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 이스라엘아 네 후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사 44, 1- 8)

다시는 목 마르지 않는 성령을 주리라

63 이스라엘아 네 후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사 44, 1- 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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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35,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28, 개역)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30, 개역)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 6:31, 개역)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 6:32, 개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개역)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개역)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6, 개역)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 6:37, 개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 6:38, 개역)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개역)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40, 개역)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1, 개역)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요 6:42, 개역)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요 6:4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요 6:44, 개역)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5, 개역)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4:15, 공동)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요 4:15, 쉬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선생님, 저에게 그런 물을 주셔서 제가 다시는 목이 마르지 않을 뿐더러 물을 길으러 여기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사 44:1, 개역)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사 44:2, 개역)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을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사 44:3, 개역)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사 44:4, 개역)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사 44:5, 개역)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사 44:6, 개역)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4:7, 개역) 『내가 옛날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고하며 진술할 자가 누구뇨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고할지어다』
(사 44:8, 개역) 『너희는 두려워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사 44:1, 새번역) 『"그러나 나의 종 야곱아,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너는 들어라."』
(사 44:2, 새번역) 『너를 지으신 분 네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너를 도와주마' 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종, 야곱아,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 ㉠이스라엘의 애칭』
(사 44:3, 새번역) 『내가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듯이, 네 자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고, 네 후손에게 나의 복을 내리겠다.』
(사 44:4, 새번역) 『그들은 마치 시냇물 가의 버들처럼, 풀처럼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사 44:5, 새번역) 『그 때에는 '나는 주님의 것이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야곱'의 이름을 써서 그의 자손임을 자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팔에다가 '나는 주님의 것'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 44:6, 새번역) 『이스라엘의 왕이신 주, 이스라엘의 속량자이신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시작이요, 마감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 / ㉡또는 '시작하는 것도 나요, 마감하는 것도 나다'』
(사 44:7, 새번역) 『누가 나처럼 선언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고할 수 있느냐? 나를 누구와 견줄 수 있느냐? 만일 있다면, 내가 옛날 사람들에게 미래를 예고했듯이, 그들에게 다가올 일들을 미리 말하여 보라고 하여라.』
(사 44:8, 새번역) 『너희는 떨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내가 예전부터 너희에게 이미 예고하여 주지 않았느냐? 나는 예고하였고, 너희는 이것을 증언할 나의 증인들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또 있느냐? 다른 반석은 없다. 내가 전혀 아는 바 없다."』


약속하신 성령을 주시겠다 라는 선언은
새 것을 주겠다 라는 겁니다.

지난 주에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언급했습니다.
끊임없이 새 것이 오지 않으면
아무리 죽도록 사랑했더라 손 치더라도
아무리 상사병에 걸려 죽을 만큼 사랑 했다 손 치더라도
바로 급속도로 미웓져서 나의 위신과 위치에 조금이라도 모자른다 치면
바로 바로 버려버리는 자신이 헌사랑인줄 모르고 다말에게 헌 것으로 취급해 버려서 버리는 것이
이것이 인간의 사랑인 거짓사랑이요 인간의 육의 한계요
옛 것이요 사람의 일 사람의 사랑
처음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간의 속성입니다.

다시 목 마르게 되는 의문의 반복이 되는 거다 말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제공되는 새 것으로써의 사랑으로써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겁니다.

이것에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껴서 배척 합니다.
에이 그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세를 통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먹었는데
그래도 심판 받던데 그런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오히려 암논과 다말의 사랑 이야기가 오히려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지
해 아래 무슨 놈의 새 것이 있다 라고
그런 새로운 사랑이 있겠냐 라고 다들 거부한다 말이죠

연애의 맛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누가 이런 말을 하더라 말이죠

이것 때문에 결혼하게 되었다 라고 결혼하게 된 동기가 바로 그것이다 라고
그런데 그렇게 좋아 보였던 그 매력이 도리어 이혼하게 된 동기가 된다 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납득이 되면 다들 끄덕 끄덕 거리더라 말이죠
그러니 암논 이라는 머슴아만 그런게 아니라
여성도 그놈의 지긋 지긋한 그 매력이 꼴보기가 싫어져서 이혼하게 되었다 라고

이것이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라는 겁니다.
이 헌 것 옛 것 처음아담의 속성만 반복하는
그저 산 자와 같은 좀비 생존력만 반복할 뿐이지

살려주는 영인 마지막 아담의 새 일을 모르는 겁니다.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말이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만큼은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를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바라지도 않는 인간이기에 처음아담이기에
새것을 바랄 수밖에 없도록
환자 만들고
죄인 만들고
고아 과부 나그네
소경 눈먼자 앉은뱅이 귀머거리를 만들어서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주마 라고
책임을 지시겠다 라고 나오시는 겁니다.

아니 앞에서는 언제는 우상숭배자 라고 취급해 놓고서는
또 언제 그랬냐 하듯이 너는 내 것이다 라고 해 놓고서
또 손바닥 뒤집듯이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구나 라고 해 놓고서는
오늘은 또 너와 네 자손에게 성령을 부어 주겠다 라고
와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시냐 말이죠

약속하신 성령 이라고 검색하니까

(행 2:33,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일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 3:14, 새번역)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엡 1:13, 새번역)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

(요 14:14, 개역)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5, 개역)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6, 개역)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개역)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8, 개역)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눅 24:49, 개역)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 24:49, 현대인)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나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거라.'』

검색된 내용을 보니까
이것은 행함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로써 언급이 된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행함의 문제 곧 하라 하지말라 라는 것은 쉽다 말이죠
완벽하게 지킬수는 없지만 일단을 무슨 말인지는 알아먹고 이해는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단절의 의미입니다.
행함이 끼여들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오죽 하면 검색된 내용의 믿음 이라는 문제는
죽였다가 다시 살려내겠다 라고 나오신다 말이죠
자 이래서 행함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아니 누가 죽였다가 다시 살려낸다 라는 말을 믿냐 말이죠
믿음은 어디 까지나 내 숙제가 되어야 믿음이 가능해요
즉 이것은 행함이다는 거죠
그런데 저 분에게 내 숙제를 맡겨서 저 분이 달성해야할 문제로 떠 맡기는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인간 곧 처음아담에 속한 인간의 사랑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는 겁니다.
이래서 옛 것이 되는 겁니다.
아니 자기 숙제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믿음의 숙제를
저 양반에게 떠 맡겨야 하는

목마름 속에서 다시는 목 마르지 않도록 영생수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 문제를 해결하는
새 것 새 일 곧 끊임없이 새 것을 제공해 주는 책임지는 사랑을 저 분이 해결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런 타인은 없었거든요

다들 고만 고만 하게 그저 속고 속이는 가운데서
어차피 그럴 줄 알고 암논과 다말의 관계가
우리 인간의 다반사로써 그저 그런 줄 알고 살 뿐이지
뭐 해 아래 새것이 있는냥 저 말도 안되는
다시는 목 마르지 않도록 하겠다 라는 약속을 누가 믿겠냐 말이죠

문제는 앞의 글 마태복음 13장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자기 집에서 배척을 받는다 라고 했듯이 맞아요 배척 받아요
아 그런데 자기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는 대접을 받는다 라는 점이다는 겁니다.

저 말도 안되는 책임져 줄게 라는 새 것의 사랑을 끊임없이 다시는 목마르지 않도록 제공하겠다는 저 약속을

선지자의 타향에서는 실제로 실제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물가의 여인인 사마리아 여인이 졸지에 맞이하게 되었다 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근처도 안가는 그 더러운 이방인 구역에 들어가서 말이죠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
새성전 만들기
새 이스라엘 만들기를
저들 유대인 보란 듯이 펼치시고 있으니 말이죠

그렇다고 따라해 보겠다고 리바이벌 재탕 할려고 하니
재반복이 안되요
재반복이 될꺼면 행함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더 이상 새것이 아닌 헌 것이 되어버리니
또 식상한 일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다시는 물을 길러 오지 않아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콸콸콸 생수가 넘쳐서
생수 사업으로 대동강 물 팔아먹어서 부자가 되었던가요?
이런 방식의 생각은 오히려 옛 것의 반복
처음아담의 사라질 것, 이전 것의 반복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 여안은 도대체 앞으로 다시는 목마르지 않아서 물을 먹지 않고
체내 수분만을 빼내어서 오히려 죽게 되는 것 아닐까요?

지금 언어들이 옛 것의 언어로만 맴돌 뿐이지
차원이 다른 언어로써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대화 했다 라는 것을
우리는 다른 차원의 언어 이구나를 보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행함의 언어에서 벗어난
믿음의 언어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언어는 여전히 행함의 언어라서
그 어떤 연결점이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언어는
그 어떤 연결점도 없는 단절의 언어로써
말도 안되는 소리 밖에 없어요
붕 뜨는 소리일 뿐이다 라는 겁니다.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냐 말이죠
그런데 저 여인
그것도 자기 고향 사람 자기 집안 사람 이스라엘이 아닌
사마리아 타향 사람 그것도 철천지 이스라엘의 원수인 타민족의 사람이
이 예수님이 좋다 라고 룰루 랄라 피리를 불면서 춤추고 좋아라 하고 있으니

성경 자쳬를 아예 부정해 버리면 속이 다 시원할 텐데
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을 필요성 자체가 없을 텐데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해석한다고 붙잡기 싫어도 붙잡고 있으니
과연 이것이 행함의 문제냐 라는 겁니다.

해석 자체가 안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붙잡고 있으니
해석할려고 붙잡은 것일까요 아니면 붙잡힌 것일까요?
해석 하라고 아니면 해석 불가임을 외치라고?

아니 해석 불가이면 그면 해석 안하면 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괜히 해석하겟다고 달려들어서
우와 해석 안되네를 외쳐야 하는 것이
믿음이 이렇게 벌리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야 말로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셈이지요

바로 이겁니다.
성령을 부어주겠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우리처럼 이 약속을 좋아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존과 무관하거든요
옛 것과 무관한 새 것이거든요
기존의 것은 생존과 상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것인 옛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단절된 것을 말라꼬 약속으로 받겠냐 말이죠

소위 기업이라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적어도 재물 재산 건물 등등
이 육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기업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육체를 유지 할수 있거든요

그런데 물려줄 기업이라는 것이 소위 성령을 주겠다 라고 할때에
아무도 안 반기는 겁니다.

이것이 돈이 되기나 할까요 배를 부르게나 할까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말이죠
세상 그 어디에도 아무런 가치성이 없어요

그런데 주님 혼자 신났어요
내가 내 마음을 영으로 주마
이 새 일을 밀어 붙이겠다
나 예수의 마음을 말이야
그것도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약속한 성령을 드디어 이루었다 라고 선물 만들기를 완성해서
이제 선물을 이 성령을 너희에게 주마 라고 신나 하실때에

정작 이스라엘 조차도 반기지 않는 성령이다는 겁니다.

성화론자들의 성령론 조차도 가짜 성령론으로써
그저 생존과 육체에 이익이 될 뿐이지
결국 이 세상 어디에서든 써 먹을 수 있는 가치가 되는 것이지
아무데도 쓰잘데 없는 그런 진짜 성령은 아니다는 겁니다.

가짜 성령은 가짜 성전에서 조차도 써 먹을 수가 있어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신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구약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런데 전 세계에서 가장 무신론자들이 제일 많은 나라일 정도로
성령을 받고파 했을 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세요
성령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촛불이냐 태극기냐 이것 밖에 없어요
중도는 중간인척 할 뿐이지 방관에 가깝다 말이죠
무신론자들처럼 말이죠

누가 자기 가족 자기가 다니는 교회
자기 직장 이나 소속된 사회집단
더 나아가 국가에

성령이 무슨 보탬이나 되거나
그 어떤 가치가 있기나 할까요?

왜 이 예수의 마음을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까?

주님의 시선은 이겁니다
너 이거 없으면 지옥 갈 뿐이다 라고 말이죠

그럼 주세요 주세요 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런데 양다리를 걸칠수가 없어요
중간에 설수가 없다 말이죠

가존의 가족과 성전과 국가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은
성령을 바라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누가 자기 생존의 기준들을 다 끊고서
이 성령을 바라겠느냐 말이죠

자 일단 인간 쪽에서는 없다 라고 시인하고 전제를 깔아 놓아야 한다고 정해놓고서
이제 봐야 할 것은 예수님입니다.

이 무모한 도전은 예수님은 이 말도 안되는 것을 밀어 붙이시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인간 세계에서 방출된 자들만 기쁜소식일 뿐이다 말이죠
소경 앉은뱅이 귀머거리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만 말이죠

이미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 탈락당한 배제된 인물일 수 밖에 없거든요

마치 이것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기존의 성전의 기준에서 성전측량을 했을때에
가장 멀리 있는 기존의 성전에서 방출된 자들이 해당된다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이라는 참성전은 오히려 그 반대로 향하는 식입니다.
창기와 세리가 먼저 천국에 간다고

이런 성령 새 영을 이 새 사랑을 받고 싶니? 선물로 줄까 라고 나온다 말이죠

다말의 입장에서는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처음아담은 심지어 아까 말한 여성들처럼
다들 암논의 입장에 서 있지
다말의 입장에 안 서 있습니다.

이용해 먹고 단물 빨아 먹고 버리면 그만이다 말이죠
본인도 그렇게 당해 왔고 다시 조금이라도 힘 생기면
자식이든 부모이든 형제자매이든 다니는 교회 교인이든
내국인 외국인 그 어떤 누구도 그저 똑같이 서로 서로 이용해 먹을 뿐이다 말이죠
그 중에 선택에서 조금더 특별나게 아끼고 도와주는 상호작용을 할 뿐이지
원천적으로는 그저 이용해 먹는 암논의 사고방식이 전부이다 말이죠
어쩔수 없어요
끊임없이 새 것이 제공되지 않거든요
본인이 받은 것이 없으니까
한번 다 소모하고 나면 더 이상 나올것이 없으니 말이죠
어쩔수 없어요 그것을 원망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어요
자기만 손해 일 뿐이다 말이죠

그렇게 다들 대면대면하면서 지낼 뿐이다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이런 세계를 이런 처음아담의 세계를 깨뜨리고자
무모하게 선언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맹세를 밀어 붙이시겠다 라고
그 앞에서 모든 인간은 깔려 죽어야 할 판국이나
과연 이 새 일
새 것을 원할까여?

기생 라합처럼
어서 어서 나의 국가, 나의 신을 멸망시켜 달라고 
간담이 녹아서 40년을 기다릴수 있겠냐 말이죠
냅따 여호와께 전재산을 팔아 넘길수 있겠냐 말이죠
돈이면 절대로 못 팔아넘기구요
부도난 수표로 보이면 팔아 넘기겠죠

그러니 환자 과부 고아 나그네 죄인에게는 기쁜소식이 되는 겁니다.
이 성령을 주시겠다 라는 약속이 말이죠

그런데 기존이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이상은
전혀 이 약속은 기업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기존의 재산을 날려먹을 판국이 되는 겁니다.

마치 돼지 떼 주인들처럼 어서 어서 예수님 우리 동네를 떠나 주십시오
귀신들린 청년들이 무덤가에 사는 것을 피하면 그만이지
왜 괜히 건드려서 괜히 고치셔서 귀신이 돼지떼 속에 들어가도록 하십니까?
내 재산 말아 먹을려고 하십니까?

훠이 훠이 썩 떠나주세요
계속 있으면 우리 망합니다

얼마나 간곡했으면 말이죠
누가 더 이해가 됩니까
몰살 당한 돼지떼 주인들이 이해가 되지

귀신들린 청년을 고친 예수님이 이해가 되겠느냐 말이죠
성령을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아무리 가스펠 가사 속에 집어 넣어서 아무리 불러도
다들 안 믿는 겁니다.
아니 믿을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은 안돼요
문제는 주님은 하시겠다 라고 밀어 붙이시겟다 라는 겁니다.

주님 혼자 안달이 났거든요
지옥 가는 꼴을 못 보겠다 라는 겁니다.

사람의 일
주님을 괴롭히는 일
옛 것
처음 아담에 속한 이전 것
사라질 것 등등은

내 손 바닥에서만 벌어지는 일들 밖에 없어요
그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릴려고 하는 자 구나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라고 책망하시는 겁니다.

우리 또한 이 책망을 매일 매일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지옥 가게 되는 
믿음이 떨어지는 꼴을 못 보시겠다 라고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겠다 라는 주님의 맹세를 밀어붙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 믿음을 기업으로 주시겠다 라는 겁니다.
과연 금 보다 은 보다 가치 있을까요?

그런데 지옥에 한번 빠져 보면 금도 은도 소용없는데
이 약속한 성령이 그때만큼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를 밀어붙이심에 있어서
황무지
곧 베드로 같으면 마귀에게 붙잡히도록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토록 만들어서 말이죠

자기 것이 하나도 안 남도록 탈탈탈 털리도록 말이죠
이제 암논처럼 더 이상 새것이 끊임없이 나오지 않기에
다말을 버리듯이 죽도록 미워하듯아 버렸듯이
베드로 또한 새 것이 없기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토록 만들어 버립니다.

자 이제야 왜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 라는 약속을 하시는 줄 알게 됩니다.

뭐 하나 내세울 자랑 꺼리 하나 없도록 탈탈탈 털려야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무리 이름없는 아이를 살려낼수 있는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고 탈탈탈 털려야

약속하신 성령이 왜 기업인줄
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인줄 알게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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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함이 없었네 (시/곡 최영택)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땐 나는 만족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 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 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가시 밭의 백합화(아 2:1-2)


솔로몬의 아가서 2장 1-2절


1 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이로다.

2 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 같도다.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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