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가 아합왕이 아닌 그의 아들 요람 왕을 죽였습니다 이미 벌써 죽었는데,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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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1 복음(종말;원인 없는 결과)에 사로잡힌 자 사도바울(피 발린 문제아 탕자) (롬 1, 1- 7)
(고후 4:10, 개역)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개역)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마태복음 2018 2021. 12. 11. 13:32
18-155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로마서 1, 1- 7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찬송가 214장 변챦는 주님의 사랑과〉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롬 1:1,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롬 1:2, 새번역)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롬 1:3, 새번역)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롬 1:4, 새번역)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그, '거룩함의 영' ㉡또는 '확인되신, 지정되신, 지명되신'
(롬 1:5, 새번역)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롬 1:6, 새번역)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 들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롬 1:7, 새번역) 나는 로마에 있는 모든 신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어! 신약에서도 소제목을 여전히 달아놓았군요
아 맞다 새번역은 소제목을 안 달았어 그렇게 봤군요
(롬 1:1, 쉬운) <인사말> 나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특별히 선택되었습니다.
(롬 1:8, 쉬운) <로마 방문을 간절히 원하는 바울>
(롬 1:16, 쉬운) <복음의 능력>
(롬 1:18, 쉬운)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롬 1:1, 현대어) [인사] 로마에 사시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께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이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전도자가 되었고, 복음을 전하도록 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입니다.
(롬 1:8, 현대어) [감사기도]
(롬 1:16, 현대어) [믿음을 통한 구원]
(롬 1:18, 현대어) [인간의 타락한 모습]
개역개정한글
롬1:1 <인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8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롬1:18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소제목을 공통되게 인사말로 표현했군요
저는 로마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계속 생각해 오다가
에스겔과 마태복음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보니
종말의 시작이다 또는 원인 없는 결과의 무한반복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의 곧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이 공백의 반복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시작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이 복음이
이제 에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입장에서
성령으로 시작했던 사도행전처럼 곧 성령행전이지요
이제 종말의 영을 받은 사도바울이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어떻게 이 사도바울을 죽여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심으로써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시는지
복음을 나타내시는지
아 이래서 사도바울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구나 라고
성도의 죽음 실패 멸망을 통해서 복음을 나타내심을 증거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로마서가 아닌가
마치 요한복음이 영과 육의 대립처럼
로마서는 육의 시작인가? 아니면 영 곧 복음의 시작이냐 라는 대립처럼 느껴져서
율법이냐 은혜냐 라는 대립으로써 복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출발한 믿음은 이 은혜로 시작하기 때문에
왜 율법이 아닌지를 한 세트로써 대립시켜 증거합니다
그러니 역사 즉 시공간과 육이 어떻게 종말이라는 끝에서 쳐들어오는 은혜에게
복음에게 어떻게 무너져야만 하는 지를
이것이 평화 즉 전쟁종식 아닙니까
아 맞다 로마서 시작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서 한달동안 고민한 것이
저야 뭐 신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니까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다 보니
에스겔과 이사야를 하면서 로마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게 뭔고 하니 과연 구원 그 이후 라는 말이 되는가 라는 점을 갑자기 생각나게 되어서
이것을 로마서와 연관해서 봤다 말이죠
구원 그 이후 라는 그 이후 자체가 시간 아닙니까
역시나 육은 이 시간을 끌어온다 말이죠
구원 전과 구원 후 로 나눈 시선이지요
자 이것이 인간 자기 시선의 기준 아니겠습니까
교리가 그래서 문제입니다 교리란 실천 플러스 교리 이거든요
인간의 숙제를 강요해요
이것이 죽은 자의 하나님 입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셔서
즉 오늘 본문에서도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부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을 자꾸 인간 쪽으로 끌어당가지 말자 말이죠
구원을 자꾸 인간 쪽으로 끌어당기지 말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숙제로써 또 봐야할 판국이다 말이죠
아니 30살 쯤에 복음을 시작해서 3년 지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끝나버렸다면 여기서도 3년 이네요 절대심판이자 3년 동안 발가벗은 모습으로써 거울로 비춰주셨다 말이죠 이것이 종말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제 종말 끝 ~~~~~~~~~ 이냐 말이죠
아니지요 이제 더 확산이 되어가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우와 이제 특정 장소 예루살렘을 초월해서 우주까지 확장된 종말이 펼쳐지게 되니
종말의 무한반복이 되는거 아니냐 말이죠
구원 그 이후가 아니라
구원의 계속 됨 멈추지 않음이 아니냐 말이죠
종말의 무한반복
원인 없는 결과의 무한반복
정답이 찾아나서시는 문제아 잃어버린자 찾기 탕자찾기 죄인찾기
왜? 십자가의 피 발라 버리기
빰 바바밤 빰 발라버려 즉 은혜의 실제확장의 라이브 방송이다 말이죠
실시간 스트림 생방송이다 말이죠
뭐가? 로마서가 말이죠
어떻게 사도바울이라는 이 인물을 어떻게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의 거룩을 입혀서
복음을 증거하는가?
어떻게 이 하나님의 원수가
원수도 사랑하는 율법의 완성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었는가 라고 말이죠
마치 창세기 38장 이였던가요?
갑자기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이야기가 갑자기 난데없이 낑겨있습니다
앞뒤 안 맞게 말이죠 갑자기 슥
사이 간극처럼 얼룩처럼 공백이 생긴것처럼
둘 사이에 빵구멍이 뚫힌 것처럼 말이죠
누가! 구원의 뿔로 빵구멍을 낸것처럼 말이죠
며느리 다말이라는 종말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시아버지 유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종말의 단체가 되기 위해서
며느리 다말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이죠
이 부정적인 부조리 스캔들이 바로 십자가라는 종말성이다 말이죠
마침 또 찾은 것이
우리가 에스겔 시작할 때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말이죠
2019.07.12 계시의 출발과 사로잡힌 자 (인자) (겔 1, 1- 3)
구원 그 이후 라는 시간은 역사는 공간은 이제 없어요 날라가 버렸어요 공중분해 말이죠
이제 사로잡힌자만 있을 뿐이다 말이죠
누구의 운명이 내 속에 들어와 버렸다 라는 거죠
결정체로써 동결되어버렸다 말이죠 확정
멋들어진? 아니지요 죽이시기로 작정된 모욕적인 구원 곧 종말 곧 요나의 표적으로써 말이죠
싫어버린 바 된 다들 귀히 여기지 않는 고개를 돌리는 버림받은 모습
세상의 찌끄레기로 말이죠
(고전 4:9, 개역)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마침 중간에 낑긴 이라는 의미를 찾다가
철학자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검색해 찾은 것이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발가벗은 생명체
2000년 이후로는 이제 본격적인 난민시대가 되었다 말이죠
그러나 철학자가 말하는 발가벗은 예외상태는 아무리 성경을 끌어와서 개념을 붙여도
안 맞아요
끌어오지 말라 말이죠
우리가 에스겔 새성전의 치수를 아무리 숫자로 표기가 되었다고 해도
그 의미를 내 쪽으로 끌어와 본들
또 의문의 반복 뿐인 내 숙제만을 늘려갈 뿐이다 말이죠
주님의 숙제로써 오로지 천사들만이 새성전을 정확하게 짓는데
자꾸 내 쪽으로 끌어오면 또 함량미달이 된다 말이죠
발가벗은 생명이라는 난민을 수용하니 거부하니 해본들
정작 발가벗은 생명으로부터 배제당하는
배제된 난민으로부터 배제 당하는 이 종말성은
아무리 철학자들이 저런 의미를 도출해 본들 다 거짓이 되는
또 함량미달인 666 사람의 수 일 뿐입니다
총명한 자는 즉 똑똑하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을 입은 자는
그런 사람의 수에 속지 말아라 라고 하신다 말이죠
마치 남을 7번 용서 했습니다 라는 말에 속지 말아라 말이죠
난민을 7번 수용했습니다
도리어 7에 70번이나 배제 당하고 난민으로 쫓겨나는 발가벗은 나를
예수님의 피로써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목숨을 내어주심으로써
원수가 목 마르거든 마실 것 입을 것 먹을 것을 받아 먹어라 라는 겁니다
내가 떠돌이 난민이다 라는 거죠
정답이 찾아낸 문제아 골칫거리 말썽쟁이 이다 라는 겁니다
인자의 몸에 담겨져야만 하는 사로잡힌자 이다는 거죠
그런 자로써 사도바울이 이제 종말을 복음을
사도바울에게서 시작하시는 겁니다
그럼 사도바울은 점점점 후패가 되고
패하게 되고
사도바울 속에 있는 속사람 예수님은 곧 복음은 곧 종말은
점점점 날로 날로 새로워 지는
그 후패하는 내용과
그 날로 새로워 지는 내용을
이제 사도바울은 기록해야만 하는 겁니다
집이 낡아서 공사를 하는데
아예 다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공사도 있지만
비용이 없어서 내부공사를 통해서 점점점 새로지어가는 그런 공사를
너튜브에서 찾아서 보면
썩은 벽들과 낡은 지붕을 어떻게 밀어내고
새건물을 어떻게 확장시켜가는지를 보여준다 말이죠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나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새공사를 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나를 어떻게 주님이 이기시는지를 말이죠 넉넉히 승리하시고
어떻게 나는 매일 매일 찢겨지고 폭파당하고 해체가 되는지를 본인 당사자가
해체가 되면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기록하는 식입니다
네 맞아요 에스겔처럼 묵시의 실체상황 종말의 실제라이브 방송이다 말이죠
이스라엘을 해체하고 있잖아요
왜? 새성전이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 해체를 누리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증상물은 이미 숙제를 누가 외부에서 다 완료했기에 이것을 믿음이라고 했지요
믿음이란 외부의 숙제라고
다 완료했기에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가 없는
누리기 이다는 겁니다 누리기
즐기기
이것을 존재가 아닌 당위 라고 했지요 기능
존재가 존재 하기도 전에 있었던 당위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을 나타내는 증상
감기가 걸리면 눈에 안 보이는 감기가 말이죠
어 그런데 증상물로써 콧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말이죠
저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슴에 흰수건을 달았다 말이죠
3월달 입학식때 말이죠 여전히 추운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기에
7, 8살 코 찔찔이들이 늘 콧물을 주루룩 마르지 않을 정도로 늘 흘리니까 말이죠
그 증상이 나타나니까 막을 방법이 없어요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 사나이 그 콧물을 즐길수 밖에요
누리기 뿐입니다
내 숙제가 하나도 없이 주님의 숙제
종말의 영의 숙제
종말의 마음인 예수님의 마음을 누리기 할 뿐이예요
우리의 마음은 곧 육이지요 이 새 마음에 의해서 밀려나는 과정을 누릴 뿐입니다
밀려서 밀려서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듯이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아 내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자기 의로움을 쌓은 것을 밀어버리시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도 밀어내시고
알고보니 예수님의 의로움에 비해 보니 똥 덩 어 리 강마에 냄새나기 짝이 없는 ~~~~~
이 썩은 내를 하나 하나씩 밀어내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우리는 도리어 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썩은 내로써 우리의 시커먼 죄악을 불태워서
흠향하시더라 말이죠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태운 그 냄새 그 역겨운 살타는 냄새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향기 라고 하시더라 말이죠
야야 사도바울아 너에게서 탄내 난다 뭘 태웠노
아 내게서 그리스도의 피 냄새가 십자가의 흔적으로써 새겨지듯
몸에 평생을 베여버렸단다 라고 그것을 자랑해요 글쎄
다들 그 그리스도의 향기를 역겨워 하는데
사도바울은 도리어 자랑하고 다니는 사로잡힌자로 사도바울을 만들어버렸다
사도로 말이죠
그것이 영광이다 라고
권세와 나라와 영광이 입혀졌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약할 때 강함이라는 약함이 입혀졌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운명이 덮쳐졌다 라고 말이죠
이것을 영광이라고
권세라고 누가 거꾸로 보겠냐 말이죠
너무 너무 약하게 되어버렸는데 말이죠
저런 철학자들이 말하는 호모 사케르
무국적자
서류난민
서류 또는 신분증이 없는 Sans Papiers 상파피에 (한국식 표현은 불법체류자)
발가벗은 생명
이라고 규정된 그런 발가벗겨진 자들로부터 더더더 발가벗겨진
절대로 때려죽어도 자기들의 신 종교 포기하지 않잖아요
그게 무슨 발가벗겨졌냐 말이죠
나의 신은 나를 버렸습니다 라고 나와야지
역시나 다른 나라에 난민으로 가서 또 테러하는데 그게 무슨 발가벗겨졌냐 말이죠
자기가 믿는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발가벗겨 져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 예수님 밖에 없는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지나개나 다 발가벗겨졌다고 자기 쪽으로 끌어와요
그것이 우리가 에스겔 몇장이였죠?
2021.11.13 내가 잠간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겔 11,14-18)
에스겔 11장입니다
예루살렘 거주민과 포로로 잡혀가는 포로민
난민은 아니지만 역시나 난민 같은 포로민 바벨론 포로민은
언젠가는 주님이 회개하는 나를 돌봐줘서 보상을 해주듯이
예루살렘으로 돌와오도록 해주실테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야겠다 라고 나오지만
이스라엘 해체라는 문제아가 실패가 멸망이
이미 하늘에 새이스라엘이 다 이루어졌기에
새성전이 다 이루어 졌기에 나타난 증상인데
이런 주님의 언약과
안 맞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이스라엘 입니까
이스라엘은 원래 처음부터 없었는데
원래 잃어버릴 것이 없는 자로써 세워졌는데
자기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나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또 기대하고 또 희망을 가지더라 말이죠
이것이 사랑이 없기에 또 울리는 꽹과리
또 의문의 반복이다 말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자기 의를 또 쌓아요 글쎄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내더라 말이죠 율법을 자꾸 지켜요 글쎄
(롬 10:1, 개역)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롬 10:2, 개역)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롬 10:3, 개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4, 개역)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골 2:14, 개역)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개역)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개역)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개역)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어딜 주님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고자 하는데 감히 속일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또 사기치는 의문의 반복인 율법 지킨 몸을 형성하냐 말이죠 육을 또 세워요
그리스도의 몸이 있는데 말이죠
마치 불 타는 성전을 또 지어요 글쎄 교회를 말이죠
불 타지 않는 새성전 걸어다니는 새성전인 예수님이 있는데
그 예수님의 몸으로써 신부된 교회
곧 성령의 전인 우리가 있는데
우리는 돈 안되니까 건물성전 짓기에 집착한다 말이죠
그런 성전은 마치 46년 동안 짓는 의문의 반복일 뿐
삼일 만에 짓는 성전 앞에서 무너져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체를 그런 46년 동안 짓는 의문일 뿐이다 말이죠
남을 7번 용서하고
난민 7명 수용하는 것이 다 거짓이다는 겁니다
지젝은 난민을 수영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둘 모두다 나쁜 짓이다 라고
어쭈 좀 다르게 주장하지만
역시나 답은 없다 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말이죠
우리는 정답이 있기 때문에 문제아 진정한 문제아로써 증상물로 나타나는 겁니다
내 숙제로 탕자가 되는게 아니라 주님의 숙제로써
난민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자로써 말이죠
예루살렘 거주민과 다르고 바벨론으로 포로잡혀간 포로민들이
어쭈 우상을 믿는 바벨론으로부터 공격받을 줄 알았는데
어라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그들과 잘 썩이는 겁니다
왜 이렇게 친근감이 있는고 했더니
예루살렘에서 우상섬겼듯이 하나님과 우상을 썩어서
시온산에 산당으로 도배했잖아요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그림을 그리고 우상숭배했잖아요
역시나 바벨론도 마찬가지였다 말이죠
도리어 바벨론 포로민인 된 이스라엘로부터
난민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자가 누굽니까
에스겔 인자 아닙니까
마치 예수님이 유대인으로부터 당하는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종말을 그대로 보여주곻 있어요 그 당시 유대인이 로마 식민지로써 나라를 빼앗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빼앗긴 자들로부터
유대인으로부터 예수님이 버림받는 ~~~~~~~~
에스겔이 미리 앞당겨 보여줬다면
사도바울은 그럼 뻔하죠
네네 바로 그겁니다
역시나 사도바울이 왜 믿는자들로부터 버림받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부터 거부당하는지를
로마서 내용을 보면 결국은 버림받을만 하네 라고
왜?
율법 지키는 자들과 안 맞거든요
완전히 극과 극인 상극
정반대 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사도바울 본인이 율법의 달인이였던
저 육의 세계의 최고 최전방 행동대장 아니였냐 말이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과거도 예수님의 운명이 에스겔 인자에게 나타났듯
점점점 확장되면서
이스라엘은 해체가 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미래도 사도바울에게 덮쳐져서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식으로
모든 육체를 해체 시키는 식으로 복음이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그 당사자 사도바울이 그 1번 타자로써
의문의 증서 율법의 마침이 덮쳐져서 해페가 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새로 지어짐이 되는 ~~~~~
이거 제가 안다고 해서 머리로 지식으로 말이죠
나의 육은 절대로 수용 못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부하지요
그러니까 사로잡힌 자로써 그냥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불도져 앞에서 깔려 주름이 펴지는 평탄케 되는
이 평화만이 이미 다 완료되었기에 그 증상물로써
거부할 수가 없는 당위로써 그저 즐길 뿐입니다
사도바울 보세요 완전 박살이 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웃으면서 기뻐하면서
하나도 안 기쁜 나쁜소식을 기쁜소식이라고 그 다음 니 차례이다 라고
종말의 멈춤이 없다 라고
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너도 깔려 납작이가 되라 라고 한다 말이죠
되라 라고 이것이 명령어로 들려서 지키는 개념으로 받아 들어야 합니까
아니지요 존재는 어떻게 해서든 지킬려고 하겠지만
존재 이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당위로써 그저 나타날 뿐입니다
(당위는 오히려 거부하고 싶어도 못할 정도로 밀려 닥쳐옴 입니다)
아이가 자라면 몸에 털이 나고 여자아이는 가슴이 올라온다 말이죠
누가 이것을 지키기를 해서 가슴이 나옵니까
저절로 나오지 (지키기와 무관하게)
때가 되니까 말이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고
이 어린아이 라는 의미가 지키는 행함의 문제에서 떠난 의미이듯이)
남자아이는 이제 목소리가 변하고 근육이 발달하게 되니까
엄마가 이길수 없을 정도로 힘에 부치게 된다 말이죠
나는 싫어 다시 어린아이 때로 돌아갈래 해도 소용이 없구요
나는 지켜서 더 어른이 될 거야 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니 아예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곧 죽는 자연사 하는 사람이 될 거야 라고 해서
아무리 지켜본들 지키기를 해 본들 안되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서 찢어지는 시공간 역사인데
아무리 역사를 내 쪽으로 끌어온들
이 말은 아무리 실천하고
지키기 라는 내 숙제로 해 본들
다 소용없는 육이다 라는 겁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기 위해서
누락 되어야 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공간 이라는 역사가
육이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을 즐기는 증상
누리는
정답이 떳기에 문제아로써 누린다 말이죠
불가항력적 은혜 ~~~~~~~~~ 저항이 안되요 안돼 ~~~~~~
웃끼게도 자기들이 불가항력적 은혜 라고 해 놓고서는 교리로 만들어요
교리 로 형성 자체가 안된다 라고 말해놓은 셈인데 교리로 지키겠데요 글쎄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 말로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면 또 몰라
알맹이는 역시나 쏙 빼놓고 이런 교리로 또 결국은 돈 빼먹을려는 ㅋㅋㅋ
뭐 외부의 공격인 이단 때문에 어쩔수 없다 라고 핑계거리로 삼지만
결국 그게 이단인 어쩔수 없는 나 라는 이단을 치고자
나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라고 나오면 되거든요
알고보면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누가 가장 거부합니까
오늘날 교회요 우리 자신 아닙니까
유대인도 그렇게 사단의 회로 빠졌고
천주교에서 빠져나온 이 개신교
이 캘빈주의도 마찬가지 아니냐 말이죠
성경적인 바른 성경적인 교리 뒤에 숨는다고 해서
주님이 속아 넘어가겠냐 말이죠
그래 따지면 진짜 법궤 뒤에 숨었던 홉니와 비느하스 또한 죽임 당하면 안되잖아요
심지어 예수님 이라는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은 더더욱 그렇구요
내 구원을 위해 내 쪽으로 끌어올 말씀이 아예 단 하나도 없어요
그 버릇에 취한 자였던 자가 사도바울이였거든요
그 교리실천의 달인이 이제야 비로소 복음을 외칩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도리어 종말의 시작이였다는 거죠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내가 붙잡으면 며칠 못 가서 끝나지만
십자가가 나를 튼튼히 붙잡아 버리니까 때려죽어도 끝나지가 않는 겁니다
4.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
머리에 면류관 쓰고서 주앞에 찬양할 때까지
내가 이기면 내일 또 언제 질지 모르지만
이미 넉넉한 승리가 나를 붙잡고 가면
내가 찬양하는게 아니라
찬양이 나를 다루어서 스피커로 전류를 흘려버리니 소리가 안 나오고는 못 배기는
아무리 벙어리요 음치 박치 라도 소용이 없어요
지금 바울이 딱 그 짝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 예수님의 복음을 외친다?
말이 되냐 말이죠
바울 너가 핍박하는 예수 그것도 나사렛 이단 예수를
정통 중에 정통
스카이 중에 스카이
과연 바울의 숙제로써 감당하실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만 어머니 감당 하실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바울 학생이나? 바울을 키운 모교 가마리엘 문하나
감당 못 합니다
은혜만이 감당합니다
박은혜 김은혜 최은혜 이은혜 등등 말고
예수님의 죽음만이 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사도바울 감당 하시는 겁니다
바울 숙제 단 하나도 없어요
예수 쓰앵님 만이 감당 너끈히 하셨음을 그 증상물로써 바울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흔히 목사들이 무식한 베드로 보다 (일반인 어부 베드로와 학자 바울을 비교하니 웃끼죠, 다른 것을 노린거다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과 바리새인을 비교하듯 결국 눈뜬 소경인 거죠)똑똑한 바울을 좋아라 하는데
그런 목사들을 보면 베드로 보다 더 모잘라요 총명한 성령을 받은 자 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겁니다
베드로도 감당 못하면서
베드로를 얼마나 싫어라 하는지 원 ~~~~~~~ 티를 너무 너무 내더라 말이죠
결국은 사기꾼으로 들통내니까 출교를 시키던데
이단 잡는 바울이 되겠다 라고 ㅋㅋㅋ
다락방 이단 까지는 좋았는데
신천지 앞에서는 다들 같은 편 되어버리니까
돈 안 쓰는 이단은 충분히 잡지만 돈 많이 뿌리는 이단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더라 말이죠
자기가 이단 인줄 모르니까 자꾸 무슨 무슨 운동을 하는 겁니다
이단 방지 대책 운동 본부 따위처럼 말이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처럼 모든 종교라는 마약에 다 있는 짓을 해요 글쎄
차라리 이단 중의 이단이 되어라 말이죠
나사렛 이단 예수의 운명이 미리 덮쳐진 인자 에스겔과 사도바울처럼 말이죠
마치 과거의 에스겔이 다시 활동하듯이
미래의 사도바울로써 활동하는 겁니다
인자라는 그리스도의 몸은 멈추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육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
곧 예수 안이다 말이죠 이런 시선이 바로 새성전의 시선입니다
걸어다니는 참성전 되신 예수님의 시선 말이죠
바로 이런 시선이 약속의 사고방식이고
반대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 무조건 비언약적 사고방식인 육이 되는 겁니다
반드시 자기 자랑인 육의 자랑으로 귀결이 되니까 말이죠
복음은 아무리 나를 자랑하고 파도
복음이 나를 지워버리고 삭제시켜 버리는 겁니다
오로지 예수님만 십자가의 피 용서인 사랑만 자랑하도록 하니까 말이죠
안 그러면 울리는 꽹과리 소음 밖에 안되니 말이죠
인간의 몸은 이미 죽은 자의 몸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의 몸에서 출발하는 믿음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일 뿐입니다
이것을 산 자의 하나님을 유일하게 증거하신 유일한 참이스라엘이신 예수님이
심지어 사도바울 조차도 가짜이스라엘였음을 알려주시지
가짜가 너 가짜야 라고 알려주지를 않습니다
유일하게 진짜 이스라엘 참 이스라엘 되신 분 오직 예수님 만이 알려주심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이 복음 덕분에 내가 가짜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이 없다 라고
거룩이 없다 라고
율법이 가입이 된 이유가 너 거룩 없단다
거룩이 없으면 너는 차단되고 배제 되어야 한단다를 비로소 알려 주심으로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이 사망의 몸
죽은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자 이렇게 자복케 만드시고자 알려주신 분이 바로
내 손에 죽은 예수님이다 라고 비로소 불쌍히 여겨달라고 상한심령으로써
성령으로써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써 성령을 구하는 겁니다
기도 조차도 엉터리로 하기 때문에
성령의 놀라운 탄식인
주님의 기도를 곧 종말을 곧 복음이 나를 다루어 달라고
기도가 나를 다루어 달라고 그것도 종말의 기도
성령의 기도가 나를 다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령의 기도를 말이죠
기도를 할 줄 모르니까
종말의 기도가 뭔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내 대신 기도하시는 분의 기도를 구하는 기도를 말이죠
이중배제 이중누락 이중소외인 거죠
회개의 달인이 되는 결국은 나에게로 귀결이 되는 회개를 할게 아니라
회개 조차도 할 줄 모르는 우는 자로써의 회개
회개 할 줄 모릅니다 내 회개는 차단 당하는 회개를
다윗이 비로소 종말의 인자의 기도 꺽으신 뼈의 기도
다윗이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꺽으신 뼈인 아이가 이름 없는 아이 곧 솔로몬의 형이
다윗을 바로 그런 4종 세트로 자기 죄악을 스스로 가리고자
아이를 죽게 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그 기도를 누락 시키는 기도를
꺽으신 뼈가 기도하는 이중배제 이중차단 이중단절로써
반대를 위한 반대로서의 기도로써
막살기를 지키는 달인이 아닌 막살기를 거부하는 막사는 종말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대신 막 죽어 대신 심판받는 이 종말의 복음을
나 사도바울 속에서 시작 하셨다 라고
이제 부서지는
입술이 찢어지는 그 기쁜소식만 누릴 뿐이다 라고
복음을 개시 하는 겁니다
나 사도바울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당해서 기쁘다 라고 말이죠
육은 정녕 죽으리라를 보여주는 몸이고
몸과 영은 정녕 다시 살리라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몸 곧 예수 안을 보여주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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