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에 비추인 빛 한 아기  ( 9: 1- 7)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비추인 빛 나사렛 한 아기 평강의 왕 ( 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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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 개역)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 4:13, 새번역)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 4:14, 새번역)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 4:15, 새번역)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  9:1;2

( 4:16, 새번역)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 9:1, 개역)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9:2, 개역)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 9:3, 개역)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 9:4, 개역)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 9:5, 개역)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 9:6, 개역)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9:7, 개역)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9:1, 새번역)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님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그 뒤로는 주님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강 동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 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이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 9:2, 새번역)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 또는 '어둠의 땅에'

( 9:3, 새번역)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때 기뻐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 9:4, 새번역) 주님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 9:5, 새번역) 침략자의 군화와 피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서, 불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9:6, 새번역)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 또는 '놀라운 자, 조언자' 또는 '권좌에 앉으신 이'

( 9:7, 새번역)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인간의 거룩이 왜 악한 것인고 하니

그들의 거룩은 죽은 자를 살리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 하나 살고자 구원받고자 율법을 지킨 껍데기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죽은자를 살리지도 못하는 의

그저 자기 하나 급급하게 구원시키고자 하는

 

과거 청소년드라마 십대들의 쪽지에서 본 적이 있는 내용인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반에서 1등 하던 아이가

2등 하는 아이에게 1등을 빼앗기니까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내용이였는데

아니 그 1등을 말라꼬 하냐 말이죠?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1등하는 1등은 아무 쓸모짝도 없지 않냐 말이죠

 

성화론자나 유대인들이나 다 이런 식이다 말이죠

그러니 유럽 근대문화를 유대인들이 다 일으켜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미움털이 박혀 버리니까

다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이라고 더더욱 본색을 드러내는 그 입장에서

히틀러도 그렇구 유럽인들 대부분이 그랬다 말이죠

그러니 무신론자가 안 될 거야 라고 하다가 될 거야 라고 진작에 우상숭배자로 들통났다 말이죠

그리고 괜히 지금까지도 유럽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되고 말이죠

 

이게 무슨 진리냐 말이죠


사실은 맞지만(사실과 진리는 다르니까)
그 사실로 인해 한풀이만

반작용만 퍼졌으니

그런 환경의 구조 속에서 나오는 현대철학이 왜 무신론자로써

뭐 대단한 자랑인냥 저 우상숭배자와 나는 다르다 라는 식으로

지혜를 펼치냐 말이죠

그래놓고 사람을 진리로 인도하겠데요 글쎄???????

 

진짜 "의" 라면, 진짜 "거룩"이라면, 진짜 복음이라면

버림받는 의로써

역사를 찢는 것이

우상을 찢는 것이

진짜 메시아 이다 말이죠

 

그래서 나사렛에서 자라시는 한 아기가 되신다는 겁니다.

? 흑암의 백성에게 빛을 비추고자 말이죠

 

( 8:18, 개역)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이들에게 빛을 안 구하고는 못배기는

어두움에 빛을 비추이니까

어 내가 어두움이였구나 빛을 고마워 할 수밖에 없는

캄캄한 밤에 빛을 비추이니

안 쳐다볼수가 없고

그 빛이 비추는 곳으로 안 갈수가 없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맞춤서비스 캄캄한 어두운 흑암의 백성에게 비추심으로써

거기에 딱 맞춤맞게 나사렛 한 아기로 오신다 말이죠

 

나다나엘 말 마따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냐 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 나다나엘아 너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구나 속에 간사함이 없구나

즉 성화론자들 말마따나 아부할려고 입에 침바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참이스라엘이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빛이 비추이니까

어 주님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십니까 당신은 참 구원자입니다.

 

 

( 1:46, 개역)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 1:47, 개역)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 1:48, 개역)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 1:49, 개역)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 부분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치 장자자자자 장자자 영감~! 왜 불러!!! 잘했군 잘했어 노래 같아요

 

영감 (왜불러)

뒷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 할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마누라 (왜 그래요)

외양간 매어놓은 얼룩이 황소를 보았나 (보았죠)

어쨌나 (친정집 오라버니 장가들 밑천으로 주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말이 앞 뒤가 맞지 않아요

병아리 잡아 먹었는데

잘했데요 글쎄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어찌나겠냐 라고 했는데

속에 간사함이 없다고 참 이스라엘 이라고

 

야곱아 이스라엘아 라고 부르시고

 

그 노래에 화답하듯이 마치 아가서처럼 참사랑의 노래처럼

 

어찌 나를 아십니까

너가 빌립을 만나기 전에 이미 너를 보았다고 하시니까

당신은 참 이스라엘 임금이다 라고 (이 화답도 이상하죠?)

 

갑자기 갑분잘

갑자기 분위기 잘했군 잘했어 가 되더라 말이죠

나다나엘 이야기가 나오면 잘했군 잘했어 영감 마누라를 생각하시면 딱 맞아요 ㅋㅋ

 

이게 오늘 본문입니다.

 

나사렛 이, 불의함이, 흑암을 백성을 구하고자

빛임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동네에 떳습니다.
하늘 영광 버리시고 죄인의 몸으로써 말이죠.

 

이것이 바로 앞의 이사야 44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우상숭배자들에게 우상의 도시에 빛으로 뛰어드신

싫어버린바 되신 나사렛 한 아기 이다 말이죠

 

이것을 평강 평화라고 합니다.

구체적 보편적 평화이다 말이죠

 

오히려 흑암의 백성이 아니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우기는 자들에게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외치는 평화를 외치는 자들은

때려죽어도 더러운 것 안 만질려고

강도만난자를 지나쳐 가버린다 말이죠

 

이것이 대충 고치는 거짓선지자가 장악해 버린 유대교 오늘날 개신교!

물론 천주교를 그래서 탈출했는데 역시나 매찬가지 개신교도 천주교처럼 우상숭배로 빠졌다 말이죠

그러니 천주교가 비아냥 거립니다. 거봐 너희들도 별수 없지 어서 돌아오라 탕자야 라고 비꼰다 말이죠

 

그래서 차라리 천주교 개신교로 가지 말고 차라리 어디로 가라?

 

(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자신이 잃어버린 양 입니다 라고 하는 자에게로 가라 말이죠

흑암의 백성입니다 고쳐주세요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 자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소서

개같인 이방인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꽁꼬물 먹지 않습니까 라고

주여 불쌓이 여겨주소서 라고 하는 자에게로 가라 말이죠

 

성전의 두 사람의 기도 중에

개신교든 천주교든 어디든 다들 바리새인의 기도 밖에 할 줄 모르는 우상숭배자들 밖에 없어요

 

아무도 교회에 나와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하는 자 없어요!

그저 서로 서로 의인이다고 서로가 안 질려고 하는 완악한 자들만 모인 곳이 교회다 말이죠

 

가슴을 치면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개를 못 들고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세리처럼 기도하는 자는 없다 말이죠

 

과부의 기도처럼

이 원수 마귀가 이렇게 했다고 부르짖는 자가 없어요

부르짖어 놓고서는

 

불의한 재판관인지 정결한 재판관인지 골라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똥물에 7번 담구는데 있어서

 어떤 효과가 있을것인가 라는 

유무를 따지고 

조건을 따지고

원인을 따지는

 

그야말로 우리는 이렇게 철저하게 마귀에게 갇힌바 된 우상숭배자 맞습니다 맞다 말이죠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말이죠

 

나의 의로움이 아니면 또 몰라

나의 의로움 때문에 죽게 되시는

나의 의로움이 살인으로 변하여 의로운 예수님을 죽일줄 누가 알았으리요

어찌할꼬 라고 가슴을 쳐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자 그러니 천주교도 말고 (독재 이명박그네도 말고  그 뿌리 영삼이 두환이 정희 승만이에게도 말고)

 

그렇다고 개신교에게도 말고 (민주열사 재인이에게도 말고  그 뿌리 무현이 이거 뭐 완전 북한이나 남한이나 다들 유훈정치 죽은 자의 정치일 뿐, 대중이도 그 계통이고)

 

다들 이런 죽은자에게서 찾는 교훈 신접한자 마술사 에게 구하는

이런 우상숭배에게서 빼내시고자

 

차라리 어디로 가라

 

( 10:6, 개역)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즉 나사렛 한 아기를 구하는 자

임마누엘 처녀가 낳은 아기를 구하는자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이 의를 구하는 자

찢으셨으나 도로 싸매시는 이 의를 구하는 자

 

이 자에게 한 아기가 딱 맞다 말이죠

잘했군 잘했어 라고

나다나엘아 내가 너를 불렀다 속에 간사함이 없구나 참이스라엘 이구나

네 예수님 당신은 참 이스라엘 임금 이로소이다 라고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잃어버렸는데 다시 되찾은냥

이 의의 관계로써

 

새롭게 이스라엘을 편성 하시는 겁니다.

새 출애굽

새 이스라엘

새 예루살렘

새 성전

 

새 일을 이미 다 이루어 놓았기에 나타나는 증상으로써 말이죠

 

여기까지 글을 마치고

여담으로 기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누는 도중에

아 맞다 이것도 여기에 해당되는 구나 라고

지난주 말씀

남겨둔 아이가 시온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나타나서

 

우상 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하는

 

그래서 더더욱 구한다 안 구한다? 안 구하는 구체적 보편적 진리인 버림받는 돌로 오신다 라고

 

이것이 새 일이라고 했다 말이죠

 

그래서 노래로도 불렀는데요

 

( 43:19, 개역)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 43:20, 개역)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 43:21, 개역)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 43:15, 개역)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 43:16, 개역)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 43:17, 개역)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 43:18, 개역)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분명히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낸다고 했잖아요

 

그럼 광야 말고는 길을 내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강을 사막 아닌 곳에서 내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인간의 죄가 안 드러나요

곧 우상성이 안 들추어지는 겁니다.

 

약속은 반드시 우상과 한 세트를 구성하는데

우상이 안 나타나봐요

어떻게 그 차이를 알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말씀을 나누는 도중에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마치 환상처럼 또 하나의 그림들이 생각되어져서 막 그려지는데

 

바로 죽은나사로 이야기입니다.

분명 마르다 마리아가 사람을 시켜서 빨리 오라고 부탁했는데

일부러 3일 뒤에 가십니다.

 

자 이제 죽었겠지? 자 가자 라고 하신다 말이죠

 

이게 새 일입니다.

죽은 뒤에 가십니다.

만약 죽지 않은 상태에서 가게 되면

새 일이 아니고

 

새 일이 아니게 되면 옛일 이전것의 일 지나간 일 옛아담과 한 세트롤 구성할 수 없는

예수님도 그저 우상 밖에 안되는 첫아담으로 볼게 뻔하다 말이죠

예수님은 살려주시는 영인 두 번째 아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새 일은 반드시 우상에게서 빼내시겠다는

두 번째 아담으로써

 

일부러 죽은 뒤에 가십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리는 의로움이라야

 

이 나사렛 한 아기 이라야

평강을 이룬다 말이죠

 

곧 어떤 평강?

원수 된 자와 화목케 되는 화목제물 말이죠

 

그런데 원수도 아닌 자에게 평강의 왕이 가본들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자기 배를 위한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믿겠다고 따라잡겠다고 하는

우상숭배와 뭐가 다르냐 말이죠

 

그래서 반드시 사막이어야 생명수를 내시고

반드시 광야 죽은 땅이어야 길을 내시는

 

그래서 왜 이제 오냐고 늦었잖아 자나 자나 늦었잖아 라고

마르다와 마리아가 오빠 나사로 이미 죽었다고

예수님 왜 늦게 오냐고 멱살 잡고 흔들어대는겁니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이요 부활이다 믿느냐

 

지금 이 상황에 눈치 없이 부활 따지느냐

그래 그래 이렇게 된 판국에 무슨 소용있니

그래 나 부활 교리 믿는다 그래서 부활교리 평가 시험 만점 맞았다

믿는다 믿는다 카이

 

동네사람들도 비아냥 거린다 말이죠

아니 나사로 사랑했다메? 사랑했다면서 이렇게 늦게 오니

 

문재인 대통령 행동 하나 하나 시비 삼는 종편뉴스들과 똑같다 말이죠

하나 하나 꼬투리 못 잡아서 안달이죠

 

그래서 자기들이 차라리 나사로를 위해서 장례식장의 울음꾼이 되어 주겠다고

예수가 사랑했다는 나사로를 위로라꼬 해 준답시고 막 울때에

 

예수님께서 민망해서 쪽팔려서 우신다 말이죠

 

아이고 이 우상숭배자들이 내가 속을 줄 아느냐

 

그래 그래 나사로를 우상에게서 빼앗기지 않겠다고

죽은 나사로를 살려서 저런 우상이 너를 위해 우는 울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어딜 감히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사기를 속임수를 인간의 꾀를 펼치냐 말이죠

 

이 새일을 반드시 죽음 속에서만 길을 내시는

한 아기

 

이 징조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는데

 

오늘날 교회들은

우상들로만 가득차게 되어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유대인 사단의 회로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 죄악에서 건져달라고

한 아기를 구하는

 

어서 어서 심판해 달라고

 

이미 벌써 새 일이 다 이루어진 것을 보고 듣고 깨닫는

 

마음껏 신나게 즐기면서 우는 자 됨을 누리시길 ~~~~~

 

( 6:5, 개역)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장대 높이 달린 인자가 먼저 떳기에

마음껏 불뱀에게 물려서 인자를 쳐다보는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다가 먼저 떳기에

 

( 8:1, 개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8:2, 개역)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신나게 상한 심령이 되는

이 임마누엘의 증상을 누리시기를 ~~~~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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