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인자와 성실로 세운 영원한 다윗언약 (시편 89편)
(행 13:22, 새번역)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물리치시고서,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 ㉣삼상 13:14; 시 89:20』
(행 13:13, 개역)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 13:14, 개역)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행 13:15, 개역)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13:16, 개역)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행 13:17, 개역)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행 13:18, 개역)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행 13:19, 개역)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사백오십 년간)』
(행 13:20, 개역)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행 13:21, 개역)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행 13:22, 개역)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 13:23, 개역)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행 13:24, 개역)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침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행 13:25, 개역)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행 13:26, 개역)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행 13:27, 개역)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행 13:28, 개역)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행 13:29, 개역)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행 13:30, 개역)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행 13:31, 개역)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행 13:32, 개역)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행 13:33, 개역)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행 13:34, 개역)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행 13:35, 개역)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행 13:36, 개역)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행 13:37, 개역)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행 13:38, 개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 13:39, 개역)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 13:40, 개역)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행 13:41, 개역)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행 13:42, 개역)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행 13:43, 개역)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행 13:44, 개역)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 13:45, 개역)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행 13:46, 개역)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행 13:47, 개역)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행 13:48, 개역)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9, 개역)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행 13:50, 개역)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행 13:51, 개역)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행 13:52, 개역)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시 89:1, 개역)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시 89:2, 개역)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 89:3, 개역)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시 89:4, 개역)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 하셨나이다(셀라)』
(시 89:5, 개역) 『여호와여 주의 기사를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하리이다』
(시 89:6, 개역)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시 89:7, 개역)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시 89:8, 개역)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시 89:9, 개역)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시 89:10, 개역) 『주께서 라합을 살륙 당한 자 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시 89:11, 개역)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시 89:12, 개역)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즐거워하나이다』
(시 89:13, 개역)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
(시 89:14, 개역)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시 89:15, 개역)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시 89:16, 개역)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시 89:17, 개역) 『주는 저희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시 89:18, 개역) 『우리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
(시 89:19, 개역) 『주께서 이상 중에 주의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돕는 힘을 능력 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시 89:20, 개역)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으로 부었도다』
(시 89:21, 개역) 『내 손이 저와 함께 하여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이다』
(시 89:22, 개역) 『원수가 저에게서 강탈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시 89:23, 개역)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저를 한하는 자를 치려니와』
(시 89:24, 개역)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을 인하여 그 뿔이 높아지리로다』
(시 89:25, 개역) 『내가 또 그 손을 바다 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세우리니』
(시 89:26, 개역)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시 89:27, 개역)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시 89:28, 개역)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시 89:29, 개역)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시 89:30, 개역)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시 89:31, 개역)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시 89:32, 개역)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시 89:33, 개역)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시 89:34, 개역)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시 89:35, 개역)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시 89:36, 개역)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시 89:37, 개역)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하셨도다(셀라)』
(시 89:38, 개역)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노하사 물리쳐 버리셨으며』
(시 89:39, 개역)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시 89:40, 개역) 『저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보장을 훼파하셨으므로』
(시 89:41, 개역) 『길로 지나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 이웃에게 욕을 당하나이다』
(시 89:42, 개역) 『주께서 저의 대적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저희 모든 원수로 기쁘게 하셨으며』
(시 89:43, 개역)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사 저로 전장에 서지 못하게 하셨으며』
(시 89:44, 개역) 『저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 위를 땅에 엎으셨으며』
(시 89:45, 개역) 『그 소년의 날을 단촉케 하시고 저를 수치로 덮으셨나이다(셀라)』
(시 89:46, 개역)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시 89:47, 개역)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 89:48, 개역)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셀라)』
(시 89:49, 개역)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시 89:50, 개역) 『주는 주의 종들의 받은 훼방을 기억하소서 유력한 모든 민족의 훼방을 기억하소서』
(시 89:51, 개역) 『여호와여 이 훼방은 주의 원수가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훼방한 것이로소이다』
(시 89:52, 개역)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오늘 시편 89편은 시편의 핵심입니다. 바로 다윗언약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선포입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좀 이상합니다.
다윗언약을 하나님 본인이 선포하실려면
좀 안정적이고
좀 더 평화롭고
국가 곧 나라가 든든할때에
다윗의 언약을 선포하시는게 아니라
바로 망하기 직전에
일부러 마치 잘못들으면 약올리는 듯이
망하기 직전에 다윗언약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지난시간까지 주의 성실함이라고 했지요?
성실함이란 마귀야 마귀야 여기 욥이 얼마나 의로운지 아니? 라고
에이 그거야 하나님이 뒤를 봐주니까 그렇죠
아니다 생명만 빼고 다 건드려 봐라
내 말이 맞는지 틀린지 내기하자 라는 식입니다.
즉 욥을 미움받도록 구체화 시키는 겁니다.
제발 욥 좀 건드려라 라는 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귀를 끌어들이는 겁니다.
제발 욥을 건드리지 마라 가 아니라, 제발 좀 욥을 마귀 너가 건드려라 라는 미움을 구체화 하는 겁니다.
그렇게되면 아무리 욥이라고 해도
이제 욥은 죽은 것 곧 망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마귀를 이길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욥에게서 하나님의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심었던 욥도 모르는 하나님의 아이디어 말입니다.
바로 구원이라는 비밀 곧 십자가의 지혜 말입니다.
살아있는 욥에게서가 아닌, 죽은 욥에게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은자의 기도입니다.
상한심령 곧 상하고 통회하는 자의 기도 입니다.
긍휼을 구하는 기도 부르짖음 말이지 말입니다.
곧 지난 시간에 말한 야곱의 하나님
구스여인의 하나님
죽은자와 방불한 자의 하나님
죽으면 죽으리라의 하나님
그래서 죽은자의 기도는
말도 안된다고 했지요?
죽은 자는 비록 죽었지만 사람 곧 인물이고
기도는 인물이 아니잖아요?
더더욱 말이 안되고 인물을 더 구체화 해서 상한심령이라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상한마음인 인물.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성실함은 그것을 뒤 바꾸어 팔을 어긋맞게 한다고 했습니다.
부제를 이렇게 달려다가 말았는데
다윗을 원수 만들어(불뱀에 물리게 하는) 주의 성실하심과
다윗을 장대 높이 달아 쳐다보게 하시는 주의 인자하심 이라고 말이죠.
즉 베드로를 세 번 부인케 만드시는 주의 성실하심
우리야 장군을 고의적으로 미필적고의적으로 죽이게끔 만드시는 주의 성실하심이다는 겁니다.
애굽왕 바로왕을 강퍅케 하셔서 죽은자를 부르짖게 하시는 주의 성실하심 말이죠.
그리고 마귀에게 잡혀온 베드로에게 너가 나를 사랑하냐 라고 세 번 묻는 주의 인자하심
나단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용서했다는 주의 인자하심
강퍅케한 애굽왕과 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는 주의 인자하심이다는 겁니다.
즉 주의 성실함과 주의 인자하심 그 사이에 빈공백이 있는데
그 간극 사이에 마귀를 끌어들이시는 겁니다.
이 마귀가 빈공백을 견디지 못해서
말려들도록 되어 있는데
바로 주의 인자하심을 곧 주의 십자가의 용서를 훼방하지 않고서는 못배기도록 한다는 겁니다.
결국 인자의 반대는 번제와 제사 아닙니까? 나 뭐뭐 행했고 지켰고 말씀을 믿었다고 우기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 완고함 강퍅함이라는 방해자로 반드시 등장하는 겁니다. 탕자의 형 맏아들 말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고.
주님의 활동은 오로지 마귀만을 상대로하시는데
쓸데없이 인간이 끼여들필요가 없는데 그 심판에 인간이 안 말려드는 인간이 없다는 겁니다.
마귀 잡을려고 올무를 쳤는데 인간들이 왜 쓸데없이 선악을 알아버리는 바람에 말려드냐 말이죠.
3일의 간극의 그 빈공백은 마귀가 덮썩 앉도록 한 겁니다. 미끄러져 자빠지라고
그래서 베드로가 마귀에게 잡혀와야 하듯
욥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여서 다윗언약을 세워 완성하시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다윗은 다시 살거든요.
그래서 아예 다윗을 심판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성실함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용서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인자하심입니다.
주의 성실함과 인자하심, 이 두 간극을 좁힐 길도 없고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인자를 높이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3일만에 다시 살리셨고 주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무슨 수로 인간의 믿음이나 머리로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으로만 일하시는 겁니다. 단절이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윗을 영원히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망하는 판국에 말이죠.
즉 다윗을 죽여버리시는 심판을 하시는 주의 성실하심 (곧 예수님을 원수들에게 내어주심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다시 살려내어서 용서하시는 주의 인자하심을 펼치시는데
여기에 반드시 마귀가 훼방자로 나서도록
이 좁힐수 없는 간극의 빈공백에 앉다가 미끄러지도록 하시겠다는 구원이다는 겁니다.
출애굽사건의 재현이지요.
여기에 참 재미있는 것이 유대인들 곧 모든 인간의 대표성인 유대인이
이 다윗을 세우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방해자 훼방자로 나선다는 점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이 십자가의 지혜를 모르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마귀만이 훼방자일 뿐인데
어떻게 이스라엘 전체가 훼방자로 나서게 되는가?
그 이유는
성전 때문입니다.
시편 89편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바벨론 포로의 시작점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입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 성전파괴가 아니면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즉 새언약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기존의 성전이 누락되지 않는데 어떻게 새성전을 말할수 있냐 말이죠.
새술은 새부대에 넣어야지요
그렇다면 다시 거꾸로 하면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는 말은 곧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킨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만 그럴까요? 땅도 국가도 결국 망하게 하는 파괴이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해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장 떠오르는 생각이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수가 없잖아요?
네 맞습니다.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다윗언약을 다윗이라는 인간 때문에가 아니라
영원한 언약에 졸지에 다윗이 당첨이 되어서 세우시는 겁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이 간극을 좁힐수가 없는 간극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없는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즉 [있는 성전]은 무너져야 하고
[없는 성전]은 세워져야 하는 것을 목격하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니 없는데 [없는 성전]을 무슨 수로 본다는 말입니까?
다윗은 영원은커녕 단축만 될 뿐입니다.
(시 89:47, 개역)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 89:47, 새번역)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모든 인생을 얼마나 허무하게 창조하여 주셨는지를 기억해 주십시오.』
(시 89:47, 공동) 『내 인생이 짧음을 기억하소서. 당신께서 만드신 이 인생의 덧없음을 기억하소서.』
(시 89:47, 쉬운) 『내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소서. 주께서 지으신 모든 삶이 너무도 허무합니다』
(시 89:47, 킹흠정) 『내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어찌하여 주께서 모든 사람을 허무하게 만드셨나이까?』
(시 89:47, 한글킹)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는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지으셨는지요?』
(시 89:47, 현대인) 『내 생명이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는 모든 인생을 정말 허무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시 89:47, 현대어) 『이 몸의 짧으나 짧은 목숨을 기억하소서. 주께서는 모든 인간의 목숨을 어찌 그리도 덧없게 만드셨나요!』
이런 판국에 [없는 성전]을 본다?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
점점점 말이 더더욱 안되는 방향으로만 간다 말이죠.
마치 다니엘이 불 속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덩실 덩실 찬양한다는 비현실적인 말 안되는 소리와 같습니다.
죽어야만 하게 되는 기도 라는 글에서도 말이 안되었지만
기도가 어떤 형태가 아니라 인물이라는 말은 더더욱 말이 안되고 문법 파괴죠?
성경 전체가 말 안되는 문법 파괴 입니다. 즉 인간의 사고방식에 포착불가 입니다.
영원한 언약에서 영원함이 사실은 시간개념이 아닙니다.
인물입니다.
무한한 시간과 영생이라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생각한 자는 아마 주루룩 미끄려져 자빠져 낙심케 될겁니다.
그런거 성경에 없습니다.
한 인물을 말하기 위함 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이미 벌써 창세전에 받은 겁니다.
결국 다윗을 죽게 만들어서
영생 되신 예수님 곧 살리는 영에게 접붙인다는 의미이다는 거죠.
마치 탕자를 방탕케 만들어서 아버지의 사랑에 접붙임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훼방자도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인물 곧 영원한 언약을 말하고자 하는 영광을 받고자 함이다 말이죠.
곧 맏아들이 반드시 등장한다는 겁니다.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잖아요? 라고 말이죠.
그럼 무엇이 생각납니까?
자 이렇게 시편은 한마디로 말해서 출애굽 구원사건을 매일 매일 터트리는 겁니다.
여기에 생소한 단어가 나오는데
(시 89:10, 개역) 『주께서 라합을 살륙 당한 자 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시 89:10, 새번역) 『주님은 라합을 격파하여 죽이시고, 주님의 원수들을 주님의 강한 팔로 흩으셨습니다.』
(시 89:10, 공동) 『당신은 ㉠라합을 찔러 죽이시고 두 팔을 휘둘러 원수들을 흩으신 분, / ㉠바다를 혼돈시키는 전설적인 괴물을 가리킨다.』
라합인데
우리가 아는 기생라합이 아니라
애굽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사 30:7, 새번역) 『"이집트가 너희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된 망상일 뿐이다. 이집트는 '맥 못쓰는 라합'일 뿐이다."』
(사 51:9, 새번역)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힘으로 무장하십시오, 주님의 팔이여! 오래 전 옛날처럼 깨어나십시오! ㉠라합을 토막 내시고 용을 찌르시던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 ㉠전설적인 바다 괴물,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함. 때로는 이집트의 상징』
바다 괴물 리워야단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앞의 글들에서 언급한 악인의 뿔에 해당되는 거죠.
즉 구원의 뿔은 반드시 악인의 뿔을 배경으로 깔고서 나온다 말이죠.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는 악인의 뿔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짖지 않은 성전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없는 성전]이 등장하면 악인의 뿔 곧 훼방자가 이 없는 성전이 세워지는데에 방해자 나서야
그 방해에도 불구하고 명료하게 세워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성전은 다 파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왜 유대인이 이것을 왜 거부하느냐?
주의 전을 향한 열심이 주를 삼키는 훼방을 한다 말이죠.
[없는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거부하는 겁니다.
즉 그말은 곧 [있는 성전]을 사수하는데 목숨걸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강퍅 곧 유대인의 완고한 마음이 수건벗기를 거부하는 겁니다.
없는 성전을 세운데 방해하더라 말이죠.
그것이 영원한 성전인데 말입니다.
그 성전을 세우시는 방법이 바로 3일만에 세우는 겁니다.
이 3일은 날짜 시간이 아니라
사건입니다. 종말적인 표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사건
부활사건
사건은 곧 인물이라고 했지요.
십자가에 달려 죽는 한 인물
다시 3일 만에 다시 사는 한 인물
이 두 사건의 간극인 중간에 빈 공백 광야 곧 심판이라는 사건
그 어떤 연결점도 없는 빈공백만들기 죄인만들기 원수만들기 사건
이것이 영원이라는 인물이 벌리시는 사건의 물증 증거물들이다는 겁니다.
여기서 광야라는 간극에서 이스라엘이 태어난 처음자리이다고 곧 사랑이다고 말이죠.
그러니 사랑 전쟁이지 칼과 창의 힘 전쟁이 아닙니다.
그럼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울려면
다윗을 망하게 수명을 단축시키게 또는 불뱀에게 물려서 죽게, 원수 만들게, 또는 죄인만들게, 또는 죽여서 기도케 만드는 죽은자로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정반대로 절대 망하지 않게
장수케, 불뱀에게 안물려서 장대높이 달린 구리놋뱀 안쳐다보게, 의인만들게. 허무가 아닌 의미있는 삶이게, 절대 바벨론 포로 안당하게 할까요?
다윗언약 곧 새언약은 오로지 한 인물만을 높이는데 있어서
다윗 조차도 비언약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의인으로써 접붙이는게 아니라
의인이면 접붙일 필요가 없이 그냥 독자적인 나무로 내버려 둬야겠지요.
접붙인다는 말은 죽은가지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죽여서 살리기 위해 접붙일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망하게 하는데 죽여서 3일 만데 다시 살리는데 있어서
훼방자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그 3일의 간극을 도저히 못견디고 등장하는 훼방자 말입니다.
다윗을 죽였을때는 물개박수를 치니까 훼방안합니다.
훼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솔로몬에게 임한 지혜는 반드시 훼방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훼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같은 편에 섰다고 물개박수를 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훼방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지혜 곧 인물이다는 겁니다.
지혜는 똑똑함이 아니라 어떤 인물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결국 3일도 우리가 좀 이해할라꼬 간극이라고 사건이라고 표현했지
사실상 인물이다는 겁니다. 묵시에서는 모조리 한 인물을 말하기 위한 겁니다.
그럼 다윗을 죽여야 한 인물이 언급이 되고
그 인물을 세우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는
그래서 그 인물에 대해 반항하는 자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애굽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제 사울왕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더 크게 확대된 애굽인 바벨론과 메데 파사 등등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더 큰 방해자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 속에서 그 죽음 속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자 말이죠.
죽음이 실제화 되어야, 죽음을 없애는 사랑이 실현될것 아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죽음을 없애 버렸기에 믿음의 세계에서는 다시 사는 겁니다.
사망의 권세가 여전히 있는 판국에 영생불멸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그래서 출애굽 사건을 계속 발생시키는 겁니다.
십자가 사건을 계속 발생시키는 겁니다.
다윗마저 죽어나가는 세상이다면
얼마나 악하냐 말이죠.
예루살렘 성전 마저도 파괴되는 세상이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유일한 구원사건이 되는 겁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없음의 성전]이 또렷히 보이고
눈에 보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모호한 [의문의 성전]은 파괴되는데
둘 다 죽여서 둘 다 파괴시켜서 누가 누가 죽었다가 다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느냐로
성전완료를 선포하고 다윗언약이라는 영원한 언약이 명료하고 또렷한,
의문으로 하지 않는, 죽이는 것이 아닌 [살리는 영의 성전]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성전을 오히려 하나님이 개입해서 부수시는 겁니다. 바벨론을 들어서 말입니다.
이제 땅도 없고 나라도 없고 성전도 없고
모조리 다 없어진 상태에서
이 눈에 아무 증거 없어도
영원한 언약이 오히려 또렷해 짐은
한 인물 때문이다는 겁니다.
영원한 영원한 이라고 하니까 영원한 언약 안식일 또는 영원한 언약 할례언약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리 봐도 안식일을 파괴하는 자로 보입니다.
심지어 할례문제는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마저 문제시 될 정도로
바울이 야단치는 모습이 나올 정도로 오히려 할례가 영원하기는커녕 모호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문제를 오히려 사건으로서 터트림으로써
안식의 주인이라는 인물을 이야기 하고
마음판의 할례를 말함으로써 십자가의 죽음 곧 예수님 자신이 육을 십자가에 못박음을 증거하십니다.
영원함이 졸지에 시간적인 무한대가 아니라
한 인물을 말했듯이
정작 유대인이 안식의 주인의 훼방자로 말려들게 된다는 겁니다.
참성전되신 예수님을 3일 만에 세우심에 있어서
누가 훼방자 입니까?
성전을 헐라 라고 말했다고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짖는자여 라고 비아냥거렸던 그들이 정작 진짜 성전을 원치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다니는 자들이 참성전 되신 예수님을 원치 않고
그저 교회를 차지할려는 정치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술까? 라는 정치를 거부하는 정치(부정의 부정)를 펼치는게 아니라
교회정치를 깨는 정치를 펼치는게 아니라 교회를 해체하는 정치를 펼치는게 아니라
자꾸 교회를 세울려고 더 더 끌어모을려고 꽉 꽉 채울려고 한다는 거지요.
어떻게 하면 교회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해먹을까 라는 것 뿐이다 말이죠.
강도의 소굴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을 훼방하더라 말이죠.
새언약을 거부하더라 말이죠
영원한 다윗언약을 세우는 것을 방해하더라 말이죠.
다윗 자손을 기다린다고 하는 자들이 말이죠.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일부러 보란듯이 코 앞에서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유대인들이 들으면 불편해지고 기분나쁜 소리로만 들리도록 일부러 코 앞에서 말이지요.
이렇게 방해자를 일부러 들추어내시는 겁니다.
이미 다 세웠기에 완료되었기에 방해해본들 소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완료된 소식을 전파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거죠.
왜냐? 마귀가 맡은 역할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철저한 보충물로써 작용하는 겁니다.
자 시편 89편은
다윗언약을 세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곧 바로 예루살렘 성전 파괴라는 바벨론 포로당함에 있어서
오히려 영원한 언약을 증거하십니다.
그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딸랑 다윗언약이라는 영원한 언약 뿐입니다.
모조리 다 누락되고 공중분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다윗언약이라는 영원한 언약인 새언약이라는 인물을 말하기 위해서
바벨론포로 당함도, 예루살렘성전 파괴됨도, 나라 잃고, 땅을 잃고 함도
모조리 새언약인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동시에 방해자를 들추어내심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곧 다윗은 포로 당하고 죽임당하고 파괴당하고 빼앗기고 잃어버림당하는 수모를 격게 됩니다.
그래서 그 눈물을 주의 병에 담는 겁니다.
이 다윗언약 때문에 참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또 유대인들은 의로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의롭다 자가자찬합니다.
참고 참고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의로움이 아닙니다. 성화가 아니다 말이죠.
죄 때문에 죽음 속에 놓여진 심판받은 것이 무슨 놈의 의로움입니까?
참고 참고 기다린다는 것이 땅 빼앗기고 나라 빼앗기고 성전파괴 된 것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뭘 의로움을 지키는 겁니까? 거룩이 이미 깨졌다는 증거인데
본드로 테이프로 붙인다고 그게 의로움이냐 말이죠.
오히려 깨졌기에
새로운 판대기를 달라고 해야 하는 겁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고 그래서 주세요 할 판국인데
참고 기다렸으니 보상해 달라고 시위를 하는 겁니다.
말씀 지키겠다는 놈들을 보면 꼭 하는 짖이
깨진 고려청자를 테이프로 본드로 땜빵하듯이 붙이겠다는 짖과 같다 말이죠.
과연 본드로 다 붙이면 고려청자의 원래가치가 됩니까?
이런 자들의 특징은 대신 매맞는 장자를 안 쳐다보겠다는 심뽀와 같다는 겁니다.
즉 다윗언약이라는 영원한 언약이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거부하겠다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막살면 안된다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렇다고 막살아라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죄를 지으라 그런 뜻도 아닙니다.
죄인이니까 어쩔수 없다 그것도 아니다 말이죠.
이미 막살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막사냐 말이죠.
누구에게 예민하게 들리도록 하는 불가능한 의미다는 겁니다.
즉 훼방자를 돌출시키기 위해서
베드로를 세 번 부인하도록 만드신 겁니다.
베드로가 죄인이니까 라고 자기정당화 하던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도록 만들어야
반드시 누가 등장하고 돌출한다 말이죠
즉 마음에 드는 다윗을 세운다는 말은
하나님이 마음에 드셔서 다윗을 세워 장자로 세움에 있어서
대신 매맞는 자를 안쳐다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싫어버린바 되어서 고개를 다 돌려버리는 겁니다.
너무 너무 얼굴이 새까맣고 풍채나 아름다움 따위는 없다 말이죠.
불뱀에게 물린 현실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다들 안쳐다보다가 망하는겁니다.
그래서 인자를 높이 들어서 광야에서 매달아 놓는 겁니다. 대신 매맞는 자를 보라는 겁니다.
상한심령을 보라는 겁니다. 주의 인자를 곧 인애와 자비를 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 번제와 제사를 드리면 되지 않느냐 라고 완고한마음을 굽히지 않는 겁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마침 예수님이 기가막힌 타이밍에 있어서
시험한다 말이죠.
이것이 훼방자를 들추어내는 방식이다는 겁니다. 우연을 가장한 미필적 고의사건 하필이면 바리새인 눈에 띄이도록 옆을 지나가는 예수님
여인이 아닌 예수님이 들추어내는 겁니다.
일만달란트 용서 받은자가에 하필이면 백데나리온 띠먹고 간 놈이 하필이면 우연적으로
즉 사건적으로 옆에 지나가도록 해서 도저히 견딜수 없게 만드는
그 빈자리 덮석 앉아버리기
이건 본능이지
참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말이죠.
일만달란트 용서 받은 자는 결국 없어요
용서는 없었다 말이죠.
그런데 용서는 더더욱 그 용서의 풍성함이 더 커지는 겁니다.
망하기 직전에 영원한 언약을 다윗에게 세운다는 말은
이제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는 없다 라는 겁니다.
없는데 분명 없는데 영원한 언약은 세워지더라 말이죠.
다윗만이 다스리는 나라 말이죠. 또렷히 세워지더라 말이죠.
그 영원한 언약으로 세워진 다윗이 통치하는 나라는
이제 소위 나는 나라 있지롱
나는 영토있지롱
나는 성전있지롱 이라고 주장하는 놈들을 모조리 다 부숴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겁니다.
나는 십의 이조 드리지롱 나는 율법 지키지롱 이딴거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감히 그 앞에서 있다 있음 이라고 자랑할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영원한 나라를 세운 겁니다.
다윗이 통치하는 나라 말이죠. 어딜 감히 또렷히 밝히 보이는 십자가 앞에서 그런 의문의 죽이는 것을 자랑하냐 말이죠.
이 다윗 때문에 이스라엘은
나라도 없고
땅도 없고
성전도 없어도
구원받더라 말이죠.
그 다윗이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이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말이죠.
다윗 아닌 다윗
다윗을 넘어서는 다윗
그래서 죽은 다윗을 접붙여서 의문으로 죽은 다윗을 살리는 진짜 다윗
개인 다윗은 백날 해 봐야 가짜다윗 역할만 할 뿐인 비언약이고
그 비언약을 가지고서 미끼로 삼아
영원한 다윗언약을 세우심에 방해자를 만들어낼줄 아는 진짜 다윗이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더라 말이죠.
그렇다면 죽어도, 망해도, 성전파괴 되어도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결과가 주님의 살아계심으로써 펼쳐지는 일이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육은 더더욱 허무해야만 하고
육은 더더욱 단촉이 되어야만 하고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더더욱 파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공중분해 되는 것처럼 다 해체되고 날라가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모으실때에
새언약을 기억함으로써
새언약으로
예수님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겁니다.
땅이 없고
성전도 없고
나라도 없는데
오로지 예수님 이름만으로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영원한 언약인 다윗나라 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누리는 겁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밤에 출애굽구원사건을 터트리시고자 애굽왕 바로를 강퍅케 했듯이
세상이 다윗을 미워하도록 그 미움을 구체화 시킨 주의 성실함으로
이제 그 미움에서 죽고 다시 살리는 주의 인자하심으로
영원한 성전되신 예수님이라는 참성전을 세우시는 겁니다.
이 간극에서 태어나는 자가 바로 새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고
나머지 모든 인간은 방해자로써 그 간극에서 미끄러져 사생자가 되는 겁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
잃어버림 받았다가 다시 되찾은바 됨이 없는 다윗은 가짜다윗이기에
다윗을 죽여서 다시 살리는 겁니다.
다윗이 통치하는 나라는
성전 없는 성전이요.
땅없는 약속의 세계요
국경 없는 나라요 다스림입니다. 모든 경계선을 초월했기에
십자가는 구석 구석 자신의 피 용서를 세우시는 겁니다.
다윗언약을 세우시는 겁니다.
여기에 마귀는 이 십자가의 피 용서를 거부하고 훼방하는 자로 나서는 겁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이 다윗언약의 성취를 선포함에 있어서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가 완성됨을 증거하는데 기뻐하는 자가 퍼지고
동시에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가 완성 되기는 뭐가 완성 되었냐고? 따지면서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그 모호한 의문을 계속 주장하는 자
여전히 기다리면서 훼방하는 자를 돌출시키는
이 역시나 출애굽 사건인 구원사건
곧 십자가사건을 반복하는 것이다는 겁니다.
놀랍게도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설교한 내용을
그때 바울이 그 스데반을 죽였는데
다윗을 죽였는데
이제는 그 스데반이 증거한 다윗언약의 완성을
바울이 바톤을 이어받아서 똑같은 내용인 다윗언약의 완성을 외치고 있고
역시나 바울을 죽일려는 방해자 세력이 동시에 등장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것마저 포함해서 이것이 바로 주의 성실하심이요 주의 인자하심이다는 겁니다.
그 어떤 인간이 중간의 매개자가 되어서
영원한 언약이 세워지는게 아니라
심지어 다윗조차도 누락되면서 다윗없는 다윗을 세우시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오로지 주의 성실함과 인자하심으로만 이루신 다윗언약의 완성인 겁니다.
(행 7:46, 개역)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행 7:47, 개역)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행 7:48, 개역)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행 7:49, 개역)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행 7:50, 개역)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51, 개역)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행 7:52, 개역)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행 7:53, 개역)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4,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5, 개역)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개역)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7, 개역)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개역)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개역)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개역)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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