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 의로우시다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부조리)
2011년 4월 5일 화요일 오후 12:28:09 김대식
(시 51: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개역)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개역)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개역)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개역)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개역)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7, 개역)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개역)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개역)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시 51:10, 개역)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개역)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개역)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 개역)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 51:14, 개역)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51:15, 개역)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 개역)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개역)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개역)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9, 개역)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성경의 언어를 보면 부조리 언어이다. 스캔들언어이다. 즉 사랑언어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란 어떤 누구도 해석 못한다는 의미이다.
죽음이라는 부조리를 이겨야 하기 때문에 사랑이 될 수 가 없고
겨우 기껏 해석하는 것이 행함구조언어로 해석할 뿐이다. 하라 하지말라
그렇다면 이 부조리를 어떻게 넘어설수가 있을까?
죽으면 가능 할까?
죽으면 끝인데 무슨 수로 가능한가?
죽음 뒤에는 없는데? 죽으면 곧 바로 심판대에 설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살아 있을때에 숙제를 해야 한다. 이 비밀을 풀지 못하면 안된다. 판도라 상자다.
선악과를 따먹고 신과 같이 되었다면
이 죽음의 비밀을 풀지 못하면 신이 되지 못하고
선악과(율법)의 추궁으로 인해 그 값을 해야 한다. 영원한 지옥이다.
그러나 그 어떤 누구도 비밀 풀었다고 나서는 인간을 볼 때(칼빈, 루터, 그 어떤 영웅도)
그 어떤 천재도 다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정답을 찾은 이가 있다.
사실은 찾은게 아니라 꼼수가 그들에게 덮쳐졌다. (무시험 합격)
반칙이다 반칙
다윗에게 졸지에 성령이 덮쳐버렸다.
그런데 성령이 덮쳐 버리기 전에
비언약을 깔아야 그 차이성을 알게 된다.
다윗이 성령이라는 희년이 덮쳐 해방 되기 전에
전제 되는 것이 노예상태인 갇혀버린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로소 [없었다] [틀렸다] [나 아니요]를 인정한다.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었다 라는 것이다.
뱃속에서 죽어 마땅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께만 범죄 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뻔뻔 스럽게 곧 바로 의롭게 순전하게 하셨다 라고 한다.
앞뒤가 도저히 안 맞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어찌 나를 구원하랴 (정죄함 뿐이다.)
해 놓고서는
로마서 8장 넘어가면 예수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 라고 한다.
앞뒤가 안 맞다.
방금전 까지 남이 아닌 자신이 곤고한 자라고 자기가 정죄 해 놓고서는
이제는 입싹 딱고 정죄함이 없다고 한다.
(삼하 12:16, 개역)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삼하 12:17, 개역)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삼하 12:18, 개역)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삼하 12:19, 개역)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삼하 12:20, 개역)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삼하 12:21, 개역)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삼하 12:22, 개역)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삼하 12:23, 개역)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24, 개역)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삼하 12:25, 개역)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왕이여 좀 전까지 우시더니? 웃습니까? 헷갈립니다.
헷갈리게 하기 위한 술수 인가?
안그래도 자꾸 헷갈린다 라고 하는 자들이 많아서
어려워 하던데
그것은 헷갈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성 또 자기 몸에 맞는 언어에, 다른 몸(꺽으신뼈) 이방언어가 쳐들어와서 그렇다
(미리 결론을 내려보면 인간 자신이 안헷갈리는 일관성을 만약에 쫏아보면 웃끼게도 그 안헷갈리는 길이 바로 헷갈리는 길이다. 광야에서 원망할 것 뻔히 알면서도 인도하니 헷갈려서 자신만의 안헷갈리는 길로 가버린다. 기껏 안헷갈리는 길이 애굽지옥행이다. 인간의 자기 갈길은 안헷갈리는 길이라지만 정작 헷갈리는 길이고, 아무리 봐도 주님의 길은 헷갈리지만 그것보다 더 명료하고 또렷한 길이 없다. 죽음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시원하게 뻥 뚫히는 길이다.)
남자의 언어는 랑그다. 법적 율법적, 질서의 언어다.
(남자의 정신병은 평생 강박증이다. 늘 이겼냐? 졌냐? 성공했냐, 실패했냐? 교회 질서 잘 돌아가는가? 개판인가? 이것만 따진다. 전쟁언어다. 그 전쟁의 시스템으로 갖추어진 언어라서 바벨탑(남근) 언어는 오로지 노아방주 결핍채우기 욕망 언어다. 그 언어를 흩어버렸다. 배경으로 깔리는 함땅 가나안땅 언어다. 뭐든지 뭔가를 우뚝 세워야 한다. 피라미드)
그러나 여자의 언어는 빠롤 새는발음 삑사리 이다. 나만 봐라바 이다. 질서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언어다. 삭제 언어다.
(여자의 정신병은 평생 히스테리 이다. 관계성을 따진다. 놀아줘 놀아줘 배려해줘, 결혼관도 아기와의 관계를 유지시켜줄수 있는 남자인가 아닌가 만을 따진다. 남자는 한번 잡은 물고기에는 떡밥을 안준다. 랑그이기에. 그래서 결혼도 쟁취 개념이지만 그러나 여성은 결혼식에 누가 왔는지 관계를 따지고 그 장면 화면을 세세히 기억하고 고마워 하는 로맨스 무드 드라마다. 공주병이지 뭐 맨날 백마탄 왕자를 찾는 ㅋㅋㅋㅋ. 랑그에 새는 삑사리로써의 빠롤이다.
아니 이런 정반대의 언어구조인 신체구조로써의 언어인데 우찌 결혼이 가능한가? 사랑이 될 리가 없지 않는가?
딱 하나 뿐이다. 법 철회 뿐이다. 법 철회라는 반칙만이 가능하다. 십자가 라는 부조리 뿐이다. [한번은 롤러코스터 라는 티비프로를 봤는데 남녀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코믹스럽게 다룬 내용인데 만약 거짓말(빠롤)을 완벽하게 다 빼버리면 대화를 어떻게 될까 라는 소재로 다루었다. 배꼽 잡았다. 대화가 안된다 대화가, 소통이란 없이 단절 뿐이다. 자신을 꾸미고 외모를 덧붙이기하는 콜라주가 있어야 잉여가 발생하지, 거짓말 다 빼버리면 이건 진짜 남남, 영원한 남남이니 접촉점이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으면서 결혼생활 이라는 것인데 차라리 그 속이고 속아주는 것이 고마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끼리는 속았다 속였다 라는 것이 안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부조리 집단인 것이다. 절대 일치성이란 없다. 차이성이 사랑이다.)
성경은 십자가 언어다. 어리석은 빠롤 언어를 가지고서 랑그 언어를 친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가지고서 돌삐든 율법행한자를 부끄럽게 한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를 택하여서 지혜롭다 라고 하는 자는 친다.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둘 다 정죄 받아야 할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성이다. 십자가는 그 신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언어다.
언어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성령의 일이다.
(갈 5:24, 개역)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다윗은 율법을 지켰고 율법을 어긴자를 4배나 배상하라는 가장 공정한 질서 유지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공정한 재판을 정확하게 명료하게 또렷하게 실행한다.
왕 답다. 랑그 답다. 질서 유지, 하나님 나라 유지, 거룩 유지 !! 질서 질서 거룩 거룩~~
그런데 어디선가 새는발음으로써 광야의 소리가 삑사리로 들려온다.
니가 그 도둑놈이다 이 놈아. 야 이 범법자야 ~~ (너는 왕이 아니라 죄인이요 도둑놈 살인마 이다.)
뭐여? 왠 욕이여? 표준어 서울발음이 갑자기 욕할 때만큼은 말더듬이 일어나지 않는다.
욕설 자체가, 방언 자체가 삑사리이기에
나단 선지자의 지적은 다윗을 삑사리 인간으로 만든다.
시스템을 멋들어지게 갖춘 그 다윗 왕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부끄 부끄 부끄 로 만든다. (꼬기오 꼬기오 꼬끼오 동물 되기)
이 부조리를 까발린다.
이제 그 부조리 그 자체로써 희년이 덮친다.
희년은 이 부조리 덩어리, 삑사리 덩어리로써 정직한 영이 덮치는 것이다.
나단 선지자도 부조리 그 자체 부조리덩어리다. 방금 정죄해놓고서는 용서 받았지롱?~~
말이 되나?
아니 정직한 영이라면 정직한 자에게 덮쳐야지?
부조리 라메?
이게 무슨 생뚱맞은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부조리인데 용서하는가?
여인이여 너를 정죄 하던 자들이 어디 있는가?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않는다.
이 부조리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자는 또 다시 율법적으로 돌삐를 들고 나서야 한다.
또 또 헷갈린다고 한다.
그 여인에 다시는 죄 짖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라고
또 자기의 언어관으로 성경을 본다.(과거 양의탈쓴무리마을 애들이 이런식으로 사기를 친다.)
안 그러면 죄 지으란 말인가? 또 죄를 조장하고 방종을 유발케 하는 것 아닌가?
주님의 용서는 그 여인의 행위에 관심없다. 과거든 지금이든 앞으로든
주님의 관심사는 십자가로써 두 양쪽다 깨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자신의 언어관으로 자기를 구축하고자 하는 자는
이 헷갈리는 십자가의 언어 때문에
전혀 헷갈릴 필요가 없는 자신의 언어에 빠져서
영원히 지옥가야할 헷갈리는 자기만을 쳐다볼 뿐이다.
아니 이 문장언어가 말이 되나?
주께만 범죄? 안 보이는데? 주가 안 보이는데?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들고써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칠려고
그것도 웃끼게도 예수님 보란 듯이 아주 당당하게 돌을 든다.
예수 선생님 당신 생각은 어떠신지요?(랑그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이 불법의 여인을 허용할 수가 없는데?
예수님은 땅에 쓱쓱 쓴다. 빠롤이다. 어 그런데 돌삐 든자들이 사라진다. 헷갈려서?
안헷갈리는 자신들의 세계로 가버린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내세울때는 언제고 물 새는 바가지처럼 술술 빠진다. 다 도망친다.)
죄란 보이는 인간들끼리의 사항 아닌가?
그런 다윗의 언어관을 깨고자 삑사리로써 찾아오니
(어차피 안 보이기에 랑그를 주장한 것이다.)
다윗은 뻔뻔스럽게 방언을 외친다.
(이제는 헷갈릴 필요 없는 명료함이 찾아 왔다. 새는 바가지가 옳았음을 새는 바가지(상한심령이)가 되어서 비로소 고백한다.)
나는 주께만 범죄 했사오니 의롭게 깨끗하게 하시리라.
아니 또 이 문구도 말이 되나? 깨끗게 한다고? 점점 갈수록 더하다.
아무도 말귀 알아 먹을 수 없는
앞 뒤 안 맞는 언어 뿐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 했사오니 의롭게 해 주소서 깨끗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낮짝도 참 두껍지 아예 깨끗하게 의롭게 되었으니 감사하단다. 완전 뻔뻔스러움 이다.
이 무슨 시츄에이션 인가? 삑사리 헐 ~~~~~~~~ (남성극기드라마 her 헐)
그러나 가장 장성한 자의 고백이다. (예수님 믿음이기에)
누구의 시기심을 비로소 유발케 하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존재)
(예수님에 대한 살인의지를 유발케 하는 놀라운 발언이기에, 아벨의 제사가 즉 십자가가 가인의 살인의지를 불태워 숨어있던 죄의 소원을 들추어내듯이)
주여! 나는 늘 틀렸고 그 부조리(부정)가 늘 옳았습니다.
십자가의 피가 늘 옳았습니다
미끄러지는 언어 - 빠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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