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1 하나님 배반한 형벌; 앗수르 칼에 죽는 젖먹이, 임산부 배 가름 (호 13,15-16)
2025. 2.23.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호세아 2023 2025. 1. 31. 14:48
23-30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호세아 13,15-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488장 새 428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찬송가 307장 새 478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송가 488장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새찬송가 428장〉
1.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2. 내 영혼에 노래 있으니 주 찬양합니다
주 귀를 기울이시사 다 듣고 계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3. 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주 함께 하실 때
그 평화 내게 깃들고 주 은혜 꽃피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4. 내 영혼에 희락이있고 큰 소망 넘치네
주 예수 복을 주시고 또 내려 주시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찬송가 307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새찬송가 478장〉
1. 공중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할 것 무어냐
2. 들의 백합화를 보라 길쌈수고 안해도
솔로몬의 입은 옷도 이 꽃만 못하였네
아궁속에 던질 풀도 귀히 입히시거든
사랑하는 자녀들을 입히시지 않으랴
3. 너희들은 세상에서 무엇 먹고 마시며
무슨 옷을 입고 살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는 이방 사람들이 간구하는 것이요
너희 하늘 아버지는 너희 쓸 것 아신다
4. 너는 먼저 주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말지니
내일 염려 내일하라 오늘 고생 족하다
〈호세아 13,15-16,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호 13:15, 개역) 저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호 13:16, 개역)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호 13:15, 현대어) 에브라임이 비록 갈대 숲속에서 무성하게 자란듯 보일지라도 여호와의 ㄱ) 동풍이 사막에서 그에게 불어 닥치면 온 나라를 말려 놓을 것이다. 모든 샘물이 마르고 초원이 불타 그들은 목이 말라 죽을 것이다. 또한 창고에 쌓아 둔 귀중한 그릇들을 약탈당할 것이다. (ㄱ.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 앗수르의 군대를 가리킨다)
(호 13:16, 현대어) 사마리아는 그들의 하나님께 반역한 죄값을 치러야 하리니 그 백성은 침략자의 칼에 엎드러지고 젖먹이들은 땅바닥에 메어쳐져 깨져 죽을 것이요, 임신한 여인들은 칼로 배가 갈릴 것이다.‘
(호 13:1, 현대어) [우상숭배로 나라가 망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브라임 지파가 하는 말은 온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만큼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런 지파가 바알신을 섬기어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였다.
(호 13:4, 현대어) [죄인에게는 하나님이 맹수와 같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뒤부터 나는 언제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희에게는 나밖에 다른 하나님이 없고 나밖에 다른 해방자가 없다.
(호 13:9, 현대어) [왕국의 종말] 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를 파멸시키겠다. 그러나 누가 너를 구해 줄 수 있느냐?
(호 13:12, 현대어) [피할 수 없는 멸망] 에브라임의 모든 죄악이 이제 벌을 받기 위해 추수되어 단으로 묶였고 저장이 끝났다.
(호 13:1, 쉬운)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말씀> 에브라임이 경건하게 말할 때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높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을 섬겨 죄를 지었으니, 그들은 죽어야 한다.
먼저 제목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하면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간따나 안 좋은데 더 안좋게 된다 라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오히려 잔인하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서 영적인 강간을 하니까 말이죠
뭐 가장 존경받는 성화론부터 저 저급한 빤스 까지
과거 천주교가 했던 짓들을 그대로 따라하니까 말이죠
배부르면 다 그렇게 됩니다
아무리 정의를 외치는 사제운동을 펼쳐도 성화운동을 펼쳐도 말이죠
바로 그런 자기들의 말을 안 들어준다 라고 복수를 그냥 하는 정도가 아니라
끝까지 해요 끝까지
자신들의 남들로부터 존중받는 신앙심을 인정 안해 준다고 말이죠
그래서 인간의 믿음은 복수심이다 말이죠 자기 이미지 조금이라고 가치를 훼손 시키면
저런 무서운 하나님의 형벌 보다 더 잔인하게 하겠다 라고
자기가 하나님 보다 더 한 자 이다 라고 나서는 겁니다
말이 하나님의 형벌이지 이스라엘의 죄악을 앗수르의 죄악으로 징벌하시는
인간들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누워서 침뱉는
어딜 사기를 칠려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라는 취지 인 겁니다
이런 하나님의 형벌 마저도 없으면
자식 잡아먹고 부모 잡아먹는 그 짓 마저도 계속할 테니까 말이죠
그것도 하나님 핑계 대면서 예수님을 잡아먹었던 그 증거가
십자가 라는 또렷한 하나님의 저주 아닙니까
뭐 고때만 부모 잡아먹고 자식 잡아먹었겠습니까? 날 때부터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으니
혈육으로 난 자는 다 그렇다 라고 보편화 해 버린 겁니다
그래서 다들 선지서로 넘어가면 다들 싫어하는 겁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이런 선지서를 이야기 하면 돈 장사 안 된다 라고
간따나 세계 경제가 안 좋은데 누구 교회 말아먹을 일이 있냐 라고
꺼려하지요
설사 한다고 해도 교회 반이나 떨어져 나갈 각오를 해야 하는데
다들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교회까지 그런 부정한 삐딱한 소리를 해 보세요
지금 평강이다 평강이다 긍정적인 웃음 치료 레크레이션을 전도사들이 기타 들고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왜 저런 잔인한 형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느냐 라고 말이죠
그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희생양을 찾아서 퍼부어 버리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정당성인 명분을 찾는 이유가 바로 모든 인간이 선악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런 부정적인 하나님은 싫다 좋으신 하나님을 선호 한다 라고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구약만 믿겠다 라는 유대교 곧 다윗 언약 고만 캐라
모세 언약 만으로 충분하다
십자가 고만 캐라 부활만 이야기 하자 라는 오늘날 목사 즉 과거 천주교를 거쳐서 나온
개신교 목사들의 징징 거리는 완악한 수건 쓴 자들과 똑같습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소리를 하면서 뒤로는 영적인 강간하는 자들이
저런 하나님의 형벌 보다 더 나쁜 것 아닙니까
오히려 이런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다는 자체가 오히려 축복이요 사랑받는 자식이다는 증거죠
사생아 같으면 이런 매로 아예 없어서 그냥 내어버려둠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나오는 다들 싫어하는 하나님의 형벌을 어떻게 해석하는고 하니 즉 선악으로 해석하겠지요
아 저렇게 벌 받는 거 보니 하나님이 있기는 있는 갚따 신이 있는 갑따
이것이 개같은 이방인의 반응이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도 그렇구요
오늘날 교회도 그렇다는 겁니다
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을 늘 점쟁이 찾듯이 찾았던 거죠
오늘날 교회가 그래요 점 집입니다 무당집인 산당이다 말이죠
괜히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 특히 시온에 예루살렘에 산당들이
높고 넓고 길고 신비롭게 세워진게 아니지요
오늘날 교회를 절간으로 다들 만들었잖아요
그렇다면 벌 안 받기 위해서 미리 예방차원에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하자
옳지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법이 있구나 법을 지키자
옳지 종교에서 만들어 놓은 율법이 있구나 각종 종교의 교리가 있구나
교리는 지키자
옳지 가정에서 만들어 놓은 윤리 도덕 양심 등등이 있구나
이런 것을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어느정도 지키면 저런 형벌을 받지 않겠구나
아 그러고 보니 지옥이라는 것도 바로 저런 형벌의 연장선이니까
천국에 갈려면 이 땅에서 잘 행동하면 갈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말이죠
실제로 모든 인간이 그렇게 하고 있어요
안 그러면 무법 천지가 되어서 경제 종교 정치가 다 무너져서
심심하면 자기 안 알아준다 라고 징징 거리면서 계엄을 외칠끼다 라는 겁니다
아무리 미워도 말이야 그 순간 만큼은 야당이 좀 박수를 쳐주고 말이지
계엄 핑계도 참 좋다 말이죠
무슨 애도 아니고 징징 거리니 정작 자기는 남들에게 박수한번 안 쳐 주면서
야박한 짓을 그렇게 해 놓고서는 자기한데 안 해준다 라고 복수를 끝까지 하고 있으니
오이디푸스를 못 넘어서는 애다 말이죠 애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모든 혈육은 다 이렇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출애굽 할려는 마음이 없고
본향으로 향하기는 주저 주저 하는 겁니다
이것을 또 반작용으로 한풀이로 이 기회에 이재명에게 몰빵하자 라고 나오는 그 놈들 역시나 복수심이기는 맹 마찬가지입니다 어준이 같은 애들 말이죠
애라 애
그래서 바로 이런 교만을 치심으로 인해서
주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말하시고자 재앙을 펼치지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인간의 잘잘못에 의해서 벌어진 재앙이 아니라
(그것은 사생아를 걸러내기 위한 올무다 말이죠 그래서 율법은 올무 작용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을 거쳐서 몽학선생으로써 율법의 완성은 저 분이다 라고 화살표 기능을 하지요
기능 보다 존재가 될려고 하니까 이 올무에 다 걸려 넘어지는 겁니다
니는 죄 지을줄 모르지 나는 막 살줄 알아 라고 막사는게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죄인인데 무식한 놈 졸지에 자기 의를 자랑하는 셈이 된 거다 말이죠 결국은 복수심이 가득한 인간의 신앙 곧 혈육으로 난 자들의 모임에 또 적응하고자 바르게 살기 운동을 또 펼쳐요 ㅋㅋㅋㅋ)
아무리 잘해도 역시나 재앙을 퍼붓기는 매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모든 인간들 특히 교회 다니는 자 역시나 반발하고 거부하기는 맹 마찬가지로써 나타나는 이유가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인간이 잘잘못에 의한 징벌이냐 축복이냐 라고 따진다는 자체가 선악이요
그 선악은 하나님과 같이 된 자신을 먼저 염두해 둔다는 점에서 교만이다 라고 지난주에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런 자들은 마치 기드온이 에봇을 던져주니까 눈에 보이는 에봇을 우상숭배 하듯이 제사장 옷을 말이죠 마찬가지로 교회 조직 모임을 우상숭배하는 겁니다 정작 오늘 본문처럼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나 민족을 해체시키는 것이 복음인데 왜 썩은 동앗줄을 잡을 수 밖에 없는 사망의 몸인줄 모르는 것과 같은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충성해야 핑계거리로 삼거든요 나 봐라 내 열심히 특심이다 라고 나는 숙제 안 한 것 아니다 숙제 했는데 왠 형벌이냐 라는 명분찾기입니다 바로 그것을 날려버리고 깨뜨리기 위한 먼저 있었던 7천명인데
나만 남았다 라고 나 가 먼저 있었다 라고 우기니까 말이죠)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있고 즉 의사가 먼저 있고
그 의사가 누구신가를 말하기 위해서 환자가 동원이 되는 겁니다
즉 죄인이 동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죄인이 아닌 인간으로 자꾸 출발하고자 하고
그 인간은 아직 축복받을 자도 아니고 아직 저주 받을 자도 아닌
중간 상태에서 앞으로 저주받을지 앞으로 축복받을지 모르는 가운데
그 빈칸에 그 여백에 자기 숙제로 정답을 어떻게 쓰느냐
오답을 쓰느냐 정답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라고 보는
자기 숙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렸다 라고 보는데
이것이 약속을 따라 나지 않은 자들 곧 육의 생각
하나님과 원수 된 생각을 하는 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숙제 가능할 때 100세 이전에
너무 늙어서 무정자 고자 되기 직정에
임신 불가능하기 직전인 임신 가능한 씨앗 안나오기 직전에
이 열국의 아버지가 되고자 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이요 빈칸에 숙제로 정답쓰고자 애쓰는 자기 의를 쌓는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데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데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공백 이 빵구멍 뚫기 라는
약속에 복종치 않는데요 글쎄
오히려 단절 되고 불임이 또렷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손을 떠난 주님의 숙제로 난 자가 바로 이삭으로 난 자 만이 약속의 자녀 라고
다음주에 할 로마서 곧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 이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가를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또 사랑받고자 그 의문의 반복을 할꺼다 말이죠 자기 숙제로 백날 해 봐라 말이죠 되는가?
큰 자 되신 예수님이 와서 섬겨주지 않으면 약속의 자녀가 될 수가 없는데
자기가 큰 자가 되고 자기가 자기 숙제로 축복의 근원이 될려고 하니까
그 교만으로 인해 늘 미끄러지는 그 의문의 반복 언제 까지 할꺼냐 말이죠
큰 자는 나 아니오 저 분이
십자가의 저주로써 다 이루심으로써 우리는 도리어 그 완료 덕분데
빵구멍 뚫힘으로서 다 이루심을 원인 없는 결과로 누리는 겁니다
빵구멍은 원인 없도록 하심인데
자기가 빈칸에 자꾸 적을려고 하니까 또 제대로 쓰면 또 몰라
항상 주님의 숙제인 십자가와 반대되는 답만 적으면서 말이죠
백날 긍정으로 적어보세요 주님은 반대 부정을 적지
반대를 위한 반대
너가 서 하면 나는 동하고
너가 동하면 나는 서 한다 만을 정답으로 적는데
무슨 수로 우리가 정답을 적겠습니까?
아니 죄인으로 출발하는 이유는 의사를 말하고자 하는
약속의 코스요 언약의 코스인데
베드로는 그런일은 없다 끝까지 따라가겠다
장지지겠다
까짓꺼 십자가에 정 그러면 같이 죽겠다 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이
사탄아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는구나 라고
갑자기 사탄이 나오는 겁니다
자기가 큰 자가 되고 자기가 축복받은 자가 되고 복의 근원이 되고
자기가 의사가 될려고 하니
아니 그럼 소는 누가 키워 하듯이
아니 그럼 환자는 누가 되느냐 말이죠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자 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데
다들 긍정적이고 좋은 자리 모세의 자리 다 앉아버리면
그럼 구원자가 찾는 죄인
잃어버린 이스라엘 양에게 보내심을 받은 자는 뭐가 되느냐 말이죠
그렇게도 다들 자기 숙제 그렇게 잘도 하는데 왜 메시아를 구하느냐 말이죠
아 우리 숙제는 우리 숙제이고 단지 우리가 못하는 경제 곧 돌이 떡덩어리 되도록
종교 제발 인정해 달라 라고 징징거림 목사말 믿어다오 ㅋㅋㅋㅋ
정치 제사장 나라 되게 해 달라 라고
점쟁이 찾듯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달라고
임금을 세우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잘 안되는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옥을 그 수치를 손으로 가리우는데 내 손이 너무 작아 더 넓은 손 개인이 모여서 다수가 된 그 국가의 손으로 가려달라 라고 임금을 자기 배를 위하여 세웠는데 도로 노예가 되는 도움받고자 함이 도로 코 끼이는 복종 안하면 가족들 배 곪아 죽는
경제(자기 배) 종교(구원, 사랑받기, 당신은 사랑받기로 태어난 사람) 정치(화평, 가자지구 분쟁 우크라이나 분쟁 백날해도 안되는 것 깡패 트럼프 나타나니까 한방에 해결 ㅋㅋㅋ)
그것 때문에 눈에 보이는 임금 세우듯이
눈에 보이는 교회를 그런 이유로 숭배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임금들 다 실패해서 더 이상 안나오거든요 이게 다윗언약 이다 말이죠
그카이 성전신앙으로 유대인들이 싹 다 바뀌는 겁니다
이제는 그 성전도 다 박살 냅니다
눈에 보이면 무조건 의지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소망이 생겨요
보이지 않는 소망은 절대로 안 생겨요
보이지 않으니까
즉 소망은 내가 소망하는게 아니라
보이는 것이 나에게 소망을 집어넣는 겁니다
내가 얼룩을 응시하는게 아니라 얼룩이 나를 응시합니다
내가 죄를 다루는게 아니라 죄가 나를 다루어요
그 죄를 거쳐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겁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 한다 라고
이게 뭐 난체라고 하는데
전혀요 원수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환자가 있는 곳에 의사가 있다는 거죠
우리는 반대죠 건강한 자가 되어야 의사를 만난다 라고 거봐요 자기 숙제로
의사를 만날려고 하지 자기가 응시하겠다고 보는 겁니다
그 반대로 나를 수술칼로 찌르는 그 의사가 나를 제대로 살리는 의사인 겁니다
이런 의사는 만나기 싫어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나 라는 우상을 깨뜨리시면서 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칼로 부서뜨리고 아기를 밴 임신부의 배를 갈라버리시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앗수르가 그렇게 하도록 말이죠
에이 하나님 나쁘네
네 맞아요 반드시 그 윤리선생처럼 반드시 나쁘세 보셔야 합나다
그렇게 핑계 대어야 해요
안그러면 앗수르를 숭배한 그 본심이 들통나니까 말이죠
꽁꽁 자신들의 죄악을 자기 손으로 숨기고 가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신했다는 말이 뭡니까
앗수르를 숭배했다는 말 아닙니까 앗수르의 우상인 다른 신을 섬겼다 말이죠
그래서 자기가 숭배한 그 우상에게 당하도록 하시는 겁니다
에이 어차피 우상숭배 안해도 주님이 심판주가 되셔서 역시나 매를 징계를
심판을 저주를 오늘 나온 형벌을 어차피 내릴꺼면
차라리 우리가 선택한 저주인 앗수르의 신을 섬기는게 낫잖아요
내가 선택했응께 내가 매 맞아도 할 말 없도록 핑계 안대는게 낫잖아 라고
형벌 보다는 핑계꺼리 삼는 것을 더 좋아라 심리적으로 덜 한 쪽으로 선택하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핑계 대지요 자신은 미리 조건과 원인을 갖추었다 라는 내 열심히 특심이라는
핑계거리를 확보 했응께 안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매
내가 인정하는 매 죽기직전까지의 매 정도는 각오하고 선택했다 라고 핑계거리를 확보하겠다 라는 겁니다
아닙니다 그냥 둘다 무조건 아예 죽여버리시는 식입니다
앗수르의 매를 당하든
하나님의 매를 당하든 무조건 그냥 죽이는데
저 젖먹이의 칼 맞아 죽고
아기를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가르는 그 저주를
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처참합니까
피할수 없는 저주인 절대저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취사선택가능한 매 맞기?처럼
자꾸 피할수 있다 라는 가능성을 소망을 자꾸 가져요 글쎄
100대 매 맞는 거 보다 50대 맞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겁니다
1대만 맞아도 죽는 판국인데
지옥도 카스트제도처럼 성화론처럼 남 7번 용서하면 되느냐 라고 계급을 매기듯이
제일 낮은 지옥에 가겠다 라는 겁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냐 말이죠
(교회가 이걸로 장사했잖아요 지옥을 계급 나누어서 가급적이면 낮은고통의 지옥이라도 갈수 있도록 그래서 나온 기가막힌 마케팅이 연옥 아닙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상태
이미와 아직의 긴장상태 라고 이렇게 빈칸을 맹글어 놓아야 다들 숙제 할려고 달려들거 아니냐 말이죠 이 얼마나 기가막힌 마케팅 전략 아닙니까 그게 오늘날 성화론이다 말이죠)
그래서 주저주저 산모의 산로에서 지체를 하는 겁니다
나올꺼면 나오고 들어갈꺼면 들어가던가?
애굽으로 돌아가던가? 출애굽 빠져나와서 본향으로 향하던가?
찹지도 더웁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그저 자그하만 한 개인의 인간이
축복 받냐 저주 받냐 라고
자기 숙제에 따라 갈라진다 라고 보고 있는데
그 시선을 그 교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미 먼저 나타난 하나님의 겸손인 심판이요 형벌이다 라는 겁니다
솔로몬 재판 이야기에서
두 기생이 그저 작은 나라 작은 저 깡촌 시골 변두리 저 끝자락 시골에서 벌어진 사건이
졸지에 하늘 높은 그 세상의 중심인 그 정중앙의 궁궐 속에 이 아무도 풀수 있는 사건이
들어가서 온 국민이 목격할 수 있도록 심지어 마귀 보란 듯이 대 놓고서
이 판결이 지혜가 벌어지듯이
이게 바로 지혜라는 인물은 천한 계집을 왕비에 높이는 그 섬김이 먼저 있기에
왕이 먼저 있기에 우리는 천한 계집의 자리에서
반드시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는 그 지혜자의 섬김을 누리는 증상물로 태어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이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난 겁니다
그것을 부모죄냐 자기 죄냐 라고 죄문제 신학학위 연구할려는 바리새인이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하듯이 이 원인 없는 결과에 반발하도록
너 누구 제자야 나는 1300년 묵은 모세제자야 너는 겨우 딸랑 3년짜리 된 예수 제자이지 라고 비아냥 거리는 겁니다
거보세요 평상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기의 죄악을 가렸던 그 빈칸에 여백채우기가 얼마나
미완료를 누렸으면 저랬을까요?
저들이 버린 예수
나는 예수 제자 아니거든 1300년 묵은 모세 제자거든 이라고
버린 예수를 아 내 눈을 완료 하신 그 분이 예수님이셨군요 라고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이 날 때부터 소경된 실로암 소경은 머릿돌로 내 낭군이시군요 라고
뒤에서 껴 앉는 겁니다 해를 품은 달 해품달 예수님을 품은 실로암 소경 예품실
보자 이것이 예레미야 서에 있었는데 몇구절이였지 검색해야 겠넹
(렘 31:22, 개역)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렘 31:22, 새번역) 너 방종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주님께서 이 땅에 새 것을 창조하셨으니, 그것은 곧 여자가 남자를 ㉡안는 것이다." / ㉡또는 '보호하는'
(렘 31:22, 쉬운) 방탕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헤매겠느냐? 여호와가 이 땅에 새 일을 일으킬 것이니 여자가 남자를 안을 것이다.”
(렘 31:22, 한글킹) 오 너 타락한 딸아,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이는 주가 땅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였음이니, 여자가 남자를 두르리라.
(렘 31:22, 현대인) 신실치 못한 딸아, 네가 언제까지 방황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이 땅에 새로운 일이 일어나게 할 것이니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것과 같은 아주 색다른 일이다.
(렘 31:22, 가톨릭) 배반한 딸아 언제까지 헤매려느냐? 주님께서 세상에 새것을 창조하셨으니 여자가 남자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아주 작은 개개인으로써의 개인의 형 에서와 개인의 동생 야곱
이 두 개개인의
축복 사랑 받냐 못 받냐
저주 미움 받냐 못 받냐 라는 사건이
졸지에 오늘 본문에 생뚱맞게 바로가 등장해요
아 그동안 안 보이던 인물이 보이더라 말이죠
심심하면 에서냐 야곱이냐 라는 것에 강조로 인해
전혀 안 보이던 어 바로 라는 인물도 등장했었네 라고 갑자기 확 뜨이더라 말이죠
바로 이겁니다
왜 바로왕이 등장해야 하는 겁니까
이 두 개인의 사적인 인물 에서와 야곱이
졸지에 전체 지구의 역사를 통 틀어서
이스라엘과 애굽이라고
뭐뭐 아니요 뭐뭐 라고
애굽 아니요 이스라엘 이라고 인간 역사를 아예 다 동원에서 묶어버리더라 말이죠
약속의 자녀와 육에 따라 난 자의 대립으로써
두 언약
이삭과 이스마엘로 한 세트를 구성하더라 말이죠
땅의 계집 하갈이 낳은 자식 이스마엘과 곧 가정부와 그 자식과
하늘의 자유하는 여자가 낳은 자식 이삭과 곧 아내와 그 열매
죽어도 다시 사는 이삭의 희생제물 됨 말이죠
뭐 하나 육적으로 가는게 없어요 그저 약속으로만 가는 겁니다
아니 이삭도 한 마을에 그저 조그마한 땅에 한 명의 개인이요
이스마엘도 마찬가지 인데
왜 이것이 우주에 까지 확대 재생산되득히 언급이 되느냐 라는 겁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여러분이 뭐 지금 저 북한에 가서 전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겁니까?
자그마한 동네 그것도 지금 잘 안 되는 판국에
그저 한 가정 안에서도 복음 때문에 불화가 일어나는 판국에
저 북한
이 가까운 북한도 안 되는 판국에
뭐 저 이슬람 국가 선교 라고 거창한 그런 일을 벌리지 않아도
지금 바로 코 앞에 있는 일도 안 되는 판국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것을 영적인 싸움으로써
우주전쟁으로 증폭시키는 겁니다 이 얼마나 허풍이 심하냐 말이죠
바로 왕이 그래서 저 모세의 허풍에 속지 말라고 하는거 아닙니까
다들 그래 생각하고 있는데 고맙게도 바로 왕이 그래 말해주니까
그 허풍에 안 속겠다 라고
아무도 나올 마음이 아무도 없었어요
누가 그 광야 광야 삼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보고자 합니까
보이지 않는 소망은 소망 자체가 믿음 자체가 생길수가 없어요
주님의 믿음을 심어야만 약속에 따라 나오지
아무도 나올 마음이 없었다 라는 겁니다
우리는 전혀 원하는 바도 아니고 동의하는 바도 아니고
참여한 적도 없는데 영적인 싸움으로써 약속대로
그럼에도 불구라고 언약대로 코스를 밝게 하신다 라는 겁니다
첫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다니는 학교에서
다니는 회사 직장 공장에서
다니는 심지어 교회에서 왜? 교회가 가장 복음을 거부하는 강도의 소굴이니까 말이죠
굳이 북한 굳이 저 이슬람 국가에 가서 선교할 필요가 없어요 괜히 잡혀가
국가 망신 시킬 뿐이다 말이죠 똥물교회처럼 말이죠
괜히 아프가니스탄 피랍 당해가지고 정 그러면 죽으면 죽으리라 하던가
자기들 죽기 싫어서 젊은 애들 죽일 판국이다 말이죠
그래서 임마누엘을 안 구할란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더라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이 애를 칼로 죽이고 임신부를 배 가르네 라고 여기 본문에 적혀 있다고
적혀 있으니까 하나님이 한 거네 라고 우기지만
주님은 요놈 드디어 미끼를 물어버렸넹 이라고 너거들의 평상시 자식잡아먹고 부모잡아먹는 것을 까발리는 식으로 언급하시는 겁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잡는 것이 율법을 쥔 남자들의 목적이 아니라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잡고자 간음한 여인을 핑계로 삼았던 거죠
이것이 고때만 그런게 아니라 늘 그래왔다는 겁니다
유대사회가 늘 여호와를 늘 그렇게 시험해 왔던 겁니다 점쟁이 찾듯이 하고
선지자를 죽이고 거짓선지자를 쫓고
빤스의 사태는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이였고 늘 그랬던 겁니다
저랬던 천주교에서 아무리 빠져나와도 소용 없어요
뭐 다 그런게 아니다 안 그러는 교회 많이 있다 라고 생각하시면 오늘 본문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깔려 있기에 그 교만을 꺽으시는 차원에서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즉 말씀을 지키는 자는 축복이요 축복이요 라는 성경 3분의 1만 먹고
말씀을 어기는 자는 저주요 저주요 라는 성경 전체 3분의 2는 안 먹겠다 라는 심뽀죠
그카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미화 시키는 말만 골라서 먹어요
그럴 때 마다 예수님은 임금 안되시겠다 라고 도망치시는데 말이죠
도망치는 예수님을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을 정도이니까 말이죠
특히 성화론이나 개혁주의 따지는 놈들이 더 했으면 더 하다 말이죠
천주교애서 그렇게 빠져나와 놓고서는 나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래 라고
열달 만에 어미 뱃속에서 나올락 말락 하고 주저 주저 지체하는 어리석은 자식처럼 말이죠
제가 제일 많이 공격받은 내용이 교회로부터 말이죠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느냐 라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도리어 저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예수 믿고 1년 쯤 되니까 한 둘이가 아니게 나 보다 더 오래 교회다녔다는 놈들이
나이도 상관 없이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 공격을 해요
왜 저 아프리카 굶어죽어가는 아이를 왜 하나님은 안 돌보냐 라고
그런데 그때 보자 제 나이 만으로 18살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고
1년이 지난 19살 때부터 아직까지도 그것으로 공격하고 있어요
35년 동안 지나도 아직도 그것으로 교회 다니는 자들로부터 공격 당하고 있어요
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 입니까
결국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돈을 믿는 우상숭배자들이다는 거죠
저런 제목 저런 말씀 얼마나 꼬투리 잡기에 딱 좋냐 말이죠
정 아프리카 걱정 되면 니가 목숨 걸고 도와주던가?
그건 또 때려죽어도 싫데요
그렇게 하는 선교사는 존중해 주겠데요 글쎄
뭐 그리 고르고 골라서 하는지
정작 아프리카도 아닌 주변인 심지어 자기 자식 마저도 지옥 못 보내서 안달이 난 냥
성령을 구하는게 아니라 전갈 독을 달라고 떼쓰고 얼마나 징징거리는지
지 혼자 지옥가지 남을 지옥 못 보내
심지어 자기 자식도 지옥 못 보내서 안달이 난
제가 우연찮게도 목사들 자녀들과 본의 아니게 대화를 하거나
만남을 갖게 되면 목사 친인척들이
그 아비에 그 자식들처럼
복음을 때려죽어도 안 듣는 그야말로 교만하기 짝이 없더라 말이죠
차라리 아빠 목사에게 반항 하는 아이가 좀더 솔직해요
전혀 안 믿겨진다고!! 막 울어요
그런 아이는 목사인 아빠도 안 믿는 자인게 분명한데 저러고 있으니 애가 괴로워 하더라 말이죠
이런 아이들 많아요 그 비슷한 사람이 전두환 손자 아닙니까
안 믿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교회로 인해 돈이 되고 먹고 살 것 걱정없이 지내다 보니
예수님을 알고 믿는데는 부족하더라도
정작 교회 장사로 인해 돈 벌어 먹고사는 그 혜택은 너무 너무 또렷하다 보니
그 믿음은 그 돈에 대한 믿음은 너무 너무 확고 하더라 말이죠
그게 바로 목사 부모가 이미 아이를 칼로 죽인 것이고
이미 아이를 밴 임산부의 배를 가른 모습이다는 겁니다
자기 자식에게 그러고 있으니 교인들이야 뭐 두말 할 것 없지요
그래서 하는 짓들이 그저 돈 뜯는 겁니다
딸래미 알뜰폰 회사 차려서 가족 기업을 먹여 살리고자
등에 빨대 꽂아 피 빨아먹는 거죠
조목사가 그짓으로 돈 벌어 성공하니까 다들 따라 하는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 다들 대 놓고 하지 않는 듯 사기를 친 것을
조 목사가 아주 대 놓고 하니까 다 따라해요
그렇게 욕을 했던 합동측도 뭐 더 깨끗하고 근본주의라고 우기는
고려파는 제가 직접 격어 보니까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줄 알았는데
더 더럽기는 맹 마찬가지이더라 말이죠
깨끗 근처도 못 가는 주제에 깨끗이라는 단어로 세뇌 가스라이팅 시켜서
돈 장사 하더라 말이죠 이미지 메이킹인 겁니다
환경단체 환경기업이 다 그런식이잖아요
빨대가 바다 오염 시킨다고 종이 빨대가 더 더럽히는 겁니다
정작 그물 업게 수산업 종사 업계로부터 환경단체가 돈 받아 먹는데 말이죠
무슨 선함을 착함을 강조한다 싶으면 그거 사기꾼이구나
광명한 천사 이구나 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무슨 무슨 운동 한다 싶으면 교만한 놈이구나
약속과 무관한 우상숭배자인줄 아시면 됩니다
내 속에 선한 것이 없음을 안다면 저들 속에도 없는데
자꾸 있다 라고 선전한다면 아 돌벌이 이구나 라는 거지요
그래서 약속의 코스를 밟도록 하시고자
이런 재앙을 벌리심은
우리의 잘잘못이 아니라
또 이래 말하니까 아이 그럼 우리가 악을 저질러야 하나님이 선해 지겠네 라고
방종을 유도 하는 것 맞네가 아니라
바울이 그래서 이런 놈은 이미 정죄 받은 자 라고
교회에서 방종하지 말라고 방종을 유도한다고 공격하던데
바로 그런 놈은 이미 정죄 받은 자 라고
하나님의 의가 바로 재앙인데 심판인데
그래서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심판을 나타내는 것 맞는데
자기들의 탐심이 우상숭배가 자기 배를 위한 임금삼기로 예수님을 가짜로 임금세우기를 해 놓으니까
아따 이 놈들이 그 하나님의 의를 선하심으로 해석해 버리니까
방종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방족을 유도하는 말을 하느냐 라고 공격하는 방종을 펼치더라 말이죠
아니 방종하지 말라고 해 놓고서는 왜 지들은 방종하냐 말이죠
요때다 싶어서 돈 버는데 방해꾼들 싹 다 잡아 넣어
실패 라고? 괜찮아 2차 계업 3차 계엄 복수는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끝까지 복수하면 돼 라고
이게 인간으로 출발하겠다면서 빈칸에 자기 숙제로 써 넣겠다 라는 교만이다는 겁니다
결국 자기가 선악을 축복과 저주를
축복의 근원이 될려고 하는 심뽀이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탄이구나 라고 하시는 거죠
에이 그래도 그렇지
어린아이 젖먹이를 칼로 부숴뜨려 죽이고
심지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아이를 임신한 약하디 약한 여성의 임신한 배를 갈라 버리시겠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니요?
제가 예수 안 믿었을때에 고등학교 윤리 수업 중에 갑자기 윤리 선생이
구약의 하나님은 너무 잔인해서 못 믿겠다 라고 갑자기 수업 중에 이야기 하더라 말이죠
아니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냐 말이죠
아마도 미션 스쿨이다 보니 교무 회의나 아니면 아침에 교회 다니는 동료 선생으로부터
기독교나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이들 수업 중에 갑자기 튀어나왔던 모양이더라 말이죠
그래놓고 왜 미션스쿨에 선생으로 다니는지 원 ㅋㅋㅋ
그런데 이들은 안 믿으니까 그렇다 치고
왜 교회 다니는 자들은 그 동안 본심을 늘 꽁꽁 감추다가
제일 만만한 저 같은 자들에게 왜 그렇게 화 풀이 하듯이
그 문제를 들고서 막 덤비는지
요놈 잘 걸렸다 ㅋㅋㅋ
더 웃끼는 것은 목사놈도 그렇게 덤벼요 글쎄 아니 답을 해 줘야 할 놈이 ㅋㅋㅋ
뭐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 장로들 그것은 너무 흔해서
자기 말 안 들으면
자기 정치에 같은 편 안 되어주면 그거 빌미로 공격하는 겁니다
주로 멀쩡하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군에 이런 소시오 패쓰가 많거든요
사이코 패쓰는 반사회적이지만
소시오 패쓰는 억수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이다 말이죠
자기 밥을 무조건 놓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죠
자기 인정 못 받으면 미쳐버려요
주로 종교계 정치계 공무원직 주로 공공적으로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그룹이 그래요
별에서 온 그대 라는 K-드라마에서 신성록 배유가 맡았던 역이 바로 그런 소시어패쓰다 말이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장인데도 불구하고 소시오 패쓰인 겁니다
정치성이 무지 무지 강해요
그런 놈들이 다들 착하다 라고 여기는 선한 영향력이 강한 집단에 억수로 많다 라는 것
아파트 소장이 공무원 출신이다보니 자기 정치술에 편 들라 라고
오자마자 그런 짓만 하니까 조심하고 절대로 코 끼이면 안된다 라고 했다 말이죠
아니 그런데 그 충고를 들은 자가 저를 정치적으로 자기 편 안 들어주니까
끝까지 복수하겠다 라고 죽도록 덤비더라 말이죠
심심하면 자기 눈을 찔러요 지만 찌르는가?
자기 가족 눈도 다 찔러서 지도 지옥가고 지 가족도 지옥가는
소경이 소경의 길로 인도하는 주로 목사 가정은 당연하고요
교회 중요 자리 한 자들은 다 그래요
정치집단입니다
성화론자 말이 성화론이지 정치집단이라서 목사 눈치만 보는 집단이더라구요
보통 2-3년 정도 살펴봐야 대놓고서 그런 복수심을 보게 되는데
6개월도 안되어서 보게 되니
제일 짧게 다녔다 말이죠
지금도 가장 경건하고 성화되었다 라고 소문난 곳인데 말이죠
그렇게 당해봐야 지기도 그런 소시오패쓰의 정치술을 펼치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에 이미 장악당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게 되는
그래서 이 사망의 몸 지옥의 몸에서 건져 달라 라고
다윗이 우는 겁니다
이 다윗언약을 새언약으로써 죄인 다윗
환자 다윗으로써 의사 되신 인자 꺽으신 뼈로 다시 태어나는 요나의 표적이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가 되어버리면
자기 숙제로 빈칸 적겠다고 완악한 수건만 잔뜩 겹겹으로 쓰다
기브롯 핫다아와 자기 꾀에 자기 눈을 찌르는 누워서 침뱉기 하는
의문의 반복을 하다 자기도 천국 안가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중간에서 삥이나 뜯는 놈이 되는 겁니다
언약의 코스도 안 밟는 약속에 따라 난 자들이 아닌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다는 겁니다
약속을 줘도 거부해요
자기들은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다윗언약 필요없다 라고 하기 때문이다 말이죠
다윗처럼 그런 간음죄 살인죄 인구조사죄 안 했다 라고 우기는 자들인 겁니다
아니 약속을 안 주면 할 수 없잖아 라고 핑계를 대지만
정작 줘도 거부하는 겁니다
지옥간 부자가 늦게 알고서 아 그럼 아직 지옥오지 않은 친척들에게 선지자를 보내 달라고 부탁해요 이덕화처럼 외치지만
아니 자기가 거지 나사로 라는 선지자를 거부했는데 남아있는 친척들은 안그러겠느냐 말이죠
선지자를 영접하기 라는 숙제를 하면 된다고 보는데
선지자 자체가 그런 인간 숙제를 거부하고 깨뜨리면서 오니
다들 싫어하도록 되어 있다 말이죠
오늘 본문 보세요 누가 저런 외침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어디 있겠습니까?
일부러 거부하는 것들만 골라 골라서 외치는 것 같은데
네 맞아요 우리의 선악의식 법준수 의식
하나님과 같이 된 동질성에 반대되는 모습만을 일부러 골라서 외치는 겁니다
목숨 걸어서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수천개의 목숨을 걸어도 안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 될려는 마음이 깔려 있기에
그 교만이 깔려 있기에 말이죠
아 아니다 이거 다음주 로마서 내용인데 ㅋㅋㅋ
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닌 미리 정답을 실수로 말해 버렸는데
오늘 본문에 젖먹이를 제 3자 입장에서 볼게 아니라
뱃속의 아기나 임산부를 제 3자 입장에서 볼게 아니라
그것도 지금의 나 힘도 어느 정도 있고 그런 나가 아닌
아예 힘이 없고 약자 중에 약자가 된
아무리 부자여도 LA 산불로 부자도시 하루 아침에 불타서
혹시나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고 하지만
혹시나 집이 불타서 재수없게 전재산 다 날리게 된 입장의
아주 아주 약자가 된 입장에서
약자 임에도 불구하고 저 젖먹이와 같이 되었는데 칼로 죽이고
약한 여성 그것도 자리 양보해야할 임신부 인 약자 중의 약자인 상태에
배를 갈라 버린다 미래의 재산 미래의 열매
부활인 뱃속의 아기까지 다 갈라버리는 저 상황이
나의 상황이 되었을때에
이건 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아니라
누가 봐도
심지어 본인이 봐도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 맞군요 라고 해야 할 판국에 놓여진 상태에서
도저히 희망 소망 따위는 없이
오로지 절망 밖에 없는 그 속에서
갑자기 그 죽음에 뛰어드셔서
대신 칼 맞고 대신 배 갈려 빵구멍 뻥 뚫히시는 그 형벌을 대신 맞았을때에
과연 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는 의미는 무슨 의미인가를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 겁니다
정작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리에서
그것 마저도 미움 못 받고 대신 미움 당하는 자가
내가 생각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마귀의 두 번째 시험
다윗의 기도인 시편 91편 12절 911 112 11절 12절
911 미국 소방, 아 캐나다도 똑같다고 하네요 미국의 51번째 주 라고 협박당하고 있는 ㅋㅋ
112 경찰 로 외우면 되죠 저도 잘 까먹어서 잘 틀리지만 ㅋㅋ
(시 91:9, 개역)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 91:10, 개역)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 91:11, 개역)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2, 개역)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그 다윗의 기도 대로 거룩한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를 보내어
두손으로 받쳐 하나도 다치지 않는 이런 사랑받고 구원받고 인정받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이게 과연 미움 받지 않고 사랑받는 모습일까요?
뭐가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
무엇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 우리는 모르고 얕게 알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 형벌 속에서 이 형벌 속으로 뛰어드시는
제대로 미움 받는 자를 보게 하시는 겁니다
아니 어느 몽골의 유목지의 한 여자가
텐트 접었다 폈다 늘 이동하는 유목민이
그 조그마한 동네에 이동만 자주 할 뿐이지
그 여성이
그것도 불임여성이
수태치 못한 여자
조선으로 치면 저주 받은 여자인 거죠
그 여성이 무슨 우주의 자유하는 여자 라고
우주까지 하늘까지 들먹이면서
한 개인이 아닌
우주 역사? 우주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던데 ㅋㅋㅋ
우주에까지 확대되면서
천한 계집이 우주까지 높여짐을 받는 가운데
정작 세상은
정작 땅의 역사인 애굽나라 바로 왕은 이 세상은 격동하고 견디지 못하도록 되게 하시는
지혜자의 지혜를 펼치심 앞에서
우리는 잔칫집 애굽이 아닌
초상집인 광야 광야 3일길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 속에서
이 첫 맹세 첫 약속대로 밀어붙이시는 이 섬김 때문에
제대로 된 미움 받기로 작정 됨과
그 찢으심을 거쳐서 제대로 고침을 받는
제대로 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분은 예수님 뿐임을
이 사랑
너희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자기 아들 독생자를 제대로 미움받기로 만드심으로써 우리가 나음을 입는
이것이 바로 화목제
곧 사랑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인데
우리는 이 깊은 사랑은 외면하고
그저 얕은 사랑만 자기 배를 위하여 챛겨먹을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중심인 시온에 산당을 절간을 우상 가증한 물건을
교회 안에서 잔뜩 세워서
마리아 촛불 키듯이 산당 무당집인지 왜 그렇게 촛불에 집착하는지
촛불집회 하면 빛이 되느냐 말이죠
뭐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
이게 바로 교만 아니냐 말이죠 명바기의 교만이나 그 교만을 꺽겠다 라는
어준이의 교만이나 둘다 지옥행인데
덜 지옥행으로?
왜 제대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사망의 몸인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예수님
이 기적과 같은
계엄속에서 살려주신 기적
이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는 한강의 미신이나
오대산의 굿판이나
닭그네의 굿판이나
이거 다 반작용인 한풀이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뭐 제대로 미움 받은 적도 죽은적도 형벌 저주 심판 받은 적도 없으면서 말이죠
약속으로 난 자가 아니다 라고 아예 대 놓고서 자랑질을 하고 있어요
그 의문의 반복
오늘 예수님 세 번 부인하지 않았다고
내일 마귀가
앗수르의 몽둥이가 가만 있겠냐 말이죠
주님은 오늘 본문 이 말씀을 다들 거부한다는 것을 알면서
에이 그러면 하나님이 젖먹이를 죽이고 하나님이 임산부를 죽이네
영궁에서 이민자 청소년이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 라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니까
갑자기 영국 본토 시민들이 이민자에게 묻지마 폭행으로
집단 소요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뭐 악의 평범성?
독일 나치의 공무원 아이히만이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다 라고
얼마나 가정에 모범적이고 자식들도 이런 아버지 없다 라고 존경에 존경을 맞이할 정도인데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라고?
지금 한국은 한 달 넘게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둘이가 아니지요
시키는대로 했다 라고
저 모습 백날 아파트 아파트 응원봉 들고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까요?
하루에 평균 200번의 거짓말
8분에 1벙 꼴 거짓말을 한다 라고
뭐 저 멧돼지만 망상자 입니까?
민주주의 자체가 망상인데
자유는 없어요
그런데 왜 성격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라고 망상을 펼치냐
네 맞아요 말 참 잘했다 말이죠
즉 이 말은 자유를 지키고 사수하고 달성해서 자유가 아니라
이미 자유가 먼저 떳기에
모든 인간들은 포로 잡혀 있다 라는 겁니다
즉 오늘 본문으로 치면
악을 저지르고
앗수르 우상을 섬겨서
앗수르에게 당하는
아이가 칼 맞고 임산부가 배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라는 약속 언약이 먼저 떳기에
그 언약의 코스대로 밟다 보니
고때만 아이가 칼 맞고 임산부 배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수로 아니면 잘못해서가 아닌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날 때 붙어 나는 아이를 죽이고 배를 가르는
다윗이 했던 짓이 나의 짓이고
동시에 나 또한 누구로부터 아이처럼 늘 칼로 죽임 당하고
배를 갈려짐 당하는
이 세상 판대기 자체가
역사 라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그것을 반복하는
세월호 끝나면 끝일까요? 이태원 압사가 또 생겼자요
우리 아이들이 바로 부모의 죄악의 증상물로써
그런 사건들은 또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런 마침도 없는 의문의 반복
내 숙제로 멈출수 있냐 말이죠
내 아이만 괜찮으면 다 입니까?
내 아이의 친구가 당하니까
결국 내 아이도 트라우마로 고통 받다가 평생을 헤어나오지 못하면
내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할 수가 없게 된다 말이죠
그렇다고 세상을 다 바꿀수 있냐 말이죠
주님은 그 죽음 속에 그 저주 그 형벌 속에 뛰어드셨다 라는 것을 말하시고자
이런 사태를 벌리시는 겁니다
바로 이 화목제가 오지 않으면
교회가 사기치는 그 의문의 반복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는 자들의 사기에 질질질 끌려다니다가 볼일 다 보는 겁니다
어딜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사기를 치면서 꾀냐 말이죠
사망아 어디 있느냐
재앙아 어디에 숨었느냐
(호 13:14, 개역)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 13:14, 새번역)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하겠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내게 동정심 같은 것은 없다. / ㉢또는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갚아 주고 그들을 스올의 세력에서 빼내란 말이냐? 나더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란 말이냐?'
(고전 15:55, 새번역)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 ㉥호 13:14(칠십인역)
아니 두 기생의 다툼이
왜 사망권세와 은혜가 왕노륵하는 생명의 권세 싸움으로 확대 되는 겁니까?
왜 저 시골의 아무도 들따보도 않는 날 때부터 소경인 실로암 소경을 가지고
이 사망의 권세와 생명의 권세 싸움인 우주전쟁인 약속을 증거하는 겁니까?
여기에 사적인 생명 사적인 구원 사적인 저주 사적인 죽음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 두 언약에 놓여진 겁니다
누가 과연 자기 스스로를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라고 여기겠으며
누가 과연 자기를 사랑받기로 작정 된거 맞다고 라고 믿고파 하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라고 여기겠느냐 말이죠
그런 사적인 잘잘못은 끼여들 틈도 없이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고
우리를 살리고자 대신 숙제를 다 이루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다 이루셨다 말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니
꼭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제사와 같더라 말이죠
물론 다음주 에 할 로마서를 통해서 보니 더더욱 앞의 것도 연장선으로 보이는 겁니다
개개인의 아브라함
개개인의 이삭으로 보였던 것이
이스라엘 전체 역사와
애굽의 역사(애굽과 그 아이들 곧 앗수르 바벨론 뭐 모압 암몬 두로 메데파사 헬라 로마 열국 등등의 인간 역사)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삭 바치듯이 하고 있고
그 이스라엘 속에서
마치 야곱 속에서 허리 뿌사서 이스라엘 나왔듯이
이 이스라엘의 꺽으신 뼈 속에서 예수님이 나오듯
지금 이삭 희생제물 당하듯이
이스라엘을 심판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이스라엘의 죽음 보다
그 밑에 깔려 있는
이미 벌서 먼저 나신 이가
먼저 죽으심 그거 보라꼬 죽음 속에 집어넣는 모습이더라 말이죠
예수님의 죽음을 보라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했듯이 말이죠
이삭은 죽음으로써 예수님의 때를 보고 기뻐하는 이 복음을 믿으라 라꼬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을 받고
아브라함은 이제 재앙도 사망도 죽음도 없는
사망이 어디 있노
재앙아 어디 있노 라고
이 진리가 아브라함을 자유케 했듯이 불임 되어도 상관없이
하늘에 자식이 많은
이 자유가 먼저 떳기에
앗수르의 칼에 포로 당하는 우는 자로 만드시는 겁니다
왜? 이제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에
사망도 멸망도 재앙도 없는
뭐든지 아니오 함이 없고 뭐든지 예 뿐인
무덤이 없는 자가 된 거죠
분명 우리는 예수님처럼
문명 내 손으로 땅에 파 묻듯이
무덤 속에 집어 넣었는데
무덤이 소용이 없는 자가 되는 겁니다
분명 죽었고 다시는 눈에 안 보여요
그런데 믿음으로 다시 사는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겁니다
이것은 부정을 피해서 긍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부정으로써
마귀가 욕하는 마귀취급하는 바알세불 걸렸다처럼
망상을 깨뜨리면서 더 망상적인
말도 안되는 소리인 거죠
아니 죽었는데 무덤은 없다만
내 눈에 안 보이면 뭐 없는 거지 뭐 하고 했는데
불쑥 불쑥 나타나서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라고
온갖 간섭을 해 버리면
개인의 인생
개인의 삶은 없는 거죠
시키는대로 하니꺼
귀신 씌인 무당들도 욕하는 더한 성령 씌인 자가 되는 거죠
저들의 형벌을 거쳐서 온 성령으로 약속으로 난 자이니까 말이죠
그러니 호세아서는 지금 다윗언약으로 이스라엘을 불도져 밀어붙이듯이
언약대로 첫맹세대로 밀어붙이시는 겁니다
우와 아이 죽여놓고도 태평한 소리 하네
아뇨 7천명의 아이는 벌써 이미 먼저 살아 있습니다
이 말씀에 낚인 미끼를 덮썩 물은 니가 니 앞가림 걱정하세요 라고
7천명의 아이가 입을 쯧쯧 거리면서
지옥가고 있는 우리를 안타깝게 보고 있는 겁니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지
지옥간 부자가 비로소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 하다 못해
이를 갈면서 격동하고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잡기 위한 미끼이듯이
거지나사로는 부자를 잡기 위한 미끼였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무것도 모르고 죽임을 당하는 젖먹이들은
심지어 태어나기 전이 뱃속의 아기
배가 갈려져서 죽을 정도이니까
얼마나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되었는가 라고 해석하는
그 시선을 낚아서 지옥 보내고자
미끼로 태어났다는 것을
바로 이런 부조리 이런 불의 앞에서만이
이 십자가의 절대저주 앞에서 만이
우리의 선함으로 똘똘똘 뭉쳐있던 그 긍정의 선함
정의라고 우겼던 것들이
얼마나 더럽고 죄악된 교만이요 오예물 찌기 혼합물이다 라는 것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서 그 불순물을 걸러내시는 겁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망해야만 하는 지옥의 몸이라는 것을 들통내시고자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저주인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을
나의 죄악을 제대로 들추어 내지 못하면
이미 지옥인 겁니다
아무리 부자로 아무런 고통 고생없이 신나게 살았다고 해 본들
이미 지옥인 것을 요
그러나 이 십자가의 저주가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자는
아무리 징계를 받은 자 같아도
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예수님의 끝까지 섬기심 앞에서
내 죽음은 내 저주는 저주 축에 못 든다 라는 사실 앞에
뭐든지 아니오 함이 없능 뭐든지 예로써
사망아 누굴 쏘느냐 라고
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이 잃어버린 대의
이 첫사랑을 기억하고
처음자리 그 심판의 자리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자리에서
생명을 마음껏 누리는 겁니다
이 절대 심판 속에서 절대 용서, 절대 사랑을 말이죠
무자비한 용서
죽음 보다 강한 사랑을 ~~~~~~
====================================================================================
22-055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애굽 바로 왕의 악한 날과 주의 날) (롬 9,13-18)
2025. 3. 2.
(잠 16:4, 개역)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출 14:18, 개역)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아브라함 씨 아닌 오직 이삭 씨만이 약속의 자녀(큰자가 어린자를 섬김) (롬 9, 6-13)
로마서 2022 2025. 2. 7. 18:56
22-053 아브라함 씨 아닌 오직 이삭 씨만이 약속의 자녀(큰자가 어린자를 섬김) (롬 9, 6-13)
〈롬 9,13-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가스펠;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찬송가 327장 새 538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가스펠; 그는 여호와 전능의 하나님 No.341 찬미예수 2000〉
〈찬송가 327장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새찬송가 538장〉
새찬송가 325장(통359) 예수가 함께 계시니
새찬송가 2장(통6)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새찬송가 210장(통245) 시온성과 같은 교회
새찬송가 321장(통351) 날 대속하신 예수께
새찬송가 373장(통503) 고요한 바다로
찬미예수 2000 - No.1262 예수가 좋다오
찬미예수 2000 - No.1262 예수가 좋다오
1.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채 주님 곁을 떠나가지만
내가 만난 주님은 참 사랑이었고 진리었고 소망이었소
2. 무거운 짐진자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이길만이 생명의 길 참 복된 길이라 항상 내게 들려주셨소
3. 그대가 만일 참된 행복을 찾거든 예수님을 만나 보세요
그분으로 인하여 참 평안을 얻으면 나와 같이 고백할거요
(후렴)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베드로의 고백 #4 김석균
1. 사랑하는 주님 내게 다가와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네가 나를 버리리라 하실 때 왜 그리 섭섭하던지
주님과 함께 죽을지라도 배반하지는 않겠다 했던
믿음 없는 나의 헛된 맹세 주님 마음 울렸었네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부인하고 돌아서서 한없이 울었었네
내가 주를 잊고 방황했듯 주는 나를 잃고 슬퍼했네
하지만 나의 눈물보다 주님의 눈물 뜨거웠네
2. 멀리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 나의 영혼 잠 깨웠네
잊어버렸던 지난 슬픈 고백 왜 그리 부끄러운지
이 세상 어디 숨을 곳 있나
닭 울음소리 들릴 때마다
사랑하는 나의 주님 모습 스치고 또 스쳐가네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부인하고 돌아서서 한없이 울었었네
주님오실 기약 어찌 잊고 맡긴 사명 모두 잊었던가
지금도 새벽 닭 울 때면 참회의 눈물로 회개하네
(추가 ; 말만 회개한다고 하고서는 그 회개의 내용이 없음 그래서 추가함 윗가사는 회개가 아니라 반성임 성령의 탄식이 아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기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께서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시네 모든 죄 사하셨네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오 오 자유 라는 곡 아니면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 같이 라는 곳을 합치면 됨 칙칙한 노래(강퍅한 미완료) 물리치고 신나는(빨래 끝~~~) 곡으로 ㅋㅋㅋㅋ
〈롬 9,13-18,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2, 새번역)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셨습니다. / ㉦창 25:23
(롬 9:13, 새번역)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 ㉧말 1:2; 3
(롬 9:14, 새번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롬 9:15, 새번역)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습니다. / ㉨출 33:19
(롬 9:16, 새번역)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롬 9:17, 새번역) 그래서 성경에 바로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너를 세웠다.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나타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 ㉩출 9:16(칠십인역)
(롬 9:18, 새번역)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잠 16:4, 개역)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 16:4, 새번역)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일 것이다.
(잠 16:4, 공동) 야훼께서는 모든 것을 각각 쓰임에 맞게 만드셨으니 불의한 사람은 재앙이 내리는 날에 재앙받을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다.
(잠 16:4, 쉬운)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자기 목적대로 지으셨나니, 악인이 받을 재앙도 만드셨다.
(잠 16:4, 킹흠정) 주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드셨나니 참으로 사악한 자도 악한 날을 위하여 만드셨느니라.
(잠 16:4, 한글킹) 주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하여 지으셨으니, 정녕, 악한 날을 위하여 지으신 악인까지라.
(잠 16:4, 현대인)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자기 목적에 맞도록 만드셨으므로 악인들도 재앙의 날을 위해 존재한다.
(잠 16:4, 현대어) 여호와께서 그렇게 지어내셨으니,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쓸데가 있는 법이다. 못된 짓만 벌이면서 살아가는 자들도 재앙이 내리는 날 살아온 대로 벌하시려고 그냥 놔두셨다.
(잠 16:4, 가톨릭)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 목적대로 만드셨으니 악인까지도 재앙의 날을 위하여 만드셨다.
(출 14:10, 개역) 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 14:11, 개역)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출 14:12, 개역)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 14:13, 개역)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4, 개역)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5, 개역)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출 14:16, 개역)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 14:17, 개역)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8, 개역)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흔히 믿음을 이야기 할때에 역시나 우리 버릇대로
좋은 것만 골라서 믿고파 하는 확증편향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서로 서로를 속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들은 다 속여도 난 안 속일 거야 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상호인정 상호기대 상호기만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란 사기입니다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요즘 마약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 마약 보다 더 무서운게 종교입니다
그래서 난 교회 안 가잖아 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무종교도 자기를 사랑하는 그 종교성 지독한 자기애는 말릴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죽을때까지 자기에게 중독되어 살뿐입니다 그 지옥의 몸이 뭐그리 대단하다고 평생중독되는지 빠져나올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무신론 무종교자들 또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역시나 마약중독처럼 더 추구하도록 자기중독 되어 있습니다 없는 자아에 말아죠 우상인 자아에 말이죠
이 자본을 만든 인간이 신이 된 입장에서
동시에 그 자본을 신으로 추앙하면서 졸지에 빠져나올수 없는 중독이 된
뫼비우스 띠처럼 그 의문의 반복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법이요 질서요 신이 된 거죠
자본을 감싸는 그 포장을 민주주의 로 해서 돈을 보호하던가
아니면 공산주의나 독재로 포장지를 씌워서 돈을 숭배하던가 할 뿐이지
역시나 종교든 국가든 이념 사상이든 모든 인간은 결국은 돈을 사수하는데 동원이 되는 소모품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노예를 졸지에 최고의 신으로 숭배한 꼴이 된 겁니다
인간 본인들이 피조물이였는데 졸지에 신이 되어버려서자기 눈을 자기 스스로 찌르게 된 겁니다
그 불안한 마음이 우상숭배로 나타나는 거죠
정작 사자 앞애서는 비둘기처럼 두렵고 떨리지 않고
우상 앞에서 두려워 떨고
하나님의 저주인 심판 앞에서는 마음껏 못 박으라 외치면서
하하 하하 비웃고 비아냥 거리고 마음껏 발로 차고 침뱉고 뺨때렸듯이 멀이죠
주객이 전도된 입장인 것을 까발리는 것이 거리끼는 걸림돌인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겸손 만이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심 만이
모든 인간의 교만을 꺽는 겁니다
자칭 하나님께 대한 열심인 자기 의를 쌓는 것을 구멍 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의인 십자가입니다
십지가는 그 어떤 인간과 타협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뚫어버려서 죄인만을 찾습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는 강퍅한 지옥의 몸이구나 라고 우는 자를 말이죠
아니 돈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돈을 사수하고자 거꾸로 인간이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돈의 숙주가 우상의 숙주가 마귀의 죄악의 숙주일 뿐인 감염된 인간에게
그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상처내는 그 수술칼만이 빵구멍 내는 그 여호와의 뿔인 십자가만이
유일하게 치료하는 뿔입니다
이 자본주의가 모든 종교 모든 국가 모든 이념을 초월해서 믿음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믿는 것을 돈입니다 돈 뿐입니다
오로지 돈 만이 인간의 마음에 가득차 있기에
주님의 마음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깨뜨려야 합니다 마음판을 확 찢어버려서 새로 창조해야 합니다
돈 에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곧 본인이 무소불의의 권력을 쥔 돈이 되고픈 겁니다
인간 자체가 돈 이 된 겁니다 우상이 하나님이 되었기에
답이 없습니다 무조건 멸망 심판 저주만이 살 길입니다
그것이 함축된 자가 바로 왕이다 라고 했지요
신의 대리자 신이 세운 구원자
그러나 그 기대치는 결국 노예로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사망의 종 노릇
왕의 노예일 뿐입니다
오늘날 목사 보세요 자기 노예가 늘어났다고
빨대 꽂아 피 빨아 먹을수 있는 노예들이 늘어났다고 희죽 희죽 거리고 있습니다
노후 보장을 해준 것에 대해서 마치 자기잘남인냥 자랑하더라 말이죠
이 봐라 교회 잘 운영하니까 노후보장까지 해 주잖아
부럽제 대식아???
속으로 말이 성화론이지 마귀새끼 구나 에라이 소경아 니 혼자 지옥가지
지도 안하고 남고 못가도록 중간에 삥뜯고 가로막는구나
이것이 돈을 더 모으지 못해서 안달이 난 믿음인 복수심입니다
그 놈의 노후보장이 돈이 아니고 뭡니까
그래놓고 헌금 강조 안하는 교회라고 엉뚱한 자랑이 퍼지고 있으니
복음 자랑은 언제 나오는지 원 ~~~~~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의 자랑
분명 하나님의 의인데 의가 아닌 불의처럼 보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없는 불의인 듯 불의아닌 불의 같은
이 십자가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복종이기에
오로지 예수님만이 이루시는 그래서 불의라고
왜 우리는 못 하냐 라고 따지는 힐문하는
이런 완악함까지 악하고 게으름까지 까발리는
그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는 저주요 자주인지 그 3분의 2 마저도 비로소 먹는
이 입에는 다나 배에는 쓴 배가 빵구멍 날 수밖에 없는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 까지 먹어야 한다 라는 거죠
보세요 악한 날에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악한 강퍅함 조차도 너끈히 이기는
주의 날이 먼저 떳기에 말이죠
물론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일이 먼저 떳기에
사람의 일 곧 사탄아 썩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 이구나 라는
소리까지 그 쓰디쓴 소리까지 욕 먹어 마땅한 자리 그 처음자리에 놓여지는
왜 나는 강퍅한 자인지 왜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지
바리새인 보다 더한 죄인 중의 괴수인지를
주의 은혜의 날이 먼저 떳기에
주의 오른 팔이 먼저 떳기에
우리는 그 은혜에 상대적인 완악한 강퍅함이 우리의 악함이
이 의사로부터 까발려져서 지옥의 몸으로 강퍅한 몸으로 들추어져야
그렇게 청진기를 대시는 의사로부터 진단받아야 고치시는
이 주의 팔이 주의 뿔이 고맙게 여기는 겁니다
만약 이 강퍅함이 들추어지지 않으면
또 자기 잘났다 라고 아무도 이 완악함을 해결해 줄 자 없는
건강하다 의인이다 라고 그게 더 지옥갈 짓 밖에 안되는 거죠
왜 이 미움의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그 믿음의 내용을 통해서 자본이 신으로 자리 잡은 이유이듯이
돈처럼 나 라는 자아도 신의 자리에 앉아버린
그 병을 그 죄악을 그 내 속의 애굽 왕의 강퍅함을 지적받아야 하는 겁니다
고때만 십자가에 못 박으라 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십자가에 못 박으라 라고 외치는 겁니까
그러니 이 얼마나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 입니까
그래놓고 무슨 염치로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라고 외치냐 말이죠
아무리 가스펠 당신은 사랑받기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 부르고
상대방을 향해서 노래 불러 줘도
사실은 당신은 미움받기로 태어난 사람이다 라고 노래부르는 것과 같아요
사랑이 없는데 사랑 주는 척 노래 부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미움을 퍼 붓고 있는 겁니까
차라리 솔직하게 우리는 날때부터 예수님을 미워하기로 태어난 자 이다 라고
울어야 한다 라고 삐딱한 노래를 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CCM 순위로 올라가기는커녕 수거대상
자폭 쪼끼로 철거대상이 되는 거죠 앨범 다 수거하고
저 아무도 모르는 섬에 가두어서 식품에 독을 타서 제거하도록
이런 무당들의 계획 수첩이 우리가 예수님을 죽이고자
날 때부터 적어왔던 수첩이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믿음인 돈을 더 많이 가지느냐 이것이 믿음 좋은 부자이고
돈을 적게 가지느냐 이것이 믿음이 없는 가난한 자 라는
인간의 믿음의 내용에
죽어 마땅한 날 때부터 무당으로 태어난 자신을 도리어 살리고자
마땅히 살아야 할 의인 되신 예수님을 죽이는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무당의 모습 오로지 자기를 살리고자 말이죠
500명 수거 대상 그것으로 안 끝나죠 의문의 반복입니다
5천명 5만명 5억명 5조명 5경명 5해명 절대로 만족함이 없는
바닥 없는 지옥구멍이니까 말이죠
오로지 자기 하나 살려고 모든 것을 다 죽야도 만족함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받기로 작정됨과 반대로
그 믿음의 내용물을 미움받기로 작정됨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인 미움인 십자가로 채우시는 겁니다
인간의 사랑이냐(선이냐) 미움이냐(악이냐) 라는 인간 숙제의 빈칸 채우기가 아닌
예수님의 숙제로만 답을 쓰시는데 있어서 우리와 반대로
축복산에 가시는게 아니라 저주산 미움박기로 작정이 된 에발산 저주산에 가시는 겁니다
그가 찔림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왜 우리는 안되고 왜 우리는 미움받기러 작정이 되었고
그 미움을 왜 대신 받으시는가 라는 내용으로
저런 무당들의 수첩을 빵구멍 뚫으시는 겁니다
바로 이런 돈 권력에 대한 믿음 곧 인간 자기 숙제에 대한 믿음
결국 무당의 모습인거죠 걍퍅함
모세가 왜 완악한 수건을 안 벗을려고 했습니까
그것 벗었다가는 돌삐 맞아 죽거든요
모세 본인도 이혼증서 안 써주는 자 모세 본인도 돌삐 쳐 죽일려고 하는 마음은 맹 마찬가지이니
행함 곧 자기 숙제로 빈캄 채우기는 그 의문의 반복은
누위서 침 뱉는 속임수 일 뿐입니다
어딜 십자가 앞에서 속임수 인간의 꾀를 무당의 자기는 안 죽이고 의인을 죽이는
그 되도 않는 저주를 펼치느냐 누가 꾀냐 말이죠
돈 없어봐 자식이든 부모이든 친구이든 사회이든 사회 악인 미움받는 자이고
에라이 죽어라 자식이든 부모든 코로나 걸려 왜 안 죽느냐 라는 식입니다
돈이 있어봐 어디를 가든 사랑 받지
그렇기에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 일을 하느냐 인생역전을 이루느냐 로
이 자유경쟁체제에서의 현실이다 라고 말이죠
소유의 넉넉함으로 생명이다 라고 우기는데
그거 생명 아닙니다
뭘 해도 저주요 걍퍅함 뿐이데 강퍅하니까 생명이라고 우기는 식인 거죠
(눅 12:15, 개역)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마 6:24, 개역)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5,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즉 제대로 사랑받기로 작정됨을 알려면
제대로 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거 우리가 앞에서 야곱의 장자권 빼앗는 모습을 통해서
야곱은 비로소 제대로 미움받아야 할 죄인임을 아는
아니 알려주시는 이 요셉의 미움받음을 통해서 비로소 구멍 뚫히는 겁니다
요셉의 죽음이 아니였다면 육으로 난 자일 뿐입니다
약속으로 난 자 만이 이 제대로 미움받는 이 십자가의 다 이루셨다 라는 언약을
그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입니다
보고 싶다고 아무나 고개 돌려 볼수 있는게 아닙니다
혹시나 듣고 깨달을까봐 못 보도록 고개 못 돌리도록 막는 주님의 손까지 다 봐야 합니다
혹시나 고침을 받을까봐 걱정 하셨던 그 예수님의 마음
니 숙제 아니고 이놈아 내 숙제이다 제발 율법 어겨라 너는 강퍅한 놈으로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난 놈이야
그 미움맏기로 작정이 된 자 임을 알아야
내 쪽에서 마련할 수 없는 이 화목제의 고마움을 비로소 보여주시는
이 주님 쪽에서의 숙제인 화목제로 기뻐하는 겁니다
꺽으신 뼈로만 새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가르치는 자도 없고 배우는 자도 없는 그 새노래를 말이죠
결국 믿음의 내용인 사랑과 미움을
태어나기도 전에 라고 규정해 버렸다 라는 것 자체도
우리들에게 싫어버린 바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취급받은 내 손에 죽는 자만이
이룰 숙제인데 언 놈 치고 이 숙제를 예수님에게 맡기는 자 있겠느냐 말이죠
그것도 자본에 대한 믿음과 똑같이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데
내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었다는 그 출생의 비밀을 이룰수 있다는데
언 놈이 이 숙제를 포기 할자 있겠느냐 말이죠
국가는 개인 회생제도를 도입해서라도 제발 너의 숙제를 포기 하지 말아라 라고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고 (지성이면 감천이다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
이런 사상이 한강의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는 사상에 깔려 있는 겁니다
(원래 살아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죽음 같지도 않을 것을 죽음이라고 우기고
그 엉터리 죽음에서 나온 가짜 생명을 생명이라고 우긴다는 자체가
이미 죽은 세상의 시선에서 나오는 겁니자 이것이 다음주의 할례없는 자
곧 부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절의 빈공백을 도리어 빈칸에 답을 써넣을려고
가짜 죽음을 빈칸에 채워넣어서 가짜생명을 도출해 내는 방식입니다 반작용 곧 한풀이인 거죠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선악은 주님만 아셔야 하는데 지가 지 멋대로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다 라고 지가 지 멋대로 이것은 밝음이고 저것은 어두움이다 라고 우기듯이
죽음도 생명도 모르면서 이걱은 생명 저것은 죽음이라고 규정한다는 자체가
바로 할례없는 자들 단절이 없는 자들 제대로 된 죽음이 없는 자들의
빈칸 채우기라는 미완료를 추구하는 자 들입니다
있는 자 곧 완료는 더 받고 여기서 완료란 외부에서 주어진 생명입니다
도리어 나는 죽음 뿐인 화로다 사망의 몸이다 라고 해야할 판국입니다
없는 자 곧 미완료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되는
나중 된 자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완료를 누리고
먼저 된 자는 빈칸 채우기라는 의문의 반복 완악한 수건 안 벗는
바로 악한 날을 채우는 강퍅함 복수심 완악함이라는 딱딱함을 펼치는 겁니다
부드러운 마음인 새 영이라는 그리스도의 할례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딱딱한 빈칸에 답을 적고자 미완료를 반복할 뿐입니다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아직 덜 이루어 졌다고 행함(미완료)를 추구하고
그 행함을 안 알아준다 라고 그 행함에 따른 보상을 안 해준다고 징징 거립니다
완료는 그저 나누어주기 바쁜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사적인 소원인 보이는 소망이 없기에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마음을 나누기 바빠요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 용서 그 모욕적인 7에 70번의 용서를 퍼 나르기 바쁜 겁니다
댓글 부대처럼 도배하기 바빠요)
(이 한강에 대한 평을 이번 월말 김어준에서 다루었는데
https://youtu.be/eY8X2CS4dwk전체내용 공유받고프니 제 메일로 공유해주세요 비밀로 댓글달아주세요)
요즘은 아버지 재력으로도 안돼
할아버지의 재력에 달려있을 정도로
아버지의 성공으로는 이 자본주의에서는 버티기 힘들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재력을 봐야한다 라고 말이죠
그게 트럼프가 추구하는 사상인 거죠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를 받아주니까 경제가 파괴되는 겁니다
한 두명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전 세계 정치가 극우로 돌아서는 거죠 악한데 착한 척 하고 있으니 웃끼는 거죠
바보 노무현 되었다가는 나라 망한다 말이죠
젊은 남성이 전세계적으로 꼰대가 되는 이유도 다 돈 때문이였지요
아무리 쥐박이가 젊은 애들 때문에 뽑혔던 그 과거의 실수를 거쳐도
어차피 또 반복하는 겁니다
인간은 모든 날은 악한 날이 되도록 몰아가십니다
그래서 빈칸 채우겠다 라고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라고 자기 숙제에 미쳐있기에
결국은 사랑도 미움도 내 하기 나름이다 라고
자기 하기에 따라 사랑 받고
자기 하기에 따라 미움 받을 수 있다 라고 한다 말이죠
그런데 이게 놀랍게도 제가 교회를 그 동안 살펴보니까 다 이런 식입니다
세상의 믿음 기준이나 교회의 믿음 기준이나 역시나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는 식이다는 것에
똑같은 주장이니 교회가 다 사기치는 강도의 소굴이다는 거죠
특히 성화론 주장하는 교회는 더 심해요 개혁주의 이런 놈들 말이죠
그렇게 되면 믿음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되는 이유가 오늘 본문에
원함으로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니다 라고 했는데
목사 놈 치고 이 본문을 수긍하는 놈들을 본적이 없어요
다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라고 미움받는 짓 하지 말고
사랑받는 짓을 하라는 겁니다
이게 성화론인거죠
곧 행함만 외치는 놈들 뿐이지 이게 모세언약만으로 충분하다 라는 북이스라엘 신학 아닙니까
믿음을 외치는 목사놈들을 본 적이 없어요
아니 외칠수가 없어요
육으로 난 자가 무슨 수로 약속으로 난 믿음을 외칠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외칠수가 없기에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운
사람들이 자기 배를 위하여 임금 삼은 가짜 예수를 채워야만
육체를 채우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없고 믿음을 흉내내기는 해야하겠고
그 믿음을 종교성이라는 처세술을 빈칸에 채우는 겁니다
웃음치료사 레크레이션을 교회에서 하듯이
거기서 나오는 말 마음이 밝을려면 주변을 밝게 해야 한다
어둡게 지내면 마음도 어둡다 라는 이따위 처세술이 교회에서 증거되고 있으니 말이죠
이런 육으로 난 것이 약속을 따라 난 믿음을 죽여버린 사건이 십자가 사건 아니냐 말이죠
결국 믿음은 이 십자가의 사건을 무한반복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반대로 행함은 십자가 고만 캐라 마이무따 아이가 라고 징징거립니다
그 믿음의 내용에
사랑받는 것만 챙길려고 하지 3분의 1 말이죠
미움받는 것도 3분의 2도 다 받아 먹어야 하는데
그 내용을 말하는 놈이 없어요
그래서 구약의 선지서에 가면 반대로 다 증거하니까
들통날까봐 아예 선지서를 묵시서를 다루지를 않을려고 해요
했다가는 교인들에게 미움받아 쫓겨날수가 있으니까 말이죠
그 미운받는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데 있어서
벌써 인간들의 반응은
하나님이 불의하다 불공평 부조리 하다 라는 반응이다 라는 겁니다
아니 날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기로 작정됨과
미움 받기로 작정됨 이라는 이 편파 부조리가 왜 생겨야 하느냐 라는 겁니다
출발선이 이미 틀리면 그거 달리기 경주 해 봤자 소용없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 아니냐 말이죠
그래서 카는 소리 아닙니까
달음발직 하여도 소용없고 원함도 소용이 없다고
여기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종교꾼들의 방책이
이 불공정한 불의에
하나님의 불의에 마음을 어둡게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마음을 밝게 할려면 주변을 밝게 하면 되듯이
맞네 미움을 받으면 그렇겠구나
그럼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가 되면 되겠구나 라고
괜히 답도 없는 그런 싸움 할 빠에
그냥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러 살면 간단하다 말이죠
목사도 교회 나오는 자들에게 모두 이런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인정해 주면
말라꼬 이런 쓸데없는 힐문과 반발을 할 필요성이 뭐가 있겠느냐 말이죠
모조리 다
경상도 마카다 커피처럼
마카다 사랑받기로 작정이 되면 되는 걸 말라꼬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느냐 말이죠
목사 본인이 나서서 행동해 버리면 교인 중에 힐문할 자가 아무도 없게 되는 겁니다
괜히 힐문해 버리면 왕따 당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을
우리가 먹지 못하면
삼분의 1만 딸랑 먹는다고 해서
모든 목사가 구라를 치면서 천국간다고 해도
성령께서는 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됨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그거 짐승의 수를 셀줄 모르는 총명한 영을 받은 자가 아닌 거죠
바로 저런 목사들이 짐승의 짓을 하는 줄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겨우 말 안 듣는 교인 겁줄려고 계시록을 운운할 뿐이지
이 계시록이 얼마나 사랑의 하이라이트 곧 결혼식을 보여주는데 말이죠
그럼 계시록에 해당되는 구약의 선지서 곧 묵시서는
이 사랑의 하이라이트를 모조리 다 땅에 파묻어 감추는 식과 같다 말이죠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 당신은 무서운 자니까
나는 안 잃어버릴려며는 그냥 땅에 파 묻어서 원금 그대로 줄란다
안 잃어버리고 남긴 것도 없지만 잃어버린 것도 없이 말이죠
놀랍게도 원금을 까먹고 잃어버린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하고 게으른 종을 새롭게 탄생 시키십니다
아니 분명 원금을 깍아먹은 것이 없는데 말이죠
빈칸 없이 그대로 채웠다 말이죠
(잉여란 저절로 남기는 돈이 돈을 낳는 식이듯이 잉여라는 선물이 선물을 남기는데
이것이 사적인 욕심 곧 탐심이라는 우상숭배가 되니까 안남기고 안까먹고 원금 그대로
빈캄 채우기라는 미완료를 게으르다 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게으름이란 느려터진것인데 여기서 게으름은 악함의 이중반복인
악하고 악하다 라는 겁니다 미완료의 공명 짝꿍인 미완료의 미완료 곧 미완료의 이중반족인거죠 오히려 악인은 피 흘리는게 초스피드 빨라요
정작 주님의 자녀는 반대로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느려 터집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대로 표현하실까요?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세트 구성 떄문입니다
그 느려터진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롭다 똑똑하다 라는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 주무시지도 쉬지도 않고 일하시는 부지런한 성질 급한 주님이시다는 겁니다
한국사람의 빨리 빨리 문화도 이 주님의 급히 속히 이루어지리라는 못따라 옵니다
뻔데기 앞에 주름일 뿐입니다
이에 상대적인 악한 날 곧 강퍅한 바로 왕은 아무리 부지런히 뒷쫓아와서
이스라엘을 죽일려고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애굽군사를 몰고 말과 병거를 부지런히 쫓아와도 느려 느려 느리다니깐 느려터지는 겁니다 여호와의 불과 구름을 통과를 못해요
어떻게든 미완료를 채울려고 하고 어떻게든 빈칸을 채워넣을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채워넣을수 없기에 게으르다 라고 아예 단절시켜버리는 겁니다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것처럼
태어나기도 전에 게으리기로 작정이 된
악하기로 작정읻 된 것처럼 그들은 무당들처럼 죽은 자신과 죽은 자들을 살리고자 지옥에 갈자를 말이죠 산 자를 죽이기에 바쁜 피 흘리기에 억수로 바쁩니다
노상원 무당의 500명 명단에 어준이 천명 만명이 들어가도 그거 죽은거 아닙니다
이미 죽은 자인데 죽었다 라고 할 수 없지요 살아있었던 적이 없는데
산 성도만이 그 수첩에 들어가 죽임을 당하는 그 피 흘리는데 억수로 부지런해요
밤 잠도 안 자고 말이죠 인연 끊겠다 단절 시키겠다 라고 자기들이 단절 되었으니까 그 반작용인 복수심 적개심 살인의지를 펼치는 겁니다 사적인 소원은 다 그런 식입니다
그 사적인 소원이 바로 빈칸 채우고 미완료를 추구하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라는 무당의 언어인 거죠
그 무당의 언어를 가지고 언약의 언어 약속의 언어인 주의 날을 악한 날과 한 세트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마 25:24, 개역)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 25:25, 개역)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 25:26, 개역)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 25:27, 개역)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마 25:28, 개역)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마 25:29,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흔히 달란트 비유를 아까 말한 처세술로 이야기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거 엉터리 이다 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다들 행함(미완료 빈칸 채우기 반작용 복수심 한풀이)으로 이야기하지
재능 탈랜트 라고 그 재능이 처세술 아닙니까
그래서 자기 숙제로 만들어 놓으면 그 강요된 선택을 주입시킨 목사놈은 억수로 좋아라 합니다 미완료 채우기라는 의문의 반복을 시켜 놓았으니 말이죠 성화론자들 다 이런 무당들이죠
정작 완료로써의 믿음(예수님의 숙제)으로 이야기 하는 놈들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다 이루었다 라는 예수님의 숙제로 빵구멍 뚫혀야 비로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려놓는
자기 숙제를 손 놓는 겁니다 빵구멍 뚫혔으니까 그 뱃돼지를 채울 필요가 없어요
새는 바가지에 물 퍼 담는 자가 비로소 없게 되는 겁니다
행함으로만 이야기 하다 보니
다들 빈칸을 채우기 하는 겁니다
바로 그놈이 한 달란트 받은 놈인 겁니다
주인의 돈이예요
자기 돈이 아니라
자기 돈이면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자기 돈 치고 뿔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지
가만히 원금 그대로 땅에 파 묻을려고 하는 자는 없다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믿음이란 생동력이 있어요
사랑은 저절로 남는 잉여입니다
은행에 넣어도 이자가 붙으니까 말이죠
잉여 스스로가 말이죠 주인의 돈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행함은 그저 빈칸 채우기 밖에 안되니까
겉으로는 생동감 있는 기존의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보편적 진리로 보이지만
사실은 땅에 파묻은 죽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인 거죠
바로 이런 행함 곧 사람의 일인 빈칸 채우기를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라 라고 하나님의 일로써 빵구멍 내는
미운받는 짓만 골라 하는 식입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남긴 것이 없으니
사랑도 미움도 아무 소용 없네 나는 삼포로 가야지 ~~~~~ 가 아니라
바로 이런 악하고 게으름을 동시에 들추어내는 것이 잉여증폭기 달란트 주의 믿음인 은사이다 라는 겁니다
그카이 있는 자는 더 받고 사랑이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미움 받는 자는 빼앗기는 거죠
결국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미움받는 것이 뭔지를 간극을 벌리는
이 빵구멍 내는 여호와의 날 주의 날이 떳기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 드러나야 하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다들 기뻐할까요? 택도 없지요
바로 튀어나오는 것이 하나님은 불공평 하다는 겁니다
아니 출발점 자체가 같은 선에서 출발이 아니게 되면
그건 뭐 아무리 논리와 합리와 모든 법칙을 끌어와도
말도 안되는 불공정 불정의 부조리 불의가 아니고 뭐냐 말이죠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다 이런 식입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는
사랑은 저절로 잉여적이고 반대로 미움을 행함은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심
싫어허삼 미워하심은 무조건 빼앗기는 거다 라고
예수님 말씀하시는 비유가 다 이래요
다 부조리 해요
이 부조리가 아니면 구원이 없어요
이 불의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면 구원이 없는 겁니다
그 불의에 주님은 충성하셨다 말이죠 곧 십자가 라는 하나님의 저주에 말이죠
인애와 자비는 그 심판에 뛰어들었거든요 이게 사랑입니다
보세요
(마 20:8, 개역)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 20:9, 개역)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마 20:10, 개역)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 20:11, 개역)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마 20:12, 개역)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3, 개역)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 20:14, 개역)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5, 개역)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 20:16, 개역)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번제와 제사라는 행함을 뽑아내는게 아니라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없으면 무조건 미움받아 마땅한 지옥의 몸인데
누가 자기자신을 미움 받아 마땅한 자로 보겠느냐 말이죠
그래서 사랑이 없음을 이 주인의 사랑을 본게 아니라
주인의 부조리 불공평한 행함을 보고 법적으로 따지는 겁니다
법이라는 선악은 이미 나의 정당성응 확보한 입장에서 선이 되었기에
아무리 주인이라고 해도 나의 선 됨에 부합되지 않으면
나의 선에 맞지 않으면 저절로 악이 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시선이 주님의 시선과 안 맞다 라는 취지로써
성경 전체가 외침에 있어서
그것을 악으로 본다는 취지에서
이미 나 자신을 선으로 규정해서 빼돌린다는 점에서
그것 마저도 악으로 본다는 사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십자가의 저주에 왜 달려 죽으시러 왔겠냐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로 보는 겁니다
출발선이 같은 선에서 출발한게 아니다 라고 말이죠
출발선을 공평은커녕 아예 빵구멍 내신다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 출발선이 틀리다 라는 그 부조리만의 의삭한다는 자체에서
내가 선을 아는 하나님과 같이 된 입장에서
아 나와의 동질성이 없다 없음에 있어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러
빵구멍 내러 오셨다 이 미움을 제대로 먹어라
싫다 니나 먹으라 라고 벌어진 사건이 십자가이니까 말이죠
기승전결 모조리 십자가 라는 빵구멍이 하나님의 의로써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 없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육으로 난 자임을 들통당하는 겁니다
정작 그 십자가 라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는 자는
자신이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사망의 몸임을
뭐 스스로 깨닫거나 해탈해서가 아니라
또렷한 저 십자가에 달리신 인자를 쳐다봄으로 오는
주님의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그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나온 믿음으로 보게 되는거지
지가 지 스스로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임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는 겁니다
누가 대신 죽어야 한다 라는 거지요
그래야 그가 나 보다 옳았다 라고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 세트를 구성하는 겁니다
오직 그 분만이 사랑받기로 작정이 됨이 마땅하지
나는 그 사랑받리고 작정이 됨에 끼여들 틈이 없어요
야곱은 스스로 복의 근원이 될려고 했었고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답게 될려고 했듯이
장자권을 빼앗아 본인이 큰 자가 될려고 했던 것도 다 그런 식이였다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을 사울 이라는 큰 자에서 작은 자(바울)로 목을 꺽었다 말이죠
(웃기는 여담으로 채팅을 군복무 대신에 하는 후배땜에 자주 하게 되었는데
청년 중에서 자꾸 나에게 이름을 바꿔달라는 친구가 있었다
육의 이름에서 영의 이름으로 바뀐 사례를 성경에서 발견하고서는
그렇게 해 달라고 말이다 아니 이름 문자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될일인가?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런 자기 가치 자기 유일을 구하는게 아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저절로 살도록 되어 있는 종말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 이제는 아예 관심 조차도 없는 세대요 시대이다)
그래서 일까요? 인간은 믿음 보다 행함을 우선시 해결할려고 달려 들 수밖에 없다 라는 사실
어서 어서 빈칸부터 먼저 채워넣는 것을 자유의지로 택했다 라고 보는 거죠
그게 원함도 달음박질함도 아닌데
그게 미움받음에 의해 강요된선택인데
뭘해도 미움받아 마땅한 지옥의 몸인데
졸지에 할 줄 아는 것은 빈칸 써 넣기 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선택한 길에 정당성을 부여할려며는
사랑받기로 작정됨의 조건 갖추기 빈칸채우기에 몰두 할 수 밖에 없는
자기 의를 쌓는 것 뿐이다 말이죠
하나님의 의에 복종 할 수가 없어요
했다가는 그 동안 사랑받기로 작정된 그 의 쌓은 것 그 공든 탑 다 날리게 되니까 말이죠
바로 이것이 육으로 난 것인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거다 말이죠
아브라함 아무리 아이를 낳아도 육으로 난 것은 다 육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는
바로 이런 아브라함이 육을 따라 난, 이미 죽은 자이듯이
악하고 게으른 악한 종인 이스마엘을 거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약속 스스로가 저절로
사랑 스스로가 저절로
믿음 스스로가 저절로 믿음으로 다시 살듯이
있는 자는 더 받는
(마 20:16, 개역)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보세요 나중 된 자 먼저 된 자 라는 기준은 결국은 주님 손에 달린 문제인데
어떻게든 내 손에 의해서 빈캄 채우듯이 내 숙제로
선함도 내 손
먼저 됨도 내 손
사랑받기로 작정이 됨도 내 손
지난 번 로마서 말씀 오늘 본문의 앞 내용처럼
큰 자 됨도 내 손
이스라엘 됨도 내 손
구원 받은도 내 손으로 답을 자꾸 채워 넣을려고 하다 보니
문제는 그 반대인 미움 받음에 놀랍게도 예수님을 죽이도록 되어 있다 라는 사실로써
정작 나는 지옥의 몸으로 들통난다 라는 겁니다
포도원 주인의 품삯 계산 법이 얼마나 불공정하면 악하다 라고 볼 수 밖에 없냐 말이죠
달란트 비유도 마찬가지
불의한 재판관도 마찬가지
나를 선으로 돌리는 순간
주님이 선해 지는게 아니라
주님이 악해 진다는 것
네 맞습니다 눈치 채셨군요
오늘 본문도 결국은 그렇지요
우리는 결과적으로 나를 원인으로 삼아버린 이상
결과가 내가 원하는대로 안 나오게 되니까
저절로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볼 수 밖에 없는
예수님의 비유와 일맥상통한 결과로써의 반응을 우리는 나타낼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네네네 맞습니다
또 나 자신을 나 있다 라고 나를 인간으로 출발해서 행동하다 보니
결국은 예수님을 악으로 몰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결국은 십자가의 사건이 또 벌어지는
두 번 바위를 치는 셈이 되는 겁니다
그 정도로 사랑이 없는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을려는 모세와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거죠
나 자신을 죄인으로 출발하게 되면
저절로 주님의 사랑에 걸맞는 주께만 범죄한 자로써
나의 정당성이 아닌
나 같은 이런 악한 자에게도 왠 용서를 베푸시는지
비로소 이 십자가의 저주가 감사한 겁니다
바로 이것이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치는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 곧 심판을 나타내는 겁니다
왜 우리는 뭘해도 죄 밖에 안나오는 사망의 몸이기에
그런 사망의 몸에게 뛰어드신 그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 아니까 말이죠
앞의 사망의 몸은 개인적으로 볼수도 있지만
뒤의 소돔과 고모라는 아예 집단적인 판데기 구조 판 이다 말이죠
그러니 개인이 무슨 수로 그 집단에서 빠져나올수 있겠습니까?
권세요 환경인데 ~~~~~~~~~~~
그러니 내가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자임을 모르는 자는
그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나에게 뛰어두시는
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시나 나 처럼 빈칸에 정답 써 넣는 자로 행함으로 육으로 난 자
곧 요셉 목수의 아들 아니냐 라고 뭐 나와의 동질성으로
숙제 열심히 할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말이죠
그럴 것 같으면 말라꼬 장대 높이 달린 인자를 쳐다보느냐 말이죠
나와 똑 같은 일을 하니
내 숙제만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그것에만 몰두 해야지
예수님의 숙제를 말라꼬 보느냐 말이죠
같은 문제지에 같이 정답을 맞출려고 애쓰는 자 일 뿐인데
자기 숙제를 손 떼지 않는 이상 주님의 숙제를 볼 턱이 없다 말이죠
이 율법은 우리 지키라고 주신 숙제가 아니다 말이죠
이 말 떄문에 제가 교회에서 대부분 쫓겨났고
많은 장로들에게 무율법주의자 라고 공격을 받았다 말이죠
놀랍게도 목사들은 저보고 율법폐기론자 라고 저런 장로들처럼 공격하는 자는 없어요
그래도 쪼매 공부했다고 장로보다는 좀 낫지만
목사들은 저를 억수로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이 더 노골적인 이유가
저런 장로들 보다 고단수로 악한 자들인 이유는
율법폐기론자 라고 공격은 안 했다 뿐이지
아이고 그래가 교회가 장사 될 턱이 있냐 라고 늘 비아냥 거리면서 비웃는다 라는 겁니다
아직도 철이 없어서 정치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억수로 불쌍하다는 듯이 비꼬아요 글쎄
맞습니다 교회는 정치 뿐이예요
성화론도 실은 정치다 말이죠
교리도 다 정치예요
그래야 끼리 끼리 유유상종 모이는 겁니다
심심하면 하는 소리가 있지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라고
이건 뭐 협박도 아니고 심심하면 염불 외우듯이 주절주절 거려요
제발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꼬 ㅋㅋㅋㅋ
제가 워낙 눈치가 없다 보니
나가 달라는 말인줄도 모르고 염치 없이 있었다 말이죠
유유상종의 소속감에 안 맞는 놈은 제발 꺼져주세요인데
워낙 눈치 없어서 ㅋㅋㅋ
뭐 말이 장로회 침례회 감리회 고신측 합동측 통합측 뭐 이런 소리 하지
사실은 다 정치이다 말이죠
어디 천국에도 없는 것들은 맹글어서 정치게임이나 하고 말이죠
그렇다고 초교파주의를 하면 될 것 같은가? 아니지요 초교파 때려죽어도 인간은 안 됩니다
아니 절대저주 절대미움받음 앞에서 그따위 감투들이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죠
배설물 똥덩어리 더 하다 추가로 쳐바를뿐인데
주렁 주렁 더 매달고 있을 뿐인데
자기가 왜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인줄 성령을 통해서 알려주심을 받지 않으면
섬김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악으로 몰았던 그 천국의 비유들 속의
자칭 하나님의 자녀 자칭 빛의 자녀이다 라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을 악으로 몰아버리는
아니 왜?
정작 예수님은
자칭 빛의 아들들 이라고 우기는 우리에게는 보냄을 받지 않고
불의한 청지기
나중 된 먼저 된 자
주인의 돈을 잃어버릴 걱정도 않고 막 장사를 해 대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자 말이죠
겁도 없이 장사를 하느냐 말이죠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망하면 우짤려고
무슨 수로 원금을 갚냐 말이죠
한 달란트가 16년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해서 모아야 하는 돈이니까
각자 여러분의 연봉을 계산 하면 됩니다
보통 생활비 빼면 2-30%만 저축할 정도이니 곱하면 3하면 한 달란트에 48년???? ㅋㅋㅋ
일만달란트가 그래서 16만년 이라는 계산이 나오는가 봅니다
자 이렇게 돈도 못 갚는 빚진자를 누가 사랑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보겠냐 말이죠
아주 아주 당연히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된 자로 밖에만 볼 수 없잖아요
그런 자에게만 오늘 본문이 이해가 된다고 하니
그럼 착실하게 잘 하고 있는 자에게는 전혀 안 보이는 말씀이겠네? 라고 따질 수밖에 없도록
주님이 우리 속을 박박 긁어 대신다니깐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은 불의하다 라는 소리가 안 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안 나오고는 부정
못 배기는 겁니다 부정
부정의 부정인 거죠
우리를 무조건 부정의 자리에 놓아버리는 것이 목적인데
우리는 무조건 긍정의ㅏ 자리에 자신을 놓아버리니
이 십자가가 거리끼는 걸림돌이요 부딧하는 바위가 될 수 밖에요
이방인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한 거지요
누가 이 십자가의 저주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보겠느냐 말이죠
그런 자를 들어서 지혜롭다는 자를 꺽으시니까
이게 기드온 전쟁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칼이여 아닙니까
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칼 보다 더 모조리 무릎 꿇게 해서 승리하는
지혜가 없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택해서 지혜롭다 라는 자를 꺽으시는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18, 개역)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개역)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개역)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2, 개역)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개역)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개역)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5, 개역)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6, 개역)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개역)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개역)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개역)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의 없는 의로 곧 불의로 모든 의롭다 라고 자칭하는 가짜 의를 무너뜨리시는 겁니다
마치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짓겠다처럼
거룩할 성
거룩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룩한 전이라고 우기는 그 거룩을 깨뜨리는
말도 안되는 삼일만에 세우는 절대저주인 삼을 그 간극을 이중반복을 거치는
이 불의만이 나 보다 옳았다
분명 개같은 이방여자인데
심지어 남의 아이까지 임신한 부정한 여인인데
그 다섯 여자 에게서
예수님의 족보가
이 어리석고 미련한 자를 통해서
지혜롭다 라고 우기는 자 곧 선악은 내가 더 철저히 지킬줄 알아
니 보다 숙제를 더 많이 한 남 7번 용서한
이 자기 의를 쌓은 것을
아무런 의 쌓은 것 없는
도리어 이방여자
더러운 여자
어리석고 미련한 약한 자가
가짜 거룩을 무너뜨리듯이
삼일 만에 짓겠다 라고 하시는 겁니다
성전이라고 이름까지 적었으니 그 이름 값 하도록
얼마나 모든 인간들이 그 곳에 거룩을 쏟아 부었겠습니까?
교회를 세우는 이유인 겁니다
그야 말로 보이는 산 소망이 된 거죠
그 탐심의 바벨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산 소망인
예수님의 숙제가 보일 턱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뭘 해도 내 숙제를 완악하고 강퍅함으로 몰아가는
나 보다 옳았다 라는 이 십자가 곧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신
그 믿음
예수님의 숙제가 아니면
나의 행함 곧 내 숙제가 나의 강퍅함이 들추어지지 않는 겁니다
이 강퍅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는 겁니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느뇨
네 냅니다
하나님의 의인 심판이 이 절대저주인 삼일만에 허무는 성전이 먼저 떳기에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가짜 거룩으로 채워진 성전은 허물어 빵구멍이 나아해는 겁니다
부동산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구석 구석 모든 생각 모든 방향 목표도
모조리 다 불 태우시는, 기경!!! 밭갈이 하시는 이유입니다
이 주님의 겸손이 먼저 떳기에
이 경건의 능력이 먼저 떳기에
우리의 경건의 모양 껍데기가 까발려지는 이 기쁨을
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무슨 죄악들을 용서받았는지 그 강퍅한 내용물 하나 하나를 말이죠
그 죄를 실컷 누리고 그 죄 씻음을 실컷 누리는 겁니다
이 간극을 도저히 좁힐 수 없도록 더더더더 벌리시면서 말이죠
주의 은혜의 날이 먼저 떳기에
우리의 악함을 모은 강퍅함으로 도배된 악한 날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겁니다
애굽의 바로 왕과 애굽 군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듯이
심판 주의 여호와의 팔이 떳기에
짤려야만 하는 미움받기로 작정이 된 애굽의 팔이
두언약의 한 세트를 구성하기 위해서
동원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호세아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지혜로 깨달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겠느냐 (호 14, 4- 9) (1) | 2025.04.05 |
---|---|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호 14, 1- 3) (3) | 2025.03.15 |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3) | 2025.01.31 |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전쟁 (오징어전쟁, 십자가룰렛) (호 13, 4- 8) (1) | 2025.01.11 |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만든 우상 (호 13, 1- 3) (1) | 2024.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