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3 누가 지혜로 깨달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겠느냐 (호 14, 4- 9)
2025. 4. 6.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호 14, 1- 3)
호세아 2023 2025. 3. 15. 21:47
23-3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후견인에게 걸맞는 고아라는 불쏘시개) (호 14, 1- 3)
〈호세아 14, 4-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055장 새 015 하나님의 크신 사랑, 찬송가 208장 새 289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찬송가 05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새찬송가 015장〉
1.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로서 내리사 우리맘에 항상 계셔 온전하게 합소서
나의 주는 자비하사 사랑 무한 하시니 두려워서 떠는 자를 구원하여 줍소서
2. 걱정 근심 많은 자를 성령 감화 하시며 복과 은혜 사랑 받아 평안하게 합소서
첨과 나중 되신 주여 항상 인도 하셔서 마귀 유혹 받는 것을 속히 끊게 합소서
3. 전능하신 아버지여 주의 능력 주시고 우리 맘에 임하셔서 떠나가지 맙소서
주께 영광 항상 돌려 천사처럼 섬기며 주의 사랑 영영토록 찬송하게 합소서
4.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 주의 크신 구원받아 온전하게 합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 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합소서 아멘
〈찬송가 208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새찬송가 289장〉
1. 주 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내가 늘 바라던 참 빛을 찾음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2. 주 예수 내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3. 내 맘에 소망을 든든히 가짐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의심의 구름이 사라져 버림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다가 밝은 빛 홀연히 보고
저 멀리 하늘 문 환하게 보임도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5. 나 이제 천성에 올라가 살기는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천성을 향하여 내가 곧 가리니 그 기쁨 비길데 없네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맘에 오심
물밀 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호세아 14, 4- 9,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호 14:4, 개역)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호 14:5, 개역)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호 14:6, 개역)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행목 같으리니
(호 14:7, 개역)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호 14:8, 개역)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호 14:9, 개역)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 14:4, 현대어) [하나님의 특사]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스라엘의 반항심과 지조없는 마음을 고쳐 주겠다. 내가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겠다. 이제는 그들에게 품은 노여움은 다 풀렸다!
(호 14:5, 현대어) 내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처럼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땅속 깊이 뿌리를 뻗으리라.
(호 14:6, 현대어) 올리브나무처럼 아름답게 가지들이 퍼져 레바논의 숲처럼 울창하고 향기로우리라.
(호 14:7, 현대어) 이스라엘 백성이 먼 유랑지에서 돌아와 다시 내 그늘 밑에서 살며 밭에 씨를 뿌리게 되리라.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지리라.
(호 14:8, 현대어) '우상이 더 이상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고 에브라임이 고백할 때 내가 그 기도를 들어주고 그들을 돌보아주리라. 나는 늘푸른 전나무와 같으니 그들이 일년 내내 내게서 열매를 얻을 것이다.'
(호 14:9, 현대어) [누가 이 책에서 자신을 깨달았는가] 이 모든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슬기로운 자는 누구인가? 주님의 길은 곧고 평평하다. 의로운 사람들은 그 길을 잘 걸어갈 것이지만 죄인들은 그 길에서 자기들의 죄에 걸려 넘어지고 말 것이다.
(사 2:1, 개역)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사 2:2, 개역)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사 2:3, 개역)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미 4:1, 개역)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 4:2, 개역)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호 6:1, 개역)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개역)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 6:3,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 6:4, 개역)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호 6:5, 개역)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호 6:6, 개역)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7, 개역)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8, 개역)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호 6:9, 개역)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호 6:10, 개역)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
(호 6:11, 개역)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마 9:13, 새번역)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호 6:6
(마 12:7, 새번역)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 ㉢호 6:6
(고전 1:17, 개역)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오늘 호세아 마지막 시간으로써 이 다음은 고린도서를 하겠습니다
로마서도 아직 많이 남았지만 열왕기를 하고픈 마음이 크네요
그런데 요즘 호세아 로마서 에스겔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점에
소름이 끼질 정도로 머리가 쭈뼛 쭈뼛해지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호세아 초반부는 아직 포로 잡혀가지 한 참 전임에도 불구하고 에스겔과 너무 맞닿아 있다 라는 점과
오늘 후반부 마지막은 그야 말로 로마서 지금 하고 있는 내용과 너무 빼다박은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보니
호세아를 하고 있는지 로마서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너무 딱 들어맞는 것에
한 껏 기분이 업 되어 있는 붕붕 뜨는 기쁨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점은
아무도 나눌려고 하는 자가 없고 들을려고 하는 자가 없다는 점에서
너무 아쉽기도 합니다
그 광고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 광고처럼
죄인 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처럼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누가 지혜로 깨달을 수 있겠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수가 있겠는가 라고 혀를 내 두를 정도로
걸어다니는 지혜라는 인물의 숭고함 앞에서
그저 머리 쳐 박고 생일을 저주하고 새까만 잿더미 아니면 다 타버린 뿌연 연탄재를 머리에 뿌리는 저주 속에 들어갈 지라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이 지혜라는 인물의 영광 앞에 그 얼굴을 감히 볼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 스러운 정도로 그 저주 속에 뛰어드시는 그 지혜 앞에
무릎을 안 꿇고는 못 배길 정도로 너무 너무 좋을 정도이다 말이죠
우리가 시편 후반부를 하면서 그 희열을 느꼈듯이
분명 모조리 다 심판하신다 해 놓고서는
그 다음 편에는 모든 열국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라고 하시고
또 그 다음 편에는 모두다 반드시 그 죄악을 심판받는다 해 놀고서는
그 다음 편은 모두다 회복 된다 라도 돌아오리라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이것이 로마서에서 7장 마지막과 8장 처음 부분처럼
이 좁힐 수 없는 간극이다 라고 했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거룩이다 라고
인간의 성화론이라는 교리나 신학해석에서의 거룩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나를 제대로 찢으시지 못하는 자는 나를 제대로 싸매어 주지 못하는 자 이거든요
분명 로마서 7장에 오호라 나여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해 놓고서는
갑자기 8장에서는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갑자기 전복 전환이 되는데 있어서
그 원인이 없다 라는 점이다 라는 거죠
결과 라는 완료가 덮쳐져 버린 입장이 되어버리니
이것은 빵구멍 뻥 뚫혀진 입장이지
내가 빈 칸 여백에 답을 써서 적어넣는 결핍을 채우는 내 숙제가 없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완료 즉 원인 없는 결과만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 라는 점에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죄 짓고 싶어도 못 짓는다 라는 거죠
물론 성화론자들이 말하는 죄가 아니기에
그들은 죄가 뭔지도 모르기에 그 반대인 의도 모르는 겁니다
그 의도 모른채로 의를 쌓겠다 라고 하니까 웃끼는 거죠
미완료만 반복하는 겁니다
아니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바로 이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앞뒤 모순 디는 간극 벌리기 이거든요
이 공백을 맥구어 넣을 방법이 없는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 인데
인간의 거룩 인간의 성화론은 정반대로 이 간극을 어떻게 해서든 그 갭을 좁히겠다 라고 나오니까
대화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그야 말로 완악한 수건을 겹겹이 더더욱 뚜껍게 뒤짚어 쓰는 것을 자랑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육의 생각으로만 가득하더라 말이죠
그 딱딱한 마음을 기경 밭갈이 싹 다 갈아엎어버릴려는
율법과 선지자를 죽이질 않나 ~~~~~~~~
율법을 지키겠다 라는 것이 도리어 율법을 폐하는 모습이니 말이죠
어떤 장로가 저를 율법 폐기론자로 어떻게 해서든 몰아갈려고 했는데
그 놈이 글쎄 율법을 폐하는 자 였음이 드러나더라 말이죠
왜냐하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그 자가 거부하였으니까 말이죠
그저 율법을 지켜서 모세의 자리 그 높은 자리 상좌에 앉아서 대접받고자 했던
마귀 자식임을 스스로 드러냈던 겁니다
아니 목사놈들이 이런 짓을 많이 하던데
이제는 장로까징 다 덤벼들고 집사들까지 다 덤벼드니 원
이런 정치적인 집단이 종교 아닙니까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말이죠
짐승이라는 국가 등에 늘 호시탐탐 올라 탈려는 음녀
미국에서 홍역이 퍼지는데 이 백신접좋을 거부하는 것이 유행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종교와 연관되어서 벌어지는 정치성향이다 라고 분석하더라 말이죠
미국이 저러면 금새 한국도 다 따라하겠지요
애굽 에덴동산 같은 잔칫집이 지하로 내려가니 열국의 여자들도 다 따라 지하로 내려가듯이 말이죠
앞으로 질병이 더더더 많이 자주 광범위하게 발생하는데 있어서
과학을 부정하는 종교집단에 의해서 집단면역에 붕괴 될 것이다 라고
그런데 이것이 정치와 연관이 되어 있다 라고
자신과 자신들 가족 특히 아이들은 끝까지 깨끗해 져야지
백신으로 자폐증 걸리면 안된다 라고 ㅋㅋㅋㅋ
이런 정치성향 덕분에 무신론자의 증가가 잠시 멈칫해 져서
20대 남자 애들이 보수화 되는 것이 세계 추세로 자리잡게 되니
졸교성이 강한 이 나이때의 남자아이들에 젊은 여성들은 치를 떨게 되는 거지요
여성혐오에 심심하면 데모에
뭐 기후 온난화 보다 더 큰 문제가 이제 대 놓고서 다들 미쳐가고 있다 라는 거죠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더더욱 짜증과 분노가 더 할 테니
이제 날이 더더욱 찹고 더더욱 덥게 되니
스스로가 지옥의 몸인 것을 감출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날이 된 것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 이미 먼저 떳기에 반드시 벌어지도록 되어 있다 라는 거지요
결국 날이라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있는 나의 몸이라는 공간은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한 긍휼의 그릇 진노의 그릇으로 동원이 되는 것이지
나 개인의 사적인 시간이나 공강 즉 몸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라는 거죠
그러니 악인도 의인도 주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그릇이지
자기가 악마 될꼬야 라고 해서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반드시 천사 같이 선해 질 꼬야 라고 해서 성화론 지킨다 율법을 지킨다 라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닌
의와 죄가 인간이 있기도 전에 먼저 있었다 라는 사실
그래서 인간은 죄의 소원도 못 넘어서고
더 놀라운 점은 은혜가 왕 노릇하는 의의 소원 곧 아들의 소원도 못 넘어선다 라는 점에서
죄라는 지옥의 작살에 꽃혀서 가느냐
의라는 천국의 작살에 꽃혀서 가느냐
이것은 토기장이 마음대로 이지
내가 원한다 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성화론자들처럼 달음박질 해서 되는 것도 아닌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바 대로 된 다 라는 것
애초부터 자유의지라는 사상은 철학사상인데
이 자유가 없다 선택의 권리가 없다 라는 것에
엄청 억울해 하지만
정작 선택권을 줘 봤자
자유를 줘 봤자
어차피 강요된 선택
강요된 자유를 추구하는 결국 타인의 욕망을 따라 갈 뿐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일 뿐이다 말이죠
그게 반작용인 한풀이 이니까 말이죠
인간의 믿음은 결국 복수심이다는 겁니다
남들 하는 것 다 하게 해 달라 이거든요
다 강요된 겁니다
뭐를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남 따라 가는 겁니다
타인의 욕망이다는 거죠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죄의 소원 죄의 욕망이다는 거죠
그래서 의의 소원은 바로 인간 보다 먼저 있었던 이 죄의 소원만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지켜대는 의와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를 행하라 라고 하라 하지말라 라고 나오는 용어는
의는커녕 죄 아래로 가두기 위한 율법의 대상물이 된다는 거지
인간이 율법 곧 말씀을 대상물로 삼아서 지킬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언놈의 인간이 이 날썬 검과 같고 영과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한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다룰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해석하는게 아니라 해석 당하는 판국인데
그러니 남 7번 용서했다 라는 율법 지키는 것을 주님은 거부하시고
도리어 7에 70번 용서를 받은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이유는
말씀이 운동력이 있지
인간은 운동력 즉 생명력 곧 정직한 영 그 새 영 새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다
주셔야만 하는 도리어 죽어있는 자 곧 첫아담들 이다 라는 겁니다
살려주시는 마지막 아담이 오지 않는 이상
그냥 좀바처럼 눈만 껌뻑 거리다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아담이 천국침략 천국침노처럼
이 음부의 권세 덩어리인 이 사망의 몸에 뛰어드시지 않는 이상
그 우물가의 여인에게 요나의 표적처럼 뛰어드시지 않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저 좀비일 뿐인
생명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 구원 쪽으로 해석을 하거나 목적을 둔다 라는 것은
도대체 왜 이 지옥의 몸인 나에게 뛰어드시는 분의 마음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그저 내 돈 내 몸 내 구원 내 천국 따위를 목적으로 하기에
그 결핍 아무리 채워 본들 어차피 미완료
의문의 반복
어차피 목 마르다 말이죠
오로지 집단 구원인 그리스도의 몸만 구원이 되기에
남은 자 만 돌아오는 겁니다
이 남은 자 보자 했는가???
아 다음주에 글이 올라가겠군요
녹음은 미리 했기에
시간이 나면 미리 해 버려야 하기에
안그러면 언제 또 시간이 날지 모르니까 말이죠
다음 주 로마서 할 차례이니까 남은자에 대해서 말이죠
다 죽여놓고서 그 속에서 불쌍히 여겨 주신 자만이 다시 사는 겁니다
모조리 다 찢어 죽여놓고서
모조리 다 불뱀에 물려 다 죽게 해 놓고서
그 죽음에 뛰어드신 인애와 자비 되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남은 자만 돌아오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건 다음 주에 할 꺼니까 요기까지만 하고요
아무튼 바로 이 찢엇다가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자는 없어요
성하론자는 자기 의 쌓기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 안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하는
완악한 수건만 까가득 겹겹으로 머리에 싸매고 싸매고 싸메고 있으니까 말이죠
더더욱 딱딱한 경계선 긋기 이지
부들 부들한 마음으로 경계선 허물기는 되지 못하는 겁니다
바리새인이 사마리아 구역을 괜히 삥 둘러 간 것이 아니니까 말이죠
다 이유가 있어요 네 거룩을 지켜야 하니까 말이죠
마구 마구 돌아다녀 봐요 코로나 처음 보균자 지금 가정 파탄 날 정도로 악인 취급 받는다 말이죠
본인이 뭐 알고 그랬냐 말이죠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
누가 이해 해 줍니까 아무도 이해 안 할려고 해요
다들 완악한 수건을 쓰는 것 만이 살 길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성경말씀만이 바로 그것이 이미 죽어 있다는 증거이다 라는 거죠
코로나 걸려서 죽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그카고 보니 탈불자가 백신 맞지 말라꼬 막 전화하더니 ㅋㅋㅋ 음모론을 펼치던데 이게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그야말로 음녀 티를 대 놓고 하거든요
코로나 걸려 죽는게 아니라 이미 죽은 자인 우리에게
이 아무것도 아닌 자에게 왜 뛰어드셔서 대신 죽으셨는가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봐서 지옥가는 거다 말이죠
히나님 원망해서 징벌을 당해 불뱀에게 물려 죽어서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말이죠
어라 이래 말 하다 보니 결론을 미리 다 말해버린게 되었는데
호세아 13장 까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로 인해 형벌을 내리시는 겁니다
말이 우상숭배이지 자기 숭배이다는 거죠
누구는 우상 대 놓고 하고
누구는 우상 전혀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는가
그것도 아니고 그저 자기만 챙기는데 삶의 목적을 두었고
누구는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데 열중했다 라고 자부하는
1번은 나쁜 놈 2번은 이상한 놈 3번은 좋은놈
자 이렇다 할 지라도 집단적으로 모조리 다 형벌을 내려
불뱀에게 물려 다 죽게 하신 후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게 하시는
이 앞뒤 모순 되는 간극의 공백
그게 오늘 호세아 14장 마지막 내용인 겁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는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넘치는 있는 이 간극
아니 꼭 심판 속에서 구원을 왜 펼칠까요?
자기 의 다 탈탈탈 털리는 빈공백 만드시고자 말이죠
불뱀에게 물려 죽는 곳에 그 지옥에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높이 드시는 겁니다
그 지옥에 뛰어드시는 천국침노 말이죠
아 왜 천국 침노 침략 인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네요
인간이 세우는 천국은 다 지옥이거든요
그래놓고 천국이라고 착각하는데
그 가짜 천국인 에덴동산 같았더라 라는 그 잔칫집에
진짜천국이 침략해서 모조리 다 허무는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다시 짓는 이 진짜 천국의 침략이 없으면
그 사람 지옥이다는 거죠
성전을 헐라
말이 성전이지 거룩한 장소 곧 예배드리는 경배하는 장소이지
결국 인간은 자기 손으로 자기의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투시한 거죠
속내는 강도의 소굴 우상의 그림을 그려 맨날 허구헌날 굿판만 벌리는
이것이 인간의 몸 곧 귀신 씌인 몸이다 라는 거죠
그 귀신 씌인 몸 광명한 천사 노릇하는 위선적인 그 음부의 권세를
멸하는 진짜 천국의 침략으로 가짜 천국 가짜 거룩한 몸 가짜 성전을 허물지 않으면
그 딱딱한 부동산 허물지 않으면
그래서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 곧 광야로 개유 꼬셔서 유혹해서 이끌어서
광야에서 결혼하시는 그 한 몸
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몸이 되지 않도록 하시는
이 반칙
이 불륜
이 율법의 완성인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의문의 증서 찢기가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벌써 시간 적인 문제란
결국 인간이 있기도 전에 주님의 시간이 있었다 라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해서 사건인 거죠
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에 걸맞는 죄인 중의 괴수 만들기를 하시고자
우리를 불뱀에게 물려 찢도록 하시는 겁니다
그 죄가 넘쳐나는 그 지옥의 몸
그 사망의 몸에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는 이 지옥의 몸에
누가 뛰어드셨는가?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뛰어드셨다 라는 겁니다
바로 이 지혜 곧 십자가의 도를
누가 깨달을 수 있겠으며
누가 성령을 받아서 비로소 짐승의 수를 셈으로써
사탄의 깊이를 거쳐서 하나님의 깊이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 볼수 있겠는가?
누가 총명으로 알수 있겠는가
사람의 종명은 아니 불뱀에게 물렸다면
그 불뱀의 독에 맞는 백신이 필요한데
아니 이 무슨 개소리야 그 유명한 유뷰트 짤 태왕사신기
아니 생각해 보세요 네 맞아요 불뱀에게 물렸으면 그것에 걸맞는 치료약 백신이 필요하지
아니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고 낫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인간이 먼저 있었다면 그 말이 맞아요
그런데 인간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악이 먼저 있었고
죄의 소원이 먼저 있었기에
백날 치료약 백신으로 나아봤자 어차피 사망권세는 해결 되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수천년 동안 첫아담으로부터 내려오니까 당연한 줄 알아요
그 카이 인간은 자기 기준에서 원인에 따른 결과를 도출해 낼려고 하는 겁니다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는 거죠
그런데 문제 조차도 파악을 못 한 겁니다
죄 에 대해서도 파악 못했어요
죄를 안 저지른 상태로 리셋 하면 되는 줄 알아요
되돌리기 하면 되는 줄 알아요
되돌려 놓으면 뭐 합니까 어차피 또 죄 짓는데
타임루프 라고 하나요 타임루프에 갇혀 버리게 되는
의문의 반복인데 말이죠
인간은 죄를 파악 조차도 못합니다
인간이 죄 짓니 마니 라고 죄를 다루는게 아니라
죄가 먼저 있었기에 죄가 인간을 다루는 겁니다
죄가 먼저 나를 파악해요
자 그렇게 되면
이건 죄의 소원을 넘어서야 하는 입장에 놓인 거죠
네 불가능 속에 집어넣어버린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죄 짓니 마니 하고 있어요
그럼 이제 더더더 간단 합니다
죄가 왕 노릇 했듯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면 되는 겁니다
즉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 라는 원인 없는 결과의 표현입니다
이것을 또 원인 있는 결과 라는 식으로 바꾸는 자들 많아요
은혜를 더 할려고 죄 지으랴?
네 맞아요 주님의 숙제에 맡겨버리는 반칙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그 반칙을 자기 유익으로 추구하면 어차피 또 의문의 반복이지
완료가 없이 미완료로 계속 뺑뺑이 다람쥐 챗바귀 돌 듯이 하는 겁니다
완료에게 떠 맡겨버린다는 것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구원 내 천국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이 지옥의 몸에 뛰어드신 그 사랑
그 사랑에게 나 자체를 그 속에 풍덩 집어넣어서
이제 내가 살아도 내가 사는게 아닌
내 속에 주님이 살게 된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 되는
내 지혜로 풀어라 라는 말이 아닌 주님의 지혜에 풍덩 빠져 영구 없다 나 삭제 되어도 상관없다
이 안료인 율법의 완성인 사랑만 남으면 된다 라고
남은자가 돌아온다 라는 말은 남은자 렘넌트 운동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놈들 남은자 아닙니다
자기 죄로 우는 자 만이 돌아온다는 말인데
그 자기 죄가 먼지도 몰라요
죄란 결국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 것이 죄가 아니라
그것을 죄 라고 알면 뭐 합니까
그 죄를 흰 눈 같이 희게 하시는 주님의 인애와 자비를 안 쳐다보는데
도리어 또 그 의문의 반복 자꾸 번제와 제사를 바칠께요 라고 나오니
그것을 의 이라고 여기니
이게 오늘날 까지 내려오는 바리새인의 위선인
성화론자들의 의 거룩 실천 아닙니까
실천하면 할수록 아 나는 위선자 이구나 나는 안되구나를 아는 자는
적어도 완악한 수건을 쓰지 않는 개같은 이방인 사마리아 인의 자리에서
긍흉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되겠지만
실천하면 할수록 실천이 되어서 십자가 사건 앞에서
아 나는 자기 의를 추구한 자였구나를 들통당하지 않게 되면
이 거룩한 성전을 허물라 삼일만에 짓겠다 라는
하나님의 의 곧 찢으셧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의에 무슨 수로 복종할수 있겠습니까?
실천 하면 할수록 그 만큼 독하게 실행했다 라는 것은 복수심이 그 정도로 강했다 라는 것이거든요
아니 난 복수심을 가진적이 없는데
아니 아니 심어버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악령도 심어 버리시는데
다윗에게 악령을 심어서 인구조사를 해서 7만명 죽이시잖아요 절대저주를 퍼붓잖아요
인구 조사 안하면 되지 가 안되는 겁니다
내가 먼저 있어서 내가 인구조사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이미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고때만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르는게 아니라
날 때부터 그런 짓을 하도록 되어 있는 인간 아니 죄인으로 태어났다 라는 것을
비로소 다윗이 알았다 라는 겁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음을 말이죠
그러니 누가 지헤로 깨달으며 라고 할때에
결국 상대적으로 안지혜가 뭔지
지혜 있다 하나 깨닫지고 못하는 것이 뭔지 라는
두 언약의 한 세트로써 그 반대급부의 내용들이 무엇인지까지 다 알아야
비로소 누가 지혜로 깨닫는다 라는 의미를 알 것 아니겟느냐 말이죠
그런데 우리 심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축복이요 축복이요 라는 이 3분의 1만 먹지
3분의 2 저주요 저주요는 안 먹는다는 점에서
인간은 말씀 보다 자신을 먼저 우선시 한다는 점
안그래야지 자체가 안된다는 점
인정하라 말아죠
심지어 그 3분의 2 저주요 저주요를 다른 복음 곧 축복으로 긍정으로 좋으신 하나님으로 다 채워버린다는 점에서 더 더 더 큰 문제점으로
인간의 숙제로만 빈칸을 꽉꽉 채워버렸으니
그게 바로 교리 아닙니까
교리 플러스 실천 이건 뭐 불교 아니냐 말이죠
결국 성화를 거룩한 행실을 성령이 들어와서 하는게 아니라
그러면 내가 안 했습니다가 되는데
분명히 내가 해 버린 내 숙제가 되어버렸으니
불교처럼 성화실천은 그 만큼 할 짓이 없어서 한 셈이다 라는 사실
마치 오늘날 이스라엘 유대인 속에서 군대 안 가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놈들이다 말이죠 얼마나 할 짓 없으면 맨날 머리 흔들어 가면서
구약 외우기 하잖아요
그 무당년처럼 구약 다 외우잖아요
할 짓 없기 때문에 무당 짓을 하는기다 말이죠
네 맞아요 즉 죄가 먼저 있었기 때문에
할 짓이 없어서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그것을 언제든지 튀어나올수 있음을 그 동안 스멀 스멀 올라오는 것을
늘 억누르고 눌러 눌러 눌러왔지만 한꺼번에 동시다발로 터져나오는 겁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 니라처럼
욕심은 경제 문제 먹는 문제입니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이제 퍼포먼스 무당짓을 하게 되어 있어요
우상숭배 해요 내 배야 등따스고 배 부르니 뭘 할 꼬 종교
자기의 의미를 찾는 겁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자 임을
내 구원을 추구합니다
바벨론 여자들이 왜 우상숭배를 합니까
자기의 가치를 높일려고
목사와 장로들이 왜 서로 모세의 자리에 앉고자 싸우겠습니까?
내 아들 고아 되면 다 수포로 돌아가지요
내가 왕비나 왕이 안되면 나그네 떠돌이 곧 공산화가 되거든요 빨갱이가 차지한다 말이죠
그래서 나라를 구하기 운동을 하는 장로 기도모임이 발족을 하는 거다 말이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이 죄가 바로 종교입니다
우상숭배 무당짓입니다
나만큼은 반드시 구원이 돠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죄라는 종교가 살인하지 말라 라는 종교가 도리어 살인을 하는
(불교 보세요 개미 한 마리 안 죽이는 살생금지를 실천하고자
빗자루 들고 다닌다고 하 잖아요 빗자루로 쓸다가 죽으면 그러면???)
이 간극을 좁힐 길이 없는 것이 바로 사망
곧 정치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나 보다 경제 떡이 먼저 있었고
나 보다 종교 악한 세대가 구하는 기적이 먼저 있었고
나 보다 정치 온 천하를 줄테니 절하라 안하면 다 죽여버리겠다 가 먼저 있었던 겁니다
바로 이 죄의 소원을 무슨 수로 넘어설수 있겠습니까?
나 보다 먼저 있는 죄의 소원을 말이죠
간단합니다 나 보다 먼저 있었던 것을 찾으시면 됩니다
바로 아들의 소원입니다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없어요
그러면 무슨 수로 여호와께 돌아갈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내 손 보다 먼저 있었던 손 찾으시면 됩니다
괜히 모세 보다 큰 이
모세 보다 먼저 있었던 이 이라고 괜히 표현한게 아닙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이지요
복음서에서는 요나 보다 더 큰이 세례요한 보다 또 아브라함 보다 라고 나왔듯이 말이죠
결국 내 더러운 손 어차피 주의 산에 못 올라갑니다
주께로 돌아갈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간단합니다 내 손 보다 먼저 계셨던 분의 손을 구하면 됩니다
네 내 손 짜르고 주님의 손 붙이면 됩니다
나는 그거 못 하는데 그거 하시겠다 라고 나오신 분이 있다 말이죠
애굽의 칼 애굽의 팔이 짤릴때에 내 팔도 짤린 겁니다
이제 주님의 팔을 주님이 붙여주시느냐에 달린 겁니다
이거 내 소원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것 원치도 않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소원이 그렇게 하시겠다 라고 다가오신 겁니다
이용해 먹을려고 할 수 없는 것이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백날 딱딱한 내 구원 내 돈 내 돈 돈 돈 돈 카는 것에서는 안 맞습니다
주께만 범죄한 자 찾으시니까 말이죠
상하고 우는 자는 찾으시니까 말이죠
오늘 본문은 죄 아래 가두는데 성공하신 주님이
이제 주님의 소원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는 이 아들의 소원대로 밀어붙이시겠다 라고
주님의 도 곧 십자가의 도로
요나의 표적을 보이시겠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뱀에게 물렸는데 무슨 소리하느냐 약 달라 약 달라 라고
다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랄때에
주님아 오신 이유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꼬 오셨다 라는
이 죄의 소원애 한 세트가 되는 아들의 소원
곧 주님의 도 십자가의 도로
자기 아들을 아까지 않고 내어주신 이 화목제의 사랑
인애와 자비만을 펼치시고자 함이지
답도 없는 그 의문의 반복인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
즉 행함으로 실천하는 것 원치 않는다 라는 겁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을 실천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쌓으면
그것으로 계급 짓고
그것으로 복수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육의 자랑으로 삼을때에
주님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물이다 말이죠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아니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보이느냐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것이 어떻게 낫는 것으로 보이는 결과를 도출하느냐
결국 안 보이면 우짤래? 다시 안 살려주면 우짤래?
그카이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지
보이도록 하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에러이 거짓말 ㅋㅋㅋㅋ
그러니 인간에게는 믿음이 있을 수가 없어요
결국은 행함으로 빠집니다 보이도록 해야 되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달라 할 수 밖에 없어요
고맙게도 요나의 표적을 구하는 자는 주님 뿐이시다 라는 사실
그 분이 먼저 있었기에
나를 대상물로 삼아버렸다 라는 사실에 의해서 혼자 고이 고이 간직하면 될 것을
괜히 내 믿음 받았다 라고 나서다가
인간들의 믿음이 되어버리면 결국 누가 크냐 라는 혈과 육의 싸움 밖애 안되는 겁니다
믿음으로 가지고 엉뚱한 데 쓸려고 할 뿐인 그저 우상숭배로 빠질 뿐이다 말이죠
그게 복수심인 거죠
한풀이 원한
행함을 잘 못하는 자 실천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어서 못할때에
그 빈칸을 또 믿음이라는 것으로 또 안 질려고 그 빈자리에 땜빵용으로
서로 기 죽이는 것에 대응으로 사용할때에
아이고 또 헛 짓꺼리 하다가 날 다 새는 겁니다
자 그러든 말든 오늘 본문처럼 뭘 해도 우리를 죄 아래 가두시고
그렇게 찢으셨다가
주님은 다 죽여놓고서
그 진노 속에서 긍휼의 그릇을 새로 맹글어 가시는 겁니다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갈 뿐인데
주님은 이 화목제 라는 이 십자가의 도가 먼저 떳기에
그 첫 맹세대로 그냥 밀어붙이시는
이 완료에 의해서
오래참으로심과 관용하심으로 긍휼의 그릇을 뽑아내시는
이 십자가 라는 가마솥 완성하셧다 라는 겁니다
이 십자가에서 두 그릇으로 갈려지는 겁니다
먼저 있었던 그 기준이 나타나서 두 패로 가르는 겁니다
시므온 선지자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을 가르는 기준이 나타났다 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이죠
결국 인간에게서 기준을 타인에게 맡깉다 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 그것이 선악인 것이요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요
이것이 죄의 소원이 먼저 있어서
모든 인간은 이 죄의 소원을 넘어서질 못하는 종노릇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지
껍데기 몸은 죄의 소원을 못 넘어서지
이것이 사망의 몸이다 라는 거죠
누가 자신이 지옥의 몸이다 라고 인정할 자가 어디 있으며
즉 지혜자가 찾아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못 보고요
바이러스에 걸린 키보드인 거지요
외부에서 백신 곧 의사가 오지 않느면 무슨 수로 바이러스에 걸린 죄인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그런 죄인을 고치는 총명함으로써
인간의 저런 나 건겅하다 나 의롭다 라는 그 의 쌓기 의 실천하기 라는
인간의 총명을 깨뜨리는 이 십자가 라는 불륜의 총명을 알아서
짐승의 수를 세고 마귀만을 상대로 하시는 은혜의 왕 노릇의 심판을 구하는 자 있겠습니까?
정작 마리아는 하늘의 전쟁을 이 땅에 퍼부어 달라고 브로큰에로우 부러진화살 폭격요청을 했는데 말이죠 두 렙돈 전재산을 바친 과부의 종말의 헌금도 그렇구여
불의한 청지기의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 곧 종말의 믿음도 그렇구요
인자의 나라와 인자의 의를 이 땅에 퍼부어 달라고 폭격요청
마치 기생 라합처럼 말이죠
간담이 40년 동안 녹아서 말이죠
바로 이런 우상을 대상으로 한 전쟁인 하나님의 도는 하나님의 의는
이런 자기가 기준이 된 자기 의를 향한 전쟁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히 곧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복중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죠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의도 모르니까 죄도 모르는 거죠 자기 의가 죄인줄 모르는 겁니다
도리어 자기의 의를 세운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 곧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더라 말이죠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보겠다
또 자기의 숙제를 하겠다 라고 불뱀에게 물렸으니 약을 달라
이것이 논리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아니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면 낫는다? 그런 미신적인 행위를 어떤 미친놈이 하겠는기?
바로 그겁니다 자신이 미친 놈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 장대 높이 달린 인자입니다
구리놋뱀은 누굽니까? 자기의 육체입니다
대신 못 박힌 죄 값을 치른 분은
왜 하필이면 도저히 인간의 믿음 곧 복수심으로는 도저히 쳐다볼수 없는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를 쳐다보라 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어라 그런데 막상 효과를 본 체험담이 벌어지니까
안 본자 다 죽였지만 소문이 퍼지니까 살았다 라는 말에
어라 이제는 기드온이 던진 그 제사장 옷 에봇을 우상숭배하듯이
자기 유익에 맞다 싶으니까 십자가를 또 우상숭배 하더라 말이죠
자기 유익이 된다 라는 것을 알고서
요나의 표적 마저도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기준이 곧 자아 라는 우상이다는 겁니다
자기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거죠
자기가 선택한다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라는 의미에서 취사선택인 거죠 말이 선택의 자유인 것 같지만
강요된 선택
내 속에 죄가 그렇게 하도록 조정한다는 겁니다 안그러면 죽어요
사회에서 매장 되고
종교에서 매장 되니까 말이죠
그러니 나를 위한 나
자기가 기준이 된 입장에서 아무리 지혜든 총명이든 십자가의 도든
졸지에 자기를 위한 임금삼기 식 밖에 안되는 거죠
그런 임금이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정작 노예로 삼는 역이용 당하는
네 맞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들도록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즉 인간의 지혜와 총명 조차도 꾀는 속임수로 작동함을
십자가의 도가 들추어내시겠다는 겁니다
고로 그 어떤 인간의 지혜도 종명으로도 이 주님의 도를 알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가 없어서 우는 자
정직한 영이 없어서 우는 자
울게 만드시는 성령을 넣어서 우는 자
자기 죄로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죄를 짓냐 마냐 라는 죄가 아닌
죄가 먼저 있어서 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서 우는 자를 찾는 겁니다
그런 자에게만 은혜의 왕 노릇이 필요하지
안 그러면 자기 숙제
자기의 숙제란 결국 믿을 구석은 내가 하는 것이 믿음직 스럽지 남이 하는 것에는 영 믿음이 가질 않는 겁니다 즉 행위가 업적 쌓기 자기 의 쌓기이니
자기 의 말고는 믿을 구석이 못 되는 겁니다
아니 죽여놓고서 다시 살려주지 않으면 우짤려고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에 있어서
이 사랑이 없다고 우는 자는
인간의 지혜와 총명에서는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인문학 철학을 보면 웃끼는게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 놓고서는
사랑이 없다고 우는 것이 아니라
까짓꺼 사랑? 그거 실천 하면 될꺼 아니냐
맞잖아 사랑이란 결국 실천의 문제이니까 라고
이것이 모든 철학자의 주장입니다
그 속에 정작 사랑을 실천할수 있는 새 마음이 내 속에 없다 라고 우는
그런 철학자는 단 한 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런 목사도 없었구요
다들 자기가 쌓아 올린 그 업적을 바탕으로 장사만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브로큰 애로우를 마리아의 기도 한나의 기도처럼
기생라합의 믿음으로 외쳐야 하는 겁니다
내 속에 사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폐기처분해 달라고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폐기처분해 달라고
안그러면 불쌍히 여겨주셔서
인애와 자비를 베풀어 그 정직한 영을 달라고
왜? 아무리 봐도 자신은 사랑의 몸이 아닌
지옥의 몸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마땅한 곤고한 몸이니까 말이죠
이것이 지혜자를 만난 자 이고
명철한 자 앞에서 무릎 꿇은 자 이다는 겁니다
그 분의 지혜를 보고 자신의 지혜를 냅따 기생라합처럼 버리고
어부로써 자기의 생계수단인 그물을 던져버리고 그 지혜자를 따랐듯이
우물가의 여인이 자신의 생명수 목숨줄인 물바가지를 냅따 던지면서
선지자가 나타났다 내 죄를 드디어 해결할려고 내 숨겨둔 죄를 파 재끼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라고 좋아라 했듯이 말이죠
그런 자들이 지혜를 지킬줄 알아서
총명을 펼칠줄 알아서 찾아옵니까
아예 기대하지 않고
지혜 스스로가
총명 스스로가 펼치는 숙제에
그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넙쭉 받아먹으라고 찾아오심이다는 거죠
이런 모욕적인 구원을
누가 믿겠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나겠습니까
자기의 팔이 짤린, 우상을 쫓는 애굽 팔 흉내내는 이 팔 짤라 달라고 우는 자에게 나타나시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우는 자는 주님의 숙제로써만 우발적으로 우연히 만들어 집니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에서는 그 반대를 추구하고 있지
절대로 우는 자가 나올수 없습니다
상하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자 곧 성령은 주님의 숙제로 인한 선물로서만 주어지는 외부의 숙제이지
인간의 숙제는 도리어 그것을 거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아를 거부할려고 포로된적 없다 라고 우기고
과부를 거부하고자 주모 안방마님이 되고자 한다는 겁니다
후견자에 걸맞는 고아
피흘리신 회목제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자는 주님의 숙제로써만 새로 맹글어지는 겁니다
그렇다고 시간적으로 뒤 라는 말이 아니라
창세전에 먼저 있으신 분이 기준이 되어서
그 기준 되신 먼저 계신 분을 말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는 겁니다
왜 날 때부터 소경인가? 부모 죄인가? 자기 죄 인가?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인간을 기준으로 죄가 되에 나올때에
자기 죄 인지
그 앞선 부모 죄인 유전병인이를 따질때에
죄가 인간을 다루이 인간이 죄를 짓냐 안짓냐가 아니었듯디
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기준을 도토리 키 재기 하듯이 태어난 생일 전이냐 생일 후냐 따질 때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 기준으로써
창세전 토기장이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내가 내 그릇을 내 마음대로 했다 와 우짤래 라고 하시는 겁니다
기준이 창세전 먼저 계신 분이 되어버리니까
도토리 키 재기 하는 그 남 7번 용서냐 8번 용서가
이 7에 70번 용서인 피 흘리심 앞에서 부끄 부끄 머리에 숯불 얻은 것처럼
쓰잘데 없는 것을 심각하게 봤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이런 이유로
십자가의 도 곧 주님의 도는 바로 이런 인간의 모든 기준
저 마다가 개인적이고 사적인 그런 기준을 하나 하나 다 찾아가서 다 깨뜨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천국의 침략입니다
침노입니다
인간은 자기 기준으로 자기가 천국이 된 것을 기준으로 여길때에
진짜 천국은 바로 천국이라는 그 기준이 맞나 틀리나 깨뜨려 침노 시켜 보시는 겁니다
성전을 헐라 천국을 헐라 너의 몸을 헐라 삼일 만에 다시 세워지는가 보자
의인을 믿음으로 다시 살테니까
그러니 그 의인이라는 의가 과연 있을 자가 누구겠습니까?‘
지혜 총명 한 번 폐해 버려봅시다
폐한다고 폐해지는 지혜요 총명이요 생명일 같으면
처음부터 지혜도 총명도 생명이 아니였지요
이 십자가의 지혜는 십자가 스스로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니 생명의 주 라메? 과연 다시 사는 지 보자 그래서 다시 살지 않았다면
네 인긴의 지헤와 총명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심을 몰래 일부러 감추어서 자기 자녀에게만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에게 안 나타나시고
어리석고 미련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 나타내심으로써
저들은 자기 기준의 지혜와 총명에 도취되도록 내버려 두시고
자기자녀에게만 나타내심으로써
보이지 않는 증거요 바라는 실상으로써의 믿음의 주
믿음의 아버지로써
자기 자녀를 몰래 몰래 모이시는 겁니다
다시 사심을 모르도록 저들의 어두운 눈에 내버려 두시고
자기 자녀는 매를 대셔서 라도 그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심으로써
모세 보다 더 큰 이로써
실로암 소경에게 나타내시는 겁니다
저들에게 보여줘 본들 마음이 어두워서 못 보도록 하심으로써
자기 숙제인 1300년 묵은 모세의 제자가 됨의 숙제에 빠져서 못 나오도록 하시더라 말이죠
그카이 언 놈이 지혜가 있다고 자부하고
총명이 있다고 내세울수 있겠습니까?
내세웠다가는 그들이 무시하는 부자가 무시한 거지나사로로 부끄럽게 만드시고자
지혜도 총명도 폐하시는 겁니다
자기들이 정죄하고 고소한 그 불의한 청지기로
그들 빛의 자녀이다 라고 우기는 주장들을 다 폐하시더라 말이죠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아니 언 놈이 지혜 있겠습니까? 창조주를 죽이는 것 밖에 안 나온 주제에
이 십자가가 그 증거로 밝혀 보여졌는데도 자랑질 내세울 꺼리가 있냐 말이죠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처음자리 고아의 자리에서 불렀는데
또 배불러 터진 의인자리 건강한 자의 자리에서는
이 십자가를 무슨 수로 자랑 할 수 있겠느냐
도로 거리끼는 걸림돌에 넘어지도록 되어 있는데 ~~~~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약한 자들이 도리어 이 십자가를 자랑하는데 목숨 걸고 있는데
강한 자들이 도로 부끄럽게 되는 미끼를 물어 넘어져 실족 당하는 꼴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아무 육체라도 자랑 못하는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 십자가의 사건이
칭세전에 기록된 겁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창조햇지
율법 지키라고 창조한게 아니다 라는 거죠
그 율법의 완성은 십자가의 피 흘리심인 원수를 사랑하심이지
율법 지킨 인간 치고 원수 사랑하는 놈 단 한 놈도 없습니다
원수 사랑했다고 도로 육을 자랑하니
바로 배부르자 마자 마음이 교만해서 미끄러 자빠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사 29:14, 개역)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사 29:14, 새번역) 그러므로 내가 다시 한 번 놀랍고 기이한 일로 이 백성을 놀라게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지혜가 없어지고, 총명한 사람들에게서 총명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나의 지혜 나의 총명
쥐 뿔도 없지만
그 쥐 뿔도 없는 지혜 조차도 총명 조차도 폐하시는
주님의 지혜 주님의 총명인 이 십자가 라는 빨구멍 뻥 내시는
이 불쑤기게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였던 겁니다
옛날 아니 과거에 어머니랑 빵 만든다고 게란 빵도 아니고 카스테라도 아닌
그 중간 쯤의 빵 만든다고 노른자 흰자 구분해서
흰자를 풀어라 라고 팔 떨어지도록 아프게 저으면
그 거품이 된 흰자위가 거꾸로 뒤짚어 놓아도 떨어지지 않고
주루룩 흘러내리지 않게 되면
그 얼마나 부들 부들하게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합격 이라고 이제 다 됐지예? 나가도 되지예? 라고
아픈 팔 한번 크게 흔들어 풀어주면서
나중에 그 빵을 먹었다 말이져
그렇게 거품기로 막저어주지 않으면
기경하고 밭갈이 하지 않으면
부들 부들 하지 못한 딱딱한 땅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지옥의 땅에서는 샘영이 자랄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누가 그 밭갈이 당한 땅에 늦은 비를 뿌려서 생명을 싹 띄울수 있겠습니까?
내가 내 믿음으로 십자가를 믿으면 가능해 질까요?
그런 믿음 조차도 딱딱한 자기 알아도 라고 징징거리는 모습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샘영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의 믿음도 십자가에 개입이 될 수 없는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 하신 화목제입니다
내 믿음만이 가장 믿을수 있는 그 기준에
재를 뿌리는 오로지 남의 믿음인 예수님의 믿음으로만 들어가는
은혜를 나라를
먼저 구하고
나를 찢고 나를 도로 싸매는 그 의를 이 삼일의 간극 절대공백의 간극을 구하는 것은
안가고 각기 제 갈길로 가는 줄 뻔히 아시기에
성령이 옆에서 놀라운 탄식으로 이 간극 속에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도록 구하시는 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말은
이제 나 라는 나의 영역의 내 나라
나의 의는 이제 박살 나고 불타야 하는
사망의 몸 지옥나라의 몸임을 직시하도록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저절로 구해지고 그래야 저절로 귀함을 알지
그 이전에는 전혀 귀하지 않는 어리석고 미련할 뿐입니다
지옥의 몸인 환자에게만 의사가 필요하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는 그저 사랑이 아닌 직업꾼 돈 장사꾼 밖에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능에 걸맞도록 의도적으로 고아 과부 나그네 만드셔서
자신이 고엘의 하나님 되심을
즉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만드시고자 하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뉘게 나타나겠습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그가 도대체 누구뇨 라고 묻는 자에게 나타났습니다
자기 라는 기준에
전혀 핀떼가 단 한 군데라고 맞는 것이 전혀 없는
이 공백의 간극만 점점 더 벌어지는 도대체 이 분 누구냐 라고 묻는 자에게만
전햐 다른 기준으로만 사신 분을 찾는 겁니다
이 눈에 보이는 이 세계의 기준을 벗고 어리석고 미령한 십자가를 믿었다가는
왕따요 어리석은자 취급받고 미련한자로 취급받을텐데
누가 그 죽음의 길로 스스로 가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능욕을 받는 길을 스스로 간다고요?
그런 자신을 또 자랑하는 딱딱한 완악한 수건을 더 겹겹이 쓸려고?
그냥 손 놓고서 주님께 맡기세요
내가 해석한 그리스도의 능욕은 능욕 축 에도 안 드니까
주님 본인의 능욕이니 주님이 알아서 밀어붙이시도록 말이죠
은사란 정반대의 기능이다고 했잖아요
겁쟁이 기드온에게 승리의 용사요 라고 뒤짚어 씌울때에 얼마나 고난이겠습니까?
반대로 억수로 용감한 여호수아의 칼 솜씨에 그 칼 아무 쓰잘데가 없는
모세의 지팡이 든 팔이 오르락 내리락 함에 달려있는 것이 바로 능욕
모욕 아니겠습니까?
억수로 운동천채인 선수에게 턱걸이 천개가 합격이 아니라
마이너스 천개가 합격의 기준이라고 바뀌어버리면
이 얼마나 모욕적인 합격 곧 그리스도의 능욕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똑같이 은사를 받은 그 반대의 운동 전혀 할 줄 모르는 저주받은 육체인
턱걸이 겨우 한 개 하는 루저에게 턱걸이 1만개가 합격의 기준인데
누가 옆에서 아까 말한 운동천재의 마이너스 일만개를 대신 해줌으로 합격하는
이 반칙이 아니면 이 그리스도의 능욕이 아니면
우리가 나음을 고침을 받는 길은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어라석고 미련한 십자가의 도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믿음에서는 불가능 합니다 개입 자체가 불가능 하도록 배제 시켜버리십니다
바로 대신 턱걸이 만개 대신 해 주는 이 모욕 이 능욕 이 고난 만이 아니면
우리는 합격이 안 됩니다
네 맞습니다 모욕적인 합격인 겁니다 무시험 합격이야 말로 모욕적이고 능욕적인 구원이 아니고 뭡니까 그 능욕을 악인은 견디지 못하고
의인은 먼저 있었던 이 능욕이 나보가 옳앗다 라고 많이 탕감받은 자로써 많이 사랑하는 겁니다
이 모욕적인 십자가
이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
그 [고난 받는 종]이 나의 새 기준이 된다 라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에데오피아 내시는 이 인물 이분이 뉘신지 그 인물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선물로 받은 겁니다
비로소 사랑을 볼 줄 아는 지혜
미움을 볼 줄 아는 총명을
십자가의 기준으로 인해서 알게 되고
알려주심을 아는 자와
알려주시지 않음으로써 모르는 자
즉 모르는자는 알려주심을 거부하고
다른 것만을 알기로 했기에
들어갈 틈이 없는 딱딱함 만을 추구하는 겁니다
자아라는 우상 보다 딱딱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토기장이 비유는
두 패로 나누심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기준이 먼저 떳기에
전햐 다른 기준인 창세전의 기준인
이 첫 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이 사랑이라는 기준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생명이 아니기에
새로 창조주를 알기 원하는 새 기준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나타났기에
기생라합에게 나타났기에
눈에 보이는 나라 그 나라의 공적인 의들이 다 날라가고
그의 나라에 그의 의에 이미 폐 멸망당함을 미리 보고서
미리 항복함으로써 그 나라와 그 의를 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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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6 남거둔 한 씨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롬 9,24-29)
2025. 4. 13. (3월 19,20일 녹음)
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로마서 2022 2025. 3. 22. 14:48
22-055 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롬 9,24-29,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찬송가 384장 새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 424장 새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새찬송가 585장(통384)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새찬송가 382장(통432)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찬송가 303장(통403) 날 위하여 십자가의
새찬송가 380장(통424) 나의 생명 되신 주
찬미예수 2000 - No.79 주의 산에 오를 자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새찬송가 585장〉
1.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 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찬송가 4244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새찬송가 380장〉
1. 나의 생명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흘린 보혈로 정케하사 받아주소서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2. 괴론 세상 지날 때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주를 믿고 나가면 나의 길을 잃지 않겠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3. 세상 살아갈 때에 주를 더욱 사랑합니다
밝고 빛난 천국에 나의 영혼 들어가겠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아멘
〈가스펠;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No.79 찬미예수 2000〉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거룩한 곳에 설자는? 맘 청결한 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주께 향하는 자 찾아 - 오!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랴? 손 깨끗한 자
거룩한 곳에 설자는? 맘 청결한 자
〈롬 9,24-29,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롬 9:24, 개역)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24,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롬 9:25, 새번역)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 ㉭호 2:23
(롬 9:26, 새번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 ㉠호 1:10 ㉡그, '아들들'
(롬 9:27, 새번역)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사 10:22; 23
(롬 9:28, 새번역) 주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것을 온전히, 그리고 조속히 온 땅에서 이루실 것이다."
(롬 9:29, 새번역) 그것은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1:9(칠십인역)
(호 2:23, 개역)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호 1:10,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사 10:22, 개역)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사 10:23, 개역)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기준으로 삼아서 즉 새언약이지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십니다
천국 갈 자와 지옥에 갈 자
즉 로마서 오늘 본문 앞의 구절들처럼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와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
곧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말이지요
여기에 그 어떤 인간도 수긍할 마음이 추호도 없도록 하심으로써
새언약은 그 어떤 인간도 보탬이 될 수 없겠끔 하십니다
우리가 착각하기를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마치 수긍할 마음이 있을꺼다 라고 으기는데
주로 성화론자들이 당연히 자신들이 천국 갈 줄 알고서 수긍할꺼다 여기지만
오히려 그들이 제일 반발하도록 되어 있는 이우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의식들로 가득차 있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개혁주의자들이나 성화론자들이 얼마나 이런 의식으로 가득차 있으니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셈임을 이루시는 주님의 새언약 기준 보다
자신들의 실천신앙을 우성시 둔 다는 점에서 바리새인과 똑같다는 거지요
오히려 오늘날의 이단들이 오히려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카이 또 이런 이단들이 억수로 좋아라 하겠지만
그 반대입니다 이단인줄 아는 놈들은 자기의 존재가 천국 갈 가능성이 높다고 좋아라 하는게 아니라
뭘 해도 난 이당임을 아는 이 기능성을 보게 되는 거죠
존재가 아닌 기능이 뭔데?
주님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거지요
좀 더 파격적으로 표현하면
주님은 이단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거지요
나는 뭘 해도 이단일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라는 겁니다
결국 심판 받아 마땅한 자 임을 아는 그런 이단인데
누가 이런 모욕적인 이단 구원에 저 이단 맞습니다 라고 돌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이런 고백을 하겠습니까
너도 나도 다들 정통의 구역 속에 들어가고파 이단들도 이단의 굴레를 벗을려고
심하게 로비를 하고요
그런 이단들에게 정치세력 안 빼앗길려고 똑같이 로비를 하기 바쁘다 말이죠
제가 아는 목사 놈이 이단 대책위원장까지 올라갔더라구요
저를 출교 시킨 놈이던데
아니 그런데 이단 대책 위원장 까지 해 놓고서는
이단에 대한 대책을 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단들이 정치 세력과 손 잡고
수 많은 부모들을 울리더라 말이죠
그래서 코로나 터지고 또 잡혀가고 하는 가운데
어라 이 놈이 그 동안의 언론에 나온 기사들을 모조리 다 삭제 하였더라 말이죠
이 놈도 정치력으로 그 자리를 올라 갔는데
더한 정치 세력의 로비 술과 이단의 합세에 기가 눌려 버렸으니
은근 슬쩍 발을 빼는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자기 이미지를 수정한다는 말을
자기를 자기가 관리하겠다 라는 또 미완료 라는 빈칸에 정답써 넣기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그런데 그런 짓을 부정적인 이단 이미지를 이단들을 어떻게 해서든 가릴려고 로비를 하는데
그런 이단들이나 정통들이나 뭐가 다르냐 말이죠
주님 보시기에 결국 다 더럽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그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큰 돈 들여가면서도 이미지 세탁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들만 속이면 된다 라는 것이거든요
주님의 목전에 항상 범죄한 자 라는 다윗의 이단됨 죄인됨의 고백 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는 자체가
더 깊은 마음판의 죄악이다는 거지요
그러니 껍데기 정통이라든지
껍데기 이단 이라든지
그런 것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는 거지요
바로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을 시비 걸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웃낀 내용을 유튜브에서 봤는데
렘넌트 라는 남은 자를 검색을 하니까
아마 영어로 교회의 이미지를 홍보해서 장사하는 집단들인 것 같은데
모든 것을 영어로 발표하는 홍보처럼 활용이 되고 있던데
아이들이 무슨 감긍당한 모습처럼 하고서 영어로 발표를 하더라 말이죠
뭐 이런 종교사업 억수로 많았는데
그것을 남은 자 운동의 차원에서 하고 있는데
한참 웃고 떠들고 까르르 까르르 신나게 뛰어놓아야 할 아이들 청소년들이
무슨 범죄자처럼 억지로 영어로 모든 것을 발표해야 하고
뭔가 틀리면 또 꼬뚜리 잡혀서 수 많은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지래 겁먹은 모습으로써 영어를 발표를 하니
이런 환경이 7세 고시 라는 대치동 풍속을 낳고 있으니
가장 우울한 아이들을 양산 시키고 있다 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더라 말이죠
말이 자유민주주의 이지
빨갱이 독재 공산당 보다 더 심해요
자유 경쟁 체제가 독재보다 더 하다는 거지요
그러니 자살율 세계 1등
즉 하나도 안 기쁘다 라는 겁니다
안 기쁜 것을 억지로 부모의 강요된 선택 강요된 자유에 의해 하고 있으니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아이들을 못 죽여서 안달이 나 있더라 라는 거지요
이거 오늘날 한국 교회 특히 성화론자들 교회의 모습이다 말이죠
착한 성도 콤플렉스로 교인들을 빨대로 꽂아서 피 빨아 먹기 바쁜 흡혈귀 교회 말이죠
그 이단대책위원장 그 놈도 교인들 피 빨아 먹고 그 자리에 올라갔는데
지 보다 더한 흡혈귀를 만나게 되니 안 당할려고 슬슬 뒤로 빠지는 겁니다
그래놓고 간판은 이미지는 여전히 남은자 행세를 하고서 말이지요
지지난 주에 파수꾼 곧 최후의 파수꾼을 예수님 뿐 이였듯이
최후의 남은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그 최후의 파수꾼을 바리새인처럼 모든 인간들은 어떻게 대해 왔습니까?
나사렛 이단이요 바알세불 대 마왕 걸린 마귀 중의 대마왕이다 라고 취급했듯이
고로 최후의 파수꾼 나팔 경고의 예언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에 놓여지도록 되어 있듯이
최후의 남은자는 모든 인간을 심판의 칼에 죽어 마땅한 우상숭배자로 취급해 버림으로써
최후의 남은자 홀로 우는 자로써 주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은
남은 자로써만 주께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주의 산에 오를자 누구냐 유일하게 손 깨끗한
자기 죄로 울어야 할 자들을 대신해서 우는 남은자이다는 겁니다
이 남은자 남겨둔 한 씨를 안 남겨뒀더라면
우리는 벌써 이미 소돔과 고모라 였다 라는 거지요
바로 이 남겨둔 한 씨가 기준인데
뭐 엉뚱한 기준 성화를 했니 안했니
그 행함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예수님으로 이미 결정나 버린 판격을
이들 성화론자들 마귀들을 자꾸 덮어버린 카페트를 자꾸 들추어내어서
자꾸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라고 하니
이거 마귀들이 송사하는 기준 아닙니까
법 법 법 따지는 선을 지키고 악을 버리라 라는 마귀의 주장이다 말이죠
권선징악
이것 때문에 남은자 운동까정 해 대는
이 남은 자 운동 유행을 몰랏던 교회는 남은자운동이 뭔데? 라고 나오고
남은자 운동을 하는 놈들은 아직도 남은자가 뭔지 모르냐 라고 으스대고(으시대다를 쓸려고 하니 자동으로 수정이 되네요 왜그러지? 으시대다는 북한어이고 으스대다가 표준어) 있고
결국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은 곧 남은자 라는 의미는
바로 저런 엉터리 인간 나 살아있음이라는 존재로 출발하는 가짜 믿음 곧 행함을 부수시고자
출현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남은자 운동을 하겠다 라는 그 의식을 가진다는 자체가
남은자 되시 유일한 남은자 되신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게 아니다 라는 거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라고 했다 말이죠
결국 모든 인간은 믿음이 없어요
자기 존재로 출발하니까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이라야 남은자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내 속에 들어와야 할 수 있는데
그것 아니고서는 모든 것이 나 살고자 하는 그저 뭘 해도 가짜일 뿐인데
그것 남은자 그거 좀 흉내 냈을 뿐인데
그것으로 우쭐대고 좋아라 하면서 나는 할 줄 아는데 너는 남은자 운동 못하지 라고 나오니
먹고 배불러 터지니까 바로 마음에 교만이 오고 교만이 오니 바로 미끄러져서 지하에 내려가는
이 언약의 코스를 밟게 되더라 말이죠
오히려 이 언약의 코스를 율법 곧 시온에서 나온 율법
뜨인돌에 의해서 다리 걸려 넘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이런 코스를 안 밟는 징계의 몽둥이가 없는 자가
오히려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인간은 이미 자기자신만큼만은 이미 뒤로 자신을 남은자로 빼돌려 놓고서 말씀을 대하지
누가 진정으로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어서
다윗에게 하나님이 악령을 집어 넣어서
한순간에 살인죄 감은죄 인구조사죄를 저지르도록 만들어서
7만명이 죽고
졸지에 하나님이 시킨대로 했던 우리야 장군 개죽음 당하고
심지어 이름 없는 아기
동생 솔로몬 태어가지도 전의 솔로몬의 형 이름 없는 아기의 죽음을 통해서
누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인 썩어 뭉드러지는
바짝 엎드려짐을 당하는 이 자기 죄로 우는 자
그런 남은 자가 될려는 자는 아무도 없어요
교회 유행 프로그램의 남은자는 서로 누가 누가 잘하느냐 누가 크냐 라는
시합까지 하지만
고때만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가 아닌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로써
주의 목전에 항상 범죄한 자입니다 라고
우는
자기 죄로 우는 그런 남은 자는 아무도 없고
도로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만이
유일한 남은자로써
유일한 파수꾼으로써 도로 하나님의 원수 취급받으면서
모든 인간들 심저이 곧 늙어 죽는 힘도 없는 노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또 그런 어른들 땜에 아이들까지 착한 아이 컴플랙스로
힘도 없는 아이들까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라 라고 외쳤던(엘리사 대머리 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청소년 쯤 되는 동네아이들이 어른들을 대신해서 비웃다 곰에 찢겨 죽듯이)
이런 남은자의 운명은 아무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이 남은자의 의미를 무슨 수로 증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만 하면 남은자 다 엉터리로 해석할꺼 뻔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기들이 다 알아서
믿고픈 것만 보고픈 것만 듣고픈 것만 다 뜯어고쳐서 받아들이고
아따 잔소리 그만 하고 이제 남은자 제대로 실천했으니까 잔소리 하지 마 라는 식으로
안했으면 몰라 했으니까 실천했으니까 딴소리 못하도록 입을 막고자
파수꾼을 벙어리로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남은자의 의미는 그 어떤 인간도 근접해서 다가가서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도저히 좁힐수 없는 간극이 벌어지는 이 빵구멍 내신다는 점에서
울지 않을수가 없는
이 정도로 내 죄가 심각함에 상하고 통회하는 상황
말씀에 적혀 있으니가 상하고 통회해야지를 절대 허용치 않는
도리어 말씀도 모르는 개같은 이방인이 도리어 이 말씀에 딱 맞도록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울때에 그것도 내 보는 앞에서 울때에
비로소 남은자 의미가 제대로 증거되는 겁니다
남은자가 하필이면 내가 현장에서 간음한 여자를 잡아 율법대로 돌삐 쳐 죽일려고 할때에
예수님이 남은자로써 그 여인을 무조건 이유 없이 용서함에 있어서
그럼 율법은 왜 기록이 된 것은데? 라는 그 반발성을 더더욱 극대화 시키는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엎도록 간극을 벌리실때에
비로서 이 남은자 의미가
즉 십자가의 의미인거죠
곧 새언약입니다
이 새언약이 헌 술 헌 부대를 추구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 언약 그 쪽팔리는 다윗의 모욕적인 구원은
장사가 안된다
장사가 될려면
종교를 형성할려면
돈이 되는 모세언약이 옳았지
돈 안되는 다윗언약으로는 종교를 못 세운다 라고
이미 우상이 깔려있는 겁니다
그카이 예수님이 그 당시 종교인 유대교 라는 하나님의 교회에
예수님의 복음은 그들 속에 들어갈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로마서는 곧 있으면 고린도서를 시작하는데
고린도서 시작 부터가 고린도교회를
무슨 파벌 분파가 일어나기도 전에
어차피 무역의 도시라 어차피 돈 많은 부자교회가 될꺼 뻔하다 싶어서
미리 피발이 생기기도 전에
십자가가 이 고린도교회를 쪼개기 시작해 버리는 겁니다
그카이 돈 싸움으로 누가 더 크니 더 작니 하고 구별짓기가 벌어지기 전에
어차피 벌어지겠지만 말이죠
그카기 전에 미리 십자가로 쪼개지니까
이런 정치싸움을 할려고 하는 놈들이 미리 발을 빼는 겁니다
더 심각한 예수님의 죽음으로 안헌 기준으로
두 패가 갈라지는 현상이 벌어지니까
뻔데기 앞에 주름들이 내밀 구실을 미리 차단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제대로 두 패로 갈라지는 두 언약의 한 세트를 들이내밀어야지
되도않는 니 몇 번 용서했니 니 어느정도 성화가 되었니 라는
그 따위 엉터리로 두 패로 나눈다는 것은
감히 이 밝히 또렷히 보이는 이 십자가 앞에서는
심각한 것도 아니요 들이내밀 명함도 못 되는 것들이다 말이죠
그 따위 것들은 심판의 기준이 못 되는 겁니다
심판의 기준이 못 되는
나를 제대로 지옥 못 집어넣는 나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제대로 구원 할 수도 없는 가짜들이다는 거지요
제대로 죽이면 죽으리라가 아니면
그 죽으면 죽으리라의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남은자의 의미는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주님의 심판 기준이 되는 겁니다
자기 죄로 우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문제는 죄가 뭔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놓고서 무슨 남은자 운동을 하느냐 말이죠
모조리 위선자로 만드는 종교 라는 국가 짐승 등 위에 올라탈려는
음녀들의 돈 벌기 위한 수작들인 거지요
성화론자들 음녀입니다 음녀
국가라눈 짐승을 이기고 싶어 한다는 거죠
바리새인이 그래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고
그 가룟유다가 자기들 하나님 나라 운동 안 도아준다고
로마 라는 독재 보다 예수님을 더 위험 인물로 제거를 했던 이유인 겁니다
독립운동에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제거대상 노상원 수첩에 기록이 되는 거죠
수첩은 결국 예수님의 수첩이 먼저 떳기에
인간들의 제거 대상 수첩이 등장하는 겁니다
곧 행함의 책인 거지요
자기들 행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자들은 제거대상수첩에 기록이 되듯이 말이죠
아니 자기들 행함의 책이 있는데
말라고 아쉬워서 생명의 책에 기록이 되길 바랍니까
자기들 책이 이미 있는데
자기들 남은자 운동이 따로 있는데
그러니 이런 사탄의 깊이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깊이가 증거가 되어야지
우리가 몰래 따로 꼬불쳐 놓고 있는 의미들을 다 숨긴채로
성경 문자 하나 하나 지킨다고 해서
그 속에 마귀가 안 끼어 들겠냐 말이죠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다윗의 고백 시편 91편까지 인용을 하는데 말이지요
괜히 광명한 천사 이겠습니까? 마귀가 말이죠
인간들의 편 들어 줄려고 하는거 아닙니까
무당이 대통령이 되니까 자기 유익에 맞는 자들은 탄핵으로 우는 겁니다
등쳐 먹는 자 라는 것을 뒤늦게 안 자는 또 자기 성깔에 못 이겨서 탄핵 외치고 있고요
그런다고 다시는 탄해깜 대통형 안 세울 것 같습니까?
이미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로써 자기 유익을 쫓아 교만한 애굽왕을 또 세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의문의 반복을 멉출수가 엇어요
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선물로써의 새마음이 오지 않으니까
억지로 그 중학생 영어발표하는 남은자 영어 캠프 아이들처럼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가스라이팅 당한 뿐이니까 말이죠
이거 뭐 안다고 해서 벗어날 방법이 있겠습니까?
원함으로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으로도 아니요
달아난다ㅗ 해도 아니요
나 라는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이상은
답이 없는 겁니다
그저 빈칸 써 넣기에 허덕 허덕 거리다
좀비처럼 멍하니 있다가 가는 겁니다
애초부너 나를 위한 몸 공간 나를 위한 역사 시간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모조리 다 예수님만을 위한 것들 뿐입니다
자 이래 말하니 종교마약처럼 오움진리교처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종교에 귀의하라는 말이냐처럼 들리겠지만
그것 역시나 의문의 반복이니까 제발 막살아라 라는 겁니다
그 어떤 종교에 포섭되지 말고 말이죠
물론 막산다 라고 해서 막살 줄 아는 놈 단 한놈도 없어요
강요된 선택 강요된 자유이니까
흉내내고 싶어도 그 어떤 놈도 자유한 자가 없었으니
타인의 욕망을 따라 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욕망에 충실한 종으로써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뭐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러했으니까요
그러니 철저하게 갇혔음을 도로 알게 되는 거지요
막사는 놈이 알게 되지
착한아이 콤플렉스로 가스라이팅 당하기 바쁜 자는 그럴 틈도 없지요 뭐
남은자 운동으로 가스라이팅 당하기 바쁜데
누가 제대로 된 심판받는 남은자를 알겠습니까 도로 반대의 의미인데
심판 속에서 나온 자 인데
심판 근처도 안 간자가 무슨 수로 남은자 되신 예수님을 보겠으며
예수님을 유일한 남은자로 못 여기는데
자기들이 실천하는 남은자 운동이 얼마나 엉터리임을
또 미쿡에서 유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돈이나 뜯어먹을 요량으로 행하는 것에
안 당하고 있겠습니까
지금 미국이 다시 교회에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답니다
복음 때문이 아니라 세계 공통적인 현상인 남성 MZ세대들이 정치에 물들여져서
갑자기 보수 운동을 하겠다 라고 말이지요
마치 그 놈 누구였더라? 말콤 엑스 라는 영화에서 덴젤 워싱턴이 주인공 역 맡은
그 말콤 목사처럼 말이죠
하도 오래 전에 봤는데 다시 봐야 할 듯 이슬람교 세계 속에 들어가서 깨달음을 얻는 장면만 기억나는데 깨달음이 아니라 각성이지요 비로소 욕망을 말이지요
MZ 남성 세대가 잃어버린 보수를 옹호하겠다는 방식처럼 말이지요
지금 현재 한국이 제일 무신론자 1위 국이 되었는데
또 어차피 미국 따라 쓸데없는 짓 하겠지만
도로 무속신앙이 K 컬쳐 문화랑 역여져서 전세계 1위로 무속신앙이 가장 활발한데
빨갱이 문재인 잡을 생각 보다 이 놈들이나 잡지 얼마나 할 짓 없으면 ㅋㅋㅋㅋ
멧돼지 하나 못 잡아서 징징 거리더니 말이죠
자 아무튼 남은 자 의미를 이렇게 엉터리로 알아도
또 나는 상관 없다 나는 무신론자이다 라고 여겨도
또 나 만큼은 누가 뭐래도 남은자 의미를 제대로 안다 라고 여겨도
아무튼 남겨둔 한 씨를 남겼다 라는 그 의미가 먼저 떠 버린 이상
거기에 걸맞게 한 세트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남은자가 떳다 라는 이유로
소돔과 고모라 와 같은 짓만 하도록 되어 있는
이 남은자 되신 예수님을 핍박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고로 망해야 함을 알도록 하시는 거지요
그 망하는 자리에서 남은자 되신 자가 누구신가를 보는 것이지
가룟유다처럼 남은자 운동 하라고 오늘 본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앞의 토기장이 비유가 그 당시 시대의 상에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상황에서 등장했듯이
그렇다고 뒤에 나타났고 그 당시 시대의 상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당시가 토기장이 비유를 못 받아들이기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토기장이 비유가 그 당시 시대의 생각들을 받아들일수가 없다는 취지에서
그들의 생각들을 도출해 내었듯이
물론 그 당시로 안 끝나죠 오늘날도 토기장이 비유를 못 받아들이는 시대의 상이 된 겁니다‘네 맞아요 물론 토기장이 비유가 먼저 잇어서 토기장이 비유를 못 받아들일걸 이라고
이 시대의 상을 토기장이 비유를 거부하는 사상으로 돌출 시키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카이 남은자 운동 따위나 가룟유다처럼 해대는 거지요
남은자 되고 싶다고 되어짐이 아님를 뼈저리게 느끼라는 취지인데
지 마음애도 남은자 이다고 설쳐대니
설쳐대면 댈수록 그 남은자와랑 간극이 더더더 벌어진다는 것에
울어야 할 판국인데
예수님과 점점 더 멀어지는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처럼 되는 것에
울어야 할 판국인데
독사의 자식 되었다 라고 좋아라고
나는 독사의 자식 될 줄 아는데 너는 독사의 자식 될 줄 모르지? 라고
온 몸에 똥을 쳐 바르고 자랑질이나 하고 있으니
자기 꾀에 자기가 속도록 하시더라 말이죠
결국은 남은자란 오로지 예수님 단 한분으로써
상하고 통회하는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하는 분입니다
성령 곧 새영 즉 하늘 영광 버리고 낮아지셔서 죄인을 위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원수를 용서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이루신 새 언약을 다 이룬 새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남겨둔 한 씨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자인 남은자는
자기 죄로 우는 자입니다
즉 심판 속에서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
심판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자기 죄로 울면서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 자입니다
행함의 차원이 아닙니다
믿음의 차원인 주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이지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한 것은 행함이기에 또 빈칸 써 넣기라는 의문의 반복이 아니다 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 곧 행함은
원함으로 추구하는 행함
달음박질 함으로 추구하는 행함이지
믿음은 바로 그런 행함을 초월하는 곧 시공간의 초월하는 예수님의 몸
그것도 찢겨지셨다가 다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그 간극인 빵구멍 나신 몸
절대단절에서 출발한 주님의 몸에서 출발한 믿음이요
이 남은자 되신 예수님의 몸만 돌아오는 겁니다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
그러니 집단 구원이요 개인 구원은 없어요 즉 개인 몸의 구원이 없는 거죠
그리스도의 몸만 집단적이기에 그 그리스도의 몸만 돌아오는 겁니다
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개인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라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안그러면 그 개인 구원이라는 그 의문의 반복
빈칸 써 널기 라는 그 미완료인 인간의 숙제를 다람쥐 챗바퀴 돌 듯이 해야 할 터이니 말이죠
그카이 그들은 완악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화론자들의 모습을 보면 겉으로는 얼마나 인자한 모습을 갖추었는지는 몰라도
막상 십자가를 이야기 하면 다들 악마의 모습으로 바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잖아요
겉 모양은 천사예요 광명한 천사
그러나 이 완료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외치면
막 짜증을 내면서 강퍅함을 드러냅니다
그럼 그들이 내세우는 것들은 뭔가?
너 이거 못하지 라고 그 동안 공든 탑으로 쌓아올린 마일리지
곧 경건의 모양들을 나열하기 시작 합니다
아니 그것을 그 동안 감추고서 천사흉내를 낸 거죠
성질 제대로 건드린 것은 완료된 십자가의 사랑
곧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그들은 원인을 갖추는데 자기 의를 쌓았으니
그런 자기 의 쌓기와 무관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들이내밀면
백이면 백 막 짜증을 내도록 되어 있어요
마치 아버지 말씀을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맏아들에게
탕자를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을 들이내밀면 막 짜증을 내듯이
그래놓고 탕자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집어넣어서 자기 죄로 울어 뉘우쳐돌아왔음을
반칙으로 알리바이를 형성해 아버지의 사랑에만 걸맞는 범죄한 탕자 만드시기 함 같이
의사에게는 건강한 자는 핑요없고 오로지 환자만 필요하듯이
아버지에게는 탕자만 필요하고
구원자에게는 의인이 필요없고 죄인만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아 아버지에게는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은 필요 없듯이 말이죠
결국 남은자란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신 그 간극인 그 공백인 빵구멍 난 자입니다
마치 굵은 배 옷을 입었다 라는 것은 빵구멍 난 자이다는 거죠
빵구멍 안 나면 안되는 겁니까 네 남은자가 아닙니다
일부러 모세라도 다윗이라도 심지어 수제자 베드로 라도
의인이 아닌 죄인을 만들어서
자기 죄로 우는 자 만들어서
그 죄인에게 걸맞는 주 곧 구세주 건지시는자
물에 빠진자를 건지시는 자 라는 기능만으로써
남은자를 만드시는 거죠
결국 남은자는 저들 남은자 운동하는 단독적인 행함잉 ksl라
행함 자체가 단독적인 숙제를 말하거든요
남을 7번 용서를 왜 하겠습니까?
자기 혼자만의 레벨 업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누가 남의 스템프 카드에 도장 찍어줄려고
의를 쌓는 자는 마일이지 쌓는 자는 없잖아요
남을 7번 용서하는 것 자체가 자기 카드에 마일리지 쌓기이지
자기 의를 쌓기 위함이지
남의 카드에 의 쌓기가 아니다 라는 역설이 깔린 거죠
남을 7번 용서 자체가 남의 카드에 의 쌓기가 아닌 거죠
그러니 도적질 하지 말라 가르치는 선생이
그 도적질 말라를 배우는 학생의 목숨을 도둑질 당하는
그 간극의 갭을 인간의 숙제로는 좁힐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자는 단독적인 숙제가 아닌
남겨둔 한 씨로 말미암아서 나온 증상물이다는 거죠
이 남겨둔 한 씨와의 관계성이 없이
어떻게 남은 자 운동을 하느냐 말이죠
그런데 인간은 해요
왜? 복수심 때문에 말이죠
하나님 당신은 아무리 나를 저주 해도
나는 당싱이 걸어버린 그 저주의 마법을 반드시 풀고야 말겠다
그 따위 죄의 소원 반드시 문턱을 넘어서고야 말겠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저주를 걸어버린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고야 말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말만 멋들어지지 결국은 복수심이 깔린 한풀이 이다는 거죠
그게 성화론이다 말이죠 이건 뭐 한풀이 이예요 이렇게 당신에게 잘 대해 줬는데
날 인정 안해줘? 그럼 가만히 안두겠다 라고
암논과 다말의 관계를 보세요 결국 인간 쪽에서의 사랑은 적개심 곧 복수로 끝납니다
진짜 사랑은 제대로 된 복수심에서 비롯됩니다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기에
죽음을 제대로 미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도리어 죽는 자기를 사랑하니까
엉뚱하게 살아있는 자를 미워하도록 돠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죽어 있는 자기를 미워 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우리는 청개구리처럼 모든 것을 반대로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칠 방법은 오로지 십자가 라는 전도 도를 전한다는 그런 전도가 아닌
전복 뒤집어 갈아 엎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밭갈이 기경
판을 뒤집는 것 말입니다
최근에 예를 들면 무당 대통령만 무당이 아닙니다
저는 탄핵을 주도한 저 어준이 무리들을 보면 무당이 따로 없어요
같은 놈들끼리 서로 서열 정리를 할 뿐이지
무당과 똑같은 복수심만 퍼트리고 전파하고 있다 말이죠
민주주의가 꼭 그런 식입니다
남을 7번 용서가 어쩌면 많이 용서하면 용서할수록 좋은 것 같지만
그런 다수는 어쩌면 복수심이 아닌지
당신은 나를 미워 해도 나는 반드시 그 미움을 딛고 일어서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야
용서하고야 말겠다 라는 식
주로 이런 여성성이 다른 여성을 이기고자 하는 방식이
남성의 강박증과 반대의 성향으로써 희생으로 용서로 나타나는 복수심이다 라고 하더군요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이창동 감독의 그 유명한 영화 밀양 아닙니까
전도연이 맡은 역할 이신애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주인공 이름이 이신애 믿음과 사랑 아닙니까 그렇게 희생했건만 내 용서 7번 안 받고
왜 내 허락도 없이 하나님의 7에 70번 용서를 받느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신애 믿음도 거짓말 사랑도 거짓말 거짓말이야
네 맞아요 거직말로 안 들리면 그거 가짜입니다
유대인의 믿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는 반드시 거짓말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십자가를 증거한다는 것은 돈 장사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믿음꺼리가 되는 단결성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아요
아니 부자도 근심하고 등돌리고 돌아서 가도록 만드는 십자가 인데
그런 남은자만 돌아오게 하심인데
죄인이 아니고
환자가 안되고
탕자가 되지 않는
맏아들이고
의인이고
건강한 자가 등돌리고 돌아서 가게 만드는 복음이다? 남은자 의미이다?
그럼 교회 폭삭 쏙았쑤다 폭싹 망하는데?
폭싹 쏙았쑤다 인간의 수고를 인정 해주지도 않는데?
상호인정 상호기대 상호기만이 공동체 유지의 기본인데?
수고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을 7번 용서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화된 교회요 그런 교회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주변인들이 인정하는 교회인데
그 정반대인 남은자 자기 죄로 우는 자들만이 참된 교회라니?
그래서 고린도 교호를 십자가로 계속 쪼개고 또 쪼개고 또 쪼갬으로써
남은자만 돌아오는
마치 에스겔 우리가 살펴봤듯이
예루살렘 성을 널다란 돌판에 그림 그려놓고서 그 위에 인자 에스겔의 몸의 털을 다 밀어서 모아 모아서
3분의 1은 성 안에 뿌리고 3분의 1은 성곽 테두리에 뿌리고 3분의 1은 성 밖에 뿌릴때에
뿌릴 때 마다 칼을 날려서 그 터래기 하나 하나 쪼개기 하는 칼을 날림으로써
그렇게 심판을 다 퍼붓는데
그렇게 다 죽이고 있는데 겨우 겨우 남은 그 심판 중에서도 겨우 남은 자가 자기 죄를 알고서 울어버림으로써 겨우 남겨둔 그 심판 속에서의 남겨둔 자로 인해서
쪼개고 쪼개고 쪼개는 가운데서 남겨진 자기 죄로 우는 자를 통해서
남은 자 본인이 남았다 좋아라가 아니라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너 남겨둔 거야
저 분 아니였으면 그 겨우 겨우 남은 그 남은자도 없었어 라는
결국 남은자란 불뱀에게 물려 죽는
하나님 원망해서 불뱀에게 물려 죽는다 지옥간다를 보여주는 자가 아니라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안 쳐다 봐서 죽는다 지옥간다를 보여주는 가운데서
살려둔 남은자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 남은자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와 연관이 된 자이지
죄책감이나 죄에 돌이켜서 자기 의를 쌓는 자기숙제랑은 무관하다는 겁니다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대신 죽음으로써 고침을 나음을 입은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로서 남은자 됨을 보여주는
남겨둔 한 씨의 증상물이지
건강한 자 됨
의인이 됨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 됨이라는
단독적인 존재
오로지 자신의 숙제 이룬 빈칸에 정답 써넣는 자 가 아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써의 죄인된 남은자 곧 이 말은 구원자의 증상물이다는 거죠
환자된 남은자 곧 의사의 기능을 말하기 위한 증상물
탕자된 남은자 곧 아버지의 맨발로 일찌감치 나와서 마중해 주시는 사랑의 증상물이지
누가 자기 스스로의 숙제로 죄인 될려고 환자 될려고 탕자 될려고 하는 자가 있냐 말이죠
만약 그것 마저도 하겠다 은혜를 더하고자 일부러 죄 짓는 놈은
실제로 제가 그런 놈에게 당했어요 너는 죄 지을줄 모르지 나는 죄 지울즐 안다 라고
그거 복수심인데 그 복수심 한 풀이를 마치 자랑하듯이 해요
아니 주님의 숙제로 이루어지는 완료를
자기 숙제로 이룰려고 하니 미완료가 되니까 완악하 수건만 덧떼기러 겹겹이 뒤집어 쓰고서 나가 버리더라 말이죠 자기를 인정 안해 준다고 징징거리면서 말이죠
그런 놈들이 목사들 중에 많아요 제발 자기를 믿어달라고 징징 거려요
그런거 바라지 말고 눈치보지 말고 복음만 증거하면 될 것을 왜 징징 거리는지
결국 그들 복수심에 나가 떨여져 질 수밖에 없어요
교회에 가면 그런 한풀이 그런 복수심 밖에 없어요
그러니 그런 인간의 믿음인 복수심이라는 행함이 깔린 남은자 운동은
예수님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룟유다의 목표와 같은 겁니다
바리새인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같은 남은자 운동이다는 거죠
그러니 그런 원함이다 달음박질과 무관한
인간의 믿음인 적개심 복수심과 무관하게
긍휼의 그릇돠 진노의 그릇으로 나누는 그 기준인
장대높이 달린 인자
곧 남겨둔 한 씨로 인해서 두 패로 갈라질때에
그 어떤 누구도 받아들일 마음이 추호도 없겠끔 하시지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기준이 옳았습니다 라고 나오게 되면
또 의문의 반복이다 라고 했지요
그래서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 라고 하시는 이유는
요나처럼 반발 하도록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요나 또한 예수님의 죽음 마치 아브가함이 이삭이라는 희생제물 됨으로 출발하지 않게 되면
2000년 뒤의 예수님을 못 보는 것처럼
죽음으로 보는 것이 안되면
자기 살아있음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이다는 거죠
그게 인간들에게 멋들어진 구원으로 보이지
누가 이 모욕적인 십자가의 피 용서라는 구원을 바라겠습니까
그래서 요나도 반발 엘리야도 내 열심히 특심이오니 나만 남았다 라는 반발성
그 반발성을 다 까발린 후에서야
비로소 어서 죽어주소서 라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함을 원하게 되지
안그러면 모세의 완악함으로 사랑도 없이 복수심의 행함으로 다들 그 의문의 반복을 추구할꺼다 말이죠
그래가 과연 죄의 소원을 어지간히 잘도 넘어서겠다 말이죠
죽음도 못 넘어서면서
죽음 아래에서 맴돌면서 말이죠
그래서 아예 마귀의 시선인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듯이
마귀의 시선을 가지고 오듯이
율법 아래에서는 모든 인간은 죽음 아래에서 맴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죄 아래 가두어졌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고
마치 율법의 대표자 모세가 외쳤듯이
모세라는 인물이 없어도 율법이 모세처럼 저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라고 외첬건만
다들 율법 지키기 라는 자기 숙제 하기 바쁘네 그려?
그카이 율법과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왔어도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 성전에 다니는 자들에게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오로지 율법 지키기 라는 자기 숙제가 까까득 차 있는
자기 의를 쌓기 바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일 뿐이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더라 곧
지식 곧 사랑이 없더라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데
용서 받은 것이 없고
도리어 남을 7번 용서 했다 만이 까까득 차 있으니까
탕자를 사랑한 아버지의 사랑이 들이갈 틈이 없는 맏아들
왜?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으니까
어긴적 없으니 더더욱 들어갈 틈이 없더라 말이죠
오히려 빵구멍 난 탕자
들어갈 틈이 오히려 덕덕하게 넘치도록 되어 있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도록 하시는
이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증상물이 되지
남은자가 되지
남은자 운동을 스스로 하는 맏아들에게서는
남겨둔 한 씨의 주의 눈물이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수치를 가려줄자가 없고
눈물을 씻겨줄 자가 없는 겁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죽는 자기를 미워할 줄 모르니
엉뚱하게 유일하게 산 자 예수님을 미워하는 그 복수심 바로 인간의 행함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인한 자기 의 쌓기가
도리어 여호와가 누군지를 전혀 모르는 겁니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이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그 기능은 전혀 모르듯이
어긴적 없으면 없을수록 말이지요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아 이 구절 오늘 본문 다음 내용이지요
우와 머리 깨지는 줄 알았어요
이 어려운 것을
(롬 10:6,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롬 10:7, 개역)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특히 이 구절 이 부분 이거 알고 얼마나 기쁜지
그 다음날 되니 금새 까먹었어요 ㅋㅋ
그래서 또 바짝 신경을 써서 보니 또 더 알려주시더라구요
또 그 다음날 또 잊어버렸어요 볼때마다 잊어버리고 잊어버리자 마자 또 새로 알려주시더라구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찢고 싸매고 찢고 싸매고
천국에 갈수 없는 죄인이구나 뭐 어쩔수 없지 뭐 라고 해도
천국이 내려와 쳐들어 오더라 말이죠 천국 가기 싫어도 소용이 없어요
이젠 반대로 지옥에서 빠져나올수 없는 사망의 몸이구나 누가 나를 건져낼꼬
그런데 주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
사망 권세가 무너진 겁니다 행함이 아닌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말이죠
그러니 지옥에 내려 가고 싶어도 못 가요
내려갈 지옥을 그 사망 권세를 주님이 뿌싸 버렸으니까 말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 곧 거룩 찢으셨으나 싸매시는 의 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런 사랑의 언어 곧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새언약의 언어를
선악의 언어로 모세언약의 언어인 행함의 언어 곧 하라 하지 말라의 언어로만 보는 자는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한 가짜 믿음 곧 복수심인 행함의 언어로만 보이는 자는
자기 의 쌓기 라는 자기 숙제 외에는 정답을 써 넣는 방밥 밖에 없기에
이미 벌써 지옥에 간 거죠 죄의 소원에 못 넘어서는 겁니다
죄란 인간에게서 다루어지지 않으니까 말이죠
도리어 죄가 인간을 다루거든요
인간 보다 먼저 있었으니까 말이죠
죄의 소원 넘어서 보라니깐
그 가인의 죄가 예수님의 죽음까지 이어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니가 싼 똥 니가 치우는 그 죄의 소원
누가 치워주지 않는 그 사랑 없음
어떤 갓난아기가 자기가 싼 똥 자기가 치우겠다 라고 엄마 눈치 보면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립니까 7세 고시에 합격하겠다고 나섭니까
그건 부모가 마귀인 자 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인 죄의 소원입니다
아들의 소원이 먼저 있았기에
사랑의 소원 곧 새영 새마음 그리스도의 서원이 먼저 있었기에
사랑인 부모는 그 싼 똥을 치우는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남은자는 똥을 마음껏 싸는 자입니다 막 싸요 막 싸
치워주시는 분 덕분에
눈물을 씻겨주시고 딱아 주시는 덕분에 마음껏 흘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남겨둔 한 씨가 없는 자는
그 남겨둔 한 씨의 증상물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죽음으로 낳은 자녀가 아니기에 열매가 아니기에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 태어난 증상물이 아니기에
늘 자기 숙제라는 그 무거운 짐을 자기도 지고 남에게도 지워서
지도 천국 안 갈려고 하고
남도 천국 못 가게 중간에 삥을 뜯어대는 조폭 강도의 소굴로써
개인의 숙제를 강요합니다
그래야 레베르가 올라간다 라고
그 속에서 끄집어 내시는 사망을 멸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인 예수님의 죽음으로 숙제로 이룬 믿음입니다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사망 보다 강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은자란 바로 이 사랑으로 죽음으로 다 이루신 결과물입니다
남겨둔 한 씨의 결과물
곧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그 원인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생겨버리면 배불러터져서 마음이 교만해져서 바로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고맙게도 그 원인 그 숙제 없애버리고 예수님의 숙제로 채우고자
우리의 교만한 목을 늘 꺽으시고자 또 물없는 곳 양식 없는 곳 원망 안하고는 못배기는 곳으로 인도하셔서 그 처음자리에서 또 첫맹세 첫언약인 새언약만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남은자 입니자 자기 죄로 우는 자
내가 내 숙제를 못해서 짓게되는 죄가 아니라
그 반대로 내가 내 숙제를 하고 주님의 숙제를 안보는 그것이 죄임을 알고 우는 자
죄를 정반대로 보는 자
그 자가 자기 죄로 우는 자입니다
불뱀에게 물려서 죽게 되었다고 우는 자는 약달라고 우는 완악한 자
보김 울어서 망한자입니다 도리어 완악한 자로써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본다고 낫느냐
라고 비꼬는 자입니다
그러나 장대높이 달린 인자를 쳐더보는 자는 자기 죄로 우는 자 맞습니다
내 숙제로 죄의 소원을 이겨보겠다고 하나 질때마다 울때에
이미 다 승리하신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왜 그동안 못봤던고
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던고
왜 이 7에 70번의 용서를 왜 안쳐다봤던고 라고 우는 자입니다
이 눈물을 씻겨줄자를 왜 일찍 못 알아봤던고 라고 말이죠
이 남은자만이 돌아오고 구원받는 자 로써
그저 7에 70번이라는 용서
불쌍히 여겨주심만 바라는
아무리 봐도 심판받아 마땅한 화로다 화로다 이 지옥의 몸 누가 건져내랴 라는
그 원망 절대 원망 세 구덩이 에서
그 사망의 몸도 너끈히 음부에게 건져내시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은 7에 70번 피 용서 뿐이였음을 비로소 알고
비로소 계몽이 되어서 새로 태어나서
啓蒙 계몽 한자 뜻이
열 계 문을 열다 할 때 문 여는 그 열
열다 계 그 문이 외짝문으로써 바깥으로 깨우져 나오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 우상 비유처럼 말이죠 들뢰즈는 반대로 거시적 메이져 리그 세계가 아닌
소립자 세계인 미시적 마이너 리그의 세계로 그 동굴 속을 더 깊게 파 들어가는 거죠
몽은 어두울 몽 즉 죽음으로 덮쳐진 그 무덩의 세계를 파 재기는 겁니다
깨우쳐 꺼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죽음 그까짓꺼 뭔데 라고 죽음의 바닥을 파 재끼는 거죠
종말의 종말
바닥의 바닥을 다 뜯어보는 겁니다
사망아 누굴 쏘느냐 재앙아 누구를 멸하느냐 라고 말이죠
(고전 15:55, 개역)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바닥을 뜯어보니 어라 없네?
죽음은 그야말로 죽어있기에 허구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되다 보니 죽음이 도리어 실상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심심하면 죽여버리겟다 라고 그 허상을 잡고서 협박 공갈을 치는 겁니다
즉 본인이 그렇게 당하니까 남에게 그렇게 표출합니다
도리어 살아있는 생명은 헌신짝처럼 내팽케 치웁니다 그렇게 사망이 실감이 나고
생명은 전혀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약속의 땅 생명의 땅에 들어가자마자 애굽땅으로 변질시켜버리는 겁니다
그 정도로 사망의 권세가 실감이 나지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생명의 땅은 전혀 실삼이 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인 생명은 이 허상은 죽음의 내막을 다 뜯어버리시는 겁니다
바닥의 바닥을 다 뜯어내시는 겁니다
이 실상인 사랑만이 그렇게 하지 인간은 그 반대로 죽음이라는 무기로
죽어 있는 자기는 살리고자 산 자 되신 생명은 모조리 다 죽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멧돼지처럼 말이죠 그 무당년이 총 갖고 다니면 뭐하냐 라고 말하듯이 말이죠
정 그러면 총 빼앗아 직접 쏘지 안 쏘는 겁니다 빌라도처럼 말이죠
그러나 유대인들은 직접 총 결국은 쏘는 겁니다
생명도 없으면서 성전을 사수하겠다고
성전을 헐라 3일 만에 짓겠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총 쏴 죽이고자 말이죠
이것이 사망을 멸하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이 먼저 떳기에
그 죽음이라는 허상이 왕 노릇함에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자들의 모습을 다 까발리는 겁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로 드러나는 것은 이 십자가 덕분 입니다
곧 불같은 하나님의 시기 질투로써의 사랑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웁니다
그래서 성령이 50일 만에 오시니까 49째 까지도 전혀 안 울던 자가
비로소 웁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비로소 계몽 됩니다 남은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이죠
그러니 남은자는 남겨둔 한 씨가 그 시기와 질투의 사랑으로써
죽음이라는 바닥을 뜯어낸 겁니다
그러니 남은 자는 게몽 아니되고는 못 배기는 거죠
무덤이 없어요
서멍아 없어요
모든 허물을 다 덮어버렸어요
마귀만이 자꾸 들쳐보라고 합니다
아니 흰눈 보다 더 흰 붉은 피로
그 더럽기 짝이 없는 먹보다더 더 검은 죄를 다 덮어버렸는데
마귀만이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헛되게 하고자
흰눈 치우고 카파르 덮어버린 사랑 7에 70번 용서 치우고
새언약 치우고 흰 눈 치우고 니 더러운 방은 니가 알아서 치워야지 라고
십자가를 헛되게 할려고 마귀는 자꾸 들쳐보도록 만듭니다
멋들어진 구원 받아야지
그런 모욕적인 7에 70번 용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받는 용서 받지말라꼬
나중에 캐물으면 우짤려고? 미리 방어막을 치라고
니 구원은 니가 따 놓으라고 합니다
이게 맏아들이지 탕자 곧 남은자 이겠습니까?
이것이 무덤이 있는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남겨둔 한 씨의 죽음 덕분에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음으로써
그 기준(표적)으로 나누어진 흥 함과 패 함입니다
왜? 새언약이 창조보다 먼저 있었고 새언약의 증상물로써 세계는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비방받는 표적으로 오신 겁니다
아무도 진노의 그릇 긍휼의 그릇으로 나누시는 이 예수님을 기준으로 못 여기겠끔 말이지요
남겨둔 한 씨를 기준으로 남은자가 탕자가 죄인이 환자가 증상물로 나타나기를 원치 않도록 마귀는 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사망권세를 멸하는 죽음 보다 강한 사랑만이 남은자를 돌아오겎끔 눈물을 씻겨주시고
수치를 가려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눅 2:25, 개역)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개역)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개역)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 2:28, 개역)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29, 개역)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개역)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개역)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개역)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5, 개역)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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