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5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상속자 (롬 8,15-17).mp3
8.91MB

22-045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상속자 (롬 8,15-17)
2024. 8.25

주께만 범죄한 빚진자를 찾습니다 (롬 8,12-14)
로마서 2022 2024. 8. 3. 20:16
22-044 주께만 빚진자(죄인, 죽은자, 막사는자 육신대로 사는 자, 환자, 주께만 범죄한 자)를 찾습니다 (롬 8,12-14)

〈롬 8,15-17, 개역한글, 신약성경 249쪽, 찬송가 133장 새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가스펠; 깊고도 넓도다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찬송가 133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새찬송가 135장〉 

1. 어저께나 오늘이나 아무때든지 영원토록 변함없는 거룩한 말씀 
   믿고 순종하는 이의 생명되시며 한량없이 아름다운 기쁜 말일세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세상 지나고 변할찌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2. 풍랑이는 바다 위로 걸어 오시고 갈릴리의 험한 풍파 잔잔케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위하여 눈물 짓고 기도하신 고난의 주님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세상 지나고 변할찌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3.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그의 제자 가슴에 안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주셨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세상 지나고 변할찌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4. 엠마오로 행하시던 주님 오늘도 한결같이 우리곁에 함께 계시고 
   우리들을 영접하리 다시 오실 때 변함없는 영광의 주 친히 뵈오리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세상 지나고 변할찌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가스펠; 깨끗이 씻겨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No.1513 찬미예수 2000〉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씩겨야 하리
다 버리고 다 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 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가스펠; 오 거룩하신 주님 No.903 찬미예수 2000〉

오 거룩하신 주님 그 상하신 몸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주님이 당하신 고난  이 죄인을 위함이니
범죄한 날위해 주 욕을 보셨네
나 무엇으로써 그 은혜 보답하리까
무한하신 주의 사랑 고맙고 크도다
나 평생 사는 동안 주위해 살리라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가스펠;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합시다 No.497 찬미예수 2000〉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합시다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합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찬양 합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찬양 합시다

예수 이겼네 예수 이겼네 예수 사탄을 이겼네
예수 이겼네 예수 이겼네 예수 사탄을 이겼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 사탄을 이겼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 사탄을 이겼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권세 내권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 권세 내권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오 주예수 오 주예수 할렐루야 구원됐네
오 주예수 오 주예수 할렐루야 구원됐네


깊고도 넓도다.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깊고도 넓도다.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깊고도 넓도다. 깊고 넓은 샘물 흐르네.

주님의 사랑은 온전해 마르지 않네
주님의 사랑은 신비의 샘물이라네.

퍼져라 퍼져라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죄 무성한 땅위를 눈처럼 덮어버려라.


〈롬 8,15-17, 개역한글, 신약성경 249쪽〉

(롬 8:15, 개역)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6, 개역)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7, 개역)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5, 새번역)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 ㉬그, '아들의 신분으로' 또는 '아들 됨'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그리스어 음역
(롬 8:16, 새번역)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 ㉠그, '영'
(롬 8:17, 새번역)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고후 5:15, 개역)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상속자 라는 의미는 자녀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버지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재산 돈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시고자 한 기업은 바로
생명의 법인 성령이다는 거죠
(아 먼저 상속자 라고 해서 우리가 직계 자녀인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양자입니다 
죽은자 곧 고아를 양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직계자녀는 바로 독생자 예수님 이십니다 그렇다고 육체의 개념이 아니라
육신으로 오셨다 라는 겁니다
그 분이 받은 상속자로써의 유업을 우리도 똑같이 받는다는 점에서 그 얼마나 영광인지
바로 이 아들의 영을 받는다 라는 겁니다 다른 것을 유업으로 받는게 아닙니다
바로 아들의 마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입니다
심지어 모든 피조물이 그래서 이 유업을 받고자 인간이라는 그 허무에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모든 피조물이 함께 동참한다 라는 겁니다
인간만 아니 인간도 아니지요 육신만 거부합니다
육신이란 악령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육신에 성령이 들어간 자로써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굴복케 하시는 주님의 뜻 때문이지 그 허무한 인간에게 굴복하는 것이지 인간 좋으라고 하신게 아닌거죠 즉 미끼이다 말이죠
심판의 근거로 삼기위한 그 카이 악인은 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이 굴복 당하시고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아들의 영을 받은 우리 또한 굴복 당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도록 하심이지
자기 잘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머리 둘 곳 없으신 분의 영을 주시겠다 라고
이 땅에 고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건 고난이 아닙니다
부자여도 키작은 삭개오는 찌질한 자로 취급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찌질한 삶을 살면 다 고난이냐 아닙니다
내 쪽에서 마련한 것은 다 딱딱한 굳고 묵은 땅일 뿐입니다
주님이 매일 매일 갈아엎으시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사랑이 매일 매일 공급이 됨으로써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신 것처럼
고난이 나를 다루심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가까이 할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는다 라는 거죠 아무리 친화력이 강하고 해도 주님의 고난이 덮쳐지면 어쩔수 없음을 알고
기뻐하라 라는 겁니다 욥 보세요 유대인 탈무드에 감출수 없는 인간의 세가지 모습
빈 지갑 그리고 재채기 그리고 미움과 사랑
아무리 감출려고 해도 빈지갑 돈 없는 모습은 감출수 없고요
재채기 즉 건강은 얼굴에 다 티가 나지요
그리고 좋아라 죽는 것 미워라 죽는 것은 감출수가 없지요
그 세가지를 당한 욥은 하루 아침에 친구나 마누라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표적이 되어서 온갖 공격을 받는거지요
아니 부요할 때는 아무도 공격을 하지 않았는데
돈이 없어지니까 바로 공격을 함으로써
주변의 인간의 껍데기 마저도 벗겨버릴때에
고난을 미움을 안 받고 배기겠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반드시 동시에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것처럼
악령이 씌인 자들이 육신의 생각 육신의 소욕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가감히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동안 가면을 쓴 거지요
선지자를 3년 동안 발가벗고 돌아다니도록
저들의 발가벗은 모습을 거울로써 비춰주라 라고 했을때에
그들은 내가 발가벗은 것이 아니라 너 이사야 너가 발가벗었다 라고
충돌의 두 시선이 등장하게 됩닉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발가벗지 않았다면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 두 시선의 충돌이 말이죠
바로 이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이런 충돌을 야기시켜서
저들의 허물을 대신 짊어진 예수님의 십자가 곧 찢으심과
다시 사심이라는 새언약을 보라꼬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성령의 소욕으로써 주어지는 영광이 바로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글쎄 유업으로 주시겠데요 글쎄
아무도 안 받을려고 하는 것 아시니까 강제주입 시키시는 겁니다
비로소 전능자께서 나를 괴롭혔다 라는 나오미라 하지 말아라 나를 마라 라고 해라
난 쓴 자이다 내 인생 꼬라지 쓰다 라고 이 쓴 잔을 마시도록 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넣기 위함이다 라는 거죠
원한 적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닌 아들의 소원대로 말이죠
이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전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기에
사랑이랑는 징계의 매를 아들이라는 이유로
양자 자녀 라는 이유로 말이죠 미리 결론을 ㅋㅋㅋㅋ 다 말해 버렸네요 ㅋㅋ

(롬 8:20, 개역)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개역)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이 아버지의 기업을 아무도 받을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까 말한 문제 아버지의 기업을 자꾸 돈이나 재산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재산 돈 같으면 서로 받을려고 새치기를 해서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을 써서 라도 서로 자기가 먼저 받을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아무도 안 받고자 하니까
소도 사고 밭도 갈아야 하고 저마다 자기 소유의 일들이 있다 보니
바쁘다 말이죠 진작 미리 예약을 잡도록 미리 말해야 달력에 이날을 빼 놓을텐데 갑자기 도둑처럼
천국잔치를 벌리면 우짜란 말이냐 라고 다들 거부하지요 똑똑한 다섯처녀가 그때 가서 준비하면 된다 라고 그게 바로 어리석고 미련한 다섯 처녀였구요

성령의 소욕에 의해서 선지자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잔칫집에 오라고 추궁합니다
완전 밑바닥 인생들
곧 아들잔치에 아무도 안 올려고 하니까
길거리에서 아무나 다 끌어모아서 잔치에 참여케 하신다 말이죠
잔칫집에 들어와서까지 예복을 곧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고
기존의 헌 옷 헌 술 헌 부대를 고집한다면
잔치를 마련한 주인의 마음과 안 맞으니 쫓아내야겠지요
청함을 받은 자 많으나 택함을 받은자 적다 라고
아무도 잔치에 올려고 하지 않다 보니
창녀 세리 강도가 먼저 이 잔칫집에 먼저 가는 겁니다 그런 기업인 반드시 누구를 내치시고 누구는 편파적으로 주시는 그런 기업입니다

기업을 내가 소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권력이 되는 거죠 딱딱한 묵은 땅이 되면 또 갈아 엎어야 합니다 반대로 기업이 나를 소유하기 때문에
어떤 누구도 선 줄로 생각 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것은 악령을 받은 자들이 바라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곧 사망과 죄악의 법이다는 거죠

왜 우리는 거꾸로 받을려고 할까요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기업은 생명인데
문제는 내가 살아 있는데 말라꼬 생명을 주시겠다 라고 하는가?
아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의 영원생명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데 그건 나중에 해도 되지만
정작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입에 풀칠하고 살만한 것들을 줘야지 라고
분명 살아 있는데 말라꼬 생명 주느냐 라고 해 놓고서는
재산 돈 안 주면 저 죽어요 라고 또 그때는 나 죽는다 라고 징징 거린다 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뒤에
아무도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점에서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이 생명을 우리는 멋도 모르고 있다 라는 점입니다
모른다 라는 말은 없다 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말이죠

너는 창조주를 모른다 여호와가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내 너에게 반드시 나 여호와가 누군지 반드시 알려주겠다 라고
우리가 지금 에스겔서를 살펴보면서 무지 무지 강조하시고 있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존재론적으로 보는데 있어서
나 있고 주님 있고 라고 보니까
너 나를 모르는구나 모르기 때문에 없다 라고 보는 거죠
결국 자기 존재를 기반으로 한 투사 투시 반영으로써 주님 있다를 따지지
정작 자기의 가치가 무가치한 초상집 광야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도 없다 라고 바로 튀어나올 반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하나???을 모르고 즉 없고 뭐가 있는가
우상이라는 악령만 있다 라는 겁니다

성령을 언급하실때에 반드시 악령도 함께 언급이 되어서
두 언약이 한 세트가 되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생전의 베드로가 성령을 받으라 라고 할때에
악령을 받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사탄이 들어간 장면을 말함으로써
평상시 우리가 베드로나 사람을 속이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고 있다 라는 의미에서
성령이 임하는 사건 속에서 악령이 그럼 누구에게 임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사는 자에게 악령이 들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소욕이 매일 매일 우리를 밭갈아 주지 않고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용서인 사랑을 부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다를바 없는 자로써
육의 소욕만 쫓다가 지옥에 갈 뿐입니다
그 지옥에서 빼내시고자 하시는 이 성령이라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유업을 받으라 라고 말이죠
금 과 은 나 없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으라 라고 할 때 받으라 말이죠

주님이 주시고자 한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님의 마음인 새마음 곧 성령인데
이 정직한 영이 없어서 
비로소 나의 죄가 늘 주의 목전 눈 앞에 늘 있었음을 그래서
이 새마음을 달라고 다윗은 달라고 부르짖었는데

아니 내가 생명이 붙어 있는데 말라꼬 또 생명 주십니까
아 미리 생명보험 들라 라꼬 천국 보험 영생보험 들라 이겁니까 라고
하나님을 모르기에 저런 악령의 생각들을 하더라 말이죠

정직한 영이 없으면 아나니아 삽비로 부부처럼 사람을 베드로를 인간을 속이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속이는 자 이기 때문에
새 마음을 달라고 비로소 자기는 육신이라고
마귀가 욥을 보는 시선이 바로 시체 주검 육체일 뿐이다 라고
이 마귀의 시험을 누가 이길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그래서 무서움이라는 사망의 종 노릇
사망이 생명의 세계안에서는 없는데 죽음은 죽어있을 뿐인데
죽음의 세계에서는 안 죽어 있고 도리어 왕 노릇하고 있더라 말이죠
그 공포 그 두려움은
사랑이 없으면 물러갈 리가 없다 말이죠
이 화목제 라는 주님의 마음
정직한 영이 없으면 달라고 해야 할 것 아니냐 말이죠
안그러면 우리는 저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하나님을 속이는 자로 살 수 밖에 없다 말이죠
아무리 어제까지 사탄이 들어가지 않았고
어제까지 성령이 들어가 예수님을 잘 믿었다 손 치더라도
오늘 새로 주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이 오늘 내 속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듯이
성령의 놀라운 탄식이 오늘 없으면
어제까지 아무리 잘 믿었다 손 치더라도
오늘 악령으로 인해
육의 소욕대로 하나님을 속이도록 되어 있다 라는 거죠
그래서 회개의 달인이 될려고 할게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해서 말이죠
뭘 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나를 주님께 맡기는
더 이상 나에 대해서 손 댈려고 할 필요조차 없는
주님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인해서
네 맞아요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으라 라는 겁니다
너희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나를 미워해서 너희까지 미워한단다
왜? 내가 세상이 악하다 했기에
세상은 광명한 천사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에게 잘 보일려고 베드로까지 잡고요
저 탕자처럼 살지 않고요
저 매국노 세리처럼 삥뜯지 않았고요
저 사마리아처럼 더러운 이방인으로도 태어나지 않았고요

그런데 왜 주님은 나 천사였던 마귀를 왜 악하다 하십니까
왜 나의 세상 마귀의 세상을 악하다 하십니까
그 카이 악하지
주님이 누구신가를 전혀 모르는
맏아들이 왜 탕자를 용서하시는 아버지인지를
그 아버지의 마음을 도통 이해 하지 않고
그 마음을 본받고 따라가고 유업으로 받을려고 하지 않는지
그래서 이왕 이래된거 깽판짖겠다 라고

천한 계집을 왕비의 자리에 높이시는 이 지혜를 세상은 견디지 못하고 격동함으로써
내가 어차피 가지지 못할 빠에
너도 못 가지게 하겠자 라고
이 육신의 소욕을 비로소 표출하게 하시는
이 성령의 소욕으로 인한 이 고난을

마귀에게 절대로 주지 않는 고난
사생아 에게는 이 사랑의 매가 없기에
말라꼬 매 맞는 자녀생활 하노
나처럼 매 때리는 그런 나쁜 아버지 나쁜 하나님 버리고
나처럼 자유롭게 아버지 없이 살아라 제발 ~~~~~~~~~
간섭하는 자 하나 없으니 이 얼마나 좋고 좋으냐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럼 인간이 바라는 유업인 재산 돈은 왜 달라고 할까요
복 달라고 말이죠
그게 지난 시간에 노아에게는 은혜를 주었는데
반대로 인간들은 복 받고자 생육 번성 충만
네 인간이 바라는 유업은 자아 확장 확대 자기가치 높이기입니다
바로 우리가 에스겔서에서 봤던 두로왕 암몬족속 그리고 애굽왕 바로 자기가 하나님이다 라고
손 바닥에 왕 자를 쓴 그 무당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방인의 왕 제도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자기 꾀에 자기가 걸려 누워서 침뱉기로
자기 아들 노예로 팔려가지요
자기 딸들은 첩이나 무수리로 팔려가지요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가 더더욱 왕이 되어서
그 동안에 억울하게 당한 것 도로 보상받고자
또 복수심으로 인해서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 라고 원을 뺑뺑이 돕니다
인간에게는 원수가 없어요 3 4대 지나면 어께동무하며 오늘 술마시고 친구야 함께 죽자 라고
돈으로 다 해결해 버리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가를 봐야 한다 말이죠
바로 육신의 소욕
사탄이 들어간 모습 말이죠
이 악령 속에서 빼내 달라고 우는 자가 바로 주님의 고난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욥이 자기가 당하는 고생은 고난 축에도 못 든다 라고
아뿔사
제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머리에 시꺼먼 타다남은 잿더미를 뿌리고
머리를 쳐박고 생일을 저주하면서 울지요
주님의 고난을 봐 버렸기에
이 마음을 유업으로 받는 겁니다 아들이라면 자녀라면 이 화목제물 되심을 보는 겁니다
비로소 아버지가 누구신지를 알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게 되지
자기 의를 쌓는 성화론자들은 복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 말이죠

(롬 8:7, 개역)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성령이라든지 악령이라든지 아예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겁니다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자기의 모습이였었거든요

아니 자기는 그래 놓고 주님이 용서해 줬다면 너도 한번 실수한 저 부부를 용서해야지 왜 죽이느냐 바로 이것이 육신의 생각인 하나님의 원수된 생각입니다

베드로를 솎인게 아니다 라니깐요 하나님을 속였기에
하나님이 죽였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베드로를 그저 스피커로 활용해서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깔때기로 활용한 거죠 도구로 수도파이프로

동시에 악령이 씌인 이 둘의 차이를 나타내시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딴거 관심없다 그저 교회 헌금내어서 내 일이 잘 풀리도록 해 달라 라고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듯
성령도 그런 식으로 내 잘 되게 해 달라 라는 식으로 성령 받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거죠
그럼 악령 받은 것과의 차이가 나야 하는데
성령 받는 것도 그렇고
악령 받는 것도 그렇고 내 잘되게 해 달라
믄 놈의 차이가 없으니 이 둘이 서로 
서로의 소욕을 못하도록 싸우는 충돌이 전혀 안 보이니깐요

그러니 그 복잡한 것 다 골치 아프게 다 치워버리고
내 잘 되게 해 달라
그러면 내가 힘 얻어서 내 잘되어서 너에게도 나누어 주겠다
돈 놓고 돈 먹기 일거양득 일석이조 누이좋고 매부좋고
암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 먹고 알 먹는
이것이 속담이라는 보편적 진리로써 아니니아와 삽비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태도를 가졌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으로써 무당의 언어이다 말이죠
과거의 무당이 이제는 정치가의 언어가 되었지요
모든 인간이 왕이 되다 보니 저마다 손바닥에 왕 자를 그리고 다녀요
그 무당 집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되었고
그런 교회가 아니더라도 아니니아 삽비라는 그런 교회로써 다니고 믿고 했다는 겁니다

아니 어느 엄마 치고 내 아들 고아 안 만들겠다
나도 과부 안될끼다
내 남편 백수 나그네 아닌 반드시 권력자 만들겠다 라는
모든 엄마가 가진 지극히 정상적인 소원을
주님은 이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라고 책망하십니다

(사 47:7, 개역)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사 47:8, 개역)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사 47:9, 개역)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전히 네게 임하리라

이사야 47 팔 아래 위로

이 얼마나 헛된 맹세 헛된 기도 입니까 속이는 거짓 말 이다 말이죠
십자가 라는 또렷한 현실이 떠 버린 이상
누가 속이고 누가 꾀냐 말이죠

요즘으로 치면 교회에서 유행하는 무당 언어 바로 비젼입니다
이 놈의 비젼이라는 단어가 바로 바벨론 여자들이 우상숭배하는 것과 같은 사상이지요
이것이 고급화 되면 성화론이고요

여기에 정반대인 성령의 소욕은 그럼 뭐냐
이사야 27 팔

(사 25:7, 개역)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 25:8, 개역)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9, 개역)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사 25:10, 개역)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의 초개의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사 25:11, 개역) 그가 헤엄치는 자의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수치를 제거하시고자
사망을 멸하시는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
이 앞뒤 모순된 이 간극을 벌리시겠다 라는 겁니다

고난으로 사람들의 구경꺼리로 미말에 두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눈물을 씻겨주심
이 하나님의 의를 때에 맞게 묵은 땅을 갈아 엎어서
남겨둔 한 씨 덕분에 남은자가
하나님의 의로 인해 비오듯 그 의를 비처럼 생명수를 받아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주님이 가신 길을 가게 말이죠

고난이 아니면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며
안 죽으면 예수님의 죽음을 비로소 본 욥이 받은 새 마음을 모를 것이면
그러면 성령과 악령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도 모를 것이다 말이죠
그래놓고 하나님을 저 바벨론 여자처럼 취급할테니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서 율법 지켰다는 둥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는 맏아들처럼
그게 바로 하나님의 원수된
사단이 들어간 마음인 완악한 마음인데 말이죠
우리는 늘 거꾸로 봤던 겁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희한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롬 8:15, 개역)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5절 무서워 하는 종의 영 이라고

도대체 뭘 무서워 한다는 거죠
그래서 아래 위로 살펴봤다 말이죠
직접적인 연관된 내용은 없어요
그래서 딱 보자마자 뭘 무서워 한다는 거지 라고 하루 종일 생각해 봤습니다
다른 번역을 함 볼까?
주로 두려움으로 많이들 번역했고 그리고 공포로 번역했다 말이죠

(롬 8:15, 현대어) 우리는 노예처럼 아첨하거나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자녀로 영접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현대어 번역이 겁낼필요가 없다 라고 겁먹는 모습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이 무서움은 반드시 종 이라는 신분과 연관이 되었다 말이죠

그 카이 새번역은 아주 재미있는 표현 종살이로, 주로 노예로 표현하는 번역을 종살이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말이죠

(롬 8:15, 새번역)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 ㉬그, '아들의 신분으로' 또는 '아들 됨' ㉭'아버지'를 뜻하는 아람어의 그리스어 음역
(롬 8:15, 공동)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롬 8:15, 쉬운)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롬 8:15, 킹흠정)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롬 8:15, 한글킹)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현대인) 여러분은 다시 두려워해야 할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아무튼 이 무서움이란 누구와의 관계성에서 나온 것이다는 거죠
아버지와의 관계인 자녀이냐
아니면 다른 누구와의 관계성에서의 무서움 두려움 공포만이 나오는 종의 영 악령을 받은자냐 라는 의미로써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물론 로마서 이 본문 이후 17절 이후부터 계속해서 고난애 대해서 계속 나온다 라는 겁니다

이 고난이 바로 아들이냐 아니냐 라는 기준처럼 말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이 고난 받는 아들로써 이 세상에 오셨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도 잘 알고 외우는 이 시편 1편도
멋도 모르고 외웠지만
이거 얼마나 무시 무시한 내용인지를 말이죠

(시 1:1, 개역)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개역)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개역)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개역)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개역)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개역)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로마서 본문으로 치면 고난이겠지요

그리고 또 무서움도 두려움도 해당되겠지요

그래서 다른 번역은 또 어떤지 봤습니다

(시 1:5, 개역)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5, 새번역)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시 1:5, 공동) 야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시 1:5, 쉬운) 그러므로 나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견뎌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죄인들은 착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시 1:5, 킹흠정) 그러므로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심판 때에 서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로운 자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니
(시 1:5, 한글킹)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은 의인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니
(시 1:5, 현대인)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 날에 무사하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로운 자들 가운데 서지 못할 것이다.
(시 1:5, 현대어) 못된 짓 일삼는 것들은 하나님 심판하시는 자리에 나와 설 수나 있을까? 바르게 사는 이들 모임에 나오기나 할 수 있을까?


다른 번역은 다 심판이라고 하는데
쉬운번역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견뎌 낼 수가 없다 라고 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벌이란 무섭고 공포스럽고 두려움이고 아프다 말이죠
무섭지 않은 벌이면 그게 벌이 아닌 거죠

그래서 악인은 벌을 견디지 못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의아한게
시편 1편에서 이 심판을 심판 때에 서는 그 마지막 때의 심판을 말하는 대부분의 번역을 보게 되는데
아마 의인의 회중에 서지 못한다 라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라는 의미에서 연관해서 인 것 같은데

꼭 마지막 때가 아닌
평상시에 악인은 벌을 견디지 못한다 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은데 말이죠

즉 이 말은 평상시에 자녀는 그럼 벌을 심판을 견뎌낸다 라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막상 우리 꼬라지를 봅시다 과연 심판을 견뎌내는지 말이죠
구약 이스라엘을 봅시다 과연 심판 근처에 가 본적이라도 있는지
오히려 잔칫집을 유지하고자 남의 것을 빼앗아 고아 과부 나그네를 등쳐먹음으로써
자신의 잔칫집만을 사수하고 있는 판국인데

무슨 놈의 심판 속에 들어가겠느냐 말이죠

아삽의 시편 내용대로 아삽이 이해가 되더라 말이죠
악인인데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았을 뿐이지
단 한 번이라도 심판이라든지 벌이라든지 단 하번도 당하는 것 못 봤다 말이죠
당했다면 무서워 라서도 안 할려고 할꺼다 말이죠
그렇게 되면 보편적 진리 곧 무당의 언어가 형성이 될 리가 없잖아요
성령의 언어인 언약의 언어는 그럼 상대적으로 비밀의 언어가 될 리가 없이
다 누구든지 다 해석 할 줄 아는 자기가 알아서 할 꺼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죽는 일도 없고요

오죽했으면 아삽이
오죽하면 낙심이 되어서 식음을 전패할 정도로 죽게 될 상황 까지 가겠느냐 말이죠
세상에 이런 부조리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말이죠

그냥 나 이 꼬라지 나 안 볼란다 라고 피하거나 이사해 버리면 되겠지요
그런데 피할 수 없어서 바로 코 앞에서 그런 상황만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오죽 하면 낙심해서 다 죽게 되었겠느냐 말이죠

마치 무신론의 유행이 된 나치 히틀러에게 당한 독가스 실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같아 보인다 말이죠

오죽하면 무신론을 격렬하게 주장했을까요
얼마나 참혹했으면 말이죠
말이 선민이지 선택된 민족이지
현실은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버림받은 민족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나 하나님 안 믿을래 라고 나온다 말이죠
원래 안 믿었는데 그 동안 배스트 셀러 책 성경 책의 주인공
구약 유대인으로써 선민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척만 해도 
그 자부심으로 실컷 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고 잘 살수 있었다 말이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뭐냐 말이죠 
가는 곳 마다 미움과 멸시 냉대 학대 핍박 뿐이니
본심이 안 튀어나오고 배기겠냐 말이죠
드디어 본심이 제대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그 동안은 그럼 뭐 믿고 있었단 말이냐 말이죠
그 전에는 무신론자가 아닌 유신론자
그것도 기독교의 삼신 삼위일체를 거부하는
유일신만 믿는 자 였었단 말이냐 말이죠

아닙니다 원래 모든 인간은 무신론자입니다
오로지 믿는 구석은 자기 자신 뿐인
우상숭배자 였음이 그때 튀어나오는 겁니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해서 라고
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면 모조리 다 악인이라는 말이냐?

아니요
그럼 겁쟁이 이고 두려움 많고 
공포 영화 단 1도 못보는 천하의 겁쟁이인
기드온은 그럼 왜 주님을 믿었을까요?

두려움 공포 잘 이기는 사람도 심판을 형벌을 잘 견디는 사람도
주님이 일방적으로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라고 취급해 버리시기 때문에
악인이 되는 거지

심판을 그럼 잘 견디는 귀신 잡는 해병처럼 훈련을 이빠이 평생을 하면 그럼 의인이 되느냐 말이죠

바로 자기 쪽에서 하기 나름이다 라는 바로 이런 생각 자체가
하나님과 원수된 생각이다는 거죠

엘리야도 다윗도 요나도 다 그랬는데
주님이 그거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야 라고 책망 받음으로써
더 이상 헛된 맹세가 아닌
책망이라는 징계라는 사랑의 매로 인해서 나온
성령의 소욕을 보니

이제껏 안 보이던 꺽으신 뼈
화목제물을 손 수 직접 준비하셨다 라는 이 진짜 현실 앞에서
비로소 자기의 손으로 쌓은 공든 탑들을 똥덩어리 배설물로 여기면서
와르르르 무너뜨리심을 비로소 보게 됩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여 나는 사망의 몸이였구나

누가 이 지옥의 몸에서 건져내랴

그래서 준비하신 주님 쪽에서 말이죠
너가 그렇게 마귀에게 당할 줄 알고
잡혀 올줄 알고 주님이 손수 직접 짠
흰 옷이 있단다 라고

마귀 보란 듯이 베드로에게 새옷을 피 옷을
7에 70번의 용서의 옷을 입히실때에

남을 7번 용서하겠다 라는 자기가 알아서 말씀 지키겠다 가 바로
마귀가 노린 함정이였고
육신의 소욕으로써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속이고자 하는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이 꺽으신 뼈가 또렷히 보이는데

어딜 속이는 꾀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에라이 너나 용서 받아라 라고

성령의 소욕인 7에 70번의 용서와
육신의 소욕인 남을 7번 용서하겠다 라는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아이를 살려보겠다

이 차이가 두 언약으로써 분명히 갈라져 그 차이를 그 간극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무서움 두려움 공포는
사랑이 없었기에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회개 눈물 금식 기도로
회개의 달인으로써 예수님을 비웃는 무당의 언어로
보편적 진리로써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는 대식가요
포도주를 즐겨마시는 술꾼이요
세리와 창녀와 죄인의 친구라고

이 얼마나 인가말쫑으로 몰아가는
이 별멸으로 가까이 하는 자는 그 자로 이런 별명을 붙여서 같이 취급하겠다 라고
회개의 달인 금식의 달인들이 붙인 별명이 되는 겁니다

이게 고난 받는 미움받는 겁니다
성령의 소욕이 되는 바람에
육신의 소욕에 당한 자들로부터
악령이 씌여진 아나니아 삽비라
바벨론 여자들 등등으로부터 미움받는 고난 받는 자가 되는 거죠
저절로 말이죠

왜냐하면 삶의 방향성이 정반대가 되어버렸거든요
성령의 소욕 떄문에 말이죠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보세요
삶의 방향성이 예수님의 족보가 먼저 떳기에 그 예수님의 족보인
생명의 족보로 향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평범한 삶의 방향과 완저 정방대로 가는 겁니다

그럼 왜 무서움이라는 것이 왜 있느냐

무서워 했기에 뭇서움이 아니라
지옥이
악령이
죽음의 세계가 무서움우 공포의 세계요 지옥은 두려움의 형벌의 세계 이기에
지옥에서 작살 꽃은 사람은
아무리 귀신 잡는 해병대 특등 베테랑이라고 해도
무서움 소에 들어가야만 하는 겁니다

즉 이 반대는 두려움이 없는
두려움을 내어 쫓는 사랑의 세계는

사랑이 천국이 작살을 꽃았기 때문에
아무리 겁쟁이 기드온 이라고 해도
용사가 되는 겁니다
그 용사 라는 별명을 한사코 평생을 거절해도
나랑 안맞다 나는 천하의 겁쟁이다 라고 해도
주변에서 너는 나오미 맞다 나오미가 죽은태가 아들을 낳았다 라고
주변에서 난리입니다
기드온 용사여 라고 말이죠

ㄱ렇다고 딱딱해지느냐
오히려 칭찬하는 자들이 딱딱해 지니까
제사장 옷인 에봇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다 라고 던져주니까
그 에봇을 바로 우상숭배 하더라 말이죠
이게 악령 씌인 자들이다는 거죠
그카이 무서움의 종 노릇할 수 밖에 없지요

자 그러면 우리가 갈라디아서 두 여자 두 언약처럼

땅의 계집종 하갈은 노예 종살이의 형상을 받았기에
정작 가정부처럼 내가 청소 안하면 안될텐데 라는
자기 행동의 여부에 따라 형벌이냐 아니면 벌금 안내고 보상을 받느냐 라는

악령의 소욕대로 살도록 내버려 둠을 당하고

반대로 하늘의 자유하는 예루살렘 여자는
저런 육신의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땍지 손떼 라고 내가 신랑이 너에게로 가마 라고
신랑의 숙제만을 누리도록
그래서 늘 간섭 받고
그래서 늘 어제의 묵은 땅을 새롭게 갈아엎음 당하는
징계의 매로써 오로지 남편 피신랑의 화목제물만 찬양토록 만드시는
한 몸으로써 같은 운명 같은 몸 같은 고난
죽어도 주를 위한 죽음이고 살아도 신랑을 위한 다시 사는 삶으로써

오로지 이 사랑의 관계성인 7에 70번의 용서인 성령의 소욕만을
나타내도록 성령의 놀라운 탄식으로 작살 꽃혀서
주님이 가신길 남편이 가신길 그 사랑의 길만 가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막상 악령을 받은 계집종 하갈은 가정부로써
자기가 해야 할 일 청소 빨래 그거 못할까봐 걱정이고
형벌을 받을까봐 두려워 하면서
또 보상을 저 사람은 딸랑 30분만 일해도 하루 일당 다 받았다면
나는 12시간 다 만땅 다 채워 일했으니까 몇배를 받을 거야
그 일에 걸맞는 보상을 못 받을까봐 걱정과 두려움이 크다 말이죠

이게 언니 마르다 였고요

반대로 동생 마르다 는
싸가지 없게 언니 저렇게 힘들게 예수님 대접할려고 땀 흘려 가면서 일하는 것 도와줄 생각 안하고

예수님 무릎에 턱 고이고 앉아서 말씀만 듣고자 하고 있으니
예수님 야 좀 머러카이소 야단치세요 꾸짖고 혼내세요
지 혼자 이렇게 하고 남들 다 힘들게 일하는데 ~~~~

예수님은 정작 좋은 것을 택했다 라고
많은 일로 근심하지 말고 한 가지만 하라 라고
이치에 하나도 안 맞는 소리를 하시더라 말이죠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일 보다 그런 가정부의 일 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유를 주시는 신랑이 누구신가를 말하라 라는 겁니다

아니 신랑이 누구신가를 말할려고 이렇게 식사대접코자 하고 있잖아요

그건 손님이고

손님이 무슨 생명을 주겠냐 말이죠

싸가지 없는 비싼 향유를 부은 창녀 마리아는
이 분이 내 생명의 주인이시다 라고
싸가지 없게 멀쩡히 살아있는 양반을 미리 장사 장례 치르는
미이라에게 바라는 향유를 미리 바르더라 말이죠

이 분이 화목제물이다 라고

아니 누가 이 성령의 소욕을 무슨 수로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 카이 육신의 소욕인 악령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써 오히려
화를 내고 12 제자 모두 말이죠 아이고 그 아까운 비싼 향유
가난한 자를 돕는 기금으로 안 사용하고 땅에 그냥 허비하느냐 말이죠
특히 악령 씌인 대표자로써의 가룟유다는 더더욱 화를 내면서
너는 가난한 자가 안 보이느냐 라고

또 바리새인은 정작 본인이 식사대접코자 초대했는데
창녀마리아와 한 마음이 된 것을 보고
속으로 하는 말이
아니 선지자가 맞다면 저 여자가 이 동네에서 유명하기로 소문난 창녀인데
유대사회 전체가 교회가 되다 보니 국가 민족 마을 도시 자체가 하나의 종교 시스템인데
창녀라는 신분 그 자체만으로도 저절로 유명해 질 수 밖에 없다 말이죠

그런 창녀를 오히려 맞짱구 쳐주고
자기 제자 12제자들이 다 반발해도
창녀 마리아 만이 내 마음에 딱 맞는 소리만 한다고 하니
과연 선지자 맞기는 맞을까 라고 의심하더라 말이죠

즉 이 말은 인간의 믿음으로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짓만 골라서 한다는 겁니다
왜? 성령의 소욕이고
인간의 믿음은 무서움이 깔린 지옥에서 작살을 꽃은
악령이 씌인
가짜 믿음 곧 복수심이다 말이죠
바벨론 여자들의 우상숭배는 결국 나 건드리면 다 죽이겠다 라는
최초의 노래 라멕의 찬양과 같아요
나 육신의 소욕만을 추구할 거야
그래 그래라 그게 바로 악령이 씌인 무당의 언어로 된 노래이다 말이죠
모조리 다 복수심이다 말이죠
왜 복수할려고 할까요
무서워서
두려움 때문에
일 못하면 언제 짤릴지 모르는 가정부의 두려움처럼

복수 못하면 자기가 복수 당할까봐

즉 사랑이 없으면 모조리 다 울리는 꽹과리 곧 라멕의 찬양이다는 겁니다

사랑이 없으니까 죽을까봐
또 언제 달려들까봐
모세는 광채나는 얼굴을 가리고자 완악한 수건을 못 벗는 겁니다
그게 그림자의 세계이다 말이죠

이제 실상의 세계
십자가라는 또렷한 밝히 보이는 진짜 현실인
사랑을 봤다면

우리는 이제 언제 죽어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이 사랑에서 끊을 자 없음을
주님이 확신 하셨지

언제 우리가 내 숙제로 확신 할수 있겠냐 말이죠
내일 되면 또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는데

암논에게 외부에서 사랑이 매일 매일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자기가 사랑해서 상사병 걸려 죽을 지경이 되는 경험을 해도

그건 어제까지고

지금은 더럽기 짝이 없는 여자이기에

모세에게 이혼 증서 써 달라고 
율법 대로 하자
율법에 적혀 있잖아
율법 대로 하자라니깐
이라고

법과 법 사이의 틈을 노리더라 말이죠
이게 인간이 율법을 행하면 행할수록
부모 인신제사로 드리고
자식 인신제사로 드리거나 잡아먹는

주님이 악령 씌워 버리면
그 자기 의를 쌓았던 것 
하루 아침에 배설물이 되는데
뭘 그런 의문의 반복을 하느냐 말이죠

주님 쪽에서 손수 직접 마련하신 이 화목제물을 보라꼬
우리를 아들의 고난 속에 집어 넣음으로써

비로소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어리석고 미련한 이 지혜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 목에 가시
삼킬수도 없고 뱉을수 없는 목에 탁 걸린 까시이고

헬라인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지혜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서는 하나님의 높고 높은 지혜요 영광이다 말이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누가 대신 채찍에 맞고자 하겠느냐 말이죠

그런데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 때문에 채찍에 맞는
주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가는데

인간만이 이 현실이 안 보이고

그저 내 하기 나름인
가정부의 세계만이
거기서 성공 못할까봐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더라 말이죠

정작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처럼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길 고대하면서
자기의 목숨 생명을 냅따 허무한 인간들의 입 속에 들어가서
죽는데 말이죠

바다의 멸치가 우리 입에 들어오는 반찬이 되기 까지
얼마나 스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느냐 말이죠

멸치 뿐이겠습니까
수박도 이제 말복에 달지 않다고 고랭지에서 키워야 된다 라고
땅까지 밭까지 옮겨가면서 키워야 하니
인간이 따라 가면서 수박을 내어놓아야 한다 말이죠
그렇게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갈 때

수박이 외칩니다
주여 이 허무한 인간들 입속에 들어갑니다
꼭 복수해 주세요 라고
하나님 자녀의 입 속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들이 가난해서 비싼 달고 맛있는 고랭지에서 자란 나 이 수박을 먹을 형편도 안되어서
억울하게 악령이 씌인 인간의 입 속에 들어가지만
주여 꼭 복수해 주세요 라고
주님 뜻대로 허무한 인간에게 굴복하면서

이 진짜 현실을 못 보도록 하고자
막 죽어나가는 입 속으로 들어간다 말이죠

에이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그럼 아무것도 못 먹겠넹

먹어도 주를 위하여 못 먹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사신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게 함이지

또 벌 형벌 받을까봐 무서버서
에이 그러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네 라고
마치 당연히 먹을 권한이 있는냥 우리는 우리를 늘 속여 온
육신의 소욕만 봤다 말이죠

그렇다고 나는 이제 육신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 대로만 살꼬야 라고 하는데
이게 성화론자들이지요

정작 성령의 소욕대로 산다고 해 놓고서는
육신의 소욕대로 저 매국노 세리와 같지 않게 해 주심에 감사하다고
또 왕따 시키는 사망의 종노릇으로 살인의지를 펼치더라 말이죠
마치 아까 말한 12제자들이 특히 가룟유다가
악령이 씌여서
창녀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 더더욱 화를 내면서 말이죠
자기는 마치 억수로 가난한 자를 디기 생각하는냥 말이죠

그래서 성령은 우리는 처음자리인
하나님의 원수된 자리
너는 육신에서 벗어날 수 없지
화로다 망해야 할 자 맞지
지옥의 몸 맞지 라고
매일 매일 지적 받고
그 지옥의 몸을 매일 갈아 엎고 생명의 몸 되신 예수님을 쳐다보라꼬
성령의 놀라운 탄식을 하시는 겁니다
모든게 주님의 숙제로써
사랑으로써 펼쳐지지
인간의 숙제는 또 딱딱하고
보상을 바라고
또 복수심까지 깔려서
그저 살인의지
내 안 알아주면 모조리 죽야버리겠다 라는 라멕의 찬양 밖에 없음을

성령의 소욕이 알려주지

육신의 소욕은 알려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꼬
항상 성령의 소욕이 펼쳐지면
7에 70번의 용서가 펼쳐지면

항상 육신의 소욕인
인간 자기가 한 일
사람의 일
사탄아 썩 물러가라 라는
그 악령의 일들이 같이
그 둘의 차이성으로써 증거 됩니다

인간들은 이 둘의 차이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제가 성화론자들의 행동 그 거룩한 성화된 행동을 보면
성경과 반대로
불교인들 도덕군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성령의 일이라고 사기를 치던데
그럼 동시에 악령의 일들을 그 차이로써 무엇이 악령의 소욕인지를 말해주느냐
그건 모르더라 말이죠
그저 자기 안 알아주면 그게 악령인냥 대충 눈치껏 알아먹으라 라는 식으로
대충 대충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넘어가던데

성화론자들 뿐만 아니라 안 그러는 자가 없어요 다 그래요

갑자기 안하던 가난한 자를 도와 줬다 라고 하면서
자랑을 하던데
오히려 그 가난한 자가 믄 죄인지
그 가짜 도움에 노리개로 이용당하고 있으니 말이죠

인간은 그저 자기가 알아서 선해 질수 있다 라는 그거 외에는 없어요
반대로 아무리 해도 악에서 못 벗어나더라 라고 하면 가차없이
자신을 자기 스스로 살해 해 버리고요

그런 선과 악
판단할 자격과 권한도 없는 주제에 말이죠

우리는 그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하여
선악이 아니라
사랑이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하여

주님의 고난에
곧 찢으시는 그 십자가의 죽음과
다시 싸매어 주시는 다시 부활 하시는

이 생명의 주 되심을 위해서
동원이 된
모든 피조물과 똑같은 고난에 동참이 된 겁니다

인간만 보시지 마시고
태양 바다 물 공기 온갖 오염 속에 죽어가고 사라지고 멸종당하고
병들어 죽임을 당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음을 외치고자
함께 같이 죽음을 당하기로 작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이제 내 개인 적인 죽음 조차도 없어요

주님의 죽음과 주님의 다시 사심을 내 몸 속에서 나타내실려고
주님이 마구 마구 쳐들어 오셔서
창녀 마리아에게 자유하는 언약을 외치도록 만드셨듯이
그 이유로 제자들에게 화냄과 짜증과 미움을 당하지만
그런다고 복음이 취소될 리도 없고
그리스도의 사랑
곧 화목제물 되심이 취소될 리가 없듯이

오로지 이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나타내시고자
주님이 내 허락도 없이 찾아와서 사건을 벌리셨다 라는 사실에

우리는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현실이 진짜임을 알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쓸데 없이
남을 7번 용서하겠다는 둥
십일조 냈고 이레에 두 번 금식했고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고
아버지 말씀 단 한번도 어긴적 없다 라는

그 헛된 말 헛된 맹세
그따위 배설물 그 그림자 다 치워버리시고
오로지 실상은 예수님 뿐이지
나 조차도 허구일 뿐이니

실상 또렷한 밝히 보이는 이 현실인 예수님만 바라보고 갑시다
앞만 보고 말이죠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3, 개역)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 4:14, 개역)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 4:15, 개역)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7, 개역)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개역)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5:13, 개역)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후 5:14, 개역)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후 5:15, 개역)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6, 개역)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7, 개역)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개역)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개역)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개역)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1, 개역)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21-081 애굽과 이스라엘의 두 언약의 푯대(위치, 입장, 소욕) (겔 29,12-16)
2024. 9. 1

높은자 낮추시고 낮아진 위치 입장, 낮은자 높이시는 높아진 입장 위치 
높은자가 되면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서 떨어지는 일 밖에 없지만
낮은자로 낮추시면 이제 올라갈 일 밖에 없도록 하심 곧 사랑 밖에 없음 십자가의 사랑만 높이심

(마 18:4, 개역)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23:12, 개역)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4:11, 개역)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큰 악어 애굽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겔 29, 1- 7)
에스겔 2019 2024. 8. 10. 15:47
21-080 큰 악어 애굽을 쳐서 예언하라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겔 29, 1- 7)

〈에스겔 29,12-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6쪽, 찬송가 222장 새 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찬송가 502장 새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새찬송가 235장(통222)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새찬송가 280장(통338)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찬송가 303장(통403) 날 위하여 십자가의
새찬송가 445장(통502)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새찬송가 490장(통542) 주여 지난밤 내 꿈에
가스펠; 주만 바라볼찌라
찬미예수 2000 - No.35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시편42)
찬미예수 2000 - No.1839 그를 향하여 (요한 1서 5 : 14)
찬미예수 2000 - No.1665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찬미예수 2000 - No.685 나의 영혼이 잠잠히 (오직 주만이)
찬미예수 2000 - No.1655 그날이 도적같이
찬미예수 2000 - No.98 내가 산을 향하여
가스펠;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코에 생기를


〈찬송가 222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새찬송가 235장〉 

1.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2. 앞서간 우리의 친구들 광명한 그 집에 올라가 
   거룩한 주님의 보좌 앞 찬미로 밤낮을 즐기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찬미로 밤낮을 즐기네

3.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4. 우리의 일생이 끝나면 영원히 즐거운 곳에서 
   거룩한 아버지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겁게 살겠네


〈찬송가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새찬송가 445장〉 

1.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2.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3.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명랑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가스펠; 주만 바라볼찌라〉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의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찬미예수 2000 - No.35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시편42)
〈가스펠;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시편42) No.35 찬미예수 2000〉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영혼이 주를 찾고자 주를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사람들이 하는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뇨 어디있느뇨
내가 밤낮으로 눈물흘리니 주여 어찌합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불안하는고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네 얼굴을 도우시는 네 하나님을
살아계시는 네 하나님을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x2



찬미예수 2000 - No.1839 그를 향하여 (요한 1서 5 : 14)
〈가스펠; 그를 향하여 (요한 1서 5 : 14) No.1839 찬미예수 2000〉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쓰러져 가는 자에게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는 소망을
미움이 있는 곳에는 사랑을 가득 채워 주시네
그(주)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예수는 우릴 인도하는 참길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진리
고통중에 위로가 되시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
그(주)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아멘


주님의 솜씨
골11:16, 롬1:19-20

하늘을 바라보라 드넓은 저 바다도
온세상 지으신 주님의 솜씨라
먹구름이 다가와 태양을 가려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솜씨라
모두 고개를 들고 어둔 마음을 열어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너와나 지으신 주의 놀라운 손길
우리 다함께 주를 찬양해 찬양해

온 하늘과 땅위의 만물아 겸손히 무릎꿇고
주의 위엄 앞에 경배하라
들에 핀 꽃을 보라 하늘을 나는 새도
만물을 지으신 주님의 솜씨라
모두 고개를 들고 어둔 마음을 열어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너와나 지으신 주의 놀라운 손길
우리 다함께 주를 찬양해 찬양해

온 하늘과 땅 위의 만물아 겸손히 무릎꿇고
주의 위엄앞에 주의 위엄앞에 경배하라
모두 고개를 들고 어둔 마음을 열어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너와나 지으신 주의 놀라운 손길
우리 다함께 주를 찬양해 찬양해
모두 고개를 들고 어둔 마음을 열어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라
너와나 지으신 주의 놀라운 손길
우리 다함께 주를 찬양해 찬양해
우리 다함께 주를 찬양해 ---


찬미예수 2000 - No.1665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1.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2. 힘이 없고 네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찬미예수 2000 - No.685 나의 영혼이 잠잠히 (오직 주만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나의 영혼이 간절히 여호와를 갈망하며
나의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나의 영혼이 즐거이 여호와를 따르리니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나의 구원 나의 영광 하나님게 있으니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되시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주님 고대가) 손양원 삼일절 동포여 이날을 길이 빛내자 표절 ㅋㅋ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내 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 받아들고 찬송 부르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 신부되는 교회가 흰옷을 입고 
   기름 준비 다 해놓고 기다리오니 
   도적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주의 이름높이며 다 경배드리면서 나가세


1절: 주의 이름 높이며 다 경배드리면서 나가세(*3)
주께 오오 경배해 우리 주 예수
2절: 우리들을 내려놓고 주만 바라보며 경배해(*3)
주께 오오 경배해 우리 주 예수
3절: 주의 이름 높이며 경배드리면서 나가세(*3)
주께 오오 경배해 우리 주 예수
4절: 두 손 주를 향해 들고 그의 이름 높여 드리세(*3)
주께 오오 경배해 우리 주 예수



   하늘 위의 집 (1416)

1.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내게 주어진 하늘나라에 가면 
  내겐 황금과 은만 있네
               후 렴
내게는 하늘 저 위에 집 있네
영광의 빛이 찬란한 그 곳
그 날이 오면 다시 방황치 않고
순 황금길을 거닐겠네

2. 날 가난하다 외롭다 말아요
  천국길 가니 실망 없다네
  이세상 수고 모두 끝이 난 후에
  저 천국가서 면류관 쓰리



찬미예수 2000 - No.1655 그날이 도적같이

1. 그날이 도적같이 이를줄 너희는 모르느냐
늘깨어 있으라 잠들지 말아라 주님과 동행하라

2.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온몸과 영혼이 주오실 그날에 흠없기 원하노라

(후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찬미예수 2000 - No.98 내가 산을 향하여

98. 내가 산을 향하여  

찬미예수2000

시편121:1,2  김영기曲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지으신 여호와 나의 왕이여
영원무궁히 지키시리로다



가스펠;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코에 생기를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주 하나님
우리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의 주 하나님을 사랑해
나는 하나님형상 따라 지음받은 몸이니 이 몸을 주께 바치리
항상 내생활중에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내 주를 섬기렵니다

갈보리 십자가 흘리신 그 피로 영생을 얻게 하신 주 예수님
나이제 주위해 한평생 살아 갈동안 주님만 사랑하리라
나는 하나님형상 따라 지음받은 몸이니 이 몸을 주께 바치리
항상 내생활중에 주를 부인하지 않으며 내 주를 섬기렵니다



〈에스겔 29,12-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195쪽〉

(겔 29:12, 개역)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한 열국 같이 황무하게 하며 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열국의 성읍 같이 사십 년 동안 황무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가운데로 헤치리라
(겔 29:13,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십 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겔 29:14, 개역)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겔 29:15, 개역) 나라 중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열국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열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겔 29:16, 개역)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뢰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나게 되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29:12, 새번역) 내가 이집트 땅을 황폐한 땅 가운데서도 가장 황폐한 땅으로 만들겠고, 이집트의 성읍들도 사십 년 동안은, 황폐한 성읍 가운데서도 가장 황폐한 성읍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을 여러 민족 속에 흩어 놓고, 여러 나라 속에 헤쳐 놓겠다.
(겔 29:13, 새번역)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사십 년이 지나면, 여러 민족 속에 흩어져 있는 이집트 사람을, 내가 다시 이집트 땅으로 모아들이겠다.
(겔 29:14, 새번역) 내가 포로가 된 사람들을 이집트로 돌아가게 하여, 그들의 고향 땅 곧 ㉢상 이집트 땅으로 내가 그들을 데려다 놓겠다. 그들은 거기에서 힘없는 나라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 ㉢히, '바드로스'
(겔 29:15, 새번역)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힘없는 나라가 되어서, 다시는 다른 민족들보다 높아지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작게 만들어서, 그들이 다른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게 하겠다.
(겔 29:16, 새번역) 이집트는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이 의지할 나라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당한 것을 보고서, 이집트에 의지하려 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상기하고,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내가 주 하나님인 줄 알 것이다.'"



(겔 21:26, 개역)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눅 11:43, 개역)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시 4:2, 새번역) 너희 높은 자들아, 언제까지 ㉠내 영광을 욕되게 하려느냐?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며, 거짓 신을 섬기겠느냐? (셀라) / ㉠또는 '영광의 하나님을’
(시 107:40, 새번역) 주님께서는 높은 자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황무지에서 헤매게 하셨지만,
(시 107:41, 새번역) 가난한 사람은 그 고달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그 가족을 양 떼처럼 번성하게 하셨다.
(시 107:42, 새번역) 정직한 사람은 이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사악한 사람은 말문이 막힐 것이다.

(사 22:19, 새번역) 내가 너를 너의 관직에서 쫓아내겠다. 그가 너를 그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사 24:4, 새번역) 땅이 메마르며 시든다. 세상이 생기가 없고 시든다. 땅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자들도 생기가 없다.

(호 11:7, 새번역)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 ㉢또는 '가장 높은 자'

(마 23:6, 새번역)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막 12:39, 새번역)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눅 11:43, 새번역)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눅 14:8, 새번역) "네가 누구에게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혹시 손님 가운데서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
(눅 20:46, 새번역)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장터에서 인사 받는 것과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잔치에서 윗자리를 좋아한다.

(사 2:12, 공동) 만군의 야훼께서 오시는 날, 뽐내고 거만한 자를 모두 꺾으시는 날, 높은 자리에 앉은 자를 모두 끌어내리시는 날,
(사 10:13, 공동) 그가 자랑삼아 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나는 나의 힘있는 손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의 지혜로 이것을 이루었다. 그러니 나는 현명하지 아니한가? 나는 민족들 사이의 경계선을 옮겼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았으며 높은 자리에 앉은 자들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마 23:6, 공동)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막 12:39, 공동)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잔칫집에 가면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눅 11:43, 공동)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눅 20:46, 공동)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길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을 즐기며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찾고 잔치에 가면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더 5:11, 현대어)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의 영광을 자랑하였다. 재산도 많고 아들도 많으며, 특별히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떵떵거리며 자랑하였다.
(시 62:9, 현대어) 사람이란 한낱 한숨에 불과할 뿐.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헛되고 허망할 뿐. 저울에 달아 본들 무슨 무게나 나가랴. 한낱 숨결보다도 가벼운 것을.
(시 73:8, 현대어) 저들은 남 욕하고 비웃기나 하며 높은 자리에 앉아서는 거들먹거리며 남 짓누를 계획이나 세우고 있지.
(잠 17:19, 현대어) 남과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죄짓는 일이나 좋아하는 자요, 남을 딛고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파멸을 불러들이는 자이다.
(잠 19:6, 현대어) 높은 자리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없던 친구도 수없이 몰려들어 아첨을 하고,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정한 친구가 된다.
(전 10:6, 현대어) 어리숙한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능력 있는 자를 낮은 자리에 앉히는 일이다.
(사 2:12, 현대어)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교만한 자와 높은 자들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들을 치러 오셔서 그들을 땅바닥에 내팽개치실 것이다.
(사 22:19, 현대어) 네가 호화로운 능을 팠으니 네 왕이 너를 관직에서 쫓아낼 것이다. 왕이 너를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뜨릴 것이다.‘

(마 23:6, 현대어) 그리고 잔치에 가면 윗자리에만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만을 찾는다.
(막 10:42, 현대어)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의 왕이나 지위가 높은 자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막 12:39, 현대어) 그들은 회당에서 제일 높은 자리만 찾으며 잔칫집에 가서도 윗자리에만 앉으려고 한다.
(눅 11:43, 현대어)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회당에 가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시장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아!


먼저 높은자 낮추시고 낮은자 높이신다 라는 마리아의 기도 한나의 기도인
브로큰 애로우 폭격요청 푸른 나무 이든 마른 나무이든 여호와의 불로 다 태워달라고
의인이든 악인이든 여호와의 칼이여 다 죽이시라고 외치는 선지자의 기도가 생각나서
높은 자 라는 검색어로 나온 것을 몇 개의 번역만 올려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내용에서 애굽의 위치가
높은 자의 위치이다 라는 것에
주님은 철저하게 낮은 지옥의 모습을 반드시 퍼붓겠다 라는 식으로
황무지로 만들겠다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높아진 자리인 그 위치가 낮은 곳 장소로 감에 있어서
이 위치이동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철학책 읽다가 이 위치 라는 단어가 입장 이라고 같은 의미로 나오길래

입장이라 ~~~~~~~ 음 ~~ 입장이라면 자신이 위치한 그 자리에서
그 자리가 어떤 방향 어떤 성향을 띠고 있는지 그 입장을 펼치도록 되어 있다 라는 의미이다 말이죠

즉 주체는 인간이 아니고 그 자리 그 위치가 주체가 되어서
그 위치가 말하능 입장을 대변하는 증상물로써 인간은 도구로 대상물로 작동한다 라는 거지요

우리가 로마서를 통해서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없다 말이죠
자꾸 인간이 자기를 인간이라고 우긴다는 점에서
곧 주체 라고 우긴다 라는 입장에서 위치에서

정작 진짜 주체 진짜 주인공의 위치는 육신의 모양으로 왔다 라는 점이다는 거죠
그래서 인간답게 살겠다 말씀대로 살겠다 라는 것이 말이 안되고요
반드시 다 실패 할 수밖에 없다 말이죠
특히 에스겔은 이미 실패하 마당에서 그 실패한 자리에서
주님의 새언약을 외친다 라는 점입니다
밭 갈아서 기경한 입장에서 말이죠
그러면 기존의 옛입장 옛위치를 고수해 본들 또 실패할 길을 말라꼬 가느냐 말이죠
이미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성공한 분이 외부에서
율법 외에 한 의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다가오시는데
그 분이 주인공 주체가 되면
나의 주가 되면
내가 주체가 되어서 숙제할 꺼리가 할 필요없이 다 이루었다 속에 들어가는
이 불륜 이 불의 이 부조리 이 반칙 이 십자가의 피 용서라는 스캔들로써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이 말씀의 성취를 누리게 되는데 말이죠
그카이 누가 자기를 자기의 주인공 주체로 여기는 입장에서 누가 자기를 버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자기 이름을 안 부르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 말이죠
밭을 갈아서 기경하는 자는 세상에 없어요
기경할 필요성 조차도 인식 못합니다
일방적으로 쳐들어온 하나님의 의가 비처럼 먼저 떳기에
그 증상물로써 퍼뜩 밭 갈리움을 당하고 복음의 씨앗이 심겨져서
외부에서 곧 성전 하나님의 중심인 세상의 중심인 시온에 세워진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비처럼 내려서 목마른 영혼을 마시우게 하시지

바로 이렇게 황무지 광야 광야 3일길 어린양의 희생제물되심이라는 
이 죽은 자의 자리
빚진 자의 자리
얼마나 막살았으면 하나님을 세 번씩이나 원망한 그 자리
하나님의 원수된 그 자리에서
그 천한 계집을
불의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고

낮은자 높이시고
죽은자 살리시고
고아 과부 나그네에게
눈먼자 갇힌자 포로된 자
이 포로됨 의 자리가 지금 에스겔이 외치는 자리 위치 아닙니까
그 자리에서
낮은 자를 높이시는 이 십자가의 피 곧 새언약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고
이것이 요나의 표적이고

반대로 잔칫집이여서 이스라엘 마저도 부러워서 나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단 한번도 출애굽 한 적 없는 그 이스라엘이
지금 에스겔 시기에 심지어 포로 잡혀 와도
하나님을 점쟁이 찾듯이 하고 있지
여전히 언약이 움직이고 있다 라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고
이스라엘이 망했으니까 
이제 없으니까 포로 잡혀 왔으니
이제는 나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바벨론 포로 로써 히브리 노예일 뿐이다 라는
이 사고방식 이 하갈의 종 가정부 사고방식일때에
예수님 혼자만 자유하는 하늘의 예루살렘 여자처럼
자유하는 자로써 애굽화 된 이스라엘에게
유대인 자기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하는 모습으로써
에스겔 또한 이미 지나간 몇 년 전의 상황을
이스라엘 쫄딱 망한 사건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들까지도 생생하고 주님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 라는 사실로 인해서
주님의 일하심을 보라고 아무리 말해도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는 비웃음꺼리로 밖에 안되는
언약의 활동 말씀의 운동 아예 관심조차도 없이
자기가 관심두는 먹고 사는 일 그 일 좀 말해라
아무도 못 알아먹는 이야기 좀 하지 말고 라고 거부시 당함으로써
자기 백성으로부터 핍박 고난받는 주님으로 일하신다 라는 점에서

육신으로 오심으로써 유일하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예수닌 뿐이였듯이
지금 에스겔 딸랑 혼자 이스라엘을 헛된 맹세를 쫓고 있는 상황에서
책망을 함으로써
주님이 주무시지도 않고 이렇게 부지런히 이방나라의 주님까지 되시고자
일하시고 있다 라는 사실을 외침에 있어서
자꾸 자꾸 여호와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려주시는 겁니다

즉 이 말은 인간은 아예 관심 조차도 없다 라는 거죠
이스라엘이면 이스라엘일수록 말이죠
오늘날로 치면 교회 다니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새언약은 관심이 없다 라는 겁니다

참 감사하게도 마지막 때가 되다 보니
이제서야 본심이 드러나서
앞으로 미국 교회가 10만개 교회가 문 닫는다고 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무신론자 1위 국가가 되었구요
영국은 이제 노인들만 교회 다니는 전세계적으로 제일 교회를 많이 다녔던 국가 국민이
이제 안 다닌다 라고

이것이 왜 감사한고 하니 원래 그 사람들이 성령의 전인 교회가 아니였던 겁니다
그저 남들의 눈을 의식하고 다녔던 성령을 그동안 속여왔던
악령이 씌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였던 거죠
이제서야 본색이 드러난 겁니다

그럼 오늘 본문 또한 지옥에 간 애굽왕 바로왕을 불러들이고
또 흩어진 애굽인들을 다시 모아서
주님은 영광받으시고자
출애굽을 다시 실행하시는 겁니다

아무로 출애굽 할려는 자가 없었듯이 그 당시에 말이죠
이미 애굽화 된 그 히브리 잡족 노예들이 무슨 수로 나오겠습니까
이미 종인데 종 노릇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데

그런데 모세가 자유하는 영을 받아 버리니까
그 한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른다?
얼마나 위험한 도박입니까

지금 에스겔을 통해서 출애굽 사건을 다시 하시고자
죽은 애굽왕 바로왕을 다시 불러서 다시 출애굽 사건을 펼치십니다
누?? 구원 그 이후 라는 시간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그런 시건방적인 생각을 하느냐 말이죠
메일 매일이 출애굽인데 매일 매일이 밭을 갈아엎는 기경인데
매일 매일이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심판의 날이 곧 구원의 날이 되는 부림절인데

어디 보자 모세가 BC 1300년 이고 엘리야가 900 이고
이스라엘 완전 멸망이 586 컴퓨터 이고

저번에 4-500년 만에 지옥에서 소환했다 라고 했는데
뭔가 너무 가깝다 싶었는데 지금 계산해 보니 100을 더 넣으면 되겠군요
한 5-600년 만에 애굽을 소환해서 출애굽을 다시 시작 하십니다

즉 이 말은 예수님 당시에는 출이스라엘을 펼치신다는 의미와 같아요
왜냐하면 반드시 주님이 이스라엘을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을
애굽화 시켜서
더 이상 자기 쪽에서 나올수 있는 믿음 자기 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음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 놓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자로써 새언약을 이루시거든요
그러니 베드로는 절대로 예수님의 편에 설수 없어요
그런 인간의 믿음은 자기 의 쌓기 밖에 안되지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막사세요 육신대로 사세요
육신을 쳐서 육신에게 지지않으신 분은 예수님 뿐이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깊이는 마귀만을 상대하시고요
마귀는 베드로를 유혹에 빠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님이 그렇게 허락하신 겁니다

그럼 마귀의 목적은 뭐냐 말이죠
욥기에서도 나왔듯이
마귀는 하나님과의 내기에서 하나님을 이겨먹기 위함이다 말이죠
즉 예수님만이 이루시는 이 새언약이라는 십자가의 피 용서가
7에 70번 용서하심을 무용지물이 되게 하고자

내가 장기를 이기기 위해서 장기알 하나 베드로 이기면 뭐합니까
하나 따먹고 10을 내어주게 되면 어차피 지는데 말이죠
제가 장기 밖에 몰라서 게임에서 이런 경우가 많잖아요

마귀는 주님이 다 이루신 그 십자가의 피 용서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그 화목제물만 무용지물로 만들면 이기거든요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미끼로 베드로를 삼어버리는 겁니다
그 카이 더더욱 이 십자가에 딱 맞는 죄인 세 번 부인한 막사는 자
세 번 부인한 주께만 범죄한 자
세 번 부인한 육신대로 산 자
베드로는 자기 스스로 기경 할 수 없어요
자기 스스로 육신을 쳐서 육신대로 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요
도망쳐야 되는 겁니다
그것을 아시고 미리 잡혀 오라고 주님은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 말이죠
이 말을 가지고 또 시비 거는 자들이 한 둘이가 아닌데
믿음 떨어지지 않아야 할 꺼 아니가
아닙니다
이미 믿음이 떨어졌기에 세 번 부인한 거지요
이것을 자꾸 우리의 소망으로 끌어오지 마세요
우리는 믿음이 없어요
있어도 가짜요 그 가짜 믿음은 예수님을 핍박하는데 사용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키는
예수님을 죽이는 용도로 사용된 엉터리 믿음인 살인의지입니다
제발 예수 믿지 마세요 예수님에 대한 복수심을 펼치겠다 라는 완악함을 펼치겠다는 속내입니다
입으로는 찬송하나 속으로는 저주이다는 거죠

참으로 다행히도 주님은 우리에게 안 속아요
십자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냐 라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내 믿음 안 받고 내 믿음에 안 속아 넘어가십니다

그 카이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신
인간의 믿음은 번제좌 제사인데 높은자 되기 인데
높은 자리 수 제자 답게 말이죠

그런데 주님은 그 반대로 수제자 이니까
너가 12제자를 대표해서 나를 세 번 부인하고 버리고 도망치는 자들의 대표로써 삼으셔야

비로소 물에 빠진 다 탈탈탈 털린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무저갱 지옥의 몸 스올 그 죽으면 죽으리라의 자리에서

비로소 예수님이 누구신가
여호와가 누구신자
나에게 반드시 핍박 받고
나에게 세 번 부인 당하는 자로써

나 같은 원수를 용서하시러 지옥의 몸을 건지시러 오신 주님을 봄으로써

이 주님의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인 이 십자가의 피용서를
마귀가 어떻게서든 막고자 했던

어라 나 베드로가 그 짓을 했네
세 번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장치지겠습니다 십자가에 같이 죽지요 뭐 라고 했던 것이
예수님 말씀대로 사탄의 일이 맞음을 비로소 알고

방금 전까지 예수님을 세 번부인하고 냅따 도망친 육신의 모습을
입 싹 딱고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비로소 하나님의 깊이인 주님이 믿음 떨어지지 말라고 기도하신
그 믿음이 내 믿음이 아니라 어제 믿음 딱딱해져서 밭 갈아 벌이고
주님의 믿음 새 믿음을 주심으로써
주님 주신 주님의 믿음으로 말미 암아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 라는
이 새언약을

마귀 보란 듯이 아 네 예수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마귀 들으라고 크게 뻔뻔스럽게 외치라굽쇼 ~~~~ 네네 아멘 아멘 ㅋㅋㅋㅋ

바로 이것이 출애굽사건으로써
출베드로 입예수안 십자가 안 하고자
출이스라엘 입 십자가 안 예수 안

그러니 이 두 언약
두 소욕
성령이 임하는 사건에 맞게 한세트가 되도록
악령이 들린 아나니아 삽비라를
이렇게 긍휼의 그릇 예수님 뿐이고요
진노의 그릇으로써 누가 죽은자 인지를
육신대로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체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니까 즉 사형깜이다는 겁니다
사망의 몸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육신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새영으로 인도함으로
단순히 성화론자들 주장처럼 육신을 쳐서 윤리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그런 유교처럼 그런 종교처럼
그런 자가 바로 바리새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럴 것 같으면 성령이 말라꼬 필요합니까 방전 되었을때에 겨우 충전하기 위한
그따위 용도 밖에 안됩니까
성령을 얼마나 무시하면 밧데리 충전용입니까
아닙니다 처음부터 성령이 처으무터 단절과 기경 밭갈아엎고자
이 십자가의 피에 맞는 7애 70번의 용서에 맞는 죄인
피신랑에 걸맞는 주깨만 범죄한 피신부로 만드시고자
우리를 세 번 부인하는 막사는 자로 만드신다 말이죠

그래야 내 전쟁이 아닌 주님의 점쟁이고
주님이 상대하는 자는 바로 마귀이며
마귀는 나를 상대하는게 아니라
이미 자기 밥이 되었는데 뭘 상대해요
그 카이 인간은 남을 7번 용서하는 자가 되고자
육신을 치겠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그게 바리새인 독사의 자식 사탄아 썩 물러가라 라고 욕먹은 베드로 라는
자기 의를 쌓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 코자
찢겨지고 기경 당하고 다시 싸매어주심을 당하는
이 공백의 간극 속에 놓여지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우는 자가 안되니까
자기가 마귀를 이겨 보겠다 라고 주여 주여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로 물리치고
사탄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고 선지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썩 물러가라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7에 70번 용서가 또렷히 보이는데
뭐 남을 7번 용서했다고?
이레에 두 번 금식 십의 일조 이조를 냈다고
육신을 쳐서 저 매국노 이완용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다 라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에수님과
모든 인간이 악령이 씌여서 나오는 행동이 이렇게 단절된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의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고자
그 엉터이 죄 의 심판을 완전 반대로 보여주실려면
보이지 않는 마귀를
이미 지옥에 가있는 애굽왕 바로왕을 소환해서 흩어진 애굽군사를 다시 모아서
하나님이 영광을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받듯이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을 미끼로 삼아서
베드로처럼 세 번 부인하는
소위 죄야 사망아 누구를 쏘느냐처럼
베드로를 가장 악랄한 일급 살인자로 만드시는
마치 모세도 그랬고
특히 다윗 이거는 완전 인간 말종이지요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인구조사죄를 자신의 죄악을 자기 스스로 가리고자 하는 모든 행위가 이제는 궈력이 되어 정치적인 힘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과거에는 무당이 그랬는데 국가가 형성되면 왕부터 해서 모든 정치기관들이 무당이 되는 거죠
너희 아비는 마귀이다처럼 마귀의 솔욕대로 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완악한 수건을 벗어버리면 정치적으로 발가벗겨지는 자가 되니까
사회적으로 암매장 당하는 꼴이 되는 거죠
마치 요셉이 형들의 미움으로 인해서 암매장 당하듯이 말이죠

사랑과 미움을 지극히 정짇적이거든요
그카이 이 십자가의 사랑은 십자가의 정치는 마귀만 상대하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마귀의 종 노릇으로 인해서
이 십자가만 막고자 하는 마귀의 종으로써
세 번 부인하지 않겠다 끝까지 따라가겠음을 장지지겠다
십자가에 함께 죽기까지 하겠노라 라고 하는
이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정치적인 무당적인 언어 말을 펼치는 겁니다
헛된 맹세 헛된 말
그러나 주님은 책망 하십니다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지 않는다 라고 말이죠

사도바울도 그랬듯이 바울이였을때에
베드로는 아 주님의 책망 덕분에 자신이 한 모든 말들 믿음들 행동들 모조리 다 헛된 맹세였음을 말이죠
그래서 자기가 자기가 뱉은 말로 인해서 그 법 그 선악의 버법법에 의해서 사로 잡혀 가는 것을 자기가 보는 겁니다

(롬 7:23, 개역)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즉 누워서 침뱉기를 하더라 말이죠 자기가 자기 눈을 찔러요 글쎄

즉 사랑이 없기에 완악한 수건을 벗었다가는 법을 벗었다 가는 돌삐 맞아 죽는다 라는
두려움 떄문에 말이죠 사랑이 없으니까 두려움이 엄습해 와서
나의 모든 다짐들을 몽땅 다 탈탈탈 털리는 겁니다
아 그럼 두려움 극복 극기 훈련을 하면 되겠넹
백날 귀신잡는 훈련 극기의 담력훈령으로 강심장을 만들었다 칩시다
그것이 도리어 더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더욱 예수님을 죽이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사랑은 외부에서 주어짐으로써
그냥 나는 사랑 없는 육신일 뿐입니다
시체입니다
주여 이 지옥의 몸 고쳐주세요 라고 인애와 자비를 바래여 하는데
거꾸로 더더더 번제와 제사로 강화훈련 극기 훈련
내 마음 속의 두려움의 영역을 작게 만들고
강한 깡다구를 확대시키는 훈련으로 나를 만들자 
바로 이런 의미는 사람들에게 먹혀든다 말이죠
문제는 그럴 것 같으면 말라꼬 성령을 선물로 주실 필요가 뭐가 있냐 말이죠
모든 주도권은 성령이 모두다 주관 하는데
바로 그런 악령 씌인 딱딱한 마음을 밭 갈고자 매일 매일 탄식하시는데
또 야가 엉터리 또 뭐 하나 주서 들어서 또 자기?? 뭐 해 보겠다고 합니다
주님 제가 야를 책망해서 지근 지근 밟아버려서
찢었다가 다시 물 줄께요
남은자만 돌아온다 라는 말이 뭡니까 제대로 단절 제대로 밭 갈아엎는
제데로 불도져로 밀어서 밟는 지근 지근 밟겠다 라는 뜻 아닙니까
마치 주님이 베드로를 속여서 어 저기 봐라
어디예? 풍랑 어 나 죽네 라고 물에 빠뜨려 다 힘빼서
탈탈 털어서 지옥의 몸 만들어 버리니까
비로소 남은자 되어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불러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죄에 데하여 심판
나는 죄인 아닌줄 알았다는 거죠 지옥의 몸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 할 지옥의 몸
시체
독수리가 있는 곳에 주검 싶체가 있는
육신인줄 모르고 자꾸 인간이라고 우겼다 라는 거죠
에라이 물이 빠뜨려 육신 고무풍선튜브로 바람이 빠진 성령이 빠진 육신의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생령에서 성령이 떠난 육체가 된 그 처음자리에서
다시 처음사랑을 첫사랑을 바라보도록 말이죠

자 괜히 길게 섰는데
아무튼 반드시 출애굽 사건 그때 조산들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너에게 펼쳐지는 사건으로 맹글어 버리고자
지금 주변 나라의 움직임을 다 누가 주관하고 있다?


그럼 제2의 출애굽이 에스겔 당시에만 벌리시겠다 라는 뜻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지금 현재 2024 이공이사 지구 종말 3초전인 이 지경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출애굽을 벌리시는 겁니다
여기서 무슨 놈의 구원 그 이후 라는 배불러 터진 소리를 하느냐 말이죠
매일 매일 죽이시고자
죽으면 죽으리라의 상황으로 몰고가시는 출애굽 사건을 벌리시겠다는데
주변을 모조리 애굽으로 모으시겠다 라는데
심지어 베드로도
유대인도 모조리 애굽이 되어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는 이 적나라한

장소 위치 이것이 에스겔 성전의 공간이 갖는 의미의 5대 제사
처참하게 갈기 갈기 어린양의 찢져김이다 말이죠
우리가 찢겨져야 하는데
주님이 우리의 손에 갈기 갈기 찢겨지심으로써

더 이상 내 잘 낫니 너 못 낫니 내노남불 내불남노 백날 그 앞에서
자랑치는 못하도록 그 입 다물라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니 너희는 잠잠할 지어다 라고
그 입 다물어서 혀 깨물정도로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대신 찢기시는 공간 위치 장소 입장을 펼치시는 겁니다
그렇게 제사장의 기능은 더러운 우리의 죄악을 어린양에게 안수해서 전가시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써 화목제물을 이루실때에

마귀는 제발 이 화목제물 값없이 용서하시는 이 피 용서만은 이루어 지면 안된다 라고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 십일조 냈다는 둥
어릴적부터 율법 다 지켰다는 둥

아니 모세 언약만으로 충분한데
말라꼬 새언약 다윗언약이 왜 필요하냐 라고

그 다윗 개인의 운명을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으로 확대 시켜서
어떻게 해서든 이 꺽으신 뼈로만 기뻐하시는 자로 만드시겠다 라는

새찬양자 삼기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

그래야 마귀가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한다 말이죠
인간 말종 만들어서
그 천하디 천한 낮은 자리에서 높은자로 만드시는
이 지혜자의 지혜를 찬양할꺼 아니겠습니까

지가 알아서 육신을 잘도 쳐서
지가 알아서 의를 잘 쌓게 되면 될수록

새언약을 찬양하겠습니까?
십자가를 자랑하겠습니까?
7에 70번 용서를 자랑하겠습니까? 이것이 남은자 로써 돌아오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음을 당한 자의 피 용서 자랑

아니면 남을 7번 용서하는 것을 자랑하겠습니까?
그런 자에게는 맞아요 새언약이 필요가 없어요
십자가의 영인 성령이 새영이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알아서 잘 하는데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지 말라꼬 다윗언약이
말라꼬 꺽으신 뼈의 죽음까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이 십자가의 밝히 또렷히 보이는 어린양의 죽음까지 가야만 하느냐 말이죠

애굽왕의 말대로 여기서 제사드리고 여기서 양잡아라 말라꼬 죽을려고
광야 광야 3일길 어린양의 죽음에 가느냐
가기도 전에 다 죽는데
저 모세의 허풍 듣지말아라
우리 다 까놓고 이야기 하자

아니 저 모세 딸랑 한 명의 말이 신뢰가 가느냐
뭐가 닥칠지도 모른채로 아무 증거 없이 무턱대고 가는게 맞느냐

아니면 이미 너희들이 지금까지 다 누리고 있는 것들
다 손 놓고 광야 죽음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왜 너희 자신들을 속이느냐
절대로 너희들은 애굽의 잔칫집을 손 놓을 자들이 아니잖아
왜 자기에게 사리를 치느냐

저 황당한 말 보다
너희 스스로가 이미 검증하고 검증했고 누려왔던 모든 기쁨을 버리고 간다
그러면 모세에게 가스라이팅 당하 거다

그런데 이 맞이 맞다 말이죠
광야 속에서 이 말들이 계속 반복이 되면서
모세를 얼마나 죽일려고 하는지
그럴 때 마다 주님은 꼭 평상시 나 복받도록 기적 좀 보여달라고 할때는 때려죽어도 안 보여주는데

꼭 이럴때에 모세를 죽일려고 할 때 마다 꼭 눈에 보이는 이적을 보여줌으로써
손 못 대도록 하니
이러면 우리 체면이 뭐가 되느냐 말이죠
진정한 기적은 나만 나쁜놈 만드는 십자가의 기적 아니냐 말이죠

화로다 화로다

아무튼 또 반복했는데 반드시 지옥에 간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불러내어서
흩어진 애굽 불러내어서
반드시 출애굽 사건 다시 일으키겠다 그러면
누구는 쫄딱 망하는 높은자 낮아지고
또 누구는 다시 죽었다가 다시 사는 낮은자 높아지는

그런데 이스라엘 조차도 애굽편에 서서 모조리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듯이
지금 이 소리를 에스겔이 외친다?
우찌 되겠습니까?

에스겔 오늘날 교회에서 제대로 설교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가 섬기는 그 교인들로부터 목베임을 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우와 로마서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에스겔 보다 천배 만배 더 교회에서 쫓겨나고
더더더 목베임을 당하는 죽은자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더더더 이 십자가가 또렷하다 말이죠
또렷하면 할수록
인간의 꾀 노림수 사기치는
그 사망의 총질 화살질 
예수님을 쏘아 죽이는 것이 더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겁니다
설마 다른 사람이겠지
천만해요
남이 아닌 내가 더더더 총쏘고 화살쏘고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죽일려고 하는 모습이
로마서를 통해서 더더욱 들통내신다 말이죠
사도바울 보세요 로마서를 증거하면 증거할수록 더더욱 죽임을 당하는 상황만 격개 됩니다

로마서 내용이 말도 안된다 라고 다들 거부하는 내용들 뿐이다 말이죠

비유로 말하는 자야 또 너냐 라고 말이죠

이게 출애굽입니다

여기에 무슨 놈의 개방이니 연합이니 라는 것이 있습니까? 잘잘법 잘믿고 잘살고 그딴게 여기 어디 있습니까?

정작 우리를 예수님의 죽음에 고난에 동행케 만들고자
육신을 주님이 매일 매일 갈아엎어 기경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죠
이 철저한 단절이 아니면 누가 예수님의 버림받으심을 보며
이 철저한 7에 70번의 용서가 아니면 누가 예수님의 다시 사심으로써
내가 죽인 내가 버린 예수님을 주가 되게 하신
그 주를
사랑한다 라고 뻔뻔스럽게 안 부르고는 못 배기는
나의 이름 삭제 당함 갈아엎음당함을
그래서 물에 빠뜨려서 어 주님 도대체 누구시길래
제 마음 속 깊이 있는 두려움을 건드리시고
외부에서 주시는 사랑을 심으셔서
뻔뻔스럽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더 잘 아십니다 라고
고백케 만드시는지요
왜 이런 성령을 부어주시는 지요

마귀가 세상이 너를 미워해서가 아닌
나를 이겨먹을려고 나를 미워해서
이런 사건들을 벌리고 있음을 보라 라꼬

왜 미워하는데요
세상이 악하다 헛된 맹세 헛된 말
책망 심판하겠다 라고
마귀를 이기겠다 라고 하니까
사망 권세를 멸하시겠다 라고 하니까

도리어 사망 권세가 예수님을 이기멱겠다 라고 
마귀가 예수님을 이겨 먹겠다 라고

이 보이지 않는 마귀의 활동 마귀의 깊이를 보라 라꼬
예수님이 보이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깊이인 이 십자가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고자

그 차이로 두 언약의 차이로
사탄을 가시화 시키시는 겁니다
물론 베드로는 마귀를 여전히 못 봅니다
그러나 마귀걸린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마귀를 보게 됩니다

죄 아래 팔려 사로 잡힌 자신의 모습을 자기가 보게 됩니다
비로소 보여주심 덕분에
마귀에게 핑계를 댈수 있는 믿음을 부어주십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왜 주변의 나라 하나 하나 이 새언약에 한 세트가 되는 바언약의 속성을 하나 하나 왜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나치 독일 히틀러 인해 독가스 실에서 모조리 다 죽임을 당하면서
그 회의감으로 인해 무신론이 본격화 되겠지만
정작 그거 하나 하나 조차도 왜 주님께서 독일이든 나치든 푸틴이든
스탈린 레닌 이런 보편적으로 나쁘다고 판명난 자만 그런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이 애굽왕이라는 원조를 따라하면서
문재앙도 마찬가지 도맂도리 무당은 더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왜 이들 하나 하나의 속성을 애굽이 추구하는 방향
결국은 황무지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지옥에 끄집어 와서
이제 너거 친구들 데리고 다시 들어가라꼬 똥개 훈련시키듯이 ㅋㅋㅋ
왜 주변 나라 하나 하나 점괘치는 것 하나 하나 까지 다 간섭하시면서
이런 출애굽 사건을 왜 다시 벌리시느내
네 맞아요 이미 새언약이 떳기에
그리고 이스라엘 너 마저
애굽으로 반드시 만드시고자
그래야 마귀가 베드로 잡아왔다고 미끼를 덮썩 물 듯이
마귀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거룩한 제사장 옷 에봇을 더렵혔다고 잡아 오듯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은 여자를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율법 지키는자의 본심을 드러내듯이

주님은 지금도 모든 인간 마음 속에 있는 찌기 하나 하나 그 혼합물
회칠한 무덤이라는 생명 없는 모습
그저 높고자

몸 보다 의복을 중시 여기고 그 의복이 자신의 위치를 말해주거든요
생명보다 소유의 넉넉함을 더 중시 여기는 이유는 소유로 인해사 계급이 정해져요
부잣집 아파트에 바로 앞의 가난한 집 아이가 부자친구따라 놀이터에서 노니까
아파츠 값 떨어진다 라고 경찰에 신고 했었나 그랬죠 몇 년전에
저번에 언급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의 세계에는 계급이 없는데 말이죠
어른의 세계에는 계급이 없어지면 경찰에 신고하고 난리가 납니다 ㅋㅋㅋ
꼭 성화론자들 같아요 너 얼마나 성화 되었어
너 얼마나 성경 말씀을 많이 알아?
구원이 뭔지 알기나 해?
믿음이 뭔지 알아?

무슨 조폭 깡패들이 다 교회에 모여 있어요 글쎄
이제 교회 다니는 젊은이들이 사라져서 시골교회처럼 자연소멸이 되니
이제 마지막 남은 돈벌이로 발악을 할 겁니다

그게 바로 마지막 목숨 보다 음식 먹고 사는 것이 목숨 보다 더 중시 여기는
그 강도의 소굴 짓을 교회가 오히려 더 앞장 서서 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게 애굽이라는 위치 이동 곧 높은 잔칫집에서 낮은 초상집 황무지의 이동은
애굽은 반드시 지옥이 작살 꽃았기에
왜냐하면 이미 지옥에서 소환했으니 너의 원래 출처가 지옥이니까 말이죠

이 마귀 애굽을 통해서 모든 육신들 심지어 이스라엘 조차도
애굽화 시켜야

이 사망 권세도 이기시고 멸하시는 이 주님의 사라이 새언약이 또렷히 보일 것 아니겠습니까

나 보다 나를 더 사랑
즉 나를 이기시는 사랑이다 말이지요

죽음의 몸인 나 
그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임을 내 너에게 반드시 보여주겠다 라고
내가 원래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고 말이죠

그 카이 호세아서에서 북이스라엘 창녀가 되고
심지어 남유다 까지 고멜이 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는

지금 남 이야기로 들이라는게 아닙니다
네 맞아요 그 고멜 됨이
그 창녀 됨이
새언약이 반드시 너를 그렇게 만드시겠다 라고
호세아 때가 아닌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때로써 성령의 때로서 
매일 매일 펼치시겠다 라는 겁니다

그래야 본래 남편으로써 잃어버린 자기 신부를 되찾는
이 주님이 누구신가를 반드시 알리고자 말이죠

그 카이 나는 네 압니다 아니까 그런 헛짓 하지 마시고요 라는 소리를 못하겠끔
그냥 일방적으로 편파적으로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그카이 베드로의 예수님 세 번 부인이나
가룟유다의 은 30냥 받고 판 것이나
이 상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화론자들을 보면 역겨워 토가 나올 지경이다 말이죠
왜 주님이 그 당시 가장 존경바든 실천의 대가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다 라고 한 이유를 알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그것을 해 보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아보니
그 계시의 기록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거죠

갑자기 은 20은 요셉 은 30은 가룟유다 맞을끼다 싶어서 혹시나 또 오류가 될까봐
검색해서 봤습니다
둘다 그 당시의 노예 값이다 말이죠
어 그런데 300데나리온과 은 30 이라는 제목만 봤거든요
갑자기 떠 오르는 생각이

아 맞네 이거네
아니 생각해 보세요 가룟유다 은 30냥을 받았지 수십억을 받은게 아니다 말이죠
즉 욕심도 없이 지극히 정상적인 거럐로 포장을 했다 라는 겁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어디까지나 자기 돈이고 그 돈을 친구가 퉁쳐먹을려고 하니
자기 돈 자기가 찾겠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뭐가 잘못되었느냐 라고 생각하는게 다 잘 못 된 겁니다
주님이 이 출애굽 사건을 매일 매일 벌리시는 묵은 땅을 기경하고 있는 판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기만의 세계 시집가고 장가가고 혼인잔치에 갈수 없?? 라고 한다는 겁니다
직극히 정상적인 거래를 하고
인간적이고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 라고 본다 라는 자체가 문제이다는 거죠
그 일상 그 지극히 당연한 일상 조차도
주 앞에서 다 불타야만 하는 심판의 대상인줄 모른다 라는 점입니다
즉 여호와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죠
창조주가 누군지 모르니
부모 없는 자식처럼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가는 겁니다
(인간은 평생 헛된 것만 생각하다가 지옥에 갈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억수로 강조하시듯 무엇이 중요한가 뭣이 중헌디입니다
얼마?? 중요했으면 이렇게 강조를 할까요
즉 이 말은 아무도 중요시 안한다 라는 전제로 깔고서 나온다는 거죠
피조물에게 무엇이 중헌디 중요한게 뭡니까
마침 뇌과학 강의를 듣다가 몰입에 대해 들었는데

https://youtu.be/UzXMvRNDrlw

이것이 중요하다 라는 인식이 외부에서 주어지면 몰입이 되어서
어떻게서는 뇌가 풀 가동이 된다고 하더라 말이죠
주께 부요한 자가 그렇습니다 반대로 주께 마음이 강팍햔 자 저 애굽왕은 이미 지옥 짓 헛짓만 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거죠
넉넉한 소유냐 정치냐 의복이냐 종교냐 음식이냐 경제냐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오로지 말씀으로 살 뿐입니다
자녀 아닌 자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외식 따위나 사생아처럼 아버지의 마음에 아예 관심 자체가 없을테니 말이죠 오로지 아버지의 매가 중요함을 아는 자는 자녀 뿐입니다

(잠 14:20, 개역)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계 2:9, 개역)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약 2:5, 현대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믿음이 부요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선물인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고후 8:9, 쉬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요한 분이시지만,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하게 되심은 여러분을 부요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계 2:9, 한글킹)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주님께 부요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눅 12:13, 개역)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눅 12:14, 개역)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2:16, 개역)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 12:17, 개역)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 12:18, 개역)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개역)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20, 개역)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개역)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각자도생 이라는 말이 오늘날 교회를 보면 너무 너무 또렷하게 보입니다
모조리 다 자기가 알아서 자기 처신 잘하면 된다 라는 것이 진리이지
무슨 놈의 복음을 믿는 자기 세상에 교회에 어디 있더냐 말이죠
눈 씻고 봐도 없어요
아니나 다를까 다행히도 문을 다 닫더라 말이죠
괜히 교회라는 간판을 달아서 그 동안 돈이 될 때만 달더라 말이죠
진작에 술집으로 바꿋던가 하지 말이죠
요즘이 아닙니다 제가 어릴적에 교회에 살다 싶이 놀았어요
그 교회 관리하는 분의 아들이 제 친구라서 말이죠
그러나 일요일만 되면 거기에 못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저 놀이터로만 알았지 교회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어요
집 바로 건너편에 있었으니까
그러나다 20대 청년이 되니까 그 교회가 팔렸는지
간판이 바뀌었어요
아주 큰 교회인데 한 쪽은 당구장 펫말로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기억나지 않는데
그 큰교회가 상가건물처럼 가계가 들어서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는 갸우뚱 거리기만 했어요
그당시 4층 건물 정도면 엄청 비싼편일텐데 1 2층은 완전히 가계간판으로 다 가려져서
무슨 건물인지 몰랐는데
제일 위층 3층만 당구장 표시 간판 하나만 보이길래 교회 건물인줄 알았다 말이죠 빨간 벽돌로 된 건물
아니 저럴 것 같으면 다 허물지 누가 봐도 교회 건물인 것 맞긴 맞은데
당구장 간판 ㅋㅋㅋ 3-40년 전인데
그때는 충격이였는데 처음 봐서리 그때 예수 믿기 전이였을때도 봤을 때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제는 워낙 흔하디 흔한 모습이 된 거죠
이제는 돈만 되면 뭔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술집 카바레 클럽 빠 ㅋㅋㅋ
자기들이 그런 모습 별로다 라고 그렇게 욕해놓고서는 막상 자기들에게 닥치는 일이 되니
누구든지 다 마찬가지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모조리 애굽화 시키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새언약이 먼저 떳기에
십자가의 피 용서가 먼저 떳기에
그 피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죄
정직한 영이 없어서 육신임을 환자임을 죄인임을 알고 우는 자로 만들고자 말이죠

그 피의 증상물로써 나타내는 입장(위치)인 기능을 펼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거죠

그 5-600년 동안 그때 출애굽때의 애굽은 600년 동안 다 흩어졌다 말이죠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전쟁을 통해서 전리품으로 이동 되기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주님은 그 흩어진 애굽을 오히려 일부러 다시 하나로 모으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니 그 당시 애굽이 있는데도 따로 과거에 흩어진 애굽을 모아서
일부러 이스라엘에게 다시는 저 애굽이 부러워 죽겠다 라는 마음을 못 먹도록
다시 돌이킬 땅 장소 위치 공간으로써의 자리를
다시 아예 없애버려서 다시는 나 돌아갈래 ~~~~~~~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는 소리가 안 나오도록 하시겠다 라는 하나님 자신의 다짐을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각인 시키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 그럼 우리 같으면 아 그러면 앞으로 벌어진 사건들이 예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개되는 사건이 우리가 예상하고 추측하는 방향 곧 입장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거죠

이것은 예수님에게 기대를 걸었던 가룟유다나 베드로의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상한 바를 똑같이 실현하고파 했던 자가 가룟유다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의로움대로 실행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 독립운동이 이루어질 테니까 말이죠
그러나 완전히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럼 베드로는 가룟유다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틀렸음을 봤으니
바로 급하게 수정에 들어가는 겁니다

아 이 땅에서는 안되는 갑따 그러면 이 땅에서는 안 이루어져도
죽어서는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독립운동에 나 베드로는 참여 해야 겠다 싶어서
베드로도 가룟유다와 마찬가지로 절대로 세 번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장 지지겠습니다 끝까지 십자가 같이 따라 죽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바로 이런 것이 지난 주에 말한 아나리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고방식인 성령을 속인 악령이 들어간 모습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사탕아 썩 물러가라 라고 베드로에게 책망을 퍼부으시는 겁니다

자 그럼 이런 사람의 일이 아니라면 그럼 하나님의 일은 뭔가?
오늘 본문에 애굽을 높은데서 낮은데로 만드시는 그 위치 이동을 시키겠다 라면

성령의 부으심은 그럼 악령이 들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고방식과 반대로
어떻게 펼쳐지느냐

바로 그것이 떨어지는 법궤를 잡은 웃사의 죽음과
레위인 오벧에돔의 기능의 차이로써 증거되듯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답게 만드시고자
이렇게 1300년 만에 애굽왕 바로왕을 지옥에서 끄집어 와서까지
빋드시 심판에 심판을 이렇게 퍼붓고 계시는지를 말이죠

이것이 바로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과의 차이인
다윗언약만이 살길이다 라고 새언약을 펼치시는 성령의 소욕으로써의 새마음을 부으심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애굽화 시키시는 겁니다

엥? 이게 무슨 개 뼛다귀 같은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인간은 웃끼게도 마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은 절대로 손 놓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우상을 함께 썩어벌린다는 점에서
이 하나님을 절대로 포기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럼 그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문제는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면 다행이게요
아 그럼 진짜 하나님을 앞으로 새롭게 믿도록 하자?
그게 가능할까요???

이것은 원래 너희 신은 우상이였지 단 한번도 여호와를 창조주를 믿은 적이 없었다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출애굽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라는 거죠

이게 중요합니다
단 한번도 출애굽 한 적이 없어요
지금 이 세대가 말이죠
그때 그 과거의 선조 조상들의 말일 뿐이지
mz세대들처럼 그 당시 신세대 애들이 그 고리타분한 과거의 이야기를 듣겠냐 말이죠
그렇다고 자기들이 말하는 새로운 것들이 과연 새로운 것 맞냐 말이죠
과거를 끌어와서 헌술과 새술을 썩은 여전히 찌기가 혼합된 것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이 출애굽을 그때 그 과거가 아니라
지금 오늘 실시 하시는 겁니다

어제까지 잘 믿었던 것 다 소용 없습니다 이미 어제의 것을 어제의 것으로 묵은 것이 되고
고립이 되어서 썩은 고인물과 같이 된 딱딱한 묵은 땅이기에
아무리 새로운 신세대가 꼰대들 믿음을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흐름을 추구한다 라고 해도
바리새인처럼 사두개인의 꼰대짓을 거부하고서 말이죠
그렇게 한다 라고 해도
역시나 묵은 것을 가지고 혼합물 찌기를 썩여져 있는 이상
새로운 외부에서 매일 매일 공급이 되는 사랑이 아니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사건을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자기 쪽에서 나올수 있는 믿음이 아예 없는 광야 라는 황무지
지옥
고아 과부 나그네 자리인 초상집의 자리인
그 낮은 자의 위치
죽은 자를 찾습니다 라는 광야 속 죽음의 자리에 놓여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그 신앙들 조차도 다 싹다 갈아엎어지는 기경의 사건이 동시에 펼쳐져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예상했던 구원사건인 가룟유다의 바램이 아니라
정반대인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이미 마귀에게 다 팔려 넘어간 입장인
저런 애굽과 똑같은 애굽화 된 이스라엘로 만들어버리시는 겁니다

이것이 웃사처럼 좋은 의도로 떨어지는 법궤를 받고자 하는 의로움이 아니라
그 반대인 바짝 엎드린 법궤를 어깨에 매고 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라고 육신의 자리 죄인의 자리 환자의 자리에 놓여지는
오벧에돔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주님의 새언약을 보도록 만드신다 라는 겁니다


웃끼게도 초창기 너튜브에 악마를 물리치는 예수님을
미국쪽에서 만든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왜 보통 가슻펠에 신나는 곡에 사탄을 물리친다 라는 그런 내용처럼
서부의 총잡이가 되어서 마귀를 총으로 쌍권총으로 쏴서 물리친다 라는 그런 내용이던데
그게 미국의 영웅주의 히어로물 슈퍼맨 사고방식의 복음주의랑 똑같다 말이죠
사회가 그런 것을 추구하니까 그 증상물로써 당연히 나오는 모습인데

정작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짐승의 세력은 예수님 당시의 로마의 세력까지 긴 그림자로써
애굽의 확장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로마 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까지 애굽화됨 모습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된다 말이죠

그렇게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출애굽을 성공한 유일한 분으로써
성령을 받으셨다 말이죠

바벨론으로부터 남유다 망하고
앗수르로부터 북이스라엘 망하고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더 큰 애굽 바벨론으로부터 망하고

물론 그들이 낮아졌을때에는 주님을 의지하다 보니 안 망했지만
바로 높아지면 바로 망하더라 말이죠

마지막 남유다 네 마리 우는 사자 곧 유다 왕 중에
여호야김 왕은 늘 애굽의 성향을 입장을 마음의 위치가 애굽을 동경하다 보니
더 큰 애굽인 바벨론으로부터 망하게 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 곧 여고냐는 포로로 잡혀간다 말이죠

이렇게 철저하게 짖밟히는 애굽을 격게 하심으로써
그 높아진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는

낮아지는 자가 되어라가 아니라 그게 바로 성화론 사기꾸들이고
낮아질수가 없기에
낮은 마음인 새마음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보기 위하여

짐승의 세력이 된 애굽의 긴 그림자 바벨론에게 짖밟히고
그 짖 밟혔으니까 또 내 옳지요?가 아니라

예수님을 죽인 세력이 바로 나 이다 라는 것을 까발리시는
이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미국놈처럼 총쏘고 하는 그런 딱딱한 것 들고 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총과 칼을 보습으로 만드는

이 낮아지신분 아니였다 면
내가 높아진 애굽인줄 몰랐고

그 애굽처럼 교만한 목이 곧은 백성인 나를
낮추시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높은자를 동경하다 높은자에게 멸망당하는
그 의문의 반복에서 벗어날길이 없기에

대신 죽으시는 이 사랑

총 칼 화살 쏘아서 사망권세 멸하시는게 아니라

그건 마귀가 바라는 것이고


(사 2:4, 개역)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또 그렇다고 촛불집회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어두움은 선을 빛을 이길수 없다 라고
또 빛의 아들들이냥 위선 떨어라 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내 싸움은 없어요
이미 마귀에게 포로 잡혀 있는 상황 뿐이니
그냥 잡혀라 라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 쪽에서 넘어오시는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는 이 분의 싸움이
총 칼이 아닌
주의 이름 전쟁이라는 것

결국 마귀만을 향한 전쟁이다는 거죠
우리가 괜히 선악을 아는 바람에
선을 추구하고 악은 버린다 권선징악 이라고 우기지만
정작 실상은
마귀 편에서 예수님을 죽이는 짓 밖에 한 적이 없다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포로로 삼으신
이 절망 속에서도

에스겔 딸랑 한 명 보내시고
예수님 딸랑 한 명 보내셔서

다시 출애굽 사건을 벌리심으로써

이 어린양의 화목제물을 다 이루시더라 말이죠
모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새 언약을 다 이루셨다 말이죠

마귀가 막고자 했던
마귀의 목적은 오로지 베드로 유혹이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가 아니라
마귀의 유혹은 딱 하나 예요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사람이 되자 이게 유혹이다 말이죠
왜냐하면 십자가의 이미 다 이기심을 못 보게끔
다 이루신 십자가의 숙제를 못 보겠끔

자기의 숙제는 자기가 알아서 하자
이게 애굽의 사고방식 아닙니까
마지막 네 마리 우는 사자 중 제일 마지막 네 번째
여호야긴의 삼촌
여고냐의 삼촌 시드기야 왕
여고냐가 딸랑 100일 왕자리 하고 포로 잡혀 가니까
그 빈자리에 시드기야가 왕이 되어서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독립운동을 가룟유다처럼 하더라 말이죠
이게 얼마나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냐 말이죠

은 30냥
삼백 데나리온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이 독립 운동에 참여치 않는 자는 나라 없는 고아 과부 나그네나 마찬가지 이니
노예로 팔아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말이죠

유대인이면서 유대나라의 독립에 관심도 없이
딴 나라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 세우겠다 라는
저 망상을
우리가 지금 처해진 상황을 격어서 눈 띄게 할려면
노예 생활 좀 해보라 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지극히 정상적인 입장 위치 아닙니까
꼭 애굽왕 바로 같아요

저 망상환자 모세의 되도 않는 말 따르지 말라 라고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볏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할당량 맞추라꼬
그 동안 얼마나 잘 대해줬는데
저런 망상자의 말을 들어?
군기 빠졌군
정신 바짝 차리게 해주겠다 라고

이 얼마나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 아니냐 말이죠

문제는 그들의 출처가 처음자리 처음 위치가 바로
지옥이다는 거죠

반대로 이스라엘은 아무리 애굽화 된 그 자리에 놓여서
미끼가 되어도

내가 너의 본래 남편이다 라는 새 남편만 있으면 된 겁니다

문제는 새남편이 없응께 문제인거죠
출처가 입장이 위치가
천국에서 보낸 인자가 새신랑이 안되어 주시겠다 라는 것이 문제죠

이렇게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천국과 지옥을 매일 매일 가르시는
두 소욕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 받는 모습은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재산이 됩니다

천국이 당기는 자로써 지옥이 당기는 자들로부터 미움받는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다시 사심이라는
이 새언약을 재산으로 후사로 기업으로 받았기에
함께 고난 받는 동행자로써
예수의 죽음을 우리 속에서 나타내시고
예수의 다시 사심을 우리ㅣ 속에서 나타내시는 겁니다

여기에 내가 나서서 손댈 것 하나 없습니다
주님이 하실 숙제로써
자신의 죽음을 우리 속에서 나타내심이지
내가 마귀와 내가 긍휼의 그릇을 내 마음대로
설정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매일 매일 기경 갈아 엎어짐을 당하는 입장일 뿐입니다
그저 매일 매일 목이 곧은 백성으로써
막 사는 자로써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 사탄의 깊이를 매일 매일 지적 받음으로써

매일 매일 그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를 매일 매일 새록 새록 새롭게
누리는 증상을 즐길 뿐입니다

마치 감기가 눈에 안 보이지만
감기가 들어오면 온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나고 기침에
그래서 모든 것을 손 놓게 하듯이

주의 사랑이 들어오면
고난 핍박 징계 책망 사랑의 매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에 완전 포위 당하는

그 사랑의 넉넉히 이기심을 당함에 있어서
매일 매일 그 사랑에 심심하면 지는 것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당신은 어쩔수 없는 피 남편이군요처럼
당신은 어쩔수 없는 나 보다 옳을 수 밖에 없는 분이시고
나는 어쩔수 없이 매일 매일 틀린자 밖에 안되는 군요 라고 말이죠

틀린자
빚지자
막사는 자
환자 죄인
주께만 범죄한 자 만드시는 당신이 나 보다 옳았습니다 라고




















Posted by 김 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