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후견인에게 걸맞는 고아라는 불쏘시개) (호 14, 1- 3)
2025. 3.16.
하나님을 배반한 형벌 (호 13,15-16)
호세아 2023 2025. 2. 21. 14:50
23-31 하나님 배반한 형벌; 앗수르 칼에 죽는 젖먹이, 임산부 배 가름 (호 13,15-16)
〈호세아 14, 1- 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찬송가 490장 새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찬송가 299장 새 564 예수께서 오실 때에〉
〈찬송가 490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새찬송가 433장〉
1.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 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 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받기 원합니다
2. 봉헌할 물건 나 없어도 날 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내 죄를 주께 다 고하니 주님의 보혈로 날 씻으사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3. 간악한 마귀 날 꾀어도 주 예수 앞으로 더 가까이
이 세상 속한 그 허영심 또 추한 생각을 다 버리니
정결한 맘 내게 늘 줍소서
4. 이 세상 내가 살 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없는 복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비나이다 아멘
〈찬송가 299장 예수께서 오실 때에, 새찬송가 564장〉
1.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하나라도 남김 없이 다 찾으시리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 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2. 정한 보배 빛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거두시리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 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3. 주를 사랑하는 아이 이 세상에 살 때 주의 말씀 순종하면 참 보배로다
샛별 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 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호세아 14, 1- 3, 개역한글 구약성경 1269쪽〉
(호 14:1, 개역)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호 14:2, 개역)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호 14:3, 개역)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호 14:1, 현대어) [이스라엘의 전향과 새로운 미래] 오, 이스라엘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너희는 제 죄에 걸려 넘어졌다!
(호 14:2, 현대어) 너희는 이제 제물 대신에 말씀을 받아들고 주께 돌아가 이렇게 호소하여라. '오 주님, 우리들이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너그럽게 용납해 주시면 우리가 주께 찬양으로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입술의 열매를 제물로 드리겠습니다.
(호 14:3, 현대어) 다시는 앗수르의 구원을 바라거나 우리의 전투력을 의지하지도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들을 향하여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도 않겠습니다. 오 주님, 고아나 다름없는 우리가 은혜를 바랄 곳은 주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합니다
즉 이 말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듯이
말씀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겁니다
싫어하는 것은 아예 당연시 하고 아주 정반대의 다른 말씀 다른 복음을
그 자리에 대체 한다 라는 점이 우리가 숙고해야 할 이유이다는 겁니다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가겠다 결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숭배를 아예 대 놓고 하겠다 라고 한다는 점에서
믿는 구석을 우상으로 두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눈 그려서 날 좀 봐 달라
팔 그려서 나를 일으켜 달라
귀 그려서 내 소원 들어달라 라고
하나님 보란 듯이 아예 대 놓고서 행동한다는 겁니다
가끔 정소년 사춘기를 다룬 영화에서 중2병 걸린 아이들이
이런 철 없는 짓을 하는데 있어서
중2도 아닌 늙어 죽을 때 까지 철 들기는커녕
대놓고서 하나님 보란 듯이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누가 봐도 사춘기 오춘기 이다 라고 보이는 자가 아니라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고 가장 존경 받는
다들 흠 없다 라고 여겨지는 자들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이였고
오늘날에는 성화론자들 개혁주의자들이다 라는 거죠
물론 그 반대인 놈들은 당연히 철 없기는 매 마찬가지 이구요
요즘 들어 대놓고서 보이는 태극기 부대 애들 사이비종교꾼들 아닙니까
돈 다 뜯기는 거죠 뭐
딴나라당이 무슨놈의 정당입니까 사이비종교집단들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이미 누가 봐도 정신병자들이다 라는 것을 다 알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밟아 송을 불러도 이놈들 먼저 밟아 버려야 한다 말이죠
문제는 이놈들이 아니다 말이죠
누가 봐도 정상인이다 라고 다들 여기고 본인들도 자부하고 있는
저 촛불시위자들
과연 이들은 의인이기는 할까요?
불의를 보고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 라고 하는 이들 평화시위자들이
과연 의롭다 거룩하다 성화 거룩하게 성숙시키는 삶을 산다고 여기고 또 그렇게 거룩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추구한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거룩 맞기는 맞을까요?
의 곧 거룩을 인간은 과연 알까요?
말씀을 모른다는 입장에서 과연 의를 알기는 하느냐 말이죠
자 그러면 의가 먼지 모른다면
죄도 먼지 모르는 겁니다
아니 저 태극기 부대와 내란당들의 사이비종교 집단들 모습들이
과연 깊고 깊은 죄이기는 할까요? 아니면 얕은 죄 밖에 안되는 것일까요?
말씀 스스로가 규정해 주시는 악 곧 죄악의 깊이를 모른다는 점에서
의의 깊이를 알기는 만무하겠지요
물론 깊이 깊이 몰라도 어느정도 기본은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비록 얕을 지라도
문제는 그 얕게 아는 그 기본적인 내용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자체가
아무리 얕고 미약한 내용이라도 기본이 된다면 옳은 것 아니냐 하지만
그 자체가 죄 가 된다 라는 어찌하냐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지옥의 몸이다 라고 했던 겁니다
즉 저런 깡패 트럼프 따라하는 내란국짐당 사이비집단들을
메시아로 삼아서 고레스처럼 말이죠 네 짐승 메대 파사의 은신상 말이죠
또 느부갓네살 왕을 주님 자신의 종으로 삼아서 이놈은 바벨론 금신상 아닙니까
그렇게 이들을 통해서 악한 날에 주의 날과 한세트를 구성해서 펼치시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의 몸인 고아 만들려며는 이들 애굽왕과 애굽군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받으시는 비로소 어 주님 당신 도대체 누구십니까?
나 고엘이야
나 키다리 아저씨야
나 너를 책임질 양아버지야 재산 물려줄 아부지야 라고 하시는 겁니다
다들 사도바울의 수준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쌓고 쌓은 그 성경지식이
오늘날로 치면 최고의 학벌 하버드 대 중에 하버드 대학원 출신이다 라는 겁니다
천재 중에 천재이다는 거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성경 박사 중에 박사
성화론자 중에 성화론자 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 앞에서는 그런 최고의 성경 지식이
똥덩어리 배설물 지금 겸손 떠는 낮추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성경 지식 최고의 성경지식 소유를 비하한게 아니라
진짜로 더럽기 짝이 없는 죄악 덩어리 이다 라는 겁니다
왜? 백날 해 본들 예수님 죽이는데 다 모이는 지식 밖에 안된다는 거죠
그것을 알고 바울이 지옥의 몸인줄 비로소 알고 어찌할꼬처럼 가슴을 치는 겁니다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화로다 화로다 이 지옥의 몸에서 말이죠
내가 숙제 해 본들 백날해도 의문의 반복인 빈칸 채우기 밖에 안되니
또 배 고픈 겁니다 지옥이 스멀 스멀 또 올라와요
완료가 없어요 미완료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네 맞아요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 할 정도면
우리는 아예 근처도 못가는 입장에서 순 엉터리를 우리끼리 서로 잘한다 라고
장난치고 있는 셈입니다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시겠다 라고 할 정도로
순 엉터리 거룩, 의로움 이요 죄요 심판으로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들끼리 서로 맞다 라고 확증까지 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자 그러니 물론 딴나라당 사이비종교집단 뿐만 아니라
민주당 진보 요즘은 중도 라고 이재명이가 우겨도
역시나 악마 집단이기는 둘 다 마찬가지 이다 라는 겁니다
누가 봐도 악마 중에 악마인 국짐당 보다 더 위선적인
사탄의 자식들이다는 겁니다
정치하는 놈들은 다 정신병자들입니다
민주당 착하다고요? 여호와증인 보세요 얼마나 착한지
자기 착하다 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희생하겠다 하니
내버려둬야지 우짜겠어요 갑자기 성우 그 사람 아들 생각나넹
아들 모조리 감방에 가니 부모 마음 찢어지는 거죠
어릴수록 종교심이 강하니 부모도 못 말리는 겁니다
다 늙어 죽을때에 테레사처럼 쓸데없는 짓 했다 라고 철 없는 짓을 후회하는 거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와 비교해 보면
뭘 해도 다 순 엉터리가 되는 줄 모르고
사람에게 자꾸 희망을 줘요
종교라는 마약이 제일 먼저 우선시 하는게
사람에게 희망을 줄려는 태도 아닙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나 바울은 저주를 받을 찌어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치 않는 자는 저주 받을 찌어다
얼마나 냉정 합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소망 희망을 주는 것이
사람이 사는 목적인데 그게 아니데요 글쎄
그건 저 무당들도 마찬가지 이다 말이죠
도움 주겠다 라고 왕 대통령 되겠다 해 놓고서는
나중에 다 등쳐먹는 겁니다
알뜰폰 팔아먹고 말이죠
그카이 무당들이 왕 자리에 다 앉는 겁니다
뭐 천주교 라는 가면을 써도
천주교 자체가 사탄교 아닙니까
디들 신의 자리에 앉는 겁니다
정작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았는데
그 빈자리 침 흘리면서
종교라는 짐승과 한 패거리가 된 종교라는 음녀들이
천주교 음녀
유대교 음녀
개신교 개혁주의 음녀
개신교 성화론자 음녀들이
그 예수님이 비운 그 자리에 다 앉아버려서
삥을 뜯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개신교 기독교에 과연 남은자가 있기나 한지
아예 기대를 안 가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이
진짜 소망을 가진 곧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둔 자입니다
어떤 아는 선배는 목사에게 너무 기대를 걸다 보니까
심심하면 선교한다 라고 외국에 가 있으니
이건 뭐 낙심이 되어도 한 참 되더라 말이죠
그카이 이리 저리 이 교회 저 교회 떠돌다
외국에 갈 일이 없는 목사에게 비로소 안주 하더라 말이죠
얼마나 웃낍니까? 외국에 갈 일이 없는 목사에게 가니
비로소 안주 한다는 것이 말이죠
사람에게 기대를 거니 실망하고 그 실망을 역시나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으니
주님이 말라꼬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원 ~~~~~~~~~~~~
맞습니다 십자가 고만 캐라 마이 무따 아이가 라고 했던 그 목사에게 안주를 했어요 ㅋㅋㅋ
유대교가 사탄의 회 이였듯이 다 따라가고 있다 말이죠
그래서 원함도 아니요 달음박질 함도 아닌데
아무리 자신을 긍휼이 여김 받는 자고 되고자
백날 긍휼의 그릇 됨의 조건을 아무리 갖추어도
이게 바로 성화론자들이 시키는 사기술 아닙니까
아니 원함도 아닌데 달음박질 함도 아닌데 말이죠
그럼 또 이래 반박합니다 그럼 원하지도 말고 달음박질 아니하면 되느냐 라고
이것 역시나 인간의 숙제 아니냐 말이죠
주님의 숙제로 인한 성령으로 난 자가 있는데
문제는 성령으로 난 자가 없고요
그 성령으로 난 자가 언제 성령이 떠날지 모르니까
완악한 수건으로 광채가 날라가기 전에
그 내용물이 뭔가를
기록하여서 이것을 교리화 하자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칸다고 완악한 수건이 아닌게 되나요?
맹 사랑이 없기는 매 마찬가지이고
번제와 제사를 추구할 뿐이지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울리는 꽹과리인
인애와 자비가 없는데
정직한 영이 없는데
백날 교리화 해서
실천하는 교리 플러스 실천을 해 본들
교리 플러스 실천의 대가 불교를 따라잡을수가 있겠냐 말이죠
종교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믿는 신이 1등이 되어야 한다고 우기는데
불교를 따라 잡을 리가 없으니 말이죠
요즘 미국에서는 불교가 부자들에게 대세이다 라고 하잖아요
결국은 니 혼자다
니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라고 말이죠
위버맨쉬 (독일어: ?bermensch) 자기를 초월하는자 가 겸손한 자 다 아입니까
최근의 표현으로 치면 호모 데우스 이다 말이죠 초인 니체가 말한 것을
인간을 초월한 신이 된 인간으로 발전 시켰다 말이죠
아니 발전 아닌 초월한 거죠
뷸교야 말로 최고의 인문학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이런 최고의 경지의 거룩한 학문이
사도바울은 나도 해 봤다 라는 식으로
촤고는커녕 똥덩어리 라고
초등학문 취급해 버리는 겁니다
즉 지켜서 실천해서 나오는 진리는 아예 진리 취급해 버리지 않겠다 라는 겁니다
아니 진리를 실천을 해야지 실천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진리이냐 라고 반박하는데
인간이 숙제를 해서 진리를 싱천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진리가 진리 자기 숙제로 인간을 다루겠다 라는 겁니다
인간 자기 숙제로 나오는 행동과
진리가 인간을 다룸으로써 나온 행동이
말과 생각 자체가 아예 정반대이다 라는 거죠
이것을 종교애서 말하는 믿음이 아닌
그건 역시나 행함이고
곧 인간 나 여기 있음에서 출발하는 것들이고
그런 종교적 믿음은 종교성 매사에 동교성이 많아서 나온 행동들은
빈칸 채우기 라는 여백 결핍채우기라는 미완료요
이것이 역시나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복수심 원한 한풀이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올수 없기에 믿음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이기에
이 믿음은 선물 받은 성령 받은자
곧 오늘 본문의 내옹인 말씀을 받아서 그 받은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 께로 돌아오는 자
피 발려서 피를 가지고 돌아오는 자가 되겠지요
그런 자에게서 나온 진리
곧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그 내용이 우리가 알던 의 죄 심판과 완전 딴판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정직한 영이 없다 라는 다윗의 고백
우리 모두가 의가 없다 라고 선언한 입장에서
화로다 화로다 나는 사망의 몸이구나 라는 입장에서
그 이호의 모든 것들은 그저 선물인
완료만을 누리는 것 뿐이 아니고 뭐냐 말이죠
곧 은혜죠
시한부인생에서 이미 날짜가 찾음에도 불구하고 안 죽게 되면
그건 뭐 더불어사는 완벽한 삶이 아니고 뭡니까
완료를 이렇게 누릴줄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죠
분면 지난 번 호세아 13장까지 그렇게 부정적으로 너거들 이미 망햇다 라고
심판 속으로 집어 넣는 찢으심 밖에 없었다 말이죠
그 절대저주 절대심판 속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어라 14장 부터는 그 찢으심에 모순이 되는 다시 싸매어 주심이 있더라 말이죠
이 간극을 좁힐 방법이 없어요
논리적으로 안 맞아요
절대 모순된 그 두 극단적인 두 극 과 극이
동전 앞뒤처럼 하나가 되어서 덜쳐지게 되니
나의 되도 않는 저 불교와 같은 초등학문의 숙제를
빈칸 채우기를 그냥 구멍 뚫어버려서
완료 자체로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내 경험화 할수 없는
진리가 나를 도로 체험을 해 버리는 겁니다
내가 체험하는게 아니라
내가 완료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서 누리는게 아니라
내가 말씀을 내 쪽으로 끌어와 누리는게 아니라 이게 성화론이라는 사탄의 깊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바 그 반대인
말씀이 나를 마음껏 누리더라 말이죠
완료가 다 이루었다 라는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나를 마음껏 누리는 겁니다
아 그럼 행복하겠네요 네 맞아요 그런에 우리식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럴까 싶어서 행복이라는 단어로 행복하겠네요 라고 물어봤겠지만
주님이 죄가 타는 그 역거운 냄새를 흠향하시면서 좋아라 합니다
저 같은 냄새에 예민한 자는 기침 콧물 토하고 속이 미스꺼워 난리가 날텐데
알래르기 반응처럼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그런 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땅콩 알레르기 그 얼마나 맛있는 땅콩을 먹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도 몸에 들어가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듯이
온 몸에 반점 퍼지듯이 하고 숨도 못 쉬고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말이죠
바로 그런 식의 행복이면 과연 우리에게 안 맞다고 주님이 그 기쁨을 포기 하시겠냐 말이죠
의사가 최고로 기뻐하는 순간은 암덩어리를 제거했을때에
죽은 자를 살렸을때에
고아 에게 키다리 아저씨 기능을 했을때에 얼마나 기쁘냐 말이죠
그러나 그 고아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모욕적이냐 말이죠
자신이 고아 라는 것이 세상에 밝혀지고
부모가 없다 라는 마치 빈캄이요 결핍이요 여백처럼 여겨지니까 말이죠
그래서 부모 있는 자들이 고아랑 놀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 곧 후견인 고엘의 하나님은
바로 그 부모 있는 자들의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어 버리고
누가 봐도 부모 없는 고아를 하나님 자녀인 양자로 삼아버릴때에
이때 진리가 펼치는 숙제에 내가 고아가 되는
환자가 되는
죄인이 되는 입장에 과연 놓이고 싶어하느냐 라는 겁니다
그런 말씀을 먹고 돌아온다?
인간은 성경을 좋고 긍정적은 것만 골라 먹어서 돌아올려고 하지
누가 70년 만에 쫄딱 망해서 돌아오는 삼분의 2의 저주까지 먹고서
돌아올려고 과연 하는가?
바로 그 처음자리인 고아로써 돌아오는가?
죄인으로써
환자로써 말이죠
자 그런 입장에서 이런 말씀을 우리는 거부하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인간은 그저 남의 눈을 의식하다 보니
복수심인 한풀이 이것을 좋게 포장해서 소원풀이로써
소원을 말해봐 빈칸을 채우고 간극을 좁혀봐를 추구하고자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아니 말씀이 이런 식이면 저번에 말한 멀리 멀리 도망치겠다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게 이것이 정상이고
이것이 언약의 코스이다 라는 말씀이 옳았다면
과연 이런 말씀을 먹고 받고 그 말씀을 가지고 70년 만에 돌아올수 있는가?
네 맞습니다 돌아온다 라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거죠
결국 말씀이 우리를 돌아오게 만든 것이 70년 곧 절대저주 심판 죽음을 거쳐서 나온 것이니까
우리가 생각한 의요 죄요 심판은 심판 축에도 안되는 그야말로 엉터리로써
기경 밭갈이 의도 갈아 엎어야 하고
죄도 갈아 엎어야 하고
심판도 갈아 엎어야 하고
저도 부모님 도와서 밭농사 뭐 파 농사 상추 농사 취미삼아 하시겠다 라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번 해 봤는데 거름 넣을 때부터 발이 다 썩지요 인분에 말이죠 다들 초보라서 뭐 압니까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요령 없으면 생고생하지요
돌 골라내야지요 땡볕에 죽습니다
그리고 비닐 입혀서 펌프 돌려서 물 대어야지요
또 겨울에는 밭 갈아서 또 돌 걸러내는데 하필이면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돌 하나 하나가 얼음덩어리처럼 차우니 동상 걸리는 것은 뭐 일도 아니지요
결국 다들 얼마 하지도 못하고 다 포기하더라 말이죠
몸이 다 고장이 나니 말이죠
자 이렇게 생고생해서 그렇게 힘들게 땀흘려서 농사를 치은 것 추수하고 팔면
최등급 상품을 만들면 얼마나 보람 되는 기쁨이냐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고생한 것을 최하품의 인권비도 안 나오면
갈아 엎더라 말이죠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말이죠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 모든 인간은 그 특급상품들이 최하품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들 자기 숙제로 의인 건강한 자가 될려고 함에 있어서
주님은 밭 갈이를 통해서
오히려 고아를 새로 발생시킨다 라는 점 입니더
또 이렇게 말하니까 아 그럼 나도 고아 될래요 라고
또 자기 숙제로 고아 도는
막사는 놈들이 있더라 말이죠
기존의 고아 개념으로 고아 되는게 아니라
후견인 키다리 아저씨를 말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고아는
인간의 숙제로써는 될 수가 없다 라는 겁나다
오로지 고엘의 하나님 키다리 아저씨의 몫이지 말입니다
진리 스스로가
지혜를 펼치 심에 있어서
천한 계집은 그냥 왕비의 자리에 높이는게 아니라
자신의 지혜를 높이고자
세상 보란 듯이
마귀 보란 듯이
세상이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만드는 식으로 높이실때에
인간 스스로가 고아가 되는 막살기가 되는 것은
하나도 격동하지 않고요 견디지 못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 스스로 지혜자 스스로가 자기 숙제로 하셔야지만
비로소 배 아프다 말이죠
그게 바로 탕자 용서를 맏아들 보란 듯이 펼쳐야
견디지 못해 격동한다 말이죠
결국 주님의 숙제는 상대적인 마귀의 행함을 두언약의 한세트화 한 것이다 말이죠
주님의 반작용이다는 겁니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 한테만 있다 말이죠
즉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만든다 라는 겁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면
내가 하는 숙제로
소위 성화론자들처럼 하게 되면 아무도 배 아파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런 속임수에 빠지느냐
견디지 못해 격동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존경하고 자신에게 보람되게 만드니까 마귀가 다들 속여버렸으니까
아니 누가 견디지 못하고 격동케 하는 그런 치사한 깃을 하느냐
마귀도 아닌데
오히려 광명한 천사 마귀처럼
하나님과 같이 된 넓은 마음 부처님 마음처럼 초월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치사하게 애들처럼 견디지 목하고 격동케 만드는 그런 유치한 짓 안해야지
이게 마귀이다 말이죠
아니 어둠이 반발하는 빛이 아니면 그것이 무슨 빛이냐 말이죠
그럼 승리 라는 표현이 필요가 없다 말이죠
승리란 누굴 이겻다 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의 숙제로써의 승리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왜 악을 허용하느냐
하나님은 불의하느냐?
다 같이 만들던가
왜 누구는 미움받기로 작정
왜 누구든 사랑 받기로 작정이냐
불공평 하다
아 그러면 왜 너는 누구는 천한 그릇
누구는 귀한 그릇 안하느냐
여기서 인간은 죄의 소원을 못 넘어서는 겁니다
선악을 괜히 아는 바람에 말이죠
주님의 선악 아심에 맡겨야 할 판국인데 말이죠
그래서 말씀을 우리는 알 길이 없는 겁니다
성령이라는 새영 새마음이 오지 않으면
부어주시지 않으면
다윗의 말 대로
정직한 영이 없기에
그저 결핍 채우기 라는
율법 네 배나 갚으라 그 놈이 니 놈이다 라고
간극 좁히기가 안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간극 벌리기인 빵구멍 나기를 원하는가?
고아가 되기를 원하는가?
주께만 범죄한 자 되기를 원하는가
택도 없지요
자기 숙제로 남의 허물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는 사랑을
그 율법의 완성을 이룰자 없어요
그저 겉모양만 흉내내다가 한계에 부딧힐 뿐입니다
그카이 다들 하나님께 따지잖아요
요나처럼 차라리 날 죽이소
엘리야처럼 내 열심히 특힘이오니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다들 투덜 투덜, 궁시렁 궁시렁, 징징 거리는 겁니다
제가 만난 인간 부류 중에게 제일 궁시런 거리는 놈들이 누구인가 보니
목사 놈들이다 말이죠
그 목사 놈에 딱 달라 붙은 정치꾼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놈들 궁시렁 거리는 것 1초 만에 잠잠케 하는 방법이 뭔고 하니
돈에 입에 물려 주면 군말하지 않음을 보고
기가 막혀 버렸어요
그것도 가장 고상한 성화되었다 라고 남들이 다 존경하는데
이상하게 저는 그런 점이 잘 안보이고
이상허게 딴게 보여요 환상까지 겹쳐져서 말이죠
임금 되지 않겠다 라고 도망쳤듯이
교인 되어 주지 않겠다 라고 도망쳐야 할 판국이다 말이죠
알고보니 자기의 가치를 높여줄 노예 만들기 였던 거죠
하여튼 이용해 먹을 속임수의 달인들이다 말이죠
남을 돕고자 생겨난 직업들이 예를 들어 변호사처럼 말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등쳐먹고 고아를 신원치 않는 직업들이 되었듯이
후견인이 되어주지 못하니까
다들 고아가 될까봐 싶어서
우상숭배하는 바벨론 여자처럼 열국의 모든 나라의 여자들처럼
과부 안되리라 고아 안되리라 왜?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줄 알거든요
그런 세상에 말씀을 가지고 돌아온다?
후견인의 선물을 가지고 돌아온다?? 그러면 나 고아요
나 죄인이요
나 환자이다 라는 뜻인데
교회에서 나 죄인이요 라고 나오면 그 죄인 어떻게 해서든 쫓아내기 바빠요
미국에서 나 환자요 라는 증거로써 마스크를 하면 다들 피한다 말이죠
의사 조차도 피해요 그래서 휴지를 가지고 목숨걸고 싸우는 웃픈 상황까지 갔잖아요
싸우다 휴지 땜에 죽고 말이죠
말이 봉사를 위한 직업이지 돈 때문에 고아 되면 안되리라 가 되는 거죠
그럼 고아의 후견인의 반대가 뭡니까
그 후견인에 걸맞는 고아이니까
봉사할 상황이 아닌 것을 안다면
도리어 용서 받아야 할 입장이다는 것을 안다면
본인이 고아요 죄인이요 환자인 입장이 아니게 되면
후견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고아도 아니게 되면
거꾸로 고아를 등쳐먹는 과부를 등쳐먹는 나그네를 등쳐먹는
삯꾼 목자이다 자기 배를 위한 사기끈일 쁜이다 라는 거죠
이 완료의 십자가의 피 용서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느냐 누가 속임수를 펼치는
미완료요 의문의 반복이요
결핍의 빈칸 채우기라는 인간 숙제로 속이려 드느냐
그래서 후견인인 고아를 찾고
탕자를 찾고
완료는 완료인 사랑은 율법의 완성 완료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원수를 찾는 겁니다 죄인 중의 괴수 말이죠
그렇지 않다면 다들 아버지 말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맏아들이 될려고 자기 숙제 내밀 뿐인
자기 의를 쌓고자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손수 직접 마련하신 화목제는 거부하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자 이다는 거죠
사랑을 모르니까 울리는 꽹과리 육의 자랑만 쌓았던 겁니다
나 과부 아닌 주모요 공주요 왕비요
내 아들은 고아 아닌 왕자이다 라는 그 꽹과리인거죠
그 정도로 복수심을 펼쳤다 라고 우기는 식인 겁니다
자기 배를 자랑하는 우상을 자랑한 거죠
이런 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올 리가 없습니다
또 육의 자랑
나 고아 될 줄 아는데 너는 고아 될 줄 모르지 또 이렇게 자기 숙제했다고 나오는 놈들이다 말이죠
밀씀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말은
말씀이 나가버린 입장에서
말씀이 떠나버린 그 자리 그 지점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돌아온다 라는 겁니다
네 말이 안되지요
왜? 내 숙제에 달려있지 않음을 우리가 알게 되니까 말이죠
바로 그겁니다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는 이상 안된다는 겁니다
바로 처음자리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첫사랑으로 찾아오신 첫사랑이 만들어낸 자리가 처음자리로써
말씀이 나가버렸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나를 찾아옴으로써 졸지에 새로 생긴 처음자리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나는 순수했엇지 라는
그런 순수한 나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과거이니까 처음자리가 아니지요
처음자리는 새로 맹글어낸 첫사랑이 만들어낸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아이구 겨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구나
다들 수고했네 라고 서로가 서로를 다둑거랴 주면서
쉼을 얻어 한달 넘게 싹다 잊어버리는 그 예수를
49일 쩨 가 되어도 전혀 마음에 찔림도 있다든지
죄책감이 든다든지 하는 그런 마음 추호도 없는데
말씀이 찾아와서 미음판에 할례로 빵구멍 뻥 내니까
갑자기 오십일 만에 어찌할꼬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상한 마음이 되는
비로소 예수님을 죽인 원수로써 들통나더라 말이죠
그 어떤 연계점이 없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원인 없는 결과가 덮쳐져서 말이죠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29, 개역)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행 2:30, 개역)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행 2:31, 개역)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행 2:32, 개역)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3, 개역)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 2:36, 개역)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7, 개역)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개역)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9, 개역)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개역)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41, 개역)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2, 개역)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우리가 아는 죄가 엉터리인 이유도 나오네요
(행 2:34, 개역)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개역)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주께서 내 주께 라는 그 간극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의에서 죄가 규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의 이라는 앞뒤 모순된 간극에서 나오는 죄가 어닌
내가 이미 하나님과 내 자신을 동일시 동맹 연맹 연합시켰다 라는 그 선악의 지식에서
죄를 규정하고 의를 규정하고 심판을 규정하니
도리어 이 주께서 내 주께에서 나온 그 간극에서 나온 심판에 의해서
다 심판 받는 겁니다
즉 주님 본인이 심판의 칼을 날려 놓고서 = 주께서
그 심판 날린 그 칼을 주님 본인이 날려놓고서 주님 본인이 그 심판을 당하시는 = 내 주께
이 간극 이 좁힐수 없는 이 제대로 된 절대심판에서 나온 공백에서 나온 죄
공백인 십자가에서 나온 의
간극에서 나온 심판이 아니면
다 심판받는 허구이다 말이죠
그건 죄도 아니요
의도 아니요
심판도 아닙니다
오로지 십자가라는 그 간극에서 나온 죄 의 심판이 아니면
엉터리일 뿐이다 말이죠
그래서 내 죽음은 죽음 축에도 못드는 겁니다
어딜 십자가의 저주로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 앞에 내 죽음을 드리내미느냐 말이죠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올려면
말씀이 나간 지점 곧 70년 만에 돌아올 때
그 돌아오는 지점이 고아의 자리였던 거죠
잃어버림이 없는데 어떻게 되찾음이 있고
찢으셨으나 라는 지점이 없는데 어떻게 싸매어줌이 있겠느냐 말이죠
돌아오는 지점은 쫓겨났던 지점이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지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는데
다들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요구하는 이유는
여전히 고아의 자리 라는 처음자리가 아닌
쫓겨난 자리가 아닌
의인 건강한 자 특히 부자로써 예수님에게 말씀을 어릴적부터 다 지켰다
혹시 모자란 것 있으면 말씀만 하셔라 당장 지키겠다 라고
말씀을 가지고 돌아왔단다 쨍하고 돌아왔단다 라고 자부했건만
보란 듯이 등돌리고 다시는 함께하지 않겠다 라고 근심하고 돌아서 가버리는 겁니다
결국 믿음이라는 말씀을 내용이란
오로지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빵구멍 만이 완료로써
다 이루심이지
기초만 짖고 46년 동안 지어도 완공 못하는 인간의 믿음에서는
말씀을 이룰수도 없고
믿을 거리가 없습니다
믿음직 스러움이 없이 불안 불안 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나의 믿음으로는 완공 완료 안되는 겁니다
바로 이런 나의 가짜 믿음을 거쳐서 주님의 진짜 믿음으로
내 믿음 아니요 주님의 믿음인 말씀으로
완료로 돌아오는 겁니다
나의 미완료인 완악한 수건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이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딜 속일수 있겠습니까?
이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떳기에
이 주의 날이 떳기에
주의 발등상이 떳기에
원수 같은 나의 거짓됨들이 가짜 믿음들이
원수가 심은 것들이 들통 당하면서
주의 발등상에 드러냄에 들추임 당하면서
이런 죄악도 다 사했던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이 하나님의 의에 복종케 하시는
내 속에 없는 정직한 영
주의 영
주의 마음
새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입은 겁니다
이제 내 개인 사적인 병고침이나
찢어진 살 꿰매어지는 싸매어짐이 없어도
이미 새이스라엘 새신부는 새신랑의 품에 있음을
그 다 이루심을 우리는
여섯 남편이 있었던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물바가지 집어던지면서
나의 죄를 아는 선지자가 나타났다
죄를 안다는 말은 아이고 제대로 의사 만났다 라는 겁니다
죄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돌파리 의사 같은
거짓 목자들이 그 동안 얼마나 평강이다 평강이다 라고
얼마나 대충 대충 고쳐왔던가 말이죠
그 우물가의 여인의 상황은 개인적인 상황이 아닌
그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모습이였던 거죠
거짓 목자들이 평강이다 평강이다 대충 대충 고치면서
삥이나 뜯어내는 그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때나 지금 2025년이나
저도 겨우 반백년 밖에 못 살아봤지만
달라진 세태가 없어요
의문의 반복 뿐입니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소망으로써의 믿음이 다 이룬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이룬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주님의 나라가 먼저 떳기에
이 새상은 악한 날 값을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주의 날이 떳기에
은혜의 해가 다 이루어졌기에
희년이 다 이루어졌기에
이 악한 날이 악한 날로써 나타나도록 되어 있기에
우리는 이 악한 날 속에 살면서도
주의 날을 누리는 증상물로써
세상에 내 던져진 주의 날의 증상물
은혜의 날의 증상물
희년을 누리고 즐기는 자로써
후견인이 누구신가를 말하는 자로써 고아로써
후경인의 증상물로써 고아로 그 증상을 누리는 겁니다
이 후견인을 온 세상 외치면서 말이죠
악한 날은
여호와가 누구관데? 라는 반응을 나타내도록
세상이 이 후견인을 모르겠끔 만들고자 하는 그 악한 마음을
들이 쑤셔 대는 불쏘시개로 우리를 미끼로 고아(사라지는 매개자)로 삼으셨듯이 말이죠
====================================================================================
22-055 토기장이 비유와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심 (롬 9,19-23)
2025. 3. 23.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주의 날과 애굽 왕의 악한 날) (롬 9,13-18)
로마서 2022 2025. 3. 1. 14:08
22-054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애굽 바로 왕의 악한 날과 주의 날) (롬 9,13-18)
〈롬 9,19-23, 개역한글, 신약성경 252쪽, 가스펠; 베드로의 고백, 찬송가 359장 새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찬송가 006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새찬송가 002장〉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롬 9:20, 개역)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1, 개역)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 9:22, 개역)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롬 9:23, 개역)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19, 새번역) 그러면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실제의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임
(롬 9:20, 새번역) 오,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 ㉫실제의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임 ㉬사 29:16; 45:9
(롬 9:21, 새번역)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롬 9:22, 새번역)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보이시고 권능을 알리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대상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롬 9:23, 새번역)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앞서 하나님이 불의 하시뇨 라는 말씀을 대했습니다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3, 개역)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5, 개역)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6, 개역)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7, 개역)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롬 9:18, 개역)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그 앞서서도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고 했을때에
역시나 인간의 머리에서는 반발성이 드러났습니다
(롬 3:5, 개역)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롬 3:5, 새번역)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그래서
(롬 9:14, 개역)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이 연장선상에서 오늘 본문도 인간이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것을 익히 알고서
하나님이 불의하시뇨처럼 하나님이 허물이 있으시뇨 라고 또 역시나 반발성을 전재하고서 증거하십니다
(롬 9:19, 개역)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즉 아무리 봐도 허물 덩어리 이고 모순적이다는 거죠
그렇기에 인간은 반드시 대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대적 안하고파도 대적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앞서 살펴봤지요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28, 개역)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개역)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개역)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31, 개역)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2, 개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개역)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개역)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개역)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개역)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개역)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대적 송사 정죄에 주님은 상대적인 두 언약의 한세트로써
대적 에 대해서는 성령의 은사를
송사 에 대해서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곧 우리가
바로 지난 주
23-32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후견인에게 걸맞는 고아라는 불쏘시개) (호 14, 1- 3)
2025. 3.16.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곧 고엘 즉 후견인이 되신다 라는 겁니다
고아란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받아줄수 없는 버림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다들 송사 하기 딱 좋아요 무조건 뒤짚어 씌워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도
아무도 모르는 자 이다는 겁니다 즉 보호자가 없으니까요
보호자 전쟁 아시죠? 갈렙이 열명의 정탐꾼의 주장인 우리는 메뚜기이다 라는 주장에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왜?? 저들은 보호자 곧 후견인이 없으니까
이게 보호자 전쟁이다 라고 했잖아요
(민 14:9, 개역)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 갈렙이 바로 고아 출신이거든요 즉 이방인 출신인데 유다지파로 편입이 되었다 말이죠
정작 본 자식 혈통 따지는 자들은 보호자를 안 믿는데 말이죠
자 그리도 마지막 세 번째
대적 송사 그 다음 정죄에 대한 주님이 준비하신 언약은 약속은
(롬 8:34, 개역)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개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 예수 곧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가 즉 심판주 이다는 거죠
친히 간구하신다 라는 겁니다
심판 주가 곧 구원 주가 되셔서 말이죠
그것도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이기에
죽음이라는 사망의 권세가 이미 무용지물이 된 판국이다는 겁니다
그래놓고 사망아 누구를 쏘느냐 말이죠
그 죽음이 허구였다는 것을 밝힌 분이 친히 간구하셨다
베드로야 믿음 떨어지지 말라꼬 말이죠
베드로는 마치 구약의 출애굽 사건처럼
이스라엘이 애굽 군사로 인해서 죽음으로 몰렸을때에
모세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라 했던 것처럼
베드로가 믿음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다 라는 겁니다
이미 믿음 다 탈탈탈 털려서 다 떨어진 자에게 말이죠
즉 주님의 믿음으로 밀어붙이심 만이
마귀의 베드로 잡았다 라고 밀까부듯이 정죄하는 그 정죄를 이기는
이 사망 권세를 이기신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친히 간구하심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다 라는 거죠
즉 이 말은 세상은 어떻게해서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려고 발작 하도록 되어 있고
우리는 그로 인해 죽도록 되어 있다 라는 겁니다
오로지 다시 사는 것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친히 간구하심이지
인간의 믿음은 죽음 속으로 몰아갈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왜? 우상의 실체가 드러나면 안되니까 말이죠
그리고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사는 실상인 믿음을 나타낼수가 없는
믿음의 껍데기 모양 흉내만을 내는 행항 밖에 안나온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믿음만이 그 허상인 죽음의 실체를 까발리시고자
죽음으로 몰아가서 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시는
믿음이라는 실상을 나타내는 겁니다
인간은 행함 밖에 안나오고 즉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는 거죠
자기 정당성을 확보 할려는 빈칸에 답 적기 라는 미완료로
그 그림자를 추구하지 허구죠 허구 죽음 아래에서 말이죠
살싱인 믿음 곧 보이지 않는 증거를 나타낼수가 없는 겁니다
(히 11:1, 개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즉 인간은 타인의 눈을 의식한다 라는 것은
타인이 볼 수 있는 것 까지만 의식해서 그 조건을 갖추는 겁니다
필요충분조건처럼 말이죠
결국 죽은 뒤에는 볼수가 없고 볼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안 보이는 보이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원함으로도 달음박질 함으로도 안되는 아무리 바라고 바래도 그 타인도 죽은 자가 사라진 입장에서 무슨 수로 볼 수 있으며 타인 역시나 죽음 뒤에 사라지기 때문에
한계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은 살아있을 동안만이다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죠
자 그런 입장에서 인간은 자기 있음 살아있음에서만 한계가 쳐져 있는 상황에서 보는 겁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은 안 보이는 거죠
그래서 말할 수가 없어요 비트겐 슈타인 철학자 말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런 행함 곧 인간이
먼저 있엇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있었기에
그런 인간의 논리에 즉 시공간에 안 맞춰주신다는 겁니다
우주에는 시간이 없어요 인간이 자기 편리하기 위헤서 나온 우상 개념 곧 허구 개념입니다
주님의 시공간이 있어요 주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만든 시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공간을 인간이 자기 유익에 도움 되고자 주님의 시공간 개념을 끌어와서
동맹 동질성 합일성 연합 합체 시켜버립니다 마치 성령론의 개방성처럼 말이죠
아니 임의로 부는 바람을 아무리 합체 시키고 연합 동맹 시킨다 라고 해서
바람이 인간 뜻대로 불어줄까요?
결국 인간 자체가 우상이다는 겁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것을
과학하고 앉아있네가 지금은 삭제 했지만 그때 비판할때에
하나님 스스로가 다른 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 보니까
나 외에 신이 없다 라는 것은 잘못된 거다
본인 스스로가 모순 된 것을 인정하는 거다 라고
철학자들이 말 꼬리 잡고서 따지는 것처럼
논리의 모순점을 찾았는냥 기고만장하던데
바로 그 자체가 증거가 된 거죠
신약에서의 우상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이다 라고 했거든요
(골 3:5, 개역)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건 단순히 경건주의자가 되어라가 아니라
오히려 경건주의자들이 우상숭배자이다는 겁니다
껍데기로써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완악한 수건을 벗지 않으니까 말이죠
아무튼 탐심 곧 하나님의 모순점을 찾겠다 라는 것 자체가 탐심
곧 하나님의 뭇 별 보다 더 높아지겟다 라는
새벽별 계명성 교만한 왕과 같다는 거죠
심지어 저런 것을 떠벌리기 까지 하잖아요
거봐라 하나님의 모순점 이 십계명의 모순점을 내가 증명했다 라고
내가 가 먼저 되었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자기에게 도움 안 되는 그런 미신적인 요소가 안되면 이제
신을 인간 스스로가 심판하는 겁니다 물론 그런 신도 자기 투사로 만들어낸 허구이지만 말이죠
인간 자체가 허구이기에 신을 맨날 만들어내는 겁니다
호모 데우스 즉 자기자신을 만들어 내어요
교만한 바벨론 왕처럼 말이죠
자 아무튼 진짜 믿음은 바로 이런 허상인 죽음 속으로 몰아가서
믿음이라는 실상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에게서는 믿음이 있을 수가 없어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수가 없다 라는 겁니다
결국 오늘 본문으로 치면
진짜 죽음이라는 절대 죽음을 퍼붓는 자가 누구인가?
허구인 죽음이라는 사망권세인가
아니면 심판 주 이신가 라는 점에서
사망권세인 죽음이라는 허구처럼 주님이 허물하신가?
불의하신가?
아니면 그 어떤 인간도 예외 없이 다 죽어 마땅한 진노의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심 즉 용서해주심으로써
도저히 돌아올수 없는 탕자를
돌아오겠끔 하신 이 제대로 찢으심 곧 죽이시는 심판 주 되심이
나 보다 옳았다 라는 것인가 라는 점에서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겁니다
딱 한 분 남겨둔 한 씨 예수님 뿐이고
모든 인간은 이 사랑 받기로 작정이 된
하나님이 내 기뻐하는 자요 내 아들이다 라는 이 분을 죽여버린
그 미움 받기로 작정이 됨을 유감없이 드러낸
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진노의 대상으로 까발려 졌다 말이죠
그 속에서 우리 손에 죽임을 당하신 분이
친히 간구하심으로써
먼저 토기장이 되심으로써
즉 그릇이 먼저 됨이 아닌
토기장이 되심이 먼저 되심으로써
찢으셨다가 다시 싸매어 주시는 이 의사를 말하기 위한 환자 라는 그릇을 만드심으로써
즉 죄 짓는 죄인은 그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의가 곧 찢으심과 다시 싸매시는 심판주가 토기장이가 만들어내었다 라는 겁니다
주께만 범죄한 자는 토기장이가 만들었어요
그카이 사도바울이 자기가 죄 지은게 아니라 자기 속에 죄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속을 필요가 없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미리 아시고
즉 미리 마귀가 덮쳐져서 예수님울 세 번 부인한다 라는 것을 미리 아시고
마귀에게 포로 잡혀 와서
십자가에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할 줄 아시고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나타나는 마귀에게 사로잡힐 줄 아시고
미리 죄 값을 치르시는
이 은혜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함을 이루시고자 말이죠
그렇다고 또 잔머리 굴려서 아 은혜를 더 할려면 우리가 죄 일부러 지어야 겠넹
또 이래 나오는 놈 반드시 있다 라는 것을 아시기에
이미 정죄 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놈들이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사랑 없는 울리는 꽹과리 이다 말이죠
의사를 말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인해서 환자가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성령을 대적하는 환자가 되겠다 라고 하니까
이들은 화로다 나여 나는 지옥의 몸 죽음에 이르는 병든 몸이구나가 아니라
나는 니 보다 잘났지롱 이라는
결국 자기 의를 쌓는 놈이지
하나님의 의를 의사되심을 나타내는 찢겨졌다가 다시 싸매주심을 받는 환자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레서 오래 참았다 관용하셨다 라는 것은
지금 당장 죽여도 시원찮을
그런 심판주 앞에서 벌벌벌 떠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심판 주 앞에 서는
사자 앞에 비둘기 이어야 하는데
아니 이놈들은 간땡이가 부었나
너는 죄인 될 줄 모르지
나는 죄인 될 줄 안다 라고
자기를 증거하고 있지
벌벌 떨면서 주님을 나타내고 있지 않더라 말이죠
아니 심판주를 나타내어야 할 자는 두려워서 벌벌 떠는 자 인데
뭐 이딴 놈들은 지 잘났다 라고 역시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겉모양만 갖추는 그 행함이
과연 믿음이라는 실상 앞에서 무사 할수 있겠냐 말이죠
오늘 본문 보세요
하나님의 도에 의해서 즉 십자가에 의해서 모든 육체는 발가벗겨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로 지난 주 말씀처럼 고아 라는 것이 들통나도록 되어 있어요
그 고아란 후견인이 손수 직접 마련한 피 보혈의 피 곧 인애와 자비에 걸맞는 고아 만들기 인데
이것들은 나는 부모 보호자 잔소리하는 사랑의 매 없는 징계 없는 사생아 고아 이다 라고
너는 멋대로 사는 고아 될 줄 모르지
나는 고아 될 줄 알아서 마음대로 살지 라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오래참고 관용하시는 분을 드러낼 마음이 없는
보호자를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그야 말로 징계가 없는 사생아 이다는 거죠
그카이 진노 당하는 너는 진노의 그릇
나는 징계가 없는 긍휼의 그릇이라고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할때에
아니 그럼 토기장이가 먼저 있으면 뭐 합니까
토기장이가 나중에 이렇게 징계없는 자신을 긍휼의 그릇 삼아주는 시다바리가 되어주고 있는데 말이죠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떳기에
이미 토기장이가 먼저 떳기에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흥함과 패함의 기준인 토기장이의 오래참으심과 관용하심
즉 제대로 죽이시겠다 라는 겁니다
결국 이것은 이미 인간이 선택과 버림
구원과 심판은 이미 자기들끼리 추구하는 상황에서
탕자는 심판 받았고
맏아들 본인은 이미 구원되었다 라는 그 의식 자체가
토기장이 비유가 놀랍게도 다리 걸어서 그런 사고방식에 거리끼는 걸림돌로 실족케 만들어버린다 라는 겁니다
누가 봐도 악한 놈 탕자 이 놈은 누가 봐도 진노의 그릇
누가 봐도 선한 자 맏아들 아버지 말씀을 단 한번도 어긴적 없는 누가 봐도 긍흉의 그릇을
주님은 우상이 된 인간 보란 듯이 마귀보란듯처럼
팔을 어긋맞게 하신다 라는 거죠
왜냐하면 구원을 선택을 인간들은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으로 취급하고 있지
정작 심판 주의 취지는 전혀 모르니까 말이죠
대적하고 송사하고 정죄까지 했던 십자가의 사건 자체가 증거
또렷한 증거로써
인간은 쥐 뿔도 아는 것이 없는데
무슨 진노를 알며
무슨 긍휼을 알겠습니까
뭘 해도 인간은 강퍅만 할 뿐인
완악한 수건만 더더욱 겹겹이 쓸뿐이지
그것을 도로 자랑만 할 뿐이더라 말이죠
마치 스펙 쌓기처럼 말이죠
한번은 미국인인데 미국에 한국어 마을을 세워서 홍보하는 분인데
이 분이 한국에 오면 한국인들이 자기들 곧 미국인 들과 이야기 할때에 한국말을 가급적이면 안할려고 하고 영어로만 말 할려고 한다고 하더라 말이죠
그 속내에 영어만이 고급 언어이고 한글은 마치 자기 스스로 천시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라고
엘리트 의식을 꼬집더라 말이죠
https://youtu.be/qbqll3_VZ44 29분 전부터 30분 쯤에 나옴
아무튼 우리는 진노냐 긍휼이냐 에 전혀 절대로 관여할수 없는
오로지 처분 대상일 뿐이지
그래서 토기장이 비유를 말씀 하시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더더욱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야말로 강요된 선택이지요)
더더욱 자본주의 시장 자유 시대에서
누가 처분을 받는 자리에 놓여지는 입장을 바라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오로지 못 먹어도 고 라고 우리는 악한 세대가 요구하는 기적을 바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세대 그런 시대상에서 벗어날수가 없는 갇혔다 말이죠 강요당하고 있어요
그러니 자기를 우선시 하는 이런 우상사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상황인거 뻔히 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첫 맹세대로 밀어붙이심으로써
돌아올자 없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자 새로 만드심 앞에서
비로소 주께만 범죄한 새로운 죄인 만들기 앞에서
곧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라는 이 새로운 태에서
의의 그릇과
불의의 그릇이
이 십자가라는 가마에서 토기가 구어지는 겁니다
새로운 의 새로운 불의는 기존의 의와 불의가 통하지 않는
십자가로 갈라지는 겁니다
나를 제대로 죽이시는 이 십자가만이 완료를 다 이루시지
나를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찢겨버리지 못하는 것은
삼일만에 다시 사는 다시 싸매어주시는 이 긍휼을 알길이 없는
의문의 반복일 뿐입니다
'호세아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지혜로 깨달으며 누가 총명으로 알겠느냐 (호 14, 4- 9) (1) | 2025.04.05 |
---|---|
하나님을 배반한 형벌 (호 13,15-16) (2) | 2025.02.21 |
인간 왕의 한계 VS 용서 없는 무자비한 용서의 왕 (호 13, 9-14) (3) | 2025.01.31 |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는 전쟁 (오징어전쟁, 십자가룰렛) (호 13, 4- 8) (1) | 2025.01.11 |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만든 우상 (호 13, 1- 3) (1) | 2024.12.20 |