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만 나타나는 교회 (마 18,15-20)
(마 18:15, 개역)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6, 개역)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마 18:17, 개역)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8, 개역)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9, 개역)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20, 개역)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5, 새번역)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너의 말을 들으면, 너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또는 '신도'』
(마 18:16, 새번역)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지으려는 것이다. / ㉫신 19:15』
(마 18:17, 새번역) 『그러나 그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 ㉬또는 '신도'』
(마 18:18,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8:19, 새번역)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마 18:20, 새번역)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20절
(마 18:20, 개역)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다 라고 하십니다.
즉 교회란 바로 이 주님의 간섭을 받는 자 이다는 겁니다.
여기에 건물이나 조직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머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몸이기에
이 머리에 간섭을 받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니 이 두 세 사람이라는 그리스도의 몸이
누구를 바라도록 되어 있는가 하면
당연히 머리 되신 예수님이겠지요
그런데 앞의 글 에스겔 18장 율법을 통해서
죽음을 저주 곧 죽는 하나님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제시한다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인 우상을 염두한 것이다 라고 했다 말이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마태복음 18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를 언급하신다 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적인 교회 아닌 자들을
곧 이방인으로 취급해야 하고
세리 곧 매국노 같이 취급해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 18:17, 개역)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왜냐하면 아빙인과 세리는 간섭을 받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거든
자 그럼 누구를 이방인으로 여겨야 할까요?
누구를 세리로 여겨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을 이방인으로 여겨야 합니다.
또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간섭을 전혀 듣지 않는 바리새인을 세리로 여겨야 한다 말이죠
즉 자기가 이방인인줄 모르는 자들
곧 자기가 세리 매국노 인줄 모르는 자들이
바로 교회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는 바로 이 머리 되신 예수님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상대하기 바쁩니다
어떻게 하면 망가진 얼굴을 하신 예수님 보다
아름답고 고운 모양을 서로 과시 하기 바쁜 모습들로만 서로가 키재기 하듯이
예수님의 죽음과는 아무도 안 만날려고 하더라 말이죠
그러니 종말에서만 나타나는 교회는
오로지 예수님의 죽음만 바라보는 자들로써
직접 이 세상에 뛰어드셔서
간섭하시고자 나타나신 겁니다.
교회가 자기 멋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일일이 간섭하시겠다 라고 찾아오셨다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이 세상을 끝장 내시는가를 보여주심으로써
첫 번째 일번타자로써 교회를 다루시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는 이 율법으로 인해 죽고
말씀으로 다시 사는
이 간극 속에서만 태어나는
마지막 때에 등장하는 종말의 단체이다 말이죠
시간으로써의 마지막 때도 아니요
공간으로써의 삼일의 간극인 공백이 아니라
한 인물의 죽음
바로 예수 안 이라는 예수님의 죽음 속에서만 태어나는 교회 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마치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저는 안 됩니다 라고 하는 자들이 교회다 말이죠
남들이 보기에는 식인종인가 왜 살과 피를 달라고 하지 라고 할 겁니다.
그 정도로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였으면 소돔과 고모라 가 벌써 되었기에
오로지 이 십자가의 죽음과 십자가의 피 용서만을 바라는 자가 교회 이다는 거죠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지시를 매일 매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간(마지막 때 1999년? 안식일 토요일? 주일 일요일?) 과 공간(교회건물) 과는 상관 없이
이 분과의 사귐이, 안식일의 주인과의 사귐이
종말의 인물을 언급하기에 급급하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매일 매일의 사귐이자 매일 매일의 간섭인 겁니다.
그러니 나의 죽음을 미리 앞당기는 것도 (죽음 축에도 못 드는)
예수님의 죽음을 앞당기는 종말(인물)과는 족히 비교도 안 되는 겁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의 죽음이냐? 다시 사심이라는 부활은 왜 안되느냐
그것은 우상을 의식해서입니다.
나의 삶을 평탄케 보장해주는 예수는 우상이거든요
그런 예수는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가 아닌 거죠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죽는 하나님
저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이죠
그러니 종말이란 곧 심판의 날을 두고 말합니다
누가 심판 받아야 할 자 입니까
나 아닙니까 우리 이다 말이죠
어서 어서 그 분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심판 받는 그 날을
바라고 고대하고 기대하는 겁니다.
그러니 곧 나의 심판을 보는 겁니다.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보는 겁니다.
내가 저주 받아야 함을
내가 죽어야 함을 보는
이것이 종말이다 말이죠
그 종말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겁니다.
이 세상을 끝장낼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구체적인 나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부정한 백성인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한 사람으로써의 나는
천부당 만부당 망해야 하는 구나 라고
이스라엘을 끝장내시는데 있어서
그 속에 있는 나 이사야는 당연히 안 망하게 되겠냐 말이죠
이런 주님의 죽음과
곧 심판 주와 만나고 싶어 하는 자가 교회이다 말이죠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이런 예수님에 미쳐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교회 속에서도 내가 원인이 되고
내가 결과가 되는 것을 추구하더라 말이죠
아니 그런 인간들끼리 모인 곳이 교회가 되어버렸으니
우상숭배 집단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우상을 깨뜨려 주는 자가 없어요
즉 주님의 죽음을 구하는 자가 없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무슨 놈의 교회냐 말이죠
오히려 교회이다 라고 우기니까 우상을 더더욱 세우게 되더라 말이죠
(마 18:15, 개역)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과연 누가 형제일까요?
정작 주님은 구원을 막고자
고침을 받지 못하도록
(사 6:9, 개역)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마 13:14, 개역)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막 4:12, 개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행 28:26, 개역)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사 6:10, 개역)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마 13:15,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행 28:27, 개역)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막 4:12, 개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막 4:12, 새번역)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 ㉡사 6:9; 10』
(막 4:12, 쉬운) 『이는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 6:10, 쉬운) 『너는 이 백성을 고집 센 백성으로 만들어라. 그들의 귀를 닫고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듣고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라. 혹시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마음에 깨달음이 생겨, 내게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걱정된다.”』
오히려 고침을 받을까봐 걱정된다 라고
용서 못 받게 하시겠다 라고 합니다
그러니 죄인으로써의 형제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다들 잘난 인간들만 있는데 어떻게 죄인 하나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주 마태복음처럼 잃어버린 양 하나를 만날 수 있겠냐 말이죠
(눅 15:7,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1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즉 회개 할 줄 아는 자를 두고 말하는게 아니라
그런 회개의 달인들 말고 (회개 하는 자기가 원인이고 자기가 결과인 자가 아닌)
(사 4:4, 개역)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주님이 회개의 영을 부으신 자 곧
심판 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
곧 종말의 영을 부으심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구원 얻습니까 라고 다가오는 그런 구원을 다 막으시고
직접 피 흘리심으로써 죄를 심판의 영으로 소멸하는 영으로써 씻으심으로써 구원이 되는 겁니다.
즉 오로지 성령 곧 십자가의 영이 아니면
자기 스스로 죄에서 돌이킬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회개의 달인이여도
회개의 영이 아니면 회개 할 수가 없다 라는 거죠
안그러면 구원받고자 시도했던 모든 행함 행위 노력들
또는 스스로 죄에서 돌이키고자 했던 모든 노력들을
스스로 포기할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죠
더더욱 회개의 달인이 되어서 구원받고자 할꺼다 말이죠
그런 자기가 원인이 되고 자기가 결과가 되는
이 우상을
주님은 깨뜨리시고자
오로지 소멸하는 영 심판의 영인
성령으로만 거듭나게 하신다 말이죠
즉 죽이신다 말이죠
그 죽은자만이
회개하는 자 이니까 말이죠
소멸하는 영에
심판의 영에 의해 말이죠
바로 그런 형제를 교회라고 하고
아니면 교회에서 짤라내어야 하는 겁니다.
진정한 교회는 지금이 곧 심판의 때인 종말이요
이 종말 속에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기 위한 모든 행함들은 냄새나는 똥 배설물 일 뿐이고
오로지 주님의 피 흘리심 밖에 없음을 알고
예수님만 구하는 자가 교회입니다.
이런 종말의 의식이 없는 자는
곧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이미 받은 자 이기에
교회가 아니기에
교회에서 쫓아내고
오로지 주를 사랑하는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는
바로 그 창녀 마리아처럼
비싼 향유를 발에 붓듯이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 장사 치르는
이 십자가의 죽음을
이 피 용서만을 바라보는 자만이
형제로써 교회로써
엉뚱하게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게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종말의 판 위에서 찾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머리에 간섭을 받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이 신부 만드시고자
주님은 우리를 늘 불 태우시는 겁니다.
(에스겔서처럼 물 없는 곳 양식 없는곳 원망할 만한 곳으로 자꾸 몰아가시는.
그 황무지에서 주님을 만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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