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로만 덮친 기쁜소식 (시편 136)

 

미래완료(원인 없는 결과=무시험 합격)로만 덮쳐진 기쁨(주의 인자하심)

 

 

(살전 5:15, 개역)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 5:16, 개역)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개역)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개역)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9, 개역) 성령을 소멸치 말며

(살전 5:20, 개역)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전 5:21, 개역)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22, 개역)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3, 개역)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136:1, 개역)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 개역)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3, 개역)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4, 개역)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5, 개역)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6, 개역)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7, 개역)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8, 개역)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9, 개역)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0, 개역)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1, 개역)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2, 개역)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3, 개역)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4, 개역)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5, 개역)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6, 개역)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7, 개역)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8, 개역)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9, 개역)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0, 개역)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1, 개역)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2, 개역)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3, 개역)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4, 개역)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5, 개역)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26, 개역)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6:1, 새번역)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 새번역)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3, 새번역) 모든 주 가운데 가장 크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4, 새번역) 홀로 큰 기적을 일으키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5, 새번역) 지혜로 하늘을 만드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6, 새번역) 물 위에 땅을 펴 놓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7, 새번역) 큰 빛들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8, 새번역) 낮을 다스릴 해를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9, 새번역) 밤을 다스릴 달과 별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0, 새번역) 이집트의 맏아들을 치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1, 새번역) 이스라엘을 그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2, 새번역) 이스라엘을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이끌어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3, 새번역) 홍해를 두 동강으로 가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4, 새번역)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5, 새번역) 바로와 그의 군대를 뒤흔들어서 홍해에 쓸어 버리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6, 새번역)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7, 새번역) 위대한 왕들을 치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8, 새번역) 힘센 왕들을 죽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19, 새번역) 아모리 왕 시혼을 죽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0, 새번역) 바산 왕 옥을 죽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1, 새번역) 그들의 땅을 유산으로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2, 새번역) 그들의 땅을 당신의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3, 새번역) 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4, 새번역)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5, 새번역)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시는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136:26, 새번역)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그 유명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내용은

정작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고 하니

명령어의 법을 지키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이 바로 악마적인 해석이였다는 겁니다.

마치 인간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성경을 끌여다가 자기유익 곧 우상화 하듯이 말이죠.

악마의 편집이라는 용어가 있던데

있는 그대로 빼지도 더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여이 악마의 편집을 해서

자기 유익과

조직의 유익과

사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악마의 편집을 한다 말이죠.

 

대부분 성경 해석이 다 그렇게 이용이 되어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에서부터 출발해서 존재로 회귀하는 식입니다.

 

기능은 그럼 뭘까요?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된 기능은 그럼 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시편 136편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라는 겁니다.

즉 원인 없는 결과 이다는 겁니다.

처음과 나중은 오로지 주의 인자하심이다는 겁니다.

 

그럼 데살로니가 전서 5장의

항상 선을 쫏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뜻은

행하고 실천하라 라는 명령어가 아니다는 겁니다.

 

명령어는 그 명령어를 지키는 인간의 숙제 유무와 그에 따른 합격 여부에 달려 버리게 됩니다.

 

명령어 보다 더 나은 명령어 초과잉적 명령어는 바로 명령어 자체가 숙제를 다 해버리고서는

그 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선물을 주는 겁니다.

우리는 시험을 친적도 없이 그냥 선물을 받아버리는 겁니다.

무시험 합격 이다는 겁니다.

 

그리니 항상 선을 쫏은 적도 없는데

이미 선이 덮쳐져 버려서 선하지도 않는데 선해져 버린 겁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로마서 7장과 8장으로 넘어가는 그 부분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라는 건져내랴

어 이렇게 한탄하고 울부짖고 곤고함 완전 절망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모든게 해결이 되어서

안 기쁘고는 못 배기는 기쁨이 덮쳐버리는 것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외치는 겁니다.


(롬 7:18, 개역)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개역)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개역)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21, 개역)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개역)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5, 개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3, 개역)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개역)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5, 개역)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개역)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도대체 이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그 간극을 파 해쳐서 그 원인을 아무리 따져 보고 따져봐도

이유를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간극은 바로 창세전에 생명책에 기록된 유일하게 기록된 주의 인자하심이지

인간이 찾는 그 원인이 없어요.

결과만 있을 뿐이다는 겁니다.

 

만약 그 원인을 찾아 버리면

놀랍게도 결과는 없어요.

결과가 없으면

챗바퀴 돌 듯이 또 의문의 반복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 뫼비우스 띠를 짤라버리는 가위가

외부에서 침범한 율법 외의 한 의가

이 의문의 증서인 율법을 찢어버린 겁니다.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자 이렇게 말하니까

또 율법 폐기론자들이다고 공격하면서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야 이 율법 폐기론자 이단들아 라고 공격하더라 말이죠.

 

(5:17, 개역)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자 여기서 반박을 못해서 같이 율법을 폐기하면 안된다고 같이 저 자리에 서서 율법폐기론자라고 공격하는 위치에 서 버리는 겁니다.

공격 하는 자체가 더 힘의 우위에 있다고 본 것이지

복음에는 관심도 없는 놈들이다 말이죠.

 

자 그렇다면 율법을 완전케 하는 것을 보여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 말을 못해요 바보 같이

율법의 완전함을 보여달라고 하시면

아무도 율법의 완전함을 보여줄 인간이 없어요

이게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 의문을 반복하겠다고 완악한 모습을 보이더라 말이죠.

이게 악마의 세계에 먹혀들어요

복음의 세계에는 안 먹혀드는 것을

사람들에게는 먹혀든다니깐요.

 

율법을 폐하러 온게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는 것은

율법의 완성이 바로 십자가이다는 겁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사랑으로 율법을 찢어버립니다.

 

아니 율법이 찢느다고 찢어질까요?

안 찢어집니다.

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이 다이아몬드 라고 했던가요?

예를들면 그렇다 치고

다이아몬드를 아무도 못 깬다 그 어떤 금속도 못 깬다

가장 위에 있는 금속이다 칩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다이아몬드를 깨는 금속이 있더라 말이죠.

그게 뭔고 하니 바로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를 깨는 금속은 다이아몬드 자기자신이다 말이죠.

 

그럼 율법은 안 찢어집니다.

거룩인데 누가 찢겠습니까?

그 안 찢어지는 율법을

거룩한 율법을 누가 찢는고 하니

율법 보다 더 나은 초과잉적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찢는 겁니다.

율법이 율법을 찢는 겁니다. 곧 사랑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힌 겁니다.

그러니 율법에 저촉 받는게 아니라

심판의 기준이 이제는 율법에서 십자가로 옮겨가는 겁니다.

 

그러니 율법폐기론자 라고 공격하는 놈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자신도 율법 못 지키면서

언제 이 율법을 이용하는고 하니

남을 공격할 때

그것도 나는 십의 이조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데 저 세리는 토색하고 매국노짖만 하고

더러운 짖만 하기 때문에 저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괜찮은 인간이다 라고 할때에

이 율법을 이용하더라 말이죠.

교리 사수하고자가 아니다 말이죠.

모조리 저 예수 하나 죽이고자 교리 운운하고 율법 운운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반드시 인물 사건으로 삐져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남아버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사건으로 삐져나오는데 있어서 반드시 인물과 인물의 대립으로 나온다 말이죠.

 

이것이 그림자인데 원본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와 예수님의 싸움이다는 겁니다.

 

물론 율법이 가입 되기도 전에 이미 보여준 겁니다.

새삼스럽게 심판의 기준이 율법에서 십자가로 옮겨진게 아니라

처음부터 십자가였는데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율법의 존재가 아니라

율법의 기능이 모든 사람들을 죄 아래에 가두어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5:20, 개역)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그래서 그 율법 이전의 사건을 보면

예로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인물과 인물의 대립에서

 

가인은 율법을 지키듯이 율법이 가입 되지도 않았는데

제사와 번제를 지킵니다.

 

그런데 아벨은 미래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덮쳐지니까

율법 보다 더 나은 의

제사 보다 더 나은 제사인 십자가가

덮쳐져서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아벨 자체가 제물이 되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럼 가인은 그저 제사를 드릴 뿐이다 말이죠.

율법만 지킬 뿐이지

신과 인과 의는 없는 겁니다.

제사 드리는데 달인들인데

껍데기만 보여줄 뿐이지

그 속의 알맹이 사랑과 인애와 자비는 없는 겁니다.

그럼 아벨 지는 뭐 잘난 것 있나?

없습니다. 아벨은 그래서 긍휼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쳐다본 겁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용서가 아벨에게 미래에서 덮쳐지니까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덮쳐지니까

그 사랑에 대한 반발로 가인은 아벨을 죽이는데

죽였으면 이제 싸움이 없잖아요.

적이 있어야 가인이 싸움을 할텐데 적을 없애버렸으니

평화가 와야 하는데 평화는커녕 이제야 본격적으로 심판 속에 놓여지게 됨으로써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전쟁이 어떻게 벌어지는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 추상적인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전쟁이 무슨 소리인줄 몰랐는데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해서 알아가게 되는 겁니다.

미리 결과를 통보하고 난 뒤에

무시험 합격을 보여주고 난 뒤에

그 뒤에 후차적으로 그 내막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 그래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전쟁이였군요. 라고

졸지에 형제 속에 그 전쟁이 들어올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 율법이 가입되기 전부터 십자가로 곧 주의 인자하심으로

심판의 기준을 삼았는데

율법의 가입으로 모든 인간이 죄 아래 가두어짐으로써

십자가의 못 박혀야 할 죄인으로 규정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오로지 십자가의 피 용서 외에는 구원이 없게 되는데

심판의 기준이 처음도 십자가였고

나중도 십자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인줄로 알고 까불다가

마귀가 이 십자가의 용서 앞에서 완악함을 고수하게 되더라 말이죠.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곧 유대인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괜히 선민이 되어가지고 괜히 율법을 지켜가지고 말이죠.

 

그럼 이방인은 이 율법도 못 지킬 뿐만 아니라

율법 없이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이 로마서 갈라디아서는 율법이 아니라

행함이 아니라 믿음

곧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았음을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없게 갈라디아서 뒤 부터는 또 슬그머니 명령어 ~~ 하라 ~~ 하지 말라를

왜 슬그머니 집어넣어서 헷갈리게 하느냐

 

많은 학자들이 사도바울이 이중성 곧 처음에는 율법을 공격하는 율법폐기론을 말해놓고서는

나중에는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어를 남발하고 있다고

이중적이다 일관성이 없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 라고

그들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자기들따나 제대로 밝혀 냈다고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더라 말이죠.

이것을 또 변호할려고 사도바울 편에 서는 척 하는데

사실상 마귀들 편에 서서 성경의 이중성을 억지로 일관성 있게 만들려고 하더라 말이죠.

 

이것을 어머니께 설명하기를 연기라고 했습니다. 연기

사도바울이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유대인들도 못 지키는 짐을 왜 이방인에게 까지 짐 지울려고 하느냐

그럼 유대인들 본인들이 제대로 지키던가?

지킨 것 가난한 자 또는 못 지키는 자에게 나누어 주던가?

단 한 푼도 그 어렵게 지키는 것 무상으로

아무 조건 없이 남에게 줄 수 있겠냐 말이죠.

 

(13:8, 개역)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자기 이웃은 이웃이 아니다 말이죠.

전혀 모르는 그 어떤 연고도 없는 자를 이웃으로 삼아서 무상으로 나누어 줄 수 있냐 말이죠.

심지어 원수 까지도 사랑할 수가 있냐 말이죠.

 

어떤 미친 여자는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고 지켜야 한다고 외쳐놓고서는

자기 말 안 받아주는 자를 원수로 삼아서 원수 갚더라 말이죠.

?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지킬려고 하니까 살인의지를 펼치더라 말이죠.

미친갱이 다 되어버렸더라구요.

사울 왕 같아 ~~~

 

율법 이라는 올무에 제대로 걸려든 거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연기로 율법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에게 율법 속에 확 등떠밀어 물에 빠뜨리는 겁니다.

 

아 이렇게 해서 왜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했고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수 밖에 없고

모든 인간은 이 예수님을 어리석다 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가 왜 영광인가를

 

더더욱 그 사랑의 높이 깊이 넓이를 알게 되기에

예수님을 더욱 더 사랑하라 라고

(엡 3:17, 개역)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개역)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개역)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마귀 보란 듯이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더더욱 외칠 수밖에 없음을

그래야 저 구약도 바로 십자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유대인들은 정작 때려죽어도 예수님이 전혀 안 보이는 것을

우리는 구약에서 조차도 예수님만 보인다는 것을

그래서 그 사랑의 높이 깊이 넓이를 보라고

예수님을 만나라고

율법 지키라고 명령어를 말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보라고 연기를 하더라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일관성이 없다는 둥

나중에는 딴 말 한다는 둥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둥

자기가 모르는 것을 핑계로

사도바울을 탓 하더라 말이죠.

 

그 정도로 우리는 무지 하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가 아닌 기능

오로지 은혜

오로지 선물 밖에 없지

행하고 지키고 실천하는게 없어요

성경을 문자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명령어 밖에 없어요.
그래서 마귀는 명령어를 주장합니다. 메시아의 조건을 따지듯이 말이죠.

그러나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 인자하심으로 보면

명령어가 단 하나도 없다 말이죠.
 

그래서 오늘 시편 136편은 처음부터 완료된 채로 덮쳐지는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건들이 벌어진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갑자기 회개 금식 눈물 기도 다 멈춰버리는 겁니다.

그것은 의문의 것이라서 아이를 살릴수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미래완료가 덮쳐지니까

주의 인자하심이 덮쳐지니까

막먹고 막마시고 막노래부르고 막춤추면서 즐거워하는 겁니다.

 

탕자에게 금가락지 살진소 졸지에 잔치를 벌리는 겁니다.

 

다윗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겁니다.

이 죽은 다윗을 살릴려고

희생번트 우리아장군 이름없는 아기 밧세바를 희생번트 아웃 시켰다는 겁니다.

 

다윗은 그것도 모르고 이 또렷한 사랑을 모르고

의문의 것으로 거꾸로 아이가 죽어간다고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말이죠.

아이가 죽는게 아니라 자는 겁니다.

정작 죽은 놈은 너야 너

나단 선지자가 너가 죽은 놈이야 하고 했을때에

이 지적 자체가 너 다윗을 살리고자 벌렸던 사건이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다 라고 지적한다는 자체가 베드로 너를 살리고자 벌렸던 사건이다는 겁니다.

 

그럼 가룟유다는? 기다리지도 못하고 스스로 깨닫고 자살하죠.

종교가 사실상 자살하도록 하는 이유입니다.
제발 종교 가지지 마세요.

스스로 깨닫거든요.

못 기다려요

그럼 기다리면 되는가?

안 됩니다.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못하는 겁니다.

믿으면 하겠네

 

믿는다는 것은 신앙심을 말하는게 아니라

주께서 주의 인자하심 곧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만을 기록했기 때문에

기록된 대로 벌어지는 사건이다는 것을 믿는다는 겁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신앙심과 기다림과 스스로 깨달음이 뭐가 필요하냐 말이죠.

이미 완료된 채로 덮쳐지는데

뭔가 부족한 것 마냥 내 쪽에서 뭘 할게 있는냥 사기를 치냐 말이죠.

그래서 종교는 사기를 치는 겁니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해야 돈을 벌어요 글쎄.

 

그냥 외부에서 죽어나감으로 인해서 죽은 다윗을 살리는 겁니다.

살아 있는 다윗이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게 아니라

아이가 죽어야만 다윗을 살리는 겁니다.

 

이름 없는 아이가 쉬지 않고 기도했거든요

 

이름이 없다는 것은 뭡니까?

이름 있는 다윗을 삭제 시키겠다는 겁니다.

너의 이름을 위해 사는게 아니라

예수 라는 이름을 위해 사는 인생 뿐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막 먹고 막 마시고 막 노래 부르고 막 춤을 추는 겁니다.

너의 증상을 즐겨라

용서 받았껄랑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껄랑요.

그래서 금가락지 살진소를 잡아 잔치를 벌립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고

천군천사들이 나팔을 붑니다 하늘에서 잔치를 벌려요 죄인 하나 돌아왔다고

 

그런데 유독 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데
안색이 변하고 화를 내면서 투덜 투덜 거리면 비아냥 거리는 마귀 입니다.

곧 사울 왕입니다.

맞습니다. 이 사울왕 보란듯이 펼쳐지는 잔치 입니다.

 

나는 제사를 지켰는데 왜 금가락지가 없지?

제사의 완성인 사랑을 정작 앙꼬를 빼버린 겁니다.

 

그럼 앙꼬 채우면 되지?

한 번 해 보세요

두 시어무이를 섬길수가 있는가?

두 주인을 못 섬기는 겁니다.

 

십일조 내는 율법 지킬려면 돈을 사랑해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십일조 못 내요

돈을 사랑해야 십일조를 지키도록 되어 있어요.

아 그런데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다 말이죠.

바리새인 보세요 돈 사랑하던가요? 안 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가르치는 말씀 내용은 돈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십일조 내도록 되어 있으니

자신들의 손에는 더러운 것 안 묻히고서

남들이 묻힌 것을 가지고 다시 십일조로 드리니

그저 남을 이용해 먹는 놈들이다는 겁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다 이런 식이거든요.

안 그러는 놈이 없어요.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어요.

저도 그 자리에 있으면 다 그렇게 됩니다.

이것은 구조입니다. 판데기 이다 말이죠.

벗어날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판데기 외에 한 의를 바라봐야 하는 겁니다.

율법 외에 한 의를 말이죠.

 

이것이 바로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이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 지키고 율법 지키고 행하고 한 것은 절대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의문의 반복이니까 배설물이다 말이죠.

 

그런데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렷한 미래완료로써의 완성이거든요.

 

그러니 항상 선을 쫏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가

명령어가 아니라

존재가 지킬수 있는 행함이나 실천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완료된채로 원인 없이 결과로 덮쳐버렸기 때문에

선을 안 쫏을수 없을 정도로 항상 쫏도록 되어 있도록 태어났고

항상 기뻐할 수 밖에 없도록 기쁨으로 태어난 겁니다.

웃음아 웃음아 이삭아 이삭아 항상 웃을 수 밖에 없도록 태어난 이삭이다는 겁니다.

심지어 비웃었던 아브라함도 이삭으로부터 태어나는 겁니다. 웃음으로

항상 웃음아 라고 태어난 기능이다는 겁니다.

 

한 바탕 웃음으로 ~~~

난 다시 잠들고만 싶어 어린 시절 꿈 속으로

난 다시 꿈꾸고만 싶어 마냥 웃던 어린 시절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 못 간다 말이죠.

 

쉬지말고 기도하라를 지킬 필요가 전혀 없어요

 

뭐라고에라이 율법페기론자야!!!

 

이미 쉬지말고 기도하라가 덮쳐져서 기도로 태어난 겁니다.

남들이 저에게 김기도 라고 한다 말이죠.

기도야 나를 위해 기도 좀 해줘 라고

김기도씨는 괜히 기도로 태어나버렸기에 늘 기도하는 겁니다 ㅋㅋㅋㅋ

 

이삭도 김이삭이라고 김웃음이다 말이죠.

 

박웃음 이웃음 최웃음 송웃음 정웃음

 

범사에 감사하라

졸지에 감사할 필요도 없이 감사로 태어난 겁니다.

오히려 감사할려고 억지로 감사라는 말을 남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심스럽다 말이죠.

 

그냥 김감사 박감사 최감사 이감사 송감사 정감사로 태어난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모든 육체가 못 박혔기 때문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조건에 맞아서 나오는 감사란 오히려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피곤한 겁니다.

아마 십의 이조 드리고 하면 옆에 있는 놈이 성전에서 십의 삼조 드린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또 십의 사조 드리겠다고 설쳐댈거다 말이죠.

 

그런 의문의 짖이 실제로 벌어져서 발생한 사건이 십자가이니까 말이죠.

 

뭐 나 같으면 예수님 세 번 부인 안 할 것이다 라굽쇼?

아마 네 번 부인 다섯 번 부인 할려고 달려들 것이다 말이죠.

그런 의문의 짖을 멈춰주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말이죠.

 

어떤 누구는 또 막살기를 실천할려고 해요 ㅋㅋㅋ

그 의문의 짖을 하는데 부추기는 짖에 또 말려들어요

그런 마귀들이 한 둘이가 아니더라 말이죠.

 

이미 막살고 있는데 무슨 새삼스럽게 막사냐 말이죠.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짖겠다는

그런 속임수에 놀아나겠냐 말이죠.

 

(6:1,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냥 사시면 되는 겁니다.

 

결과로 덮쳐진 것이지 원인을 만들어 낼려고 하지 말라 말이죠.

 

그냥 생긴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주의 인자하심 덕분에 다른 것 일체 중요하게 여길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는 오늘도 우리를 이 주의 인자하심에 확 등 떠밀어 물에 빠드리는 연기를

사건을 발생시키는 겁니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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