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3 어서와~ 스토커(복음에 빚진자)는 처음이지 (롬 1,13-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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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3 어서와~ 복음에 빚진자는 처음이지? (롬 1,13-16)


너희를 견고(흔들릴 필요 없는 미쁘신)케 하는 신령한 은사 (롬 1, 8-12)
로마서 2022 2022. 1. 23. 12:52
22-002 너희를 견고(흔들릴 필요가 없는 미쁘신)케 하는 신령한 은사 (롬 1, 8-12)

〈로마서 1,13-16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찬송가 0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013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송가 0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1.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와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2. 내 몸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간 나와 항상 같이하여 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로 즉시 물리치사 날 지키시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 보시니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3. 내 맘을 다하여서 주님을 따르면 길이 길이 나를 사랑하리니
   물 불이 두렵쟎고 창검이 겁없네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 누리고 나 친히 주를 뵙기 원하네
   주는 저 산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아멘


〈로마서 1,13-16 개역한글, 신약성경 239쪽〉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사도행전 2,16-21 개역한글, 신약성경 189쪽〉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찬송가 013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1.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2. 땅과 하늘 만물들이 주의 솜씨 빛내고 
   별과 천사 노래 소리 끊임없이 드높아 
   물과 숲과 산과 골짝 들판이나 바다나 
   모든 만물 주의 사랑 기뻐 찬양 하여라.

3. 우리 주는 사랑이요 빛과 진리이시니 
   삶이 기쁜 샘이 되어 바다처럼 넘치네 
   아버지의 사랑안에 우리 모두 형제니 
   서로서로 사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4. 새벽별의 노래따라 힘찬 찬송 부르니 
   주의 사랑 줄이 되어 한 맘 되게 하시네 
   노래하며 행진하여 싸움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높이 불러 주께 영광 돌리세. 아멘


(롬 1:13,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가려고 여러 번 마음을 먹었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혀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열매를 거둔 것과 같이,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것을 좀 거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 ㉣그, '형제들'
(롬 1:14, 새번역) 나는 그리스 사람에게나 미개한 사람에게나,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나, 다 빚을 진 사람입니다.
(롬 1:15, 새번역)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소원은,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롬 1:16, 새번역)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모든 이방 사람을 대표로 지칭하는 명칭임


오늘 본문 내용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왜 제목을 저렇게 했냐 라고 하실수 있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본문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제목을 지어봤습니다

TV 프로그램의 제목인데
원래 제목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라고
한국이라는 국가가 제목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헬라인 야만 그리고 지혜있는 자 어리석은 자, 다른 이방인, 로마
마지막으로 유대인이
언급되는 인물로써 등장 합니다
이것을 다 통들어서 사도바울은 형제들아 라고 하고 있다 말이죠

자 이렇게 바울이 언급하는 이유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오늘날에서는 이런 사고방식이 용납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무슨 소리 할려고 그러냐 라고 하시겠지만

마침 바로 최근에 동계올림픽 경기 중에
중국이 반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편파판정을 해서
한국이 받아야 할 금을 중국에게 빼앗겼다 라고
이것이 대대적으로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말이죠

여기에 중국인
한국인 이라는 일종의 경계선이 그어지고
경계선이 그어졌다 라는 것은 중국인은 중국인 대로의 자기 영역이 있고
한국인은 한국인 대로의 자기 영역이 있다 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버렸다 말이죠

자 이렇게 헬라인은 헬라인 대로 자기 영역이 있고 (문명인)
야만 곧 오랑캐는 오랑캐 대로 자기 영역이 있다 라는 겁니다 (비문명인)

즉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기 영역이 있어서
남의 영역과 구분해서
문화면 문화.
땅 토지면 토지 등등으로 선을 그어서
영역을 구분해서 살아간다 라는 거죠
(바리새인 유대인 구역,
유대인이 삥 둘러가는 사마리아 구역.
이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삭제 시키는 예수님의 천국침노 침략 경계선 삭제로 평준화 통일
중간에 막힌 담 헐기)

(엡 2:14, 개역)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1, 개역)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개역)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3, 개역)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4, 개역)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5, 개역)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6, 개역)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7, 개역)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개역)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9, 개역)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20, 개역)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개역)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개역)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런데 여기에 뜨인돌처럼 졸지에 복음에 빚진자가 졸지에 생겨버려서
즉 지난 시간에 말한 것처럼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졸지에 생겨버려서
뚝뚝 끊어지는 단절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구나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정녕죽으리라 라는 주님이 마련한 처소를 격게 되는 겁니다
주의 성소에 비로소 들어가게 되니까
제발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인애와 자비를 바란다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잠잠하라 라는 모든 입을 다물어서
무릎 꿇어 경배케 만드시는 주의 이름 곧 창조주가 누군지 직접 알려주심이다 말이죠

이렇게 잠잠케 입을 막아버리는 셔터 마우스 앞에서
우리는 뭐 그리 말이 많아서 경계선을 긋고 나의 영역을 주장하는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더라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더라 말이죠

바로 그렇게 선을 그어버린 그 경계선을, 나의 의로움을,
모조리 다 지워버리는 자가 졸지에 나타나 버렸다 라는 겁니다

유대인이면서 유대인 아니다 라고 하는 사도바울이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자 이다 라고 
폭탄 제거반에서 도리어 폭탄이 되어서 나와 함께 죽자 라고 나오는
졸지에 인자처럼
에스겔서의 인자처럼 말이죠

예수님의 기능을 미리 앞당긴 것이 에스겔 인자였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대신하는 기능으로써
인자 누구 누구의 아들의 기능을 하는 자가

복음이 잉태하여 낳은 양자가 되어서
십자가가 잉태하여 낳은 자녀가 되어서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에 사로잡힌 자가 되어서

기다려봐 그 다음 너 차례야 라고 십자가의 지뢰를 다 깔아버려서
나랑 함께 죽자 라고 폭탄이 되어 복음에 빚진자가 되어서 
종말을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앞당겨서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자 라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자 라고 나오는 겁니다

복음의 빚진자로써 저들의 허물을 대신 감당하듯
신체 박스에 담아야 하듯이
거울로써

너거들 선 그엇지?
이 경계선을 긋고서 여기는 내 땅 저기는 너의 땅
그러니 자기 영역이 있으니까 서로 서로 넘보기 없기 라고
평화와 평강을 유지하자 라는 식으로써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선을 그어놓았는데
졸지에 복음에 빚진자가 나타나서 그 경계선 제가 없애 버릴께요 라고
어서와 이런 복음에 빚진자는 처음이지 라고
나온다 말이죠

마치 하늘나라에서 온 논개 같아요
뭐 선을 긋겠다 라고 너의 영역을 갖추겠다 라고
그래 이 논개랑 같이 빠져 죽자 라고 나오는 자가
복음에 빚진자 라는 겁니다
(물론 오해 없기를 바라면서 적 오랑캐를 껴안고 죽자 라고 한 역사적인 존재로써의 논개는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는 식의 가룟유다와 같은 악한 무화과 나무이다 말이죠
도리어 반대로 그저 부정적인 기능인 함께 빠져죽자 라는 그 부분만 인용한거니 오해 없기를)

소위 인간에게서의 빚진자 개념은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상대방과의 거래로 인한 결과로써 빚을 지게 되는 식인데

자 그렇게 되면 역사요 시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따로 설정 할려고 하니까
엉터리 개념이고요

성경에서 말하는 빚진자 라는 개념은 종말적이다 라는 겁니다
종말적 이라고 하니까 또 역사적인 용어로 아까처럼 시 공간의 끝을 말하는게 아니라
한 인물을 말한다 말이죠
그래서 인자 개념을 언급하는 겁니다

나를 비추는 거울로써
너는 너의 영역이 필요가 없는데 왜 자꾸 선을 긋고
왜 중국인은 반칙을 하냐
왜 한국인은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가지느냐 라고
저마다 자신이 옳다 라는 선을 긋게 되니까
당연히 상대방은 악이 되는
바로 이 선악을 퍼트리고 선악을 매매 하는 것이 짐승의 나라 라는 겁니다

그럼 하늘 나라에서 파견나온 논개는
자기 영역이 따로 있는 이 짐승 나라가 선을 긋고서 자기 영역을 주장할때에

어서와 그 선을 없애주마 라고 논개처럼 나랑 같이 빠져 죽자 라고 나오더라 말이죠

바로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라는 겁니다

구원 그 이후 라는 개념이 없는 이유가
또 시 공간의 영역을 자기 영역 선을 긋듯이 또 의문의 반복을 하더라 말이죠
배불러 터진 구원이요 멋들어진 구원을 하겠다 라는 발상이다는 겁니다
즉 소위 인간들이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원론은
놀랍게도 종말적이지 않다 라는 겁니다
종교라는 마약이니 짐승의 나라에 딱 맞는 교리로써
매매 소통 시키고 있더라 말이죠

도리어 구원을 반복 하시겠다 구원의 무한반복이라는
종말적인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무한반복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자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그 이스라엘의 의미처럼 
존재가 아닌 역사가 아닌
비존재 곧 기능으로써 
묵시적 종말적 비존재 기능으로써
처음자리를 말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 처음 자리 처음사랑이 뭡니까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라는
죽음의 자리 였다 라는 거죠

성령의 은사는 바로 우리를 이 처음자리로 밀어 붙이시는데 있어서
그 처음자리가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이 태어난 자리 였던 겁니다

네 맞아요 이스라엘은 죽어야 하는 자 였다 라는 겁니다

죽어야 사는 여자 라는 영화 제목도 생각 나네요

종말적인 구원을 외치는 자들이거든요
그런데 종말적 즉 그리스도적, 복음적, 십자가의 기능을 빼버린채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함을 빼버린채

앞의 것 빼버리고 구원만 딸랑 챙기게 되니까
이것이 졸지에 종교 오락 마약 장난치기 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너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지
너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지
오냐 알려줄게 라고 나오시는 이유는

반대로 내가 여호와를 창조주를 대상물로 삼아서 구원을 추구한 것이
십자가 앞에서 들통나야 하는 속임수로써 드러나더라 라는 거죠

즉 이 말은 너가 너의 영역으로써 선을 그어서 마련한 자기 영역이
곧 애굽이지요
구원의 영역이지요 부자청년이 구원의 영역을 따로 챙기니까
그 영역을 그 전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 주라 라고 하니까

비로소 강팍한 모습을 드러내더라 말이죠

바로 강퍅한 자기 여호와가 누군지 나 모르는데
여호와가 누꼬 나 그 사람 그 신 모르겠는데
예수 그 사람 누군데

나발처럼 나 다윗? 그 사람 누군지 모르겠는데 라고 나오는 것과 같은
강퍅한 마음이다 라는 겁니다

즉 이 말은 나는 내 밖에 모르겠는데 라고 나오는 거죠
이것이 어리석은 자요
총명한 아내 아빌가일에 의해서
종말의 단체에 의해서
선지자에게서 넘어뜨림을 당하는 걸림돌에 넘어지는 자가 되는 겁니다

자 이런 인간에게 성령을 부어서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남종 여종에게 부어서 예언을 하게 된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행 2:16, 개역)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 2:17, 개역)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개역)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행 2:19, 개역)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 2:20, 개역)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욜 2:22, 개역)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 2:23, 개역)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욜 2:24, 개역)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욜 2:25, 개역)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욜 2:26, 개역)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7, 개역)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욜 2:28, 개역)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개역)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30, 개역)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욜 2:31, 개역)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아니 사도바울 본인이 성령을 받기 전에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하나의 소유 대상으로 삼다가

거꾸로 구원으로부터 당하게 되니까
졸지에 복음에 빚진자가 되어서
구원의 이름에 소유를 당해 이름을 삭제 당하게 되니까

방금 본인이 자기 구원의 영역을 따로 챙기는 
자기의 의를 쌓기 한 그 부자청년처럼 구원 마일리지 쌓기가
복음으로 인해 홀라당 다 불타 버렸다 말이죠

자기 영역이 없으니까
자기 것이 없고
자기 챙기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여러분 ~~~~~ 여러분 ~~~~~~~~ 부자 아니 자기 영역 챙기세요 아니
여러분 여러분 각자가 선을 그었지요??? 이제 제가 그 영역 선긋기 다 지워드릴께요
다 불태워 버릴께요
논개처럼 저랑 같이 빠져 죽어드릴께요 라고 나오는 겁니다

복음에 빚진자가 말이죠

만약 이것이 못 받아들여지게 되면

우리는 사랑이 아닌
울리는 꽹과리를 추구하다 보니 또 자기 영역을 사수하게 되더라 라는 거죠
내 믿음 내 신앙 내 말씀실천한 것 등등의
자기 의 쌓기를 사수 하게 되요

그런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거 똥 배설물로 취급해서 홀라당 다 태워버리고
다 치워 청소해 버리는 겁니다
어딜 되도 않는 함량 미달의 사람의 수로 어딜 감히 짐승의 수로
이 십자가가 또렷한데 이 청소차가 또렷한데 속일려고 하느냐

청소차가 나를 삭제 시켜 버리는 것이
성령의 부으심이요
처음자리로 되돌려 놓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창세기의 창조주를 만나게 되어 있어요

말로만 창조주 믿는다
여호와 믿는다 라고 하지만
창세기 1장 2장 3장은 아예 잊어버리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라는 식으로

창세기 1장 2장 3장을 과거로 취급해 버리는데
자 이렇게 되면 창조주도 결국 나 다윗 모르겠는데
나 예수 누군지 모르겠는데
나 여호와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나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는데

그럼 아는 것은 오로지 나 라는 영역 밖에 모른다 라는
이 강퍅함을
오냐 부드러운 마음이 새 마음이
복음에 빚진자가 그거 홀라당 다 태워버려주마 라고 나오는 겁니다

질문한 친구가 처음사랑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처음사랑은 자꾸 멋들어진 구원을 이미 알고서 
그때의 순수했을때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여기지만

성경은 그 반대의 의미로써 처음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즉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했던
그때였다 말이죠
네 맞아요 예수님이라는 인자를 처음 만난날이지요

그런데 어느새 예수님 이라는 인물은 빠져버리고
처음사랑의 그때 나의 순수한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식으로
첫사랑을 운운하니까

그래 그래 되돌아 갔다 치자 말이죠
그래봤자 또 다시 지금의 비루한 자신의 처지로 되돌아 오는
의문의 반복을 또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자는 회개의 달인의 달인이 되어도 소용이 없어요

첫사랑은 내가 되돌아가 가서 그 되돌아간 나를 만나는게 아니라
그 때의 예수님을 만난 때 인데
그 예수님이 그때 나를 제대로 삭제한 날이기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그럼 첫사랑은 과거가 아니라
창세기 1장 2장 3장이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 이다 라는 거죠

인간은 창세기 1장 2장 3장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 처음때에 나를 창조한 창조주가 나를 제대로 심판한
심판의 주를 만나야 한다 라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나의 믿음의 대상물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수님의 믿음에 대상물이 됨으로써

우리가 싹다 잊어버린 창세기 1장 2장 3장의 여호와를 만나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즉 처음자리로 가게 되고
나를 삭제 시킨 날이다 말이죠 첫사랑 때가 말이죠
내가 나를 챙기는 날이 첫사랑 때 일리가 없잖아요
드디어 나를 손 놓고 주님에게 온전히 맡겨버린 날 아닙니까

늙은 이는 꿈을 꾸고
즉 죽은 자가 아들을 날는 100세 넘은 아브라함을 말하는 겁니다

젊은이는 환상을 본다 라는 말은 이삭처럼 제물이 된다 라는 말이고요

거꾸로가 되어야 하잖아요
늙은이는 이미 죽을때가 다 되었으니까 환상을 보고서 예언을 해야 한다 말이죠

모든 국가 민족의 종교에서는 이렇거든요
또 반대로 젊은이는 꿈을 꾸어서 아이를 낳아서 장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말이죠

(시 127:3, 개역)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1, 개역)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 127:2, 개역)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3, 개역)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4, 개역)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시 127:5, 개역)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모든 국가의 즉 저 마다의 영역이 있는 자들의 모습이다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반대입니다

부모 아브라한이 예언을 하는게 아니라
자식 이삭이 예언을 하는 누구 누구의 아들 인자 라는 종말이가 되더라 말이죠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십계명에 나오는데
그 부모란 선지자로써 홍해를 건넌 경험이 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주신
여호와의 긍휼을, 하나님의 거룩한 의가 덮쳐진 자를 선지자로써의 부모 로
그런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자식이 도리어 먼저 태어난 인자가 되고
그 인자의 죽음으로 인해 부모가 다시 태어나게 되는
이 예언을 자식에게 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또 꿈을 꾸는 젊은이가 아니라
환상을 보는 젊은이가 모든 국가의 곧 헬라인이나 야만 이방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로마나 유대인이나 이런 자들에게

반대로 거꾸로 논개로써 나타나서 헬라인 껴안고 바다에 빠져 죽자 라고 나오는 자가
꿈이 아닌
이게 무슨 꿈이겠습니까
환상을 본 종말을 본 끝을 당겨오는 젊은이다 라는 겁니다
(아 참 논개로 함께 죽자 라는 기능으로써 언급했는데
역시나 오해를 하지 싶다고 위에서 언급했는데
도리어 논개 보다 기생라합을 예로 들면 더 안성맞춤이겠군요
더 이 상황에서 더 잘 맞습니다
자기 나라, 자기 국가, 자기 신을 냅따 버리고 자기 나라의 국왕이 뻔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자기 국가의 토지이지 기생라합의 개인 소유의 토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듣고 간담이 녹아서
40년 동안 기다리면서 어서 어서 이 나라 냅따 다 가지고 가이소 라고 팔아넘기더라 말이죠
복음에 빚진자에 딱 맞는 기생라합의 거짓말이 행항이 있는
그것도 부정적인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써 빚진자에 딱 맞네요
그런 취지로써 논개를 함께 빠져죽자 라는 기능으로 언급했지
독립운동가로 봐 버리면 또 거꾸로 본 겁니다 그건 가룟유다이고요)

지난주 였던 가요
본 것이 없이 예언하는 거짓선지자 화있을진저 라고 말이죠

그럼 백프로 거짓선지자는 평강이다 평강이다를 외치는
너의 영역
그래 부자청년아 나 예수에게 질문해 줘서 고맙구나
그래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구나 참 잘했구나
그래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 적이 없구나 참 잘했구나

그렇게 행했던 말씀을 실천한 것들을 고이 고이 간직하여서 구원을 받으려므나 라고

하나님을 이렇게 가르친 자들이 독사의 자식들이다 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선생 바리새인이였다 말이죠

네 맞아요 오늘날 목사들의 주장과 일치하죠

그런데 그런 예수
그런 복음은 없구요

진짜 예수님은 그런 부자청년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다 없애 라고 하셨다 말이죠

부자청년이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평강이다 평강이다
당신이 알려주시는 대로 저는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이 관계성 조차도 평강으로 만들어요

나의 영역을 내가 지키듯이 예수 당신의 고유한 영역도 제가 존중하고
당신이 고수 사수 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좋은게 좋은거다 라는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니도 좋고 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이것이 모든 인간이 갖추고자 하는 권선징악이다 말이죠

선악의 법칙이다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런 인간의 번제을 받으신다 안받으신다??

안 받으신다 라는 겁니다

만약 받아버리면
인간들이 엉터리로 생각하고 부르는 창조주가 되는 겁니다
또 의문의 반복을 하면서
죄도 씻지를 못하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반복해야 하더라 말이죠
그럼 제사장은 그 고기만을 노리게 되는
본 것이 없이 예언하는 거짓선지자와 같은
다른 불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제사를 드리는
고기를 돈만을 노리는 자들이 되는 겁니다
어차피 여호와의 약속은 더디 이루어지니까
금을 바치라 라는 금으로 맹세하는 우상숭배가 시온산을 가득 채우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거짓선지자는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너의 영역 나의 영역 서로 존중하자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 선 그 경계선 모조리 다 없애버리는 공백을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부요한 자도 없애버리고
가난한 자도 없애버려서

모든 영역의 선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창조주는 인간들이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알려주심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는 이름이요
부르게 되는 이름입니다

(롬 10:20, 개역)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사 65:1, 개역)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즉 그 이 전에는 그 이름이 뭔지 모르는 단절이였다 말이죠
네 맞아요

처음 사랑이란 주의 이름을 처음 불렀던 때입니다
그 주의 이름이 그냥 주의 이름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심판하신 심판의 주로써 부른 이름이다 라는 거죠

그 처음때로 되돌려 놓는 이름이니까
매일 매일이 처음사랑이다 라는 겁니다
매일 매일 나를 삭제 시키는 이름을 만나고 부르신 바 되도록 하셨기에

즉 나는 때려죽어도 안 불렀던
오로지 나는 내 이름만 불렀던 자였는데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존중해 주고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나오는데

그 어떤 세상에서도 나의 이름을 삭제 할 수 있는 자가 없는데

어라 난생 처음으로 나의 이름을 삭제 시키는 그 이름을 만나게 되어버렸다 라는 겁니다

(욜 2:32, 개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행 2:21, 개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이것이 바로 나의 이름을 제대로 삭제 시킨 이름이다 라는 겁니다
그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던 날이 바로 구원의 날이요

남종이든 여종이든 즉 성차별 안하고
헬라인이든 야만인이든 즉 인종차별 안하고
지혜자든 어리석은 자이든 즉 빈부 격차 안하듯이 능력차이를 안 따짐으로써

복음은 누구든지 그 이름을 삭제시켜버리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 이름에 깔려 죽은 자가 이름 삭제 당한 사도바울 
곧 사울이였던 자가 바울로 이름이 갈려져 버렸다 말이죠
운명이 개인의 멋들어진 운명에서 예수님의 이름에 갈려지는 수치를 당치 않는
모욕적인 예수님의 십자가 운명으로 바뀌어져 버리는 겁니다
십자가가 잉태하여서 새로 낳았기 때문에 말이죠

큰 자가 졸지에 작은 자가 되어서 이름 삭제 당해서

너 이름 크다에서 작은 자로 만든 이름이 누구냐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이 이름을 외치는 자가 똑같이 자기가 삭제당했듯이

그래놓고 복음에 빚진자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다 라고

(갈 4:19, 개역)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27, 개역)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갈 4:28, 개역)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갈 4:29, 개역)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 4:30, 개역)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갈 4:31, 개역)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이 얼마나 뻔뻔스럽냐 말이죠
정작 해산하는 고통으로 우리를 낳은 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인데
마치 자기가 낳은냥 해산하는 수고를 했다 라고 합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복음에 빚진자로써 해산하는 수고를 했지
정작 낳지는 않았어요 네 맞아요 해산하는 수고를 함께하는 자가 보모 아닙니까
보모 라고 합니까 뭐라고 합니까
아이를 낳을 때 같이 옆에서 돕는 산파
산파 하니까 소크라테스가 생각나죠
산파술 무지에서 깨어나도록 등에(쇠파리)처럼 쩍 달라붙어서 피 빨아먹듯이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무지에서 깨어나 지혜자로 태어나도록 산파의 기능을 하는
대화법 산파술 비유로 유명한 소크라테스 말이죠

그러나 이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자로써 매사에 종교성이 많은 자들의 선생이다 말이죠
그러니 이런 지식을 매매 소통하는 거짓선지자로써
평강이다 평강이다 지혜다 지혜다 라고 외치지만
정작 선을 긋는 자이지
선을 없애는 자들이 아니더라 말이죠

소크라테스와 사도바울의 차이 인 겁니다
천재와 공무원의 차이 말이죠
소크라테스와 예수님의 차이 말이죠

공무원 만이 빚진자 아니냐 말이죠
사적으로는 복종
공적으로는 자유를 외치는 자 아니냐 말이죠

사적으로는 자유 공적으로는 복종을 행하는 모든 나라의 공무원에 반대로 행하는
자기 영역의 선을 긋도록 도와주는 각국가의 공무원이 아닌
그 반대로 복음에 빚진자 공무원은 도리어 사적인 영역의 선을 없애주는 공무원이다 라는 겁니다

헬라인이든 야만 오랑캐 비문명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조리 다 불도져로 깔아 뭉개 버리는
이 공백
부요케도 마옵시고 가난케도 마옵시고

그래 중간치가 아니라
처음 자리로 첫사랑으로 밀어 다리미질로 밀어서
평평하게 평탄케 만들어 버리겠다 라는 겁니다

지젝은 공백을 외치면서 정작 공백이 되는게 아니라
너희는 공백 모르지 나는 알아 라고 또 경계선을 긋더라 말이죠
철학자 라는 거짓선지자들이 다 이래요
선을 없애자 라고 해놓고서는 선을 없애는 나의 철학은 옳다 라고 주장하는 식이니까
마치 불교처럼 무자아 자아를 없애자 라고 하면서
자아를 없앤 나는 교리를 실천한 자로써 나는 옳고
너는 자아를 못 없애버렸지 라고 너는 교리를 실천하지 못한 자 라고 너는 틀렸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등산로 통행료 받지 마라 라고 하니까 화내는 것 보세요
누구 말 마따나 속세를 떠났다 라는 놈들이
속세를 더 밝히는 돈을 밝히는 목사놈들과 뭐가 다르냐 말이죠

그냥 저는 삥 뜯을 수 밖에 없는 매국노 세리입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을 말이죠
나는 거짓선지자 맞습니다 맞고요 라고 하면 될 것을
나는 돈에 미친 목사 맞습니다 맞고요 라고 하면 되는데 자꾸
거짓선지자 아니다 라고 하니 거짓선지자 맞더라 말이죠

이것을 방금 올린 호세아서에서 아 아니다 요엘서 2장에서

남은 자 라고 했어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남은 자 예요

그 남은 자 속에 

누구든지

어느 누구나 오라 ~~~~~~~~~~~~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
어서 와서 주의 말씀 들으라

하늘 아버지가 오라 하시니
어느 누구나 오라 찬송가 257장

즉 남녀 차등 없고
헬라인 오랑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젊은이 늙은이 
산 자 죽은자
빛의 아들들 캄캄한 사망의 그늘에 폭삭 주저 앉은자 로 구분치 않고

누구든지
곧 에브리 바디
그래서 형제여
나는 형제들에게 빚졌노라 라고
그래 그래 그 다음 니 차례인데 하도 하도 맛집에 줄서서 먹듯이
줄이 길이서 빨리 못 가는 구나 내 너에게 빚졌데이 라고
곧 죽여 주 꾸마 라고
길게 늘어선 줄을 점점점 줄여나가는 겁니다
빚을 갚아나아가듯이 말이죠
기다려봐 곧 죽여줄게 라고 말이죠

남은자를 하도 선교단체 대학 캠퍼스 기독교동아리에서 사기를 당해서
젊은 선교사 선교단체 간사 등등 엉터리로 배우다 보니

남은자 운동 이나 해대는데
렘넌트 운동 말이죠
가룟유다처럼 하나님 나라 운동 말이죠

우리 때는 아이비에프 씨씨씨 네이게이토 에스에프씨
이런 유행이 정점에 다다르고 한풀 꺽이니까
이제는 이단들 캠퍼스가 유행해서
다락방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니까 맥을 못 추더라 말이죠

그냥 모조리 다 소경입니다 고쳐주세요 라고 하면 될 것을 말이죠

그 남은자가 아니라

우리가 에스겔 하면서 배웠죠
넙떡한 바위에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그림 그려놓고서
불 붙여서 태우면서 에스겔 선지자 터래기 머리카락이나 수염이나 몸에 난 털을 모아다가
왓싱 한 거죠

3분의 1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터래기를 뿌려서 칼을 날려 터래기 하나 하나 댕캉 댕캉 다 짜른다 말이죠
그리고 두 번째로 3분의 1은 예루살렘 성읍 테두리 양사방에 뿌려서 칼을 날려 댕깡 댕깡 칼을 날려 죽인다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3분의 1은 이제 안에 죽였고 바깥에 죽였고
이스라엘 국외에 도망치는 이스라엘 하나 하나 죽이고자
털을 공중에 뿌려서 칼을 날려서 국외로 도망치는 이스라엘을 칼이 쫓아가서 다 죽일때에

거기서 왜 우리 이스라엘이 이 처음자리가 왜 심판받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우는 자가 졸지에 발생함으로써 우연히 발생함으로써
(필연성의 선민 이스라엘이다 라고 우겼던 자들이 다 죽고
우연성의 남은자가 새로 나타남으로써 새마음으로 새로 태어나서 
왜? 새성전에 맞게 그 증상물로 나타남으로써 
그 우연성의 남은자가 우연적으로 발생함으로써 즉 종말적인 남은자인 거죠)

필연성을 지우개로 지워야 하니까 말이죠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말이죠

우발적인 남은자가 우연히 발생함으로써 즉 종말적인 남은자인데
필연적인 남은자가 소통이 되고 매매가 되니까
존재론적으로 우기더라 말이죠

바로 이런 존재론적인 필연성들이 쓸데없이 선을 긋고
니 영역 내 영역 서로 침범하기 없기
너와 나의 영역을 따로 설정해 놓고서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기 라고 우길때에

논개 아니 기생라합이 그 필연성을 냅따 팔아넘기는 종말성
내 영역 없다 
내 것 없다
자기의 것 없다 라고
허락도 안 맞고 자기 멋대로 국토를 냅따 팔아넘기는
바로 이런 복음에 빚진자
복음에 냅따 팔아넘기는 자가

나의 정체성 스티브유처럼 이 정체성을 삭제 시켜서
영원한 떠돌이 이방인 경계인 영원한 공백으로써 영원한 빚진자로써
남 7번 용서한 나의 7번 용서 마일리지 찢어버리고
7에 70번의 용서 받아야 할 
수치를 가려주는 복음에 빚진 것을
헬라인에게 헬라영역 삭제 지우개로 지우고
로마
유대인
선민
선 줄로 아는 자
먼저 된 자

누구든지 그 어떤 누구도 가리지 않고

칼을 날려서 남은자로 만들어서

수치를 가려주는

이 남겨둔 한 씨에 접촉 시키시는 겁니다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25, 개역)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호 2:23, 개역)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롬 9:26, 개역)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호 1:10, 개역)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롬 9:27, 개역)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 9:28, 개역)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사 10:20, 개역)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사 10:21, 개역)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 10:22, 개역)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사 10:23, 개역)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롬 9:29, 개역)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사 1:9, 개역)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롬 9:30,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개역)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개역)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롬 9:33, 개역)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무리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도
즉 아무리 선이 또렷해도 결국은 흐릿해져 버렸거

아무리 모래와 같이 많았어도
즉 아무리 누가 봐도 모래는 작은 수가 아니다 큰 수다 라고 우겼으나 결국은
선 줄로 아는 자 넘어지게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는

이 종말에만 나타나는 남겨둔 한 씨 덕분에
오로지 남은 자만 구원을 얻게 하시겠다 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멋들어진 배불러 터진 구원이겠습니까
철저하게 단절된 모욕적인 구원을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겨둔 한 씨 아니였으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다 라는 거죠
즉 살인죄 간음죄 인구조사죄를 그때만 저질렀던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주의 목전에서 항상 범죄한 자이다 라는 것을 밝혀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값을 십자가의 피로 흘리셨기에
과거나 현재나 미래 그 어떤 죄도 다 용서하신 이 사랑만 또렷하지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아내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가정부로써 행함의 댓가를 받는 월급을 보상으로 받는 사정부로 살겠냐 말이죠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나 3000만원 받는나 너는 겨우 100만원 받지 라고 또 선을 긋는 자가 되고 싶냐 말이죠
멋들어진 월급 받을래요 아니면 모욕적인 피신랑의 피사랑을 받을래요
나를 대신 해서 매 맞은 신랑을 원하십니까
월급 많이 주는 평강을 외치는 사장을 원하십니까

누구의 이름을 부르실래요 여호와 입니까 강퍅한 애굽왕 입니까)

앞으로 죄 앉짓겠다 라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또 모호하고 의문의 반복을 또 하겠다 라는 
피를 모독 하는 거다 말이죠
7에 70번의 용서를
이 복음에 빚진 것을 모독하는 것이다 말이죠

이것이 종말에만 나타나는 예수님이 자기의 피를 발라 남겨둔 자 입니다

(겔 9:4, 개역)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겔 9:6, 개역)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겔 9:1, 개역)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겔 9:2, 개역)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겔 9:3, 개역)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겔 9:4, 개역)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겔 9:5, 개역)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겔 9:6, 개역)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겔 9:7, 개역)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겔 9:8, 개역)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겔 9:9, 개역)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겔 9: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겔 9:11, 개역)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Posted by 김 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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