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 무익한 우상을 만드는 자가 누구뇨? (사 44, 9-20)
무익한 제사(원치 않는)냐? 유익한 꺽으신 뼈 상한 심령(원하시는)이냐?
다윗의 무익한 눈물 회개 금식 기도냐? 꺽으신 뼈의 유익한 상한심령이냐?
(고전 13:3, 개역)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시 51:1, 개역)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8, 개역)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16, 개역)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개역)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사 44:9, 개역)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사 44:10, 개역)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사 44:11, 개역) 『보라 그 동류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사 44:12, 개역)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괄리므로 심지어 주려서 기력이 진하며 물을 마시지 아니하여 곤비하며』
(사 44:13, 개역)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사 44:14, 개역)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사 44:15, 개역)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사 44:16, 개역)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사 44:17, 개역)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사 44:18, 개역)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사 44:19, 개역)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사 44:20, 개역)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사 44:9, 새번역)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모두 허망한 자들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우상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우상을 신이라고 증언하는 자들은 눈이 먼 자들이요, 무지한 자들이니, 마침내 수치만 당할 뿐이다.』
(사 44:10, 새번역) 『아무런 유익도 없는 신상을 만들고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드는 자가 누구냐?』
(사 44:11, 새번역) 『그런 무리는 모두 수치를 당할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다. 그들을 모두 불러모아 법정에 세워라. 그들은 두려워 떨며, 수치만 당할 것이다.』
(사 44:12, 새번역) 『철공은 그의 힘센 팔로 연장을 벼리고, 숯불에 달구어 메로 쳐서,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일을 하고 나면, 별 수 없이 시장하여 힘이 빠진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으로 지친다.』
(사 44:13, 새번역) 『목공은 줄을 늘여 나무를 재고, 석필로 줄을 긋고, 대패질을 하고, 걸음쇠로 줄을 긋는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따라, 우상을 만들어 신전에 놓는다.』
(사 44:14, 새번역) 『그는, 용도에 따라 숲에서 백향목을 찍어 오기도 하고, 삼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베어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저절로 튼튼하게 자란 것이지, 그들이 키운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머금고 자라는 것이지, 그들이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 44:15, 새번역) 『이 나무는 사람들에게 땔감에 지나지 않는다. 목공 자신도 그것으로 몸을 따스하게 하고, 불을 피워 빵을 굽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서 그것에게 절하며, 그것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그 앞에 엎드린다!』
(사 44:16, 새번역) 『우상을 만드는 것과 꼭 같은 나무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우고, 그 불덩이 위에 고기를 구워 먹고, 그것으로 배를 불리며, 또 몸을 따스하게 하며 '아, 불을 보니 따뜻하다' 하고 말한다.』
(사 44:17, 새번역) 『불을 때고 남은 토막으로는 신상 곧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숭배하고, 그것에게 기도하며 '나의 신이여,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하고 빈다.』
(사 44:18, 새번역) 『백성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은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 44:19, 새번역) 『그런 사람에게는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다. 고작 한다는 말이 '내가 그 나무의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워, 그 불덩이 위에 빵을 굽고 고기를 구워 먹었지. 불을 때고 남은 나무로는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지. 이제 나는 그 나무 토막 앞에 절한다' 하는구나.』
(사 44:20, 새번역) 『타고 남은 재로나 배를 채우려는 자들, 그들은 어리석은 마음에 미혹되어서, 도움마저 받지 못한다. 손에 쥐고 있는 우상이 참 신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인간의 모든 역사가 우상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염두하시고 하신 말씀 이십니다.
오늘날 현대에서의 신이란 또는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신을 왜 찾고 믿을까요? 그것은 곧 자기 확대 때문입니다.
결국 현대에서의 신이란 마치 미개문명의 미신처럼 우상조각 섬기듯이 하는 것이 신이 아니라
모든 우상이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신이기에
왜 인간은 신을 만드느냐 결국 자기자신을 확대 하기 위함이다는 겁니다.
아니 누가 신을 찾고 믿는데 지금 보다 더 못한 상황이 되고자 신을 찾는 경우는 없거든요
적어도 지금 보다는
적어도 말이죠
적어도 지금의 상황 보다는 더 좋게 더 나아지기를 바래서 신을 찾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그 유명한 사건 오병이어의 물고기 두 마리 빵 다섯조각으로 5천명이 다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다 라고 합니다.
이 12 열 둘은 바로 이스라엘의 의미인 열 두 지파로써 잉여물 이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거죠
즉 구원 받음에 보탬이 된 것이 없다 라는 겁니다.
심지어 믿어준 것도 없다 라는 겁니다.
여기에 그 다음 사건이 중요합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서
사람들은 제사를 드릴까요? 아니면 상한심령을 드릴까요?
신을 찾는 이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어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앞으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따르기만 하면
적어도 배고픔 이라는 인간의 최대의 숙제
곧 마귀의 첫 번쩨 시험은 통과 할 수 있겠구나 라고
돌을 떡 덩어리로 만들어라
너가 만약 메시야 라면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 이라면
즉 인자 라면
짜빠게티 너구리 진라면 신라면 말고 그런 라면 말고 ㅋㅋㅋ
인자 이다면 하나님의 아들
누구 누구의 아들 이라면
이 돌을 떡 덩이로 만들어서 경제문제 배고픔 문제
적어도 굶어 죽는 문제를 해결 하라 라고 합니다.
아니 신을 찾는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뭡니까?
일단 배고픔이 해결 되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신을 찾는거 아닙니까
아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자가 아니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곧 인자 곧 누구 누구의 아들이란
떡으로 사는 자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먹고 배부름으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신으로 삼고자
하나님으로 삼고자
하나님의 아들로 삼고자
메시아로 삼고자
대통령 왕으로 삼고자
예수님을 쫓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예수님이 도망을 치신다는 겁니다.
왜? 임금 삼고자 함을 알고서 말이죠
배고픔 해결 해 달라는 것을 알고서 말이죠
아니 쫌생이 같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천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을 정도였다면
까짓꺼 배고픔 하나 해결해 줄 수 있지 않나요?
지금 현대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도 그렇고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왕이나 대통령 수상 총리 등등의
국가의 공무원을 뽑을때에
심지어 교회의 목사 조차도 뽑을때에
국가를 더 발전 시킬수 있는 자를 뽑을려고 하지
누가 교회를 탈출 합시다 라고 그런 목사를 뽑겠냐 말이죠
그저 교회 확장을 노리고 장로들과 목사가 계약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허사를 겅영하는 우상숭배인 거죠.
누구를 1순위로 뽑겠냐 말이죠
맞습니다 경제 문제 곧 배고픔 문제를 해결해 줄 자를 뽑을꺼 아니냐 말이죠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이유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실천하는 모든 이유의 1순위가 바로
경제 문제 해결 해 달라는 겁니다.
그 다음은 종교 문제
즉 어딜 가서나 사랑받는자가 되어야지
미움 받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고
그 다음 정치 문제
어딜 가서든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는 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그것이 제사장 나라 다운
선택 받은 자
간택 받은자 아니냐 라는 겁니다.
이 마귀의 세가지 시험은
처음 서두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모든 역사를 뒤덮은
과거 역사도 그랬고
현대에도 그렇고
앞으로의 미래도 이 우상 문제로 다 뒤 덮여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염두하고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십계명 첫 계명 시작부터
인간은 도저히 지킬수 없는 계명을 주신거다 말이죠
이스라엘 전체 역사 조차도 그렇고
지금 현재의 혈통적 육적 이스라엘 보세요
무신론자가 제일 많은 국가입니다.
정작 자기들은 안 믿으면서 전세계에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나님을 수출 하는 나라입니다.
왜? 돈이 되거든요
유대인의 뛰어난 점 곧 독이 되는 점은
바로 돈을 어떻게 믿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자들입니다.
계시록에 괜히 음녀로써 유대인을 언급하는게 아니거든요
제사의 달인들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말이죠
유교 보다 몇천배 강합니다.
명함도 못 내민다 말이죠
주변 나라가 율법을 아무리 따라하고 흉내를 내어도
유대인 근처도 못 간다 말이죠
성경에도 나오잖아요
그게 바리새인입니다.
괜히 마귀의 세가지 시험이 끝나자
마귀가 잠시 물러갔다 라고 했는데
그 뒤에 잠시 물러갔으면 나와야 한다 아입니까
그런데 마귀가 안 나와요
그 마귀를 대변하는 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의 선생
가장 존경받는 멘토가 바로 바리새인이거든요
그들을 대 놓고 깨뜨리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왜 유대인을 마귀가 장악했고
거기서 나온 메시아 운동
요즘으로 치면 하나님 나라 운동
가룟유다의 하나님 형상 회복 운동 등등은
바로 마귀가 장악한 근거를 보여주고 있는 증상물이다는 겁니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세계로 만들고자 하는
떠난다는 탈출 보다는
지금 현실을 수정 보완하는 식이 바로
우상을 찾는
신을 찾는
신앙을 가지고 믿고 행하는 이유이다는 겁니다.
이사야 사칠 팔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개역)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사 47:10, 개역)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사 47:11, 개역)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 우상을 만드는 자는 이러하다 라고 했는데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와 똑같이
이들에게 임하는 재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쫏아오는 이유처럼 말이죠
임금 삼고자 하는 이유는
자기 배를 위함이지
하나님의 일을 위함이 아니다 라는 거죠
즉 인간은 근본을 모른다는 겁니다.
원래 모든 인간은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써 상한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사로 떼울려고 한다 라는 거죠
제사 곧 행함은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 회귀하니까
뭔가 유익이 될테니
지금의 나 보다는 조금 나아 질 것이다 라는 막연함에 기대를 걸거든요
(요 6:15, 개역)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 6:24, 개역)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요 6:25, 개역)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요 6:2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6, 개역)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요 6:7, 개역)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 6:8, 개역)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요 6:9, 개역)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요 6:10,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 쯤 되더라』
(요 6:11, 개역)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요 6:12, 개역)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요 6:13, 개역)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 6:14, 개역)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요 6:15, 개역)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 6:16, 개역)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요 6:17, 개역)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요 6:18, 개역)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요 6:19, 개역)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요 6:20, 개역)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요 6:21, 개역)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22, 개역)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요 6:23, 개역)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요 6:24, 개역)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요 6:25, 개역)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요 6:2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개역)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8, 개역)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 6:29,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인간이 자신의 근본을 모르는 이유는
처음자리를 모르는 이유는
처음 하나님의 형상을 모르는 이유는
처음 하나님의 형상을 모르면서
그 빈공백을 채우고자 온갖 종교적인 아이디어가 다 동원이 되다 보니
우상으로 도배를 하게 되는 겁니다.
교리 플러스 실천 이라는 불교처럼 말이죠.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만나도 임금 삼고자 하지
근본을 모르는 겁니다.
(빌 2:6,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개역)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개역)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이 근본을 알려주셔야만 합니다.
이것이 열 둘의 의미로써
제자들이 큰 파도를 격게 되는 겁니다.
즉 죽음 속에서 만나는
심판 속에서 만나는 인자 이다는 겁니다.
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거든요
보내신 자를 어디서 만납니까?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이 만남의 광장을 특별한 공간과 시간으로
그것을 지키고 행하는 방식이였습니다.
그러나 백날 그런 안식일을 지켜본들
눈이 어두워서 볼 수가 없다 말이죠
안식일을 어기는 자를 어떻게 볼수 있겠냐 말이죠
도리어 안식일 날만 골라서 병고치는 안식일의 주인은
누가 만나는고 하니
안식일을 도저히 지킬수가 없는 부정한 자
소경 손마른 자 등등
죽음 속에 있는 자
파도 속에 있는 자들이 이 안식일의 주인을 만나는 겁니다.
이 단절 곧 선지지와 율법 속에서 만난다 말이죠
죽음 속
심판 속에서 만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불을 던지는 자들이거든요
아 선지지와 율법은 인간의 근본을 보여줍니다.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화로다 화로다 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면서
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심판 받아야 하는 그 부정한 백성 중의 한 명으로써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개역)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심판 속에서 상한심령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라고 우는 자를 보게 된다는 겁니다.
베드로를 우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닭이 대신 울어버림으로써
도장 인을 찍는 겁니다.
제가 거꾸로 봤던 천사들이 우는 자들에게 이마표 하듯이 말이죠
죽어 마땅한 죄인의 자리에서 말이죠
비로소 죽기까지 복종한 하나님의 근본되신 분을
근본을 보게 되더라 말이죠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나요?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말이죠
너가 심판 속에 있어서 대신 매 맞고자
하나님의 저주인 십자가에 죽는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너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해서
화목제물이
원수된 너를 십자가로 하나가 되고자 죽으셔야만 했다 라는
이 상한심령을 보라 라는 겁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우상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이자 동시에 탈출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 같이
자유케 하는 복음이다는 겁니다.
나 에게서 탈출하여서 예수 안에 들어 가는 구원이다는 거죠
예수님이 슈퍼맨 같은 영웅입니까?
아닙니다.
흠모할 모양이 없다 말이죠
두 강도가 예수님을 보고서
뭐 너가 너 자신도 못 구원한다면서
즉 조금 더 나은 형편을 못 추구하면서 도리어 거꾸로 사형집행 당하는
저주를 받으면서 뭐 남을 구원해
남~~~~~~을 구원해
소~~~~는 누가 키워 ~~
근본은 모르는 강도이다 말이죠
아 그런데 한 쪽 강도가 주님께서 근본을 알려주시니까
당신의 나라 곧 사랑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즉 심판의 주 만이 긍휼을 베푸시는 불쌍히 여겨주실자 이다 라는 겁니다.
다윗 자신의 근본을 꺽으신 뼈가 알려줘서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근본을 즉 죄인 중의 괴수 임을 닭이 대신 울어서 알려줬듯이
상한심령의 자리에서 비로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당신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참으로 뻔뻔스럽지요
이것이 두려움아 없는 사랑이거든요
즉 죽기를 두려워서 다들 우상 숭배에서 못 벗어나는데
주님이 곧 인자가 곧 상한 심령이 꺽으신 뼈가 이 죽음을 이기는 사랑으로써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쫏아낸 겁니다.
비록 비유이지만
저는 이 두 강도를 다윗과 사울 왕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유란 비밀이거든요
다들 알아요
다윗은 어떻고 사울왕은 어떻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풀리자 않는 비밀이거든요
알면서 우리는 다윗 보다 사울왕의 길로만 가도록 되어 있으니까 말이죠
두 강도 중에 자기도 못 구원하면서 뭐 남을 구원해 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고백이듯이
아무리 교회 다녀본들 인간의 모든 인간의 최후의 발언은 이거 밖에 없다 말이죠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다윗을 마치 대단한 인물로 보던데
아무리 봐도 날 강도 이거든요
일급 살인자입니다.
고의적으로 우리야 장군을 철저한 계획 속에서 죽였거든요
그거 성공했다고 얼마나 뿌듯하지 않았냐 말이죠
결국 다윗 또한 사울왕의 길로 갔을 뿐이다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그 지옥으로 가는 다윗을
한 쪽 강도가 지옥으로 가는 것을
붙잡아 버린 겁니다.
한 쪽 강도가 잘나서가 아니라
회개 눈물 금식 기도를 해서가 아니라
꺾으신 뼈로
상한심령을 보여줘서
주님 자신의 새 일을 밀어붙여서
바리깡으로 그의 마음을 밀어버리니까
비로소 상한심령이 보였던 겁니다.
그 상한심령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요나의 표적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십자가의 나라에 저를 기억해 달라고 하더라 말이죠
다른 강도는 여전히 죽는 순간 까지도
제사를 따집니다.
우상을 찾아요
뭐 너가 죽는데 남을 구원해? 너나 구원하세요 라고
여전히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지금의 나 보다 더 나은 형편으로써의 기적
임금 삼을 수 있도록 기적을 보여보라 라고 하더라 말이죠
너나 구원하는 기적을 보여주면 내가 믿어주마 라는 식의 제사를 찾아요 제사
그런데 종교라는 깍지가 씌여지만
집단 최면이 걸린양 대단한 인물로 보더라 말이죠
다윗을 그렇게 보고서
마귀가 두 번째 시험에 높은 거룩한 성전에서 떨어져서
천사가 두 손으로 탁 받쳐서 상하지 않는 기적을 베풀었듯이
지금 다른 강도가 그것을 보여달라고 하는 겁니다.
우와 구약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거 아입니까?
소위 인간이 위인이나 영웅을 찾는 이유가 뭡니까
돈이 되거든요 구원이 되어요
나 자신을 괜찮은 인물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요
누가 저런 두 강도로 만들꺼 같으면 말라꼬 위인으로 삼냐 말이죠.
지금의 나 보다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라는 기대치를 가지거든요
그래서 돈에 영웅의 인물화를 그려 넣잖아요
나 보다 나은 인물을 본으로 삼고자 말이죠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말이죠
그런데 지금의 나 보다 더 나은 인물로 만들어 주지 않고
도리어 나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이요 메시아요 하나님이요 예수님이라면
과연 찾고자 믿고자 따르고자 할까요?
(요 6:24, 개역)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요 6:25, 개역)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요 6:26,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얼마나 예수님을 찾았으면
로또 대박을 봤는데 그래 안 따르고 배기겠습니까?
임금 삼고자 하는 이유가 괜히 있었던게 아닙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영웅을 만났거든요
영웅을 만나는게 어디 쉽냐 말이죠
그 임금이 글쎄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로 돌진해 버리면
이 소망이 뭐가 되냐 말이죠
즉 인간은 근본을 모르는 겁니다.
그 근본을 보여주시고자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로 심판으로 냅따 달리시고자
도망을 치시는 겁니다.
도망 치는 임금 이다 말이죠
나는 너의 임금이 되기 싫다 라는 거죠
너가 바라는 임금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아닙니다 내가 바랬던 임금 맞습니다
어허 아니다니깐
어허 맞다니깐 맞습니다 맞고요
나의 구원자 맞습니다
이게 우상입니다.
이 두 세력의 대화에서 우상 개념이 안 나와요
그런데 누가 봐도 우상의 의미가 나옵니다.
누가 무익한 우상을 만드는 자 일까요?
1번 도망치시는 예수님
2번 그 도망 치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서 임금 삼고자 하는 사람들
우리가 왜 근본을 모르냐 하면
왜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인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자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인자를 보고 입 맞추지 아니하면
급속하게 저주가 임하거든요
무슨 수로 나의 죄악을 신체에 담는 인자를 보겠냐 말이죠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 2:1, 개역)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시 2:2, 개역)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 2:3, 개역)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 2:4, 개역)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시 2:5, 개역)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시 2:6, 개역)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 2:7, 개역)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 2:8, 개역)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9, 개역)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2:10, 개역)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시 2:11, 개역)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2:12, 개역)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십자가의 복음은 그냥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
단독적인 따로 국밥이 아니라
반드시 세상을 헛되게 경영하는
우상들
무익한 자들의 활동상을 배경으로 깔고서
그 위에 인자 라는 아들이 등장 하는 겁니다.
제가 짧은 인생을 살아도
소위 어릴적은 멋도 몰랐고
인간의 역사를 인식한 30대부터 40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본들
겨우 20년 동안의 짧은 역사 속에서
그리고 과거의 역사는 직접 체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지식적으로 접해 보고 해본들
모든 인간의 활동은 허사 뿐이였다 라는 겁니다.
앞으로는 달라지겠지?
천만의 말씀
아무런 기대 걸 것이 없어요
오히려 심판이 마땅할 뿐입니다.
남 보다 저 자신이 어서 빨리 심판 받기를 바랄 뿐일 정도로
모든 것이 헛된 경영 밖에 없어요
최근에 정치를 비로소 보게 돠어서
뉴스를 시사를 하나도 본적이 없이 지내다가
요즘들어서 살펴보니
그저 헛된 짓만 무한 반복하는 것 밖에 없더라 말이죠
아무리 천재들이 나와도 안되요
이런 우상의 세계에서 벗어날 길이 있겠냐 말이죠
유일하게 아들에게 입맞추는 길 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 알아보느냐 말이죠
우리의 눈이 어두운 소경인데
어떻게 아들을 알아 보겠냐 말이죠
우리는 근본도 모르는
안식의 주인 조차도 못 알아보는 어두운 소경인데
이렇게 상한 심령을
이들 무익한 우상을 만드는 자들 속에서
그 차이로써 보여주시는 겁니다.
왜 주님께서 에스겔을 인자로 만드시고
새성전을 만드시는지
그 정도로 인간의 세계는
아무런 방향도 없이 그저 자기 멋대로 살 뿐이고
쪼매 제대로 살아 보겠다 라고 해서
신을 찾고 율법을 지켜본들
역시나 자기를 위한 자기 우상숭배를 목적으로
예수님을 임금 삼고자 했듯이
우리는 근본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못 알아 볼 정도로
그 정도로 어두운 눈이라서
아무도 고쳐 달라고
아무도 입맞추어 달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각기 제 길로 갈 뿐인 자인
심판 받아 마땅한 자 이기에
이 원수를 보시고 상한심령이 되셔서
끝까지 섬기시고자
죽기까지 복종하신 이 심판의 주를 보는 것이
어두운 눈에서 눈 뜨게 하시는 인자 이십니다.
이 인자가 아니면 우리는 이 무익한 우상을 만드는 손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허사를 경영하는 이 세상의 구조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겁니다.
아무도 십자가에 달려 죽는 인자를 안 쳐다보는
임금으로 삼지 않는
싫어버리신 바 된
이 인자만이 지옥에서
완악한 마음에서 건져주실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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