데 말이죠
일만 군사를 이만 군사가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화친을 청했는데
그 나라 임금도 아닌 기생 라합이 화친을 청했으니
기생 라합만이 구원을 얻는 겁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세계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 되는 동행인데
나 이스라엘이다
내 옆에 파수꾼 있다 라고 내 편 만들었다 라고 한 그 꾀가
그 노림수가 도리어 올무가 되어서
자기 꾀에 자기가 누워서 침뱉기 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내 유익에 이용해 먹을려다가 도로
거리끼는 걸림돌에 넘어지는 겁니다
아니 안 그런 놈이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징계의 매를 대시는 그 사랑이 먼저 떳기에
그 사랑이 무조건 옳았고
나는 뭘 해도 무조건 틀리도록 하셨기에
이 하나님의 이 곧 나를 제대로 찢으시는 분만이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시는 분으로써
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 이 말은
이제 내가 의지할 눈에 보이는 국가는 없는 겁니다
그러면 기생라합처럼 냅따 팔아벌이는 것들 뿐이다는 거죠
그카이 장부조작까지 하는 이 불의한 청지기가 옳았던 것이 맞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했던 자칭 빛의 자녀들 보다 백배 천배 나은 자가
불의한 청지기 곧 기생라합이니까 말이죠
이런 매국노 세리가
주의 이름에 딱 맞는 겁니다
간담이 녹아 40년 동안 벌벌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하나님의 의에 벌벌벌 떨었으니 말이죠
도리어 십일조 냈구요 이레에 두 번 금식했구요 저 매국노 세리처럼 토색하지 않았구요 라고 자기 의를 네세우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는 겁니다
7에 70번의 용서만이 우리를 간담이 녹게 만드시는 주의 이름이니까 말이죠
남 7번 용서한 자기 의를 쌓는 자는 주의 이름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겁니다
아주 아주 멋들어진 구원 따낼려고
그 이름을 망령되게 일컷는 겁니다
자기 배를 위하여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자 말이죠
파수꾼은 바로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의 적으로써 예언하고 있습니다
뭘 해도 죄 밖에 안되는 원수임을
그 원수의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보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봄으로써 벌벌 떨라 라고 말이죠
이 심판의 경고가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이였기에 말이죠
그러니 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질 필요가 없는 겁니다
‘곧 사랑의 빚은 뭡니까
파수꾼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적됨을 고발 당해
모조리 탈탈탈 다 부서지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로 만드시게 했던 그 사랑의 빚처럼
우리도 파수꾼으로부터 가루가 되었듯이
우리 또한 이 사랑의 빚을 퍼붓는 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외에는 구하지 않도록 가루로 만듬으로써
하나님의 적의 자리에서 용서받도록
이 십자가의 용서에 모조리 가루로 만드는 탈탈 털어버리는 빈공백 이 간극
이 빵구멍 내도록 말이죠
그 카이 먼저 빵구멍 당하는 겁니다
요나도
엘리야도 내 열심히 특심이라는 것이 빵구멍 당해야
이제 남들에게도 이 십자가의 용서를 불의한 청지기처럼
하나님의 의를 구하겠끔
삼년반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했듯이
아주 아주 빵구멍 제대로 다~~ 가 되도록 말이죠
마구 마구 빵구멍 내는
십자가로 막 수셔대는 자로써 말이죠
바로 이 전쟁을 하는 겁니다
이미 다 완료가 되었기에
택배가 도착 완료 되었기에
이제 사용후기를 누리는 겁니다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미완료가 아니라
다 이룬 완료로써 다시보기를 하면서 감격을 누리는 겁니다
그 징휴를 즐기는 겁니다
이미 감사가 떳기에
예 뿐이요 아니요 함이 없음을 다 이루었기에
그 증상을 예 로써만 누리는 겁니다
뭐든지 십자가의 다 이루심 뿐이기에
그 피 흘리심 뿐임을 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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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3 누가 지혜로 깨달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겠느냐 (호 14, 4- 9)
2025. 4. 6.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호 14, 1- 3)
호세아 2023 2025. 3. 15. 21:47
23-3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후견인에게 걸맞는 고아라는 불쏘시개) (호 14, 1- 3)
〈호세아 14, 4-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490장 새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송가 299장 새 564 예수께서 오실 때에〉
〈찬송가 488장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새찬송가 428장〉
새찬송가 83장(통83) 나의 맘에 근심 구름
새찬송가 15장(통55) 하나님의 크신 사랑
새찬송가 144장(통144) 예수 나를 위하여
새찬송가 283장(통183)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새찬송가 266장(통200)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새찬송가 289장( 통208)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새찬송가 240장(통231)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새찬송가 209장 (통247) 이 세상 풍파 심하고
새찬송가 497장(통274) 주 예수 넓은 사랑
새찬송가 505장(통268) 온 세상 위하여
새찬송가 566장(통301)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새찬송가 321장(통351) 날 대속하신 예수께
새찬송가 380장(통424) 나의 생명 되신 주
새찬송가 433장(통490)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미예수 2000 - No.1588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가스펠; 주여 이 죄인이 (세상에서 방황할때) No.1030 찬미예수 2000〉
찬미예수 2000 - No.1588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주님의 도를 배우고 주님의 길로 행하리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호세아 14, 4-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490장 새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송가 299장 새 564 예수께서 오실 때에〉
(호 14:4, 개역)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호 14:5, 개역)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호 14:6, 개역)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행목 같으리니
(호 14:7, 개역)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호 14:8, 개역)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호 14:9, 개역)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 14:4, 현대어) [하나님의 특사]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스라엘의 반항심과 지조없는 마음을 고쳐 주겠다. 내가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겠다. 이제는 그들에게 품은 노여움은 다 풀렸다!
(호 14:5, 현대어) 내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처럼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리라.
(호 14:6, 현대어) 올리브나무처럼 아름답게 가지들이 퍼져 레바논의 숲처럼 울창하고 향기로우리라.
(호 14:7, 현대어) 이스라엘 백성이 먼 유랑지에서 돌아와 다시 내 그늘 밑에서 살며 밭에 씨를 뿌리게 되리라.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지리라.
(호 14:8, 현대어) '우상이 더 이상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고 에브라임이 고백할 때 내가 그 기도를 들어주고 그들을 돌보아주리라. 나는 늘푸른 전나무와 같으니 그들이 일년 내내 내게서 열매를 얻을 것이다.'
(호 14:9, 현대어) [누가 이 책에서 자신을 깨달았는가] 이 모든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슬기로운 자는 누구인가? 주님의 길은 곧고 평평하다. 의로운 사람들은 그 길을 잘 걸어갈 것이지만 죄인들은 그 길에서 자기들의 죄에 걸려 넘어지고 말 것이다.
(사 2:1, 개역)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사 2:2, 개역)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미 4:1, 개역)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 4:2, 개역)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호 6:1, 개역)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개역)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 6:3,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 6:4, 개역)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6:5, 개역)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호 6:6, 개역)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8, 개역)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호 6:9, 개역)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호 6:10, 개역)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호 6:11, 개역)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마 9:13, 새번역)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호 6:6
(마 12:7, 새번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고전 1:17, 개역)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오늘 호세아 마지막 시간으로써 이 다음은 고린도서를 하겠습니다
로마서도 아직 많이 남았지만 열왕기를 하고픈 마음이 크네요
그런데 요즘 호세아 로마서 에스겔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점에
소름이 끼질 정도로 머리가 쭈뼛 쭈뼛해지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호세아 초반부는 아직 포로 잡혀가지 한 참 전임에도 불구하고 에스겔과 너무 맞닿아 있다 라는 점과
오늘 후반부 마지막은 그야 말로 로마서 지금 하고 있는 내용과 너무 빼다박은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보니
호세아를 하고 있는지 로마서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너무 딱 들어맞는 것에
한 껏 기분이 업 되어 있는 붕붕 뜨는 기쁨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점은
아무도 나눌려고 하는 자가 없고 들을려고 하는 자가 없다는 점에서
너무 아쉽기도 합니다
그 광고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 광고처럼
죄인 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처럼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누가 지혜로 깨달을 수 있겠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수가 있겠는가 라고 혀를 내 두를 정도로
걸어다니는 지혜라는 인물의 숭고함 앞에서
그저 머리 쳐 박고 생일을 저주하고 새까만 잿더미 아니면 다 타버린 뿌연 연탄재를 머리에 뿌리는 저주 속에 들어갈 지라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이 지혜라는 인물의 영광 앞에 그 얼굴을 감히 볼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 스러운 정도로 그 저주 속에 뛰어드시는 그 지혜 앞에
무릎을 안 꿇고는 못 배길 정도로 너무 너무 좋을 정도이다 말이죠
우리가 시편 후반부를 하면서 그 희열을 느꼈듯이
분명 모조리 다 심판하신다 해 놓고서는
그 다음 편에는 모든 열국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라고 하시고
또 그 다음 편에는 모두다 반드시 그 죄악을 심판받는다 해 놀고서는
그 다음 편은 모두다 회복 된다 라도 돌아오리라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이것이 로마서에서 7장 마지막과 8장 처음 부분처럼
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이다 라고 했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거룩이다 라고
인간의 성화론이라는 교리나 신학해석에서의 거룩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나를 제대로 찢으시지 못하는 자는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지 못하는 자 이거든요
분명 로마서 7장에 오호라 나여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해 놓고서는
갑자기 8장에서는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갑자기 전복 전환이 되는데 있어서
그 원인이 없다 라는 점이다 라는 거죠
결과 라는 완료가 덮쳐져 버린 입장이 되어버리니
이것은 빵구멍 뻥 뚫혀진 입장이지
내가 빈 칸 여백에 답을 써서 적어넣는 결핍을 채우는 내 숙제가 없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완료 즉 원인 없는 결과만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 라는 점에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죄 짓고 싶어도 못 짓는다 라는 거죠
물론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죄가 아니기에
그들은 죄가 뭔지도 모르기에 그 반대인 의도 모르는 겁니다
그 의도 모른채로 의를 쌓겠다 라고 하니까 웃끼는 거죠
미완료만 반복하는 겁니다
아니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바로 이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앞뒤 모순 디는 간극 벌리기 이거든요
이 공백을 맥구어 넣을 방법이 없는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 인데
인간의 거룩 인간의 성화론은 정반대로 이 간극을 어떻게 해서든 그 갭을 좁히겠다 라고 나오니까
대화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그야 말로 완악한 수건을 겹겹이 더더욱 뚜껍게 뒤짚어 쓰는 것을 자랑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육의 생각으로만 가득하더라 말이죠
그 딱딱한 마음을 기경 밭갈이 싹 다 갈아엎어버릴려는
율법과 선지자를 죽이질 않나 ~~~~~~~~
율법을 지키겠다 라는 것이 도리어 율법을 폐하는 모습이니 말이죠
어떤 장로가 저를 율법 폐기론자로 어떻게 해서든 몰아갈려고 했는데
그 놈이 글쎄 율법을 폐하는 자 였음이 드러나더라 말이죠
왜냐하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그 자가 거부하였으니까 말이죠
그저 율법을 지켜서 모세의 자리 그 높은 자리 상좌에 앉아서 대접받고자 했던
마귀 자식임을 스스로 드러냈던 겁니다
아니 목사놈들이 이런 짓을 많이 하던데
이제는 장로까징 다 덤벼들고 집사들까지 다 덤벼드니 원
이런 정치적인 집단이 종교 아닙니까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말이죠
짐승이라는 국가 등에 늘 호시탐탐 올라 탈려는 음녀
미국에서 홍역이 퍼지는데 이 백신접좋을 거부하는 것이 유행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종교와 연관되어서 벌어지는 정치성향이다 라고 분석하더라 말이죠
미국이 저러면 금새 한국도 다 따라하겠지요
애굽 에덴동산 같은 잔칫집이 지하로 내려가니 열국의 여자들도 다 따라 지하로 내려가듯이 말이죠
앞으로 질병이 더더더 많이 자주 광범위하게 발생하는데 있어서
과학을 부정하는 종교집단에 의해서 집단면역에 붕괴 될 것이다 라고
그런데 이것이 정치와 연관이 되어 있다 라고
자신과 자신들 가족 특히 아이들은 끝까지 깨끗해 져야지
백신으로 자폐증 걸리면 안된다 라고 ㅋㅋㅋㅋ
이런 정치성향 덕분에 무신론자의 증가가 잠시 멈칫해 져서
20대 남자 애들이 보수화 되는 것이 세계 추세로 자리잡게 되니
졸교성이 강한 이 나이때의 남자아이들에 젊은 여성들은 치를 떨게 되는 거지요
여성혐오에 심심하면 데모에
뭐 기후 온난화 보다 더 큰 문제가 이제 대 놓고서 다들 미쳐가고 있다 라는 거죠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더더욱 짜증과 분노가 더 할 테니
이제 날이 더더욱 찹고 더더욱 덥게 되니
스스로가 지옥의 몸인 것을 감출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날이 된 것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 이미 먼저 떳기에 반드시 벌어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거지요
결국 날이라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있는 나의 몸이라는 공간은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으로 동원이 되는 것이지
나 개인의 사적인 시간이나 공강 즉 몸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라는 거죠
그러니 악인도 의인도 주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그릇이지
자기가 악마 될꼬야 라고 해서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반드시 천사 같이 선해 질 꼬야 라고 해서 성화론 지킨다 율법을 지킨다 라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닌
의와 죄가 인간이 있기도 전에 먼저 있었다 라는 사실
그래서 인간은 죄의 소원도 못 넘어서고
더 놀라운 점은 은혜가 왕 노릇하는 의의 소원 곧 아들의 소원도 못 넘어선다 라는 점에서
죄라는 지옥의 작살에 꽃혀서 가느냐
의라는 천국의 작살에 꽃혀서 가느냐
이것은 토기장이 마음대로 이지
내가 원한다 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성화론자들처럼 달음박질 해서 되는 것도 아닌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바 대로 된 다 라는 것
애초부터 자유의지라는 사상은 철학사상인데
이 자유가 없다 선택의 권리가 없다 라는 것에
엄청 억울해 하지만
정작 선택권을 줘 봤자
자유를 줘 봤자
어차피 강요된 선택
강요된 자유를 추구하는 결국 타인의 욕망을 따라 갈 뿐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일 뿐이다 말이죠
그게 반작용인 한풀이 이니까 말이죠
인간의 믿음은 결국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남들 하는 것 다 하게 해 달라 이거든요
다 강요된 겁니다
뭐를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 따라 가는 겁니다
타인의 욕망이다는 거죠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죄의 소원 죄의 욕망이다는 거죠
그래서 의의 소원은 바로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이 죄의 소원만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지켜대는 의와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를 행하라 라고 하라 하지말라 라고 나오는 용어는
의는커녕 죄 아래로 가두기 위한 율법의 대상물이 된다는 거지
인간이 율법 곧 말씀을 대상물로 삼아서 지킬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언놈의 인간이 이 날썬 검과 같고 영과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한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다룰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해석하는게 아니라 해석 당하는 판국인데
그러니 남 7번 용서했다 라는 율법 지키는 것을 주님은 거부하시고
도리어 7에 70번 용서를 받은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이유는
말씀이 운동력이 있지
인간은 운동력 즉 생명력 곧 정직한 영 그 새 영 새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
주셔야만 하는 도리어 죽어있는 자 곧 첫아담들 이다 라는 겁니다
살려주시는 마지막 아담이 오지 않는 이상
그냥 좀바처럼 눈만 껌뻑 거리다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아담이 천국침략 천국침노처럼
이 음부의 권세 덩어리인 이 사망의 몸에 뛰어드시지 않는 이상
그 우물가의 여인에게 요나의 표적처럼 뛰어드시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저 좀비일 뿐인
생명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 구원 쪽으로 해석을 하거나 목적을 둔다 라는 것은
도대체 왜 이 지옥의 몸인 나에게 뛰어드시는 분의 마음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그저 내 돈 내 몸 내 구원 내 천국 따위를 목적으로 하기에
그 결핍 아무리 채워 본들 어차피 미완료
의문의 반복
어차피 목 마르다 말이죠
오로지 집단 구원인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이 되기에
남은 자 만 돌아오는 겁니다
이 남은 자 보자 했는가???
아 다음주에 글이 올라가겠군요
녹음은 미리 했기에
시간이 나면 미리 해 버려야 하기에
안그러면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르니까 말이죠
다음 주 로마서 할 차례이니까 남은자에 대해서 말이죠
다 죽여놓고서 그 속에서 불쌍히 여겨 주신 자만이 다시 사는 겁니다
모조리 다 찢어 죽여놓고서
모조리 다 불뱀에 물려 다 죽게 해 놓고서
그 죽음에 뛰어드신 인애와 자비 되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남은 자만 돌아오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건 다음 주에 할 꺼니까 요기까지만 하고요
아무튼 바로 이 찢엇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는 없어요
성하론자는 자기 의 쌓기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 안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하는
완악한 수건만 까가득 겹겹으로 머리에 싸매고 싸매고 싸메고 있으니까 말이죠
더더욱 딱딱한 경계선 긋기 이지
부들 부들한 마음으로 경계선 허물기는 되지 못하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사마리아 구역을 괜히 삥 둘러 간 것이 아니니까 말이죠
다 이유가 있어요 네 거룩을 지켜야 하니까 말이죠
마구 마구 돌아다녀 봐요 코로나 처음 보균자 지금 가정 파탄 날 정도로 악인 취급 받는다 말이죠
본인이 뭐 알고 그랬냐 말이죠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
누가 이해 해 줍니까 아무도 이해 안 할려고 해요
다들 완악한 수건을 쓰는 것 만이 살 길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성경말씀만이 바로 그것이 이미 죽어 있다는 증거이다 라는 거죠
코로나 걸려서 죽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그카고 보니 탈불자가 백신 맞지 말라꼬 막 전화하더니 ㅋㅋㅋ 음모론을 펼치던데 이게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그야말로 음녀 티를 대 놓고 하거든요
코로나 걸려 죽는게 아니라 이미 죽은 자인 우리에게
이 아무것도 아닌 자에게 왜 뛰어드셔서 대신 죽으셨는가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봐서 지옥가는 거다 말이죠
히나님 원망해서 징벌을 당해 불뱀에게 물려 죽어서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말이죠
어라 이래 말 하다 보니 결론을 미리 다 말해버린게 되었는데
호세아 13장 까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로 인해 형벌을 내리시는 겁니다
말이 우상숭배이지 자기 숭배이다는 거죠
누구는 우상 대 놓고 하고
누구는 우상 전혀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는가
그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만 챙기는데 삶의 목적을 두었고
누구는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데 열중했다 라고 자부하는
1번은 나쁜 놈 2번은 이상한 놈 3번은 좋은놈
자 이렇다 할 지라도 집단적으로 모조리 다 형벌을 내려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하신 후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시는
이 앞뒤 모순 되는 간극의 공백
그게 오늘 호세아 14장 마지막 내용인 겁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는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넘치는 있는 이 간극
아니 꼭 심판 속에서 구원을 왜 펼칠까요?
자기 의 다 탈탈탈 털리는 빈공백 만드시고자 말이죠
불뱀에게 물려 죽는 곳에 그 지옥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높이 드시는 겁니다
그 지옥에 뛰어드시는 천국침노 말이죠
아 왜 천국 침노 침략 인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네요
인간이 세우는 천국은 다 지옥이거든요
그래놓고 천국이라고 착각하는데
그 가짜 천국인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잔칫집에
진짜천국이 침략해서 모조리 다 허무는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다시 짓는 이 진짜 천국의 침략이 없으면
그 사람 지옥이다는 거죠
성전을 헐라
말이 성전이지 거룩한 장소 곧 예배드리는 경배하는 장소이지
결국 인간은 자기 손으로 자기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투시한 거죠
속내는 강도의 소굴 우상의 그림을 그려 맨날 허구헌날 굿판만 벌리는
이것이 인간의 몸 곧 귀신 씌인 몸이다 라는 거죠
그 귀신 씌인 몸 광명한 천사 노릇하는 위선적인 그 음부의 권세를
멸하는 진짜 천국의 침략으로 가짜 천국 가짜 거룩한 몸 가짜 성전을 허물지 않으면
그 딱딱한 부동산 허물지 않으면
그래서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 곧 광야로 개유 꼬셔서 유혹해서 이끌어서
광야에서 결혼하시는 그 한 몸
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몸이 되지 않도록 하시는
이 반칙
이 불륜
이 율법의 완성인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의문의 증서 찢기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벌써 시간 적인 문제란
결국 인간이 있기도 전에 주님의 시간이 있었다 라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해서 사건인 거죠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에 걸맞는 죄인 중의 괴수 만들기를 하시고자
우리를 불뱀에게 물려 찢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죄가 넘쳐나는 그 지옥의 몸
그 사망의 몸에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이 지옥의 몸에
누가 뛰어드셨는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뛰어드셨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지혜 곧 십자가의 도를
누가 깨달을 수 있겠으며
누가 성령을 받아서 비로소 짐승의 수를 셈으로써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볼수 있겠는가?
누가 총명으로 알수 있겠는가
사람의 종명은 아니 불뱀에게 물렸다면
그 불뱀의 독에 맞는 백신이 필요한데
아니 이 무슨 개소리야 그 유명한 유뷰트 짤 태왕사신기
아니 생각해 보세요 네 맞아요 불뱀에게 물렸으면 그것에 걸맞는 치료약 백신이 필요하지
아니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고 낫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인간이 먼저 있었다면 그 말이 맞아요
그런데 인간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악이 먼저 있었고
죄의 소원이 먼저 있었기에
백날 치료약 백신으로 나아봤자 어차피 사망권세는 해결 되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수천년 동안 첫아담으로부터 내려오니까 당연한 줄 알아요
그 카이 인간은 자기 기준에서 원인에 따른 결과를 도출해 낼려고 하는 겁니다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는 거죠
그런데 문제 조차도 파악을 못 한 겁니다
죄 에 대해서도 파악 못했어요
죄를 안 저지른 상태로 리셋 하면 되는 줄 알아요
되돌리기 하면 되는 줄 알아요
되돌려 놓으면 뭐 합니까 어차피 또 죄 짓는데
타임루프 라고 하나요 타임루프에 갇혀 버리게 되는
의문의 반복인데 말이죠
인간은 죄를 파악 조차도 못합니다
인간이 죄 짓니 마니 라고 죄를 다루는게 아니라
죄가 먼저 있었기에 죄가 인간을 다루는 겁니다
죄가 먼저 나를 파악해요
자 그렇게 되면
이건 죄의 소원을 넘어서야 하는 입장에 놓인 거죠
네 불가능 속에 집어넣어버린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죄 짓니 마니 하고 있어요
그럼 이제 더더더 간단 합니다
죄가 왕 노릇 했듯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면 되는 겁니다
즉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 라는 원인 없는 결과의 표현입니다
이것을 또 원인 있는 결과 라는 식으로 바꾸는 자들 많아요
은혜를 더 할려고 죄 지으랴?
네 맞아요 주님의 숙제에 맡겨버리는 반칙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그 반칙을 자기 유익으로 추구하면 어차피 또 의문의 반복이지
완료가 없이 미완료로 계속 뺑뺑이 다람쥐 챗바귀 돌 듯이 하는 겁니다
완료에게 떠 맡겨버린다는 것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구원 내 천국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이 지옥의 몸에 뛰어드신 그 사랑
그 사랑에게 나 자체를 그 속에 풍덩 집어넣어서
이제 내가 살아도 내가 사는게 아닌
내 속에 주님이 살게 된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 되는
내 지혜로 풀어라 라는 말이 아닌 주님의 지혜에 풍덩 빠져 영구 없다 나 삭제 되어도 상관없다
이 안료인 율법의 완성인 사랑만 남으면 된다 라고
남은자가 돌아온다 라는 말은 남은자 렘넌트 운동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놈들 남은자 아닙니다
자기 죄로 우는 자 만이 돌아온다는 말인데
그 자기 죄가 먼지도 몰라요
죄란 결국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것을 죄 라고 알면 뭐 합니까
그 죄를 흰 눈 같이 희게 하시는 주님의 인애와 자비를 안 쳐다보는데
도리어 또 그 의문의 반복 자꾸 번제와 제사를 바칠께요 라고 나오니
그것을 의 이라고 여기니
이게 오늘날 까지 내려오는 바리새인의 위선인
성화론자들의 의 거룩 실천 아닙니까
실천하면 할수록 아 나는 위선자 이구나 나는 안되구나를 아는 자는
적어도 완악한 수건을 쓰지 않는 개같은 이방인 사마리아 인의 자리에서
긍흉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되겠지만
실천하면 할수록 실천이 되어서 십자가 사건 앞에서
아 나는 자기 의를 추구한 자였구나를 들통당하지 않게 되면
이 거룩한 성전을 허물라 삼일만에 짓겠다 라는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셧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의에 무슨 수로 복종할수 있겠습니까?
실천 하면 할수록 그 만큼 독하게 실행했다 라는 것은 복수심이 그 정도로 강했다 라는 것이거든요
아니 난 복수심을 가진적이 없는데
아니 아니 심어버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악령도 심어 버리시는데
다윗에게 악령을 심어서 인구조사를 해서 7만명 죽이시잖아요 절대저주를 퍼붓잖아요
인구 조사 안하면 되지 가 안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있어서 내가 인구조사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이미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고때만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르는게 아니라
날 때부터 그런 짓을 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 아니 죄인으로 태어났다 라는 것을
비로소 다윗이 알았다 라는 겁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말이죠
그러니 누가 지헤로 깨달으며 라고 할때에
결국 상대적으로 안지혜가 뭔지
지혜 있다 하나 깨닫지고 못하는 것이 뭔지 라는
두 언약의 한 세트로써 그 반대급부의 내용들이 무엇인지까지 다 알아야
비로소 누가 지혜로 깨닫는다 라는 의미를 알 것 아니겟느냐 말이죠
그런데 우리 심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축복이요 축복이요 라는 이 3분의 1만 먹지
3분의 2 저주요 저주요는 안 먹는다는 점에서
인간은 말씀 보다 자신을 먼저 우선시 한다는 점
안그래야지 자체가 안된다는 점
인정하라 말아죠
심지어 그 3분의 2 저주요 저주요를 다른 복음 곧 축복으로 긍정으로 좋으신 하나님으로 다 채워버린다는 점에서 더 더 더 큰 문제점으로
인간의 숙제로만 빈칸을 꽉꽉 채워버렸으니
그게 바로 교리 아닙니까
교리 플러스 실천 이건 뭐 불교 아니냐 말이죠
결국 성화를 거룩한 행실을 성령이 들어와서 하는게 아니라
그러면 내가 안 했습니다가 되는데
분명히 내가 해 버린 내 숙제가 되어버렸으니
불교처럼 성화실천은 그 만큼 할 짓이 없어서 한 셈이다 라는 사실
마치 오늘날 이스라엘 유대인 속에서 군대 안 가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놈들이다 말이죠 얼마나 할 짓 없으면 맨날 머리 흔들어 가면서
구약 외우기 하잖아요
그 무당년처럼 구약 다 외우잖아요
할 짓 없기 때문에 무당 짓을 하는기다 말이죠
네 맞아요 즉 죄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할 짓이 없어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그것을 언제든지 튀어나올수 있음을 그 동안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을
늘 억누르고 눌러 눌러 눌러왔지만 한꺼번에 동시다발로 터져나오는 겁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니라처럼
욕심은 경제 문제 먹는 문제입니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이제 퍼포먼스 무당짓을 하게 되어 있어요
우상숭배 해요 내 배야 등따스고 배 부르니 뭘 할 꼬 종교
자기의 의미를 찾는 겁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자 임을
내 구원을 추구합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숭배를 합니까
자기의 가치를 높일려고
목사와 장로들이 왜 서로 모세의 자리에 앉고자 싸우겠습니까?
내 아들 고아 되면 다 수포로 돌아가지요
내가 왕비나 왕이 안되면 나그네 떠돌이 곧 공산화가 되거든요 빨갱이가 차지한다 말이죠
그래서 나라를 구하기 운동을 하는 장로 기도모임이 발족을 하는 거다 말이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이 죄가 바로 종교입니다
우상숭배 무당짓입니다
나만큼은 반드시 구원이 돠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죄라는 종교가 살인하지 말라 라는 종교가 도리어 살인을 하는
(불교 보세요 개미 한 마리 안 죽이는 살생금지를 실천하고자
빗자루 들고 다닌다고 하 잖아요 빗자루로 쓸다가 죽으면 그러면???)
이 간극을 좁힐 길이 없는 것이 바로 사망
곧 정치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나 보다 경제 떡이 먼저 있었고
나 보다 종교 악한 세대가 구하는 기적이 먼저 있었고
나 보다 정치 온 천하를 줄테니 절하라 안하면 다 죽여버리겠다 가 먼저 있었던 겁니다
바로 이 죄의 소원을 무슨 수로 넘어설수 있겠습니까?
나 보다 먼저 있는 죄의 소원을 말이죠
간단합니다 나 보다 먼저 있었던 것을 찾으시면 됩니다
바로 아들의 소원입니다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없어요
그러면 무슨 수로 여호와께 돌아갈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내 손 보다 먼저 있었던 손 찾으시면 됩니다
괜히 모세 보다 큰 이
모세 보다 먼저 있었던 이 이라고 괜히 표현한게 아닙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이지요
복음서에서는 요나 보다 더 큰이 세례요한 보다 또 아브라함 보다 라고 나왔듯이 말이죠
결국 내 더러운 손 어차피 주의 산에 못 올라갑니다
주께로 돌아갈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간단합니다 내 손 보다 먼저 계셨던 분의 손을 구하면 됩니다
네 내 손 짜르고 주님의 손 붙이면 됩니다
나는 그거 못 하는데 그거 하시겠다 라고 나오신 분이 있다 말이죠
애굽의 칼 애굽의 팔이 짤릴때에 내 팔도 짤린 겁니다
이제 주님의 팔을 주님이 붙여주시느냐에 달린 겁니다
이거 내 소원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것 원치도 않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소원이 그렇게 하시겠다 라고 다가오신 겁니다
이용해 먹을려고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백날 딱딱한 내 구원 내 돈 내 돈 돈 돈 돈 카는 것에서는 안 맞습니다
주께만 범죄한 자 찾으시니까 말이죠
상하고 우는 자는 찾으시니까 말이죠
오늘 본문은 죄 아래 가두는데 성공하신 주님이
이제 주님의 소원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는 이 아들의 소원대로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주님의 도 곧 십자가의 도로
요나의 표적을 보이시겠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뱀에게 물렸는데 무슨 소리하느냐 약 달라 약 달라 라고
다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랄때에
주님아 오신 이유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꼬 오셨다 라는
이 죄의 소원애 한 세트가 되는 아들의 소원
곧 주님의 도 십자가의 도로
자기 아들을 아까지 않고 내어주신 이 화목제의 사랑
인애와 자비만을 펼치시고자 함이지
답도 없는 그 의문의 반복인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
즉 행함으로 실천하는 것 원치 않는다 라는 겁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을 실천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쌓으면
그것으로 계급 짓고
그것으로 복수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육의 자랑으로 삼을때에
주님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물이다 말이죠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아니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보이느냐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것이 어떻게 낫는 것으로 보이는 결과를 도출하느냐
결국 안 보이면 우짤래? 다시 안 살려주면 우짤래?
그카이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지
보이도록 하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에러이 거짓말 ㅋㅋㅋㅋ
그러니 인간에게는 믿음이 있을 수가 없어요
결국은 행함으로 빠집니다 보이도록 해야 되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달라 할 수 밖에 없어요
고맙게도 요나의 표적을 구하는 자는 주님 뿐이시다 라는 사실
그 분이 먼저 있었기에
나를 대상물로 삼아버렸다 라는 사실에 의해서 혼자 고이 고이 간직하면 될 것을
괜히 내 믿음 받았다 라고 나서다가
인간들의 믿음이 되어버리면 결국 누가 크냐 라는 혈과 육의 싸움 밖애 안되는 겁니다
믿음으로 가지고 엉뚱한 데 쓸려고 할 뿐인 그저 우상숭배로 빠질 뿐이다 말이죠
그게 복수심인 거죠
한풀이 원한
행함을 잘 못하는 자 실천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어서 못할때에
그 빈칸을 또 믿음이라는 것으로 또 안 질려고 그 빈자리에 땜빵용으로
서로 기 죽이는 것에 대응으로 사용할때에
아이고 또 헛 짓꺼리 하다가 날 다 새는 겁니다
자 그러든 말든 오늘 본문처럼 뭘 해도 우리를 죄 아래 가두시고
그렇게 찢으셨다가
주님은 다 죽여놓고서
그 진노 속에서 긍휼의 그릇을 새로 맹글어 가시는 겁니다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갈 뿐인데
주님은 이 화목제 라는 이 십자가의 도가 먼저 떳기에
그 첫 맹세대로 그냥 밀어붙이시는
이 완료에 의해서
오래참으로심과 관용하심으로 긍휼의 그릇을 뽑아내시는
이 십자가 라는 가마솥 완성하셧다 라는 겁니다
이 십자가에서 두 그릇으로 갈려지는 겁니다
먼저 있었던 그 기준이 나타나서 두 패로 가르는 겁니다
시므온 선지자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을 가르는 기준이 나타났다 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이죠
결국 인간에게서 기준을 타인에게 맡깉다 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 그것이 선악인 것이요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요
이것이 죄의 소원이 먼저 있어서
모든 인간은 이 죄의 소원을 넘어서질 못하는 종노릇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지
껍데기 몸은 죄의 소원을 못 넘어서지
이것이 사망의 몸이다 라는 거죠
누가 자신이 지옥의 몸이다 라고 인정할 자가 어디 있으며
즉 지혜자가 찾아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못 보고요
바이러스에 걸린 키보드인 거지요
외부에서 백신 곧 의사가 오지 않느면 무슨 수로 바이러스에 걸린 죄인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그런 죄인을 고치는 총명함으로써
인간의 저런 나 건겅하다 나 의롭다 라는 그 의 쌓기 의 실천하기 라는
인간의 총명을 깨뜨리는 이 십자가 라는 불륜의 총명을 알아서
짐승의 수를 세고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는 은혜의 왕 노릇의 심판을 구하는 자 있겠습니까?
정작 마리아는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부어 달라고 브로큰에로우 부러진화살 폭격요청을 했는데 말이죠 두 렙돈 전재산을 바친 과부의 종말의 헌금도 그렇구여
불의한 청지기의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곧 종말의 믿음도 그렇구요
인자의 나라와 인자의 의를 이 땅에 퍼부어 달라고 폭격요청
마치 기생 라합처럼 말이죠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서 말이죠
바로 이런 우상을 대상으로 한 전쟁인 하나님의 도는 하나님의 의는
이런 자기가 기준이 된 자기 의를 향한 전쟁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곧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중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의도 모르니까 죄도 모르는 거죠 자기 의가 죄인줄 모르는 겁니다
도리어 자기의 의를 세운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더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겠다
또 자기의 숙제를 하겠다 라고 불뱀에게 물렸으니 약을 달라
이것이 논리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아니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면 낫는다? 그런 미신적인 행위를 어떤 미친놈이 하겠는기?
바로 그겁니다 자신이 미친 놈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입니다
구리놋뱀은 누굽니까? 자기의 육체입니다
대신 못 박힌 죄 값을 치른 분은
왜 하필이면 도저히 인간의 믿음 곧 복수심으로는 도저히 쳐다볼수 없는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를 쳐다보라 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어라 그런데 막상 효과를 본 체험담이 벌어지니까
안 본자 다 죽였지만 소문이 퍼지니까 살았다 라는 말에
어라 이제는 기드온이 던진 그 제사장 옷 에봇을 우상숭배하듯이
자기 유익에 맞다 싶으니까 십자가를 또 우상숭배 하더라 말이죠
자기 유익이 된다 라는 것을 알고서
요나의 표적 마저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기준이 곧 자아 라는 우상이다는 겁니다
자기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거죠
자기가 선택한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라는 의미에서 취사선택인 거죠 말이 선택의 자유인 것 같지만
강요된 선택
내 속에 죄가 그렇게 하도록 조정한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죽어요
사회에서 매장 되고
종교에서 매장 되니까 말이죠
그러니 나를 위한 나
자기가 기준이 된 입장에서 아무리 지혜든 총명이든 십자가의 도든
졸지에 자기를 위한 임금삼기 식 밖에 안되는 거죠
그런 임금이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정작 노예로 삼는 역이용 당하는
네 맞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들도록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즉 인간의 지혜와 총명 조차도 꾀는 속임수로 작동함을
십자가의 도가 들추어내시겠다는 겁니다
고로 그 어떤 인간의 지혜도 종명으로도 이 주님의 도를 알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가 없어서 우는 자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울게 만드시는 성령을 넣어서 우는 자
자기 죄로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죄를 짓냐 마냐 라는 죄가 아닌
죄가 먼저 있어서 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서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만 은혜의 왕 노릇이 필요하지
안 그러면 자기 숙제
자기의 숙제란 결국 믿을 구석은 내가 하는 것이 믿음직 스럽지 남이 하는 것에는 영 믿음이 가질 않는 겁니다 즉 행위가 업적 쌓기 자기 의 쌓기이니
자기 의 말고는 믿을 구석이 못 되는 겁니다
아니 죽여놓고서 다시 살려주지 않으면 우짤려고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에 있어서
이 사랑이 없다고 우는 자는
인간의 지혜와 총명에서는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인문학 철학을 보면 웃끼는게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 놓고서는
사랑이 없다고 우는 것이 아니라
까짓꺼 사랑? 그거 실천 하면 될꺼 아니냐
맞잖아 사랑이란 결국 실천의 문제이니까 라고
이것이 모든 철학자의 주장입니다
그 속에 정작 사랑을 실천할수 있는 새 마음이 내 속에 없다 라고 우는
그런 철학자는 단 한 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런 목사도 없었구요
다들 자기가 쌓아 올린 그 업적을 바탕으로 장사만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브로큰 애로우를 마리아의 기도 한나의 기도처럼
기생라합의 믿음으로 외쳐야 하는 겁니다
내 속에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폐기처분해 달라고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폐기처분해 달라고
안그러면 불쌍히 여겨주셔서
인애와 자비를 베풀어 그 정직한 영을 달라고
왜? 아무리 봐도 자신은 사랑의 몸이 아닌
지옥의 몸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마땅한 곤고한 몸이니까 말이죠
이것이 지혜자를 만난 자 이고
명철한 자 앞에서 무릎 꿇은 자 이다는 겁니다
그 분의 지혜를 보고 자신의 지혜를 냅따 기생라합처럼 버리고
어부로써 자기의 생계수단인 그물을 던져버리고 그 지혜자를 따랐듯이
우물가의 여인이 자신의 생명수 목숨줄인 물바가지를 냅따 던지면서
선지자가 나타났다 내 죄를 드디어 해결할려고 내 숨겨둔 죄를 파 재끼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라고 좋아라 했듯이 말이죠
그런 자들이 지혜를 지킬줄 알아서
총명을 펼칠줄 알아서 찾아옵니까
아예 기대하지 않고
지혜 스스로가
총명 스스로가 펼치는 숙제에
그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넙쭉 받아먹으라고 찾아오심이다는 거죠
이런 모욕적인 구원을
누가 믿겠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나겠습니까
자기의 팔이 짤린, 우상을 쫓는 애굽 팔 흉내내는 이 팔 짤라 달라고 우는 자에게 나타나시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우는 자는 주님의 숙제로써만 우발적으로 우연히 만들어 집니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에서는 그 반대를 추구하고 있지
절대로 우는 자가 나올수 없습니다
상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자 곧 성령은 주님의 숙제로 인한 선물로서만 주어지는 외부의 숙제이지
인간의 숙제는 도리어 그것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아를 거부할려고 포로된적 없다 라고 우기고
과부를 거부하고자 주모 안방마님이 되고자 한다는 겁니다
후견자에 걸맞는 고아
피흘리신 회목제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자는 주님의 숙제로써만 새로 맹글어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시간적으로 뒤 라는 말이 아니라
창세전에 먼저 있으신 분이 기준이 되어서
그 기준 되신 먼저 계신 분을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겁니다
왜 날 때부터 소경인가? 부모 죄인가? 자기 죄 인가?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인간을 기준으로 죄가 되에 나올때에
자기 죄 인지
그 앞선 부모 죄인 유전병인이를 따질때에
죄가 인간을 다루이 인간이 죄를 짓냐 안짓냐가 아니었듯디
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기준을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태어난 생일 전이냐 생일 후냐 따질 때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기준으로써
창세전 토기장이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내가 내 그릇을 내 마음대로 했다 와 우짤래 라고 하시는 겁니다
기준이 창세전 먼저 계신 분이 되어버리니까
도토리 키 재기 하는 그 남 7번 용서냐 8번 용서가
이 7에 70번 용서인 피 흘리심 앞에서 부끄 부끄 머리에 숯불 얻은 것처럼
쓰잘데 없는 것을 심각하게 봤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이런 이유로
십자가의 도 곧 주님의 도는 바로 이런 인간의 모든 기준
저 마다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그런 기준을 하나 하나 다 찾아가서 다 깨뜨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천국의 침략입니다
침노입니다
인간은 자기 기준으로 자기가 천국이 된 것을 기준으로 여길때에
진짜 천국은 바로 천국이라는 그 기준이 맞나 틀리나 깨뜨려 침노 시켜 보시는 겁니다
성전을 헐라 천국을 헐라 너의 몸을 헐라 삼일 만에 다시 세워지는가 보자
의인을 믿음으로 다시 살테니까
그러니 그 의인이라는 의가 과연 있을 자가 누구겠습니까?‘
지혜 총명 한 번 폐해 버려봅시다
폐한다고 폐해지는 지혜요 총명이요 생명일 같으면
처음부터 지혜도 총명도 생명이 아니였지요
이 십자가의 지혜는 십자가 스스로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니 생명의 주 라메? 과연 다시 사는 지 보자 그래서 다시 살지 않았다면
네 인긴의 지헤와 총명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심을 몰래 일부러 감추어서 자기 자녀에게만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에게 안 나타나시고
어리석고 미련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 나타내심으로써
저들은 자기 기준의 지혜와 총명에 도취되도록 내버려 두시고
자기자녀에게만 나타내심으로써
보이지 않는 증거요 바라는 실상으로써의 믿음의 주
믿음의 아버지로써
자기 자녀를 몰래 몰래 모이시는 겁니다
다시 사심을 모르도록 저들의 어두운 눈에 내버려 두시고
자기 자녀는 매를 대셔서 라도 그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모세 보다 더 큰 이로써
실로암 소경에게 나타내시는 겁니다
저들에게 보여줘 본들 마음이 어두워서 못 보도록 하심으로써
자기 숙제인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가 됨의 숙제에 빠져서 못 나오도록 하시더라 말이죠
그카이 언 놈이 지혜가 있다고 자부하고
총명이 있다고 내세울수 있겠습니까?
내세웠다가는 그들이 무시하는 부자가 무시한 거지나사로로 부끄럽게 만드시고자
지혜도 총명도 폐하시는 겁니다
자기들이 정죄하고 고소한 그 불의한 청지기로
그들 빛의 자녀이다 라고 우기는 주장들을 다 폐하시더라 말이죠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아니 언 놈이 지혜 있겠습니까? 창조주를 죽이는 것 밖에 안 나온 주제에
이 십자가가 그 증거로 밝혀 보여졌는데도 자랑질 내세울 꺼리가 있냐 말이죠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처음자리 고아의 자리에서 불렀는데
또 배불러 터진 의인자리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는
이 십자가를 무슨 수로 자랑 할 수 있겠느냐
도로 거리끼는 걸림돌에 넘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약한 자들이 도리어 이 십자가를 자랑하는데 목숨 걸고 있는데
강한 자들이 도로 부끄럽게 되는 미끼를 물어 넘어져 실족 당하는 꼴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아무 육체라도 자랑 못하는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십자가의 사건이
칭세전에 기록된 겁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창조햇지
율법 지키라고 창조한게 아니다 라는 거죠
그 율법의 완성은 십자가의 피 흘리심인 원수를 사랑하심이지
율법 지킨 인간 치고 원수 사랑하는 놈 단 한 놈도 없습니다
원수 사랑했다고 도로 육을 자랑하니
바로 배부르자 마자 마음이 교만해서 미끄러 자빠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사 29: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사 29:14, 새번역) 그러므로 내가 다시 한 번 놀랍고 기이한 일로 이 백성을 놀라게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지혜가 없어지고, 총명한 사람들에게서 총명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나의 지혜 나의 총명
쥐 뿔도 없지만
그 쥐 뿔도 없는 지혜 조차도 총명 조차도 폐하시는
주님의 지혜 주님의 총명인 이 십자가 라는 빨구멍 뻥 내시는
이 불쑤기게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던 겁니다
옛날 아니 과거에 어머니랑 빵 만든다고 게란 빵도 아니고 카스테라도 아닌
그 중간 쯤의 빵 만든다고 노른자 흰자 구분해서
흰자를 풀어라 라고 팔 떨어지도록 아프게 저으면
그 거품이 된 흰자위가 거꾸로 뒤짚어 놓아도 떨어지지 않고
주루룩 흘러내리지 않게 되면
그 얼마나 부들 부들하게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합격 이라고 이제 다 됐지예? 나가도 되지예? 라고
아픈 팔 한번 크게 흔들어 풀어주면서
나중에 그 빵을 먹었다 말이져
그렇게 거품기로 막저어주지 않으면
기경하고 밭갈이 하지 않으면
부들 부들 하지 못한 딱딱한 땅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지옥의 땅에서는 샘영이 자랄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누가 그 밭갈이 당한 땅에 늦은 비를 뿌려서 생명을 싹 띄울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 믿음으로 십자가를 믿으면 가능해 질까요?
그런 믿음 조차도 딱딱한 자기 알아도 라고 징징거리는 모습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샘영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의 믿음도 십자가에 개입이 될 수 없는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 하신 화목제입니다
내 믿음만이 가장 믿을수 있는 그 기준에
재를 뿌리는 오로지 남의 믿음인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들어가는
은혜를 나라를
먼저 구하고
나를 찢고 나를 도로 싸매는 그 의를 이 삼일의 간극 절대공백의 간극을 구하는 것은
안가고 각기 제 갈길로 가는 줄 뻔히 아시기에
성령이 옆에서 놀라운 탄식으로 이 간극 속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도록 구하시는 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말은
이제 나 라는 나의 영역의 내 나라
나의 의는 이제 박살 나고 불타야 하는
사망의 몸 지옥나라의 몸임을 직시하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저절로 구해지고 그래야 저절로 귀함을 알지
그 이전에는 전혀 귀하지 않는 어리석고 미련할 뿐입니다
지옥의 몸인 환자에게만 의사가 필요하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는 그저 사랑이 아닌 직업꾼 돈 장사꾼 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능에 걸맞도록 의도적으로 고아 과부 나그네 만드셔서
자신이 고엘의 하나님 되심을
즉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고자 하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뉘게 나타나겠습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그가 도대체 누구뇨 라고 묻는 자에게 나타났습니다
자기 라는 기준에
전혀 핀떼가 단 한 군데라고 맞는 것이 전혀 없는
이 공백의 간극만 점점 더 벌어지는 도대체 이 분 누구냐 라고 묻는 자에게만
전햐 다른 기준으로만 사신 분을 찾는 겁니다
이 눈에 보이는 이 세계의 기준을 벗고 어리석고 미령한 십자가를 믿었다가는
왕따요 어리석은자 취급받고 미련한자로 취급받을텐데
누가 그 죽음의 길로 스스로 가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능욕을 받는 길을 스스로 간다고요?
그런 자신을 또 자랑하는 딱딱한 완악한 수건을 더 겹겹이 쓸려고?
그냥 손 놓고서 주님께 맡기세요
내가 해석한 그리스도의 능욕은 능욕 축 에도 안 드니까
주님 본인의 능욕이니 주님이 알아서 밀어붙이시도록 말이죠
은사란 정반대의 기능이다고 했잖아요
겁쟁이 기드온에게 승리의 용사요 라고 뒤짚어 씌울때에 얼마나 고난이겠습니까?
반대로 억수로 용감한 여호수아의 칼 솜씨에 그 칼 아무 쓰잘데가 없는
모세의 지팡이 든 팔이 오르락 내리락 함에 달려있는 것이 바로 능욕
모욕 아니겠습니까?
억수로 운동천채인 선수에게 턱걸이 천개가 합격이 아니라
마이너스 천개가 합격의 기준이라고 바뀌어버리면
이 얼마나 모욕적인 합격 곧 그리스도의 능욕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똑같이 은사를 받은 그 반대의 운동 전혀 할 줄 모르는 저주받은 육체인
턱걸이 겨우 한 개 하는 루저에게 턱걸이 1만개가 합격의 기준인데
누가 옆에서 아까 말한 운동천재의 마이너스 일만개를 대신 해줌으로 합격하는
이 반칙이 아니면 이 그리스도의 능욕이 아니면
우리가 나음을 고침을 받는 길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어라석고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믿음에서는 불가능 합니다 개입 자체가 불가능 하도록 배제 시켜버리십니다
바로 대신 턱걸이 만개 대신 해 주는 이 모욕 이 능욕 이 고난 만이 아니면
우리는 합격이 안 됩니다
네 맞습니다 모욕적인 합격인 겁니다 무시험 합격이야 말로 모욕적이고 능욕적인 구원이 아니고 뭡니까 그 능욕을 악인은 견디지 못하고
의인은 먼저 있었던 이 능욕이 나보가 옳앗다 라고 많이 탕감받은 자로써 많이 사랑하는 겁니다
이 모욕적인 십자가
이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
그 [고난 받는 종]이 나의 새 기준이 된다 라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에데오피아 내시는 이 인물 이분이 뉘신지 그 인물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선물로 받은 겁니다
비로소 사랑을 볼 줄 아는 지혜
미움을 볼 줄 아는 총명을
십자가의 기준으로 인해서 알게 되고
알려주심을 아는 자와
알려주시지 않음으로써 모르는 자
즉 모르는자는 알려주심을 거부하고
다른 것만을 알기로 했기에
들어갈 틈이 없는 딱딱함 만을 추구하는 겁니다
자아라는 우상 보다 딱딱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토기장이 비유는
두 패로 나누심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기준이 먼저 떳기에
전햐 다른 기준인 창세전의 기준인
이 첫 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이 사랑이라는 기준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생명이 아니기에
새로 창조주를 알기 원하는 새 기준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나타났기에
기생라합에게 나타났기에
눈에 보이는 나라 그 나라의 공적인 의들이 다 날라가고
그의 나라에 그의 의에 이미 폐 멸망당함을 미리 보고서
미리 항복함으로써 그 나라와 그 의를 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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